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ang.egloos.com 의 이사한 곳입니다. 2021년 1월, 추리소설 리뷰 1000편 돌파했습니다. 이제 2000편에 도전해 봅니다. 언제쯤 가능할지....
2006/01/06
후루하타 닌자부로(古畑任三郞) 1,2기 및 스페셜
경시청 수사 1과 경부보 후루하타 닌자부로가 주인공으로 형사 콜롬보식의 도서식 추리물 옴니버스 시리즈입니다. 도서 추리물답게 범인이 사건을 저지르는 것을 먼저 보여주고 후루하타 닌자부로가 범인의 계획을 하나씩 밝혀내어 사건을 해결하는 식인데 마지막에는 "시청자에 대한 도전" 같은 장면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은 정통파 추리 시리즈물은 보통 추리 매니아 등 특정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비해, 이 시리즈는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자만심 넘치고 안하무인에 범인을 괴롭히는 능청스러운 연기를 비롯해서, 부하 이마이즈미의 코믹한 설정과 연기 등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넘쳐나고, 내용상의 트릭도 상당히 이해하기 쉽고 전개가 논리적이라 추리물을 많이 접하지 않은 일반 시청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점입니다. 전혀 다른 분위기이지만 형태면에서는 "제시카의 추리극장" 같다고나 할까요? 쉬운 추리물의 교과서적인 작품 그 자체에요.
그 외에도 작품 전체를 통해 "완전범죄는 없다!" 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해 주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아울러 정통파 퍼즐 미스터리 추리물로 트릭자체가 꽤 괜찮은 작품도 많이 있는 편이에요.
또한 게스트 (주로 범인역)으로 유명 스타들이 등장해 주는 것도 상당히 이색적인 재미를 안겨다 줍니다. 워낙 오래된 시리즈이고 젊은 스타의 비중이 적어 제가 아는 배우는 나카모리 아키나와 스즈키 호나미, 기무라 타쿠야, 그리고 범인은 아닌 중요 참고인 역이었던 마츠 다카코 정도지만 일본 영상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많은 친숙한 얼굴을 찾을 수도 있겠더군요.
다만 마지막에 범인에게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고 범행을 인정케 하는 결론 부분에서 드러나는 증거가 빈약한 편이 많은 것이 약간 약점이긴 합니다. 실질적인 눈에 드러나는 증거보다는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말빨"로 범인을 옭아매는 편이 좀 많거든요.
그래도 다른걸 다 떠나서라도 타무라 마사카즈가 연기하는 후루하타 닌자부로라는 멋진 캐릭터를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리즈였습니다. 아울러 전체적으로 대사가 꽤 쉬운 편이라 일본어 공부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더욱 좋더군요. 저는 1, 2기와 1,2기 스페셜만 구해 볼 수 있었는데 3기는 물론 인기 탓에 번외편 같은 작품도 존재한다고 하네요. 빨리 3기와 다른 시리즈도 어떻게든 구해 보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제가 본 1, 2기와 스페셜 내용의 간단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출처는 토끼님의 블로그 입니다.
후루하타 닌자부로 1기(1994.04.13 ~ 06.29)
01. 죽은 자로부터의 메시지(나카모리 아키나) : 인기 순정만화가의 애인?살인사건
02. 움직이는 시체(사카이 마사아키) : 가부키 배우의 경비원 살인사건
03. 웃는 시체(코테가와 유코): 정신과 의사의 애인 살인사건
04. 살인 팩스(쇼호쿠테 츠루베): 추리소설작가의 부인 살인사건
05. 더럽혀진 장기말(반도 야소스케): 일본장기기사의 살인사건
06. 피아노 레슨(키노미 나나): 피아니스트의 살인사건
07. 살인 리허설(코바야시 넨지): 시대극 배우의 촬영소사장 살인사건
08. 살인특급(카가 다케시): 치과의사의 흥신소사장 살인사건
09. 살인공개방송(이시쿠로 켄): 초능력자가 일으킨 살인사건
10. 모순투성이의 시체(코사카이 카즈키): 대의원 비서의 살인사건
11. 잘있어요, DJ(모모이 카오리): 인기 DJ의 살인사건
12. 마지막 인사(스가와라 분타): 손녀를 잃은 형사의 복수 살인
후루하타 닌자부로 스페셜1(1995.04.12)
웃는 캥거루(진나이 다카노리/미즈노 마키): 수학자의 파트너 살인사건
후루하타 닌자부로 2기(1996.01.10 ~ 03.13)
01. 너무 많이 말한 남자(아카시야 산마): 변호사의 정부 살인사건 上, 下
02. 웃지 않는 여자(사와구치 야스코): 기숙사 여사감의 동료 살인사건
03. 게임의 달인(쿠사가리 마사오): 주치의의 추리소설작가 부부살인사건
04. 파랑인가, 빨강인가(키무라 타쿠야): 대학조교의 유원지폭파미수사건
05. 위선의 보수(가토 하루코): 인기각본가의 여동생 살인사건
06. Vs 퀴즈왕(카라사와 토시아키): 퀴즈왕의 방송스탭 살인사건
07. 動機鑑定(사와무라 토쥬로): 골동품 가게 주인의 살인사건
08. 마술사의 선택(야마시로 신고): 마술사의 젊은 조수 살인사건(마츠 다카코도 나와요)
09. 실수한 남자(카자마 모리오): 잡지 편집장의 호텔 도어맨 살인사건
10. 뉴욕에서의 사건(스즈키 호나미): 남편을 살해하고 무죄판명된 여자의 이야기
후루하타 닌자부로 스페셜 2(1996.03.27)
잠깐의 이별(야마구치 토모코): 전위 화예가의 가주(이에모토) 살인사건
2024/06/29
직장 내 살인사건 - 헤너 코테 & 크리스티안 룬처 / 박종대 : 별점 2점
![]() | 직장 내 살인사건 - ![]() 헤너 코테 & 크리스티안 룬처 지음, 박종대 옮김, 표창원 해제/지식트리(조선북스) |
많은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볼프가 푀펠에게 법정에서 총격을 받아 살해당했던 1927년 사건은 말 그대로 '직장 내 살인사건'입니다. 볼프는 같은 회사 동료 푀펠에게 가졌던 질투심과 자신의 자리 보존을 위해 푀펠의 해고와 이익 배당금 지급 방해, 그리고 인격 모독에 앞장섰다가 살해당했습니다. 읽어보니 죽어도 싸다 싶을 정도로 못되게 굴었더라고요. 범인 푀펠이 오히려 꽤나 선처를 받았다는 이후 판결을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이렇게 직장 내 문제 때문에, 혹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에 더해,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로 '직장을 찾는 구직자'를 대상으로 금품을 노리고 저지른 범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1883년, 직업 소개를 미끼로 다수의 여성들을 살해한 생크와 그 일당들의 범행, 그리고 1891년 거의 동일한 방식이었던 프란츠 슈나이더와 그의 아내가 저질렀던 범행처럼요. 그러나 이 범행들은 '직장 내 살인'으로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직장'은 피해자들을 유혹한 무기일 뿐이고, 결과적으로는 금품을 노린 살인 강도에 불과한 탓입니다.
이외에도 '직장 내 살인'과는 별 관계없는 사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직장을 잃은 가장이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한 2006년의 후베르트 사건을 '직장 내 살인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회적 타살일 수는 있겠지만, 이를 직장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유명 소설 "비아말라"의 소재라는 클라인슈로트 살인 사건도, 잔혹한 가정 폭력을 저지르던 아버지를 나머지 가족들이 살해했다는 점에서 직장 내 살인 사건이라고 볼 수 없고요. 동성애 관계에 빠졌다가 파트너를 살해한 베르노 사건, 2002년, 퇴학으로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이 사회보호 대상자로 전락하게 된 슈타인호이저가 학교로 쳐들어가 17명을 사살한 사건도 그러합니다.
이렇게 '직장 내'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이야기 비중이 적다는건 분명 기대와는 어긋나며, 시대도 1차대전 이전 제국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게 많고 지역도 독일과 오스트리아로만 한정된다는건 단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5/07/07
완전범죄 - 박현빈 : 별점 2.5점
| 완전범죄 - |
국내의 대표 미제사건 28건에 대해 짤막하게 기록한 책. 범죄 관련 논픽션은 그간 많이 읽어왔지만 국내 미제 사건을 다룬 책은 드물어 그간 관심이 가던 차에 마침 기회가 되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수록된 사건들 모두 지금 읽어도 충격적이고 공분을 일으킬 뿐더러, 사건 자체의 수수께끼 역시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사건답게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건들 - "전주 여대생 실종 사건", "문경 십자가 변사 사건",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 사건", "청주 물탱크실 주부 변사 사건", "수원 가출소녀 살인 사건" 등 - 도 수록되어 있지만, 처음 접한 사건도 제법 되고요.
개중 인상적인 사건을 몇개 꼽아본다면, 집 안에서 여대생이 살해 당한 "광주 여대생 테이프 살인사건"을 우선 꼽겠습니다. 디지털 도어락이 파손되지 않은 상태를 볼 때 면식범의 소행이 분명함, 그런데 범인의 흔적이 집 안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없어진 것은 현금 1만3천원 외 피해자의 휴대전화가 전부, 휴대전화의 마지막 위치정보는 광주 어떤 병원 인근이었다는 등의 증거만 남기고 아직 미해결 상태라는데, 어떻게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서천 카센터 방화 살인사건"도 놀라웠어요. 상가 건물 화재 후 카센터 자리에서 3구의 시체가 발견되고, 카센터 주인의 아내와 자녀로 보였지만 성인 여성의 사체는 이웃 농기계 가게 주인의 아내였다는 것이죠. 동기, 정황 모두 수수께끼인 사건으로 오래 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했다고 하는데 찾아보고 싶네요.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어린이들이 연쇄 살해 당했고, 피해 아동들 배에 사인펜으로 범인의 메시지가 적혀있었다는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사건"입니다. 75년도에 발생한 사건이라 널리 알려지지 못한 듯 싶은데, 이 사건이야말로 여러 매체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런 사건의 범인이 마음 편히 활보하고 다닌다는 것은 정말이지 말도 안되니까요. 이런 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어져야 마땅할테고요.
그 외의 사건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놀랍고 충격적인 것들이라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과거 비슷한 류의 서적이나 자료는 "화성 연쇄살인", "개구리 소년", "그놈 목소리 사건" 등 처럼 80년대~90년대 초반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비교적 근간, 즉 90년대 이후, 2000년대 발생한 미제사건들이 대부분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대부분 10여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고 - 전체 분량도 320여페이지에 불과 - 그나마도 앞 한 두페이지는 저자의 단상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사건은 개략만 훑어보는 정도에 그칩니다. 솔직히 국내 미제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범죄 논픽션을 기대한 저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물이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정도는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도 다 나오는 이야기들이고, 결국 제대로 파고들려면 자료를 따로 모을 수밖에 없는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상기의 단점으로 감점하지만 미제사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순기능은 분명합니다. 이런 류의 도서에 관심 있으시다면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책을 구입할 때는 전혀 몰랐는데 요새 유명한 김리뷰씨가 저자더군요. 잠깐 조사해보니 짧은 기간동안 인터넷 상에서 흥망성쇠를 다 겪었던데, 사과가 진심이기를 바라며 앞으로 건승하길 기원하겠습니다.
2009/08/12
기세이혼센 살인사건 - 니시무라 교타로 : 별점 1점
기세이혼센 (紀勢本線) 신구(新宮)역 근처에서 한 여성의 피살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21세의 하라구치 유키. 치명상은 가슴을 날카로운 흉기로 참혹하게 찔린 것이었으며 이마에 X자로 상흔이 남아있었던 상태. 사건 해결을 위해 신구 경찰서에 설치된 수사본부에 도쿄 경시청 수사 1 과 소속의 토츠가와(十津川)경감과 가메이(龜井)형사가 찾아오고 이 사건이 도쿄 세타가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도쿄에서의 피해자도 영어이니셜이 Y. H에다가 21세, 거기에 칼에 찔리고 이마에 자 형태의 상흔이 남아 있는 것이 동일했던 것. 반신반의하던 경찰앞에 구시모토 역에서 동일한 조건의 여성 피살체가 발견되며 사건은 점차 커져만 가는데....
