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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30

다시 뽑아보는 3대 미스터리 (from 알라딘)

"3대 미스터리"로 알려진 작품은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입니다. 그러나 출처와 근거가 불분명하고, 이후에도 많은 미스터리가 발표되었기에 새롭게 3대 미스터리를 정해보자는 기획이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열두 명의 전문가와 알라딘 미스터리 마니아 100인이 작성한 추천 리스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세 작품을 선정하였다고 하네요.

선정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걸작이지만, "13.67"과 "용의자 X의 헌신"은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탓입니다. 장르 역사적으로 크게 의미있는 작품도 아니고요.

전문가라고 초빙된 분들도 아쉽습니다. 일본 소설 번역가, 출판사 대표의 경우 사심이 배제되기 어려울테니까요. 실제로 김은모 번역가의 추천작은 모두 일본 소설입니다. 에세이 작가 김혼비 님은 왜 전문가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알라딘 미스터리 매니아 100명의 투표 역시 일본 소설로 쏠려있는 국내 미스터리 시장의 현황이 극단적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나마 아래 하우미스터리 운영자이신 decca님의 추천 정도만 납득할만 했습니다.

물론 이런 리스트는 수많은 매체에서 정리, 발표해 왔기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기는 합니다. 리스트에 선정되었다고 다 좋은 작품들도 아니고요. 이번 알라딘에서 선정된 작품들은 최소한 '재미'만큼은 보장되어 있으니, 오히려 추리 소설에 입문하는 분들에게는 더 좋은 가이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알라딘 선정 정말 재미있는 미스터리" 같은 제목을 붙여서요. 선정 기준도 불분명하고, 트렌드에 치우친 현재의 투표 결과를 통해 선정된 작품을 '3대 미스터리'라고 부르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과한 수식어에요.

마지막으로 저만의 역대 베스트 3을 소개드립니다. 책 소개는 링크의 리뷰로 대신합니다.

2025/05/03

브라이턴 록 - 그레이엄 그린 / 서창렬 : 별점 2.5점

브라이턴 록 - 6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런던의 신문 기자 헤일은 브라이턴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뒤, 자신의 불길했던 예감대로 죽음을 맞는다. 그가 생의 마지막 날에 잠시 만났던 여자 아이다는 헤일이 자연사했다는 검시 소견에 의문을 품고서 단서를 찾던 중, 고인이 죽기 직전 들른 곳으로 밝혀진 스노 식당의 직원 로즈를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미 헤일의 죽음을 설계한 젊은 갱 두목 핑키가 먼저 로즈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로즈는 아이다의 추궁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그리고 핑키는 점점 다가오는 아이다의 추적을 피해 자신의 살인을 덮고자 또 다른 범죄를 계획하고, 유일한 증인이 될 로즈의 입을 영원히 틀어막을 방법을 궁리한다(출판사 제공).

오랫만에 묵직한, 500페이지가 넘는 고전 정통 장편 범죄 소설을 읽었네요. 그레이엄 그린이 1938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문학과 범죄의 교차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지요. 영국 남부 해안의 휴양지 브라이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 갱과 주변 인물들의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카톨릭 교리를 바탕으로 인간의 죄와 구원, 선과 악이라는 주제를 날카롭게 천착하며, 단순한 범죄 소설을 넘어선 문학성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범죄 소설로도 평가가 높습니다. "CWA 선정 100대 범죄소설"에 46위로 선정되었고, 2010년 타임즈(The Times)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범죄 소설 50선”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우선 1930년대 영국 휴양지 브라이턴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싼티나는 쾌락과 범죄가 넘쳐나는 타락의 도시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집니다. 등장 인물 역시 브라이턴 못지 않게 생생하게 그려지며, 그 중 압권은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인 소년 핑키입니다. 술도 못 마시고 여자도 모르는 미성년자가 어른 여럿을 수하에 두고 아무런 죄책감없이 사람을 죽이는 과정은 섬뜩함을 자아냅니다. Brighton Rock의 유튜브 검색 결과에서 Pinkie's first appearance가 가장 먼저 뜨는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 외에도 핑키에게 푹 빠져 타락하고 마는 순진한 소녀 로즈, 탐정 역할을 자임하는 중년 여성 아이바, 핑키의 부하 스파이서와 커빗, 최초 피해자 프레드 등 주요 인물들의 심리 묘사도 상세하고 생생합니다. 

범죄극으로서도 뛰어난 편입니다. ‘프레드의 사인을 경찰은 왜 자연사로 판단했을까?’라는 미스터리도 등장하니까요. 진상은 핑키 일당이 프레드의 입에 '브라이턴 락' 사탕을 쑤셔 넣어 급사하게 만든겁니다. 의도한건 아니라서 트릭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앞서 핑키 일당의 주무기는 면도날이라는 언급을 계속 해 주었기 때문에 일종의 서술 트릭으로 읽혔습니다.
아이바의 끈질긴 탐문 수사, 그리고 몇 안 되는 핑키가 남긴 단서도 공정하게 공유되며 마지막 아이바의 일격은 추리적인 재미를 더합니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 역시 흥미롭게 전개되는데, 특히 반전이라 할 수 있는 핑키의 욕설 레코드가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과연 '구원'이라는게 가능할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니까요.

반면 단점도 존재합니다. 핑키가 로즈와 결혼할까 말까 고민하는 과정은 지나치게 장황하고 지루했습니다. 또한 핑키가 술을 못 마시고 여자를 모른다는 설정도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다소 지루하고요. 또한 이런 묘사들이 핑키를 철없는 소년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도 문제입니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른들을 부리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조직 우두머리'라는 핑키의 독특한 존재감을 희석시키는 탓입니다. 핑키에 대한 설명도 너무 부족해요. 별다른 완력이나 두뇌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카리스마도 없는데 어린 나이에 범죄조직 우두머리가 되었다는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프레드의 죽음에 대한 핑키의 두려움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이미 경찰이 자연사로 판단한 사건에 몇 가지 단서가 더해졌다고 해서 과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핑키의 '두뇌'에 심대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만 들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카톨릭의 구원과 타락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나, 교인이 아닌 독자로서는 크게 와닿지 않아 흥미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교인이었다 하더라도 다소 낡은 논의였다 생각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타락한 도시와 범죄 조직, 도덕의 경계를 주제로 한 설정과 상세한 묘사는 좋지만, 개연성과 몰입도에서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지금 읽기에는 시대가 많이 지난 느낌입니다. 

2024/12/29

2024 블로그 리뷰 결산

안녕하세요. 어제의 "사카나와 일본"을 끝으로 올해 블로그 업로드는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스물 한 번째 블로그 리뷰 결산을 진행하겠습니다. 2024년 동안 읽은 총 책 권수는 110권입니다. 카테고리별 독서 권수 및 카테고리별 베스트, 워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괄호는 작년):
  • 추리 / 호러: 76권 (61)
  • 기타: 14권 (15)
  • 역사서: 10권 (7)
  • 기타 장르문학: 5권 (4)
  • Food / 구루메: 5권 (3)

1. 추리 / 호러

베스트: 스파이와 배신자 - 벤 매킨타이어 : 별점 4.0
- 현실이 픽션을 능가한다는 증거.

워스트: 유리병 속 지옥 - 유메노 큐사쿠 : 별점 1.0
- 완독이 고통스러울 정도였던 망작.

2. 기타

베스트: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정재승 : 별점 3.5
- 일상 속 과학을 알게 해주는 즐거운 입문서.

워스트: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 별점 1.5
- 비논리적이고 편협한 주장들.

3. 역사서

베스트: 사악한 소년 - 케이트 서머스케일 / 김희주 : 별점 4.0
- 19세기 살인 사건을 치밀하게 재구성한, 흥미진진한 논픽션.

워스트: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하마모토 다카시 외 / 노경아 : 별점 1.5
- 소재는 흥미롭지만 깊이 없는 서술로 일관.

4. 디자인 / 스터디

베스트: 눈의 황홀 - 마쓰다 유키마사 / 송태욱 : 별점 4.0
- 독특한 시각과 감각이 돋보임.

워스트: 별점 2.5이 최하점이라 특별한 워스트는 없습니다.

5. 기타 장르문학

베스트: 로봇 소년, 학교에 가다 - 톰 앵글버거, 폴 델린저 / 김영란 : 별점 3.0
- 유쾌한 스토리와 따뜻한 메시지가 느껴지는 청소년 소설.

워스트: 트레몬의 모험 - 로버트 바 / 남원우 : 별점 1.0
- 빈약한 플롯, 단조로운 전개에 최악의 현지화 각색이 더해진 환장의 콜라보. 

6. Food / 구루메

베스트: 딜리셔스 - 롭 던, 모니카 산체스 / 김수진 : 별점 4.0
- 과학적으로 분석한 음식들의 놀라운 이야기들.

워스트: 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 아이스맨 후쿠토메 / 김정원 : 별점 1.5
- 단순한 정보 나열에 불과.

2024/04/23

IMBA 선정 20세기 최고의 미스터리 100선

미국 독립 미스터리 전문 서점 협회(Independent Mystery Booksellers Association)의 회원들이 선정한 20세기의 미스터리 소설 100선입니다.
출처는 dcinside 추리소설 갤러리입니다. 원글은 이 곳에서 확인하세요.

