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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9

[번역] 이콜 Y의 비극 (4)

제 3 막


다음날인 4월 30일은 연휴 이틀째의 일요일이었다. 그러나 노리츠키 경시에게는 평일과 다를바 없는, 아침부터 바쁜 하루였다. [벨코포 시모다]의 살인사건은 사건 발생 이틀채로 접어들었지만 해결이 어려울 것 같은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세이쥬서에서 개최된 제 1회 수사회의에서는 무사시노 외국인 강도단 전속 수사팀의 모습도 보였지만, 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수사본부의 통일 견해도, 경시의 생각과 같이, 범행의 단서로부터 볼 때 결국 다른 사건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있었던 사법 해부의 결과 역시, 감찰의 나카지마의 소견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사망 추정 시각은 전날 오후 6시부터 7시 사이. 흉기인 나이프는 슈퍼 등에서 대량으로 판매되고 있는 상품이어서 흉기의 입수 경로를 추정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는 것 이외의 특기할 만한 발언은 없었다.또한 수상한 사람의 목격 정보도 접수되지 않았다. 그동안의 수사 방침에 따라 사카자키 요우스케와 미도리 부부를 둘러싼 치정, 원한의 선, 그리고 피해자 다치가와 아카네의 교우관계의 방편 등 여러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시켜 나갈 것이 결정되었을 뿐이었다.

한편 오전중에 야마네코 운송의 도리야마 영업소에 조사를 갔던 구노우 경부는,

"야마네코 운송의 배달원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라고 확신에 가득찬 얼굴로 보고했다.

전달 저녁, [벨코포 시모다]에 물건을 배달한 담당자는 이시와타리 효우 라고 하는 삼십세의 운전수로 그도 직업 특성상 골든 위크와는 무관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구노우는 운 좋게도 그날 첫 배달에서 돌아와 영업소에서 자고 있던 이시와타리 본인을 만나 진술을 얻어낼 수 있었다.

쯔부라야 아케미로부터 전해받은 부재자 연락표를 보고, 이시와타리는 부정하지 않고 곧바로 자신이 썼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케미가 이야기 한 것과 같이 그 이전에도 205호실의 물건을 206호실의 사카자키 부인에게 전달해 준 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양쪽 어떤 집에서도 그 일로 불평을 들은 적도 없었다고 했다.

"-주소지에 '부재시 이웃집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손님과 짐의 종류에 따라 가능한 것이지만요. 그런데 어제는 언제나의 사카자키 부인과는 다른 분이었습니다. 아아 동생이셨습니까. 에, 살해당했다고요? 정말입니까? 내가 갔을 때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고 건강했었는데, 믿을 수 없군요. 아니 집 안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배달 시간이요? 거기 쓰여있는데로, 오후 5시 32분이 틀림없습니다. 의심되신다면 업무일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업무일지는 문자 그대로, 분 단위의 스케쥴이 가득 적혀있었고, 그 안에는 범행에 필요한 시간을 속일 수 있을만한 의심스러운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시와타리 역시 좋은 인상을 주는 인물로 영업소내의 평판도 좋았고, 손님과의 문제도 전혀 없었으며 우량 사원으로 회사로부터 표창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구노우가 상상속에서 그린 범인과는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오후에는 다른쪽 수사에 나섰던 수사팀 보고가 이어졌다. 먼저 피해자의 신변조사에 관해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돌연 죽음을 알게된 다치가와 아카네의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녀가 살해당할 것 같은 이유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이콜 Y라고 하는 다이잉 메시지를 보여주어도 뾰족한 해답은 얻을 수 없었다. 생전의 남성관계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만한 유력한 정보는 없었다.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아카네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미니-코미 잡지의 편집을 둘러싼 트러블의 가능성 이었지만 그것도 희박해 보였다.

그나마 도다시의 니시나마 마유미의 맨션 주변의 조사는, 착실히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니이조 그랜드 하이츠] 1층에 위치한 카페 "챨스턴"의 주인은 전일 오후 4시를 지나서 5시 30분까지, 커피 한잔만을 시켜놓고 자리에 계속 앉아있던 여성 손님의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창옆 좌석에 앉아 계속 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순간 서둘러 가게를 나가버렸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마유미의 맨션으로부터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편의점의 점원도 미도리의 얼굴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어제 7시 30분경, 전에는 본 적 없는 여성 손님이 찾아와 가게의 동전 투입식 복사기로 손으로 쓴 유인물을 대량으로 복사했다고 말했다. 직접 도와주지 않아서 별다른 접촉은 없었지만 슬쩍 보기에도  '뭔가 싫은 느낌' 이었다고 했다.

마유미 집에 피자를 배달한 배달원은 맨션 앞에 있었던 미도리의 모습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 대신, 512호실까지 피자를 가지고 올라갔을 때, 입구에 서 있던 마유미의 어깨 너머로 방에 남성이 와 있던 것을 슬쩍 쳐다보았다고 했다. 배달시각은 6시 55분경. 가게의 전표에 따르면, 주문 전화가 걸려온 것은 6시 45분이고 품목은 S사이즈의 피자 2장과 사이드 메뉴가 2인분. 전화는 마유미의 방에서, 주문했던 것은 여성의 목소리였다고 했다. 모두가 미도리의 진술과 부합하고 있었다.

