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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9

블루버드, 블루버드 - 애티카 로크 / 박영인 : 별점 3점

블루버드, 블루버드 - 6점
애티카 로크 지음, 박영인 옮김/네버모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흑인 텍사스 레인저 대런 매슈스는 지인 맥을 돕다가 ABT (Aryan Brotherhood of Texas) 갱단원 로니 말보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정직 처분을 받았다. 마침 그 때 FBI 요원인 친구 그렉이 엿새 사이 두 명이 시체로 발견된 사건 조사를 부탁했다. 먼저 사망한 피해자는 흑인 남자였고, 두 번째 피해자는 백인 여자라 전형적인 인종 혐오와 치정에 관련된 사건으로 보였다. 대런은 정의감에 불타 사건에 뛰어들었고, 복잡한 가족 관계가 얽힌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에 이름을 올렸기에 읽어보게 된 작품. 이런 류의 리스트 선정작에 실망한 적이 많아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뛰어난 작품이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선 텍사스의 작은 촌마을 라크를 무대로, 여러 등장인물들과 장소 및 각종 디테일에 대한 묘사가 빼어납니다. 장면 장면이 모두 머릿 속에 그대로 떠오를 정도였어요. 전형적인 미국식 스릴러, 수사물로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지만, 하드보일드 전성기 스타일 느낌의, 인종차별이 남아있는 남부 특유의 성향과 복잡한 인간 관계를 바탕으로 한 동기와 진상도 그럴싸 했습니다. 전개도 명쾌하고요. 간략하게 사건의 구조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첫 번째 피해자 마이클은 라크에서 음식점을 하는 제네바를 찾아와 제네바의 남편 조의 기타를 전해주었습니다. 마이클의 삼촌 부커가 조와 같이 밴드를 할 때 돌려주지 않았던 기타였지요. 조는 6년전 강도들에게 살해당했었습니다.
  2. 조 사건 이야기를 들은 마이클은 의문을 품고 재조사를 제안했습니다.
  3. 마이클은 그날 밤 두 번째 피해자 미시와 우연히 술집에서 어울리게 되었는데, 미시는 제네바의 아들과 불륜을 저지르다가 아이까지 낳았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남편 키스는 이를 꾹 참고 묵인해왔었습니다.
  4. 키스는 마이클과 미시가 어울리는걸 보고 분노가 폭발해서 마이클을 폭행하고 미시를 살해했습니다.
  5. 수사 과정에서 키스가 마이클을 폭행한게 드러나서, 라크 보안관은 키스를 두 건 모두의 범인으로 체포합니다.
  6. 그러나 알고보니 키스의 폭행으로 마이클은 다쳤을 뿐이지만, 6년전 조 사건의 진범인 마을 유력자 월리의 공범 아이작에 의해 죽고 말았습니다. 조 사건이 재조사가 될까봐 두려워했던 탓입니다.
여기서 5에서 6으로 이어지는, 대런이 의문을 품고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키스가 범인이라면 마이클의 차는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6년전 사건에서 아이작이 "범인은 세 명의 백인이었다"고 증언한건 모순이라는 (범인을 볼 수 없었으므로) 상황에 대한 지적도 여러 번 등장하고 있고요. 이 정도면 독자에 대한 정보 전달도 공정한 셈입니다.
마지막에 대런이 연류된 로니 말보 사건의 진범이 맥이었다는게 드러나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어요. 작가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잘 알고, 정교하게 전개했다는 인상을 전해줍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전형적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외딴 마을의 지배자가 범죄의 흑막이라던가, 복잡한 인간 관계 - 미시의 아들은 제네바의 손녀이며, 제네바의 아들은 알고보니 월리의 이복 형제였다 (월리의 아버지가 제네바와 불륜을 저질러 낳은) - 가 핵심 고리 역할을 한다는 등의 설정은 수십년 전 부터 계속 반복되어 왔던 것입니다. "흑인"이 주인공으로 인종 차별에 대항한다는 설정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여 차별화를 주고 있기는 하지만, 하드보일드 속 탐정들은 모두 소수자, 약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니 딱히 변별력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인 독자가 이런 남부 흑인들 정서에 대해 온전히 공감하며 작품을 이해하기는 무리일 수 밖에 없고요.
전개가 대체로 우연에 기대고 있으며 마지막에 월리가 진범임을 폭로하는 장면은 거의 모두 자백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아이작이 도주하다가 체포되었다한들, 그가 원래대로의 증언을 고수했다면 오히려 대런이 궁지에 몰렸을텐데 (총으로 월리를 협박했으므로) 그걸 대항할 수단은 마땅한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이클의 BMW를 아이작이 타고 있었던건 월리 정도의 힘이면 충분히 무마할 수 있었을거에요. 키스의 부탁으로 창고를 내 주었을 뿐이었다고 하는 식으로요. 아이작의 증언도 누명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고요. 월리를 반드시 체포되게 만들기 위해 ABT와 연계되어 마약을 밀매하는 사업을 했다는 설정을 집어넣기는 했는데 억지스러웠습니다.

이런 류의 미국식 하드보일드 범죄 수사, 스릴러에 한결같이 적용되는 장황한 배경 설정 설명도 지루했습니다. 특히 앞의 1/5이 넘는 분량은 대런에 대한, 그리고 사건에 핵심 요소인 백인 갱단 ABT -등에 대한 설정을 상세하게 소개할 뿐, 실제 사건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대런이 아내와의 관계라던가 본인의 출생, 가족 관계 등에 고뇌하며 술독에 빠지는 묘사도 너무 많고요. 솔직히 음주 운전을 일상적으로 하는 이런 인간이 정의를 운운한다는게 어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대런의 어머니 커밀라가 맥이 진범이라는 증거를 대런이 숨겼다는걸 가지고 협박을 시작한다는 마지막 반전도 한국인 정서에는 잘 맞지는 않더군요. 아무리 거리가 멀고 사는 환경이 달라도, 친모가 아들을 협박해서 울궈먹는다는건 납득하기 쉬운 설정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오랫만에 묵직한 본격 하드보일드 작품의 진수를 맛본 느낌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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