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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31

2014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2013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11차, 열한 번째 블로그 결산 보고입니다.

2014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호러 장르문학 48 (58)권, 기타 장르문학 11 (3)권, 역사서 19 (21)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5 (0)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10 (4)권, 기타 도서 17 (13)권으로 모두 110 (99)권입니다(괄호는 작년).

결산의 기준이 될 만한 10권 이상 읽은 분야는 추리/호러, 기타 장르문학, 역사서,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기타 도서입니다. 작년 대비 고루고루 읽은 편이네요.

아울러 올해는 영화, 만화도 두루두루 보고 읽고 리뷰를 남겼기에 결산에 함께 포함시킵니다.

참고로, 하기 베스트·워스트는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 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4년 베스트 추리소설 :

"몰타의 매"

단평 : 단점은 사소할 뿐, 이 바닥의 영원한 고전, 원전임.

2014년 워스트 추리소설 :

"하숙인"

단평 :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별점 2점 이하의 작품도 제법 많지만 별점 1점짜리 책은 두 권 존재합니다. 이 작품과 "탐정 취미"지요. 그러나 "탐정 취미"는 아마추어들의 습작 모음 형식이 강하므로 정당하게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때문에 이 작품을 단독 워스트로 선정합니다.

2014년 베스트 기타 장르문학 :

"민들레 소녀"

단평 : SF에서 손꼽을 만한 러브 스토리.

2014년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

단평 :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2)

2014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유홍준의 국보순례"

단평 : 이런 책을 소장하지 않으면 무슨 책을 소장하랴.

2014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올해는 별점 1점대의 책이 없어서 선정하지 않습니다.

2014년 베스트 Food/구루메 관련 도서 :

"식탁 위의 한국사"

단평 : 재미는 물론 자료적 가치까지 최상급.

2014년 워스트 Food/구루메 관련 도서 :

역사와 마찬가지 이유로 워스트는 선정하지 않습니다.

2014년 베스트 기타 도서 :

"바다 한가운데서"

단평 : 이게 바로 논픽션이다!

2014년 워스트 기타 도서 :

"맨발의 청춘"

단평 : 오래되기만 했을 뿐.

2014년 베스트 Movie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단평 : 아, 이런 영화를 너무 오랫동안 안 봤었나 보다.

2014년 워스트 Movie :

"로보캅"

단평 : 이럴거라면 리부트하지 않는 게 좋았다.

2014년 베스트 추리/호러 만화 :

"인터뷰"

단평 : 한국 웹툰의 힘.

2014년 워스트 추리/호러 만화 :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3 게임관 살인사건"

단평 : 제발 좀 끝내줘.

2014년 베스트 기타 만화 :

"군화와 전선 1"

단평 : 재미와 함께 지식욕까지 충족!

2014년 워스트 기타 만화 :

"라이징 임팩트 1~17"

단평 : 전형적인 왕도 배틀물인데 유치했다.

결산평 :

전체적으로 열심히 읽고 리뷰를 남긴 한 해였다 자평합니다. 한 권으로 치기 어려운 단편 e-book이 포함되어 약간 거품이 있지만 총 권수가 작년 대비 10% 증가하기도 했고, 개인적 목표인 1년에 100권 읽기는 초과 달성해서 뿌듯하네요. 다만 추리 소설을 작년 대비 10권 이상 덜 읽어서 전체 리뷰 중 비중이 반 이하로 줄어들었는데, 이 블로그의 정체성에 약간 문제가 생겼으려나요? 그래도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이글루스도 줌닷컴에 인수된 후 크게 문제는 없어 보여 다행이고요. 검색 기능의 강화 및 백업 기능만 도입되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여튼, 제 미미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여러분들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성취하시는 한 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제 블로그를 들러주실 정도라면 남들 관심 밖의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 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되실 거예요. 사랑합니다~!

맥주별장의 모험 - 니시자와 야스히코 / 이연승 : 별점 1.5점

맥주별장의 모험 - 4점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행 중 불의의 사고로 헤매게 된 닷쿠 일행 4명은 발견한 별장에 불법으로 침입하고 말았다. 더위와 피로로 넋이 나간 탓이었다. 별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다만 1층에는 싱글 베드 침대 한 개 뿐이고, 2층 붙박이장 속 숨겨진 냉장고에는 다량의 맥주가 보관되어 있었다. 일행은 피로와 배고픔이 극에 달했기에 긴급피난이라는 핑계로 별장의 맥주를 마시며, 별장의 특이한 상황에 대해 각자 추리한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닷쿠 & 타카치" 시리즈 장편입니다. 시리즈는 오하시 카오루의 만화로 먼저 접했었지요. 전작이 있는데 깜빡하고 두 번째 작품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캐릭터 관련 소개가 약간 부실하지만 읽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제가 읽었던 만화책에 수록된 단편 원작인가 싶었는데 아니더군요. 

보안 선배, 타쿠, 타카치, 우사코 4명이 특이한 상황에 대한 추리를 내놓는다는 설정은 추리 동호인들의 수수께끼 풀이 수다를 소설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사실 다양한 인물들이 자신의 추리를 피력한다는 설정은 "독 초콜릿 사건"이나 "바보의 엔드크레디트", 얼마 전 읽은 "탐정 영화" 등 많은 작품에서 선보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각자가 정리된 추리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수다 레벨의 추리를 펼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도 술자리 수다라서 터무니없거나 허점 투성이인 추리가 속출합니다. 때문에 추리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작가도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좀 쉽게 썼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엉터리 추리를 마구 끼워넣어 분량을 늘릴 수 있으니까요.

물론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수다를 펼치더라도, 그럴듯한 진상만 잘 뽑아낸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다른 유사한 작품들도 말도 안 되는 추리가 등장했었으니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진상도 터무니없고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납치한 뒤 그가 혼자 맥주를 먹으며 잠들기를 기다린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제가 납치된 사람이었다면 일단 나갈 생각부터 했을 거에요. 납치당한 판국에 맥주는 무슨 맥주.
게다가 범인들이 범행을 일으킨 이유는 결국 명확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장치를 꾸밀 노력과 돈이면 보다 효율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한 것일까요? 모종의 범행을 뒤집어씌우려고? 하이고... 차라리 사람을 고용해서 묻어버리는 게 낫죠. 진상보다는 영화 세트장일 것이라는 초반의 추리가 더 현실적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캐릭터 설정이 진부하기 그지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라이트 노벨이나 만화를 보는 듯 천편일률적인 무채색 캐릭터들이었어요. 술 좋아하고 허술하지만 사람도 많이 따르는 리더 보안 선배, 키 크고 차갑지만 머리 회전이 빠른 츤데레 미녀 타카치, 키 작고 딱히 남자답지 않지만 의외로 꼼꼼하고 추리력 좋은 타쿠, 이런 파티 구성에 빠질 수 없는 마스코트 캐릭터 우사코로 구성된 4인 파티인데 정말 많이 본 설정이죠.

그래도 아주 건질 게 없지는 않습니다. 산사태가 났다는 도로 표지판이 조작이었을 것이다, 퍼스트·세컨드(별장)의 위치는 어느 쪽 길을 향했어도 무방하게끔 배치된 것이다 등 추리가 번뜩이는 부분이 있기는 했고, 두 번째 별장과 같은 의외의 포인트는 읽는 재미를 주기는 했습니다.
수다라는 분위기도 떠들썩하니 나쁘지는 않았어요. 술자리 마다하지 않고 술만 있다면 끝까지 달렸던 제 대학 생활 때가 떠오르기도 했고 말이죠.

하지만 내용에서 추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추리 소설에서, 그 추리가 억지와 비약으로 점철되었고 진상 자체가 전혀 설득력이 없는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1점을 주려 했지만 약간의 건질 만한 포인트에 0.5점을 더합니다.
만화책 쪽이 7만 배는 더 좋았는데, 차라리 만화 번역본이 출간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2014/12/30

요리코를 위해 - 노리즈키 린타로 / 이기웅 : 별점 3점

요리코를 위해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포레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족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딸 요리코가 교살당했다. 대학 교수인 아버지 니시무라는 범인을 직접 찾아 응징하기 위해 스스로 수사에 나섰다. 니시무라는 요리코의 담임 히이라기를 범인으로 지목하여 살해했고, 모든 것을 기록한 수기를 유서 대신 남긴 채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니시무라는 죽지 않았고, 노리즈키 린타로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의뢰가 복잡한 의도와 함께 전달되었다. 노리즈키는 수기를 읽고 탐탁지 않은 점을 밝혀내기 위해 수사에 뛰어드는데...

노리즈키 린타로의 초기 장편입니다. 작가의 초기 대표작이라고 하네요. 범죄 계획, 과정이 쓰여진 전체 분량의 1/5 정도 되는 수기에서 시작해서, 노리즈키 린타로의 수사와 추리로 진상이 밝혀지는 구성입니다. 초반의 수기는 한 편의 추리 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고, 그 자체가 완벽한 범행 계획이기도 하여 도서 추리물로 보였습니다. 또 이 수기 부분은 굉장히 깊이 몰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 역시 딸 아이의 아빠로 니시무라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수기는 완전 범죄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충격적인 진상은 따로 있다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이 반전의 충격과 묘미는 상당한 수준이에요. 수기 - 추리로 이어지는 구성의 승리이기도 하죠. 특히 요리코 아이 아버지의 정체와 그에 따른 진상, 반전은 발표된 지 20여 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충분히 충격적입니다. 1990년이라는 발표 시점에 접했다면 깜짝 놀랐을 수도 있겠어요. 아이 아버지의 정체는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일종의 도화선, 트리거 역할만 했지만요.

그러나 신본격 작가의 작품임에도 정통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다소 어렵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수사는 전형적인 관계자 탐문 인터뷰에 지나지 않고, 이 과정에서 모든 단서가 밝혀지기 때문에 딱히 명탐정이 필요한 내용은 아닌 탓입니다. 범행이 우발적인 연쇄 성폭행범의 소행이 아니라면, 유리코가 임신한 아이와 관련된게 분명해서 용의자가 좁혀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어차피 구니코와 같은 최측근은 이미 진상을 눈치채고 있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이런 내용이었다면 차라리 구니코 (아니면 다카다군)이 탐정역을 수행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명탐정이 등장한다는건 아무래도 이야기를 조금 비현실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등장하는 이유도 사이메이 학원 측에서 이 사건을 덮기 위해서 명탐정이 수사한다는 소문을 퍼뜨리려 한다! 는 것인데 납득하기도 힘들고요. 아무래도 작가가 시리즈로 끌어가고 싶은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도 등장했더라면 뭔가 명탐정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이 작품에서 노리즈키 린타로의 역량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특히 니시무라의 자살을 방조한 것은 용서하기 어려운 행동일 뿐 아니라, 이런 행동을 취한 이유가 설명되지 못합니다. 경찰 취조가 이어졌더라도 니시무라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바뀌는건 없고, 니시무라는 이후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자살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또 범인이 적은 수기에서 발견된 사소한 오류, 고양이가 이미 죽어 있었다는 것 정도는 증거로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빈약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수기의 오류는 얼마든지 창작자가 고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이고. 고양이 이야기는 너무나 불필요해서 외려 수기에 적은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러한 점에 더하여 극적 반전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걸 고려하면,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심리 스릴러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또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설정이 존재하는 것도 단점입니다. 경찰 수사가 허술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요리코가 다니던 명문 여학교 사이메이와 사이메이 이사장의 오빠인 중의원 의원 측에서 압력을 행사했다는데 정도가 지나쳐요. 최소한 히이라기라는 쓰레기 교사의 정체는 매스컴을 통해 충분히 밝혀졌을 터이기에 어차피 사이메이 학원의 평판은 바닥에 떨어졌을게 뻔합니다. 이는 억지로 노리즈키를 엮어 넣기 위한 장치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네요.

사건의 핵심 동기라 할 수 있는 니시무라 증오의 원인, 즉 니시무라가 요리코를 미워했다는 것도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일 - 어린 딸아이의 돌발 행동으로 임신한 아내가 차에 치어 불구가 되고 아이마저 잃었다 - 이 벌어졌더라도 무사히 한 명의 아이라도 살아난 것을 감사했을 겁니다. 아무리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억지에요. 니시무라와 우미에의 오래된 관계를 길게 설명하며 어떻게든 설득하려 시도하고 있는걸 보면 작가도 억지라는걸 알고는 있었던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요리코의 작전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군요. 히이라기와 관계를 가진 뒤 임신하지 못했다면 어쩔 셈이었을지 잘 모르겠어요.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아버지가 술에 취할 때를 또다시 노렸을까요? 참으로 복잡한 인생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미에가 이 모든 것을 조종했을 것이다라는 에필로그는 불필요했습니다. 이 에필로그 없이 그냥 노리즈키가 병실 문을 닫고 나가는 것으로 끝나는 게 더 깔끔했을 겁니다.

그래도 별점은 3점입니다. 불만과 단점을 잔뜩 써 놓기는 했지만, 읽는 재미는 충분하며 여러모로 생각해볼 만한 거리도 많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역량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독자가 아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평이 갈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나저나, 비슷한 내용, 설정의 작품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데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2014/12/29

대한민국 치킨전 - 정은정 : 별점 2.5점

대한민국 치킨전 - 6점
정은정 지음/따비

한국 치킨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산업적인 부분까지 다루는 치킨 관련 식문화사 서적입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1부 치킨은 어떻게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되었나
  • 2부 치킨집 사장으로 산다는 것은
  • 3부 치킨은 무엇으로 사는가
  • 4부 대한민국 치킨약전略傳 1
  • 5부 대한민국 치킨약전略傳 2

개인적으로 음식 관련 서적이나 미시사 서적을 좋아해서 읽게 되었는데,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르더군요. 치킨에 대한 미시사 서적이라기 보다는, 치킨을 소재로 한 문화 비평서에 가까운 탓입니다.

물론 기대했던 미시사적인 접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1부에서 치킨이 대한민국의 소울푸드가 된 과정 및 현재 치킨의 의미를 자세히 짚어주고 있으니까요. 개신교의 영향, 그리고 미국 문화의 수입에 따라 축제 음식이 자연스럽게 일상식으로 전환되었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치킨의 계보 역시 자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몰랐는데, 치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후라이드 치킨도 시대별로 많은 변화를 겪었더라고요.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1세대 후라이드 치킨은 엠보 치킨. 보드람, 치킨뱅이, 둘둘치킨, 림스치킨 등에서 파는 것으로, 작은 닭을 '한방 염지'나 '야채 염지'라고 불리는 염지액에 담근 뒤 파우더를 얇게 입혀 압력 튀김기에서 튀겨낸 방식입니다. 물반죽 없는 건식 치킨이죠. 최근의 또봉이 통닭 역시 이 계열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2세대 후라이드는 민무늬 치킨으로, 물반죽 단계에서 바로 튀김기에 들어가는 방식이며, 시장 통닭이 대표적이라고 하네요. 양념을 묻히기 쉬운 것이 장점입니다.
3세대는 크리스피 치킨으로, 튀김가루를 묻히고 코팅 효과를 주기 위해 베터믹스(물반죽코팅)에 담갔다가 다시 튀김가루를 묻혀 튀기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소개되는 1부 외에는 사회·문화 비평서에 가깝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현대사와 자본가-노동자의 관계를 치킨 시장에 빗대어 풀어낸 내용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프랜차이즈 치킨 사업과 양계 산업에 대한 서술입니다.
프랜차이즈 창업에 대한 부분은 "프랜차이즈" 사업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거의 폭로 수준으로 적혀 있어서,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폭로나 비평 외에도 치킨 사업 자체를 매우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쪽에 관심 있는 창업자나 개발자 분들께는 꼭 한 번 읽어보셔야 할 정도로요. 치킨이 정말 돈이 안 남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예전 통큰치킨 사태 때 공개되었던 원가 구조는 지금도 유효한 듯합니다. 한 마리 팔아봤자 2,000원 정도 남는 수준이라니, 하루 50마리를 팔아도 임대료 내기 빠듯해 보이네요.

