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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1

놀라운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들 - 북오프 칼럼

가끔 소개해드리는 이러저런 미스터리, 추리소설 추천 정보. 이번에는 북오프 온라인 칼럼 하나를 찾아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의역이 많은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촘촘히 짜여진 수많은 복선, 상상할 수 없는 전개, 충격적인 결말 ...... 소름이 돋는 오싹함을 찾아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많을겁니다.
그 중 '반전'이 뛰어난 미스터리 작품들을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들과 유명 작가들로 나눠 소개해 드립니다.
꼭 한번, 그 '반전'에 감탄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반전'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
"가면병동" 치넨 미키토
"If의 비극" 우라가 가즈히로 (국내 미출간)
"신의 숨겨진 얼굴" 후지사키 쇼
"출판금지" 나가에 토시카즈 (국내 미출간)

유명 작가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나카야마 시치리
"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 이치
"살인귀" 아야츠지 유키토

"가면 병동"
강도로 인해 밀실로 변한 병원, 숨 막히는 심리전의 막이 오른다!
요양병원에 강도가 침입해 자신이 쏜 여자의 치료를 요구한다. 사건에 휘말린 외과의사 하야미즈 슈고는 여자를 치료하고 탈출을 시도하던 중 병원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폐쇄된 병원에서 펼쳐지는 궁극의 심리전.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현직 의사가 그리는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는 '본격 미스터리×메디컬 서스펜스'. 저자 첫 문고판 장편소설!

인기 시리즈 제1탄.
의료 소설이라고 하면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알기 쉽고, 읽기 쉽습니다. 라이트 노벨 같은 경쾌한 터치로 독자를 쏙쏙 끌어당깁니다.
게다가 치넨 씨는 현직 내과 의사로 의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문적 견해를 바탕으로 집필되어 있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점도 매력적인 점입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속편인 '시한부 병동'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If의 비극"
소설가 가노는 사랑하는 여동생의 자살을 의심한다. 결국 여동생의 약혼자였던 오쿠츠의 불륜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오쿠츠를 불러내어 살해한다. 하지만 위장공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노가 운전하는 차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A는 남자를 치어 죽인 경우, B는 아슬아슬하게 남자를 치지 않은 경우. 두 개의 평행세계가 하나로 연결될 때,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식인 작가(사람을 잡아먹는 소설을 많이 써서)로 알려져 '미스터리계의 기인'으로 불리는 우라가 카즈히로 씨의 작품. 경력이 거의 공개되지 않아 그 수수께끼 같은 부분을 좋아하는 독자도 많다고 합니다.
"절대 속지 않는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이 작품이지만, 절대 속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 반전에 역시나 격침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의 숨겨진 얼굴"
신과 같은 청렴결백한 교사, 츠보이 세이조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통곡의 밤은 슬픔에 휩싸여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신'을 추모하는 가운데, 엄청난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실 츠보이가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었을까...? 츠보이의 아름다운 딸, 후배 교사, 제자인 중년 남성과 요즘 여자, 이웃집 주부와 개그맨. 두 번, 세 번 뒤집어지는 그들의 추리는? 반전이 있는 결말이 화제!!!
제3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대상' 수상작. 아리스카와 아리스, 온다 리쿠, 구로카와 히로유키, 미치오 슈스케라는 쟁쟁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를 받았다는 놀라운 작품입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절묘한 유머 감각이 있고, 서비스 정신이 넘친다 (온다 씨)', '개그맨으로 활동한 경험 때문인지, 말투가 매우 유쾌하고 유머 감각은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미치오 씨)'라는 심사평에서 알 수 있듯이, 어쨌든 유머가 넘치는 작품입니다. 반전도 훌륭하고요.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출판금지"
작가인 나가에 씨가 손에 쥔 것은 "카뮈의 자객"이라는 소문난 원고였다. 저자는 작가 와카바시 고세이. 내용은 유명 다큐멘터리 작가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신도우 나나오와의 단독 인터뷰였다.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산장, 동반 자살의 모든 것을 기록한 영상. 불륜의 끝에서 벌어진 비극인가? 왜 여자만 살아남은 것일까? 숨막히는 전개, 무서운 반전. 기형적인 걸작 미스터리.
작가인 나가에 씨는 원래 호러와 서스펜스를 전문으로 하는 TV 감독이었습니다.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프로그램 '방송금지'(후지TV)의 기획, 각본, 감독도 담당했다고 하네요. 이 책은 그런 경력을 가진 나가에 씨가 가상의 사건을 취재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읽다 보면 마치 논픽션처럼 느껴져서, 도중에 공포에 질려서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를 불러일으키는, 스릴 있고 무서운 작품이라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어느 도시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시신은 아파트 13층에서 갈고리에 매달린 알몸의 여성이었다. 그런 시체 근처에는 어린아이가 쓴 것 같은 히라가나로만 쓰여진 조악한 범행 진술서가 있었다. 이후 제2, 제3의 엽기 살인이 일어난다. 한 기자는 세상을 공포에 떨게 하는 범인에게 '개구리 남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
이 작품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서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작품입니다. 기괴한 살인을 다룬 서스펜스 넘치는 미스터리지요.
마지막 반전에 이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반전은 볼만한 가치가 충분해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범인의 책임능력을 묻는 형법 제39조가 강하게 개입된 사회파 미스터리의 면모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미스터리로서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미로관의 살인"
추리소설계의 거장 미야가키 요타로에 의해 신예 작가 4명이 '미로관'이라는 기괴한 관에 모였다. 미야가키의 비서는 미야가키가 자살했다며 카세트 테이프를 대신 건네 주었다. 테이프에는 '미로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써달라', '가장 좋은 작품을 쓴 사람에게 유산의 절반을 주겠다'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도리없이 네 사람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관 시리즈'는 "십각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등 반전과 의외의 결말이 있는 작품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다.
곳곳에 깔려있던 복선이 회수되고 여러 가지 장치가 차례로 밝혀지는 후반부 전개가 특히 압권입니다. 이 작품은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걸작이에요.
참고로 이 작품은 시리즈 작품이지만, 이 작품만으로 독립된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 권부터 읽어도 무방합니다.

"어둠 속의 기다림"
살인 혐의로 경찰에 쫓기던 아키히로는 눈이 보이지 않는 미치루라는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숨어들었다. 미치루는 '자신의 집에 누군가가 있다'며 아키히로의 기척을 느꼈지만 계속 모른척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맹인 여자와 살인 용의자인 남자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되는데...
여자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살인 용의자인 남자가 무단으로 여자의 집에 숨어든다 - 이런 줄거리를 보면 앞으로 도대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작품이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점차 유대감 같은 것이 싹트기 시작하거든요.
마지막에는 깜짝 놀랄 만한 반전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살인귀"
'TC멤버스'는 중학생부터 성인까지가 소속된 친목 단체다. 그런 TC멤버스 일행이 후타바산으로 캠핑을 떠난다. 하지만 즐거워야 할 캠프는 후타바산 살인마에 의해 피비린내 나는 참극으로 변해가고, 한 명, 또 한 명씩 살해당하는데............
이 작품은 스플래터 호러 소설입니다. 그 모습을 극명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상당히 그로테스크해서 이런 작품을 싫어하는 분들께는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전부는 아닙니다. 후반부에는 아야쓰지 유키토다운 깜짝 놀랄만한 장치가 준비되어 있으며, 거기서 그려지는 반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로테스크한 작품에 면역이 있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2025/03/23

법정유희 - 이가라시 리쓰토 / 김은모 : 별점 2.5점

법정유희 - 6점
이가라시 리쓰토 지음, 김은모 옮김/리드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토대 로스쿨에는 '무고 게임'이라는 학생들이 진행하는 모의 공개 법정이 있었다. 여기서 판사 역할을 하는건 학교 최고의 천재 유키 가오루였다. 

동급생들이 졸업하고 약 일 년 뒤, 가오루의 친구였던 구가 기요요시는 메일을 받았다. 무고 게임이 다시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에 적힌 시간에 모교를 찾은 구가는, 가오루의 사체와 피투성이인 동급생이자 친구 미레이를 발견했다. 살인범으로 기소된 미레이는 구가에게 변호를 의뢰했다. 사실 미레이와 구가는 어린 시절 보육 시설에서 함께 했던 친구로 함께 치한 사기를 치고 살았던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

일본 신예 작가가 쓴 법정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만장일치로 제62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했으며,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3위와 신인상, 2020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4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3위에 랭크되는 등 수상이력이 아주 화려합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 속에서 꽤 많은 사건이 벌어지지만, 핵심은 유키 가오루 살인 사건입니다. 사실 사건은 가오루의 자작극이었어요. '일본 검찰이 실수를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법정에서 증거를 공개'하려고 미레이를 끌어들여 자살(?)했던 겁니다. 이 계획 안에 여러가지 법률 이론과 지식을 효과적으로 녹여낸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고요. 작가가 현직 법조인인 덕분이지요. 특히, ‘동해보복’ 이론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정당한 죗값'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가오루는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운 미레이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 정당한 재판을 하지 않은 사법기관도 같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 죗값은 두 측이 아버지의 무고함을 밝히는 것으로 치러져야 한다고 판단해서 계획을 실행했던 것이지요. 단순히 미레이의 생명을 노리거나 미레이에게만 죄를 묻는 복수를 넘어서는, 진지한 법학도가 생각할만한 타당한 동기였습니다. 법적으로도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을 뿐더러, 작 중 가오루의 언행으로도 동기를 설득력있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진상을 마지막까지 숨기면서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구가가 계획한 ‘무고의 제재’ 전략도 그럴듯 했습니다. '무고 게임'에서 심판자가 부정을 저질렀음이 증명되면 심판자 본인도 벌을 받는다는 규정을 지키기 위해, 가오루가 자살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로스쿨 학생들이 즐기는 모의 법정 ‘무고 게임’ 설정이 가오루 사건과 밀접하게 연결되도록 잘 짜여진 점도 큰 재미 요소입니다. 미레이를 도청하고 협박한 사람이 누구인지 추적하는 과정도 추리적으로 나쁘지 않고요. 법정에서의 공방도 긴장감 넘치도록 잘 묘사됩니다.

법정에서 사건 당시 촬영된 영상이 공개되어 미레이의 무죄가 밝혀진 후, 사실 가오루는 죽을 생각이 없었고 미레이가 살해했다는 반전도 강렬합니다. 미레이와 구가가 과거에 저질렀던 치한 치한 사기 및 상해죄에서 구가를 보호하기 위해 미레이는 가오루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는 앞선 회상과 법정 장면을 통해 충분한 설득력을 갖춥니다. 구가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겠다고 결심하는 결말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요.

