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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4

일본 본격 미스테리 100선

1975~94년 까지 일본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한 리스트입니다. 
출처는 MysteryBest

1. 生ける屍の死 (뭐지 이건?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山口雅也 (야마구치 마사야)
2. 姑獲鳥の夏 (우부메의 여름) 京極夏彦 (교코쿠 나츠히코)
3. 占星術殺人事件 (점성술 살인사건!) 島田荘司 (시마다 소지)
4. サマー・アポカリプス(썸머 아포칼립스. 음..묵시록의 여름) 笠井潔 (가사이 기요시) :
5. 匣の中の失楽 (이건 또 뭐지? 상자 속의 실락) 竹本健治 (다케모토 겐지) : 국내 미출간
6. 亜愛一郎の狼狽(아 아아이치로의 낭패) 泡坂妻夫 (아와사카 쓰마오)
7. 哲学者の密室 (철학자의 밀실) 笠井潔 (가사이 기요시) : 국내 미출간
8. 霧越邸殺人事件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 綾辻行人 (아야츠지 유키토)
9. 空飛ぶ馬 (하늘을 니는 말) 北村薫 (기타무라 카오루)
10. 戻り川心中(회귀천 정사) 連城三紀彦 (렌조 미키히코)
11. 乱れからくり 泡坂妻夫 (아와사카 쓰마오) : 국내 미출간
12. 双頭の悪魔 (쌍두의 악마) 有栖川有栖 (아리스가와 아리스)
13. 夏と冬の奏鳴曲 麻耶雄嵩 (마야 유타카) : 국내 미출간
14. 十角館の殺人(십각관의 살인) 綾辻行人 (아야츠지 유키토)
15. 葦と百合 奥泉光 (오쿠이즈미 히카루) : 국내 미출간
16. 頼子のために(요리코를 위해) 法月綸太郎 (노리즈키 린타로)
17. 遠きに目ありて 天藤真 (덴도 신) : 국내 미출간
18. ロートレック荘事件(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 유명하죠) 筒井康隆 (쓰쓰이 야스타카)
19. 殺戮にいたる病 (살육에 이르는 병) 我孫子武丸(아비코 다케마루)
20. バイバイ、エンジェル(바이바이, 엔젤) 笠井潔 (가사이 기요시)
21. 11枚のとらんぷ (11장의 트럼프) 泡坂妻夫 (아와사카 쓰마오) : 국내 미출간
22. 警視庁草紙 山田風太郎 (야마다 후타로) : 국내 미출간
23. 北の夕鶴2/3の殺人(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島田荘司 (시마다 소지)
24. キッド・ピストルズの冒涜 (키드 피스톨스의 모독) 山口雅也 (야마구치 마사야)
25. 時計館の殺人(시계관의 살인) 綾辻行人 (아야츠지 유키토)
26. 暗色コメディ 連城三紀彦 (렌조 미키히코) : 국내 미출간
27. 明治断頭台 山田風太郎 (야마다 후타로) : 국내 미출간
28. 99%の誘拐 岡嶋二人 (오카지마 후타리) : 국내 미출간
29. クラインの壺(클라인의 항아리) 岡嶋二人 (오카지마 후타리)
30. 斜め屋敷の犯罪(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島田荘司 (시마다 소지)
31. ウロボロスの偽書 竹本健治 (다케모토 겐지) : 국내 미출간
32. キッド・ピストルズの妄想 山口雅也 (야마구치 마사야) : 국내 미출간
33. 百舌の叫ぶ夜 (모즈가 울부짖는 밤) 逢坂剛 (오사카 고)
34. 放課後 (방과후) 東野圭吾 (히가시노 게이고)
35. 大誘拐 (대유괴) 天藤真 (덴도 신)
36. 絃の聖域 栗本薫 : 국내 미출간
37. 退職刑事 都筑道夫 (츠즈키 미치오) : 국내 미출간
38. ぼくらの時代 栗本薫 (구리모토 가오루) : 국내 미출간
39. 翼ある闇 (날개 달린 어둠) 麻耶雄嵩 (마야 유타카)
40. ぼくのミステリな日常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若竹七海 (와카타케 나나미)
41. 人喰いの時代 山田正紀 (야마다 마사키) : 국내 미출간
42. ふたたび赤い悪夢 (또다시 붉은 악몽) 法月綸太郎 (노리즈키 린타로)
43. ミステリーズ 山口雅也 (야마구치 마사야) : 국내 미출간
44. 眠りの森 (잠자는 숲) 東野圭吾 (히가시노 게이고)
45. 吸血の家 二階堂黎人 (니카이도 레이토) : 국내 미출간
46. 三毛猫ホームズの推理(삼색털 고양이 홈즈 제 1작) 赤川次郎 (아카가와 지로)
47. だれもがポオを愛していた 平石貴樹 (히라이시 다카키) : 국내 미출간
48. 時のアラベスク 服部まゆみ (핫토리 마유미) : 국내 미출간
49. 火車(화차, 걸작인데 순위가 낮네요) 宮部みゆき (미야베 미유키)
50. 日本殺人事件 山口雅也 (야마구치 마사야) : 국내 미출간
51. ダレカガナカニイル… 井上夢人 (이노우에 유메히토) : 국내 미출간
52. マリオネットの罠(마리오네트의 덫) 赤川次郎(아카가와 지로)
53. グリーン車の子供 (그린 차의 아이) 戸板康二 (도이타 야스지)
54. 二の悲劇 法月綸太郎 (노리즈키 린타로) : 국내 미출간
55. 写楽殺人事件 (샤라쿠 살인사건) 高橋克彦 (다카하시 가츠히코)
56. 探偵映画 (탐정영화) 我孫子武丸 (아비코 다케마루)
57. バルーン・タウンの殺人 松尾由美 (마츠오 유미) : 국내 미출간
58. 倒錯の死角 (도착의 사각) 折原一 (오리하라 이치)
59. 病院坂の首縊りの家(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横溝正史 (요코미조 세이시)
60. アリスの国の殺人 辻真先 (츠지 마사키) : 국내 미출간
61. いざ言問はむ都鳥 澤木喬 (사와키 쿄우) : 국내 미출간
62. 我らが隣人の犯罪(우리 이웃의 범죄) 宮部みゆき (미야베 미유키)
63. 密閉教室 法月綸太郎 (노리즈키 린타로) : 국내 미출간
64. 人形館の殺人(인형관, 본격파는 아닌듯 한데..) 綾辻行人 (아야츠지 유키토)
65. 幽霊列車(유령열차) 赤川次郎 (아카가와 지로의 데뷰작)
66. 猿丸幻視行 井沢元彦 (이자와 오토히코) : 국내 미출간
67. 富豪刑事 (부호형사) 筒井康隆 (쓰쓰이 야스타카)
68. そして夜は甦る(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原りょう (하라 료)
69. ブラディ・ローズ 今邑彩 (이마무라 마야) : 국내 미출간
70. 孤島パズル (외딴섬 퍼즐) 有栖川有栖 (아리스가와 아리스)
71. 秋の花 (가을꽃) 北村薫 (기타무라 가오루)
72. そして扉が閉ざされた 岡嶋二人 (오카지마 후타리) : 국내 미출간
73. ねむりねずみ 近藤史恵 (곤도 후미에) : 국내 미출간
74. 魔法飛行 (마법비행) 加納朋子 (가노 도모코)
75. 崖の館 佐々木丸実 (사사키 마루미) : 국내 미출간
76. 消失! 中西智明 (나카니시 토모아키) : 국내 미출간
77. 竹馬男の犯罪 井上雅彦 (이노우에 마사히코) : 국내 미출간
78. 青じろい季節 仁木悦子 (니키 에쓰코) : 국내 미출간
79. 死体を買う男 (시체를 사는 남자) 歌野昌午 (우타노 쇼고)
80. 変調二人羽織 連城三紀彦 (렌조 미키히코) : 국내 미출간
81. 暗闇坂の人喰いの木 (어둠 비탈의 식인나무) 島田荘司 (시마다 소지)
82. 網走発遥かなり島田荘司 (시마다 소지 막판에 힘내네요) : 국내 미출간
83. 将棋殺人事件 竹本健治 (다케모토 겐지) : 국내 미출간
84. 慟哭(통곡) 貫井徳郎 (누쿠이 도쿠로)
85. 大東京四谷怪談(요쓰야 괴담) 高木彬光 (다카키 아키미쓰) : 국내 미출간
86. 幻書事典(『古本屋探偵の事件簿)』紀田順一郎 (기다 쥰이치로) : 국내 미출간
87. 湖底のまつり 泡坂妻夫 (아와사카 쓰마오) : 국내 미출간
88. 夜の蝉 (밤의 매미) 北村薫 (기타무라 가오루)
89. 生者と死者 泡坂妻夫 (아와사카 쓰마오) : 국내 미출간
90. 誰彼 法月綸太郎 (노리즈키 린타로) : 국내 미출간
91. あした天気にしておくれ 岡嶋二人 (오카지마 후타리) : 국내 미출간
92. 心の中の冷たい何か(나의 차가운 일상) 若竹七海 (와카타케 나나미)
93. 私という名の変奏曲(7인 1역) 連城三紀彦 (렌조 미키히코)
94. エッシャー宇宙の殺人 荒巻義雄 (아라마키 요시오) : 국내 미출간
95. 聖アウスラ修道院の惨劇 二階堂黎人 (니카이도 레이토) : 국내 미출간
96. 六の宮の姫君 北村薫 (기타무라 가오루) : 국내 미출간
97. 僕の殺人 太田忠司 (오오타 타다시) : 국내 미출간
98. 探偵の夏あるいは悪魔の子守唄 岩崎正吾 (이와사키 세이고) : 국내 미출간
99. 朱の絶筆 鮎川哲也 (아유카와 데츠야) : 국내 미출간
100. 思い通りにエンドマーク 斎藤肇 (사이토 하지메) : 국내 미출간

