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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0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에드 멕베인 외 / 이리나 : 별점 2점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4점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북스피어

미국 뉴욕에는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유명한 '미스터리 서점'이 있습니다. 유명 추리소설 편집자이자 비평가인 오토 펜즐러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1979년에 문을 열었다니 올해로 40년이 되었네요. 이 책은 오토 펜즐러가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서점 고객들에게 선물로 증정했던 소책자에 수록되었던 단편들을 모아 엮은 단편집입니다.

오토 펜즐러의 말에 따르면, 소책자용 이야기의 기준은 세가지였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할 것, 두번째는 당연하겠지만 미스터리를 포함할 것, 마지막 세 번째는 적어도 몇몇 장면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어날 것이 그 기준입니다. 이 책이 국내 첫 출간될 당시, 책을 펴낸 북스피어가 이벤트삼아서 이와 유사한 조건의 꽁트를 모집했었습니다. 저의 짤막한 글도 다행히 선정되어 "작가의 수지"라는 멋진 책을 경품으로 증정받았었죠. 그러나 이벤트가 당첨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선뜻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오토 펜즐러가 자신의 서점 고객용으로 준비한 글을 엮었던 "라인업" 같은 경우, 소설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 생각하고 있다가 드디어 올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네요.

일단, 작가진은 굉장히 화려합니다. 오토 펜즐러의 유명세와 인맥 덕분이겠죠. 도널드 E 웨스크레이크, 로렌스 블록, 에드워드 C 호크, 에드 멕베인, 토머스 H 쿡, 메리 히긴스 클라크 등 제가 소개했었던 유명 작가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가득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심지어 오토 펜즐러가 고전 본격물 스타일의 탐정 역할을 소화하는 작품마저 있을 정도에요. 미스터리 서점이 사건의 무대가 되고, 서점 직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많고요. 오토 펜즐러가 내세운 기준 때문이겠죠. 마찬가지의 이유로 미스터리 서점에서 열리는 파티를 소재로 한 작품도 제법 되는 편입니다.

허나 이러한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 팬, 고객을 위한 서비스적인 묘사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볼만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이야기의 완성도가 낮은 탓입니다. 오토 펜즐러가 내 건 조건들도 작위적으로 충족시킬 뿐이에요. 특히나 미스터리 서점에서의 흥청망청 크리스마스 파티는 영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희귀본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자신의 서재에 술취한 손님들이 들어오는 파티를 연다는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솔직히 전체 평균내면 2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나마 반올림한 점수죠. 수많은 추리 작가, 추리 소설들이 인용되고 작품 속에서 활용되는 것을 보는 재미는 괜찮았지만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점수를 주기가 민망한 수준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작가들의 명성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상황인데, 작가들 역시 단순한 팬 서비스 정도로 여긴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특정 작가의 팬이라도 마찬가지고요. 몇몇 괜찮은 작품이 있기는 하나 극소수거든요. 나중에 e-book으로 각 단편들이 분철되어 판매되면 고려해 보시길 바랍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에 소개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표지 디자인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크리스마스라기 보다는 할로윈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이런 어울리지도 않는 일러스트보다는 그냥 깔끔하게 서점 + 크리스마스 소품이라는 미국 원작 스타일 표지였다면 판매는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낌없이 주리라"

도둑 도트문더가 크리스마스날 맨해튼 호텔에서 고대 주화를 훔쳐 달아나다가 우연찮게 '미스터리 서점'에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주인 오토와 다른 일행들의 착각으로 그들이 벌이는 포커판에 끼어든 도트문더는 정직하게 게임을 해서 240달러 정도를 땄다. 그러나 경찰이 출동하여 수상한 사람에 대해 탐문하는데....

걸작 "도끼"와 유쾌한 케이퍼 소설 "뉴욕을 털어라", 묵직한 복수극 "인간 사냥" 등으로 잘 알려진 유명 작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단편. 좋은 단편도 여러 편 발표했기에 작품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마침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뉴욕을 털어라"의 주인공인 도둑 도트문더가 주인공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야기의 수수께끼는 딱 한가지, "왜 오토와 친구들은 도트문더를 경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일까?" 인데 그 진상이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거든요. 이유는 바로 도트문더가 240여달러의 돈을 땄기 때문이죠. 도트문더가 체포되면 포커판은 깨지고 돈도 다시 찾을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도트문더가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오토와 친구들에게 돈을 잃어주기로 결심했다는 결말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포커판의 유지가 중요했다면, 240여 달러를 다시 잃는 것 보다 오토와 친구들의 돈을 모조리 따는게 게임을 끝내기에 더 현실적인 방법이니까요. 돈은 게임이 끝나고 공평하게 돌려주면 되잖아요? 돈을 다 따거나, 아니면 240여 달러를 다 잃거나 어느 쪽이건 게임이 끝날 때 오토와 친구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기도 하고요. 아울러 크리스마스날 일어난 사건일 뿐, 크리스마스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주제에 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 깊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쓴, 오토 펜즐러의 세 가지 기준에만 맞춘 졸작입니다.

"계획과 변주"

희귀 서적 중개인이 뉴욕에서 차례로 살해당했다. 파로아 러브 형사는 그들의 죽음이 대실 해밋의 잃어버린 원고인 "마른 여자"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고, 자신의 친구 오토 펜즐러를 찾아가 책 수집상 와일리 에머슨을 함께 찾아가 보자고 부탁했다. 와일리 에머슨이 "마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와일리 에머스는 "마른 여자"라는 원고는 본 적도 없다며, 자신을 찾아왔던 수집가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오토는 와일리 에머슨이 썼다는 원고 뭉치를 들고 나오는데...

흑인 동성애자 형사 파로아 러브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저술한 조지 백스트의 파로아 러브 단편. 크리스마스가 배경이기는 하나 이야기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없습니다. 대실 해밋의 "마른 여자"라는 원고를 와일리 에머스가 숨긴채 가지고 있던 이유도 썩 납득이 되지 않고요. 원고를 쫓는 악랄한 무리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는데 어차피 돈 받고 팔 생각이었다면 마찬가지 결과였을텐데 말이죠. 게다가 범인이 오토 펜즐러 서점의 매니저 알렉스였다는 진상도 뜬금없습니다. 나름의 복선이라고 등장하는건 찢어진 청바지와 원고를 노리는 도라를 배웅해 주었다는 것 뿐이라 억지스러웠어요.

한마디로 단편에 적합하지 않은 이야기를 무리하게 펼쳐낸 느낌입니다. 조금 더 길게, 상세한 설명을 더하여 풀어냈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녹슨 책갈피 도난 사건"

닉 벨벳은 크리스마스 주간에 고등학교 때 친구 찰스 오닐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의뢰는 오토 펜즐러에게 판매한 대량의 헌 책 속에 끼워진 금속 책갈피를 훔쳐와 달라는 것이었다. 닉은 택배기사로 변장하여 서점에 잠입한 뒤, 책갈피를 빼내오는데 성공하는데...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단편. 시리즈 캐릭터인 괴도 닉 벨벳이 주인공입니다. 확실히 제왕다운 작품이에요. 오토 펜즐러의 어떻게 보면 무리한 요구를 모두다 들어주면서 완성도까지 높은 수작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을 유효적절하게 써먹고 있는게 눈에 뜨입니다. 크리스마스라 바빠서 닉의 변장이 잘 먹혔거든요. 오토 펜즐러가 대량의 추리 소설을 구입한 것과 그 탓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책갈피를 훔치게 되는 과정도 그럴듯합니다.

또 녹슨 책갈피를 거액의 수고비를 지불하면서까지 훔치게 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도 인상적입니다. 사실 진상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앞서 찰스의 여동생 마시의 남편이 목을 칼로 베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이미 상세하게 설명되니까요. 그래도 '구리는 녹슬지 않는다. 이건 부식한게 아니다!'라는 닉 벨벳의 착안과 이를 통해 진상을 끌어내는 추리는 꽤 그럴듯합니다. 자수하라는 닉의 제안도 깔끔하고요.

무엇보다도 닉이 택배기사로 변장할 때, 위장을 위해 준비했던 여자친구의 추리소설들 중 한 권 - 놀랍게도 수 그래프턴의 "알리바이의 A" - 이 꽤나 값나가는 작품이었다는 결말이 아주 크리스마스답습니다. 오토 펜즐러씨가 횡재했다는 결말인데, 원고도 써 주고 덕담까지 해 준 셈이니 에드워드 D.호크는 상당한 대인배였던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 오토 펜즐러의 기획 의도에 정확하게 부응하는 작품입니다. 완성도를 떠나 이 정도로 의도를 잘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역시 대가는 대가구나 싶네요.

"모작 살인 사건"

안 팔리는 아동 추리소설가 루페 페티코드는 자신의 교육 센터 창작 수업 수강생이 검토를 요청한 원고에 홀딱 반했다. 그 원고를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넘겨 선인세로 거액을 약속받은 루페는 원작자 도라 윔블러를 어쩔 수 없이 살해하는데...

잘 모르는 작가인 론 굴라트의 작품. 다른 누군가의 작품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기 위해 원작자를 살해한다는 이야기는 많을겁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럴듯한 동기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은 좋아보였던 도라 윔블러의 작품도 사실은 '도작' 이라는 진상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덕분에 기존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옛 고전물을 떠올리게 만드는 걸작이라고 칭송받지만, 사실은 고전물의 모작에 불과했던 것이죠! 정말 유쾌하면서도 인상적인 반전이었습니다.

루페 페티코드의 나름 절박한 현실, 작가로서의 뒤틀린 긍지와 복수심이 만화적으로 과장되어 있는게 옥의 티이기는 합니다. 너무 스테레오 타입의 묘사였거든요. 반전 외의 모든 전개 역시 스테레오 타입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뻔했고요. 그래도 반전만으로 모든게 용서되는 작품. 별점은 3점입니다.

"이보다 더 어두울 순 없다"

네로 울프를 추종하는 탐정 레오 헤이그의 조수이자, 그가 해결한 사건들을 소설로 발표하는 칩 해리슨은 오토 펜즐러의 요청을 받아 '미스터리 서점'을 찾았다. 크리스마스가 끝난 직후, 귀중한 코넬 울리치의 육필 원고가 도난당한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의뢰 때문이었다.

매튜 스커더 시리즈로 유명한 로렌스 블록의 단편. 매튜 스커더 시리즈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코믹한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화자인 칩 해리슨의 거침없는 언변이 아주 돋보여요. 온갖 고전 추리소설을 비트는 독설, 그리고 오토 펜즐러가 흠모하던 여성과 하룻밤을 보냈지만 술 때문에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상황을 풀어낸 전개도 유쾌하고요. 오토 펜즐러에게 장난치기 위해 쓴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에요.

문제는 로렌스 블록답지 않은 유쾌함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다는 점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파티의 구실일 뿐 이야기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으며, 추리 역시 대단할게 없거든요. 용의자들을 불러 모아 순서대로 증언을 듣는걸로 사건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여섯명, 아니 일곱명의 용의자가 원고를 돌려보았으며, 마지막에 원고를 읽었던 연회업체 사장 진 보트레이가 오토 펜즐러의 침대 옆에 원고를 올려놓아 곧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진상은 허무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의 명성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졸작으로 로렌스 블록의 광팬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요정들의 선물"

보스턴에서 희귀 초판본 배달을 의뢰받고 오토 펜즐러의 '미스터리 서점'에 방문한 사설탐정 존 프랜시스 커디는 오토 펜즐러부터 새로운 의뢰를 받았다. 그가 수집한 추리 소설가들의 소장품이 동일 가격의 돈이 들은 봉투와 바꿔치기 당한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유력한 용의자는 세 명의 추리 소설가였다. 존은 세 작가를 차례로 탐문한 뒤, 진상을 알아낸다.

진상은 림프종으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작가 모리가 꾸민 장난이었다는 소품으로 오토는 손해본게 실제로 없기 때문에 진지한 범죄가 아니라 장난이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토 펜즐러를 피해자로 삼은 생생한 추리 소설을 오토 펜즐러에게 선사한다는 건 추리 소설가가 세울법한 계획이구나 싶어 재미있었습니다. 모리의 시한부 삶이 다음 크리스마스를 맞지 못할 것 같다는게 도화선이 되었다는 설정은 필요없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지만요. 이 설정 때문에 밝고 유쾌할 수 있는 작품의 분위기가 좀 묵직해졌거든요.

그래도 미스터리 서점의 주인과 그의 친구인 추리소설가들이 벌일법한 크리스마스 장난과 선물이라 단편집 주제에 꼭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엄마가 산타클로스 아저씨를 죽였어요"

어느 바쁜 크리스마스 오후,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앨런의 앞에 맥스라는 꼬마가 나타나 산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기 시작했다. 

제목이 스포일러입니다! 제목이 다 망쳤어요. 맥스가 산타클로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할 때 부터 맥스의 엄마가 산타클로스를 죽였다는건 명백해집니다. 산타클로스의 정체가 대체로 아빠라는 점에서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동기도 대체로 짐작이 가고요.

물론 추리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 등장하는 전개는 볼만 합니다. 특히 서점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손님인 2급 형사 로지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경찰 소설을 쓰는 작가 중에 정작 경찰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데, "87분서">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한 작가 스스로에 대한 자학개그로 느껴졌거든요. 역시 로지가 고양이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을 싫어한다면서 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고양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도 굉장히 와 닿았고요. "삼색털 고양이" 시리즈는 솔직히 첫 편을 제외하고는 엉망이었죠. "펠리데"는 괜찮았었지만요. 또 범죄물의 거장 에드 멕베인답게 맥스의 엄마가 서점에 나타나는 장면의 긴박감도 꽤 훌륭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제목만 조금 비틀어서, 은유적으로 표현했더라면 훨씬 나았을텐데, 에드 멕베인답지 않은 안일한 구성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동방 박사의 간계"

오토의 손님 키티는 오토에게서 한 희귀본의 완벽한 표지를 가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오토를 위해 희귀본을 완벽하게 만들어 선물하려던 키티는 그 남자 가토의 방에 잠입하여 표지를 빼내 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물용 희귀본 "바깥 화장실 가는 길"이 도난당한걸 알게 되는데... 

오토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두 도둑이 각자 서로의 희귀본과 표지를 훔친다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의좋은 형제"같은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완성도는 낮습니다. 전반적으로 설명이 부족한 탓입니다. 왜 오토에게 귀중한 희귀본을 선물하려고 하는지, 키티와 가토는 직업이 도둑인지 등 기본 설정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거든요. 둘이 자신에게 선물을 하려는걸 오토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고요. 또 오토가 둘이 그에게 선물하려던걸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흘린 정보로 둘이 각자 상대방이 가진 물건을 훔쳐내리라고 예상하는건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게 둘의 인연을 이어주려는 오토의 계획이었다니! 억지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했어요.

크리스마스, 선물, 해피엔딩 등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어울리는 소재들을 잔뜩 가져다 쓰기는 했지만 이래서야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내 목표는 신성하니"

윌슨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스터리 서점을 방문한다. 삼촌에게 고가의 책을 선물하려 한다는 핑계를 대고 오토 펜즐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목적은 선물 구입이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였다...

오토 펜즐러에게 원고를 퇴짜맞은 후, 복수심에 사로잡힌 작가가 그를 죽이려 한다는 서스펜스 스릴러. 그러나 아쉽게도 긴장감이 잘 살아나지 않아서 서스펜스물로는 실격입니다. 정말로 윌슨이 오토 펜즐러를 죽이려고 했는지조차 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죠.

그러나 마지막에 오토가 윌슨에게 지금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써 내면 고료를 주겠다고 구슬리는 장면의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대단한 반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퇴짜를 놓은 평론가가 퇴짜를 맞은 작가에게 한다면 충분히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느껴지거든요. 작가를 인정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잖아요?

그래도 별점은 1.5점입니다. 전개가 엉망이라 점수를 주기가 힘드네요.