노리츠키 경시의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모든 수사가 결국은 미도리의 진술의 뒤를 따라 확인하는 것이었을 뿐이고 수사가 진행되면 될 수록, 남편 요우스케와 마유미의 알리바이를 재 확인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카자키 요우스케가 세이쥬서의 수사본부에 스스로 출두한 것은 그날 오후 3시가 막 지날 때였다. 경시의 예상대로라면 좀 더 빨리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사정청취는 구노우가 담당했고, 경시도 그 자리에 동석했다. 사카자키는 럭비선수 같은 체격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동안을 가진, 뭔가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옅보이는 인물이었다. 회사에서는 그런대로 실적을 올리고 있었다고 했다. 슈트 케이스를 가지고 걸어들어온 것을 볼 때, 어젯밤은 자택에 돌아가지 않고, 어디선가 외박을 한 것으로 보였다.

"-신쥬쿠 비지니스 호텔에서 1박했습니다. 일 관계로 자주 가는 곳이라 일반인보다는 싼 요금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거든요. 저녁까지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라가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TV 뉴스를 보고 어제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인으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하셨습니까?"
"예.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어서..."
"그렇습니까. 사실은 어제 [니이조 그랜드하이츠]의 니시나마 마유미씨에게 연락해서 이 사건에 대해 들으신 것은 아닌가요?"

구노우가 추궁하자 사카자키는 일순 놀라며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부터 불륜의 건을 드러낼 각오를 한 듯, 생각을 조금 정리하는 듯 하더니 곧 그 사실을 인정했다.

"어제 오후의 제 행동은 아내 입에서 일부 들으셔서, 어느정도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미도리는 저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구노우는 싸늘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히 부인에게서 당신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여기서 전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직접 본인에게 듣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것보다도 수사를 위해서라도 당신 자신의 입으로 들려 주셨으면 하는데요"

사카자키 요우스케가 직장 부하로 있는 니시나마 마유미와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은 작년 여름경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불장난 정도로 생각했지만, 서서히 관계가 깊어져서, 결국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했다. 물론 도다시의 마유미의 맨션에 출입하게 된 것도 어젯밤이 처음은 아니었다. 1개월 정도 전에 거리에서 마유미와 우연하게 마주치게 되었을 때 부터, 아내가 자신을 의심의 눈으로 쳐다본다는 것을 눈치채었지만, 요우스케는 도를 더해가는 애인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연휴 첫날에 맞춰, 교토까지의 여행에 동행한 뒤, 이틀째 저녁부터 마유미를 만나기로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먼저 도쿄로 돌아오는 출장일정을 맞춰 놓았습니다. 물론 회사에는 그렇게 이야기 했지만 아내에게는 2박 3일이라고 거짓말을 했죠. 하룻밤을 마유미의 방에서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동행했던 부하 직원에게 뒤를 맡기고, 어제 오후 신칸선으로 귀경하여 그길로 도다시로 향했습니다"

"교토를 떠난 것은 몇시의 신칸선이었습니까?"
"15시10분발의 '노조미18호' 였습니다. 동경 도착은 17시 24분 이었고요. 2시간 반 까지는 투어의 손님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그것보다 빠른 열차를 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사카자키는 술술 발차시각을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알리바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확실해 보였다. 도쿄역에 도착해서부터, 사카자키는 츄오선과 사카케이선을 갈아타서 도다역에 내렸다. 마유미의 맨션에 도착한 것은 6시 15분 정도. 5시반에 도쿄역을 나왔다면 다른 곳에 들릴 시간 여유는 없었다. 그 때의 모습을 버스 정류장에서 아내에게 목격당했다는 것은 아직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사카자키의 표정을 차가운 눈으로 관찰하던 경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니시나마씨 집에 도착한 이후, 밖에 나간 적은 없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담배가 떨어져서 가까운 자판기까지 사러 갔었습니다. 마유미의 집에 도착한 뒤 15분 정도 뒤였던 것 같네요"
"6시 30분 경이라는 말씀이시군요. 혹시 그때, 니시나마씨의 담배도 같이 사시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걸 아시죠? 그렇구나! 미도리가 보고 있었던 거야! 이 여자가 정말..."