검은색 : 국내 미출간 / 파란색 링크 : 리뷰 링크 / 회색 : 읽었지만 리뷰 없는 작품 / 붉은색 : 출간되었으나 읽지 않은 작품

흠, 읽은 책도 적지만 모르는 작가가 태반이네요. 조사해보고 수정할 것 있음 수정해야겠습니다^^

* 2020.09.30 최신 내용으로수정합니다.
* 2020.10.23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링크 추가
* 2020.10.30 "방과후" 링크 추가
* 2020.11.13 "날개 달린 어둠" 링크 추가
* 2020.12.12 "묵시록의 여름" 링크 추가
* 2024.11.30 "복잡한 기계장치", "11장의 트럼프", "호저의 축제" 링크 추가
* 2025.01.10. "메이지 단두대" 링크 추가
* 2026.02.26. "십각관의 살인" 등 링크 추가 및 전체적으로 수정

2011/11/20

클라인의 항아리 - 오카지마 후타리 / 김선영 : 별점 2.5점

클라인의 항아리 - 6점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비채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년 백수 우에스기가 한 잡지에 응모한 게임북 시나리오 "브레인 신드롬"이 입실론이라는 회사의 새로운 가상현실 게임기 K-2에 채택되었다. 그로부터 1년 반 뒤, 우에스기는 K-2 시운전 모니터 요원으로 참가했다. 우에스기와 같은 모니터 아르바이트생 리사는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현실적인 K-2의 세계에 도취되었다. 그러나 K-2 내부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언온 뒤 리사가 실종되었고, 우에스기는 리사의 친구 나나미와 함께 K-2와 입실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는데...

일본의 컴비 작가 오카지마 후타리의 마지막 발표 작품. 이런저런 리스트에 포함되는 대표작 중 한 편이기도 하죠. 국내에는 어째서인지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컴퓨터의 덫"과 컴비 해산 이후 컴비 중 한 명인 이노우에 유메히토가 발표한 작품인 "메두사", 이렇게 딱 두 편만 소개된 낯선 작가입니다. 그러나 추리 애호가로서 명성만큼은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작품의 출간은 무척 반가웠어요.

일단 1989년이라는 발표 시기를 감안한다면 "가상현실"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설정과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구미에서 사이버펑크가 유행한 뒤라서 참신하지는 않고, 지금 읽기에는 낡아빠진 소재이지만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간 듯한 Klein-2 (K-2)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은 꽤 그럴싸했거든요. 1테라 메모리로 완벽한 가상현실을 구현한다는 시스템이라서 설득력이 많이 약한, 꿈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외의 설정과 묘사는 괜찮았습니다. 하긴 스티븐 킹이 말했듯 "무엇이 로켓에게 움직일 힘을 주느냐" 하는 것은 과학잡지가 따질 문제일 테니까요.

