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시가 아키라 지음, 김성미 옮김/북플라자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미타는 택시 안에 스마트폰을 두고 내린다. 그것을 주운 남자는 폰 속 도미타의 여자친구 아사미에게 반한다. 그는 전문 해커이자 연쇄 살인범으로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아사미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한 편, 인적이 뜸한 야산에서 신원 불명의 여성 변사체가 잇달아 발견되어 경찰은 수사에 나선다.
제15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최종 수상작. 최근 상당히 화제가 된 듯 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SNS는 누구나 쓰고, 해킹에 완벽하다고 할 수 없기에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은 많습니다. 휴대폰 위치 추적을 활용한 작품이 개중 많은 편이죠. 해킹에 촛점을 맞춘다면 찬호께이의 <<망내인>>이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고요. 하지만 <<망내인>>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살인이라는 실제 범죄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때문에 대단한 해킹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특히 살인 직전까지 페이스 북 등을 잘 활용하여 피해자를 옭아매는 과정은 설득력이 높아요. 비슷하게 페이스 북을 주로 활용했던 <<리얼 라이즈>>는 영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었는데 말이죠. 아마 이런 부분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하게 된 요인이 아닐까 싶네요.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우선 범인은 습득한 도미타의 핸드폰의 비번을 풉니다. 도미타의 생일이 비밀번호였는데 이를 알아낸 방식이 기발합니다. 마침 전화를 걸어 온 애인의 이름이 화면에 표시되었기 때문에 이 이름의 페이스북 가입자를 조사한 뒤 바탕 화면 사진과 일치하는 가입자를 찾아냅니다. 이를 통해 도미타의 페이스북 계정을 알아내어 생일을 확인하게 됩니다. 다음으로는 도미타의 핸드폰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 놓은 후 폰을 돌려줍니다. 페이스 북을 통해 알아낸 정보로 도미타, 아사미와 관련된 가짜 페이스북 친구들을 다수 만들어 연결하고요.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아사미에 관련된 정보를 하나둘씩 입수하면서 도미타 폰에 고의로 랜섬웨어 감염을 일으킨 뒤, 친구 소개를 가장하여 보안 전문가로 직접 나타나 도미타와 아사미의 신임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사미에게도 개인 정보 유출과 해킹 등의 사건을 일으키고 해결해 준 뒤, 틈을 타 납치하게 되죠.
페이스 북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약점은 있습니다. 도미타의 직장 동료로 가장한 고야나기의 질척거림 등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있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수긍할만한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도미타 핸드폰 속 사진의 GPS 정보를 분석하여 아사미의 집이 어디 근처인지를 알아낸다던가 하는 디테일들도 괜찮았어요.
이런 범죄 계획, 실행도 흥미롭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범인이 이미 살해하여 유기한 피해자들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게 만드는 상황입니다. 피해자들의 스마트폰만 살려 놓은 뒤 가끔 문자 메시지 연락을 하는 정도인데 이게 아주 잘 먹히거든요. 가족, 친지와 멀어지고 모든 걸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 현대 사회이기에 가능했던 속임수인데 실제로 아주 그럴듯해 보여서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아사미를 납치하여 살해하려는 실제 범행 쪽 이야기는 아쉽게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아사미에게 누드 사진을 보내는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거든요. 범인이 보안 전문가 우라노로 가장하여 신뢰를 쌓았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범죄면 경찰에 바로 신고할 수도 있잖아요? 다케이와의 불륜을 암시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을 해킹하여 게시한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케이의 행동을 컨트롤하는건 불가능한데 다케이가 경찰에 신고했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이 범행을 통해 다케이를 아사미로부터 떼어 놓는다고 해도 범인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요.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페이스 북 조작은 <<리얼 라이즈>> 수준 정도가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조작한 나의 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퍼트려 내 개인의 평판을 망가트리는 식으로 말이죠. 평판을 망치는 것 외에 페이스 북을 통해 상황을 제어하거나 조작하는건 아무래도 어려우니까요.
결국 납치는 방심한채 술을 마시는 아사미를 만나 그녀의 술에 약을 타는 고전적인 방식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이럴 생각이었다면 도미타, 다케이를 떼어버리고 차분히 보안 전문가 우라노를 신뢰하고 의지하게 만든 뒤 당당히 집에서 납치하는게 정답이었을겁니다. 이미 연쇄 살인 및 사체 유기가 발각되어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범행을 서두를 이유는 없죠. 바텐더가 분명 아사미와 함께 나가는 범인을 목격하기도 했으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무엇보다도 아사미를 납치한 뒤 그녀가 Siri로 도미타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된다는 결말이 가장 문제입니다. 해킹 전문가인 범인이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습니다. 폰이 아이폰이라는걸 명확히 알았는데도 이 기능을 간과한건 납득하기 어렵거든요. 전화를 받은 도미타가 이전 해킹 덕분에 아사미 폰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에요. 해킹과 폰 위치 추적은 별 상관이 없잖아요? 백신을 설치했다면 모를까.
그리고 데뷰작이기 때문이겠지만 소설적인 완성도도 부족합니다. 캐릭터 설정부터 견고하지 못해요. 도미타가 가장 좋은 예입니다. 그는 거의 전편에 걸쳐 아사미에게 의지하는 무능력한 찐따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아사미를 구해주고 그녀의 과거마저 모두 이해한다는 대인배로 급작스럽게 거듭나죠. 왠지 모르게 계속 좋은 사람, 훈남으로만 묘사되는 다케이는 반대로 단 몇 줄의 묘사를 통해 불륜을 즐기는 인간 쓰레기로 돌변하여 리타이어하고요.
여기에 더해 아사미가 과거 AV 배우 야마모토 미나요였다는 설정은 왜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와 별 상관도 없을 뿐 아니라 아사미로 가장한 미나요가 아사미의 대학 시절 잠깐의 연애 상대였던 다케이와 다시 만나는 행동은 비현실적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낼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화를 불러올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러한 과정에서 그녀가 진짜 아사미인 것처럼 심리묘사를 해 가며 독자를 속일 이유 역시 없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톡톡 튀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닥 기대에 값하지는 않았습니다. 해킹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망내인>>을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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