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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31번지 뉴 여인숙의 수수께끼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민웅기

31번지 뉴 여인숙의 수수께끼 - 4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민웅기 옮김/바른번역(왓북)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용 의사로 일하던 저비스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장소로 왕진을 나가 모르핀 중독으로 보이는 환자 그레이브스를 치료한다. 감금되다시피하여 이동했던 상황, 심상치 않았던 환자의 상태 때문에 사건을 친구 손다이크와 상의하고, 손다이크는 그 집이 어딘지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발생한 두 번째 왕진에서 저비스는 그레이브스가 거의 사망 직전 상황에 놓였다는걸 알고 왕진에서 돌아온 후 경찰에 신고하지만 당장은 사건성이 없다며 묻혀버린다.

이후 저비스는 고용 의사를 그만두고 손다이크 박사와 일하게 되는데 첫 번째 수임한 사건은 기묘한 유언장 사건이었다. 의뢰인은 사망한 제프리 할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게 된 스티븐이었다. 그는 별 것 아닌 삼촌의 유언장 수정으로 거액을 상속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사건을 조사한 손다이크 박사는 이 사건이 저비스가 접했던 기묘한 환자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걸 밝혀낸다.


손다이크 박사 장편. 아마도 저자 사후 70년이 지나 소개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작권이 풀렸기 때문이죠. 저작권 만료된 작품이 주로 발매되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 '왓북'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당연히 종이책은 없고요.

읽기 전 기대가 컸습니다.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고전 본격물이기 때문이죠.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명이었던 손다이크 박사의 장편이기도 하고요. 이전에 읽었던 손다이크 박사 장편은 모두 괜찮았었죠. 

그런데 평균보다는 살짝 못하더군요. 물론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다운 부분은 전부 장점이에요. 첫 번째는 당시의 과학 수사가 치밀하게 펼쳐진다는 점입니다. 현장을 방문하여 온갖 쓰레기를 샅샅이 뒤져 단서를 모으는 건 기본이고요. 초반에 저비스가 철저하게 마차에 가두어진 채로 미지의 장소로 왕진나갈 때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는 경로 추적도를 만드는 장면이 일품입니다. 단순한 나무판에 나침반을 부착하고 수첩을 곁들인 정도이긴 합니다. 그래도 방향이 바뀔 때의 시간 및 상세한 정보를 수첩에 자세하게 기록하는 방법은 돋보여요. 실제로도 꽤나 유용해 보였습니다. 그 외에 서명을 분석하기 위해 사진 확대를 이용하는 장면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고요.
두 번째는 본격 추리물로서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독자는 화자 저비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쫓아갑니다. 그래서 탐정과 독자에게 모든 정보와 단서는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디테일도 상당히 좋아요. 바이스 씨는 분명히 독일인이라고 했는데 집에 커피가 없고 차만 있었다게 대표적입니다. 독일인은 보통 커피를 마시지 차를 마시지 않는다고 하네요. 물론 몇 가지 단서들 (기묘하게 생긴 갈대, 깨진 유리 조각 등) 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 정체를 알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 단서는 없어도 진상에 이르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세 번째는 당연히 손다이크 박사의 팬으로 즐길거리가 많다는 점이죠. 저비스가 의사를 떼려 치우고 손다이크 박사의 조수로 일하게 된 첫번째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손다이크 박사가 법의학자가 아니라 변호사로 소개되는게 특이했습니다.

그러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고 많게 느껴집니다. 가장 큰 단점은 진상이 너무 알아차리기 쉬운데, 저비스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점입니다. 당대 독자 수준이 저비스 수준이라 이렇게 썼겠지만 지금 읽기는 너무너무 답답했습니다. 이미 독자는 초반부, 저비스가 왕진나가 진찰했던 환자 그레이브스가 시체로 발견된 제프리라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편에 취해 결국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다는 사인, 그리고 한 쪽 눈에 두드러진 실명에 가까운 증상 등의 단서 때문이죠. 과연 누가 그를 감금하여 살해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당연히 유일하게 이득을 보는 피해자의 형 존이 유력하고요. 그리고 존이 제프리와 꽤 닮았으며 배우로 활동했다는 이력을 듣고나면 그가 제프리로 변장해서 뉴 여인숙에 거주했다는걸 모르면 바보입니다. 설형문자 액자가 뒤집혀 있었다는 증거까지 있는데 말이죠. 그러나 저비스는 이런 점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입니다.
초반부 저비스는 분명히 능력이 있는 걸로 묘사됩니다. 홀로 그레이브스에게 왕진갈 때가 좋은 예입니다. 그레이브스 코의 안경 자국을 보고 이건 얼마 전 까지 안경을 쓰고 있다는걸 나타내므로 오랜 기간 혼수상태였다는 바이스 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걸 추리해 내거든요. 그러나 두 번째 왕진부터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의식을 찾은 피해자는 저비스가 계속 "그레이브스 씨"라고 말을 걸 때마다 당황해합니다. 누가 봐도 자기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걸 계속 놓칩니다. 손다이크 박사의 표현을 빌겠습니다. "저비스, 자네는 정말 구제불능이군".
단지 바보일 뿐 아니라 제프리 죽음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이고 범죄의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그를 죽게 내버려둔 셈이거든요. 손다이크가 악당들의 위치를 알아낼 방법까지 알려줬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핑계는 단지 바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봐도 추리 소설의 사이드 킥으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비스를 자신의 파트너로 불러온 손다이크도 언젠가는 크게 후회하지 않을까 싶네요.

추리에 있어서도 헛점이 조금 눈에 뜨입니다. 바이스 박사가 은신처를 떠나면서 편지가 올까 두려워 열쇠를 가지고 자주 왕래했다는 설정이 특히 그러했어요. 곧바로 다음 세입자가 입주해버리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던걸까요?
변장용 안경에 반드시 돗수가 있어야 한다는 추리는 현 시점에서 보면 그닥 일리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안경용도 아니고, 회중 시계용도 아닌 유리의 정체가 범인을 밝혀내는데 핵심 역할을 하는데 와닿지는 않더군요.

그리고 작위적인 우연, 불필요한 장치도 지나치게 많습니다. 저비스의 왕진이 사건과 겹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저비스가 그레이브스 씨라고 불리운 제프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어떻게 되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부분을 덜어내고 추리를 펼치는게 더 완성도는 높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바이스 씨의 부인이 사시였다던가, 바이스 씨와 마부는 동일인물이었다는 등의 장치는 불필요했고요.

마지막으로 사건이 밝혀지는 계기가 된 다시 쓴 유언장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확인이 되지 않는건 문제라 생각됩니다. 원래는 존은 250 파운드만 받기로 했었는데 바뀐 유언장은 '잔여 재산 수여자' 가 되어서 죽은 고모의 유산 3만파운드를 받는다는데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모든 유산의 수령인은 조카 스티븐인데 왜 고모의 유산이 잔여 재산이 되어 존에게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너무 쉬운 내용이라 이렇게까지 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감점합니다. 좀 짧아지더라도 저비스의 왕진 부분을 빼고 정리하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손다이크 박사의 팬이시라면 모를까, 구태여 구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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