그러나 치밀한 계획이 있는 것처럼 진행되지만, 결국 미레이의 무죄는 사건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으로 증명된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너무 명확한 증거라서 다른 계획은 어차피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또, 비디오 카메라가 사건 현장에 장치되어 있었다는데 이를 어떻게 숨겼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점, 비디오 카메라에서 뺀 SD 카드에 암호가 설정되어 있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카메라를 치우고, 바로 SD 카드를 빼서 구가에게 전달하면서 암호화를 했다는건데 말도 안돼지요. 더불어, 비디오에 반전을 위한 결정적인 장면인 ‘미레이가 가오루를 살해하는 순간’만 찍히지 않았다는 점도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가오루의 계획에도 허점이 많습니다. 미레이와 구가는 오랜 시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구가가 미레이를 보호하기로 결심했다면 가오루가 남긴 미레이의 유죄를 입증하는 또 다른 증거 - 동영상 외 녹음 파일 등 - 는 무의미해집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구가는 검찰이 기소하기 전에 SD 카드 속 동영상을 검찰에 제공하여 불기소 처분을 받아내려 했을 테니까요. 가오루의 계획은 처음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이 증거들은 은사인 나쿠라 교수에게 맡기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오루가 저지른 죄에 적절한 벌을 선택할 수 있는 심판자가 되기 위해서 무고 게임을 만들었고, 패자에게 벌을 선고하면서 죄를 인정하고, 벌을 결정하는 경험을 쌓았다는데 이건 좀 억지였어요. 가오루의 계획은 적절한 벌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사심이 담긴 판결에 가까왔으니까요. 가오루가 법에 미친 천재라는 설정을 선보이기 위한 장치로만 무고 게임을 사용하는게 바람직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건 해결이 동영상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단점은 크지만,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한 번에 읽게 만들 정도의 강한 흡입력은 충분합니다. 이런 재미 덕분에 영화화까지 되었겠지요. 어떻게 요약해서 영화로 만들었을지도 궁금해집니다. 넷플릭스에 올라온다면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2024/09/01

정말로 추천하고 싶은 미스터리 소설 (オモコロ(Omocoro)bros)

유머러스한 기사들로 인기가 많은 일본 웹 사이트인 オモコロ(Omocoro)bros 편집부 멤버들이 추천하는 미스터리 소설들입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은 세 편 뿐이라는게 아쉽네요.

브로스 편집부입니다.
8월의 일요일마다 다양한 장르의 "추천 소설"을 소개하는 기사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주는... "추천 미스터리 소설"! 다양한 미스터리를 즐겨보세요.

**다빈치 오시야마의 추천 호러 소설**
《우주 탐정 노그레이》 (타나카 히로부미)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 한 미스터리 작품을 "특수 설정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마법이 있는 세계"나 "타임루프가 있는 세계"와 같이,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수 설정이라도 "아무거나 가능"한 것은 아니란 점이 중요합니다. 마법이 있다고 해서 "아무도 모르는 워프 마법을 범인만 사용할 수 있었다"라고 하면 흥이 깨지겠죠. 비현실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말에도 논리적인 납득이 필요합니다.
《우주 탐정 노그레이》는 다섯 편의 연작 단편집입니다. 우주를 무대로 하는 능력 있는 탐정 "노그레이"가 기묘한 행성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단, 이 행성들이 모두 매우 특이합니다.
  • 고지라 같은 거대 괴수만 사는 "괴수 행성 킹고지"
  • 주민들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천국 행성 파라이스"
  • 주민 수가 항상 일정하며, 죽은 자가 다시 태어나는 "윤회 행성 텐쇼우"
  • 모두가 대본대로 연극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연극 행성 엔게키"
……등, 독특한 행성들만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미스터리에서 "목 없는 시체"는 흔한 미스터리지만, 그 시체가 무적의 거대 괴수라면? 유쾌한 행성에서 벌어지는 더욱 불가사의한 사건들. 그 해결도 역시 행성의 특수한 성질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결말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마치 모든 것이 가능한 듯 보이면서도 마지막에 피스가 맞아 떨어지며 규칙의 전체 그림이 보이는 그 기분은 미스터리의 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장난감 상자를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가 있는 한 권입니다.

**카마도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명탐정의 제물: 인민교회 살인사건》 (시라이 토모유키)

플롯부터 너무 멋진 미스터리 작품입니다. 최고입니다!!!!!!!
미스터리 작품 중에 "다중 해결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개념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으로, "추리 결과, 여러 진실이 존재한다"라는 것이 이 장르의 특징입니다. 이 시라이 토모유키 선생님의 다중 해결물은 탁월합니다. 미스터리 팬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작품입니다.
다중 해결물은 매우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추리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도중에 "이게 뭐야... 방금 추리는 뭐였지?" 또는 "피곤해... 결론만 말해줘..."라는 상황이 될 수 있지만, 이 《명탐정의 제물》에서는 제시된 여러 추리가 모두 강력한 임팩트를 줍니다. 압도적인 해설 파트를 읽으면서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라고 감탄하게 될 정도입니다. 장인의 기술에 감탄할 정도로 멋진 작품입니다. "다중 해결"의 구조적 약점을 없애면서, 동시에 "다중 해결"이라는 장르 자체에 새로운 빛을 불어넣는 듯한 훌륭한 플롯을 꼭 경험해 보세요.
다른 작품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며, 이 《명탐정의 제물》을 시작으로 깊이 빠져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작품인 《엘리펀트 헤드》는 정말 최악입니다. 물론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정말 재미있지만, 진짜 최악입니다. 사람이 이런 걸 써도 되나? 여러 의미에서 머릿속이 어떻게 된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섭습니다.

**나시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이야기》 (스기이 미츠루)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손이 떨리다니" 라는 경험을 한 건,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일종의 상쾌함까지 느낄 정도로, 기분 좋게 압도당했습니다.
훌륭한 독서 체험을 보장하므로,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꼭 서점에서 구입하시길 권합니다.
아니면 Amazon 카트에 담아주세요.
"전자책은 없나요?"라고 낙담할 시간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

**마키노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아사쿠라 아키나리)

취업을 위해 양산된 듯한 여섯 명의 우수한 대학생들이, 모두 내심 내정받고 싶은 대기업의 최종 면접에 남았으나, 전원이 내정받는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한 명만 내정된다고 변경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최종 토론 중에 우등생들의 "뒷모습"을 폭로하는 고발장이 나오면서, 한 사람씩 가면이 벗겨지는 미스터리입니다.
책의 재미 순위를 석권하고, 만화화, 영화화, 라디오 드라마화까지 이루어졌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습니다! 취업을 위해 드러난 좋은 면과 고발을 위해 드러난 나쁜 면이 교차하며, 사람의 인상이 전혀 믿을 수 없다는 스릴 넘치는 구성에 책을 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게다가 엄청 읽기 쉽습니다!).
여러 번 뒤집히는 대학생들의 의혹에 끝까지 예측할 수 없는 교묘한 미스리드, 마지막에 남겨진 고발문의 놀라운 결말, 그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선명한 복선 회수... 말할 것이 없는 소설의 완전체였습니다. 11월에 영화도 개봉된다고 합니다. 꼭 보세요!

**가미죠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나오키상을 받은 화제작을 지금 와서 추천하는 것도 뭐하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배경은 전국시대로, 주인공은 실존 인물인 전국 무장 아라키 무라시게입니다.
…잠깐만요, 이 시점에서 "역사물인가, 흥미 없네"라고 생각한 분들, 조금만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이 소설은 등장인물과 배경만 역사물일 뿐, 내용은 완벽한 미스터리입니다.
주인공 무라시게는 어느 계기로 상사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하고, 성에 틀어박힙니다. 그곳에 쿠로다 칸베이라는 엄청나게 뛰어난 지장이 찾아와 무라시게를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성 안에서 둘이 나눈 이야기가 지금으로 치면 실제로 있었던 "밀실 토크"처럼 느껴져, 이 두 사람의 생각을 예상해가며 즐기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이 이야기에는,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설마, 이런 전개가 가능하다니!"라고 생각하며 충격을 받을 겁니다. 요네자와 호노부 선생님의 《흑뢰성》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다시 한번, 독서의 즐거움을 느껴보세요!

2023/11/18

명작 추리 소설 5선 : 이 서술 트릭이 굉장해!

소설에 대해 안내하고 소개해주는 일본 사이트 '소설마루' 에서 발견한 글입니다. 가볍게 소개해 드립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핵심 트릭이 노출되어 있으니, 읽으시기 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2019/01/13

시인장의 살인 - 이마무라 마사히로 / 김은모 : 별점 2.5점

시인장의 살인 - 6점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립 신코 대학의 미스터리 애호회 회장 아케치 교스케와 조수? 하무라 유즈루는 소녀 탐정 겐자키 히루코의 부탁으로 영화 연구회 여름 합숙에 참가했다. 영화 연구회 합숙은 이상한 협박장 때문에 취소되기 직전이었던 탓에, 외부인의 참석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합숙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급작스러운 좀비떼의 습격으로 일행은 3명의 사망자를 낸 채 합숙 장소인 '자담장'에 갇히고 말았다. 일행은 여러가지 바리케이트로 좀비의 습격을 막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려 했지만 첫 날 밤이 지나고, 영화 연구회 회장인 신도가 좀비에게 물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문제는 신도의 방은 좀비가 들어올 수 없는 밀실이었다는 점이었다....

신인 작가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데뷰작으로 '2018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8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17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제1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 제27회 아유카와 데쓰야상 수상, 2018 서점대상 노미네이트' 등 온갖 상을 휩쓸었던 화제작입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유명세만 듣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다라메 기관" 이라는 정체 불명의 연구소에서 마지막 테러를 위해 선택한 것이 좀비 바이러스의 살포로, 테러의 성공으로 수천명의 사람들이 감염된 후의 이야기를 다룬 좀비물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사실 좀비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은 이미 좀비의 특성 자체를 핵심 트릭으로 써 먹은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미국을 무대로 시작부터 좀비물임을 드러내며 분위기가 살짝 블랙 코미디 느낌인데 반해, 이 작품은 초중반의 좀비 등장 전까지는 상큼한 대학교 신입생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대학생들 여름 캠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는 전형적인 일본풍 청춘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덕분에 좀비가 처음 등장할 때는 상당히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학생 아리스" 시리즈가 갑자기 좀비물이 되는 셈이니까요.

또 좀비가 처음 주인공 일행을 습격하는 담력 시험에서 신코대학 미스터리 애호회 회장인 '신코의 홈즈' 아케치 교스케 가 바로 좀비에게 물려 이야기에서 퇴장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놀랐습니다. 물론 아케치 교스케는 이름과 별명만 거창한 단순한 추리 소설 매니아로 별다른 능력은 없으며, 진짜 명탐정은 겐자키 히루코라는 설정은 진작부터 있기는 했지요. 그래도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탐정 에가미 지로 정도였던 초반부 비중에 비하면 너무나 허무한 퇴장이었습니다. 흡사 영화 "파이널 디씨젼"에서 스티븐 시걸이 초반에 활약도 못하고 죽어버리던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어요.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다양한 수상 경력에 값합니다. 첫 사건인 영화 연구부 부장 신도 살인 사건이 그 중에서도 가장 괜찮아요. 밀실에서 좀비에 물려 죽었는데, 좀비가 어떻게 밀실에 들어갔는지? 에 대한 수수께끼가 핵심으로, 신도의 연인인 호시카와의 존재와 좀비의 특성을 잘 활용한 괜찮은 트릭이 등장합니다. 좀비가 된 호시카와와 신도가 사투를 벌일 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는지, 신도가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등 세세하게 파고들면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나무랄데 없습니다.

허무하게 죽어버린 아케치 외의 다른 캐릭터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고전 본격물 애호가인지라 화자인 하무라가 밴 다인 (반 다인)과 쓰즈키 미치오도 모르는 미스연 회원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건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미스연 회원들이 즐겨 읽는다는 라이트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비판도 인상적이고요. 미스터리에 대해 잘 모르고, 태생적으로 사건을 불러 일으켜 희생자를 만드는 소녀탐정 히루코 설정도 좋아요. "천재지변급으로 희생자를 만드는 인물" 들인 코난김전일 캐릭터에 관련된 인터넷 농담을 조금 더 진지하게 구현해 놓았는데, 본인 스스로 희생자를 줄이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리를 한다는 이유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닙니다. 하무라를 원한 이유가 '조수'가 있으면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그럴 듯 했고요.