또한 "하림"이라는 대기업의 지배하에 있는 양계 산업의 현실도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책에 따르면 거의 착취에 가까운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기업형으로 닭을 길러야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가맹점에 공급하는 염지닭의 공급가를 4,000~5,000원 선으로 유지할 수 있고, 지금 우리가 먹는 치킨값(만원대 후반)이 형성될 수 있다는건 씁쓸했습니다.
"맛의 달인"에서 유우코 할머니가 치매 증세를 보이다가 맛있는 닭요리를 먹고 정신을 차리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거기서 공장제 닭의 문제를 제기하며 방목해서 키운 닭이 최고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그런 닭은 맛이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한 마리에 4~5만 원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겠죠. 어떤 방향이 옳은지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이렇듯 꽤 재미있고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많기는 했지만,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는 점, 그리고 책의 구성이 다소 산만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습니다. 치킨이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치킨 계보로 넘어가고, 이어서 프랜차이즈 사업 이야기, 다시 마케팅 관점에서의 CF와 스포츠 연계 이야기, 마지막에는 양계 산업 이야기로 끝나버리니 역사면 역사, 이론이면 이론, 문제점은 문제점대로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차라리 프랜차이즈와 양계 산업의 비양심적인 현실을 고발하는 르포르타쥬 형태였다면 더 높은 점수를 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단지 현황 지적에 그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여러모로 예전에 보았던 MBC의 "닭큐멘터리 치킨"이 떠올랐는데, 방송을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치킨집 창업에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4/12/26

더 이퀄라이저 (2014) - 안톤 후쿠아 : 별점 3점

홈마트 직원 로버트 맥콜은 새벽에 카페에서 책을 읽곤 했다. 덕분에 어린 콜걸 테리와 친해졌는데, 어느 날 테리는 포주인 러시아 마피아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 입원하게 되었다. 테리를 도와주기 위해 맥콜은 마피아를 직접 찾아갔다. 그러나 면전에서 무시당하자 실력 행사에 나서는데...

"테이큰" 대박 이후 하나의 유행이 된 중·노년 액션 무비. 이번에는 딸 같은 어린 소녀를 위해 왕년에 잘나갔던 특수요원이 러시아 마피아를 결딴낸다는 내용입니다. "테이큰"의 아류작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의외로 80년대 인기 TV 시리즈가 원작이라고 하네요. 원작을 보지 않아서 얼마나 원작 느낌을 따왔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여튼, 좋았던 점이라면 제일 먼저 덴젤 워싱턴입니다. 간만에 아주 멋지고 묵직한 캐릭터를 맡아 좋은 연기를 선사해주네요. 저의 페이보릿 배우 중 한 명인데, 과거가 있고 독서가 취미인, 편집증이 있어 보이는 캐릭터를 특유의 매력으로 잘 살려줍니다. 소녀를 위해 싸움에 나서는 상황의 설득력도 충분히 보여주고요.

안톤 후쿠아의 감각적인 액션 연출도 좋습니다. 최근 본 영화들의 심심한 액션과 비교하면 안구 정화 수준이었어요. 처음에 슬라비 일당을 털어버리며 맥콜이 자신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 중에서도 손꼽을 만 합니다. 맥콜이 상황을 파악하는 시점의 뷰, 음악과 함께 적절한 슬로우 모션, 촬영과 대사가 결합되어 아주 그럴듯하게 표현되거든요. 맥콜의 집을 테디 일당이 덮쳤을 때의 교차 편집도 인상적이었고요.

아울러 마지막 결투씬이 맥콜의 근무지 홈마트에서 벌어진다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인력, 장비 모두 부족하지만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잘 살려 마트 내부 여러 시설 및 다양한 판매 상품을 이용해서 쳐부신다는 것이 괜찮았습니다. 약간 "맥가이버" 느낌도 나고 말이죠.

그러나 거의 끝판왕에 가깝던 마피아 행동대장 테디가 초중반까지 보여주었던 포스에 비하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결말에서 시시하게 정리되는 등, 파워 밸런스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긴 합니다. 중반부까지는 맥콜과 독대를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는 등 1:1로 충분히 주인공 맥콜과 맞서 싸울 만한 캐릭터로 묘사되는데, 맥콜의 강대함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에 반해 테디는 인질을 잡는 식의 찌질함으로 일관하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뭐 하나 해보는 거 없이 박살나는 탓입니다.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맷집의 덩치를 제외하고는 마피아 일당 모두가 맥콜 상대로는 수수깡과 다를 게 없어서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아쉬웠던 것은 테리의 친구 맨디였습니다. 유일하게 테리를 위해 울어주고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했다가 살해당하는 기구한 캐릭터인데, 맥콜을 비롯한 그 누구도 그녀를 위해 신경 써주지 않는다니! 테리 캐릭터는 클로이 모레츠라는 빅네임 배우가 맡은 것에 비하면 그다지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비중도 적기에, 차라리 맨디를 잘 살렸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맥콜 때문에 죽은 유일한 선인이기도 한데 참 아깝게 소비된 느낌이에요.

그래도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액션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액션 화끈하고 권선징악 확실하고 결말도 해피엔딩인, 완전 제 취향 영화로 저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덴젤 워싱턴의 팬이시거나 "테이큰"류의 중·노년 액션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최근 부진했던 덴젤의 작품치고는 다행히도 흥행 성적도 괜찮은 편인데, 앞으로의 시리즈도 기대해 봅니다.

2014/12/24

오무라이스 잼잼 5 - 조경규 : 별점 2.5점

4권 리뷰를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출간되어 구입한 따끈따끈한 신간! 4권 구입 당시에는 혹시나 가격 할인이 있을까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구입했는데, 5권은 도서정가제 덕에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져 나오자마자 구입했습니다. 4권에서의 좋았던 기분이 계속 유지된 탓도 크고요.

음식과 요리만큼은 국내 최고가 아닐까 싶은 빼어난 작화와 더불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미와 매력도 여전합니다. "등교길의 소시지빵"처럼 별다른 내용없이 처음부터 그냥 소시지빵 이야기만 나오는 단순 돌직구 이야기도 있지만, 제가 사랑하는 의식의 흐름이 톡톡튀는 매력적인 이야기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제비 4개요~"가 대표적입니다. 아이들과 디즈니 만화를 보다가 모든 캐릭터들의 손가락이 4개라는 것을 알게 되는게 시작입니다. 살펴보니, 다른 캐릭터들(톰과 제리, 둘리 등등등)도 손가락이 4개였고요. 이유는 손가락 하나라도 줄이면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금전적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나도 음식 그림을 좀 쉽게 그리고 싶다로 이어지고, 그래서 이번 에피소드는 대충 빚어 그리면 되는 수제비다! 라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심지어 이 에피소드는 뒤에 이어지는 서비스 페이지도 물수제비에 대해 다루는 식으로, 전체적으로 뜬금없음이 가득해서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동춘 서커스를 찾아가 저글링 박의 공연을 본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요리사나 식당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요리 중 하나라는 북경오리를 소개하며 전개하는 "저글링 박 vs 오리구이", 그리고 "맥스와 나 그리고 캔스파게티"도 기억에 남습니다. "매드맥스 2"는 저도 인상적으로 감상했던 작품인데, 작가가 이야기한 개사료 통조림 먹는 장면은 기억에 별로 남아있지 않네요. 하지만 중학생 때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 작중에서처럼 남자의 로망으로 생각해 왔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로망이라면 비밀기지로 통하는 책꽂이가 있는 서재입니다. 언젠가 이사할 때는 아쉬우나마 비밀기지가 아니라 비밀 공간(?)이라도 확보해 놓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식빵은 오토 프레데릭 로웨더 씨가 만들었다" 역시 걸작 에피소드입니다. E.T를 딸아이와 감상하다가 E.T의 생김새에 대해 논하면서 김창완의 노래로 이어지고, 노래에서 식빵으로, 그리고 식빵을 썰어서 포장해서 판매하는 기계를 만든 오토 프레데릭 로웨더의 일생 이야기로 넘어가다니, 뜬금없기 그지없지만 무척이나 자연스러울 뿐더러, 오토 씨의 이야기와 E.T를 보던 저자의 딸 은영이의 감상이 겹쳐지는 엔딩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명장면이었어요.

그 외에도 다양한 패러디들도 역시나 반가웠습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안 요리사 셰프 보얄디가 미국에 이민 올 때의 컷은 대부 2에서의 한 장면이죠. (아래 이미지!)

커피 우유 이야기에서의 엄지와 오혜성 역시 아주 적절한 투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점도 여전합니다. 만원이 넘는 돈을 들여 구입했지만, 무료로 볼 수 있는 웹툰과 비교할 만한 가치는 여전히 부족하거든요. 물론 책으로 만들면서 편집이 조금 바뀐 부분, 책만의 서비스로 실린 만화와 기사들, 몇몇 레시피들은 꽤 인상적이기는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뚜기 스프를 만드는 사람들과의 인터뷰인 업체 탐방 스프 연구원의 하루, 앞서 말씀드린 물수제비의 모든 것을 다룬 이야기 등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요. 그리고 가족 만화가 조금이나마 재미있어졌다는 것, 아이들 사진이 조금 덜 실린 것도 이전 권에 비하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맛집 소개나 저자의 가족 관련 만화가 대부분이기에, 이런 점에서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죠. 덧붙이자면 저는 초판 특전으로 디저트 달력을 받기는 했으나, 딱히 필요하거나 관심이 가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책 값을 깎아주는 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아울러 단점은 아닌데, 인터넷에서 최근에 감상했던 작품이 다수 실려 있었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목차로 따지면 중간 정도에 위치한 "맥스와 나 그리고 캔스파게티"부터 뒤의 이야기는 모두 기억에 생생해서,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었어요. 찾아보니 거의 올해 1월부터의 연재분이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4권처럼 나오고 한참 있다가 구입할 걸...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화는 물론 내용과 재미, 소개되는 요리의 가치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국내 요리, 음식 만화의 대표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웹툰으로 언제든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조금 애매합니다. 특히나 아직 기억이 휘발되지 않은 경우 더더욱 그러하지요. 저는 구입에 큰 후회가 없고, 이런 구루메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권해드고는 있습니다만 이만한 금액을 지불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본인의 선택일걸로 생각됩니다.

2014/12/23

캄프토사우루스 미식 기행 - 두걸 딕슨 / 장성주 : 별점3점

캄프토사우루스 미식 기행 - 6점
두걸 딕슨 지음, 장성주 옮김/함께읽는책

어렸을 때 읽었던 학습만화가 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동네 꼬마 친구들이 로봇과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공룡이 살고 있던 쥐라기, 백악기로 모험을 떠나는 내용이었죠. 너무 어렸을 때지만 공룡 멸망은 화산 폭발 때문이고 위기의 순간에 겨우 탈출한다는 결말로 기억됩니다.

이 책은 바로 이 학습 만화의 성인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룡이 살고 있는 시대에는 어디에 머무르는 것이 좋은지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어떤 재료를 얻을 수 있는지,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어떤 식물을 먹을 수 있는지와 어떻게 먹어야 하며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어떤 곤충과 동물들이 있는지, 그리고 이 시기를 주제로 한 책이기에 당연하겠지만 어떤 공룡들이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화석과 사료 기반으로 아주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거든요. 게다가 이런 정보를 현실적인 관점에서 아주 진지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학습만화는 고생대, 중생대를 아우르고 있었지만 이 책은 방대한 시기와 장소를 개괄적으로 다루지는 않으며, 특정 시기(쥐라기 후기)의 특정 지역(모리슨 평야)만을 다룹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상세하고 진지하게 서술하고요. 저자가 이 당시, 이 지역에 대한 전문가로 생각됩니다.

책에 수록된 내용의 예를 들자면, 현재의 연구 결과를 통해 이 당시 모리슨 평야 어디에서는 석회를 얻을 수 있고, 어디에서는 모르타르의 원료를 구할 수 있고, 어디에서는 물을 구하기 용이하다, 그래서 어디가 거주 환경에 적합하다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공룡에 관련된 내용도 오스니엘로사우루스라는 공룡을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는지, 잡은 공룡을 어떻게 먹는게 좋은지 알려주고요. 참고로, 화석을 통해 복원한 공룡의 형태를 통해 분석한 결과로는 통구이(!)가 적합하다고 하네요. 그 다음에는 고기를 해체하는 방법과 어떤 부위를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도 설명해 줍니다. 당연히 실제 통구이 시의 레시피도 자세하게 소개됩니다(불 위에서 떨어지는 지방을 바르면 더 바삭할 것이다!). 다만 제목에 있는 것처럼 캄프토사우루스를 이용한 요리는 딱히 눈에 띄는 건 없어서 좀 의아했습니다.

이외에 저자가 직접 그렸다는 삽화, 특히 공룡의 세밀화도 수준이 높습니다. 공룡이 깃털로 덮여 있었을 것이라는 비교적 최근의 학설을 반영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나 너무 진지한 나머지 대중적인 재미가 좀 부족하다는건 아쉽습니다. 뭔지 잘 알 수 없는 제목 때문에 일반 독자가 찾기 힘든 것도 단점이고요. 조금만 더 재미있게, 최소한 도판이라도 더 많게 보강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책보다는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로 영상화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고요.

그래도 이런 류의 모험소설을 쓴다면 꼭 참고해야 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최소한 저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반쯤은 비현실적인 주제를 진지하게 접근했다는 점에서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와 비슷한데, 실제 화석 등을 통한 저자의 전문가적인 지식이 뒷받침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굉장히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는 책인데, 앞으로도 이렇게 특이하고 다양한 책이 계속 출간되기를 바랍니다.

2014/12/22

탐정영화 - 아비코 다케마루 / 권일영 : 별점 3점

탐정영화 - 6점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포레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사 FMW의 대표이자 귀재인 영화감독 오야나기가 촬영 중이던 최고의 추리 영화 결말 촬영을 앞두고 실종되었다. 영화사 직원과 스태프, 그리고 투자까지 한 여섯 명의 배우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고, 감독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감독이 찍어놓은 96분 분량의 필름을 전제로 범인을 추리해 영화를 완성하기로 결정했다. 여섯 명의 배우와 세 명의 조감독, 그 밖의 스태프들은 십 분 남짓한 영화의 결말을 찍기 위해 시나리오 콘테스트를 열고, 누가 범인이어야 가장 그럴듯한 영화가 될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출된 시나리오들의 결함을 지적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시나리오를 선정하고 영화 촬영을 마치는데...

아비코 다케마루의 장편소설. 데뷔 이듬해에 썼다는 초기작입니다.

위의 줄거리 소개에서처럼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궁지에 몰린 스탭들이 스스로 결말을 짜내는 과정에서 출연자와 제작진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추리가 펼쳐지는 전개가 인상적입니다. 동호인들끼리의 추리 게임 같은 느낌도 전해줍니다. 결말 직전까지만 감상하고 그것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낸다는 점에서요. 이런 점은 "독 초콜릿 사건"의 판박이기도 합니다. 미완성 영화의 결말을 추리해야 한다는 설정은 빙과 시리즈인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와 같고요. 하지만 읽다 보니 전개와 과정은 "허무에의 제물" 같은 안티 미스터리 느낌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이런 결말은 어떤가요?"라는 결말이 이어지는 "5인의 탐정가"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미스터리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이니 광의의 의미로 볼때에는 작가 후기에 쓰여진 대로 메타 미스터리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떠오르지만 다행히 작품의 독특함을 유지하고 있는데, "영화"라는 소재에 굉장히 충실한 덕분입니다. 초반에 화자인 다치하라(나)가 출연진들과 이야기하면서 영화에 사용된 서술트릭에 대해 설을 푸는 장면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영화에 관련된 정보들이 곳곳에 삽입되는게 아주 그럴 듯 했습니다.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썼구나 싶을 정도였어요. 

