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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31

2013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2012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10년차, 열 번째 블로그 결산 보고입니다. 강산이 변했네요.

2013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8 (47)권, 기타 장르문학 3 (8)권, 역사서 21 (15)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0 (4)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4 (4)권, 기타 도서 13 (17)권으로 모두 99 (95)권입니다(괄호는 작년). 작년보다 좀 늘기는 했는데 결산의 기준이 될만한 10권 이상 읽은 분야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추리 / 호러, 역사서, 기타 도서 뿐입니다.

결산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2013년 베스트 추리소설 :

"점과 선"

단평 : 명불허전의 고전명작.

올해도 추리소설은 읽은 양에 비하면 흉작이었습니다. 작년보다는 낫지만 별점 4점을 넘는 작품이 딱 두 개, 별점 4.5점인 이 작품과 4점인 "미스터리의 계보" 두 편에 불과했으니까요. 때문에 이 작품이 올해의 베스트입니다.

덧붙이자면, 올해는 단편집에서 성과가 많았는데 특히나 "순서의 문제""꽃 아래 봄에 죽기를",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 3"에서 별점 4점짜리 단편이 있었으니 참고하시길.

2013년 워스트 추리소설 :

"조선 명탐정 다산 정약용"

단평 : 소설 이하

별점 2점 이하의 작품도 수두룩했던 올 한 해이지만 이 책은 그 중 군계일학이라 칭할 만합니다.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잡문에 불과하거든요. 자료적 가치 때문에 점수를 좀 주기는 했지만 솔직히 별점 1점도 과합니다.

2013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전쟁연대기 1,2"

단평 : 내용과 자료적 가치 모두 최고

두말할 것도 없는 올해의 베스트.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데 심지어 50% 할인된 가격에 구입했다는!

2013년 워스트 역사 도서 :

"과학사의 뒷얘기 4"

단평 : 추억팔이치고는 과한 가격

재미 측면에서는 딱히 나쁘다고 하기는 어려우나, 옛 추억을 되새기며 구입한 가격에 비하면 책의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 워스트로 꼽습니다. 역시나 추억은 추억일 때가 아름다운 법이네요.

2013년 베스트 기타 도서 :

"왕도둑 호첸플로츠"

단평 : 명불허전의 고전명작 (2)

딸아이를 위해 구입한 동화인데 여전한 재미와 흥분을 가져다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일러스트까지 최고예요.

2013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셜록 홈즈 추리 파일"

단평 : 치졸한 홈즈 이름팔이

홈즈의 이름을 빌어 팔아먹으려는 얄팍한 상술이 돋보이는 퍼즐책.

결산평 :

작년보다는 많이 읽고 개인적 목표인 100권에 근접했기에 나름 만족합니다. 아무리 추리소설 블로그라고 하더라도 편식이 심하기는 한데, 제가 재미있게 생각하고 읽고 싶어하는 책을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죠.

여튼 이제 10년차에 접어들었군요. 이글루스도 안정화의 희망이 슬슬 보이는 듯해서 다행입니다. 제 목표인 추리소설 1,000권 읽고 리뷰하기까지 370권이 남았는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잘 버텨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여러분들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성취하시는 한 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제 블로그를 들러주신다면 일상 생활의 소소한 것과 남들이 관심 두지 않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진짜 디테일한 분임이 분명하니 내년에는 정말 잘 되실 겁니다~! 해피뉴이어~!

2013/12/30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 시마다 소지 / 한희선 : 별점 2점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 4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검은숲

총 네 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초기 작품집.

"점성술 살인사건"은 일본에 추리문학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걸작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미타라이라는 탐정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이후 작품들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엘러리 퀸과 반 다인의 뒤를 잇는 잘난척 덩어리에다가, 뭐 하나 못하는 게 없는 잘난 인물로 묘사되니 마음에 들래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나 "마신유희"에서는 그 정점을 찍었었죠.

다행히 이 책 수록작들은 위의 단점이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점성술 살인사건" 바로 직후에 이어지는 초기작인 덕분이겠지요. 신본격 시대를 연 작가답게 고전적인 퍼즐 미스터리 스타일 정통 본격 추리물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네 편의 이야기 모두 장르가 조금씩 다른 것도 재미를 더합니다. 첫 번째 작품은 전형적인 알리바이 깨트리기가 밀실 살인과 결합되어 있으며, 두 번째 작품은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세 번째는 붉은 머리 클럽이 연상되는 일종의 사기극을 그린 소품이고 네 번째는 유괴극이거든요.

또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의 화자가 이시오카가 아니라는 것도 특이한 점이에요. 물론 두 번째 작품은 화자가 다르다고 해서 딱히 달라진건 없습니다. 미타라이의 경이적인 재즈기타 실력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고요. 반면 세 번째 작품은 사건이 워낙에 독특하고, 화자의 버릇이 사건의 핵심 중 하나라는 점에서 화자 변경이 꽤 효과적으로 사용된 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작품마다 편차가 크고 불필요한 설정, 묘사가 많기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만, 최악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작품 "질주하는 사자"만 빠졌어도 별점 0.5점은 더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은 비교적 괜찮고, 무엇보다도 트릭만큼은 신본격의 장을 연 작가의 명성에 어울립니다. 본격 퍼즐 미스터리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장르소설의 명가 "검은숲"에서 출간된 책답게 장정과 디자인도 괜찮습니다.

덧붙여, 작가의 후기에서 미타라이 작품의 영상화를 반대하는 이유가 전형적인 일본인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구현하고 싶었다는 캐릭터론이 펼쳐지는데, 전형적인 일본인에 대한 설명은 수긍이 가지만 미타라이라는 캐릭터가 그것에 반하는 캐릭터라는 것에는 절대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을 싫어하고, 높은 사람을 싫어하는 잘난척하는 독설가에다가 사람의 본성에 관심이 많으며, 음악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다는 점에서 아무리 봐도 "셜록 홈즈"의 판박이에 불과하니까요.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숫자 자물쇠"

"점성술 살인사건"에 등장했던 다케코시 형사가 미타라이에게 미궁의 밀실 살인 사건의 해결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점성술 살인사건" 바로 직후에 이어지는 초기작입니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순간 이동 트릭(정체되는 도로 위 트럭 짐칸에 있던 범인이 몰래 빠져나와 지하철로 이동하여 범행을 저지르고 다시 복귀!) 만큼은 아주 좋았습니다. 과연 짐칸을 향해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을지는 의심스럽지만, 습관처럼 계속된 출근 방법이라는 전제가 있으니 딱히 문제라 할 수 없겠지요. 미타라이가 의외의 자상한 면을 드러내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밀실 트릭 자체는 별게 아니고, 초반 3단 숫자 자물쇠의 조합에 대한 경우의 수가 의도적으로 잘못 전달되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총 3자리의 번호가 1부터 0까지로 조합된다면 누가 생각해도 10*10*10으로 경우의 수는 1,000개밖에 없잖아요.

아울러 범인이 왜 번호를 하나씩 시험해가며 문을 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해불가예요.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고 딱히 미궁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보이지 않은 만큼 그냥 힘으로 뜯어도 됐을 텐데 말이죠. 동기 역시 설득력이 약해 아쉽더군요.

때문에 별점은 2점. 숫자 자물쇠 이야기를 빼고 좀 더 짧고 깔끔하게, 설득력 있는 동기로 전개하는 게 좋았을 겁니다.

"질주하는 사자"

재즈 동호인 모임에서 진주목걸이 도난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 구도는 기차에 치인 시체로 발견되는데...

구도가 죽는 순간까지 도저히 기차에 치인 장소로 갈 수 없다는 불가사의를 다룬 작품.

앞선 리뷰에서 말씀드렸듯 수록작 중 최악입니다. 일단 트릭부터 설명하자면, 조잡한 장치 트릭입니다. 문제는 작품 내에서의 설명으로는 독자가 떠올리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T자형으로 이루어진 맨션에 대해 작품 내에서 계속 장황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요.

범행의 동기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몇 명 없는 모임에서 보석 도난 사건이 일어난다면 용의선상에 오를 건 분명한데 어떻게 빠져나갈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모임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돼지요.

작품과는 무관한 미타라이의 세계급 재즈기타 실력 설정 역시 짜증나는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천재성의 묘사가 캐릭터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전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아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점수를 준 부분은 진주목걸이 절도와 관련된 마술 트릭과 마지막 숫자 "7"에 대한 가벼운 농담 같은 반전뿐입니다.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화자인 세키네가 부장에게 자기가 겪은 가장 희한한 일을 이야기하는데 옆에 있던 미타라이가 간단하게 그 진상을 풀어 알려주는 이야기.

핵심은 이른바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회장이라는 젠키치 할아버지의 사기극인데, 미타라이의 추리는 비약이 심해 논리적으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젠키치 할아버지의 웅대한 이상이 너무 맛깔나게 묘사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추리와 트릭은 영 아니더라도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라는 발상에 점수를 줍니다. 희한한 일, 기이한 조직, 그리고 예상치 못한 범죄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붉은 머리 클럽"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기도 하네요.

"그리스 개"

그리스의 일본인 해상왕 아들이 유괴된 사건을 다루는 전형적인 유괴극인데, 유괴극의 가장 큰 숙제인 몸값 전달에 대한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등장하는 암호 트릭도 꽤 기발했고요. 초반의 타코야키 가게 도난 사건까지 엮어 전개하는 짜임새도 괜찮았습니다.

범인이 누군지 피해자가 눈치챈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거 아닌가라는 문제, 그리고 "개"에 대해 지나치게 비중을 둔 전개는 약간 의아하지만 평작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3/12/27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3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 - 6점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왠일인지 2권을 건너뛰고 읽어버렸네요. 2권과 연결된 내용이 적지는 않았지만, 수록작은 독립적으로 읽는 데에 별 지장은 없었습니다.

총 3편의, 연작식으로 구성된 중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긴 이야기의 실타래가 하나씩 풀려나가는 구성은 여전히 좋습니다. 적절하게 삽입된 복선 역시 짜임새를 느끼게 해 주고요. 일상계스러운 분위기와 함께하는 잔잔한 묘사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이번 권에서부터 본격적인 "책탐정"으로서의 활약이 시작되는데 책에 대한 자료 조사와 설정이 정말 대단합니다. 책 자체가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 추리의 단서가 되는 구성은 절묘해서 탄복을 자아낼 정도예요. 앞으로는 "뒤마클럽"처럼 정말 희귀한 책을 찾아나서는 모험물스러운 에피소드가 등장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오리코의 어머니에 관련된 비밀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런 배경 설정 없이도 비블리아 고서당과 관련된 책, 사람들 이야기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으니까요. 추리적으로 조금 뜬금없다는 점도 여전하고요.
또 고우라의 활약이 전무하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독자에게 정보를 공정하게 제공하기 위한 화자 역할에는 충실하지만, 추리적으로 너무 하는게 없다 보니 역할이 미미해져버렸어요. 이래서야 말없고 힘좋은 머슴과 다를 게 없지요. 한때 유행했던 말없는 보디가드 같은 존재? "경성탐정록"의 왕도손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반성해야겠네요.

덧붙이자면 책의 표지와 내지는 예쁜데, 각 단락별로 추가된 일러스트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책과도 별로 잘 어울리지 못했고요.

그러나 이런 단점들은 사소합니다. 장점을 희석할 정도는 아닙니다. 추리소설, 그리고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놓치지 마시길.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저도 생각난 김에 가지고 있는 절판본이라도 정리해서 "hansang 고서당"이라는 카테고리나 만들어 추가해봐야겠네요. 전문 콜렉터분들이 가지고 계신 것에 비하면 창피하기 그지없지만요.

2013/12/26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6점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12.24일이 회사의 대체휴무일이었습니다. 연휴가 생긴 덕에 폭풍 독서를 진행했네요. 

이 작품은 고서 전문 헌책방 '비블리아'에 책을 팔러 온 손님과 책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일상계 중단편 연작집입니다. 단편이라고 보기는 조금 긴 호흡인, 총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록작 별로 주제가 되는 책이 있고 그 책에 관련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책과 관련된 사건이 책과 인물과 연계선상에 놓이고요. 이를 충분히 있음직한 소소한 일상계로 그려내고 있는게 특징인데, 방식은 미야베 미유키의 "쓸쓸한 사냥꾼"과 동일하지만, 이 작품 쪽이 보다 일상계스럽고 책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헌책방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몇 년 전 추리소설 절판본을 찾아 인터넷과 오프라인 헌책방을 유람하던 때가 떠올랐거든요. 원하던 책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은 잊기 힘들지요. (이런 것들이죠) 당시 귀했던 절판본이 속속 재간되고 있어서 지금은 빛이 많이 바래긴 했지만요.

하지만 비현실적인 설정과 등장인물은 조금 거슬렸고, 추리도 비약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등장인물의 비현실성이 심한 편입니다. 추리력 뛰어난 고서점 점장은 "명탐정 홈즈걸"과 같이 유사한 전례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긴 생머리 - 거유 - 중증의 독서 중독자라는 설정은 "R.O.D"의 요미코 리드맨과 똑같은데 너무 만화스럽습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책을 못 읽게 된 고우라는 더 와닿지 않았고요. 그냥 운동계열 근육 백수가 시오리코의 미모에 끌렸다는 설정이 더 현실적이었을텐데 말이죠. 아니면 차라리 일본어를 잘 못 읽는 외국인이라고 하던가... "더 리더"를 반대로 비튼 설정인데, 영화만큼의 설득력을 보이지 못해 유감스러웠어요. 아울러 마지막 에피소드는 작품과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고요.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헌책방과 추리, 그리고 일상계를 사랑하는 저에게는 딱 맞는 성격의 작품이긴 합니다만, 전체적으로는 약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어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니만큼 추리소설 입문자분들께는 추천드립니다. 만화나 드라마와 같은 콘텐츠에 더 적합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되는데, 있다면 한번 찾아봐야 겠습니다.

그나저나... 생각난 김에 자주 가던 헌책방 사이트나 한번 둘러봐야겠습니다.

2013/12/25

내 안의 살인마 - 짐 톰슨 / 박산호 : 별점 3점

내 안의 살인마 - 6점
짐 톰슨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텍사스 작은 마을의 신뢰받는 부 보안관 루 포드는 창녀 조이스와 얽힌 뒤,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정신적인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조이스를 그녀를 짝사랑하는 엘머 콘웨이와 엮어 살해했지만 조이스가 큰 상처를 입고도 살아있는 채 발견되자 루는 걷잡을 수 없게 폭주하게 되는데....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지만, 운 좋게 그것을 숨겨온 주인공 루 포드가 특정 사건을 계기로 폭주를 벌이는 이야기를 1인칭으로 그린 범죄 - 심리 서스펜스물입니다.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1952년도에 발표된 고전이기도 합니다. 이 리스트가 없었더라면 아마 읽게 되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여튼 찾아 읽어보게 되었네요.

