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의 사각 -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서술트릭의 대가로 알려진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입니다. 대표작이기도 한 "도착의 론도"도 그냥저냥이었기에 별로 땡기지는 않았지만 "도착" 시리즈는 한권정도 더 읽어볼 생각이었기에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도저히 봐 줄 수 없는 수준의 작품이더군요.
일단 서술트릭이라고는 하지만 설정과 이야기에 현실성이 전무하고 억지로 짜 맞추었을 뿐입니다. 서술트릭의 기본이 되는 기본 전개가 두 주인공의 정신이상에 근거를 두고 있으니 당쵀 설득력이 있을 수가 없죠. 차라리 정신병원에서 두 정신병자가 침대 양 옆에서 이야기를 전개시켰다고 하는게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정신병과 망상을 글로 써내려 간 것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것도 서술트릭의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이중구속"은 걸작이죠) 이 작품에서는 독자를 납득시키는 요소가 전무한, 그야말로 트릭을 위한 설정일 뿐이었어요.
그나마 중심이 되는 서술트릭 자체도 별다른 게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두가지 요소 -마유미의 정체와 오사와의 범행- 의 대부분이 중간 지점에서 짐작 가능하거든요. 곳곳에 숨겨놓은 단서가 읽다보면 쉽게 드러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이렇게 속일꺼야"라는 작가의 의도가 너무 뻔했으니까요.
덧붙이자면, 마지막의 봉인 페이지는 솔직히 코미디네요. 마유미가 돌아온다는 것과 앞서 연쇄 여성 폭행범에 대한 진상, 편지 왕래에 대한 수수께끼가 밝혀지는 정도인데 뭐가 그리 대단한 반전이라고 이렇게까지 오버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와 손톱" 시대에나 통했음직한 마케팅을 되도않는 작품에 시도한 것 자체가 비웃음거리가 아닌가 싶군요.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서술트릭의 대가라는 명성을 얻게 된 전작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토해낸 어설픈 결과물로 보이네요. 꼼꼼하게 날짜와 시간대별로 메모하면서 읽게 만드는 재미는 그런대로 있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만, 더 이상 이 작가의 다른 작품, 특히 "도착"시리즈는 읽을 생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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