그러나 두 번째 살인 사건인 다쓰나미 살인사건부터는 여러모로 애매해집니다. 범인의 원한이 아무리 깊다 한들, 좀비가 된 다쓰나미를 또 죽인다는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말도 안되니까요. 동상을 옮기는 등 엄청난 수고가 추가로 필요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위험한 방법으로 자신과 다른 일행의 생명까지도 걸어야 하는 행위인 탓입니다. 동상을 이용해 다쓰나미의 몸무게 이상으로 탑승이 불가하게 조작해 놓았다 한 들, 좀비들이 다쓰나미를 끌어내 먹어 치우고 다른 좀비가 타고 2층으로 올라올 수도 있잖아요? 좀비 설정에 너무 무리수를 둔 느낌이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범행 사전 준비를 위해 카드키를 바꿔치기하고, 그 순간에 CD 플레이어의 음악이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었어요.
세 번째 살인 사건인 나나미야 살인 사건은 트릭도 뭐도 아니라서 딱히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마지막 대단원도 그닥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조금 실망스러웠고요. 좀비가 몰려드는 와중에 펼쳐지는 추리쇼라는 상황 설정만 긴박할 뿐, 내용은 딱히 새롭지 않습니다. 범인도 하무라 아니면 시즈하라 정도로 압축되고 있던 상황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형적인 좀비물을 청춘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와 엮어 본격물스럽게 만든, 일종의 하이브리드 장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첫 번째 사건과 몇몇 디테일을 제외하고는 본격물로서의 가치는 높지 않아 감점합니다.
하지만 분위기, 느낌은 나쁘지는 않아요. 전형적인 좀비 호러물을 박진감있게 묘사하여 독자를 사로잡는 맛도 분명 있고요. 1급 추리물은 아니지만 1급 오락물임에는 분명하다는 점에서 여러 상을 휩쓴 이유도 수긍은 갑니다. 좀비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인상적인만큼 좀비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19/07/26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시가 아키라 / 김성미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6점
시가 아키라 지음, 김성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미타는 택시 안에 스마트폰을 두고 내렸는데, 그것을 주운 남자가 폰 속 도미타의 여자친구 아사미에게 반하고 말았다. 남자는 전문 해커이자 연쇄 살인범으로,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아사미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한 편, 인적이 뜸한 야산에서 신원 불명의 여성 변사체가 잇달아 발견되어 경찰은 수사에 나서는데...

제15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최종 수상작입니다. 최근 상당히 화제가 된 듯 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SNS는 누구나 쓰는 반면, 해킹에 취약점이 많아서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은 많습니다. 휴대폰 위치 추적을 활용한 작품이 개중 많은 편이고요. 해킹에 촛점을 맞춘다면 찬호께이"망내인"이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망내인"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살인이라는 실제 범죄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때문에 대단한 해킹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현실적입니다. 특히 살인 직전까지 페이스 북 등을 잘 활용하여 피해자를 옭아매는 과정은 설득력이 높아요. 비슷하게 페이스 북을 주로 활용했던 "리얼 라이즈"는 영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었는데 말이지요. 아마 이런 부분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하게 된 요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우선 범인은 습득한 도미타의 핸드폰의 비번을 풉니다. 도미타의 생일이 비밀번호였지요. 그런데 이를 알아낸 방식이 기발합니다. 마침 전화를 걸어 온 애인의 이름이 화면에 표시되었기 때문에, 이 이름의 페이스북 가입자를 조사한 뒤 바탕 화면 사진과 일치하는 가입자를 찾아냅니다. 이를 통해 도미타의 페이스북 계정을 알아내어 생일을 확인했던 겁니다.
다음으로는 도미타의 핸드폰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 놓은 후 폰을 돌려줍니다. 페이스 북을 통해 알아낸 정보로 도미타, 아사미와 관련된 가짜 페이스북 친구들을 다수 만들어 연결하고요.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아사미에 관련된 정보를 하나둘씩 입수하면서 도미타 폰에 고의로 랜섬웨어 감염을 일으킨 뒤, 친구 소개를 가장하여 보안 전문가로 직접 나타나 도미타와 아사미의 신임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사미에게도 개인 정보 유출과 해킹 등의 사건을 일으키고 해결해 준 뒤, 틈을 타 납치하는데 성공합니다.
페이스 북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건 약점이며, 도미타의 직장 동료로 가장한 고야나기의 질척거림 등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꽤 그럴싸한 현실 속 해킹 수법이라 생각됩니다. 도미타 핸드폰 속 사진의 GPS 정보를 분석하여 아사미의 집이 어디 근처인지를 알아낸다던가 하는 디테일들도 괜찮았으니까요.

여기에 더해 범인이 이미 살해하여 유기한 피해자들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게 만드는 상황도 아주 인상적이에요. 피해자들의 스마트폰만 살려 놓은 뒤 가끔 문자 메시지 연락을 하는 정도인데 이게 아주 잘 먹히거든요. 가족, 친지와 멀어지고 모든 걸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 현대 사회이기에 가능했던 속임수이지만, 실제로 아주 그럴듯해 보여서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아사미를 납치하여 살해하려는 실제 범행 쪽 이야기는 아쉽게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우선 아사미에게 누드 사진을 보내는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범인이 보안 전문가 우라노로 가장하여 신뢰를 쌓았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범죄면 경찰에 바로 신고할 수도 있잖아요? 다케이와의 불륜을 암시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을 해킹하여 게시한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케이의 행동을 컨트롤하는건 불가능한데 다케이가 경찰에 신고했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이 범행을 통해 다케이를 아사미로부터 떼어 놓는다고 해도 범인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요.
이보다는 작품 자체는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리얼 라이즈" 수준 정도의 페이스 북 조작이 더 현실적입니다. 조작한 나의 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퍼트려 내 개인의 평판을 망가트리는 정도요. 평판을 망치는 것 외에 페이스 북을 통해 상황을 제어하거나 조작하는건 아무래도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납치는 방심한채 술을 마시는 아사미를 만나 그녀의 술에 약을 타는 고전적인 방식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이럴 생각이었다면 도미타, 다케이를 떼어버리고 차분히 보안 전문가 우라노를 신뢰하고 의지하게 만든 뒤 당당히 집에서 납치하는게 정답이었어요. 이미 연쇄 살인사체 유기가 발각되어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범행을 서두를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텐더가 분명 아사미와 함께 나가는 범인을 목격하기도 했으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무엇보다도 아사미를 납치한 뒤 그녀가 Siri로 도미타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된다는 결말이 가장 문제입니다. 해킹 전문가인 범인이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어요. 폰이 아이폰이라는걸 명확히 알았는데도 이 기능을 간과한건 납득하기 어려우니까요. 전화를 받은 도미타가 이전 해킹 덕분에 아사미 폰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해킹과 폰 위치 추적은 별 상관이 없잖아요? 백신을 설치했다면 모를까.

그리고 데뷰작이기 때문이겠지만 소설적인 완성도도 부족합니다. 캐릭터 설정부터 견고하지 못해요. 도미타가 가장 좋은 예입니다. 그는 거의 전편에 걸쳐 아사미에게 의지하는 무능력한 찐따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아사미를 구해주고 그녀의 과거마저 모두 이해한다는 대인배로 급작스럽게 거듭납니다. 반면 왠지 모르게 계속 좋은 사람, 훈남으로만 묘사되는 다케이는 반대로 단 몇 줄의 묘사를 통해 불륜을 즐기는 인간 쓰레기로 돌변하여 리타이어해 버리고 말고요.
여기에 더해 아사미가 과거 AV 배우 야마모토 미나요였다는 설정은 왜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와 별 상관도 없을 뿐 아니라 아사미로 가장한 미나요가 아사미의 대학 시절 잠깐의 연애 상대였던 다케이와 다시 만나는 행동은 비현실적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낼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화를 불러올 이유는 없잖아요? 이 과정에서 그녀가 진짜 아사미인 것처럼 심리묘사를 해 가며 독자를 속일 이유 역시 없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톡톡 튀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닥 기대에 값하지는 않았습니다. 해킹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망내인"을 읽는게 훨씬 낫습니다.

2021/08/27

영매탐정 조즈카 - 아이자와 사코 / 김수지 : 별점 2.5점

영매탐정 조즈카 - 6점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20회 본격미스터리대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등 온갖 상을 휩쓸고, 자주 가던 추리 소설 커뮤니티에도 극찬하는 분들이 많으시길래 구입해서 읽어본 작품입니다. 아래의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화. 우는 여자 살인" 

추리소설가 고게쓰는 대학 후배 구라모치 유이카의 부탁으로 영매 조즈카 히스이를 찾았다. 우는 여자에 관련된 이상한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조즈카는 조사를 위해 고게쓰와 함께 유이카의 자택에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유이카의 집을 찾은 둘은, 그녀의 시체를 발견했다. 조스카는 유이카의 혼을 자신에게 빙의시켜, 경찰에게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게 되는데...

"2화. 수경장 살인"

고게쓰는 조즈카와 함께 추리소설가 구로고시 아쓰시의 별장 '수경장'의 바비큐 파티에 초대되었다. 수경장에서 발생하는 심령현상의 조사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바비큐 파티가 있던 날 밤, 구로고시 아쓰시는 살해되었다. 조즈카는 범인이 벳쇼라는걸 영능력으로 알아냈지만, 경찰은 구로고시와 불륜 관계였던 신타니를 체포하고 말았다. 고게쓰는 유일한 단서였던 조즈카가 꾼 꿈을 토대로 범인이 벳쇼라는걸 경찰이 믿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

"3화. 여고생 연쇄 교살 사건"

고게쓰의 팬이라는 여고생 후지미 나쓰키가 자기 학교 여학생들이 살해된 사건 조사를 부탁했다. 고게쓰는 조즈카와 함께, 경찰의 도움을 얻어 사건 현장 및 학교를 방문해서 조사에 나섰다. 조즈카의 영시를 통해 범인이 여자 아이라는걸 알게 된 고게쓰는, 프로파일링을 지어내서 경찰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후지미 나쓰키까지 살해되고 마는데....

"최종화. VS엘리미네이터"

그런데 구성이 독특합니다. 1~3화는 각각 완성된 단편들인데, 네번째인 "최종화. VS엘리미네이터"를 통해 앞서 3개의 이야기를 뒤집는 반전과 앞에서 설명되지 않았던 여러가지 추리적인 장치들이 정리되고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장점이라면, 최근 본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수상할 만 하더군요. 

우선 조즈카가 영능력으로 얻은 정보를 통해 진범을 알아내고, 트릭을 밝혀내는 1~3화에서의 고게쓰의 추리와 활약은 꽤 설득력 있습니다. "수경장 살인"에서 조즈카의 꿈을 캐비닛 거울과 연결시켰던 추리, "여고생 연쇄 교살 사건"에서 나쓰키가 살해되었을 때 범인이 카메라에서 필름을 가져갔고, 렌즈캡을 떨어트렸던걸 단서로 하스미 아야코는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추리 등은 설득력이 높거든요. 

그러나 이 정도였다면 흔해빠진, 그냥저냥한 추리물 수준에 그쳤을거에요. 조즈카가 던져주는 단서가 워낙 명확해서 고게쓰가 대단한 명탐정일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4화 덕분에 이 작품이 한 단계 수준을 뛰어넘는 완벽한 본격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4화에서 조즈카는 영매가 아니라, 천재 탐정으로 사건 현장을 쓱 보고 추리했던 걸, 영능력인양 고게쓰에게 단서를 던져주었다는게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앞서 세 건의 사건에서 그녀가 어떻게 모든걸 추리해 내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데, 이 추리들이 정말 대박입니다. 합리적이며 설득력 있는건 물론, 모두 독자에게도 주어졌던 공정한 단서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왠만한 고전 걸작 본격물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추리적 쾌감을 선사해주는 덕분입니다. 여고생 교살 사건에서 핵심 단서로 쓰였던 스카프 고리와 같은 디테일을 조즈카의 대사로 스쳐지나가듯 드러냈던 장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즈카가 추리력을 선 보일 때 셜록 홈즈라던가, 일상계의 정의 같은 지식을 피로하는 것도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반가왔던 부분이고요.