그리고 이 기계에 얽혀 있는 음모를 밝혀낸다는 모험담 그 자체로는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엔터테인먼트 작품이라는 점도 확실합니다.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리사의 실종, 나나미의 등장에서부터 전개되는 과정이 긴박해서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기 때문이죠. 마지막의 현실과 비현실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모호한 결말은 왠지 "메두사"를 연상케 하는데, 독자에게 여운을 남기는 측면에서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점 역시 확실합니다. 설정부터 이야기하자면 K-2에 대한 설정 이외에는 부실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CIA가 언급될 정도의 거대 시스템 관리가 소홀하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겠지요. 게다가 게임 소설 한 권 써본 청년 백수가 달랑 며칠 조사해서 진상을 꿰뚫는다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보이지는 않았고요.

"가상현실"을 이용한 중간 부분의 트릭, 즉 현실을 속이고 건너뛰게 만든다는 것이 너무 쉽게 드러나는 점은 비슷한 류의 가상현실 SF를 많이 본 탓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꽤나 중요한 떡밥으로 사용된(하도 많이 등장해서 "클리셰"라고도 할 수 있는) 모모세 노부오의 경고가 단지 경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당황스러운 점이었습니다. "메가존23"의 이브처럼 직접적인 행동은 하지 않더라도 뭔가 도움은 줄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 외에도 이 기계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 결국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이노우에의 엔딩이 실질적인 클리어가 아니라는 것(여기서 이노우에가 더 큰 의문을 가지고 행동을 벌이게 되니까) 등 세세한 디테일도 아쉬움이 좀 남습니다.

그래도 흥미와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추리적으로는 별게 없고 가상현실을 이용한 이야기가 워낙 많이 있기에 신선함은 떨어지나, 흥미진진한 모험담으로서는 충분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왠지 영화나 만화 쪽에 더 잘 어울렸을 것 같긴 하네요.

마지막으로 컴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99%의 유괴"가 번역되기를 기대해봅니다.

2026/03/14

추리 소설 속 자동차 :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

그동안 추리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리에 대해 몇 차례 글을 써 왔습니다. 음식은 인물의 취향과 성격, 그리고 시대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모아서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지요.

이번에는 조금 방향을 바꿔,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자동차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자동차는 추리적으로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하고, 완벽해 보이던 알리바이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하니까요. 때로는 밀실을 대신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하고요. 차종과 색상, 구입 시기 같은 정보만으로도 인물의 성향과 처지를 드러노기도 합니다. 굴러가기만 한다는 이유로 오래된 고물 블루버드를 타고 다니는 탐정 사와자키처럼요. 낡고 오래되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BMW’라는 별명답게 튼튼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물과 차가 절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최근의 예로는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의 미키 할러를 떠올릴 수 있겠네요.

이처럼 현대 추리소설에서 자동차는 사건과 등장인물과 밀접하게 연결된 존재입니다. 수많은 작품 속에 다양한 차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이야기의 핵심 장치로 기능하는 자동차들을 중심으로 하나씩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자동차는 알파로메오 스파이더 3세대입니다.

알파로메오는 1910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출발한 브랜드로, 레이싱을 통해 다져진 기술력과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명성을 쌓아 왔습니다. ‘운전의 즐거움’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주 언급되며, 스포츠성을 중시하는 제조사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스파이더는 1966년 처음 등장한 2인승 오픈 스포츠카입니다. 디자인은 피닌파리나가 맡았고, 유려한 곡선의 차체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영화 "졸업"에 등장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고, 1993년까지 약 27년간 생산되며 12만 대 이상 판매된 장수 모델이기도 합니다. 그중 3세대는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생산된 후기형으로, 기존의 클래식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범퍼와 외관을 현대적으로 다듬어 1980년대 감각에 맞춘 변화를 보여 주었습니다. 전통을 이어 가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세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모델이지요.

이 차가 등장하는 작품은 일본의 콤비 추리소설가 오카지마 후타리의 1987년 작품 "그리고 문이 닫혔다"입니다.
오카지마 후타리는 두 명(이노우에 유메히토, 도쿠야마 준이치)의 합동 필명으로, 이름의 유래는 ‘재미있는 두 사람’(오카시나 후타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소재를 도입한 본격 추리물로 유명하며, 대표작으로는 "클라인의 항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는 피해자의 모친이 사건 용의자 네 명을 핵 셸터에 가둔 뒤 진상을 밝혀내려 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 속 피해자 사키코의 애차가 바로 알파로메오스파이더고요. 세대가 명확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발표 시점이 1987년이고 사키코가 부유한 집안의 딸로 최신 유행과 명품을 선호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판매 중이던 3세대 모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화려한 빨간색 오픈 스포츠카는 제멋대로이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사키코의 성격과 잘 어울립니다. 유이치와 드라이브를 하다가 일부러 차를 세우고, 루프를 연 채 키스를 나눈다는 묘사를 통해 관심받기를 좋아하고, 주변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그녀의 모습을 한층 선명하게 드러내지요. 이는 2인승 오픈카라서 가능했을 행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자동차는 단순히 이러한 사키코의 성격을 상징하는 소품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녀가 절벽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을 당시 타고 있던 차가 바로 이 알파로메오였고, 사건의 실마리 역시 차량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신문에 실린 흑백 사진 속 인양된 알파로메오와, 사키코가 생전에 찍힌 컬러 사진 속 차량을 번갈아 보던 유이치 일행은 운전석 시트 위치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두 사진 모두 차량의 왼쪽에서 촬영되었고, 좌핸들 차량이므로 운전석은 카메라 쪽에 자리합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끌어올린 차량의 시트는 컬러 사진보다 훨씬 뒤로 밀려 있습니다. 사키코가 직접 운전했다면 시트 위치가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즉, 사건 당시 마지막으로 운전대를 잡은 인물이 사키코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동차는 단순한 배경, 소품이 아니라 소설의 추리적 핵심 장치로 사용됩니다. 시트 위치라는 사소한 차이가 사고사라는 견해를 뒤집고, 등장인물들의 알리바이를 다시 검토하게 만드니까요.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시각 현장에 있던 네 명 중 타다시는 사키코를 살해한 뒤 차량에 태워 절벽까지 이동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다시와 치즈루, 아유미는 이후 함께 절벽에서 차량을 발견했지만, 차 안에는 시체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세 사람은 계속 함께 있었기 때문에 타다시가 차량을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반면 그 시간대에 유일하게 자리를 비운 인물은 유이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이치가 범인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는 사건 초반에 별장을 떠났기 때문에 살해를 실행하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으니까요.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요. 누가 언제 운전대를 잡았고, 사키코의 죽음은 어떻게 연출된 것일까요. 그 진상과 트릭은 "그리고 문이 닫혔다"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추리소설을 읽으실 때 인물들의 대사뿐 아니라 그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도 한 번쯤 눈길을 주시면,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2022/11/27

