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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 - 마틴 에드워즈 / 성소희 : 별점 2.5점

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 - 6점 마틴 에드워즈 지음, 성소희 옮김/시그마북스

영국 국립 도서관에서 발간한 고전 범죄소설 시리즈를 읽을 때 참고할 안내서입니다. 1901년에서 1950년 사이에 출간된 소설 중 범죄 소설에 초점을 맞춰 모두 102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시기별, 장르별, 특징별로 상세하게 범주를 구분하고, 범주별로 왜 그 작품을 선정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덕분에 소개된 작품만 읽어도, 고전 추리, 범죄 소설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황금기를 지나게 되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통 고전 본격물'을 일컫는, 이른바 '페어플레이 미스터리'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면 저자는 1차대전 이후 전쟁에 지친 대중이 현실 도피와 함께 흥미진진한 게임을 원했기 때문에 이 분야가 탄생했다고 설명합니다. 점점 소설 속 탐정과 지혜를 겨루는 작품이 많아졌으며, 그 결과 오락거리로 즐기는 가벼운 문학의 새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이른바 범죄 소설의 '황금기'가 바로 이 시기인겁니다. 복잡한 퍼즐, 이야기 속 단서 삽입, 독자를 현혹시키는 여러가지 장치들을 선보이기 위해 장편 형식이 유행하게 된 것도 필연이었고요. 

또 불가능 범죄 미스터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단편 형식이 가장 잘 맞는다는 주장도 기억에 남습니다. 독자가 불신을 유예하는 시간, 즉 사실주의에 입각한 비판을 멈춰놓는 시간이 짧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인데, 저 역시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리뷰를 쓸 때는 "생각해보니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었다'고는 해도, 최소한 읽는 동안에는 그런 생각을 할 틈 없이 두뇌 게임만을 온전히 즐기려면 이야기가 길면 안 되겠지요.

이런 추리소설 통사적인 측면 말고도, 작품별 소개글도 수준이 높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진짜 흥미를 자아내는 선까지만 알려주는, 스포일러가 전혀 없는 내용 요약도 일품이며 소개된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도 충실히 수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상화 버젼에 대한 정보가 아주 디테일해요. 영화는 물론, TV 시리즈까지 모두 소개하고 있으며, 심지어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움직이는 장난감 가게"에서, 통제 불능 상태의 로터리와 마주치는 두 번째 추격 장면은 히치콕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각색한 영화에 활용했다는 이야기까지 소개될 정도니까요. 

비슷하거나 영향을 받은 작품에 대한 소개 역시 그 방대함과 깊이가 남다른 수준이며 그 외 여러가지 토막 정보들도 충실합니다. 바로네스 오르치의 "미스 엘리엇 사건"은 1915년 어니스트 섀클턴 경이 남극 탐험을 떠날 때 챙겨갔던 책이었다, 크리스티아나 브랜드가 1979년, "독 초콜릿 사건" 재판본 서문을 쓰면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일곱 번째 방법을 발표했다, 우드소프의 1932년 데뷔작 "사립학교 살인사건"은 1934년 미국 사립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과 소름끼칠 정도로 닮아있었다는 등의 이야기들 처럼요. 1931년 발표되었던 에블린 엘더의 "흑백 살인"은 주인공 샘 호더가 그린 그림이, 프랜시스 비딩의 1935년 작 "노리치의 피해자들"에서는 용의자들 사진이 중요 단서로 사용되었다는 등의 추리 소설 관련된 아이디어가 이미 20세기 초엽에 정립되었다는 정보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저자의 추리, 범죄 소설 분야에 대한 방대하면서 해박한 지식에는 감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추리 소설가들이 작품을 썼던 의도들도 볼만했던 정보입니다. A.E.W 메이슨이 "독화살의 집"을 쓸 때 목표로 했던 건, 미스터리가 모두 해결된 후 추가 설명해야 하는 내용을 가능한 없애겠다는 것처럼요. 페어플레이 추리 소설의 초창기 표본인 "밤중에"를 쓴 고렐 경의 목표는 모든 필수적인 정보를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하며, 고렐 경의 이 작품에서 건물 평면도, 지도 등이 처음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A.A. 밀튼은 추리 소설은 이해하기 쉬운 말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 탐정이 독자보다 특별한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는데, 과연 곰돌이 푸를 쓴 작가답습니다. 

가장 마음에 든 건 마이클 이네스의 말이었습니다. 그는 "추리 소설은 어쨌거나 순전한 오락물이니 독자를 당황하게 할 뿐만 아니라 즐겁게 해 주겠다는 야망을 저버려서는 안된다"는데 정말이지 맞는 말입니다! 빅터 로렌조 화이트처치가 "다이애나 웅덩이의 범죄"를 쓸 때, 본인 스스로 왜 범죄가 일어났고 누가 범인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창작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자 뿐 아니라 작가조차도 의미를 모르는 단서들을 살펴보며 수사를 하고 글을 썼다는 건데, 발상이 참 독특했어요.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안내서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내에 따를 수 없다는 점입니다. 국내 소개된 작품이 턱없이 부족한 탓입니다. 총 102편 중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래의 29편에 불과합니다. 절판된 책도 포함한 것으로, 실제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은 그보다도 훨씬 적을 거에요. 이래서야 이 책을 읽는 의미가 많이 퇴색할 수 밖에 없지요.

  1. "배스커빌 가의 사냥개" - 아서 코난 도일
  2. "네 명의 의인" - 에드거 월리스
  3. "브라운 신부의 순진" - G.K. 체스터턴
  4. "오시리스의 눈" - R. 오스틴 프리먼
  5. "하숙인" - 마리 벨록 로운즈
  6.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 어니스트 브래머
  7. "트렌트 마지막 사건" - E.C. 벤틀리
  8. "통" -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9. "붉은 저택의 비밀" - A.A. 밀른
  10.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11. "증인이 너무 많다" - 도로시 L. 세이어즈
  12. "독 초콜릿 사건" - 앤서니 버클리
  13. "목사관 살인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14.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15.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 이든 필포츠
  16. "녹색은 위험"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7. "시행착오" - 앤서니 버클리
  18. "완벽한 살인사건" - 크리스토퍼 부시
  19. "ABC 살인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20. "막다른 사건 부서" - 로이 비커스
  21. "살의" - 프랜시스 아일즈
  22.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 조세핀 테이
  23. "데인 가의 저주" - 대실 해밋
  24. "재앙의 거리" - 엘러리 퀸
  25. "붉은 오른손" -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
  26.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27. "수상한 라트비아인" - 조르주 심농
  28.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 H. 부스토스 도메크
  29. "야수는 죽어야 한다" - 니콜라스 블레이크

자유 추리문고에서 출간된 "포튠을 불러라"는 이 책에서 소개한 "포춘 씨, 부탁입니다"와는 다른 단편집으로 생각됩니다. 언급되고 있는 "작은 집"이라는 작품이 포함되어 있으나 그 외 수록작은 다르거든요. 그래서 정식으로 소개된 걸로 치지는 않겠습니다. 게다가 저는 소개된 작품은 한 3~4권 빼고 전부 읽었기에, 별 의미없는 소개였던 셈입니다. 

추리 소설 역사에 대한 자료적 가치는 높지만, 이런 이유로 감점하여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2/03/18

완전살인 - 크리스토퍼 부시 / 남정현 : 별점 2점

완전살인 - 4점
크리스토퍼 부시 지음, 남정현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주요 신문사와 경시청에 '마리우스'라고 자칭한 인물이 '완전 살인'을 예고하는 편지가 배달되었다. 폭발적인 대중의 관심 속에 마리우스가 지정한 날짜에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부유한 독신 노인 토머스 리치레이였다. 토머스 리치레이가 결혼을 앞둔 탓에, 유산 상속을 받지 못할 위기에 빠진 조카들이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네 명 모두 알리바이가 완벽했었다. 줄랑고 회사 사장인 프랜시스 웨스튼 경은 회사의 새로운 중핵이 될 비밀 탐정부를 키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완전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자 회사의 두뇌 역할을 맡고 있는 수재 루드빅 트레버스와 전 형사부장 존 프랭클린을 투입하는데...

