범죄소설 - 김용언 지음/강 |
얼마 전 읽었던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와 유사한, 추리 및 범죄, 하드보일드 장르 문학에 대해 분석한 문학 이론서.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는 미국 역사 흐름에 따른 사람들의 가치관 변화가 장르 문학 스타일 변경에 큰 역할을 하였다는데, 이 책도 동일한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확대, 남성들의 불안 등이 주요 동기였다는 주장은 별다를게 없거든요. 특히 하드보일드 문학 장르에 대한 분석은 거의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에요. 소개되는 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대동소이하고요.
그렇지만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에서는 순수하게 하드보일드 소설만 분석하고 있으며, 시대가 변할 수록 '감상주의'가 강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고전 본격물과 이후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을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두 장르를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이 책에 따르면 고전 본격물은 외부적 자극이나 변화의 계기를 일절 고려하지 않은, 모든 원인과 결과가 세심하게 고려되고 창안되고 배치된 '닫힌 계'입니다. 추리 소설은 하나의 기계와 같고, 독서는 경악과 호기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미스터리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호기심의 '양'은 점점 줄어들고요. 탐정이 멕스웰의 도깨비 역할을 해서, 무질서를 통제하고 질서를 찾게 만드는 것이지요. 마침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사물의 일상적 질서가 회복되는 평화로운 결말로 끝납니다. 즉. 호기심이라는 에너지가 최대에서 최소로 옮겨가고, 엔트로피가 최대인 '평형 상태'가 되는 열역학 엔트로피 이론과 동일한겁니다. 이렇게 마지막에 '열 죽음' 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한 번 읽고 결말을 알게되면 그 책을 다시 읽게 되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게 되는 것이고요.
하지만 20세기 하드보일드는 다릅니다. 셜록 홈즈처럼 완벽한 멕스웰의 도깨비 역할이 불가능하다는걸 통감했기 때문입니다. 하드보일드 탐정들이 할 수 있는건 사회의 부패와 범죄가 들끓는 현상을 낮추고, 일시적이나마 숨겨진 질서의 패턴을 찾아내려 애쓰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완벽한 무질서의 해결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존재가 더 큰 무질서를 낳기도 하니까요. 엔트로피 이론에 따라 결국 어느정도 안정화되기는 하지만,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고요.
이 논리에 따르면 1980년대 일본에서 신본격 소설이 등장하여 유행한건, 일본이 버블 경제로 최고 호황을 맞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19세기 산업 혁명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안정이 뒷받침 되면서 사람들이 '닫힌 계', 즉 범죄가 해결되고 안정적인 질서로 끝나는 체계를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요.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처럼 개인이 발버둥쳐서 좌절하거나 약간의 희망과 소득만 얻을 뿐, 부조리한 세계는 그냥 움직일 뿐이라는 어두운 이야기는 먹히지 않게 된 거지요. 반대로 버블이 붕괴한 1990년대 이후, 기리노 나쓰오 등에 의해 처절한 범죄 소설이 등장한건 당연한 수순이고요.
이렇게 재미있는 발상은 돋보이는데, 문제는 책이 쑥쑥 잘 읽히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정말 어렵게 쓰여져 있거든요.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읽기 편한 글은 아니었어요.
한국 작가가 쓴 글인데도 불구하고 분석 대상이 영미 장르 문학이라는 것도 아쉬웠던 점입니다.
그래도 범죄 소설,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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