몸값과 생명을 둘러싼 속고 속이는 공방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유괴 미스터리 걸작

* 자주 소개드리는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으로, 이번에는 유괴가 주제인 작품들입니다. 일본 작품만 선정하지 말고, <<킹의 몸값>>과 같은 유명 해외 고전도 포함시키는게 좋았을 것 같네요.

유괴는 현재 진행형으로 이뤄지는 범죄를 말합니다. 범인과 피해자, 경찰간의 몸값과 생명을 둘러싼 긴박한 공방,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로를 어떻게 속일 것인지?는 소설의 주제로 매력적입니다. 이런 유괴 주제 미스터리 소설 중에서, 끝까지 결말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걸작을 골라보았습니다.

<<99%의 유괴>> 오카지마 후타리 : 국내 미출간
오카지마 후타리는 '납치의 오카지마', '유괴의 오카지마' 라고 불릴 정도로 유괴 소설의 명수이다. 이 작품은 30여년 전에 발표되었지만,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었던 컴퓨터 등의 첨단 기기를 동원하여 치밀한 유괴 범죄를 그리고 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알리바이도 완벽하고, 증거도 남기지 않은 완전 범죄의 행방에 주목해 보시길.

<<게임의 이름은 유괴>> 히가시노 게이고
광고 크리에이터 사쿠마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망친 원수 카츠시로의 딸과 공모하여 가짜 유괴 사건을 저지른다. 몸값은 3억엔. 유괴와 몸값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속셈이 서로 엇갈리며 사태는 의외의 방향으로 굴러간다. 유괴를 순수 두뇌 게임으로 그린 걸작.

<<대유괴>> 덴도 신
감옥에서 알게 된 3명의 남자들이 인생 한방!을 목표로 대부호 할머니를 유괴한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오히려 유괴범들을 손아귀에 넣고, 그들의 범행을 자기 시나리오로 바꾸어 버린다. 이를 통해 5천만엔이었던 몸값이 100억엔으로 늘어나면서 엄청난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대유괴'로 바뀌어 가는 모습이 압권인 작품.

<<유괴의 과실>> 신포 유이치 : 국내 미출간
종합 병원 병원장의 손녀가 유괴된다. 범인의 요구 사항은 몸값이 아니라 입원 환자를 죽이라는 것. 그 입원 환자는 정계의 거물이자 재판 중인 피고였다. 그리고 이 사건과 동시에 '몸값 대신 특정 주식을 사라'고 요구하는 또 다른 유괴 사건이 일어나는데... 두 개의 유괴 사건이 얽히며,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품.

<<1의 비극>> 노리즈키 린타로
야마쿠라 가문에 아들을 유괴했다는 전화가 오는데, 실제로 유괴된건 지인의 아들 시게루였다. 잘못 유괴했다는걸 범인에게 숨긴채 야마쿠라는 몸값을 전해 주려 노력하지만, 사소한 실수로 시게루는 살해당하고 만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남자마저 살해당한 뒤 명탐정 노리즈키 린타로가 나서고, 사건은 의외의 전개를 맞이하게 된다.

2006/10/15

Japan 미스터리 걸작선 2 - 한국, 일본 추리작가협회 추천 / 정태원 번역 : 별점 2.5점

1권3권은 이미 이전에 읽었지만 2권만 구하지 못했었는데 블로그 지인인 석원님의 도움으로 드디어! 읽게 된 책입니다. 

전쟁 직후, 주로 약 1950~60년대의 단편들을 모아놓은 앤솔러지로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제법 있는 편입니다. 작가들도 현대보다는 과거의 명작가들이 많이 포진해 있고요. 이름만 아는 작가지만 사노 요, 츠츠이 야스타카, 시마다 가즈오, 도가와 마사코, 오카지마 후타리, 오오야부 하루히코는 워낙 유명한 작가들이라서 목차만 보더라도 무척이나 풍성한 느낌을 줍니다.
정통 추리물보다는 이색적이고 변칙적인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으며 당시의 취향인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단편이 좀 집요하고 처절한 인간 본성을 건드리는 작품들이 많다는 특징이 있고요.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확실히 낡은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정통 추리물 매니아를 자처하는 저에게는 썩 입맛에 맞는 작품들도 아니었고요. 추리소설의 태동기에서 갖가지 실험적인 형식이 적용되던 과도기시대의 작품들이라는 느낌? 또 치정에 관련된 사건이 많다는 것 역시 장점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추리적 맛은 덜하나 여운을 남기거나 설정이 재미난 작품들이 많은, 석원님 표현을 빌자면 "별미"에 가까운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배경 설정이 탁월하고 재치와 유머가 넘치면서도 정통파적인 매력을 잘 보여주는 아와사카 츠마오의 "기울어진 방", 그리고 사소한 발상이지만 내용 전개가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오카지마 후타리의 "늦게 도착한 연하장"을 꼽고 싶네요. 1. 도박 - 사노 요

대학의 조교수인 주인공은 주말 부부로 지내던 중 아내의 자살 사건을 접했다. 유서를 통해 그는 이유가 도저히 들통날 수 없던 자신의 불륜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굉장히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러면서도 결말 부분의 여운이 진한 작품입니다. 과연 그녀는 뭐라고 말했을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2. 그녀들의 쇼핑 - 츠츠이 야스타카 

한 커피숍에 같은 단지에 거주하는 아줌마들이 모여 교외의 대저택으로 떠난다... 

짧은 길이지만 반전에서 전해주는 인상이 강렬한 소품. 별점은 2.5점입니다.