100편의 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가 리뷰를 올린 작품은 모두 링크를 걸어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The Tiger in the Smoke - 마저리 앨링엄 (Allingham, Margery) (1952)
4. Aunt Dimity's Death - 낸시 애서튼 (Atherton, Nancy) (1992)
5. In the Heat of the Night - 존 볼 (Ball, John) (1965) / 국내 출간: 밤의 열기 속에서 (하서출판사)
6. Sheer Torture - 로버트 버나드 (Barnard, Robert) (1982)
7. Track of the Cat - 네바다 바 (Barr, Nevada) (1993)
8. The Beast Must Die - 니콜라스 블레이크 (Blake, Nicholas) (1938) / 국내 출간: 야수는 죽어야 한다 (황금가지)
9. When the Sacred Ginmill Closes - 로렌스 블록 (Block, Lawrence) (1986)
11. The Fabulous Clipjoint - 프레드릭 브라운 (Brown, Fredric) (1947)
12. The Thirty-Nine Steps - 존 버컨 (Buchan, John) (1915) / 국내 출간: 39계단 (문예출판사)
13. Black Cherry Blues - 제임스 리 버크 (Burke, James Lee) (1989)
15. The Thin Woman - 도로시 캔넬 (Cannell, Dorothy) (1984)
17. Thus Was Adonis Murderd - 새라 코드웰 (Caudwell, Sarah) (1981)
18. The Big Sleep - 레이먼드 챈들러 (Chandler, Raymond) (1939) / 국내 출간: 빅 슬립 (문학동네)
19. The Murder of Roger Ackroyd - 애거서 크리스티 (Christie, Agatha) (1926) / 국내 출간: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황금가지)
20. The Concrete Blonde - 마이클 코넬리 (Connelly, Michael) (1994) / 국내 출간: 콘크리트 블론드 (알에이치코리아)
21. The Man Who Liked Slow Tomatoes - K. C. 콘스탄틴 (Constantine, K. C.) (1982)
22. The Monkey's Raincoat - 로버트 크레이스 (Crais, Robert) (1987) / 국내 출간: 몽키스 레인코트 (노블마인)
23. The Moving Toyshop - 에드먼드 크리스핀 (Crispin, Edmund) (1946)
24. Dreaming of the Bones - 데보라 크롬비 (Crombie, Deborah) (1997)
25. The Last Good Kiss - 제임스 크럼리 (Crumley, James) (1978)
26. The Yellow Room Conspiracy - 피터 디킨슨 (Dickinson, Peter) (1994)
29. Booked to Die - 존 더닝 (Dunning, John) (1992)
30. Old Bones - 아론 엘킨스 (Elkins, Aaron) (1987)
32. Time and Again - 잭 피니 (Finney, Jack) (1970)
33. Who in Hell Is Wanda Fuca? - G. M. 포드 (Frod, G. M.) (1995)
35. The Hours Before Dawn - 실리아 프렘린 (Fremlin, Celia) (1958)
36. A Great Deliverance - 엘리자베스 조지 (George, Elizabeth) (1988) / 국내 출간: 성스러운 살인 (현대문학)
37. Smallbone Deceased - 마이클 길버트 (Gilbert, Michael) (1950)
38. “A" Is for Alibi - 수 그래프턴 (Grafton, Sue) (1982) / 국내 출간: 여형사 K (큰나무)
39. The Killings at Badger's Drift - 캐롤라인 그레이엄 (Graham, Caroline) (1987)
40. The Man With the Load of Mischief - 마사 그라임즈 (Grimes, Martha) (1981)
43. The Silence of the Lambs - 토머스 해리스 (Harris, Thomas) (1988) / 국내 출간: 양들의 침묵 (나무의철학)
44. Tourist Season - 칼 하이어센 (Hiaasen, Carl) (1986)
46. On Beulah Height - 레지널드 힐 (Hill, Reginald) (1998)
47. A Thief of Time - 토니 힐러먼 (Hillerman, Tony) (1988) / 국내 출간: 시간의 도둑 (고려원미디어)
48. Cotton Comes to Harlem - 체스터 하임즈 (Himes, Chester) (1964)
49. Hamlet, Revenge! - 마이클 이네스 (Innes, Michael) (1937)
53. When the Bough Breaks - 조너선 켈러먼 (Kellerman, Jonathan) (1985) / 국내 출간: 큰 가지가 부러질 때 (청담문학사)
54. The Beekeeper's Apprentice - 로리 킹 (King, Laurie) (1994)
55. Dark Nantucket Noon - 제인 랭턴 (Langton, Jane) (1975)
57. To Kill a Mockingbird - 하퍼 리 (Lee, Harper) (1960) / 국내 출간: 앵무새 죽이기 (열린책들)
59. Get Shorty - 엘모어 레너드 (Leonard, Elmore) (1990)
60. Sleeping Dog - 딕 록티 (Lochte, Dick) (1985)
61. Rough Cider - 피터 러브시 (Lovesy, Peter) (1986)
63. The List of Adrian Messenger - 필립 맥도널드 (MacDonald, Philip) (1959)
65. Bootlegger's Daughter - 마거릿 마론 (Maron, Margaret) (1992)
66. Death of a Peer - 나이오 마시 (Marsh, Ngaio) (1940)
67. Sadie When She Died - 에드 맥베인 (McBain, Ed) (1972)
68. The Sunday Hangman - 제임스 매클루어 (McClure, James) (1977)
69. If I Ever Rreturn, Pretty Peggy-O - 섀린 매크럼 (McCrumb, Sharyn) (1990)
70. A Stranger in My Grave - 마거릿 밀러 (Miller, Margaret) (1960) / 내 출간: 내 무덤에 묻힌 사람 (엘릭시르)
71. Devil in a Blue Dress - 월터 모즐리 (Mosley, Walter) (1988)
72. Edwin of the Iron Shoes - 마르샤 물러 (Muller, Marcia) (1977) / 국내 출간: 세계 여성 작가 서스펜스 걸작선 ‘쇠구두를 신은 에드윈’ (고려원미디어)
73. Death's Bright Angel - 자넷 닐 (Neel, Janet) (1988)
74. Mallory's Oracle - 캐럴 오코넬 (O'Connell, Carol) (1994)
75. Child of Silence - 애비게일 파젯 (Padgett, Abigail) (1993)
76. Deadlock - 새라 패러츠키 (Paretsky, Sara) (1984)
77. Looking for Rachel Wallace - 로버트 파커 (Parker, Robert) (1980)
79. Vanishing Act - 토머스 페리 (Perry, Thomas) (1995)
80. Crocodile on the Sandback - 엘리자베스 피터스 (Peters, Elizabeth) (1975)
81. One Corpse Too Many - 엘리스 피터스 (Peters, Ellis) (1979) / 국내 출간: 99번째 주검 (북하우스)
82. Blue Lonesome - 빌 프론지니 (Pronzini, Bill) (1995)
84. No More Dying Then - 루스 렌델 (Rendell, Ruth) (1971)
85. The Wrong Murder - 크레이그 라이스 (Rice, Craig) (1940)
87. Blood at the Root - 피터 로빈슨 (Robinson, Peter) (1997)
89. A Broken Vessel - 케이트 로스 (Ross, Kate) (1994)
90. Concourse - S. J. 로잰 (Rozan, S. J.) (1995)
91. Murder Must Advertise - 도로시 L. 세이어즈 (Sayers, Dorothy L.) (1933) / 국내 출간: 살인은 광고된다 (블루프린트) (ebook), 광고하는 살인 (동안)
95. Chinaman's Chance - 로스 토머스 (Thomas, Ross) (1978)
96. A Test of Wills - 찰스 토드 (Todd, Charles) (1996)
98. The Sands of Windee - 아서 업필드 (Upfield, Arthur) (1931)
100. Sanibel Flats - 랜디 웨인 화이트 (White, Randy Wayne) (1990)

다른 유사 리스트와 구분되는 특징이라면 한 작가 당 하나의 작품만 꼽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개되는 작가들이 다른 리스트에 비하면 훨씬 많고, 다른 리스트에서 찾아보기 힘든 작품들 - 예를 들자면 "스트라이크 살인" - 도 눈에 뜨이지요.

하지만 영미권, 특히 미국 작가에 집중되어 있다는 단점이 큽니다. 몇 안되는 유럽 작품에 "뒤마 클럽"이 속한 것도 납득불가고요. 작가별 대표작들도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87분서 시리즈'라면 당연히 "살의의 쐐기"를 꼽아야 하지 않을까요? 온갖 하드보일드 작품들을 망라하면서 정작 제임스 엘로이의 작품이 없는 것도 믿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참고 수준에 그칠 리스트입니다. 어차피 작품 선정 기준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으니 당연하겠지만요.

2024/04/14

목요일 살인 클럽 - 리처드 오스먼 / 공보경 : 별점 1.5점

목요일 살인 클럽 - 4점
리처드 오스먼 지음, 공보경 옮김/살림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쿠퍼스 체이스 실버타운에는 노인들 몇 명이 미해결 사건에 대해 토론하는 '목요일 살인 클럽'이 있었다. 클럽 멤버들은 실버 타운을 만든 건축업자 토니 커런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건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였던 토니의 동업자 이안마저도 클럽 멤버들 눈 앞에서 독살당했다. 그가 새 사업을 위해 수녀원 묘지를 파내는걸 클럽 멤버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저지하던 와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토니 사건 현장 옆에 클럽 멤버 중 한 명인 론의 아들 제이슨이 토니와 함께 찍혀있었던 사진이 놓여 있었고, 제이슨은 토니가 죽은 날 그의 집을 방문했다는게 드러나 궁지에 몰렸다. 그렇지만 제이슨은 다른 옛 친구와 함께 토니에게 원한이 있는 터키시 지아니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묘지 발굴을 반대하다가 이안과 몸싸움을 벌였던 매튜 매키 신부였다. 경찰 조사 결과 신부가 아니라는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전형적인 코지 미스터리 작품. 영국 어딘가의 고급 실버 타운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클럽의 핵심 인물이자 리더인 엘리자베스는 여성이다는 등의 모든 설정이 전형적입니다. 실버 타운을 무대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노인들 및 여러 등장인물들의 숨겨졌던 과거가 서서히 밝혀지는 전개도 비교적 밝은 분위기를 전해주고요. 노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코지 미스터리라는 점에서는 "살인 플롯 짜는 노파"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러나 아무리 가벼운 코지 미스터리라도 분명 추리 소설입니다. 때문에 어느정도의 추리 요소는 갖췄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추리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선 토니, 이안 두 명의 죽음은 작품 내 주어진 정보로는 범인을 알아내는게 불가능합니다. 토니를 죽인 범인은 이안에게 토니대신 고용되었던 보그단인데,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어요. 토니 커런이 과거 죽였던 택시 운전사의 친구였기 때문에 복수를 위해 죽였다는 동기도 작 중에서 전혀 설명되지 않고요. 경찰이 토니를 죽였다고 생각했던 지아니 역시 이미 오래전에 보그단이 깜쪽같이 죽였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 속에서 보그단이 직접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알아내는건 불가능합니다.
이안을 살해한 진범이 존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존이 수의사였기에 주사기와 약 사용법을 잘 알고 있다는 정도의 단서로는 부족해요. 수녀 무덤에 묻었던 시체가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했다는 동기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이안이 벌인 공사로 시체가 발굴되어도 피해자가 누군지 알아낼 수도 없었을겁니다. 설령 알아냈다 치더라도, 범인이 누구인지는 드러나지 않았을테고요. 증거도 없고, 동기도 불분명했으니까요. 설령 시체가 발굴될까 두려워 이안을 살해했다쳐도, 이안의 뒤를 이은 누군가가 공사를 재개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이안을 살해한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게다가 다른 여러 사람들이 있는 와중에 늙은 존이 이안에게 몰래 독극물을 주사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정체모를 주사를 놓는걸 방관할 사람이 있을리가 없잖아요?
또 존이 거의 뇌사상태인 아내 페니가 오래전 살인범 피터 머서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아내를 죽인 뒤 자살을 택한다는 결말도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아내 페니가 오래전 살인범 피터 머서를 살해했다는건 지금 시점에 밝혀져도 문제될게 없습니다. 어차피 더 오래 살기도 힘든데 밝혀진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재판정에 세울 수도 없는 몸상태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존의 동기라던가 페니의 과거를 독자가 알아낼 수 있는 방법도 전무합니다. 이래서야 미스터리 측면에서는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버나드가 몰래 빼돌려 숨겼던 아내의 유골 탓에 자살을 택한다는 것도 그리 좋은 결말은 아니었고요.

경찰이 제이슨의 혐의를 빠르게 포기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제이슨의 주장만으로 그를 풀어주기는 힘들 정도의 정황 증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니가 죽은 날, 제이슨은 수차례 토니에게 전화를 했고 범행 시간에 토니의 집에 가기까지 했습니다. 제이슨이 범인이 아니라면 다른 명확한 증거를 제시했어야 했는데 그렇지도 못했고, 지아니가 범인이라는 그의 주장 역시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옛 친구 바비 태너가 토니 커런 사건 후 지아니가 도주했다고 했지만, 이 역시 증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경찰은 제이슨을 체포하지 않았을까요? 경찰 입장에서는 존재조차 모호한 지아니보다는 제이슨에게 수사력을 집중하는게 당연합니다. 제이슨이 인기있는 유명인이라서 봐주기 수사를 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캐릭터들도 별다른 매력이 없습니다. 오지랖넓은 노인들이 사건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미스 마플' 이래 변한게 없는것 같네요. 무대포에 가까운 기묘한 행동력은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을 떠오르게 만들고요. 한마디로 다 어디서 봤던 설정들입니다. 노인을 중심으로 살인 사건에 일반인들이 뛰어든다는 설정과 전개도 뻔합니다. 앞서 언급드렸던 "살인 플롯 짜는 노파"도 비슷하지요. 
나름의 차이점을 만들기 위해 노인들의 배경 설명에 공을 들였는데 이 역시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오래 전 스파이 출신으로 보이는 엘리자베스가 대표적입니다. 클럽의 리더로서 멤버들을 잘 이끌기는 하지만, 스파이 경력을 보여줄만한 특별한 활약은 선보이지 못합니다. 뭔가 가지고 있는 연줄로 정보를 긁어모으는 정도에 그치거든요. 다른 멤버들인 간호사 출신 조이스, 유명한 좌익 노동 운동가였던 론, 정신과 의사였던 이브라힘의 경력도 사건 해결과는 무관하고요. 그냥 우리 주변에 계실법한 노인분들같은 느낌만 전해 줄 뿐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현재를 서서히 잃어가는 노인들의 삶을 살짝 보여주는 묘사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지루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코지 미스터리하고는 안 맞나 봅니다. 후속권이 있던데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4/02/04

스파이와 배신자 - 벤 매킨타이어 / 김승욱 : 별점 4점

스파이와 배신자 - 8점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열린책들

1970~80년대 영국 정보부서 M16와 내통하던 KGB 최고위급 간부(KGB 런던 지부장)였던 올레크 고르디엡스키에 대한 논픽션.

