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 - 기 도이처 지음, 윤영삼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
언어와 인식 (넓게 보면 문화)의 인과관계를 역사적인 이론들을 통해 해명해 나가는 책. 자주 찾는 블로그인 zariski님 블로그에서 멋진 리뷰를 읽고 호기심이 가서 바로 찾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핵심은 언어가 인식, 인지능력에 영향을 미치느냐라는 것인데 크게 색깔에 대한 이론이 펼쳐지는 1부, 방향과 성별에 대한 특징 분석이 이루어지는 2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주제별로 역사적, 지역별 언어의 특징 분석을 통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부에서는 제목이기도 한, 왜 호메로스는 소와 바다를 와인 빛깔이라고 묘사했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고민, 거기서 파생된 인간과 색깔인지능력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시대순으로 설명됩니다. 결론은 결국 색깔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발달이 뒤따라야한다는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통한 최초의 발상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고전을 거쳐 여러가지 이론이 펼쳐지는 과정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2부는 급진적인 사피어 - 워프 가설에서 시작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구구이미티르족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설명됩니다. 이 부족은 동-서-남-북의 절대좌표로 공간을 인지하고 말한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네 발앞에 개미가 있어"가 아니라 "네 발 동쪽에 개미가 있어"라고 하는 식이라죠. 이렇게 절대좌표로 공간을 인지하는 것이 몸에 배면 어떻게는 방향감각이 생긴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부족하기는 하나 괜찮았습니다. 과연 언어때문에 초능력(?)까지 생기는 것일까요? 어쨌건 몰랐던 내용이라 신선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구구이미티르어와 같이 역사적이고 사멸해가는 특수한 언어 말고도 현대어로 특징을 비교분석한 성별 단락도 재미있었습니다. 하이네의 시를 통한 영어, 독일어의 차이에서 시작하는데 여러모로 되새겨 생각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덧붙이자면 2부에서는 그 유명한 캥거루 어원에.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원주민들 언어에 "캥거루"가 사실은 없고 쿡 선장이 생전 처음보는 동물을 원주민에게 물어보자 "나는 모른다"라는 말로 "캥거루"라고 했다는 전설말이죠. 사실은 구구이미티르족의 언어에 회색 캥거루의 특별한 유형을 "강구루"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렇듯 어려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예제들이 모두 쉽고 글 자체가 재미있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지식과 재미의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보기드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무엇보다도 다양한 언어를 해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책인데 국내 번역이 충실하게 받쳐주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이 책에 나온 다양한 예제들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글이 그만큼 좋은 언어라는 뜻도 되겠죠. 별점은 4점입니다.
언어와 인식 (문화)의 인과관계와 상관관계가 궁금하신 몇 안될 특정 독자분들에게는 필독서이며 단지 지적인 흥분과 인문학적 즐거움을 얻고자 하시는 분들에게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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