3. 넹고넹고 - 가야마 시게루

한적한 마을에 식료품이 조금씩 없어지는 절도 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 형사는 사건 해결을 위해 탐문하던 중 이상한 노파를 만나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는데... 

가야마 시게루도 잘 모르는 작가이지만, 내용이 도대체 뭔지도 알 수 없네요. 절도 사건이 소재라 아예 추리물이 아니라 단정짓기는 뭐하나 환상문학에 더 가깝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4. 까마귀 - 다키가와 교

쇠락해 가는 군 장성 가문의 남매는 집안 관리를 위해 하녀를 고용했다. 오빠는 하녀와 관계를 맺게 되지만 결혼을 요구하는 하녀를 살해하려고 결심하는데... 

줄거리만 보아도 내용 전체를 짐작할 수 있는 뻔한 소재와 내용의 작품입니다. 심리묘사와 까마귀에 대한 묘한 공포감을 자아내는 분위기는 그럴 듯 하지만 그 외에는 별로 특출난 부분은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5. 안마사 케이 - 시마다 가즈오

주인공은 한 온천에서 옛 하얼빈 특파원 시절에 알게 되었던 안마사 케이를 만났다. 

여자의 집요한 복수를 그린 단편으로 별다른 트릭은 없지만 안마사 케이의 대사 하나로 사건을 압축하는 묘미가 있는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6. 마지막 인사 - 야마다 후타로

교외의 마을에서 발견된 죽은 쥐가 페스트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마을은 방역때문에 비워졌다. 비워진 마을에 파견된 두 형사는 예전 공습때 소실된 한 마을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전쟁 막판의 일본을 무대로 당시의 사회상을 리얼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사회파의 선구자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추리물보다 순문학에 가깝습니다. 김성종의 "어느 창녀의 죽음"과 비슷했달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7. 수집광 - 야마구치 마사야

조지 매컬리는 SP음반 수집광으로 취미때문에 가족도 잃고 직장까지 바꿨다. 그런 그가 방문한 한 마을에서 그는 "보물"을 발견한다... 

음반 수집광을 소재로 한 이색 단편. 그러나 내용 전개는 로얄드 달의 "목사의 기쁨" (단편집 "맛"에 수록)과 유사하여 예측 가능한 수준이라 재미는 덜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뭔가 반전이 나와줄 것 같았는데 결말이 너무 뻔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8. 방공호 - 에도가와 란포

전쟁 중 공습 때문에 피신한 방공호에서 주인공은 한 미녀와 우발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는데... 

란포 선생의 단편입니다. 1인칭 독백 형식으로 구성된 재치있는(?) 전개와 나름의 반전이 인상적이지만 추리물은 아닙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9. 이중 동반살인 - 사사토 사카에

결혼을 앞둔 공무원이 호스테스와 함께 밀폐된 방안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죽었다. 사건은 여러 증거를 토대로 자살로 처리되었다. 이의를 제기하던 그의 약혼자마저 시체로 발견되는데...

두건의 이중 살인이 벌어지는 정통 추리물입니다. 하지만 추리적인 가치가 있는 사건은 최초의 사건 뿐입니다. 밀실 트릭과 자살로 보이게 만드는 유언장 트릭이 등장하지요. 

트릭은 나름 괜찮지만 낡았다는 느낌이 강하고 무엇보다 범인역의 인물이 억지스러워서 그닥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두 번째 사건도 별다를게 없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10. 보석 - 구스다 쿄스케

야쿠자 보스가 총격으로 죽고 그가 노리고 있던 다이아몬드가 사라지는데... 

여러가지 트릭 및 반드시 필요한 "명탐정"까지 등장하는 정통 추리물입니다. 정황 증거만 가지고 추리하는 탐정의 실력도 놀랍지만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점에서 고전 정통 퍼즐 미스테리의 맛을 진하게 풍기네요. 결말 부분에서 반전까지 있어서 만족스러워요. 별점은 3점입니다.

11. 2월 2일 호텔 - 기타카타 겐죠

주인공 사진작가는 아프리카의 2월 2일 호텔에서 과거 운동권 동지를 20년만에 만났지만, 곧바로 수수께끼의 잡상인에게 협박을 받게 되는데...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안 가더군요. 남자와 남자간에 있을 수 있는 알듯 모를듯한 관계를 그리고 있긴 한데 와닿지 않았어요. "기나긴 이별"의 마지막 부분을 확대한 느낌이랄까요? 절대 추리물은 아닙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12. 어둠 속으로부터 - 도가와 마사코 

주인공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자가 있지만 명문 가문의 여성과의 결혼을 위해 그녀를 버렸다. 그러나 결혼식장에서부터 그는 그녀의 존재를 느꼈고, 서서히 신혼부부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맞이한다... 

뻔하디 뻔한 소재와 상투적인 전개를 지닌 작품입니다. 너무 뻔해서 할말이 없을 정도죠. 반전조차 뻔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14. 기울어진 방 - 아와사카 츠마오

"귀신 단지"라는 별명의 아파트에서 참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단지에 살고 있는 직장 후배의 권유로 자리에 모인 주인공 일행은 사건 해결을 위해 자체적인 조사에 나서는데... 

제일 마음에 든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정통 추리물이기도 하지만 "귀신 단지"라는 아파트의 묘사가 너무나 재미난 덕분입니다. 참혹한 사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느낌도 많이 묻어나며, 탐정 캐릭터도 독특하고 인상적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15. 상자 속의 당신 - 야마가와 히사오

음.. 굉장히 짧은 소품으로 어디선가 읽은 듯한 느낌이 강한 작품이었습니다. 뭐라 평가하기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16. 늦게 도착한 연하장 - 오카지마 후다리

시부사와는 출근하자마자 회사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을 알아챘다. 이유는 그가 포르노를 판매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인데... 

사소하지만 꽤나 괜찮은 트릭(?)이 등장하는 귀여운 작품으로 재미나게 읽은 작품입니다.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약간 거리가 있긴 하나 이 정도 수준이라면 누구나 만족할 만한 단편이 아닐까 싶네요. 좀 낡은 감이 있긴 하지만요. 별점은 3점입니다.

