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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5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이충렬 : 별점 3.5점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8점
이충렬 지음/김영사

구한말 (1800년대 후반) ~6.25 직후 (1950년대)까지 시기에 그려진 한국 근현대 관련 그림을 소개하면서 그림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식으로 구성된 근현대 미시사 서적.
개인적으로는 풍경화로 설명해 주는 당시 시대상, 문물 이야기보다는 인물화 이야기 쪽이 더 흥미롭더군요. 예를 들자면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민씨가의 규수" 그림을 통해 그림의 주인공 민용아는 덕혜 옹주가 일본으로 떠날 때까지 함께 공부한 옹주의 소꿉친구라는 것을 알려주고 덕혜 옹주의 학창 시절과 기구한 말년을 살짝 소개해주는 식입니다.

모두 27개의 주제 중 특기할 만한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누가 마지막 황후의 눈물을 닦아줄 것인가?>
그림 : 엘리자베스 키스의 "궁중 예복을 입은 공주"
이 그림의 주인공은 유억겸 (유길준의 아들)의 부인인 윤희섭일 것이라는 추정. 황후의 동생이기에 영문 제목에 Princess라고 명기하였을 것이라고 하는데 일리가 있어 보이네요.
그리고 윤희섭의 언니인 순정효황후와 그녀의 아버지인 조선 제일의 빚쟁이 '채무왕' 윤택영의 파란만장한 일생사, 순정효황후의 마지막 가는 길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데 에피소드들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재미있고 새로왔습니다. 순정효황후가 한국전쟁 때 피난을 가지 못해 인민군에게 둘러 싸였지만 '내가 조선의 국모' 라고 호통을 쳤다는 것 등은 처음 알게된 내용이었어요. (인민군 입장에서는 처단대상 1순위이기에 신뢰성은 떨어지지만...)

<조선의 도공이여, 고려청자의 비색을 재현하라>
그림 : 폴 자쿨레의 "도공"
내용은 식민지 시기 일본에서 청자가 유행한 뒤 조선시대 명맥이 끊겼던 고려청자를 재현하기 위해 홀로 노력한 해강 유근형의 이야기입니다. 장인의 집념이 느껴지는 이야기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던걸 변동림과 천재 시인 이상의 뜨거운 사랑>
그림 :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
구본웅이 그린 아주 유명한 이상의 초상화와 함께 구본웅의 배다른 이모 변동림과 이상의 뜨거운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상 사후 변동림이 김환기와 다시 사랑에 빠져 개명까지 불사하며 (김향안으로 바꿨다고 하네요) 결혼에 골인했다는 후일담을 그리고 있습니다. 변동림에게 이런 사연이 있는지 처음 알았네요. 지금 드라마로 만들어도 그럴듯한 이야기가 될 것 같은, 정말로 뜨거운 사랑 이야기 아닐까요?

<근대의 불치병 결핵과 크리스마스실 운동>
그림 : 운보 김기창과 엘리자베스 키스의 크리스마스 실 도안들
크리스마스 실의 도안과 함께 우리나라 결핵 박멸을 위한 셔우드 홀의 노력이 펼쳐집니다. 무엇보다도 1940년 도안이 일본의 말도 안되는 이유로 검열에 걸려 수정했다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외에도 6.25 동란의 참상과 시대상 소개에 실린 인도교가 끊긴 뒤 피난을 가지 못한 시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역을 하였는데 그들을 수복 이후 부역 정도에 따라 처단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일화 (피난가지 말라는 정부의 말을 듣지 않은 시민은 살아남고, 정부의 말을 들은 시민은 처단한다?) 라던가 벽초 홍명희, 무희 최승희의 일생과 월북 이후 후일담을 관련된 그림과 함께 알려주는 부분 등이 좋았습니다. 그림을 그린 화가들에 대한 깨알같은 소개도 마음에 들었고요.

결론내리자면 각종 사료들 (신문기사 등)도 디테일하게 실려 있어서 자료적 가치도 아주 높고 도판의 질도 우수하며 내용도 재미있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참고로, 4점에서 0.5점 감점한 이유는 16,000원이라는 가격 탓입니다. 그림 때문에라도 풀컬러 인쇄가 필요했을테고 덕분에 가격이 비싸진건 당연하지만 너무 비싸긴 비싸네요. 요즈음은 정말 책 한권 선뜻 사기도 겁나는 세상입니다. 아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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