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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3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점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대생 나오코는 친구 마코토와 함께 펜션 마더구스를 찾았다. 1년 전 마더구스의 밀실인 방에서 자삻했던 오빠 고이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였다. 펜션은 방마다 '마더 구스' 동요가 쓰여진 패널이 걸려져 있었는데, 이 동요들이 암호라는걸 눈치챈 둘은 암호 해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손님 중 한 명인 오오키가 추락사했고, 이는 교묘하게 계획된 살인이라는게 드러났다.
결국 암호를 풀어낸 둘은 오빠 죽음의 진상과 범인을 밝혀내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 "가면 산장 살인사건"의 또다른 번역본이라 생각했었는데, '마더 구스' 동요를 이용한 암호 트릭이 등장한다는 광고글을 보고 착각을 깨우친 뒤 읽게 되었습니다.

추리적으로 볼거리가 많다는게 장점으로 외딴 산장이라는 무대에서부터 시작해서, 밀실 살인, 원격 조종 살인이 등장하고 '마더 구스' 동요를 활용한 암호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먼저 밝혀지는건 오오키를 살해한 원격 조종 트릭인데 '다리를 대신할 수 있는 판자를 썩은 것으로 바꿔치기해서 추락하게 만들었다'는 간단명료함도 좋았지만, 단순히 장치 트릭에 그치지않고 이를 범인이 특정될 수 있는 중요 단서로 활용하는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 판자와 비슷하면서도, 사람이 올라가면 부서져 떨어질 판자를 고르는건 상당히 전문적인 안목이 필요하므로, 목재에 대한 전문가가 범인이다!는 논리인데 꽤 합리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빠 고이치가 자살한 것으로 위장했던 밀실 살인 트릭은 '범인은 방에 숨어 있었다'는 단순한 것이지만, 공범을 활용한 변주가 괜찮았습니다. 먼저 구루미가 침실 창문과 문을 잠그고 다카세가 창문도 잠겼다는걸 확인하게 합니다, 그리고 구루미는 창문을 통해 탈출했고요. 에나미는 다카세에게 다시 고이치를 불러오라고 시킵니다. 이 때 문이 잠겼다는걸 다시금 다카세에게 확인시키고 마지막으로 에나미가 열려있던 창문으로 침입하여 창문을 잠근 뒤 방 안에 숨어서 밀실을 만들었던 겁니다. 에나미 혼자 실행도 가능한 트릭이지만,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면 당연히 눈에 띄였겠지요. 구루미가 산장 펜션 종업원이었던 덕분에, 때맞춰 다카세를 피해자 방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도 있었고요. 이 때 구루미와 에나미가 포커가 아닌 백개먼을 했다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습니다. 단서와 정보 제공도 공정한 편이에요.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우선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마더 구스 동요'를 활용한 암호 트릭이 별로였어요. 쉼표를 활용해서 문장을 이어 붙이는 것까지는 나름대로 말이 되지만, '말을 반대로 바꿔야 한다', 즉 '다리가 부서지는게 아니라 세워지는것' 이라는건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탓입니다. 분명 중간까지는 나름 논리적으로 풀리는데, 그 뒤는 완전 국문학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건 억지스러워요. 마더 구스 동요에서 끝냈어야 하는데, 갑자기 휴게실의 마리아 - 알고보니 마녀 - 조각상이 필요했다는 것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와닿지 않는건 암호 해독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녁 노을이 질 때, 부서진 다리가 그림자 이어지는 곳'이라는 결과를 1년 전에 손에 넣었던 범인들이 왜 1년을 기다렸을까요? 여름이라도 그림자의 변경 추이만 관찰해도 겨울 철 그림자가 어디 위치하는지는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구루미는 몰랐다쳐도 에나미는 이과계 연구원이라는 설정인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설령 에나미가 측정에 실패해서 겨울철 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치죠. 그래도 1년 중 아는 사람이 가장 많을 때 보물을 파내려고 시도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정 그 날짜가 필요했다면, 장소만 사진을 찍어두던가 해서 표시하고 나중에 파내면 되었습니다.

오빠 고이치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한건 밀실 트릭만큼은 앞서 설명했듯 괜찮은 부분이 없지 않으나, 밀실을 만들어야 했을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밀실이라서 자살이다!'라기보다는, 원래 노이로제가 있었고 펜션 손님들과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는 정황이 자살설의 핵심 근거였습니다. 즉, 밀실은 자살설에 무게를 더해주기는 했지만 절대적인건 아니었어요. 게다가 노이로제에 대해서는 범인을 비롯한 펜션 손님들은 아무도 몰랐었는데, 단지 밀실이라는 상황만으로 자살로 몰고가려 했던건 비현실적입니다. 에나미가 나오코와 마코토에게 '오빠는 살해당했다'며 접근한 행동도 납득이 가도록 설명되지 못하고요. 이는 나오코과 마코토가 에나미를 의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불필요했습니다.

그 외에도 구루미가 최초 보석상 가와사키를 살해한게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다던가, 영국 여자가 아들을 죽게 만든 마스터에게 복수와 경고의 의미로 암호를 남겼다던가, 보석상의 혼외자가 다카세였다던가, 보석은 가짜였다던가 하는 등의 에필로그도 별로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손님 중 한 명인 가미조가 보석상 가족의 요청으로 이 사건을 3년이나 추적했던 탐정(?)이라는 설정도 과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와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 활약을 기대했는데, 하는거라곤 마지막에 구루미의 범행을 밝히는 것 뿐이라는 것도 좀 허무했어요. 일종의 맥거핀에 낚인 셈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초기작답게 여러가지 시도는 돋보이나 단점 또한 많아서 감점합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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