17. 손님 - 오오야부 하루히코

기발한 반전으로 로얄드 달이나 스텐리 엘린의 느낌을, 정말 약간... 전해주는 짤막한 소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6/03/01

그리고 문이 닫혔다(そして扉が閉ざされた) - 오카지마 후타리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키코의 죽음 이후, 사키코의 어머니 미타 마사요가 사건 당시 함께 있었던 일행 4명(유이치·아유미·타다시·치즈루)을 집으로 불러 수면제가 든 주스를 먹인 뒤 지하 셸터에 감금했다. 셸터 안 화장실에는 “너희가 죽였다”라는 문구와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이들은 사키코의 죽음이 “정말 사고였는지”를 두고 서로를 의심하며 탈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사고’로 보였던 사건의 퍼즐이 맞춰지면서, 사키코가 셸터 안에서 아이스픽에 찔려 죽었고, 그 뒤 누군가가 사고로 위장했다는 진상이 드러난다...

"클라인의 항아리"로 유명한 일본의 본격 추리 작가 오카지마 후타리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약 20년 동안의 일본 미스터리 베스트 100에 포함될 정도로요. 원서로 읽었습니다. 

특정 사건의 유력 용의자 네 명을 폐쇄 공간인 핵 셸터에 가둔 뒤, 그들끼리 생존 게임을 이어 가며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게 만든다는 내용으로, 1987년이라는 발표 시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류의(예를 들어 이런 작품) 원조인 듯 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본격 추리 작가의 작품답게 논리적으로, 발견되는 단서와 증언들에 의해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전개됩니다. 이 과정을 밟아 나가기 위한 단서의 제시도 공정하고요. 작품 속 추리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처음에는 사키코의 죽음을 모두 사고사라고 믿습니다.
  2. 사진 속 자동차 운전석 시트 위치를 근거로, 사키코가 혼자 운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운전석 시트가 ‘추락 충격으로 움직였다고 보기 어려운 방향’이라서, 사키코보다 체격이 큰 누군가가 운전했을 가능성이 떠오르지요.
  3. 셸터 화장실 바닥에서 수건에 싸인 아이스픽이 발견됩니다. “왜 셸터 화장실 바닥에 있었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사키코가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논의됩니다. 이후 네 사람은 서로의 알리바이를 교차하며 검증합니다.
  4. 곧이어 셸터에서 사키코의 귀걸이가 발견되면서, 셸터 자체가 살인 현장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5. 사키코의 알파로메오가 나갈 당시 치즈루와 아유미는 별장 2층에 있었고, 차가 나가기 30분 전 유이치는 디지에서 별장으로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알리바이가 성립합니다. 따라서 알파로메오를 운전할 수 있는 인물은 타다시뿐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타다시는 절벽에서 돌아올 때 탈 오토바이도 알파로메오에 싣고 갔던 겁니다.
  6. 그러나 이후 치즈루와 아유미가 절벽에서 알파로메오를 발견했을 때, 차 안에 사키코의 사체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차가 절벽에서 떨어진 시점은 그들이 차를 본 이후의 새벽이며, 당시 세 사람은 함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차를 떨어뜨릴 수 있는 인물은 유이치뿐이라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7. 그러나 타다시가 사키코의 사체만 먼저 절벽 아래로 던진 뒤, 얼음을 쐐기처럼 가공해 장치하여 차가 새벽에 자동으로 떨어지도록 만든 것으로 밝혀집니다. 아이스박스 뚜껑이 열려 얼음이 물로 변해 있던 점 등이 그 증거로 제시됩니다.

타다시의 사체 은닉 이후 밝혀지는 진상 또한 나름 설득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최초의 언쟁에서 유이치가 밀친 탓에 실수로 사키코가 죽었고, 유이치를 사랑하는 아유미가 이를 숨기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묘사된 유이치와 아유미의 통화를 통해 미리 암시되기에, 치밀하며 공정하다는 느낌도 전해줍니다.

아울러 네 명만 등장하는 폐쇄 공간 미스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셸터의 묘사(아래의 ChatGPT 이미지 참고하세요)와 그곳을 탈출하려는 여러 시도들도 긴박감 넘칩니다. 소규모 무대극으로 각색해도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아직 영상화가 되지 않은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다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굳게 믿던 화자 유이치의 실수로 사키코가 죽었다는 진상은 다소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타다시의 사체 은닉 방식 역시 허술합니다. 사체를 단순히 바다에 던졌다면 언제든 발견될 수 있고, 그 경우 사고사가 아니라는 점이 곧바로 드러났을 것입니다. 사체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아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이었습니다. 왜 사체에 돌을 묶는 등의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리고 사키코의 모친이 사고사를 의심해 당시 별장에 있던 네 명을 셸터에 가둔 이유, 그리고 유이치와 그리 오래 함께 하지 않았던(별장에서의 3일 정도 뿐) 아유미가 유이치를 위해서 사키코의 죽음을 은폐할 정도로 깊이 빠져 있었다는건 설명이 부족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구멍이 있습니다. 유이치가 화자인 상황에서는, 유이치가 별장을 떠난 뒤 남아 있던 세 명이 사키코를 살해하고 차와 함께 절벽으로 떨어뜨렸다는게 가장 논리적인 추리이기 때문입니다. 사키코가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아이스픽을 챙겼다면, 그 대상은 연인을 빼앗아 간 아유미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유미가 반격해 사키코가 사망했고, 아유미의 약혼자 타다시가 사체 은닉을 도왔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애초에 타다시는 동기도 가장 부족하고,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지지 않으니까요. 그런데도 이런 가능성이 아예 제시되지 않는건 이상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 폐쇄 공간 미스터리의 원조격이라는 의미 외 가치는 높지 않습니다. 구태여 번역까지 해 가며 읽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추천드릴 만한 작품은 아니네요.