여정 미스터리의 대가 니시무라 교타로의 작품입니다. "침대특급살인사건", "히다다까야마에서 사라진 여인", "일본살인여행" 에 이어 네번째네요.이 작품도 역시나 일종의 여정 미스터리로서 간사이 쪽 열차 노선인 기세이혼센 (紀勢本線) 의 여러 역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잠깐 조사해봤더니 굉장히 긴 철도더군요.
그러나 내용은 굉장히 보잘것 없고 밀도가 떨어지는 졸작이었습니다. 복잡하기만 할 뿐 알맹이도 없고 추리적으로도 눈여겨볼만한 요소가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총 7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결국 범인마저 토츠가와 경감에게 사살되는 등, 니시무라 교타로 작품치고는 나름 피바다 계열로 사건 자체는 풍성합니다. 그러나 등장하는 사건들이 "연쇄살인"의 살인범과 그 "연쇄살인"을 추종해서 모방범죄를 저지르는 살인범과 그 모방범죄를 저지르는 살인범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살인범.. 이라는 식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뜬금없는 탓입니다.
그렇다면 중심 사건인 연쇄 살인 이야기는 재미있고 흥미로운가? 라는 것도 역시 아니올시다 입니다. 일단 21세의 영문 이니셜이 Y.H이며 눈 밑에 점이 있는 직장 여성을 노리는 연쇄 살인이라는 설정 자체는 뭐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수사의 포커스는 누가 봐도 어떻게 해당 인물을 범인이 골라낼 수 있었을까? 라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경찰들, 특히 나름 명탐정이라는 토츠가와 경감 조차도 이 점을 착안하지 못하고 거의 막판에 가서야 추리하여 결국 범인을 특정하는데 성공합니다. 그 전에는 그냥 탐문, 탐문, 탐문밖에는 없습니다...
한마디로 경찰이 조금만 더 머리를 써서 조사했더라면 진작에 해결되었을 사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추리의 영역이 아니라 기본적인 "초동수사"의 문제지요. 이 정도면 직무유기에 가까운게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게다가 너무 우연과 감에 의지하는 전개가 많다는 것도 큰 단점입니다. 결국 범인의 최종 목표지점을 특정하는 것도 - "가까운 기세이혼센(紀勢本線) 중 K로 시작되는 곳" - 그냥 토츠가와는 "감"으로 "난키 시라하마"라 짐작하고 그곳에서 결국 범인을 잡게 됩니다. "K"로 시작되는 곳이라는 단서도 토츠가와의 "감" 앞에는 무력할 뿐이죠. 뒷부분에 "난키(南紀)라고 해도 좋을 고장이름을 기난(紀南)이라고 했다"는 식으로 빠져가나기는 하는데 이건 솔직히 반칙이죠. "서울의 옛 이름이 한성이었기 때문에 서울도 H로 시작하는 도시다!"라고 주장하는거하고 똑같잖아요...
마지막으로 항상 이야기하지만 "여정 미스터리"라는 소재에 어거지로 엮어볼려고 "기세이혼센" 과 "난키" 지방을 중심으로 다루는 설정 자체도 문제가 많아요. "삼단벽" 같은 해당 지방의 명소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사건과는 별 상관없는, 단지 특이한 지방의 특이한 풍광일 뿐 실제로 사건은 이게 도쿄나 오사카라도 아무런 상관없거든요. 이래서야 "부산 살인사건"이라고 하고 해운대만 잠깐 나와준다던가, "제주도 살인사건"이라고 한 뒤 용두암만 잠깐 나와주는거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죠. 아무래도 작가의 여정 미스터리라는 쟝르에 대한 집착이 외려 화를 부른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관광가이드도 아니고... 시라하마 지방에서 돈이라도 받았나?
어떻게 된게 이 작가 작품은 읽으면 읽을 수록 재미가 없어지네요. 앞으로는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다는 "천사의 상흔"이나 일본 미스터리 문학상을 수상한 "종착역 살인사건" 정도의 작품이 아니면 찾아읽을 일은 없을것 같습니다. 별점은 1점. 그만큼이나 최근 읽은 작품 중 최악이었습니다. 엔간한 졸작은 수작으로 보일만큼 추리와 설정, 내용 모두 별로였어요.
2006/01/16
우치다 공포만화 컬렉션 - 우치다 야스오 원작 : 전체 평균 별점은 1.5점
한 작가의 작품을 만화 시리즈화해서 출간하는 기획의 시도는 높이 살 만 하고,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작가인 탓에 만화로라도 번역된 것 역시 고마와 해야 할 일이겠죠. 그런데 문제는 작품의 수준만 본다면 오히려 돈이 아까운 것도 많다는 것입니다. 계속 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것 참 고민되네요.
이유로는, 일단 권마다 다른 작가들을 쓰고 있는데 기획한 곳이 순정만화 전문지인지 대체로 작화가 순정체입니다. 순정체라는게 문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수준 자체가 낮은 작품이 많아요. 솔직히 작품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요.
또 우치다 야스오 소설은 한권밖에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추리" 보다는 이색적인 풍광에 왠지 더 치우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 만화 시리즈도 역시나 추리적인 요소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권 분량으로 페이지수가 제한된 탓에 축약이 너무 심한 것도 문제에요.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작품이 있을 정도니까요.
결론적으로, 만화화 자체에는 실패한 듯한 느낌입니다. 내용도 좀 낡고 고리타분한 것이 많아 21세기에 읽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구식이 아닌가 싶은 작품이 많은 것도 감점 요인이고요.
만화 쪽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탄탄한 작가 혼자서 전체를 맡아 작업했더라면 더욱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아쉽네요. 원작 작품 선정에서부터 만화적인 구성 모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을 볼 때, 좋은 기획을 살릴 수 있는 좋은 편집자를 구하지 못한 티도 많이 나서 더더욱 아쉽습니다.
저같은 매니아라면 구입하셔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3만원이 넘는 재앙이 되리라 생각되니 빌려서 보시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네요. 그나마 볼만한 책은 4권 "밀실 살인 사건", 7권 "트럼프 책의 비밀", 9권 "시인의 망령", 10권 "여섯개의 숫자" 정도입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1.5점정도?
권별 상세 리뷰는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제목이 왜 "우치다 공포만화 컬렉션" 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1권 바람의 레퀴엠 - 책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관계로... 추후 추가하겠습니다.
2권 북쪽에서 온 남자 : 그림 히다카 료
가수 지망생 쇼코의 신변에서 일어난 두개의 살인사건. 두 사건을 연결하는 "북쪽에서 온 남자" 란 과연 누구인가?
아오모리현 시모키타 반도를 부대로 무녀의 예언을 등장시켜 이색적인 분위기를 전해주는 작품.. 이지만 결정적인 추리 부분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왜 두명을 죽였는지에 대한 당위성 자체가 없고 예언과 우연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고 있으며 만화로 구성된 전개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별볼일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3권 장미의 살인 : 그림 토바 쇼코
여고생 유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먼 친척 동생 오가타 사토시가 의심받게 되자 아사미 미츠히코가 직접 진상을 밝히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여정보다는 "다카라즈카"라는 극단을 주요 소재로 삼은 작품입니다. 이외에도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등 예능계를 무대로 했다는 점에서는 다른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와는 사뭇 다른 느낌과 재미를 전해 주더군요. 추리 부분에서도 맥락이나 단서를 하나씩 쫓아나가는 전개도 좋았고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결말이 너무 시시해서 결과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4권 밀실 살인 사건 : 그림 에구치 유
우에노 역사 재개발을 둘러싸고 상인회의 갈등이 팽배해 있던 중 개발 회사의 중역인 와다 후미오의 살인 용의로 궁지에 몰려 있던 테라야마 코지 마저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다. 자살 전 테라야마의 사건 의뢰 편지를 받은 아사미 미츠히코가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선다.
우에노 역이라는 꽤 친숙한 소재를 등장시킨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 중 한편입니다. 밀실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그다지 기발한 트릭은 등장하지 않지만 추리와 동기, 전개가 납득할 만 하고 결말까지 확실한 작품이었습니다.
5권 백화점 연쇄 살인 사건 : 그림 시토 료코
하카타의 백화점 경쟁 관계를 둘러 싼 기업간의 전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우연히 사적 발굴현장에 참석한 아사미 미츠히코는 백골이 된 사체를 발견하고 사체의 정체가 밝혀진 후 자신의 옛 연인과 친구가 사건에 관련된 사실을 알게된 형이 직접 아사미 미츠히코에게 사건을 의뢰하는데...
일단 그림, 만화적인 수준에서 제일 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컷의 배열이나 전개가 도대체 알아먹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라 화가 날 정도더군요. 추리와 단서 등도 맥락에 맞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일단 내용 이해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거의 쓰레기에 가까운 수준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6권 나비부인의 눈물 : 그림 타마이 마키코
나가사키에서 악덕 카스테라 업자 야마오카 쇼지가 살해되고 전통 카스테라 업자 마츠나미가 용의자로 몰린다. 마츠나미의 딸인 하루카는 추리작가 우치다의 소개로 아사미 미츠히코를 알게 되고 그를 초청하게 된다. 이후 저명 유명인사가 2명이나 연쇄적으로 살해되는 사건으로 발전하는데...
나가사키를 무대로 한 본격 여정 미스테리로 우치다 선생이라는 추리작가가 등장하는 것이 재미나네요. 그림도 꽤 마음에 들고 만화적으로는 나무랄데 없는 구성이라 읽기에는 편했습니다. 단지 "공원 나비부인 동상에 걸어놓은 펜던트"같이 정통파 미스테리 비스무리하게 거창하게 벌려놓은, 그것도 여러명이 죽어나가는 사건의 무게에 비해서 추리의 전개가 얄팍해서 아쉬울 뿐입니다.
7권 트럼프 책의 비밀 : 그림 츠키시마 츠구미
시오리는 살해당한 아버지가 최후로 남긴 단서인 "트럼프의 책"이라는 단어를 두고 고민하던 중 탐정이라는 아사미 미츠히코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그가 사건 해결을 위해 도와주면서 동분 서주 하던 중 아버지의 부하직원도 살해당하는 등 사건은 계속 커져만 가는데...
쿠슈 야나가와를 주로 하여 펼쳐지는 진정한 본격 여정 미스테리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쿠슈 야나가와"라는 지역 자체가 이야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구조로 진정한 여정 미스테리라 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다른 작품은 여정이라는 것이 사실 이색적 풍광을 보여주는 것 이외의 추리적 의미는 거의 없었거든요. 다이잉 메시지 해독 트릭이 주 트릭인데 괜찮은 수준이었고 무엇보다도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이라 높이 살 만 합니다. 만화로서도 그림은 그다지 잘 그린 건 아니지만 만화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솜씨가 좋아서 마음에 들었고요.
8권 침묵의 돌 : 그림 히다카 료
신주쿠와 쿠라시키에서 일어난 두개의 살인사건을 연결하는 단서는 무엇인가? 명수사관 오카베 경위의 추리로 사건의 실마리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는데...
경시청의 천재 오카베 경위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히카리라는 여대생이라 전개 방식이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가져다 주더군요. 두개의 살인사건이 벌어진 당위성 자체가 상당히 설득력 있고 주인공 히카리의 전문 지식을 이용한 결정적 단서 제공 같은 재미가 살아 있어서 결정적인 추리와 동기 부분에 비록 문제는 약간 있지만 저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뒤에 실린 단편 "잠자는 불꽃"도 치정극으로 보이는 전개속에 은근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 좋았고요.
9권 시인의 망령 : 그림 사토미 유
사쿠타로라는 작가의 시와 똑같이 구현된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오카베 경위가 사건을 맡은 후 스가이 쿠니오라는 은퇴한 전직 형사의 도움을 받으며 점차 용의자에게 접근하던 중 스가이마저 살해당하게 되는데...
역시 오카베 경위 시리즈로 "시를 따라한 연쇄 살인"이라는 착상이 일단 좋았습니다. 이 시리즈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림도 괜찮은 편이었고 스토리 전개를 만화적으로 잘 구현해 내기도 했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ABC 살인사건" 과 유사한 전개로 참신함보다는 의외성에 기대는 느낌이 강했으며 동기와 과정 역시지 설득력이 떨어지더군요. 한마디로 어렵고 복잡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도 재미는 있는, 나름대로 흥미진진한 작품이었습니다. 뒤에 단편 "거울 속의 여인" 이 실려있는데 이 단편도 추천작입니다.
