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검시관 -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
<사라진 이틀>과 <제3의 시효>로 접해보았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종신 검시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카리스마 넘치는 검시관 구라이시가 주축이 되는 연작 단편집입니다.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각 단편별로 주인공은 모두 따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구라이시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서는 제 3자로 머물죠.
그런데 작품은 그간 들어왔던 호평에 비하면 단점이 많더군요. 일단 뛰어난 감식관이자 한마리 외로운 늑대, 인망도 있지만 적도 많아서 야쿠자스럽다는 구라이시의 캐릭터는 매력적이긴 한데 이러한 설정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들이 너무 노골적이라 거슬렸어요. 게다가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추리적으로도 무리수를 너무 많이 두었습니다. 단편들 대부분이 "누가 보아도 XX한 상황을 구라이시가 아주 사소한 단서로 진상을 꿰뚫어본다"는 내용인데 사실 억지가 좀 심했거든요... 게다가 재미있고 수준높은 작품도 제법 있었는데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고 제각각인 것도 옥의 티였어요. 처지는 몇몇 작품이 발목을 잡네요. 그래서 전체 총 별점은 평작 수준인 2.5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전별>을 꼽고 싶네요.
캐릭터가 강하고 등장인물도 많으며 이야기는 풍성한 만큼 차라리 <강력1반> 처럼 만화화하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강력계 형사가 주축이기도 하지만 신문기자들의 취재경쟁이 등장하는 이야기 등에서는 <제3의 시효> 느낌을 많이 주기도 하는 만큼 비슷한 분위기로 만화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각 단편별로 짤막하게 소개하고 평가해 보자면,
<붉은 명함>
검시담당 조사관 대리 이치노세가 자신과 불륜관계였던 유카리의 사체를 검시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이치노세가 불륜관계가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심리 서스펜스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정보도 공정한 편이라 추리적으로도 탄탄하고요. 하지만 트릭 자체는 구라이시의 탁월한 검시능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무리수가 약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재미와 스릴 모두 합격점이기에 별점은 3점.
<눈앞의 밀실>
현민 신문 기자 아이자키가 기사를 위해 오오시다 반장 자택 앞에서 잠복하다가 살인사건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으로, 기자들의 취재경쟁이 디테일하게 펼쳐지는 것과 동시에 노파 살인사건과 반장 부인 살인사건이라는 두개의 사건이 펼쳐져서 내용이 무척 풍성합니다. 하지만 노파 살인사건은 현실성없는 추리퀴즈에나 쓰일법한 구닥다리 트릭(발레슈즈?)이 거슬리고 반장 부인 살인사건 역시 동기와 범행에 있어 납득하기 어렵기에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화분의 여자>
이 작품 역시 <눈앞의 밀실>처럼 불륜관계인 남녀의 음독사체를 검시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향토 역사가를 자처하는 우에다 마사쓰구가 시체로 발견된다는 두가지 사건이 진행됩니다. 역시나 단점이 명확한데요. 두가지 이야기 모두 추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거든요. 첫번째 음독사체 사건은 우연과 작위성이 지나치고, 두번째 향토 역사가 사건의 경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자체는 괜찮았지만 가장 중요한 다이잉 메시지가 너무 억지스러웠으니까요 그래도 트릭은 풍성하고 생각하지 못한 의외성이 ;돋보여 평작수준은 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전별>
형사부장 고마쓰자키가 은퇴를 앞두고 자신에게 엽서를 보내온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해 구라이시와 상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중간에 짤막한 살인사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크게 비중은 없기에 한개의 사건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잔잔한 드라마가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사건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있어서 추리적으로도 괜찮더군요. 별점은 3.5점.
<목소리>
실무수습생으로 지검에 온 사이다 리오의 자살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들의 감정이 교차하는 작품입니다. 발단과 전개에 있어서 독특한 맛은 있지만 결국 자살이기에 사건성이 높지 않고 이야기의 설득력도 떨어져서 이 단편집의 워스트로 꼽고 싶네요. 심리 드라마도 아니고 범죄물도 아니고 반전물도 아닌 애매한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한밤중의 조서>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이야기의 무대가 형사들의 단골Bar입니다. 이곳에서 자신이 막 해결한 사건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던 형사 사쿠라가 구라이시가 사건에 대한 반론을 재기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 이유를 캐내려는 것이 주요 내용이죠. 혈액형과 DNA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핵심인데 내용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구라이시가 사건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억지스럽다는 것은 확실한 단점이었어요. 구라이시의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지나쳤거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실책>
전직 여경이었던 하루에의 자살 사체를 검시하게 된 구라이시가 다른 모든이의 판단을 뒤엎고 살인이라 결론내린다는 내용으로 여성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구라이시의 실책이라는 설정만 놓고 보면 아주 중요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별다른게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구라이시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려 한 의도가 너무 뻔해보이기도 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17년 매미>
구라이시가 발탁한 조사관대리 나가시마를 축으로 17년마다 벌어지는 불량배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모든 면에서 억지가 심한 작품입니다. 사건의 동기와 범인 모두가 말이죠... 나가시마와 구라이시의 인연이 잘 녹아들어 있다는 것과 구라이시의 최후를 암시하는 결말은 인상적이지만 역시나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