"고양이 요정 스피릿"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찰서장 커디 맨검은 우연히 옛 인연이 있는 뉴욕 형사 로리를 만나 함께 오토의 미스터리 서점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가했다. 그리고 유명 작가 바트 웰스의 전처 클라우디아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미스터리 서점에 대한 떠들썩한 묘사는 볼거리입니다. 화자인 커디 맨검의 과장섞인, 허풍스러운 말투가 인상적인 탓으로 오토 펜즐러가 통이 커서 캐비어와 샴페인을 "전쟁과 평화"에서 보다도 많이 내 놓았다는 류의 말이 가득하기 때문이에요. 또 오토 펜즐러의 관심사, 미스터리 서점과 그곳에서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상세한 묘사 등은 작가가 오토 펜즐러를 속속들이 알고 있구나 싶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건은 너무나도 별볼일 없습니다. 장황한 파티, 여러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 후 시체가 발견되고 사건이 해결되기까지는 달랑 2페이지 정도로 마무리되거든요. 고양이 스피릿이 바트 웰스의 바지에서 귀걸이를 발견하는게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이러한 고양이의 도움이 없었어도 범인이 드러나는건 어렵지 않았을거에요. 흉기인 샴페인 병에 바트의 피가 묻어 있었고, 동기마저도 명확했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1점. 주인공의 장황한 대사만 돋보일 뿐, 추리적인 부분에서 아무리 봐도 점수를 줄 부분이 없다면 추리 소설이 아니라 무슨 스탠딩 코미디와 다를 바 없지요.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

프리랜서 편집자 베로니카 크로스는 박봉 때문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며 부수입을 챙겨 왔다. 그녀는 토요일마다 서점에 나타나 싸구려 중의 싸구려 소설인 브루노 클렘의 페이퍼 백만 찾는 손님 해리에게 도대체 왜 브루노 클램 책을 읽는지를 묻는데... 

토머스 H 쿡의 단편. 심리 묘사의 대가다운 진중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또 누구나 가졌을 법한 질문, 이런 싸구려 책을 뭐하러 읽는가?에 대한 깊이있는 답도 인상적이고요. 베트남 전쟁에서의 무자비한 살인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해리에게는 싸구려 페이퍼백, 펄프 픽션이 일종의 스카치 위스키나 마약과도 같은 효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읽는다는게 그 진상인데, 이를 대단히 유려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고급 문학만 읽는 베로니카 역시 이런 류의 고통 - 강한 증오심으로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후려쳤던 것 - 을 잊기 위해 책으로 도피하는게 아닐까 싶은 결말도 돋보입니다. 결국, 수준을 떠나 문학은 마약이라는 결론이랄까요?

문제는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신간이 나오지 않는 브루노 클램의 책 대신, 시리즈가 많은 다른 싸구려 소설을 권해주고, 베로니카도 누군가가 무언가를 원하는건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는 교훈을 얻는다는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딱히 흥겹거나 유쾌하지도 않고요. 또 미스터리라고 할 법한 내용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좋네요. 다른 졸작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후회하게 될 거에요"

미스터리 서점은 끔찍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오토 펜즐러의 유일한 희망은 미스터리 소설을 수집하는 백작 부인이 찾는 "데인 가의 저주"를 찾아내어 판매를 성사시키는 것 뿐. 다행히 크리스마스에 책을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백작 부인에게 건네기 전, 책을 분실해 버리고 마는데... 

오토 펜즐러의 아내라는 아동 도서 작가 리사 미쉘 앳킨슨의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벌어진 미스터리라는 조건은 충족시키지만 완성도는 별로입니다. "데인 가의 저주"가 사라진 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어요. 급료 없이 스티븐 킹의 신간 스릴러를 원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마지막 근무와 책을 숨기기 위해 스티븐 킹의 표지를 덮었다는 묘사가 합쳐지면 그 답은 너무나 뻔하잖아요. 게다가 백작 부인이 고가의 컬렉션을 오토 펜즐러에게 남기고 사고로 죽는다는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것도 순록이 끄는 썰매에 치어서 죽는다니, 이게 무슨 장난도 아니고....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려운 망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긴 겨울의 한잠"

프리랜서 사진가였던 '나'는 오토 펜즐러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나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맞은 첫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아래층 화장실을 방문했던 산타클로스의 시체를 발견한다.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서점 직원 알란이었다. 

셜록 홈즈 원고가 동기인 고전 본격물 스타일의 정통 추리 단편. 오토 펜즐러가 직접 탐정역을 수행하는게 독특했습니다. 전개, 특히 셜록 홈즈와 비슷한 추리쇼를 펼쳐가면서 범인을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 등에서 고전 본격물을 잘 흉내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흉내에 그칠 뿐이라 아쉽습니다. 고전물 만큼의 정교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수께끼인 "왜 희귀본을 창고에 넣는다고 했던 알란이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채 살해되었는가?"부터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니까요. 당연히 산타클로스가 알란을 죽이고, 옷을 갈아입힌게 뻔하잖아요? 그렇다면 산타클로스는 누구냐는 수수께끼가 남는데, 여기서 억지스럽게 이야기가 비약해 버리고 맙니다. 시체 발견이 계기가 된 튜바 연주자 더그가 범인으로, 그는 시체 근처에 떨어진 튜바의 밸브 오일을 감추기 위해 다시 현장을 방문했다는 설정인데 이건 말도 안되죠. 현장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면 다시 돌아가서 증거를 인멸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그냥 도망가버리면 되지요. 현장의 튜바 밸브 오일이 그렇게 대단한 단서가 될 수도 없었을겁니다. 애초에 서점에 나타나지 않은걸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고전 본격물에 대한 팬심으로 조금은 후한 점수를 줍니다.

"콜드 리딩"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로저의 특기는 손님들을 파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책을 권해주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크리스마스 이틀 전, 매들린 커크라는 아가씨가 나타났다. 유명 작가였던 할머니 매들린 커크 (동명이인)의 미발표 원고를 발견하고 그 값어치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로저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원고를 확인하기로 약속하는데, 원고를 빼앗기 위해 누군가 그녀를 습격한다. 로저는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여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해낸다.

서점 손님을 보고 그들이 원하는 책을 추리해낸다는 로저의 특기는 재미있습니다. "시인장의 살인"에서 학생 식당 손님이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추리 배틀을 펼치는 아케치 교스케와 하무라 유즈루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저는 별로였지만 존.D.맥도널드의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가 중요 소재로 등장하여 관련된 정보가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되는 등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은 이해도 인상적이었고요.

문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라는 일상계스러운 추리라면 모를까, 폭행 납치에 살인 미수까지 벌이는 범인을 추리하기에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범인인 맥도널드 팬을 특정하는건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를 위한 복선도 없지는 않고요. 그러나 단편 소설 분량에서 쉽게 풀어낼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크리스천 킬러"

지능은 좀 떨어지지만 사람 죽이는 일에 충실한 킬러 사케시언은 독실한 크리스천. 어느날 자신의 타깃인 스티븐의 여동생을 진짜 천사로 착각한 뒤 살인을 그만두는데...

크리스천 킬러가 천사 분장을 한 타깃의 여동생을 만난 후 살인을 그만두지만, 또 다른 킬러의 살인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봐도 "레옹"이 떠오르지요? 우직한 킬러 사케시언, 살아있는 천사같은 헤일리 캐릭터도 딱 그러하고요. 마지막에 사케시언이 죽고 마는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별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타깃인 인간 쓰레기 스티븐이 살아남는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딱 한가지, 사케시언이 죽기 전 진짜 천사를 보았다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 뻔하지만 극적인 전개에 이 결말을 더하면 평작 수준은 되다고 보여지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오토 펜즐러의 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작품이에요. 특별히 수수께끼가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칠십네번째 이야기"

미스터리 서점에서 칠십 세가지 이야기가 수록된 단편집을 구입한 주인공은 책에 수록된 "어셔가의 몰락"을 읽은 후, 자신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아래층 한국인 편의점 주인을 트렁크에 넣어 땅에 파 묻는다... 

영미권 작품에 흔한, 1인칭 시점의 정신병자가 등장하는 사이코 스릴러. 하지만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이코패스 이기는 한데, 지능지수가 너무 떨어져서 문제입니다. 어린 시절에 저질렀던, 동물들을 땅에 파묻던 행동을 범죄와 연결시키는데 발상이 지극히 유치하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동기도 없는 충동적인 행동이라는 점도 그러하고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나 루스 렌들같은 심리 묘사를 선보였다면 나름 볼만한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묘사 역시 전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마지막 목격자로 오토 펜즐러와 서점 직원을 등장시킨 건 명백한 패착입니다. 지나치게 억지스러웠어요. 때문에 별점은 1점입니다.

"이름이 뭐길래"

전직 공중 곡예사 렉시 스미스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할머니의 유언으로 그녀가 퇴짜맞았던 원고들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내 놓은 뒤, 친구 알비라의 사인회로 향했다. 사인회가 끝난 뒤, 사인회장이었던 미스터리 서점의 오토 펜즐러와 파티를 가지게 된 렉시는, 그곳에서 할머니의 작품 중 한 편이 유명 작가의 작품과 5년 전에 바꿔치기 되었다는걸 알고 경악한다. 

서스펜스 스릴러물로 유명한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단편. 작은 애완동물들을 사랑하고 추리 소설가를 지망했던 할머니 캐릭터 설정이 귀여웠던 작품입니다.

문제는 특별한 반전이 있는건 아니며, 할머니의 작품이 사실은 대단한 걸작들이었다는 결말이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점이죠. 렉시가 전직 곡예사였다는 설정도 딱히 효과적으로 사용된건 아니고요. 분쇄될 뻔 했던 봉투를 더 극적으로 회수했었어야 했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특별 단편이니 이 정도는 눈감아줄 만합니다. 전개도 깔끔하고 시원시원해서 읽을 만 하고요. 완성도보다는 분위기가 적당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8/03/31

고양이 발 살인사건 - 코니 윌리스 / 신해경 : 별점 3점

고양이 발 살인사건 - 6점
코니 윌리스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SF 쪽에서는 명성이 높은 코니 윌리스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쓴 작품들을 모아놓은 중단편집입니다.
코니 윌리스 작품은 처음 읽어보는데 아주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작품을 찾아봐야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을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작품들 중에서도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수록작 대부분이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갖춘 데다가, 밝고 따뜻하면서 유머러스해서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입니다.

정통 SF라기 보다는 약간의 SF 설정이 가미된 작품들로 일상 - 홈 드라마이자 사회 비판물인 "말하라, 유령", 본격 추리물 "고양이 발 살인사건"과 로맨틱 코미디 첩보물 "절찬 상영중",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SF "소식지", 로드무비 "동방박사들의 여정", 일상 드라마인 "우리가 알던 이들처럼"로 장르를 구분할 수 있는데 대부분 기본 이상은 해 줍니다. 친숙한 작품들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익숙한 클리셰, 설정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장르문학, 컨텐츠 애호가로서 반가왔던 점이에요. 그만큼 볼거리가 아주 풍성합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3점입니다. 하지만 아래 상세 리뷰에서 처럼 별점 5점짜리! 작품도 수록되어 있는 만큼, 장르문학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세요.

그나저나, 저도 크리스마스 관련된 이야기를 몇 번 써 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수준 차이가 엄청나네요. 반성하게 됩니다.

"말하라, 유령" 

이혼남으로 책이 유일한 취미인 서점 직원 그레이의 유일한 낙은 크리스마스에 딸 젬마와 보낼 시간이었다. 그러나 서점의 사인회와 전처 때문에 딸을 만나지 못하게 된 그레이는 서점 직원으로 임시 채용된 크리스마스의 유령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는데...

딸 아이를 위해 열심히 해 보려고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꾸만 엇나가는 그레이와 사람을 개과천선 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는 유령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약간의 판타지 설정으로 흥미를 자아내며 묘사도 일품입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때 바쁜 백화점 서점에 대한 무시무시한 묘사가 압권이에요. 이래서야 정말 빠져나가기 힘들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으니까요. 크리스마스 캐럴을 비롯해 딸 젬마가 좋아하는 소공녀, 그 외에도 디킨스와 월터 스콧의 작품이 많이 인용되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그러나 완벽한 크리스마스 해피 엔딩이 아니라는건 의외였습니다. 마지막에 유령들이 뭔가의 슈퍼 파워로 딸 젬마를 그레이에게 데려다 줄 줄 알았는데 그냥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끝나버리거든요. 돈이 최고고(작 중 표현대로라면 유일한 것), 유령들은 힘도 없고, 크리스마스에 기적 따위는 없다는 결말은 서늘하고 냉소적인 사회 비판 소설에 가깝습니다. 이게 현실적이긴 합니다만 씁쓸하네요. 디즈니 작품과 비슷한 가족 판타지로 위장된 탓에 이런 갭이 더 크게 느껴지는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 않을까 싶군요. 저는 다소 불호입니다. 딸아이 아빠로서 젬마는 최소한 행복해졌어야 했기 때문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고양이 발 살인사건" 

세계 최고의 탐정 투페는 크리스마스에 친구 브리들링스 대령과 함께 마웨이트 장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사건을 의뢰한 샬롯 발라디 부인이 영장류를 연구하는 인공지능 연구소로 사람의 말이 가능한 고릴라 달타냥, 추리소설도 좋아하는 똑똑한 침팬치 하이디가 하인으로 일하는 등 연구 실적이 빼어난 곳이었다. 그러나 함께 사는 그녀의 동생 제임스는 영장류를 증오하여 자신이 유산 상속을 받으면 모두 쫓아낸다고 공언한 상태. 다행히 그들의 아버지인 억만장자 알리스테어 경은 치매로 난폭한 바보가 되었지만, 앞으로 수년은 더 살 수 있을 정도로 건강했다.
투페 컴비는 다른 손님들, 기자인 루트거스와 폭스양, 지역 경찰 유스티스 경사, 알리스테어 경의 간호사 파치트리 양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고, 이 와중에 의뢰하는 수수께끼가 단지 영장류의 존재에 대한 질문임을 알게 된 투페는 당장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알리스테어 경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모든 정황이 고릴라 달타냥의 범행임을 암시했는데....

포와로와 헤이스팅스 컴비를 빼닮은 탐정 컴비가 등장하고, 전형적인 영국 장원을 무대로 하는 클로즈드 써클 미스테리입니다.

일단, 고전 본격물에 대한 높은 이해가 돋보여요. 탐정 컴비의 묘사는 물론 장원에 머무는 사람들 모두가 모두가 동기가 있고 수상쩍은 등 여사님 작품에서 보았었던 그런 느낌으로 묘사되거든요. 패러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전 캐릭터를 쏙 빼 닮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전형적입니다. 사건과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 역시 고전 본격물 그대로에요. 무엇보다도 추리에 있어서 영장류의 지능이 높다는 설정으로 독특함과 재미를 안겨다 주는 부분이 탁월했습니다. 이 설정이 단지 재미 요소가 아니라 진짜 반전의 핵심 요소인 덕분입니다. 영장류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그들이 알리스테어 경을 살해하고 제임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약간의 SF가 가미된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한 정통 본격물로 추리와 재미 모두 기본 이상은 해 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고전 본격물 팬이시라면 충분히 즐기실 수 있으실 거에요. 별점은 5점!입니다.

"절찬 상영중"

"크리스마스 소동" 이라는 고전 영화를 보기 위해 애쓰는 사라와 그녀가 그 영화룰 왜 못 보는지를 설명해주는 전 애인 잭의 이야기입니다.

일단 사라가 방문한 영화관 시네드롬은 온갖 영화 관련 오락거리가 가득차 있는 일종의 테마 파크인데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손님들이 밀어닥친 탓에 난리도 아닌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러한 복잡한 상황 묘사가 대단합니다. 

그리고 사라가 영화를 보지 못한 이유도 아주 그럴듯해요. 영화를 만든다고 사기를 친 뒤 시네드롬에 돈을 좀 쥐어줘서 아무도 못보는 환상의 상영관을 확보한 후 제작비를 쓴 것처럼 꾸미는 제작사의 음모이고, 이는 백 개도 넘는 상영관을 모두 채우는 건 무리였던 시네드롬에게도 필요했던 사기라는 진상인데 생각도 못했네요.

이러한 내용을 소비자 사기국에서 근무하는 잭의 화려한, 영화를 방불케하는 첩보 작전처럼 풀어나가는 것도 아주 매력적입니다. 사라에게 사 준 티셔츠가 카메라 부착형이라는 아이디어 등 디테일도 볼거리이며, "백만 달러의 사랑", "아이 러브 트러블", "위기의 암호명" 등 비슷한 영화들의 장면 장면과 엮이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거든요. 실제로 로맨틱 코미디 첩보극이라는 장르 공식에 굉장히 충실하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지요. 그 외 다수 영화들의 인용, 묘사도 흥미로운데, "디워"가 원작에도 언급되는건지는 좀 궁금합니다.

그런데 망한 영화도 매니아가 따라붙고, 온갖 매체에서 흥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설정같지는 않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잭이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이 부족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즐겁고 유쾌한 작품임에는 분명한데, 소설보다는 영상물에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네요.