10권 여섯개의 숫자 : 그림 츠키시마 츠쿠미
동경 타마호반에서 의문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그가 남긴 것은 6개의 숫자가 적힌 종이 쪽지 뿐. 오카베 경위는 피해자의 딸 치아키에게서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한 "침없는 벌"이라는 의문의 단서를 접한다. 한편 치아키와 은퇴를 앞둔 베테랑 형사 카와 반장의 컴비가 오카베 경위의 적극적 지원으로 점차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나간다...
오카베 경위 시리즈이긴 한데 실제 탐정역은 치아키라는 소녀라 이색적이더군요. 치아키와 베테랑 형사 카와 반장이라는 컴비가 꽤 재미난 설정이라 좋았습니다. 여섯개의 숫자와 "침없는 벌"이라는 단서로 점차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나가는 과정의 묘사 역시 합리적인, 이치에 맞는 깔끔한 전개를 보여주고요. 책 뒤의 해설을 보니 영상화도 두번이나 된 인기 작품으로 여기서 결성된 (?) 이 컴비 주연의 단편 시리즈도 있다고 하는데 그 작품들도 기대되더군요. 어쨌거나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11권 여신의 저주 : 그림 나가오 후미코
귀신 모미지 전설의 마을 토가쿠시에서 전설을 모방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수사를 지휘하는 다케무라 경위는 사건의 그림자에 숨겨진 비참한 사연을 밝혀내게 된다.
나가노현 경찰 본부 수사1과 경위 다케무라 이와오 (시나노의 콜롬보)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내용만 놓고 본다면 "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와 비슷한 전통 무속과 살인 사건의 조합이라는 전개라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추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21세기에 읽기에는 너무나 고리타분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전통 신앙에 많은 것을 기대는 설정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내용 역시 그냥 뻔한 복수극일 뿐이었습니다. 새로운 탐정을 만나는 재미 이외에 특기할 만한 점은 없는 작품이네요.
2018/06/02
주간문춘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개정판
하우미스터리에 올라온 주간문춘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저도 예전에 소개했던 1986년 리스트의 신규 개정판입니다.
온라인 사이트에는 50개씩만 실려있는 듯 한데 리뷰를 남긴 작품 (링크), 리뷰는 없지만 읽은 작품 (붉은색)을 체크해 보았습니다. 일본 작품들 중에서는 국내 출간된 39편 중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은 "도구라 마구라". "흑사관 살인사건"과 얼마전 출간된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그리고 "모방범"과 "죽음의 샘"의 5편을 읽지 않았네요. 해외 작품은 국내 출간 44편 중 "밀레니엄 1", "본 컬렉터", "흥분"의 3편을 빼고는 다 읽어 보았고요. 와 대단하다! 8편만 더 읽으면 일단은 완전정복이니만큼 당분간은 이 리스트부터 정복해봐야 겠습니다. 딕 프랜시스의 "흥분"은 왜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 2013.02.18 수정 "죽음의 샘" 완독
- 2013.02.24 수정 "흥분" 완독
- 2013.03.02 수정 "본컬렉터" 완독
- 2013.03.08 수정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완독
- 2017.10.16 수정 "하늘을 나는 말" 완독
- 2018.3.30 수정 "레이디 조커" 1권 완독
- 2021.1.3 수정 "비숍 살인사건" 완독
- 2021.5.7 수정 "통" 재독
- 2023.2.12 수정 "황제의 코담뱃갑" 재독
- 2024.11.15 수정 "11장의 트럼프" 완독
- 2025.04.19 수정 "요이 금병매(금병매 살인사건) 완독
- 2026.02.26 수정 "십각관의 살인" 추가
"일본"
3위 점성술 살인 사건, 시마다 소지
4위 도구라 마구라, 유메노 규사쿠
11위 검은 트렁크, 아유카와 데쓰야 (국내 미출간)
14위 흑사관 살인 사건, 오구리 무시타로
20위 시계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27위 외딴 섬 악마, 에도가와 란포
31위 기아 해협, 미나가미 쓰토무 (국내 미출간)
34위 혼란 계략, 아와사카 쓰마오 (국내 미출간)
36위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37위 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38위 11장의 트럼프, 아와사카 쓰마오 (국내 미출간)
40위 상자 속의 실락, 다케모토 겐지 (국내 미출간)
41위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46위 산 고양이의 여름, 후나도 요이치 (국내 미출간)
48위 태양 흑점, 야마다 후타로 (국내 미출간)
49위 무당거미의 이치, 교고쿠 나쓰히코
"해외"
1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4위 환상의 여인, 윌리엄 아이리시
5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7위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8위 브라운 신부의 동심, G. K. 체스터튼
9위 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11위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12위 밀레니엄 1, 스티그 라르손
13위 죽음의 키스, 아이라 레빈
14위 X의 비극, 엘러리 퀸
18위 독수리 내리다, 잭 히긴스
23위 그리스 관 미스터리, 엘러리 퀸
27위 화이트 재즈, 제임스 엘로이 (국내 미출간)
28위 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루르
32위 쉐도우 81, 루시엔 네이험 (국내 미출간)
34위 모르그가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40위 경찰 서장, 스튜어트 우즈 (국내 미출간)
43위 크리스마스의 프로스트 경부, R. D. 윙필드 (국내 미출간)
49위 점핑 제니, 앤서니 버클리 (국내 미출간)
50위 보이지 않는 그린, 존 토머스 슬라덱 (국내 미출간)
2025/07/05
미치도록 잡고 싶다 - 정락인 : 별점 3점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미제 사건들을 다룬 논픽션입니다. 범죄 전문 칼럼니스트로 잘 알려진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미제 사건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사건의 흐름은 물론 왜 지금까지 범인을 잡지 못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들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1년에 발생한 "'그놈 목소리' 이형호 군 유괴 살인 사건"의 경우, 저자는 이 사건이 장기 미제가 된 가장 큰 원인을 초동 수사 실패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사건 초기 세 번이나 범인을 체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거든요. 첫 번째는 범인이 돈을 전달하려 할 때 접근했던 수상한 남성을 놓친 것이고, 두 번째는 경찰이 다른 장소에 잠복하느라 범인이 돈을 챙겨 유유히 사라지게 만든 점, 세 번째는 범인이 은행에 돈을 찾으러 왔지만 현장에서 놓친 경우입니다. 오늘날 CCTV 등의 수사 인프라를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과 논리적인 추리입니다. 앞서의 "그놈 목소리" 사건의 경우, 저자는 범인이 최소 세 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합니다. 범인의 언행, 범행 방식, 통화 기록 등을 종합한 분석이 그 근거입니다. 또한 사건의 최신 수사 현황도 책에 충실히 담겨 있습니다. 이형호 군의 외가 친척인 이 모 씨의 성문이 범인과 완벽하게 일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명확해 체포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언급됩니다. 그런데 만약 범인이 여럿이라면, 알리바이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희석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지금이라도 체포해서 수사할 수는 없는지 독자로서 궁금해지네요.
"남양주 아파트 밀실 살인사건"에서도 실제로 추리 소설의 소재로 활용될만한 추리가 선보입니다. 14층 피해자의 집까지 찾아가려면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엘리베이터 CCTV에 범인은 찍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르면 마찬가지로 비디오폰에 촬영되고요. 그러나 두 카메라 모두에 범인이 찍히지 않았고, 아파트 문을 억지로 열지 않았으며, 범인이 화장실까지 이용했다는 점에서 범인은 피해자와 친분이 있는 아파트 내부자로,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는게 저자의 추리입니다. 현관 비디오폰 촬영은 노크를 해서 피했고요. 이 정도면 어느정도 범인을 특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책에서 다루는 사건들이 대부분 워낙 유명한 사건들이라, 이미 방송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등에서 여러 차례 다뤄진 내용이 많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엽기토끼'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신정동 연쇄 납치 살인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평소 저자의 '사건 속으로'라는 이름의 칼럼을 꾸준히 읽어온 저에게는 책에 담긴 정보 중 상당 부분이 이미 접했던 것이었고요. 이런 점 때문에 새로운 정보나 미공개 기록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기대에 값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몇몇 사건은 설명이 부족합니다. "홍해 토막 살인 사건"은 남편의 혐의가 짙은 정도가 아니라 명백해 보이는데도 왜 체포하지 못하는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김해, 부산 부녀자 연쇄 실종 사건"은 유력한 용의자가 있지만 사체를 찾지 못해 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는데, 최근에는 '시체없는 살인 사건'도 있었던 걸로 압니다. 최신 판례와 수사 기법을 적용하여 처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면 좋았을 겁니다.
미제 사건과 무관한, 저자의 기자로서의 활약과 소회를 담은 컬럼인 "정락인의 사건 추적"은 책의 성격과 많이 다른 탓에 차라리 추가되지 않는게 좋겠다 싶었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미제 사건 자체의 흥미와 저자의 분석력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지만, 이미 알려진 사건 중심의 구성과 정보의 신선도 부족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래도 "완전범죄"보다는 깊이있는 정보가 많고, "표창원의 사건 추적"보다는 추리와 분석 측면으로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서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2008/04/27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 김민영 : 별점 3점
|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지음, 김민영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
수수께끼의 남자가 나타난 뒤 방 안에서 연기와 같이 사라진 그리모 교수 살인 사건과 거리 한복판에서 유령과 같은 목소리와 함께 살해된 카리오스트로 거리의 마술사 살인 사건, 불가능해 보이는 두 사건의 해결을 위해 기디온 펠 박사가 나섰고, 의외의 진상을 밝혀낸다.
존 딕슨 카 최고 작품 중 하나라는 작품입니다. 번역된지는 꽤 되었지만, 기디온 펠 박사 시리즈는 취향이 아닌 탓에 통 손이 가지 않아서, 이제서야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추리 소설 역사에 길이 남을 명탐정이긴 하지만 기디온 펠 박사를 싫어하는 이유는 잘난척하는 캐릭터와 장황한 언변으로 엘러리 퀸이나 파일로 밴스 같은 짜증 계열 탐정으로 저한테는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방코랑 탐정이 개인적으로는 더 취향이에요.
하여튼, 이 작품은 고딕 호러물과 추리물의 결합이 특기인 딕슨 카의 작품답게 "트란실배니아의 흡혈귀 전설"이라는 호러적인 소재를 도입하고 있으며. 흡혈귀 전설에서 유래한 관, 그리고 관에서 살아나온 시체라는 설정을 "불가능 살인"의 기묘함과 잘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눈 위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범인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흡혈귀나 마술사와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니까요.
또한 이러한 불가능 살인 사건이 무려! 두 건이나 벌어지며 - 모두 밀실 살인 사건으로 한 건은 자신의 방에서 살해된 그리모 교수 사건이고, 또 하나는 눈이 쌓인 거리 한 복판에서 총에 맞아 살해된 마술사 프레이 사건입니다 - 두 건 모두 의외의 진상을 보여주는 덕분에 추리적인 재미는 상당합니다. 아무래도 하나보다는 두개가 낫지요.
하지만 그리모 교수 사건은 완벽한 트릭과 장치에 의한 정교한 밀실 살인 사건인 반면, 프레이 사건은 우연과 특수한 상황이 결합된 돌발 상황일 뿐이라는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범인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우연과 우연이 여러 개 겹친 상황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리고 첫번째 사건도 아주 정교하고 공들인 장치와 트릭이 어우러진 밀실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명성에 값하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범인의 "체력"에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고 있다는건 설득력이 다소 부족합니다. 때문에 트릭 면에서는 알려진 것 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기대가 너무 큰 탓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흡혈귀 전설에서 시작해서 마술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지식과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작품과 트릭에 녹여내는 솜씨 하나만은 과연 대단합니다. 트란실배니아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또 기디온 펠 박사의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장황한 강의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아울러 해드리 경감과 랜폴 등 시리즈 캐릭터의 등장도 반가왔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고 기디온 펠 박사는 여전히 짜증 계열 타입이기는 하지만 재미, 작품의 역사적인 의의를 되새겨 볼 때 별 세개는 충분히 줄 수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PS : 그리고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국내에 출간된 딕슨 카 작품 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네요.
작품목록 : 연속살인사건 (고성의 괴사건) / 해골성 / 황재의 코담배갑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 세개의 관 / 화형법정 / 모자수집광사건 / 감미로운 초대 (밤에 걷다)
이 중 딱 세 작품만 꼽아 본다면 저의 영원한 베스트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정통 추리와 고딕 호러의 완벽한 결합체인 "해골성", "화형법정" 을 꼽겠습니다.