사카자키는 분하다는 듯 그렇게 외쳤지만 구노우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사정청취를 계속 진행했다. 마유미가 전화로 주문한 피자가 배달되었을때, 7시 직전 - 미도리가 인터폰을 눌러 마유미와 문답을 시작한 것은, 두 사람이 피자를 먹고 있던 도중 일어난 일이었다고 했다. 요우스케는 깜짝 놀랐지만 절대로 자신이 온 것은 인정하지 말고 집에서 나가지도 말라고 마유미에게 명령했다. 인터폰을 끊은 뒤에도 계속 벨이 울려서 그것이 멈췄을 때에는 두사람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사카자키는 [니이조 그랜드 하이츠]를 떠날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이제와서 집에 돌아가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만의 하나 미도라가 맨션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자리에서 들킨다면 어차피 변명은 통하지 않을 테고, 차라리 마유미의 방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저녁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돌아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면 불륜의 증거는 아무것도 없을거야...라는 등의 이야기를 마유미와 나누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밤에 경찰이 찾아왔을 때 결국 사카자키는 마유미의 맨션에서 도망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때 설마, 우리 집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미도리가 골탕을 먹이기 위해 경찰에 장난처럼 신고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어쩔 수 없이 곧바로 도망을 치게 되더군요. 마유미가 인터폰으로 경찰과 대화하는 틈에 집을 나와, 맨션의 비상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죠. 집에 돌아갈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신쥬쿠까지 가서 아까 이야기했던 비지니스 호텔에서 하루 묶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망친 것은 불륜의 현장을 들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 뿐이지 경찰에 대해서 아무런 숨기는 것도, 그리고 숨길 이유도 없습니다"

사카자키는 보기에 괴로울 정도로 마지막 말을 강조했다. 사카자키의 진술이 일단락 된 후, 경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남자에게는 꼭 한마디 해 줄 것이 있다.

"어쨌건, 사카자키씨. 부인이 '그랜드하이츠'의 현관에 니시나마 마유미씨를 욕하는 유인물을 뿌린 것은 알고 계십니까?"
"예. 마유미로부터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요"
"자. 천천히 봐 주십시오. 이것이 그 유인물입니다"

라고 말한 뒤, 경시는 미도리가 쓴 유인물 복사본을 들이 밀었다. 사카자키는 순식간에 얼굴이 굳은 채, 그 여자가 이런 노골적인 글을 썼다는 건가.. 라고 중얼거렸다. 경시는 엄한 목소리로

"부인은 어젯밤, 니시나마씨가 동생을 살해한 범인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대신에, 착각해서 아카네씨를 찔렀다는 것이죠. 물론 처음에는 당신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진술에 의해 당신들의 알라바이가 성립되어 버렸지만, 우리들은 당신이나 니시나마씨 중 한명이 살인범이라고 판정하고 있었습니다. 당신들 두 사람이 자유의 몸이 된 것은 미도리씨의 덕분임을 잊지 마십시오. 부인은 이번 일을 계기로 당신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사카자키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애절한 눈빛으로 경시를 바라 보았다. 경시는 내뱉듯이 말했다.

"오늘 일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돌아가셔도 됩니다"

사카자키 요우스케를 돌려 보내고 경시는 소지품을 정리하여 경시청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이쥬서를 나왔다. 차 안에서, 운전석에 앉은 구노우 경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 사카자키의 진술을 들을때, 좀 이상한 점을 눈치 채신게 있으십니까?"

경시가 담배불을 붙였을 때,구노우가 물었다.

"니시나마 마유미의 알리바이에는 구멍이 있는 것 같지 않나?"
"-라고 하신다면?"

"마유미는 5시 30분에 집으로 돌아온 후, 계속 맨션의 자기 집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7시 전에 피자를 배달한 배달원의 증언을 제외하고는 오후 6시대의 알리바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방에서 같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카자키의 진술 뿐이야. 그러나 사카자키와 니시나마가 공모하여 미리 말을 맞추어 놓았다면 어떻겠는가? 마유미는 5시 30분에 돌아와 화장품 세일즈를 가장한 사카자키 미도리와 대화를 나눈 뒤 그녀에게 들키지 않게 비상구를 통해 맨션을 빠져나와 [벨코포 시모다]로 향했지. 한편 교토로부터 신칸선으로 도쿄에 돌아온 사카자키는 6시 30분에[니이조 그랜드 하이츠]를 방문해서 스페어 키로 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512호실에서 마유미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면? 1시간 반 정도라면 니시나마 마유미가 차로 세타가야의 시노다까지 왕복해서 7시 직전에 [니이조 그랜드 하이츠]의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 하지는 않다고 생각이 드는구만"

"하지만 6시 40분에 피자주문을 한 것은 여자의 목소리였다는 증언을 잊으셨습니까? 덧붙여 연휴 행락객으로 꽉 차 있을 시간대인데 범행과 현장의 위장공작에 필요한 시간을 더한다면 한시간에 도다에서 세타가야까지 왕복한다는 것은 조금 어렵지 않겠습니까?"
"전화 목소리 정도는 얼마든지 속일 방법이 있었을 거야"

구노우가 말하자 경시는 웃으며 답했다.

