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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8

[Y]의 비극 - 앤솔로지 : 별점 2.5점

엘러리 퀸의 "Y의 비극"을 테마로 4명의 추리작가에게 의뢰한 중편을 모아 출간한 앤솔러지.
작가의 구성이 꽤나 화려한 것이 먼저 눈에 띕니다. 첫 작품 "어떤 Y의 비극"은 아리스가와 아리스, 두번째 작품인 "다이잉 메시지 Y", 이 작품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지명도는 있는 듯한 (건축탐정 사쿠라이 쿄스케 시리즈가 대표작인 듯 하군요) 시노다 마유미, 세번째 작품 "Y의 비극 - Y가 늘어나다"는 니카이도 레이토, 마지막 네번째 작품은 "이콜 Y의 비극"으로 노리츠키 린타로의 작품입니다. 각 100여페이지 분량의 중편들이죠.
일본 여행에서 구입한 책중 하나인데 우연히 헌책방을 지나다가 발견해서 작가의 면면이 꽤 믿음직하고 제목과 기획 의도도 마음에 들어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록작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Y"라는 글자가 포함된 다이잉 메시지 해독이 중요 트릭이라는 것, 그리고 엘러리 퀸의 원저 느낌을 많이 가져 오려고 노력한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니카이도 레이토의 쓰레기를 제외하면 다 얼추 읽을만하며 정통 퍼즐 미스터리로서 "트릭"을 푼다는 재미도 제법 있는 편이었어요.
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히무라-아리스 컴비, 니카이도 레이토의 작품에 등장하는 명탐정 죠우카 박사와 예술연구 그룹 "뮤즈"의 멤버들, 노리츠키 린타로의 노리츠키 경시와 아들 노리츠키 린타로 컴비 등 유명 캐릭터와 다양한 작가들의 새로운 작풍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나름 괜찮은 수확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결론적으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고전걸작으로 명망높은 "Y의 비극"이기에 후배작가들이 존경을 표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욕심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작품의 수준은 아쉽게도 부족기 때문입니다. "이콜 Y의 비극"을 제외한다면 딱히 평가할 부분도 많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니카이도 레이토의 작품이 용서가 불가능한 수준이라 점수를 너무 많이 깎아먹기도 하고요.
올해 들어 두번째 읽은 책인데 솔직히 약간은 실망스러웠어요. 뭐 원서를 직접 읽어 보았다는데 의미를 둘까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어떤 Y의 비극 - 아리스가와 아리스
인디 록 밴드 "유메노 도구라 마구로"의 기타리스트가 자신의 기타에 맞아 살해당한다. 그가 남긴 것은 벽에 피로 쓴 "Y"라는 글자. 히무라와 아리스 컴비가 다이잉 메시지의 해독에 도전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으로 원저의 느낌을 잘 살린 여러 설정 (기타에 의한 죽음이라던가)과 꽤 잘 짜여진 구성은 마음에 들며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긴 했습니다.
허나 결정적 부분에서 일본인만이 이해가능한 요소가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드네요. 그 부분 때문에 트릭 자체를 수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그냥 평균적인 수준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

2. "다이잉 메시지 Y' - 시노다 마유미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 인터넷 채팅으로 사귄 "EMI"라는 아이의 죽음을 목격했었다. 그녀는 "Y가 죽였다"라는 글귀를 남기고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고 결국 자살한 것으로 처리 되었다. 그리고 2년후, 나는 우연히 신문에서 그 죽음의 장소였던 학교 건물이 철거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그곳을 찾아볼 결심을 하는데....
시노다 마유미라는 여성 작가의 60여페이지 정도의, 단편보다는 약간 길고 중편보다는 약간 짧은 길이의 작품.
굉장히 여성적이라는 느낌의 작품으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구성도 좋았지만 작품 내용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연극에 대한 설정이 치밀하고 괜찮았습니다. 마지막에 진상이 밝혀지며 드러나는 반전도 좋았고요. 
추리적으로 그다지 특기할 것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3. "Y의 비극 - Y가 늘어나다" - 니카이도 레이토
예술 연구 그룹 "뮤즈"의 멤버들은 어느날 핵공격에 대비한 안전시설인 핵 셸터의 안에 갇히고 부장인 마리오가 닫힌 밀실에서 "Y"라는 글자 하나만 남긴채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완벽한 밀실에서의 사건 해결에 명탐정 죠우카 박사가 도전한다!
이름은 몇번 들어본 작가인 니카이도 레이토의 작품. 
작품은 처음 접해보았는데 정말이지 너무하더군요. 이른바 "메타 미스터리"라는 이름하에 주인공들이 독자에게 말을 거는 독특한 전개를 보여준다는 식인데 이러한 구성에 너무 기댄 탓인지 다른 것들은 모두 수준 이하입니다. 트릭도 황당무계할 뿐더러 다이잉 메시지의 의미조차 반은 장난으로 여겨질 정도의 치졸한 작품으로 모든 면에서 그다지 논할 것이 없는 쓰레기였어요. 별점은 1점입니다.

4. "이콜 Y의 비극" - 노리츠키 린타로
세타가야의 맨션에서 아다치 아카네라는 여성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물품 중에 메모지에 볼펜으로 쓴 "=Y"라는 기호의 흔적이 발견되며 유력한 용의자로 피해자 언니의 남편과 그 불륜상대가 지목되지만 그들의 알리바이는 확실한 상태. 사건이 답보상태에 머무르게 되자 사건을 맡은 노리츠키 경시는 자신의 아들 린타로에게 사건의 해결을 요청한다.
신본격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인 노리츠키 린타로의 작품. 그의 유명한 시리즈 캐릭터 노리츠키 린타로가 등장하는 본격물입니다. 
일단 "다이잉 메시지"의 의미가 확실하고 그 내용을 작품속에서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구성함으로써 본격 퍼즐 트릭물로서 충분히 제 값을 하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일본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살아있는 트릭이긴 하지만 상당히 설득력있는 편이라 꽤 수긍할만 했어요. 앞부분에 등장하는 전혀 상관없었던 짤막한 에피소드가 본편에서 중요한 장치가 되는 구성도 좋았고요.
그러나 다른 부분들, 예를 들자면 범인의 동기라던가 하는 부분에서 빈약함이 많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 약점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앤솔로지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네요. 저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시간만 허락된다면 번역의 욕심도 조금 나긴 하는데 너무 일본적인 트릭일 수도 있어서 약간 고민 되긴 하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2011/05/08

그린살인사건 - S.S 반 다인 / 안동림 : 별점 2점

그린살인사건 - 4점
S.S. 반 다인 지음, 안동림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린 저택에 살고 있는 그린 미망인과 다섯 자녀는 서로 적개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의 유언 —"25년 동안 그린 저택에 살아야 상속권을 가질 수 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거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큰 딸 줄리아와 막내이자 양녀인 에이더가 저격당했고, 줄리아는 사망했다. 단순 강도 사건인줄 알았지만 큰아들 체스터가 지방검사 매컴에게 사건 수사를 의뢰하면서 파일로 번스까지 개입한 수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체스터마저 저격당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저는 1차 세계대전부터 2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고전 황금기(Golden Age) 추리소설을 가장 좋아합니다. 뛰어난 캐릭터성을 지닌 탐정들과 격조 높은 트릭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유럽 작품 한정입니다. 동시기 미국 장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당대를 대표하는 미국 작가 반 다인과, 시기는 조금 늦지만 엘러리 퀸의 작품들이 대표적으로 대체로 장황한 대사와 잘난 척이 넘치고, 불필요하게 이야기가 길어서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도 이런 제 취향 탓에 한동안 손에 잡지 않았는데, 이번 연휴 기간 동안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탐정계에서도 손꼽히는 잘난 척 대마왕인 파일로 번스의 장황한 인용문과 허영은 짜증날 정도로 넘쳐납니다. 번스의 대사들에 나오는 인용문의 주석들만 따로 페이지가 할애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묘사는 번스가 박식하다는 것 외에는 독자에게 전하는 정보가 전무합니다. 예를 들자면, 세 번째 사건 직후 번스는 모두 앞에서 이렇게 떠벌입니다.

"이 일련의 살인의 배후에 있는 것, 그것은 가차 없는 아집이며 끝장 모를 타산입니다. 우리가 겨누고 있는 상대는 지칠 줄 모르는 '고정관념 (idee fixe)'입니다. 광기 어린 악마주의의 논리입니다. 또한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기상천외의 로맨틱한 정신 때문에 도착된 상상력, 이것이 지금 우리가 대결하고 있는 상대인 것입니다. 작열하는 불을 태우는 자아 중심주의, 환각 속에서 인식되는 낙관주의,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대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런 대사만 좀 쳐냈더라도 보다 짧고 임팩트 있는 작품이 되었을 텐데 말이죠. 그나마 마지막에 '사진과 회화의 차이'를 논하면서, 세세한 사건의 전체 구도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는 꽤 그럴싸하긴 한데.... 이 역시도 장황한 대사에 질린 매컴이 단 세 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회화와 사진은 서로 다르네. 그림에 있는 대상에는 디자인이 있고, 사진에 있는 대상에는 디자인이 없네. 그 디자인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많이 연구해야 한다는 거지."

추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습니다. 동기가 너무나 확실해서 범인을 특정하기 쉽지만 증거가 아무것도 없는 탓입니다. 결국 범행 현장을 덮치지 못했더라면 범인을 검거할 방법 자체가 없습니다. 물증이 하나도 없는 완전범죄! 그래서 마지막 번스의 행동은 오히려 범인의 예술을 망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차라리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에이더의 승리로 작품을 끝맺었더라면, 이 작품은 추리소설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고전 황금기 본격 추리소설답지 않게 트릭이 별로 없다는 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줄리아·에이더 저격 사건, 체스터 살인 사건, 렉스 살인 사건, 에이더 독살 미수, 그린 부인 독살 사건의 총 다섯 건의 범죄 중에서 트릭이 사용된 것은 렉스 살인 사건 단 한 건 뿐이거든요. 트릭 자체의 수준은 나쁘지 않지만, 이 정도 규모의 대작 장편에서 활용하기에는 밀도가 부족합니다.

그린 부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의학적 이론과 결합된 작전은 흥미로웠지만, 이후의 전개가 이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시체만 없었어도 가능한 작전이었기에, 차라리 방화를 일으킬 생각은 왜 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만약 앞서 말한 완전범죄 결말이었다면 3.5점 정도는 줬을 텐데,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부실하니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네요. 제게 반 다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더해준 작품이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큰 특징은 엘러리 퀸의 "Y의 비극"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겁니다. 비정상적인 그린 가문의 어머니와 형제·자매에 대한 설정과 묘사는 "Y의 비극"의 해터 가문과 별반 다를 게 없으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 역시 판박이니까요. 이 작품이 1928년, "Y의 비극"이 1932년에 발표되었으니 원전으로서의 가치는 이 작품이 더 높겠지만, 앞서 말한 추리적인 문제와 트릭의 빈약함 때문에 정작 원전으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듯합니다.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네요.

2004/01/14

Y의 비극 - 엘러리 퀸 / 강호걸 : 별점 4점

Y의 비극 - 8점 엘러리 퀸 지음, 강호걸 옮김/해문출판사
엘러리 퀸의 또 다른 탐정 드루리 레인 시리즈의 대표작이자 세계 3대 추리소설로 알려진 그 작품입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어느날, 뉴욕만의 한적한 바다에서 처참한 시체가 발견됩니다. 조사결과 밝혀진 시체의 정체는 미치광이 해터 집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미치광이 모자”의 패러디)으로 알려진 부호 해터 가문의 가장인 요크 해터로 방수 지갑안에 “나는 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자살한다”라는 짤막한 유서도 있었죠. 그리고 몇 주 후, 해터 집안의 딸인 벙어리이자 장님이고 귀머거리인 루이자 해터의 독살 미수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은 수사에 나섭니다. 내부의 인물 누구든 동기가 있고, 독을 넣을 수 있었던 상태.
어느날 밤, 실질적인 해터 가문의 주인인 에밀리 헤터 여사의 살인과 루이자 독살 미수가 다시 발생하고 드루리 레인은 친구 샘 경감의 요청으로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됩니다...