2020/08/09
테미스의 검 - 나카야마 시치리 / 이연승 : 별점 3점
![]() | 테미스의 검 -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죄를 동족 인간이 판단하는 행위 자체가 불손하고 오만하네. 구로사와 재판관 (시즈카 재판관의 스승)
쇼와 59년 (1984), 부동산업자 구루마 부부가 살해당했다. 우라와 경찰서 검거율 1위인 나루미 경부보는 유력한 용의자 구스노키 아키히로를 불법으로 연행하여 심문한 뒤 자백을 이끌어냈다. 나루미의 파트너인 신참 형사 와타세는 나루미의 방식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말없이 따랐다.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아키히로는 결국 몇 년 뒤 구치소에서 자살했다.
헤이세이 1년 (1989) , 나루미의 은퇴 후 도지마와 파트너가 된 와타세는 가미키자키에서 발생한, 고급 주택에서 아이와 아이 엄마가 강도에게 살해된 사건 수사에 나섰다. 주변에 목격자가 없는 환경이라 수사는 난항을 겪지만, 도지마와 와타세 컴비는 이 사건이 단순 빈집털이 사건인 오하라 현장과 유사하다는걸 알아낸 뒤, 흉기와 도구에서 열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확인하고 관련자들을 수사해 나간 끝에 범인 사코미즈를 체포했다. 그리고 와타세는 이 사건이 쇼와 59년 부동산업자 살인 사건과 유사하다는걸 깨닫고 심문을 통해 사코미즈가 진범임을 밝혀냈다.
와타세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다가 조직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지만, 시즈카 재판관 등의 조언을 받고 사코미즈의 조서를 공개했다. 이후 언론의 대대적인 공세와 함께 사건 관계자들은 모두 좌천되거나, 해임되고 말았다. 그러나 핵심 수사관이었던 나루미는 이미 퇴임한지 3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리고 와타세는 내부 고발자로서 온다 검사로부터 보호받아 처분에서 빠져나갔다. 와타세 본인은 이에 대해 크게 자책하며 두 번 다시 수사에 오점을 범하지 않는 형사가 될 것을 결심한다.
23년 뒤인 헤이세이 24년 (2012).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사코미즈는 출소 직후 공중 화장실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수사 1과 1반을 맡는 경부가 된 와타세는 독자적인 사건 수사에 나선다...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시리즈 등으로 접했던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장편입니다. 잘못된 수사와 판결에 의한 '원죄'를 주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 왜 가해자보다 피해자 가족이 더 비참해져야 하는지, 흉악한 살인범도 인권이라는게 있는지 등 여러가지 질문을 많이 던져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파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사회파스러운 소재에 더해진 본격 추리라는 작풍이 작가의 특징인 듯 한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에요. 특히 '재판, 특히 사형 판결을 내린다는게 얼마나 무거운 행위인지' 알려주는 작품은 여러 편 보아 왔지만 묵직한 내용을 추리적으로 잘 포장한 작품은 "데이비드 게일"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그런 점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이야기는 시대순으로, 사건별로 구분되어 전개되지만 크게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부동산 업자 부부 살인사건 용의자 아키히로의 자백을 받아내어 그는 사형 선고를 받지만, 5년 뒤 일어난 고급 주택가 모자 강도 살인 사건 수사를 통해 진범이 드러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사에 대한 묘사는 빼어납니다. 우선 부동산 업자 부부 살인 사건에서는 나루세 경부보가 용의자 아키히로를 옭아매는 조작 수사와 그 결과에 의한 재판이 아주 상세하고, 5년 뒤 일어난 고급 주택가 모자 살인 사건에서는 와타세 형사의 추리에 이은 수사에 대한 설득력이 높습니다.
모자 살인 사건 범인은 '열쇠업자' 일거라는 착안이 특히 빼어납니다. 범인은 도주하면서 직접 만든 자물쇠 따는 도구인 '피크'를 버렸는데, 와타세는 다시 만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한 뒤 관련자 수사에 나서 범인을 체포하게 되거든요. 이후 범인 사코미즈가 전편에 등장했던 부동산업자 살인도 저질렀다는걸 알아차리는 과정 역시 이치에 합당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중반 이후, 진범 사코미즈가 모범수로 감형되어 23년 후 출소하자마자 살해된 사건에 대해서 다룹니다. 앞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수사 중심이지만, 의외로 본격 추리물 느낌도 강하게 전해 줍니다. 알리바이 조작, 흉기 은닉과 같은 정통 트릭이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마지막에 와타세 경부가 범인인 아키히로의 부친을 찾아가 사건 시각에 경운기에 탔던건 치매에 걸린 아내이고, 흉기는 농기구인 경운기 부품이었다고 밝히는 장면은 추리쇼와 다를게 없고요. 여기에 사코미즈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반전 -그를 죽이려는 온다 검사의 음모였다는 - 까지 더해져 추리적으로는 아주 풍성한 편입니다.
주인공인 와타세 경부도 매력적이에요. "연쇄 살인범 개구리 남자"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수사 기계처럼 등장했었는데, 이 작품에서 그 이유가 잘 드러납니다. 과거 원죄를 저지른 과오를 깊게 인식하고 두 번 다시 수사에 오점을 범하지 않는 형사가 될 것을 결심하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수사 기계보다는 인간적인 모습, 고뇌하고 고민하는 입체적인 모습이 많이 보여져서 좋았습니다. 내부 고발자라 주위의 눈총을 받는 탓에 출세를 포기하고 범인 체포에 열중하는 모습도 설득력 높고요. 작품 속 진짜 수사 기계인 나루미 경부보는 알고보니 사건 해결에만 집착하는, 자기 중심적인 악당이라서 대비가 강렬했던 탓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 같습니다. 본 작품이 와타세 경부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라는데, 후속권도 계속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개구리 남자"의 주인공이었던 고테가와의 카메오 출연도 반가왔고요.
그러나 '진짜 흑막은 온다 검사!'라고 내세운 반전은 지나쳤습니다. 초반에 정의로운 모습을 보였던 온다 검사가 부동산 부부 살인 사건의 목격자로, 사건 당시 현장 근처 러브호텔에서 불륜을 저지르다가 범인을 목격했지만 나서서 증언하지 않은 바람에 애꿎은 아키히로가 사형 선고를 받고 죽게 되었다는 설정까지는 그럴싸 합니다. 범인 사코미즈도 '커플에게 들켰지만 경찰은 찾아내지 못한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비오는 밤에 커플이 사코미즈의 얼굴을 기억했을지 여부도 불투명하거니와, 사코미즈가 당시 목격자인 온다 검사의 얼굴을 기억하여 협박하려 했다는건 정말이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무려 28년 전 비오는 밤에 잠깐 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게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을겁니다.
또 와타세 경부의 수사처럼, 28년 전 사건의 첫 목격자가 당시 '유명 연예인을 닮은 사람'을 보았던걸 떠올린 덕분에 그 선을 수사하여 진상을 알아냈다는건 그나마 말은 됩니다. 허나 이 역시 그 연예인 닮은 사람이 진짜 그 연예인이었다는건 지나친 우연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불확실한 목격 증언에 기대는 것 보다는, 사코미즈가 출옥한다는 편지를 피해자 가족에게 보낸 누군가를 상세히 캐 보는게 더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군요.
그리고 사코미즈가 아키히로 부친에게 살해당한다는건 더욱 억지스러웠습니다. 직접적인 피해자 가족인 부동산 업자 부부의 딸이나, 모자 살인 사건의 남편이 살해했다면 말은 됩니다. 하지만 아키히로의 부친이 진범 사코미즈를 살해한다? 부친이 원죄 사건에 대해 복수를 하고자 하면 최우선 목표는 나루미 경부보가 되어야 합니다. 사코미즈는 원죄의 원인이기는 하지만, 아키히로가 사형 판결을 받고 자살한건 경찰의 무리한 수사, 검찰의 무리한 기소, 그리고 이를 제대로 확인못한 재판관의 잘못이니까요. 그리고 와타세 경부도 이야기 하듯, 무려 28년을 (아키히로가 자살한 것부터로는 25년 쯤?)참고 살다가 급작스럽게 복수를 결심한다는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아울러 이 세 명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온다 검사는 어쩔 셈이었는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사코미즈를 없애기 위해서는 세 명의 피해자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는 정도로는 불충분했을텐데 말이죠. 애초에 편지를 보내는 것 보다는 그냥 사코미즈의 주장을 무시하는게 정답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리고 중반부에서 경찰 조직이 과거의 실수를 알아채고 증거 (조서)까지 확보한 와타세가 이를 밝히려하자 철저히 격리시키고, 심지어 폭행까지 저지르는 과정이 지나치게 뻔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조직의 잘못을 알게 된 언론도 대중과 영합하여 총 공격에 나서며, 관계자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보호되고 처벌받으며 이 와중에 지나친 관료 주의가 대두되는 등등 모두가 이런 류의 작품에서 너무 많이 보아왔던 묘사들이에요. 게다가 와타세가 관계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며 사죄하는 모습은 솔직히 어이가 없더군요. 당연한 결과인데 말이지요. 본인이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것은 의아해할 수 있어도, 이는 조직에서는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 내부 고발자는 보호하는데 마땅하니까요. 와타세는 나루미 경부보만 처벌받으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을 한 것일까요? 말리는 선배까지 힘으로 눌러버리던 모습은 다 어디갔는지 모르겠네요. 이런 묘사는 와타세 경부라는 캐릭터를 위해서는 불필요했다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비록 단점은 있지만 묵직한 주제를 추리적으로 재미있게 포장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원죄에 대한 뻔한 묘사는 조금 줄이고, 온다 검사 수사에 조금만 더 설득력을 부여했더라면 별점 4점도 충분했을거에요. 물론 이 정도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니만큼,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2010/03/30
종신검시관 - 요코야마 히데오 / 민경욱 : 별점 2.5점
| 종신검시관 -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
"사라진 이틀"과 "제3의 시효"로 접해보았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단편집. 종신 검시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카리스마 넘치는 검시관 구라이시가 주축이 되는 연작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총 8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각 단편별로 주인공은 모두 따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구라이시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서는 제 3자로 머물죠.
그런데 작품은 그간 들어왔던 호평에 비하면 단점이 많더군요. 일단 뛰어난 감식관이자 한마리 외로운 늑대, 인망도 있지만 적도 많아서 야쿠자스럽다는 구라이시의 캐릭터는 매력적이지만 설정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들이 노골적이라 거슬렸습니다.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추리적으로도 무리수를 너무 많이 두었고요. 단편들 대부분이 "누가 보아도 XX한 상황을 구라이시가 아주 사소한 단서로 진상을 꿰뚫어본다"는 내용인데 사실 억지가 심하더라고요.
각 단편별로 짤막하게 소개하고 평가해 본다면,
<붉은 명함>
검시담당 조사관 대리 이치노세가 자신과 불륜관계였던 유카리의 사체를 검시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이치노세가 불륜관계가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심리 서스펜스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정보도 공정한 편이라 추리적으로도 탄탄하고요.
<눈앞의 밀실>
현민 신문 기자 아이자키가 기사를 위해 오오시다 반장 자택 앞에서 잠복하다가 살인 사건과 만나게 된다는 내용.
<화분의 여자>
"눈앞의 밀실"처럼 불륜관계인 남녀의 음독 사체를 검시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향토 역사가를 자처하는 우에다 마사쓰구가 시체로 발견되는 두 가지 사건이 함께 진행됩니다.
<전별>
형사부장 고마쓰자키가 은퇴를 앞두고 자신에게 엽서를 보내온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해 구라이시와 상담한다는 이야기. 중간에 짤막한 살인 사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크게 비중은 없어서 한 개의 사건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잔잔한 드라마가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사건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있어서 추리적으로도 괜찮더군요. 별점은 3.5점.