추리적으로도 여러 관점에서의 재미있는 트릭들이 등장해서 풍성함을 전해준다는 설정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더해 진짜 트릭인 극적인 서술트릭 - 첫 장면은 시점적으로는 영화 속 내용이 모두 흘러간 다음의 일이다 - 은 단연코 기발했기 때문에 만족스럽습니다. 소설로도 가능하겠지만, '첫 장면과 똑같은 화면에서 이야기가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라는 장르에 아주 특화되어 있는 트릭이라 다른 데에서는 흉내내기도 힘들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그 외에도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에서 문제로 지적했던, 결말을 창작해내야 하는 상황의 설득력이 높았던 것도 좋았습니다. 출연자들이 결말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설득력이 높았어요. 자기가 "범인"이어야 영화에서의 비중이 높아지니 어떻게는 자기를 범인으로 만드는 각본을 들고 온다는 것인데 와 닿을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작품 속 추리는 진상이라고 부를 것이 없는, 픽션의 영역이라는 문제는 큽니다. 출연진이나 제작진 누구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찍더라도 작중에 표현된 대로 "가장 그럴듯"하면 되는 것일 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야부이 센조가 밖에서 사기누마 준코의 방문을 잠그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고요.

그리고 감독의 의도대로 편집, 완성된 결과물은 앞서 언급한대로 트릭 자체는 기발하나 그닥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습니다. 외부에서 모든 제작 과정을 지켜본 "독자"라면 수긍할만 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 입장이라면 반쯤은 반칙이라 여길 수도 있어 보입니다. 제가 관객이라면 사기누마 준코가 죽는 시점에서 다쓰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 같거든요. 이렇게 무리한 서술 트릭보다는 주인공 다치하라(나)의 아이디어나 배우 야부우치 젠조의 아이디어가 더 낫지 않나 싶었습니다.

아울러 감독의 실종이라는 상황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픽션이기 때문에 가능했지 감독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최소한 조감독 한 명 정도는 사기니의 의도를 알려줘서 의도대로 움직이게끔 하는 공작이 추가로 설명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앞서 말씀드린 다양한 추리가 펼쳐지게 만드는 아이디어는 좋았으며 작가의 초기작답게 젊은 청춘들의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는 점도 좋았고요. 그야말로 좋았던 시절의 행복하고 따스한 이야기입니다. 추리소설 입문자분들께 추천하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이런 작품을 쓴 작가가 나중에 "살육에 이르는 병"을 쓰게 된다니 믿어지지 않는군요.

2014/12/19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 (2014) - 제임스 건 : 별점 4점

1988년, 어머니가 사망한 뒤 슬픔에 가득 차 병원에서 뛰쳐나간 피터는 우주선에 납치당했다. 그리고 26년 후, 라바저로 성장한 피터 퀼은 정체불명의 고가 오브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오브를 팔기 위해 향한 잔다르에서 오브를 노리는 로난의 양딸 가모라, 피터에게 걸린 현상금을 노린 로켓과 그루트 컴비와 격투를 벌였고, 한꺼번에 체포된 그들은 우주 감옥으로 보내졌다.
감옥에서 만난 드랙스와 의기투합한 4인은 탈옥 후 오브를 고가에 팔기위해 구매자가 있는 노웨어(Knowhere)로 향했고, 콜렉터로부터 오브의 정체를 들었다. 오브는 생명체를 파괴하는 무서운 무기였다. 마침 로난이 노웨어로 쳐들어왔고, 결국 오브를 빼앗긴 일행은 라바저의 보스 욘두를 설득하여 오브를 탈환하기 위한 작전에 들어가는데...

드디어 봤습니다.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 시리즈 최신작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옛날 말로 "우주 활극"이라고 해도 어울릴 고전적이면서도 B급의 향취 가득한 작품인 덕분에 아주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우주해적 코브라"를 영화로 만들면 딱 이런 분위기일 것 같은데, 정말 저 같은 사람에게는 취향 직격하는 영화였어요.

장점이라면 우선,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적절한 전개가 좋습니다. "퍼스트 어벤져"처럼 "어벤져스"를 위한 떡밥으로 사용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러닝타임을 소비한 덕분입니다.

캐릭터들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캐릭터들을 매력적으로 살리고 있어요. 초인은 아니지만 몇몇 특수 장비와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스타로드 피터 퀼은 "육화의 용사"의 아들렛 등과 비슷하지만 마지막에 밝혀지는 반전 덕분에 차별화되며, 입이 거친 터프가이 콤플렉스 덩어리 로켓 라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최강자 그루트는 더 말할 것도 없는 최고의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보아왔던 츤데레 여전사 캐릭터의 스테레오 타입인 가모라와, 비중만큼의 강함과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드랙스는 조금 아쉽지만 나름대로 액션과 개그에서 깊은 인상을 남겨주고요.

이들의 활약에 더불어 감독의 재능이 엿보이는 감각적인 연출, 곳곳에 숨어있는 잔혹하지만 웃기는 장면들과 깨알같은 명대사들도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특히 잔혹해 보이는 유머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필요도 없는 의족을 탈출에 쓸 거니 가져오라고 하는 식으로요. 이런 건 오롯이 감독의 능력이라 생각됩니다.

아울러 다른 마블 영화와는 다르게 대놓고 "만화입니다!"라고 주장하는 듯한 화면 효과와 아트워크를 선보이는데, 이 역시 완전히 제 스타일이었습니다. 굉장히 과하고 쨍해서 리얼리티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외려 영화와는 분위기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제가 80년대 키드이기에 "Awesome Mix"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그런데 영화에서 기억에 남을 정도로 언급된 케빈 베이컨의 "Footloose"가 나오지 않은 것은 의외이긴 합니다. 어른의 사정이 있던 걸까요?

물론 좀 막나가는 영화답게 전개에 허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콜렉터의 시녀가 자살을 시도하지만 않았어도 콜렉터가 오브를 정상적으로 소유하게 되었을 테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죠. 드랙스가 로난을 불렀어도 이미 피터 일행은 떠난 뒤였을 테고, 피터 퀼 일행이 개입될 여지가 없으니까요. 그 외 가모라의 급작스러운 배신이나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욘두의 행동거지 등 전개에 급작스러운 것들이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 즐겁고 화끈하다는 영화 본연의 가치에 지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즐거운 영화로, 모든 분들께 추천하기에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긴 한데 저는 대호(大好)!였습니다. 저와 같은 취향, B급 정서 가득하신 분들께는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로난 앞에서 스타로드가 댄스 배틀을 벌이는 장면은 "Breathless"의 마지막 장면, 리차드 기어의 노래와 춤을 그대로 사용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확인 한 번 해 보시길.

2014/12/18

잭 리처 (2012) - 크리스터퍼 맥쿼리 : 별점 2점

도심 한복판에서 의문의 저격으로 5명의 무고한 시민이 살해당했다. 전직 군인 '제임스 바'가 용의자로 지목되었지만, 그는 자백을 거부한 채 ‘잭 리처를 데려오라’는 메모를 남겼다. 제임스 바는 호송 중 크게 다쳐 혼수상태에 빠졌고, 뒤이어 전직 군 수사관 출신이지만 실제 정체를 아는 이는 누구도 없는 의문의 남자 ‘잭 리처’가 나타났다. 리처는 제임스 바의 변호사 ‘헬렌’과 함께 사건 수사에 나서는데...

최근에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영화만 찾아보게 되는군요. 이번에 본 영화는 개봉한 지 조금 된 영화 "잭 리처"입니다. 원작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명성이 자자한 슈퍼 베스트셀러이기에 관심이 가던 차에 영화부터 감상하게 되었네요.

이 영화는 여러모로 어제 리뷰했던 "툼스톤"과 유사합니다. 하드보일드 스릴러 장르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라는 점, 헐리우드 빅스타가 주연이라는 점, 주인공은 과거 전문가로 실력 있는 수사관이지만 현재는 명확한 직업이 없는 인물이라는 점 등이 거의 똑같거든요. 차이점이라면 이 작품이 "툼스톤"에 비해 더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문법에 충실하다는 점이고요. 잭 리처도 정의감 넘치는 쿨가이라는 헐리우드 액션 영화 주인공의 전형을 따르고 있습니다. "리썰 웨폰"의 마틴 릭스 느낌이에요.

그러나 단순히 뻔한 헐리우드 양산형 액션 스릴러는 아닙니다. 베스트셀러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답게 돋보이는 점도 있는데, 특히 주인공 잭 리처가 인상적이에요. 최고 실력의 군인이자 헌병 수사관 출신의 떠돌이라는 설정이 아주 괜찮았거든요. 운전면허와 자동차도 없이 버스로 떠돌아다니며 옷도 필요할 때마다 한 벌씩 사서 입고 버리는 식으로 진정한 무소유가 뭔지를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서 사실상 잃을 게 없기에 당연히 겁날 것도 없다는건 확실히 와 닿았고요. 당연히 엘리트 군인으로서의 사격, 격투 실력과 수사관 출신다운 추리력도 괜찮았습니다. 이야기도 이러한 잭 리처의 캐릭터에 많은 부분 기대어 전개됩니다.

허나 잭 리처를 뺀다면 작품 자체는 기대 이하입니다. 전개가 즉흥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 탓입니다. 중반부까지 중요한 실마리로 보였던 양아치들의 습격은 실제로는 잭 리처의 강함을 드러내기 위해 쓰였을 뿐, 정작 사건 해결은 멍청한 미행자들이 대놓고 회사 차로 미행하는 실수 때문에 드러나는 식이거든요. 어차피 이 시점에서 잭 리처는 범행 동기를 눈치챘기 때문에 불필요한 장치이기도 했고요. 이외에도 동네 깡패들의 습격, 길고 지루하기만 했던 자동차 추격씬 등 불필요한 장치, 요소는 넘쳐납니다. 
불필요했어도 잘 찍었더라면 눈요기라도 되었을 텐데 액션씬 모두가 최근 트렌드에 어울리지 않게 단조로워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정적인 클라이맥스에서 악당이 동원한 부하가 10명도 안 되는 스케일, 라이벌 격인 악당이 그다지 강하지 못한 상성 관계도 실망스러웠어요. 제작비가 6천만 불이나 된다는데 제작비를 어디에 썼는지 모르겠네요. 톰 크루즈 출연료로 다 나갔나?

아울러 캐릭터도 낭비가 심합니다. 히로인인 변호사 헬렌이 대표적입니다. 헬렌은 잉여 캐릭터에 불과하거든요. 아버지와의 갈등 말고는 작중에서 하는 게 없습니다. 피해자들을 조사해보라는 잭 리처의 지시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모든 힌트가 드러난 다음에야 배후를 파악할 정도로 실력도 없고요. 이 작품에서 그녀의 유일한 비중은 큰 가슴밖에는 없습니다. 차라리 중간에 죽어버리는 샌디가 매력이나 작중 비중이 더 높아 보이니 말 다했죠.

정리하자면 영화의 핵심은 1. 잭 리처가 변호사에게 사격장 조사를 요청 → 2. 사격장으로 찾아가 CCTV 및 증언 확보 → 3. FBI에 관련 증거 전달로 끝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재미는 없었겠죠. 그래서 필요했을 드라마틱한 전개와 액션은 크게 튀지 않게, 설득력 있게 삽입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악당들이 잭 리처를 엮어 넣기 위해 샌디를 살해하고, 잭 리처가 샌디의 죽음에 분개한다는 과정과 변호사를 납치한 뒤 이어지는 공사장에서의 클라이맥스 액션 같은 식으로요. 앞서 이야기했던 불필요한 장면을 조금 덜어내고 핵심 내용과 이러한 영화적 전개를 잘 결합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은데, 지금의 결과물은 스릴러적인 요소와 액션이라는 요소 두 개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 흥미로운 추리가 가미된 액션 스릴러물로는 괜찮을 수 있지만, 전개가 지루하고 최근 트렌드에 맞지 않는 단조로운 액션 장면 때문에 감점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툼스톤" 쪽을 권해드립니다.

덧 1 : 중후한 노인으로 등장하는 로버트 듀발과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 보스 역의 베르너 헤어조크와 같은 왕년에 한가락한 인물들의 모습은 반가웠습니다.

덧 2 : 월드와이드 흥행 수익은 2억 불을 넘은 나름 성공작으로 후속작이 기획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톰 크루즈가 캐릭터를 잘 살린다고 보기는 어려웠어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원작에서는 거구의 덩치여서 캐스팅 당시부터 말이 많았나 보네요. 개인적으로는 비주얼적으로도 더 압도적인, 안티 히어로에 어울리는 배우가 연기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후속작에서는 WWE 출신 스티브 오스틴을 추천해봅니다.

2014/12/17

툼스톤 (2014) - 스콧 프랭크 : 별점 2.5점

전직 형사 맷(매튜 스커더)에게 마약상 케니가 찾아와, 자신의 아내를 납치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맷은 조사를 통해서 유사한 사건들이 1년 사이에 연쇄적으로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묘지 관리인 루건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아내는데...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 중 한 권인 "무덤으로 향하다"를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감기몸살로 몸져누워 있는 와중에 IPTV로 감상했습니다.

"테이큰"으로 꽃중년 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신기원을 연 리암 니슨이 주연을 맡았는데, 이 영화의 장점도 리암 니슨이 구체화한 매튜 스커더 캐릭터에 대부분 의지하고 있습니다. 원작 팬이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매튜 스커더 그 자체거든요. 비주얼, 연기 모두 최고였습니다. "테이큰"에서처럼 슈퍼 액션 영웅은 아니고,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음직한 평범한, 아니 평범하지는 않지만 전직 경찰로서 어느 정도 예상되는 활약을 해 주는, 평범에 가까운 중년 아저씨라는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을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총질은 여러 번 해야 한 발 맞는 수준이고, 미행도 절뚝거리며 쫓아다니는 수준, 악당이나 용의자들의 습격에는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식인데 저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원작에서의 잔인한 폭력 묘사를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묘사한 것 역시 괜찮더군요. 대놓고 보여주는 것보다 더 끔찍했습니다. 악당 콤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도 현실적이면서 끔찍한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요. 세기말인 1999년이 무대라는 것도 묘하게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원작 팬이 아니라면 즐길 거리가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만 본다면, 매튜가 왜 이렇게 금주 모임에 열성적인지 알기 힘들테니까요. 더욱이 앞서 말한 이유로 "테이큰"과는 전혀 다른 영화이기 때문에 "테이큰"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을테고요.

때문에 원작을 읽지 못한 관객을 위해서 최소한 범죄 스릴러로서의 얼개는 충실히 갖추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단점입니다. 잔인함과 폭력이 두드러지지만 나름 범인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과정까지의 수사는 그럴듯했었던 원작에 비해, 영화는 정교한 수사는 하나도 없이 우연과 운에 의지하기만 하니까요. 묘지 관리인 루건이 사건에 연루된 것을 알아내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범인들을 만나게 된 것도 수사와는 관계없는 범인들의 추가 범죄 탓이고요. 매튜의 매너 있으면서도 충실한, 덕분에 설득력 넘치는 탐문 수사 과정만 볼거리였습니다.

결말도 문제입니다. 케니마저 죽고 매튜와 악당이 한판 대결을 벌이는 클라이막스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매튜 스커더 캐릭터가 앞서 말했듯 평범에 가까운 아저씨라 이런 역할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무리한 액션 클라이맥스 연출 욕심에 좋았던 설정을 날려버리기만 했어요. 이보다는"왓치맨"에서 소녀 유괴범을 찾아낸 로어샤크 같은 응징이 깔끔했을 겁니다. 범인들은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니까요.

마지막에 액션을 넣고 싶었다면 잘 뽑기라도 하던가, 액션을 너무 못 찍은 것도 아쉽습니다. 정작 중요한 마지막 묘지에서의 총격전에서 금주 모임의 계명과 교차 편집하는 효과는 욕심만 과했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입니다. 악당도 왜 총질이나 칼질이 아니라 번거로운 목조르기를 시도하는지 알 수 없고요.

