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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4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 박병욱 : 별점 3점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 6점
박병욱 지음/굿플러스북

유명한 작품, 작가에 대해 소개한 뒤 그와 관련된 특허, 지식 재산권 등에 대해 알려주는 인문학 서적. 모두 20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허와 지식 재산권을 유명한 미술 작품과 작가를 통해서 소개되도록 유도하는 구성은 그럴듯합니다. 어려운 길을 조금이나마 쉽게 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 주니까요. 하지만 작품과 작가에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억지스러운 항목이 더 많았습니다. 거미와 거미 관련 신화에서 시작해서 큰 거미 조각상인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마망으로 이어지다가 작품이 위치한 도시 빌바오에 대한 소개, 여기서 스파이더맨 웹 슈터 특허 이야기로 넘어가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과 빌바오, 그리고 스파이더맨'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특허 이야기는 세 페이지 정도 분량에 그쳐서 책 취지에도 맞지 않고요. 고흐 이야기를 하다가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이 뿌리는 씨는 밀 씨일 거라고 한 뒤 몬산토의 종자 분쟁 이야기로 넘어가는 '고흐, 밀레, 그리고 몬산토와 권리 소진', 샤갈에 대해 한참 소개하다가 그의 대표작 <생일>에서 생일 노래 분쟁으로 넘어가는 '마르크 샤갈의 <생일>과 Happy Birthday to You' 등 대부분의 항목이 그러합니다.
단순히 지식 재산에 관련된 항목을 그렸기 때문에 소개된 항목들도 많아요. '앤디 워홀의 '5'와 지식재산 관리'에서 앤디 워홀 작품은 콜라를 소재로 한 그림이 필요해서 소개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작품과 현대 팝아트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콜라 지식 재산 관련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지요.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비오는 날, 파리 거리>에 돌로 포장된 도로가 그려져 있다고 해서 도로 포장 특허 이야기를 끌고 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관계없는 특허가 소개된 경우도 있습니다. '루벤스의 <촛불을 든 노인과 소년>과 특허 소송을 할 수 있는 자격'은 뜬금없음의 절정입니다. 바로크 양식과 명암 대비 효과에서 촛불 집회로, 그리고 LED 촛불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브 클라인의 IKB와 색채 상표'의 경우는 색깔도 상표 출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다루는데, 이브 클라인은 IKB의 제조법을 출원한거라 성격이 전혀 다르고요. 이에 비하면 렘브란트의 자화상에서 시작해서 셀카봉 특허 소개로 이어지는건 기발해서 마음에 듭니다. 참고로, 셀카봉은 미놀타의 기술자 우에다 히로시가 만들었다고 하네요. 무려 1984년에 출원했답니다. 기술이 아이디어를 따라오지 못한 좋은 예입니다. 돈을 번 사람은 따로 있다니까요.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은 부분도 많습니다. 튜브 물감의 발견이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건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통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야외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라지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튜브 물감의 초창기 제품과 이전의 돼지 방광 물감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던건 수확입니다. 도판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확인이 가능한 덕분입니다. 재미있는건 튜브 물감이 먼저였고, 튜브형 치약은 무려 30년 뒤에 나왔다는 사실이지요. 아마 지금처럼 치아 관리가 중요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라 짐작됩니다. 또 튜브 물감의 특허권자 존 랜드가 튜브형 치약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게 대박이었어요. 튜브형 치약으로 포스터가 특허를 받기는 했지만, 이는 특허가 독점권이 아니라서 가능했습니다. 즉, 존 랜드의 특허를 침해한게 맞다는겁니다. 존 랜드가 특허 출원당시 튜브형 용기에 담기는걸 '물감'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유체'라고 명기했던 덕분인데, 앞으로 특허를 출원할 때 유념해야겠습니다.

코카-콜라 특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은데, 영업비밀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네요. 2006년 코카-콜라의 라이벌인 펩시콜라는 코카-콜라의 직원으로부터 코카-콜라의 레시피를 수백만 달러에 팔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안을 받은 펩시콜라는 오히려 이러한 불법행위를 코카-콜라 측에 알려 주었고, 제안을 한 코카-콜라 고위 임원의 비서 등 직원 3명은 150만 달러를 받으려고 나왔다가 FBI에 의해 체포된 뒤 영업비밀을 훔친 죄로 8년 형을 선고 받았다고 하네요. 또 콜라의 상표권과 관련한 소송을 살펴보면, 1988년 코카-콜라는 라이벌인 펩시콜라와 캐나다에서 소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코카-콜라가 사용하는 필기체와 동일한 "Cola" 글씨를 펩시콜라가 사용했기 때문이지요. “Cola"는 일반적으로 청량음료인 콜라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인데, 당시 캐나다 법원은 이러한 일반명사라도 코카-콜라가 사용하고 등록한 글씨체를 똑같이 모방하여 사용하면, 일반 소비자가 펩시콜라를 코카-콜라로 혼동할 수 있으므로 상표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반명사인 "Cola"만으로는 상표로 등록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나 "Coca-Cola"는 단순히 특정한 제품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인식되지 않고, 소비자의 입장에서 다른 콜라와 제품의 출처를 구별할 수 있는 식별력이 있으므로 상표로서 등록이 가능했던 겁니다.