결론부터 말하면, 대박입니다. 냉전시대 여러 첩보 작전들이 굉장히 상세하며, 드라마틱하게 소개되어 큰 재미를 안겨주는 덕분입니다. 특히 고르디엡스키의 정체가 들통나서 모스크바로 소환된 뒤부터는 논픽션이지만 왠만한 스파이 소설보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합니다. 고르디엡스키가 궁지에 몰리며 수렁에 빠지는 과정,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설계되었던 '핌리코 작전'의 가동, 그리고 고르디엡스키의 목숨을 건 소련으로부터의 탈출이 이어지는데 정말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실제로 진행되었던 작전이라 픽션에서는 주기 어려운 생생한 디테일도 가득합니다. 핌리코 작전 때 차 트렁크에 있는 고르디엡스키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아기 기저귀를 차 트렁크 위에 올려놓고 갈았다는 것처럼요. 소련 당국의 안일한 태도 - 그래서 탈출을 눈치채지 못했음 - 도 오히려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픽션이라면 허술하다고 비판받았을테지만요.
이런 디테일들은 올레크가 M16과 안가에서 만나 내통하는 상세한 과정, 당시 기술로는 최고 수준의 정교한 라이터 내장 카메라, 스파이가 메시지를 잘 받았다는 답이 맥주병 뚜껑을 올려놓는 것인데 '진저비어' 병뚜껑을 올려둔건 가지고 토론을 벌였다던는 등으로 책 전체에 걸쳐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실제 스파이들을 둘러 싼 첩보 과정도 실감나게 그려집니다. 대표적인게 고르디엡스키의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 고심하는 부분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첩자의 정보를 그냥 활용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리 간닪난 일이 아니더라고요. 적의 깊숙한 곳에서 활동하는 첩자가 우리 진영 내 첩자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어 그들을 모두 체포했다면, 적 역시 자기들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걸 알아챌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M16는 고르디엡스키의 정보를 길게 보고 이용하는걸 택했지만, 결국 정보를 이용한 탓에 고르디엡스키의 정체는 드러나게 됩니다. 
CIA가 고르디엡스키의 정체를 알아낸 과정도 왠만한 추리 소설은 비벼보기도 힘듭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CIA는 M16에서 제공한 라이언 작전 관련 정보로 정보원이 KGB 요원이라는걸 알았습니다. 보고서가 정기적으로 날아오는 것으로는 그 사람이 M16과 자주 만난다, 그렇다면 그는 소련 밖에 있고 영국에 있을 확률이 높다고 추리했습니다. 전달된 정보는 기술 정보나 군사 정보보다 정치 정보가 많다는 것으로 그가 제1주요부 PR라인에 근무한다는 걸 알려주었고요. 마지막으로 KGB 내부 첩자라면 서방의 소련 첩자를 알려주었을텐데, 최근 소련이 잃은 첩자들은 노르웨이의 호비크와 트레홀트, 스웨덴의 베릴링, 영국의 마이클 베터니였습니다. 호비크와 베릴링이 체포되었을 때 스칸디나비아에 있었고, 트레홀트와 베터니가 잡혔을 때 영국에 있었던 사람은? 올레크 고르디엡스키 뿐이었습니다! 이어진 올레크의 과거 조사는 그가 M16의 내부 첩자라는건 분명히 드러나게 만들었지요. 이렇게 CIA가 알아낸 내부 첩자의 정체를 CIA의 배신자 올드리치 에임스가 밀고하여 올레크가 위기에 빠졌던 것입니다.

고르디엡스키의 활약(?)과 함께 당시 국제 정세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도 설명되는데 냉전 때 KGB 수장이었던, 그리고 소련 서기장까지 올랐던 유리 안드로포프가 실제 서방의 핵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KGB는 서방의 선제 핵 공격 징후를 다각도로 포착하기 위한 '라이언 작전'을 진행했었으며, '에이블 아처' 훈련 당시가 가장 큰 위기 상황이었다는 등의 비화도 놀라왔습니다. 
라이언 작전 당시 크렘린은 '혈액 은행'이 진짜 은행처럼 혈액을 사고 파는 곳인줄 알았다는건 좀 웃겼고요.

고르디엡스키라는 인물도 무척이나 독특한 매력을 전해줍니다. 우선 그가 조국을 배신한 이유는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과 혐오 탓이었다는게 놀라왔습니다. 이 책에 나온 다른 스파이들은 모두 돈 때문에 변절했는데 말이지요. 본인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정보를 넘긴걸 다른 반체제 활동과 동일시했다는 올레크의 생각도 신선했어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음악으로, 작가 솔제니친은 글로 싸웠듯이 KGB 요원인 올레크는 첩보 세계에서 정보를 활용하여 싸울 수 밖에 없었다면서요.
 
하지만 문제는 그의 이상이 무엇이었던간에 고르디엡스키가 조국을 배신한 배신자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족을 버리고 홀로 도주한 비겁자이기도 하고요. 이런 인물에 대해 칭송하다시피하는 내용을 쓴건 적합하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의 공적이라고 책에서 설명되는 것들의 실체도 모호하고요. 책에서는 소련이 선제 핵 공격을 고려할 정도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는걸 고르디엡스키의 활약으로 전달된 정보로 서방은 알고 있었다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서방은 당시 스타워즈 계획을 중지하거나 핵 개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즉, 고르디엡스키가 제공한 정보와 핵 전쟁을 막은건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책에서는 그의 활약과 희생이 대단한 것처럼 설명하고, 대처도 고르디엡스키의 활약을 그를 높이 평가했다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인정받을만한 인물일까요? 가족도 잃은 채 조국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아 평생 M16의 보호를 받는 일종의 구금 상태에 놓였다는 현재가 고르디엡스키가 어떤 인물인지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되네요.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고르디엡스키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를 제외한다면, 달리 나무랄데 없는 최고의 책입니다. 스파이 소설을 좋아한다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24/01/13

로봇 소년, 학교에 가다 - 톰 앵글버거, 폴 델린저 / 김영란 : 별점 3점

로봇 소년, 학교에 가다 - 6점
톰 앵글버거.폴 델린저 지음, 김영란 옮김/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맥스가 다니는 뱅가드 중학교에 로봇 퍼지가 등교하게 되었다. 퍼지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로봇 통합 프로그램(RIP)의 핵심으로, 기술적 기반인 퍼지 논리를 발전, 완성시키기 위해 학교에 보내진 것이었다. 하지만 퍼지는 등교 첫날부터 시끌벅적한 복도를 걷다가 먹통이 되고 말았다. 연구팀은 퍼지를 완성시키기 위해 맥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맥스의 도움과 퍼지 스스로의 프로그래밍으로 퍼지는 진짜 '인간'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편 뱅가드 중학교를 철저히 관리하는 인공지능 바바라 교감은 맥스를 퇴학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맥스가 장래 학업을 방해하는 위험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알게 된 퍼지는 맥스를 돕기 위해 자신의 전력을 다한다....


딸 아이의 논술학교 교재입니다. 별 기대없이 읽어보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인공 지능의 발전과 '인간성'이 어떻게 비롯되는지, 그리고 인공지능에 '인간성'이 타당한지 등의 심각한 주제들을 인공지능 두 개를 통해 이야기로 잘 풀어나간 덕분입니다.
인공지능의 하나는 바바라, 또 하나는 퍼지인데 바바라는 일체의 오류를 허락하지 않는 수학적인 연산 기계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결론에 맞게 상황을 조작까지 하지요. 이로써 인간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기계는 전형적인 흑백논리에 의해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반면 퍼지는 오류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성장해나가면서 점차 인간적인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즉, 사람은 실수를 하지만 이를 통해 성장하며 어른이 된다는걸 퍼지를 빌어 알려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고요. 반면 인간성은 인공지능, 로봇으로서는 필요한건 아니었기에, 인간의 명령을 듣지 않는 문제도 일으킵니다. 
이렇게 어느 쪽이 옳다는걸 확실히 알려주지는 않는 것과 이러한 퍼지의 반항(?)이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어지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잘 짜여진 느낌이에요. 인간성을 갖춘 퍼지보다는, 말 그대로 주어진 명령에 충실한 바바라야말로 훨씬 군대에 적합한 인공지능임에는 분명하기도 하고요.

바바라가 학업 성과를 올리기 위해 중학교 아이들을 통제 대상으로 삼는 설정도 인상적입니다.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그럴듯하게 설명해주는 덕분입니다. 
퍼지가 함정에 빠진 맥스를 돕기위해 벌이는 여러가지 활약, 맥스와 친구들의 활약이 그럴듯해서 모험 소설로도 괜찮습니다.

물론 '퍼지 이론'은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은 이론이기는 합니다. 냉정한 전자 계산기같은 기계와 인간의 마음을 가진 로봇의 대결도 친숙한 소재이며, 로봇이 학교를 통제하는 것 역시 "폭력 교실 1999"가 바로 떠오를 정도라 신선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중국 회사임이 분명한 로봇 회사 순쭈사의 산업 스파이는 등장하지 않는게 좋다 싶을 정도로 불필요한 설정이었고요.
무엇보다도 끔찍한 표지 일러스트와 유치한 제목은 최악입니다. 원제 (Fuzzy)를 살리고 보다 고급스럽게 디자인을 바꾸는게 높을거에요. 요새는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좋은 디자인이 뭔지 잘 아는 시대이니까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3/11/11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

제목 그대로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입니다. 2023년 최신 버젼이지요. 메건 애벗, 할런 코벤, SA 코스비, 길리언 플린, 타나 프렌치, 레이첼 하우젤 홀, 수자타 매시 등 유명 작가들이 뽑았다고 하네요. 나무위키에도 올라온 리스트이지만, 블로그 리뷰 연결 차원에서 포스팅합니다.

선정된 작품 100권 중 26권이 국내 미출간입니다. 출간된 74권 중 저는 27편을 읽었네요. (23년 11월 11일 기준)
절반도 읽지 못했으니 미스터리 애호가로서는 반성해야겠지만, 작품 선정 기준은 의문스럽습니다. 1980년대 이후 작품이 68편이나 선정된건 납득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보다 뛰어난 고전은 100편, 아니 1,000편도 넘을겁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언제나 그렇듯, 그냥 재미삼아 보는 리스트에 불과해 보입니다. 뉴욕 타임스도 별 수 없군요. 그래도 한국 작가 김언수의 작품 "설계자들", 그리고 1950년대 이전의 몇몇 고전들만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선정된 작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흰 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윌키 콜린스
The Woman in White by Wilkie Collins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Crime and Punishment by Fyodor Dostoevsky

"리븐워스 케이스" 안나 캐서린 그린 (국내 미출간)
The Leavenworth Case by Anna Katharine Green

"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
The Turn of the Screw by Henry James

"바스커빌 가문의 개" 아서 코난 도일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by Arthur Conan Doyle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The Murder of Roger Ackroyd by Agatha Christie

"블랙 더들리 저택의 범죄" 마저리 앨링햄 (국내 미출간)
The Crime at Black Dudley by Margery Allingham

"18호 방의 환자" 미뇽 G 에버하트 (국내 미출간)
The Patient in Room 18 by Mignon G. Eberhart

"몰타의 매" 대실 해미트
The Maltese Falcon by Dashiell Hammett

"The Conjure-Man Dies" 루돌프 피셔 (국내 미출간)
The Conjure-Man Dies by Rudolph Fisher

"A Man Lay Dead" 나이오 마시 (국내 미출간)
A Man Lay Dead by Ngaio Marsh

"가우디 나이트" 도로시 L 세이어즈 (국내 미출간)
Gaudy Night by Dorothy L. Sayers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The Three Coffins by John Dickson Carr

"레베카" 대프네 뒤 모리에
Rebecca by Daphne du Maurier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에릭 앰블러
A Coffin for Dimitrios by Eric Ambler

"이중배상" 제임스 M. 케인
Double Indemnity by James M. Cain

"If He Hollers Let Him Go" 체스터 B. 하임스 (국내 미출간)
If He Hollers Let Him Go by Chester B. Himes

"고독한 곳에" 도로시 B. 휴즈
In a Lonely Place by Dorothy B. Hughes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The Daughter of Time by Josephine Tey

"Beat Not the Bones" 샬롯 제이 (국내 미출간)
Beat Not the Bones by Charlotte Jay

"카지노 로얄" 이언 플레밍
Casino Royale by Ian Fleming

"죽음 전의 키스" 아이라 레빈
A Kiss Before Dying by Ira Levin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The Long Goodbye by Raymond Chandler