크리스토퍼 부시가 1929년에 발표했던 고전입니다. "고전 추리, 범죄 소설 100선"에서 추천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추리 소설의 초창기 황금기 발표작다운 면모를 과시합니다. 추천할만한 요소가 몇 가지 보이기도 하고요. 첫 번째는 트릭을 추리해내기 위한 단서 제공이 공정하다는 점입니다. 범인 프랭크 리치레이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었던 트릭은 변장한 대역을 내세웠던 겁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단서 모두는 작품 맨 앞 프롤로그 부분에서 제공됩니다. 대역이었던 플래이스가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와 영화배우 진 앨런의 대역을 찾는 오디션에 대한 묘사가 바로 그 단서거든요. 플래이스의 편지에서 사용되었던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암호 트릭도 인상적이고요. 

두 번째는 다양한 용의자를 드러내고, 이런저런 수수께끼를 계속 등장시켜서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끄는 전개입니다. '마리우스'가 보낸 편지에서 시작해서, 범행이 일어나기 전 피해자 토머스 리치레이를 방문했던건 누구인지? 토머스 리치레이 주머니에 들어있던 협박장을 쓴 T.W.리처드는 누구인지? 등의 수수께끼가 계속 등장합니다. 수사 과정에서도 새로운 수수께끼가 드러나고요. 그야말로 고전 본격 황금기 작품의 기본은 해 줍니다. 

세 번째는 두뇌 역할의 부르주아 루드빅 트레버스와 발로 뛰는 유능한 수사관 존 프랭클린의 컴비 탐정 캐릭터입니다. 이렇게 두 명이 컴비로 등장할 경우, 보통 한 명은 평범한 일반인 시각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두 명 모두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꽤 신선했습니다. 이들이 사건에 뛰어든게 '회사 선전'을 위해서였다는 것도 굉장히 현대적인 동기였고요.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고전 명작이냐고 물으신다면, 제 답은 '아니오'입니다. 장점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래 된, 유통기한이 지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제목의 '완전 살인'을 예고한 마리우스의 편지입니다. 괜히 경찰의 주목을 끌 이유는 없는데, 프랭크 리치레이가 왜 이런 편지를 보내서 자신의 범행을 널리 알려야 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아요. 경찰의 시선이 분산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이왕 살인을 저지르니, 사회적인 반향도 불러 일으켜보자고 여겼던걸까요? 하지만 프랭크는 자신의 완전 살인을 위해 아무런 죄도 없는 불쌍한 대역 배우 플래이스를 무참하게 살해하고 만 잔혹한 범죄자입니다. 이런 사명감같은걸 가질만한 인물이 아니에요. 또 이 때문에 여론이 크게 움직였다는 묘사도 딱히 없고, 경찰도 빨리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은 등, 한 마디로 흥미를 자아내기 위한 목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불필요한 설정이었습니다. 

핵심 알리바이 트릭이 단지 변장이었다는 것도 맥이 빠집니다. 또 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찰리 채플린 급의 유명 배우 대역을 공개적으로 모집했다는 것도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에요. 이 탓에 루드빅 트레버스의 주목을 끌고 말았으니까요. 프랭크가 자기와 꼭 닮은 누군가 - 플래이스 - 를 발견한 뒤 범행 계획을 꾸몄다는데 더 설득력 높았을 겁니다.

아무런 증거 없이 프랭크 리치레이를 몰아세운 뒤, 그가 자멸하는걸 노렸던 호워튼 총경과 존 프랭클린의 작전도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플래이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프랭크의 알리바이가 조작되었다는걸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플래이스가 프랭크에게 살해당했다는 거라도 증명했어야 했는데, 시체조차 찾지 못했으니 이 역시 불가능했고요. 

프랭크가 둘에게 추궁당한 직후 곧바로 범인임을 자백할 이유 역시 마땅치 않습니다. 프랭크 본인 말대로 시한부였다면 더더욱요. 어차피 오래 못 살텐데, 뭐하러 범행을 인정한단 말입니까? 도주 후 시체로 발견되는 과정도 쉽게 흘러간 느낌이라 별로였고요. 차라리 호워튼 총경과 존 프랭클린이 선량했던 프랭크를 물에 빠트려 죽인 뒤, 범인임을 자백했다며 죄를 뒤집어 씌우는게 더 현실적인 전개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번역의 질이 심하게 떨어지는 동서 추리문고 출간 버젼이라 걱정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번역은 정말 끔찍한 수준이었습니다. 앞서 괜찮았다는 암호 트릭이 사용된 편지는 나쁜 번역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지요. 번역 때문에라도 도저히 권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고전'인건 분명한데,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기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작가와 작품이 잊혀진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이런 류의, 명성은 약간 남아있지만 지금은 그 생명을 고해버린 작품은 이젠 그만 읽어야겠습니다.

2015/05/05

대낮의 사각 1/2 - 다카기 아키미쓰 / 김선영 : 별점 3점

대낮의 사각 1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대낮의 사각 2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도쿄대 역사에 남을 정도의 천재 스미다 고이치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 "태양 클럽"이라는 조직을 만든 뒤, 전후 혼란기에 거대한 재력을 손에 넣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잠깐의 성공 이후 스미다는 폭주한 끝에 자살이라는 최후를 맞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의 추종자 중 한명이었던 쓰루오카는 스스로 "사기"라는 범죄로 성공할 생각을 굳히는데...

다카기 아키미쓰의 작품으로 무려 800여페이지가 넘는 초거대작.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터리 100선에도 선정된 (28위)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도착의 사각"이 떠오르는 제목이라 당연히 본격물이라 생각했는데,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 가미즈 교스케, 기리시마 사부로, 햐쿠타니 센이치로가 등장하는 정통파 본격 추리소설이 아니라 쓰루오카 시치로라는 천재적인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한 범죄 소설이라서 조금 의외였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합니다. 얼마나 범죄가 치밀하게 그려지는가?가 범죄 소설의 핵심 재미 요소인데, 등장하는 어음 편취 사기의 설득력이 아주 높은 덕분입니다. 어떻게 어음을 손에 넣는지와 그것을 어떻게 현금화 하는지에 대해 재미있으면서도 기발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등장하는 여러 사기 사건 중에서도, 어음을 발행하는 피해자가 홀딱 속아 넘어가도록 일본 조선 주식회사로 위장한 회사 건물 안에서 연극을 연출하듯 모든 상황과 장소를 조작했던 '신요 기선 어음 편취 사건', 그리고 실존하는 공사관을 무대로 대사의 비서와 직접 짜고 벌인 '파세도나 공사관 사기 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외의 사건들도 치밀함은 뒤지지 않습니다. 실제 범죄자와 직접 인터뷰를 한 뒤 쓰여졌다고 하는데, 생생함과 설득력이 정말 대단한 수준이에요. 항상 사기는 당하는 쪽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치밀하면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아울러 주인공이 도쿄대 법대 출신이라는 설정을 대기업 임원과의 술자리 대화를 통해 자금을 편취하는 사기라던가, 경찰 취조를 빠져나가는 부분 등에서 효과적으로 써먹는 것도 괜찮았어요.

