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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1

청춘의 증명 - 모리무라 세이치 / 최고은 : 별점 2점

청춘의 증명 - 4점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는 일부 내용의 소개 및 주요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쟁 직후, 가사오카는 연인과 데이트 도중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운 좋게 경찰이 구해주었지만, 경찰의 위기를 도와주지는 못했다. 가책을 느낀 가사오카는 연인과 헤어지고, 경찰에 투신하여 형사가 되었다. 오로지 그 사건의 범인 "구리야마"를 체포하기 위해서.... 그리고 20여 년 후, 산에서 피살 사체가 발견되었다. 사체의 주요 특징, 그리고 투병 중임에도 주요 증거를 가지고 온 가사오카의 노력으로 피해자가 "구리야마"라는 이름의 전과자임이 밝혀지는데..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대표작인 "증명 시리즈" 3부작의 완결편. "인간의 증명"과 "야성의 증명"과는 다르게 국내 초역 출간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오래전부터 읽기를 희망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운이 좋게도 국내 최고의 추리동호회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했던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네요. 이 자리를 빌어 먼저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증명 시리즈"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형사 가사오카가 천신만고 끝에 신원을 밝혀낸 피살 사체가 가사오카가 찾아 헤매던 원수였다는 핵심 설정을 비롯한 수사의 과정 모두가 운과 우연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식사를 같이한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 거기에 얽힌 존 덴버의 노래와 사연, 유력한 용의자 야부키가 떠올린 또 다른 관계자,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증거 등, 수사가 벽에 부딪힐 만하면 주요한 증언이나 단서가 튀어나오는데, 이래서야 추리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힘듭니다. 트릭이나 추리적 장치도 별다른게 없어서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단지 발품을 파는 수사와 증언에 의지할 뿐이거든요.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에서 기다가 구리야마를 살해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점—구리야마가 협박을 하더라도 사회적 지위 등을 놓고 볼 때 설득력을 지니기 어려웠을 것—등 주요 동기도 설득력이 없어서 점수를 주기 힘들게 만듭니다.

게다가 형사 가사오카 부부 - 주요 참고인인 전 특공대원 출신 야부키 부부 - 요정 주인인 용의자 이시야마와 기다 부부 가족이라는 단 세 가족 관계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이루어진다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형사 가족의 아들이 용의자 가족의 딸과 결혼하는데, 용의자 딸은 사건의 주요 참고인이자 형사의 전 애인 아들과 불륜 관계이며, 이 전 애인 아들이 형사를 죽게 만든다... 황당하지 않나요? 전 애인 아들이 형사를 죽이는데 사용한 자동차는 용의자가 사용한 뒤 증거인멸 차원에서 처분한 것으로, 결국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깨알 같은 우연까지! 이 정도면 국내 막장 드라마들도 감히 쳐다보기도 어려운 수준의 막장이 아닐까 싶네요. 결말도 장대한 내용에 어울리지 않게 한두 페이지로 다 정리해버리며, 내용도 황당해서 마지막까지 어이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으로 많이 낡았다는 느낌이 강한 것도 단점입니다. 전개도 그렇지만, 중간에 나오는 야부키의 특공대원 시절 에피소드와 구리야마와의 관계, 기다가 가사오카 도키야의 아버지의 직업을 듣고 보이는 반응 등, 낡아빠진 전형적 클리셰들은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했습니다. 특히 야부키의 에피소드는 비중에 비해 너무 길어서 아예 별개의 이야기로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래도 당대의 인기 작가다운 읽는 재미 하나만큼은 그런대로 있는 편이기는 하며, "청춘"에 대해 작가가 고민한 결과를 전달해 준다는 점은 괜찮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청춘은 짧다",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청춘은 자유롭게 누려라", "단, 청춘은 비겁하면 안 된다"라는 내용을 끝없이 반복하거든요. 전전 세대가 고도 성장기를 맞이하여 정신적으로 흔들리는 전후 세대에게 던지는 주요한 메시지였다 생각됩니다.

아울러 비겁한 청춘의 결말은 불행밖에 없다는 식으로 주제의식을 전달하려 하지만, 정작 가장 비겁했던 것은 과거를 숨기고 불륜까지 저지른 마쓰노 도키코와, 야망을 위해 진실을 조작한 가사오카의 아들 도키야, 결혼 전 불장난을 즐긴 아사야마 유키코라는 점에서 오히려 "비겁하면 인생을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점이 이 작품을 사회파 추리소설로 만드는 것이겠죠. 이게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러나 막장 설정과 전개, 추리적으로는 거의 무가치했기에 이 정도 장점만으로 일정 수준 이상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취향과는 다르지만 수작이라 생각하는 "인간의 증명", 평작 수준이지만 폭발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던 "야성의 증명"과 비교하기도 어려운 작품으로,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굳이 읽어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그나저나, 이벤트로 받은 도서를 이렇게까지 혹평하니 저도 마음이 무겁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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