<목소리>
실무수습생으로 지검에 온 사이다 리오의 자살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들의 감정이 교차하는 작품. 발단과 전개는 독특한 맛이 있지만 결국 자살이기에 사건성이 높지 않고, 이야기의 설득력도 떨어져서 이 단편집의 워스트로 꼽습니다. 심리 드라마도 아니고 범죄물도 아니고 반전물도 아닌 애매한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한밤중의 조서>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이야기의 무대가 형사들의 단골 Bar입니다. 이곳에서 자신이 막 해결한 사건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던 형사 사쿠라가 구라이시가 사건에 대한 반론을 재기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이유를 캐내려는 것이 주요 내용이죠. 혈액형과 DNA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핵심인데, 내용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구라이시가 사건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억지스럽다는 것은 확실한 단점입니다. 구라이시의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지나쳤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실책>
전직 여경이었던 하루에의 자살 사체를 검시하게 된 구라이시가 다른 모든 이의 판단을 뒤엎고 살인이라 결론내린다는 내용으로 여성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구라이시의 실책이라는 설정만 놓고 보면 아주 중요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별다른게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구라이시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려 한 의도가 너무 뻔해보이기도 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17년 매미>
구라이시가 발탁한 조사관대리 나가시마를 축으로 17년마다 벌어지는 불량배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모든 면에서 억지가 심한 작품입니다. 사건의 동기와 범인 모두가 말이죠... 나가시마와 구라이시의 인연이 잘 녹아들어 있다는 것과 구라이시의 최후를 암시하는 결말은 인상적이지만 역시나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12/06/10
혼진 살인사건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2점
| 혼진 살인사건 -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
"혼진 살인사건"은 이미 예전에 동서 추리문고로 읽었지만, 이번에 시공사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어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세 편의 중,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록된 작품은 중편인 "혼진 살인사건"과 단편인 "왜 도르레 우물은 삐걱거리나", 중단편 길이의 "흑묘정 사건"입니다.
수록작의 전체 평균 별점은 2점. 표제작 외 다른 두 작품이 점수를 좀 깎아먹은 탓입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보다는 예전 동서 추리문고의 "나비부인 살인사건"이 더 좋았습니다. 이쪽은 별점 3점은 충분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나만의 요코미조 세이시 순위"에 추가한다면, "혼진 살인사건"은 공동 2위이고 이 책 전체적으로 따지면 7위입니다. 긴다이치 시리즈 팬분들께는 추천드리지만 그냥 추리 애호가분들께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다는 점 참고하세요.
수록작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혼진 살인사건"
이 작품은 기념할 만한 긴다이치 시리즈 첫 작품으로 시리즈의 전형적 특징 - 시골 마을 지역 유지 가문에 얽힌 원한 관계와 오싹한 살인사건, 그것을 해결하는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밀실 살인사건이 펼쳐지며, 공들인 트릭이 등장하는 본격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시리즈 다른 작품들과 같습니다.
그러나 공정함에 있어 큰 문제가 있긴 합니다. 작품 속 공개된 정보만 가지고 트릭을 독자가 풀어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탓입니다.
그래도 기념비적인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역사적 의미도 확실하며, 지금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전해줍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왜 도르레 우물은 삐걱거리나"
전형적인 긴다이치 시리즈다운 소품. 긴다이치는 아주 잠깐 언급될 뿐 화자는 혼이덴 가문의 병약한 막내딸 쓰루요로, 그녀의 1인칭 시점 서간문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러나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스기 죽음의 진상과 에마를 숨긴 이유를 쓰루요에게 숨긴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은 탓입니다. 게다가 오노 가문의 쇼지가 죄를 뒤집어쓰고 자수했다는 결말부는 어이가 없더군요. 강도, 퍽치기 전과가 있는 인간이 약간의 호의 때문에 살인죄까지 뒤집어써 준다는 게 말이 되나요? 협박을 하면 했지...
편지로 진행되는 전개 역시도 몇몇 단락을 제외하면 그냥 소설이라 해도 될 정도로 편지 특성을 살리지 못했고요.
한마디로 쓰루요의 쓸데없는 오해가 내용의 대부분인 작품으로, 일종의 순간이동 알리바이 트릭은 괜찮았지만 그 외의 내용이 너무나 부실하기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흑묘정 사건"
추리소설가 Y가 긴다이치 코스케와 함께 밀실 살인, 1인 2역, 얼굴 없는 시체라는 전통적 추리소설 트릭에 대한 견해를 나눈 뒤, 얼굴 없는 시체에 관련된 사건을 실제로 긴다이치가 해결하고 알려준다는 내용입니다.
얼굴 없는 시체 트릭은 전형적인 피해자·가해자 바꿔치기 트릭에서 한 발자국 정도 더 나아간, 나름 고심한 트릭이 펼쳐집니다. 특히 장지문과 다다미에 묻은 혈흔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라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뜬금없이 오노 지요코라는 여인이 등장해서 딱 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사라진다던가, 그냥 봐도 수상한 변장과 뒤이은 밀회 쇼를 그냥 성격 문제였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기는 부분은 심하게 거슬렸습니다. 트릭 자체도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았고요. 아유코와 시게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은 너무 뻔했어요. 그 외에도 닛초가 공범이 되는 동기와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것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긴다이치 코스케의 개그스러운 만담과 과거사가 잠깐이나마 펼쳐져 팬으로서는 즐길 거리가 있고, 본격 추리 소설로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다는게 아쉽기만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08/04/22
악마의 공놀이 노래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3점
| 악마의 공놀이 노래 -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
긴다이치 코스케는 휴양차 오카야마의 귀수촌에 머물게 된다. 귀수촌은 23년 전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졌던 마을로 긴다이치는 당시 사건 담당자 중 한명인 이소카와 경부로 부터 해당 사건에 대한 재 조사까지 의뢰받는다. 마침 마을에서는 23년 전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의 사생아가 영화배우로 성공하여 귀향하여 떠들썩한 분위기인데 갑자기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입니다. 이로써 국내에 출간된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시리즈는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전부해서 "혼진 살인사건", "팔묘촌", "옥문도", 그리고 이 작품이죠.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긴다이치 시리즈는 아니니까 제외하더라도 말이죠.
일단 이 작품은 혼진 살인사건과 팔묘촌 중간 정도에 걸치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혼진 살인사건과 같은 완전 본격물은 아니지만 팔묘촌 같은 모험물 성격도 아니고, 본격과 어느정도의 드라마가 잘 조화된 작품으로 생각되네요. 이러한 작풍은 "옥문도"와 유사한 성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상기 타 작품들과 비교해서 이 작품의 가장 특이한 점은 긴다이치 시리즈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골 촌 마을의 독특하고 기괴한 가족 관계와 유별난 캐릭터들이 비중있게 등장하지 않는 것이죠. 물론 시골 촌 마을과 촌 마을을 지배하는 가문 (유라 가문 - 니레 가문)이라는 일관된 설정(?)은 유지하고 있고, 또 이 가문과 얽힌 여러 인물의 복잡한 인간관계 역시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부 정상적인 성격과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거든요. 외모적으로 장애를 지니고 있는 캐릭터가 한명 나오기는 하지만 비련의 공주같은 캐릭터로 다른 작품들처럼 호러 분위기를 전해주지는 않죠. 때문에 작품의 분위기도 한결 본격물에 가까우며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을 전해 줍니다.
추리적으로는 총 4건(과거의 살인까지 5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사건 자체의 트릭은 빼어난 것은 없지만 범인이 과연 누구인가? 와 진상에 대한 추리적 접근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전개도 좋지만 독자에 대한 공정한 설명, 즉 단서에 대한 접근이 충분히, 합리적으로, 공평하게 제시되는 만큼 추리적인 완성도 역시 상당한 수준이죠.
그러나 마을에 전해지는 "공놀이 노래"를 토대로한 범행은 솔직히 좀 작위적이었습니다. 이 동요 그 자체만으로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가문의 "옥호"를 통해 피해자가 특정된다는 전개는 너무 짜맞춘 티가 나거든요. 이 바닥 전설적인 작품 중 하나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비하면 억지스러움이 너무 커 보일 정도로 말이죠. 또한 "변장" 등의 설정은 사실 그렇게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며 마지막의 범인 체포를 위한 함정 수사 부분은 약간 기대에 미치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대로 합리적인 단서에 더하여 사건의 동기 및 진행과정 역시 설득력있게 전개되는 추리물의 미덕을 잘 보여주면서도 긴다이치 시리즈만의 독특함도 놓치지 않는 수작이라 생각되네요. 뭐니뭐니 해도 긴다이치가 연쇄살인의 피해자로 예정된 사건을 한번은 막아낸다는 점이 참으로! 독특한 점이죠. 비련의 주인공들과 어두운 과거사, 아이돌 등 등장인물들만 놓고 본다면 하야미 레이카 - 겐모치 경감 등 올스타 캐릭터가 총 등장하는 만화판 "김전일" 시리즈의 분위기와 가장 유사한 작품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론은 추천작입니다. 별점은 추리적 요소가 약간 부족한 점 때문에 3점이지만 재미만 따진다면 그 이상의 점수를 줄 수도 있는 작품으로 생각되네요.
2023/11/18
명작 추리 소설 5선 : 이 서술 트릭이 굉장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핵심 트릭이 노출되어 있으니, 읽으시기 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2009/04/18
절규성 살인사건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최고은 : 별점 3점
| 절규성 살인사건 -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
범죄 심리학 조교수이자 실제 사건에도 뛰어들어 활약하여 "임상 범죄 학자"라는 타이틀로도 불리우는 천재 히무라 히데오가 탐정역으로, 그의 대학동창이자 친구인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도우미로 활약하는 단편집으로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이후 두번째로 국내에 출간되었네요.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때와 똑같이 이 컴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국명 시리즈" 이외의 작품이 계속 출간되는 것은 여전히 궁금합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일본 추리 단편집이라 주저없이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단편집에는 전부 6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모두 작가 후기에 등장하는 작가의 의도, 즉 "... 살인사건" 이라는 주제로 단편 연작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충실하게 따른 단편들입니다. 연작 시리즈 답게 일종의 "저택"을 무대로 해서 밤에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연관성을 가지게 하겠다라는 것 역시 동일하고요. 그러나 "저택"을 무대로 하는 것이 의미가 있었겠구나... 싶은 작품은 "월궁전"과 "홍우장" 2편 정도? 나머지는 그냥 다른 이야기로 꾸미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추리적으로 필요도 없는데 "저택"을 무대로 하는 설정을 도입하는 것은 작가의 욕심에 불과해 보였거든요. 트릭 자체는 신본격의 대표 작가답게 괜찮은 것들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욕심,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지나친 작위성 때문에 외려 완성도가 낮아진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냥 놓고 본다면 괜찮은데 작위적인 설정 덕에 단편마다 완성도의 편차가 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사실 이 작가의 가장 큰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스스로의 설정에 매달리는" 모습은 작가의 작품을 여러권 읽어왔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고 거슬리기만 하는데, 이제는 계속 구입해 봐야 하는건지 솔직히 의심스러운 수준인 듯 합니다. 별거아닌 트릭을 작위적으로 포장한 얄팍하고 빈약한 과대포장된 선물상자같은 느낌이라서 말이죠... 작가의 최고 걸작이라는 "쌍두의 악마" 가 출간되면 읽어보고 최종 평가를 내려야겠지만 현재로는 위험수준!입니다.
그나마 별점은 실망스러운 감상평과는 별도로 수준높은 작품 몇편이 끌어올리고 있어서 평균점 자체는 괜찮은 편이네요. 괜찮았던 작품은 "흑조정", "홍우장" 두편이었고 "호중암", "월궁전", "절규성" 은 평작~범작 수준, 그리고 "설화루"는 절망적인 쓰레기 수준으로 토탈 평균은 한 3점 되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책의 사이즈, 장정, 디자인, 커버는 모두 아주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같은 학산계열인데 "경성탐정록"과는 비교가 되는 수준인데, 앞으로 출판사에서 경성탐정록도 신경좀 써줬으면 좋겠네요.
단편별로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흑조정 살인사건"
히무라와 아리스는 대학 동창인 화가 아마노의 요청으로 그가 거주하는 시골 저택 "흑조정"을 방문한다. 과거 "흑조정"의 주인이었지만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던 전 은행가 나미키 마사토의 죽은지 얼마 안되는 시체를 발견한 아마노는 기이한 사건의 해결을 부탁하는데....
"흑조정"이라는 설정을 도입할 필요는 전혀 없었던 단편이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아마노의 딸 마키를 통해 다양한 복선과 수수께끼를 전달하는 이야기 구성이 무척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스무고개 퀴즈를 작품에 녹여내는 전개와 이솝우화를 가지고 풀어낸 트릭도 마음에 들었고요. 짤막하지만 복선과 단서가 잘 배치되어 있어서 단편의 왕도를 걷는 작품이라 생각되기에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4점 주겠습니다.