저는 사실 X,Y,Z 시리즈 중에서 Z부터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Z”에 굉장히 실망했던 터라 이 작품에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읽다보니, 과연 엘러리 퀸!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위의 줄거리 처럼 일단 콩가루 부잣집의 살인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악과 음모의 상징 같은 콩가루 저택에서 살인이 달랑 한번 (두번이긴 하지만 두번째는 응징..에 가까우니) 밖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 생각인데 일본풍 (특히 “아마기 세이마루” 풍) 이라면 거의 전가족이 몰살당하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긴 장편을 흥미진진하게 끌어나가고 있으며 특유의 “독자와의 대결”도 공정한, 정통 추리소설로서의 미덕을 잃지 않습니다. 복선이나 트릭 역시 큰 줄기에서 파생된, 완벽한 형태로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요.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범인역이 너무 쉽게 드러난다는 것이겠죠. 발표당시에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범인이었겠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 충격이 많이 퇴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단서 자체가 너무 상식 가능한 선인 것 같습니다. 중간 부분의 루이자의 증언으로 거의 밝혀지거든요… 사실 이 이후의 후반부는 레인이 범죄의 동기나 실제로 이미 죽어버린 “실체”를 찾기 위한 활동이지 범인을 드러나게 하는 트릭면에서는 별 비중 없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분명한 정보를 두루뭉실하게 표현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삽화나 사진 등으로 직접 눈으로 보게된다면 보다 쉽게 진범을 알아낼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말장난 같은 현장 묘사에 의한 트릭이 많아서 공감하기 쉽지 않았어요. 번역본이라 더 심하게 느껴진것 같기는 한데 특히 “만돌린”을 흉기로 쓴 타당성에 관한 묘사는 영문학적인 지식 없이는, 그래서 국내 독자에게는 조금 이해 불가능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또 탐정인 드루리 레인 역시 불만스러웠어요. 원래 세익스피어극의 명배우 출신으로 부유하다는 설정까지는 이해해도 왜 귀머거리라는 설정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귀머거리라서 더 추리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당시, 추리소설 황금기의 명탐정들이 워낙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많았던 탓에 나름 색다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인 것은 알겠지만 단순한 설정에 불과하여 반세기 이상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목 역시도 불만스럽습니다. 말장난 같은데 이 “Y”라는 제목의 의미가 전~혀! 거~의! 내용과 상관없는 부분이거든요. 차라리 단편 “미친 티 파티” 처럼 아예 앨리스를 가져다 쓴 제목을 붙이던가…. 일부러 X,Y,Z로 글자를 맞추고 싶어한 의도는 알겠지만 너무 억지로 갖다 붙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허나 이러한 단점들은 소소할 뿐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정통파 고전의 품격을 갖춘 명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른바 “세계 3대 추리소설” 중 하나라는 명성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번역도 괜찮은만큼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PS : 전 이렇게 순위 매기는 것, 싫어하지는 않지만 너무 객관적 근거 없는 "세계 3대 어쩌구..."하는 말에는 거부감이 있네요. 사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나 “환상의 여인”은 정통파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거리가 있지 않나요?

2005/04/13

비뚤어진 집 - 애거서 크리스티 / 정성희 : 별점 3점

비뚤어진 집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해문출판사

영국의 외교관 찰스는 이집트에서 소피아 레오니데스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전쟁과 업무로 인한 해외 파견으로 잠시 헤어지게 된다. 헤어지기전 사랑을 고백하며 2년뒤에 영국으로 돌아와서 그녀에게 청혼할 것을 약속한다.
2년뒤 영국으로 돌아온 찰스는 신문을 통해 소피아의 할아버지이자 입지전적인 거부 애리스티드의 사망기사를 읽고 소피아를 만나나 그녀의 할아버지가 사실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자신의 아버지인 런던 경시청 부총감과 함께 레오니데스 저택 -일명 "비뚤어진 집"- 으로 찾아가 사건에 뛰어드는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장편으로 포와로나 마플 시리즈가 아닌 작품입니다. 인터넷 헌책방 "신고서점"에서 이번에 해문 애거서 시리즈가 다량 풀렸는데, "애거서 크리스트 스스로 뽑은 베스트 10" 중 가지고 있지 않거나 기억이 흐릿해서 구입한 작품 중 한권입니다. ( 베스트 10 작품목록 :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화요일 클럽의 살인 / 오리엔트 특급살인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움직이는 손가락 / 0시를 향하여 / 비뚤어진 집 / 예고살인 / 누명 / 끝없는 밤 )

부유한, 카리스마 넘치는 노인이 지배하는 약간씩 이상한 일가족과 그들이 거주하는 희한한 저택, 그리고 이 일가족 중에 단 한명있는 천사같은 아가씨와의 멜로 드라마까지 등장하는 설정인데 일본의 추리소설에서 흔히 보던 것들이죠? 그러나 싸구려같은 변태스럽고 엽기스러운 묘사 없이 캐릭터들의 확실한 성격 부여와 심리묘사를 통해 점진적인 공포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이 역시 여사님 답더군요.
또한 추리소설 황금기의 걸작답게 독자에게 제공되는 단서도 공정한 편이며 결말부분의 임팩트도 상당합니다. 탐정없이 "화자" 캐릭터에 의한 전개만 보여주는 것도 무척 색다른 시도라 생각되고요.
무엇보다도 전체적으로 "Y의 비극"과 상당히 유사한 설정과 전개라는 점에서 비교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Y의 비극" 쪽이 10여년 먼저 발표되었으니 여사님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내용의 깔끔함은 이 작품을, 추리적인 요소의 완벽함으로는 "Y의 비극"쪽을 더 쳐주고 싶네요. 뭐 그래도 두 작품 모두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과 같은 화자 중심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관찰자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에 논리적인 전개에 의한 지적 쾌감을 느끼기에는 약간 부족하다 생각되며 트릭과 동기를 특정할 수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 정통 본격물을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고 보이네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읽다보니 예전에 읽었었던 것이라 중반 이후에는 조금 시시해졌다는 것도 조금 아쉬웠고요. 추리 소설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가 범인을 나름대로 상상하고 추리해 보는 것인데 큰 재미 하나가 빠져버려 약간 맥이 풀리긴 했습니다...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어쨌거나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2005/08/12

동서(東西)미스터리 베스트 100

일본 추리작가협회가 1,315인의 앙케이트로 뽑은 동서 미스터리 베스트 100입니다. 요새 통 책 읽을 시간이 없어 이런 글로 땜빵하게 되네요.
일본편과 해외편, 즉 동-서 리스트가 따로 있는데 해외편만 옮겨 보았습니다. 국내 출간된 작품은 파란색으로 표시했는데, 대충 봐도 2/3은 번역되어 나온 듯 하군요. 최근에 동서 추리 문고가 복간된 탓에 고전이 많이 소개된 탓이 크지만 어쨌건 반가운 일입니다. 절판된 책도 포함시켰기 때문에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책도 있기는 하지만요.

하여튼 이 리스트에 실린 작품들은 제가 읽어본 바로는 대체로 수긍할 만한 걸작들이 대부분이라 읽지 못한 작품이 있다면 차분히 손 대 보아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너무 고전이라 지금 읽기에 낡고 지루한 작품도 있지만 다 나름의 맛이 있는 것이니까요. 국내 출간작은 볼드체, 읽은건 적색 볼드체입니다. 제 블로그에 리뷰가 있는 작품들은 링크를 걸어 두었고요. 내용이 궁금하시면 링크를 통해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원문에 가시면 일본 편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출처는 역시 "Mystery Best"입니다. 원문은 여기서 확인하세요.

그나저나... 1위가 "Y의 비극" 이네요. 2위는 "환상의 여인" 이고.... 약간 의외이긴 합니다. 하지만 제일 의외는 역시 5위의 "독수리는 날개치며 내리다". 제가 보기에는 "추리" 소설은 아니라는 생각인데 말이죠. 일본인들의 독일군 선호 취향이 반영된건가.

[해외편]

1. Y의 비극 - 엘러리 퀸
2. 환상의 여인 - 윌리엄 아이리쉬
3. 기나긴 이별 - 레이몬드 챈들러
4.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아가사 크리스티
5. 독수리는 날개치며 내리다 - 잭 히긴스

6. 심야플러스1 - 개빈 라이얼
7. 통 - 크로프트
8.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9. 승정(비숍)살인사건 - 반 다인
10. 셜록 홈즈의 모험 - 코난 도일

11. 여왕폐하 율리시즈 호 - 알리스테어 맥클린
12. 쟈칼의 날 - 프레드릭 포사이스

13. 안녕 내사랑 - 레이몬드 챈들러
14. 화형법정 - 딕슨 카

15. 섀도우 81 - 루시안 네하임
16. 노란방의 비밀 - 가스통 르루
17. 죽음의 키스 - 아이라 레빈

18. 빨간머리 레드메인즈 - 이든 필포츠
19. 흥분 - 딕 프란시스

19. 말타의 매 - 더쉴 해미트
21. 높은 바위 - 데스몬드 배글리
22. 그린 살인사건 - 반 다인
23. 지푸라기 여자 - 카트리느 아를레
24. 소름 - 로스 맥도널드
25. 브라운신부의 동심 - 체스터튼
26. 세 개의 관 - 딕슨 카

27. X의 비극 - 엘러리 퀸
28. 첫가을 - 로버트 B 파커 ("약속의 땅"이라는 작품이 출간되어 있는데 이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29. 피의 수확 - 더쉴 해미트
30. 웃는 경관 - 바르 & 슈발

31.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 엘러리 퀸
32. 암살자 - 로버트 러들럼 (많은 작품이 소개된 작가인데 역시 이 작품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33.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 - 죤 르 카레
34.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 아가사 크리스티

35. 유다의 창 - 카터 딕슨
36. 모르그가의 살인 - 에드거 알란 포우
37. 당신을 닮은 사람 - 로얄드 달
38. はなれわざ Tour de Force - 크리스티나 브랜드
39. 사라진 소녀 - 콜린 덱스터
40. 황금벌레 - 에드거 알란 포우
41. 813 - 모리스 르블랑

41. 사라진 남자 - B.프리맨틀
43. 빅 슬립 - 레이몬드 챈들러
44. 진리는 시간의 딸 - 죠세핀 테이

45. 바스커빌가의 개 - 코난 도일
46. 독 쵸콜릿 사건 - 안토니 버클리

46. 상복의 랑데뷰 - 코넬 울리치
48. 오른손 - 딕 프란시스
49. 스위트 홈 살인사건 - 크레이그 라이스
49. 도버 4 / 절단 - 죠이스 포터
51. 월장석 - 윌키 콜린스
52. 백만달러를 돌려줘! (한푼도 더도말고 덜도말고) - 제프리 아처
53. 재앙의 거리 - 엘러리 퀸

54. 위철리 가의 여인 - 로스 맥도널드
54. 그리스 관의 비밀 - 엘러리 퀸

56.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 - 제임스 M 케인

56. 탈출항로 - 잭 히긴스 (어떤 작품인지 역시 잘 몰라서....)
58. 야수는 죽어야 한다 - 니콜라스 블레이크
59. 더욱더 위험한 게임 (가장 위대한 게임) - 개빈 라이얼
60. 죽어가는 자를 위한 기도 - 잭 히긴스
61. 흑거미클럽 - 아이작 아시모프
61. 시행착오 - 안토니 버클리 콕스

63. 휴먼 파이터 - 그레이엄 그린
64. 호그 연속살인 - 윌리엄 디 안드레아
64. 경관혐오 - 에드 멕베인

64. 도둑맞은 편지 - 에드거 알란 포우
67. 신데렐라의 함정 -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68. 레베카 - 다프네 뒤 모리에
68.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 딕슨 카
70. 악마의 선택 - 프레드릭 포사이스
71. 타이타닉호를 인양하라 - 클라이브 커슬러
71. 디미트리오스의 관 - 에릭 앰블러

73. 大穴 Odds Against  - 딕 프란시스
74. 마천루의 몸값 - 리쳐드 제섭
74. 어둠 속의 목소리 - 이든 필포츠
74. 트렌트 최후의 사건 - E.C 벤틀리
77. 복수법정 - 헨리 덴커

78. 이별을 알리러 온 남자 - 브라이언 프리맨틀
79. 보이지 않는 그린 - 죤 슬라텍
80. 나바론의 요새 - 알리스테어 맥클린
81. A-10 탈환팀 출동하라 - S.L 톰슨
82. 주정뱅이 탐정가를 가다 - 커트 캐년
83. 사나이의 목 - 죠르쥬 시므농
84. 어센덴 - 서머셋 모옴

85. 바늘구멍 - 켄 폴레트
86. 9마일은 너무 멀다 - 해리 케멜먼

86. 빨강집의 수수께끼 - A.A 밀른

88. 유리열쇠 - 더쉴 해미트
89. 리리안과 악당들 - 토니 켄릭
90. 네덜란드 구두의 비밀 - 엘러리 퀸
90. 제제벨의 죽음 - 크리스티나 브랜드
92. 이와 손톱 - 빌 S 벨린져
93. 불타는 사나이 (크리시 1) - A.J 퀸넬
94. 피의 줄 - A.J 퀸넬 (크리시 시리즈가 아닐까요?)
94. 도중의 집 - 엘러리 퀸
94. 즐거운 장례식 - 에드먼드 크리스핀
97. 크로이든발 12시 30분 - F.W 크로포츠
97. 오뎃사 파일 - 프레드릭 포사이스
99. 제 1의 대죄 - 로렌스 샌더스

99. 酔いどれの誇り - 제임스 크램리

** 2006. 11.29 추가 : 읽은 것은 볼드체
** 2008. 04.21 추가 : 한 4편 정도 더 읽었네요.
** 2011.11.20 추가 : 이제 국내에 출간된 건 거의 다 읽은 것 같습니다.
** 2020.02.01 추가
** 2026.04.11 추가

2021/10/15

미스테리아 34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34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미스테리아는 주제가 흥미로울때만 가끔 읽곤 합니다. 34호는 일본 본격 추리 소설이 특집이라서 읽게 되었습니다. 나름 고전 본격물의 팬을 자부하고 있으니까요. 표지부터 마음에 들어요. "니가 범인이야!" 라는 느낌이니까요. 강렬합니다.

