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라이즈 - T. M. 로건 지음, 이수영 옮김/arte(아르테) |
사랑하는 아내, 귀여운 4살 아들과 살아가는 평범한 30대 가장이자 영어교사 죠셉은 어느날 우연히 아내가 지인인 벤과 호텔에서 만남을 갖는걸 목격한다. 아내가 떠난 뒤 벤과 잠깐 마찰을 빚다가 벤을 밀치는데 뒤로 넘어진 그는 피를 흘린채 일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아들 윌이 천식 발작을 일으켜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다.
윌에게 약을 준 뒤 다시 호텔 주차장을 찾지만 벤과 벤의 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뒤 죠셉은 벤으로 보이는 누군가로부터 온라인상에서 테러를 당한다. 상황을 조사해본 결과, 아내와 벤이 불륜 관계였다는걸 알게 되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사라진 벤을 살해한 범인으로 몰린다. 누명을 벗기 위해서는 벤을 직접 잡아야 한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모함을 받아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이를 벗어나는 과정을 그린 범죄 스릴러. 이런 류의 장르물은 얼마나 주인공이 철저하게 위기에 처하는지가 핵심인데 그 부분은 아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덕분에 긴장감이 잘 살아나서 마지막까지 흡입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그려내는 1인칭 시점의 묘사도 탁월합니다. 특히 오랫만에 읽은 남성이 쓴 1인칭 글이라 그런지 남성 취향 저격 묘사들이 많더군요. "벤과는 대부분 축구 얘기만 했다. 서로 잘 모르는 남자들이 그래도 뭔가에 대해 대화할 수 있도록 발명된 세계 공통어 말이다." 같은 축구와 펍에 대한 묘사가 그러하죠. 아들 윌에 대한 묘사도 상세해요. 정말 그 시기 아이의 모습을 아주 잘 그려내었더라고요.
하지만 범죄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위험에 빠졌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와 같은 두뇌 게임이 전무한 탓입니다. 죠셉이 위기에 처한 뒤 벌이는 각종 행동이 모두 무의미한 삽질이거든요. 이 과정에서 뭐라도 하나 알아냈다면 좋았을텐데 그런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마지막에 위험을 무릅쓰고 선덜랜드로 이동하여 벌인 조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중요한건 모두 선덜랜드로 이동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며, 설령 몇몇 단서들에 대해 죠셉이 깨달았다고한들 무의미했어요. 죠셉은 베스와 앨리스를 구하기 위해 아무런 준비 없이 벤의 저택으로 향해 스스로 위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죠셉이 알아낸건 멀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 뿐, 결국 베스의 말에 의해 진상을 깨닫게 되죠. 이미 멀, 그리고 베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수상하다는걸 눈치채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전개는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베스의 딸인 앨리스의 도움이 없었으면 베스의 계획대로 강간범으로 몰린 파렴치범으로 살해당했을게 뻔합니다.
또 일견 치밀해 보였던 베스의 계획도 결국 돌이켜보면 헛점 투성이입니다. 베스와 멀이 처음에 벤을 살해한 뒤 왜 시체를 숲에다 유기하지 않았을까요? 시체만 발견되었다면 죠셉은 그 날로 구속되어 최소 20년은 교도소에 있어야 했을 겁니다. 구태여 저택으로 시체를 가지고 와서 은닉할 필요는 없었죠. 반대로 시체가 발견되지 않으면 죠셉이 무죄로 풀려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저택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그렇지, 엄연히 딸이 집에 있는데 총질을 해서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한건 당쵀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멀과 벤이 호텔에서 만난건 사실이고, 이를 조셉이 목격한 것도 사실인데 왜 멀의 누드 사진을 찍어서 공유하는 불필요한 추가 작업도 의문입니다. 그냥 불륜을 저질렀다는 멀의 증언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죠셉이 동기가 있다는걸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고 해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경찰만 알면 되는데 주변 사람들이 아는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벤이 살아있는 척 문자와 SNS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폰과 PC를 해킹하여 정보를 빼돌렸다는 설정도 불필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페이스 북이나 SNS를 이야기에 끌어들여 화려함을 더하는 수단일 뿐,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정보를 남기면 경찰에게 꼬리를 잡힐 수도 있으니까요. 경찰이 이를 죠셉의 자작극이라 여긴건 단지 운이 좋았을 뿐, 경찰이 심도깊게 수사를 진행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치밀하지 못한 작위적인 설정과 전개가 너무 많습니다. 첫 만남에서 벤이 죠셉을 밀치다가 우연찮게 쓰러져 기절하고, 갑자기 윌이 천식 발작을 일으키며 주차장에 CCTV가 제대로 없었다는 3중 우연 상황부터가 작위적입니다. CCTV의 경우, 최소한 페이스북이 대세가 된 현대 호텔에서 있음직한 상황은 아니겠죠.
벤이 살아있는 것처럼 죠셉과 독자를 속이지만 벤이 죠셉을 수렁으로 몰고가는 전개도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거대 기업체의 수장이자 백만장자가 자신이 죽은 것 처럼 위장하여 불륜 상대의 남편을 파멸로 몰고 간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영원히 몸을 숨길 상황도 아니고 이유도 없잖아요. 돈을 써서 해결사를 고용한 뒤 죠셉을 없애버리는게 상식적이죠. 실제로 벤은 해결사를 통해 경쟁자를 박살낸 경험이 있는걸로 묘사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럴거라면 죠셉에게 메시지 따위를 남길리도 없고 은밀하게, 조용하게 해결했을테죠.
게다가 이 모든 허술함을 감싸는 동기, 베스와 멀이 서로 동성간 사랑 때문에 벌인 범행이었다는 건 작위적이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설정의 극치입니다. 베스가 빈털터리로 쫓겨날게 두려웠다 한들 죠셉을 끌어들여 살인극을 벌일 이유가 뭘까요? <<악마같은 여자>>처럼 한 번 정도 관계를 더 꼬아 놓는다면 모를까, 급작스럽고 이해하기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흡입력은 있지만 읽고나면 단점만 더 생각나는 그런 독서였습니다. 별로 권해드릴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