또 범죄 소설은 주인공 범죄자의 캐릭터도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뤼팽"은 고전 본격물에 가까워 뺀다 쳐도 "팡토마스", 리처드 스타크의 "악당 파커", 퍼트리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등의 유명 악당 캐릭터는 지금까지도 그 생명력이 이어지고 있죠. 이 작품 역시 등장인물들 묘사가 아주 그럴듯한데, 그 중에서도 자신의 모든 행동을 분단위로 기록한다는 천재 스미다 고이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록 초반부에 퇴장하지만 천재이자 광인으로 그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지배한 남자 류비세프의 흑화버젼이랄까요. 참고로, 실존했던 전후 도쿄대 출신 수재들이 벌인 "히카리 클럽" 사건 주역에게서 모티브를 얻어 묘사했다니, 이 역시 생생함이 남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주인공들의 입을 빈 전쟁 직후, 이른바 전중 혹은 전후파라 불리우는 세대의 시각도 돋보였습니다. 메이지 세대라 불리우는 전쟁을 일으킨 세대에 대해 맹목적인 분노와 적개심 가득한데 1920년대 생인 작가 본인의 시각일겁니다. 허나 이들 역시도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성공은 하고 싶고, 위기에 몰리면 피해자 코스프레에 몰두하는 비겁한 인물들일 뿐입니다. 시대의 대악당을 꿈꾸지만 결국 소인배라는 것이 이채롭네요.

이렇게 소재 및 전개, 캐릭터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재미를 갖추고는 있는데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일단 이야기의 흐름이 하나의 거대 장편이라기 보다는 옴니버스 범죄물처럼 토막나 있어서 하나의 호흡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럴거라면 여러편으로 시리즈를 쪼개던가, 아니면 큰 줄기의 이야기는 넣지 않는게 좋았을겁니다.

주인공 쓰루오카의 캐릭터가 스미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점도 아쉽습니다. 본인 스스로 악인을 자처하는데 인간적인 모습이 계속 엿보이게 만드니 죽도 밥도 안된 느낌이거든요. 차라리 "야수는 죽어야 한다"의 다테 구니히코처럼 막 나갔어야 했어요.
그나마 마무리 직전까지는 그런대로 능력있는 악당 느낌을 전해주는데, 마지막의 급작스러운 몰락 탓에 캐릭터 훼손도 심해져 버리고 말았네요. 쓰루오카를 집요하게 추적하던 후쿠나가 검사에 의해 체포된 뒤, 파세도나 공사관 사건에서 고용했던 하수인 곤잘로의 증언으로 한순간에 끝장난다는 결말인데 고작 이정도밖에 안되나? 싶었던 탓입니다. 좀 더 치밀한 안배, 효과적인 도주가 덧붙여져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여성들에 대한 묘사가 별로라는 것도 단점입니다. "여자는 단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도구는 많을 수록 좋다"라는 스미다의 신조가 작품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지만, 다카코의 자살은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그야말로 개죽음이며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니까요. 일종의 성녀 이미지를 작품에 집어넣어 쓰루오카의 악을 비교하여 더욱 추악하게 묘사하려는 의도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진부한 캐릭터에 진부한 묘사로 인해 분량만 아까웠습니다.

그리고 이건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사기극들은 만화 "쿠로사기" 등에서 이미 접해본 것들과 비슷해서 신선함이 떨어지기는 하더군요. 작품이 발표된 시기에 읽어보았다면 굉장히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을텐데 지금 읽기에는 낡기도 했고요.

결론적으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쓸데없는 묘사는 덜어내고 패배를 모르는 냉혹한 악당 쓰루오카의 범죄 행각에 촛점을 맞추었더라면 별점 4점 이상은 너끈했을텐데, 약간의 단점들로 인해 감점합니다. 그래도 천재적인 범죄에 전율하게 만드는 거장의 솜씨는 놀라운 고전 명작임에는 분명한 만큼, 추리소설 애호가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 : 현재까지 국내 출간된 다카기 아키미쓰 작품 8편은 전부 다 읽어보았는데 개인적인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야망의 덫" - "실험부부" - "파계재판" - "문신 살인사건" - "대낮의 사각 (본편)" - "유괴" -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 "제로의 밀월"

작품별 별점 평점이 2.037.., 3점이네요. "타율왕"에 올려도 부족함이 없겠습니다.

참고로, 야망의 덫과 실험부부는 제 추리소설 리뷰 초창기에 읽고 감상을 남긴 것이라 지금 읽으면 점수가 좀 처질 수도 있는 점 양지해 주세요.

2025/05/03

브라이턴 록 - 그레이엄 그린 / 서창렬 : 별점 2.5점

브라이턴 록 - 6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런던의 신문 기자 헤일은 브라이턴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뒤, 자신의 불길했던 예감대로 죽음을 맞는다. 그가 생의 마지막 날에 잠시 만났던 여자 아이다는 헤일이 자연사했다는 검시 소견에 의문을 품고서 단서를 찾던 중, 고인이 죽기 직전 들른 곳으로 밝혀진 스노 식당의 직원 로즈를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미 헤일의 죽음을 설계한 젊은 갱 두목 핑키가 먼저 로즈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로즈는 아이다의 추궁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그리고 핑키는 점점 다가오는 아이다의 추적을 피해 자신의 살인을 덮고자 또 다른 범죄를 계획하고, 유일한 증인이 될 로즈의 입을 영원히 틀어막을 방법을 궁리한다(출판사 제공).

오랫만에 묵직한, 500페이지가 넘는 고전 정통 장편 범죄 소설을 읽었네요. 그레이엄 그린이 1938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문학과 범죄의 교차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지요. 영국 남부 해안의 휴양지 브라이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 갱과 주변 인물들의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카톨릭 교리를 바탕으로 인간의 죄와 구원, 선과 악이라는 주제를 날카롭게 천착하며, 단순한 범죄 소설을 넘어선 문학성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범죄 소설로도 평가가 높습니다. "CWA 선정 100대 범죄소설"에 46위로 선정되었고, 2010년 타임즈(The Times)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범죄 소설 50선”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우선 1930년대 영국 휴양지 브라이턴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싼티나는 쾌락과 범죄가 넘쳐나는 타락의 도시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집니다. 등장 인물 역시 브라이턴 못지 않게 생생하게 그려지며, 그 중 압권은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인 소년 핑키입니다. 술도 못 마시고 여자도 모르는 미성년자가 어른 여럿을 수하에 두고 아무런 죄책감없이 사람을 죽이는 과정은 섬뜩함을 자아냅니다. Brighton Rock의 유튜브 검색 결과에서 Pinkie's first appearance가 가장 먼저 뜨는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 외에도 핑키에게 푹 빠져 타락하고 마는 순진한 소녀 로즈, 탐정 역할을 자임하는 중년 여성 아이바, 핑키의 부하 스파이서와 커빗, 최초 피해자 프레드 등 주요 인물들의 심리 묘사도 상세하고 생생합니다. 

범죄극으로서도 뛰어난 편입니다. ‘프레드의 사인을 경찰은 왜 자연사로 판단했을까?’라는 미스터리도 등장하니까요. 진상은 핑키 일당이 프레드의 입에 '브라이턴 락' 사탕을 쑤셔 넣어 급사하게 만든겁니다. 의도한건 아니라서 트릭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앞서 핑키 일당의 주무기는 면도날이라는 언급을 계속 해 주었기 때문에 일종의 서술 트릭으로 읽혔습니다.
아이바의 끈질긴 탐문 수사, 그리고 몇 안 되는 핑키가 남긴 단서도 공정하게 공유되며 마지막 아이바의 일격은 추리적인 재미를 더합니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 역시 흥미롭게 전개되는데, 특히 반전이라 할 수 있는 핑키의 욕설 레코드가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과연 '구원'이라는게 가능할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니까요.