"뭔가, 우리 아들놈 말버릇 같구먼. 하지만 두사람의 공모설에는 큰 문제가 있긴 하네. 마유미의 알리바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사카자키의 증언 뿐만은 아니거든. 아까 사카자키에게 말한 것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아내의 목격증언이 없었다면, 애인과 어떻게, 얼마나 입을 맞추어 놓았어도 결국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거든. 어제 오후 미도리가 마유미의 맨션을 방문한 것은 정말 우연히 남편 출장 일정에 의문을 품고, 그 의문을 집에 놀러온 동생에게 털어놓은 탓이거든. 만약 미도리가 동생의 충고를 무시했다면 두사람의 알리바이는 애매하기 그지없는 것이 되어버렸을 뿐이지. 그 정도의 알리바이로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두 사람도 알고 있었을 거야. 사카자키와 마유미가 그런 위험한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아무래도 생각하기 힘들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포인트가 아닐까요? 역으로 생각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사카자키는 아내의 성격을 고려하여 그렇게 행동할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어서 이번의 범행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미도리가 남편의 불륜을 눈치채고 출장일정에 의심을 품은 것도, 사실은 사카자키 자신이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도록 먼저 포석을 깔아 놓은 것은 아닐까요? 서재의 잘 보이는 장소에 마유미의 연하장을 방치해 놓은 것도 범행 당일의 오후에 미도리를 도다시의 [그랜드 하이츠]로 불러내기 위해서겠죠. 사카자키는 아내의 감시를 눈채채지 못한 척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던 거죠. 처음부터 그녀를 알리바이 증인으로 만들 생각이었을 겁니다. 6시 30분에 자기와 그녀의 담배를 사러 나온 것도 밖에서 감시하던 미도리가 마유미가 방에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구태여 그런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닐까요?"

"공교롭지만 그 추리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앞뒤가 뒤바뀐걸세"

경시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왜 그런가 하면, 범행 당일의 오후, 아내를 알리바이 증인으로 만들기 위해 도다시로 꾀어낼 것을 사카자키가 계획했다면, 같은 시각에 [벨코포 시모다] 206호실에 미도리가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잖나? 당연히 공범자 마유미가 미도리를 죽이러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사카자키와 마유미 두명 모두 미도리가 아니라 동생 아카네를 살해할 동기가 있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가능성은 생각하기 힘들군.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애인의 증언을 종합해 본다면 , 진상은 아직이야. 뭔가 다른 부분이나 가능성, 놓칠 수 있는 사소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네"

구노우를 위로하며 담배불을 끈 경시는 경시청으로 돌아오자마자 안경을 쓴 뒤, 부재 중 책상에 놓여진 서류더미로 눈을 돌렸다.

그 속에는 [벨코포 시모다]의 범행현장에서 압수한 증거물건에 관한 감식 결과 보고서가 놓여있었다. 이콜 Y라고 하는 다이잉 메시지가 남아있던 메모패드와 피해자가 오른손에 쥐고 있던 2색 볼펜의 철저한 검사결과를 읽고 있던 도중, 경시는 보고서의 한 문장에 깜짝 놀라 외쳤다.

"응? 이건 도대체 무슨 의미지?"

보고서를 보던 구노우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경시는 곧바로 내선 번호를 눌러 감식 담당관을 호출하여 보고서에 기재된 것을 물어았지만 '검사의 결과에 이상은 없습니다'라는 확신에 가득찬 답변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보고서를 사이에 두고 경시와 구노우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두사람 모두 그 검사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곧 구노우가 천천히 말했다.

"완전히 두 손 들었습니다. 역시 아드님에게 지혜를 빌리는 편이 좋겠네요"

**********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노리츠키 경시는 철저히 시간을 들여 [벨코포 시모다]의 살인에 관한 조사의 상황을 자세하게 아들에게 전해 주었다. 린타로는 황금연휴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처음에는 그다지 사건에 뛰어들 생각이 없는 것 같았지만, 화제가 이콜 Y라고 하는 다이잉메시지 대목에 이르자 눈을 빛내며 강한 호기심을 나타내었다. 경시가 마음 속으로 미소지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라고 하는 것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사실인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구나"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 뒤, 경시는 아들에게 물었다. 린타로는 다이잉 메시지의 사진 (편광 렌즈로 자국이 떠오르도록 촬영한 것)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음- 이것을 니시나마 마유미의 니시(仁)라고 읽는 것은, 좀 억지로 같다 붙인 느낌인데요. 사카자키 미도리가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기분은 알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할 경우 한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살해당한 다치가와 아카네는 마유미와 한번도 면식이 없었을 텐데 동생이 형부의 애인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찔린 순간 아카네가 얼굴도 알지 못하는 상대를 마유미라고 특정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너가 말하는 대로다. 뭐 범인이 스스로 이름을 말했다면 모르지만, 그런 연극같은 짓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

"그리고, 택배 배달부가 범인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야마네코 운송의 트레이드 마크를 그려서 남겼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쩌면 좋을까요.... 얼굴 그림을 그리는 순서가 다릅니다. 그림의 위, 아래가 반대로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귀, 눈부터 먼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의 순서가 아닐까요?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정하는 근거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린타로가 미소지으며 말하자 경시는 안색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좀 봐주거라. 하여간 이젠 정말 두손 다 들었다. 너의 의견을 좀 들려줄 순 없겠니?"
"그렇다면, 한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요- 아버지는 이 다이잉 메시지가 위조되었을 가능성은 생각해 보셨나요? 예를 들면 제 1 발견자인 사카자키 미도리가 남편의 애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서요"
"미도리가 범인이라는 뜻이냐?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구"