하지만 걸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다지 새로운 느낌이 없는 탓입니다. 1~3화 까지의 설정인, 영매가 영능력으로 탐정과 컴비를 이루어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는 쎄고 쎘으니까요. 귀신이 알려준 단서로 사건을 해결한다는건 이미 만화 "카코와 가짜 탐정"에서 써먹었었지요. 고전 "싸이코메틀러 에지"라던가, 미쓰다 신조의 "사상학 탐정" 도 비슷한 류일테고요.

4화의 반전과 본격물로의 전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능력자로 알려진 순진한 미녀가 알고보니 추리력이 뛰어난 닳고 닳은 아가씨였다는건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과 똑같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하기 어려워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천사에서, 마지막에 정체가 밝혀지고 나서는 고게쓰를 저 위에서 내려다보며 비웃는, 닳고 닳은 건방진 아가씨로 변모한다는 조즈카 캐릭터도 오다기리 쿄코 판박이고요. 

지나친 과장과 억지도 불만스럽습니다. 캐릭터부터 만화같아요. 어린 나이에 천재적인 영능력(?)과 추리력을 갖춘 절세의 미소녀 조즈카 캐릭터가 대표적입니다. 게다가 그녀가 영능력(?)을 발휘할 때의 과장된 연기, 고게쓰와의 알콩달콩한 로맨스 묘사는 읽으면서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였습니다. 작가의 묘사력이 영 부족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군요. 

일개 추리 소설가가 경찰과 협력한다는 편의적인 설정이야 본격물이니 그렇다고 쳐도, 현장을 쓱 보고 진상을 모두 추리해냈다는 것도 과장이 지나칩니다. 말로 설명하는데 50분이나 걸리는 추리를 단 몇 초만에 끝냈다는게 말이 될까요? 이 정도면 영능력보다 더한 초능력이지요. 

추리도 설명은 그럴싸하지만, 결론에 단서를 끼워 맞춘 느낌이 강합니다. 대표적인 예는 2화입니다. 구로고시의 신작이 정확하게 몇 권 배달되었는지, 구로고시가 여분의 책을 가지고 있었는지와 구로고시 서재에 책을 따로 둘 곳이 없었다는 걸 잠깐의 관찰 후 추리하여 단정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에요. 이럴 바에야 그냥 뛰어난 영능력자라는게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겁니다. 

그 외에, 고게쓰가 여대생 연쇄 살인마 쓰루오카 후미키였다는 것과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된 이후를 그린 에필로그도 뻔하고, 억지스러운 사족에 불과했습니다. 여대생들을 칼로 찌르며 '아프지 않았지?'라고 물어보던 이유가 과거 누나를 잃은 트라우마 때문이었다는 동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애초에 설득력이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요. 고게쓰에게 납치된 조즈카가 탈출하는 과정도 작위적이고요.

분명 좋은 평가를 받을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저에게는 일본 서브 컬쳐 특유의 과장된 묘사, 어디서 많이 보았던 뻔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들로 가득차 있다는 단점이 더 크게 느껴졌던 작품입니다. "사쿠라코 씨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처럼요. 추리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은, 잘 짜여진 본격물이기는 하나, 제게는 소문만큼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차라리 만화였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만화에 가깝게, 가볍게 쓰여진 작품이 먹히는걸 보면, 확실히 시대가 변하긴 변한 듯 합니다..

2020/11/07

사우스포 킬러 - 미즈하라 슈사쿠 / 이기웅 : 별점 2.5점

사우스포 킬러 - 6점
미즈하라 슈사쿠 지음, 이기웅 옮김/포레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문 구단 도쿄 오리올스에 2년 전 입단한 좌완투수 사와무라는 시즌이 진행되던 어느 날, 정체모를 인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큰 일이 아니라 생각해 신고하지 않았지만, 팀 레전드 좌완 미우라 선수의 150승 기념 파티장에서 다시 폭행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사와무라가 승부 조작에 관여하여 폭행당했다는 투서가 매스컴 관계자들에게 전송되는데...

일본 프로 야구를 무대로 한 범죄 스릴러로 제 3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고노미스)' 대상 수상작입니다.

프로 야구를 소재로 한 추리 소설은 많지 않지만, 국내 출간작은 대부분 읽은 편입니다. 추리 소설 만큼이나 야구도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대체로 '승부 조작'이 주요 소재입니다. "최후의 도박", "최후의 일구", 이 바닥 고전"스트라이크 살인" 등이 대표적입니다. 프로 야구를 범죄와 엮는데 승부 조작만한게 없기 때문이겠죠. 이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부 조작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궁지에 몰린 주인공이 스스로 범인을 잡는 이야기니까요.

이런 류의 이야기는 누명 탓에 구렁텅이로 빠지는 묘사가 중요한데, 아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와무라 주변 매스컴과 선수진, 지도자, 구단주의 모습과 그 변화가 상세한 덕분입니다.
상세한건 야구 관련 묘사 디테일도 뒤지지 않습니다. 사와무라가 펼치는 야구 이론이 대표적이에요. 웨이트 및 각종 트레이닝에 대한 지론, 투구법과 투구 배분 등 모두가요. 사와무라의 주장은 올드 스쿨인 감독 가쓰라기와 코치 시마타니와 대립하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작가가 야구에 대해 많이 조사했구나 싶었어요. '본격 야구 미스터리'라는 홍보글은 허언이 아닌 셈이지요. 팀 레전드지만 투수 혹사에 일가견이 있는 가쓰라기 감독은 우리나라 감독님들이 몇 명 떠오르기도 했고요.

사와무라의 소속팀인 도쿄 오리올스 묘사도 그럴싸합니다. 일본 최고 인기 구단이며 선수들 개개인의 인기와 연봉도 높지만, 그 덕에 트레이드가 쉽다는 설정을 사건과 엮어 활용한 솜씨도 제법이고요. 스캔들을 싫어하는 팀 성격상 트레이드가 잦게 일어나는데, 타팀은 단일 리그가 현실화 될 수 있어서 프로야구 맹주인 오리올스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기본 설정과 선수들 스캔들이 드러나느니 함구하고, 다른 팀으로 보내버리는 방식에서는 실제 모델이 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구단주 하타다와 모든 팬들이 사랑하는 감독간 알력 다툼 이야기도 굉장히 와 닿았어요.

그러나 이런 류의 작품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을 누명에 빠트린 범인의 정체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풀어내지 못합니다. 사건을 일으킨, '사우스포 킬러'는 팀 레전드이자 구 에이스 미우라였습니다. 그가 앞서 몇 년에 걸쳐 오리올스 좌완 투수들을 트레이드로 다른 팀에 보내버린건, 자기가 선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설명되고요. 협박범 다카키를 시켜 라이벌이 될 만한 젊은 좌완 투수들 약점을 잡은 뒤, 구단을 협박한 겁니다.
그러나 젊은 좌완들이 없어진다 한 들, 선발 자리는 실력이 없으면 보장받기 힘듭니다. 선발에 꼭 좌완이 한 명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제 응원팀 두산의 장원준 선수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중간 계투로 떨어질 시간을 번다는 의미는 있지만, 그래봤자 2~3년에 불과했을 거에요.
그리고 트레이드로 다른 유망한 투수를 받으면 어떻게 할 셈이었는지도 모르겠고, 2년간 일곱 명이나 되는 좌완 투수를 이렇게 트레이드로 보내버렸다면 진작에 소문이 나도 났을겁니다. 제 응원팀 두산만 해도 한국 시리즈 우승팀인데 지난 2년간 1군에서 버텼던 좌완은 유희관, 이현승, 함덕주 선수가 전부였어요. 그런데 일곱 명을 다른 팀에 보낸다? 누가 봐도 수상합니다.

미우라가 팀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혹시 모를 트레이드 방지하기 위함이었다는 것도 이유 역시, 선발로 경쟁력이 없다면 트레이드가 아니라 방출을 걱정해야 할 테니 그리 설득력있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일본 최고 구단 오리올스가 아니면 연봉, 방송 활동 등 수익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게 뻔했다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력이 부족하면 연봉이 깎이는건 당연할 뿐더러, 지방 구단도 팀에 따라서는 연봉과 처우, 인기에 문제는 없습니다. 일본 프로 야구 구단으로 치자면 소프트방크가 좋은 예이지요.

그나마 미우라가 금전적으로 절박한 상황이라는 설명은 살짝이지만 등장해서, 연봉과 처우에 집착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설명은 해 줍니다. 더 큰 문제는 사와무라를 영원히 매장하려 한 이유가 아예 설명조차 되지 않는 거지요. 다른 경쟁자들처럼 트레이드로 보내버리지 않고요. 빼어난 재능을 가진 사와무라에 대한 질투였다? 이렇게 복잡하고 거창한 조작을 할 이유는 없어요. 청부업자를 시켜 불구를 만드는게 더 낫죠. 이미 미우라는 과거에 경쟁자 치노 류스케를 직접 폭행하여 불구로 만든 전력이 있습니다. 한 번 저질렸다면, 두 번 못할 이유는 없을겁니다. 승부 조작은 누명임이 드러나서 사와무라는 이전보다 더 큰 인기와 주목을 얻게 되기까지 하니, 긁어 부스럼만 만든 셈이에요. 애초에 무기명 투서를 통해 유망한 투수에게 승부 조작 누명을 씌우는게 성공할리도 없고요.
또 정체가 드러나기 직전까지 미우라는 사와무라를 도와주는데 이 역시 이해 불가입니다. 예를 들어 미우라는 사와무라가 트레이드 당한 좌완투수들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줍니다. 자기가 사주한 범죄를 파헤치려는 사람과 범죄 피해자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범인이 도와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이를 헐리우드 스타일로 뻔하게 풀어낸 이야기 구조도 그닥입니다. 마지막에 미우라가 직접 나타나 사와무라를 폭행하다가 덜미를 잡하는 결말이 대표적입니다. 악당이 주인공 앞에서 진상을 줄줄이 읆으며 자기 죄를 자백한 뒤, 바로 응징당한다는 멍청한 헐리우드 범죄물과 똑같아요. 아니, 오히려 헐리우드 범죄물보다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다카키를 시켜 납치까지 했다면, 구태여 직접 폭행하려고 나설 필요는 없으니까요. 사와무라가 납치 후 폭행당하고 수면제까지 강제로 먹지만, 선수 생명을 걸고 등판하여 8회말까지 150개가 넘는 공을 넘게 던지며 투혼을 발휘해 승리한다는 결말도 헛웃음이 나옵니다. 극적이며 드라마틱하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아요. 미우라가 사주한 범행으로 모든게 누명이었다는게 드러난 이상, 구태여 등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몸이 재산이며,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평소 사와무라의 지론과 어울리지도 않았고요.

그 외에도 뻔하고 작위적인 부분은 많습니다. 여배우 미레이가 관련된 부분들은 대체로 그러합니다. 사와무라를 습격한 패거리 중 한 명이 누구인지를 그 자리에 '우연히' 있던 미레이가 알아채고 사와무라에게 알려준다던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미레이가 사와무라를 '우연히' 내려준 곳에서 협박범 다카다가 대기하고 있었다는 식이거든요. 사와무라는 미레이가 범인 다카키에게 조종당한거라고 오해했는데, 우연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보다는 오해가 더 현실적이었습니다. 역시나 '우연히' 비번이었던 경찰 친구 쓰쓰미가 사와무라를 미행하다가 납치당한걸 알게 된다는 등 극적인 분기에 우연이 많이 작용한다는건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죠.

