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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5

제라르 준장의 회상 - 아서 코난 도일 / 김상훈 : 별점 3.5점

제라르 준장의 회상 - 6점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상훈 옮김/북스피어

나폴레옹 휘하에서 싸웠던 제라르 준장의 소싯적 모험담이 수록된 연작 단편집입니다. 모두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셜록 홈즈의 아버지 코난 도일 경의 작품으로 "코난 도일을 읽는 밤"에서 마이클 더다가 극찬했던 탓에 관심을 갖던 작품인데, 얼마 전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 출간되어서 여름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읽어보았습니다.

읽어보니 확실히 극찬받을 만하더군요! 발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읽는 재미만큼은 정말 발군이었던 덕분입니다. 준장의 생명을 건 모험들의 긴박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 손에 땀을 쥐고 읽었습니다.
여섯 명의 펜싱 사범과 결투를 벌였다는 식의 허세 끼 있으면서도, 황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여성들에게 한없이 관대한 매너를 보여주는 제라르 준장도 아주 매력적이고요. 시기적으로 본다면 얼마 전 읽은 "내 방 여행하는 법"의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떠오르는데, 허세는 동급이더라도 유머 감각은 월등합니다. 그래서 모험담도 전반적으로 유쾌해요. 잘난 척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유쾌한 친구인 셈이지요.

아울러 역사 모험물답게 나폴레옹, 네 원수, 탈레랑, 워털루 장군, 뮈라 원수 등 다양한 실존 인물들과 실제 전쟁이 벌어졌던 곳들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도 좋습니다. 군복을 비롯한 여러 세세한 디테일들과 전투 장면의 묘사 역시 큰 볼거리에요.

결론적으로 추천작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약간 시대는 다르지만 "스카라무슈""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비교할 만한 좋은 작품입니다. 후속작도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잃어버린 세계"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도일 경은 추리물뿐 아니라 모험물에도 확실히 대단한 역량을 보여주는 작가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프랑스 군인의 이야기를 영국 작가가 이렇게나 실감나게 쓴 것도 정말이지 놀라와요. 영국 군인을 지나치게 영웅시하지 않은 것도 신기했습니다.

각 단편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라르 준장, 음울한 성으로 가다"

1807년 2월, 제라르 중위는 연대 본부에 출두하던 중 우연히 경기병 연대 순찰대를 만났다. 순찰대의 지휘관 뒤로크 소위는 아버지의 원수 슈트라우벤탈 남작에 대한 복수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둘은 남작의 계략으로 성에 갇혀버리는데...

제라르 준장의 회고에서 시작되는 모험담의 첫 이야기입니다. 나이 지긋한 인물의 1인칭 방백에서, 본 이야기는 3인칭의 소설로 전환되는 구조인데 예전 "샘 호손의 사건부"와 같은 방식입니다. 이야기의 현실성을 높이는데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네요.

시리즈의 시작으로 나무랄 데 없습니다. 지하에 갇힌 후 탈출하는 과정, 그 와중에 남작을 중오하는 의붓딸의 도움, 그리고 남작과의 최후의 결투와 완벽한 해피엔딩 등 모험물로서의 재미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라르 준장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각인될 뿐 아니라, 사악한 남작의 캐릭터도 잘 살아 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아작시오의 자객들을 처단하다"

1807년, 제라르 중위는 퐁텐블로 궁에서 나폴레옹 황제의 밀명을 받았다. 밤 10시에 황제와 함께 어떤 사내들을 상대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이 코르시카에서 '아작시오 형제단'이라는 단체에 가입했었는데, 그 단체로부터 협박을 받는다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등장하는 팩션적 요소 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습니다. 황제가 암살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핵심인데, 이미 결과(암살 실패)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재미를 주기 어려운 탓입니다. 검술로는 상대도 안 되는 두 명의 자객과 대결하는게 모험의 전부이기도 하고요.