경시가 소리치자 린타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고요. 동생의 사체를 발견했을 때, 미도리는 분명히 남편의 범행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입니다. 남편을 감싸고 그 의심을 불륜 상대인 니시나마 마유미에게 향하게 하기 위해, 그 장소에서 순간적으로 가짜 다이잉 메시지를 만들어 내었을 가능성이 있죠. 집에 돌아온 미도리가 거실에서 사체를 발견했기 때문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쯔부라야 아케미가 있는 곳으로 가는 사이, 아주 잠깐이지만 빈 틈이 있었겠죠. 그 때 아카네의 볼펜으로 전화용 메모 패트에 仁, 다름아닌 니시나마 마유미를 가르키는 메시지를 쓴 뒤, 볼펜을 피해자의 오른손에 쥐여 주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정도로는 확실히 일부러 만든 듯한 티가 나기 때문에 메모 패드의 첫장을 찢어낸 후, 범인이 가져간 것으로 위장한 것이죠. 물론 아래 종이에 볼펜 자국이 남아 있을 것은 계산한 것일테고요"
"흠, 가설이지만 꽤 흥미롭구나. 하지만 실제로는 확실히 무리야. 피해자의 손가락에는 사후경직이 시작되고 있었기에 너의 가설대로라면 미도리가 사체를 발견했던 8시 30분의 경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어야만 하거든. 사체의 오른손에 볼펜을 쥐어 준다는 것 자체가 아마 불가능했을거다. 아카네가 죽을 때부터 볼펜을 쥐고 있어서 사체의 오른손을 메모 패드 위에 올려놓고 눌러서 메모를 썼다고 해도, 감찰의가 뭔가 이상을 눈치채는 것은 당연해. 마침 그렇게 이야기하니 한가지 놓친것이 있는데, 감식 결과로는 보고서에 이해불능을 기술했던 것이거든. 그 문제가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구나"

경시는 머리속을 꽉 채우고 있던 것을 말했다. 아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제일 흥미로운 먹이를 최후까지 남겨놓았던 것이었다. 린타로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해불능이라고 적혀 있다고요?"
"피해자가 쥐고 있던 적과 흑 2색 볼펜을 철저히 조사한 결과, 검은 쪽 볼펜은 잉크가 없었다더구나. 훨씬 전 부터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였다는 거지"
"검은 쪽이 쓸 수 없는 상태? 그래도 아버지가 현장에서 조사했을 때에는 검은쪽 버튼이 눌려져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렇단다. 덧붙여 보고서의 기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메모패드에 남아있던 이콜 Y의 흔적은 잉크가 나오지 않는 볼펜의 끝으로 눌러 쓴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 필압이랑 메모 용지 표면의 상태로 볼 때, 한장 위의 용지에 적은 글자 자국이 남은 것이 틀림 없다더구나. 나에게는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검은 쪽은 쓸 수 없는 상태였다지만 빨간 쪽은요?"
"그것은 쓸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현재 아카네는 습격당하기 직전까지 미니코미지의 인터뷰 원고에 빨간 색 볼펜으로 수정사항을 기입하고 있었던 탓에, 그렇지만 그게 도대체-"
"잠깐 기다려 주세요"

린타로는 곧바로 얼굴 앞에 손을 모아 경시의 말을 막았다. 얼마간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다가, 다이잉 메시지지의 사진을 끌어 당겨 놓아서, 팔짱을 낀 채로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흡사 동물원 우리안의 곰 같은 모습이었다.

이윽고 흥분 상태가 가라 앉은 뒤, 린타로는 경시 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빨강과 검은 2색 볼펜. 정말이지 재미있군요"

라고 말했다.

"감식의 검사결과로부터 뭔가 알아낸 것이 있냐?"

경시가 묻자 린타로는 미소지으며 답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확실히 이 다이잉 메시지가 범인, 혹은 관계자가 고의로 조작한 가짜 단서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어요"
"사카자키 미도리의 일인가? 확실히, 그건 아까 들었지"
"아뇨. 그것도 있지만, 뒤에서 다치가와 아카네를 찔러 살해한 범인이 범행 직후에 다이잉 메시지를 위조했을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콜 Y의 해석은 우선 제껴두고, 그것이 작성되었을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죠. 이 메시지가 가짜 단서라면, 그것은 어떠한 수순으로 남겨진 것이겠습니까? 아까 말한바와 같이 위조한 메시지는 그 대로 메모패드에 붙어 있다면 확실히 너무 작위적이라 부자연 스럽죠. 그래서 범인은 메모 패드 제일 윗 장 종이에 볼펜으로 이콜 Y라고 쓴 뒤, 그 종이를 찢어 가져가 버렸다- 라고 가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밑의 종이에 자국이 남는것은 감안한 것이겠죠"