많이 찾아보기 힘든 프로 야구 소재 스릴러이며, 프로 야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식견이 발휘된 작품이기는 합니다. 재미 측면에서도 나무랄데 없고요.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릴러스러운 전개는 다소 불만이지만,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야구 팬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2/10/15

이별의 수법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2.5점

이별의 수법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많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근무하던 탐정사무소가 폐업한 탓에 빈둥거리다 미스터리 전문서점 ‘살인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하무라 아키라. 위험한 구석이라곤 없는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그녀의 불행은 멈추지 않는다. 뇌진탕과 갈비뼈 골절, 폐 손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말기 암으로 입원해 있던 왕년의 스타 배우와 같은 병실을 쓰게 된다. 얄궂게도 그녀는 하무라 아키라에게 20년 전 가출한 자신의 딸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하무라는 실종 직후 딸의 행방을 좇았던 탐정을 찾아가지만, 그 탐정 또한 20년 전에 실종되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의뢰인의 6촌 조카는 교살당했으며, 의뢰인의 집에서 일했던 두 명의 가정부의 행방마저 묘연하다. 왕년의 배우를 둘러싼,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잦은 살인과 실종 사건들. 20년 전 실종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사건들 사이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탐정은 왜 사라졌을까? 하무라 아키라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오래된 비밀과 마주한다. (출판사 제공 소개)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장편. '살인곰 서점' 시리즈가 국내에 출간된지는 꽤 되었는데, 이 작품이 살인곰 서점 시리즈 중에서는 첫 작품입니다. 해설을 읽어보니 시리즈 연착륙을 노리고 단편집부터 발간했던게 이유였다는데, 독자로서는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 처사입니다.

작품은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답게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 스타일 그대로입니다. 별 것 아닌 의뢰로 보였는데, 조사가 진행되면서 의외의 사건으로 발전해 나가며 그 와중에 거친 (?) 액션이 폭발한다는 이야기거든요. 일반인들, 그리고 평범한 일상속 이야기가 많았던 다른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와는 다르게 정통, 본토 (?) 하드보일드 냄새를 물씬 풍긴다는 점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과거 유명 여배우이자 유력 정치인의 접대부 (?)였던 의뢰인, 의뢰 대상인 실종된 여배우의 딸은 유력 정치인의 손녀 + 강간 피해자 + 연쇄 살인범, 딸이 저지른 연쇄 살인의 끝은 어머니 살해라는 내용이니까요. 스케일은 본토 못지 않아요. 제목부터가 <<기나긴 이별>>스러웠는데, 알맹이도 만만치 않았던거지요.

다행히 이런 스케일 크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잘 그려내고는 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와 그녀가 조사하는 인물들이 현실적으로 잘 묘사된 덕입니다. 전개도 매끄러우며 하무라 아키라의 조사 과정도 아주 현실적이에요. 경찰이 아닌 일반인 탐정이 가능했을 조사의 최고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남다른 하무라의 눈썰미와 추리력은 여전하고, 사소한 단서들로 진상이 드러나는 구조도 잘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본 사건 외에 함께 진행되는 사건들의 완성도도 높아요. 후부키가 하무라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계기가 되었던, 백골 발견 사건처럼요. 살아있는 줄 알았던 아내 에이코가 알고 보니 변장한 남편이었고 백골이 에이코였다는 트릭인데 꽤 그럴듯했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탐정 이와고 사건의 진상도 설득력 높아서 마음에 들었고요. 장편 속에서 지나가는 사건으로 등장하는게 아니라 하나의 단편으로도 충분했을, 완성도 높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하무라 아키라 2기 살인곰 서점 시리즈의 막을 여는 작품답게 백곰 탐정사 설립 유래도 등장하고, 도야마 점장의 미스터리 소개 등 팬으로 즐길거리도 많아서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읽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2016년 발표 당시 이런저런 리스트에서 베스트 10 안에 포함된건 - 주간문춘 베스트 미스터리 10위, 고노미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6위 등 - 당연하다 생각되네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전개 중간중간마다 억지스러운 부분이 눈에 걸리는 탓입니다. 우선 후부키가 하무라에게 딸 시오리를 찾아달라고 의뢰한 것 부터가 억지입니다. 과거 시오리가 사라졌던건 후부키가 시오리의 살인 행각을 알고난 뒤 시오리를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 후부키는 시오리가 죽었고, 충직한 비서 야마모토가 사체를 처리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녀 주변에 시오리를 닮은 누군가 (알고보니 진짜였지만)가 출몰했기 때문에 그 진상을 알기 위해 사건을 의뢰했다는데, 이건 말도 안됩니다. 20년 전에 시오리를 처리했다는 충직한 비서 야마모토는 건재했으니까요. 그냥 야마모토에게 연락해서 진상을 알아보면 될 일이었어요!
야마모토가 시오리와 관계를 가진 탓에 미안해서 연락을 못 받았다는 묘사가 있지만, 그랬다면 의뢰는 비서를 찾아달라는걸로 족합니다. 시오리를 찾아달라고 의뢰한다면, 탐정의 조사를 통해 과거의 연쇄 살인이 드러날지도 모르잖아요. 20년 전 처럼 시오리 친부가 누구인지에 대한 소동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실제로 하무라는 시오리의 부친이 누구인지는 물론이고 그녀가 사라진 이유 등 모든 진상을 알아내는데 성공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억지스러운 의뢰였습니다.

시오리의 연쇄 살인도 하무라의 조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만, 급작스러울 뿐더러 비현실적인 사건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이건 시오리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그녀의 캐릭터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한 탓입니다. 고등학교 때 성폭행을 당했었다는 과거 언급이 전부인데, 이 아픈 기억이 연쇄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전혀 설명되지 않고, 범행에 대한 묘사도 전무하기 때문이지요. 그나마 야마모토의 여동생 유코는 그녀가 시오리를 도발했다는 말이라도 나오는데, 가정부와 이모 할머니는 대체 왜 죽인건지도 모르겠어요.
후부키가 시오리의 최종 목표였다는 것도 의문입니다. 그럴거라면 과거에 가정부와 이모 할머니를 살해했을 때 같이 죽이려 했어야지요. 또 시오리가 입원 중이었던 병원을 몰래 빠져나온지도 3주 정도 지났다고 설명되는데, 왜 주위만 맴돌고 진작에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까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뚱뚱한 시오리가 후부키를 덥치고, 그걸 막는 하무라와의 사투는 지나칠정도로 전형적이면서 크리쳐물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과장되어 있어서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웠고요.
매니저 야마모토의 복수 - 성폭행을 저질러 시오리를 연쇄 살인마로 만든 안자이에 대한 - 도 뜬금없었고, 20년 전 1990년대에 이렇게 많은 죽음이 제대로 조사되지 못한 이유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단순 실종이나 자연사로 위장한 이모 할머니 사건이야 그렇다쳐도 명확한 살인 사건이었던 하나 사건, 유코 사건은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을텐데 그 경과는 대충 넘어갑니다.

또 곁가지 사건 중 친구인 줄 알았던 악녀 마미가 얽힌 사건은 비중은 제일 큰 반면 내용은 별게 없어서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이벤트를 가장한 불법 카지노 운영 방식에 대한 추리는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순진한 사기 피해자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무라를 속여넘긴 프로 범죄자이자 일종의 생활밀착형 사이코패스 마미 묘사만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에 계속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의 확장형이기도 한데, 이후 시리즈가 생활밀착형으로 방향을 전환하게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재미만큼은 분명합니다. 단점을 잔뜩 언급하기는 했지만 읽는 동안에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나쁜 토끼>>의 비현실적인 세계관에서 생활밀착형 하드보일드인 살인곰 서점 시리즈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작가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5/01/13

녹스머신 - 노리즈키 린타로 / 박재현 : 별점 2.5점

녹스머신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반니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본격 추리소설은 체계적인,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는 장르죠. 이 작품은 이러한 본격 추리소설의 규칙을 실제하는 물리학, 양자역학에 끼워넣은 독특한 SF인 "녹스 머신"과 "논리 증발", 그리고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메타 픽션 "들러리 클럽의 음모", 그리고 독특한 암호트릭 중심의 본격 SF "바벨의 감옥"으로 이루어진 중단편집입니다.

발표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온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4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부문 모두 1위) 작품으로 국내 번역이 언제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회 "하우 미스터리"에서의 이벤트 당첨 덕에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관계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완독한 첫 느낌은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구나! 라는 것입니다.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해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 외에도 광범위한 물리학, 양자역학 지식까지 어떻게든 충족시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라 작가의 노력, 탄탄한 지식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네요. 이런 점은 확실히 배워야겠죠. 추리 소설의 규칙을 과학 이론으로 만든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기대했던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고, 작품의 난해한 정도가 지나친 탓입니다. 독자를 의식하고 쓰여진게 아니라 작가의 자기 만족, 취미 활동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에요. 독자를 의식했더라도 굉장히 특이한 독자를 대상으로 했을 겁니다. "파운데이션"의 '심리역사학'처럼 이론에 대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소설로서는 더 맞는 방향이었어요.

게다가 "녹스 머신"에서 문헌수리해석, 물리학과 타임머신 관련 이론, 양자역학, 평행 세계 등에 대한 학술적 이론을 빼면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한 중국인이 과거로 돌아가 녹스를 만나고, 그 탓에 녹스가 자신의 십계명을 수정한다'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기대했던 반전도 없고,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고민도 별 볼일 없이 해결되며, 예상했던 결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시시해요. 솔직히 도라에몽의 타임머신 단편들이 더 그럴듯하고 흥미진진하게 타임 패러독스를 다뤘다 생각됩니다.

"바벨의 감옥" 역시 마찬가지. 일종의 격자화된 틀, 그리고 그곳에 배치된 글자들을 이용한 암호 트릭이 전부입니다. 외계 종족과 일종의 텔레파시 싸움을 벌인다는 설정 및 다른 내용은 이 트릭이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사족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읽으면서 졸 정도였어요. 트릭도 일본어 세로쓰기 구조를 이용한 것이라서, 일본 외에서는 애시당초 먹히기 힘들고요. 어떻게든 한글화를 시도한 번역자의 노고는 알겠지만 성공한 결과물도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들러리 클럽의 음모"와 "논리 증발" 두 편은 그래도 조금 더 쉽게 읽히며 재미 면에서 더 낫기는 합니다. 일단 메타 픽션인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다른 세 작품과는 다르게 SF는 아닙니다. 본격 추리소설에 대해, 그리고 여러 추리소설 작가들과 그 주인공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독특한 창작물이죠. 추리소설의 화자 역할인 탐정의 파트너들이 소속된 '들러리 클럽'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10번째 인디언 인형"이 추리 소설에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을 놓고 회의를 진행한다는 내용으로,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그것도 본격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정말로 실존한 인물들처럼 묘사된 들러리 캐릭터들 — 특히 악역인 밴 다인 (반 다인), 꼰대가 되어버린 왓슨 — 묘사도 아주 좋으며, 실존했던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 실종 사건을 들러리 클럽과 엮는 시도도 괜찮았습니다. 빅4 등의 다양한 패러디도 볼거리였어요. 마지막 밴 다인의 독살이 뜬금없이 이루어지는 등 정작 추리적인 요소가 기대 이하라는 점은 좀 아쉬웠지만요.