2023/05/25

에도가와 란포상 베스트 10 :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를 부르는 미스터리로의 초대장 - 柳町正蔵

일본의 주간지 MONO에서 연재되는 柳町正蔵의 미스터리 관련 칼럼인 '미스터리 캐스킷 (ミステリー・キャスケット)' 지난 과월호를 읽다보니 재미있는 주제가 있어 번역해 보았습니다. 
언제나처럼 엉망인 번역이지만, 모쪼록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매년 여름 더위가 조금 누그러지는 9월 중순, 「에도가와 란포상」수상작이 서점에 진열된다 (올해는 제반 사정으로 9월 말이었다). 내 생일 가까운 날짜인 탓에, 발표와 동시에 일찌감치 수상작을 사서 읽는건 매년 개인적인 행사로 삼고 있다. 만약 그 해 작품이 별로라면 그 해 전체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중요한 이벤트이기도 하다. 
올해로 제66회를 헤아리는 이 상은 1954년 에도가와 란포가 창설했으며, 3회부터 신작 장편소설을 모집해서 최종 후보 4, 5편 중 베테랑 작가 5명이 선정한 최고 작품에 상을 수여한다는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일반 모집 형태라 이미 작가로서 데뷔한 사람도 응모할 수 있으므로, 특정 해에는 고급스러운 작품이 많이 응모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신인 추리작가의 등용문적 성격이 강하다. 주요 수상작가로는 니시무라 쿄타로, 모리무라 세이이치, 쿠리모토 카오루, 히가시노 게이고, 이케이도 준 등 당대의 빅네임이 줄을 잇는다. 야마무라 미사나츠키 시즈코는 몇 번이나 최종 심사에서 떨어졌고, 나카이 히데오의 대표작 「허무에의 제물」도 수상을 놓쳤을 정도이다. 지금은 예전만큼 주목도가 높지는 않지만 수상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건 분명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미스터리계 최고의 어워드 중 하나이다.
그럼 여기서 2020년까지의 수상작 총 71편 중 (1957년~2020년. 수상작 없음이 4회. 2편 수상이 11회)  완전히 개인적인 「란포상 수상작 베스트 10」을 선정해본다.

「란포상 수상작 베스트 10」
  • 제10위 「고양이는 알고 있다니키 에츠코 (제3회/1957년). 쇼와 30년 당시, 추리 소설 팬을 10배로 불렸다는 일본의 크리스티의 라이트 미스터리.
  • 제9위 「천사의 나이프야쿠마루 가쿠 (제51회/2005년). 예선부터 최종 심사까지 거의 일사천리로 수상한, 소년법 본연의 자세를 묻는 사회파 문제작.
  • 제8위 「어둠 속에 풍기는 거짓말」시모무라 아츠시 (제60회 / 2014년). 시력을 잃은 남자가 친형 출생의 비밀을 쫓는 서스펜스. 10년에 한 번 있는 걸작이라는 평판.
  • 제7위「암갈색 파스텔」오카지마 후타리 (제28회/1982년). 2인조 작가의 경마 미스터리. 아마추어 여성 탐정 콤비의 활약이 신선!
  • 제6위 「샤라쿠 살인 사건」타카하시 카쓰히코 (제29회/1983년). 수수께끼에 싸인 전설의 우키요에 화가 샤라쿠의 정체를 밝히는 와중에, 학계에 소용돌이치는 권력과 욕망을 그리다.
  • 제5위 「거대한 환영」 도가와 마사코(제8회/1962년). 남자 엄금의 아파트에서 전개되는 인간군상. 란포상 사상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스릴러.
  • 제4위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고미네 하지메 (19회/1973년).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작가를 지향하는 계기가 된, 어두우면서도 경쾌한 청춘 추리물의 금자탑.
  • 제3위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4회/1995년). 일본인 감성의 하드보일드. 주인공 바텐더가 만드는 핫도그가 맛있을 것 같다.
  • 제2위「13계단」타카노 카즈아키 (제44회 / 2001년).  가석방중인 청년과 고독한 교도관이 사형수의 누명 벗기기에 도전하다. 긴박한 타임 리미트가 존재.
  • 제1위「사루마루 환시행」이자와 모토히코 (제26회/1980년) 현대의 대학생이 젊은 날의 오리구치 노부오와 함께 펼쳐나가는 SF+역사+암호가 뒤섞인 전기 미스테리.
'사루마루 환시행'은 그 시마다 쇼지의 명작 '점성술 살인사건'을 이긴 수상이라는 훈장도 받았다.
일본 추리 작가 협회의 사이트에는 심사위원의 선정평이 실려 있어, 선택된 포인트를 잘 알 수 있다 (단 스포 주의). 선정평이 매서운 것은 매번 있는 일로, 특히 낙선작에는 "추리소설로 통하지 않는다.", "설명이 너무 서툴다." "응모자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것 같다." 등 재기불능이 될 것 같은 신랄한 코멘트가 많다. 수상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은 물론이고 심사위원과의 궁합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2022/08/15

헌책방 스탭의 추천 - 정말로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 50선

"'정말 아까운 (못타이나이)' 책방" 이라는 이름의 일본 중고 서점에서 선정한 랭킹입니다. 직원이 선정했다고 하네요. 일본 서점 직원이 갖추고 있는 책에 대한 지식은 상당하다는게 이런저런 컨텐츠에서 언급되어왔는데, 이 랭킹만 보면 조금 미묘합니다. 유명한 작품을 많이 꼽지 않은건 좋아요. 저도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제법 될 정도니까요. 하지만 유명하지 않은건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제가 읽어보았던 몇 작품은 과연 랭킹에 언급될 정도인지? 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기며, 특정 작가 (키타야마 다케쿠니, 오네자와 호노부, 미치오 슈스케 등)에 대한 편애도 눈에 띕니다. 그래도 보석같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몇몇 작품들도 선정되어 있는 만큼, 일본 서점 직원의 실력을 믿고 아직 읽어보지 않은 몇 작품은 구해볼 생각입니다. 과연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트릭이 뛰어난 미스터리 소설