"내 안의 야수" 마거릿 밀러
Beast in View by Margaret Millar

"조용한 미국인" 그레이엄 그린
The Quiet American by Graham Greene

"재능있는 리플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The Talented Mr. Ripley by Patricia Highsmith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셜리 잭슨
We Have Always Lived in the Castle by Shirley Jackson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존 르 카레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by John le Carré

"혼진 살인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The Honjin Murders by Seishi Yokomizo

"Where Are the Children?" 메리 히긴스 클라크 (국내 미출간)
* 과거 "잃어버린 천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듯 한데 확실치 않음.
Where Are the Children? by Mary Higgins Clark

"더 샤이닝" 스티븐 킹
The Shining by Stephen King

"The Last Good Kiss" 제임스 크럼리 (국내 미출간)
The Last Good Kiss by James Crumley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The Name of the Rose by Umberto Eco

"붉은 10월" 톰 클랜시
The Hunt for Red October by Tom Clancy

"A Dark-Adapted Eye" 바바라 바인 (국내 미출간)
A Dark-Adapted Eye by Barbara Vine

"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The Decagon House Murders by Yukito Ayatsuji

"양들의 침묵" 토마스 해리스
The Silence of the Lambs by Thomas Harris

"푸른 드레스의 악마" 월터 모슬리 (국내 미출간)
Devil in a Blue Dress by Walter Mosley

"Mean Spirit" 린다 호건 (국내 미출간)
Mean Spirit by Linda Hogan

"법의관" 퍼트리샤 콘웰
Postmortem by Patricia Daniels Cornwell

"얼굴없는 살인자" 헤닝 만켈
Faceless Killers by Henning Mankell

"Dead Time" 엘리너 테일러 브랜드 (국내 미출간)
Dead Time by Eleanor Taylor Bland

"비밀의 계절" 도나 타트
The Secret History by Donna Tartt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Smilla’s Sense of Snow by Peter Høeg

"When Death Comes Stealing" 발레리 윌슨 웨슬리 (국내 미출간)
When Death Comes Stealing by Valerie Wilson Wesley

"페이드 어웨이" 할런 코벤
Fade Away by Harlan Coben

"추적자" 리 차일드
Killing Floor by Lee Child

"레이디 조커" 다카무라 가오루
Lady Joker by Kaoru Takamura

"Morituri" 야스미나 카드라 (국내 미출간)
Morituri by Yasmina Khadra

"아웃" 기리노 나쓰오
Out by Natsuo Kirino

"Inner City Blues" 폴라 L. 우즈 (국내 미출간)
Inner City Blues by Paula L. Woods

"A Place of Execution" 발 맥더미드 (국내 미출간)
A Place of Execution by Val McDermid

"Those Bones Are Not My Child" 토니 케이드 밤바라 (국내 미출간)
Those Bones Are Not My Child by Toni Cade Bambara

"Blanche Passes Go" 바바라 닐리 (국내 미출간)
Blanche Passes Go by Barbara Neely

"Death of a Red Heroine" 추 샤오롱 (국내 미출간)
Death of a Red Heroine by Qiu Xiaolong

"레드브레스트" 요 네스뵈
The Redbreast by Jo Nesbø

"미스틱 리버" 데니스 루헤인
Mystic River by Dennis Lehane

"바람의 그림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The Shadow of the Wind by Carlos Ruiz Zafón

"외과의사" 테스 게리첸
The Surgeon by Tess Gerritsen

"The Emperor of Ocean Park" 스티븐 L. 카터 (국내 미출간)
The Emperor of Ocean Park by Stephen L. Carter

"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Fingersmith by Sarah Waters

"얼음공주" 카밀라 레크베리
The Ice Princess by Camilla Läckberg

"2666" 로베르토 볼라뇨
2666 by Roberto Bolaño

"케임브리지 살인사건" 케이트 앳킨슨
Case Histories by Kate Atkinson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The Devotion of Suspect X by Keigo Higashino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스티그 라르손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by Stieg Larsson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마이클 코넬리
The Lincoln Lawyer by Michael Connelly

"스네이크 스킨 샤미센" 나오미 히라하라
Snakeskin Shamisen by Naomi Hirahara

"Queenpin" 메건 애벗
Queenpin by Megan Abbott

"죽은 자는 알고 있다" 로라 립먼
What the Dead Know by Laura Lippman

"유대인 경찰 연합" 마이클 셰이본
The Yiddish Policemen's Union by Michael Chabon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Drive Your Plow Over the Bones of the Dead by Olga Tokarczuk

"Wife of the Gods" 콰이 쿼티 (국내 미출간)
Wife of the Gods by Kwei Quartey

"네 시체를 묻어라" 루이즈 페니
Bury Your Dead by Louise Penny

"페이스풀 플레이스" 타나 프렌치
Faithful Place by Tana French

"설계자들" 김언수
The Plotters by Un-su Kim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The Sound of Things Falling by Juan Gabriel Vásquez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Gone Girl by Gillian Flynn

"라운드 하우스" 루이스 어드리크
The Round House by Louise Erdrich

"64" 요코야마 히데오
Six Four by Hideo Yokoyama

"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Ordinary Grace by William Kent Krueger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리언 모리아티
Big Little Lies by Liane Moriarty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Everything I Never Told You by Celeste Ng

"Land of Shadows" 레이첼 호첼 홀 (국내 미출간)
Land of Shadows by Rachel Howzell Hall

"동조자" 비엣 타인 응우옌
The Sympathizer by Viet Thanh Nguyen

"블루버드, 블루버드" 애티카 로크
Bluebird, Bluebird by Attica Locke

"Hollywood Homicide" 켈리 개릿 (국내 미출간)
Hollywood Homicide by Kellye Garrett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My Sister, the Serial Killer by Oyinkan Braithwaite

"말라바르 언덕의 과부들" 수자타 매시
The Widows of Malabar Hill by Sujata Massey

"미라클 크리크" 앤지 김
Miracle Creek by Angie Kim

"당신이 필요한 세계" 헬렌 필립스
The Need by Helen Phillips

"The Other Americans' 레일라 랄라미
The Other Americans by Laila Lalami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 루스 웨어
The Turn of the Key by Ruth Ware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Your House Will Pay by Steph Cha

"검은 황무지" S.A. 코스비
Blacktop Wasteland by S.A. Cosby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Djinn Patrol on the Purple Line by Deepa Anappara

"멕시칸 고딕" 실비아 모레노- 가르시아
Mexican Gothic by Silvia Moreno-Garcia

"When No One Is Watching" 앨리사 콜 (국내 미출간)
When No One Is Watching by Alyssa Cole

"Winter Counts" 데이비드 헤스카 완블리 웨이든 (국내 미출간)
Winter Counts by David Heska Wanbli Weiden

"Survivor's Guilt" 로빈 기글 (국매 미출간)
Survivor’s Guilt by Robyn Gigl

2023/10/05

Nervous Breakdown 너버스 브레이크다운 1~13 - 타가미 요시히사 : 별점 3점


90년대 초, 중반에  '타누마 사립탐정 사무소' 멤버들이 - 특히 브레인 역할인 안도와 액션 전담 미와 컴비 -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한다는 추리 만화. 지금은 없어진 월간지 "코믹 NORA"에 연재했었지요. "그레이" 등 성인 취향의 어둡고 비정한 SF, 범죄물로 유명한 타가미 요시히사의 작품입니다. 저는 "그레이"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라 이런저런 작품들 - 예를 들어 "화석의 기억" - 을 원서로 구해 읽었었는데, 이 작품은 "메탈헌터"와 함께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유이한 작품입니다. 소개 당시 한 권씩 구입해서 읽었고,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지요. 
예전에 스핀오프 "Night Adult Children" 리뷰를 올렸던 적은 있었는데, 추석 연휴를 맞아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전 13권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이 3등신과 8등신을 오가는 작화가 가장 큰 특징으로, 대부분의 경우 3등신인데  아래와 같이 특정 컷에서만 8등신으로 등장하는 식입니다. 


3등신 캐릭터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추리를 하고 시니컬하고 분위기있는 대사를 내뱉는게 묘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특별히 모든 등장인물들이 8등신으로만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두 편 있습니다. - 안도가 주인공인 "고즈에로 가는 마지막 버스", 미와가 주인공인 "살인자에게 인사를" - 두 편 모두 의외의 재미를 가져다주는 좋은 작품으로, 전부 8등신으로 진지하게 그렸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등장인물들도 독특합니다. 안도는 포지션은 전형적인 명탐정이지만, 정의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거든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진범을 체포하는데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정해진 보수를 받은 만큼 일하고요. 사건 도중에 일어난 트러블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의뢰인에 대해서 "그 여자가 죽건 말건 난 상관없어"라고 말할 정도고, 아래처럼 지인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빡않는, 인정머리 없는 남자입니다.



몸이 굉장히 약하고, 여자들이 쉽게 반하는 미남이라는 속성도 붙어 있는데 이런 캐릭터는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네요. 아래와 같이 멋진 말을 남기는 장면은 과연 여자들이 반할만하다 싶기도 하고요.

"미야한테 전할 말이 있는데...."

미와는 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그 캐릭터에 가깝지만, 그 초인적인 체력이 유용하게 활용될 때가 많다는 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아래와 같이 가끔은 멋지게 등장합니다. 그냥 개그컷에 가깝지만....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작가의 추리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이 잘 녹아 있거든요. 목차부터가 고전 명작의 패러디들이 많을 정도로요. 
하지만 트릭이 사용된 본격물보다는 범죄 드라마, 스릴러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이 더 완성도가 높습니다.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전개도 좋고, 사건에 몰입하게 만드는 상황과 심리 묘사가 탁월한 덕분입니다. 작가도 이런 특성을 알아챘는지 뒤로 갈 수록 트릭보다는 드라마에 집중하며, 덕분에 더 볼 만해집니다.
이외에도 죽어가는 남편의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조사에 나선다는 "어느 조용한 죽음" 처럼 잔잔한 일상계로 인간 관계를 되새기게 만드는 에피소드들도 독특합니다. "고백의 십자가", "마지막 Chiristmas" 같은 일상계 러브 스토리까지 수록되어 있는 등 다루는 장르의 폭도 넓고요. "노리코의 죽음"같이 SF 등 다른 장르물과 혼합된 사랑 이야기(?), 미와가 맹활약하는 액션물들도 괜찮습니다. 

정통 본격물 맹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패러디들도 큰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과거 잔혹한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곳에서 실종자가 한 명 나왔지만 안도가 "아직 기껏해야 실종에 지나지 않으니까. 이런 사건은 다음 피해자가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처럼요. 아래의 밀실 살인에 대한 비판 역시 공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추리 만화로서 논리적이거나, 감탄할만한 트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많지 않다는건 다소 아쉽습니다. 만들기 쉬운 암호 트릭 - 10권 "산쥬노출"의 "미키가 노래하는 미버 (タレラヤ小さぃ子羊肉)"처럼요 - 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 오히려 트릭이 사용된 에피소드는 다소 억지스럽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예를 들어 "바이바이 엔젤"에서는 수조로 이루어진 밀실에서 수조를 치우는건 불가능하다고 등장인물들이 이야기하지만, 수조를 어떻게든 치웠다는게 진상이었습니다. 이런건 반칙을 넘어서는 억지죠. 

3등신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인지 개그도 많은데, 안도의 약한 체력과 미와의 야수같은 육체, 의뢰인이었다가 타누마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게 되는 미야가 재벌 이나바 테츠노스케의 손녀라는 등의 캐릭터 설정을 활용한게 많습니다. 문제는 다소 뻔하고 식상한 개그들이라는 겁니다. 반복적이기도 하고요. "15세" 딱지가 붙을 정도로 외설적인 개그도 많은데,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아서 안 나오느니만 못했습니다. 마지막 에피소드 "마지막은 참극"은 미와가 등장인물 모두를 죽이는 꿈을 꾼다는 내용인데,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영 어울리지 않았고요.
아울러 학산 문화사 초기 번역 소개작이라 그런지 여성의 노출 장면을 어거지로 덧칠하는 등의 문제도 크며, 3등신 캐릭터들의 얼굴 구분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3권의 "모두가 닮은 사람"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모두가 닮았다는걸 트릭으로 써먹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다시 읽어도 여전한 재미를 가져다주는건 분명합니다. 수록작들 편차는 크지만 몇몇 작품들은 충분히 '걸작' 소리를 들을만 하다 싶고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각 권별 수록작들 제목을 소개해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제가 아는 한 원제를 달아보기는 했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1권 :
갑자기 사라져 버린 케이코
그래도 사랑스러운 여인이여
원과 면 : 점과 선
황색의 연구 : 주홍색 연구
 
2권
일요일은 죽는 날
걱정일세, 여탐정!
여름빛깔 카루이자와
타누마 소장 최후의 사건 : 트렌트 마지막 사건
얼어붙은 파도 : 얼어붙은 섬 또는 얼어붙은 송곳니
 
3권
도둑은 가득히 : 태양은 가득히
모두가 닮은 사람 : 당신을 닮은 사람
제로의 정점 : 제로의 초점
한여름 낮의 꿈 : 한여름 밤의 꿈
어느 조용한 죽음

4권
하얀 커튼 : 검은 커튼
입학 : 졸업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새빨간 거짓말
사라질 뻔한 탐정 : 사라진 남자 (?)
 