작품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돌직구'입니다. 죽이고 싶고, 죽여야 하면 바로 죽입니다. 이렇게 시종일관 돌직구 스트라이크가 팍팍 꽂힙니다. 때문에 루 포드 캐릭터 묘사가 가장 중요한데 캐릭터 묘사, 즉 직구의 구위 역시 일품입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굿 가이로 통하지만 실상은 잔인무도한 살인마 주인공이 이렇게 설득력 있게 표현된 작품도 드물지요. 1인칭 시점으로 여러 가지 살인 계획을 세우고 수행하는게 냉정하면서도 하나의 게임처럼 그려지고 있는데, 정말로 오싹할 정도였어요. 그야말로 소시오패스 그 자체인 인물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귀공자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가 살짝 연상되는데, 작품 발표 시기가 테드 번디 사건 20여 년 전이라는걸 보면 그야말로 이 분야의 선구자라 불러도 무방할 겁니다.

이러한 캐릭터를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그리는 묘사도 대단합니다. 하드보일드 작가가 맘먹고 그려낸 "나쁜 놈"이라는 이미지인데, 1인칭 하드보일드 스타일 범죄물은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 등의 작품이 있기는 하나 이 작품의 범인은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라요. 타당한 동기는 뒷전인 살인마니까요.

아울러 최초 범행에서 받은 뒤 우연찮게 사용한 20불의 존재가 동네의 껄렁한 불량아인 조니에게 이어지고, 교도소 안에서 살해한 조니가 사실 알리바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다른 희생양을 찾아 약혼녀를 살해하고, 협박범을 강도로 위장하여 살해하는 등의 모든 범행이 1인칭으로 그려져서 도서 추리물 같은 느낌을 전해주는 것도 독특했어요. 마지막의 조이스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고요. 사실상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다는 점에서 더더욱 말이죠.

그러나 불필요한 잔설정이 많은 것은 좀 아쉽더군요. 초반에 루 포드가 다국어를 하고 심심풀이로 미적분을 푸는 지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만, 이후 그러한 설정은 별로 드러나지 않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루 포드가 정신적 문제를 가지게 된 계기인 가정부와의 에피소드, 그의 죄를 뒤집어썼던 의붓형 마이크에 대한 이야기도 솔직히 사족이었습니다. 이왕지사 돌직구를 날리려면 그냥 나쁜 놈이다는 식으로 가는 게 더 좋았을 겁니다.

전개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콘웨이는 처음부터 진범을 알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초반에 보안관 밥에게 무언가 이야기했다는 것이나, 조니 파파스의 아버지 가게를 리모델링하는걸 돕는 식으로요. 그런데 왜 루 포드를 그냥 방치해서 사건을 키우는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또 변호사 빌리 보이 워커가 루 포드를 정신병원에서 꺼낸 것 때문에 불필요한 마지막 사건이 또 일어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이렇게 설정면의 오류나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는 어딘가의 연재물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만듭니다(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문제는 있지만 강력한 소설로, 컨트롤은 별로지만 돌직구 하나로 타자를 제압하는 투수가 연상되는 작품입니다. 지나치게 잔인하고 묵직한, 불쾌감 남는 묘사 탓에 모든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어려우나 명성에 어울리는 가치는 충분하죠. 시대를 뛰어넘어 여러 차례 영화화 된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크리스마스에 읽고 리뷰를 올리기에는 좀 너무하네요....

2013/12/24

1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 이기웅 : 별점 2.5점

1의 비극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포레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마쿠라 시로는 아들 다카시가 유괴당했다는 전화에 황급히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유괴된건 다카시가 아니라 다카시의 친구 시게루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시게루는 아내 가즈미가 유산으로 힘든 시기에, 야마쿠라가 간호사 미치코와 불륜을 저질러 낳은 그의 친아들이었다. 야마쿠라는 범인이 지시하는대로 몸값을 전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나 실패했고, 결국 시게루는 시체로 발견되는데...

신본격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의 장편. 이른바 "비극 3부작" 중 두번째 작품이라는데 모르고 두 번째부터 읽게 되었네요. 읽는데 별 상관은 없었습니다.

뒤바뀐 아이의 유괴, 그리고 이어진 죽음에 얽힌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으로, 작 중에서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로 언급되는 "킹의 몸값"(영화는 "천국과 지옥")의 아이디어를 따 왔습니다. 요새 이 아이디어를 사용한 작품들을 많이 읽있네요. 쓰여진 시기는 전부 다르지만요. 당연히 표절은 아니고 "저물어 가는 여름"처럼 나름대로 변형하였습니다. 원전은 "실수로 유괴된 아이의 몸값을 내가 내야 하는지?"라는 딜레마가, 여기서는 "실수로 유괴된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 아이가 처음부터 목적이었다"가 핵심입니다.

실수나 아무 관련없는 인물인 줄 알았던 피해자가 진짜 타겟이었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야마쿠라 시로의 1인칭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가 감정이입하여 쉽게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글솜씨가 탁월합니다. 야마쿠라가 과거의 불륜과 현실이라는 양쪽 덫에 모두 걸리고, 그걸 빠져나가려 발버둥치는 묘사도 디테일해서 더욱 몰입하게 만들고요.

시체를 움직이는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처럼 신본격 기수의 작품다운 점도 눈에 띕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며, 적절하게 사용되어 재미를 더합니다.

그러나 작품의 수준은 미묘합니다. 이야기를 복잡하게 꼬아놓으려는 의도가 지나친 탓이 큽니다. 시게루의 친부가 야마쿠라, 다카시의 친부는 미우라라는 복잡한 관계부터 비현실적이며, 이 관계에서 촉발된 살의가 동기라는 것도 와닿지 않습니다.

게다가 미우라가 밀실에서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그 이유가 다이잉 메시지 때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설정은 당황스럽습니다. 누가 봐도 본인이 치명상을 입은 뒤 문을 잠궈서 발생한 밀실인데, 문을 잠근 것이 빗장이라는 말을 이용해서 다이잉 메시지를 남겼다는 건 억지스러워요. 범인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문을 잠그는 건 당연하잖아요? 또 담배 한대 입에 물 시간은 있었으면서, 피로 범인 이름을 쓸 생각도 안했다는 것도 역시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건 솔직히 제목과 연관시키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에 불과합니다. 미우라도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명탐정과 고위급 경찰을 이용한다는 터무니 없는 발상을 한 놈이니 죽어도 쌉니다만...

우연에 의한 전개가 지나칠 정도로 많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본격물을 표방한 작품에서 이런걸 문제로 삼기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정도가 너무 과했습니다. 야마쿠라가 조금만 참았어도 미우라의 알리바이는 노리즈키에 의해 무산되어 경찰 수사가 바로 시작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사건이 미궁에 빠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을테니까요. 사실 가즈미가 미우라를 살해한 것 역시 예고된 종말을 약간 늦추는 것에 불과한 무의미한 행동이고요. 어차피 미우라 단독 범행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용의자가 제거되는 전개도 아쉬웠습니다. 원래부터 가능성있는 인물군이 적은데, 미우라 → 미치코 → 도미사와 순으로 용의선상에서 사라져버리니 결국 장인 아니면 가즈미밖에는 용의자가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무리라면 사실 탐정도 필요없어요.

개인적으로는 미치코의 다카시 유괴 소동에서 밝혀지는 도미사와 진범설에서 끝내는 게 훨씬 좋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꽤 충격적인 결말이기도 했고 적절하게 마무리하기에도 괜찮은 결말이었으니까요. 위에 이야기한 어설픈 동기와 결합된 출구없는 새드&배드 엔딩은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아울러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야마쿠라 1인칭으로만 전개되는 탓에 노리즈키라는 인물의 역할이 작다는 것도 팬으로서 불만스러웠습니다. 야마쿠라 1인칭이 이야기의 박진감을 높이는데에는 큰 도움을 주었겠지만 이래서야 노리즈키 시리즈인지, 그냥 별개의 스탠드얼론 작품인지도 잘 모를 정도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최근 읽은 유사한 설정의 유괴물 중에서도 가장 처집니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이게 본격물이야!"라는 집착이 너무 강한 탓이지요. 좋은 재료를 쓸데없는 양념으로 망쳐버린 요리 느낌도 듭니다. 재료도 좋고 요리 솜씨도 나쁘지 않아 분명 먹을만은 한데, 영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2013/12/23

Q.E.D 큐이디 43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Q.E.D 큐이디 43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이미 45권이 나온 시점으로 뒤늦은 감이 있지만, 완독했기에 리뷰를 올립니다. 언제나처럼 강력사건 + 평범한 일상계(스러운) 물의 조합입니다. 각 한 편씩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인 "검증"은 아즈마야 제약 사장 코이치로가 살해당했던 사건을 2개월 뒤 검증한다는 내용입니다. 토마와 가나 컴비는 현장에 있었던 용의자들 역할의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되어 사건에 뛰어들게 되고요.

그런데 용의자가 당시 저택에 있었던 단 4명으로 한정된다는 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외부에서 침입자가 있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레이코와 시라다이의 관계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역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트릭도 레이코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유도하는 공작을 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게 없어요.
무엇보다도 시라다이가 구태여 사건 현장의 재검증을 벌일 이유가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진범이 유력한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검증쇼를 벌인다? 아무리 알리바이에 자신이 있어도 그렇지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토마가 유력 용의자 니시진의 무죄를 꿰뚫어 본 계기가 된 2만엔짜리 메론의 존재, 소리를 내지 않았어야 하는 이유, 사진 속 레이코의 태도를 통해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해내는 등의 사소한 디테일은 괜찮았지만 위와 같이 핵심 내용과 트릭이 별로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두번째 이야기 "진저의 세일즈"는 세계 최고라고 불리우는 세일즈맨 진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진저가 아내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거짓말을 못하게 된 상태에서, 어떻게든 계약을 따내야하는 딜레마를 그리고 있습니다. 설정만 놓고 보면 짐 캐리의 "라이어 라이어"가 떠오릅니다.
거액의 돈이 걸려있어서 일상계로 보기는 어렵지만, 전개 및 모두가 행복해지는 완벽한 해피엔딩 결말까지 괜찮았던 소품입니다. 특히 진저가 승승장구할 때의 사기(?) 행각이 역전의 발판이 된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더군요.

물론 진저가 막판 루돌프 1호를 띄운다는 사기를 벌인 행위 자체는 명백한 범죄라 그냥 빠져나갈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고, 핵심 트릭이라 할 수 있는 루돌프 1호의 이륙은 트릭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일종의 "특촬"에 불과하여 추리적으로 점수를 줄 부분은 딱히 없습니다. 토마의 역할보다 진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것이 많아 Q.E.D 시리즈라고 하기도 조금 애매하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평균 수준은 된다고 봐야죠. 별점은 2.5점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평균해서 2.25점... 2점으로 하죠. Q.E.D 특유의 학습 만화같은 내용도 별로 없는 등 전작보다 조금 못했는데 다음 권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2013/12/22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5점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 "여제"로 불리우는 2학년 선배 이리스가 문집 제작으로 바쁜 고전부에 사건을 의뢰했다. 미완성된 비디오 추리 영화를 보고 실제 진상이 무엇인지 추리해 달라는 의뢰였다. 고전부는 학교 축제용으로 해당 비디오 영화를 촬영한 2학년 F반 선배들 중 몇 명을 만났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진상을 추리해 나가는데...

바로 직전에 읽은, "빙과"에 이어지는 고전부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전작과 가장 큰 차이점은 장편이라는 점입니다. 또 일상계물이지만 본격 추리물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독특한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바로 줄거리 요약에서 소개한, 축제 때 상영될 미완성 비디오 영화의 트릭과 결말을 추리한다는 의뢰입니다. 덕분에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등장하는 작품임에도 무려 "밀실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 펼쳐집니다! 이렇게 일상계이면서도 밀실 추리물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 하나 때문에 이래저래 작품이 사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오레키 호타로가 추리한 '만인의 사각'을 비롯하여, 비디오 영화를 촬영한 2학년 F반 학생들의 의견이 '후루오카 폐촌 살인 사건', '불가시의 침입' 'bloody beast' 순서로 연이어 펼쳐지는건 작품 후기에 언급되듯 다수의 탐정이 등장하여 자신의 추리를 피력하는 작품인 "독 초콜릿 사건"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는데, 정통 본격 스타일의 '후루오카 폐촌 살인 사건'과 '불가시의 침입'은 물론, 오컬트 계열인 'bloody beast', 그리고 서술 트릭물인 '만인의 사각'까지 모두 추리적으로 즐길 거리가 많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지막 한 번의 반전이 더 있는 것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바로 고전부에 의뢰한 이유 - 각본을 쓴 학생이 병으로 쓰러졌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결말에 대한 추리가 필요했다 - 가 이해 불가인 탓입니다. 그래봤자 중병도 아닌데, 왜 직접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마지막까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정 추리가 필요했다면, 다른 동료 학생 추리 중 아무거나 하나를 사용한다고 큰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마지막에 밝혀진 진상 역시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완성된 영화가 아니라서 한 번 더 찍어야 했다면, 전반부 시체 발견 장면을 수정하는데 딱히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요... 또 오레키 호타로가 다른 사람들의 추리를 부정하던 것과 다르게, 자신의 추리에 존재하는 큰 구멍(자일의 존재)을 간과하는 것도 독자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솔직히 "고전부 시리즈"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올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지탄다 에루가 사건을 물어오기는 하지만, 이후에는 고전부와 관계없는 영상 제작팀원들의 추리와 오레키 호타로의 추리가 펼쳐질 뿐이거든요. 오레키 이외의 고전부원들에 대한 부가 설명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초반 이후에 오레키 호타로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리스 선배라는 새로운 캐릭터입니다. 이래서야 별개의 스탠드얼론 작품으로 발표한다 하더라도 무방했을 것 같아요. 오레키 호타로가 남들보다 잘하는 일을 찾아내어 의욕을 불태운다는 청춘 성장기스러운 전개도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너무 전형적이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감점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가벼운 일상계와 본격 추리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점에서는 추천드립니다. 특히 추리에 갓 입문하는 분들께 적합한 작품입니다.

덧붙이자면, 고등학생들의 학교 축제를 위한 추리극이 등장하는 일상계라는 점에서 "Q.E.D 35권"과 비교해서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와 연극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요.

2013/12/19

빙과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5점

빙과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회색을 선호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가 누나의 부탁(협박?)으로 가미야마 고교의 특활동아리 "고전부"에 입부한 뒤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을 다룬 일상계 단편 연작집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국내에서 예상외로 사랑받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출간은 순전히 애니메이션으로 더욱 유명해진 덕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애니메이션이 없었더라면 작가의 데뷔작일 뿐더러, 무슨 상을 탄 것도 아니기에 딱히 출간될만한 임팩트는 없거든요. 뭐 저 개인적으로야 작가에게 호감이 있는 편이라 국내 출간된 작품은 챙겨 읽는 편이고, 제가 좋아하는 일상계 미스터리물이기도 해서 주저 없이 읽어보게 되었지만요.