물론 나폴레옹을 위장한 일종의 가게무샤가 대신 죽었다는 약간의 반전, 그리고 제라르가 궁을 나갈 때 처음 들어올 때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서, 즉 모든 걸 잊고  나가겠다고 하자 나폴레옹이 한 답변 — "그럴 수는 없을걸, 그때 자넨 중위였으니까 말이야. 이제 가서 푹 쉬게, 제라르 대위" — 등 재치 있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단점이 더 크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왕을 잡다"

1810년, 부상으로 후방에 머무르던 제라르 대령은 연대 복귀를 위해 산을 넘다가 게릴라들에게 사로잡혔다. 잔혹한 게릴라 엘 쿠치요에게 사지가 찢길 뻔했던 제라르를 구해준 건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영국군 용기병대였다.
용기병대의 지휘관 바트와 친해진 제라르는 그와 카드 게임 '에카르테'를 벌여 당당하게 탈출할걸 계획하는데...

산적에게 습격받았다가 영국군에 사로잡히고, 마지막에는 웰링턴 장군까지 나오는 드라마틱한 구성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제라르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기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스페인 산적들의 묘사도 생동감 넘치며, 프랑스인이 영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 카드 게임의 박진감 등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요. 에카르테를 프랑스 전체를 뒤져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이 세 사람이나 될까라는 식의 귀여운 허세도 여전합니다.

마지막 웰링턴의 한마디도 인상적입니다. 급작스럽게 나타난 웰링턴에게 제라르가 하는 말 — "내가 카드 게임에서 이겼다, 약속대로 자유를 달라, 자신은 킹을 잡고 있다" — 에 대한 답변으로 웰링턴이 "자넨 우리 킹에게 잡혔거든" 이라고 하는 장면은 영국적이면서도 재치 있더라고요.

모험물로도 재미있고, 팩션으로도 괜찮은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왕, 제라르 준장을 잡다"

1810년, 다트무어 감옥에 수감된 제라르는 탈출을 감행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치밀한 탈출 — 창의 철봉을 뽑고, 벽돌을 빼낸 후 이중 벽을 철봉에 침대보로 만든 밧줄을 묶어 넘음 — 도 재미있지만, 탈출 후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우선 찰스 메러디스의 마차를 우연히 만난 후 그의 외투를 훔칩니다. 그러나 그 사이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을 몰라서 왔던 길을 되돌아와 다시 형무소 근처에 오고 말지요.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말한 방향과 반대로 향했지만, 영국 복싱 챔피언 브리스톨 버슬러를 만나 격투를 벌인 끝에 사로잡힌다는 좌충우돌 행각이 정말 흥미진진한 덕분이에요.
메레디스의 편지로 풀려난다는 반전도 아주 기막히며, 이 와중에 편지를 끝까지 읽지 않는 기사도 정신도 반짝반짝 빛납니다. 메레디스 부인과 나누는 농짓거리도 인상적이었고요.

한마디로 탈출기로서도, 모험담으로서도 빼어난 수작입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밀플뢰르 원수와 맞서다"

1810년, 마세나 원수는 제라르 대령에게 탈주병 출신으로 엄청난 세력의 산적 집단을 만든 밀플뢰르 원수 타도 및 그가 사로잡은 부유한 백작 부인을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하들과 산적의 근거지로 향하던 제라르는 도중에 영국군을 만났다. 다행히 지휘관이 친분이 있던 바트이며, 그도 같은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공동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그러나 산적의 근거지인 수도원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마침 그 수도원에서 쫓겨났다는 수도원장의 말을 듣고, 패잔병을 가장하여 잠입할 것을 모의하는데...

일단 바트의 재등장은 반가웠고 수도원장의 정체가 밀플뢰르 원수였다, 그리고 백작 부인은 원수에게 푹 빠져버렸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허나 중간에 제라르의 목숨을 노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는 등 전개 면에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영국군을 사로잡은 방법과 똑같이 아침에 제라르를 유인하여 프랑스 군도 일망타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방심을 노렸다 치더라도 밀플뢰르 원수가 직접 나설 이유는 당연히 없습니다. 또 반가운 캐릭터였던 바트가 전사한다는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제라르보다는 밀플뢰르가 더욱 주인공에 가까운 일종의 안티 히어로물로 보는 게 타당할 듯싶네요. 결국 밀플뢰르가 승리하는 결말 역시 그러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왕국을 걸고 도박을 하다"

1812년, 프랑스는 러시아 원정에서 패배한 후 괴멸적 상황에 빠졌다. 때문에 제라르 대령은 프랑스로 복귀하여 부대를 재건할 것을 명받았다.