5권
새벽녘의 시선 : 새벽의 데드라인
그리고 소녀는 사라졌다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변호인측 괴인 : 검찰측 증인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내일도 무사하게 하소서

6권
오발탄
타누마 가의 일족 : 이누가미 일족
노리코를 위하여 : 요리코를 위해
분수령
마진테 부인은 죽었다

7권
귀여운 설녀
어느 비오는 오후 갑자기
Midnight Fool
매장 지도
50의 살인

8권
시체와 여행하는 남자 :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고백의 십자가 : 공허한 십자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남자들
토모여, 고이 잠들라 :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기타가타 겐조)

9권
바이바이 엔젤 : 바이바이, 엔젤
추억의 매장
모르그 가의 살인 : 모르그 가의 살인
레이디 하트브레이크
" " (무제)

10권
산쥬노출
마지막 Chiristmas
고즈에로 가는 마지막 버스 : 우드스톡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
불타는 사나이 (Man on Fire) : Man on Fire (크리시 시리즈)
치에는 어디에
사람은 어째서 살해당하는가 :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11권
악몽같은 여자 : 악마같은 여자 ("디아볼릭")
환상의 여인 : 환상의 여인
의뢰인으로부터 한마디 (과거 연재작 특별편) 시리즈
  • 귀여운 여인
  • 설녀가 보고 있었다, 또는 "고립된 산장"을 주제로
  • 울부짖는 여자

12권
보디가드
살인자에게 인사를
셀룰로이드 살인
어설픈 시체
움직이는 시체

13권
여자에게는 맞지 않는 직업 :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사랑의 탐정들
가장 위험한 유행 : 가장 위험한 게임
도중의 집 : 중간 지점의 집
리틀 루즈 걸 : 리틀 드러머 걸
마지막은 참극


본편 외에도 "스페셜 리포트"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유명 추리 소설들을 패러디한 4컷 만화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당시에 만화책이 3,500원이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모든 물가가 3배 이상은 올랐을텐데, 만화책만은 거의 오르지 않았네요.

2023/07/07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 존 르 카레 / 최용준 : 별점 2점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 4점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마일리는 페넌의 자살이 수상하다는걸 눈치챘다. 자살하기 전날에 다음날 모닝콜을 부탁했다는걸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모닝콜을 부탁한 8시와 자살한 10시 30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페넌의 부인 엘자는 모닝콜을 자기가 신청했다고 했지만, 그녀는 불면증이었고 모닝콜 신청 시간에 언제나처럼 공연 관람중이었다. 스마일리는 그녀가 남편을 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사 매스틴은 스마일리의 의견을 묵살했고, 스마일리는 결정적 단서 - 페넌이 스마일리에게 만나자고 보내왔던 편지 - 를 덧붙인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누군가 집에 침입한 뒤, 이대로 발을 빼기 힘들어졌다는걸 깨달았다. 그를 도와줄 수 있는건 은퇴가 코 앞인 경찰 멘델 뿐이었다. 둘은 스마일리를 찾아왔던 차의 소유주 스카를 만나 이런저런 사정 이야기를 들었지만, 스마일리가 습격을 당해 쓰러졌고 스카는 살해당했다.
그래도 멘델의 도움으로 스마일리는 사건에 동독 사절단이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를 잡았다. 동독 사절단은 페넌과 연결고리가 있었고, 그걸 페넌이 밝힐까 두려워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었다. 사절단 대표는 전쟁 당시 스마일리와 일했던 정보원 디터였다.....


"알겠네. 페넌은 자살할 결심을 해. 그런 뒤 교환국에 전화를 해서 8시 30분 모닝콜을 부탁하지. 코코아를 타서 거실에 놓고. 이층으로 가 유서를 쓰지. 다시 내려와 코코아는 마시지 않은 채 그냥 두고 자기 머리에 총을 쏜다. 모든 게 멋지게 맞아떨어지는군그래."

존 르 카레의 데뷰작. 스마일리의 등장 역시 당연히 처음입니다.
첩보 조직과 첩보원들이 등장하고 관련된 사건이 등장하지만, 전형적인 첩보, 스파이 소설은 아닙니다. 첩보 기관은 사건의 동기를 설명하는데 이용될 뿐, 전반적인 전개는 전형적인 범죄 소설에 가깝습니다. 전개는 평범한 범죄, 수사 소설과 유사하며 스마일리도 첩보원이 아니라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으로서의 활약만 선보이거든요. 심지어 파트너격인 멘델은 경찰이고요. 

그러나 범죄, 수사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수사가 단순히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에 불과한 탓입니다. 예컨데 1. 불법 렌트카 업자 스카의 증언으로 익명의 대여인의 존재를 알아낸다, --> 2. 패넌 부인 엘자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면서 그녀가 매주 극장에서 수상한 남자에게 악보 가방을 전해주었다는걸 알아낸다. --> 3. 익명의 대여인 전화번호의 주인인 동독 사절단에 고용된 문트가 엘자와 만난 남자라는걸 알아낸다. 는 식입니다. 이렇게 수사할 때마다 한 발자욱씩 다음 단계로 나아가 진상에 도달하기 때문에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딱 한 번 뿐이었던 엘자와의 만남, 그리고 스카의 증언을 들은 것만으로 동독 사절단이 관련되어 있다는 진상을 어느정도 눈치챌 정도에요.
첩보, 스파이 소설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점수를 줄 부분은 없습니다. 비중이 작을 뿐만 아니라, 스카를 통해 동독 정보원이기도 한 사절단 전화번호가 노출되는 등 스파이 소설에서 기대해봄직한 정교함과는 거리가 너무 멀거든요.
메인 빌런이라 할 수 있는 디터에 대한 묘사도 많은 공을 들였지만, 좋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소아마비로 장애가 있는 디터가 엘자를 죽이고 멘델까지 쓰러트린다는건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런 디터를 평범한 중년 남성에 불과한 스마일리가 죽인다는 결말도 억지스러웠고요.

그래도 딱 한 가지, 페넌이 아니라 엘자가 동독 정보원이었다는 진상만큼은 괜찮았습니다. 덕분에 범인 문트가 가장 위험한 엘자를 죽이지 않고 급하게 귀국했던 기묘한 행동, 그리고 페넌이 기밀 정보 대신 쓸데없는 정보만 수집했던 이유가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모닝콜도 페넌이 아내를 고발하기 위한 핑계거리로 신청했다고 추리하는데 꽤 그럴싸했어요.
엘자가 정보를 전달하는 아날로그적인 방식 - 서로 같은 가방을 극장 휴대품 보관소에 맡긴 뒤, 휴대품 보관증을 바꿔 가져감 - 도 깔끔해서 좋았습니다. 
그 밖에도 은퇴를 앞 둔 퇴물 스마일리에 대한 묘사, 스마일라가 회원으로 있는 클럽에 대한 설명, 스마일리와 전처 앤과의 관계 등 시리즈 팬이라면 볼거리는 제법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기대했던, 국제적인 음모가 등장하는 정통 스파이 소설은 아니었고, 그렇게 재미있다고 보기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거장의 작품이지만 확실히 데뷰작의 한계가 느껴지네요.

2022/08/05

영국 추리작가 협회 (CWA) 선정, 사상 최고의 추리소설 100선 (The Top 100 Crime Novel)

영국 추리작가 협회 (The Crime Writers' Association: CWA)에서 1990년 발표했던 사상 최고의 추리소설 100선 (The Top 100 Crime Novels of All Time) 입니다. 2022년 현재 시점에서 국내 미 출간작은 회색으로 처리하였습니다. 국내 출간작은 모두 59편입니다. 대부분의 출간작이 상위 50위 이내 (43편) 집중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상위권에 유명 작품이 더 많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몇 년 전에 미국 추리작가 협회 (MWA) 선정 베스트 미스터리 100을 소개해 드렸던 적이 있는데, 비교해서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특히 MWA에서는 1위로 꼽은 셜록 홈즈 시리즈 순위가 낮은게 가장 의외였어요. 세 편 선정된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중 "마지막으로 죽음이 온다"가 다른 유명 걸작들을 능가하는 작품인지는 살짝 의심스러웠고요. 미국 작품은 하드보일드 계열만 주로 선정한게 의도인지도 궁금합니다.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 중에서는 도로시 L 세이어스의 "학원제의 밤"이라던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사라진 완구점", 마저리 엘링엄의 작품 등이 눈에 뜨이는데, 언젠가는 국내에 출간되면 좋겠네요.

1위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2위 "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3위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존 르 카레

4위 "학원제의 밤" 도로시 L 세이어스

5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6위 "레베카" 다프네 뒤 모리에

7위 "안녕 내 사랑" 레이먼드 챈들러

8위 "월장석" 윌키 콜린스

9위 [[the ipcress file]] 렌 데이튼

10위 "몰타의 매" 대실 해밋

11위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12위 "실종 당시의 복장은" 힐러리 워

13위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14위 "로그 메일" 제프리 하우스홀드

15위 "기나긴 이별" 레이몬드 챈들러

16위 "살의" 프랜시스 아일즈

17위 "자칼의 날" 프레드릭 포사이스

18위 "나인 테일러스" 도로시 L 세이어스

19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20위 "39계단" 존 버컨

21위 "셜록 홈즈의 모험" 아서 코난 도일

22위 "살인은 광고된다" 도로시 L 세이어스

23위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애드거 앨런 포 24위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에릭 앰블러

25위 [[사라진 완구점]] 에드먼드 크리스핀

26위 [[Tiger in the smoke]] 마저리 엘링엄

27위 "가짜 경감 듀" 피터 러브시

28위 "흰 옷의 여인" 윌키 콜린스

29위 [[A Dark-Adapted Eye]] 바바라 바인

30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제임스 M. 케인

31위 "유리 열쇠" 더쉴 해밋

32위 "배스커빌 가의 개" 아서 코난 도일

33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존 르 카레

34위 "트렌트 마지막 사건" E.C 벤틀리

35위 [[From Russia with Love]] 이언 플레밍

36위 "경관 혐오" 에드 멕베인

37위 "제리코의 죽음" 콜린 덱스터

38위 "낯선 승객"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39위 "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40위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41위 "독 초콜릿 사건" 앤서니 버클리

42위 "성녀의 유골" 엘리스 피터스

43위 "죽음의 혼례" 엘리스 피터스

44위 "죽음의 키스" 아이라 레빈

45위 "재능있는 리플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46위 "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47위 "호수의 여인" 레이먼드 챈들러