  1. "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2. "앨리스 - 미러 성 살인 사건" 키타야마 다케쿠니 (국내 미출간)
  3.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4. "조커 게임" 야나기 코지
  5. "악마의 공놀이 노래" 요코미조 세이시
반전이 놀라운 작품 5선
  1. "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2. "가위남" 슈노 마사유키
  3.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니시자와 야스히코
  4. "이 어둠과 빛" 핫토리 마유미 (국내 미출간)
  5.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쿠루미
학창 시절 특유의 감각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학원 미스터리 5선
  1.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츠지무라 미즈키
  2.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온다 리쿠
  3. "빙과" 요네자와 호노부
  4. "죽은 자의 학원제" 아카가와 지로 (국내 미출간)
  5. "신님 게임" 마야 유타카 (국내 미출간)
뒷맛이 상쾌한, 한모금의 청량제같이 읽고나서 상쾌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작
  1.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2. "슬로하이츠의 신" 츠지무라 미즈키
  3. "샤바케" 하타케나카 메구미
  4. "언제나 아침에" 이마무라 아이 (국내 미출간)
  5. "퇴출 게임" 하츠노 세이 (국내 미출간)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읽기 쉬운 단편집 5선.
  1. "덧없는 양들의 축연" 요네자와 호노부
  2. "우리들이 성좌를 훔친 이유" 기타야마 다케쿠니 (국내 미출간)
  3. "술래의 발소리" 미치오 슈스케
  4. "GOTH" 오츠 이치
  5. "외침과 기도" 시자키 유
상급자에게 권하는, 독서 후에 싫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이야미스 (싫은 미스터리) 5선.
  1. "고백" 미나토 가나에
  2.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3. "보틀넥" 요네자와 호노부
  4. "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5. "악의 교전" 기시 유스케
SF와 미스터리가 융합한 신감각 5선.
  1.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2. "여왕의 백년밀실" 모리 히로시 (국내 미출간)
  3. "인격전이의 살인" 니시자와 야스히코
  4. "클라인의 항아리" 오카지마 후타리
  5. "화성 다크 발라드" 우에다 사유리 (국내 미출간)
왠지모르게 분위기와 세계관에 끌리는 다섯 작품
  1.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 미나가와 히로코
  2. "성스러운 검은 밤" 시바타 요시키
  3. "클락성 살인사건" 기타야마 다케쿠니
  4.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5. "광골의 꿈" 교고쿠 나츠히코
명작만 모았다! 추천 해외 미스터리 소설 10선 (* 해외는 일본 기준)
  1.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2. "바람의 그림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3. "레베카" 다프네 뒤 모리에
  4. "차일드 44" 톰 롭 스미스
  5. "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6. "소피" 거이 버트 (국내 미출간)
  7. "모르그 가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8. "라스트 차일드" 존 하트
  9. "사자의 서" 조너선 캐롤 (국내 미출간)
  10. "닫힌 책" 길버트 아데어 (국내 미출간)

2024/04/28

2024년 교토대학교 추리소설 연구회 신입회원 추천 도서

출처는 하우미스터리.

'교토대학교 추리소설 연구회'는 아야츠지 유키토, 노리즈키 린타로, 시마다 소지 등 일본 추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다수 배출한 명가지요.
신입생들에게 첫 모임 때까지 읽고 오라고 골라준 책 같은데, 고전 황금기의 본격 미스터리부터 일본 고전, 스릴러, 신본격 및 라이트 노벨에 가까운 최신작까지 폭넓게 선정한게 돋보입니다. 이 중 각자 자신에게 잘 맞는 취향을 골라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이런 동호회에 가입할 정도라면 이미 다 읽어 보았을 작품들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국내 미출간 작품 외에는 저도 다 읽었는데 저는 "용의자 X의 헌신"과 "모든 것이 F가 된다"가 좋았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평균 이상은 되는 만큼,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06/08/06

메두사 - 이노우에 유메히토 / 송영인 : 별점 3점

메두사 이노우에 유메히토 지음, 송영인 옮김/시공사

공포소설가 후지 요조가 스스로를 시멘트에 파묻은 채 자살했다. 그런데 시멘트 더미 안에서 발견된, 빈 약병에 남겨져 있던 "메두사를 보았다"라는 글귀는 유서라기에는 의아스러웠다. 후지 요조의 외동딸 나나코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 '나'는 후지 요소가 마지막으로 작업하던 소설을 찾아 나섰고, 연이어 발생하는 이상 현상에도 불구하고 후지 요조가 이시우미라는 촌에서 일어났던 기묘한 사건 취재를 했었다는걸 알아냈다. '나'는 이시우미에서 23년전에 발생했던, 수수께끼 같은 사건과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연쇄적인 죽음에 주목하는데... 

하아.. 정말로 덥네요. 뫼르소처럼 순간적이고도 돌발적인 살의가 일어날 것도 같은 더윕니다. 이런 더위에는 호러 소설이 딱이죠. 예전에 읽었었지만 리뷰를 올린적은 없었던 작품인 "메두사"를 다시 꺼내어 읽어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대박을 쳤던 "링"의 영향을 받은 티가 물씬 납니다. 한 소녀의 원한과 저주로 시작된 죽음이라는 소재, 그리고 극적 반전이 있는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가 비슷하거든요. 과거의 원한이 현재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기본 내용도 뻔하고요.

그러나 단순한 아류작은 아닙니다. 작가가 원래 '오카지마 후타리'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써 냈던 도쿠야마 준이치 - 이노우에 유메히토 컴비 중 한명인 이노우에 유메히토인 덕분에, 후지 요조의 미발표 원고를 추적하는 과정은 여러가지 단서가 잘 조합되어 추리물처럼 짜임새있게 전개되는 덕분입니다. 단순히 죽음의 원인을 찾는다는 뻔한 전개가 아니라, 잊혀진 원고를 찾는다는 설정도 새롭게 느껴졌고요.

호러 소설로도 기본 이상입니다. "메두사를 보았다"라는 글귀를 남기고 돌(?)이 되어 죽는 후지 요조의 자살방법, 24년전 초등학교 5학년 같은반이었던 학생들이 모두 죽었다는 등 여러가지 설정들은 독자를 충분히 오싹하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또한 소설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살리는 이야기들(소설 속의 후지 요조의 미발표 소설과 실제 소설이 겹쳐져서 보여지는 독특한 구조), 그리고 시공간이 흔들리는 반전이 색다르면서도 아주 충격적입니다.서평을 쓰신 김지운 감독께서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느낌이 든다고까지 평하실 정도로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후지 요조의 숨겨진 원고를 찾는 결정적 계기가 "우연"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너무 진보(?) 적인 소설 구조는 독자에 따라 반칙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발표된지 10년이 지난 탓에 지금 읽으면 아무래도 조금 낡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호러 소설이라는 쟝르에 충실한, 공포라는 감정은 잘 전해주는 괜찮은 소설입니다. 그닥 잔인하지도 않고 사람도 많이 죽지도 않는데도요. 소설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살렸기에 영상화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서 링보다 저평가될 수 밖에 없지만 공포에 치중하면서도 잔인하지 않은, 어떻게보면 여성적이고 섬세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색적인 호러물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