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 옮김/열린책들 |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마일리는 페넌의 자살이 수상하다는걸 눈치챘다. 자살하기 전날에 다음날 모닝콜을 부탁했다는걸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모닝콜을 부탁한 8시와 자살한 10시 30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페넌의 부인 엘자는 모닝콜을 자기가 신청했다고 했지만, 그녀는 불면증이었고 모닝콜 신청 시간에 언제나처럼 공연 관람중이었다. 스마일리는 그녀가 남편을 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사 매스틴은 스마일리의 의견을 묵살했고, 스마일리는 결정적 단서 - 페넌이 스마일리에게 만나자고 보내왔던 편지 - 를 덧붙인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누군가 집에 침입한 뒤, 이대로 발을 빼기 힘들어졌다는걸 깨달았다. 그를 도와줄 수 있는건 은퇴가 코 앞인 경찰 멘델 뿐이었다. 둘은 스마일리를 찾아왔던 차의 소유주 스카를 만나 이런저런 사정 이야기를 들었지만, 스마일리가 습격을 당해 쓰러졌고 스카는 살해당했다.
그래도 멘델의 도움으로 스마일리는 사건에 동독 사절단이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를 잡았다. 동독 사절단은 페넌과 연결고리가 있었고, 그걸 페넌이 밝힐까 두려워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었다. 사절단 대표는 전쟁 당시 스마일리와 일했던 정보원 디터였다.....
"알겠네. 페넌은 자살할 결심을 해. 그런 뒤 교환국에 전화를 해서 8시 30분 모닝콜을 부탁하지. 코코아를 타서 거실에 놓고. 이층으로 가 유서를 쓰지. 다시 내려와 코코아는 마시지 않은 채 그냥 두고 자기 머리에 총을 쏜다. 모든 게 멋지게 맞아떨어지는군그래."
존 르 카레의 데뷰작. 스마일리의 등장 역시 당연히 처음입니다.
첩보 조직과 첩보원들이 등장하고 관련된 사건이 등장하지만, 전형적인 첩보, 스파이 소설은 아닙니다. 첩보 기관은 사건의 동기를 설명하는데 이용될 뿐, 전반적인 전개는 전형적인 범죄 소설에 가깝습니다. 전개는 평범한 범죄, 수사 소설과 유사하며 스마일리도 첩보원이 아니라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으로서의 활약만 선보이거든요. 심지어 파트너격인 멘델은 경찰이고요.
그러나 범죄, 수사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수사가 단순히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에 불과한 탓입니다. 예컨데 1. 불법 렌트카 업자 스카의 증언으로 익명의 대여인의 존재를 알아낸다, --> 2. 패넌 부인 엘자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면서 그녀가 매주 극장에서 수상한 남자에게 악보 가방을 전해주었다는걸 알아낸다. --> 3. 익명의 대여인 전화번호의 주인인 동독 사절단에 고용된 문트가 엘자와 만난 남자라는걸 알아낸다. 는 식입니다. 이렇게 수사할 때마다 한 발자욱씩 다음 단계로 나아가 진상에 도달하기 때문에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딱 한 번 뿐이었던 엘자와의 만남, 그리고 스카의 증언을 들은 것만으로 동독 사절단이 관련되어 있다는 진상을 어느정도 눈치챌 정도에요.
첩보, 스파이 소설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점수를 줄 부분은 없습니다. 비중이 작을 뿐만 아니라, 스카를 통해 동독 정보원이기도 한 사절단 전화번호가 노출되는 등 스파이 소설에서 기대해봄직한 정교함과는 거리가 너무 멀거든요.
메인 빌런이라 할 수 있는 디터에 대한 묘사도 많은 공을 들였지만, 좋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소아마비로 장애가 있는 디터가 엘자를 죽이고 멘델까지 쓰러트린다는건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런 디터를 평범한 중년 남성에 불과한 스마일리가 죽인다는 결말도 억지스러웠고요.
그래도 딱 한 가지, 페넌이 아니라 엘자가 동독 정보원이었다는 진상만큼은 괜찮았습니다. 덕분에 범인 문트가 가장 위험한 엘자를 죽이지 않고 급하게 귀국했던 기묘한 행동, 그리고 페넌이 기밀 정보 대신 쓸데없는 정보만 수집했던 이유가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모닝콜도 페넌이 아내를 고발하기 위한 핑계거리로 신청했다고 추리하는데 꽤 그럴싸했어요.
엘자가 정보를 전달하는 아날로그적인 방식 - 서로 같은 가방을 극장 휴대품 보관소에 맡긴 뒤, 휴대품 보관증을 바꿔 가져감 - 도 깔끔해서 좋았습니다.
그 밖에도 은퇴를 앞 둔 퇴물 스마일리에 대한 묘사, 스마일라가 회원으로 있는 클럽에 대한 설명, 스마일리와 전처 앤과의 관계 등 시리즈 팬이라면 볼거리는 제법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기대했던, 국제적인 음모가 등장하는 정통 스파이 소설은 아니었고, 그렇게 재미있다고 보기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거장의 작품이지만 확실히 데뷰작의 한계가 느껴지네요.
그러나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기대했던, 국제적인 음모가 등장하는 정통 스파이 소설은 아니었고, 그렇게 재미있다고 보기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거장의 작품이지만 확실히 데뷰작의 한계가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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