독일을 가로질러 귀국하는 와중에 제라르는 항상 프랑스와 친밀했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눈치챘고, 협력자를 통해 곳곳에 표시된 기묘한 "T"자 마크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것은 프로이센 상류층의 비밀 결사 투겐트분트의 표식이었다. 

그리고 제라르는 죽어가는 군위대 장교 아르노 후작을 만나 황제의 밀서를 건네받았다. 그의 마지막 부탁은 호프성의 작스-펠슈타인 대공에게 밀서를 전해 독일이 황제에게 거역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 그리고 전 유럽이 나폴레옹에게 거역하는 상황의 한가운데 놓인 제라르의 모험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팩션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실상 모험이랄 것은 대단치 않습니다. 대공을 찾아가 이야기하는 게 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제라르가 팔로타 백작부인을 자칭한 대공비에게 서류를 뺏기는 과정, 궁지에 몰려도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역사를 거스르지 못하는 제라르의 실패만큼은 인상적이지만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훈장을 타다"

준장이 된 제라르는 전우 샤르팡티에 소령과 함께 나폴레옹의 부름을 받았다. 황제는 당면한 작전 내용과 밀서를 스페인 국왕인 자기 형에게 전하라고 명령한 후, 친히 경로까지 정해 주었다. 하지만 그 경로는 프로이센 군 등에 이미 점령당한 상태였다. 제라르는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여 명령을 완수하는데...

태사자가 홀로 북해성 밖의 원군을 청하는 것과 같은, 혈혈단신으로 적진 한복판을 가로지른다는 화끈한 모험이 펼쳐집니다. 태사자처럼 제라르의 기지도 돋보입니다. 시장 저택에서 벌어지는 프랑스군 - 프로이센군 전투, 그리고 이후 프로이센 군에게 다시 점령된 상황에서 코사크 장교 부트킨 백작을 속여 탈출하는 과정은 정말 기가 막히거든요.

게다가 황제의 의도는 그들이 사로잡히게 만들어 거짓 정보를 적에게 노출시키려 했다는 것, 그래서 황제는 사로잡힌 샤르팡티에게 레지옹도뇌르를 수여하고 제라르에게는 특별 명예 훈장을 수여한다는 결말까지도 완벽합니다. "저 친구는 우리 군에서 최악의 돌대가리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용감한 군인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까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요. 그 말 정말이지 정확합니다! 아무래도 제라르는 주어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머리는 타고났지만 좀 더 큰 그림은 볼 줄 모르는 인물인 것 같아요.

여튼 별점은 4점. 모험도 화끈하고 결말까지 완벽하니 더할 나위 없습니다.

"제라르 준장, 악마의 유혹을 받다"

나폴레옹 군대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제라르 준장은 프랑스 군 내에서 최고의 용사로 알려진 다른 전우 2명과 함께 베르티에 원수의 호출을 받았다. 그는 나폴레옹을 적군에 넘기자고 제안했다. 3명 모두 분노와 함께 제안을 거절했지만, 직후 황제가 나타나 그들을 시험했다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그의 후계자를 증명하는 서류와 4천만 프랑에 해당하는 증권을 숨겨 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탈레랑의 지시를 받은 악당들에게 서류를 빼앗겼고,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추격과 격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 단편집의 아쉽지만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마지막답게 황제 나폴레옹의 최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인트헬레나에서 나폴레옹이 단 한통의 편지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는 도입부로부터 그 편지의 내용이 무엇이었을지 밝히는 전개는 괜찮습니다. 허나 무려 전우 2명이 죽었음에도 대단한 모험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이 임무를 성공하더라도 나폴레옹에게 내일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좀 맥이 빠고요. 나폴레옹 2세는 결국 한 게 아무것도 없을 뿐더러 이 서류들이 그의 존재를 어떻게 한 건 아니니까요.

결론적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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