마지막으로 T.J는 소설에서는 핵심 인물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사족에 불과하다는 것도 안타깝더군요. 후속편을 의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지 매튜 스커더의 인간미, 부성애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기에 이렇게 사용될 거면 안 나오는 게 나았을 것 같습니다. 무슨 병이 있다는 등의 배경 설명까지 해 줄 정도의 역할은 절대 아니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주인공 탐정과 범인이 모두 설득력 있게 묘사된 웰 메이드 하드보일드 범죄 영화입니다. 그러나 원작을 읽지 않았다면 설명이 부족할 수 있고 정교한 전개의 맛은 부족하며, 액션 연출과 스토리라인은 지루하다는 문제는 큽니다. 원작 팬이시라면 살아 숨 쉬는 매튜 스커더를 만나는 기쁨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시다면 딱히 찾아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리암 니슨 주연으로 다른 매튜 스커더 시리즈들도 영화화되었으면 하는데, 월드와이드 5천만 불을 겨우 넘겨 손익분기점에 간당간당 못 미친 흥행 결과를 보면 좀 힘들 것 같네요. 아쉽습니다.

2014/12/16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 - 6점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의도는 아니지만 짝수권은 건너 뛰고 홀수권만 띄엄띄엄 읽게 된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모두 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특정 고서와 얽힌 이야기를 탐정역의 시오리코가 풀어낸다는 잔잔한 일상계 단편입니다. 지에코가 시오리코의 주변을 맴도는 이유, 다이스케의 고백에 대한 답변 같은 긴 실타래가 하나씩 풀려 나가는 연작 구성이라는 점은 전작과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다이스케의 고백과 시오리코의 답변을 정말 순진하고, 착하고, 예쁘게 묘사한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고서당을 무대로 한 작품다운 고풍스러운 묘사였고, 덕분에 고우라 다이스케의 비중도 단순 화자보다는 조금 커진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면 애정이 아니라 거의 숭배에 가까워 보이기는 합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답게 등장하는 책들에 대한 소개도 충실한데, 이번 권에서는 지나가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오누마 단의 "검은 손수건"이라는 추리소설이 특히 땡기네요. 책 정보가 전혀 등장하지 않아서 더 궁금해집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추리적으로 특기할 만한 작품이 이번 권에서는 없다는 점입니다.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거나 추리에 있어 비약이 심한 이야기들뿐이었거든요.

그래서 결론 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작품의 재미가 부족한 것은 아닌 만큼 시리즈의 팬이라면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수록작 별 상세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월간 호쇼"

고서와 고서점을 테마로 한 잡지인 "월간 호쇼"를 팔러 다니는 노부인에 대한 이야기. 노부인이 잡지를 판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회수해 가는 이유를 밝혀내는 내용입니다.

수수께끼가 신빙성 있게 짜여져 있을 뿐 아니라, 이전에 등장했던 책 판매 노숙자 시다 씨가 중요한 역할로 나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시다 씨와 함께 다니는 노신사가 뭔가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이다가 밝혀지는 반전도 마음에 들었고요. 특히나 시다 씨 첫 등장에 함께 나왔던 고야마 기요시의 "이삭줍기, 성 안데르센"이 다시 등장해서 반가웠습니다. 그것도 그냥 나온 게 아니라 나름 역할이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치밀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아울러 "월간 호쇼"라는 잡지가 실제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무척 재미있어 보입니다. 과월호라도 구할 수 있다면 한번 구해보고 싶네요.

그러나 추리적으로 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동기 측면에서도 비약이 심할 뿐 아니라 일본인만 알 수 있는 트릭이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블랙잭"

햐~ 이 작품까지 나오다니! 저도 한국어 판으로 다 구입했을 뿐더러, 작중 소개되는 양장본은 형이 학창시절 초판으로 구입했던 기억이 나서 더 반가웠습니다(블랙잭을 실사처럼 묘사한 까만 커버). 작중 주요한 소재인 4권의 "식물인간" 이야기도 다른 블로거분의 글에서 본 적이 있어서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요.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더 깊이 파고들어 이런 이야기를 창조해 낸 작가의 상상력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저도 창작자를 지향하는 사람이라서 많이 반성이 되네요.

이야기 구성도 어머니 임종 시에 굳이 책을 구입하려 한 아버지의 행동을 밝혀내는 것이고, 그 의도가 무척이나 따뜻한 내용이라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일상계의 왕도랄까요. "블랙잭"이라는 작품 테마에도 잘 어울리고요.

또한 시리즈답게 "블랙잭"의 다양한 판본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매니악한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똑같은 책이 두 권 있는 이유도 생각지 못했던 것인데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으며, 아버지가 구입한 마지막 책 상태와 구입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도 추리적으로 완벽했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권의 베스트 단편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나에게 5월을"

망나니 동생이 형의 임종 후 찾아와, 형이 소중하게 여기던 귀한 책을 자신에게 유품으로 남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추리적인 부분은 별로 건질 게 없었던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비약이 심할 뿐더러, 미망인 히사에가 모든 수수께끼를 쥐고 있다는 것이 전부니까요. 이야기의 발단이 된 스미오의 행동도 딱히 합리적이지 않고, 고인이 죽기 전 진상을 파악했다는 것도 근거가 없습니다. 평생 모르다가 죽기 직전에 알았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히사에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고서당 사람에게 평생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을 이유가 있었을까요? 저 같으면 끝까지 부정했을 겁니다.

데라야마 수지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이 생긴 것 정도만 수확일 뿐, 그냥저냥한 평작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4/12/15

반가운 살인자 - 서미애 : 별점 2점

반가운 살인자 - 4점
서미애 지음/노블마인

한국의 여성 추리 작가인 서미애의 단편선입니다. 일상계 범죄 스릴러에 가까운 작품들로 총 10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표제작이 영화화되기도 해서 궁금하던 차에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 제 취향은 아니더군요. 이야기들의 설득력이 부족해서 감정이입이 힘들었던 탓입니다.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천편일률적인 똑같은 심리 묘사가 등장하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누군가에게 살의를 품은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모두 다른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습니다.

아울러 작품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도 잘 모르겠어요. 정통파 본격 추리물도 아니고, 기묘한 맛의 반전물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고... 굳이 분류하자면 범죄가 테마인 드라마가 대부분인데 그렇게 접근하기에는 묘사력이나 깊이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도진기 작가의 작품집처럼 최소한 한두 작품이라도 아주 뛰어난 작품이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도 않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추리물이나 스릴러 애호가분들께 상기의 이유로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가운 살인자"

보험금 때문에 사고로 죽어야 하는 가장이 자신을 죽여줄 연쇄살인자를 찾아다닌다는 내용입니다. 

솔직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지요.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사고로 위장한 자살을 연구하는 게 당연합니다. 연쇄살인마가 어디서 나올 줄 알고 헤매고 다닙니까? 그거 쫓아다니면 오히려 운동이 되어서 더 오래 살겠네요. 아울러 재미를 위해서라면 연쇄살인자의 정체라던가, 이야기의 흐름에서 반전이 한번 정도 나와줬어야 합니다. 

영화화가 되었다고 해서 잠깐 조사해보았는데, 사뭇 다른 각색으로 제작된 것 같더군요.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연쇄살인마를 찾아다니는 백수가 연쇄살인마로 몰린다는 영화의 설정이 더 나아 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남편을 죽이는 방법에 골몰하던 주부가 실제 남편이 죽은 것을 알고 당황하다가, 완전범죄 이야기로 넘어가는 작품입니다. 정신과 의사와 주인공의 관계가 드러나면 꼬리가 밟힐게 뻔해서 잘 짜여진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입니다. 나름 반전이 있다는 점도 괜찮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냄새 없애는 방법"

냄새에 민감한 여주인공이 이웃집의 개 때문에 이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런데 주인공부터 정상이라 하기 힘들 정도로 예민해서 감정이입하기 힘들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거의 초능력 수준으로 묘사되는데, 이럴 거면 슈퍼히어로물을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또 공동주택에 살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이 있는 게 당연한 상식이며, 단지 6개월치 월세를 선불로 주었다고 이사를 고려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피냄새를 지우는 방법을 알게 된 204호 남자가 덕분에 연쇄살인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반전이 있기는 한데 대단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딱 하나, 남자의 이름이 "유영철"이라고 밝혀지는 정도만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살인 협주곡"

부부가 서로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으로 앞서 이야기한 천편일률적인 심리묘사가 이어져서 지루합니다. 서로 미워하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왜 이혼 같은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는지도 설명되지 않아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차라리 블랙코미디로 풀어나가는 게 나았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전에 읽었던 "완벽한 부부"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완전범죄를 계획하다가 둘 다 죽는다는 걸작 단편과 굉장히 유사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예요. 에필로그까지 완벽했던 해당 작품과 비교할 때 완성도도 더 낮아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정글에는 악마가 산다"

파파라치로 돈을 벌려는 찌질이에게 닥친 가혹한 현실을 다룹니다.

최근 이슈인 수원에서 발견된 토막 살인 사건과 약간 겹쳐지는 부분이 조금 있어서 신기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공통적인 문제는 여전합니다. 장기 밀매를 하는 범인들이 시체를 서툴게 처리한 이유, 주인공이 사건의 핵심에 접근할 때 무방비로 접근하는 이유 등 설명되지 않는 것도 너무 많고요. 채팅 프로그램이 트리거가 된다는 아이디어 하나만 신선했을 뿐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숟가락 두 개"

평생 중 교도소 생활이 더 길었던 전과자와 벙어리 아가씨가 가족이 된 뒤 벌어진 가혹한 현실을 다룬 일종의 드라마입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어느 창녀의 죽음"이 떠올랐는데, 약간 억지스러운 감동 외에는 별다른 반전이나 극적 요소가 없어서 감히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뻔하기도 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녀만의 테크닉"

친구가 자기의 남자를 빼앗았다고 생각한 여인의 납치극으로 시작되어, 다중인격 백합물로 끝나는 이색작입니다. 아무런 복선 없이 급작스럽게 진상이 드러나는 구성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광기 묘사도 별로 새롭지 않았고요. 차라리 완벽한 서술트릭물로 꼼꼼하게 작업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비밀을 묻다"

불륜 관계였던 친구 남편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프리랜서 방송작가의 이야기. 촬영 테이프에 찍힌 자동차 번호판과 친구의 지인은 별로 중요한 단서로 생각되지 않으며,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인 아내의 친구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설명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그나마 조금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경계선"

왕따와 원조교제 소녀의 기이한 교제와 학교 일진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다룬 작품입니다. 핸드폰을 숨겨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반전은 괜찮았지만 그 외의 요소는 사족에 불과합니다. 원조교제 소녀는 당췌 왜 나왔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콩가루 집안의 설정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작품과는 별 상관없는 내용이었으니까요. 가족관계의 회복을 그린 것도 아니고... 뭔가 다른 미디어믹스를 노린 티도 너무 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거울 보는 남자"

살인자의 관상이 따로 있다는 뻔한 아이디어를 현대적으로 풀이한 설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개의 비약이 너무 심해서 마음에 들지 않네요. 교수의 분노나 주인공의 범죄가 딱히 설득력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요. 좀 더 짧고 임팩트 있게, 서늘하게 써야 했을 작품이 아닌가 싶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4/12/11

게물랭의 댄서 - 조르주 심농 / 성귀수 : 별점 2.5점

게물랭의 댄서 - 6점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열린책들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 샤보와 르네 델포스는 단골 캬바레 게물랭을 털 계획을 세우고 심야에 몰래 잠입했다. 그러나 그들은 캬바레 안에서 시체를 발견했고, 혼비백산하여 도주했다. 시체가 동물원 앞에서 유기된 채 발견된 후, 수수께끼의 사내에게 미행당해 불안감에 사로잡힌 두 젊은이는 달리 마련한 돈을 처분하기 위해 다시 게물랭에 방문했다. 그러나 장 샤보가 경찰에 체포되고 마는데...

조르주 심농메그레 경감 시리즈 중 한 권으로, 1931년도 작품입니다. 연표를 보니 상당히 초기작이네요.

제가 읽었던 메그레 경감 시리즈 중 단언컨데 가장 이색적입니다. 다른 시리즈 작품과 차별화되는 점을 하나씩 열거해 보자면,

  1. 거의 책의 절반 분량까지 메그레 경감은 등장하지 않고 방탕한 청년 장 샤보의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점.
  2. 사건 발생 및 해결 모두가 벨기에의 리에주라는 도시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3. 일상 속 범죄, 현실 속에 감추어진 어두운 드라마가 중심이었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국제적인 첩보조직이 등장하는 등 약간은 모험 소설 같은 파격적인 설정을 갖추고 있다는 점.
  4. 메그레가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유행했던 본격물 탐정들과 같은 대담한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

입니다.

이 중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네번째 항목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피해자가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지만, 그 뒤 경찰을 어떻게든 따돌리려 시도한 이유에 대한 추리가 핵심인데 셜록 홈즈의 추리법이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추리의 결과가 황당하지만, 그게 사실에 거의 부합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합니다. 또 독자에게 비교적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역시나 고전 본격물스럽습니다. 앞서 언급한 피해자의 기이한 행동, 담배갑을 델포스가 가지고 있다고 입을 맞춘 게물랭 직원과 댄서의 증언으로 장 샤보가 늪에 빠지지만 이후 진상이 밝혀진다는 디테일, 르네 델포스가 훔쳤다고 증언한 2천 프랑의 출처 등이 대표적입니다. 피해자가 최초에 죽은 척 한 것이라는 일종의 트릭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심농이 다른 경쟁자들을 의식해서 “나도 이런 거 쓸 수 있다구!” 라는 마음가짐으로 써내려간 느낌이 듭니다.

심농 작품다운 심리묘사와 배경 묘사도 여전합니다. 특히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로 생각되는)에게 쫓긴다고 생각하는 철부지의 심리묘사가 상당히 볼거리였어요. 적절한 분량이라는 미덕 역시 동일하고요.

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메그레 스스로 시체를 은닉했다는 중요한 정보를 나중에 알려주는 것은 공정치 못합니다. 마지막에 아델의 집으로 빅토르와 델포스가 잠입하여 물건을 회수하려 한 까닭도 잘 모르겠고요. 마지막 장면은 주요 등장인물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고 메그레가 진상을 설명하는 추리쇼 형태라서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것까지 다른 고전 본격물을 따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울러 피해자가 사실은 비밀첩보원이었고, 암호로 된 편지까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 명작 중 잠수함 설계도를 다룬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만, 게물랭이 국제적인 첩보 조직에 속한 곳!이라는 설정도 많이 엉뚱합니다. 차별화되는 요소였을지는 모르나 설득력 측면에서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추천작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메그레 시리즈의 일반적인 스타일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호오가 갈릴 수 있고, 제 기대와도 약간 달라서 감점하지만, 추리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고 심농만의 장점도 여전히 유효한 독특한 작품입니다.

2014/12/09

파리인간 - 한스 올라브 랄룸 / 손화수 : 별점 2.5점

파리인간 - 6점
한스 올라브 랄룸 지음, 손화수 옮김/책에이름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저항하는 군인으로 활약했고, 전후 고위 관직도 역임했던 하랄 올레센이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수사 총 책임자로 임명된건 콜비외른 크리스티안센 경감이었다. 경감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랑나르 보르크만 교수는 경감에게 자신의 딸 파트리시아로부터 조언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그녀의 뛰어난 추리력을 알아챈 크리스티안센은 그녀와 함께 사건 해결에 나서는데...

노르웨이 작가의 추리소설. 원래 북유럽 쪽 추리소설은 취향이 아닌데 평이 굉장히 좋았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제 예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정통 본격물 느낌이라는게 의외였습니다. 북유럽 추리소설이라서 "웃는 경관"이나 발란더 시리즈와 같은 묵직한 수사물이 아니면 요 네스뵈로 대표되는 스릴러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첫 사건인 하랄 올레센 살인사건에 사용된 밀실 트릭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대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시대 배경이 1968년이라 비교적 고전적인 추리가 사건 수사에 동원될 여지가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작품에서는 보기 드물게 범인이 가짜 범인을 조작하는 과정이 등장한 점도 고전 정통 본격물 스타일이라 할 수 있으며, 여러 증언들을 정교하게 배치하여 진상까지 끌고 가는 전개도 잘 짜여져 있습니다.