작품은 기대했던 대로, 그야말로 일상계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일상계 작품이더군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소소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분명히 열려 있던 부실의 문이 잠긴 이유, 매주 금요일에 똑같은 책이 대출되고 반납되는 이유, 고전부의 회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찾아내는 정도의 사건들이니까요. 이후 지탄다의 삼촌이 남긴 말과 33년 전에 학교에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지탄다의 삼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추리하는 약간 긴 분량의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역시나 딱히 큰 사건은 아닙니다. 빙과라는 회지의 제목이 삼촌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는 것 정도가 인상적일 뿐이에요.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소소한 사건이지만 충분히 우리 주위에서 있었음직한 것들이라 설득력 높고, 사건의 이유와 진상을 파헤치는 추리적인 재미 역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살인범이 넘쳐나는 부동고교가 비정상적인 거지, 고등학교에서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는 게 더 말이 안 되는건 당연하니까요.

필요 없는 에너지를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의 소유자이지만 주어진 정보를 조합하여 정확한 결과를 추리해내는 의외의 능력을 갖춘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 오감이 발달해 있고 섬세한 감성을 갖췄지만 의외로 행동파인 지탄다 등의 캐릭터들도 생동감 넘치면서도 현실에 있음직한 고등학생들 그 자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친구들도 감초 역할은 충분히 해 줍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작품 내에서 무리하게 성장기를 그려가는 전형적인 청춘물 느낌을 많이 전해주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고전부에 입부한 뒤 평범한 사건과 소소한 일상을 거치며 약간은 회색에서 물든 오레키 호타로의 변화 정도가 딱 적절했다고 생각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일상계의 단점인 밋밋한 이야기가 도드라지기는 해서 살짝 감점했습니다만, 일상계 추리물의 왕도를 걷는 작품으로 충분히 추천할 만합니다. 책의 장정과 크기 등 만든 모양새도 최근 본 책들 중에서는 최고로 치고 싶네요. 애니메이션도 구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고교를 무대로 한 설정과 소소한 일상 속 사건을 다룬 내용, 거기에 오레키 호타로와 고바토라는 탐정역 캐릭터의 속성까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소시민 시리즈와 굉장히 유사한데 왜 별개의 시리즈로 작품을 만들었는지는 궁금합니다. 뭐 하나라도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 없기에 하나의 시리즈로 일관되게 끌고가도 충분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2013/12/17

나의 로라 - 비라 캐스퍼리 / 이은선 : 별점 3점

나의 로라 - 6점
비라 캐스퍼리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모의 유명 여성 카피라이터 로라 헌트가 자택에서 총살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녀는 연인 셸비와 결혼을 앞둔 상태였다. 사건을 맡게 된 형사 마크 맥퍼슨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녀에게 빠져드는데...

원제는 "로라(Laura)". 여성 작가 비라 캐스퍼리의 작품입니다. 여성 작가가 쓴 하드보일드물의 대표작 중 한 편입니다.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에도 당당히 선정된 고전으로, 챈들러와 말로우가 모두 소개된 현 시점에서 본다면 국내 출간은 외려 늦어보이기까지 합니다(챈들러 완역은 하루키가 팬이라는 것이 잘 알려진 탓도 클 것 같긴 하지만요).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팜므파탈과 마초 탐정(또는 형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서사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형사 마크는 본인 스스로 무식하다고 여기지만, 꾸준한 독서를 통해 이지적인 면을 갖춘 노력가입니다. 여성을 함부로 무시하거나 혐오하지도 않고요. 강렬한 폭력 충동도 보이지 않는 냉정한 인물입니다. 여성 주인공 로라 역시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남자를 농락하고 벗겨먹으려는 악녀가 아닙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현재의 지위를 차지했고, 남자를 고르는 것도 본인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하는 독립적 여성입니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너무 빛나서 주변 남자들이 나방처럼 몰려들고, 그래서 서로가 불행해진다는 측면에서 보면 궁극의 팜므파탈일 수도 있겠지만, 여튼 이렇게 등장 인물들부터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현대적으로 느껴질 정도에요.

또한, 이러한 등장 인물들이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로 그려져 설득력을 더해 줍니다. 영화 각본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답게 상황별로 장면이 연상되는 묘사력도 빼어나며, 등장 인물들에게 딱 들어맞는 명대사가 잘 어우러져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명곡 "Smoke Gets in Your Eyes"가 초연되었던 뮤지컬 "로버타"의 언급 등 당대의 시대상을 알려주는 묘사 역시 깨알 같은 재미를 느끼게 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화자가 월도 - 마크 - 로라 순으로 바뀌며 전개되는 것도 좋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서술 트릭같이 이야기를 꼬아놓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확실하다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1인칭 시점 덕분에 각 캐릭터들에 대해 독자가 더 깊게, 상세히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월도가 얼마나 현학적이고 자기 과시욕으로 똘똘 뭉친 질투의 화신인지, 마초 경찰로 보였던 마크가 피해자로 알았던 로라에 대해 알아갈수록 왜 흔들리는지, 로라는 대체 어떤 여자인지에 대해서 이보다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요. 아울러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동기, 즉 월도 스스로 영원히 조종할 수 있었던 로라가 자신의 품을 벗어나게 되자 격렬한 살의를 품게 되었다는 것도 꽤 그럴듯하게 설명됩니다.

그 외에 셸비가 잃어버린 금담배갑, 그가 산 싸구려 술이 단서가 된다는 복선도 나름 잘 짜여져 있는 등 전체적인 전개도 충실합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일단 사건이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이앤이 로라의 집에 머물게 된 것, 셸비가 바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 모두 우연입니다. 최소한 경찰 신고만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도 월도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건 어려웠을 거에요. 아울러 로라의 유죄가 강하게 시사되는 상황에서 마크가 아무런 단서도 없이 그녀의 무죄를 믿는다는건, 기존 하드보일드에서 팜므파탈에게 사로잡혀 진실을 망각하는 남성 피해자 역할이 반복되는 것에 불과해 이 작품의 장점을 퇴색시키는 듯하여 아쉬웠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앞서 이야기한 복선 이외에는 별다른 인과관계 없이 사건이 벌어지는 편이라 눈여겨볼 부분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낭비된 복선이 거슬립니다. 예를 들면 꽤나 중요하게 언급되던 왈도의 골동품 사랑이 실상 전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최소한 로라에게 선물한 화병은 좀 더 비중 있게 다루어졌어야 하는데, 전형적인 맥거핀에 불과해 실망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왈도와의 사투를 다룬 결말도 헐리우드스러워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차라리 본인의 의지는 아니지만 모두가 불행해지는, 운명대로의 결말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장점도 확실하고 읽는 재미도 뛰어난 고전임에는 분명합니다. '엘릭시르' 시리즈다운 예쁜 디자인과 일러스트도 아주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형적인 남성향 하드보일드물에 식상하신 분들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영화화되어 큰 히트를 치고 하드보일드 영화 걸작선에 이름을 올렸다는데, 영화도 꼭 한번 구해보고 싶어지네요. 호러 영화로 더 알려진 빈센트 프라이스가 잘생긴 매력덩어리 셸비 역으로 출연한다니 더더욱이요!

2013/12/16

사또 인 다 하우스 2 - 김진태 : 별점 2점

"사또 인 다 하우스 1 - 김진태 : 별점 3점"

2권이 나왔는지도 몰랐는데 네이버북스를 둘러보다가 발견해서 바로 읽게 되었습니다. 2권은 출판물은 없고, e-book으로만 구해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1권의 핵심 재미 포인트가 무엇이었는지 작가가 많이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더군요. 제가 생각한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조선을 무대로 하여 동-서양의 가치관 충돌에서 벌어지는 작가 특유의 지적이며 현학적인 개그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오베르마스의 동-서양 퓨전 사찰인 "육탄사"라던가, 타로점으로 점을 쳐주고 여자 무당과 판타지 배틀을 벌이는 식의 개그들 말이지요. 또 하멜 표류 당시 벨테브레를 통역관으로 불렀으나, 너무 오랜 시일이 지나 말을 잊었더라...라던가, 짐이 소박맞은 여자와 살림을 꾸리는 등 당대 조선의 역사를 나름 연구하여 작품에 응용한 센스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2권은 1권의 단점이었던 과장된 상황에 의존하는 슬랩스틱 개그만 넘치는, 전형적인 캐릭터 개그물에 불과합니다. 그나마의 캐릭터 개그도 로빈슨의 비중이 커지고, 박포교와 육탄사 주지의 힘 대결 같은 뻔한 개그만 반복되어 지루하고요. 사실 로빈슨은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너무 뻔한,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라 큰 재미를 주기는 힘듭니다. 노예였던 짐이 성공하는 과정을 살짝 보여주는 개그 역시 현대 문물인 노래방을 '시조방'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구현한다는 흔해빠진 아이디어라 실망스럽긴 마찬가지고요.

아울러 로빈슨이 눈독들이는 사또의 딸 떡밥은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사로잡은 왜구 사또 나오리가 영의정 딸이라는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애매하게, 흐지부지 완결되는 결말도 별로였습니다.

물론 현학적인 재미를 주는 남만초 에피소드, "바람의 화원"으로 제시된 신윤복의 정체에 대한 설정을 "애원 신윤봉"이라는 화가를 등장시켜 조선 최초의 집단 누드화라는 결말로 마무리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작가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되기는 합니다(아래의 바위 두 개가 옆에 있는 나무에 기댄 여성의 은근한 표정이 그려진 음란한! 그림 참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장점도 있지만 1권에 비하면 단점이 두드러져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도 김진태라는 작가의 팬이시라면 대여료도 엄청 저렴하니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3/12/12

간만에 일상생활 속 단상 네가지

추리소설은 안 읽고 왠 단상이냐고요? 연말이라 그런지 이틀에 한번씩 술을 먹어서... 시즌이 시즌이니만큼 당분간 이전과 같은 독서는 좀 어려울 듯 싶네요. 그래서 간략한 단상이나마 몇자 끄적여 봅니다.

직장생활에 대하여 :

직장생활한지도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과 일해보았는데 요즈음 들어서는 무엇보다도 근태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업무 능력이야 사실 대단한 천재가 아니면 어차피 이 바닥에서는 비슷하거든요. 좀 처지는 정도도 협업에는 무리가 없고요. 심각하게 업무능력이 부족하다면 결국 자연스럽게 도태되어 버리죠.

그렇다면 결국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근태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 정도의 사람이 아니면 말이죠. 그런 사람이 같이 회사를 잘 다닐 리도 만무하고요. 진작에 그만두고 창업을 하거나 보다 높은 자리로 바로 올라갈 테니....

아울러 저의 십몇 년간의 직장생활을 돌이켜봐도 일 잘하는 친구가 근태도 좋았습니다.

사회생활에 대하여 :

개인적으로 사회생활은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범위가 넓으면 잘하는 것, 좁으면 못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생활 잘하는 게 사실 별거 없잖아요? 개인 시간이나 휴일을 희생한다던가, 취향을 희생한다던가, 최악의 경우 건강을 희생한다던가 하는 식이니까요. 문제는 중간 정도의 지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군요.

회자정리 거자필반 :

여태까지 필"방"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뜻은 확실히 알지만 글자를 풀어서 알고 있지 못해 벌어진 일인데 앞으로는 사소한 것이라도 조사하고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큰 망신 당하기 전에 말이죠.

해외여행, 견문 :

해외에 나가야 보는 눈이 넓어진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그런데 여행이 얼마나 견문을 넓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주위 배낭여행 갔다 온 친구들도 딱히 달라진 것도 없어 보이거든요. 저 개인적으로도 중국, 미국에서 좋은 경치 보고, 좋은 음식 먹고 다 해봤지만 그게 딱히 저에게 보탬이 된 건 없습니다. 물론 제 취향 탓일 수도 있습니다만 해외여행으로 견문을 쌓을 돈과 시간을 책을 읽는 데 투자하는 게 가성비는 더 낫지 않나 싶네요.

2013/12/09

블로그 개설 10주년

블로그 개설 10주년

잊고 살고 있었는데 저도 EST님과 같은 2003년 12월 7일 블로그 개설자죠. 때문에 이제 10주년이 되었습니다. 이틀 지나긴 했지만요.

2013년 12월 9일 현재, 3,655일째, 방문자수는 835,705명, 총 포스트 : 2,040개, 총 덧글 : 7,530개, 총 트랙백 : 357개, 총 핑백 : 1,209개입니다.

뭔가를 10년이나 해 왔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드네요. 비록 10년을 했어도 방문자수 백만도 넘지 못하는 마이너 중의 초 마이너 블로거이지만...

그래도 애초부터 목표였던 추리소설 1,000권 읽기는 착실히 진행 중이라 개인적으로는 만족합니다. 10년 동안 추리소설만 622권 읽었으니 단순 계산으로는 목표달성까지는 6년이 더 필요할 텐데, 그동안 이글루스가 버텨줄지, 제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다른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다가올 그날까지 열심히 달려보렵니다. 최소한 제 딸이 방문해도 부끄럽지 않고 자랑할만한 블로그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여튼 그동안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종종 찾아주세요. 제발~

2013/12/06

오시리스의 눈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이경아 : 별점 3점

오시리스의 눈 - 6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이경아 옮김/엘릭시르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만장자이자 이집트학의 권위자인 존 벨링엄이 친척집에 방문한 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실종되었다. 근처에서 실종 당일 몸에 지니고 있었던 스카라베 장식만이 발견되었을 뿐이었다.

2년 후, 의사 버클리는 왕진 중에 존의 동생 고드프리를 진료하게 된 인연으로 그의 딸 루스와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존의 실종과 그의 기이한 유언으로 인해 궁핍해진 고드프리와 루스를 돕기 위해, 그리고 불거진 유산 문제로 버클리는 은사인 손다이크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뒤이어 늪지대에서 존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되는데...

오스틴 프리먼의 명탐정 손다이크 박사가 활약하는 장편. 1911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이 책까지 나오다니 정말 세상 많이 좋아졌네요.

국내 출간된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힐만한 작품입니다(그래봤자 서너권이지만...). 대표작이라는 명성에 어울리네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미있거든요. 사건은 딱 한 개, 존 벨링엄 실종 사건 뿐인데 복잡한 유언장을 엮어서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으며, 추리적으로도 두 개의 트릭이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트릭 두 개 모두 지금은 널리 알려진 단순한 것이지만 사건에 딱 맞게 적절하게 쓰여 감탄을 자아내고요. 단순해서 설득력도 높습니다. 특히, 제목에서부터 중요하게 언급하는, 고대 이집트 유물을 이용한 기상천외한 사체 은닉 트릭이 볼거리입니다. 지금은 흔한 수법이지만 작품 발표 시기를 고려하면 충분히 원조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리하여 트릭을 파헤쳐 진상을 밝혀내는, 고전 "정통 본격물"다운 미덕도 장점입니다. 추리의 과정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넘치는 것은 당연하고요. 과학 수사로 유명한 손다이크답게, 시대를 앞서간 증거 수집 방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X선을 이용하여 미라의 내부를 촬영하는 장면이 묘사될 정도니까요.

아울러 중간중간에 버클리와 루스의 알콩달콩한 연애이야기가 적절하게 삽입되는 식의 완급조절도 아주 탁월합니다. 이러한 연애이야기는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과도 비슷해요. "붉은.."에서 화자였던 저비스가 손다이크 박사의 조수로 격상(?)되었을 뿐, 그의 후배인 버클리가 동일한 역할로 등장하여 읽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드는 애정 행각을 큰 비중으로 펼친다는 점에서요. 저는 아주 즐겁게 읽었습니다.