"소식지" 

크리스마스를 앞 둔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착해졌다. 이를 처음 눈치챈 건 주인공 "나"의 직장 동료이자 그녀가 흠모하는 이혼남 게리였다. 둘은 곧 착해진 사람들이 모두 모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다른 악영향없이 착해지기만 한 탓에 이를 밝히고 처리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착해진 사람들의 몸 관절이 이상해지는 부작용을 알아낸 주인공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생수를 박멸하고자 직장과 집의 온도를 올렸다(모자를 벗게). 다행히 기온이 올라 이 소동은 자연스럽게 마무리된다...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따뜻한 로맨틱 코미디로 변주된 "신체 강탈자의 습격 (바디 스내쳐)" 입니다. 기생수의 부작용이 착해지는 거라니 정말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네요. 이변을 눈치채지만 착해지는 게 과연 무슨 문제인지?를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딜레마도 웃음을 자아내고요.

하지만 디테일이 좀 지나쳤습니다. 보다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텐데, 과유불급이랄까요? 제목이기도 한 가족들 간의 '소식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람들의 이변을 강하게 드러내는 소품이기는 하지만 구태여 등장시킬 필요는 없었어요. 지역별 편차가 있고 이유는 기온이다!를 드러내려면 TV나 신문 등의 뉴스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등장인물들도 너무 많은데, 이 역시 주인공과 게리가 잘 되게 만드는 식으로 깔끔하고 단순하게 마무리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별점은 3.5점입니다. 크리스마스에 걸맞는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여정" 

눈보라가 휘몰아쳐 도로가 통제되는 와중에서 자기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계시에 따라 예수를 찾아나선 목사 멜과 친구 BT, 그리고 여행 중 만난 여성 캐시 3인의 여정이 그려진 작품입니다.

한마디로 동방박사 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온 일종의 로드 무비(?)입니다. 백인 목사, 흑인 과학자, 전직 영어 교사인 여성 3인이라는 파티 구성도 나름 완벽해서 눈길을 끌고요.

그러나 여정에 대해 상세하게 그린다기 보다는, 실제로 동방박사가 겪었음직한 고뇌(이게 계시가 맞는지? 내가 미친건 아닌지? 와 같은)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드라마적 재미는 별로 없어요. 독백과 종교적 고뇌로 가득찬 작품이 애초에 재미있을 리가 없지요.
게다가 중간, 중간 계시와 유사한 카니발 조명과 예수일지도 모르는 카니발 운전사 등의 존재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그 정체가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차라리 알 수 없는 계시의 파편을 모아 그것을 토대로 여행의 목적지를 정하는, 일종의 추리 과정이라도 동반되었더라면 나름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이야기는 비중이 너무 작아서 아쉬웠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결말이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 세 명이 카니발을 찾아가 예수(?)를 만나는지, 그들을 방해하는 헤롯왕의 수하들은 누구인지 등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마무리 되는 탓입니다. 이래서야 모험이 시작되자마자 이야기가 끝나는, "반지의 제왕" 1부와 같은 수준의 도입부에 불과합니다.

크리스마스에 적합한 이야기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완성된 이야기냐는 측면에서는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네요. 수록작 중 개인적으로는 최악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우리가 알던 이들처럼" 

책 뒤에 작가가 꼽은 크리스마스를 다룬 최고의 영화, 책, TV 시리즈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영화 중 최고는 "러브 액츄얼리"를 꼽고 있더군요. 이 작품은 작가가 나름대로 변주한 "러브 액츄얼리" 입니다. 족 모임을 위해 오리를 구우려는 루크, 이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미구엘의 양육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파일러, 남편과 사별하고 멕시코로 여행온 베브, 아내 마진를 두고 불륜을 저지르는 워런, 크리스마스 이브 결혼식을 주장하는 친구 스테이시의 들러리로 여행 온 폴라,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대폭설을 연구하는 네이선 박사와 조수 진성 등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다양한 등장인물이 한 꼭지 씩 이야기를 선보이다가 마지막에 연결되는 결말인데 전개 방식이 똑같거든요. 대부분 해피엔딩이며 감동적인 이야기와 적절한 코미디가 섞여 있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차이점이라면 이야기들 속 대 소동이 일어나는 원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대 폭설" 이라는 SF적인 설정이라는 것 뿐입니다.

모두 재미있고 따뜻하며, 크리스마스에 잘 어울리는 가정적인 이야기들입니다. 도저히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어요! 거짓말을 하다가 파멸한 불륜남 워런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아주 속 시원해서 마음에 들었고요. 무엇보다도 대폭설의 원인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 이 모여서 일어난 것이라는 어처구니없으면서도 크리스마스다운 발상이 아주 좋았습니다.

한마디로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던, 반짝반짝한 작은 소품들이 모인 선물 상자같은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작품도 영화로 꼭 만나보고 싶어지네요

2023/10/29

겨우살이 살인사건 - P.D. 제임스 / 이주혜 : 별점 4점

겨우살이 살인사건 - 8점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아작

P.D. 제임스 여사의 단편집. 표제작을 포함 모두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사님의 "어떤 살의"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걸작이지만 다른 작품들 - "검은 탑",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 은 다소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어요. 그래도 단편이라기에 집어들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선입견 때문에 읽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했네요.
표제작을 비롯하여 모두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완성도 높은 명작들입니다. "단편은 좁은 반경 안에서 독자들이 좋은 범죄 소설에 기대하는 것 - 믿을 만한 미스터리, 긴장감, 흥분, 언제나 공감할 수는 없어도 정체를 알 수 있는 인물들, 그리고 실망스럽지 않은 결말 등 - 들을 찾아 신뢰 가능한 세계를 제공한다."며 단편 소설의 장점을 짚어낸 서문 그대로, 수록작 모두 독자들이 좋은 범죄 소설에 기대하는 것들을 충족시켜 줍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4점. 모든 추리 애호가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크리스마스가 무대이니 만큼, 얼마 안 남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읽어주시면 더욱 좋겠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겨우살이 살인사건" 
18살 어린 나이에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P.D. 제임스는 오래전 가족과 결별했던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초대를 받아들였다. 할머니의 스터틀리 영주 저택에는 할머니와 사촌 폴, 그리고 또 다른 먼 친척 롤런드 메이브릭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하던 즐거움도 잠시, 크리스마스 밤에 롤런드가 살해당했다.

여사가 추리 소설계에 투신하게 된 계기였던 사건을 그린 자전적 소설. 실제 있었던 사건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주 실감나게 쓰여있습니다.

작중에서도 언급되지만 전형적인 애거서 크리스티 유형의 이야기입니다. 시골 저택, 그것도 치명적인 장소인 '서재'에서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다는 점에서는요. 주인공이자 화자이자 탐정역인 여사가 간단한 조사로 밝혀낸, 폴과 공범 - 할머니로 생각되는 - 이 폴의 형을 협박해서 자살하게 만든 롤런드를 살해했다는 진상도 설득력이 넘칩니다.

여사의 조사로 밝혀지는 단서가 곧바로 추리로 이어져서 독자가 함께 범인을 찾아내게 만드는 맛은 부족하지만, 고전 황금기 걸작에 뒤지지 않는 재미와 흥미를 가져다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아주 흔한 살인사건"
16년 전, 어니스트 게이브리얼은 직장에서 몰래 포르노를 읽다가 이웃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남녀 - 데니스 스펠러와 에일린 모리시 - 의 불륜 행각을 목격했다. 둘의 만남은 매주 금요일마다 이루어졌다. 에일린이 살해된 후 데니스는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이 집행되었다. 게이브리얼은 그날 데니스가 에일린을 만나지 못했다는걸 목격했지만 자신의 은밀한 행동 -포르노를 숨어 읽은 것 - 이 들통날까 두려워 증언을 하지 않았다....

딱 4페이지 전까지는 게이브리얼의 딜레마를 그린 심리극으로 보였습니다. 심리극으로도 워낙 묘사가 탁월해서 흥미롭기 그지 없는데, 마지막에 게이브리얼이 에일린을 살해한 진범이라는게 드러나면서 범죄극으로 전환되는건 정말 기가막혔습니다. 서늘한 반전이 중요한 '기묘한 맛'류의 장르물로도 아주 우수해요.

그런데 딱 한 가지, 부동산 중개업자가 피해자 에일린의 남편이었다는게 마지막에 드러나는데 이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상황을 짐작할만한 설명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박스데일의 유산"
애덤 달글리시 총경의 대부 허버트는 앨리 종조모로부터 5만 파운드라는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다. 하지만 앨리 종조모가 67년 전, 크리스마스 다음날 남편 오거스터스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고 달글리시에게 진상 조사를 부탁했다.

"이 세상에서 부자들은 딱 한 번만 대가를 치른답니다."

애덤 달글리시 시리즈 단편. 무려 67년 전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4살이었던 허버트가 진범이라는 진상은 놀랍습니다. 그리고 앨리를 미워해서 사형 선고를 받게 하려다가 오히려 약점을 잡혀 전 재산을 잃고 만 고다드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왔고요. 강한 여자들이 패자가 모든걸 잃고만다는 공정한 영국식 결투를 벌였다는게 신선했거든요. 앨리가 뛰어난 두뇌와 소매치기(?) 능력으로 승기를 잡는다는게 앞서 복선처럼 잘 설명되어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당시 4살이었던 허버트가 진범이라는 진상은 다소 비약이 심했고, 이를 추리할 논리적인 근거도 전무하다는 약점은 큽니다. 달글리시가 아이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는게 근거의 거의 전부거든요. 주전자 물이 줄어들었고 물 웅덩이가 닦였다는 정도로 앨리가 진상을 꿰뚫어 보았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억지스러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열두 가지 단서"
막 경사로 승진한 젊은 달글리시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한 고모 집으로 향하던 중 급한 용무가 있다는 헬무트 하커빌을 태워주게 되었다. 그는 삼촌 하커빌이 자살했다고 했다. 하지만 달글리시는 무려 열두 가지나 되는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하커빌을 조카 가족들이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하려한걸 달글리시가 여러가지 단서들로 밝혀내는데, 단서 제공은 공정하고 전개도 깔끔합니다. 작 중에 달글리시가 설명하는 아래의 열두 가지 이상한 점은 모두 독자들에게도 똑같이 제공되거든요.
  1. 유서는 편지의 마지막 장으로 봉투에 넣으려고 두 번 접었는데 누가 다림질을 해서 펴려고 했는지 (유서에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언급했는데 왜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살했는지)
  2. 벽난로에 타다 남은 여권
  3. 저택 매각을 의미하는 내용의 편지 조각
  4. 피해자는 모자를 쓰고 죽었는데 베개에 발모제 연고가 훨씬 많이 묻은 이유
  5. 크리스마스 크래커 장난감은 어디갔는지
  6. 유서에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조카 며느리가 만든다고 되어 있는데 요리사를 구하는 광고를 내라고 시킨 이유
  7. 전날 밤 조카들 가족과 같이 도착했다는 요리사 가방이 풀리지 않은채 침대 위에 놓여 있는 이유
  8. 요리사가 쪽지 필체가 하커빌 것이라는걸 알고 있는 이유
  9. 직전에 고용되었다는 요리사가 엉망인 부엌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이유
  10. 피해자 잠옷 맨 위 단춧구멍에 호랑가시나무 가지가 꽂혀있었는데, 피해자 손은 가시에 찔리지 않았고 가시에는 연고가 묻어있지 않았다.
  11. 피해자가 크리스마스 푸딩을 손으로 파냈다면, 손톱 밑에 푸딩이 끼어 있지 않은 이유
  12. 피해자가 죽고 8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난로 안의 재가 여전히 따뜻했던 이유 (그리고 성냥은 어디 있는지?)
이 중 크리스마스 푸딩에 관련된건 잘 설명되어 있지 않은 등 몇 가지는 다소 억지스럽기는 합니다. 모든 이상한 점이 다 자세하게 설명되지도 않고요.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크래커 당기는 소리와 장난감과의 관계라던가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꽂은 이유는 잘 모르겠더군요. 영국식 크리스마스 파티의 필수 요소였던걸까요?

그래도 본격 추리 단편의 교과서같은 느낌을 전해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달글리시 말 그대로 '완전히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셈이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2004/08/21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 애거서 크리스티 / 황해선 : 별점 3점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황해선 옮김/해문출판사

네, 바로 이어서 또다른 단편집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을 읽었습니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 읽기는 했지만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어차피 단편집은 좋아하니 소장용으로 구입해도 괜찮다 싶어 구입하게 되었네요.

첫번째 단편이자 표제작인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은 크리스티 여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춰서 쓴 듯한 경쾌하고 유쾌한 단편입니다. 한 외국 왕자의 스캔들을 해결하기 위해 왕자가 도둑맞은 보석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포와로가 도둑이 초대받았다는 영국 시골의 킹스 레이시 저택에 찾아가 레이시 가문 사람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이며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사건 자체가 살인사건이 아니라 소박하기도 하고, 아무도 죽지 않으며 악당만 손해보는 전형적인 권선징악형 스토리 구조로 이루어져 추리소설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에요. 포와로의 캐릭터도 잘 살아있어서 아주 유쾌하고요. 특히 아이들과 벌이는 두뇌게임(?)이 재미있습니다.
"완전범죄"형 사건이 아니라서 트릭이랄게 별로 없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별다른 사건과 트릭 없이 복잡한 복선들과 대화들만을 가지고 하나의 수준높은 단편으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크리스티 여사의 거장으로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두번째 단편 "스페인 궤짝의 비밀"은 밀실에서의 의문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정통파 퍼즐 미스터리 본격 추리물입니다.
리치 대령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 예정이다가 급한 일로 스코틀랜드로 가게되어 불참하게 된 클레이턴씨가 다음날 리치 대령의 집 거실에 놓여있는 스페인 궤짝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클레이턴 부인의 도움을 요청받은 포와로가 "회색의 뇌세포"를 이용하여 사건을 명쾌하게 풀어낸다는 내용이죠.
살인사건의 트릭 자체도 괜찮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레몬양의 캐릭터가 아주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어요. 사건의 해결에 아무런 증거가 없다.. 라는 것 정도가 유일한 약점이랄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세번째 단편 "꿈"은 매일 특정시각에 자살하는 꿈을 꾸는 백만장자의 상담을 받은 포와로가 실제로 그 시간에 백만장자가 자살하게 되자 참고인으로 불려언 뒤, 그야말로 앉은 자리에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포와로의 추리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죠.. 트릭 자체야 신선할게 없지만 독자와의 두뇌게임이 비교적 공정한 편이고 사건의 해결도 깔끔한 우수한 단편입니다. 역시나 별점은 3점.

마지막 작품 "그린쇼의 아방궁"은 마플양이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단편입니다. 부유한 노부인 그린쇼 양의 의문의 살인사건을 현장 한번 방문하지 않고 관련자들의 증언과 진술만으로 진상을 짚어내는 마플양 특유의 모습이 잘 그려진 작품이죠. 다만 트릭면으로는 "꿈"과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꿈"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린쇼 양의 의미없어 보이는 말들과 마플양의 사소한 주변 사건들이 결국 진상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역시 명불허전이에요. 역시 별점은 3점입니다.

결론 내리자면 전체 평균 별점은 3점. 포와로와 마플양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예전에 읽었던 기억은 있지만 정말 십년이상 된 듯 하고 그래서인지 트릭이나 내용이 모두 신선하게 느껴져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해문측의 편집인지, 아니면 전집에서 원래 그렇게 편집을 했는지 전부 6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단편집이 4편만 실려있는 것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네요. 모처럼 크리스티 여사가 요리에 비유하며 소개글까지 써 놓았는데 2편이나 빠지다니... "패배한 개"는 이번에 단편집을 구입했지만 24마리의 검은 티티새때문에 "쥐덫"을 또 살 생각은 없으니 이빨을 맞추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2003/12/15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2003) - 리처드 커티스

새로 부임한 매력적인 미혼의 영국 수상(휴 그랜트)은 발랄하고 귀여운 비서 나탈리(마틴 맥커친)에게 첫눈에 반한다. 수상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의식해 그녀를 멀리하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고 만다. 고민 끝에 그녀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만 사랑 고백이 담긴 그녀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고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 오르는 뜨거운 사랑을 깨닫는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주소도 모른 채 그녀가 사는 동네로 무작정 찾아 나서는데.