이러한 고전적 추리 스타일에 더하여 전쟁영웅인 줄로만 알았던 하랄 올레센의 과거가 아파트 거주민들을 통해 하나씩 밝혀지는 과정도 흥미진진합니다. 2차대전 중 국경지대 안내인이 자기 방어를 위해 두 명의 유대인 부부를 사살한 후 무죄 판결을 받았던 펠드만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데, 역사학자라는 작가의 특징이 잘 발휘된 셈입니다. 안데르손에게 듣는 하랄과 디어풋의 목숨을 건 탈출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 정도로 박진감이 넘치는 등 디테일도 볼거리가 많습니다.

탐정역의 천재 소녀 파트리시아도 특이했습니다. 발로 뛰는 형사와 장애가 있어 칩거하는 천재 조합은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설정이면서 링컨 라임 시리즈와 똑같아서 아주 신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추리 소설을 백여 권 읽은 추리 소설 매니아라는 설정만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저 역시 추리 소설 애호가라서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네요. 처음 만났을 때 책상에 놓인 책 중 한 권은 스텐리 엘린의 작품이라는 디테일도 돋보였습니다(1968년은 "발렌타인의 유산"이 발표된 해이기도 하죠). 그냥 설정으로 끝내는게 아니라 매니아답게 여러 가지 추리 소설을 응용하며 대화를 펼치는 점도 좋았어요. 아이 울음소리를 불평한 주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며 셜록 홈즈를 흉내 내는 식으로요. 중반부에 공소시효가 끝난 뒤 벌어진 동일한 범죄를 다룬 조르주 심농의 작품을 언급한 것도 기억에 남는데, 무슨 작품일까 궁금해집니다. 물론 추리소설 백여 권 읽은 걸로는 매니아계에 명함도 내밀지 못할 수준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작가의 데뷔작이기 때문일까요? 아쉬운 부분도 많이 보입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정통 추리물의 스타일을 따르고는 있지만 실제 추리적으로는 그렇게 잘 짜여져 있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인물들이 하랄과 엮여 있다는 인간 관계는 작위적이며, 주요 인물들의 증언이 거의 모두 거짓이기 때문에 공정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도 못합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밀실 트릭도 반 다인의 작품 등에서 이미 선보였던 고전적인 트릭에 지나지 않아 참신함이 부족해요. 레코드판이 아니라 테이프를 사용하는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수준도 유치하고요. 마지막에 모든 주요 인물들 앞에서 펼치는 추리쇼라는 작위적 설정까지 고전적 스타일을 답습했어야 했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또 비록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사진까지 있는데 디어풋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한다는건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범인이 원래 계획대로 자살을 위장한 완전범죄를 벌이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고요. 총도 새로 구해왔으니 모든 준비가 끝난 것 아닌가요?

그 외에도, 사라의 미모와 크리스티안과의 불륜은 지나치게 과하게 묘사된 듯 싶었어요. 할리퀸 로맨스 성인버전을 읽는 기분이었으니 말 다했죠. 휠체어에 앉아있던 장애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 역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가 출연했던 수작 스릴러 "서스피션" 등 여러 작품에서 숱하게 등장했던 것이라 진부했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데뷔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추리적인 완성도가 미흡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읽히는 재미만큼은 충분하므로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롯데, 보상선수 정재훈 지명

기사

장원준 선수의 보상선수로 롯데가 정재훈 선수를 지명했다는 기사가 발표되었네요. 두산의 명단은 과거 제 명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명단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솔직히 롯데의 선택은 이해가 잘 되지 않네요. 현재 롯데의 전력을 보면 아무리 5등안에만 들면 된다지만 그것도 녹록치 않아 보일 정도로 유출선수도 많고 전력약화가 심해서 미래를 내다본 지명이 나았을것 같은데 말이죠. 제 명단과 다르게 오현택, 변진수, 김재환 선수가 모두 묶였더라도 긁어보지 못한 신인이나 차라리 소문대로 박건우 선수를 지명했더라면 더 유용하게 쓰이지 않았을까요?

여튼 정재훈 선수, 그간 많이 고생했었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누가 가도 아쉬웠겠지만 김경문 감독 시대를 상징하는 거의 마지막 남은 선수라 더 아쉬움이 크네요. 이왕지사 이렇게 된거, 롯데에서도 좋은 활약 계속 보여주어서 두번째 FA에서도 성과로 보상받기를 기원합니다.

2014/12/08

블로그 개설 11주년

블로그 개설 10주년

2003년 12월 7일에 시작한 hansang 블로그가 드디어 10년을 넘어 11년 차가 되었습니다. 현재까지의 기록은 총 포스트 2,313개에, 목표로 했던 추리소설 1,000권 읽기는 671권째, 그리고 방문객은 928,277분입니다.

아직도 백만 명을 넘지 못하다니, 마이너 중의 마이너지요. 하지만 11년간의 블로그 운영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며, 이 블로그를 통해 맺은 여러분들과의 인연과 추억 역시 저에게는 무척 소중한 것입니다. 앞으로 추리소설 1,000권을 채울 때까지, 그리고 20년이 되는 그때까지 무탈하게 잘 운영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여튼 그동안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종종 찾아주세요. 제발~

웨스턴 리벤지 The Salvation (2014) - 크리스티안 레브링 : 별점 3점

7년 만에 만난 아내와 아들을 잃은 존은 가해자를 응징했다. 그러나 가해자는 마을을 지배하는 악당 두목 델라루의 동생이었다. 사로잡힌 존은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빠졌지만, 동생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동생마저 델라루 일당에게 살해당하는데....

간만에 본 서부극. 원래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기도 했고, 이런저런 평이 괜찮아서 감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서부극은 아니네요. 오히려 전통적인 서부극과의 차이점이 눈에 뜨입니다. 유럽 출신 감독과 배우에 의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촬영되었다는 제작 형태에서 비롯되었겠지요.
대표적인 차이점은 사람들이 폭력에 의해 지배된다는 설정과 그에 따른 암울한 전개입니다. 흔하다면 흔할 수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야 그렇다 쳐도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시장과 보안관마저 굴복하고 오히려 앞잡이 역할까지 하는 영화는 처음 봤습니다. 돈과 지위로 사람들을 핍박하는 현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는데, 이런 점에서 서부극의 형식을 빌린 현실 비판 영화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니, 무법천지에다가 수틀리면 어디론가 떠나면 되는 서부보다 더 굴종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실이 더 암울할지도 모르겠네요.

뭐 이 영화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주인공이 참지 않고 직접 행동에 나서 악의 무리를 처단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암울함이 사라지지 않거든요. 비겁한 보안관들과 진짜 흑막인 다국적기업(?)이 건재하고 마을에 석유가 나는 이상 폭력적인 억압은 계속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없지요.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아내, 어린 아들, 동생 및 나이 어린 조력자마저 죽여버리는 전개와 현재를 강조한 각본(덕분에 캐릭터와 내용이 다소 생략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날것 그대로의 느낌으로 현실감을 배가시키는 촬영(그야말로 이글거리는 느낌), 배우들의 연기를 뒤섞어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존 역의 매즈 미켈슨 연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단 한 번도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눈빛과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는, 쿨이라는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연기에는 탄복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독특한 영화임에는 분명하며, 러닝타임도 짧아 부담없다는 장점도 큽니다. 하지만 영화가 현실을 반영해서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것보다, 영화를 볼 때만이라도 현실을 잊을 수 있는 현실의 도피처 역할을 해주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살기도 힘든데, 영화를 볼 때만이라도 즐겁고 행복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쉽게 추천드리기는 어렵네요.

덧 : 한국판 제목은 정말 최악입니다.

2014/12/05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 우치다 야스오 / 김현희 : 별점 2.5점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 6점
우치다 야스오 지음, 김현희 옮김/검은숲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쿄 신주쿠 중심가에서 한 남자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피해자 가와시마의 사인은 독살로 밝혀졌지만, 범인과 이유는 미궁에 빠졌다. 유일한 단서는 그가 지니고 있던 삼각형 모양의 기이한 방울 하나 뿐이었다. 비슷한 시기, 노가쿠 명문 미즈카미류의 후계자 가즈타카가 "도조지" 공연 중 죽었다. 심근경색이라고는 했지만, 독살이 아닌가 의심되었다. 

한편 아버지 지인의 부탁으로 취재 차 노의 본고장인 요시노와 덴카와 신사 근처에 머무르던 아사미 미츠히코는 우연히 미즈카미류 종가 가즈노리 실종사건에 연루되어 사건에 뛰어드는데...

1988년 발표된. 우치다 야스오의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 23번째 장편입니다. 그동안 읽어본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들은 대체로 기대 이하였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50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대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명성과 인기가 이해되는, 대중 소설로의 미덕을 충분히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지루해질만 하면 사건이 벌어지는 전개(가와시마 살인사건 → 가즈타카 살인사건 → 가즈노리 실종사건 → 아사미 체포 → 가즈노리 변사체 발견 ...)로 흥미를 유발시키는 솜씨도 일품이고, 일본 전통 무용 노가쿠와 덴카와 신사와 엮어서 풀어나가는 이야기도 상당한 재미를 선사해주기 때문입니다. 

"노가쿠", "노", "노멘"이 핵심 설정이자 트릭으로 이용되어서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 이 역시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이런 설정은 "탐정 레이디 X 시리즈 - 거울 속의 나"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가부키, 고토 종가 가문의 후계자 다툼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설정 자체는 거의 판박이니까요. "도조지" 공연 중 종 안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이야기는 "갤러리 페이크"가 떠올랐고요(여기서는 일종의 사고였지만요).

여정 미스터리의 대가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제목이기도 한 요시노 지방 및 덴카와 신사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도 아주 인상적이에요. 풍광이라던가 다양한 행사, 먹거리까지 꼼꼼하게 소개되는데 한 편의 기행문이라 해도 손색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아사미 미츠히코 캐릭터의 매력도 볼만합니다. 인기 시리즈가 된 게 이해가 될 정도로 독특한 맛이 느껴졌어요. 명문가의 훈남으로 당시 잘나가던 스포츠카 렉서스 소아라 (1세대겠죠?)를 타고 다니는 멋쟁이지만 허술한 면모도 보여주는게 여심을 자극할 듯 합니다. "바쿠만"에서 대박이 나려면 여성 독자가 읽어야 한다고 나왔었는데 왜 이 시리즈가 대박이 났는지 조금 알 것 같네요.

그러나 읽히는 재미에 비하면 추리적 완성도는 그닥입니다. 이유로는 첫 번째 범행, 즉 가와시마 독살사건이 너무나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탓이 커요. 협박범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고 우편배달부를 살해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또 메신저를 살해했다면 바로 협박범도 찾아가서 죽였어야지, 왜 진짜 협박범은 그냥 살려둔 걸까요? 협박 당사자인 나가하라 도시코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 역시 이해 불가에요. 자기 대신 찾아간 사람이 죽었다면 겁이 나서라도 경찰에 신고하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게다가 가즈타카가 죽은 시점에서 도시코가 가만히 있을 이유도 없고, 종가인 가즈노리가 도시코를 찾아가서 무슨 결말을 지었는지도 설명되지 않는 등 일련의 과정이 대충대충 진행되는게 영 별로였습니다.

아울러 가와시마 사건을 추적하던 경찰이 가즈노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 시점에서 가와시마 살해가 가즈노리의 자살로 이어졌다는 당연한 추리와 수사를 하지 못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수사만 제대로 했어도 가와시마 살해 동기를 본격적으로 밝혀서 보다 손쉽게 진상이 드러났을 텐데 말이지요. 특히나 덴카와 신사의 미스즈로 인해 두 명의 연결고리가 드러난 이상, 이렇게 수사하지 않은건 직무유기에 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중 명탐정이라 불리우는 아사미의 활약도 거의 없습니다. 작중에서의 아사미의 추리는 본인 스스로 "감"이라는 것에 의존할 정도로 비논리적입니다. 가와시마가 독살당한 사건에 "여자"가 관련되었을 것이다라고 추리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노멘 가면에 독을 발라서 살해했다는 트릭도 너무나 친절하게 설명되는 탓에 명탐정의 추리가 필요할 정도의 내용은 아니었고요. 또 가즈노리 사건이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사미의 추리는 수사에 방해가 되었을 뿐이에요. 결국 죽을 사람이 다 죽은 뒤에나 진상을 알게 된다는 점도 당황스러운데, 일본 추리소설 속 명탐정들의 전통이자 특징인걸까요? 하지만 어차피 죽을 사람 다 죽으면 탐정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다행히 가즈타카 살인사건 하나만큼은 동기도 명확하고 트릭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동기나 트릭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본격물스러운 맛을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주요 설정인 노가쿠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트릭인 만큼 점수를 더 주고 싶네요. 가와시마 사건은 지워버리고 가즈타카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게 더 나았을 겁니다. 가와시마의 딸 치하루 시점에서 쓰여진 배경 묘사도 다 들어내는 식으로 정리하면 300페이지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었을 것 같은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맛은 있고 추리소설계에 이름을 남긴 명탐정 아사미 미츠히코의 매력은 가득합니다. 추리애호가로서 "추리" 요소가 부족한 탓에 감점하지만, 추리소설 초심자, 특히 여성분들이라면 꽤 즐겁게 읽으실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덧붙이자면 일찍이 영상화가 여러 번 된 작품인데 (심지어 첫번째 작품은 가도카와 제작 - 이치가와 곤 감독이라는 상상이상의 컴비!) 추리적으로는 간단하고 오히려 훈남 주인공과 주위의 미녀들, 아름다운 풍광 등이 부각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영상물로 감상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한 번 구해봐야겠습니다.

2014/12/04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 타카기 나오코 / 채다인 : 별점 2.5점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 6점
타카기 나오코 지음, 채다인 옮김/애니북스

알라딘 중고서적 산본점에서 발견하고 구입한 타카기 나오코의 구루메 에세이 만화입니다. 이글루스 유저분들께는 채다인님이 번역하신 것으로 더욱 유명하지요.

“처묵처묵 여행만화”라는 다인님 소개 그대로, 에세이 만화가로 유명한 저자가 일본 방방곡곡의 맛을 찾아 여행한 기록 만화입니다. 총 일곱 개 지방의 여행기가 실려 있습니다. 현재의 근거지인 관동의 도쿄와 사이타마, 관서는 작가의 고향인 미에현 근처의 와카야마, 오사카, 그리고 큐슈까지, 그야말로 방방곡곡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이런 곳들에 여행 가서 명물 요리들을 하나씩 전부 먹어보고 품평하는게 내용의 전부로, 아주 약간의 에피소드가 곁들여져 있지만 일상계스러운 것들이라 딱히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훈훈한 구루메 식도락 여행기로도 그런대로 볼 만했습니다. 해당 지역의 명물이 어떤 것이고 어디서 어떻게 먹으면 되는지를 쉽게 알려주는 데 충실하거든요. 즉, 이런 류의 만화의 핵심인 정보 제공 측면에 매우 부합하는 만화라 할 수 있습니다. "맛의 달인"의 일본 맛기행인지 뭔지는 환경이나 전통 등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과한 시도가 만화를 망치고 있는데, 이 작품은 자연스럽고 부담 없는 여행기 분위기라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곱 개 지방의 많은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음식 베스트 3는 아래와 같습니다.

  • 1위 : 사이타마 히가시마츠야마의 닭꼬치. 닭꼬치라는 이름인데 돼지고기가 대부분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뽈살, 간장, 혀 모두 맛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찾아가서 종류별로 전종목 재패를 해보고 싶어집니다. 돼지 생간 + 생파 조합의 꼬치도 있다는데 맛이 죽인다고 하니 이 역시 도전을! (그런데 돼지 생간은 기생충이 있지 않나요?)
  • 2위 : 다른 구루메 만화나 책에서 접했던 쿠마모토의 말고기 요리. 항상 먹고 싶었던 요리입니다.
  • 3위 : 야마가타의 냉메밀국수. 차가운 닭육수 국물이라는데 상상이 잘 안되네요. 식은 닭칼국수가 그렇게 맛있을리는 없을거 같은데... 괴식스럽기도 하지만 기대가 됩니다.