악역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덕적인 면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똑똑한 소시오패스 캐릭터인데 출간 시대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독특하게 잘 그려낸 것 같네요.

악역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똑똑한 소시오패스 캐릭터로, 출간 시대를 고려하면 상당히 독특하게 잘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범인의 동기가 설득력있게 그려지지 않은 점입니다. 유언장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유언장의 맹점을 이용해 거금을 확보할 생각으로 잔꾀를 부렸다는 설정인데, 그 이유와 방법이 설명되지 않거든요. 그의 말대로 사건의 발단이 애시당초 완전한 우연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 유언장의 맹점을 활용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지 전혀 모르겠어요. 작중 손다이크 등의 입을 빌어 설명되듯 "그의 동생에게 유산을 남겨주기 위한" 목적의 유언장인데 말이죠. 벨링엄을 살해하고 시체를 다른 곳에 숨길 생각이었을까요?

또 이 동기를 독자는 마지막 순간에서나 알 수 있다는 점도 정통 본격물로는 약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동기가 전혀 드러나지 않으니, 독자가 범인을 추리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으니까요. 손다이크 박사의 추리대로 범인은 그 사람일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혐의를 둘만한 설정이 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아울러 이집트 미라 안에 시체를 넣는다는 생각도 기발하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었을것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으로 묘사되는데 그러한 작업을 할 시간과 장소가 있었다면, 다른 식으로 처리하는게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었겠죠. 예를 들어 염산같은걸로 녹인다는 식으로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쓰여진 시대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재미를 생각한다면 별점 3점은 충분하죠. 저와 같은 고전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책도 예쁘게 잘 나왔지만 뒤의 해설 역시 꽤 풍성해서 좋네요. 무엇보다도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 연재로 유명한 유영규 기자가 쓴 글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2013/12/04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 정리

얼마전 올린 글에 필받아서 다시 정리해 본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
읽은 책 중 리뷰가 있는 것은 링크, 없는 것은 적색, 국내 출간되었지만 아직 안 읽은 것은 검은색, 그리고 미출간 작품은 회색으로 체크하였습니다.

100위가 두권이라 총 101권의 책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 중 국내 미출간작은 31권입니다. 남은 70권 중 49권을 읽었네요.
안 읽은 작품들은 취향이 아닌 것도 있지만 최근 소개된 작품도 제법 많으니 이번 정리를 기회삼아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읽고 소장도 하고 있는데 리뷰가 없는 작품은 다시 읽고 리뷰를 올려야겠어요. 왜 빠졌을까...

* 2013.12.17 "나의 로라" 추가 (총 50권 독파)
* 2013.12.25 "내 안의 살인마" 추가 (총 51권 독파)
* 2014.01.21 "몰타의 매" 링크 추가
* 2014.11.20 "맹독" 추가 (총 52권 독파)

* 2014.12.30 국내 출간작 추가
* 2015.12.08 "브랫 패러의 비밀" 추가 (총 53권 독파)
* 2020.02.01 "유리 열쇠" 추가 (총 54권 독파)
* 2020.05.23 "레베카" 추가 (총 55권 독파)
* 2020.10.08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추가 (총 56권 독파)
* 2020.11.8. "나선 계단의 비밀" 추가 (총 57권 독파)
* 2022.11.27 "로그 메일" 추가 (총 58권 독파)
* 2025.03.22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성녀의 유골) 추가 (총 59권 독파)

- 총 101권 중 국내 출간작이 74권, 미 출간작은 27권이네요. 제가 읽은 것은 73권 중 59권입니다.

1 "The Complete Sherlock Holmes", Arthur Conan Doyle. -셜록홈즈 전집
2 "The Maltese Falcon", Dashiell Hammett. "몰타의 매"
3 "Tales of Mystery and Imagination", Edgar Allan Poe - 에드거 앨런 포 단편집 (우울과 몽상)
4 "The Daughter of Time", Josephine Tey. "진리는 시간의 딸"
5 "Presumed Innocent", Scott Turow. "무죄추정"
6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John le Carre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7 "The Moonstone", Wilkie Collins. "월장석"
8 "The Big Sleep", Raymond Chandler. "크나큰 잠"
9 "Rebecca", Daphne du Maurier. "레베카"
10 "And then there Were None", Agatha Christie.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11 "Anatomy of a Murder", Robert Traver.
12 "The Murder of Roger Ackroyd", Agatha Christie.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13 "The Long Goodbye", Raymond Chandler. "기나긴 이별"
14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James M. Cain.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
15 "The Godfather", Mario Puzo. "대부"
16 "The Silence of the Lambs", Thomas Harris. "양들의 침묵"
17 "A Coffin for Dimitrios", Eric Ambler.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18 "Gaudy Night", Dorothy L. Sayers.
19 "Witness for the Prosecution", Agatha Christie. "검찰측 증인"
20 "The Day of the Jackal", Frederic Forsyth. "자칼의 날"
21 "Farewell, My Lovely", Raymond Chandler. "안녕 내 사랑"
22 "The Thirty-nine Steps", John Buchan. "39계단"
23 "The Name of the Rose", Umberto Eco. "장미의 이름"
24 "Crime and Punishment", Fyodor Dostoevski. "죄와 벌"
25 "Eye of the Needle", Ken Follett. "바늘 구멍"

26 "Rumpole of the Bailey", John Mortimer.
27 "Red Dragon", Thomas Harris. "레드 드레건"
28 "The Nine Taylors", Dorothy L. Sayers. "나인 테일러즈"
29 "Fletch", Gregory McDonald. "플레치"
30 "Tinker, Taylor, Soldier, Spy", John le Carre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31 "The Thin Man", Dashiell Hammett. "그림자 없는 남자"
32 "The Woman in White", Wilkie Collins. "흰옷을 입은 여인"
33 "Trent's Last Case", E. C. Bentley. "트렌트 마지막 사건"
34 "Double Indemnity", James M. Cain "이중배상"
35 "Gorky Park", Martin Cruz Smith. "고르키 파크"
36 "Strong Poison", Dorothy L. Sayers. "맹독"
37 "Dance Hall of the Dead", Tony Hillerman.
38 "The Hot Rock", Donald E. Westlake. "뉴욕을 털어라"
39 "Red Harvest", Dashiell Hammett. "붉은 수확"
40 "The Circular Staircase", Mary Roberts Rinehart. "나선 계단의 비밀"
41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Agatha Christie. "오리엔트 특급살인"
42 "The Firm", John Grisham.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43 "The Ipcress File", Len Deighton.
44 "Laura", Vera Caspary. "나의 로라"
45 "I, the Jury", Mickey Spillane. "내가 심판한다"
46 "The Laughing Policeman", Maj Sjowall and Per Wahloo. "웃는 경관"
47 "Bank Shot", Donald E. Westlake.
48 "The Third Man", Graham Greene. "제3의 사나이"
49 "The Killer Inside Me", Jim Thompson. "내 안의 살인마"
50 "Where Are the Children?", Mary Higgins Clark.
51 "A Is for Alibi", Sue Grafton. "여형사 K" ("의미없는 알리바이")
52 "The First Deadly Sin", Lawrence Sanders. "제 1의 대죄"
53 "A Thief of Time", Tony Hillerman. "시간의 도둑"
54 "In Cold Blood", Truman Capote. "인 콜드 블러드"
55 "Rogue Male", Geoffrey Household. "로그 메일"
56 "Murder Must Advertise", Dorothy L. Sayers. "광고하는 살인"
57 "The Innocence of Father Brown", G. K. Chesterton. "브라운 신부의 동심"
58 "Smiley's People", John le Carre "스마일리의 사람들"
59 "The Lady in the Lake", Raymond Chandler. "호수의 여인"
60 "To Kill a Mockingbird", Harper Lee. "앵무새 죽이기"
61 "Our Man in Havanna", Graham Greene.
62 "The Mystery of Edwin Drood", Charles Dickens.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
63 "Wobble to Death", Peter Lovesey.
64 "Ashenden", W. Somerset Maugham. "어쉔덴"
65 "The Seven Percent Solution", Nicholas Meyer. "7퍼센트 용액"
66 "The Doorbell Rang", Rex Stout.
67 "Stick", Elmore Leonard.
68 "The Little Drummer Girl", John le Carre "리틀 드러머 걸"
69 "Brighton Rock", Graham Greene.
70 "Dracula", Bram Stoker. "드라큘라"
71 "The Talented Mr. Ripley", Patricia Highsmith "재능있는 리플리씨"
72 "The Moving Toyshop", Edmund Crispin.
73 "A Time to Kill", John Grisham. "타임 투 킬"
74 "Last Seen Wearing", Hillary Waugh.
75 "Little Caesar", W. R. Burnett.
76 "The Friends of Eddie Coyle", George V. Higgins
.
77 "Clouds of Witness", Dorothy L. Sayers. "증인이 너무 많다"
78 "From Russia, with Love", Ian Fleming.
79 "Beast in View", Margaret Millar. "내 안의 야수"
80 "Smallbone Deceased", Michael Gilbert.
81 "The Franchise Affair", Josephine Tey.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82 "Crocodile on the Sandbank", Elizabeth Peters.
83 "Shroud for a Nightingale", P. D. James. "나이팅게일의 수의"
84 "The Hunt for Red October", Tom Clancy. "붉은 10월"
85 "Chinaman's Chance", Ross Thomas.
86 "The Secret Agent", Joseph Conrad. "비밀요원"
87 "The Dreadful Lemon Sky", John D. MacDonald.
88 "The Glass Key", Dashiell Hammett. "유리열쇠"
89 "Judgment in Stone", Ruth Rendell. "활자 잔혹극 (유니스의 비밀)"
90 "Brat Farrar", Josephine Tey. "브랫 패러의 비밀"
91 "The Chill", Ross Macdonald. "소름"
92 "Devil in a Blue Dress", Walter Mosley.
93 "The Choirboys", Joseph Wambaugh.
94 "God Save the Mark", Donald E. Westlake.

95 "Home Sweet Homicide", Craig Rice. "스위트홈 살인사건"
96 "The Three Coffins", John Dickson Carr. "세 개의 관"
97 "Prizzi's Honor", Richard Condon.
98 "The Steam Pig", James McClure.
99 "Time and Again", Jack Finney.

100 "A Morbid Taste for Bones", Ellis Peters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성녀의 유골)"
100 "Rosemary's Baby", Ira Levin "로즈메리의 아기"

2013/12/03

구석의 노인 사건집 - 에마 오르치 / 이경아 : 별점 2.5점

구석의 노인 사건집 - 6점
에마 오르치 지음, 이경아 옮김/엘릭시르

세상 많이 좋아졌네요. 이 책마저도 새롭게 출간되고... 확인해보니 전 3권 총 37편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중 일부 내용만 가려 뽑은 단편선집(短篇選集)입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동서판 "구석의 노인"과 거의 겹치지 않는 다른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네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도 몇 편 수록되어 있긴 합니다만 역시 겹치지 않고요.

그러나 책 자체는 좀 미묘합니다. 황금기 단편에 걸맞는 트릭이 수록된 정통 추리물로, 거의 모든 사건에서 안락의자 스타일의 멋진 추리를 보여주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황금기 단편에서 기대하는 추리적인 재미가 부족한 탓이 가장 큽니다. 비슷한 트릭이 너무 많이 쓰였거든요. 예를 들어 범인이 피해자를 가장하여 알리바이를 만드는 변장 트릭은 무려 5편의 작품 - "펜처치 스트리트 수수께끼", "리슨 그로브 수수께끼", "퍼시 스트리트의 기묘한 죽음", "폴턴 가든스 수수께끼", "황무지 사건" - 에서 사용되었습니다. 13편 중 5편이니 40%에 달하는 상당한 비중이지요. 두어 편 읽다보니 트릭과 전개가 대충 눈에 보일 정도였어요. "황무지 사건"은 변장에 더해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등과 유사한, 전형적인 시체 바꿔치기 트릭이기도 하고요.

다른 작품들도 대부분 '처음에 기소된 유력한 용의자가 범인이 아니다'는 식이며, 소거법에 의하면 결국 범인은 한 명밖에 남지 않아서 정교한 추리적 재미를 느끼기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안락의자 스타일을 너무 남용합니다. 구석의 노인은 기자 메리에게 자신의 추리를 들려줄 뿐입니다. 추리가 옳았는지 틀렸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지요. 이러한 형태는 작가가 손쉽게 마무리할 수는 있지만, 독자에게는 불친절하며 안일한 스타일이라 생각됩니다. 기자 메리도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고요. 구석의 노인이 스스로 사건에 대해 모조리 이야기하고, 추리까지 이야기하는 구성이라면 그녀가 등장할 필요조차 없지요.

그래도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꼼꼼하게 그려진 작품도 많습니다. 특히 두 작품, "앵그르 수수께끼"와 "진주 목걸이 사건"은 마음에 들었어요. 이유는 두 작품 모두 기이한 범행에 대한 동기, 이유를 굉장히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앵그르 수수께끼"는 앞서 짤막하게 소개한 공작부인의 재능을 복선으로 범행을 설득력 있게 해석하고 있는데다가, 결말까지 깔끔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진주 목걸이 사건"은 범행을 이용하여 협박범을 없애는 데 성공한다는 발상의 역전이 돋보였고요. 앞서 말했듯 뻔한 변장 트릭이지만, "리슨 그로브 수수께끼"도 나름 복잡한 변장, 치밀한 작전에 더해 현대물에서나 봄직한 끔찍한 범행까지 벌어지는게 상당히 재미있었어요.

아울러 선정된 단편들이 구석의 노인이 사라지는 이야기 바로 다음에 20년 뒤의 재회를 그리는 등 시간적인 경과를 느낄 수 있게끔 실려 있는 것도 괜찮더군요. 솔직히 수록된 작품의 평균 수준은 동서 쪽이 더 나은 것 같긴 하지만, 이러한 디테일 면에서는 확실히 엘릭시르 판본이 앞섭니다.

그 외에도 유명한 변호사라는 아서 잉글우드의 활약 등으로 유력한 용의자가 전부 풀려나는 식의 전개로 당시 영국의 판결 제도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명확한 증거 없이는 기소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무죄 추정의 원칙이 통용되었다는 것인데 역시나 영국이 선진국은 선진국였네요.

