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0/03/25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 박신우 : 쓴소리 좀 할께요... 별점 2점

 


일전에 일본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기에 기대가 컸던 영화입니다. 일본 드라마 리뷰 글에서 썼듯이 이 방대한 내용을 어떻게 2시간여의 분량으로 압축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죠.

그런데 보고나니 아니나다를까... 압축하여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에 결국 실패했더군요. 곳곳이 허술하고 횅~해서 빈틈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이야기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를 너무 많이 들어냈기 때문이죠.
예를 들자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너무 줄여놓는 바람에 원작을 모르는 관객들은 도대체 요한이 왜 유미호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행동하는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겠더라고요. 또한 이러한 어린 시절 이야기의 생략은 첫번째 살인사건 - 한국판에서는 김시후 살인사건 - 이 왜 일어났는지 관객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하고요. 덕분에 극초반 한동수 형사가 수사하는 과정의 서스펜스가 전무하다는 것은 또다른 감점요소고... 두번째 유미호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설득력 역시 없어져 버립니다.
그나마 이 두 사건은 현재시점, 즉 14년 뒤로 넘어와 두번째 사건 수사의 발단이 되는 강재두 살인사건 이후의 사건들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공소시효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강재두를 죽여야만 한 이유는 무엇이며 다른 시체들은 그래도 은닉작업을 했는데 강재두만 왜 자살로 위장해서 사건을 키우는지 모르겠는 등 도저히 상식선에서 사건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도 역시 이해할 수 없어요. 앞서 말한대로 "공소시효"라는 부분이 원작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 의미가 별로 표현되지 않고 왜 하필이면 그날 죽음으로 사건을 끝맺을 생각을 했는지도 드러나지 않아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원작따라 간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차라리 산타옷도 같이 입혔으면 웃기기라도 했을텐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작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낮아보여서 실망이 더욱 컸는데요, 아무래도 감독이 작품을 느와르라고 착각한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의 요한은 미호의 지시대로 사람을 죽여나가는 살인기계에 지나지 않거든요. 미호는 성공에 눈이 멀은 악녀일 뿐이고요. 한마디로 전형적인 느와르의 팜므파탈과 행동대장에 불과해요. 결국 이들에 대항하는 정의의 형사 나으리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단순한 이야기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단지 원작의 캐릭터와 스토리라인만 일부 가져와서 자기식으로 변주하면서도 외려 중요한 몇몇 대사와 모티브는 일본 드라마에 너무 충실해서 실소를 자아냅니다. 정말이지 이야기의 흐름과 관계없이 뜬금없이 등장하는 원작의 대사들은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였어요. 갑작스럽게 태양 아래를 걷고 싶다니 나원참... 원래 원작의 유키호가 어렸을 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는 이유는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스칼렛 오하라"라는 캐릭터와 감정이입을 시키기 때문인데 영화에서는 그냥 두 아이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소재로만 쓰이고 있는 등 사소한 부분에서도 겉핥기에 그치기에 실망만 안겨줍니다. 음악도 백조의 호수만 주구장창 나와서 원작 대비 훨씬 떨어진다 생각되고요.

또 불필요한 요소들은 왜 이다지도 많을까요. 대표적인 것이 비서실장 이시영의 등장이죠. 그냥 한동수 형사가 강재두 사건 발생 후 사건을 다시 맡게 된다는 설정으로 갔어도 충분했을텐데 괜히 시간만 늘어잖아요. 중간의 자동차 사고라던가 성폭행 미수 사건 등은 지나친 오버였고요. 아울러 필요도 없는 정사씬의 등장은 서비스 차원인지는 모르겠으나 다 아줌마들만 등장한 관계로 외려 감점감입니다 -_-;;

물론 원작보다 좋았던 점도 있긴 합니다. 일단 영화답게 스케일도 크고 화면도 아주 좋다는 장점이 있죠. 색깔로 표현한 캐릭터들과 미장센이 멋드러지거든요. 또한 배우들, 특히 한동수 형사역을 맡은 한석규씨의 연기는 정말 대단해서 몰입을 도와줍니다. 과연 명배우는 명배우더군요. (아쉽게도 별로 하는거 없는 고수씨와 평면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손예진씨 연기는 실망스러웠지만....) 그리고 이야기적으로도 한동수 형사가 다시 사건을 추적하는 계기는 원작보다도 더 설득력있게 구현되어 있기도 하고요. 전체적으로 봤을때 솔직히 잘 만든 영화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너무 분위기와 드라마에 신경쓴 나머지 이 작품이 원래 "추리 - 스릴러"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깜빡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추리적 속성을 놓쳤다면 둘 사이의 애절한 관계라도 잘 포착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꽃등심 등 온갖 좋은 재료를 가지고 만든 결과물이 결국은 라면 수준이었달까요... 실망이 크기에 별점은 2점이며, 부디 원작이 있는 작품을 각색을 할 때에는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았으면 합니다.

덧붙이자면, 감독님이 과 후배님이시더군요. 쓴소리는 했지만 앞으로 무운을 빕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