48위 "무죄 추정" 스콧 터로우

49위 "내 눈에 비친 악마" 루스 렌들

50위 "벨벳의 악마" 존 딕슨 카

51위 "치명적 반전" 바바라 바인

52위 [[The Journeying Boy]] 마이클 이네스

53위 [[A Taste for Death]] P.D. 제임스

54위 "독수리는 날개치며 내렸다" 잭 히긴스

55위 [[My Brother Michael]] 메리 스튜어트

56위 [[Bertie and the Tin Man]] 피터 러브지

57위 [[Penny Blac]] 수전 무디

58위 [[Game, Set & Match]] 렌 데이튼

59위 [[The Danger]] 딕 프란시스

60위 [[Devices and Desires]] P.D. 제임스

61위 [[Under World]] 레지널드 힐

62위 [[Nine Coaches Waiting]] 메리 스튜어트

63위 [[A Running Duck]] 폴라 고슬링

64위 [[smallbone deceased>> 마이클 길버트

65위 [[The Rose of Tibet]] 라이오넬 데이비슨

66위 [[Innocent Blood]] P.D. 제임스

67위 <<맹독>> 도로시 L 세이어스

68위 [[Hamlet, Revenge!]] 마이클 이네스

69위 "시간의 도둑" 토니 힐러먼

70위 [[A Bullet in the Ballet]] Caryl Brahms & S. J. Simon

71위 [[Deadheads]] 레지널드 힐

72위 "제3의 사나이" 그레이엄 그린

73위 [[The Labyrinth Makers]] 앤서니 프라이스

74위 [[the quiller memorandum>>애덤 홀

75위 "내안의 야수" 마거릿 밀러

76위 [[The Shortest Way to Hade]] 새러 코드웰

77위 "질주" 데스몬드 배글리

78위 [[Twice Shy]] 딕 프란시스

79위 [[The Manchurian Candidate]] 리처드 콘돈

80위 [[the killings at drift>> 캐롤라인 그래험

81위 "야수는 죽어야 한다" 니콜라스 블레이크

82위 "고르키 파크" 마틴 크루즈 스미스

83위 "마지막으로 죽음이 온다" 애거서 크리스티

84위 "녹색은 위험"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85위 [[Tragedy at law]] 시릴 헤어

86위 "콜렉터" 존 파울즈

87위 "기데온과 방화마" J.J. 매릭

88위 "대통령의 유산 The Sun Chemist" 라이오넬 데이비슨

89위 "나바론 요새" 알리스테어 맥클린

90위 [[The Colour of Murder]] 줄리안 시몬즈

91위 [[Greenmantle]] 존 버컨

92위 "모래톱의 수수께끼" 어스킨 칠더스

93위 [[wobble to death>> 피터 러브지

94위 <<붉은 수확>> 더쉴 해밋

95위 [[The Key to Rebecca]] 켄 폴렛트

96위 [[Sadie When She Died]] 에드 멕베인

97위 [[The Murder of the Maharajah]] H.R.F. 키팅

98위 [[What Bloody Man Is That?]] 사이먼 브렛

99위 [[Shooting Script]] 게빈 라이얼

100위 "네 명의 의인" 에드거 월러스

2022/07/02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윌리엄 브리튼 / 배지은 : 별점 3점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6점
윌리엄 브리튼 지음, 배지은 옮김/현대문학

인기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답습하는 작품은 많습니다. 탐정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셜록 홈즈의 경우는 작가 사후에도 다른 작가들에 의한 시리즈가 계속되었고, 에놀라 홈즈와 같은 가족이 등장하는 스핀 오프에 각종 패러디와 파스티슈 물까지 합치면 그 수는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저 역시 "경성 탐정록"이라는 파스티슈 물로 숟가락을 얹었었지요. 

문제는 누구나 다 아는 탐정이 등장하기에 별다른 변주를 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셜록 홈즈가 21세기에 환생을 하든, 이세계로 전생을 하든간에 그는 셜록 홈즈니까요. 하지만 이 단편 시리즈는 이런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해결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그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 작품을 읽은 누군가가, 자기가 흠모하는 탐정을 따라해서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대와 탐정역에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합니다. 고전 정통 본격물 탐정들이 등장하기 때문인지, 모든 이야기들이 고전 정통 본격물 스타일인데 이 역시 마음에 듭니다. 작가 취향이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듯 하네요.

물론 몇몇 작품들은 원래 탐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고전 정통 본격물 애호가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좋은 시리즈라는건 분명합니다. 뒤이은 수록된, 저자의 다른 시리즈인 스트랭 씨 시리즈 역시 고전 정통 본격물로서 나쁘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겪고 있었던 고전 정통 본격물 금단 현상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11편이나 되는 "~를 읽은 남자" 리뷰를 쓰다보니 힘이 빠져서, 스트렝 씨 시리즈는 제일 괜찮았던 한 편만 소개드립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에드거는 존 딕슨 카 소설에 나오는 것같은 밀실을 만들어 삼촌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의 핵심은 벽난로였다. 삼촌을 살해하고, 깨끗하게 청소한 벽난로 굴뚝으로 빠져나온 뒤 난로에 불을 붙여 밀실로 만들 셈이었다...

아주 오래 전 다른 앤솔러지를 통해 읽었던 작품입니다. 존 딕슨 카하면 떠오를 '밀실'을 소재로 만든 작가의 처녀작입니다. 범인이 범행 계획을 앞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도서 추리물' 형식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블랙 코미디에 가깝지요. 그래도 재미만큼은 나무랄데 없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 

엘러리 퀸의 광팬 아서 민디가 머무는 양로원에서 위책 노인이 애지중지하던 10달러 금화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일한 용의자 데니슨이 그들 앞에서 옷을 벗기까지 했지만, 금화는 찾을 수 없었다...

엘러리 퀸 광팬이 "퀸 수사국" 속 "마약 부서 검은 장부"라는 작품을 인용해가며 추리를 펼친다는건 시리즈 설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데, 사실 아서 민디는 별로 엘러리 퀸같지는 않습니다. "검은 장부"에서의 트릭과도 아무 관련이 없고요. 

그러나 다행히도 원전보다 추리적인 부분은 훨씬 낫습니다. 아서 민디는 데니슨의 뺨 상처가 벌어진 이유, 계단을 끔찍히 싫어하면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를 추리하여 진상을 밝혀내는데, 설득력 높은 완벽한 추리였기 때문입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의 교과서같은 작품으로, 제 별점은 5점입니다. Hall of Fame!

"읽지 않은 남자" 

몬티는 친구 포드에게 벽돌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암실용 방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포드는 몬티의 아내 헬렌이 죽은 교통사고를 일으켰지만, 몬티는 그건 사고였다며 포드를 달랬다. 두 남자는 곧바로 벽을 쌓기 시작했고, 몬티는 포드에게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 코노서스 초이스 반 병을 건넸다...

포드는 헬렌이 갑자기 도로 한 복판으로 뛰어나와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몬티는 집 앞 우편함에 포드 차 페인트가 묻었다는 것, 그리고 현장 근처에서 버려진 위스키 병을 찾아낸 뒤, 포드가 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헬렌을 덮쳤다고 추리합니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포드를 불러 벽을 쌓는 척 하고 암실 안에 가둬 버리고 말지요.

그런데 차 안에서 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고 당시 포드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판단한 수사 결과는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고를 일으킨게 분명한 포드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몬티를 당당하게 찾아온 경위, 그리고 제 발로 갇힌 방을 만드는데 참여한 것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몬티는 포드가 에드거 앨런 포의 "아몬티야도 술통"을 읽지 않아서 이 함정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이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애초에 위험한 상황에 제 발로 들어간게 문제거든요.

읽지 않은 남자라는 변주는 좋은 발상이었는데,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렉스 스타우트를 읽은 여자" 

카니발에서 "뚱뚱녀" 역할을 맡은 거트루드는 연기를 위해 렉스 스타우트 작품을 탐독하다가 빠져들게 되었다. 쇼 단원 중 거트루드가 딸같이 아끼던 뱀 조련사 릴리가 살해된채 발견되자, 거트루드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는데...

렉스 스타우트네로 울프와 뚱뚱하다는 점, 그리고 아치와 같은 조수(?)가 있다는 연결 고리는 가지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렉스 스타우트, 그리고 네로 울프와 별 관계는 없습니다. 평범한 추리물이에요.

그러나 정통파 본격물로 보기에는 애매했습니다. 핵심 단서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반쪽짜리 메달에 적힌 BY-BY라는 글귀에 대한 단서 제공이 전무한 탓입니다. '비실이'라는 별명을 들으면 불같이 화낸다는 설정도 너무 후반부에서나 드러나서, 전개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를 읽은 소년" 

시골 마을 라킨스코너에 벨기에 교환학생인 열 살짜리 천재 자크 뒤몽드가 찾아왔다. 자크는 마을 경찰 맥스 코리와 친구가 되는데, 어느날 라킨스코너에 수 명의 대학생들이 찾아와 기묘한 장난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생들이 노린건 희귀 우표였는데, 이걸 사다가 혹시 발각될까봐 다른 기묘한 사건을 벌였다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진상이 납득되지 않아서 도무지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마을을 들 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러 명이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차례대로 원하는 우표가 나올 때 까지 우표를 그냥 사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났을테니까요. 독자가 뭔가 희귀 우표 관련된 사건이라고 쉽게 짐작 할 수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아울러 탐정역인 자크가 벨기에인으로 대화하다가 프랑스어를 섞으며, 심지어 10살 짜리가 있지도 않은 콧수염을 만지는 시늉을 한다는 식으로 포와로를 따라한다는 묘사는 심하게 억지스러웠습니다. 학생들이 노리던 우표는 인쇄 오류로 '콧수염'이 생긴 것 처럼 인쇄되었다는건 이러한 억지 포와로 따라하기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도 별 볼일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시리즈 최악의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을 읽은 남자" 

테리 왓슨에게 대학 후배 대니얼 블래싱검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인데다가, 뚱딴지같은 내용이어서 이유를 알기 위해 왓슨은 편지 속에서 언급된 다른 인물에게 전화를 건 뒤, 워싱턴으로 호출되었다. 알고보니 블래싱검은 타국 대사관에서 암약하는 스파이로, 중요한 목록이 담긴 상자의 비밀 번호를 편지 속에 숨겨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왜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는지는 모른채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왓슨에게 보내진 엉뚱한 편지에 암호가 감추어져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왔습니다. 세개의 이어진 영어 알파벳이라는 암호도 단순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암호 때문에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결말이 아주 유쾌했어요. 암호는 "LMN"으로 이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대사 - '엘레멘터리 왓슨 - 그건 기본이야 왓슨' - 를 떠올리면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LMN 테리 왓슨" 이 되니까요. 말장난이기는 해도, 아서 코난 도일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었어야만 풀 수 있는 암호라는 점에서 시리즈 취지에도 잘 부합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체스터턴을 읽은 남자"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애독자 케니 신부는 추찹한 사진을 밀매하다가 자살했다는 교구민 팀 해링턴의 장례 미사 문제로 주임 시부 고거티 신부와 언쟁을 벌였다. 그 뒤 고거티 신부는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내 보라며 케니 신부에게 하룻 동안의 유예를 주었다. 그리고 케니 신부는 사건 담당인 깐깐한 언셀 형사와 함께 방문한 사건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데....

브라운 신부 스타일의 탐정물이라기 보다는, 브라운 신부가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걸 증명하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특히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드러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에요. 차에 반사되는 햇살을 보고, 추잡한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려면 '커튼'을 쳤어야 했는데 현장이 그렇지 않은걸 눈치채는게 아주 자연스러웠거든요. 깐깐한 언셀 형사가 설득당한게 일리가 있다고 생각될 만큼 좋은 추리였습니다. 사진 배달부의 실수가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동기도 짧은 분량에 잘 드러나있고요. 여러가지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대사를 장황하게 펼치며 쉬운 말도 한번 더 꼬아서 말하는 브라운 신부와는 전혀 다른 신세대(?) 신부지만, 애정하는 브라운 신부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케니 신부 캐릭터도 마음에 드네요.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 작품에 푹 빠졌다는 건 "~를 읽은 남자" 시리즈에 속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좋은 단편 추리물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대실 해밋을 읽은 남자" 

정년 퇴직 후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는 잡무를 하게 된 프리처드는 어느날 도서관장 디컨 씨의 부름을 받았다. 추리소설 애호가 패러것이 도서관 이사회 회장 앤드루 킹과 건 내기 때문이었다. 패러것이 도서관 어딘가에 감추어 둔 책을 찾으면 그가 추리소설 초판본 컬렉션을 도서관에 기증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추리소설 매니아 프리처드가 앤드루 킹을 도와 패러것이 준 간단한 단서로 한 시간 안에 책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되는데....

아르바이트하는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취미를 이용해서 도서관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다는,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꿈 같은 설정의 이야기입니다. 추리 소설 매니아 프리처드 씨에게도 행운이 닥치는 결말까지도 아주 환상적이에요.