특집은 일본 본격물의 역사에서 시작합니다. 본격과 변격이라는 말의 유래, 그리고 본격이라는 말의 정의, 최초의 본격물에서 신본격, 그리고 근래 라이트 노벨류까지 이어지는 역사와 대표작, 대표 작가들이 소개되지요. 큰 흐름으로는 본격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고가 사부로에서 시작하여 에도가와 란포"D언덕의 살인사건", 하마오 시로의 "그 남자가 죽였을까", 요코미조 세이시"혼진 살인사건",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사회파 미스터리의 대 유행에 이은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아야쓰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니시자와 야스히코"일곱 번 죽은 남자", 모리 히로시"모든 것이 F가 된다"신본격 전국 시대를 넘어 우타노 쇼고"벛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식입니다. 

뒤로는 본격물이 일본에 받아들여진 당시 일본 추리 문단에 대한 상세 설명, 여러가지 유명 작품 속 트릭에 대한 소개, 점점 캐쥬얼화 되어가는 신본격 장르물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자료 조사도 탄탄하고, 담고 있는 내용도 풍성한 편이었어요.

두 번째 특집 기사 '체인질링'은 인간의 아이와 바꿔치기된 요정 아이에 관련된 민담을 분석하는데, 중세 유럽에서 왜 아이가 바뀐 것에 대한 전설이 만들어졌는지를 당시 역사적 배경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이가 기형일 수도 있고, 아이가 죽는 일이 다반사였던 탓이라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관련된 다른 전설, 우리 나라의 예도 들어서 설명해 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홍한별 번역가와 곽재식 작가의 옛 사건 탐구도 흥미로왔어요. 특히 명동 한복판에 일제 강점기 시절 빼돌리지 못했던 보물이 묻혀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도 손색없어 보였습니다. 레이철 쿠시너의 "마스 룸" 속 등장하는 요리들을 소개한 컬럼은 '추리 소설과 요리'에 대한 글을 써 온 저로서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고요. 요리들도 아주 신기하더군요.

그런데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본격물 관련 특집은, 이미 대충 알고 있던 내용들로 새로운 건 없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저도 쓸 수 있었을 기사였달까요? 물론 캐쥬얼화 되어가는 최근의 흐름은 잘 몰랐던 내용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쪽 작품들 찾아 읽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아서 몰랐던거에요.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가 있었던 기사는 아니었습니다. 

유성호 법의학자의 아동 학대 흔적에 대한 컬럼, 이은의 변호사의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속 법적 대응 방법 등 다른 기사, 컬럼들은 볼륨이 대체로 빈약합니다. 인터넷 검색 결과와 별다를게 없는 수준이에요. 반대로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 "포제서" 평론은 볼륭은 풍성했지만 글의 가독성이 너무 낮아서 지루했고요.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평론만 봐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어요. 이렇게 가독성이 낮은 글은 이외에도 많아서, 쉽게 읽히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짤막한 리뷰들 하나하나까지 모두요.

마지막에 수록된 3편의 단편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관심있는 특집이더라도 더 이상은 구매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은지, 홍한별, 곽재식의 컬럼과 논픽션 기사나 추후 단행본이 출간되면 구입해 볼 생각입니다.

수록 단편에 대한 짤막한 소개로 리뷰를 마칩니다.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콩알이를 지켜라!" 

자신이 창조해 낸 인기 동화책 콩알이가 인생의 전부인 일러스트레이터 지혜정의 남편 김진석 교수가 살해되었다. 범인은 제자 최은비였다. 진석이 그녀를 강간하려 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혜정은 은비를 꼬드겨 시체를 강원도 의천에 있는 별장에 유기하러 출발했다. 콩알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별장에는 진석의 변태 친구 한동철이 머무르고 있었고, 혜정은 동철마저 살해한 뒤 시체 두 구를 함께 유기해 버렸다.

듀나범죄 스릴러 단편인데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졸작입니다. 

우선 범죄에 대한 설득력이 너무 낮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쓰레기였다 한들, 피해자 아내가 남편을 죽인 살인자와 함께 시체 유기를 한다는걸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한 탓입니다. '콩알이'의 존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부족해서, 그다지 절박한 이유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혜정이 처음부터 한동철을 죽이려 했고, 이를 위해 앞서 시체 유기를 일부러 훤히 드러나게 시도했다는 식으로 범죄 계획을 정교하게 세우기라도 했다면, 범죄물로 볼 만한 여지가 있었을텐데 그렇지도 않고요.

전개도 혼란스럽습니다. 진석이 제자의 고백을 녹화하여 한동철과 공유하고, 성적인 대상으로 삼았다는 진상이 드러나는건 뜬금없었고, 이 때문에 한동철을 죽였다는 것도 급작스러워서 이해가 힘들었습니다. 애초에 진석은 여태 은비의 고백을 녹화해서 잘 쓰다가, 왜 갑자기 강간을 저지르려고 한걸까요? 문학하는 남자들을 모두 성범죄자로 단정짓는 설정도 황당하기 그지 없더군요.

듀나의 특기이자 장점인 기발한 설정이 빠져버리니, 뭐 하나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웃는 탐정" 

초월탐정 김재건과 미소년 조수 마곤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집주인 여사와 김재건 사이에 택배로 인해 발생한 트러블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엉망진창이에요. 마곤이 초능력자로 일종의 투명 인간이 되어 집주인 여사가 가지고 있던 김재건의 택배를 훔쳐내는게 이야기의 거의 전부인데, 마곤이 이 택배를 왜 훔쳐내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월탐정 어쩌구하는 김재건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경박하고 유치찬란한 김재건 묘사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초월 탐정' 이 뭘 뜻하는 별명인지 감도 오지 않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않는군요. 서두의 시점을 가지고 독자와 장난치는 부분은, '메타 미스터리' 운운했던 앤솔로지 "Y의 비극"에서 니카이도 레이토가 썼던 단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도 엄청난 졸작이었지요.

마곤이 할머니와 김재건 사이에 있었던 일을 추리하는 일상계 추리스러운 부분은 괜찮았지만, 다른 부분은 그저 그랬어요.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읽을 일은 없을 듯 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죽음의 세트장" 

배우 잭 하터가 영화 촬영용 세트장에서 살해당했다. 사건 당시 21번 방음 세트장 안에는 현장 제작자 조 캐츠키와 감독 샘 매스터퍼드 등 모두 열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1930년대를 무대로 하고 있는 단편인데 옛스러운 영화 촬영장 분위기를 상세하게 그려낸 묘사는 아주 좋았습니다. 잭 하터와 마리 플레밍, 두 주연 배우 간에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는 마지막 촬영 장면 묘사가 특히 그럴싸 했어요. 이 부분은 여배우를 연모하고 있었던 감독 샘의 살인 동기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기도 했는데, 잘 그려냈습니다.

'스크립터'가 탐정역을 소화한다는 설정도, 과연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 썼구나! 싶더군요. 스크립터는 씬마다 있는 오류를 잡아내기 위한 사람으로, 당연히 관찰력이 남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관찰력을 바탕으로, 일종의 닫힌 공간인 촬영 스튜디오에서 소거법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 과정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거의 대부분 목격 증언으로 소거되는 덕분이에요. 결국 조 캐츠키와 샘 매스터퍼드만 남는데, 발소리를 듣지 못해서 샘이 범인이라는게 드러납니다. 조 캐츠키의 발소리는 독특했고, 샘은 고무 장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서가 별다르게 제공되는건 없어서 본격물로 보기 힘들며, 추리도 일사천리라 의외성은 없습니다. 사실 샘이 범인이라는 스크립터의 추리는 증거가 명확하다고 볼 수 없어서, 경찰 수사가 추가로 필요한 부분이었다 생각되네요. 그래도 다른 단편들에 비하면, 최소한 읽을만한 수준의 추리물이기는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8/06/02

주간문춘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개정판

하우미스터리에 올라온 주간문춘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저도 예전에 소개했던 1986년 리스트의 신규 개정판입니다.

온라인 사이트에는 50개씩만 실려있는 듯 한데 리뷰를 남긴 작품 (링크), 리뷰는 없지만 읽은 작품 (붉은색)을 체크해 보았습니다. 일본 작품들 중에서는 국내 출간된 39편 중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은 "도구라 마구라". "흑사관 살인사건"과 얼마전 출간된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그리고 "모방범"과 "죽음의 샘"의 5편을 읽지 않았네요. 해외 작품은 국내 출간 44편 중 "밀레니엄 1", "본 컬렉터", "흥분"의 3편을 빼고는 다 읽어 보았고요. 와 대단하다! 8편만 더 읽으면 일단은 완전정복이니만큼 당분간은 이 리스트부터 정복해봐야 겠습니다. 딕 프랜시스의 "흥분"은 왜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 2013.02.18 수정 "죽음의 샘" 완독
  • 2013.02.24 수정 "흥분" 완독
  • 2013.03.02 수정 "본컬렉터" 완독
  • 2013.03.08 수정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완독
  • 2017.10.16 수정 "하늘을 나는 말" 완독
  • 2018.3.30 수정 "레이디 조커" 1권 완독
  • 2021.1.3 수정 "비숍 살인사건" 완독
  • 2021.5.7 수정 "통" 재독
  • 2023.2.12 수정 "황제의 코담뱃갑" 재독
  • 2024.11.15 수정 "11장의 트럼프" 완독
  • 2025.04.19 수정 "요이 금병매(금병매 살인사건) 완독
  • 2026.02.26 수정 "십각관의 살인" 추가

아울러 이런 류의 리스트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하락하긴 했지만 이 리스트는 고전 걸작이 많기에 꽤 괜찮다 생각됩니다. 전부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대부분은 자신있게 권해드릴만 하니 아직 읽지 않으신 작품이 있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본" 

1위 옥문도, 요코미조 세이시 

2위 허무에의 공물, 나카이 히데오 

3위 점성술 살인 사건, 시마다 소지 

4위 도구라 마구라, 유메노 규사쿠 

5위 화차, 미야베 미유키 

6위 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7위 대 유괴, 덴도 신 

8위 십각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9위 망량의 상자, 교고쿠 나쓰히코 

10위 혼진 살인 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11위 검은 트렁크, 아유카와 데쓰야 (국내 미출간) 

12위 회귀천 정사, 렌조 미키히코 

13위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14위 흑사관 살인 사건, 오구리 무시타로 

15위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16위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아와사카 쓰마오 

17위 하늘을 나는 말, 기타무라 카오루 

18위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19위 불연속 살인 사건, 사카구치 안고 

20위 시계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21위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시마다 소지 

22위 쌍두의 악마, 아리스가와 아리스 

23위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쓰히코 

24위 이전 동화, 에도가와 란포 

25위 모래 그릇, 마쓰모토 세이초 

26위 내가 죽인 소녀, 하라 료 

27위 외딴 섬 악마, 에도가와 란포 

28위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다카기 아키미쓰 

29위 레이디 조커, 다카무라 카오루 

30위 요이 금병매, 야마다 후타로

31위 기아 해협, 미나가미 쓰토무 (국내 미출간) 

32위 문신 살인 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33위 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34위 혼란 계략, 아와사카 쓰마오 (국내 미출간) 

35위 음수, 에도가와 란포 

36위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37위 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38위 11장의 트럼프, 아와사카 쓰마오 (국내 미출간) 

39위 이누가미 일족, 요코미조 세이시 

40위 상자 속의 실락, 다케모토 겐지 (국내 미출간) 

41위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42위 한시치 체포록, 오카모토 기도 

43위 아웃, 기리노 나쓰오 

44위 죽음의 샘, 미나가와 히로코

45위 독 원숭이, 오사와 아리마사

46위 산 고양이의 여름, 후나도 요이치 (국내 미출간) 

47위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48위 태양 흑점, 야마다 후타로 (국내 미출간) 

49위 무당거미의 이치, 교고쿠 나쓰히코 

50위 불야성, 하세 세이슈

"해외" 

1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2위 Y의 비극, 엘러리 퀸 

3위 셜록 홈스의 모험, 아서 코난 도일 

4위 환상의 여인, 윌리엄 아이리시 

5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6위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7위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8위 브라운 신부의 동심, G. K. 체스터튼 

9위 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10위 화형 법정, 존 딕슨 카

11위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12위 밀레니엄 1, 스티그 라르손 

13위 죽음의 키스, 아이라 레빈 

14위 X의 비극, 엘러리 퀸 

15위 소름, 로스 맥도널드 

16위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17위 재칼의 날, 프레드릭 포사이드 

18위 주교 살인 사건, S. S. 반 다인 

18위 독수리 내리다, 잭 히긴스 

20위 독 초콜릿 살인 사건, 앤서니 버클리 콕스 

21위 800만 가지의 죽는 방법, 로렌스 블록 

22위. 본 컬렉터, 제프리 디버 

23위 그리스 관 미스터리, 엘러리 퀸 

24위 제제벨의 죽음, 크리스티아나 M. 브랜드 

25위 심야 플러스 원, 개빈 라이얼 

26위 별의 계승자, 제임스 P. 호건 

27위 화이트 재즈, 제임스 엘로이 (국내 미출간) 

28위 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루르 

29위 무죄 추정, 스콧 터로 

30위 웃는 경관, 셰발과 발뢰 

31위 시행 착오, 앤서니 버클리 콕스 

32위 쉐도우 81, 루시엔 네이험 (국내 미출간) 

33위 통, F. W. 크로포츠 

34위 모르그가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35위 흥분, 딕 프랜시스 

36위 몰타의 매, 대실 해밋 

37위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39위 붉은 수확, 대실 해밋 

39위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40위 경찰 서장, 스튜어트 우즈 (국내 미출간) 

41위 신데렐라의 함정,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42위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43위 크리스마스의 프로스트 경부, R. D. 윙필드 (국내 미출간) 

44위 유다의 창, 존 딕슨 카

45위 나인 테일러스, 도로시. L. 세이어스 

46위 채찍을 쥔 오른손, 딕 프랜시스 

47위. 버스커빌 가의 개, 아서 코난 도일

48위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이든 필포츠 

49위 점핑 제니, 앤서니 버클리 (국내 미출간) 

50위 보이지 않는 그린, 존 토머스 슬라덱 (국내 미출간)

2005/06/08

추리소설 필독서 16선이라는 목록을 보고...