"호중암 살인사건"
"호중암"이라 불리는 지하의 밀실에서 기묘하게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 츠보우치 토마의 시체가 밀실에서 항아리를 뒤집어쓴채 매달려 있었던 것.
밀실 트릭물입니다. "호중암"이라는 밀실의 이름과 피해자의 이름, 사체의 상태를 연결시킨 것은 흡사 엘러리 퀸의 억지스러운 본격물 트릭을 연상케 하더군요. 21세기에 먹히기는 어려운 설정이죠. 그래도 기계적인 장치를 사용한 트릭은 깔끔한 편이라 중간정도는 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너무 작위적이고 장치적이라 "만화"에 더 적합해 보이긴 했다는 것은 단점이겠죠. 별점은 3점입니다.
"월궁전 살인사건"
히무라와 드라이브 도중 아리스는 우연히 자신이 발견했던 황당했지만 예술성있던 노숙자의 무허가 건물을 이야기한다. 근처에 도착한 그들은 그 집을 찾아보는데 마침 "월궁전"이라 불리우던 그 집이 방화로 불타고, 노숙자도 사망한 것을 알게된다.
"월궁전"이라는 단어에서 뽑아내어 집과 연결시킨, "집" 이라는 설정과 트릭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단편입니다. 깔끔하게 정리해서 마무리했기 때문에 읽기도 편했고 완성도도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단순해서 정통 본격물이라기 보다는 소품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것이 좀 아쉽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설화루 살인사건"
"설화루"라 불리우는 공사가 중단된 여관건물에서 거주하던 남자가 살해당한다. 처음에는 자살로 생각되었지만 머리에 둔기에 의한 상처가 발견되어 살해된 것으로 판단되나, 눈오는 건물 옥상에는 남자의 발자국만 남아있던 상태.
불가능범죄를 테마로 한 작품인데 작위적인 수준을 떠나서 황당 그 자체의 우연을 다룬, 추리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작중 아리스가 이야기하는 다양한 가설 (예를 들면 부메랑 같은) 이 차라리 트릭으로 더 의미가 있는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이 단편집의 워스트입니다. 작가 스스로는 영화 "매그놀리아" 이야기를 하면서 어물쩍 빠져나가고 있는데 택도 없는 소리죠. 별점? 1점도 아깝다.
"홍우장 살인사건"
화장품 회사의 CEO였다가 은퇴한 이지마 쇼코의 자살로 위장한 사체가 "홍우장"이라 불리우는 그녀의 자택에서 발견되고, 출동한 경찰과 히무라 - 아리스는 세간에 진짜 "홍우장"으로 알려져 있는, 과거 영화촬영 세트로 쓰여 유명한 저택에 살고 있는 이지마 쇼코의 자녀들을 찾아가게 되는데...
저택과 살인사건, 그리고 트릭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두번째 작품입니다. 트릭의 완성도도 높고 사건이 밝혀지는 중요 단서도 설득력이 있으며 동기도 확실한 편이라 추리적으로는 확실한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죠.
그러나 범인의 동기가 좀 작위적이고 우연이 겹쳐져 사건이 이루어 졌다는 것, 그리고 단편 전체적으로 이 저택이 유명세를 타게 된 "바람도 모른다"라는 영화 이야기를 계속 등장시키는 것 등은 확실히 단점으로 생각됩니다. 그래도 단편으로 풀어내기에는 괜찮은 소재이고 작품 자체도 잘 썼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4점 주겠습니다.
그나저나 홍우장에서는 "청소"라는 것을 하지 않는것일까요? 저도 가끔 테이블은 걸레로 닦아 주는데.... 사소한 점이지만 추리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주는 부분이니 만큼 작중에서 설명을 좀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네요.
"절규성 살인사건"
'나이트 프라울러' 라고 자칭하는 부녀자 연쇄 살인범의 등장으로 전 일본이 공포에 빠진다. 결국 네번째 피해자가 발생하고, 히무라는 사건을 조사하여 그 뒤에 숨겨진 진상을 파악하게 된다.
"절규성"이라는 게임을 테마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연쇄살인을 다루고는 있지만 트릭이 별게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주제는 상당히 묵직했는데 결말이 좀 안이해서 중간 이후 트릭과 진상을 짐작할 수 있도록 이야기가 흘러가거든요.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게임"과 현실을 잘 믹스한 설정, 특히 "게임"에 대한 설정이 괜찮기에 작품 전체 수준을 놓고 본다면 평작 이상 수준은 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별점은 3점 주겠습니다.
2008/05/24
쇠못 세개의 비밀 - 로베르트 반 훌릭 / 이희재 : 별점 4점
| 쇠못 살인자 - |
디 판관은 새로운 부임지 북주에서 충실한 4명의 수하와 함께 새롭게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최초에 접수된 사건은 랴오 조합장의 딸 랴오 렌팡 처녀 실종 사건이었다. 사랑의 도피로 여겨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지물포를 하는 예씨 형제들의 여동생이 살해당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 목 없는 여인의 시신이 발견된걸 계기로 다시 신중한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북주의 유명한 권법가 란 사범이 독살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고, 결국 우여곡절끝에 각각의 사건의 용의자를 알아낸 디 판관은 용의자를 심문하나 결정적 증거는 잡지 못해 고민해 빠졌다. 결국 금기시 되어 있는 시체 발굴 부검을 자신의 직위와 목숨을 걸고 착수하는데...
어제 읽은 "종소리를 삼킨 여자" 에 필받아 연달아 읽어버린 디판관 시리즈 2번째 작품입니다. 재간되긴 했지만 저는 예전 디자인 하우스 판본으로 다시 읽었습니다.
이 작품 역시 옛스러움과 이색적인 분위기는 전작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몇가지 세세한 점에서 차이점을 보이는데요. 일단 가장 큰 차이점은 싯구와 더불어 전작의 무대인 푸양과는 다른 엄청나게 추운 북주의 겨울 풍광이 더해지며 섬세한 드라마가 더욱 강조되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호쾌한 맛은 부족하지만 감성적인 면에서 은근한 멋을 풍기네요.
여러가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도 전작 그대로인데 랴오 처녀의 실종 사건과 머리없는 시신 사건, 권법가 란 사범의 독살 사건, 그리고 쇠못 살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중간에 사탕과자 상인의 에피소드와 같은 곁가지 추리담도 담겨 있긴 하지만 중심 내용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고요.
또 이 네가지 사건이 두가지씩 -실종사건과 머리없는 시신 사건, 그리고 독살과 쇠못 살인 사건 - 조합되어 연관된어 진행된다는 점에서 전작보다 더 정교하게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추리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머리없는 시신 사건"은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처럼 시체 바꿔치기 트릭이 등장하는데 복선과 단서가 명쾌해서 완성도가 높습니다.
그러나 "독살 사건"은 고대 중국의 퍼즐 놀이라 할 수 있는 "칠반 (탱그램이라고도 하죠)"을 이용한 다이잉 메시지는 특이하지만 범인이 너무 초반에 드러난다는 점과 별다른 트릭은 없어서 약간 부족한 맛이 느껴졌는데 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쇠못 살인 사건"의 고전적이고도 독특한 트릭이 부족한 점을 충분히 보충해 줍니다. 이 쇠못 살인 사건 트릭은 국내 추리 만화 "다모"에서도 접했었던 것이라 아주 새롭지는 않았지만요.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다모" 쪽이 더 정교한 느낌이라 생각됩니다. "흉기"의 은닉이 고려되었어야 할 거 같으니까요.
어쨌건 다시 읽어도 무척이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전작에 비하면 사건이 보다 소박하고 드라마가 강조되었다는 점과 여성에 대한 가혹한 묘사나 잔인한 처형에 대한 묘사 등 껄끄러운 부분이 줄어들고 잔잔한 맛이 느껴진다는 점 때문에 전작보다 더욱 마음에 들었고요. 역시나 뒷부분 저자 해설에서 밝히듯 고대 중국의 실제 사례나 범죄 소설집에서 따온 이야기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 원전에 대한 설명도 충실해서 자료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충분히 다시 재간될 만한 재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보이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디 판관 시리즈의 계속된 출간을 기원합니다~
그나저나.. 원제도 단지 "중국 쇠못 살인사건" 인데 왜 이 번역본은 "쇠못 세개의 비밀"로 제목이 붙은걸까요? "쇠못 두개의 비밀" 이었으면 이해가 되는데 당쵀 알 수가 없군요. 번역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 euphemia님의 비밀덧글을 보고 이유를 알았습니다. (다른 분들께 스포일러가 될까봐 비밀 덧글로 달아주셨는데,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쇠못은 세 개가 맞다고 합니다. 프롤로그 화자의 유령 이야기까지..... :]) 앞부분 프롤로그를 아무 생각없이 넘긴 제가 착각한 것이었네요^^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2022/12/25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2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3.5점
![]() |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2 -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
1권과 동일하게 각종 사건들의 상세한 소개에 더해 수사와 특별히 관계되어 있던 법의학, 법과학 방식이 소개되는 논픽션.
이번에는 거짓말 탐지기, DNA 분석, 루미놀 시약, 삭흔, 뼈, 법보행 등이 등장합니다. 그 외에도 범죄의 종류 - 실종, 도굴 - 이라던가 수사 방식 - 잠복, 공개 수배 -, 범인의 특징 - 싸이코패스, 피해망상 -, 단서로 사용되는 여러가지 요소들 - 자백, 간접증거 - 등 많은 범죄 관련 소재가 언급됩니다. 이건 법의학과 법과학 관련 소재가 떨어졌기 때문이었을걸로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사건 쪽에 관심이 많이 가게 되는데, 특기할만한 점 첫 번째는 여러 지능범들의 등장이었습니다. 사체 인멸, 현장 조작에 알리바이 트릭까지 사용하는 놀라운 범인들의 모습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두 번째 특기할 점은 범인들이 뻔뻔하기 그지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인면수심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범인들의 행태에 대한 언급을 읽으니 사형 제도의 부활을 간절히 소망하게 되네요.
특정 주제에 맞는 대표적인 사건을 선정하기 쉬웠을 1권보다는 주제부터가 다소 정리되지 않았다는건 아쉽지만, 상세한 사건 정리가 여러 자료와 도판 등으로 뒷받침되는 좋은 범죄 논픽션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두 타석 연속 장타!
마지막으로 앞서 말씀드렸던 범죄 특징들이 잘 살아있는 몇몇 사건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사건 몇가지를 아래에 소개해드립니다.
<<아산 노부부 살인 방화 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1).
범인은 범행을 저지른 다음날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현장에 다시 침입했습니다. 양초를 이용한 장치로 시간 조작 방화를 일으키려고요. 범인은 집을 비웠던 시간에 영화 다운로드를 걸어 두어서 집에 있는척 했다는 알리바이 트릭까지 써먹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확실히 만화와 다른 법입니다. 범인은 한 달도 더 지난 사건 당일 행적을 너무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운로드했던 영화 제목을 기억하지 못해서 덜미가 잡히고 말거든요. 체포되어서 다행입니다.
<<환경 미화원 살인 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2)
추리 소설에서나 봄직했던 정교한 시신 유기가 놀라왔던 사건입니다.
범인은 피해자를 살해한 뒤 철물점에서 사온 50리터짜리 검은색 비닐봉투 15장과 이불로 시신을 감싸고 그 위에 100리터짜리 종량제 쓰레기봉투 2장을 덧씌웠습니다. 이불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는 걸로 보이도록요. 그리고 환경 미화원이었던 범인은 자기 담당 구역에 '쓰레기'로 위장한 시신을 미리 가져다 놓은 뒤, 다음날 시신을 함께 일하는 동료와 함께 쓰레기 수거 차량에 던져 넣었습니다. 시신은 그대로 전주 시내의 한 소각장으로 이동 후 소각 처리되고 말았다는군요. 무섭습니다.
<<거여동 여고 동창 살해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3)
단순 질투로 친구와 친구 아이 두 명을 살해했던, 비상식적인 잔혹함으로 충격을 안겨다 주었던 사건으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손에 목장갑만 꼈어도 덜미를 잡히지 않았을 정도의 지능범으로 방 열쇠를 넣은 핸드백을 방범창 안으로 던져 넣는 식으로 일종의 밀실 트릭까지 사용된, 거의 성공했던 완전범죄였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아이들이 너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가 손에 현장에는 없었던 종잇조각을 쥐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했던 현장 수사관들의 식견에 경의를 표합니다. 참고로, 종잇조각은 범행 도구로 준비해왔던 페트병으로 만든 빨랫줄 고정판에 붙어 있던 것이었다네요.