"논리 증발"도 "녹스 머신"보다 스케일이 크면서도 내용이 풍성해서 완성도는 더 높은 작품입니다. 복잡한 이론을 걷어내더라도 전자화된 데이터에 발화를 일으키는 촉매재로 엘러리 퀸의 작품들, 그 중에서도 '독자에의 도전'이 삽입되어 있지 않은 "샴 쌍둥이의 비밀"이 이용된다는 추리소설 매니아만이 할 수 있는 발상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전개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는 전뇌 생명체가 된 유안이 메시지를 남긴다는 결말도 깔끔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평균 별점은 2.5점.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역량을 극한으로 발휘한, 지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덕분에 평론가들과 매니아들에게 사랑받을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추리, SF 양쪽 장르 모두에서 이야기의 완성도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부분에 있어서 작가의 이름에 어울리는 작품들은 아니었어요. 저는 "매니아"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께 쉽게 권해드리기 어렵네요.

2014/02/24

비정근 - 히가시노 게이고 / 김소영 : 별점 2.5점

비정근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소영 옮김/살림

비정근 교사인 주인공이 임시 담임을 맡은 학교와 반에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한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살인사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당연하지요. 초등학교에서 대단한 강력 범죄가 벌어질 확률은 낮으니까요. 허나 평범한 일상 속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전개하는 작가의 능력만큼은 확실히 인정할만 합니다. 별거 아닌데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또 주인공 설정이 괜찮았어요.  뭔가 오래전 "떠돌이 해결사" 느낌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쿨하고 차갑지만 사실은 따뜻한 남자로, 마을의 위기를 해결하고 떠나는 무사같은 느낌이요. 귀찮은 것을 싫어하지만 냉정하고 분석력이 빠르며, 일을 맡기면 똑 부러지게는 하지만 더 이상의 무언가는 절대로 하지 않을 성격도 마음에 들고요. 사건을 겪으면서 조금씩 "선생님"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맡는 학교마다 크건 작건 사건이 일어나면 비정근 교사로 먹고살기는 점점 힘들어지겠지만....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일본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트릭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추리에 동참하거나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 자체는 단점은 아니지만 번역할 때 국내 실정에 맞게 조금 더 신경썼더라면.. 하는 생각은 듭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작가 특유의 몰입감 있는 전개가 인상적인, 무난한 단편집입니다. 일상계스러운 재미는 충분한 만큼,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또 추리소설을 처음 접하시는 초심자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주인공이 독특한만큼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6*3"

3개월 한정의 비정근 교사로서 5학년 3반의 담임을 맡게 된 주인공이 기묘한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입니다.

주요 트릭이 다이잉메시지인데 원래의 메시지가 있었더라면 범인이 곧바로 체포되었겠지만, 작위적으로 메시지를 변경하여 이야기를 어렵게 꼬아놓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원래의 메시지가 변경된 이유를 설득력있게 설명하는건 괜찮아서 평작 수준은 충분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1/64"

반 아이들이 나누는 1/64 라는 단어와 반에서 일어난 지갑 도난 사건의 진상을 그린 작품.

평이하고 무난한 일상계지만 아쉬운 것은 "바카도지"라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일본식 암호로 국내 독자가 해석하기에 무리가 따를 뿐더러, 그 자체가 너무 작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두엘기삼" 같은 건데 이게 우연히 단어처럼 보이게 되었다는건 너무 우연이 심해요. 또 요시오카가 돈을 빼앗긴 것을 밝히지 않은 것도 의문입니다. 그게 도박의 증거가 될 수는 없잖아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10*5+5+1"

주인공이 다른 학교 5학년 3반의 임시 담임이 된 뒤 이전 담임 모리모토의 추락사에 대한 진상을 밝힌다는 내용.

나름 무난한 일상계인데 공식의 결과인 56이 모리모토의 체중이었다는게 어머니를 통해 증언되었다면 좀 더 쉽게 풀렸을텐데, 괜히 어렵게 꼰 느낌입니다. 동기 역시도 억지스러웠어요.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지만 다른 해결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으로 보이거든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인간이란 약한 존재라는 주인공의 독백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라콘"

이번에는 반도 시키 초등학교의 6학년 2반을 무대로 하여 학생인 나가세 아키호의 투신자살 미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우라콘"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낸다는 내용.

처음으로 제목이 공식이나 숫자가 아니라서 의외였던 작품인데, "우라콘"의 뜻만 알면 진상은 쉽게 드러나지만 뜻을 알아내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솜씨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일상계인데 이 솜씨 덕분에 그야말로 미스터리가 됐달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일본식 조어인 "우라콘" 입니다. 한국식으로 "뒷담투"와 같이 번역했더라면, 최소한 각주 정도로 표기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무토타토"

이번에는 고린 초등학교 6학년 3반. 수학여행을 중지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협박장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트릭은 일본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트릭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억지스럽더라도 번역할 때 "이외"라는 한글을 풀어서 "0151"과 같이 표기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래도 야노의 계획에 나카야마가 숟가락을 얹어서 사건이 복잡해진 점, 동생을 활용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찾아낸 발상은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꽤 괜찮은 교사임이 드러나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주인공은 주인공다워야하는 법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초등학교 6학년생이 이즈라는 지명을 듣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언급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많은 작품을 읽어봤지만 정작 지명은 잘 모르는데... 국내가 아니라서 뇌리에 깊게 남지 않았다 위안을 삼아봅니다...

"신의 물"

이번에는 롯카쿠 초등학교 6학년 3반. 반 학생이 음독으로 쓰러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내용.

일단 트릭은 "신의물"이라는 페트병에 쓰인 글자가 핵심인데 역시나 일본인만 알 수 있는 트릭입니다. 감점 요소는 아니지만, 아무리 아이들이어도 초등학교 6학년 정도면 음독과 고양이 먹이 주기라는 일의 경중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을텐데 경찰에 진상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네요. 아예 저학년이었다면 모를까...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아니었어요.

"방화범을 찾아라"

고바야시 류타라는 초등학생이 화자이자 탐정역으로 등장하는 짤막한 단편. 주인공은 물론 등장하는 일종의 밀실 트릭도 순간접착제를 이용했다는 진상은 유치할 뿐더러 잘 됐을 것 같지도 않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작가가 "명탐정 코난"같은 아동용 추리물에 관심을 가진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만화였다면 더 나았을지 모르지만 소설로는 영 아니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유령이 건 전화"

고바야시 류타 화자의 일상계. 반 아이들에게 걸려온 장난전화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로 이번에는 탐정역으로 동급생 아사쿠라 도모미가 활약합니다.

단순한 장난이라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는 이야기를 이만큼이나 흥미롭고 풍성하게 만든건 작가의 능력이겠지요. 훈훈하고 따뜻한 괜찮은 소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2015/06/26

미스테리아 1호 - 엘릭시르 편집부 : 별점 1.5점

미스테리아 1호 - 4점 엘릭시르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장르문학 전문 레이블 엘릭시르에서 새롭게 미스테리 전문 잡지를 출간하기 시작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솔직히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선 산만한 편집과 어수선한 디자인이 가장 거슬립니다. 엘릭시르 단행본 수준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편집 디자이너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엉망이었어요. 내지에 있는, 일반 기사를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만든 이유는 누가 설명 좀 해 주면 좋겠네요.

수록 기사도 대체로 실망스럽습니다. 일단 앞 부분의 단순 리뷰들부터 문제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런저런 책 소개와 하등 다를게 없는 탓입니다. 그나마도 최신작에 집중되어 있고요. 리뷰를 쓴 사람들도 애매합니다. 맥심 편집장이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리뷰를 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요? 딱히 새로운 시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녀의 화보라도 같이 실어주었더라면 몰랐겠지만요. 다른 기사들도 대체로 별볼일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기획 의도부터가 잘못된 듯 합니다. 어차피 이 잡지를 구입한 사람은 정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애호가일겁니다. 제목부터가 '미스터리(mystery)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 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때문에 보다 매니악한 주제로 기사를 썼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리뷰라면 "온라인 서점 장르문학 MD가 추천하는 한국 추리소설 All-time best 10" 같은 주제로 책들을 선정한 뒤 소개하는 형식으로요. 이런게 한국 미스터리를 보다 성장시키고 싶다는 출간 의지와도 맞물리는 것이겠죠. 이런 점에서는 "판타스틱"의 김내성 특집호가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네요. 주제도 매니악하고, 의미도 있으면서도 기사도 아주 좋았던 결과물이었으니까요.

"SCREENSELLER"라는 주제로 영화화된 작품들을 소개하는 기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작과 작품의 퀄리티에 상관없이 최신작 기준으로 대충 선정한 느낌인데, 데니스 루헤인 인터뷰도 실려있는만큼 "살인자들의 섬"을 가지고 "원작 VS 영화" 형식으로 심도깊게 파고드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물론 괜찮은 기사도 있기는 합니다. 기존 문학작품을 분석하여 숨겨져있는 추리소설 정서를 파헤쳐주는 "MISSING LINK 집 안의 괴물들" 이라던가 "MAZE 『밀실 입문』 (1), 밀실은 ‘합법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법의학자 유성호의 "NONFICTION 검은 집, 엄마의 비밀"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컨텐츠들이기도 하고요. 수록된 단편들도 읽을만 합니다.

그래도 다시 말씀드리지만 결론적으로는 기대이하였기에 별점은 1.5점. 2점을 줄 수도 있지만 14,000원에 육박하는 가격과 허술한 디자인과 편집으로 더 감점합니다. "판타스틱"은 5년전 출간물이기는 하지만 보다 두꺼웠는데도 불구하고 만원 이하였었죠. 2호째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태라면 절대로 구입해 볼 계획이 없습니다. 추리 매니아가 호구는 아니니까요.

수록 단편만 따로 짧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배신하는 별"

비밀리에 보호되던 인물이 암살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일기를 보고 창에서 보이는 "오리온 별자리"를 재구성한다는 내용.

상황 설정과 전개, 결말까지 완벽한 단편입니다. 배명훈 작가 소설은 처음인데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아주 약간의 단점이라면, 비약이 심하다는 것과 시리즈물이라 모든 설정을 이 단편만 가지고 이해하기는 좀 어렵다는 정도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누구의 돌"

사랑하던 동생이 실종된 사건을 추적해서 범인들을 알아내어 복수하고 남겨진 원수들은 사는게 지옥이 된다는 내용.

"나는 너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류의 설정인데 흡입력있는 전개와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범인들을 알아내는 과정이 작위적이라는 단점 - 몇년전 찍은 사진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걸 찾아내고, 마침 주인이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고... - 이 있어서 감점하지만 재미만큼은 최고수준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구석의 노인"

정당 방위일 수 있는 살인사건의 재판을 참관하는 할머니가 제출된 몇몇 증거만으로 진상을 꿰뚫어본다는 내용.

정당 방위와 과잉 방어에 대한 법리학적 설명 등 작가의 전문성을 발휘한 몇몇 디테일은 나쁘지는 않지만 작품 자체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국내 추리소설 작가 중 정교한 트릭 면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힐만한 도진기 작가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이유는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일관하는 탓이 큽니다. CCTV로 잡은 화면에서 손의 반지가 보인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죠. 설령 보였다 하더라도 드라마에 푹 빠진듯한 할머니의 추론일 뿐, 별다른 설득력도 없고요. 범인이 정말 스토커였을 수도 있는거잖아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신드롬"

외따로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전염병이 닥치고, 그 와중에 아내가 사라진 상황을 그린 작품.

집단 광증에 대한 분위기, 세부 디테일 - 특히 유치원 버스에서 아이들을 데려가는! - 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앞집 남자와 화자인 "나"의 시점에서 각각 상황을 설명하려 하는 것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결말도 당쵀 이해가 안되고요. 열린 결말도 정도껏 해야 했을텐데... 별점은 2점입니다.