또 "엘릭시르" 레이블을 달고 나온 책들이 모두 장정과 디자인이 예뻐서 소장 가치를 불러일으키는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입니다. 특히, 각 단편 뒤에 소개된 다양한 토막 상식 정보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메리와 구석의 노인이 만나는 "ABC 찻집"이 실존하는 카페 체인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저도 언젠가 여기서 커피 한잔 먹고 싶어지네요. 아직 있을까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좋았던 시절의 좋은 작품이기는 하나 지금 읽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지났죠. 정확하게 10년 전에 읽었던 동서판본은 별점이 4점이었는데 10년 사이 1.5점이 깎였네요. 동서판본을 다시 읽고 지금의 별점은 몇 점일지 다시 체크해봐야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작품이 계속 나와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기에, 또 몇몇 작품은 여전한 재미를 선사하는 만큼 추리 애호가시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3/12/02

스틸 라이프 - 루이즈 페니 / 박웅희 : 별점 2점

스틸 라이프 - 4점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추리작가협회상, 캐나다추리작가협회상, 영미서점협회 딜리스상, 앤서니상, 배리상 5관왕에 빛나는 루이즈 페니의 데뷔작. 선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 스리 파인스, 그러나 그들 중 한 명이 곪아있다. 추수감사절 이른 아침 안개가 걷히고 스리 파인스의 집집마다 새로운 하루가 찾아든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천국이나 다름없는 캐나다 퀘벡주 시골 마을의 단풍나무 숲에서 노부인의 시체가 발견되자 마을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것은 분명 사슴 사냥철 사냥꾼의 오발에 의한 사고였음이 틀림없다. 누가 온화하고 선량한 아마추어 화가의 죽음을 원하겠는가? 하지만 눈부신 경력의 퀘벡 경찰청 아르망 가마슈 경감은 하얀 말뚝 울타리 너머에 어둠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채는데…

자신의 그림 전시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숲 속에서 죽음을 맞은 제인 닐은 과연 사고사인가? 고의적인 살인인가? 제인의 그림 속에 숨겨진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도대체 무얼 말하려고 했던 것인가? 영어권과 불어권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국적인 문화 배경을 토대로 목가적인 풍경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개성적인 등장인물들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다. <인터넷 서점 책 소개 인용>

퀘벡 경찰청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첫 번째 작품. 분량이 무려 450페이지나 됩니다.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후덜덜한 볼륨을 자랑하지요. 

스리 파인스 마을을 무대로 한 살인 사건을 그리는데, 최근의 현대적인 작품들에서는 보기 드문 크리스티 여사류의 전형적 후더닛 계열 미스터리물입니다. 폐쇄된 작은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딱 한 건의 사건, 그리고 범인은 누구이냐가 핵심입니다. 그러나 잘 짜여진 후더닛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책 해설에서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과 비교했는데 엄청난 무리수에요. 비교가 안되니까요.

가장 큰 이유는 추리적인 가치가 거의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가마슈 경감은 명문장과 시를 외우고 다니는, 약간은 P.D 제임스의 달그리쉬 경부를 연상케 하는 지적이고 섬세한 인물인데 작품 내내 폼만 잡을 뿐 실상 추리를 하거나 탐정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습니다. 사건이 해결되는 결정적 계기도 클라라가 제인이 그린 그림의 이상을 발견한 덕분이고요. 이래서야 "명탐정 코난"의 멍청한 지방 현경(이름이 뭐더라?)과 별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범행 동기가 무의미하다는 것도 추리물로는 있을 수 없는 단점입니다. 이미 중반에 벤의 어머니 살해 사실을 증명하는건 불가능하다고 언급됩니다. 그런데 단지 그림 하나 때문에 사람을 죽여 일을 키운다? 말도 안됩니다. 사실이 폭로되었다 해도 벤이 잃을 건 아무것도 없었을테니까요. 제인과 벤 사이의 인간관계가 약간 금이 갈 뿐이었겠지요. 증거가 없으니 무고죄로 물고 늘어지는 것도 가능했을 테고요. 이렇게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 정통 후더닛 계열 작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동기로서는 반칙에 불과해요.

그림을 덧칠해서 수정한다는 것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쉬운 작업도 아니었을 텐데, 차라리 그냥 지우는게 당연했습니다. 또 그림을 이미 다섯 명이나 보았는데, 본 사람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라 여긴 이유도 모르겠고요. 최소한 피터와 클라라 부부가 지인들을 찾아봤다고 여기는게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결국 진상을 눈치챈 클라라를 지하실에서 살해한 뒤, 피터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마지막 결말도 당황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마을에 상주한 경찰을 허수아비로 봐도 유분수지, 이미 경찰이 피터를 찾아가 클라라의 행방을 물은 시점에서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저 같으면, 찾아온 클라라에게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에 마을 잔치에 참석한 것으로 그려진 자신이 너무 싫어서 그림을 지웠다 정도로 우기고 끝냈을 겁니다. 제인을 살해한 것은 정황 증거밖에 없으니 빠져나가기도 어렵지 않았을 거예요.

또 왜 화살을 사용했는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총을 사용했더라면 사냥꾼의 오발로 충분히 몰고 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피터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목적이었더라 하더라도 적절치 못한 선택이었어요.

이외에도 어설픈 부분이 많습니다. 일단 볼륨에 비하면 등장인물이 너무 적어요. 피터와 클라라 부부, 벤, 욜랑드 가족, 크로프트 가족, 루스, 머나에 올리비에 - 가브리 커플이 다거든요. 물론 폐쇄된 공동체에 등장인물이 적다는건 전형적일 수 있습니다. 허나 등장인물들을 적절히 배분하여 누가 범인인지를 모르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요소였을 텐데, 작가는 클라라 중심의 심리묘사에 더해 크로프트 가족을 중반에 용의자에서 리타이어시켜 버림으로써 용의자를 스스로 대폭 줄여버리고 맙니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심리도 이해 불가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말도 안 되는 장식으로 벽을 뒤덮은 욜랑드의 행동이죠. 그 시점에서 어차피 자기 집인데 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지 않았을까요?

아울러 이베트 니콜이라는 제가 여태까지 본 추리소설 등장인물 중 최고 수준의 짜증을 유발하는 캐릭터가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 것은 용서가 안되네요. 무능하고 사회성도 없는 캐릭터 자체가 짜증날 뿐 아니라 존재 의미 역시 전무합니다. 그녀의 등장을 전부 잘라내어도 전개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어요. 거진 100여 페이지를 재미도 없고 쓸데도 없는 멘토링에 낭비한 거나 다름없죠. 솔직히 이베트 니콜이 없는 버전으로 책이 한 권 더 나오는 게 판매에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베트의 존재는 작가가 "넬레 노이하우스" 작품을 인상적으로 읽은 탓이 아닌가 의심스럽네요. 생각만 많은 고위 경찰에 사고뭉치 애송이 여자부하가 딸렸다는 설정은 판박이니까요.

물론 한 할머니가 혼자서만 간직하다가 발표하게 된 그림이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한다는 발상만큼은 괜찮습니다. 무려 60년 동안 사람을 들이지 않은 거실은 할머니가 손수 그린 그림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림은 60년간을 기록한 하나의 역사였다는 설정도 찬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크로프트의 알 수 없는 행동을 여운을 남기면서 설명하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그리고 현대 작품으로는 보기 드문 고전적 후더닛 소설의 기본적 얼개를 갖추었다는 것도 분명 장점이기는 합니다. 초중반에 뿌려지는 떡밥도 공정하게 회수하고 있으며, 퀘벡의 불어권 - 영어권 주민들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도 볼거리이고요.

그러나 장점보다 단점이 명확하고 방대하여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데뷔작임을 감안하더라도 부족함이 더 많았습니다. 위에 이야기한 대로 이베트 니콜 등장 부분을 싹 날려버리고, 가마슈 경감은 그냥 수사하러 나온 담당자로 역할을 최소화한 뒤 클라라를 탐정역으로 전개하여 250페이지 정도로 완결하였더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 거예요.

후속작이 어떨지 약간 궁금하긴 한데 이베트 니콜이 계속 등장한다면 읽게 될 것 같지 않군요.

MWA 범죄 소설 추천 리스트 얼마나 읽었나

자주 가는 국내 최고의 추리 동호인 사이트 하우미에서 퍼옵니다.

MWA 범죄 소설 추천 리스트 얼마나 읽었나;

여기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많이 알려진 리스트이기는 하나 조금 더 인터랙티브하게 구성되어 있네요. 관심 있으시면 재미삼아 한번씩 해 보시길~

제 점수는 47점. 음.. 아직 공부가 많이 부족하군요.

2013/11/29

코난 도일을 읽는 밤 - 마이클 더다 / 김용언 : 별점 2.5점

코난 도일을 읽는 밤 - 6점
마이클 더다 지음, 김용언 옮김/을유문화사

퓰리처 상을 받은 평론가 마이클 더다가 쓴,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탐정 셜록 홈즈와 그의 창조자 코난 도일에 대한 일종의 헌사 에세이집입니다. 본인이 얼마나 셜록 홈즈와 코난 도일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다가 어린 시절 "바스커빌가의 개"를 처음으로 접했던 것으로 시작하는데, 어린 시절 "계림문고"로 처음 홈즈의 단편 시리즈들을 접했던 제 기억과 묘하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홈즈의 단편을 하나씩 작은 소책자 형태로 낸 시리즈였는데, 정말이지 아껴가며, 두근대며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남자아이들이 모험, 공포, 추리물에 열광하는 것은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지요.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잃어버린 세계"로 대표되는 챌린저 교수 시리즈를 높이 평가한다던가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을 고이 보관하고 있다는 등, 저와 취향이 비슷한 점도 아주 반가웠습니다. 저보다 나이는 많지만, 만나면 바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개인적 경험담과 함께 여러가지 도일의 작품들을 소개해 주는데, 이러한 소개글도 최고 수준입니다. 오랫동안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서평을 담당했고, 퓰리처상도 받은 전문 리뷰어인 덕분이지요. 서평으로 밥먹고 사려면 이정도는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독서 리뷰 중심의 블로거로서 많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그러면서도 또 이 책의 리뷰는 이 모양이니...). 하여튼, 이 책에서 추천하며 소개하는 여러가지 작품들은 방법만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보고 싶네요. 이런 류의 소갯글 멘트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여러분들이 부럽다"라는 말까지 등장하니 말 다했지요. 

방대한 소개 작품 중 우선 읽고 싶은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북극성 호의 선장", "249호 경매 품목"
  • 나폴레옹 시대 군인의 회고담이라는 "준장 제라르의 위업"과 "제라르의 모험"
  • 1922년에 도일이 잡다한 단편을 모아 출간했다는 총 6권짜리 "코난 도일 작품선"
  • 가장 궁금했던 "코르스코의 비극". "그들은 기독교를 포기할 수 있을까, 없을까? 그리고 갑자기, 답을 찾기도 전에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끝나고 결정의 순간이 다가온다"... 이건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결말을 찾아봐야겠어요.
  • 도일이 높이 평가했다는 다른 작품들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죠. 도일에게 세계 최고의 단편이었다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모래 언덕 위의 별장"
  • 열정적으로 추천했다는 러디야드 키플링의 "연대의 북 치는 소년들", "왕이 되려한 사나이"
  • 최고의 유령 이야기라고 극찬했다는 에드워드 불워-리턴의 "귀신 들린 집과 유령들"
  • 로드 던세이니의 "조켄스 시리즈" 소개도 멋드러집니다.

약간 우려되는건 소개된 작품 중 "아서 코난 도일, 미스터리 걸작선"에 실려있는 "사라진 특별열차"와 "시계를 많이 가진 남자"는 소개글만큼 뛰어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역시나 좀 입에 발린 소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뭐 세상사는 게 다 그렇겠지요.

코난 도일의 글솜씨가 좋았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확실히 시대를 초월한 거장에게는 남다른 점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번역본으로 접하면 그런걸 알기는 어러운데, 도일의 문체와 스타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서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에세이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특정 주제는 재미도 없고 별다른 흥미도 자아내지 못한다는 단점은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더다가 "베이커 가 특공대"에 초대된 뒤, 가입하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특히나 그가 특공대에 가입하면서 '랭데일 파이크'라는 호칭을 받은 뒤, 랭데일 파이크에 대한 디테일한 가공의 약력을 창작하는 것은 지나쳤습니다. 별 관심도 없는 인물인데다가, 창작한 약력이 너무 픽션과 현실을 오가고 억지스러운 인용도 많으며 당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즉 셜로키언이 아니라면 딱히 즐길거리가 없는 글이었습니다.

부제가 "셜록 홈즈로 보는 스토리텔링의 모든 기술"이라서 약간은 작법서에 가까운 정보가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거의 그렇지 않다는 것도 역시나 단점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홈즈와 도일의 팬이거나 장르문학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은 에세이집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감점합니다. 추천하기도 애매하네요. 단점도 명확하니까요. 코난 도일의 작법과 셜록 홈즈 작품들의 스타일을 철저히 분석한다던가, 국내 미발표 작품들 중심으로 이야기되었더라면 별점 5점도 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2013/11/28

14년 베어스 전망 및 바램

멘붕이 왔었지만 정신을 추스리고 정리해봅니다.

14년 두산 베어스 예상 엔트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 투수진 (11)
    • 선발 : 니퍼트, 외국인, 노경은, 유희관, 이용찬 (몸상태 확인 필요)
    • 중간 : 오현택, 홍상삼, 정재훈, 변진수
    • 마무리 : 윤명준
    • 예비군 : 이재우
  • 야수 (15)
    • 포수 : 양의지, 최재훈 (→ 전반기 윤도경, 김응민 등)
    • 내야수 : 오재일 (1), 오재원 (2), 김재호 (유), 이원석 (3)
    • 백업 : 허경민, 최주환
    • 외야수 : 김현수, 민병헌, 정수빈
    • 백업 : 장기영, 박건우
    • 지명 : 홍성흔
    • 기타 : 외국인

로 1군 엔트리를 끼워 맞추는 상황입니다.

명단만 보면 명확하죠. 앞으로의 지향점은 젊고, 수비가 강하고, 저렴한 팀이라는걸. 이것은 베어스의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하면서 버티자는 겁니다. 그래서 2차 드래프트에서도 노장들이 대거 팀을 옮기게 되었겠죠. 개인적으로는 2차 드래프트는 어느 정도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벌어진 스토브리그의 무브도 위의 관점에서 보면 해석이 가능하기는 합니다. 김선우 선수의 경우, 현실적인 내년도 기대치는 5선발 후보군 또는 불펜 전력입니다. 그러나 나이도 많고, 몸값 또한 기대치에 어울리지 못합니다. 윤석민 선수는 3루수로는 수비가 불가하다는 현장의 판단과 지속적인 부상 우려, 그리고 지명타자나 1루수 백업으로는 외국인이나 2군에 있는 거포 후보군을 활용하여 대체가 가능하다는 판단이었을 테고요.

그러나 감독 교체와 함께 윤석민 선수의 트레이드의 대상이 나이 많은 외야수 장기영 선수라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장기영 선수의 포텐이나 기대치는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max 정수빈 선수 정도? 군필의 거포 포텐을 갖춘 내야수 자원(수비가 안되더라도)과 1:1로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트레이드입니다. 최소한 즉전감 왼손 불펜 투수라도 받아왔더라면 모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트레이드였어요. 이럴 거면 임재철 선수를 풀지나 말 것이지...

그리고 감독 교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김진욱 감독의 운영을 100% 찬성하지는 않지만 노경은, 홍상삼 선수를 사람 만들었고, 불펜투수의 혹사 없이 어느 정도 성적을 내었다는 점에서는 지지합니다. 최소한 올해 한국 시리즈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보다 좋은 모습을 보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너무 섣부른 경질로 보입니다.