이야기의 핵심인 보물찾기 게임도 꽤 그럴듯하고,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인 독자는 풀이 과정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3.14"가 적힌 봉투 안에 "더블 더즌", 그리고 "몰타의 매"라고 적힌 카드가 한 장씩 들어있는게 힌트였는데, "3.14" -> 파이는 "Pie"로 바꿀 수 있고, "더블 더즌"은 24, "몰타의 매"는 "매"가 소문자라서 말 그대로의 새를 의미하므로 "검은 새"가 되고, 이게 "파이 안에서 구워지는 스물 네 마리 검은 새"라는 동요로 이어지는데, 한국 독자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추리인 탓입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조르주 심농을 읽은 남자" 

친구 해럴드와 함께 고가의 화물을 나르는 바니는 조르주 심몽의 메그레 시리즈를 탐독해왔다. 그들은 대저택에서 '라이트풋' 래리 쇼필드라는 고용인 앞에서 싣고 온 화물을 내려놓았다. 그는 별명 그대로 알록달록 화려한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러나 바니는 메그레 경감의 활약을 떠올리며,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고 확신하는데...

메그레 경감은 사실 대단한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좀 우직하고,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죠. 그러나 성실하고 꼼꼼한데다가 관찰력이 뛰어난데, 이 작품 속 바니 역시 관찰을 통해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는걸 알아내게 됩니다. 그는 래리 쇼필드가 절대로 다리를 꼬지 않고, 발바닥을 계속 땅에 대고 있는걸 눈치채거든요. 부츠를 갈아신었는데, 새것이라는게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단지 부츠가 새 것이라는게 그가 가짜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래리 쇼필드가 자기 입으로 흙길을 걸어 왔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부츠는 얼마든지 갈아 신을 수 있잖아요? 바니가 오지랖을 떨어서 쇼필드의 정체를 폭로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설령 눈치를 챘더라도, 현장을 벗어나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했습니다. 현장에서 총을 든 상대방을 위협해가며 추리쇼를 펼칠게 아니라요.

이렇게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며, 메그레 경감의 특징을 잘 살린 것도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 

에밀 프랫은 오랫만에 겨우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담당하고 있는 도킨스 사건 때문이었다. 영국인 도킨스는 미국으로 여행을 왔었는데,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도박으로 땄던 3천 달러 정도를 노린 범행이었다. 그는 죽기 전 경찰에게 "올드 피싱.."과 비슷한 말을 남겼다. 에밀 프랫의 딸 메릴리는 최근에 읽고 있는 존 크리시의 기디온 경정 시리즈에 나온 영국 코크니 말투가 해결의 실마리라는걸 아빠에게 알려준다....

기디온 경정의 활약보다는, 작품에 등장했던 영국 런던 토박이 코크니들의 은어가 단서가 된다는건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잉 메시지라는 억지스러운 설정에 더해 죽어가면서 은어를 써서 단서를 남길 이유가 설명되고 있지 않은 등,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다는건 아쉬웠어요. 당연히 한국인 독자로서는 추리하기도 힘든 내용이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를 읽은 남자들" 

역사 교사 폴 해스킬, 전화선 보수 기술자 재스퍼 지머먼, 대장장이 가브리엘 둔, 은행장 시드니 워윅과 메리 팅커 술집 주인 핀들레이의 다섯 명은 모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의 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메리 팅커 술집에 모여 "흑거미 클럽" 처럼 수수께끼 풀이 놀이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진짜 작은 마을 홀컴밀스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 놀이 속 수수께끼는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기자 에드거 바시가 진짜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마을 최대의 백화점 '밸류 투데이'의 사장인 마케팅 귀재 데이비 로터스가 천 달러가 들어있는 금고를 전시장에 공개하고, 금고를 열면 누구나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비밀번호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수께끼였다. 아시모프 팬들은 각자 자신만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에 대한 일종의 파스티슈 작품입니다. 

참석자들이 각자 내 놓는 추리들이 눈길을 끕니다. 감히 '흑거미 클럽'을 운운할 수 없는, 여러모로 부족한 추리들이었지만 각자의 직업과 전문 분야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잘 와 닿기는 했거든요. 마지막에 집사 헨리의 포지션인 술집 주인 핀들레이가 정답을 맞추고 천 달러를 얻는 결말도 좋아요. 

무엇보다도 밸류 투데이는 데이비 로터스의 철자를 가지고 만든 애너그램으로, 이를 이용하면 금고 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는 진상에 대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한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정통 본격 고전 추리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인 독자에게는 쉽게 추리할 수 없는 내용이기는 했지만요.

여러모로 아시모프의 원전인 걸작을 잘 이해하고 쓴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 2부 스트랭 씨 이야기 - "스트랭 씨 여행가다" 

스트랭 씨는 단체 버스 투어로 캐나다 여행을 떠났다. 그의 옆 자리에 앉게 된 건 제리 수녀였다. 그리고 여행 도중 제리는 가판대에서 나무로 된 십자가를 구입했는데, 그 십자가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스트랭 씨는 귀국 직전 십자가 사건과 퀘벡에서 일어났던 은행강도 사건의 연관성을 추리해 내고, 버스에서 추리쇼를 벌이게 되는데...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고교 과학 교사 스트랭 씨 시리즈의 수록작 중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십자가를 '길포일' 이라는 여행객으로 변장한 은행강도 르클레어가 훔쳤던 이유는, 십자가를 포장했던 신문지 때문이었다는 추리가 특히 좋습니다. 신문에 르클레어 사진이 실려 있었다는 이유는 십자가를 훔칠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비록 프랑스어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고요.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중요하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왠지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해서, "~를 읽은 남자" 시리즈로 썼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은행강도가 도주를 위해 미국인 단체 여행객으로 변장한다는 아이디어도 국경에서 어떻게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렸습니다.

이렇듯 추리물로서 상당한 수작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못했고, 국내 소개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4편만으로 끝난게 못내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2022/06/25

심야의 손님 - 오쿠라 데루코 / 이현욱 외 : 별점 1점

심야의 손님 - 2점
오쿠라 데루코 지음, 이현욱 외 옮김/위북

잘 모르는, 전전(戰前)세대 일본 추리 작가의 2차 대전 전~후를 아우르는 대표 단편 일곱 편을 모아 놓은 단편집입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나쓰메 소세키,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문하에 있던 작가로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득력 있게 파헤치는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 어쩌구 하는 홍보 문구에 낚여서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너무나 형편없고 졸렬했습니다. 최근 읽은 책, 아니 제가 읽어왔던 천 권이 넘는 책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졸작이었어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우선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전무합니다. 심령 호러와 같은 작품도 있는데, 스릴이나 긴박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어서 섬찟한 느낌도 전혀 받을 수 없고요. 홍보 문구에서 이야기하는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설득력있는 인과 관계 역시 단 한 작품에서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지금 읽기에는 의외성없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전개로 진행된다는 단점도 큽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읽어볼 가치는 전무합니다. 활동기에도 유명하지 않았으며 지금 시점에서 그 이름이 완전히 잊혀진 작가는 역시나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혹시나 궁금하시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천식"

명문가 후지와라 가문의 후계자 기미타카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등장합니다. 알고보니 후계자 기미타카는 살해되었었고, 범인은 친모였어요. 친모는 후지와라 가문과 어울리지 않는 평민 출신인 탓에 친척들에게 멸시를 당해왔었는데, 기미타카가 성장하면서 범죄자가 되어가자 자신이 질타를 받을 걸 우려하여 살해했다고 하네요.

아니, 아들이 범죄자가 되건 말건 친모가 아들을 살해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살해한 뒤, 아들을 미이라로 만드려고 불상 속에 사체를 집어넣었다는 설정은 또 왜 들어간걸까요? 에도가와 란포를 따라한 유치한 발상에 불과합니다. 설득력이 없다는것도 마찬가지고요. 아울러 이러한 진상은 기미타카의 친모가 남긴 편지로 드러날 뿐이라 추리의 여지도 전무합니다. 별점을 주자면 0.5점입니다.

"공포의 스파이"

구 백작 마쓰오카 본가에서 장남 가즈오가 사라집니다. 진상은 동생 가오루가 형수에게 반해서, 형수와 가문을 손에 넣기 위해 형을 납치했다는 겁니다. 가즈오는 시베리아 파병 당시 소련 스파이로 일할 걸 서약했었다는 약점이 있었다는군요. 

소련 스파이 설정도 어처구니가 없지만(전후에 그런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립탐정 사쿠라이 요코가 진범을 밝히는 과정도 제대로 설명되고 있지 못합니다. 조사나 추리 없이 그냥 마지막에 "얘가 범인이에요"라는 식이거든요. 이 작가가 추리 소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글을 썼다는 확신이 듭니다. 역시나 별점은 0.5점입니다.

"요물의 그림자"

비밀 암호를 몸에 지니고 여객선을 타고 이동하던 화자가, 여객선에서 만난 중국인 부녀로부터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내용입니다. 아파보이던 딸은 원래 죽어서 장례까지 치뤘었는데, 하인이 손에 낀 반지를 훔치려 시체 손가락을 자를 때 깨어났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이 중국인 부녀가 약을 써서 화자로부터 암호를 빼앗는 전개로 이어지고요. 

왜 딸이 죽었다가 살아났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고, 어떻게 암호가 화자에게 있는줄 알고 접근해서 빼앗는지, 그리고 무엇에 대한 암호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 등 이야기의 완성도 자체가 한없이 낮습니다. 그냥 중국인 부녀 이야기만 "공포 특급" 정도에 수록될 짤막한 1~2페이지짜리 괴담으로 풀어내는게 차라리 나았을 겁니다. 요 괴담만 그나마 읽을만해서 별점은 1점입니다.

"마성의 여자"

특별한 능력으로 남편 혼조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알아내는 야스코의 이야기입니다. 혼조는 야스코의 감시와 집착에 질려 그녀를 살해하지만, 야스코의 영혼이 혼조와 하나가 되어 발광한다는 결말입니다. 

자기가 증오해서 죽인 피해자가 '초능력자'여서, 그녀의 영혼이 나의 영혼과 합쳐진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어요. 그나마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랄까... 하지만 이를 제대로 풀어내지도, 마무리짓지도 못해서 완성도는 낮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심야의 손님"

사립탐정 사쿠라이 요코가 부호 아리마쓰 다케오 살해 사건에 엮이는 걸로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아리마쓰 다케오를 죽였던 건 탈옥수인 의적 오고시였고, 그는 다케오의 양녀 미와코를 돕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던 거지요. 다케오가 과거 미와코의 친부 조지를 함정에 빠트렸었는데, 그 당시 상황이 담겼던 레코드가 남아있어서 오고시는 미와코를 도울 결심을 했다고 설명됩니다.

그런데 요코가 하는건 전혀 없습니다. 요코에게 '심야의 손님'인 의적 오고시가 찾아와 진상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왜 사립탐정이 등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아리마쓰가 이 레코드를 진작에 없애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누군가를 함정에 빠트린 범인이 그 핵심 증거를 집에 잘 숨겨두고 보관해 둔다? 설득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네요. 이 쯤 되면 작가가 도대체 생각이라는걸 하고 글을 쓰는지 의심이 될 정도에요. 별점은 0.5점입니다.

"일본 동백꽃 아가씨"

사쿠라이 요코 시리즈입니다. 과거 미모로 '일본 동백꽃 아가씨'라고 불리웠던 히가시야마 씨 부인이 실종됩니다. 부인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는 유명 가수가 제대로 간호받지 못하던 부인을 직접 돌보기 위해 납치했던게 진상이고요. 

다른 사쿠라이 요코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추리의 여지는 전무합니다. 히가시야마 씨에게 그렇게 부인을 돌볼거라면 자기에게 맡기라고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범인이었거든요. 이래서야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부인에게서 과거 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절절했기에, 고풍스러운 로맨스물로서의 가치가 약간 있을 뿐입니다. 별점은 1점 정도?

"사라진 영매"

가쓰다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내가 죽은 뒤 아내의 영혼을 불러오는 영매 레이코에게 푹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과거에 썼던 별거 아닌 편지를 발견한 탓에 폭주하여 레이코를 살해한다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이 막장 단편집의 화룡정점입니다. 영매 레이코의 능력, 가쓰다가 폭주한 이유, 사체를 은행 대여금고에 맡겼다는 설정 등 뭐 하나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니까요. 당연히 무섭지도 않아서 심령 호러물로의 가치도 전무합니다. 가쓰다가 아내, 레이코와 화자인 S 부인 모두가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는 반전이라도 잘 살렸더라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당연히 잘 살리지도 못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2/04/01

사장을 죽이고 싶나 - 원샨 / 정세경 : 별점 2점

사장을 죽이고 싶나 - 4점
원샨 지음, 정세경 옮김/아작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에서 무명 연극 배우로 살아가던 위바이통에게 중국의 유명 금융 엘리트 투자자 양안옌이 찾아왔다. 그는 위바이통 부모에게 은혜를 입었다며 바이통에게 스카웃 제의를 하였다. 6개월 안에 금융 엘리트로 만들어주겠다는 장담과 함께였다. 위바이통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호기심에 못 이겨 중국 강캉시로 향했다. 