추리소설 필독서 16선?! 

산왕님 포스트에서 가져왔습니다. 

추리소설 목록

  1.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2. 오리엔트 특급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3. Y의 비극 ~ 엘러리 퀸
  4. 통 ~ 프리먼 윌스 크로포츠
  5. 바스커빌의 개 ~ 코난 도일
  6.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 엘러리 퀸
  7.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 존 딕슨 카
  8. 벌거벗은 얼굴 ~ 시드니 셀던
  9. 불새의 미로 ~ 유우제
  10.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11. 노란방의 비밀 ~ 가스통 르루
  12. 그린 살인사건 ~ S.S. 반 다인
  13. 환상의 여인 ~ 윌리엄 아이리쉬
  14. 최후의 증인 ~ 김성종
  15. 천사와 악마 ~ 댄 브라운
  16. 다빈치 코드 ~ 댄 브라운
모 무가지의 어떤 기자가 작성하셨다고 하는데 이런 류의 글 치고는 국내 추리소설이 2편이나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무척 환영할 만 하네요. 저도 무척 좋아하는 "Y의 비극"이나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고전 걸작 "통"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반갑고요.

하지만 걸작이긴 해도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이 3 작품이나 포함된 것은 좀 아쉽고 대체로 작가의 지명도에 많이 기대고 있는 듯 합니다. 예전 "명탐정 추리특급" 어쩌구 류의 백과사전에서 나올법한 정보인거 같기도 하고요.
또한 목록의 5, 6번은 유명세에 비한다면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며 홈즈 시리즈의 진정한 걸작은 단편선에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좀 의외의 선택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편선집이 포함되지 않은 장편 위주의 선정이라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불만스럽습니다. 얼마전에 읽었었던 쓰레기 "벌거벗은 얼굴"이 대체 왜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겠고요. 시드니 셀던이라는 작가 이름 때문일까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도 정통파 독자라면 그다지 찬성할 만한 초이스는 아닌 듯 싶군요. 많이 팔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목록에서 보기에 반가운 작품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추리소설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로는 비교적 적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공신력은 전혀 없는 목록이긴 하지만 체크해 보니 총 12편을 읽었네요. 반 다인의 작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앞으로도 읽을 예정은 없지만 한국 작품 2편은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 2013년 1월 8일 추가. 이후 전권을 다 읽었습니다.

2006/09/19

[번역] 이콜 Y의 비극 (4)

제 3 막

다음날인 4월 30일은 연휴 이틀째의 일요일이었다. 그러나 노리츠키 경시에게는 평일과 다를바 없는, 아침부터 바쁜 하루였다. [벨코포 시모다]의 살인사건은 사건 발생 이틀채로 접어들었지만 해결이 어려울 것 같은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세이쥬서에서 개최된 제 1회 수사회의에서는 무사시노 외국인 강도단 전속 수사팀의 모습도 보였지만, 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수사본부의 통일 견해도, 경시의 생각과 같이, 범행의 단서로부터 볼 때 결국 다른 사건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있었던 사법 해부의 결과 역시, 감찰의 나카지마의 소견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사망 추정 시각은 전날 오후 6시부터 7시 사이. 흉기인 나이프는 슈퍼 등에서 대량으로 판매되고 있는 상품이어서 흉기의 입수 경로를 추정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는 것 이외의 특기할 만한 발언은 없었다.또한 수상한 사람의 목격 정보도 접수되지 않았다. 그동안의 수사 방침에 따라 사카자키 요우스케와 미도리 부부를 둘러싼 치정, 원한의 선, 그리고 피해자 다치가와 아카네의 교우관계의 방편 등 여러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시켜 나갈 것이 결정되었을 뿐이었다.

한편 오전중에 야마네코 운송의 도리야마 영업소에 조사를 갔던 구노우 경부는,

"야마네코 운송의 배달원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라고 확신에 가득찬 얼굴로 보고했다.

전달 저녁, [벨코포 시모다]에 물건을 배달한 담당자는 이시와타리 효우 라고 하는 삼십세의 운전수로 그도 직업 특성상 골든 위크와는 무관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구노우는 운 좋게도 그날 첫 배달에서 돌아와 영업소에서 자고 있던 이시와타리 본인을 만나 진술을 얻어낼 수 있었다.

쯔부라야 아케미로부터 전해받은 부재자 연락표를 보고, 이시와타리는 부정하지 않고 곧바로 자신이 썼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케미가 이야기 한 것과 같이 그 이전에도 205호실의 물건을 206호실의 사카자키 부인에게 전달해 준 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양쪽 어떤 집에서도 그 일로 불평을 들은 적도 없었다고 했다.

"-주소지에 '부재시 이웃집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손님과 짐의 종류에 따라 가능한 것이지만요. 그런데 어제는 언제나의 사카자키 부인과는 다른 분이었습니다. 아아 동생이셨습니까. 에, 살해당했다고요? 정말입니까? 내가 갔을 때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고 건강했었는데, 믿을 수 없군요. 아니 집 안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배달 시간이요? 거기 쓰여있는데로, 오후 5시 32분이 틀림없습니다. 의심되신다면 업무일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업무일지는 문자 그대로, 분 단위의 스케쥴이 가득 적혀있었고, 그 안에는 범행에 필요한 시간을 속일 수 있을만한 의심스러운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시와타리 역시 좋은 인상을 주는 인물로 영업소내의 평판도 좋았고, 손님과의 문제도 전혀 없었으며 우량 사원으로 회사로부터 표창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구노우가 상상속에서 그린 범인과는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오후에는 다른쪽 수사에 나섰던 수사팀 보고가 이어졌다. 먼저 피해자의 신변조사에 관해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돌연 죽음을 알게된 다치가와 아카네의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녀가 살해당할 것 같은 이유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이콜 Y라고 하는 다이잉 메시지를 보여주어도 뾰족한 해답은 얻을 수 없었다. 생전의 남성관계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만한 유력한 정보는 없었다.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아카네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미니-코미 잡지의 편집을 둘러싼 트러블의 가능성 이었지만 그것도 희박해 보였다.

그나마 도다시의 니시나마 마유미의 맨션 주변의 조사는, 착실히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니이조 그랜드 하이츠] 1층에 위치한 카페 "챨스턴"의 주인은 전일 오후 4시를 지나서 5시 30분까지, 커피 한잔만을 시켜놓고 자리에 계속 앉아있던 여성 손님의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창옆 좌석에 앉아 계속 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순간 서둘러 가게를 나가버렸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마유미의 맨션으로부터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편의점의 점원도 미도리의 얼굴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어제 7시 30분경, 전에는 본 적 없는 여성 손님이 찾아와 가게의 동전 투입식 복사기로 손으로 쓴 유인물을 대량으로 복사했다고 말했다. 직접 도와주지 않아서 별다른 접촉은 없었지만 슬쩍 보기에도  '뭔가 싫은 느낌' 이었다고 했다.

마유미 집에 피자를 배달한 배달원은 맨션 앞에 있었던 미도리의 모습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 대신, 512호실까지 피자를 가지고 올라갔을 때, 입구에 서 있던 마유미의 어깨 너머로 방에 남성이 와 있던 것을 슬쩍 쳐다보았다고 했다. 배달시각은 6시 55분경. 가게의 전표에 따르면, 주문 전화가 걸려온 것은 6시 45분이고 품목은 S사이즈의 피자 2장과 사이드 메뉴가 2인분. 전화는 마유미의 방에서, 주문했던 것은 여성의 목소리였다고 했다. 모두가 미도리의 진술과 부합하고 있었다.

노리츠키 경시의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모든 수사가 결국은 미도리의 진술의 뒤를 따라 확인하는 것이었을 뿐이고 수사가 진행되면 될 수록, 남편 요우스케와 마유미의 알리바이를 재 확인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카자키 요우스케가 세이쥬서의 수사본부에 스스로 출두한 것은 그날 오후 3시가 막 지날 때였다. 경시의 예상대로라면 좀 더 빨리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사정청취는 구노우가 담당했고, 경시도 그 자리에 동석했다. 사카자키는 럭비선수 같은 체격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동안을 가진, 뭔가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옅보이는 인물이었다. 회사에서는 그런대로 실적을 올리고 있었다고 했다. 슈트 케이스를 가지고 걸어들어온 것을 볼 때, 어젯밤은 자택에 돌아가지 않고, 어디선가 외박을 한 것으로 보였다.

"-신쥬쿠 비지니스 호텔에서 1박했습니다. 일 관계로 자주 가는 곳이라 일반인보다는 싼 요금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거든요. 저녁까지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라가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TV 뉴스를 보고 어제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인으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하셨습니까?"
"예.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어서..."
"그렇습니까. 사실은 어제 [니이조 그랜드하이츠]의 니시나마 마유미씨에게 연락해서 이 사건에 대해 들으신 것은 아닌가요?"

구노우가 추궁하자 사카자키는 일순 놀라며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부터 불륜의 건을 드러낼 각오를 한 듯, 생각을 조금 정리하는 듯 하더니 곧 그 사실을 인정했다.

"어제 오후의 제 행동은 아내 입에서 일부 들으셔서, 어느정도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미도리는 저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구노우는 싸늘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히 부인에게서 당신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여기서 전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직접 본인에게 듣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것보다도 수사를 위해서라도 당신 자신의 입으로 들려 주셨으면 하는데요"

사카자키 요우스케가 직장 부하로 있는 니시나마 마유미와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은 작년 여름경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불장난 정도로 생각했지만, 서서히 관계가 깊어져서, 결국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했다. 물론 도다시의 마유미의 맨션에 출입하게 된 것도 어젯밤이 처음은 아니었다. 1개월 정도 전에 거리에서 마유미와 우연하게 마주치게 되었을 때 부터, 아내가 자신을 의심의 눈으로 쳐다본다는 것을 눈치채었지만, 요우스케는 도를 더해가는 애인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연휴 첫날에 맞춰, 교토까지의 여행에 동행한 뒤, 이틀째 저녁부터 마유미를 만나기로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먼저 도쿄로 돌아오는 출장일정을 맞춰 놓았습니다. 물론 회사에는 그렇게 이야기 했지만 아내에게는 2박 3일이라고 거짓말을 했죠. 하룻밤을 마유미의 방에서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동행했던 부하 직원에게 뒤를 맡기고, 어제 오후 신칸선으로 귀경하여 그길로 도다시로 향했습니다"

"교토를 떠난 것은 몇시의 신칸선이었습니까?"
"15시10분발의 '노조미18호' 였습니다. 동경 도착은 17시 24분 이었고요. 2시간 반 까지는 투어의 손님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그것보다 빠른 열차를 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사카자키는 술술 발차시각을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알리바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확실해 보였다. 도쿄역에 도착해서부터, 사카자키는 츄오선과 사카케이선을 갈아타서 도다역에 내렸다. 마유미의 맨션에 도착한 것은 6시 15분 정도. 5시반에 도쿄역을 나왔다면 다른 곳에 들릴 시간 여유는 없었다. 그 때의 모습을 버스 정류장에서 아내에게 목격당했다는 것은 아직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사카자키의 표정을 차가운 눈으로 관찰하던 경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니시나마씨 집에 도착한 이후, 밖에 나간 적은 없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담배가 떨어져서 가까운 자판기까지 사러 갔었습니다. 마유미의 집에 도착한 뒤 15분 정도 뒤였던 것 같네요"
"6시 30분 경이라는 말씀이시군요. 혹시 그때, 니시나마씨의 담배도 같이 사시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걸 아시죠? 그렇구나! 미도리가 보고 있었던 거야! 이 여자가 정말..."

사카자키는 분하다는 듯 그렇게 외쳤지만 구노우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사정청취를 계속 진행했다. 마유미가 전화로 주문한 피자가 배달되었을때, 7시 직전 - 미도리가 인터폰을 눌러 마유미와 문답을 시작한 것은, 두 사람이 피자를 먹고 있던 도중 일어난 일이었다고 했다. 요우스케는 깜짝 놀랐지만 절대로 자신이 온 것은 인정하지 말고 집에서 나가지도 말라고 마유미에게 명령했다. 인터폰을 끊은 뒤에도 계속 벨이 울려서 그것이 멈췄을 때에는 두사람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사카자키는 [니이조 그랜드 하이츠]를 떠날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이제와서 집에 돌아가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만의 하나 미도라가 맨션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자리에서 들킨다면 어차피 변명은 통하지 않을 테고, 차라리 마유미의 방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저녁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돌아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면 불륜의 증거는 아무것도 없을거야...라는 등의 이야기를 마유미와 나누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밤에 경찰이 찾아왔을 때 결국 사카자키는 마유미의 맨션에서 도망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때 설마, 우리 집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미도리가 골탕을 먹이기 위해 경찰에 장난처럼 신고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어쩔 수 없이 곧바로 도망을 치게 되더군요. 마유미가 인터폰으로 경찰과 대화하는 틈에 집을 나와, 맨션의 비상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죠. 집에 돌아갈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신쥬쿠까지 가서 아까 이야기했던 비지니스 호텔에서 하루 묶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망친 것은 불륜의 현장을 들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 뿐이지 경찰에 대해서 아무런 숨기는 것도, 그리고 숨길 이유도 없습니다"

사카자키는 보기에 괴로울 정도로 마지막 말을 강조했다. 사카자키의 진술이 일단락 된 후, 경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남자에게는 꼭 한마디 해 줄 것이 있다.

