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혼가 - 하세 세이슈 지음, 이기웅 옮김/북홀릭(bookholic) |
신주쿠를 베이징 패거리와 상하이 패거리가 반씩 나누어 균형을 유지한 상태. 베이징 패거리의 자금줄인 장다오밍이 살해되고 베이징파의 두목 추이후는 전직 경찰 타키자와에게 배반자 색출을 지시한다. 한편 장다오밍을 살해한 킬러 추성은 상하이 패거리 주훙의 정부 지아리의 보디가드로 일하게 된다...
<불야성> 후속편. 전직 경찰인 변태 타키자와와 킬러 추성 두명의 시각으로 전개되며 전작의 주인공 류젠이는 철저히 주변인물로 묘사되는 차이가 있어서 스핀오프 같은 느낌도 나더군요. 경찰ㅊ(전직이지만)과 중국인 킬러가 중국 폭력단과 대결한다는 구도는 왠지 오사와 아리마사의 <독원숭이>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류젠이가 양웨이민에게 복수하기 위해 타키자와, 추성과 지아리를 조종하여 베이징파와 상하이파의 균형을 깨트린다는 이야기 전개는 전작과 거의 판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허나 전작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처지는 속편이었어요. 판에 박은 전개도 지루하고 너무 운과 우연에 의지한 상황이 많아서 치밀함이 떨어지거든요. 사건의 원인인 지아리가 쉐위안을 살해한 것, 타키자와의 폭주, 추성이 류젠이를 찾아오고 지아리에게 반하게 된 것 모두가 필연적이라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죠. 류젠이가 초능력 최면술사라도 되면 모를까 이 모든게 류젠이의 생각대로라는 것도 황당할 뿐이고요. 상하이파와 일본 야쿠자의 격돌에서 운좋게 추성과 타키자와가 빠져나온다는 전개도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또 타키자와의 조사도 순전히 소문과 발품에 의지한 것으로 베이징파의 보스라면 하루만에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인데 추이후가 애초부터 타키자와에게 조사를 받긴 이유조차 석연치 않은 등 대충대충 넘어가는게 너무 많아요.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사랑의 전사로 거듭나는 타키자와의 모습은 대관절 이게 뭔가 싶더군요.
아울러 이러한 이야기의 허술함을 넘치는 폭력 묘사로 때우려 한 티가 역력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등장하는 모든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거의 모든 남자들은 살해당하는 식인데 이 소설의 배경이 현대 일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에요. 게다가 주역급 인물들 모두가 트라우마에 더해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습성을 지니고 있다는건 현실성 제로의 설정이라 생각됩니다.
결론내리자면 전편 이상의 강도높은 폭력 묘사와 인간 쓰레기 타키자와의 폭주를 보는 맛은 나쁘지 않아서 쉽게 읽히기는 하나 단순한 화장실용, 킬링타임용 펄프픽션에 불과한 작품입니다. 뒷세계 이야기에 폭력이 난무한다고 해서 하드보일드 느와르라니,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전편에 버금가는 디테일한 신쥬쿠 뒷세계의 묘사는 나쁘지 않고 번역도 아주 좋은 편이기는 하나 건질 건 그뿐이랄까요. 별점은 1.5점. 전편의 팬이 아니라면 읽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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