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8/05/23

종소리를 삼킨 여자 - 로베르토 반 훌릭 / 이희재 : 별점 3점

쇠종 살인자 - 6점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이희재 옮김/황금가지

당나라 시절, 푸양의 새로운 판관으로 임명되어 부임된 디 공은 유능하고 성실한 수하 훙 수형리와 마 중, 차오 타이, 타오 간과 함께 고을의 여러가지 송사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사건은 푸주한 딸 순옥의 강간 치사 사건이 제일 먼저로 순옥의 연인인 서생 왕이 이미 용의자로 수감된 상태이지만 디 공은 진범을 꿰뚫어 본 뒤 마 중에게 진범을 잡아올 것을 명하고, 곧이어 고을의 "아이를 점지해 주는 절"로 유명한 보자사의 실상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보다 가장 크고 위험한 사건은 광둥에서 옮겨온 대악당 린 판 사건으로 부유하고 세력도 강하여 한 집안을 멸문시킨 뒤에도 위세가 당당한 그를 잡아넣기 위해 디 공은 전력을 다하는데...


디 판관 시리즈로 저는 예전 디자인하우스 판본으로 시리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셜록홈즈 디 젠지에 추리소설"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간만에 옛 생각이 나서 들춰보았다가 끝까지 다시 읽어버렸네요. 치매가 오는건지 뇌에 기억이 전부 휘발되어 있어서 처음 읽는 책 같았습니다.^^

어쨌건 읽다보니 재미는 있지만 약간 부족한 부분도 눈에 띕니다. 일단 이야기는 아귀가 딱딱 들어맞고 고증도 정확해 보이지만 고지식하게 사료를 들여다 본 느낌이 강해요.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너무 고대 자료를 날 것 그대로 소설화한 것 같았습니다. 잔인한 형벌에 대한 묘사라던가 여성에 대한 성폭행 이야기가 내용 전반에 걸쳐 주요 범죄 및 단서로 쓰인다는 점, 부패하고 무능한 말단 포교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특히 그러했어요.
또한 이야기도 하나의 일관된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사건이 순차적으로 벌어지고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서 여러편의 단편으로 쪼개는 것이 더욱 낫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세가지 이야기 중 하나인 보자사라는 절에서의 사기(?) 행각을 폭로하는 부분의 주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앞부분에 복선처럼 제시되는 등 장편으로 가져야할 장점을 살리는 부분은 있지만 내용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니까요. (참고로 이 부분은 저자의 해설에 따르면 고대 중국의 범죄 소설의 유형을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해설을 읽으니 이해가 좀 되더군요)

그러나 중국 당나라의 명판관 이야기라는설정 자체에서 색다르고 이색적인 느낌은 충분하고 무엇보다도 "재미"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역사 추리물로의 가치도 높아서 대단한 추리가 펼쳐지는 부분은 많지 않지만 첫번째 사건인 푸줏간 처녀 순옥의 강간 살해 사건의 경우 범인을 밝혀내는 부분의 추리가 합리적이어서 마음에 들었고 악당 린 판의 사건에는 다양한 추리와 사건 해결 방법이 등장해서 정통 추리물의 범주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요소가 돋보이거든요. 특히 "돗자리 털기"라는 나름의 과학적 단서와 금합을 통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당대 중국의 수사과정과 취조, 재판과정의 디테일한 묘사는 덤과도 같지만 나름의 재미를 선사하고요.

무엇보다도 벽안의 외국인이 동양의 신비와 기묘한 매력에 빠지지 않고 이만큼의 성과를 혼자 힘으로 이루어 내었다는 것은 높이 사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뒷부분의 해설에 따르면 여러 고대 중국의 범죄 소설 등을 연구하여 인용한 뒤 실존인물 디 젠지에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로 꾸며낸 시리즈라고 하는데 국내에 소개된 고대 중국 범죄 소설류야 "포청천" 정도 밖에 없는 만큼 자료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뒷부분 해설에 따르면 고대 중국 소설의 형식을 여러모로 따라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옛스러움이 은근히 묻어나는 것도 매력적이었어요.저자가 직접 그렸다는 삽화도 마음에 들었고 말이죠.

시리즈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다음 작품은 "쇠못 세개의 비밀"입니다. 물론 디자인 하우스 판본이지요.

그나저나 요새 기억력 감퇴가 정말 심한 것 같아 걱정이네요. 뭐 새로 나온 책에 돈을 쓰지 않게 된다는 장점도 있긴 하지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