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온 - 나이토 료 지음, 현정수 옮김/에이치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갓 형사과에 입사하여 서류 정리 업무를 맡은 신참 형사 도도 히나코. 그녀는 미해결 사건파일들을 암기하다가 자살로 보이는 어느 택배 배달원의 변사 사건에 처음으로 투입된다. 그런데 그 자살 피해자는 히나코가 암기 중이었던 미해결 성폭행 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다. 자신의 음부에 병을 박아 넣고 죽은 참혹한 시신은 당연히 살인으로 의심할 만했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완벽한 증거가 곧 발견되었다. 피해자가 자신이 직접 자살하는 장면을 촬영한 스마트폰이 발견된 것이다. 게다가 경찰서에 보관된 스마트폰 속 자살 동영상이 어느 날 인터넷 동영상 투고 사이트에 공개되고, 연이어 유사한 자살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일본산 범죄 스릴러물.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던 범죄자들이 연쇄 자살하는 사건을 수사하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어떻게 범죄자들이 자살하게 만들었는지를 풀어내는게 핵심이고요.
그런데 검시를 통해 자살한 범죄자들 뇌에 종양이 있다는게 발견됩니다. 당연히 자살은 뇌 종양이 원인이고요. 정상적인 검시 과정에서 밝혀진거라 추리의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때문에 추리의 여지를 남기고,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누가 어떻게 피해자들에게 뇌종양을 만들었는지?"를 밝혀내는 후더닛+하우더닛 이야기로 흘러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런 이야기 구조를 만드는데 실패했습니다. 우선 후더닛 측면으로 보자면, 유력한 용의지 나카시마 다모쓰가 초반에 등장해서 범인이라는 인상을 팍팍 심어주기 때문에 점수를 줄 방법이 없어요. 의외성이 전무하니까요. 도도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양념통 지문과 자살 현장의 콜라병 지문이 일치한다는게 밝혀지는 클라이막스는 나쁘지는 않아요. 양념통을 나카시마가 만졌던 적이 있었고, 이를 통해 나카시마가 피해자 미야하라 아키오를 마지막에 만난 인물이라게 입증된 셈이거든요. 하지만 이미 나카시마가 근무하는 병원이 피해자들의 접점이라는게 드러난 이상, 곧 밝혀질 일이었어요. 뭔가 대단한, 결정적인 단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는 봐줄만 한데, 하우더닛 측면에서는 빵점 짜리입니다. 상식적으로 뇌종양을 만들려면 외과적인 수술이 필요했을겁니다. 이전에 읽었던 <<숙명>>에서 처럼요. 그러나 감옥에 수감된 사형수마저 종양이 생긴걸 보면, 다른 방법을 썼을겁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전혀 셜명되지 않습니다! 나카시마가 끼고 있던 큰 반지가 자살을 시작하게 만드는 하이테크 장치였다는 설정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에요. 이래서야 초능력자가 염력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스캐너스>>와 별로 다를게 없지요. SF, 판타지스러운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중간에 이런저런 가능성을 타진하며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조건반사, 최면술 조작이 차라리 나아 보일 정도입니다.
캐릭터들도 진부하거나, 묘사나 설명이 지나칩니다. 주인공 도도 히나코는 착하고 순진하다는 점에서, 이런 범죄 스릴러 속 스테레오 타입이었던 강단있고 강한 여형사가 아니라는 차별화 포인트는 명확합니다. 그러나 흔하디흔한 일본 컨텐츠 속 착하고 열심히 사는 여주인공 그 자체라서 스테레오 타입인건 마찬가지죠. 게다가 그녀가 절대적인 암기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은 왜 등장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에서 별로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않거든요. 히토미가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잘생긴 점원에 대해 이야기한 걸 떠올린게 수사의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는 합니다. 허나 이 정도는 절대 암기력까지는 필요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구태여 이런 초능력같은 설정을 붙일 이유는 없었습니다. 살인 방법과 더불어 작품의 현실성을 급락시키는 또 다른 원인만 제공할 뿐이었어요. <<탐정학원 Q>>스러운, 만화같은 이야기였달까요.
연쇄살인마 오토모 이야기는 진부하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전개 상 불필요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나카시마가 뇌를 조종하여 자살하게 만드는 장면을 히나코 앞에서 보여준다는, 극적인 클라이막스를 위해 억지로 등장시킨거에 불과해요. 살해당한 히토미가 언급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잘생긴 직원이 오토모라는게 밝혀지면, 체포는 시간문제였을테니 추리할 여지도 없고요.
그 외 범죄자들의 자살과 그들의 범행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거북했습니다. 지나치게 잔인한 탓이지요. 범죄자들이 천벌을 받게 만드는, 일종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는 합니다만 좀 지나쳤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게 천벌이 내리기를 바라는 독자의 소원을 충족시켜주며, 천벌을 위해 뇌를 조작해서 자살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꽤 흥미로왔습니다. 그러나 그걸 이야기로 잘 풀어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설득력도 낮고요. 싸구려 헐리우드 스릴러 수준에 불과해요. 시리즈라고 하는데, 후속권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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