아울러 쉽게 그린 듯하지만 나름 정성이 엿보이는 그림(특히 음식 그림이 꽤 괜찮습니다)과, 뒷부분에 부록 만화와 사진, 그리고 이번 에피소드의 베스트 음식을 선정하고 있는 구성도 정리 차원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정보"라는 목적에 충실한 만화로, 에세이 만화, 그중에서도 식도락 구루메 탐방기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4/12/03

오무라이스 잼잼 4 - 조경규 : 별점 3점

오무라이스 잼잼 4 - 6점
조경규 글.그림/씨네21북스

1, 2, 3권을 모두 구입하기는 했습니다만, 2, 3권은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할인 가격에 구입했었습니다. 그래서 4권도 중고 서점 입고를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도서정가제 이후에는 할인폭이 크지 않을테고 중고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새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이전 권 리뷰에서 '어차피 인터넷에서 모두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을 이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깝다'고 적었었는데, 생각이 바뀌기도 했고요.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2,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450페이지가 넘는 풀컬러 책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는 괜찮으며, 인터넷과는 다른 아날로그적인 정겹고 따뜻한 맛은 단순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내 요리만화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콘텐츠 자체의 가치가 무척 높다는 장점도 큽니다. 지금은 국내에도 요리 만화가 웹툰 중심으로 제법 많아졌지만, 단순히 요리가 등장하고 레시피가 나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유로운 연상과 전개를 통해 요리와 에피소드가 어우러지는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구성은 여전히 발군입니다. 이번 권 역시 그러합니다. 미국 거주 시절 "인큐버스"라는 밴드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 톨리도라는 무척 한적한 도시를 찾아간 에피소드가 대게 이야기로 연결된다든가, 자기와 닮은 Sasa 씨 이야기에서 소보로빵, 멜론빵, 파인애플빵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이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요리에 대한 그림과 소개 모두 당장 먹고 싶게 만드는 요리 만화로서의 미덕도 충분하고요.
이러한 독특한 매력은 작가 조경규의 이색적인 이력 덕도 클 것입니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중국에서도 수년간 거주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겸 디자이너인데, 이시카와 쥰이 "만화의 시간"에서도 이야기했듯, 조금이라도 특이한 인생을 산 사람이 만화가로 유리하다고 하지요. 그 말대로라면 조경규 작가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인생을 산 셈입니다.

또 다양한 음식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부가적인 가치도 큽니다. 츄파춥스의 로고를 살바도르 달리가 디자인했다는 사실이나, 달리와 디즈니의 공동작업 애니메이션이 있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네요. 외에도 닭갈비의 유래나 다양한 연근 요리 등 읽을거리가 가득합니다.

총 24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가장 구미가 당기던 음식은 "차계란"이었습니다. 계란 장조림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지만, 소개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라 꼭 한번 따라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이전 권들과 동일하게 명확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무료로 볼 수 있는 웹툰과 비교한 가치가 얼마나 크냐는 여전히 애매합니다. 이번 권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부록이 특히나 별로입니다. 본편에 소개된 내용의 보강이나 외전 형식의 이야기, 만화로 제작된 레시피 등이 훨씬 가치 있었을 텐데, 정작 수록된 것은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맛집 소개나 재미없는 가족 만화가 대부분이니까요.

또 작가의 가족, 특히 아이들 소재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몇 안 되는 부록 페이지까지 아이들 사진과 그림으로 채워진 점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소재 면에서 보다 자유롭고 유연한 발상의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책을 구입한 독자를 위한 서비스에도 더 신경 써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작화는 물론 내용과 재미, 소개되는 요리의 가치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국내 요리, 음식 만화의 대표작임은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여러 번 다시 읽었기에 돈이 아깝지도 않고요. 1, 2, 3권 모두 열 번 이상 읽었으니까요. 요리, 음식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물론 이만한 금액을 지불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2014/12/02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박상현 : 별점 3점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6점
박상현 지음/따비

저자가 규슈 지역을 다년간 수차례 방문하여 직접 발로 뛰면서 맛본 다양한 요리들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책입니다. 

요리들의 과거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설명해 주는 부분은 만화까지 망라하는 다양한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간략한 미시사, 통사로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요리들의 현재는 현재의 맛이 어떠하며, 대표적인 가게는 어디에 있는지가 중심입니다. 때문에 일종의 맛집 탐방기이자 여행기로 읽히기도 하는데, 지금 해당 요리가 해당 지역에서 어떤 의미로 이해되는지를 설명하는 식문화 해설서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특히 요리의 발전 과정에서 일본, 그리고 규슈라는 지역 및 문화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 부분을 짚어내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메밀국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가 '고도의 숙련'이라서 단순한 반복작업에서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에 열광하고, 장인들이 대접받는다는 것입니다. 반복작업이 핵심인 탓에 재료가 천차만별이고 아이디어가 많이 가미될 수 있는 스시나 라멘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까지 소개하니 정말 장인의 메밀국수를 한 번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또 새롭게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여러 가지 요리들이나 상품들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요리'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이자 '상품'으로, 저자의 말대로 '스토리'와 '경험'을 파는 것들입니다. 온천 마을에서 명물 음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온타마란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무엇이 되었건 온천 달걀만 올려서 먹을 수 있으면 되는 기획 상품으로, 온타마란돈을 찾아다니는 여행 코스마저 개발되었다는군요. 현대에 새롭게 발굴한 식문화 상품인 셈이지요. "맛의 달인"이나 "신장개업" 등의 만화에 흔히 나오는 단순한 지역 특산 별미 음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제 직업이 일종의 경험 디자인이라 그런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그 외에 문체도 깔끔하고 사진과 편집도 완벽한 수준이라 읽는 재미를 더해주며, 저자가 맥주를 사랑한다는 것이 글 전반에 묻어나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진짜 맛있는 음식이라면 술 한잔이 빠질 수 없지요!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맛집 소개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거의 절반 정도의 분량이 평범한 블로거의 일본 맛집 탐방기와 다를게 없거든요. 사진만 봐도 맛있어 보이고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제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돈가스의 탄생"이나 황교익, 주영하의 책들처럼 음식에 대한 통사나 미시사적인 시각이 더 비중 있게 다루어졌지기를 바랬는데 말이지요.

또 제목 그대로 "규슈"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지방에 대한 소개는 부족합니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규슈만 돌아다녀도 일본의 식문화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목부터가 "규슈를 먹다"인데 다른 지방 먹거리가 없다는 단점은 말도 안 되는 트집일 수 있고요. 하지만 그래도 진짜 맛있는 음식은 도쿄에 많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도 진짜 맛있는 회는 산지가 아니라 서울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또 도쿄 쪽이 실제 방문할 기회나 가능성이 더 높기도 하고요.

아울러 가격 역시 쉽게 권해드리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책의 완성도와 만듦새는 훌륭하나, 비례해서 만만치 않은 가격을 자랑합니다. 조금만 더 저렴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사소할 뿐, 재미와 의미, 자료적 가치를 모두 포함하는 책이기에 식문화나 음식 역사 관련 서적, 혹은 맛집 구루메 기행과 같은 책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덧 : 이 책을 통해 스시장인 지로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로의 스시를 먹어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014/12/01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 레이먼드 챈들러 / 안현주 : 별점 3점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 6점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북스피어

레이먼드 챈들러의 다양한 편지들을 주제별로 모아놓은 서간문집입니다. 창작관과 인생관은 물론 헐리우드에서의 생활, 고양이, 아내와의 사별과 그녀에 대한 사랑 같은 일상사와 농담들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다양한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창작론, 창작관에 대해 쓴 편지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작가 지망생이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들입니다.

  • 챈들러 스타일로 글을 쓰는 방법. 쓸 수 있을 때는 쓰고, 쓸 수 없을 때는 쓰지 않는다. 전업 작가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꼭 글을 써야 할 필요는 없고, 내키지 않으면 굳이 애쓰지도 말아야 한다. 다만 다른 어떤 일도 하면 안 된다. 글을 쓰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말 것. 아주 간단한 두 가지 규칙. 첫째, 글을 안 써도 된다. 둘째, 대신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
  • 작가란 몹시 고된 직업이다.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다. 글로 먹고살 가능성은 아주 낮다.
  • 창작 교육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미 출간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알아낼 수 없는 건 하나도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도움이 된다는 건 인정하고 때로는 필수적이기도 하나, 그걸 위해 돈을 내야 한다면 대체로 수상쩍은 것이다.
  • 나도 그저 그런 추리소설이 너무 많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엄밀히 보면 모든 종류의 책들이 다 그저 그렇다.
  • 내가 만난 어떤 추리소설가도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좀 더 잘 쓰고 싶어할 뿐.

다른 작가와 작품을 평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임스 케인에 대해 '문학계의 쓰레기', '매춘부의 집 같다'라고까지 엄청나게 비하하는게 눈에 띕니다. 선정적이고 날것의 문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렇게까지 비판할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중배상"의 각본을 쓴 것이 몹쓸 경험이었던 걸까요? 또 편집자에게 쓴 이러한 돌직구 평가 편지 뒤에, 제임스 케인에게 직접 쓴 편지가 이어지는 책의 구성도 재미있었습니다. 뒷담화하다가 본인과 대면한 술자리 느낌이에요. 편지의 내용은 평범했습니다만.

로스 맥도널드의 '녹이 여드름처럼 돋아있다' 같은 문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허세라고 여기는 시각도 특이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서정적 문체가 맥도널드의 작품을 다른 하드보일드와 구분짓는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요. 아무래도 챈들러는 정직한 직구 승부로 일관해서 그랬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임스 해들리 체이스에 대해서도 싸구려 소설이라고 매도하는데, 이는 자신과 대실 해밋의 문장을 표절한 것에 대한 정당한 비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반대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건 서머싯 몸과 오스틴 프리먼, 피츠제럴드입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호평을 아끼지 않더군요. 피츠제럴드는 그럴 줄 알았습니다만 펄프 픽션의 제왕 얼 스탠리 가드너와 페리 메이슨 시리즈를 엄청나게 높이 평가하고 있는건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문학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그다지 높이 평가할 만한 작품들은 아니라 생각하는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제가 아주 재미있게 본 히치콕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시나리오 초고를 챈들러가 썼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챈들러의 막말 때문에 히치콕이 그를 해고했고, 초고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고 하네요. 초고 그대로 영화가 만들어졌더라면, 범죄소설과 범죄영화의 거장이 손잡은 진정한 콜라보를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말조심 좀 하지... 면전에서 대놓고 욕을 한 뒤, 편지로 구구절절 자기 해명을 늘어놓는 모습은 썩 보기 좋지 않았고요.

"빅슬립" 시나리오 작업 중 언급된 최고의 멋진 장면에 대한 소개도 기억에 남습니다. 보가트와 카멘이 가이거의 집에 갇힌 뒤의 이야기인데, 덕분에 "빅슬립" 영화를 다시 봐야 할 이유가 하나 생겼습니다.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편지에 언급된 대로라면 정말 멋진 장면이었을 것 같거든요.

하여튼, 결론적으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인물에 대해 상세하게 알 수 있고, 당대 헐리우드 및 추리문학계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과 재미도 얻을 수 있는 독특한 서간문집입니다. 가격 대비 분량이 짧다는 점에서 감점하지만, 하드보일드 팬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임은 분명합니다. 그나저나... 국내에서는 하드보일드의 거장이라서가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팔린다니 괜히 서글퍼지네요.

2014/11/28

그래서 누구라는건지?

"kt, 이대형·용덕한 낙점… 특별지명 9명 발표"

오피셜 기사에서는 오현택 선수가 아니라 정대현 선수로 발표되었네요.

정대현 선수는 개인적으로 유희관 선수의 약간 다운그레이드 버전 정도로 보이며, 딱히 터질 만한 포텐셜이 있는 선수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두산 입장에서는 싸게 잘 막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KT는 어떤 점을 보고 이 선수를 지명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래도 정대현 선수라면, 선수 본인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팀 입장에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정대현 선수의 무운을 빕니다.

그리고 이대형 선수는 정말로 지명되었군요. 이건 참... 충격적입니다.

정말인가? 두산베어스 20인 외 지명

"두산 베어스 20인 예상"

오피셜인지는 모르겠지만 관련 기사가 떴습니다. 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LG - 배병옥 / 삼성 - 정현 / 롯데 - 용덕한 / 두산 - 오현택 / SK - 김상현 / 한화 - 윤근영 / NC - 이성민 / 기아 - 이대형

제 분석에서도 오현택 선수는 20인 보호 명단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었는데, 아무래도 정재훈 선수를 보호한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변진수, 오현택, 김재환 선수 중 한 명이 지명될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베어스 팬들의 예측이었죠.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KT 입장에서는 김성배 선수급으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수라 생각합니다. 마무리 투수로 중용될 가능성도 있고요. 앞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두산 역시 이번 사태를 계기로 10억 원을 잘 활용해 전력 보강에 충실해야겠지요.

그나저나 이대형 선수의 이적은 정말 충격과 공포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기아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2014/11/26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 별점 3점

노년의 알츠하이머 환자인 전직 연쇄살인마가 화자로 등장하여, 딸과 결혼하겠다는 신세대 연쇄살인범과 대립한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김영하 작가는 최근 가장 잘 팔리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으로 알고 있는데,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았습니다. 어디선가 관련 리뷰를 본 뒤 호기심이 생겨 읽게 되었네요.

중반부까지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무엇보다도 설정의 흡입력이 강한 덕분입니다. 기억이 토막나고 과거와 현재, 현실과 광기가 뒤섞이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전개도 인상적이었고요. 굳이 비교하자면, 단기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는다는 영화 "메멘토"를 소설로 풀어 쓴 느낌입니다. 정말 숨 돌릴 틈 없이 책장이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킬러가 주장해 온 모든 기억, 다시 말해 소설 대부분의 전개가 사실은 허구였고 그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광기였다는 식의 결말은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는 아쉬웠던 점입니다. 진상에 대한 복선이 조금만 더 정교하게 배치되었더라면 완성도가 훨씬 높아졌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작가의 의도도 그러하지 않았을 테니 이런 점을 지적하는 것 자체가 과한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킬러와 신세대 킬러의 대결이라는 설정 자체가 매력 넘쳤던 만큼, 이 이야기를 본격 추리-스릴러로 풀어냈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알츠하이머라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인이 원거리 공격에 능하다거나, 몇 가지 장치들이 추가되었다면 균형이 맞는 구도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죠.

하여튼,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스릴러물 관점에서 접근했기에 최고점을 주기는 어려웠지만, 재미 측면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젊은 한국 작가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고, 전개와 묘사에서도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았으니까요.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4/11/25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6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6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 박물관 사건목록 25"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첫 번째 이야기는 "곤돌라"입니다. 잘나가는 요리연구가가 금전을 요구하며 협박한 처남을 살해하는 사건으로, 범인의 시점에서 범행 과정이 먼저 그려지는 도서 추리물입니다. 

사고사로 위장하는 전개에서 일종의 순간이동 트릭이 사용되는데, 추리적으로는 큰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피해자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느낌이 없어서 감정 이입이 어려웠고, 피해자가 죽지 않은 경우에 대한 대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 전체 트릭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곤돌라를 바꿔치기하는 트릭은 현실성이 부족합니다. 경찰들이 이 정도도 밝혀내지 못한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스키를 신고 있었다는 증언을 뒤집는 장면도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냥 우겨도 뒤집을 수 있는 확증이 없는 상황이니까요.
아울러 Lionheart님 리뷰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타츠키가 보험 조사원으로 수사에 나서는 설정도 이상했어요. 범인이 어린 소녀 조사원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준다는걸 납득하기도 어려웠고요.

그래도 타츠키가 범인의 증언 속 맹점을 짚어내는 장면, 그리고 정전 상황에서 피해자가 보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은 꽤 괜찮았습니다. 마지막에 피해자가 반지를 삼켰다는 사실도 인상 깊었는데, 이는 결정적인 증거이자 피해자의 마지막 의지이기도 해서 강하게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다만 C.M.B의 특징인 박물학적 정보도 없고, 신라가 "경이의 방"으로 안내한 대가조차 없어서 "Q.E.D"에 더 어울렸을 에피소드입니다. 스핀오프 시리즈가 존재할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두 번째 이야기는 "라이온 랜드"입니다. 케냐에서 사자에게 물려 죽은 마사이 전사 사건과 핵심 증인인 소년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기억을 지워 슬픔을 잊게 만드는 초원의 전통 의사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연구진들의 조사 방식과 사자 생태계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이 C.M.B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렸고, 슬픔을 지우는 약이 있다는 설정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비슷한 설정은 많지만 아프리카라는 특이한 무대 덕분에 신선하게 느껴졌고, 악어의 습격에서 벗어나는 장면 등 신라의 의외의 활약도 인상 깊었습니다.