또 위의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2군에서 올릴 만한 선수가 거의 없습니다. 투수로는 김강률, 성영훈, 김수완, 허준혁, 장민익 선수 등이 거론되고, 야수는 김재환, 오장훈, 김강, 국해성, 오현근 선수 등이 언급될 수는 있지만 솔직히 현재 시점에서 많이 부족합니다. 과거 화수분 두산의 명성에 어울리는 주전에 맞먹는 백업, 또는 신데렐라 같은 2군 출신 스타의 탄생은 기대하기 힘들어요. 때문에 시즌을 끌고 나가는데 문제가 많을 텐데 1년밖에 안 된,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인 2군 감독이 과연 팀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요?

물론 앞서 말했듯 팀의 목표가 우승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하면서 버티자는 것이면 크게 기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년에는 아마 중위권에서 힘겨운 싸움을 할 겁니다. 하지만 하위권으로 처진다면, 프로는 성적으로 말하는 조직이기에 진두지휘한 프런트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게 팬들에 대한 올바른 자세겠죠.

베어스 팬으로서는 외국인 선수들의 엄청난 활약과 함께 성영훈, 이현승 선수의 부활과 김강률, 장민익, 허준혁, 김수완 선수의 진화, 김강, 김재환, 오장훈 선수가 포텐을 터트려 다시 한번 베어스의 위력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차라리 하위권으로 확 쳐져서 프런트 꼴을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큽니다.

만약 두 시나리오 중 한쪽으로 잘 흘러간다면, 내년 시즌은 잘되거나 잘 안되거나 결과는 해피엔딩이겠네요. 쩝....

2013/11/26

KBO 공식팜 두산베어스

다 집어치워라 이것들아

저물어 가는 여름 - 아카이 미히로 / 박진세 : 별점 2.5점

저물어 가는 여름 - 6점
아카이 미히로 지음, 박진세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카이 미히로의 유괴 미스터리 소설. 1955년생인 아카이 미히로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 작품의 주요 배경 중 하나인 닛폰방송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마흔여덟이라는 늦은 나이에 그때의 경험을 살려 쓴 본 작품으로 시라누이 교스케의 "매치메이크"와 공동으로 49회 에도가와 란포상(2003)을 수상했다.

20년 전 일어났던 유괴 사건 범인의 딸이 20년 후 유명 신문사 기자로 합격이 내정된다. 이 사실을 폭로한 경쟁사 주간지의 기사를 계기로 신문사는 20년 전 유괴 사건의 재조사를 개시한다. 몇 년 전 사고 때문에 신문사의 한직에서 시간을 보내던 전직 기자 가지가 회사의 명령으로 범인의 주변, 피해자, 당시의 담당 형사와 병원 관계자를 거듭 취재한 끝에 봉인되어 있던 진실을 밝혀낸다. '알라딘 책소개 인용'

제49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작품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에서 알라딘의 피니스 아프리카에 편집장 인터뷰를 접한 뒤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좌천당한 기자 가지 히데카즈가 히로코의 입사를 위해 20년 전 유괴사건을 현재 시점에서 다시 뒤쫓아 숨겨진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인데, 읽다보니 바로 직전에 읽었던 "킹의 몸값", 그리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천국과 지옥》이 중요하게 언급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인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유괴라는 범죄가 얼마나 부모와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한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도 한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데즈카 부부가 20년 동안 인형을 아이 대신하여 키워온 모습은 정말 짠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확실히 여성 작가가 썼다는 느낌이듭니다. 다른 유괴 관련 작품들은 범죄자나 피해자(부모)를 대상으로 범죄와 관련된 심리묘사가 주를 이루는 반면, 이 작품은 애틋한 묘사가 디테일하게 펼쳐진다는 점에서요. 확실한 차이점이지요.

허나 감정에만 호소하는 내용은 아니고 실제 유괴사건에 대한 박진감 있는 묘사도 볼거리입니다. "킹의 몸값"의 주제인 '누구를 유괴했는지 보다, 누구에게 돈을 요구하는지가 중요하다'가 그럴싸하게 변주되어 사용되고 있기도 하고요. 또한 유괴 사건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몸값 전달 방식이 기발하게 펼쳐지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5천만 엔 중 천만 엔을 만 엔짜리 지폐로 전달받은 뒤, 사람 많은 거리에 뿌리고 혼잡을 이용하여 나머지 돈을 가지고 도망친다는건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아이디어이고 운에 의지한 측면이 강하지만 실제로 성공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적이라 마음에 듭니다. 반전 역시 충격적이라 마지막까지 읽는 사람을 몰입시키는 맛이 있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가지가 사건 당시 취재 기자 중 한 명이었던 덕분에 사건을 지휘했던 이노우에의 비망록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다는 건 어이가 없었어요. 20년 뒤 일개 기자가 진상을 밝혀낼 정도라면, 당시 경찰이 무능했다는 이야기밖에는 안되니까요.

그리고 당시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던 츠쿠모의 지인을 만나 주식에 대한 정보를 듣고 호리에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진상을 밝혀내게 되었다는데, 가지가 편집 자료실을 이용하여 사건 관계자 이름을 먼저 검색해보았다면 발품을 파는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었습니다. 저 같으면 비망록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 모든 관계자 이름을 검색해봤을 거예요. 이 부분은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더군요.

반전도 충격적이기는 하나 거기에 다다르는 과정에 대한 설득력은 낮습니다. 가지가 무슨 초능력자도 아니고, 호리에의 웃음을 본 것만으로 사건의 진상을 깨닫게 된다는 것은 억지스러웠고, 무토 국장 아내의 키라던가 미키마우스 티셔츠에 대한 언급이 전무한 것은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보다는 호리에에게서 약간의 설명을 듣는다는 식으로 전개하는 게 충격은 덜했겠지만 설득력은 더 큰 결말이 되었을 겁니다. 아니면 호리에를 진범으로 하여 이야기를 끝내던가요. 반전은 달리 보면 해피엔딩을 위한 사족일 뿐이거든요. 또 에필로그에 잘나가게 된 히로코를 묘사하는 것 역시 사족입니다. 차라리 진정한 피해자가 된 슌지에 대해 이야기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히로코는 결국 살인자의 아이는 아니지만 범죄자의 딸은 맞는데, 조사 결과로 뭐가 달라지는 건지는 아리송합니다. 거액의 빚을 지고 전전긍긍하다가 협박범이 된 뒤, 나중에는 부주의한 행동으로 인하여 애인과 함께 골로 간 멍청한 아버지가 인간 말종이라는 건 다를 바 없으니까요. 단지 살인만 저지르지 않았을 뿐인데,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능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도 아쉽습니다. 아마추어 수준 이상의 바둑 고수이자 순간 기억능력을 갖춘 도자이 신문사의 사장 스기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끝판왕 포스가 철철 넘치는데 하는 일이라고는 여대생에게 회사 입사를 권유하는 것밖에 없어서 격에 맞지 않는다 여겨졌습니다.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읽는 재미는 있고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작품이지만 추리적으로는 부실한 점이 많아서 감점합니다. 란포상을 탄 작품들 대부분이 추리보다는 묘사에 더 치중하는 느낌인데 이 작품 역시 전례를 벗어나지 않네요.

2013/11/25

킹의 몸값 - 에드 맥베인 / 홍지로 : 별점 3.5점

킹의 몸값 - 8점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구두 회사의 중역 더글러스 킹의 집 거실에서 비밀 중역 회의가 한창이다. 중역들은 더글러스 킹을 포섭하여 회사를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더글러스 킹에게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다. 나름대로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아무도 몰래 준비한 계획은 성공을 눈앞에 두는 듯하지만 뜻하지 않은 변수가 나타난다. 아이가 유괴된 것이다.

하지만 남의 아이다. 남의 아이의 목숨을 위해서 자신이 그동안 힘들게 쌓아 온 부를 허물어뜨리고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인가, 아이의 목숨을 외면하고 부를 유지할 것인가. 어릴 적 가난의 상처 때문에 피도 눈물도 없는 출세지향주의자가 된 그이지만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87분서 형사들이 유괴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일단 몸값을 주어야 아이의 목숨을 보장받는다. 선택은 오로지 더글러스 킹의 몫이다. 이 작품이 발표되고 난 후 비슷한 유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으며 몇 년 뒤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 의해 《천국과 지옥》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인터넷 서점 제공 책 소개 인용>

에드 멕베인의 87분서 시리즈 장편.

유괴 소재 작품은 그동안 몇권 읽어보았습니다. 유괴 자체가 작전인 정통파 추리물을 비롯하여 피해자 시점, 유괴범 시점, 용의자 시점으로 그린 작품 등 종류도 다양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그간 읽었던 작품과 확실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내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를 위한 몸값 지불' 이 핵심 설정이라는 점에서요.

물론 그 아이가 생판 남이 아니고, 킹이라는 인물은 충분한 재력이 있기에 몸값을 턱하니 지불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몸값을 지불하면 그동안 이루어왔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극한 상황에 처한 시점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작중의 킹은 성공을 위해 걸림돌은 남김없이 쳐내버리는 인물로 묘사되기에 그는 몸값을 내지 못하겠다고 결정합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 수사하는 형사(스티브 카렐라) 등 주변 인물이 그에게 살인자와 같다는 맹비난을 퍼붓습니다(당연하지요). 심지어 아들을 유괴당한 운전기사는 간절히 애걸하며 무릎을 꿇기까지 하고요.
이 모든 과정이 설득력 넘치면서도, 숨쉴틈없이 이어지며 그 와중에도 킹과 회사가 관련된 위기 상황까지도 깨알같이 전개됩니다. 즉, 돈을 낼 수도 없고 안낼 수도 없는 개미지옥 딜레마에 빠진 상황을 정말 처절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이 처절한 묘사 덕분에 읽는 내내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 정도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그를 뒷받침하는 박진감넘치는 전개는 역시나 거장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 킹 이야기와 정 반대의 다른 축으로 전개되는 유괴범인 사이, 에디, 캐시 트리오의 이야기도 나름 괜찮아서 재미를 더합니다. 리더이자 사악한 사이, 똘마니 에디, 박애주의자 캐시(?)로 이루어진 트리오는 전형적이고 진부하지만, 캐시가 사이를 견제하고 사이는 캐시를 강하게 억누르고 에디가 완충제 역할을 하는 식으로 절묘하게 조화되면서 긴장감을 불러오는 덕분입니다. 캐시를 초반부터 잘 묘사한 덕에 사건이 해결되는 상황에 대한 설득력도 높아졌고요. 또 유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에디의 라디오 관련 지식을 이용하여 여러가지 작전을 벌인다는 점, 특히 마지막 몸값 확보 작전에 써먹는 아이디어는 제법 그럴싸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허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이 작품이 87분서 시리즈일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형사들은 하는게 하나도 없는 탓이에요. 감식과의 활약이 일부 그려지는 정도이며, 오히려 시리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스티브 카렐라는 앞서 설명했던대로 몸값을 내지 않기로 결심한 것에 대해 맹비난을 퍼붓는 등, 본인의 위치를 망각한 주제넘은 행동만 일삼습니다. 킹도 분명 피해자인데 수사관이 하라는 수사는 하지 않고 누구를 비난한다는 걸까요?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징계감으로 보여요. 게다가 몸값을 전달하는 차량에 동승했는데도 불구하고, 결말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킹이 언제나처럼 '직접 나서서' 유괴범을 때려잡는다니 끝까지 하는게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작품만 놓고 보면, 말만 많고 활약은 없는 떠벌이 찌질이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억지스럽게 87분서원들의 이야기를 넣고 늘려서 시리즈의 하나로 만들 바에야, 차라리 하나의 다른 작품이 되는게 낫지 싶습니다. 아이디어가 아까워요.

결말도 좀 별로였습니다. 사이의 총질에도 불구하고 맨손으로 킹이 그를 때려잡는다는 결말은 지나칠 정도의 작위적인 해피엔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디와 캐시가 탈출을 위한 차를 어디서 구했는지, 사이가 돈을 받은 뒤 돌아올 것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애는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도 허술하게 느껴졌고요. 개인적으로는 비열한 배신자 피터 캐머런을 킹이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알려주는 후일담이 없는게 가장 섭섭했네요. 이런 녀석을 짓밟아버리는 결말이 있었더라면 안일한 해피엔딩이라도 충분히 참아줄 수 있었는데...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단점이 명확하다고 평하긴 했으나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87분서의 활약을 없애고(이게 마이너스 1점), 심리묘사 중심으로 마지막을 깔끔하게 처리했더라면 별점 5점도 줄 수 있었는데 좀 아쉽네요. 그래도 장점이 워낙 탁월하고 읽는 재미도 확실한 수작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가 쓴대로 단점을 최소화하여 킹의 입장 중심으로 보다 현실적으로 전개했다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천국과 지옥》을 구해봐야겠군요.

2013/11/23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식탁 - 와타나베 레이코 / 박유미 : 별점 2.5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식탁 - 6점와타나베 레이코 지음, 박유미 옮김/시그마북스

제목만 봤을때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먹었던 음식에 대한 구루메, 요리 관련 서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제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저자가 여러가지 자료를 통해 다 빈치의 일생에 대해 알려주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 빈치가 남긴 수첩의 기록들을 통해 당시의 생활과 다 빈치에 대해 재구성한다는 취지는 괜찮았고, 내용도 그에 충실합니다. 예를 들면 다 빈치의 수첩 내용에서 "스파게티"라는 단어를 뽑아낸 뒤, 스파게티, 파스타의 역사와 함께 설명하는 식입니다. 평범한 수첩 및 장서 목록, 해부 수첩까지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다 빈치의 수첩만으로는 뽑아낼 거리가 적었던 탓인지, 뒷부분은 당대의 유명 화가 폰토르모의 일기와 미켈란젤로에 대한 자료, 실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연회 관련 자료 설명이 이어집니다. 부록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장서로 알려진 "살레르모 학파의 양생훈", "아름다운 생활과 건강"이 실려있고요.

그런데 앞부분 다 빈치의 수첩과 생애에 대한 부분은 저자의 생각이 많이 개입되어 있으며, 실제 본 이야기와는 별 상관없는 개인적인 내용까지 등장해서 신변잡기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노트를 보고 몇 가지 단서, 키워드를 뽑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덧붙이는 과정에서 작가의 상상력과 경험이 많이 반영된 탓입니다. 덕분에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 전문적인 자료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네요. 왠지 신뢰도 별로 가지 않고요. 원저가 된 수첩글들부터가 일상 생활속 단상을 끄적인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요. 또 앞서 말했듯 "식탁"이라는 주제, 취지를 살리기 위해 중요하지도 않은 키워드를 억지로 도출한 것도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실제 사료를 근거로 다 빈치에 대해서 조금 색다른 시각으로 다양한 정보를 전해준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입니다. 기대했던 당대 음식은 "폰토르모의 일기"와 "르네상스 시대의 요리" 단락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되고요. 특히 당시 연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좋았어요. 부록 역시 독특하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다른 책에서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것들이었거든요.

