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난감 기업의 조건 - 릭 채프먼 지음, 이해영.박재호 옮김/에이콘출판 |
제목 그대로 80년대, 즉 PC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을 때 부터 한때 잘나갔지만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삽집을 반복하며 제풀에 스러져간 IT 기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물론 스러지지 않고 아직도 건재한 기업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그리고 기업과 관계없이 닷컴 열풍으로 어마어마한 거품을 양산한 투자자를 조롱하는 챕터도 있긴 하지만 내용의 일부일 뿐이죠.
제가 이쪽 바닥에 워낙 무지한 탓에 제가 잘 모르는 기업과 솔루션이 많아서 얼마나 대단한 회사들이 스스로 자멸했는지에 대한 감이 떨어지긴 했다는게 약간 단점이긴 했지만 (디베이스? 화이트베이스는 아는데...^^) 그래도 잘 아는 기업인 IBM, 모토로라, 마이크로소프트, 넷스케이프, 구글 등의 기업의 사례도 충실한 덕분에 아주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 스스로 볼랜드나 마이크로프로와 같은 초난감 기업에 실제로 근무했었던 엔지니어 겸 마케팅, 홍보 전문가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한 이야기도 많아서 더 와닿는 부분도 많았고, 과연 이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 하는 상황이 너무 많아서 너무나 웃겼습니다. 사실 당황스럽기까지 한 수준이었으니까요. 웃자고 쓴 건 아니겠지만 정말 웃겨요. 삽질의 사례와 관련된 도판, 주석 등도 방대하고 자세해서 웃음의 수준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느낌까지 들고 말이죠.
아울러, 읽다가 좀 놀랐던 사실은 그간의 상식 -마이크로소프트가 "악의 축" 이다- 라는 것을 상당히 뒤집는 발언이 책 전체에 깔려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우리가 익히 알 듯 일종의 사기와 배짱 덕분이 아니라 품질의 우수성과 더불어 경쟁사들의 초난감한 삽질이 겹쳐진 운빨이었다는 것을 아주 자세하게 풀어놓고 있거든요. 물론 책의 후반부에서는 넷스케이프를 박살내기 위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초난감한 마케팅 전략이 등장하긴 하지만 망해버린 다른 기업들의 사례에 비추어본다면 그나마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겠죠.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고 재미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웃기다는 점에서 별 4개를 줄 만큼 유익한 독서였다고 생각됩니다. 개발자와 엔지니어 사이드에 치우친 내용이 많긴 하지만 IT 업종에 종사한다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저같은 쓰라린 이직의 경험이 있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강추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당당하게 비웃고 떠벌일 수 있는 기회가 공적으로 마련된 것 같아 속이 후련하기까지 하네요. 가격이 좀 쎄긴 한데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잘나가던 누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즐거운 법이니까요.^^ (지옥에나 가버려~!!!!)
덧붙이자면, 저도 DJ시절 벤처 열풍때 묻지마 투자를 받았던 소규모 벤처 근무 경험에다가 잘나가던 코스닥 기업이지만 망하려고 발버둥치며 삽질을 연발한 회사에 다닌 경험이 물론 있기에 좀 감개무량(?)하기도 합니다. 소규모 벤처는 월급도 못주는 상황으로 내몰린 끝에 결국 망해버렸고 잘나가던 코스닥 기업에서는 결국 저를 짤랐죠.
잘나가던 코스닥 기업은 결과적으로 엎어질 것이 뻔했던 돈먹는 하마같은 프로젝트를 잽싸게 중지하고 인원감축할 생각을 한 덕분에 아직까지 버티고 있고, 지금은 내부사정은 잘 모르지만 나오는 물건들 보면 포인트는 잘 잡고 있는 것 같아 현재 규모를 유지한다면 어떻게 먹고는 살겠더라고요. 예전 회사 덩치를 생각하면 이 회사 역시 이 책 국내판에 당당히 등장할만한 대표 사례로 손꼽히겠지만요. 뭐 그게 다 인생 아니겠습니까. 그러고보니 나도 이런 책을 쓸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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