추리적인 측면에서도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사자의 반복된 습격을 단서로 진범을 추리해내는 과정도 논리적이며, 소년 하가가 살아남고 전사 오딘가가 창을 이상하게 들고 있었던 이유, 하가가 밀렵을 도운 동기들도 모두 제대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굳이 1, 2부로 나눌 만큼 긴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1부 정도로 마무리했더라면 더 응집력 있는 이야기였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징조"입니다. 신라가 우연히 구입한 목걸이를 계기로 펼쳐지는 문화대혁명 관련 이야기입니다. 추리 요소는 거의 없지만, 실제 당사자의 증언을 통해 문화대혁명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학습만화적 구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부모까지 폭행했던 집단 광기와, 당시 중국의 정치·사회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아주 뛰어났어요. 

그러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새옹지마 이야기는 흐름상 다소 뜬금없었고, 결말도 다소 뻔하게 느껴지는건 조금 아쉽네요. 목걸이에 상징성이라도 더했더라면 더 좋은 마무리가 되었을 것 같고요. 그래도 하지만 박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C.M.B다운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첫 번째 편을 제외하면 C.M.B의 특성인 박물학적인 정보 전달도 잘 되는 편이고요. 이 정도면 다음 권도 기대해볼 만합니다. 다만, 추리적으로는 다소 아쉽긴 합니다. 

덧붙이자면, 이전 리뷰에서도 지적했지만 타츠키의 공기화는 이제 심각한 수준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트릭 증명에 한몫했고,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협박자를 물리치는 활약을 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히로인이라기보다 보디가드 역할일 뿐입니다. 캐릭터 재정립이 정말로 필요해 보입니다.

2014/11/24

큐이디 Q.E.D 48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큐이디 Q.E.D 48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 큐이디 46"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3점

50권을 향해 달려가는 전통의 시리즈입니다. 이전처럼 47권을 건너뛰었는데, 왜 이렇게 발간 속도가 빠른지는 모르겠네요. 여하튼, 이번 권에는 아래와 같은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는 "대리인"으로, 얼굴을 알 수 없는 복면 작가의 유일한 편집 대리인이 살해당한 뒤 가나의 사촌이 견습임에도 불구하고 대리인 대행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룹니다. 살인사건이 등장하므로 일상계라고 하긴 어렵지만, 이야기는 무난하고 잔잔하게 전개됩니다. 중심 내용이 복면 작가의 원고를 받아오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얼굴을 모르는 작가라 하더라도, 21세기에 누군가를 죽이고 그 사람인 척 살아간다는 핵심 트릭과 전개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극단적인 개인화가 진행된 탓에, 이웃과 소통이 없어서 몰래 들어와 사는 것 정도는 가능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자면, 공인인증서나 카드 비밀번호를 모르면 경제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니 장기간 생활은 힘듭니다.
추리적으로도 자살 사건의 모순—왜 높은 나무 가지에 올라갔는가—는 나름 그럴듯하지만, 너무 명백해서 경찰이 이를 놓쳤다는 설정은 문제입니다. 시체를 숨기는 장소에 대한 트릭도 실제 가능했을지 의문이며, 결국 발견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고요. 트릭이나 동기를 몰라도 범인을 쉽게 유추할 수 있고, 경찰 수사로도 충분히 밝혀낼 수 있다는 점—지문 감식 등을 포함하여—도 큰 단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과 전개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도착의 론도"처럼 설정을 한 번 비트는 시도가 있었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살인사건 없이 원고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상계로 꾸미는 편이 더 깔끔했을 것 같네요.

두 번째 이야기는 "파이하의 화집"으로, 모로코 왕국의 똑똑하고 당찬 소녀 파이하가 우연히 밀입국 선에서 발생한 마약 밀수 사건에 연루되지만, 이를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알렌과 에리 커플이 등장한건 좋았는데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사건의 진상이 너무 단순했던 탓입니다. 그리고 설정이 전혀 현실적이지 못했습니다. 선장을 죽인 뒤 일부러 총격을 유도했더라도, 배가 나포되면 부검을 통해 선장의 사망 원인이 드러날테고 마약도 결국 회수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이런 사건에 구태여 토마를 끌어들인 알렌의 행동도 이해하기 어렵고요.

블로그 이웃 Lionheart님 리뷰처럼 유럽 전역을 종횡무진하는, 항상 열정적이며 자신을 믿는 파이하의 매력과 행동력은 감탄스럽지만, 그 외에는 특별히 건질 것이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권의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기대에 못 미쳤을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평균 이하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연속으로 강력사건이 벌어지는 구성도 별로였고요. 오히려 일상계 에피소드가 수록되었더라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다음 권에서는 "Q.E.D"의 진짜 매력이라 할 수 있는 일상계 이야기가 등장해주기를 바랍니다.

2014/11/21

허큘리스 (2014) - 브랫 래트너 : 별점 2.5점

[블루레이] 허큘리스 : 극장판 & 확장판 - 6점
브렛 래트너 감독, 존 허트 외 출연/워너브라더스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모험으로 신격화된 영웅 "허큘리스"와 그의 동료들은 트리키아의 왕 코티스에게 고용되어 반역자 레수스와의 전쟁에 나섰다. 그러나 승리하자마자 허큘리스는 진짜 악당이자 흑막은 코티스 왕이었다는걸 깨닫는데...

한때 할리우드에서 잘 나갔지만, 최근에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브렛 래트너 감독의 신작입니다. 화려하고 발랄한 액션 영화에 강했던 감독이라 고대 서사물, 이른바 에픽 영화에는 어울릴까 걱정스러웠는데, 의외로 화면은 꽤 깔끔했습니다. 전사, 궁수, 예언자 Munk(창을 다루는), 도적(단검), 광전사, 음유시인 등으로 구성된 허큘리스 파티원들이 각자의 특기를 살려 벌이는 전투 장면도 잘 만들어져 있고요. 특히 중반부, 급조된 군대를 이끌고 벌이는 야만인과의 전투에서 종족(?) 특성을 잘 활용한 전개가 인상 깊었습니다. 박빙이었던 전세가 전차 두 대에 썰리며 허무하게 끝나는 장면은 다소 당황스러웠지만요.

액션 외에도 "허큘리스가 신화 속 존재가 아니라 실존 인물일 수 있다"는 설정도 흥미를 자아냈습니다. 허큘리스의 모험은 괴물을 상대한게 아니라 가면을 쓴 인간들과의 싸움이었다는 식으로 설명되는데, 꽤 그럴듯했거든요. 오히려 이 설정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캐스팅도 적절합니다. 허큘리스 역의 드웨인 존슨, 일명 더 락은 비주얼적으로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트로이"의 브래드 피트나 에릭 바나는 최강의 전사로 보이지 않았었는데, 드웨인 존슨은 실제로 혼자서 사자 한 마리쯤은 때려잡을 것처럼 보이니까요. 아무래도 영화 특성상 연기력보다는 이런 외모가 훨씬 중요하지요. 그 외 캐스팅도 존 허트(코티스 왕 역), 단역에 가깝지만 조셉 파인즈(에우리스테우스 왕 역)가 등장하는 등 나름 충실합니다.

하지만 아주 좋은 영화냐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전개에 헛점이 많은 탓입니다. 첫째, 돈 받고 싸우는 용병인 허큘리스가 왜 정의감을 앞세워 쓸데없는 전쟁을 벌이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둘째, 코티스가 악역으로 밝혀지는 과정과 그 이후의 전개입니다. 반란군을 제압하려고 용병을 고용한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으며, 강해진 군대를 바탕으로 제국을 건설하려는 건 군주로서 자연스러운 욕망입니다. 그런데도 코티스가 악역으로 설정되고, 허큘리스가 그를 제거하면서 제국의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전개는 납득이 어렵습니다. 트리키아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허큘리스가 철천지 원수가 아닐까요?
또한 아리우스를 볼모로 허큘리스 일행을 협박하는 장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코티스가 이미 아리우스를 후계자로 인정한 상태라면 죽일 이유도, 협박이 성립될 이유가 없습니다. 공주의 행동도 납득하기 어려워요. 아리우스가 좋은 왕이 될 거라고 믿는다면 코티스를 막지 말고 그냥 제국을 건설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더 이득이니까요. 결과적으로 허큘리스가 돌아와 코티스를 물리치지 않았더라도 전세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며, 괜히 동료 한 명만 죽은 셈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허큘리스가 신화적인 영웅으로 거듭나는 연출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전투 중심의 전개에서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지는 바람에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실전 이종 격투기 시합을 하다가 갑자기 프로레슬링으로 변해버린 느낌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연출 자체는 나쁘지 않고, 제작비가 적절히 쓰인 흔적도 있으며, 흥미로운 아이디어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다소 부족하며, 서사적 설득력도 떨어집니다. 그래도 머리를 비우고 즐기는 킬링 타임 용에는 적절하며, 더 락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트리키아 군대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는 허큘리스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If you smell~”을 외칠 것 같았습니다. 에우리피데스나 코티스에게 락 바텀을 날려주었더라면 아주 좋은 팬 서비스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웰컴 투 더 정글"처럼 말이죠.

2014/11/20

맹독 - 도로시 L. 세이어즈 / 박현주 : 별점 2.5점

맹독 - 6점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 추리소설가 해리엇 베인은 전 애인 필립 보이스를 비소로 독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녀에게 반한 피터 윔지경은 배심원 합의 실패로 생긴 한 달간의 유예 기간을 이용해 그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사건에 뛰어드는데...

귀족 탐정 피터 윔지경 시리즈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에도 36위로 선정되어 있지요.

시리즈가 워낙에 유명해서 이전에 두어 권 읽어본 적은 있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작품은 예상 외로 재미있더군요. 그동안 제가 이 시리즈를 재미없게 느끼게 만들었던 가장 큰 원흉인 피터경이 이번에는 꽤 친근하게 다가온 덕이 큽니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중간중간 유식한 티를 내는 인용 문구, 과시적인 소비 행태, 그리고 첫눈에 반했다는 이유 하나로 해리엇 베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사 중의 신사, 귀족 중의 귀족이라는 여성 판타지를 집대성해 놓은 비현실적이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캐릭터 속성은 여전합니다. 그래도 이번엔 꽤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묘사되어서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보다는 훨씬 낫더라고요. 공부 잘하고 돈도 많은 엄마 친구 아들이지만, 허술한 데도 있고 유쾌해서 밉지 않은 친구처럼 느껴졌거든요. 연예인으로 따지자면 유희열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여신님"의 베르단디를 여성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이런 것일까 싶은데, 남성 독자인 제게는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당대 인기 시리즈 주인공다운 매력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작품 뒤 해설을 보니, 도로시 세이어즈 여사 본인이 작중 해리엇 베인처럼 농락당하고 버려진 경험이 있었고, 이 작품에서 그 반대의 이상향을 심혈을 기울여 투영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수긍이 갑니다.
그 외 등장인물들도 인상적입니다. 못하는 게 없는 집사 번터의 활약도 눈에 띄였고, 종교로 개심한 전직 금고털이 빌은 완전 씬 스틸러 수준이었습니다. 이제 평범한 열쇠장수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인물인데, 피터경이 칭찬하자 “이런 승리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정말 유쾌했어요.
이러한 캐릭터 묘사는 번역의 힘도 커 보입니다. 이전에 "동서추리문고"로 읽었던 다른 작품들도 제대로 번역된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들 외에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추리물로의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탓입니다. 마지막에 피터경이 "비소 과자"를 대접하며 벌이는 추리쇼는 꽤 기발하고 재미있지만, 그 외의 추리 전개는 고전 황금기 걸작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범인의 정체와 동기가 작품 초반에 드러나버리고 마니까요. 

경찰 수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피터경 홀로 사적인 네트워크와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수사하여 해결한다는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결정적 역할은 머치슨양이나 클림슨양 같은 피터경의 부하들이 맡고, 단서를 밝혀내는 과정에서도 우연이 너무 많이 작용하는 문제도 큽니다. 머치슨양이 자물쇠 따기를 직접 배우는 디테일은 좋았지만, 클림슨양이 유언장을 발견하고, 머치슨양이 비밀 공간을 발견하는건 거의 우연에 의한 것이었거든요.

트릭은 "어떻게 비소를 먹였는가?"라는 한 가지 뿐인데, 이 역시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핵심은 독에 대한 내성을 키웠다는건데, 이런 이론이 실제로 가능한지 부터가 의문이에요. 오히려 몸에 독이 축적되어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대실 해밋의 단편  "파리 종이"와 비교해도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몇몇 작위적인 설정도 눈에 거슬립니다. 몰래 어쿼트의 모발을 입수하여 비소 검사를 한다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이미 유언장 위조라는 정황증거가 충분하기 때문에 당연히 체포 후 정식으로 모발 검사를 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피터경의 귀족 마인드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도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피터경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대표작이라는 점과, 여성 부하들의 활약을 여성 첩보원처럼 그려낸 부분은 인상적이며 007 시리즈처럼 경쾌한 진행은 시대를 앞서간 듯한 매력이 있지만, 추리적인 완성도 면에서 부족하기에 감점합니다. 작품 수준만 놓고 보면 동 시기에 크리스티 여사와 자웅을 겨뤘다는 것이 솔직히 잘 믿기지 않네요. 귀족 탐정이라는 캐릭터가 인기의 비결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읽은 피터 윔지경 시리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아직 피터경 시리즈를 읽지 않으신 분들께는 입문작으로 추천드립니다. 특히 여성 독자분들에게는 조금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4/11/19

세계적인 과학수사 - 콜린 에번스 / 김옥진 : 별점 3점

세계적인 과학수사 - 6점
콜린 에번스 지음, 김옥진 옮김/가람기획

과학 수사, 법의학 관련 서적입니다. 건당 길어야 열페이지를 넘지 않도록 요약되어 있어서 전체 분량은 450페이지를 조금 넘는 정도네요. 크게 아래의 15개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1. 프로파일링
  2. 시신의 신원확인
  3. 혈청학
  4. 사망시각
  5. 독극물학
  6. 탄도학
  7. 사망원인
  8. 문서감정
  9. DNA분석
  10. 폭발물과 화재
  11. 지문감식
  12. 법인류학
  13. 치의학
  14. 흔적증거
  15. 성문

"과학" 수사가 주제인 덕분에 가장 오래된 사건도 19세기 후반 사건입니다. 특정 사건으로 인하여 해당 기술이 유명해진 것들이 많기 때문에, 주로 20세기 초반까지의 사건들이 주요하게 다루어지고요. 20세기 후반 유명 범죄도 몇건 있기는 하지만, DNA 분석과 같은 신기술이거나 너무나도 유명해서 빼기 어려웠던 사건들에 한합니다. 주제로 삼은 15개 항목의 대부분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실제 사건을 통해 그 실효성이 검증된 것들이니 당연하겠지요.