하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을거라고 경찰을 도발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집에 범행 기록을 꼼꼼히 적어둔 일기장을 남겨두었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과시욕' 이라는게 있었던걸까요?
아울러 이런 계획 살인의 경우는 당연히 사형 선고를 받았어야 했는데 무기 징역에 그쳤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발 이런 범인은 좀 죽입시다.
<<신혼부부 니코틴 살인 사건>>
범인은 신혼 여행을 떠났던 일본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시신 화장을 서둘러 증거 인멸을 시도했지만 일본 경찰의 부검 감정서로 덜미가 잡힌 경우입니다. 피해자의 사인은 혈관 내 다량 투여된 니코틴에 따른 급성 중독사인데, 시신의 왼쪽 팔에서 두 곳, 오른쪽 팔에서 한 곳, 총 세 곳에서 주사바늘 자국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살인이 입증되었거든요. 처음 주사했을 때 바로 독성이 나타났을터라, 그 다음 나머지 두 곳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가 아니라면 타인이 주사를 놨다는 것이고, 사망 장소에는 남편밖에 다른 이는 없었으니 범인은 뻔한 셈입니다.
단지 돈 목적으로 결혼하자마자 아내를 살해한 인면수심의 뻔뻔한 살인범이라는 특징도 잘 살아있는 사건으로, 남편이라는 놈은 이 증거가 드러나자 자살 방조라고 우겼다는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네요. 이런 놈도 좀 죽입시다....
뻔뻔함이라면 <<포천 암매장 살인 사건>>범인도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싸이코패스인 범인이 완벽한 증거 앞에서도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는 가공할만한 뻔뻔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첫 조사에서 "사건 당일 피해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발뺌하더니, 두 사람이 함께 포천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 TV 화면을 제시하자, “함께 갔지만 피해자는 포천이동갈비를 먹으러 갔다"고 바로 말을 바꾼다던가, "함께 어머니 산소에 들렀는데, 피해자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비상식적 변명을 늘어놓는 식이었다네요. 이런 변명이 통할거라 생각한 것도 어이가 없고,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왔어요.
<<미아동 노파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가 남아시아계라는게 결정적 증거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잠복 중이던 형사가 혼혈로 보이는 어린 형제를 보고 사진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이 중 큰 아이가 "아빠다!"라고 외쳐서 범인임을 확신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정말 잔인한 행동이었어요.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은 잡아야하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혼혈 아이들의 집만 알아내어도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 아빠 신원을 알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요?
<<울주 노인 연쇄살인 사건>>
사건 현장에 범인의 DNA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폐쇄회로 TV 영상도, 목격자도 없었지만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자백 진술과 이 진술에 신빙성을 더하는 정황증거가 더해지면서 용의자가 범인이 됐던 사건입니다. 이를 통해 '자백'이 증거가 되기 위한 조건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고요.
피고인의 자백이 곧바로 유죄 증거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최근에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법적으로도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또는 기망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의심되거나, 혹은 피고인의 자백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땐 자백은 유죄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하고요. 자백을 증거로 인정하는 조건도 까다롭다네요. 과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강도 살인'처럼 허위 자백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했던 경우가 많은 탓이겠지요.
<<이천 무덤 연쇄 도굴 사건>>
정신병자가 저지른 범행으로 범행 자체는 특기할게 없는데, 피해자가 너무 안타까왔던 경우입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최씨는 부모 무덤이 도굴당한건 자신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고 믿어서 11년간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친지와 가족 대부분을 잃었다고 하거든요. 정신병자 한 명 때문에 인생이 망가져버렸는데, 이런건 정말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할까요?
<<제주 보육교사 피살 사건>>
미제 사건인줄 알았었는데, 과학 수사를 통해 이전에도 수사 선상에 올라 있었던 택시 운전사가 검거되었더군요. 사건 당시에는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각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어서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과학 수사를 통해 피해자 사망 시각이 재조정되어 결국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동물 사체를 이용한 실험 결과로, 시신이 발견된 배수로는 그늘인 데다 바람이 심했고, 사후 일주일이 넘은 뒤에도 부패가 진행되지 않았다는걸 확인하는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 물증이 없다는 약점이 있어서 경찰은 다시 철저한 재조사에 들어갔는데, 9년 사이 미세 증거물을 증폭해 보는 기술이 발달한 덕에 다행히 추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피해자 옷에서 범인 옷과 동일한 섬유 조각이, 범인의 차에서 피해자 섬유 조각이 수집되었던 것이지요. 섬유 조각이 범인이나 피해자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교차 발견되는게 많아지면 둘이 만났다는 의심이 높아질 수 밖에 없겠지요.
이 책에서는 이렇게 수사를 통해 용의자를 구속 기소하는 단계까지만 언급되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용의자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역시나, 섬유 증거만으로는 증거력이 약하네요. 그 외의 증거들도 용의자가 범인이다! 라고 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고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쉽습니다. 언젠가 진범이 잡혀 피해자의 원한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4점
2022/12/04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4점
![]() |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
국내에서 과학 수사를 통해 해결했던 여러 사건들을 정리한 논픽션. 2부 구성으로 모두 22건의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부는 특정 과학 수사 기법이 해결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대표적인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어서, 해당 수사 기법에 대해 이해를 돕는 구성입니다. 현장 검증과 검시는 물론이고, 비산 혈흔 등 혈흔 형태 분석, DNA 분석, 프로파일링, 법 최면, 지문 감식, 지리 프로파일링 등이 등장하며, 수사 기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물론이고 전문가들에 대한 인터뷰 등 부가 자료들도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어서 이해를 돕습니다. 사건도 밝혀진 모든 내용이 소개되고 있으며, 사건 현장 사진과 도해로 구성된 사건 상황 등 도판도 완벽합니다.
2부는 완전 범죄를 노렸지만, 수사관들이 끈질긴 수사로 밝혀낸 사건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소개는 1부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수준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4점. 우리나라 범죄를 다룬 논픽션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붙여,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아래와 같이 소개해 드립니다.
첫 번째는 <<마포 만삭 의사 부인 살해 사건>>입니다. 의사 남편이 만삭 부인을 살해했던 엽기적인 범행으로, 피고인 남편 측에서 캐나다 법의학 전문가까지 증인으로 불러 법정 다툼이 있었던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남편 범행이 확실하더군요. 피해자의 목졸림 흔적과 얼굴과 몸의 멍자국, 저항하다 생긴 것으로 보인 손톱 밑의 남편 DNA 등 현장 증거가 뚜렸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남편 쪽에서 주장했던, "욕조에서 넘어져 죽은 것 같다"는걸 설명할 수 없는, 피해자 몸의 혈흔과 상처가 결정적인것 같아요. 욕조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양양 일가족 방화 사건>>은 무식한 범인이 교과서처럼 단서를 남긴 범행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현장 검증과 검시로 피해자 일가족 시신에서 수면제가 검출되어 누군가 방화를 저지른게 명백하다는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범인은 경찰 진술에서 필요도 없는 말을 해 가며 자살이 맞다고 주장했고, 결국 현장에서 발견된 차용증 등으로 동기마저 드러나버리고 말았지요. 범행 직후 소방차를 따라 다시 현장에 나타난 것까지, 하는 행동 모두가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단순 무식한 범인을 연상케합니다. 아울러 고작 2,0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어린 소녀가 포함된 네 명의 일가족을 참혹하게 살해한 범인에게 무기징역은 너무 관대한 선고였습니다. 능지처참하고 저잣거리에 효수를 했어야....
<<서울 광진구 주부 성폭행 사건>>은 그야말로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DNA 감식을 통해 드러난 범인은 범행 당시 수감 중이었지만, 과학수사관 권경사의 추리 덕분에 진범이 체포되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수감 중인 용의자의 일란성 쌍동이라는 추리였지요.
<<60대 남녀 변사 사건>>은 단순 자연사로 보였지만, 현장 검증을 통해 몇 가지 이상한 정황이 포착되어 살인 사건이라는게 드러난 경우입니다. 현장에서의 구토 흔적과 기묘한 자살 시도 흔적, 그리고 자연사는 이불 한 장만 반듯이 덮고있는게 일반적인데 이불 두 장이 포개져 쌓여 있었던 것, 피해자 옷과 맞지 않았던 방에 떨어져 있던 단추 등이 단서가 되었습니다. 검시 결과도 살인 사건임을 증명해 주었고요. 현장 상황과 시신의 모습 등을 분석하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안성 부부 살인 사건>>은 프로파일링이 사건 해결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잔혹한 현장 모습으로 청부 살인이나 원한 살인이 의심되었지만 프로파일러들은 "돈을 목적으로 한 범죄이며, 근처에서 일어났던 침입 사건의 범인과 동일인물일 것이다. 침입이 발각되어 과도한 공격으로 피해자들을 살해했고, 불을 지르고 도주했다.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몰린 사람이며, 피해자들은 물론 마을을 잘 알고 있는 면식범일 것이다"는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이는 실제 범인 모습과 일치했지요. 어떻게보면 좀 뻔한데, 현실은 픽션과는 엄연히 다르다는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양주 전원 주택 살인 방화 사건>>을 통해서 지문은 고온에서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흔적 자체가 사라지는 특성이 있어서, 화재 현장에서는 '열 사각 지대'에서 집중적으로 지문을 채취한다는 등 실제 현장에서의 지문 감식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 수 있었고, <<의정부 연쇄 절도 사건>>은 이름도 생소한 '지리 프로파일링'을 접하게 해 주어 좋았습니다. 범죄가 발생한 장소와 시간을 토대로 범인이 머무는 곳과 다음 범행 장소를 예상하는 과학수사 기법이라는데, <<넘버스>>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던 적이 있지요. 실제 사건을 해결할 정도로 정립된 기법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2부의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 사건>>은 완전 범죄를 노린 3인조 일당들이 증거를 남기지 않고 전원 주택을 털었던 사건으로, 집에 설치된 폐쇄 회로 TV는 본체까지 뜯어서 들고갔고, 현장에 남긴 담배 꽁초도 어디선가 주워와 일부러 흘리는 등 굉장히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른 사건입니다. 범행 장소를 오간 차량이 없었다는게 특히 주목할만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원 주택이 산과 가깝다는걸 이용하여, 목표지 인근까지 대포차로 이동한 뒤 야산에서 하루 노숙을 하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는군요. 현장에 일부러 뿌린 꽁초 중 동일한 DNA가 검출된 탓에 덜미가 잡히고 말았지만, 정말로 대단한 지능범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산 교수 부인 살인 사건>>은 한 때 뉴스를 도배했던 사건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는 범죄 전문가 교수가 경찰과 두뇌 싸움을 벌인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사건 개요를 읽어보니 별다르게 머리를 쓴 부분은 없어서 놀랐습니다. 내세운 알리바이도 엉망이었고, 내연녀를 동원한 시체 유기도 곧바로 경찰에 발각되어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언변만 빼어날 뿐 일개 잡범 수준에 불과했어요. 차라리 앞서의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 사건 범인들 수준이 더 높았습니다. 범인의 직업이 선입견을 만든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네요. 이런것도 일종의 미스디렉션이겠지요.
2008/08/02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 이수광 : 별점 2점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 이수광 지음/다산초당(다산북스) |
제목 그대로 16건의 사건을 통해 조선시대의 법의학, 수사기관 및 그 제도와 형벌제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살인사건"에 따른 수사방법과 범인 색출이 등장하는 사건은 그다지 많지 않고, 권력형 비리 등이 더욱 많아서 좀 아쉽더군요. 사실 권력층이 노비를 살해한 것, 그리고 권력층 내부의 살인사건과 범죄는 당연하게도 별로 수사같은 것이 등장할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고 사건도 "상소" 를 통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서 크게 와 닿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또한 3부의 반군 소탕작전 챕터와 4부의 조선시대 강압수사 챕터는 제목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부분이라 왜 이 책에 포함됐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임꺽정 체포 작전이나 조선시대 검계 소탕작전은 살인사건으로 보기는 좀 무리잖아요? 강압수사 부분도 마찬가지고요.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제목에 혹해서 산 저같은 독자는 완전히 낚였다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내용들이었다고 생각되네요.