"말을 탄 사나이 켈러"

매튜 스커더 시리즈 작가 로렌스 블록의 단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자기 자신과 싸구려 소설의 카우보이를 동일시하는 도입부에서부터 시작하는, 인물들을 드러내는 묘사는 역시나 대단하다 싶었어요. 매튜 스커더가 직업만 킬러로 바뀐 듯 싶긴 한데, 주변 인물들을 "배려"하고 소모적인 살인을 피하고자 흑막을 죽이기 위한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왠지 바보같지만 멋졌습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아갈 뿐이라는 결말도 작위적이지만 나쁘지 않았고요.

거장이 심심풀이로 여유있게 써내려간 소품 느낌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6/12/01

장서의 괴로움 - 오카자키 다케시 / 정수윤 : 별점 3점

장서의 괴로움 - 6점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정은문고

유명한 장서가로 수 만권(2~3만 권 정도?)의 책을 보유한 저자가 장서 보유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입니다. 개인 경험담과 이런저런 생각을 펼쳐보이는 에세이지만, 장서 구입과 관리 등 다양한 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실용 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책의 성격만 보면 얼마 전 읽은 "책장의 정석"과 비교됩니다. 차이점이라면 "책장의 정석"은 가지고 있는 책을 '관리'하는 팁을 제공한다면(심지어 관리할 수 있는 분량만 보유하도록 적절한 처분법마저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이 책은 '관리'가 불가능한 수준의 장서가를 위한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관리'를 위해 책을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저자 스스로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 지적 생산의 유통이 정체된다. 사람 몸으로 치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피가 막힘없이 흐르도록 하려면 현재 자신에게 있어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는 편이 낫다'고 하는데, 이는 "책장의 정석"과 일치합니다.

다양한 일화가 많은 것도 특징입니다. 개인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들은 당연히 아주 실감나고요. 헌책방, 고서를 찾거나 구입하는 것에 얽힌 본인의 경험담, 그리고 책을 정리하는 방법과 팁 등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 합니다.

다른 장서가들과의 인터뷰라던가 그들만의 책 보관 방법, 장서가가 등장하는 여러 가지 영화와 콘텐츠 등 장서에 얽힌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들도 가득합니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이 사는 집"을 지은 장서가 네기시 씨의 인터뷰였습니다. 이유는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죠.

책을 줄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소개하면서도, 결국 주체하지 못하고 책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서관을 잘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에 관련된 원고를 쓰다가 어쩌다 보니 도서관에 대한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는데, 정말이지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장서가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자가 소개하는 이 분야의 베스트는 오다 미쓰오의 "도서관 산책"입니다.

그리고 책을 줄이는데 제일 효과적일 수 있는 전자 서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눈에 띕니다. 책은 단순히 내용물로만 구성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동의하는 바가 없지는 않지만 앞으로 전자 서적의 발전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아울러 장서가답게 이런저런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이야기들도 많은데 이 역시 눈여겨볼 만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책 정리법(책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을 송나라 학자 구양수의 시필에 나온 '명창정궤'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햇빛 잘 드는 창 아래 깨끗한 책상, 그 위에 책 한 권이면 충분하지 않냐는건데, 이를 12세기 일본의 가인 가모노 조메이의 움막과 연결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걸 보면 학식이 참으로 대단하다! 싶어요. 책을 많이 읽으면 저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인용과 연결이 가능할지 궁금해지네요.

그 외에도 주목할 만한 인용이 많습니다.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우선 문필가 요시다 겐이치의 말인 "책장에 책이 5백 권쯤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라는 말입니다. 하루에 세 권씩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참으로 와 닿습니다.
유명한 장서가 다니자와의 명서 감정술도 비슷합니다. "명저라는 홍보에 넘어가 샀던 책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류 이하 책을 이것저것 찾아 읽지 않았다면 초일류를 초일류라고 인정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는 것인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당연하지만 이런저런 책들도 제법 소개되는데 이 중에서는 영화 속 서점과 도서관이라는, 영화 속에 책이나 책장이 나오는 영화를 엮어놓은 책이 가장 끌립니다. 영화 언젠가 책 읽는 날의 후일담을 엮은 동명의 책에서 영화 속 주인공인 독서가 미나코가 좋아한 10권의 책 목록도 마찬가지예요. 아는 책은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과 앤 모로우 린드버그의 "바다로부터의 선물"밖에는 없는데, 저자 역시 극찬하고 있는 "티보 가의 사람들"은 굉장히 방대한 분량이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책은 실물 크기 일러스트에 의한 "낙엽도감"이지만요. 수집가로서의 장서가를 다룬 '남자는 수집하는 동물' 챕터에서 소개된 "소년소녀 쇼와 미스터리미술관"이라는 책도 꼭 읽어보고 싶고요.

이렇게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일본' 기준이라는 점입니다. 앞서 이런저런 유용한 팁이 많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한국의 거주 문화와 책에 대한 일반적인 경우를 놓고 보면 그렇게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정말로 책을 좋아한다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보장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본인이 장서가시라면 한 번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 역시 500권도 안 되는, 장서라고 하기는 초라한 수준의 책만 갖추고 있지만 책을 좋아하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더 늘리면 안 될 것 같긴 합니다만...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미나코가 좋아한 10권의 책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티보 가의 사람들 - 마르탱 뒤 가르 (국내 출간)

안녕, 콜럼버스 - 필립 로스 (국내 출간, 굿바이 콜럼버스)

아름다운 여름 - 체사레 파베세 (국내 출간)

바다로부터의 선물 - 앤 모로우 린드버그 (국내 출간)

실물 크기 일러스트에 의한 낙엽도감 - 요시야마 히로시 / 이시카와 미에코

여자 - 카터 브라운

미국의 송어낚시 - 리처드 브라우티건 (국내 출간)

열두 달 반찬 - 고지마 신페이

하늘을 나는 교실 - 에리히 케스트너 (국내 출간)

사이좋은 부부 - 오다 사쿠노스케

2013/01/22

전설 없는 땅 1,2 - 후나도 요이치 / 한희선 : 별점 2점

전설 없는 땅 2 - 4점
후나도 요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시작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국경지대, 말라버린 유전에서 희토류가 발견되었다. 땅주인인 알프레도 엘리손도는 일본인들에게 거액을 받고 땅을 넘기기로 결정했는데, 유전 지역에 살고 있는 400여 명의 콜롬비아 난민들이 문제였다. 그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려는 알프레도에게, 강도질로 얻은 2천만 불을 유전에 숨겨놓은 단바 하루히코와 가지 시로 일당이 맞서게 되는데...

1988년 발표된 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제4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제7회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을 수상한 후나토 요이치의 작품. "신주쿠 상어", "불야성"과 동일 유전자를 지닌 일본식 마초 액션 하드보일드 스릴러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았었는지 모르겠네요. 상상을 뛰어넘는 마초적인 설정, 지나친 성적 / 폭력적인 묘사, 개연성 없는 작위적인 전개, 결국 허무한 결말이라는 쟝르 고유의 단점만 도드라지던데 말이죠.

물론 땀 냄새 가득한 남자 이야기일뿐더러 안티 히어로가 주인공인 만큼 마초적인 설정이야 이해할 수 있스빈다. 성적 / 폭력적 묘사는 마초 액션에서야 떼 놓을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요. 이 점은 "신주쿠 상어"라던가 "불야성" 역시 마찬가지니까요. 그러나 개연성 없고 우연에 가득 차 있을 뿐 더러 작위적이기까지 한 전개는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죽음의 9잡거방으로 이송된 단바가 "운 좋게" 흉기를 구해 숨기고 "운 좋게" 그레고리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살아남고 "운 좋게" 총기를 빼앗아 소장을 덮쳐 죽인다는 식으로 전개되어서 황당한데, 단바가 막달레나 마리아를 보자마자 "바리빠"라고 불리는 "신의 전사"로 거듭나는 장면은 정말이지 이게 뭔가 싶었어요. 사랑에 빠졌다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처지의 민중에게 감화된 것도 아니고, 당최 이유를 알 수 없으니까요.

또 아무리 부패한 국가라도 일개 목장주인 알프레도가 가족, 관할 지역 경찰서장, 경비대장 등을 모조리 죽이고, 사병집단을 고용하여 학살을 일으키려 하는데 무사히 넘어갈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도 이상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엘리손도의 땅에 무허가로 공화국을 세우겠다는 등 해괴한 논리를 들먹이며 더 나은 곳으로의 이주도 거절하는 난민들이야 말로 죽어도 싼게 아닌가 싶습니다. 뭐가 정의인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지진이 덮쳐 한 방에 끝내는 결말이야말로 작위적인 설정의 끝판대장이자 허무! 그 자체였습니다. 하필 모든 전투가 끝나고 상황이 종료된 직후 지진이 딱 맞춰 시작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될 뿐더러 900페이지에 이르는 대장편의 결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고 허무했어요.

그나마 베네수엘라를 무대로 한 디테일한 묘사는 발군이며 "혁명"에 대한 고찰이 덧붙여져 있다는 점은 괜찮았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불야성"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보이는데 일본 마초 액션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단점을 모두 보여줄 뿐 아니라 이국적이면서 디테일한 배경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 그러하죠.
하지만 "불야성"은 전개만큼은 꽤 정교했는데, 이 작품은 어이없는 전개로 일관할 뿐이라서 수준 차이는 현격합니다. 맛없는 빵 위에 토핑 몇개 얹는다고 빵 맛이 달라지지는 않잖아요? 토핑은 고급스럽지만 걷어내고 남는 알맹이가 부실하니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읽는 맛은 제법 있는 편으로 아주 평가절하하기는 어려우나, 제게는 단점이 더 도드라진 작품이었습니다. 88년 당시에는 먹혔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부족한 점만 눈에 많이 뜨이네요.

2019/11/09

블러디 프로젝트 - 그레임 멕레이 버넷 / 조영학 : 별점 3.5점

블러디 프로젝트 - 6점
그레임 맥레이 버넷 지음, 조영학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

1869년 8월 10일 아침, 스코틀랜드 북부의 마을 컬두이에서 17세의 소년 로더릭 멕레이가 메켄지 일가를 참혹하게 살해한다. 그는 인버네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중, 자신의 일생과 저지른 범죄를 반추하는 비망록을 작성한다.

우리나라 작가 한강이 수상했던 2016년의 맨부커상 후보작이기도 했다는 범죄물입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손에서 책을 떼기 힘들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책은 크게 메켄지 일가를 살해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로더릭 멕레이의 비망록, 그리고 로더릭 멕레이가 사건 당시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싱클레어 변호사와 검사측의 치열한 싸움이 펼쳐지는 재판 과정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이 중 비망록 부분은 정말이지 무섭습니다. 로더릭 멕레이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과 같은 삶에 갇혀 있다는 내용으로, 그 어떤 희망도 볼 수 없어서 끔찍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꿈도 가질 수 없고, 오히려 빚 때문에 모든걸 잃고 가족은 행정관 메켄지에게 농락당하지만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소년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가족의 붕괴는 시간문제였을거에요. 