반면 단점도 존재합니다. 핑키가 로즈와 결혼할까 말까 고민하는 과정은 지나치게 장황하고 지루했습니다. 또한 핑키가 술을 못 마시고 여자를 모른다는 설정도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다소 지루하고요. 또한 이런 묘사들이 핑키를 철없는 소년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도 문제입니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른들을 부리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조직 우두머리'라는 핑키의 독특한 존재감을 희석시키는 탓입니다. 핑키에 대한 설명도 너무 부족해요. 별다른 완력이나 두뇌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카리스마도 없는데 어린 나이에 범죄조직 우두머리가 되었다는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프레드의 죽음에 대한 핑키의 두려움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이미 경찰이 자연사로 판단한 사건에 몇 가지 단서가 더해졌다고 해서 과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핑키의 '두뇌'에 심대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만 들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카톨릭의 구원과 타락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나, 교인이 아닌 독자로서는 크게 와닿지 않아 흥미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교인이었다 하더라도 다소 낡은 논의였다 생각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타락한 도시와 범죄 조직, 도덕의 경계를 주제로 한 설정과 상세한 묘사는 좋지만, 개연성과 몰입도에서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지금 읽기에는 시대가 많이 지난 느낌입니다. 

2020/01/19

유령 열차 - 아카가와 지로 / 한성례 : 별점 2.5점

유령 열차 - 6점 아카가와 지로 지음, 한성례 옮김/씨엘북스

펄프 픽션의 제왕 아카가와 지로의 단편집입니다.

아카가와 지로의 작품은 제법 많이 접해 왔습니다. 리뷰를 올린 작품은 "마리오네트의 덫",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 시리즈인 "공포서클", 그리고 단편집 "네이비 블루 스토리"와 몇몇 앤솔러지 뿐이지만,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는 서울 문화사를 통해 국내에 출간된 작품들은 다 읽었으며, 그 외에도 SF라고 할 수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딸" 등을 읽었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이 수준 이하였습니다. 도저히 유명 작가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리오네트의 덫"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제 리뷰에도 썼듯이 3류 소설의 교과서같은 책이었지요. 그래서 작가의 그 어떤 다른 작품도 읽지 않으리라 결심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약 8년여, 설 연휴 때 읽을만한 가벼운 작품을 찾다가 이 작품이 얻어걸렸네요. 작가의 마지막 작품을 읽은지도 오래 되어 나쁜 기억이 희미해지기도 했지만, 그나마 단편들은 읽을만 했던 기억 때문이지요. 예전에 읽었던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이라는 괜찮은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던 "곳에 따라 비"에 대한 좋은 기억이 남아있기도 했고요. 이 작품의 주인공인 우노 경부와 대학생 유키코 컴비가 꽤나 유쾌해서 다른 시리즈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었는데, 바로 이 단편집이 이 컴비가 활약하는 데뷰작이자 작가의 데뷰 단편집이기도 했거든요.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터리 100선에도 당당히 실려 있기도 하고요. "마리오네트의 덫"의 순위가 더 높은걸 보면 영 신뢰가 안 가는 리스트이기는 하지만요.

하여튼,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다행히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록작 대부분이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데, 상황들이 기발한 덕이 큽니다. 범행 동기 등 세세한 부분의 설득력도 높은 편이며, 트릭도 반전도 제법이에요.
무엇보다도 두 커플의 캐릭터가 아주 좋습니다. 부인과 사별한 중년 경감 우노와 젊은 여대생 유코 커플을 조합했다는 점도 이색적인데,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게 톡톡튀고 발랄한 유코의 묘사가 괜찮습니다. 상당히 개방된 연애관과 성의식은 시대를 앞서간 감이 있네요.

그러나 수준 이하의 졸작도 수록되어 있는 등 작품의 편차가 크다는건 아쉽습니다. 여러모로 단점도 많이 띄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령 열차"

8명의 승객이 운행하는 기차에서 사라진 깜쪽같이 사라졌다는 불가능 범죄를 그린 단편입니다. 아내와 사별한 독신 경감 우노 교이치와 여대생 유키코 컴비의 기념할만한, 그리고 아카가와 지로에게도 기념할만한 데뷰작이죠.

그러나 사건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위증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도 그리 어려운 수수께끼가 아니에요. 달랑 세 명의 마을 주민(이와유다니 역 역장, 기차 기관사, 차장)이 승객들이 분명히 탔다고 증언했을 뿐이라서 이 세 명이 입을 맞춘다면 탑승, 혹은 운행 과정에서의 승객 소실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도 8명의 사람들이 승객으로 위장하여 탑승한 뒤, 기차 뒤에 매달아 놓았던 대차를 타고 탈출한게 진상이고요.

8명의 승객이 여관에서 독버섯을 먹고 죽었으며, 쇠락해가는 마을 관광이 치명상을 입을까 두려워 한 마을 유지들이 합심하여 시체를 숨긴 뒤 공작을 벌였다는 동기는 나름 그럴듯합니다. 식사 문제를 우노와 유코의 입으로 드러내는 등 약간의 복선도 존재하고요.

그러나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여덟 명이나 되는 손님이 사고사로 죽은걸, 기차를 탔다가 중간에 어디론가 사라진걸로 무마한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차라리 시체를 태운 뒤 기차 사고같은걸 일으키는게 현실적이잖아요. 아니면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입을 맞춘 뒤, 등산을 갔다는 등으로 둘러대던가요.
또 승객 소실은 번거로운 연극 없이, 그냥 세 명(아니, 여관 주인인 고지마까지 네 명)만 함께 증언해도 성립했을텐데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을 대역으로 동원한 것도 이상합니다. 아울러 수수께끼의 영역에서 이와무라 미와를 살해하고, 유코마저 납치하는 실제 범죄가 우노 경감앞에서 벌어진 뒤에는 범인들이 빠져나갈 방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결말은 많이 아쉽습니다.

기념할만한 데뷰작이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유괴범의 배신"

닛타가 '봉투에 들어 있지도 않고, 접혀 있지도 않은' 협박장을 들고 있었던 이유에 대한 추리는 괜찮습니다. 배달온걸 본게 아니라, 자기가 만든 협박장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보고 있었다는 추리인데 상당히 그럴듯해요. 유괴 사건은 조작이며, 닛타가 자신의 과거를 협박하던 니시오를 죽이려는게 목적이었다는 진상은 바로 이 추리에서 출발하는데, 추리와 동기와 진상이 잘 어우러집니다.

또 협박장이 들어있던 우편함 속 신문 투입 날짜를 통해 협박장이 집 안에서 넣어진걸 알아챈다던가, 이 협박장의 '딸'이 마사코가 아니라 니시오의 딸 마치코였고, 니시오가 닛타로부터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자주 빌려가는 이유는 책 속에 넣어둔 현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는 세세한 추리들도 괜찮았어요.

그러나 닛타가 과거 살인을 저질렀던 과거로부터 면죄부를 얻기 위해 마사코마저 살해했다는 전개는 너무 극단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훗날 막장 3류 드라마의 제왕이 된 아카가와 지로의 편린이 여기서도 엿보이네요.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는 낮은 편이라 별점은 2점입니다.

