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엘데가인의 기동을 멈추기 위해 찾아간 죽음의 섬에서 결국 장은 죽고, 그녀는 가로우즈에 흡수되고 만다. 강대한 힘을 손에 넣은 가로우즈는 세계를 멸망시키고 모든 동식물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새 시대의 창조주가 되려 한다. 용족이 초능력으로 가로우즈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상황에서 장은 류미르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재생되어 가로우즈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데....
츠부라 히데토모의 판타지 액션 만화. 지금 국내에서는 잊혀진 전설의, 비운의 명작 쯤으로 추억되고 있지요. 덕분에 절판된 국내판 해적판의 중고가가 엄청난 가격으로 형성되어 있기도 하고요. <<우주 영웅 전설>>과 <<사일런트 메비우스>> 정도만이 그나마 이름을 남긴 가도카와 계열의 월간 코믹 COMP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고등학생 때인가.... 강남 고속 터미널에 있었던 일본 서적 판매 서점에서 단행본으로 구입해 보았던 책인데, 우연찮게 다시 보게 되어 리뷰를 남깁니다.
그런데, 솔직히 다시 보니 '잊혀진 비운의 명작'은 절대 아닙니다. 전형적인 '보이 미트 어 걸' 이야기의 재탕이니까요. 게다가 <<라퓨타>>나 <<미래소년 코난>>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기도 했고요. 여주인공 류미르가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형 로봇과 함께 엮여 있으며, 그녀가 기묘한 최종 병기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설정은 판박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 외에도 현재의 세계는 과거의 고대 문명이 멸망한 뒤의 세계라는 설정이라던가, 판타지와 SF가 기묘하게 섞여 있는 묘사들은 '미야자키 월드'의 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에요. 지배자인 '흑룡'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 힘을 자신이 손에 넣어 세계를 자기 뜻대로 하려는 가로우즈 준장 역시 '무스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전형적인 미야자키 악당이지요.
물론 미야자키 월드와의 분명한 차이점은 존재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 장이 '순동술'이라는 기술을 쓸 수 있는 초능력자로 액션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장의 형인 소시유와 시안 등 술사 동료들, 가로우스와 루아이소테 제국의 술사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초능력자들의 대결은 <<바벨 2세>>이후 <<초인 로크>> 등 수많은 작품에서 반복된 것이라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몇몇 장면에서는 당대에 큰 충격을 안겨다주었던 <<아키라>>의 영향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대표적인건 가로우즈가 마지막에 융합한 류미르와 분리되며 '칩'을 잃은 뒤 살아있는 고깃덩어리같은 형태로 폭주하는 장면이에요.
이야기도 많이 허무합니다. 달랑 3권 분량인데, 1권과 2권에서는 장이 납치된 류미르를 구한다, 다시 류미르가 납치된다, 그녀를 다시 구해온다, 다시 납치된다...만 반복되며 3권에서는 가로우즈와 장이 파워업하여 일기토를 벌이는 내용이 전부라 밀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독특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술사들의 개성을 모두 다 잘 살렸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그래도 지금도 가끔 회자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상적인 작화 때문일 겁니다. 꼼꼼한 펜터치가 돋보이는 정성 가득한 아날로그 시절의 작화로 작가의 노력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 작화로 그려낸 액션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정말 손으로 한 땀 한 땀 그려내고 있거든요.
주요 등장인물 및 몬스터까지 아우르는 캐릭터 디자인도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류미르가 굉장히 귀엽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요. 류미르의 매력이 작품의 절반 이상은 충분히 차지한다고 생각되네요. 솔직히 3권에서 장이 파워업한 뒤 급작스럽게 성장한 외모는 전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요.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았고, 시대를 뛰어넘을만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신인급 작가가 정성들여 그린 작화와 통통 튀는 매력이 넘치는 등장인물들, 화려한 액션 모두 평균 이상이지만 기본적인 이야기에서 참신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시대에 이름을 남기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느끼게 해 주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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