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 1 - 이정명 지음/밀리언하우스 |
정조 즉위 당시, 도화서에 두명의 천재가 있었으니 한명은 단원 김홍도였고 다른 한명은 혜원 신윤복이었다. 단원 김홍도는 신윤복의 스승으로 제자의 천재성에 경탄을 금치 못하나 신윤복은 고리타분한 도화서 양식을 거부한 이단아적인 존재. 두명의 천재는 정조의 총애를 받아 갖가지 어명을 받든 뒤, 어진화사의 지위에까지 오르나 결국 과감한 사실적 그림으로 신윤복은 도화서에서 내쳐지게 된다. 그러나 정조는 두명에게 진정한 어명, 즉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어진을 찾으라는 밀지를 내리고 신윤복은 내노라하는 세도가 김조년에게 몸을 의탁한 뒤 어진을 찾기위한 기나긴 여정에 들어간다...
이정명씨는 요새 잘나가는 한국 작가로 알고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은 회사 동료가 추천해서 읽게 되었네요. 솔직히 한국의 이른바 "팩션" 쟝르는 그동안 읽어본 작품들도 실망만 안겨준 것이 많아서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이 책은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제법 괜찮은, 길이가 제법 되는데 한번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을 안겨 주는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물로 끝나지 않고 "팩션"이라는 쟝르명에 걸맞게 크게 2가지의 수수께끼, 즉 사라진 사도세자 어진, 그리고 어진과 관련되어 살해된 두명의 화원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와 신윤복의 정체에 대한 수수께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두가지의 수수께끼가 두 화원이 그린 당대의 걸작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잘 녹아들어 있어서 작가의 세심한 자료조사와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별 관련없어 보이는 유명한 작품들이 이야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펼쳐지는 것은 정말이지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저도 미대 출신이긴 하지만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갔던 작품들에 대한 과감한 해석이 정말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미스테리라는 쟝르만 놓고 본다면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사도세자 어진에 관련된 수수께끼는 결국 김홍도의 잠깐(?)의 조사를 통해 밝혀질 뿐더러 범인을 지칭하는 암호문은 억지 그 자체였거든요. 종이를 이용한 트릭이나 그림을 글씨로 읽는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그다지 효과적으로 쓰인 것 같지도 않았고요. 더군다나 또다른 수수께끼인 신윤복의 정체라는 것은 그것이 밝혀지는 것이 이른바 "감식안" 이라는 설정인지라 설득력이 너무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신윤복의 정체가 이야기에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약점이라 생각되네요. 특히 이 부분은 출판사의 미친 마케팅 덕에 수수께끼고 나발이고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근영 주연 드라마로 SBS 방영 예정!" 이라고 홍보를 해 버리니 나원참 이거 장난도 아니고...
아울러 이야기도 좀 중구난방으로 튀고 결말도 약간 어이가 없긴 합니다. 진범에 대한 단죄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으며 결국 그래서 뭐가 어쨌는데? 라는 식의 엔딩이라 약간 허무했거든요. 여운을 남기는 맛은 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작가의 치밀한 자료조사와 다양한 그림에 대한 재해석 등이 잘 표현된 작품으로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조 시대 도화서 이야기는 요새 자주보는 "이산"으로 친숙하기도 해서 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어쨌건 "한국형 팩션"이라고 불리우는 쟝르가 만약 있다면 그 중에서 최고작으로 삼아도 될 정도로 공들여 쓰여진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팩션"이라고 불리우기에는 약간 부족해 보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진심으로 작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덧붙이자면 출판사의 미친 마케팅은 불만이지만 문근영 주연의 드라마도 꼭 보긴 봐야겠네요. 문근영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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