그 외의 소소한 에피소드들,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의 관계라던가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요리가 무엇인지? 에 대한 이야기 등도 재미있었습니다. 솔직히 다 빈치에 올인한 전반부보다는 후반부가 훨씬 마음에 들었는데 차라리 "르네상스의 식탁"이라고 제목을 바꾸고 이런 형식으로 책을 꾸몄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중세의 뒷골목 풍경" 같은 전문적인 미시사 서적으로 가던가, 아니면 "요네하라 마리의 가벼운 에세이" 같은 식으로 쓰여졌더라면 차라리 좋았을텐데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라 추천하기는 조금 난감합니다. 독특한 점은 분명히 있고 후반부, 그리고 부록의 가치는 있는데 혹 이런 류의 책에 관심있으시다면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3/11/22

2차 드래프트 결과

"베어스의 김동주"

발표되었네요. 언론에서는 베어스가 최대 피해자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2년전에 비하면 그렇게 출혈이 크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서 다행입니다.

김상현 선수는 베어스에서도 선발과 계투로 항상 제 몫을 해 주었지만, 구위하락으로 이번 한국 시리즈에서는 엔트리에조차 들지 못했습니다. 부상이 있다고 들었는데, 회복하면 이전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이를 감안하면 그 기대치는 신인 투수의 성장에 대한 기대치와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이혜천 선수는 설명할 필요도 없죠. 좌완투수 하나 없는 베어스 엔트리를 만든 핵심입니다. 그나마 있던 구속마저 사라진 지금, 경쟁력이 당쵀 있는지 모르겠네요. 솔직히 전혀, 1%도 아쉽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기쁘고 반갑네요.

서동환 선수는 기대치는 분명 있지만 베어스에서는 결국 키우는걸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올 시즌 몇경기 보니 구속도 줄었던데, 역시나 반등할 수는 있지만 기대치가 그다지 높지 않네요. 설령 터진다 하더라도 김성배 선수의 경우처럼 어차피 우리 팀에서는 안될 팔자려니 생각하는게 속 편할 것 같아요.

정혁진 선수는 하드웨어 좋은 좌완이라지만 본적도 없고, 이번에 데려온 허준혁 선수와 비슷한 수준의 선수로 보이기에 그냥 1:1로 바꾼 셈 치는게 속 편할 테고요. 어차피 키 큰 좌완의 대표격인 장민익 선수도 복귀하니깐....

어쨌거나 이 네명은 올시즌에 주전도 아니었고 해서 빠져나갔다고 하더라도 전력에는 차질이 없는 선수들임에는 분명합니다. 내년에 주전이 될 가능성도 낮고요.

딱 한명, 타신 임재철 선수만 유일하게 아깝고 상대팀 즉전감이라 생각되는데 베어스가 올 시즌 끝나고 은퇴를 요청했다는 설도 있으니 선수에게는 잘된 일 같습니다. 76년생으로 나이가 많고 타격지표도 하락세로 오랜 기간 활약을 보이기는 힘들겠지만 강견의 우타 외야수로서 LG에서는 1~2년간은 충분한 역할을 보일 수 있겠죠. LG가셔도 잘 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결론내리자면 타신 말고는 딱히 아쉽거나 큰 출혈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안 긁어본 로또를 약간은 검증된 2군 선수와 바꾼 정도인데 긁어보지도 못하고 다 뺐기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유망주를 대거 빼앗긴 SK와 삼성의 타격이 훨씬 크지 않을까요?

물론 두번 연속 최대 한계치인 5명의 선수를 빼앗기는 등 제도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추후 드래프트에서는 반드시 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음 드래프트에서는 최소한 입단 3년차 신인은 보호되는 등의 보완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2013/11/21

베어스의 김동주

저는 원년부터 베어스팬이고 근 십수년동안 베어스의 상징인 야구선수 김동주의 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2차 드래프트 보호선수 40인 명단에 김동주 선수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팬덤에서 이런저런 말이 많더군요. 간략하게 제 생각을 적어봅니다.

김동주 선수는 베어스의 레전드이자 KBO 역사상 최고의 우타자 중 한명입니다. 최고의 3루수라는 것도 거의 확실하고요. 그러나 과거일 뿐입니다. 현 시점에서는 타격, 수비 모두 하락세가 확연한 76년생 노장선수이지요. 올 시즌 초 캠프에서 준비도 확실히 했다는 기사 등으로 반등을 예상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1군에서는 아예 모습을 볼 수 없었을 정도로요. 혹자는 풀타임 출장했으면 나아졌을거라고는 하는데, 몇경기 지켜본바로는 아쉽지만 롯데의 장성호 선수와 비슷한 정도의 스탯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두산의 주전 3루수를 꿰찬 이원석 선수는 3할에 두자릿수 홈런이라는 확실한 실적을 보여주었습니다. 프로는 실력입니다. 이름 떼고 지난 3년간 성적으로 비교한다면, 누가 감독이라도 이원석 선수를 주전으로 쓸 겁니다. 3루수 백업으로도 두산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젊은 야수진, 윤석민 선수라던가 최주환 선수 등이 버티고 있습니다. 백업은 주전이 확실한 동안 신예들이 차세대 주전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노장 선수의 자리 보존용으로 있는건 아니에요. 또 타격은 둘째치고라도 주루와 수비 모두 확고한 우위가 없다면 더욱 젊은 선수를 써야죠.

지명타자로는? 욕은 많이 먹고 있지만 홍성흔 선수의 올시즌 활약은 준수했을 뿐 아니라 지난 몇년간 KBO 최고레벨의 타자였습니다. 이 역시 이름을 떼고 본다면 비교할 가치도 없어요. 다시 이야기하지만 프로는 성적입니다. 물론 홍성흔 선수도 나이를 먹고 있고, 전반적으로 하향세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76년생 지명타자의 백업으로 76년생 타자를 준비할 수는 없죠. 최소한 김동주 선수가 2군에서라도 엄청난 성적을 보여줬더라면 모를까, 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김재환, 국해성, 오장훈, 김강 선수를 시험해봐야 하는 시점입니다.

팬덤에서는 팀 케미스트리 이야기도 나오는데 김동주 선수가 다른 팀에서 뛴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영향따위는 없다고 봅니다. 그가 2군에 오래 머무는 동안에도 베어스는 여전히 강팀이었고요. 오히려 김동주 선수가 3루수 주전으로 나오거나 지명타자로 나오면 이원석, 홍성흔 선수를 비롯한 현재 주전들의 반감이 더 클 겁니다. 실력이 아닌 이름으로 야구를 하는건 돈을 받고 뛰는 프로의 자세가 아니죠. 그들의 성적이 부진하여 대신 출장한다 하더라도 앞서 말한 젊은 선수들을 키워야하는 시점이고요. 이원석, 오재원 선수는 군입대를 앞두고 있고 홍성흔 선수도 늙고 있습니다. 시간은 많지 않아요.

결론내리자면 지금 시점에서 베어스는 젊고 강한 팀이고 리빌딩과 좋은 성적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잘 실현하고 있는 이상적인 팀입니다. 현재 상황은 이전의 "염전베어스 당시"처럼 돈이 없어서 레전드를 못잡고 푸대접하는게 아닙니다. 프로로서 성적과 제대로 된 팀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저는 김동주 선수가 40인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덧붙여, 만약 소문대로 코칭 스태프 및 구단과의 관계가 틀어져 제대로 된 출장도 못하고 심지어 2군에서도 경기에 나갈 수 없다면, 더더욱 김동주 선수가 다른 팀으로 가서 보란듯이 재기하는 모습을 기원하는게 진정한 팬이 아닐까요? 저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된다면 아쉽지만 응원할 것입니다.

D의 복합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2점

D의 복합 - 4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명작가 이세에게 월간지 "구사마쿠라"의 편집차장 하마나카라가 찾아왔다. 고액의 원고료로 연재물을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연재물은 '전설을 찾아가는 벽지 여행'이라는 민속학 테마를 가진 여행기 기획이었다. 돈과 독특한 주제에 끌린 이세는 첫 연재를 성공리에 마쳤다.
그러나 이후 미마코라는 팬이 찾아와 여행기에 실린 장소에 대해 "35"라는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남기고 살해당했고, 이세는 하마나카와 함께 첫 연재 당시 취재 여행에서 휘말렸던 시체 발견 사건과 엮인 진상을 추적해 나간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편소설. 이럭저럭 리뷰를 올린 세이초 작품도 열 편이 넘었네요.

무명작가가 거액의 원고료로 이름도 모르는 잡지의 연재를 맡게 된다는 설정은, 곧 이 작가가 누명을 쓰고 사건에 휘말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뻔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잡지도 제대로 된 잡지였고, 연재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전개로 이어져 조금 놀랐습니다. 의외의 요소가 신선하게 다가왔달까요.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결국 연재는 무언가에 이용된 것이었고 제대로 완결되지 못해서 작가가 스스로 사건에 뛰어들어 진상을 파헤치려 한다는 뻔한 내용으로 흘러갑니다.

이렇게 되면 작가의 연재물에 관련된 진상이 무엇인지가 이야기의 핵심이자 재미의 축이 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축인 사건의 흑막은 작가의 입을 빌어, 하마나카가 뭔가 꾸미고 있다는게 초반에 드러나기니까요, 허나! 아쉽게도 실제 사건의 진상은 솔직히 어이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이유는 명확해요. 한마디로 억지스럽기 때문이죠. 과거 아버지의 억울함을 복수하기 위한 행동치고는 전혀 와닿지도 않았고요.

35라는 숫자에 맞춰 여행지를 정하고 그것을 이용해 협박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민속학이라는 주제에 따라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조사하던 와중에 시체가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는 단순한 글을 가지고 나라바야시가 자신을 협박한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작중에서도 보통 인물이 아닌 서번트 미마코만 알아낼 정도의 어려운 정보로, 비록 나라바야시가 전 뱃사람이란 설정이 있긴 하지만 이건 완전히 무리입니다. 바다도 아니고 육지인데 누가 경도와 위도를 찾아볼까요? 당장 저만 해도 제가 살고 있는 곳의 경도와 위도도 모르는 판인데...

또 설령 협박 사실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공소시효도 지나고 증거도 없는 사건 때문에 두 건의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억지 중의 억지였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다 오해로 비롯된 거다. 미안하다 정도로 사과하고 하마나카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 끝냈을 겁니다.

복수극으로도 완벽하게 수준 미달입니다. 대체 하마나카라는 친구는 왜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 공작을 꾸민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협박을 할 거면 증거를 모은 뒤 해당 사건에 대한 기사를 쓰지, 암호보다 어려운 연재물로 은근하게 접근할 당위성 자체가 없으니까요. 어차피 죽일 것이었다면 정체를 숨기고 일하다가, 같이 식사도 하는 등 많이 친해졌으니 때를 봐서 죽이는 게 나았을 테고요. 나라바야시가 미마코를 죽이지 않고 위에 이야기한 대로 당당하게 처신했더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지도 궁금합니다.

이외에도 사회파적인 특성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평이한 내용, 작위적으로 얽히고 운이 많이 개입된 인간관계와 전개도 실망스러웠어요. 깊은 민속학적 소양을 보여주는 연재물과 여행지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하긴 했으나 현학적 측면 이외의 작품에 미치는 영향이나 재미도 전무해서 지루했고요.

물론 건질 게 없진 않습니다. 실제 당시 잡지에 연재된 연재물답게 다음 단계,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기 때문으로 무명 작가에게 찾아온 수상한 의뢰에서 시작되어 그 의뢰에 따라 작성한 글에 대한 수수께끼,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와중에 벌어지는 살인사건 등 착실하게 궁금증과 재미를 쌓아나가는 솜씨 하나만큼은 정말로 일품이었습니다. 확실히 독자를 몰입시키는 능력만큼은 세이초라는 이름에 값하는 작품이에요.

아울러 35에 관련된 지명을 쭉 늘어놓고 각 지역의 풍광을 소개하는 여정 미스터리 같은 묘사도 좋았어요. 작가가 실제 장소를 전부 답사하는 모습이 머리에 떠오를 정도로 말이죠.

그러나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세이초의 깊은 민속학 소양과 더불어 여정 미스터리라 해도 좋을만큼의 풍광 묘사는 분명 인상적이지만, 뭔가 핀트가 맞지 않고 방대한 분량이 낭비된 느낌이 강한 탓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태까지 읽은 '세이초 월드'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별로였습니다.

2013/11/20

빈둥빈둥 환타스틱 유럽여행기 - 환타 (김환타) : 별점 2.5점

빈둥빈둥 환타스틱 유럽여행기 - 6점
환타(김환타) 지음/중앙books(중앙북스)

이글루스 블로거이신 김환타님이 블로그에 연재했던 유럽 여행툰 단행본.

블로그 연재 당시 꼼꼼히 챙겨보았는데 출판된 책으로 보니 또 다른 맛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만화로 그려진 관광여행기라는 점에서 "낢 부럽지 않은 네팔 여행기"와 여러모로 비교되는데 정보와 재미 측면에서는 "낢..." 쪽이 더 좋지만 그림과 일상성 측면에서는 이 작품이 더 마음에 들더군요.

정보 전달 측면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부연 설명드리자면, "낢..." 쪽은 네팔 트레킹 여행에 대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되는지 적당히 알 수 있게 해 주지만 이 책은 유럽 여행에 대해 딱히 알려주는 것이 없습니다. 배낭이 캐리어보다 낫다, 이런 준비물을 챙겨라, 집시를 조심해라 등등의 내용은 이 책이 아니라 인터넷에 검색어 한 줄만 입력해도 나오는 정보들이잖아요? 재미 역시 마찬가지라서 빵 터지는 그런 맛은 부족한 편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작가의 젊은 미혼 여성 마인드를 따라잡기 힘든 탓도 크겠지만...

그러나 확실히 그림은 훨씬 마음에 들 뿐더러, 그야말로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일상성은 마음에 들었어요. 네팔 트래킹 여행보다는 유럽 배낭여행이 더 친숙한 덕이겠죠.

결론적으로 점수는 2.5점.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여행이 소재인 일상툰으로 추천드립니다.

그런데 정가 17,000원이라는 가격은 심히 부담스럽긴 하네요. 아무리 풀컬러라도 그렇지...

2013/11/19

한국의 CSI - 표창원, 유제설 : 별점 3점

한국의 CSI - 6점
표창원.유제설 지음/북라이프

미드 CSI로 잘 알려진, 과학수사 기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책. 목차는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CSI를 탄생시킨 과학수사 실패 사례 1
Part1. 현장 감식, 모든 수사의 출발점
Part2. 지문, 감춰진 범죄자의 흔적
◆CSI를 탄생시킨 과학수사 실패 사례 2
Part3. DNA, 살인자의 또 다른 얼굴
Part4. 혈흔 형태 분석, 범죄 상황의 생생한 증언
Part5. 미세 증거, 범인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증거
◆CSI를 탄생시킨 과학수사 실패 사례 3
Part6. 검시, 사체가 말하는 진실
◆CSI를 탄생시킨 과학수사 실패 사례 4
Part7. 화재 감식, 화염으로도 감출 수 없는 범죄

가장 큰 특징은 항목별로 실제 사례를 등장시켜 이해를 돕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혈흔에 대한 설명에 실제 "도망자"로 유명한 샘 셰퍼드 사건을 등장시키는 식입니다. 사건에 얽힌 후일담이 상세하게 실려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샘 의사가 킬러라는 닉네임으로 프로레슬러 생활을 했는지는 몰랐네요.