새 아빠 대니얼(리암 니슨)은 엄마를 잃고 방에 혼자 틀어박혀 지내는 아들 샘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사실 샘은 여자친구를 두고 짝사랑의 열병에 빠져 있었던 것. 새 아빠는 아들의 사랑을 이뤄 주기 위해 아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짜낸다. 크리스마스 이브 학예회, 여자친구 앞에서 멋지게 드럼을 연주하고 싶은 샘은 밤낮없이 방에 틀어박혀 드럼 연습을 한다. 드디어 학예회가 끝나고 작별인사도 못나눈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새 아빠와 함께 공항으로 달려가지만, 그녀는 이미 가족과 함께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 버린 후... 어쩔줄 몰라하던 샘은 무작정 비행기로 뛰어 든다.

소설가 제이미(콜린 퍼스)는 바랑둥이 여자친구에게 상처 받고 남부 프랑스의 작은 별장에서 소설을 쓰면서 마음을 달랜다. 그가 머무는 동안 집안 일을 돕기 위해 젊은 포르투갈 여인 오렐리아가 온다. 이 둘은 말은 한마디도 통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서로에게 끌리고, 매일 헤어지는 시간을 너무나도 아쉬워 한다... 떠날 무렵까지 결국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 못하는 제이미... 점점 더 커가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쩔줄 몰라하던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 드디어 포르투갈로 그녀를 찾아가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선물을 준비하는데...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를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사라(로라 리니). 드디어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꿈에 그리던 그와 함께 춤을 추게 된다.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그녀의 새로운 매력에 마음이 끌린 그. 결국 그녀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오게된다. 뜨거운 눈빛이 오가고 분위기는 무르익어 마침내 고대하던 사랑을 나누려는 찰나, 요양소에 있는 그녀의 아픈 남동생에게 전화가 온다. 아쉽지만 그녀는 그를 남겨두고 누나를 찾는 동생에게 달려가는데... 과연 이들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무뚝뚝한 남편 해리의 주머니에서 하트목걸이를 발견하고 기쁨에 설레여하는 캐런. 그러나 크리스마스 이브, 정작 해리가 건넨 선물은 CD. 그렇다면 그 목걸이의 주인은?

이제는 한물간 로커 빌리에게 오랜동앗 매니저 일을 맡아주며 고생해온 조. (그레고르 피셔). 데뷔때부터 빌리와 음악 활동을 함께해온 그는, 다시 재기를 꿈꾸는 빌리와 함께 리바이벌곡 'Christmas Is All Around'를 크리스마스 음반 차트 1위에 올려 놓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데... 크리스마스에 이들은 과연 1등을 할 수 있을까?

신랑 피터(치웨텔 에지오포)와 신부 줄리엣(키라 나이틀리)의 결혼식. 신랑의 제일 친한 친구 마크(앤드류 링컨)는 정성을 다해 웨딩 촬영을 해준다. 하지만 신부 줄리엣은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마크를 서운하게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크의 집에 웨딩 테이프를 찾으러 간 줄리엣은 온통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득 채워진 화면을 보고 감격한다.


이 영화는 위의 이야기들을 모두 하나로 엮는 크리스마스에 딱 어울리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물간 록커 빌리 맥 이야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그 사람, 유머를 알 뿐더러 정말 막나가더라고요^^ 휴 그랜트의 전형적인 약간 느끼한 매력도 일품이고요. 리암 리슨과 콜린 퍼스, 키라 나이틀리 정도만 제가 아는 배우였지만 (아! 미스터 빈까지 있다. 그러고 보니 막판에 깜짝 출연하는 클라우디아 쉬퍼도..) 나머지 배우들도 대단한 배우들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호화 캐스팅에다가 빛나는 음악들, 거기에 딱딱 어울리는 각본까지, (다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것이 일단 대단하죠) 상당히 재미있었고 잘 만든 영화라는것이 느껴졌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것은 초등학생 아들한테 섹스이야기를 해준다던가 하는 부분은 뭐 정서 차이겠지만요, 조금 와 닿지는 않았고요. 그리고 너무 영국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영화랄까요? 현 블레어 정부를 비판하는 정도면 좋았을 것을, 미국 대통령과 영국 수상이 맞장을 뜨고, 위 줄거리에선 빠졌지만 영국 찐따가 미국으로 가자마자 미국 퀸카 아가씨들과 밤을 지새고 다시 영국에 올때 데니스 리차드(!)를 동행으로 데리고 온다는 등의 이야기는 거슬리더군요. 그냥 사랑이야기만 해 줬으면 싶었는데요.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따뜻한 사랑이야기였으므로 추천합니다. 국내버젼에는 포르노배우들의 사랑이야기가 빠졌다는데 나중에라도 구해 봐야 겠네요.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이런 몰상식한(!) 행위는 아직도 불만입니다. 관객들을 바보로 아는건지 원....

2017/10/06

하늘을 나는 말 - 기타무라 가오루 / 정경진 : 별점 3점

하늘을 나는 말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기타무라 가오루의 전설적인 일상계 연작 단편집입니다. "동서 미스터리 100"의 일본편 17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걸작이지요. 오래 전 부터 국내 출간을 기다리던 작품입니다.
사실 국내 소개가 이렇게나 늦어진 것 자체가 굉장히 의외에요. 앞서 말씀드린 "동서 미스터리 100"선 상위 20개 작품 중 국내 미출간 작품은 이 작품과 아유카와 데쓰야의 "검은 트렁크" 두 작품이 유이할 정도거든요. 이 중 "검은 트렁크"는 1950년대 출간된 묵직한 고전이지만, 이 작품은 80년대 발표된 나름 신세대 미스터리 작품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일상계 미스터리는 국내에서도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들이나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등으로 제법 인기를 확보하고 있기도 하고요. 온갖 수준 이하의 작품들까지 번역되는 일상계 추리물의 홍수 속에 이 유명 작품이 이제서야 소개된 것 자체가 미스터리같습니다. 무슨 어른의 사정이 있는지 조금은 궁금하네요.

여튼, 그만큼 기대가 컸는데 다행히 재미있었습니다. 작가가 여성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의 섬세한 묘사들이 가득하여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전해주며, 추리적으로도 정통에 가까운 이야기들인 덕분입니다. 기묘한 이야기가 선보이고, 그것을 엔시씨가 주어진 단서만으로 풀어낸다는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인데, 대체로 설득력있고 합리적입니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화자 "나"와 라쿠고가 탐정 엔시 씨 캐릭터도 좋아요. 작가의 섬세한 필치로 매력적으로 묘사되고 있음은 물론, 주인공의 "국문학도" 로서의 전문가적인 지식과 엔시 씨의 "예인"으로서의 특수 능력 - 놀라운 기억력과 라쿠고 연기를 통해 단련한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능력 - 이 이야기와 잘 결합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단점이라면 분량에 비해 추리적인 부분이 좀 부족하다는 것 정도? 이것은 엔시씨와 나, 그리고 그 외 등장 인물들과 본 편 추리와는 무관한 배경 묘사 비중이 높은 탓입니다. 덕분에 캐릭터가 생동감있게 다가오고, 전개에 있어서도 설득력이 더해진다는 장점은 있습니다만, 추리 부분의 비중이 작아진건 개인적으로 아쉬웠어요. 국내 소개되었던 작가의 다른 단편집 - "시미가의 붕괴" - 등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었기에 의외이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이 작품이 발표된 해가 버블의 정점이었던 1989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여유있고 풍요로왔던 시대에 어울리는 느긋한 분위기가 가득 느껴지니까요.

그래도 숨 넘어갈 것 처럼 달리는 와중에도, 쉬어갈 필요는 있는 법이지요. 단점은 사소할 뿐, 시대를 뛰어넘는 재미를 전해주는 좋은 일상계 소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 미스터리를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세요.

"오리베의 망령" 

"나"는 우연히 대학교 은사 가모 교수의 부탁으로 라쿠고가 엔시씨 인터뷰에 동행했다. 인터뷰 후 회식 자리에서 가모 교수는 어린 시절 꾸었던 기묘한 꿈 이야기를 했는데, 엔시 씨는 이야기만 듣고 진상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는 증거 보완을 위해 한 달의 시간을 요청하는데...

화자인 "나"와 탐정역인 라쿠고가 엔시씨가 등장하는 기념할만한 시리즈 첫 편입니다. 섬세하면서도 느긋하고, 조금은 할머니 취향인 "나"와, 뛰어난 기억력을 갖추고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엔시 씨가 제대로 소개됩니다. 전통 일본적 소재인 라쿠고와 오리베 자기, 그리고 교수님 꿈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전개도 괜찮고요.

추리적으로도 단서가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교수님 꿈의 이유가 된 숙부님이 평소 책을 함부로 대했다는게 핵심이거든요. 물론 교수님이 어렸을 때의 일본 사회 분위기, 당시 경매 제도 디테일 등은 국내 독자로서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만, 일본 한정으로는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리즈 시작으로는 적절한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설탕 합전" 

"나"는 어느 날 엔시 씨를 우연히 만나 함께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앞 테이블에 앉은 3인조의 기묘한 행동에 신경을 쓰게 되는데...

사소한 것에서 진상을 꿰뚫어보는 엔시 씨의 능력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핵심 추리는 "왜 세 명의 마녀(?)가 설탕 합전을 벌이는가?" 이지만, 돌아보지도 않고 "나"가 신경쓰는 사람들이 세 명의 여자 아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녀들이 반드시 다시 돌아올 거라는걸 예언하는 등의 소소한 추리도 아주 볼만했습니다. "설탕을 홍차에 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설탕을 꺼내려는 목적이었다"에서 시작되는 핵심 추리의 흐름 및 진상도 충분히 합리적이고요. 변장과 연기(?)로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엔시 씨의 활약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완벽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가 무언가 이상한 것(소금)을 넣는 것을, 원래 퍼낸 설탕을 다시 넣는 것으로 착각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다른 용기에 담아온걸 넣었을 텐데, 이걸 착각한다는건 무리니까요. 앙심을 품은 알바생이 너무 자신을 드러내놓고 가게에 출입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시대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아주 좋은 일상계 소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호두 껍데기 안의 새" 

"나"는 친구 다카오카 쇼코와 함께 도호쿠 여행을 떠났다. 엔시 씨의 공연도 보고, 온갖 절경을 감상하며 여행을 즐기던 중, 현지에서 만난 친구 에미의 차 시트가 모두 벗겨진 채로 발견되는데...

분량은 약 90페이지에 가까운데, 80여 페이지에 걸쳐 도호쿠 여행담이 소개됩니다. 아무리 일상계 작품이라지만 이래서 되나 싶을 정도로 무관한 배경 묘사 비중이 높아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나"와 친구들 사이의 대화 역시 지나치고요. 

작품 속 추리 역시 억지스럽습니다. 동일 차종의 차 커버를 벗겨 위장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단지 시트 커버만 벗긴다고 차가 비슷해질까요? 그 안의 모든 디테일, 소품이 다를텐데 말이지요. 아울러 이렇게 위장하려고 했던 대상이 어린 여자아이라는걸 쉽게 떠올리는건 너무 심한 비약입니다.

물론 배경 묘사는 아주 근사합니다. 일본 인형 코케시의 고장이라고도 하는 "자오산"의 풍광이 정말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나"가 문학에 대해 정말 조예가 깊다는게 잘 드러나는 점도 좋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아쉬움이 있기에 감점합니다.

"빨간 모자"

"나"는 동네 치과에서 우연히 함께 대기실에 있던 "점 여사"로부터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알고 있는 점 여사의 동창 모리나가 유미코 씨의 집 앞에, 매주 일요일 밤마다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나타난다는 이야기였다.

전편에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전편의 결과(아이를 버린 어머니)를 궁금해 한 엔시 씨가 "나"를 공연에 초대한 후 이야기를 듣는다는 설정과 본편 이야기가 이혼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점에서요.

추리적으로는 무난합니다. "빨간 모자" 이야기는 사실 모리나가 유미코의 창작으로, 점 여사가 찾아온 날 화장실 옆에서 신발장을 정리한게 핵심 단서라는 것은 괜찮았어요. 충분히 일상계스러우면서도,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준 셈이니까요. 그날 목격한 "빨간 모자"는 유미코의 딸일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점 여사의 남편과 모리나가 유미코가 불륜 관계였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인간 관계, 인간 심리를 그려낸 묘사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점 여사의 방자한 태도, 마지막에서 "나"가 사고가 날 뻔한 상황 등에 대한 묘사는 솔직히 불필요했고요. 본 편 추리하고는 동떨어져 있는 모리나가 유미코의 "빨간 모자" 동화 묘사도 지나치게 깁니다. 이러한 점은 한 편당 80여 페이지라는 분량을 맞추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나 의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냥저냥한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하늘을 나는 말"

"나"는 집 근처 상점 "모퉁이 집"의 젊은 사장 구니오 씨가 연인과 함께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다. 이후 "나"는 부탁을 받아 유치원 크리스마스 공연 비디오 촬영을 나섰는데, 그 곳에서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구니오 씨를 다시 만났다. 그날 그는 유치원에 가게에 있던 목마를 선물로 기증했다. 그런데 이웃집 며느리로부터, 유치원 마당에 놓여져 있던 목마가 순간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표제작으로 일상계 단편집 마무리에 어울리는 가슴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추리적으로 수수께끼 자체는 평이하지만, 다무라씨(구니오씨의 연인)가 날짜를 착각했다는게 잘 설명되고 있는 만큼 즐길거리는 충분합니다. 일상계에 딱 어울리는 정도의 수수께끼였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읽었던 크리스마스용 소품들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나"의 생일이 크리스마스이고, 소재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며, 이야기의 핵심이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니 이만큼 좋은 작품이 또 있을까요?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더해 별점은 3.5점입니다.

2013/01/15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이충렬 : 별점 3.5점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8점
이충렬 지음/김영사

구한말(1800년대 후반)부터 6.25 직후(1950년대)까지 시기에 그려진 한국 근현대 관련 그림을 소개하면서, 그림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식으로 구성된 근현대 미시사 서적.

개인적으로는 풍경화로 설명해 주는 당시 시대상이나 문물 이야기보다는, 인물화 이야기 쪽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자면,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민씨가의 규수" 그림을 통해 그림의 주인공 민용아가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떠날 때까지 함께 공부한 옹주의 소꿉친구라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덕혜옹주의 학창 시절과 기구한 말년을 살짝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식입니다.

모두 27개의 주제 중 특기할 만한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누가 마지막 황후의 눈물을 닦아줄 것인가?"

그림 : 엘리자베스 키스의 "궁중 예복을 입은 공주"

이 그림의 주인공은 유억겸(유길준의 아들)의 부인인 윤희섭일 것이라는 추정. 황후의 동생이기에 영문 제목에 Princess라고 명기하였을 것이라고 하는데, 일리가 있어 보이네요. 그리고 윤희섭의 언니인 순정효황후와 그녀의 아버지인 조선 제일의 빚쟁이 '채무왕' 윤택영의 파란만장한 일생사, 순정효황후의 마지막 가는 길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데, 에피소드들 하나하나가 무척 재미있고 새로웠습니다. 순정효황후가 한국전쟁 때 피난을 가지 못해 인민군에게 둘러싸였지만 "내가 조선의 국모"라고 호통을 쳤다는 것 등은 처음 알게 된 내용이었어요. (인민군 입장에서는 처단 대상 1순위이기에 신뢰성은 떨어지지만...)

"조선의 도공이여, 고려청자의 비색을 재현하라"

그림 : 폴 자쿨레의 "도공"

내용은 식민지 시기 일본에서 청자가 유행한 뒤, 조선시대 명맥이 끊겼던 고려청자를 재현하기 위해 홀로 노력한 해강 유근형의 이야기입니다. 장인의 집념이 느껴지는 이야기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던걸 변동림과 천재 시인 이상의 뜨거운 사랑"

그림 :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

구본웅이 그린 아주 유명한 이상의 초상화와 함께, 구본웅의 배다른 이모 변동림과 이상의 뜨거운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상 사후 변동림이 김환기와 다시 사랑에 빠져 개명까지 불사하며(김향안으로 바꿨다고 하네요) 결혼에 골인했다는 후일담을 그리고 있습니다. 변동림에게 이런 사연이 있는지 처음 알았네요. 지금 드라마로 만들어도 그럴듯한 이야기가 될 것 같은, 정말로 뜨거운 사랑 이야기 아닐까요?

