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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2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노리즈키 린타로 / 최고은 : 별점 2.5점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비채

-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

살아 있는 몸에 직접 석고를 발라 본뜬 조각을 만드는 라이프캐스팅의 대가로 일본의 시걸이라고 불리우는 조각가 가와시마 이사쿠는 은거한지 10년 만에 친딸 에치카를 모델로 한 석고상을 선보인다. 그러나 작품 완성 직후 이사쿠는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유작인 석고상의 머리 부분이 깨끗하게 잘려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는 조각상의 모델인 에치카에 대한 살인 예고장으로 받아들여진다. 가와시마 이사쿠의 동생 아쓰시와 친분이 있는 노리즈키 린타로는 우연하게 사건에 대한 의뢰를 받아 조사에 나서게 되는데...


간만에 읽은 추리소설이네요. 일본 신본격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의 대표작이기도 한 작품으로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인 명탐정 노리즈키 린타로가 등장하는 장편입니다. 그런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서 거의 2주일에 걸쳐 읽게 되었네요.

이유는 분량대비 지루했기 때문이에요. 등장인물과 배경설정 소개에만 거의100여페이지를 할애할 뿐 아니라 주요 사건은 가와시마 에치카 살인사건 하나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데도 정작 사건이 200페이지가 넘어서야 겨우 등장할 정도거든요. 물론 석고상 머리 도난 사건도 있지만 이것은 이미 앞부분에 노리즈키 린타로에 의해 범인이 밝혀질 뿐더러 살인사건과 연관된 맥락에서 설명되기에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게 맞겠죠. 여튼, 540여페이지나 되는 분량동안 꾸준히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은 부족했습니다.

또한 본격물치고는 허술한 부분이 많이 눈에 뜨인다는 것도 단점이에요. 일단 범행 자체가 그러합니다. 에치카의 시체를 그냥 은닉하는 것이 상식선에서 올바른 일이었을텐데 목을 잘라가며 살인예고로 위장한다는 것은 말도 안돼죠.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인물은 도모토 슌, 우사미 쇼진, 가가미 부부, 가와시마 아쓰시 등 4~5명에 불과하기에 수사와 추리의 과정 역시 뻔할 뿐더러, 용의자가 좁혀지는 탓에 동기와는 별개로 막판에는 범인을 어느정도 추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가가미(거울) 를 통한 암시도 있지만 (솔직히 유치했지만) 전개나 분위기가 어차피 도모토 슌과 우사미 쇼진은 범인이 아니라는 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소거법만 가지고도 대충 답이 나오거든요.
무엇보다도 대단한 트릭보다는 꾸준한 경찰의 수사와 증언들의 조합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전개만 놓고 본다면 본격물이라기 보다는 수사물에 가깝지 않나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아울러 모녀가 아무리 닮아도 그렇지 소설에서처럼 꼭 닮을 수 있는지도 좀 말이 안되는것 같고 트릭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가가미가 성폭행으로 임신을 시키는 것이 과연 한방에 가능했을지? 도 의문이었어요. 임신시키는데 실패했더라면 될때까지 강간했을거라는 이야긴지.... 나원참....
그 외에도 가장 중요했던 증언 중 하나를 단순히 산부인과 의사의 착각 (초산일 것이다) 이라고 넘어간다던가, 애시당초 가와시마가 아내의 불륜을 너무 성급히 믿게 된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등 뭔가 대충대충 넘어가는 부분이 많은 것도 옥의 티였습니다.

그래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부분도 눈에 뜨입니다. 조지 시걸의 라이프 캐스팅 기법 등 조각분야에서 소재를 차용하여 작품의 핵심 트릭을 구현한 솜씨가 특히 그러한데, 예술과 추리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순수한 픽션이기는 하지만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모녀상 연작에 담긴 의미와 데드 마스크를 통한 구현 같은 설정은 정말 탁월했어요.
추리적으로도 16년전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복잡한 관계속에서 빚어지는 인과관계만큼은 설득력있게 잘 짜여져 있고요. 아울러 엘러리 퀸 스타일을 표방한 만큼 독자에게 단서를 제대로 제공해 준다는 것 역시 본격물 애호가로서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점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이 더 크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졸문이지만 제가 번역해 놓은 작가의 단편이 완성도와 재미 측면에서 훨씬 좋아 보이는데, 작가의 단편집이 번역 출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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