내용들 모두 흥미로우나 개인적으로는 과학수사 실패 사례를 소개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총 4개의 사건이 등장하는데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존배넷 램지 사건

"서프라이즈"에서도 방송되었던 미국의 아동 성폭행 살인사건으로 영구 미제 사건이기도 하지요. 초동 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범인 비스무레한 인물도 드러났고, 최소한 부모가 누명을 벗었다는건 다행입니다. 

오제이 심슨 사건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설명은 생략합니다만 변호인 측의 전략과 주장이 상당히 짜임새 있어서 놀랐습니다. 덧붙이자면 오제이 심슨이 범인인 줄 알았는데 그의 전처 아들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김성재 사건

유명한 사건이죠. 외국 도서와는 다르게 국내 유명 사건이 소개되는 점은 확실히 좋네요. 워낙에 널리 알려진 사건이지만 이 책에서는 변호인단의 논박과 증거들에 대한 변론이 디테일하게 소개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저도 여태까지는 고 김성재의 애인이 유력한 용의자라고 생각했는데 변호인단 의견도 확실히 타당성이 있더군요. 그나저나 유력한 증거인 동물 마취제 성분의 독극물이 왜 크게 인정받지 못했는지는 조금 궁금합니다.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워낙에 유명한 영구 미제 사건이죠. 아직 여러모로 의견이 분분한 사건으로 제 개인적인 평을 담을 필요는 없지만 확실히 변호인 주장에 더 무게가 실리기는 합니다. 그러나 경찰 말대로 아내의 불륜이 사실이었다면 남편에게 가장 확실한 동기가 있었다는 것도 부인하기는 어렵네요. 변호인이 밝힌 용의자인 치정남은 살인을 저지를 하등의 이유가 없잖아요? 돈 때문에 협박한 거라면 남편한테 밝혀버리는 게 맞지... 여튼 이 사건 이후 여러모로 발전한 경찰과 국과수의 노력으로 만삭 아내 살인사건 같은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겠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관련 서적은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그 중에서도 손꼽을만한, 딱딱할 수 있는 과학수사 이론을 흥미로운 실제 사례와 결합하여 소개하는 이상적인 구성을 갖춘 책이라 생각됩니다. 한국화된 사례들도 마음에 좋았고요. 이론보다는 조금 재미에 치우친 편이긴 한데 도판과 자료를 조금만 더 보강한다면 이쪽 분야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와 겨루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관심 있으신 모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13/11/18

종착역 살인사건 - 니시무라 교타로 / 이연승 : 별점 2.5점

종착역 살인사건 - 6점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레드박스

도호쿠 아오모리 출신의 미야모토는 7년 만에 고교 동창생들과 함께 귀향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편지와 함께 기차표를 보냈다. 7명의 멤버는 모두 우에노 역에 모이기로 약속했는데, 공무원이 된 야스다만이 오지 않아 6명의 멤버만 고향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 직후 야스다는 역 화장실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1주간 출장을 다녀오는 바람에 격조했네요. 간만에 리뷰를 올립니다. "귀동냥"에 이어 국내 최고의 추리문학 커뮤니티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운 좋게 읽게 된 작품입니다. 리뷰 전에 자리를 빌어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줄거리 소개대로 7년 만에 모인 고교 동창생들이 하나씩 살해당한다는 연쇄살인물로, 그간 서너 편의 작품으로 접했던 니시무라 교타로의 도쓰가와 (토츠가와) 경부 - 가메이 형사 시리즈입니다. 작가의 수많은 작품 중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죠. 그나저나 "일본 미스터리계의 거인 니시무라 교타로가 드디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라고 홍보하던데, 제가 읽었던 국내 소개된 몇몇 작품들은 모두 정식 계약된 번역본이 아니었나 보네요.

어쨌거나 작품의 장점으로는 흡입력이 상당하다는 겁니다. 여섯 명이나 살해당하는 거창한 사건이 그야말로 숨 쉴 틈 없이 벌어지는 덕분입니다. 재미 하나만큼은 제가 읽었던 작가 작품 중에서 최고로 치고 싶네요. 트릭도 상당히 풍성합니다. 특히 작가의 주특기인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이 상당히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심리를 이용한 원격 살인 트릭과 밀실 살인 트릭도 등장할 정도로요.

아울러 "여정 미스터리"의 거장다운 풍모를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은 좀 의외였습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 중 한 곳이 도호쿠 지방의 아오모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아오모리에 대한 묘사나 설명을 등장시키는 대신에, 도호쿠 출신으로 도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심리묘사를 역이용하여 향수를 자아낸다는 점에서 넓은 범위의 여정 미스터리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외지인이 느끼는 우에노 역에 대한 심도 깊은 묘사가 대표적인 예겠죠. 귀향에 대한 애잔함을 살인사건과 교차하여 보여주는 묘사도 괜찮았고 말이죠.

그러나 단점 역시 명확합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슷하게 범행 동기에 대한 설득력이 낮다는 점입니다. 범행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당위성이 너무나 부족해요. 7년 동안 참고 지내다가 편지 한 통으로 촉발된 것으로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살의니까요. 살의를 불러일으켰다는 편지 내용도 솔직히 별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편지 한 통 받았다고 여섯 명이나 살해하다니, 이건 사이코패스의 정도를 넘어선 중증 정신병자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또 우연과 작위적인 전개도 두드러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가메이의 동창인 고교 교사 모리시타에 관련된 에피소드로, 그가 나쁜 마음으로 건드린 옛 제자 마쓰키 노리코를 다시 찾아나선 발단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데, 거기에 더해 노리코가 현재 마치다의 연인으로 알리바이 공작을 완성하기 위해 모리시타를 이용하여 가메이를 속여 기차 시간을 착각하게 만든다는건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토츠가와 - 가메이가 그때 그 트릭을 눈치채고 실험을 한다는 타이밍과, 그 실험을 가메이가 진행한 것은 순전히 우연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나마도 일반인인 도쓰가와 경부의 아내가 눈치챌 정도로 허술한 시간표 트릭이라서, 경찰이 속아 넘어간 것부터가 운이 좋았던 것 뿐이었고요.

뭐 작위적인 전개야 이런 류의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어쩔 수 없는 점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결국 트릭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네요... 애써 어렵게, 연인까지 동원해가며 알리바이를 만들지만, 이어지는 범행은 '내가 범인이다'라는 것을 알리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야스다를 살해하고 가와시마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자살한 것처럼 위장했을 때 살인을 일단 중지했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하시구치 마유미의 자살로 위장한 살인까지만 벌이던가요. 결국 트릭을 풀 필요도 없이 마지막 미야모토 살해에서 마치다는 범인으로 확정되어 버리는데, 이럴 거면 뭐하러 어렵게 트릭 따위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다 같이 탄 기차에 불이라도 지르고 도망가던가.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단점이 명확해서 감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중반부의 긴장감만 잘 살렸더라면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중반 이후 범인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도 니시무라 교타로라는 작가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13/11/08

자물쇠가 잠긴 방 - 기시 유스케 / 김은모 : 별점 2점

자물쇠가 잠긴 방 - 4점
기시 유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북홀릭(bookholic)

"유리망치""도깨비불의 집"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접했던 기시 유스케의 에노모토 - 준코 컴비 단편집. 이전 단편집 "도깨비불의 집"은 다소 실망스러웠지요.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다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자물쇠 전문가 에노모토 시리즈답게, 밀실 트릭을 다룬 본격 퍼즐 미스터리 4편이 실려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서 있는 남자
  2. 자물쇠가 잠긴 방
  3. 비뚤어진 상자
  4. 밀실 극장

읽고 나서 바로 생각난 것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유가와 시리즈입니다. 두 시리즈 모두 과학을 근거로 한 불가능 범죄를 다룬 정통 퍼즐 미스터리로 영상화 되었을 뿐 아니라 탐정역인 유가와 - 에노모토 모두 시니컬하면서도 자신만의 전문 영역을 확고히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하거든요. 대표 장편으로 수작인 "용의자 X의 헌신"과 "유리망치"가 존재하는 점도 동일하고요.

그러나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 쪽이 좀 더 대중적이긴 합니다. 에노모토 시리즈는 트릭에 너무 집중한 탓에 읽는 재미는 떨어지거든요. 범인들의 동기도 너무 확실한 탓에, 밀실 트릭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경찰이 수사로 체포하지 못한다는건 직무유기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고요. 완벽한 알리바이 트릭을 단지 수상하다는 느낌만으로 파헤치던 선배 형사들의 근성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또, 대중적인 인기를 위함이었는지 개그 욕심이 과한데 작품과 잘 맞지 않더군요. 준코야 그렇다 쳐도 에노모토까지 희화화시킨 것은 실수였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전체 평균으로 2점. 쉽게 쉽게 읽히고 보기 드문 밀실 집중 본격물이라는 것은 반갑지만 트릭 외의 부분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두 편은 트릭마저 별로라... 팬이시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추천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 있는 남자"

장례업체 사장의 의문의 자살 사건을 다룬 작품. 

밀실 트릭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었던 일종의 "막"과 시체 강직을 이용한 트릭의 아이디어는 돋보입니다.

허나 너무 복잡하고 장치 의존도가 높아서, 과연 생각대로 잘 됐을까는 의문입니다. 글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트릭이라서 만화나 영상물이 더 잘 어울렸을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울러 마지막 장면처럼 범인을 옭아매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는 단점도 큽니다. 막에 남은 DNA는 그렇게 유력한 증거로 보이지 않으며, 끝까지 사장이 직접 쓴 유서가 맞다, 자살이 맞다라고 주장하면 결국 명확한 증거가 없기에 유죄 처리하기는 어려웠을 테니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자물쇠가 잠긴 방"

'섬턴 돌리기'라는 전문적인 털이범의 수법이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러한 등장인물의 직업을 이용하여 보다 완벽한 알리바이 트릭을 꾸민 범인의 천재적 작전이 빛을 발하는 작품.

갈릴레오 시리즈라고 해도 믿을 만큼 과학적인 트릭이 등장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범인이 과학교사인 덕분인데, 정전기와 기압차를 이용한 밀실 트릭은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실제 구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간단한 조작으로 가능하다는 장점도 크고요.

그러나 너무나 동기가 확실한데 경찰이 그냥 자살 처리했다는건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또 앞선 트릭들에 비해 자물쇠를 잠그기 위한 종이 테이프 트릭은 잘 와닿지 않았어요. 이 부분은 핵심 증거를 위해 추가적인 장치로 들어갔을 수는 있는데, 과연 증거 능력이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나중에 만든 거다!"라고 범인이 우기면 해명할 방도가 있던 것인지...

때문에 약간 감점하여 별점은 3점. 그래도 표제작답게 이 단편집의 베스트 작품이기는 합니다.

"비뚤어진 상자"

건축업자 탓으로 신혼집이 망가지자, 예비신랑이 살의를 품는다는 내용입니다. 동기인 부실 건축물을 트릭에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괜찮고, 조금은 이색적인 도서 추리물의 형태를 띄고 범인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전개와 묘사도 그럴싸합니다.

그러나 트릭이 너무 작위적입니다. 핵심 설정인 망가진 집이라는 무대가 지나치게 극단적이라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거든요. 게다가 공으로 두들겨도 흔적이 남는다는 것은 상식 아닌가요? 범인이 고교야구 감독이고, 집안에서 테니스공이 발견되었고, 외부와 연결된 적당한 크기의 구멍이 있다라는게 다 드러나버리면 트릭도 풀어내기가 별로 어렵지 않고요.

트릭 중심의 작품에서 트릭이 별로이니 점수를 주기도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밀실 극장"

전편에 등장했던 살인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연극단이 등장합니다. 황당한 연극과 함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내용이지요.

분위기는 흥미롭고 웃기기까지 하지만 트릭은 별볼일 없고 사건도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이라 정교함이 떨어지는 등 본격물로 보기는 어려운 작품입니다. 캐릭터들의 개그가 만개하는, 그냥 쉬어가는 느낌의 블랙 코미디였달까요? 단 문제는 별로 웃기지 않는다는 것이죠.

기시 유스케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의 졸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13/11/07

백인천 프로젝트 - 정재승 외 : 별점 2.5점

백인천 프로젝트 - 6점
정재승 외 지음/사이언스북스

KAIST의 정재승 교수가 "왜 4할타자가 사라졌는가?"라는 화두 아래 SNS로 모집한 40여 명의 인력과 함께 국내의 유일무이한 4할타자 백인천 선수의 이름을 빌어 연구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집단지성을 활용하여 연구한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 통계를 이용한 내용 분석, 그리고 왜 4할타자가 사라졌는지에 대한 야구 전문가들의 인터뷰로 말이죠.

그런데 4할타자가 사라졌는지에 대한 연구 자체는 별게 없습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미국 프로야구의 통계를 분석하여 "야구의 수준이 향상되어 4할타자가 사라졌다"라고 주장한 분산의 감소 가설과 동일하기 때문이에요. 즉

  1. 리그의 평균 타율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4할타자가 사라진 것은 타자의 수준 하락이나 투수의 수준 상승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
  2. 야구라는 생태계는 시간이 갈수록 최고와 최저 사이의 폭이 줄어들며 안정화된다는 것 (이것이 진화생물학자가 야구를 연구한 이유죠)

을 국내 프로야구 데이터를 분석하여 동일한 결론을 내린 것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40여 명이 모였지만, 데이터를 정리한 작업 이외의 집단지성이 필요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에요. 그리고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도 전혀 다른 직업 여러 사람이 모여서 어떻게 연구를 했는지 등 흥미로운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딱히 책으로 읽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분들은 괜찮았어요. 통계에 대해 정리하여 모든 통계가 비슷한 분포를 보인다는 것 등은 재미있었고, 야구 통계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 요새는 널리 알려진 OPS라던가 WHIP 등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각 수치들의 오류를 설명하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요 선수들과 야구 관계자들이 4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가 아주 볼만합니다. 두산 팬으로서 김현수 선수와 홍성흔 선수가 포함되어 있는 것도 반가웠고요. 뭐 홍성흔 선수가 4할은커녕 앞으로 3할이나 칠 수 있을지는 조금 의심스럽긴 하지만... 어쨌거나 인터뷰에서도 모든 선수들이 4할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이야기하더군요. 현대 야구는 경기 수, 타석이 많아 힘들다는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에요. 허나 개인적으로는 메이저리그 전문 기자인 김형준 기자가 4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를 더 잘 설명해 주었다고 봅니다. 4할을 목표로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으나 현대 야구는 안타보다는 홈런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결국 선수들이 장타에 집중하여 타율이 하락한다는 것이죠. 김현수 선수가 데뷔 때와는 달리 장타를 의식하면서 평균 타율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것을 지켜본 팬의 입장으로서 참으로 타당한 설명이 아니었나 싶었어요.

그 외에도 샤다리빠의 만화가 적절히 삽입되어 즐거움을 주는 등 깨알 같은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야구팬이시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긴 한데 집단지성에 대한 이야기인지, 통계에 대한 이야기인지, 4할에 대한 야구 이론 분석인지 잘 모를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라 감점합니다. 가격도 상당히 센 편이라 추천드리기는 좀 애매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