익히 알고 있던 사건도 많지만, 관련하여 처음 알게 된 사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사코와 반체티 사건은 일종의 인종차별, 정치적 탄압으로 이루어진 사건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탄도학으로 범행에 사용된 총알이 사코의 총에서 발사된게 증명되었다는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놀랍게도 사코가 범인이라는 뜻입니다.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도 범인이 누명을 썼다고 생각해 왔었지만,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사다리와 용의자 하우푸트먼의 집에서 발견한 재료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명백한 흔적 증거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입니다. 모호한 부분도 없지는 않으나, 이 정도면 범행에 깊이 관여한 것은 분명하기에 유죄판결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20세기 초중반 범죄자들이 완전범죄를 노리고 벌였던 사건들도 인상적입니다. 독극물 검사를 빠져나가기 위해 동공을 일부러 확장시키기 위한 아트로핀을 투입했던 로버트 뷰캐넌 사건, 남편을 독살했는데 남편에게 가져다 주던 커피를 실수로 흘린 것 때문에 발목이 잡힌 에바 레이블런 사건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니벌 알모도바르 사건과 같은 조금 어설픈 알리바이 공작들도 몇 개 눈에 띄이고요. 시대를 막론하고 범죄자들의 생각은 다 비슷한 것 같네요.
또 팬암의 여승무원 헬레 크래프츠 살인사건은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범행을 재구성할 때 유력한 용의자인 남편 리처드가 냉동고와 나무분쇄기를 구해 놓았었다는 점에서 영화 "파고"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나비성"이었나 "적색등"이었나.. 여튼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 중 하나에서도 분쇄기로 시체를 갈아버리는 트릭이 등장했던 기억도 났고요. 여튼 수사관들이 나무분쇄기로 시체를 뿌린 서토닉 강을 샅샅이 뒤져 소량이지만(책에 따르면 인체의 1/1000 정도) 사체를 찾아내어 범인을 유죄로 만들 수 있었다니 다행일 뿐입니다.
그 외에도 작업복 한 벌 분석을 통해 범인의 모습을 거의 실제처럼 묘사해 낸 도트레몽 형제 사건, 침대에서 발견한 1cm 정도의 털 한가닥으로 범인이 밝혀진 낸시 티터턴 살인사건, 방문자를 대접한 형태로 봤을 때 아주 친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피해자의 옷과 범인의 옷에서 발견된 흔적 증거로 범인을 잡아낸 로저 페인 사건 이야기 등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러한 수록 사건들 중 최고를 꼽자면 프레더릭 스몰 사건입니다. 집에 큰 불을 질러 범죄 흔적을 지워버리려 했지만 방바닥이 먼저 타올라 아내의 시신이 침실에서 지하실로 떨어져 발목을 잡힌 사건인데, 이유는 범인 스몰의 인색함 때문입니다. 본인 스스로 싸구려 판자로 지하실 천정의 일부를 다시 만들었는데, 바로 그곳으로 굴러 떨어져 버린 것이거든요! 큰 범행을 앞둔 인간이 쪼잔하게, 인색하게 굴면 안되는 법입니다. 특히 살인에는 돈을 들여야죠. CMB 20권의 에피소드에서 처럼요.
남편 살해를 완벽하게 저질렀지만 의사가 사고가 아닌 폐기종으로 진단한 사망확인서 때문에 스스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사건 수사를 진행하게 만든 스텔라 니켈 사건도 비슷한데, 스텔라는 조금이나마 돈을 받은 시점에서 포기했었어야 합니다. 하긴 도박판에서 돈을 조금 딴 시점에서 일어난게 가장 힘들다고는 하니까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허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너무 요약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개략적으로 훝어본 뒤, 정말 깊은 관심이 생기는 사건은 별도의 다른 책을 찾아보게 만드는 일종의 안내서와 같은 역할 정도에 그칩니다. "손과 낵" 사건이 궁금하다면 타블로이드 전쟁을 찾아보는 식으로요. 덧붙이자면 이전에도 언급했던 가람기획의 책 답게 번역이나 책의 만듬새는 약간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풍성하고 재미도 있으면서도 자료적 가치도 높은 책이 도서정가제 실행을 앞둔 할인 열풍으로 50%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되고 있으니 고맙기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격을 생각하면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네요. 이런 류의 책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 1 : 그나마 잡힌 사건만 수록되어 있는데 용케 빠져나간 범죄자는 얼마나 많을까요?

2014/11/18

가문의 영광

카카오 모바일 백일장 응모작입니다. 2천자 정도 되는 초단편 공모전으로 오래전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가지고 퇴근길에 뚝딱 써서 응모한 것이죠. 당연히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오랜만에 글이라는 것을 써 보았기에 블로그에 공개합니다. 짧은 만큼 한번 읽어보시고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뼈대 있는 가문의 3대 독자는 제법 많다. 그러나 광호처럼 용이 승천하며 춤을 추니 온 백성이 기뻐했다는 태몽과 태어나는 순간에 하늘에 상서로운 빛을 뿜는 무지개가 걸려 출생을 반긴 아이는 드물 것이다.

마침 태어난 해가 나라가 둘로 나뉘는 전쟁이 일어나고 격변의 혁명기를 거치며 국가적인 탄압 때문에 일찍이 융성했던 그의 가문이 몰락의 정점을 찍은 해였기에 태어날 때부터 집안의 꿈과 미래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였으며 그의 집을 우연히 방문한 수수께끼의 전도사가 신생아 광호를 보고 흠칫 놀라며 장차 이 나라의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예언한 것은 그에게 걸린 기대와 꿈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가문의 침몰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고조부의 현명한 경영을 '가혹하다'고 비난한 무지몽매한 소작농들과 그에 편승한 이들의 야합, 고조부가 돌아가신 뒤 그나마 남아 있던 재산을 조부가 모조리 쌀과 금으로 바꿔 월남한 후 십수 년 만에 가문은 그야말로 거덜이 나고 말았다.

장하게도 어린 광호는 개의치 않았고 출생에 얽힌 전설을 들을 때마다 자부심은 더욱 커져갔다. 이러한 자부심에는 그 스스로 어렸을 적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길을 잃은 후 혼자만의 힘으로 다시 돌아오는 등의 남다른 유년기와 성장기도 큰 몫을 담당했다. 그래. 이건 더욱 큰 성공을 위한 시련일 뿐일 거야.

허나 약속된 듯했던 빛나는 미래는 나이를 먹을수록 꼬여만 갔으며 가장 큰 이유는 뛰어난 인물을 수용할 수 없었던 무식한 독재국가의 망할 교육 제도 탓이었다. 어찌어찌 이름 없는 3류 대학이지만 대학에 합격하고 순탄히 졸업한 기쁨도 잠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를 시기하는 모종의 거대한 국가적 음모가 작용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사회인이 된 광호 앞에 놓이게 된 현실은 순탄치 못했고 그의 입사원서와 이력서는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탈락할 뿐이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성공하려면 사업이지! 굳은 결심을 한 광호는 여러 정보를 종합하고 소개받은 뒤에 주위 사람들의 인망과 협조를 얻으면 성공할 수 있는, 두 단계 정도의 소비자만 확보하면 장기적인 고수익이 가능한 신종 사업에 몸을 의탁하였다. 주위에서 사기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뛰어난 안목, 선견지명에 질투하는 천한 것들에게 광호는 냉소를 남기고 찬란한 성공으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오호통재라! 광호의 차세대 사업은 대한민국 실정법과는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이것은 그의 성공을 가로막고 음해하려는 조직이 국가적인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으리라. 이러한 국가적 음모와 맞서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주위의 도움이 필요했고 광호는 자금 융통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녔으나 국가에 대항하는 싸움의 결과는 뻔했다. 무력하게 쓰러지고 남은 것은 자석요 몇 세트뿐이었다. 광호는 절망했다.

어떻게 하면 가문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한 광호는 엄청난 이자지만 즉시 현찰을 융통해준다는 조직을 통해 천만 원이라는 자금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는 가문을 위한 마지막 비책을 가슴에 품고 길을 떠났다.

"형님 그 놈을 찾긴 찾았습니다만...."
"요점만 얘기하자구. 계룡산까지 가서 뭐한 거야?"
"그놈. 아무래도 미친 거 같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돈은 어떻게 된 거야? 정말 땅에 묻어 놓은 거였어?"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형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놈 따라 계룡산 어딘가로 하염없이 올라갔는데 땅이 어느 정도 파져 있는 구덩이 하나가 나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구덩이에 들어가서 파내기를 한 두어 시간 했나... 갑자기 구덩이에 드러눕더니 돈은 한 푼도 없다고, 파묻던지 말던지 알아서 하라면서 비웃더라고요."
"이런 썅! 그걸 그냥 놔뒀어!"
"그럴 리가요. 삽으로 대가리를 날려버리고 그냥 그곳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그나마 우리가 구덩이 팔 수고는 덜었잖아요?"
"재수가 없으려니 나원참 별 거지 같은 꼴을 다 당하네. 뭐 할 수 없지. 액땜한 셈 치자고. 윤 실장 수고 많았어. 근데 도대체 그 새낀 거긴 뭐하러 가서 6개월이나 비비며 우리 돈을 거덜 낸 거야?"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미친놈 생각을 어찌 알겠어요."

--- 여보. 이 문자 메시지가 마지막이 될 것 같소. 3일 안으로 연락이 없으면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시오. 그래도 묫자리는 거액을 들여 알아본 명당이니 우리 가족일은 잘 풀릴 거라오. 못난 남편의 마지막 노력이니 나중에 묘비나 세워주시오. 충남.... ---

어떠셨나요? 좀 더 소설처럼 썼더라면 읽기도 편하고 완성도도 조금이나마 나아졌겠지만, 글자수 제한 때문에 이상한 시놉 형태로 완성되어서 조금 아쉽네요. 그래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카카오 백일장은 시스템이 정말 거지 같아서 또 응모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네요. 제가 써서 응모한 소설인데 공유도 제한적이고 검색도 안된다니....

덧 : 2025년 6월 13일, 챗 GPT로 생성한 일러스트도 추가합니다.

2014/11/17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가 출판사 신초샤와 함께 한 기획 기행문.

쥬신쿠라의 아코 낭사들이 기라 저택을 습격한 후 센가쿠지 절로 철수했던 길을 따라 걷기, 시중에 조리돌리기한 뒤 효수했다는 당시 루트를 따라 걷기, 하코네 관문을 돌파하여 나가기 등 실제 에도시대의 역사적인 일이나 풍습, 관습을 체험하며 따라 해 보는 재미난 기획물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뿐더러, 당시 있었던 실제 디테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조리돌리기 편에서 어떤 죄가 이에 해당되는지를 알려주는 식으로요. 에도시대에 관심이 많다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번역도 꼼꼼히 잘 되어 있으며 주석도 충실해 공부하면서 읽는 맛도 괜찮았어요. 글 자체도 맛깔나고 재미있게 쓰여 있고요.

아울러 미야베 미유키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점들도 반가왔습니다. 의외로 유쾌한 분이더군요. 진중한 여사님 이미지와 달리 에도 토박이임을 강조하면서 자학개그를 펼친다든가, 함께 하는 멤버들에게 제멋대로 별명을 붙이는 등 유쾌발랄한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글을 통해 자신의 작품 "혼조 후카가와의 기묘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솜씨도 일품입니다. 물가에 가면 "스케키요의 다리"가 꽂혀 있을 것 같다는 추리소설가다운 코멘트도 좋았고, 편집자가 이야기한 가도카와에서 투자하는 관람형 설치물(스케키요의 다리가 위아래로 움직인다는 장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실제 설치되었다면 정말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그러나 세 번째까지는 기획 의도에 충실한 산책 기행문인데, 이후에는 황거를 둘러보거나 유배지였다는 하치조지마로 바캉스 여행을 떠나는 등 내용이 다소 변질되어 아쉽습니다. 끝까지 제대로 달려주었다면 아주 좋았을 텐데 흐지부지 끝난 느낌이에요. 이렇게 마무리할 거였다면 중반에 나온 "독부 미유키" 설정을 끝까지 유지해서 다른 기획으로 이어갔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

또한 지루한 부분은 정말 지루합니다. 본인들도 별 의미 없이 편해서 선택했다는 혼죠 7대 불가사의 탐방이 대표적입니다. 애초에 별거 없는 불가사의일 뿐더러, 현대에 전해지는 것도 아니고 심령 포스트라도 찾으면 모를까, 본인들도 어딘지 잘 모르고 두서없이 돌아다니는 것뿐이니 딱히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이래서야 흔해빠진 "고독한 미식가"류의 구루메 탐방이 차라리 더 낫지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초기 기획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실망만 안겨준 후반부는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글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기행문이기는 하나 개인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고 유머러스하다는 점에서는 "동경산책"이 연상되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팬이라면 읽을 가치는 충분하고 에도 시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꽤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후보군이 너무 좁다!). 특히 일본 여행, 특히 도쿄를 앞두고 계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황거는 다시 한 번 가보고 싶군요.

덧붙이자면 우리도 둘레길 등 산책로가 급부상하고 있는데, 단지 경관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역사와 결합해 의미 있는 코스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식이 짧아 당장 추천하고 싶은 게 떠오르진 않지만요.

2014/11/14

데드맨 - 가와이 간지 / 권일영 : 별점 2점

데드맨 - 4점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작가정신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머리, 몸통, 팔, 다리가 사라진 시체 여섯 구가 차례로 발견되었다. 수사본부장을 맡은 가부라기는 동료들과 함께 수사에 주력하지만, 마지막 범행 후 4개월이 지날 때까지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수사본부로 자칭 “데드맨”이 보낸 이메일이 도착하는데…

작가의 데뷔작이며, 신인작가 발굴을 위한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2012년에 수상했던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올드 타입 형사인 가부라기가 자신과 같은 타입인 마사키, 부호 형사 스타일의 뉴타입 히메노, 그리고 과학수사연구소의 프로파일러 사와다와 한 팀을 이루어 연쇄살인극을 수사해 나가는 수사물이지요. 

젊은 작가의 데뷔작답게 빨리빨리 속도감 있게 읽히는 맛은 있고, 선배 작가인 시마다 소지의 걸작을 인용하는 대담함도 눈에 띄는 점입니다. 여섯 구의 시체를 가지고 하나의 완성된 인간을 만든다는건, 작중에도 등장하지만 "점성술 살인사건"을 연상케 하거든요. 이러한 고전 걸작을 대놓고 인용하는 걸 보면 작가가 상당한 강심장이라 생각됩니다. 초, 중반부까지는 나름 기대에 부응하기도 하고요.

아울러 추리적으로 뛰어난 부분이 많지는 않으나 “데드맨”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만큼은 괜찮습니다. 앞부분에서 제법 공을 들여 “아조트” 어쩌구 하며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설정이니만큼 결국 누군가가 그 대상일 수밖에 없는데, 적당한 수준으로 풀어내는 덕분입니다. “다니무라 시즈”의 정체 역시 나쁘지 않았으며, "데드맨"의 시력과 로보토미 시술을 엮은 설정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그 외에 프로파일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부분도 흥미로웠고요.

그러나 데드맨의 정체가 너무 뜬금없고, 시온이 여섯 명을 살해한 동기도 여러모로 무리가 따릅니다. 연쇄살인의 목적이 “데드맨”에게 그것을 알리기 위함이라는 해석부터가 문제인데요. 어차피 요양원에 갇혀 있는 신세라면 신문기사를 위조해서 보여주면 될 일 입니다. 여섯 건이나 범행을 저지르는데 들키지 않았다는 것도 순전히 우연에 가까운 만큼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물론 "복수"의 일환이기는 합니다만, 정작 복수의 주적은 따로 있고, 그를 죽일 수 있는 날짜까지(요양원 방문)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이러한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습니다.

또 “데드맨”의 정체 역시 급조하여 끼워 넣은 느낌입니다. 실종되어 기억이 엉망진창이 된 정의로운 형사가 갑자기 등장하는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시온이 어떻게 그 형사를 넘겨받아 재활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저라면 이렇게 가둬두고 괴롭히느니, 차라리 중간에 죽였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후반부는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시온이 겐다에게 살인을 지시할 이유도 없고, 본인이 슌이라고 믿고 있는 겐다가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불명확합니다(본인이 시체를 조합한 인간이라 믿고 있다면 복수의 대상은 시온이었어야 하죠). 결국 겐다는 실패하고 시온이 직접 나선다는 결말은 어처구니를 잃게 만들고, 거기에 폭탄까지 등장하는 전개는 극적 긴장감을 높이려는 시도는 알겠으나,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이 계속되어 몰입감을 떨어뜨릴 뿐입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동기에 대한 상세한 독백 역시 현실성은 떨어졌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단점이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동일한 캐릭터로 시리즈가 이어진다고 하는데,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던 만큼 후속작을 기대해보겠습니다. 후속작에서는 작가도 실력이 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