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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5

폐허 - 스콧 스미스 / 남문희 : 별점 3점

폐허 - 6점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비채

멕시코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던 제프 등 4명의 미국인 커플은 그곳에서 만난 독일인 마티아스와 그리스인 청년들과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마티아스가 유적 발굴팀을 따라간 동생 헨리히가 있다는 발굴현장으로 떠날때 즉흥적으로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도착한 유적지에 발을 디뎌놓는 순간 무장한 마야인 원주민들에 의해 포위되고 결국 인적없고 텐트 등만 놓여진 언덕위 공터에 고립되게 되는데...

"심플 플랜"으로 데뷰하여 초대박작가가 된 스콧 스미스가 13년만에 발표한 장편. 이미 북미지역에서는 대박을 이어간 작품이죠. (부럽...) 바로 전날 읽은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와 비슷한 두께인 530여페이지의 책인데 이 책은 "잘린 머리..."와는 다르게 하루만에 다 읽었습니다. 정말이지 손에서 떼기 힘든 재미가 넘치거든요.

사실 설정은 굉장히 뻔합니다. 특정 장소에 고립된 청춘남녀가 생명을 위협하는 크리쳐에 맞서 싸운다는 클로즈드 서클 설정의 작품은 널리고도 널렸죠. 개인적으로는 호수 위 뗏목위에서 기름막같은 아메바때문에 고립되는 대학생들이 등장하는 스티븐 킹의 단편 <뗏목/The Raft>이 바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생명을 위협하는 이형 (異形) 괴물이 산성 식인 식물이라는 것이 일단 독특하고, 여행자들이 유적에 고립되는 방법과 이유도 비록 원주민들과 말이 통하지 않기는 하지만 분위기와 상황 묘사만으로도 나름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충분히 차별화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스티븐 킹의 작품은 짤막한 단편이기에 위험상황과 괴물의 공격이 비교적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는 것에 반해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상황묘사, 식인 덩굴의 업그레이드되는 공격방식 - 1. 살며시 접근 2.직접 공격 3.말과 향기로 심리공격 4.주인공들을 조정하여 공격 등 - 을 단계별로 자세하게 펼쳐놓아서 읽어나갈수록 업그레이드 되는 공포가 잘 살아있는 것도 이 작품만의 매력이겠죠.
아울러 긴 분량답게 캐릭터도 확실하게 형성해 놓은 것도 마음에 들더군요. 두뇌파와 행동파가 적절히 나뉘고 여자들도 나름의 생각들이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등 이런류의 공포물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순진하고 멍청한 금발미녀와 덩치만 좋은 근육바보 미국 대학생 캐릭터는 아니니까요. 무엇보다도 말도 통하지 않는 그리스 청년 파블로를 주요 피해자로 내세운게 대박이에요. 말이 통하지 않는 극한의 상황 때문에 허리가 부러지고 다리가 절단되는 처절한 상황이 더 설득력있게 와 닿거든요.
그리고 역시나 뻔하긴 하지만 결말도 마음에 들었어요. 주인공들의 패배야 예상했지만 어떠한 방식인지가 궁금했는데 기대치만큼은 뽑아내주니까요. 젊은이들의 실수가 반복된다는 부분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읽는 중간에는 워낙 몰입해서 단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다 읽고 리뷰를 적으려 하니 몇가지 떠오르긴 합니다. 일단 식인 덩굴의 지능에 대한 묘사가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싶네요. 두뇌가 있고 약간의 소리를 흉내낸다는 것 정도가 좋았을텐데 식물이 "말"을 한다는 설정부터는 솔직히 오버로 보였거든요.
그리고 긴 고립의 기간동안 생명을 "유지"하려고만 하지 살아남기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의아한 부분이죠. 예를 들어 "소금"으로 원주민들이 식인 덩굴의 번식을 막는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소금뿌려진 흙을 가져오는 등의 방식으로 식인 덩굴의 위협을 뿌리치려는 시도는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마찬가지로 최후의 수단이긴 하지만 원주민들 사이로 탈주를 하기 위해 방패와 같은 방어막은 갖추려는 시도도 해봄직 했을텐데 말이죠.
아울러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양장본으로 출간한 출판사의 만행(?) 탓에 출퇴근할때 들고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운동이었어요...

그래도 단점이야 어떻게 되든 확실한건 처음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게만드는, 그야말로 킬링타임용으로는 충분한 웰메이드 호러 스릴러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여름날 서늘한 기분을 느끼기에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이 책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잘 모르는 곳에 함부로 여행을 떠나지 맙시다!"

덧붙이자면,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루인즈"라는 영화도 있는 모양인데 원작 그대로만 찍어도 본전치기는 할 것 같은데 어떨지 궁금하네요. 평은 별로 좋지는 않은 듯 싶고 예고편을 살짝 봤더니 식인덩굴 움직임이 강조되어 뭔가 포인트를 잘못 잡은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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