경시는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히 나는 현장 상황을 봤었지만, 나도 너가 말한 대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경우, 범인은 메모패드에 메시지를 쓴 뒤, 절명한 직후의 피해자의 손에 2색 볼펜을 쥐어 주었을 것입니다. 아까의 사카자키 미도리의 위조설과 다른 것은 이 점 뿐이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경우에는 범인 자신이 실제로 이 2색 볼펜을 사용했다고 하는 점입니다. 즉 사체 발견시에 피해자가 쥐고 있는 볼펜, 검은쪽 버튼이 눌러져 있는 상태였다는 사실은, 범인이 검은 글씨로 위조 메시지를 썼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체에 볼펜을 쥐여준 뒤에 펜의 글자색을 바꾸었을 가능성은 제가 보기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조사가 허술한 틈을 노렸다 하더라도, 결국 지금처럼 메시지의 진실성이 사라져 버릴 뿐입니다. 그러나 범인이 검은색으로 위조 메시지를 작성했다는 것은, 그 시점에서 볼펜의 검은 잉크가 막 떨어져버리고 쓸 수 없는 것에 눈치 챘을 것입니다"
"흠.. 그건 너가 말한 대로지"
"그래서 범인은 빨간 색 버튼을 눌러 빨간 글씨로 메시지를 썼겠죠. 빨간 쪽은 쓸 수 있었으니까, 그것이 제일 자연스럽고 이치에 맞습니다. 그리고 빨간 색 버튼을 누른 채, 즉 빨간 색 볼펜을 밖으로 끄집어 낸 상태로 볼펜을 피해자의 손에 쥐여 주었더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죠. 이것은 확실히 모순됩니다. 따라서, 이 가설의 전제조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이콜 Y라고 하는 기호는, 범인이 고의로 조작한 가짜 단서가 아니라 피해자 본인이 써 남긴 진짜 다이잉 메시지라는 것이죠"

경시는 머리의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 담배불을 붙였다. 아들의 이야기에 홀딱 넘어가 버린 탓도 있었지만, 이제까지의 논증에 있어서는 별달리 이견을 이야기 할 것도 없었다.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러면, 다음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다치가와 아카네가 2색 볼펜의 어느쪽 색을 사용하여 메시지를 남겼을까, 라고 하는 문제입니다. 우선 검은쪽을 검토해보죠. 물론 피해자에게 있어서는 자기가 사용하는 볼펜이기 때문에 검은쪽 잉크가 떨어져서 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쪽 버튼을 눌러 메모패드에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아버지?"
"아아, 그 정도는 알겠다. 뒤에서 범인이 돌아올 경우를 대비해서, 잠깐 보더라도 아무것도 써 있지 않은 상태로 보이게끔, 자국밖에 없는 백지의 메시지를 써서 남겼을테지. 그렇게 한다면 범인을 그냥 가버리게 할 수 있었을테니까"
"명답! 역시 아버지. 대단하십니다"

린타로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 경우에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감식 결과로 밝혀진 것과 같이, 메모 패드에 남겨진 메시지는 잉크가 없는 볼펜 끝으로 쓰여진 자국이 아니라 바로 위에 있는 종이에 쓴 글자가 밑의 종이에 자국이 남았다는 것 때문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제일 위의 종이에 쓰여진 오리지널 메시지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대로 범인이 찢어서 가져가 버렸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결국, 피해자가 보이지않는 백지에 메시지를 남긴 것을 범인이 방심하고 가버리는 대신에 범인은 그 흔적을 눈치챈 것이겠죠. 그러나 아버지. 조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 잉크가 나오지 않는 볼팬으로 쓴 백지위의 메시지의 존재를 눈치챈 뒤 그것을 찢어서 가져갈 정도로 주의깊은 범인이 메모패드 바로 한장 아래에 있는 종이에 남은 볼펜 자국을 그냥 지나친다고 한다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경시는 감탄했다. 이 녀석, 확실히 날카로운데가 있어.

"역시. 확실히 그런 실수는 있을 수 없겠지, 라고 하는 것은 그 가능성도 아니라는 것이겠군. 그렇다면 남아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 아카네는 빨간색 볼펜으로 메시지를 써서 남겼다는 것밖에는 없을텐데, 그것도 역시 의문을 완전히 풀 수는 없는것 같다. 피해자가 쥐고 있던 볼펜의 글자 색이 바뀌었다는 것은 왜인가, 라는 의문이"
"예. 그게 문제입니다"

라고 답하고 린타로는 이야기를 계속하기 위해 바른 입술을 적셨다.

"-피해자 본인이 메시지를 남긴 직후, 검은 버튼을 눌러 볼펜의 글자색을 바꾸어 놓았을 가능성은 없겠죠. 도대체 그런 짓을 할 이유도 없고, 그녀는 그 때 거의 숨이 넘어가는 상태에서 메시지를 써서 남기는 일에 모든 힘을 다 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때문에 볼팬 글자색을 바꿀 여유같은것은 없다고 보아도 좋겠죠. 또 그녀가 숨진 직후에, 근육의 반사적인 운동이 이상한 작용을 해서 검은 버튼이 눌려졌을 가능성도 희박하고요. 그같은 우연이 일어날 가능성은, 물론 제로라고 할 순 없겠지만 한없이 낮을 것입니다. 이 두가지 가능성이 모두 아니라고 한다면, 결국 검은색 버튼을 눌러 볼펜의 글자색을 바꾼 것은 그녀를 살해한 범인의 소행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논리에 모순이 있잖냐? 너는 아까, 조사가 허술하지 않는 한 드러날 염려가 있기 때문에, 범인이 볼펜의 글자색을 바꾸어 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을 텐데"

경시가 묻자 린타로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뇨.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범인이 검은색 볼펜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에 한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범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거죠. 또한 범인은 피해자가 빨간색으로 적은 메모용지를 찢어서 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볼펜 글자색이 바뀌어 있는 것을 드러날 염려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알겠다. 그렇다고 한다면 왜 범인은 그런 짓을 한건가?"