"근대의 불치병 결핵과 크리스마스 실 운동"

그림 : 운보 김기창과 엘리자베스 키스의 크리스마스 실 도안들

크리스마스 실의 도안과 함께 우리나라 결핵 박멸을 위한 셔우드 홀의 노력이 펼쳐집니다. 무엇보다도 1940년 도안이 일본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검열에 걸려 수정했다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6.25 동란의 참상과 시대상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인도교가 끊긴 뒤 피난을 가지 못한 시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역을 하였는데, 수복 이후 부역 정도에 따라 처단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일화(피난 가지 말라는 정부의 말을 듣지 않은 시민은 살아남고, 정부의 말을 들은 시민은 처단당한다?)라던가, 벽초 홍명희, 무희 최승희의 일생과 월북 이후 후일담을 관련된 그림과 함께 알려주는 부분 등이 좋았습니다. 그림을 그린 화가들에 대한 깨알 같은 소개도 마음에 들었고요.

각종 사료들(신문기사 등)도 디테일하게 실려 있어서 자료적 가치도 아주 높고, 도판의 질도 우수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참고로, 4점에서 0.5점 감점한 이유는 16,000원이라는 가격 탓입니다. 그림 때문에라도 풀컬러 인쇄가 필요했을 테고, 덕분에 가격이 비싸진 건 당연하지만, 너무 비싸긴 비싸네요. 요즈음은 정말 책 한 권 선뜻 사기도 겁나는 세상입니다. 아, 춥다...

2020/05/01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 구리하라 유이치로 / 문승준 : 별점 2.5점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 6점
구리하라 유이치로 엮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제목 그대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런 저런 곡들에 대해 해설해 주는 책입니다.
몇 년 전 "애프터 다크"를 읽었을 때, 이런저런 곡들이 무척 많이 소개되어 리뷰에 따로 적어놓았던 적이 있는데, 이런 책이 나올 정도로 다른 작품 역시 많은 곡들이 쓰였네요. 하긴,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은 제목부터가 비틀즈의 곡 제목일 정도이니 당연하겠지요? 책은 1960년대적 가치관 소멸을 상징한다는 1980년대 이후의 음악들 (주로 팝), 록, 팝, 클래식, 재즈의 5가지 장르로 하루키 작품 속 곡들을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그렇게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는 곡 역시 그리 많지 않았고요. 하지만 짤막한 해설들이 꽤 재미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는 작품, 아는 곡의 경우는 더욱 반갑더군요.

특히 좋았던건, 곡이 특별한 '상징'이나 '메타포'로 사용된 경우와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는 부분들이었습니다. 냇 킹 콜이 불렀다는 'South of border' 소개가 대표적입니다. 노래 속의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멕시코'가 실재하지 않듯이, 이 노래를 냇 킹 콜이 부른 버젼도 실재하지 않고, 그래서 이 곡이 등장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이지만 이상하게 현실적인,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판타지를 상징한다는데 이 정보를 알고 책을 읽으면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부분은 팝 보다는 클래식, 재즈 쪽 소개에 많은 편입니다. 클래식은 저자의 전공 분야인듯 싶고, 재즈는 하루키가 소싯적, 재즈 카페를 운영했을 정도의 재즈 매니아인 덕분이겠지요.

특히 클래식은 곡 마다의 소개도 다른 장르에 비하면 비교적 긴 편이며 내용도 굉장히 충실합니다. 일례로, "태엽갑는 새" 1부의 부제인 "도둑까치"를 통해, 까치의 장난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마지막에 행복한 결말을 맞는 오페라 "도둑까치"와 작품의 내용이 연결되며, 각 부마다의 부제 모두 해당되는 오페라와 일맥상통한다는걸 알려주는 식입니다.
단지 곡 뿐만이 아니라, 누가 연주했는지에 따라 각 버젼별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캐릭터를 드러낸다는 디테일도 아주 좋았습니다. "해변의 카프카" 속 호시노가 듣고 반한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제 7번 대공"은 야샤 하이페츠 등 '백만불 트리오' 세 명이 조화따위는 무시하고 제멋대로 연주하는 버젼인데, 오시마 씨가 좋아하는건 앙상블에 주축을 둔 수크 트리오의 잘 정돈된 연주라는게 대표적이지요. 정말 아는만큼 보이는 것 같네요.

재즈의 경우는 곡 자체보다는 그 곡의 발표된 배경이나 연주자의 특징 등 좀 더 깊고 디테일한 정보를 작품과 엮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깊이가 느껴집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A gal in calico'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유명하지 않은 1950년대 (1955년) 앨범의 유명하지 않은 곡으로,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배경인 1970년대에서는 이미 잊혀진 앨범입니다. 때문에 이 앨범을 찾는 '나'의 모습은 '나'의 허영심과, 1970년대 은퇴 선언 후 칩거에 들어간 마일스 데이비스의 모습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어떤 시대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정말 작가의 의도인건지, 꿈보다 해몽이 좋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용은 참 좋네요. 저도 음식과 추리 소설에 대한 책을 썼는데, 이런 내용을 많이 담고 싶었습니다. 잘 된 것 같지는 않지만요...

그 외에도, 하루키 작품과는 무관하지만 이런저런 재미있는 정보도 많습니다. 하루키 작품에서 유독 많이 등장했다는 보비 다린이라는 가수는, 이 책에서 소개한 가정사가 아주 놀라왔어요. 키워준 어머니가 사실은 외할머니이고, 누나가 친어머니였다는데, 하드보일드 막장 드라마에서나 봄 직한 설정이지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등 그 자신의 인생도 파란만장해서, 이 책에서 소개된 대표곡 'Beyond the sea'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게 당연하다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듀란듀란과 보이 조지에 대한 신랄한 비평 - 특히 "댄스 댄스 댄스"에서 '끔찍하다'의 대명사처럼 인용되었다니 - 이 눈에 띄였습니다. 제 초등학생 때 좋아했던 밴드이고, 특히 컬쳐 클럽의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는 많이 들었던 곡이었기 때문이거든요. 진짜 팝 애호가라면 좋아하기 힘든 곡일 수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신랄한 평을 들어야 할 밴드는 아닐텐데, 조금 슬펐습니다.

아는 가수와 곡으로는 밥 딜런, 비치 보이스 소개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밥 딜런이야 시대의 총아였으니 그렇다 쳐도, 비치 보이스는 좀 의외죠? 비치 보이스의 최고 명반인 'Pet sounds'의 일본 소개 당시 야마시타 타츠로가 라이너 노트를 썼다는 건 처음 알았는데, 정말 잘 어울린다 싶네요.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이 공통점이 느껴진다며 시작된 소개와 해설은 모두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비치 보이스의 음악은 죽음, 상실과 연관되는 내용이 많다는데, 이는 밴드의 운명과 브라이언 윌슨의 생애와는 별로 관계없는 작가의 기호일 뿐이라 생각되니까요.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비치 보이스의 곡에 관련된 작품으로는 도리 미키의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단편이 최고라 생각합니다. 비치 보이스의 불운한 싱글인 'Child of winter'를 소재로 한 작품이에요. 비치 보이스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계기로 대학교 동창과 썸을 타는 관계가 되는데, 그녀는 다른 친구의 연인이 됩니다. 그 뒤 졸업을 앞 둔 겨울 방학의 어느날, 그녀가 자취방에 찾아오지만 나는 그녀를 내쫓습니다. 오해받기 싫다는 이유로요. 떠나면서 그녀는 "비치 보이스는 별로 좋아한게 아니었다..."는 말을 남기는, 83년도 단편입니다.

당연히 하루키 작품에 대한 소개, 평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숲"이 멋지게 마무리된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사랑이 이루어졌는지, 아니 '나'의 미도리에 대한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를 애매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하지만 하루키 작품 속 이런저런 곡들을 100곡 채우겠다! 는 의도가 지나친 나머지 무리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보비 비의 'Rubber ball'에 대한 설명은 지나쳤어요. "1973"에서 이 노래가 1960년을 상징하는 것 처럼 - 1960년, 보비 비가 'Rubber ball'을 부른 해다' - 언급되지만, 1960년 최대의 히트곡은 다른 곡이라고 알려주죠. 이로써 객관적인 의미의 히트곡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사적인 선곡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이는 독자가 각자의 경험에 근거한 곡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여 공감의 회로가 발생한다는데, 설명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을 뿐더러, 이렇게 오타쿠, 매니아만 알 수 있는 기호가 어떻게 공감을 일으킨다는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배경 음악에 지나지 않는 곡에 대한 침소봉대식 소개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곡들은 그냥 제목, 아티스트만 소개하고 작품 소개 및 기타 주변적인 요소에 집중하는데 책의 취지에는 벗어나는 듯 하여 여러모로 별로였습니다. "춤추는 난쟁이" 속 프랭크 시나트라의 "Night and day'가 대표적이죠. 곡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도 없이 4줄 정도의 소개로 그치고, 나머지는 전부 작품에 대한 줄거리와 인용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보 측면에서 나쁘지 않고,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설명도 적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내용도 절반 정도 됩니다. 설명도 곡의 장르에 따라 편차가 있는 편이고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의 팬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셔야 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애매한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곡들이 궁금해서 유튜브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곡들의 연주자, 발표 버젼이 일치하는건 아닙니다만 대체로 비슷은 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링크는 여기 입니다.

2019/12/21

몇 년 전의 크리스마스 이벤트 기록 발굴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리뷰를 쓰다가 이 책에 관련되었던 이벤트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당시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공식 페이지의 글은 이미 내려갔지만, 티스토리에는 아직 관련 글이 남아있더군요.

오토 펜즐러의 아이디어를 본 따 시작된 이벤트이기에, 참가 기준도 비슷합니다. 대상이 유명 작가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말이죠.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아요.

  1. 대상_미스터리를 즐겨 읽는 형제자매님이라면 누구나
  2. 분량_원고지 7매 이내('파일->문서정보->문서통계'로 확인)
  3. 조건
    1. 미스터리적 요소를 표함할 것
    2. 배경은 크리스마스 혹은 크리스마스 이브일 것
    3. 이야기에 미스터리 도서의 이름, 혹은 서점 이름이 들어갈 것(이때 ‘특색 있는 소규모 서점’일 경우 가산점 있음)
  4. 응모요령_작성한 글을 이 아래 댓글로 달면 됨.
  5. 마감_2016년 12월 25일 신데렐라 무도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당시 저도 졸문을 응모했었는데, 그랑프리는 아니지만 다행히 입선은 해서 "작가의 수지"라는 멋진 책을 선물로 받았었습니다. 참고로, 북스피어의 총수인 마포 김사장님의 단평은 아래와 같습니다.

정오에 공지를 올리려 했는데 다들 너무 잘 써주시는 바람에 마지막까지 고심하느라 늦었습니다. 송구해요. ‘그 짧은 시간에 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생각해 내다니’ 하고 솔직하게 감탄했습니다. 읽는 내내 즐거웠어요.

나무랄 데 없는 문장이나 구성을 따진다면 hansang 님의 손을 들어주는 게 마땅하겠지만 막판 유머와 책 제목을 이용한 센스 면에서 김충현 님의 이야기가 제 마음에 쏙 들었어요. 읽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웃게 되더군요.

그리하여 당 이벤트의 그랑프리는 김충현 님! 감축드려요. 2017년 내내 북스피어의 신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블로그 댓글로 응모하고, 분량도 원고지 7매 이내라는 초단편이라 대단한 이야기는 아닌데, 좋은 평을 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그렇다면 제 졸문은 과연 어떤 내용이었는지? 제가 응모한 글은 아래의 글이었습니다. 아주 조금 수정했지만 큰 틀은 같아요. 모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광호가 회사를 그만두고 추리 소설 전문 서점 '외천루'을 연지 1년여가 흘렀다. 그러나 서점 운영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힘들었다. 매월 매월 적자가 아닌 달이 없었다. 광호는 휴일도 없이, 거의 매일 새벽같이 서점에 나와 밤늦게 퇴근했다. 아내에게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고객을 기다리고, 매출을 늘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핑계였다. 광호의 꿈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직장 생활에 시달리는 아내, 유치원만 겨우 다닐 뿐 다른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원 하나 보내지 못하는 어린 딸아이를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었다. 국문학도 시절부터 연인으로, 함께 작가가 되자고 결심했던 아내만 보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크리스마스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티를"은 오래된 말일 뿐, 당연히 매출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도 광호는 어김없이 새벽에 출근하여 서점 문을 열었다. 서점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큰 덩치에 온몸을 둘러싼 듯한 긴 코트, 목 위까지 추켜올린 목도리, 마스크에 털모자라는 독특한 외모의 손님이 서점으로 들어왔다. 걸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도 컸다. 긴 코트 탓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코트 속 옷은 빨간색 계열이었고 구두도 징 박힌 장화였다. 손님은 서점을 잠깐 둘러보더니 곧바로 광호에게 다가왔다. 큰 덩치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는 상당히 중후해서 듣기가 좋았다. 가까이서 보니 상당히 연배가 있는 어르신이었다. 손님은 바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책이 좋은지,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등등. 대화는 서서히 길어졌다. 광호는 손님이 어떤 책을 좋아할지 고민해서 답을 하였지만, 손님이 물어보는 것은 광호가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광호가 지금 읽고 싶은 것이 어떤 책인지였다. 광호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 그리고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에 대해 생각나는대로 답했다. 이러한 대화가 진행되던 와중에, 드디어 광호는 깨달았다. 정말로 지금 원하는 것은 책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손님이 마지막에 광호가 추천한 작품을 계산하며 한 말 때문이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니 책보다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네"

손님이 떠난 후 광호는 서둘러 문단속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이제는 불필요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리라. 여유를 가지며 삶을 뒤돌아 보리라. 이건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마침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니깐.


오늘 소방서로 새벽 교대 근무를 하러 가던 중 옆집 아이 아빠가 한다는 서점에 들렀다. 한파 주의보가 발령된 추운 날씨였지만 아내가 아기 엄마 걱정이 많기 때문이었다. 싹싹하고 착해서 딸 아이 같아 가깝게 지내고 있던 차라 무시할 수 없었다. 혹 가게를 열지 않았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새벽같이 가게 문을 연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무리 책이 좋아도 가족만 하지는 않을 테니 가족과 함께 하는 게 더 좋을 나이라고 한마디 던지고 왔다.

어쩌다 보니 산 책은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줘야겠다. 제목은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이야기는 못 해 주겠지만 어르신 부부 사랑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나? 뭐, 아내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2018/06/02

주간문춘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개정판

하우미스터리에 올라온 주간문춘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저도 예전에 소개했던 1986년 리스트의 신규 개정판입니다.

