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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3

A 사이즈 살인사건 - 아토다 다카시 : 별점 3점

북오프에서 구입한 책. 저자 아토다 다카시는 "기묘한 맛" 류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죠. 약간 로얄드 달 분위기도 나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추리물로도 상당히 유명하나 국내에 소개된 것은 없어서 아쉽던 차였는데 우연찮게 북오프에서 발견하여 서슴없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정통 추리 단편집이라는 표지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일어 원서다 보니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잡은지 1주일만에 겨우 대충이나마 다 읽게 되어 포스팅합니다.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탐정역의 캐릭터로 탐정이 "묘법사"라는 절의 주지승입니다. 즉, 스님 탐정이죠.(만화 "잇큐"도 있지만 워낙 허접한 만화라...) 작중 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시체 때문에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것은 형사- 스님이 똑같다라는 점이 와닿기도 하네요. 어쩐지 "브라운 신부"하고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단지 직업이 독특한 것에 그치지않고 작품이 진행되어 나가면서 하나씩 성격과 매력이 드러나는데 세속의 여러 풍습과 문화에 굉장히 밝고 술과 고기도 즐기는 괴승으로 주인공 형사와 바둑을 두며 선문답 형식으로 추리를 전개해 나간다는 설정이 이색적이고 새로왔습니다.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잘 살아있는, 유머러스하게 묘사된 성격 역시 딱 제 스타일이더군요. 한마디로 이런 독특한 탐정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이 스님이 바둑친구이자 형사인 사사무라가 미해결 사건을 들고오면 사건 이야기를 듣고 추리하며 바둑을 둔다는,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 추리물로 추리가 잘 풀리면 바둑이 강해진다는 디테일도 좋고 연재 당시의 계절과 세월의 흐름까지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 부분이고요. 또한 트릭들 역시 본격에 가까운 정통적인 퍼즐 미스터리라 딱 제 취향이었습니다. 트릭에 큰 무리가 없으며 인간 심리를 이용하여 범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재구성도 꽤나 합리적이었고요.

물론 스님이 던지는 질문과 그것을 통해 추리를 이어나가는 과정의 설득력이 약간 떨어진다는 점은 약간 아쉽습니다. 그리고 책 소개에도 나와 있는 선문답으로 추리를 진행한다는 설정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억지스럽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용의자 중 이과대학 출신의 인물은?" 이라는 질문을 "용의자 중 가장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은?" 이라고 물어보는 식이니까요. 너무 추리물에 어울리게 빙빙 꼬아 놓았다라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래도 대체로 작품 모두가 단편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추리적, 이야기적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결론내리자면 아토다 다카시라는 작가의 재발견이랄까요? 기존에 많이 접했던 섬뜩한 느낌의, 또는 기발한 상상력의 중단편보다 저는 이 추리 단편들이 훨씬 마1음에 들었습니다. 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제 허접스러운 일본어 실력으로도 독해가 가능할 정도로 짤막짤막한 대사들로 구성된, 짤막하게 압축된 작품들이라는 것도 좋았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저의 베스트는 트릭이 절묘한 표제작 "A 사이즈 살인사건", 그리고 기묘한 상황과 설득력 있는 트릭이 잘 부합하는 "2LDK 개미지옥" 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한번 번역해보고 싶네요.

그런데 문예춘추사 문고본인데 한자에 독음이 달려 있지 않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지명을 잘 알아보기 힘들더군요. 아쉽...

PS : 무려 24년전에 발간된 책이긴 하지만 단돈 2천원으로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사실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북오프 만세!)


1. A 사이즈 살인사건 :
호텔 뒷편 저수조에서 젊은 여자의 사체가 발견된다. 인적이 뜸한 곳이며 동기 등을 본다면 여자가 속해 있던 학생 오케스트라 멤버에 의한 살인으로 보이나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는 철벽과도 같은 상태.
표제작으로 사사무라가 묘법사에 바둑을 빙자한 사건 의뢰를 하는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관련된 설명이 조금 길게 실려 있긴 하나 무리없이 깔끔하게 흘러갑니다. 무엇보다도 트릭이 상당한 수준이며 정통적인 방법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단, 제목이 내용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트릭과 별 상관없는 것이라 약간 맥이 빠지긴 합니다. 단편집을 출간하면서 제목을 바꾼 모양인데 원제였던 "A 컵 살인사건" 쪽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그게 그거지만. 어쨌건 좋은 작품. 별점은 3.5점입니다.

