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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6

삼국전투기 1 - 최훈

삼국전투기 1
최훈 지음/길찾기

최훈은 굉장히 좋아했던, 현재도 애정이 유지되고 있는 몇 안되는 국내작가 중 한명입니다. (처절하게 배신당한 기분을 느끼는 작가는 수도 없죠. 형민우, 양경일, 권가야 등등등) 데뷰작에 가까운 "하대리"가 워낙 충격적이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하대리 1부"는 "아즈망가"에 뒤지지 않는 단편-장편의 경계를 허무는 수작 개그 만화라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긴 스토리가 일관되게 흐르지만 각각 한편 한편이 한페이지로 마무리 되는 이야기의 응집력과 특유의 개그 센스가 빛나기 때문이죠. 무엇보다도 두만전자의 에이스 하대리의 매력이 넘치며 최훈만의 화풍이 내용과 너무 잘 어울렸던 작품이었죠.

그러나 하대리 1부 이후 2부부터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하더니 이후 작품은 지나치게 성적인 부분에서의 희화화와 너무 매니아적인 부분이 많아져서 쉽게 즐기기도 힘들고 공감가기도 힘든 작품을 발표하더군요. 그나마 하대리 시리즈는 나았지만 최근 스포츠 서울에 연재하는 "구보씨"는 그야말로 한창 인기인 "샐러리맨 시트콤 쟝르물" 일 뿐입니다.

그러나 특유의 매니아적인 요소를 극한으로 부각시켜 하나의 쟝르로 만들어 성공한 작품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네이버의 "MLB카툰"이고 또 하나가 이 "삼국 전투기" 라 할 수 있습니다.

"MLB카툰"은 정말이지 굉장히 매니아적이면서도 특유의 개그센스가 빛나는 스포츠 만화로 너무 동양적인, 특히 한국적인 개그만 제외한다면 본토에 수출해도 먹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메이저리그와 선수에 대해 적나라하면서도 특유의 시각으로 제대로 패러디하고 있어서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단 요새는 개그 센스의 농도가 옅어지고 소개에 그치는 부분이 점점 많아지는 듯 합니다)

소개가 좀 길었는데 또 다른 매니아적인, 전문용어로 "오덕후적인" 시각으로 성공한 작품이 바로 이 "삼국전투기" 입니다. 이 작품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삼국지"를 특유의 시각으로 파헤치고 있는 작품으로 무엇보다도 매니아적인 패러디가 적재적소에 쓰이고 있는 이색작입니다. 화타는 블랙잭으로, 원소와 조조는 가르마와 샤아로 설정하면 정말 단순히 그림만으로도 확 와닿지 않습니까? 이러한 절묘한 패러디 이외에도 당시의 지도와 세력 분포, 전투시의 진영까지 간략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그 어떤 삼국지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친절하면서도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또한 정사와 나관중의 연의를 비교 분석하여 스스로 원하는 부분만 취하여 전개하면서도 관련된 설명을 빼 놓지 않는 것 역시 마음에 들고요.

그러나 이런 패러디 표현이 과하고 (개인적으로 유비에 대한 묘사는 지나치다 못해 짜증날 지경이었습니다)  그 패러디가 건담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만화 쪽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 또한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개그를 위해 쓰이는 여러 장면과 대사들은 이 작품을 애시당초 정정당당하게 평가받기가 좀 애매하고 어려운 위치로 자리매김 하게 합니다. 이러한 패러디들이 대부분 역사와 시대를 뛰어넘기 힘들다는 것 역시 본질적인 한계라 보여지고요. DC인사이드의 뚫흙이나 아시아프린스같은 패러디가 대체 몇년동안 먹힐수 있을까요?

특유의 화법으로 적절한 유머와 패러디를 섞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삼국지를 꾸민다는 것, 그리고 그 작품이 반응이 있다는 것은 작가로서 굉장히 축복받은 일이지만 위의 이유로 인해 이 작품이 높이 평가되거나 그 인기가 지속되리라는 생각은 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삼국지 인물군의 캐릭터 이미지를 거의 최초로 제시한 고우영 화백의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새삼 실감케 하네요. 고우영 화백만의 특유의 유머와 패러디, 심지어 시사적인 비평까지 곁들여져 다양한 요소가 넘치지만 고우영 화백의 작품은 확실히 시대를 뛰어넘었거든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오덕후적인 시각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최훈씨의 취향이 저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일본 만화와 프로레슬링은 확실히 제 취향이거든요. 또한 적절한 패러디는 확실히 재미나고 이해를 돕는 요소가 강하니까요. 이야기도 확실히 쉽게쉽게 다이제스트 되어 있기도 하고요. 삼국지 자체가 재미난 작품이기도 하니 기본만 해 주어도 원체 재미는 보장하는 작품이기도 하잖아요? 작가의 시각이 거의 연의와 정사에 한정되어 있는 만큼 새롭거나 신선한 요소는 없지만 또 그러한 진부함이 매력이기도 합니다. 나와 같은 시각인데 어떻게 표현했을까? 라는 생각으로 다음 등장인물들의 묘사와 패러디가 기대가 되거든요.

외려 위의 문제점들은 일본에 수출하면 장점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살짝 드는군요. 삼국지를 가지고 미소녀 게임을 만드는 나라니 뭐가 안 먹히겠습니까만...

PS : 장단점을 떠나 제가 이 책을 구입한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으로 약간 알고 있는 원종우 대표님이 계시는, 한국 만화만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도서출판 길찾기"에서 출간된 책이기에 꼭 성공하였으면 하는 바램으로 구입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신문에서 보셨더라도 한국만화 발전을 위해 관심있으시면 한두권 구입해 주시길... 책에는 부록 형식으로 패러디에 대한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세 내용이 실려 있으니 많은 도움 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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