이어지는 재판 과정, 법정 다툼에서 여러 증인들의 증언에 의해 비망록의 진실이 하나 둘 씩 밝혀지는 과정의 흡입력도 대단합니다. 작가의 구성력과 표현력이 뛰어난 덕분이지요. 무엇보다도 재판 과정에서 제임스 톰슨 박사에 의해 밝혀지는 범행의 진짜 동기는 그야말로 충격입니다. 메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별 생각없이 저지른 충동적인 범죄가 아니라 자신의 구애를 거절한 매켄지의 딸 플로라를 능욕하는게 목적이었다는 것이지요. 검시 결과와 같은 여러가지 현장 조사 기록과 법정에서 증언으로 밝혀지는 현장의 모습 등도 이러한 진짜 동기를 강하게 뒷받침하고요. 이 작품을 추리물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겠지만 이 장면만큼은 아주 괜찮았어요. 이외에 특별히 법정 미스터리같은 부분은 없습니다만, 교도소 의사인 먼로 박사를 다그치는 싱클레어 변호사의 활약은 꽤 볼만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와중에 밝혀지는 제임스 톰슨 박사의 사고방식은 정말이지 기도 안 차더군요. 범죄가 유전의 산물이고, 하층민의 전유물처럼 여기며 소장농들을 무시하는 지독한 특권 의식에다가 범죄자는 미적 감상이 불가능하다는 등 편견에 사로잡힌 인물인데 이런 사람이 당대 최고의 범죄 심리 전문가로 인정받았다니 정말 야만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영적으로 주민들을 이끌고 보호해야 하는 목사마저도 주민들이 야만적이고 소년은 사악하다는 사심을 가감없이 드러내니 말 다했지요.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로더릭 멕레이의 비망록의 문체입니다. 더 날 것 느낌이 났어야 했어요. 아무리 소년의 지능이 보통 이상이며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오래 받거나, 제대로 된 책을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쓴 글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공의 소설을 실제 있었던 사건처럼 서술한 작가의 솜씨가 대단하다는 점을 볼 때 원문을 읽지 못했고, 읽을 실력도 없지만 번역하면서 유려하게 매만진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데, 좀 오버스럽기는 해도 차라리 '사투리' 로 막말을 포함하여 번역되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또 아버지 존 멕레이의 존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입니다. 메켄지에게 농락당한건 그렇다 치더라도, 딸이 성폭행당해 임신까지 했는데 침묵한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아무리 무관심, 무저항으로 일관한다고 해도 그 정도가 지나칩니다. 존 멕레이의 존재가 모든 사건을 일으킨 것과 다름이 없는데, 캐릭터의 설득력이 부족하다는건 분명한 단점이지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작품의 가치를 저해할 정도는 아닙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입니다. 재미와 함께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안겨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작가의 필력, 구성력도 나무랄데 없고요. 단점을 약간 언급하기는 했지만 작품의 수준을 해칠 정도는 아닙니다. 소년의 끔찍한 삶이 너무 잔인해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3/05/04

유리고코로 - 누마타 마호카루 / 민경욱 : 별점 2점

유리고코로 - 4점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서울문화사

행복의 절정에 있었던 료스케에게 애인 지에의 실종, 아버지의 말기 췌장암, 어머니의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이라는 불행이 연이어 닥쳤다. 실의에 빠진 료스케는 우연히 아버지의 방에서 발견한 비밀스러운 수기를 읽은 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글은 연쇄살인범인 여주인공의 고백을 담은 것으로, 자신의 출생 및 가족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2 오오야부 하루히코 대상’, ‘2012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5위, ‘2012 일본 서점 대상’ 6위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책이기도 하죠. 평단의 평도 좋고요. 

주인공에게 닥친 불운한 현실과, 료스케의 어머니 것으로 추정되는 충격적이고 비밀스러운 고백이 서로 교차되며 전개되다가 하나의 결말로 합쳐지는게 특징입니다. 덕분에 일종의 액자 소설 느낌도 전해 줍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닥이었습니다. 이유는 책 소개에서 극찬하고 있는 심리 묘사가 별로였던 탓입니다. 수기 속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심리가 영 와 닿지 않았거든요. 말랑말랑한 순정만화 감수성 넘쳐나는 묘사만 가득하고, 정작 깊이 있는 캐릭터 설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만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집 누나 같은 평범한 소녀 연쇄살인마에 불과합니다. 이 캐릭터가 작품의 핵심인데 이렇게 밍숭맹숭 애매하게 묘사한 건 큰 문제이지요. "미래일기"의 가사이 유노 정도의 설득력은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캐릭터 묘사보다 료스케의 사업인 애견들을 뛰놀게 만드는 공원 카페 설명이 차라리 더 좋아보일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료스케 살인 미수(?) 후 가족을 떠나, 갑자기 개과천선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전개 방식도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접해보았던 것이라 딱히 신선하지 못합니다. 료스케가 읽는 수기의 주인공 정체에 대한 진상도 너무 뻔했고, 마지막 반전(?) 역시 예상 범위 안에 있어서 딱히 대단하다고 생각되지 않았어요. 수기를 발견하여 읽게 되는 발단부의 작위성, 막장 드라마 같은 지에에 대한 묘사 등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물론 "이런 작품을 이런 스타일로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신선함과 더불어, 수기에서 "유리고코로"라는 말로 자신의 알 수 없는 감정(살의)을 묘사하는 것, 그리고 료스케의 동생 요헤이의 이론적인 추리라든가 지에의 남편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정도는 괜찮았으나, 분량에 비하면 건진 게 많아 보이지는 않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전체적으로 너무 뻔한 작품이었습니다.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2018/06/02

주간문춘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개정판

하우미스터리에 올라온 주간문춘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저도 예전에 소개했던 1986년 리스트의 신규 개정판입니다.

온라인 사이트에는 50개씩만 실려있는 듯 한데 리뷰를 남긴 작품 (링크), 리뷰는 없지만 읽은 작품 (붉은색)을 체크해 보았습니다. 일본 작품들 중에서는 국내 출간된 39편 중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은 "도구라 마구라". "흑사관 살인사건"과 얼마전 출간된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그리고 "모방범"과 "죽음의 샘"의 5편을 읽지 않았네요. 해외 작품은 국내 출간 44편 중 "밀레니엄 1", "본 컬렉터", "흥분"의 3편을 빼고는 다 읽어 보았고요. 와 대단하다! 8편만 더 읽으면 일단은 완전정복이니만큼 당분간은 이 리스트부터 정복해봐야 겠습니다. 딕 프랜시스의 "흥분"은 왜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 2013.02.18 수정 "죽음의 샘" 완독
  • 2013.02.24 수정 "흥분" 완독
  • 2013.03.02 수정 "본컬렉터" 완독
  • 2013.03.08 수정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완독
  • 2017.10.16 수정 "하늘을 나는 말" 완독
  • 2018.3.30 수정 "레이디 조커" 1권 완독
  • 2021.1.3 수정 "비숍 살인사건" 완독
  • 2021.5.7 수정 "통" 재독
  • 2023.2.12 수정 "황제의 코담뱃갑" 재독
  • 2024.11.15 수정 "11장의 트럼프" 완독
  • 2025.04.19 수정 "요이 금병매(금병매 살인사건) 완독
  • 2026.02.26 수정 "십각관의 살인" 추가

아울러 이런 류의 리스트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하락하긴 했지만 이 리스트는 고전 걸작이 많기에 꽤 괜찮다 생각됩니다. 전부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대부분은 자신있게 권해드릴만 하니 아직 읽지 않으신 작품이 있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본" 

1위 옥문도, 요코미조 세이시 

2위 허무에의 공물, 나카이 히데오 

3위 점성술 살인 사건, 시마다 소지 

4위 도구라 마구라, 유메노 규사쿠 

5위 화차, 미야베 미유키 

6위 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7위 대 유괴, 덴도 신 

8위 십각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9위 망량의 상자, 교고쿠 나쓰히코 

10위 혼진 살인 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11위 검은 트렁크, 아유카와 데쓰야 (국내 미출간) 

12위 회귀천 정사, 렌조 미키히코 

13위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14위 흑사관 살인 사건, 오구리 무시타로 

15위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16위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아와사카 쓰마오 

17위 하늘을 나는 말, 기타무라 카오루 

18위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19위 불연속 살인 사건, 사카구치 안고 

20위 시계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21위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시마다 소지 

22위 쌍두의 악마, 아리스가와 아리스 

23위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쓰히코 

24위 이전 동화, 에도가와 란포 

25위 모래 그릇, 마쓰모토 세이초 

26위 내가 죽인 소녀, 하라 료 

27위 외딴 섬 악마, 에도가와 란포 

28위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다카기 아키미쓰 

29위 레이디 조커, 다카무라 카오루 

30위 요이 금병매, 야마다 후타로

31위 기아 해협, 미나가미 쓰토무 (국내 미출간) 

32위 문신 살인 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33위 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34위 혼란 계략, 아와사카 쓰마오 (국내 미출간) 

35위 음수, 에도가와 란포 

36위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37위 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38위 11장의 트럼프, 아와사카 쓰마오 (국내 미출간) 

39위 이누가미 일족, 요코미조 세이시 

40위 상자 속의 실락, 다케모토 겐지 (국내 미출간) 

41위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42위 한시치 체포록, 오카모토 기도 

43위 아웃, 기리노 나쓰오 

44위 죽음의 샘, 미나가와 히로코

45위 독 원숭이, 오사와 아리마사

46위 산 고양이의 여름, 후나도 요이치 (국내 미출간) 

47위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48위 태양 흑점, 야마다 후타로 (국내 미출간) 

49위 무당거미의 이치, 교고쿠 나쓰히코 

50위 불야성, 하세 세이슈

"해외" 

1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2위 Y의 비극, 엘러리 퀸 

3위 셜록 홈스의 모험, 아서 코난 도일 

4위 환상의 여인, 윌리엄 아이리시 

5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6위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7위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8위 브라운 신부의 동심, G. K. 체스터튼 

9위 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10위 화형 법정, 존 딕슨 카

11위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12위 밀레니엄 1, 스티그 라르손 

13위 죽음의 키스, 아이라 레빈 

14위 X의 비극, 엘러리 퀸 

15위 소름, 로스 맥도널드 

16위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17위 재칼의 날, 프레드릭 포사이드 

18위 주교 살인 사건, S. S. 반 다인 

18위 독수리 내리다, 잭 히긴스 

20위 독 초콜릿 살인 사건, 앤서니 버클리 콕스 

21위 800만 가지의 죽는 방법, 로렌스 블록 

22위. 본 컬렉터, 제프리 디버 

23위 그리스 관 미스터리, 엘러리 퀸 

24위 제제벨의 죽음, 크리스티아나 M. 브랜드 

25위 심야 플러스 원, 개빈 라이얼 

26위 별의 계승자, 제임스 P. 호건 

27위 화이트 재즈, 제임스 엘로이 (국내 미출간) 

28위 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루르 

29위 무죄 추정, 스콧 터로 

30위 웃는 경관, 셰발과 발뢰 

31위 시행 착오, 앤서니 버클리 콕스 

32위 쉐도우 81, 루시엔 네이험 (국내 미출간) 

33위 통, F. W. 크로포츠 

34위 모르그가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35위 흥분, 딕 프랜시스 

36위 몰타의 매, 대실 해밋 

37위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39위 붉은 수확, 대실 해밋 

39위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40위 경찰 서장, 스튜어트 우즈 (국내 미출간) 

41위 신데렐라의 함정,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42위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43위 크리스마스의 프로스트 경부, R. D. 윙필드 (국내 미출간) 

44위 유다의 창, 존 딕슨 카

45위 나인 테일러스, 도로시. L. 세이어스 

46위 채찍을 쥔 오른손, 딕 프랜시스 

47위. 버스커빌 가의 개, 아서 코난 도일

48위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이든 필포츠 

49위 점핑 제니, 앤서니 버클리 (국내 미출간) 

50위 보이지 않는 그린, 존 토머스 슬라덱 (국내 미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