생일 축하 노래는 큰 돈이 오간게 핵심인데, 최초 저작권 등록을 거쳐 1988년에 워너/채플 뮤직이 저작권자 써미 컴퍼니를 2,5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저작권이 이전되었는데, 인수 당시 저작권 평가액은 500만 달러였습니다. "Happy Birthday to You”는 1935년 미국에서 저작권 등록이 되었으므로, 등록된 때로부터 95년이 지난 2030년까지 저작권이 유효하고요. 워너/채플 뮤직은 2010년 이 노래를 한번 연주할 때마다 700달러의 로열티를 받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이 노래로 워너 뮤직이 벌어들인 저작권료는 5,000만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어 역사상 가장 많은 저작권료를 번 노래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서, '7급 공무원'에서 남자 주인공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위해 지불한 저작권 사용료는 무려 12,000 달러였다고 합니다. 이거 참 부럽네요.
 
발명의 실험을 위해 공개되었던 도로 포장 특허 소송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발명이 공지되기는 했지만 예외적인 상황이라 특허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선출원주의와 선발명주의의 차이도 잘 알 수 있었고요

항상 궁금했던,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미리 머릿 속으로 발명한 뒤 출원한 경우?'에 대한 사례가 많았던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바코드 특허가 대표적으로, 바코드가 특허 출원된 후 보호 기간이 만료될 때 까지 스캐너 등이 개발되지 못해 사업화하여 수익을 올릴 수 없었다는군요. TV와 전자책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이런 발명을 했다면 주변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출원을 미루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꿀팁도 전해줍니다. 일단 출원하고, 개량과 주변 기술에 대한 특허를 지속적으로 취득하면 된다네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또 바코드 특허를 통해 현대 특허 괴물의 모태인 '레멜슨'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레멜슨은 기술적 문제 등으로 상업적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점을 간파하여 주변 기술이 성숙될 때까지 등록을 미루다가 마지막에 등록한 뒤 침해 소송을 벌인 인물이라지요. 세상에는 정말 머리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상표권에 대한 소개도 충실합니다. 지명이나 일반적인 명칭 - 랩 - 같이 식별력이 없는 상표는 당연히 누구도 독점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천안 호두과자'가 아마 등록되지 못했었지요? 그러나 '오랜 기간동안 어느 하나의 사업자가 적극적으로 상표를 사용하여 그 상표를 보면 누가 만들어 파는 제품인지 소비자의 입장에서 현저하게 인식되어 혼동할 우려가 없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상표 등록이 가능한데 대표적인게 우리나라는 K2, 유럽은 4 핑거 킷캣입니다. 색채만의 상표도 마찬가지로 아래의 요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1. 타인의 상품과 구분되는 식별력을 가질 것.
  2. 색깔 자체에 기능성이 있으면 안됨. 예를 들어 분홍색 붕대는 피부색과 비슷한 기능성이 있어서 출원 불가.
이는 패션업계에 사례가 많더라고요. 크리스찬 루부탱의 빨간 하이힐 밑창, 그리고 티파니의 푸른 상자와 쇼핑백이 대표적입니다.

건축물도 지식 재산권으로 보호될 수 있을지도 평소에 궁금했었는데, 당연하지만 기존 건축과 구별되는 독창적인 건물의 경우만 인정된다고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즉, 일률적인 아파트는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보호되려면 어느 정도 예술성이 요구된다고도 하니까요.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표현된 창작물에만 인정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라는데, 이를 특허 기관에서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또 저작권은 '아이디어'를 보호하는게 아니라 '표현;을 보호한다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디어나 컨셉이 유사해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이 다르면 저작권을 침해한게 아니라는데,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애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정량적으로, 수치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정보이니까요.

이런 내용들을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다는건 분명한 장점입니다. 특허, 지식 재산권 이야기만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만큼, 구태여 미술 작품을 통해 소개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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