그나마 제대로 된 사건 수사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정조때 있었다는 "평산 박소사 살인사건" 이 거의 유일했습니다. 이 사건은 자살로 위장된 사체를 무원록에 기반을 둔 세번의 검시 (삼검)을 통해 살인사건임을 밝히고 심문 등을 통해 증거 수집 및 동기를 확인한 사건으로 디테일한 시체의 검시 방법의 등장은 물론이고 수사 및 형벌에 대한 내용 및 당시 사회상 등도 잘 드러나 있으며 사건의 전개 자체도 굉장히 드라마틱 한 등 여러모로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16개의 토막 중 딱 하나가 마음에 들었을 뿐, 제목에서 기대한 것에 비하면 실망이 더 큰 책이었습니다. 아울러 추리작가이기도한 이수광씨가 저술하였는데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지나치게 문어체적인 느낌이 강하고 너무 설명이 부족해서 읽기도 힘들었고요. 빈말이라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좀 어려네요. 별점은 2점만 주겠습니다.
2009/08/24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 윌리엄 윌키 콜린스 외 / 한동훈 : 별점 1.5점
|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한동훈 옮김/하늘연못 |
일단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골든에이지" 가 과연 어떤 시기인지 정의를 먼저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의 황금시대는 단편 중심의 추리소설의 시대인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여명기를 지나 1913년 벤틀리가 "트렌트 마지막 사건" 을 발표하여 성공을 거둔 이후 이든 필포츠의"빨간머리 레드메인즈". 메이슨의 "독화살의 집", 버클리의 "독초콜릿 사건" 등 장편 추리소설 명작들이 속속 발표되고 곧바로 크리스티, 반다인, 엘러리 퀸, 딕슨 카, 크로포츠 등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들이 데뷰를 하기 시작한 시기, 즉 1차대전 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사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 거장들의 데뷰가 이어지고 본격 추리소설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기에 "황금시대 (골든에이지)"라고 하는 것이죠.
때문에 1차대전 이전의 소설만 담고있는 이 책의 "골든에이지"라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책 소갯글을 보면 "미스터리 문학의 황금기를 연 대표작가 다섯 작가의 소설을 담은 책" 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소갯글에 이어지는 바로 다음 문장인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개척기에 활동한..." 이라고 설명되는 것이 더욱 적당한, "개척기 (여명기) 미스터리 중편선" 이 더 합당한 표현입니다. 솔직히 이 정도로 잘못된 제목이라면 과장광고를 넘어서서 거의 사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제대로 목차나 내용을 살펴보지 않은 제가 죽일 놈이지만요.
그래서인지 사실 책 내용은 기대와는 많이 달라서 실망이 컸습니다. 이 "골든에이지"라는 시기에 나온 작품들을 제가 워낙 좋아라하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흥미진진한 본격추리물을 기대했는데 이 책에 실린 중편들은 실제 추리물로 보기에는 힘든, 추리물 성향을 띈 드라마들로 단지 오래되었다라는 가치 밖에는 없는 탓입니다. 더군다나 5편의 작품들 중 한작품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 을 다룬 것이 아닌 일종의 "창작극"이나 "자작극" 이라서 그런지 더더욱 몰입하기도 어렵고 지루했습니다. 이럴바에야 셜록 홈즈의 라이벌이나 번역해 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그나마 아노 탐정 중단편이 하나 실려있긴 하지만 많이 부족해요. 작품도 별로였고요.
물론 역사적인 의미는 크고 책 자체의 번역이나 장정, 디자인도 훌륭한 편이라 과장된 제목으로 현혹만 시키지 않았더라도 이렇게까지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물론 그랬더라면 절대 구입하지 않았겠지만요. 별점은 1.5점입니다(솔직히 1점 주려다 책 자체의 가치를 생각해서 참습니다.).
런던 블룸즈베리의 한 하숙집을 무대로 하여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제목 그대로 하숙집 3층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하숙집을 무대로 하여 몇몇 인물들만 등장하여 주로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연극적인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작가가 배우 출신인 탓이 크겠죠.
그러나... 제목과 뭔가 있어보이는 설정과는 달리 추리소설로 보기는 애매했습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확립되지도 않았고 특히나 퍼즐 미스터리는 등장하지도 않았던 때에 쓰여진 작품이긴 하지만 본격적인 추리물로 정의하기는 확실히 무리였어요. 가장 중요한 목격자의 증언이 범인의 변장을 통해 유도된 것이라던가 하는 간단한 트릭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유치한 수준의 트릭이며, 경찰의 수사 역시 너무 대충이고 전개도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등 범죄와 관련된 부분에서의 설득력이 약했거든요. 더군다나 극중에서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추리소설이나 장르문학에 대한 홀대(?)가 묻어나는 것 역시 조금은 불쾌한 부분이었습니다.
때문에 추리소설 초창기의 추리물의 성격을 띈 소설이다.. 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네요. 영국 하숙집과 거주민들의 생생한 묘사,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 재기발랄하면서도 요란한 대사들은 재미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너무 뻔하기도 하고요.
애시당초 이 작품 하나밖에 작품이 없는 작가를 "미스터리 문학의 황금기를 연 대표작가" 라고 선전하는 출판사 행태가 더욱 문제겠죠.
데드 얼라이브 / 윌리엄 윌키 콜린스
영국인 변호사가 미국의 외딴 농장에 휴양차 체류하다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으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하네요. 피해자가 사실은 살아있었다... 라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법정 장면에서의 증거를 둘러싼 공방과 감형을 위한 거래로 거짓된 자백이 속출하는 등 드라마는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시나 추리물은 아닙니다. 사건이 결국 범인(?)의 자백으로 해결된다던가 - 아니 애시당초 사건 자체가 없었지만 - 주요 증인을 찾아 나서는 것도 신문 광고를 통한 제보에 의지한다던가 등으로,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추리라는 발상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초창기 법정 드라마 정도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역사적 가치 이외의 재미를 찾아보기도 힘들고요.
안개속에서 /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
초면인 사람들도 친구가 되는 영국의 한 클럽에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내용인데, 등장인물들의 "증언 (목격담 / 경험담)" 으로 사건이 이어지는 것이 독특했습니다. 미국인이 간밤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목격한 경험담을 이야기하자 그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러시아 공주를 자칭하는 여자도둑과의 인연을 다른 회원이 이야기하고, 살인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귀족의 변호사가 살인사건의 다른 진상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식으로 증언과 증언이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거든요.
결국 이 모든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사건에 관심을 보인 클럽회원 준남작이 하원에서의 연설을 하지 못하도록 한 작전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르는 약간의 반전이 밝혀지며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앞선 두 작품에 비하면 확실히 추리라는 과정이 묘사된, 때문에 그나마 "추리 소설" 로는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두 번째 다이아몬드 사건 이야기는 내용에 별반 필요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추리의 과정은 있지만 결국 경찰 수사를 통해 그 진상이 밝혀지는 뻔한 추리라는 점은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쓰여진 시대를 생각하면 너무 박하게 굴 필요는 없겠죠?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합격선입니다. 그런데 엘러리 퀸의 ‘가장 중요한 추리소설 125편’에 선정된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무슨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이유를 통 모르겠네요. 그만큼 가치있는 작품은 아닌듯 싶은데...
버클 핸드백 /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
"나선계단의 비밀"로 유명한 서스펜스 소설의 대모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의 작품입니다. 시리즈 캐릭터이기도 한 간호사 "힐더 애덤스" 시리즈의 한편으로 국내에는 처음 번역된 시리즈 같네요. 작가의 간호사 경험이 그대로 반영된듯한 디테일한 묘사와 별명에 걸맞는 서스펜스, 스릴의 묘사가 일품인 작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넘치면서도 이야기 전개가 치밀하고 결말도 합당해서 작가의 명성에 걸맞는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에 너무 급작스럽게 사건이 해결되는 점, 주요 등장인물의 고백(?)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 정도면 합격점을 줄 만 하죠. 무엇보다도 소설 전체에 흐르는 긴장감이 좋았으니까 말이죠. 이 책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로 꼽습니다.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 /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
"독화살의 집"에 등장했던 명탐정 아노 탐정의 중단편입니다. 상당히 좋아하는 캐릭터라 기대가 큰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 별로네요. 본격물스러운 맛이 없는 탓이 큽니다. 추리의 핵심인 여주인공이 우연히 본 범인의 얼굴을 어디서 보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심리적인 부분에 기대고 있어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심리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아노 탐정의 캐릭터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등 실망스러운 부분이 더 많았습니다.
초반부 마약을 발견하는 과정과 추리가 여러 단계로 발전하는 부분, 그리고 범인의 이상한(?) 행동과 장물을 숨겨놓는 곳에 대한 아이디어 정도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함량 미달입니다. 다른 중단편들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2021/02/07
Q.E.D Season 1 정주행, 내맘대로 Best - part 2
거의 10년 전, Q.E.D 1권부터 30권 까지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정리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즌 1이 50권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이어서 나머지 31~50권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아봅니다. 시즌 2라고 할 수 있는 iff도 넘버링이 10을 훌쩍 넘어간 지금 시점에서는 다소 뒤 늦은 감이 있지만요.
"베스트 5"
추리와 마술, '트릭' 이라는 요소가 핵심이라는건 동일하지만, 추리는 트릭을 밝혀야 하는 반면 마술은 트릭을 밝히면 그 가치가 없어져 버린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잘 드러내는 내용으로, 토마마저 놀라게 만드는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개의 트릭이 등장하는 본격물. 특히 기발하면서도 독자의 허를 찌르는 첫번째 밀실 트릭이 좋았습니다. 풀장에서 심장 마비를 일으키게 만든 두 번째 트릭도 주요 단서가 명확하게 남아있을 뿐 아니라 다이빙하는 시간을 특정할 수가 없는 등 문제는 있지만 나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제목인 '모야당'이라는 전설과 사건 내용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전개가 일품이었던 작품입니다.
언제나 기본 이상 재미를 보장해 주는 에나리 회장과 추리 동호회가 등장하는 일상계 작품. 토마가 쓴 각본으로 공연되는 연극 "오각관 살인사건"에 관련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다른 추리적인 요소 모두 좋았지만 특히 연극이라는 상황에 최적화되어 있는 "오각관 살인사건" 속 밀실 트릭이 귀엽고 유쾌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제목 그대로 에셔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기이한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사용된, 에셔의 작품을 응용한 트릭이 좋았습니다. 범인이 살인을 저지른 눈물나는 동기를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옭아매는 토마의 냉정함도 인상적이었고요. Q.E.D만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여러가지 증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낸다는 Q.E.D에 자주 등장하는 전개의 작품. 하지만 일본군과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전투를 벌이던 당시를 무대로 해서 시대 상황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완성도 높은 역사 추리물이었습니다. 결말도 깔끔해서 만족스러웠어요.
이렇게 5편이 제가 선정한 후반부 베스트 5입니다. 이전 선정작과 합쳐 저만의 'Q.E.D season 1 (1~50권)의 베스트 에피소드 10'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덧붙여, 아깝게 베스트로 선정되지 못한 가작들도 소개해드립니다.
추리 소설가가 트릭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Nervous Breakdown"에서도 등장했었던 설정이지요. 거기에서도
강도 사건에 대한 추리물로 이야기 자체는 뻔합니다. 하지만 본 사건과 관계없는 과거의 사건을 들먹여 독자를 속이려고 시도하는,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전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기에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일본 수학인 "화산"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가상 역사 수학물로, 추리적인 요소보다 현학적인 측면에서 큰 만족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런 점도 Q.E.D의 핵심 재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금고 속 돈을 훔치는 방법에 대한 트릭이 돋보였던 일상계 소품이었던 "4각관계"도 좋았지만, 추리 동호회의 에나리가 등장하는 본격물인 "밀실 No.4"야 말로 진정한 가작입니다. 밀실 살인 사건 해결을 테마로 한 여행 상품 체험 중 벌어진 진짜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지요. 여행 상품 속 밀실 트릭은 억지스럽지만 재미는 있었습니다. 실제 살인 사건에 사용된, 촛불을 이용한 시간 착오 트릭도 괜찮은 착상이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토마가 용의자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덕분에 가작으로 꼽습니다. 상세 내용은 링크 속 리뷰를 참조하시길.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어요. 그러나 논리 퍼즐에 대한 학습 만화로는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학습 만화적인 부분도 Q.E.D만의 볼거리이자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기에, 가작으로 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