온라인 사이트에는 50개씩만 실려있는 듯 한데 리뷰를 남긴 작품 (링크), 리뷰는 없지만 읽은 작품 (붉은색)을 체크해 보았습니다. 일본 작품들 중에서는 국내 출간된 39편 중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은 "도구라 마구라". "흑사관 살인사건"과 얼마전 출간된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그리고 "모방범"과 "죽음의 샘"의 5편을 읽지 않았네요. 해외 작품은 국내 출간 44편 중 "밀레니엄 1", "본 컬렉터", "흥분"의 3편을 빼고는 다 읽어 보았고요. 와 대단하다! 8편만 더 읽으면 일단은 완전정복이니만큼 당분간은 이 리스트부터 정복해봐야 겠습니다. 딕 프랜시스의 "흥분"은 왜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 2013.02.18 수정 "죽음의 샘" 완독
  • 2013.02.24 수정 "흥분" 완독
  • 2013.03.02 수정 "본컬렉터" 완독
  • 2013.03.08 수정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완독
  • 2017.10.16 수정 "하늘을 나는 말" 완독
  • 2018.3.30 수정 "레이디 조커" 1권 완독
  • 2021.1.3 수정 "비숍 살인사건" 완독
  • 2021.5.7 수정 "통" 재독
  • 2023.2.12 수정 "황제의 코담뱃갑" 재독
  • 2024.11.15 수정 "11장의 트럼프" 완독
  • 2025.04.19 수정 "요이 금병매(금병매 살인사건) 완독
  • 2026.02.26 수정 "십각관의 살인" 추가

아울러 이런 류의 리스트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하락하긴 했지만 이 리스트는 고전 걸작이 많기에 꽤 괜찮다 생각됩니다. 전부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대부분은 자신있게 권해드릴만 하니 아직 읽지 않으신 작품이 있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본" 

1위 옥문도, 요코미조 세이시 

2위 허무에의 공물, 나카이 히데오 

3위 점성술 살인 사건, 시마다 소지 

4위 도구라 마구라, 유메노 규사쿠 

5위 화차, 미야베 미유키 

6위 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7위 대 유괴, 덴도 신 

8위 십각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9위 망량의 상자, 교고쿠 나쓰히코 

10위 혼진 살인 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11위 검은 트렁크, 아유카와 데쓰야 (국내 미출간) 

12위 회귀천 정사, 렌조 미키히코 

13위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14위 흑사관 살인 사건, 오구리 무시타로 

15위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16위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아와사카 쓰마오 

17위 하늘을 나는 말, 기타무라 카오루 

18위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19위 불연속 살인 사건, 사카구치 안고 

20위 시계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21위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시마다 소지 

22위 쌍두의 악마, 아리스가와 아리스 

23위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쓰히코 

24위 이전 동화, 에도가와 란포 

25위 모래 그릇, 마쓰모토 세이초 

26위 내가 죽인 소녀, 하라 료 

27위 외딴 섬 악마, 에도가와 란포 

28위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다카기 아키미쓰 

29위 레이디 조커, 다카무라 카오루 

30위 요이 금병매, 야마다 후타로

31위 기아 해협, 미나가미 쓰토무 (국내 미출간) 

32위 문신 살인 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33위 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34위 혼란 계략, 아와사카 쓰마오 (국내 미출간) 

35위 음수, 에도가와 란포 

36위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37위 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38위 11장의 트럼프, 아와사카 쓰마오 (국내 미출간) 

39위 이누가미 일족, 요코미조 세이시 

40위 상자 속의 실락, 다케모토 겐지 (국내 미출간) 

41위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42위 한시치 체포록, 오카모토 기도 

43위 아웃, 기리노 나쓰오 

44위 죽음의 샘, 미나가와 히로코

45위 독 원숭이, 오사와 아리마사

46위 산 고양이의 여름, 후나도 요이치 (국내 미출간) 

47위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48위 태양 흑점, 야마다 후타로 (국내 미출간) 

49위 무당거미의 이치, 교고쿠 나쓰히코 

50위 불야성, 하세 세이슈

"해외" 

1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2위 Y의 비극, 엘러리 퀸 

3위 셜록 홈스의 모험, 아서 코난 도일 

4위 환상의 여인, 윌리엄 아이리시 

5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6위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7위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8위 브라운 신부의 동심, G. K. 체스터튼 

9위 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10위 화형 법정, 존 딕슨 카

11위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12위 밀레니엄 1, 스티그 라르손 

13위 죽음의 키스, 아이라 레빈 

14위 X의 비극, 엘러리 퀸 

15위 소름, 로스 맥도널드 

16위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17위 재칼의 날, 프레드릭 포사이드 

18위 주교 살인 사건, S. S. 반 다인 

18위 독수리 내리다, 잭 히긴스 

20위 독 초콜릿 살인 사건, 앤서니 버클리 콕스 

21위 800만 가지의 죽는 방법, 로렌스 블록 

22위. 본 컬렉터, 제프리 디버 

23위 그리스 관 미스터리, 엘러리 퀸 

24위 제제벨의 죽음, 크리스티아나 M. 브랜드 

25위 심야 플러스 원, 개빈 라이얼 

26위 별의 계승자, 제임스 P. 호건 

27위 화이트 재즈, 제임스 엘로이 (국내 미출간) 

28위 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루르 

29위 무죄 추정, 스콧 터로 

30위 웃는 경관, 셰발과 발뢰 

31위 시행 착오, 앤서니 버클리 콕스 

32위 쉐도우 81, 루시엔 네이험 (국내 미출간) 

33위 통, F. W. 크로포츠 

34위 모르그가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35위 흥분, 딕 프랜시스 

36위 몰타의 매, 대실 해밋 

37위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39위 붉은 수확, 대실 해밋 

39위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40위 경찰 서장, 스튜어트 우즈 (국내 미출간) 

41위 신데렐라의 함정,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42위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43위 크리스마스의 프로스트 경부, R. D. 윙필드 (국내 미출간) 

44위 유다의 창, 존 딕슨 카

45위 나인 테일러스, 도로시. L. 세이어스 

46위 채찍을 쥔 오른손, 딕 프랜시스 

47위. 버스커빌 가의 개, 아서 코난 도일

48위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이든 필포츠 

49위 점핑 제니, 앤서니 버클리 (국내 미출간) 

50위 보이지 않는 그린, 존 토머스 슬라덱 (국내 미출간)

2008/06/21

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 - 엘레나 아르세네바 외 / 윤우섭 외 : 별점 3점

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 - 6점
엘레나 아르세네바 외 지음, 윤우섭 외 옮김/황금가지

제가 좋아하는 추리 단편집에다가 이색적인 러시아 문학이라.. 도저히 안 사볼 수 없는 책이었죠. 그렇지만 역시 친숙한 추리 단편 문법과는 좀 차이가 있어서 완독에 좀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정통 추리물도 있고 심리 스릴러도 있고 블랙 코미디도 있는 등 다양한 쟝르가 혼재되어 있으며, 작품 수준도 천차만별이지만 평균적으로는 범작 수준 정도는 유지하는 듯 합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신선하고 이색적인 부분 덕에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단편집이었다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아주아주 독특한 블랙코미디적 "천사가 지나갔다"와 정통 추리 문법에 충실한 "이지웨이" 였습니다. 전체적인 별점은 3점입니다. 자세한 작품별 평은 아래와 같습니다.

니나의 크리스마스 기적

사립탐정 알렉세이는 부유한 미망인 니나로부터 조사를 의뢰 받았다. 키에프 역의 거지 소녀가 10년전 유괴당해 실종된 자신의 딸인지에 대한 조사였다. 

보기드문 "입양물" 입니다. 이러한 작품의 경우 대부분 입양과 관련된 재산분배가 이야기의 축이 된다는 것이 당연한 것일테고, 이 작품 역시 비슷한 구도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입양 상황 자체에 대한 의심, 그리고 이 상황을 꾸민 인물은 누구이며 진짜로 노리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가 복잡하게 얽혀서 읽는 내내 아주 흥미진진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무대라고 해서 이야기의 설정이 아주 독특한 것은 아니고 사립탐정이 등장하는 등 전형적인 영미권 추리물과 이야기의 얼개가 비슷한 것이 외려 놀라왔습니다. 추리물은 역시나 만국공통의 어떤 형식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건 반전이나 형식이 놀랍지는 않고 평이한 탓에 별 3개 때립니다.

공포의 인질 또는 내 고독의 이야기

폴리나는 위험한 사업을 하고 있던 남편의 총격 살해사건 뒤에 갑자기 사라졌다. 얼마 뒤 남편의 친구였던 바짐에 의해 기억상실상태로 발견되는데..

제목이 굉장히 시적인데 실상 내용은 뻔한 복수극입니다. 친구와 친구의 아내를 둘러싼 복수극은 엄청나게 진부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황당하게도 증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의 직감에만 의존하는 복수극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래서인지 설득력이 떨어지고 긴장감도 그닥 느껴지지 않네요. 대국 러시아의 국민성 탓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을 죽고 죽이는 관계가 너무 쉽게 설정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눈여겨 볼만한 설정은 딱 하나, 폴리나가 바짐이 자신을 찾게끔 만드는 장치 하나뿐인데 이 역시 그냥 이야기에 묻혀 지나갈 뿐입니다. 심리묘사는 탁월하지만 너무 질질 끄는 탓에 지루하기까지 했고요. 좋게 이야기하자면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나름 이어받아 승화시켰다는 정도? 별점을 주자면 2개 밖에는 못 주겠네요.

천사가 지나갔다

드미트리 안토노비치 슈마코프는 개인 병원의 주임 의사로, 자신이 수술을 집도한 환자 표토르의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듣고 격분했다. 그런데 우연히 의사 휴게실에서 환자의 링거팩을 발견하고 고의적인 살인 사건이 아닐까 의심하는데...

아주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상황극 드라마 같은데 일종의 갇힌 공간인 병원에서 주위 사람들의 증언과 알리바이를 확인해 나가며 진상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생각과 전혀 다른 결말이 상당히 재미를 가져다 주는 작품입니다. 추리물로 보기보다는 왁자지껄 블랙코미디랄까... 

그렇지만 증언과 증언들의 진위가 갈리는 마지막 장면의 통쾌함, 그리고 작품 전체에 흐르는 블랙코미디의 정서가 돋보여 별 4개의 가치가 충분했던 작품입니다. 물론 슈마코프의 로맨스(?)가 통하는 설정은 단지 천사의 능력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비약적이긴 하지만 뭐 그 정도는 봐 줘야죠^^

이지웨이

친구와의 크리스마스 파티 약속 때문에 마지막 버스를 타게 된 추리작가 알료냐는 버스 안의 승객들과 함께 기묘한 사건에 휘말린다.

추리작가가 탐정역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초반부의 여러가지 복선이 결말부분에서 모두 해결되는 추리적 장치는 잘 갖춰 놓은 작품입니다. 완성도 면에서는 허술한 부분도 눈에 뜨이며 정교하다기 보다는 단서 과잉일 정도로 단서가 곳곳에 넘치지만 그런데로 잘 끌고가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은 수작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도 주인공들 이름만 빼고는 "러시아적" 인 분위기를 느끼기는 좀 힘든 글로벌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도 아주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나는 학교 동창이자 악연으로 얽힌 친구 아냐의 집 애견 실종 사건에 도움을 요청받고 애견을 창고에서 발견했지만 그 사실을 숨겼다. 뒤이어 아냐의 남편인 세냐가 권총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유언장에 관련되어 풍파가 몰아닥치는데...

서구 미스테리의 한 축인 "유산상속"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실제 범행에 관련된 내용은 잘 짜여져 있고 추리적으로도 완벽한 수준이지만 가장 중요한 유언장의 진위여부가 두루뭉실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단점으로 보입니다. 원래 변호사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유언장을 들고 나타난 누군가, 의심하는 것이 당연할텐데 그러한 것이 설명되고 있지 않거든요. "단지 연극" 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반칙으로 보입니다. 이 탓에 사건의 발단과 전개, 결말 모두 추리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냥 저냥한 평작입니다.

복수의 물결

대학교 입학 문제로 모스크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료사는 높은 보수 때문에 크렘뇨프 가문의 하녀로 일하게 되었다. 하녀장 타이시야의 온갖 히스테리를 견뎌내는 와중에 소치에서 벌어진 파티에서 크렘뇨프가 살해당했고, 곧이어 미망인은 현상금 10만달러를 내걸었다. 현상금에 매혹된 료사는 범인을 직접 밝혀내기로 마음 먹는데...

1인칭 시점의 나름 매력적인 주인공 덕에 읽는 재미는 충분했습니다. 러시아 신흥 귀족층의 흥청망청한 분위기도 잘 살아있고요. 또한 추리적 요소와 단서, 정교함 역시 기대 이상으로 잘 짜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 재수생(?) 신분인 주인공이 손쉽게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 만큼 알려진 정보를 경찰이 간과하고 넘겼다는 것이 전혀 설명되고 있지 않더군요. 추리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독자를 납득시키는 데에는 반쯤 실패했다고나 할까요? 조금만 더 신경써 주었더라면 훨씬 좋은 작품이었을텐데 아쉽네요. 그래도 별 3개는 충분합니다.

러시아식 성탄절

스페틀라나는 영화 퀴즈에 당첨되어 "러시아식 성탄절"이라는 방송 촬영 출연자들과 같이 성탄절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유명배우 아르세네프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명인들이 모인 시골 저택에서 촬영이 시작되었고, 곧이어 아르세네프의 전부인 잔나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떠들썩한 분위기. 뭔가 러시아스러운 느낌을 전해주는 단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장황하고 혼란스러운 점은 작품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러시아스럽긴 한데 말이죠... 그래도 추리적으로 결정적인 단서가 등장하여 거기서 모든 사건이 풀린다는 깔끔한 전개는 괜찮았고 여러가지 설정면에서의 디테일이 좋았기에 평작 이상의 수준은 되는 것 같습니다. 별 3.5개 정도?

마지막 성탄절

젊은 아내 야나와 같이 사는 보리스는 큰 병에서 막 회복되어 야나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고 있는 상태. 그 해의 마지막 날, 쓸쓸한 둘만의 새해맞이가 되지 않도록 야나의 친구 몇명을 불러 작은 파티를 여는데 그 날 야나가 살해된다...

두번의 반전이 있는 짤막한 소품입니다. 심리 묘사가 탁월하여 읽는 재미는 좋았는데 마지막 반전은 좀 뻔하긴 하더군요. 소품이자 평작. 걍 기본정도 하는 작품이죠.

예정된 살인

줄거리 요약 불가...

너무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소설이라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작품 전개를 알 수 없을 정도였거든요. 번역의 문제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저히 소설 수준으로 보아주기 어려울 정도여서 뭐라 평할 수 없네요. 번역한 분이 다시 한번 읽어나 보셨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알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별 1개도 주기 힘드네요.

2022/02/20

양과자 시간여행 - 나가오 켄지 / 비앤씨월드 : 별점 3점

양과자 시간여행 - 6점
나가오 켄지 지음/비앤씨월드

제목 그대로, 여러 양과자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가토 데 루아에서부터 비스킷까지 열다섯 종의 양과자가 소개되는데, 단순 소개 이상의 식문화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 양과자를 누가 만들었는지?" 뿐 아니라, 그 양과자가 만들어진 이유를 시대적 배경 및 상황과 함께 설명해 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4월의 물고기'를 설명하는 부분이 좋은 예입니다. 물고기 과자가 4월 1일에 만들어진 이유가 예전 유럽 관습과 관련이 있다며 상세하게 알려주거든요. 이 책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봄의 도래를 상징하는 춘분은 예전부터 농경민족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역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세 이전 유럽의 책력에서 1년의 시작은 3월 25일이었어요. 당시 사람들은 3월 25일부터 일주일에 걸쳐 신년을 축하하고 8일째 되는 날인 4월 1일에는 친한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관습이 있었고요. 그런데 1564년 프랑스 왕인 샤를 9세가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력을 도입해 1년의 시작이 1월 1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제도가 변해도 오래된 관습은 프랑스인들의 삶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변함없이 4월 1일을 진짜 신년인 것처럼 계속 축하했지요. 이렇게 '허위 신년, 거짓 신년을 축하하는 풍습'이 세월과 함께 조금씩 변화해 '타인을 속이고 즐기는 풍습'으로 변모해서 만우절이 된 겁니다. '4월의 물고기'는 이후 로렌 공과 관련된 설화 등에서 차용되어, 만우절에 물고기 그림을 등에 몰래 붙이는 장난이 생겨난 이후 과자로 진화한 것이고요.

달걀이 부활절의 상징이 된 이유도 명쾌하게 알려줍니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근원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와는 관련이 없어요. 원래 부활절 축제는 유대교의 과월제, 게르만 시에 등장하는 봄의 여신에서 유래되었고, 기독교 성립 이후 부활과 결부된 것이라나요. 부활절 토끼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부터 새끼를 많이 낳는 동물로 알려졌고, 그래서 풍작을 상징해서 부활절 축제와 이어진 겁니다.

뷔슈 드 노엘의 본래 의미는 크리스마스의 뷔슈, 즉 장작입니다. 크리스마스에 장작을 태우는 풍습은 옛부터 있어 왔습니다. 기독교 이전 '동지'에 태양의 재생을 상징하고, 빛과 온기를 더하기 위해 태웠던게 계속 이어졌던 거지요. 그리고 19세기 후반, 서민들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되었지만 그들은 장작을 태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집은 좁고 설비도 간소했기 때문입니다. 또 뷔슈 드 노엘은 불을 붙인 후 크리스마스가 끝날 때까지 절대 불이 꺼져서는 안돼서, 적어도 3일간은 계속해서 타야만 했는데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계속 타기 위한 큰 장작을 태울 난로도 없었고요. 그래서 뷔슈는 점점 작아졌고, 집에 난로가 없는 집이 늘어남에 따라 결국 길모퉁이 제과점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뷔슈 드 노엘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실제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관련된 유래 외에도, 처음 누가 만들었는지?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와 같은 정말 양과자의 발전 과정을 다룬 설명도 자세합니다. '자허토르테'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프란츠 자허가 이 과자를 처음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진실에 대한 추적에서 시작합니다. 프란츠 자허가 메테르니히 공 주방에서 일한건 사실이지만, 만들었다는 시기에는 너무 어렸는데 왜 연도를 속였을까?라는 수수께끼가 불거지고요. 이유는 아들 에두아르트 때문이었습니다. 에두아르트는 호텔 자허를 설립한 뒤 프란츠 자허가 메테르니히를 위해 만들었다는 설을 퍼트렸습니다. 19세기 후반 약소국이 된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메테르니히에 대한 동경과 선망을 이용하려 했던 겁니다. 저자 말대로, “메테르니히 공이 사랑한 그 초콜릿 케이크야말로 우리 호텔의 스페셜리티입니다. 당신도 꼭 메테르니히 공이 맛본 이 과자를 우리 호텔에서 음미해 보는 건 어떨까요?"라는 권유였지요. 에두아르트의 계획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자허토르테는 유명한 과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자허 가문의 몰락과, 과자 레시피가 두 개로 분리된 과정도 재미있었어요.