2. 2LDK 개미지옥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 돌아오는데 모르는 남자가 알몸으로 욕조 안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남자는 신혼부부와 일면식도 없는 인물.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살해 되었는가?
모르는 남자가 집 욕조 안에서 죽어 있다... 기발한 발상으로 시작하나 사건 자체는 합리적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이 매력적인 작품. 트릭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이 남자를 살해하는 과정의 재구성이 정말 딱딱 들어맞거든요. 딱 한가지 문제점이라면 경찰 수사로도 충분한 내용이었다는 것인데 사사무라가 너무 스님에 의존하는 것 같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3. 구두와 미약과 3인의 여자
한 남자가 독살된 시체로 발견된다. 그는 결혼했지만 3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는 플레이보이. 3명의 여성을 조사하지만 알리바이도 확실하고 동기도 명확하지 않다. 스님은 그 남자의 넥타이와 구두에 주목하는데...
독살 이야기인데 깔끔하게 전개되고 스님의 선문답도 이 작품에서는 그런대로 설득력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완성도도 높지만 무엇보다도 진상이 정말 의표를 찌르는 것이라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좀 시시한 편이라 약간 소품같은 느낌이 들긴 하더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4. 이중 인격의 죽음
한 기업 기숙사의 가장파티에 손님으로 참석했던 남자가 창고에서 목을 매단 시체로 발견된다. 자살로 보이지만 사사무라 형사는 자살의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타살이 아닐까 생각하나 유력한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는 철벽. 그는 스님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묘법사로 찾아온다.
자살을 가장한 타살은 살인의 가장 편한 방법이지만 추리소설에서 이러한 방법을 설득력 있게 묘사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죠. 이 작품은 그러한 맹점을 잘 파고들은 괜찮은 단편입니다. "가장파티"라는 특정 상황을 이용한 효과적인 트릭으로 보이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5. 맨발로 천국에
한 남자가 맨션에서 투신 자살한다. 그러나 사사무라는 죽은 남자가 구두를 정돈하지 않고 엉망으로 해 놓은 점이 계속 신경이 쓰이는데...
투신 자살할 때 왜 신발을 벗어서 가지런히 해 놓는가? 라는 것을 주제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이 명제 자체가 흥미로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단 트릭이 약간 비현실적이고 스님의 선문답 물음의 하나인 "비와호" 관련 질문은 너무 비약이 심한 것 같아 아쉽더군요. 너무 문답을 어렵게 만들려는 속셈이 빤히 들여다 보인달까요? 그래도 작품은 하나의 단편으로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6. 고물취향의 사체
골동품 수집이 취미인 한량 대학원생이 자기 방에서 화약으로 머리 반쪽이 날아간 시체로 발견된다. 그러나 폭발을 일으킨 흉기는 없는 상태. 용의자도 애매한 상황에서 사사무라는 다시 묘법사로 찾아가 주지스님에게 사건을 문의하게 된다.
이 단편은 일종의 장치를 이용한 트릭이 등장하는데 장치의 조잡함은 둘째치고서라도 우연(?)에 의지하는 부분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흉기를 숨기는 방법에 대한 디테일은 좋았지만 사소한 부분으로 추리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한다면 많이 처져 보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7. 벛꽃잎의 미로
황실과 친척관계인 명문집안에 협박장이 날아온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긴장한 경찰은 사사무라를 비롯한 형사들을 수사에 투입한다. 그러나 협박 자체 부터가 애매할 뿐더러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자 사사무라는 주지스님에게 사건을 털어놓고 추리를 부탁한다.
소품입니다. 몇통의 협박장만 가지고 이야기가 이루어지거든요. 그렇지만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소재이기에 공감이 많이 가더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8. 하프-문 살인사건
초등학교 교사가 살해당한다. 그녀는 너무나 형편없는 실력으로 학부모들의 반감을 사고 있는 독신 여성. 사사무라는 결정적 단서가 포착되지 않자 다시 묘법사로 찾아간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진 트릭이 쓰이고 있는 작품입니다. 때문에 새로운 느낌을 별로 전해주진 않고 오히려 주지스님이 본사로 영전하게 되어 작품이 마무리 되는 시리즈의 최종장적인 설명이 더 중심인 듯 싶네요. 그래도 제목과 내용이 잘 어울리고 전개와 추리의 과정이 깔끔하며 합리적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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