"얼어붙은 태양"

한 여름 태양이 작열하는 휴양지에서 얼어죽은 이로누마의 시체가 묘한 대비를 이루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트릭이랄건 없습니다. 범인의 의외성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어요. 이로누마를 냉동고로 유인해 가두어 죽게 만든건 다케나카 부인의 어린 세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냉동고를 대충 관리하여 책임을 지는게 두려웠던 관리인 노인이 사체 유기를 도운 것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상황과 범인의 의외성 외에는 건질만한 내용이 없다는 겁니다. 협박의 대상이 다케나카 부인이 아니라 오다 여사였다는 의외의 진상은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해요. 또 관계자들과 며칠간 휴양지에서 만났을 뿐인 우노 경감과 유코가 어째서 그들을 도와 이로누마 죽음의 진상을 감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다케나카 부인이 선의의 피해자이고, 오다 여사 역시 마찬가지라고 해도 경감이 할 일은 아니잖아요? 아이들도 조금만 크면 자신들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알게 될 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유코와 우노 경감 컴비의 알콩달콩 시츄에이션은 즐거웠습니다. 거사(?)를 치루려 할 때마다 방해받는 상황 묘사도 아주 코믹해서 즐거웠고요. 추리적으로는 별로라도 두 컴비의 팬이라면 즐길거리가 없지는 않은,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역시, 이 시리즈는 유쾌하고 해피 엔딩이어야 제 맛인거 같아요. 별점은 2점입니다.

"비옷을 입은 시체"

앞서 총평에서 언급했었던, 다른 앤솔러지에서 재미있게 읽었다는 단편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그런데 "비옷을 입은 시체"라는 제목은 영 별로네요. 이전에 읽었던 "곳에 따라 비"라는 제목이 더 근사했어요.

여튼,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이 비가 오지 않는데도 비옷 등을 차려입었기 때문에 동일범에 의한 연쇄 살인이라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모두 개별적인 범행이었다는 기본 아이디어가 좋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이 비옷을 입은 이유도 설득력있고요.

젊고 싱그러운, 그리고 현재와 하나도 다를게 없는 대학 축제가 배경인데, 휴대전화가 없어서 집으로 전화를 할 수 밖에 없는 고전적인 설정이 등장하는 것도 이채로왔던 점입니다. 공공장소에서의 키스를 경범죄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옛 시절의 모습이고요. 이런게 고전의 맛이 아닌가 싶어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좋은 단편입니다.

"선인촌 마을 축제"

유코의 졸업 축하 여행을 떠난 둘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나오키 형사의 초대로 그의 고향이라는 선인촌 마을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름 그대로 너무나 착한 사람들만 사는 마을이지만, 촌장의 부인이 우노를 유혹하고 수상한 남자가 자기 형이 이 마을에서 수상한 죽음을 맞았다고 말한 뒤 이리에 물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데...

추리 소설은 아니고, 모험 소설에 가까운 작품인데,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오지와 같은 시골 마을, 그곳을 우연히 연락도 없이 방문한 손님들, 너무나 착해서 손님들이 원하는걸 다 들어주는 주민들, 손님들과 함께 보낸다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마을 축제.... 이 정도 단서가 주어지면, 손님들을 제물로 1년에 한 번 마을 주민들이 미쳐 날뛰는 광란의 축제가 벌어진다는건 보나마나지요. 공포 영화의 서브 장르인 포크 호러(Folk Horror)와 똑같으니까요. 집단적인 종교의식이나 미신때문에 외지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영화들이요.

둘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과정도 운과 우연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를 꿈꾸던 처녀가 도와줘서 탈출하는거야 떡밥이 있었다 쳐도, 마지막 순간에 방송국 헬기 사다리를 잡고 도주에 성공한다는건 너무 작위적이었어요.

경찰인 나오키 형사도 마을 출신으로 공범이었다는 점은 독특했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는 망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차라리 수록되지 않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2016/09/15

바이바이, 엔젤 - 가사이 기요시 / 송태욱 : 별점 2.5점

바이바이, 엔젤 - 6점 가사이 기요시 지음, 송태욱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정의 딸 나디아는 대학 친구인 앙투안의 이모에게 전달된 협박장에 대해 들었다. 협박장을 보낸 이는 앙투안 이모들의 아버지 조제프와 관련이 있는 전 혁명가 이봉 뒤 라브낭이었다. 다음 해 1월, 둘째 이모 오데트가 머리 없는 사체로 발견되었고 경찰은 주요 용의자로 여동생 조제트를 지목했다. 유산과 치정이 이유였다.

주요 참고인 앙드레는 호텔에서 폭사, 조제트와 뒤 루아도 연이어 시체로 발견되며 사건은 오데트의 돈을 노리고 조제트와 뒤 루아가 벌인 범행(앙드레는 꼬투리를 잡고 협박하다가 살해당함)으로 잠정 결론 내려지는데...

가사이 기요시의 데뷔작입니다. 현상학 탐정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하지요. 'Mystery Best'에서 선정한 '일본 본격 미스터리 100선'에도 20위로 올라와 있을 만큼, 이전부터 명성은 많이 들어왔었습니다. "너버스 브레이크 다운"에서도 같은 제목의 이야기를 선보이기도 했었지요. "엔젤"이 환상의 엔젤 피쉬와 한 여성이라는 중의적으로 사용되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명성에 비하면 국내 소개는 좀 늦은 편인데 읽어보니 확실히 명성에 값합니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추리적으로 빼어나다는 겁니다. 처음 발견된 사체의 머리가 없는 이유, 호텔 방에서 앙드레가 살해된 사건의 겹겹이 짜여져 있는 교묘하고 거대한 트릭 등 사건에 관련된 추리적 장치들이 모두 상당한 수준입니다.

이를 추리해내는 야부키 가케루의 '현상학 탐정'이라는 별명 역시 허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현상학을 활용한 추리가 돋보입니다. 현상학적 분석을 통해 '목 절단은 범죄의 은닉을 위한 의지이다. 그러면 범인은 목을 절단해서 누구한테 무엇을 숨기려고 한 것인가?'를 강조하는 식으로 사건의 핵심에 맞는 정확한 추리와 단서를 독자에게 연이어 제공하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본질직관' - 모든 사람들이 자각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메커니즘 - 을 강조하는 것도 굉장히 새로왔고요. 독특함은 물론 추리적으로도 완성도 높고 독자에게 공정하기까지 하니 과연 명탐정은 명탐정이구나 싶었어요.

마찬가지로 첫 사체의 머리가 없는 이유에 대한 야부키의 대사를 통해, 추리 매니아들과 추리 소설 속 탐정을 공격하는 장면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잠깐 소개해 드리면

"이야기 속에서 상상 속의 명탐정은 머리 없는 시체에서 인간 교체 트릭을 인식할 수 없는, 개처럼 상상력이 부족한 경찰관들을 비웃지만, 사실상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그들 명탐정입니다. 절단된 인간의 머리에는 무한한 의미가 숨어 있고 무한한 기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중략--- 그런데 이렇게 얼굴이 개인의 판별 수단으로 너무 많이 이용된 결과 기묘한 착각이 발생하게 됩니다. 인간의 두부에 새겨진 무한하게 다양한 의미 속에서 단지 얼굴의 개인성, 인칭성만이 특권화되어 두부라고 하면 얼굴, 얼굴이라고 하면 개인을 특정하기 위한 기호라는 직접적인 의미 침전이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 발상을 고집하는 것만큼 무자각하고 상상력이 결여된 태도도 없습니다. 상상 속의 명탐정들과 나디아의 추리가 공유하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말이지 한번 새겨들음직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 역시 정체를 숨기기 위함으로 생각했는데, 정작 진상은 알리바이 공작을 위해 전화를 하기 위해 화장을 하지 않은걸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으로 충분히 독자의 의표를 찌르기 때문입니다.