어원에 집중한 설명들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에클레르는 '번개'라는 뜻인데, 저자는 '천천히 먹으면 손과 입 주변이 크림으로 끈적끈적해 지기 때문에 번개처럼 빨리 먹어야 했다', '과자 옆에 번개같은 날카로운 선이 뻗어 있었다', '벨기에에서는 아예 과자 모양이 번개 모양이었다', '과자를 만든 파티시에가 이걸 완성한 순간 창 밖에 번개가 번쩍였고, 그 때 머리에 과자 이름이 번쩍 떠올랐다' 등의 다양한 설을 모두 소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윗면에 캐러멜로 광택을 입힌 에클레르가 원래는 '바통 드 자코브'라는 중세 이후 대항해시대에 사용된 측량 기구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바통 드 자코브의 캐러멜이 빛을 받아 번쩍하고 반사되는 모양이 번개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에클레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을 거라는 저자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 외에도 마들렌, 매그 파이 등의 어원 등 다양한 과자의 어원이 소개되는데 연구의 폭이 상당히 넓습니다. 원래 이름 뿐 아니라 미국에서 밀푀유가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이유까지 탐구할 정도로요. 저자는 가토 나폴리탄이라는 밀푀유를 본뜬 과자에서 나폴레옹이 유래되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근거는 불명확했지만 나름 재미있는 해석이었어요.

도판도 충실한 편이며 애플파이 레시피가 적힌 가장 오래된 문헌은 "캔터베리 이야기"와 거의 동시대에 나온 요리 해설서 "폼 오브 퀴리(Forme of Cury)"였고, 약 200년 후 극작가 로버트 그린의 "아케이디아"에 애플파이에 대한 대사가 나온다는 등 필요한 사료적인 근거도 충실합니다.

파티시에, 혹은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위해 쓴 글인듯 지나치게 전문 용어가 많다는 점, 그리고 모든 양과자 설명에 참고 문헌과 자료가 함께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여러모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졸저 "콘 비프 샌드위치에 먹는 밤" 증보판이 나온다면 (설마? 과연?) 써 먹음직한 내용이 많다는게 제일 좋았습니다. 과연 써 먹을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요.

2019/12/28

도쿄전력 OL 살인사건 - 사노 신이치 / 류순미 : 별점 2.5점

도쿄전력 OL 살인사건 - 6점
사노 신이치 지음, 류순미 옮김/글항아리

1997년 3월 19일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도쿄 전력 여직원 야스코 살인 사건의 배경과 재판 과정, 후일담까지를 거의 500여 페이지 분량으로 꼼꼼하게 기록한 논픽션입니다.
이 사건은 발생 당시 일본 사회에 굉장한 충격을 안겨 주었고, 이런저런 콘텐츠에서 인용되었던 유명 사건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여자 친구"입니다. 작품 속 피해자인 마키코는 명문 대학 법대생으로 재학 중 이미 사법고시에 합격한 엘리트지만 전락하여 매춘을 반복했다는 설정인데, 이 사건과 거의 같습니다.
평소 관심 있던 차에 국내 출간이 되었길래 기쁜 마음으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크리스마스 직전에 완독했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아 리뷰를 조금 늦췄습니다.

특징이라면 살인 사건 재판을 다루고 있지만, 진범이 누구냐를 탐구하는 법정 미스터리 속성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네팔인 불법 체류자 고빈다를 범인으로 모는 경찰과 검찰의 비상식적이고 비정한 태도와 주장, 그리고 그 주장을 뒤집으려는 화자인 취재 기자의 취재와 추리를 3년여에 걸친 1심 공판 과정과 후일담 속에 담아낸 것이 내용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검경 합동의 환장할 누명 씌우기는 볼 만합니다. 일단 검찰은 고빈다가 피해자 야스코와 만난 시간부터 제대로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고빈다가 근무지인 식당에서 퇴근 후 10시 7분 열차를 타고 시부야역에 11시 20분에 도착했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취재 결과로는 10시 22분 열차를 탔다는 쪽이 타당하다고 증명되거든요. 설령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건 마찬가지고요.

검찰이 유력한 증거라고 내민 범행 장소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정액이 들어 있는 콘돔 역시 살인의 증거로 볼 수는 없습니다. 고빈다가 매춘을 하던 피해자의 손님으로 범행 장소에서 이전에 관계를 가졌던 건 사실이니까요. 게다가 현장에서는 피해자와 고빈다의 것이 아닌 음모 등 다른 증거도 발견되었고, 범인이 돈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잡아당기다 피해자의 숄더백에 묻힌 피부 조각 역시 고빈다의 것이 아니기도 했고요.
그 외 세세한 억지 주장에 대한 반론은 셀 수도 없으며, 고빈다의 무죄를 강하게 짐작하게 하는 증언과 증거가 마지막까지 드러나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이렇게 검찰과 경찰이 네팔인을 범인으로 몰려는 의도도 여러 가지 증거와 온갖 비인간적 행각의 폭로를 통해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체가 발견된 3월 19일 이후, 고빈다를 출입국 위반으로 취조할 때 이미 타액을 채취했으며, 고빈다는 물론 그의 룸메이트들에게도 고문과 강압 수사로 억지 자백을 받아낸 것입니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조작했는데도 결정적 증거를 제대로 선보이지 못하고 억지 주장만 되풀이한 검찰의 무능함도 돋보입니다.

또 고빈다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는 장면에서 끝나지만, 에필로그에서 검찰 항소로 열린 2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십수 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후일담은 기가 막힙니다. 1심 판사가 좌천되기까지 했다니, 어디까지 썩어 문드러진 건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다행히 재심으로 누명을 벗고 무죄 선고를 받았다지만, 십수 년의 세월은 보상받기 어렵죠. 게다가 이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전 경시청 간부 히라다가 ‘무죄 판결은 사법부가 여론을 의식한 결과이며 고빈다가 진범’이라고 우기며 극우 단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정말이지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화자인 취재 기자 사노 신이치의 꼼꼼한 취재도 인상적입니다. 고빈다의 고향을 방문하여 가족과 추방된 당시 룸메이트들의 결정적 증언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판에 출두한 거의 모든 증인을 후속 취재하여 피해자 야스코가 살해되기까지의 동선을 자세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각종 증거들도 상세한 보충 설명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사노 신이치의 추리력이 빛나는 장면도 여러 군데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야스코의 지갑에서 발견된 이오카드의 존재에 대한 추리입니다. 검찰은 이 카드의 잔액으로 야스코가 특정 장소, 그러니까 정기권을 버리기 위한 장소로 이동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엄청난 구두쇠였던 그녀가 돈을 써 가며 정기권을 버릴 이유는 없죠. 사노 신이치는 그래서 야스코가 이 이오카드를 주웠을 것으로 추리합니다. 비용이 남아 있다고 쓰여 있었지만 사실은 현금을 보태 표를 구입했기에 잔액이 0원이었고, 잔액을 몰랐던 야스코는 뒤의 잔액 기록만 보고 나중에 쓸 요량으로 챙겼다는 것입니다. 아주 합리적이에요.
야스코의 정기권을 아무런 접점이 없는 스가모 주택가에 버린 범인의 심리에 대한 변호인단의 추리도 볼 만합니다. 시체가 며칠 동안 발견되지 않자 범인의 의심이 커져 범행을 드러낼 요량으로 대낮 주택가에 정기권을 버렸다는 것인데, 이 역시 그럴듯했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했던, “왜 게이오 대학교를 나와 대기업 도쿄 전력의 간부로 근무하며 연봉이 천만 엔이 넘었던 야스코가 수년간 밑바닥에서 매춘을 했는지?”에 대한 나름의 답이 등장하는 것도 반가웠습니다. 속이 다 후련하더군요.
도화선은 그녀가 성스러운 존재로까지 여겼던 아버지가 사망한 것입니다. 그 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도쿄 전력 내 라이벌과의 승부에서도 패배하며, 스스로 좌천당했다고 여긴 인사 발령을 받고 아버지가 ‘징벌적 초자아’에 빙의하여 그녀에게 벌을 내립니다. 아버지보다 못한 나를 못나게, 더럽게 만들어야 된다는 이유로요.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를 사회의 밑바닥, 구렁텅이로 떨어뜨리고 만 것입니다.
그 수준은 가히 참혹해서 2천 엔에도 여러 명의 외국인에게 길거리에서 몸을 팔고, 노상 방뇨 등을 서슴없이 저지를 정도였죠. 아, 무섭습니다. 확실히 현실이 픽션보다도 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자극적인 사건과 극적인 재판 과정을 다루고 있기에 아주 흥미로운 독서였습니다. 여러모로 별점 4점을 주었었던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와 비교됩니다. 핵심 용의자가 유죄를 선고받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무죄로 풀려난다는 재판 과정도 동일할 뿐 아니라, 잘못된 경찰과 검찰의 주장을 밝혀내기 위한 상세하면서도 방대한 취재가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점도 같으니까요.
그러나 이 책은 별점 4점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저자인 사노 신이치가 이 사건을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이라든가 일본 사회의 어둠 등과 엮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문학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네팔에서의 여정을 장황하게 소개하는 부분이라든가 야스코의 무덤을 찾은 감상 등이 그러한데, 전부 쓸데없을 뿐더러 그 양도 너무 많았어요. 그냥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과 연계하여 작금의 일본 사회를 드러내는 정도에 그쳤다면 좋았을 겁니다.

게다가 이러한 개인적 감상을 무리하게 사건 취재와 엮은 부분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예요. 대표적인 게 사건 당일 야스코를 목격한 증인 중 한 명인 샌드위치맨 하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험난했던 인생사와 야스코 사건을 엮고, 이를 내면의 어둠 운운하면서 비극적으로 포장하는데 솔직히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하토는 16년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아내의 사망 이후 스스로 술독에 빠져 인생이 망가진 것이라, 이를 딱히 내면의 어둠이나 운명의 장난으로 포장할 이유는 없죠.

또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는 저자 스스로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취재를 통해 범인상을 그려내지만, 이 책에서는 그냥 뜨내기 손님이었을 거라는 일반적인 예상 외에 그 어떤 정보도 추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현실만 취재해서 문제만 드러냈을 뿐, 그 이상의 진실은 담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니까요. 같은 이유로 법정 미스터리를 방불케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그러한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배분도 적절하지 못합니다. 지금은 고빈다의 억울한 재판이 9, 야스코의 삶과 죽음이 1 정도의 비중인데, 이 책을 구입한 독자라면 야스코의 삶에 대한 관심도 높은 건 당연합니다. 왜 그녀가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의사 한 명과의 인터뷰가 전부라 취재의 양과 깊이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의사의 견해도 증명된 것은 아니고요.
또 고빈다 재판에서 사건 당일 야스코와 고빈다의 행적도 너무 많이 반복됩니다. 이런 부분만 정리했더라도 분량은 대폭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고 내용도 흥미롭지만, 말씀드린 단점들 때문에 감점합니다. 지금보다 군살을 덜어내고 더 논픽션답게 썼더라면 별점 3점 이상은 충분했을 겁니다. "오컴의 면도날"이 떠오르는 그런 책이네요.

2025/11/08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 마사키 도시카 / 이정민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시청 앞에서 노숙자 여성 마쓰나미 이쿠코가 살해당했는데, 그녀의 지문이 1년 4개월 전 지바현에서 살해된 히가시야마 요시하루의 가방에서 검출된 지문과 일치한다는게 밝혀졌다. 이쿠코의 과거 행적 수사를 통해, 그녀가 요시하루를 살해한 뒤 도쿄로 도주하여 노숙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공무원이었던 요시하루가 이쿠코의 생활보호지원금 지급을 거절했던게 동기였다.
하지만 경시청의 ‘파스칼’이라 불리는 순간 기억 능력자, 미쓰야 슈헤이는 주변 인물들의 진술을 분석하며 사건 이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데...

이 작품은 마사키 도시카의 장편 소설로, 경시청 미쓰야 슈헤이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전통적인 본격 추리나 수사물이라기보다는, 사회파 추리 소설에 더 가깝습니다.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는 마쓰나미 부부의 실직을 계기로 한 장년층 빈곤 문제입니다. 부부에게 닥친 경제적 어려움과 이를 무시하는 공무원의 행태는 직접적인 사건의 동기는 아니지만, 중요한 배경이 되지요. 보호가 필요한 시민에 대한 공무원의 무관심이라는 설정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두 번째는 SNS를 통한 허상의 행복 이미지에 중독된 현대인의 문제입니다. 행복해 보이려는 욕망과 실제 삶의 괴리, 그로 인해 놓쳐버리는 진짜 삶의 가치가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현실과도 맞닿아 있어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외에도 빈곤 부부를 노린 사기, 부부간 불화와 히키코모리가 된 자식과 같은 사회 문제들이 단편적으로 등장합니다.

사회적 문제와 엮이는 이야기도 볼만합니다. 이쿠코는 남편이 무리한 노동 끝에 사고사한 뒤, 행복해 보이는 히가시야마 부부를 원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상 히가시야마 부부는 SNS와 주변 시선에 얽매여 행복한 부부인 척을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후 아내 리사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요시하루가 딸 루미나를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 여겨 성적으로 접근하려 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루미나가 그를 살해했으며 이 장면을 몰래 지켜보던 이쿠코가 루미나를 돕기 위해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도주했다는 진상으로 이어지는 전개도 깔끔합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이쿠코가 노숙자 소년인 줄 알았던 ‘에이군’이 사실은 루미나였다는 반전도 괜찮았고요.

수사 과정에서 순간 기억 능력자 미쓰야 슈헤이의 관찰력도 잘 활용됩니다. 리사는 SNS 중독자였고, 노숙자 신분이 된 이쿠코를 도와준 이들은 이자와 유스케, 다카하시 형제, 그리고 루미나였다는 사실을 몇몇 사소한 상황의 관찰로만 추리해내는 덕분입니다.
초반부의 토끼 인형으로 일부러 가린 가족 사진이나 집 바깥에 꾸며놓은 꽃꽂이 장식, 그리고 중반 이후 햄버거 가게에서의 손님들 관찰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요시하루 사건과 이쿠코 사건 모두 우연이 지나치게 많다는 단점은 큽니다. 이쿠코가 미행한 날 우연히 루미나가 요시하루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거나, 크리스마스 이브에 전남편의 무관심에 분노한 기무라 나루미가 이자와 유스케를 몰래 따라가 이쿠코와 마주치고 격분한 끝에 그녀를 살해한다는건 모두 과한 우연이라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자와 유스케가 사실은 이쿠코 남편의 사고를 일으킨 트럭 운전사였고, 다카하시 형제가 이쿠코 남편을 빚쟁이로 만든 회사 사장의 아들들이라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에요. 인물들을 어떻게든 얽어놓으려는 시도가 지나쳤습니다.
이자와의 전처 나루미가 이쿠코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도 이자와 유스케의 동선과 SNS에 올라온 크리스마스 케이크 사진이라는 간접적인 증거를 통해 밝혀지는데, 이마저도 운에 가까운 단서에 의존한 것이고요. 

추리물로서의 완성도 역시 아쉽습니다. 미쓰야 슈헤이의 관찰력은 몇몇 장면에서 돋보이지만, 이를 통해 밝혀지는 사실들은 사건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탓입니다. 예를 들어 리사가 SNS 중독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건 작품 분량만 소비했을 뿐, 사건 해결과는 무관합니다. 이자와, 다카하시 형제, 루미나가 서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실제 범행과 직접 관련이 없고요. 그들이 범행 현장을 훼손(?)한 것도 일부러는 아니며, 범인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도 아니었기에 추리적인 재미를 느낄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미쓰야의 관찰력을 강조하려는 설정은 실제 사건 해결 과정에 효과적으로 녹아들지 못해서 분량 낭비에 불과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이자와 유스케의 아들이 히키코모리라는 설정, 다카하시 형제의 등장도 분량 낭비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다카하시 형제가 건물 관리 업무를 통해 이쿠코의 은신을 도왔다는 설명은 있지만, 굳이 그런 인물들이 필요했는지 의문입니다.