"어쨌건, 사카자키씨. 부인이 '그랜드하이츠'의 현관에 니시나마 마유미씨를 욕하는 유인물을 뿌린 것은 알고 계십니까?"
"예. 마유미로부터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요"
"자. 천천히 봐 주십시오. 이것이 그 유인물입니다"

라고 말한 뒤, 경시는 미도리가 쓴 유인물 복사본을 들이 밀었다. 사카자키는 순식간에 얼굴이 굳은 채, 그 여자가 이런 노골적인 글을 썼다는 건가.. 라고 중얼거렸다. 경시는 엄한 목소리로

"부인은 어젯밤, 니시나마씨가 동생을 살해한 범인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대신에, 착각해서 아카네씨를 찔렀다는 것이죠. 물론 처음에는 당신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진술에 의해 당신들의 알라바이가 성립되어 버렸지만, 우리들은 당신이나 니시나마씨 중 한명이 살인범이라고 판정하고 있었습니다. 당신들 두 사람이 자유의 몸이 된 것은 미도리씨의 덕분임을 잊지 마십시오. 부인은 이번 일을 계기로 당신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사카자키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애절한 눈빛으로 경시를 바라 보았다. 경시는 내뱉듯이 말했다.

"오늘 일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돌아가셔도 됩니다"

사카자키 요우스케를 돌려 보내고 경시는 소지품을 정리하여 경시청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이쥬서를 나왔다. 차 안에서, 운전석에 앉은 구노우 경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 사카자키의 진술을 들을때, 좀 이상한 점을 눈치 채신게 있으십니까?"

경시가 담배불을 붙였을 때,구노우가 물었다.

"니시나마 마유미의 알리바이에는 구멍이 있는 것 같지 않나?"
"-라고 하신다면?"

"마유미는 5시 30분에 집으로 돌아온 후, 계속 맨션의 자기 집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7시 전에 피자를 배달한 배달원의 증언을 제외하고는 오후 6시대의 알리바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방에서 같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카자키의 진술 뿐이야. 그러나 사카자키와 니시나마가 공모하여 미리 말을 맞추어 놓았다면 어떻겠는가? 마유미는 5시 30분에 돌아와 화장품 세일즈를 가장한 사카자키 미도리와 대화를 나눈 뒤 그녀에게 들키지 않게 비상구를 통해 맨션을 빠져나와 [벨코포 시모다]로 향했지. 한편 교토로부터 신칸선으로 도쿄에 돌아온 사카자키는 6시 30분에[니이조 그랜드 하이츠]를 방문해서 스페어 키로 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512호실에서 마유미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면? 1시간 반 정도라면 니시나마 마유미가 차로 세타가야의 시노다까지 왕복해서 7시 직전에 [니이조 그랜드 하이츠]의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 하지는 않다고 생각이 드는구만"

"하지만 6시 40분에 피자주문을 한 것은 여자의 목소리였다는 증언을 잊으셨습니까? 덧붙여 연휴 행락객으로 꽉 차 있을 시간대인데 범행과 현장의 위장공작에 필요한 시간을 더한다면 한시간에 도다에서 세타가야까지 왕복한다는 것은 조금 어렵지 않겠습니까?"
"전화 목소리 정도는 얼마든지 속일 방법이 있었을 거야"

구노우가 말하자 경시는 웃으며 답했다.

"뭔가, 우리 아들놈 말버릇 같구먼. 하지만 두사람의 공모설에는 큰 문제가 있긴 하네. 마유미의 알리바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사카자키의 증언 뿐만은 아니거든. 아까 사카자키에게 말한 것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아내의 목격증언이 없었다면, 애인과 어떻게, 얼마나 입을 맞추어 놓았어도 결국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거든. 어제 오후 미도리가 마유미의 맨션을 방문한 것은 정말 우연히 남편 출장 일정에 의문을 품고, 그 의문을 집에 놀러온 동생에게 털어놓은 탓이거든. 만약 미도리가 동생의 충고를 무시했다면 두사람의 알리바이는 애매하기 그지없는 것이 되어버렸을 뿐이지. 그 정도의 알리바이로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두 사람도 알고 있었을 거야. 사카자키와 마유미가 그런 위험한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아무래도 생각하기 힘들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포인트가 아닐까요? 역으로 생각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사카자키는 아내의 성격을 고려하여 그렇게 행동할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어서 이번의 범행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미도리가 남편의 불륜을 눈치채고 출장일정에 의심을 품은 것도, 사실은 사카자키 자신이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도록 먼저 포석을 깔아 놓은 것은 아닐까요? 서재의 잘 보이는 장소에 마유미의 연하장을 방치해 놓은 것도 범행 당일의 오후에 미도리를 도다시의 [그랜드 하이츠]로 불러내기 위해서겠죠. 사카자키는 아내의 감시를 눈채채지 못한 척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던 거죠. 처음부터 그녀를 알리바이 증인으로 만들 생각이었을 겁니다. 6시 30분에 자기와 그녀의 담배를 사러 나온 것도 밖에서 감시하던 미도리가 마유미가 방에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구태여 그런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닐까요?"

"공교롭지만 그 추리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앞뒤가 뒤바뀐걸세"

경시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왜 그런가 하면, 범행 당일의 오후, 아내를 알리바이 증인으로 만들기 위해 도다시로 꾀어낼 것을 사카자키가 계획했다면, 같은 시각에 [벨코포 시모다] 206호실에 미도리가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잖나? 당연히 공범자 마유미가 미도리를 죽이러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사카자키와 마유미 두명 모두 미도리가 아니라 동생 아카네를 살해할 동기가 있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가능성은 생각하기 힘들군.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애인의 증언을 종합해 본다면 , 진상은 아직이야. 뭔가 다른 부분이나 가능성, 놓칠 수 있는 사소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네"

구노우를 위로하며 담배불을 끈 경시는 경시청으로 돌아오자마자 안경을 쓴 뒤, 부재 중 책상에 놓여진 서류더미로 눈을 돌렸다.

그 속에는 [벨코포 시모다]의 범행현장에서 압수한 증거물건에 관한 감식 결과 보고서가 놓여있었다. 이콜 Y라고 하는 다이잉 메시지가 남아있던 메모패드와 피해자가 오른손에 쥐고 있던 2색 볼펜의 철저한 검사결과를 읽고 있던 도중, 경시는 보고서의 한 문장에 깜짝 놀라 외쳤다.

"응? 이건 도대체 무슨 의미지?"

보고서를 보던 구노우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경시는 곧바로 내선 번호를 눌러 감식 담당관을 호출하여 보고서에 기재된 것을 물어았지만 '검사의 결과에 이상은 없습니다'라는 확신에 가득찬 답변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보고서를 사이에 두고 경시와 구노우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두사람 모두 그 검사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곧 구노우가 천천히 말했다.

"완전히 두 손 들었습니다. 역시 아드님에게 지혜를 빌리는 편이 좋겠네요"

**********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노리츠키 경시는 철저히 시간을 들여 [벨코포 시모다]의 살인에 관한 조사의 상황을 자세하게 아들에게 전해 주었다. 린타로는 황금연휴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처음에는 그다지 사건에 뛰어들 생각이 없는 것 같았지만, 화제가 이콜 Y라고 하는 다이잉메시지 대목에 이르자 눈을 빛내며 강한 호기심을 나타내었다. 경시가 마음 속으로 미소지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라고 하는 것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사실인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구나"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 뒤, 경시는 아들에게 물었다. 린타로는 다이잉 메시지의 사진 (편광 렌즈로 자국이 떠오르도록 촬영한 것)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음- 이것을 니시나마 마유미의 니시(仁)라고 읽는 것은, 좀 억지로 같다 붙인 느낌인데요. 사카자키 미도리가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기분은 알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할 경우 한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살해당한 다치가와 아카네는 마유미와 한번도 면식이 없었을 텐데 동생이 형부의 애인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찔린 순간 아카네가 얼굴도 알지 못하는 상대를 마유미라고 특정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너가 말하는 대로다. 뭐 범인이 스스로 이름을 말했다면 모르지만, 그런 연극같은 짓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

"그리고, 택배 배달부가 범인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야마네코 운송의 트레이드 마크를 그려서 남겼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쩌면 좋을까요.... 얼굴 그림을 그리는 순서가 다릅니다. 그림의 위, 아래가 반대로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귀, 눈부터 먼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의 순서가 아닐까요?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정하는 근거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린타로가 미소지으며 말하자 경시는 안색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좀 봐주거라. 하여간 이젠 정말 두손 다 들었다. 너의 의견을 좀 들려줄 순 없겠니?"
"그렇다면, 한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요- 아버지는 이 다이잉 메시지가 위조되었을 가능성은 생각해 보셨나요? 예를 들면 제 1 발견자인 사카자키 미도리가 남편의 애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서요"
"미도리가 범인이라는 뜻이냐?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구"

경시가 소리치자 린타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고요. 동생의 사체를 발견했을 때, 미도리는 분명히 남편의 범행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입니다. 남편을 감싸고 그 의심을 불륜 상대인 니시나마 마유미에게 향하게 하기 위해, 그 장소에서 순간적으로 가짜 다이잉 메시지를 만들어 내었을 가능성이 있죠. 집에 돌아온 미도리가 거실에서 사체를 발견했기 때문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쯔부라야 아케미가 있는 곳으로 가는 사이, 아주 잠깐이지만 빈 틈이 있었겠죠. 그 때 아카네의 볼펜으로 전화용 메모 패트에 仁, 다름아닌 니시나마 마유미를 가르키는 메시지를 쓴 뒤, 볼펜을 피해자의 오른손에 쥐여 주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정도로는 확실히 일부러 만든 듯한 티가 나기 때문에 메모 패드의 첫장을 찢어낸 후, 범인이 가져간 것으로 위장한 것이죠. 물론 아래 종이에 볼펜 자국이 남아 있을 것은 계산한 것일테고요"
"흠, 가설이지만 꽤 흥미롭구나. 하지만 실제로는 확실히 무리야. 피해자의 손가락에는 사후경직이 시작되고 있었기에 너의 가설대로라면 미도리가 사체를 발견했던 8시 30분의 경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어야만 하거든. 사체의 오른손에 볼펜을 쥐어 준다는 것 자체가 아마 불가능했을거다. 아카네가 죽을 때부터 볼펜을 쥐고 있어서 사체의 오른손을 메모 패드 위에 올려놓고 눌러서 메모를 썼다고 해도, 감찰의가 뭔가 이상을 눈치채는 것은 당연해. 마침 그렇게 이야기하니 한가지 놓친것이 있는데, 감식 결과로는 보고서에 이해불능을 기술했던 것이거든. 그 문제가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구나"

경시는 머리속을 꽉 채우고 있던 것을 말했다. 아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제일 흥미로운 먹이를 최후까지 남겨놓았던 것이었다. 린타로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해불능이라고 적혀 있다고요?"
"피해자가 쥐고 있던 적과 흑 2색 볼펜을 철저히 조사한 결과, 검은 쪽 볼펜은 잉크가 없었다더구나. 훨씬 전 부터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였다는 거지"
"검은 쪽이 쓸 수 없는 상태? 그래도 아버지가 현장에서 조사했을 때에는 검은쪽 버튼이 눌려져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렇단다. 덧붙여 보고서의 기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메모패드에 남아있던 이콜 Y의 흔적은 잉크가 나오지 않는 볼펜의 끝으로 눌러 쓴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 필압이랑 메모 용지 표면의 상태로 볼 때, 한장 위의 용지에 적은 글자 자국이 남은 것이 틀림 없다더구나. 나에게는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검은 쪽은 쓸 수 없는 상태였다지만 빨간 쪽은요?"
"그것은 쓸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현재 아카네는 습격당하기 직전까지 미니코미지의 인터뷰 원고에 빨간 색 볼펜으로 수정사항을 기입하고 있었던 탓에, 그렇지만 그게 도대체-"
"잠깐 기다려 주세요"

린타로는 곧바로 얼굴 앞에 손을 모아 경시의 말을 막았다. 얼마간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다가, 다이잉 메시지지의 사진을 끌어 당겨 놓아서, 팔짱을 낀 채로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흡사 동물원 우리안의 곰 같은 모습이었다.

이윽고 흥분 상태가 가라 앉은 뒤, 린타로는 경시 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빨강과 검은 2색 볼펜. 정말이지 재미있군요"

라고 말했다.

"감식의 검사결과로부터 뭔가 알아낸 것이 있냐?"