관계자 앞에서 추리쇼를 펼친 나디아보다 우직하게 수사해 간 모가르 경정의 추리가 더 현실에 부합했다는 점도 의외성 높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앙드레 살해 사건에 쓰인 복잡한 트릭도 볼거리입니다. 정체불명의 사라진 투숙객이 앙드레였으며, 다른 모든 장치는 앙드레가 726호에 투숙했던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진상은 신선했습니다. 여러 명이 시간과 공간을 조작해 가며 치밀하게 펼친 공작이라는 점에서 설득력도 높아요. 모가르 경정의 가설 - 626호 남자가 공범으로 726호 열쇠를 바꿔치기 해서 밀실을 만들었다 - 도 그럴듯한 등 즐길거리가 참 많았습니다.

여러모로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도 눈에 띈 점입니다.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범행 동기가 "혁명"과 "조직"이며 무대 역시 프랑스라는 점이 그러하지요. 현상학에 바탕을 둔 야부키 가케루의 추리법 역시 철학 이론을 망라하고 있기에 작가의 전공과 무관하지는 않은 듯 싶네요. 열성적인 좌익 학생 운동가였지만 1972년 "연합적군 사건" 이후 전향하여 프랑스로 건너간 후 혁명과 학살에 대한 평론을 준비했던 작가의 작품다웠습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읽기가 쉽지 않아요. 친숙하지 못한 '현상학'을 들고 나온 탓에 현상학적 분석을 하는 부분들은 대체로 지루합니다. 가케루의 말투도 굉장히 장황한 편이고요. 다른 묘사들도 사실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나디아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오가는 전개도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고요.

그리고 발표 당시에는 먹혔을지 모르나 지금 읽기에는 동기와 진범은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혁명을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이 모든 범죄의 배후에는 비밀결사 '붉은 죽음'과 리더 마틸드가 있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스러워요. 마틸드의 정체가 뜬금없이 드러나는 것도 당황스러웠고요. 이 정도 조직의 리더라면 경찰 수사에서 뭔가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게다가 질베르, 앙투완에 앙드레까지 주요 인물들 모두 '붉은 죽음' 조직원이라는 것은 확실히 무리수였습니다. 차라리 마틸드가 몸으로 유혹해서 이용한 것이라는 게 더 설득력 높았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단점은 아닌데, 왜 프랑스가 무대인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지방 유지인 뒤 라브낭가와 라루스가 인물들의 비틀릴 대로 비틀린 가족 관계는 고전 일본 변격물과 하등 다를 것이 없을 뿐더러 딱히 프랑스만의 특징적인 무언가가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으니까요. 혁명을 핵심 동기로 다루고 있기는 한데, 앞서 말씀드렸듯 당시 일본에도 적군파라는 강경한 조직이 있었으니 그냥 일본을 무대로 해서 썼다 하더라도 별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약간 작가의 잘난 척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 단점 모두 명확한데 추리적으로는 확실히 괜찮았습니다. 몇몇 단점은 데뷔작이라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추리 소설 애호가분들께서는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빨리 작가 최고 걸작이라는 "썸머 아포칼립스"를 읽어 봐야겠습니다.

2007/09/15

빨간 고양이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 단편집) - 정태원 편역 : 별점 4점

빨간 고양이 - 8점
니키 에쓰코 외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이 책은 1회, 1948년 부터의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한 단편들을 정태원 선생님이 번역하신 책입니다. 나온다는 정보를 접하고 구입 의욕에 불타던 단편집이었지요. 출간 즉시 구입, 완독하였습니다. 그만큼 저같은 일본 추리 소설, 그리고 단편소설 매니아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책입니다. 국내에 첫 소개되는 작가도 많고, 유명하지만 소개되지 않았던 걸작도 수록되어 있는 덕분입니다.
물론 아토다 다카시의 "손님"이라던가 니키 에쓰코의 표제작이기도 한 "빨간 고양이", 구사카 게이스케의 "휘파람새를 부르는 소년" 같이 다른 앤솔러지에서 이미 접한 작품도 있지만, 제 기준으로는 열 여섯 편의 수록작 중 세 편에 불과해서 납득할 만 했습니다. 다 좋은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선정된 작품들은 괴이한 분위기의 "해만장 기담"이라거나 대하 역사물 같은 "매국노" 등 작품의 스펙트럼이 무지하게 넓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들이니 만큼 전부 추리소설들이기는 합니다.
또 전체적으로 문학적인 풍취가 넘치는 작품이 많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상이라는 걸 타려면 문학적으로도 어느정도 성과가 있어야 할테니 당연하겠지만요. 이런 부분은 저같은 고전 트릭물 애호가에게는 추리적으로 약간 부족해 보여서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덕분에 보다 폭넓은 층에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부디 널리 알려져서 잘 팔려주면 좋겠습니다. 뒷부분 해설을 보니 2부도 기획중이던데 2부 출간을 위해서라도 꼭이요!

하여튼 전체 별점은 4점입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만족했던것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유명한 걸작 "돌아오는 강의 정사 (회귀천 정사)" 였습니다. 일본 시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이야기는 역시 명불허전이더군요. 비록 일본시가 한국어로 번역되며 그 풍취를 많이 잃었다 하더라도 걸작은 역시 걸작이구나 싶었습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다 좋은데 좀 취향을 탈 것 같은 작품들은 몇개 있긴 했습니다.

아울러 책의 내용말고 다른 점을 좀 짚어보자면 오탈자가 가끔 있는 편이라 초판 이후에는 수정되었으면 하고, 책의 두께도 엄청난 편인데 양장으로 출간되어 무게를 가중시키는 것도 문제로 보입니다. 폰트를 좀 줄여 두께를 줄이고 양장대신 평범하게 제작하여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과거 다른 태동 출판사의 책들 수준의 크기와 가격이었더라면 만족도가 훨~씬 높았을텐데 좀 아쉽습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초승달 - 기기 다카타로

부유한 호소다 에이스케와 아야코 부부는 30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야코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아야코 집안에서 살해 의혹을 들먹이며 변호사를 통해 위자료를 요구해 왔다. 사건의 진상은?

1948년의 첫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상 수상작입니다. 정태원 선생님 해설을 통해 작가가 작품에서의 문학적인 부분을 굉장히 강조했던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작품 역시 순문학적인 정취가 물씬 풍깁니다. 사실 트릭이라는 것이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라 본격물로 보기에는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무척 높다는 느낌을 전해 주네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짤막한 단편이 본편보다도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뭔가 환상특급 같은 느낌을 주었거든요.

2. 해만장기담 - 가야마 시게루

대 부호인 쓰가모토 박사는 지상에 지옥을 구현하였다는 해만장이라는 저택으로 유명했다. 박사의 외아들 고비오의 생일파티가 해만장에서 있던 밤, 박사의 딸인 마야와 고비오가 엽기적인 방식으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고지라의 원작자인 가야마 시게루의 작품으로 1948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신인상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가야마 시게루는 전에 "넹고넹고"라는 환상문학적인 작품을 이미 접해보긴 했는데, 이 작품 역시 설정 자체가 약간은 허구에 근거하고 있어서 정통 추리물보다는 환상 추리 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저자의 방대한 박물학적 지식을 토대로 구현된 세계관은 압권입니다. 변격물과 정통파의 중간지점쯤에 위치했다고나 할까요? 과학적으로 뭔가 있어보이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실제 생물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트릭은 6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작가의 지나치게 장황한 묘사는 부담스럽습니다.

3. 눈속의 악마 - 야마다 후타로

다마에라는 아름다운 무용수에게 반한 의대생 다치바나는 자신의 친구였던 부자 가타쿠라에게 그녀를 빼앗기고 좌절하고 말았다. 그러나 가타구라가 의처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뒤, 다치바나는 우연히 알게된 다마에의 비밀을 통해 의학적 지식을 활용한 음모를 꾸미는데... 