어머니가 살해당했던 과거사가 있는 순간 기억 능력자 미쓰야에 대한 설정과 기계같은 언행 묘사도 별로입니다.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어서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웠던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볼 만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닌데, 뚜렷한 장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별로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이 시리즈도 더 볼 일은 없겠습니다.

2004/08/23

패배한 개 - 애거서 크리스티 / 강호걸 : 별점 2.5점

크리스티 여사 단편집 몰아보기 3번째 입니다. 표제작인 "패배한 개"는 100여페이지에 달하는 중편, 나머지 7편은 20~30 페이지 내외의 비교적 짧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집입니다.
패배한 개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강호걸 옮김/해문출판사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에서도 소개했지만 첫 작품이자 표제작인 "패배한 개"는 원래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에 실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편집상 이 쪽으로 넘어와서 출간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작품만 다른 7편에 비교해 이야기가 더욱 길고 헤이스팅스가 나오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내용은 저택의 자신의 방에서 살해당한 애스트웰 경의 살인사건을 포와로가 의뢰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이미 조카인 찰스 레버슨이 체포되어 여러가지 불리한 증거로 인해 거의 범인으로 확정된 상태이지만 애스트웰 부인은 여성의 직감을 내세워 비서인 오웬 트레퍼시스씨를 범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후 포와로가 저택에 머물며 애스트웰 경의 주위 사람들의 행적과 동기를 면밀히 조사하여 진범을 찾아내게 된다는 이야기죠.
분량이 제법 되는 중편이지만 트릭이 별로인데다가 이야기도 그닥 매끄럽지 못하며 포와로가 사건을 해결하는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는 등의 단점이 커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일종의 "함정수사"를 통해서 범인을 잡아내는 포와로의 비겁한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딱 한가지, 범인의 심리상태를 "패배한 개"에 비유하여 전개하는 방식 하나만큼은 괜찮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두번째 작품 "플리머스 급행열차"는 급행열차 안에서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 대 부호의 딸의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트릭도 괜찮고 이야기도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전형적인 퍼즐 미스테리 단편이랄까요? 편집자 주석으로 달려있는 "독자에의 도전"도 괜찮았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세번째 작품 "승전 무도회 사건"은 가장 무도회에서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 젊은 귀족 크론쇼 경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가장 무도회의 의상이 가장 중요한 트릭인데 시각적으로 그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 포와로 특유의 "회색의 뇌세포"를 활용하는 추리 방식과 마지막의 연극적인 사건 해결 방식은 볼 만 합니다. 적당한 수준의 작품이었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네번째 작품 "마켓 베이징의 수수께끼"는 밀실에서 자살한 듯 발견된 시체를 놓고 벌어지는 굉장히 짤막한 작품입니다. 트릭이 굉장히 단순해서 독자의 맹점을 찌르는 맛은 있지만 작중 검시관이나 기타 관련자들까지 그 사실을 간과한다는 전개는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너무 쉽게 간 느낌이에요. 별점은 2점입니다.

다섯번째 작품 "르미서리어 가문의 상속"은 전통있는 르미서리어 가문의 전설, 즉 "장자는 항상 불행하게 죽어 상속받지 못한다"라는 전설이 실제로 현대에도 이어져서 르미서리어 가문의 장자에게 비극적인 죽음이 닥치고 현재 상속자의 큰아들에게게도 위험한 사고가 닥치는 것을 해결하는 내용. 범인의 행동이나 동기가 마지막의 큰 반전으로 이르는 내용이 참 멋집니다. 역시 거장다워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여섯번째 작품 "콘월의 수수께끼"는 자신이 독살당할 것이라고 의심하는 펜젤리 부인이 포와로에게 사건을 의뢰하며 귀가후 바로 독살당하게 되자 포와로가 자책하며 사건에 뛰어드는 내용입니다. 일종의 치정극 스타일로 범인을 옭아매는 포와로의 모습이 독특했던 작품입니다. 무난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일곱번째 작품 "클럽의 킹"은 이국의 왕자와 곧 결혼하게 되는 배우 세인트클레어 양에게 닥친 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브릿지"를 소재로 하고 있어서 중간 부분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른 작품들 만큼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습니다. 문화적 차이이기는 하지만... 별점은 2점입니다.

마지막 작품 "잠수함의 설계도"는 다른 앤솔로지에서 이미 읽었던 작품으로 수상의 저택에서 도난당한 잠수함 설계도를 찾아내기 위한 이야기인데 일종의 심리적 맹점을 노리고 쓴 듯 합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비슷하다고 할까요? 정통 퍼즐 미스테리이긴 하지만 약간 변화구인것 같네요. 재미있긴 했지만 조금, 어떻게 보면 시시할 수 있는 이야기라 아쉬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인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별점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정통 퍼즐 미스테리의 애호가들이라면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작품들임에는 분명합니다. 첫번째 작품 이외에는 전부 헤이스팅스가 등장하는 것도 좋았고 정통파의 명제-"가장 수상한 사람은 범인이 아니다!"-를 충실히 따르는 이야기 전개 고전적인 전개도 마음에 들었고요. 다만, 이 명제를 너무 충실히 따라서 오히려 약점이 되는 점이 조금 안타깝기는 했습니다만... 뭐 쓰여진 시기를 감안해야겠죠.

읽고나서 생각해 보니 이야기가 거의 전부 케이블 TV에서 방영된 "크리스티 추리 극장"에 나왔던 이야기들이라 저는 더욱 즐겁게 읽었습니다. 녹화해 놓은 테이프를 다시 한번 찾아 봐야겠네요.

2019/08/04

조용한 무더위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3점

조용한 무더위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와카타케 나나미의 '유능하지만 불운한' 여성 사립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입니다. 하무라 아키라가 백곰 탐정사 탐정이자 미스테리 전문 서점 '살인곰 서점'의 거의 유일한 아르바이트 생으로 2014년 7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벌어진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 여섯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는 마흔을 넘긴 나이를 제외하고는 독신에다가 하루하루 근근히 먹고산다는건 여전하네요. 나이 탓에 어깨 근육통 등 건강에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탐정으로서 꽤 유능합니다.

읽기 전에는 아무래도 일상계에 가까울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현재 모습을 보면 딱히 대단한 사건에 휘말릴걸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처럼 내용과 사건들이 상당히 묵직해서 의외였습니다. "파란 그늘"만 들치기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이며 그 외의 작품들에서는 강력 범죄들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작품별로 분류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조용한 무더위" : 살인 미수
  • "아타미 브라이튼 록" : 불법 약물 제조에 살인과 사체 은닉
  • "소에지마씨 가라사대" : 살인과 감금
  • "붉은 흉작" : 호적 도용과 살인 강도
  • "성야 플러스 1" : 살인 사건

이런 강력 범죄들이 왁자지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일어나고, 시니컬한 하무라 시점의 묘사가 더해져 독특한 재미를 안겨다 주는 이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도 잘 살아 있습니다. 진지한 주인공이 자신도 휩쓸린 대소동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는, 우디 알렌이 연상되는 블랙 코미디 스타일이지요. 역시나 시리즈의 매력인 평범한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악의'도 곳곳에서 드러나고요. 추리적으로도 잘 정리되어서 깔끔합니다.

무엇보다도 '미스테리 전문 서점'이라는 '살인곰 서점'이 주요 무대이며, '살인곰 서점'에서 매월 벌이는 '미스터리 투어'가 이야기의 핵심 소재 중 하나라는게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굉장히 반가왔습니다. 여러 추리 소설과 작가들이 중요하게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파란 그늘"에서 사건의 진상은 작 중 언급되는 "레베카"의 티 타임 비밀 레시피에 얽힌 진실이 드러난 덕분입니다. "아타미 브라이튼 록"에서 피해자가 영국 추리 소설을 읽었다는 수상한 증언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고요. "성야 플러스 1"은 개빈 라이얼의 "심야 플러스 1"이 핵심 소재 중 하나로 사용됩니다. 마지막에 부록처럼 붙어있는 살인곰 서점 점장 도야마의 입을 빌어 작 중 등장하는 작품들을 소개해주는 부분도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재미와 추리 모두 충분한 수준이며, 추리 애호가의 덕심(?)을 잘 건드리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추리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은 작품이에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란 그늘" 7월

단편집을 개시하는 첫 단편입니다. 더위에 대한 하무라의 푸념에서 대형 교통사고로, 그리고 '뱀녀'의 행방을 쫓다가 그녀가 택배 배달원과 손을 잡은 들치기범이라는게 밝혀진다는 전개가 빠르면서도 설득력 높게 진행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무라가 범인의 대략적인 인상 착의와 차림새, 범인이 이동한 방향이라는 몇 안되는 단서로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도 꽤 설득력 높고요. 평범한 인간의 '악의'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발 벗고 나서는 교통 사고 현장에서 죽어가는 피해자의 가방을 훔치는 범죄가 그러하지요. 모친의 애끓는 호소에도 가방을 버렸다고 하지만 정작 돌려달라고 한 레시피 노트를 연인에게 선물한 사실을 밝히지 않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 추리 모두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이어지는 작품들에 기대를 갖게 만드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런 책을 쓴 입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핵심인 쓰구미의 노트에 수록되었던 소설 "레베카"와 관련된 레시피가 진상을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책에는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는 레시피 속 비밀 재료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떤 맛일지 아주 궁금하네요. 서점 점장인 도야마가 기획한 7월 미스터리 페어의 주제가 "달콤한 미스터리 페어" 라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추리 소설에 관련된 레시피 책들도 소개되는데 그 중 "Len Deighton's Action Cookbook"은 꼭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작가 렌 테이턴의 레시피인데 레몽 머랭 파이 레시피가 실려 있는 등 디저트 부분이 충실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스터리 티 파티 계획도 발군이에요.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과자들을 죽 늘어놓고 티 파티를 열다니! 아, 이런 서점이 집 근처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한 무더위" 8월

전편에 이어 무더위가 이어집니다. 무더위가 일종의 흉기로 사용되기도 하고요. 자치회장은 어머니를 열사병에 걸리게 할 속셈이었거든요. 이 아이디어는 실제 뉴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설득력도 강합니다. 계절 묘사도 발군입니다.

하지만 범행을 위해 자치회장이 무리하게 거리를 비운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남의 집 에어컨 소리를 귀담아 들을 이유는 없죠. 또 거리를 찾아오는 방문객이 있을 수도 있는 등 어차피 통제는 불가능하니까요. 하무라의 탐정일이 수월하게 풀린다는 것도 좀 과했습니다. 진상을 깨닫게 되는, 자치회장의 볼펜은 순전히 우연이었다는 점도 감점 요소죠. 이런 부분은 조금 더 정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타미 브라이튼 록" 9월

하무라 아키라가 이동하는 모든 이야기가 그렇지만 이 작품은 특히나 이동이 잦아서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강하게 풍깁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악의가 아니라 명확한 목적이 있는 범죄 모의라는 점, 그리고 과거의 수수께끼를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현재 시점에 밝혀낸다는 고전적, 왕도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조금 다른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를 깔끔하게 전개하는 솜씨는 대단합니다. "브라이튼 록"이라는 소설을 시타라 소가 읽은 시점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 이를 본인이 발로 뛰어 얻어낸 정보와 엮어 진상을 도출하는 하무라의 활약도 눈부실 정도에요. UFO에 미친 부동산업자, 바퀴벌레를 키우는 전 상사맨같은 독특한 등장인물들도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묘사와 맞물려 재미를 더해줍니다.

하지만 결말이 '그래서 어쨌는데?' 수준으로 마무리 되어서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수십년 전 사건으로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하무라가 자신이 애써 진상을 밝힐 필요도 없었다는 점에서는 이게 최선이었겠지만요. 그 외 추리적으로도 '자백'에 의존할 뿐이라 - 다른건 몰라도 시타로 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백이 아니라면 알아낼 도리가 없었으니 - 조금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소에지마씨 가라사대" 10월

하무라가 서점에서 전화와 인터넷만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니 현대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작 중 미스터리 페어의 주제가 '학자 탐정' 으로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재미있어요. 이런저런 지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은 동일하니까요. 추리 애호가를 위한 정보도 한 가득입니다. '학자 미스터리 페어'라는 페어의 주제는 심심하지만 그만큼 소개되는 작품들이 친숙해서 마음에 들더군요. '싱킹 머신' 반 두젠 교수를 비롯한 다양한 학자, 박사들이 등장하거든요. 또 피해자가 리모델링 업자라는 걸 듣고 '딕 프랜시스의 주인공이 이런 일을 했었는데' 라고 생각하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지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너무 뻔해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은퇴한 변호사가 리모델링 업자에게 판 저택이 동기일거라는게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하무라의 추리대로 저택에 사체가 묻혀 있었다는 결말도 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변호사 조카가 호시노 구루미를 살해한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설퍼요. 운 좋게 용의자가 소에지마씨로 특정되었을 뿐, 용의자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궁지에 몰린 소에지마씨가 무라키를 감금하여 인질극을 벌인다는 설정도 지나쳤습니다. 이런 류의 소동극이 작가의 장기이기는 한데, 자극이 자니치다 보면 무덤덤해지는 법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붉은 흉작" 11월

하드보일드 팬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드보일드 작가가 의뢰인인데다가 주요 소재가 "붉은 수확"과 비슷한 사건을 일으킨 다카노바바의 저주받은 땅이니까요. 심지어 고가 간타가 오기 노보루를 살해한 흉기도 '얼음 송곳'입니다!
삼천만엔이라는 거금을 가지고 있지만 드러내 쓰지도 못하고 홀로 약간의 사치만 부리면서, 죄책감에 몸부림치다가 죽어간 불쌍한 남자가 주인공이며, 그의 평생의 은인은 광인이 되어 저주받은 땅에서 살아간다는 설정도 하드보일드스러웠어요. 냉정한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작가 선생의 한 마디는 화룡 정점이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애매합니다. 가짜 츠노다 지로가 자주 다니던 지압원에서 의료 보험증 사본을 입수하여 '고가 간타'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 장소를 찾아가고, 그 곳에서 고가 간타가 저지른 살인 사건과 참고인이었던 츠다 지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일사천리이기 때문입니다. 오기 노보루가 지녔지만 사라진 삼천만엔을 츠다 지로가 손에 넣었을 거라는 추리는 딱히 중요한 요소는 아니고요.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드보일드라는 의미 외의 가치는 조금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성야 플러스 1"

개빈 라이얼의 "심야 플러스 1"에서 따온 제목이죠. "심야 플러스 1"은 서스펜스 가득한 모험물인데 이 이야기 속 하무라에게 닥친 시련도 "심야 플러스 1" 못지 않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부탁을 들어주고 임무를 완수하는 하무라 아키라의 모습은 성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에요.
그런데 조금 의아했던건 일본인들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굉장히 두려워 한다는데,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하무라에게 폐를 끼치는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무라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작 중 하무라가 부탁받은 심부름을 수행하기 위한 여정의 정도는 지나친 편입니다. 중간의 여정들은 딱히 재미있지도 않고요. 솔직히 중간 과정들은 불필요했습니다.
소노다 씨가 "심야 플러스 1"의 가짜 사인본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책 도둑들이 사인본을 노린다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려워요. 하무라의 말대로 옥션에서 2백불 정도면 살 수 있는데 노상강도짓을 할 이유는 없지요.

추리적으로도 별 내용은 없습니다. 백골 사체는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어차피 본 편 정보로 추리가 가능한 사건은 아닙니다. 고이시바라 미야코 할머니와 사위의 칼부림 역시 억지스러운 요구에 불과할 뿐이고요. 오히려 사위가 딸을 살해한게 아닌가? 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더라면 말이 되었을텐데 말이죠. 책을 날치기한 2인조의 경우는 앞서 말씀드렸듯 사건 자체의 현실성이 약해서 추리의 여지도 부족합니다.

그래도 하무라의 불운을 잘 드러내고 있고, 중간중간 벌어지는 사건들이 많아서 왁자지껄한 블랙 코미디로 본다면 괜찮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고이시바라 미야코와 사위 사이에서 벌어진 칼부림입니다. 정말 급작스럽게 말려들었는데 미야코 할머니가 하무라의 가방을 잡고 놔주지 않는 등의 황당한 상황이 이어지거든요. 이를 슈톨렌이 해결한다는 결말도 재미있었고요. 그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다 극복하고 모두가 원하는 상황으로 매조지하는 결말도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행복해지는게 크리스마스의 핵심요소이긴 하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지만 재미 만큼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