경시가 묻자 린타로는 미소지으며 답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확실히 이 다이잉 메시지가 범인, 혹은 관계자가 고의로 조작한 가짜 단서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어요"
"사카자키 미도리의 일인가? 확실히, 그건 아까 들었지"
"아뇨. 그것도 있지만, 뒤에서 다치가와 아카네를 찔러 살해한 범인이 범행 직후에 다이잉 메시지를 위조했을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콜 Y의 해석은 우선 제껴두고, 그것이 작성되었을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죠. 이 메시지가 가짜 단서라면, 그것은 어떠한 수순으로 남겨진 것이겠습니까? 아까 말한바와 같이 위조한 메시지는 그 대로 메모패드에 붙어 있다면 확실히 너무 작위적이라 부자연 스럽죠. 그래서 범인은 메모 패드 제일 윗 장 종이에 볼펜으로 이콜 Y라고 쓴 뒤, 그 종이를 찢어 가져가 버렸다- 라고 가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밑의 종이에 자국이 남는것은 감안한 것이겠죠"

경시는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히 나는 현장 상황을 봤었지만, 나도 너가 말한 대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경우, 범인은 메모패드에 메시지를 쓴 뒤, 절명한 직후의 피해자의 손에 2색 볼펜을 쥐어 주었을 것입니다. 아까의 사카자키 미도리의 위조설과 다른 것은 이 점 뿐이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경우에는 범인 자신이 실제로 이 2색 볼펜을 사용했다고 하는 점입니다. 즉 사체 발견시에 피해자가 쥐고 있는 볼펜, 검은쪽 버튼이 눌러져 있는 상태였다는 사실은, 범인이 검은 글씨로 위조 메시지를 썼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체에 볼펜을 쥐여준 뒤에 펜의 글자색을 바꾸었을 가능성은 제가 보기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조사가 허술한 틈을 노렸다 하더라도, 결국 지금처럼 메시지의 진실성이 사라져 버릴 뿐입니다. 그러나 범인이 검은색으로 위조 메시지를 작성했다는 것은, 그 시점에서 볼펜의 검은 잉크가 막 떨어져버리고 쓸 수 없는 것에 눈치 챘을 것입니다"
"흠.. 그건 너가 말한 대로지"
"그래서 범인은 빨간 색 버튼을 눌러 빨간 글씨로 메시지를 썼겠죠. 빨간 쪽은 쓸 수 있었으니까, 그것이 제일 자연스럽고 이치에 맞습니다. 그리고 빨간 색 버튼을 누른 채, 즉 빨간 색 볼펜을 밖으로 끄집어 낸 상태로 볼펜을 피해자의 손에 쥐여 주었더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죠. 이것은 확실히 모순됩니다. 따라서, 이 가설의 전제조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이콜 Y라고 하는 기호는, 범인이 고의로 조작한 가짜 단서가 아니라 피해자 본인이 써 남긴 진짜 다이잉 메시지라는 것이죠"

경시는 머리의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 담배불을 붙였다. 아들의 이야기에 홀딱 넘어가 버린 탓도 있었지만, 이제까지의 논증에 있어서는 별달리 이견을 이야기 할 것도 없었다.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러면, 다음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다치가와 아카네가 2색 볼펜의 어느쪽 색을 사용하여 메시지를 남겼을까, 라고 하는 문제입니다. 우선 검은쪽을 검토해보죠. 물론 피해자에게 있어서는 자기가 사용하는 볼펜이기 때문에 검은쪽 잉크가 떨어져서 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쪽 버튼을 눌러 메모패드에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아버지?"
"아아, 그 정도는 알겠다. 뒤에서 범인이 돌아올 경우를 대비해서, 잠깐 보더라도 아무것도 써 있지 않은 상태로 보이게끔, 자국밖에 없는 백지의 메시지를 써서 남겼을테지. 그렇게 한다면 범인을 그냥 가버리게 할 수 있었을테니까"
"명답! 역시 아버지. 대단하십니다"

린타로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 경우에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감식 결과로 밝혀진 것과 같이, 메모 패드에 남겨진 메시지는 잉크가 없는 볼펜 끝으로 쓰여진 자국이 아니라 바로 위에 있는 종이에 쓴 글자가 밑의 종이에 자국이 남았다는 것 때문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제일 위의 종이에 쓰여진 오리지널 메시지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대로 범인이 찢어서 가져가 버렸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결국, 피해자가 보이지않는 백지에 메시지를 남긴 것을 범인이 방심하고 가버리는 대신에 범인은 그 흔적을 눈치챈 것이겠죠. 그러나 아버지. 조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 잉크가 나오지 않는 볼팬으로 쓴 백지위의 메시지의 존재를 눈치챈 뒤 그것을 찢어서 가져갈 정도로 주의깊은 범인이 메모패드 바로 한장 아래에 있는 종이에 남은 볼펜 자국을 그냥 지나친다고 한다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경시는 감탄했다. 이 녀석, 확실히 날카로운데가 있어.

"역시. 확실히 그런 실수는 있을 수 없겠지, 라고 하는 것은 그 가능성도 아니라는 것이겠군. 그렇다면 남아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 아카네는 빨간색 볼펜으로 메시지를 써서 남겼다는 것밖에는 없을텐데, 그것도 역시 의문을 완전히 풀 수는 없는것 같다. 피해자가 쥐고 있던 볼펜의 글자 색이 바뀌었다는 것은 왜인가, 라는 의문이"
"예. 그게 문제입니다"

라고 답하고 린타로는 이야기를 계속하기 위해 바른 입술을 적셨다.

"-피해자 본인이 메시지를 남긴 직후, 검은 버튼을 눌러 볼펜의 글자색을 바꾸어 놓았을 가능성은 없겠죠. 도대체 그런 짓을 할 이유도 없고, 그녀는 그 때 거의 숨이 넘어가는 상태에서 메시지를 써서 남기는 일에 모든 힘을 다 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때문에 볼팬 글자색을 바꿀 여유같은것은 없다고 보아도 좋겠죠. 또 그녀가 숨진 직후에, 근육의 반사적인 운동이 이상한 작용을 해서 검은 버튼이 눌려졌을 가능성도 희박하고요. 그같은 우연이 일어날 가능성은, 물론 제로라고 할 순 없겠지만 한없이 낮을 것입니다. 이 두가지 가능성이 모두 아니라고 한다면, 결국 검은색 버튼을 눌러 볼펜의 글자색을 바꾼 것은 그녀를 살해한 범인의 소행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논리에 모순이 있잖냐? 너는 아까, 조사가 허술하지 않는 한 드러날 염려가 있기 때문에, 범인이 볼펜의 글자색을 바꾸어 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을 텐데"

경시가 묻자 린타로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뇨.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범인이 검은색 볼펜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에 한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범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거죠. 또한 범인은 피해자가 빨간색으로 적은 메모용지를 찢어서 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볼펜 글자색이 바뀌어 있는 것을 드러날 염려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알겠다. 그렇다고 한다면 왜 범인은 그런 짓을 한건가?"

린타로는 숨을 들이 마셨다.

"이제부터, 제 추측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만... 범인이 볼펜의 글자색을 바꾼 것은 빨간색 잉크로 기록된 피해자의 다이잉 메시지를 메모 패드로부터 찢어서 가져가 버린 것과 같은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한 피해자의 손에서 볼펜을 빼서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는 흔적 그 자체를 없애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 때는, 뭔가 다른 사정으로 - 그것은 뒤에 설명드리겠습니다만 -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거죠. 때문에 범인은 차선책으로 볼펜의 글자색을 바꾸는 짓을 한 것입니다"
"기다려봐라. 범인이 메모 패드의 메시지를 찢어서 가져가버리고, 볼펜도 가지고 가 버리고 싶어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만, 차선책으로 글자색을 바꾼다고 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구나. 왜 그게 차선책인거냐?"

"메모 패드에 남겨진 메시지의 내용에 관계없이 처음부터 범인은 다이잉 메시지가 빨간색 잉크로 쓰여졌다는 것 자체를 알리고 싶어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물론 피해자가 그렇게 한 것은 그것 외에는 뭔가 쓸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범인은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죠. 빨간색 볼펜으로 기록된 메시지를 보았을 때, 글자색의 선택에도 피해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 있습니다. 때문에 범인은 메모 패드의 메시지를 찢어버리는 것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쥐고 있던 볼펜의 쪽에도 손을 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검은색쪽으로 바꾸지 않더라도 빨간색 볼 버튼을 잠구어 놓기만 하면 충분한 것 아니었겠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아버님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나 범인은 억지로 무리해서까지 볼펜의 글자색을 검은색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꿔 말한다면, 그만큼 빨간색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요? 간단히 볼펜을 속에 넣어 잠궈놓는 것 만으로는 어떤 색이 사용되었을지 추측할 가능성이 반반이기 때문이죠. 즉, 범인은 검은 버튼을 눌러 끄집어 내면서까지 피해자가 빨간색 메시지를 기록했다는 사실 자체를 완전히 은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틀림없이 순간적 판단으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흠. 그렇다면 범인이 그 정도로 빨간색 글자를 싫어한 이유는 왜냐?"

경시가 묻자 린타로의 눈이 지금까지 이상으로 예리해졌다.

"그렇죠. 거기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범인이 빨간색 메시지를 싫어한 이유는 어쩌면 잉크색 자체가 범인을 나타내는 수단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예를 들면 범인 이름 일부에 赤, 혹은 적색계통의 색을 표시하는 문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범인이 필요 이상으로 신경질적이 된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사건의 관계자 속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나요?"
"적색계통 이라고 한다면 아카네의 이름 뿐이지만 그녀는 피해자잖냐. 해당하는 인물은 전혀 없는걸. 음.. 잠깐 기다려라. 너가 말한대로라면 주색의 주(朱), 205호실의 쯔부라야 아케미(朱美)를 말하는 것이구나!"

린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시는 놀란 채로 눈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되는데? 그리고 이 정도의 증거로는-"
"하지만 근거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쯔부라야 아케미의 일을 머리속에 떠올리고, 또 한번 이 이콜 Y라는 메시지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좋습니까? 아버지는 지금까지 이 두개의 기호, 혹은 문자의 위치관계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이콜 Y라고 하는 메시지는 피해자가 직접 종이 위에 기록한 오리지날 필적은 아니고, 메모 패드 종이 한장 밑에서 자국이 남은 흔적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라고 하는 것은 그 흔적이 넘는 과정에서 뭔가의 실수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지요"

실수? 경시는 잠깐 생각하며 목을 갸웃했다

"하지만 흔적이 남는다는 것은 메모 용지를 위에서 무겁게 내리 누르는 글자가 아래에 남았을 뿐이다. 실수가 생길 가능성은 아무것도... 그런가! 중요한 메시지를 쓰고 있는 도중에, 위 종이가 움직여 버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그 메모 패드라고 하는 물건은 사용한 종이를 찢어낼때 백지의 아직 사용하지 않은 부분까지 반 정도는 중심에서 어긋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피해자가 오리지널 메시지를 기록했던 첫번째 메모 용지도 그런 일이 일어났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급하게 빨간색으로 메시지를 쓰고 있는 도중에, 그 종이가 움직여버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죠? 어쨌건 그 결과 이 '='과 'Y'라고 하는 두개의 기호의 위치관계가 처음 썼을 때와는 다른 흔적으로 두번째 종이에 남겨져 버린 것입니다"

경시는 다이잉 메시지의 사진을 집중해서 관찰했다. 잠시 뒤, 그 입에서 부터 깜짝놀란 외침이 터져나왔다.

"- 이콜 Y가 아니라 엔인가? 엔(円) 확실히 쯔부라야 (円谷)이라고 하는 것이구만!"
"예. 그렇게 그 기호는 빨간색 볼펜으로 쓰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쯔부라야 아케미라는 이름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은 불보듯 뻔했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케미가 이 메시지를 눈치챈것은 범행 직후가 아니라 사카자키 미도리가 귀가해서 동생 시체를 발견한 뒤의 일인것 같습니다. 미도리가 밖의 통로로 뛰쳐나왔을때, 아케미가 혼자서 범행현장으로 들어간 것은 알고 계시죠? 그 때, 빨간색으로 엔이라고 하는 메시지가 기록된 메모 패드를 발견한 아케미는, 곧바로 자신의 범행을 나타내는 단서라는 것을 알고 급히 메모를 찢어버렸죠. 곧바로 아케미는 사체의 손에서 볼펜을 꺼내려고 했지만, 그때는 사후경직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은 불가능했고요. 미도리의 눈이 있기때문에 그렇게 꾸물거릴 수도 없었을겁니다"
"흠, 아까 말했던 뭔가의 사정이라는 것은 그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그래도 아케미는 피해자가 빨간 볼펜으로 메시지를 남겼던 것에 주의를 쏠리게 하고 싶지 않았겠죠. 그래서 자선책으로 피해자의 손에서 튀어나온 검은색 버튼을 눌러 놓았습니다. 검은색 볼펜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몰랐기 때문에 그랬겠죠. 그 때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고 손톱 끝으로 버튼을 눌렀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경시는 아직 반신반의했었다. 경시는 자신의 머리속을 떠돌아 다니는 의문을 린타로에게 믈었다.