유명한 고전 일본 추리작가 야마다 후타로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지만 작품 자체도 명불허전! 특히 예전 읽었던 "마지막 인사"에 비교해 본다면 추리적 요소가 많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순전히 다치바나의 1인칭. 그것도 서간문 형식으로만 구성된 전개 방식도 독특하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새로왔을 의학적 트릭을 이용하고 있다는게 놀라왔던 작품입니다. 심리를 잘 이용한 교묘한 트릭이라서 마음에 드네요. 

4. 허상음락 - 야마다 후타로

음독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유미코는 시동생 우스케에게 치아키 의사가 있는, 자신이 과거에 근무했던 병원으로 옮겨줄 것을 부탁했다. 치아키 의사는 진료 중 유미코의 몸에 드러난 수많은 상처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데... 

위의 "눈속의 악마" 보다도 작가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그런데 작품은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탐미주의적 문학관이 짙게 옅보이는 심리극으로 보는게 맞습니다. 추리적 알맹이는 그다지 많지 않거든요. 

그러나 애증 관계의 색다른 해석과 덧없는 결말이 펼쳐지는 인물과 심리 묘사가 워낙 탁월하여 작품 자체로서 높이 평가받는 듯 합니다. 솔직히 추리물로 보이지는 않아서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는건  의외이지만요.

5. 린치 - 오쓰보 쓰나오

10년만에 출옥한 전 야쿠자 세이기치. 그는 도난당한 금불상의 행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 알려진 탓에 야쿠자 조직의 표적이 되었다. 

과거의 금불상 도난 사건과 현재. 그리고 야쿠자 조직의 흥망성쇠가 얽힌 이야기로 복잡한 인간관계가 후반부에 가서 모두 밝혀지는 하드보일드적 작풍이 독특합니다. 사건이 트릭보다는 일종의 "해설"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 역시 비슷했고요. 하지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이 동양적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하드보일드 작품과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죠.

걸작까지는 아니지만,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입니다.

6. 어떤 결투 - 미즈타니 쥰

야스코를 놓고 경쟁하던 두 젊은이 시라사키와 구보타는 결국 권총 결투를 벌이는데 시라사키가 죽고 말았다. 친구 그룹은 사건 은폐를 위한 조작을 시도하는데... 

이 단편집에 드디어, 처음으로 등장한 정통 추리물입니다. 짤막하지만 권총 결투라는 소재를 도입한 이국적인 설정이 돋보입니다. 단지 이국적인 느낌만 전해주려고 등장한 설정이 아니라, 실제 사건에 중요한 요소로 쓰이는, 트릭의 근간이 되는 설정이라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들고요. 작품 중간에 등장하는 여러 조작과 그것을 밝혀나가는 경찰과의 두뇌싸움도 볼만 합니다. 

다른 작품들처럼 문학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추리물로 즐기기에는 부족함 없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7. 매국노 - 나가세 산고

전쟁 (2차 세계 대전) 말기 중국 베이징에서 사토미야 료스케는 친일신문 사장 2명의 진상 조사를 체리라는 아가씨에게서 의뢰 받았다. 조사를 진행하던 중 그는 이 사건이 일본의 신기인 곡옥과 얽혀있는 것을 알게 되는데... 

실제 중국 거주민이었던 작가의 아주아주 디테일한 당시 묘사가 돋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사건의 트릭 자체는 너무 보잘 것이 없습니다. 대하 역사극에 일부로 추리적 요소가 삽입되었다고 보여질 정도로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아요.

8. 여우의 닭 - 히가게 죠기치

신지는 나무를 하던 중 낮잠을 자다가 악몽을 꾼 직후, 형수 모치의 시체를 발견했다.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 생각한 신지는 사건 은폐를 위해 시체를 숨겼지만,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되어 경찰의 표적이 되는데...

전쟁 직후 귀환병의 비참한 생활을 잘 묘사한 문학적 흥취도 뛰어나지만 실제로 사건, 동기, 트릭의 3박자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걸작입니다. 날짜별로 구분된 챕터는 조금 거슬렸지만 워낙 묘사와 전개가 뛰어나 보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여운을 남기는 결말 역시 인상적이에요.

9. 피리를 불면 사람이 죽는다 - 쓰노다 기쿠오

경찰청 담당 기자 료스케는 자신이 썼던 완전범죄 기사에 대한 반박글을 보냈던 에나라는 아가씨가 사건의 중요 참고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관계된 완전범죄를 실제로 목격하는데...

경찰과 관계자가 보는 앞에서 벌어지는 완전 범죄를 그린 단편입니다. 일반적인 범죄물로 그려지다가 한번의 반전을 통해 트릭물로서의 가치도 전해줍니다. 전후 일본의 혼란과 인간의 잔인합도 약간 그리는 사회파적인 특성도 조금 있고요.

10. 그린차의 아이 - 도이타 야스지

노배우 나카무라 가라쿠는 7년만에 무대 복귀를 결심하지만 복귀 무대의 아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망설이고 있다가 지인과 함께 신칸센 그린차를 타고 도쿄로 떠났다. 그리고 그린차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소녀의 정체를 놓고 추리가 시작되는데..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라는 가부키 배우 나카무라 가라쿠가 등장하는 소품으로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차분하고 소박한 내용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일상 생활 속에서의 추리" 라는 점에서 정말이지 취향 저격이었어요. 아울러 가부키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와 지식이 특히나 돋보였고요. 

그런데 설정과 캐릭터에 비한다면 추리적인 요소는 약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11. 시선 - 이시자와 에이타로

가지하라 형사는 자신의 조카와 결혼을 앞둔 후배 시바타 형사와 탐문수사에서 돌아오던 중, 한 결혼식을 바라보다가 신부가 지난 은행강도 사건 피해자와 관련이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선으로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가지고 전개되는 짤막한 작품입니다. 단편에 최적화된 듯한 내용과 전개는 흡입력이 상당하더군요. 길이에 비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으로 드라마틱 하지는 않지만 묵직하게 전해주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12. 손님 - 아토다 다카시

이전에 읽었던 "Y의 거리"에 포함되었던 작품으로 아토다 다카시 특유의 반전이 인상적인, 서늘한 느낌의 작품입니다. 아토다 다카시의 대표작이자 최고 걸작은 "나폴레옹광"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작품 역시 만만치 않은 전율을 가져다 주는 좋은 작품이죠.

13. 빨간 고양이 - 니키 에쓰코

역시 이전에 읽었었던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 걸작선"에 포함되었던 작품입니다. "빨간 고양이"라는 인형에 함축된 중의적 의미를 풀어내는 트릭과 범인을 집어내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정통 안락의자형 추리물로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처량하고 너무 착하게 끝나는 결말은 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작가 니키 에쓰코의 작품군이 대체로 해피엔딩에 기반한 만큼, 작풍이라 보는 것이 맞겠죠. 어쨌건 정통 추리물 애호가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14. 돌아오는 강의 정사 - 렌조 미키히코

근대의 천재시인 소노다 가쿠요는 2번의 정사 미수 끝에 자살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이기도 했던, 그리고 그의 전기를 쓰다가 중단한 "나"는 그의 2편의 정사 미수 후 발표된 "정가"와 "소생"이라는 시를 분석하여 그 사건의 진상을 알아챈다.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에 9위로 선정된 "회귀천 정사". 바로 그 작품입니다. 천재 시인의 연작시를 토대로 과거를 밝혀내는 전개의 작품으로 시를 통해 발현되는 문학적 가치도 빼어나지만 사건 앞뒤에 포진한 단서와 복선을 가지고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 역시 이치에 합당하며 정교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 한편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가 여러배 높아지는, 그만큼 뛰어나면서도 항상 읽고 싶었던 작품이기에 무척 만족스럽네요. 