린타로는 숨을 들이 마셨다.

"이제부터, 제 추측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만... 범인이 볼펜의 글자색을 바꾼 것은 빨간색 잉크로 기록된 피해자의 다이잉 메시지를 메모 패드로부터 찢어서 가져가 버린 것과 같은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한 피해자의 손에서 볼펜을 빼서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는 흔적 그 자체를 없애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 때는, 뭔가 다른 사정으로 - 그것은 뒤에 설명드리겠습니다만 -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거죠. 때문에 범인은 차선책으로 볼펜의 글자색을 바꾸는 짓을 한 것입니다"
"기다려봐라. 범인이 메모 패드의 메시지를 찢어서 가져가버리고, 볼펜도 가지고 가 버리고 싶어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만, 차선책으로 글자색을 바꾼다고 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구나. 왜 그게 차선책인거냐?"

"메모 패드에 남겨진 메시지의 내용에 관계없이 처음부터 범인은 다이잉 메시지가 빨간색 잉크로 쓰여졌다는 것 자체를 알리고 싶어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물론 피해자가 그렇게 한 것은 그것 외에는 뭔가 쓸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범인은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죠. 빨간색 볼펜으로 기록된 메시지를 보았을 때, 글자색의 선택에도 피해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 있습니다. 때문에 범인은 메모 패드의 메시지를 찢어버리는 것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쥐고 있던 볼펜의 쪽에도 손을 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검은색쪽으로 바꾸지 않더라도 빨간색 볼 버튼을 잠구어 놓기만 하면 충분한 것 아니었겠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아버님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나 범인은 억지로 무리해서까지 볼펜의 글자색을 검은색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꿔 말한다면, 그만큼 빨간색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요? 간단히 볼펜을 속에 넣어 잠궈놓는 것 만으로는 어떤 색이 사용되었을지 추측할 가능성이 반반이기 때문이죠. 즉, 범인은 검은 버튼을 눌러 끄집어 내면서까지 피해자가 빨간색 메시지를 기록했다는 사실 자체를 완전히 은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틀림없이 순간적 판단으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흠. 그렇다면 범인이 그 정도로 빨간색 글자를 싫어한 이유는 왜냐?"

경시가 묻자 린타로의 눈이 지금까지 이상으로 예리해졌다.

"그렇죠. 거기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범인이 빨간색 메시지를 싫어한 이유는 어쩌면 잉크색 자체가 범인을 나타내는 수단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예를 들면 범인 이름 일부에 赤, 혹은 적색계통의 색을 표시하는 문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범인이 필요 이상으로 신경질적이 된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사건의 관계자 속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나요?"
"적색계통 이라고 한다면 아카네의 이름 뿐이지만 그녀는 피해자잖냐. 해당하는 인물은 전혀 없는걸. 음.. 잠깐 기다려라. 너가 말한대로라면 주색의 주(朱), 205호실의 쯔부라야 아케미(朱美)를 말하는 것이구나!"

린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시는 놀란 채로 눈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되는데? 그리고 이 정도의 증거로는-"
"하지만 근거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쯔부라야 아케미의 일을 머리속에 떠올리고, 또 한번 이 이콜 Y라는 메시지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좋습니까? 아버지는 지금까지 이 두개의 기호, 혹은 문자의 위치관계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이콜 Y라고 하는 메시지는 피해자가 직접 종이 위에 기록한 오리지날 필적은 아니고, 메모 패드 종이 한장 밑에서 자국이 남은 흔적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라고 하는 것은 그 흔적이 넘는 과정에서 뭔가의 실수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지요"

실수? 경시는 잠깐 생각하며 목을 갸웃했다

"하지만 흔적이 남는다는 것은 메모 용지를 위에서 무겁게 내리 누르는 글자가 아래에 남았을 뿐이다. 실수가 생길 가능성은 아무것도... 그런가! 중요한 메시지를 쓰고 있는 도중에, 위 종이가 움직여 버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그 메모 패드라고 하는 물건은 사용한 종이를 찢어낼때 백지의 아직 사용하지 않은 부분까지 반 정도는 중심에서 어긋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피해자가 오리지널 메시지를 기록했던 첫번째 메모 용지도 그런 일이 일어났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급하게 빨간색으로 메시지를 쓰고 있는 도중에, 그 종이가 움직여버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죠? 어쨌건 그 결과 이 '='과 'Y'라고 하는 두개의 기호의 위치관계가 처음 썼을 때와는 다른 흔적으로 두번째 종이에 남겨져 버린 것입니다"

경시는 다이잉 메시지의 사진을 집중해서 관찰했다. 잠시 뒤, 그 입에서 부터 깜짝놀란 외침이 터져나왔다.