"확실히 다이잉 메시지에 관해서는 그것도 말이 되는 것 같구나. 그러나 쯔부라야 마유미가 범인이라면 살인의 동기는 뭐겠냐? 동생 아카네와는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언니 미도리와 사람을 착각해서 살인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구나. 그렇다고 하는 것은 특별히 친하지도 않은 동생 쪽을 죽일 이유가 있었다는 걸까?"
"제 생각이긴 하지만, 범행은 발작적인 것으로 보이는군요. 어제 저녁, 택배편으로 배달된 짐 때문에 아케미와 아카네 사이에 뭔가 다툼이 생겼던 것이 아닐까요? 그 이전 옆집에 맡겨 놓았던 짐들은 문제가 없었다고 했지만, 어제에 한해서는 전례가 깨진것이죠. 205호실의 짐을 받아 놓은 것은, 친한 이웃 사람인 사카자키 미도리가 아니라 동생인 아카네 쪽 이었다고 했잖습니까. 부재연락표를 보고 짐을 받으로 간 아케미는, 뭔가 사소한 일 때문에 현관에서 아카네와 말다툼을 벌인 것일테죠. 순간적으로 머리에 피가 치솟은 아케미는 빈 손이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서, 칼을 숨긴채 다시 206호실을 방문했을 겁니다. 사과한다는 핑계를 대고 안으로 들어섰겠죠. 그때 방심하고 있던 아카네의 등 뒤를 있는 힘껏 칼로 찔렀을 겁니다-. 미도리가 귀가했을 때, 아케미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206호실에 나타났던 것은, 애시당초 택배물을 놓고 아카네와 말다툼한 일을 숨기기 위한 위장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쯔부라야 아케미의 어젯밤 알리바이에 대해, 뒤는 캐 보셨습니까?"

아들에게 지적당할때 까지 왜 그 가능성은 눈치채지 못했을까? 경시는 스스로 자괴감이 들며 자신의 실수를 통감했다. 경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사카자키 부부에게 완전히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가족이랑 유원지에 갔다 오며 초저녁에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7시 30분에 돌아왔다고 말했지만 의심이 가는구먼. 좋아, 내일 아침이 되자마자 아케미의 알리바이를 수사하도록 하겠다"

******

그렇지만, 사건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깨끗하게 빗나갔다. 다음날 수사관의 수사에 의해, 쯔부라야 아케미의 오후 6시대의 알리바이가 입증되었기 때문이었다.

범행 당일 오후 6시부터 6시 50분까지, 아케미와 가족 3인은 [요미우리랜드]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것이 확인되었다. 레스토랑 점원이 쯔부라야 일가의 좌석과 테이블을 기억하고 있었고, 영수증도 기록되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케미의 진술은 결국 사실로 입증되었다. 어디에도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즉, 쯔부라야 아케미는, 다치가와 아카네를 살해한 범인일 수 없었다.

믿고 의지했던 린타로의 추리도 틀려버렸던 것이다.

PS : yuuhi님이 글을 남겨주셨는데 노리"츠"키 린타로가 아니라 노리"즈"키가 맞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다시 확인해보니 말씀대로셨습니다. 그래도 번역을 블로그에 후루룩 해버린 탓에 글자 검색을 일일이 해서 고치기가 어려우니 감안해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yuuhi님의 좋은 정보 감사드리며^^

2006/09/21

[번역] 이콜 Y의 비극 (5)

에필로그 [무대 뒤에서]

꽉 막혀 도무지 진전이 없던 수사 선상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돌파구가 열린것은, 다치가와 아카네가 살해된 뒤 5일이 지난 5월 3일, 헌법 기념일의 일이었다.

그 날 아침, 세이쥬서의 수사본부에 얼굴을 내민 노리츠키 경시는, 수사관 한명으로부터 기묘한 보고를 들었다. 세타가야 서 관내에서 발생했던 살인사건 수사에 관련하여, 어제 동서로부터 사카자키 부부에 관련된 사항이 있다는 것이었다.

"세타가야 서 관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라고 한다면, 4월 30일 저녁, 타이지도우의 공원에서 나고야에 살고 있던 여성이 강도에게 습격당해 죽은 사건의 일인가?"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여성이, 살해당하기 전날 [벨코포 시노다]의 206호실에 전화를 걸었던 것 같습니다-"
"사카자키 부부 집에 전화를?"

여성이 살해당하기 전날이라고 한다면, 다치가와 아카네가 살해당한 4월 29일의 일이다. 연속해서 일어난 이 2개의 사건에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경시는 지푸라기 라도 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곧바로 세타가야서에 연락하여, 30일에 일어났던 강도 살인 사건에 관한 수사정보를 이쪽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부터 계속 생각한 뒤 집에 전화를 걸어 자고 있던 아들을 깨웠다.

" 무척 급한 일이라서 그러니 곧바로 세이쥬서까지 와 주었으면 좋겠구나"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4월 30일 오후 2시 30분경, 타이지도우 X쵸메의 공원의 공중 화장실에서, 20대 후반의 여성이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발견한 것은 근처의 주부로, 목에 나일론 끈이 감겨져 있었다. 누군가가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은 명백했다.

사망 추정 시각은 그날 오후 1시 30분 전후. 백주 대낮의 범행임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목격정보는 없었다. 사체에 난폭한 짓을 한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지갑 등의 소지품이 없어진 것으로 보아 당초 사건은 노상강도에 의한 범행으로 생각되었다.

소지품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피해자의 신원은 곧바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공원 쓰레기통에서 차 공원 호텔이름이 적힌 봉투가 발견되었고, 지문 등으로부터 피해자가 소지하고 있던 물건이라는 것이 판명. 종이 봉투의 내용물은 결혼식의 초대장으로, 짐을 줄이기 위해 범인이 버린 것 같았다. 곧바로 호텔에 문의한 결과, 살해당한 여성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피해자는 나고야 시에 거주하는 토고 유카리라고 하는 28세의 여성으로, 4월 29일 아침,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신칸선으로 상경했다고 했다. 그날 밤은 피로연 잔치 때문에 호텔에서 1박한 뒤, 살해당한 당일 오전 11시에 호텔을 체크 아웃 했다고 했다. 양친에 따르면 유카리는 도쿄의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도내의 회사에서 근부하다가 2년전에 나고야로 돌아와 집안 일을 돕고 있었다고 했다. 30일은 도쿄의 동창 친구와 만난 뒤, 밤까지 나고야의 자택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고 했다.

살해당하기 직전 피해자의 발자취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옷 주머니에서 새것인 성냥 상자가 발견된 덕분이었다. 그 성냥 상자에 범행 현장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상점가에 위치한 카페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카페 [카자미도리]의 주인은, 피해자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토고 유카리는 학생시대부터 가게의 단골로,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자주 얼굴을 내밀곤 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방문이 점차 뜸해져 슬슬 얼굴 보기 힘들어 졌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30일 오후, 시계바늘이 1시를 가르키기 직전에 유카리가 오랫만에 가게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친구 결혼식때문에 상경했다가 들렸다고, 대학 동창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었습니다만-"

그러나,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만날 상대는 오지 않았고 유카리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때에, 가게에 남자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와서 '그곳에 토고 유카리라고 하는 여성분은 계십니까?' 라고 물었다. 시각은 1시 10분경. 주인은 유카리에게 전화를 건네주었지만, 전화를 건 남자는 자기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유카리는 곧바로 상대와 이야기 했고, 이야기가 끝나자, 만나기로 한 상대는 오지 않게 되었다고 주인에게 말하고, 서둘러 계산을 했다. 그 때 '담배는 피지 않지만, 모처럼 가게에 온 기념으로' 라고 말하고, 계산대에 놓여 있던 가게 이름이 들어간 성냥 상자를 집어 들고 주머니에 넣었다고 말했다-

노리츠키 경시는 타이지도우의 사건 개요를, 요약해서 아들에게 설명했다. 린타로는 잠버릇 탓에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넘기며 물었다.

"사건 내용은 대체로 알겠습니다만, 그것과 [벨코포 시모다]의 사건과의 사이에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그렇게 재촉하지 말거라. 토코 유카리가 숙박한 호텔 프론트를 조사한 결과, 객실에서 걸은 전화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더구나. 유카리가 전화를 건 것은 29일 오후 5시 2분부터 4분까지의 하나 뿐이였다. 그런데 건 곳의 전화번호를 확인한 결과, 그것이 세타가야구의 맨션 [벨코포 시모다]의 206호실이라는 것이 밝혀졌거든"

경시가 그렇게 말하자 린타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카자키 부부의 집이요?"
"그렇다. 아직 본인에게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토고 유카리와 사카자키 미도리는, 확실히 같은 대학에 적을 두었던 동급생이었던 것 같다. 때문에 30일 오후ㅡ 유카리가 타이지도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해서 기다렸던 상대라고 한다면, 사카자키 미도리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지"
"토고 유카리의 29일 오후 6시대의 알리바이는? 설마 그 다이잉 메시지는 (=)등호 (토고), Y의 말을 조합했을 지도..."

경시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아니다. 유카리는 친구 결혼식의 피로연에 출석한 뒤, 오후 6시부터 롯퐁기의 가게에서 끝날때 까지 2차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밤은 늦을 때까지 술을 마셨던 것이 확인되었다. 같이 있던 회사시대의 친구들의 증언이 있기 때문에, 알리바이는 확실하다고 볼 수 있지. 그렇다는 것은, 토고 유카리가 [벨코포 시노다]의 사건에 직접 관여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란다"

경시는 거기까지 말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린타로는 턱에 손을 대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2시 지나서 전화를 걸어왔던 남자라고 말하신 부분이 신경이 쓰이는군요"
"아아, 아마 그 남자가 유카리를 살해한 범인일거야. 뭔가 구실을 대고 유카리를 가까운 공원까지 유인해 낸 뒤, 그 장소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겠지. 밝혀진 대로 계획적인 범행이야. 지나가던 강도의 짓은 아니야. 소지품을 훔쳐간 것은, 강도를 당한것 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위장일 뿐이지"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면, 범인은 어떻게 유카리가 그 카페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카자미도리]라고 했죠? 가게 이름은"
"그렇다"
"- 어? 잠깐 기다려 주세요"
린타로는 눈을 감고, 카자미도리, 카자미도리 라고 여러번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등을 곧게 펴고 번쩍 눈을 떴다.

"그렇구나. 그 다이잉 메시지는 그런 뜻이었구나!"
"뭔가 알아낸거냐?"

경시가 조심조심 물어보자, 린타로는 싱긋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쯔부라야 아케미 범인설이 부정된 것에 대한 휴유증은 없는 듯 했다.

"예. 이번에는 틀림 없습니다. 같은 실패는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조금 정리해 보도록 하죠- 토고 유카리는 29일 오후 5시를 지나 [벨코포 시노다]의 206호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마 유카리는, 학생시대의 동급생이었던 사카자키 미도리와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겠지만, 미도리는 그 때, 담편 애인 맨션을 감시하고 있어서 집에 없었죠. 전화를 받은 것은 집을 지키고 있던 동생 아케미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아카네는 그때까지는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는 것이 가능했었죠. 유카리의 용건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수사 결과로 미루어 볼 때, 아마 다음날 만날 약속을 하는 것이었겠지. 혹은 전에 약속을 했었다면, 그 확인을 하기 위한 전화였을 수도 있고. 시간이나 만날 장소 같은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전화를 건 흔적이 없는 이상, 유카리는 집을 지키고 있던 동생 아카네에게 언니에게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 자연스럽겠죠?"
"흠, 그래서?"
"다음날 유카리의 발자취대로라면, 메시지의 구체적 내용을 추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토고 유카리씨로부터 전화. 타이지도우의 [카자미도리]라는 카페에서, 오후 1시에 만나자] 최소한 이 정도의 정보를 아카네에게 전해준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다음은, 유카리로부터 전화를 받은 아카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도록 하죠. 그녀는 확실히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 전화 옆에 놓여져 있던 메모 패드에 지금 말한 내용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거실의 사이드 보드 위에 메모용의 필기용구가 없었나요?"

라고 린타로가 물었다. 경시는 범행 현장의 상태를 떠올렸다.

"음, 그렇게 말하니, 메모 패드 옆에 검은 사인펜이 있었던 것이 기억 나는구나"
"검은 사인펜. 그것으로 분명해 졌습니다. 아카네는 유카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만날 장소와 시간의 메모를 적었다- 그러나 [風見鷄 (카자미도리)]라고 하는 가게 이름이나, 喫茶店(카페)라고 하는 단어는 항상 한자를 적는 것은 획수가 많기 때문에 메모에 적는 것은 귀찮은 글자죠.  전화를 계속 하던 도중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미도리는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로 생략하여 메모를 남긴 것이 분명합니다. 종이와 펜을 좀 주시겠습니까? 뭐 이런 식으로-"

"아카네가 살해당할때 까지, 이 메모는 메모 패드 제일 위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그녀가 누군가에게 등을 찔리고 빈사 상태로 범인을 가리키는 단서를 남기는 순간에도 메모 패드 위에 이 문자열이 있었던 것이죠. 우리들이 그 가능성을 놓쳤던 것은, 아카네가 메시지를 적은 메모를 사인펜으로 후루룩 써서 2장째의 종이에 흔적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그 다이잉 메시지는, 새 메모지에 써서 남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글자가 적혀 있었을 가능성은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완전한 실수야. 그런데 그렇다고 하는 것은, 피해자는 사인펜으로 쓴 메시지 메모 위에 붉은색 볼펜으로 이콜 Y라고 써서 남긴 것이었군"
"그렇습니다. 이런 식이죠"

"아카네는 범인에게 습격당하기 직전까지, 빨간 볼펜을 써서, 미니-코미 잡지의 인터뷰 원고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최후의 체력과 기력을 짜내어 단서를 써서 남겼을 때도 편집자로 일하던 발상의 연장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는 등호가 아니고 문자열을 소거하기 위해 쓰는 이중선, [Y]는 필요한 문자를 보충하기 위해 사용하는 삽입기호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어쨌건, 그녀는 메시지를 쓰던 도중에 힘이 빠져서 삽입해야 하는 문자를 써 넣지는 못했죠. 메시지를 완성하기 전에 숨이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미완성이라도 이 문자열을 본다면 그녀가 추가로 써 넣고 싶었던 문자가 무엇인지는 일목요연합니다. 다름아닌-

"-사카자키 미도리인가... 하지만 미도리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네. 전에도 그렇게 말했을텐데?"