강캉시에서 양안옌과 만나기로 한 곳은 그의 회사인 바나 금융 사무실이 있는 88층짜리 신축 바나 센터 건물로 개장하기 직전이었다. 악천후 탓에 꼭대기층 사무실에 조금 늦게 도착한 위바이통은 양안옌 사장이 여러 명의 사람들과 언쟁 끝에 격투를 벌이는 걸 목격했다. 바이통은 싸움을 말리려 했지만, 누군가 꺼낸 칼에 사장이 찔려 죽는걸 막을 수는 없었다. 현장에 있던 무리들은 사장이 강도 살해 당했다고 위장하려 했지만, 도망치려던 그들 앞에 류창융 등 금융계 거물 4명이 나타났다. 사장의 죽음을 숨기고 그들을 응대했지만, 곧이어 정전이 일어났고 비상 계단은 철문으로 잠겨있어서 일행은 88층 바나 은행 사무실 공간에 갇혀버렸다. 

그리고 숨겨놓았던 사장의 시체와 천뤄치가 깜쪽같이 사라진 다음날, 천뤄치, 리슈얼의 시체가 차례로 발견되는데...

제목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집어 들게 된 중국 추리 소설로 급성장하는 중인 중국 금융업과 부동산업을 소재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88층 건물에 여러 명의 사람이 함께 갇힌 상황에서 벌어지는 본격적인 밀실 추리물이라는 점은 독특했습니다. 현대물에서는 보기 드문 설정이었는데, 악천후로 인해 개장 직전 건물에 정전이 되었고 그 탓에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꽤 그럴듯하게 상황을 연출한게 괜찮아요. 초반에 위바이통이 처음에 양안옌이 자신을 찾아왔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도 좋습니다. 위바이통의 출연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전혀 다른 성격의 연극을 보러 왔었고, 또 다른 연극에서는 혼자 보기 적합하지 않고 오로지 위바이통을 찾기 쉬운 좌석을 골랐기 때문이었는데, 나름 추리력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생각되네요.

몇 가지 설정도 볼만합니다. 첫 번째는 양안옌이 연극 배우 위바이통을 스카웃하려던 까닭입니다. 처음에는 911 테러 때 양안옌이 위바이통의 친부모 대신 심부름을 한 덕분에 살아남아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위바이통이 중국 유학 시절 흠모했던 연극배우 리슈얼이 금융 엘리트 중 한 명이라는걸 알게 되고, 양안옌 살해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수상한 행동이 하나 둘 씩 드러나며 진상이 밝혀집니다. 양안엔은 '연기력' 때문에 배우들을 고용해서 금융 엘리트인척 시켰던 겁니다. 배우들은 모두 회사 AI 시스템의 지원을 받아 적절한 연기로 고객과 소통했고요. AI가 금융 엘리트의 거의 모든 실무를 대신하게 되면서, 사람 상대의 커뮤니케이션은 필요하니 저렴하게 배우를 고용했다는 건데 꽤 그럴싸 한 설정입니다. 

두 번째는 양안옌이 입체 영상 기술과 놀이공원용 차량 기술을 빼앗으려고 했는데, 이게 류창융 회장의 주택 건물 개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로 정답은 좁고, 가사 도우미가 필요한 현재의 다세대 주택 환경 개선을 위해서입니다. 창문에서 입체 영상을 만들어서 뿌리고, 엘리베이터는 놀이 공원용 차량 기술을 도입해 고층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주면, 주민들이 고층에서 넓고 쾌적하게 산다고 착각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지요. 비상 계단 벽에 숨겨진 문은 가사 도우미들이 단체로 거주하는 공간으로 만들 셈이었고요. 이 역시 상당히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생각됩니다. 이런 설정을 풀어가면서 부동산에 목숨을 건 모습, AI 때문에 직업을 잃는 사람들 등 중국, 아니 우리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잘 그려낸 것도 인상적이에요.

그러나 이런 흥미로운 설정이 사건과 이어지지는 못합니다. 추리 소설로는 아예 함량 미달이고요. 일단 사건의 범인 쩡자웨이가 양안옌 사장을 살해한 동기부터가 불분명합니다. 그냥 충동적인 범죄로 그려지거든요. 하지만 여러 사람이 있는데서 몰래 칼을 꺼내 찌르다니, 상황부터가 말이 안되지요. 

천뤄치와 리슈얼 살해는 사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저지른 범행으로 이 역시 직접적인 동기가 없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양안옌 - 천뤄치 - 리슈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범행 순환 구조가 완성되기는 했지만, 이는 등장인물들 시점에나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독자들은 위바이통 시점의 묘사를 통해 리슈얼이 불쌍한 피해자라는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등장인물들 생각대로, 양안옌 사장이 죽지 않았고 천뤄치가 배신자였으며 리슈얼이 사장의 스파이였다면, 천뤄치를 죽이고 시체를 공개할 이유도 없어요. 중요한 투자처 손님들을 초대한 마당에 사건을 키울 필요가 있었을리 만무하니까요.

밀실 트릭도 알고나니 너무나 한심합니다. '비밀 통로'를 사용한 것에 불과한 탓입니다. 비상 계단 벽에 아래 층으로 가는 입구가 숨겨져 있었을 뿐이니까요. 때문에 '밀실이 등장하는 추리물'이지, '밀실 트릭'이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차라리 창문에서 입체 영상을 뿌려서 88층으로 느끼게 했지만 사실은 3층이었다는 설정을 이용해서, 창문을 몰래 열고 지상으로 이동했다는 식으로 풀어가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사실 트릭에 쓸 생각도 없었다면 구태여 필요했던 설정도 아니었어요. 물론 이 역시 정전 상태에서 창문으로 어떻게 88층 영상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지 설명이 부족해서 좋은 트릭이라고 하기는 어려웠겠지만요. 

아울러 양안옌 사장이 사실은 위바이통을 죽이려고 했다는 일종의 반전과 에필로그도 별로였어요. 위바이통이 911 테러 희생자의 자식으로 거짓 인터뷰를 한 것 정도로 그를 죽이려 했다?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위바이통이 양안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설령 살의를 품었다 한들, 구태여 중국까지 불러들여 자기 건물에서 죽인다는건 말도 안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금융 엘리트에 대한 설정은 기발했지만, 전체적으로 별로라 구태여 권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2/03/05

미스테리아 35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35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알라딘 온라인 중고로 미스테리아 36호를 사다가 곁다리로 구입하였습니다. 배송비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지요. 

관심이 없던건 '少年'이라고만 적혀있는 뭔지 모를 특집 때문이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였습니다. 제목의 소년은 "20세기 소년"에서 따온 것으로, "20세기 소년"에서 중요하게 언급되었던 오사카 만국박람회, 그리고 올림픽과 1970년대 전기 소설의 유행을 다루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도 잘 모를 정도로 두서없는 글들입니다. 전기 소설에 대한 부분만 괜찮았는데, 차라리 이 부분만 조금 더 깊게 파고드는 특집을 꾸미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뒤이은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라며 휴가 여행에서 생기는 사건들을 다룬 글은 완전 별로입니다. 앞의 글들과 맥락이 맞지도 않았을 뿐더러, 소개되는 작품 절반 이상이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들인 탓입나다. 소개라도 다양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나마 여기까지는 추리 문학 애호가로서 참고 볼만한 내용이기는 했는데, 영화 "스파이의 아내"에 대한 정성일 평론가의 27페이지에 달하는 리뷰와 분석은 지루함의 끝판왕이었습니다. 보지도 않았고, 볼 생각도 없는 영화 리뷰가 재미있을리도 없지만, "미스테리아"라는 잡지에 이렇게 많은 분량으로 소개될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더군요, 이 영화가 정통 추리물이거나, 혹은 그 쪽 장르에 부합하는 영화일까요? 그 외의 글들도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가 쓰는 글과 코드가 비슷해서 좋아하는 정은지 작가의 '미스터리 속 음식 이야기'가 이번에는 피터 윔지 시리즈 전반을 다루는데 눈여겨 볼 부분이 많있습니다. 저도 미스터리 속 샌드위치에 대한 짤막한 글을 써볼까 하고 있었는데, "부자연스러운 죽음"에서 샌드위치가 결정적 단서라는 글이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자책으로 출간된 모양인데, 이번 주말에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특집과 인터뷰, 리뷰 등 기사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 정도? 중고책으로 저렴하게 구입해서 별다른 내상은 없기는 한데, 앞으로는 특집이 별로면 절대 구입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록 단편의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해피엔딩" 서미애

이트 폭력을 그린 단편입니다. 전기 충격기로 디지털 도어 잠금을 풀 수 있다는 생활 상식(?) 말고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없습니다. 전개가 너무 뻔한 탓이었습니다. 도무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탐정이 살인하는 법을 배우다." 곽재식 

1949년, 탐정은 친분이 있던 이 선생님 행사에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이 선생이 완전범죄 비결을 탐정에게만 - 관객들에게 알려주면 완전범죄가 늘어날거라는 이유로 - 알려주고, 탐정이 비결은 그럴듯했다고 인정하며 마무리되는 행사였다. 그 뒤 누군가 탐정을 납치했다. 완전범죄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탐정에게 협박과 고문을 가했고, 탐정은 '거래'를 위해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다며 유명한 해결사 황금지네의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고 나타난건 복수를 위해 황금지네를 쫓던 사채업자 용산쌍룡이었다....

해방 직후를 무대로 해결사 황금지네, 황금지네에게 원한이 있는 사채업자 용산쌍룡, 정체불명의 남자와 탐정, 완전범죄에 대해 떠벌이는 전직 형사 이선생 등 기묘한 등장인물과 완전범죄 좌담회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뭔가 만화같은데, 이런 설정을 잘 살린 묘사만큼은 일품이긴 합니다. 특히 가난하지만 입담하나는 최고인 탐정 캐릭터 묘사가 괜찮았어요. 이 선생이 황금지네였다는 반전도 나쁘지는 않았고요.

그러나 완전범죄 계획은 실망스러웠습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 등에서 익히 보아왔던, 일종의 살인 대행업을 조금 키운 형태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다크 웹 형태로 운영한다는 "디 아더 피플" 속 설정과 별로 다르지도 않고요. 양념 정도라면 모를까, 비중있게 가져갈 설정은 아니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범죄자들끼리 쫓고 쫓기는 구도를 조금 더 정교하게 배치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범죄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시리즈를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3시 정각" 코넬 울리치 

시계 장인 스텝은 아내의 불륜을 눈치챈 뒤, 그녀를 지하실에 설치한 폭탄을 터트려 죽일 계획을 꾸몄다. 이를 위해 오랫동안 조금씩 화약을 모으고, 장치를 만들어나간 끝에 마지막 D-day에 맞춰, 지하실에 잠입해 자명종을 셋팅했다. 그러나 스텝은 집에 들어온 강도들에 의해 지하실 기둥에 묶이는 신세가 되어버리는데....

스스로 설치한 시한 폭탄 타이머가 눈 앞에서 움직이는걸 보는 상황의 묘사가 실로 일품인 작품입니다. 왜 코넬 울리치 (윌리엄 아이리시)가 서스펜스 스릴러의 제왕인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명편이에요. 지하실에서 아내의 불륜이 사실이 아니라는걸 깨닫고 개과천선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가스 검침원과 공놀이하던 꼬마를 통해 어떻게든지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의 빌드업이 특히 대단했어요. 희망을 아주 약간 주었다가 곧바로 빼앗아버리는 장면을 이렇게 잘 묘사할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스텝이 급작스럽게 강도들에 의해 갇혀버린다는 작위적인 설정, 그리고 결국 스텝은 미쳐버렸고, 아내가 화약을 모르고 버린 탓에 폭발은 없었다는 다소 진부했던 결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