"- 이콜 Y가 아니라 엔인가? 엔(円) 확실히 쯔부라야 (円谷)이라고 하는 것이구만!"
"예. 그렇게 그 기호는 빨간색 볼펜으로 쓰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쯔부라야 아케미라는 이름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은 불보듯 뻔했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케미가 이 메시지를 눈치챈것은 범행 직후가 아니라 사카자키 미도리가 귀가해서 동생 시체를 발견한 뒤의 일인것 같습니다. 미도리가 밖의 통로로 뛰쳐나왔을때, 아케미가 혼자서 범행현장으로 들어간 것은 알고 계시죠? 그 때, 빨간색으로 엔이라고 하는 메시지가 기록된 메모 패드를 발견한 아케미는, 곧바로 자신의 범행을 나타내는 단서라는 것을 알고 급히 메모를 찢어버렸죠. 곧바로 아케미는 사체의 손에서 볼펜을 꺼내려고 했지만, 그때는 사후경직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은 불가능했고요. 미도리의 눈이 있기때문에 그렇게 꾸물거릴 수도 없었을겁니다"
"흠, 아까 말했던 뭔가의 사정이라는 것은 그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그래도 아케미는 피해자가 빨간 볼펜으로 메시지를 남겼던 것에 주의를 쏠리게 하고 싶지 않았겠죠. 그래서 자선책으로 피해자의 손에서 튀어나온 검은색 버튼을 눌러 놓았습니다. 검은색 볼펜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몰랐기 때문에 그랬겠죠. 그 때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고 손톱 끝으로 버튼을 눌렀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경시는 아직 반신반의했었다. 경시는 자신의 머리속을 떠돌아 다니는 의문을 린타로에게 믈었다.

"확실히 다이잉 메시지에 관해서는 그것도 말이 되는 것 같구나. 그러나 쯔부라야 마유미가 범인이라면 살인의 동기는 뭐겠냐? 동생 아카네와는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언니 미도리와 사람을 착각해서 살인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구나. 그렇다고 하는 것은 특별히 친하지도 않은 동생 쪽을 죽일 이유가 있었다는 걸까?"
"제 생각이긴 하지만, 범행은 발작적인 것으로 보이는군요. 어제 저녁, 택배편으로 배달된 짐 때문에 아케미와 아카네 사이에 뭔가 다툼이 생겼던 것이 아닐까요? 그 이전 옆집에 맡겨 놓았던 짐들은 문제가 없었다고 했지만, 어제에 한해서는 전례가 깨진것이죠. 205호실의 짐을 받아 놓은 것은, 친한 이웃 사람인 사카자키 미도리가 아니라 동생인 아카네 쪽 이었다고 했잖습니까. 부재연락표를 보고 짐을 받으로 간 아케미는, 뭔가 사소한 일 때문에 현관에서 아카네와 말다툼을 벌인 것일테죠. 순간적으로 머리에 피가 치솟은 아케미는 빈 손이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서, 칼을 숨긴채 다시 206호실을 방문했을 겁니다. 사과한다는 핑계를 대고 안으로 들어섰겠죠. 그때 방심하고 있던 아카네의 등 뒤를 있는 힘껏 칼로 찔렀을 겁니다-. 미도리가 귀가했을 때, 아케미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206호실에 나타났던 것은, 애시당초 택배물을 놓고 아카네와 말다툼한 일을 숨기기 위한 위장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쯔부라야 아케미의 어젯밤 알리바이에 대해, 뒤는 캐 보셨습니까?"

아들에게 지적당할때 까지 왜 그 가능성은 눈치채지 못했을까? 경시는 스스로 자괴감이 들며 자신의 실수를 통감했다. 경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사카자키 부부에게 완전히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가족이랑 유원지에 갔다 오며 초저녁에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7시 30분에 돌아왔다고 말했지만 의심이 가는구먼. 좋아, 내일 아침이 되자마자 아케미의 알리바이를 수사하도록 하겠다"

******

그렇지만, 사건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깨끗하게 빗나갔다. 다음날 수사관의 수사에 의해, 쯔부라야 아케미의 오후 6시대의 알리바이가 입증되었기 때문이었다.

범행 당일 오후 6시부터 6시 50분까지, 아케미와 가족 3인은 [요미우리랜드]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것이 확인되었다. 레스토랑 점원이 쯔부라야 일가의 좌석과 테이블을 기억하고 있었고, 영수증도 기록되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케미의 진술은 결국 사실로 입증되었다. 어디에도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즉, 쯔부라야 아케미는, 다치가와 아카네를 살해한 범인일 수 없었다.

믿고 의지했던 린타로의 추리도 틀려버렸던 것이다.

PS : yuuhi님이 글을 남겨주셨는데 노리"츠"키 린타로가 아니라 노리"즈"키가 맞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다시 확인해보니 말씀대로셨습니다. 그래도 번역을 블로그에 후루룩 해버린 탓에 글자 검색을 일일이 해서 고치기가 어려우니 감안해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yuuhi님의 좋은 정보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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