경시가 의견을 내자 린타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아까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미도리의 진술을 다시 한번 잘 검토해 보도록 하죠. 사건의 관계자가 사카자키 미도리의 모습, 아니 목소리라도 실제로 확인한 것은, 오후 5시 30분 이전과 7시 20분 이후의 일에 한정되는데, 그 사이에는 2시간 가까운 공백이 있습니다. 그 정도의 사간 여유가 있다면, 전차를 갈아타서 세타가야의 시노다 까지 왕복하고, 동생인 아카네를 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그렇게 말한다면야 미도리의 알리바이는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러나 그 2시간 사이에 미도리가 계속 남편과 그 애인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되지 않나? 특히 6시대의 미도리의 진술은 모조리 사카자키의 행동과 부합하고 있다. 만약 그 때, 미도리가 니시나마 마유미의 맨션으로 부터 떨어져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 사카자키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이 가능했겠니?'
"단순합니다. 너무나 단순해서 오히려 맹점에 빠져버린 것이죠. 미도리가 남편과 공모해서 미리 그 날의 행동에 관해 입을 맞춰 놓았다고 한다면 어떻습니까?"

경시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미도리가 사카자키와 공모했다고? 그런 바보같은!"
"그렇게 바보같은 것입니까?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은 침식을 같이하는 부부였습니다. 운명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죠. 사전에 세밀한 시나리오를 세워 세세한 곳 까지 입을 맞출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있었겠죠. 범행 당일, 사카자키가 그 시나리오 대로 행동하기만 한다면, 마유미의 맨션에 숨어서 감시하지 않아도 미도리는 그 사이의 움직임을 손에 잡듯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뒤에는 사람들 앞에서 두사람의 부부 사이가 위험한 것 같은 연기만 하면 되지요"
"- 기다려라. 자, 배달 피자의 건은 어떻냐? 미도리는 7시 조금 전에, 피자 배달원이 마유미의 맨션에 온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 일은 그 장소에 있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 아니냐?"
"아뇨. 그것도 아닙니다. 미리 배달 시각이 7시 전후가 되도록 사카자키가 타이밍을 맞춰서 피자를 주문하도록 마유미에 시킨 것일 뿐입니다. 확실히 그 전후의 미도리의 진술은 시간의 기억이 애매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피자 배달원도 미도리의 모습은 보지 못했고요"

"그렇게 한다면 구노 경부가 생각했단 사카자키와 마유미의 공모설과는 반대로, 니시나마 마유미는 간접적인 알리바이 증인으로 삼기 위해, 사카자키 부부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란 말이냐?"
"아마도, 그렇겠죠"

라고 린타로는 동의했다.

"사카자키 부부의 계획의 교묘한 점은, 니시나마 마유미에게 알리바이가 성립 하는 것 같이 타임 테이블을 만들어 놓고, 미도리의 입으로 그녀가 범인이라고 고발하게 한 점입니다. 물론 그들은, 마유미에게 아카네 살인을 뒤집어 씌울 생각은 전혀 없었죠. 다만 마유미의 알리바이가 성립한다는 것을 경찰에게 확인 시키면서, 반대로 마유미와 사카자키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다고 말한 미도리의 알리바이를 보강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제 3자일 뿐인 마유미를 끌어들인 것도, 부부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언뜻 보기에는 미워하는 것 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경시는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드디어 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것을 느꼈다. 린타로는 계속 말했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려 보지요. 미도리가 이 다이잉 메시지를 눈치챈 것은, 범행 직후는 아니고 8시 30분에 집에 돌아와서 사체의 발견자를 가장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미도리는 메모패드를 보고, 그곳에 자신의 이름이 거의 적혀 있는 것에 깜짝 놀라, 메모 용지를 찢어서 숨겼습니다. 그 때, 한장 아래의 종이에 볼펜 자국이 남아 있는 것까지는 눈치채지 못한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흠. 그렇게 된다면 이 전날 밤, 너가 쯔부라야 아케미에 관해서 세웠던 가설은, 그대로 사카자키 미도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겠군. 그러나 미도리가 범인이라면, 2색 볼펜의 글자색을 검은색으로 바꾸어 놓은것은 왜지? 검은색 잉크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빨간 색을 싫어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에에 굉장히 사소한 것이지만, 이유는 확실합니다"

"어떤 것이지?"
"미도리가 남긴 단서는, 단적으로 말한다면 [수정해 넣는다] 라는 뜻이기 때문이죠. 다시 한번, 범행 현장의 상황을 머리속에 떠올려 주십시오. 거실의 테이블 위에는, 아카네가 수정하고 있던 인터뷰 원고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메모패드의 메시지와 동시에 그것을 본 미도리는 [수정해 넣는다]라고 하는 말을 연상해서, 당연히 그것을 피하려고 서둘러 볼펜의 글자색을 바꿨겠죠."

경시는 목을 숙이고, 불만의 뜻을 표명했다.

"그러나, 미도리는 그렇게까지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있었을까? 메모 용지를 찢어 낸 이후에는 [킷사카자미도리]라고 하는 원래의 문자열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수정하던 뭘하던 아무것도 신경쓸 필요는 없어진 것 아니냐?"
"아뇨. 아버지.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은, 그 시점에는 그 메모를 남기게 한 토코 유카리가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에, 뭔가의 우연으로 아카네가 남겼던 메모의 내용이 밝혀질 가능성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미도리는 생각을 거듭, 아카네의 메시지가 문자 그대로 [수정해 넣는다]라는 것을 숨기려 했던 것이죠. 아마도, 유카리가 미도리가 집에 없었을 때 전화를 걸었던 것 자체가 미도리에게는 정말로 예상외의 사고였기에, 그 시점에는 아직 그녀의 입을 봉하는 것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겁니다"
"역시나"
"미도리가 당황하고 급해진 것은, 사정청취를 받고 있던 도중에, 이콜 Y라고 하는 볼펜 자국이 메모페드 아래 용지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된 때라고 생각합니다. 망연자실한 미도리는, 간신히 그 형태가 니시나마 마유미의 仁이라는 글자와 닮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그럭저럭 그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유카리를 살해할 결의를 굳히게 된 것은 그 때, 그 순간임이 분명합니다. 유카리의 입으로부터 [카자미도리]라고 하는 카페의 이름이 드러난다면, 자신의 범행이 들통날지도 몰랐기 때문이지요"

경시는 그 때의 일을 떠올렸다. 확실히 린타로의 말대로였다. 메모 패드를 보던 순간, 미도리가 숨을 멈췄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다만 경시는, 그녀의 반응이 의미하는 것을 완전히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

경시는 기분을 돌리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의 말 대로, 사카자키 부부가 공모했다라고 한다면, 토고 유카리를 살해한 것은 미도리가 아니라 남편 사카자키의 짓일 가능성이 높겠군. 사카자키가 세이쥬서에 출두했던 것은 30일 오후 3시를 지났을 때였다. 유카리의 사망추정시각은 오후 1시 30분경. 타이지도우의 공원에서 그녀의 입을 봉한 뒤, 흔적을 없에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세이쥬서에 나타날 여유는 충분히 있었겠구나"
"그렇습니다. [카자미도리]에 걸려왔던 전화도, 남자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무서울 정도로 철저한 사카자키 부부는, 사람 앞에서는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은 연기를 했지만, 실제로는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 받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범행을 위해 연락용 휴대전화를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미도리는 메모 패드에 남겨진 메시지로부터, 토고 유카리가 30일 오후 1시에 타이지도우의 카페에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남편에게 사정을 이야기해서, 선수를 쳐서 유카리의 입을 봉하라고 명령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동기는 뭐지? 사카자키 부부가 이 정도의 수단을 동원해서 연극을 꾸미면서 까지, 동생 아카네를 살해할 수 밖에 없었던 동기는?"

린타로는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어이어이 아버지.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아버지의 일 아닌가요?"

******

세이쥬서에 임의출두를 명령받은 사카자키 교우스케가 범행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 3일후의 일이었다. 기운을 잃고 어깨를 늘어트린 사카자키의 입에서 사건의 전모와 다치가와 아카네 살해의 동기가 밝혀지게 되었다.

다치가와 아카네 살해 범인과 알리바이 공작에 관해서는, 대부분 린타로가 추측한대로였다. 곧바로 사카자키는 토고 유카리를 타이지도우의 공원에 불러내어, 그 자리에서 살해한 사실을 인정했다. 29일 심야에 휴대전화를 통해 미도리가 범행을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사카자키는 20일 오후 [카자미도리]에 전화를 걸어 '아내가 급한 병으로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대신 내가 말했던 가게에 가려고 했지만 장소를 잘 알지 못해서 찾기가 어렵다. 가까운 공원에 있으니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유카리에게 전했다. 사카자키는 몇번 아내와 같이 토고 유카리와 만난 적이 있어서, 그녀는 공원에 와서도 전혀 의심을 품지 않았다. 준비한 나일론 끈으로 목을 조를 때에도 거의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카리의 가방을 가지고 간 것은, 강도의 범행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은 아니었고, 그녀의 휴대전화를 처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말할 것도 없이, 유카리가 [벨코포 시모다]에 전화한 것이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유카리가 호텔 객실 전화로 걸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사카자키는 굉장히 허탈해했다.

사카자키는 토고 유카리의 살해가 결국 실패한 범행으로 끝나 버린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범행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카리가 전화를 걸어왔던 것은, 계획외의 사고였고, 아카네가 남긴 다이잉 메시지의 의미를 깨닫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유카리가 아카네의 죽음을 알기 전에, 입을 막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메모 패드의 적혀진 메모를 본 미도리는 유카리가 휴대폰으로 전화 했다고 생각해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한번 그녀의 번호를 걸어 보았지만, 그 번호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것 같았다. 새로운 휴대폰 번호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유카리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카자미도리]에서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것도 이것 역시 너무나 위험한 방법으로 보였다고 했다.

또한 밝혀진 것은, 사카자키 부부가 아카네의 살해을 떠올리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사카자키가 니시나마 마유미와 불륜의 관계에 빠진 것이었다. 마유미는 돈 씀씀이가 헤픈 여자로, 사카자키가 돈을 계속 쏟아부어도, 바닥이 없는 눞과 같아서 좀 더, 좀 더라고 말하곤 했다고 했다. 여자의 기분을 계속 맞추어 주기 위해 사카자키는 결국 회사의 돈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들통나지 않고 맛을 들여 회사의 장부를 조작해서 결국 백만단위의 돈을 횡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회사 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소문마저 사내에 퍼지게 되어 6월의 결산기를 앞두고 사카자키는 자신의 목을 지키기 위해 조급히 장부의 구멍을 메우지 않으면 안되는 궁지에 몰렸다.

그렇다 해도, 그만한 돈을 쉽사리 융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카자키는 고민끝에 아내 미도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 궁지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 없는지 상담했다.

"이것을 기회로 니시나마 마유미와 완전히 손을 끊겠다고 약속해준다면, 뭔가 당신을 도울 방법이 없다고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라고 미도리는 말했다. 수년전, 미도리의 양친이 차례로 돌아가신 직후, 두 자매가 서로를 의지하기 위해 동생 아카네와 같이 서로를 상호 수취인으로 하는 생명보험에 가입했다고 했다. 아카네를 살해, 사망보험금을 받아넨다면, 지금까지의 회사 장부의 구멍을 메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사카자키는 처음에는 아내가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카자키 이상으로 미도리 쪽이 진심이었다. 그 진심에 이끌려 가게 되어, 곧바로 사카자키도 아카네를 살해하는 일을 결의하게 된 것이었다. 사카자키에게도 생각이 닿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미도리와 결혼하고 얼마간이 지나서, 대수롭지 않은 불장난의 결과로, 동생 아카네와 관계를 가진 적이 있었다. 서로가 거북했기에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미도리는 그 사실을 희미하게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출장으로 집을 비웠을때에 한해서만 동생을 집으로 부른것은, 남편과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탓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다.

아카네의 살해에는 1개월전부터 시간을 들여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했다. 니시나마 마유미를 알리바이 증인으로 세우자고 말한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미도리 쪽이었다. 아니, 그것에 한해서가 아니라 모든 계획과 실제 범행 전부에 있어서 주도권을 쥔 것은 아내쪽이었다. 범행당일이 가까와 오자, 사카자키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내의 진짜 동기는, 보험금도,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물론 동생에 대한 질투때문도 아닌것 같습니다. 나를 생각하는 대로 조종해서 같이 범죄에 손을 담그도록 움켜쥔 뒤, 영원히 자신의 손에서 내가 도망칠 수 없도록 속박하는 것, 미도리는 단지 그것만을 위해서 이번 범행계획을 세운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 한편, 아내 미도리는 범행을 부인. 의연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PS :   읽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재미있으셨나요? 오타와 의역 투성이라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내용 전개는 되는 수준이라 자평하고 있습니다^^ 재미있으셨으면 감상이라도 한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