단 일본어 였을 때 너무나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느껴졌을 싯구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그 맛을 좀 잃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점이 있고 정통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추리의 과정이 심심한 편이긴 합니다. 그래도 걸작은 걸작입니다.

15. 나무에 오르는 개 - 구사카 게이스케

"나"는 동생 겐지가 유일한 친구 히데오와 개가 나무에 올라갈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로 격렬하게 싸우는 것을 중재하다가 과거 헤어진 연인 마치코의 집까지 찾아갔다. 그리고 며칠 뒤 개가 우물에 빠지고  겐지마저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자 "나"는 모든 사고의 원인이 된 나무에 올라가 모든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다. 

제가 그간 읽었던 구사카 게이스케의 작품은 항상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서 소품 느낌을 주면서도 정교함과 더불어 독자의 뒷통수를 치는 반전이 인상적인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어 정교하게 현재 시점의 사건을 다루는 솜씨가 역시나 탁월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반전도 인상적이고요.

16. 휘파람 새를 부르는 소년

역시나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 걸작선"에 수록되어 접해보았던 작품입니다. 거기서는 "꾀꼬리"라고 되어 있지만 같은 작품이죠. 위에 쓴 평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더 마음에 듭니다. 추리나 결말이 더 제 취향이었다고나 할까요?

2023/11/11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

제목 그대로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입니다. 2023년 최신 버젼이지요. 메건 애벗, 할런 코벤, SA 코스비, 길리언 플린, 타나 프렌치, 레이첼 하우젤 홀, 수자타 매시 등 유명 작가들이 뽑았다고 하네요. 나무위키에도 올라온 리스트이지만, 블로그 리뷰 연결 차원에서 포스팅합니다.

선정된 작품 100권 중 26권이 국내 미출간입니다. 출간된 74권 중 저는 27편을 읽었네요. (23년 11월 11일 기준)
절반도 읽지 못했으니 미스터리 애호가로서는 반성해야겠지만, 작품 선정 기준은 의문스럽습니다. 1980년대 이후 작품이 68편이나 선정된건 납득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보다 뛰어난 고전은 100편, 아니 1,000편도 넘을겁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언제나 그렇듯, 그냥 재미삼아 보는 리스트에 불과해 보입니다. 뉴욕 타임스도 별 수 없군요. 그래도 한국 작가 김언수의 작품 "설계자들", 그리고 1950년대 이전의 몇몇 고전들만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선정된 작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흰 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윌키 콜린스
The Woman in White by Wilkie Collins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Crime and Punishment by Fyodor Dostoevsky

"리븐워스 케이스" 안나 캐서린 그린 (국내 미출간)
The Leavenworth Case by Anna Katharine Green

"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
The Turn of the Screw by Henry James

"바스커빌 가문의 개" 아서 코난 도일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by Arthur Conan Doyle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The Murder of Roger Ackroyd by Agatha Christie

"블랙 더들리 저택의 범죄" 마저리 앨링햄 (국내 미출간)
The Crime at Black Dudley by Margery Allingham

"18호 방의 환자" 미뇽 G 에버하트 (국내 미출간)
The Patient in Room 18 by Mignon G. Eberhart

"몰타의 매" 대실 해미트
The Maltese Falcon by Dashiell Hammett

"The Conjure-Man Dies" 루돌프 피셔 (국내 미출간)
The Conjure-Man Dies by Rudolph Fisher

"A Man Lay Dead" 나이오 마시 (국내 미출간)
A Man Lay Dead by Ngaio Marsh

"가우디 나이트" 도로시 L 세이어즈 (국내 미출간)
Gaudy Night by Dorothy L. Sayers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The Three Coffins by John Dickson Carr

"레베카" 대프네 뒤 모리에
Rebecca by Daphne du Maurier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에릭 앰블러
A Coffin for Dimitrios by Eric Ambler

"이중배상" 제임스 M. 케인
Double Indemnity by James M. Cain

"If He Hollers Let Him Go" 체스터 B. 하임스 (국내 미출간)
If He Hollers Let Him Go by Chester B. Himes

"고독한 곳에" 도로시 B. 휴즈
In a Lonely Place by Dorothy B. Hughes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The Daughter of Time by Josephine Tey

"Beat Not the Bones" 샬롯 제이 (국내 미출간)
Beat Not the Bones by Charlotte Jay

"카지노 로얄" 이언 플레밍
Casino Royale by Ian Fleming

"죽음 전의 키스" 아이라 레빈
A Kiss Before Dying by Ira Levin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The Long Goodbye by Raymond Chandler

"내 안의 야수" 마거릿 밀러
Beast in View by Margaret Millar

"조용한 미국인" 그레이엄 그린
The Quiet American by Graham Greene

"재능있는 리플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The Talented Mr. Ripley by Patricia Highsmith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셜리 잭슨
We Have Always Lived in the Castle by Shirley Jackson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존 르 카레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by John le Carré

"혼진 살인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The Honjin Murders by Seishi Yokomizo

"Where Are the Children?" 메리 히긴스 클라크 (국내 미출간)
* 과거 "잃어버린 천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듯 한데 확실치 않음.
Where Are the Children? by Mary Higgins Clark

"더 샤이닝" 스티븐 킹
The Shining by Stephen King

"The Last Good Kiss" 제임스 크럼리 (국내 미출간)
The Last Good Kiss by James Crumley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The Name of the Rose by Umberto Eco

"붉은 10월" 톰 클랜시
The Hunt for Red October by Tom Clancy

"A Dark-Adapted Eye" 바바라 바인 (국내 미출간)
A Dark-Adapted Eye by Barbara Vine

"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The Decagon House Murders by Yukito Ayatsuji

"양들의 침묵" 토마스 해리스
The Silence of the Lambs by Thomas Harris

"푸른 드레스의 악마" 월터 모슬리 (국내 미출간)
Devil in a Blue Dress by Walter Mosley

"Mean Spirit" 린다 호건 (국내 미출간)
Mean Spirit by Linda Hogan

"법의관" 퍼트리샤 콘웰
Postmortem by Patricia Daniels Cornwell

"얼굴없는 살인자" 헤닝 만켈
Faceless Killers by Henning Mankell

"Dead Time" 엘리너 테일러 브랜드 (국내 미출간)
Dead Time by Eleanor Taylor Bland

"비밀의 계절" 도나 타트
The Secret History by Donna Tartt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Smilla’s Sense of Snow by Peter Høeg

"When Death Comes Stealing" 발레리 윌슨 웨슬리 (국내 미출간)
When Death Comes Stealing by Valerie Wilson Wesley

"페이드 어웨이" 할런 코벤
Fade Away by Harlan Coben

"추적자" 리 차일드
Killing Floor by Lee Child

"레이디 조커" 다카무라 가오루
Lady Joker by Kaoru Takamura

"Morituri" 야스미나 카드라 (국내 미출간)
Morituri by Yasmina Khadra

"아웃" 기리노 나쓰오
Out by Natsuo Kirino

"Inner City Blues" 폴라 L. 우즈 (국내 미출간)
Inner City Blues by Paula L. Woods

"A Place of Execution" 발 맥더미드 (국내 미출간)
A Place of Execution by Val McDermid

"Those Bones Are Not My Child" 토니 케이드 밤바라 (국내 미출간)
Those Bones Are Not My Child by Toni Cade Bambara

"Blanche Passes Go" 바바라 닐리 (국내 미출간)
Blanche Passes Go by Barbara Neely

"Death of a Red Heroine" 추 샤오롱 (국내 미출간)
Death of a Red Heroine by Qiu Xiaolong

"레드브레스트" 요 네스뵈
The Redbreast by Jo Nesbø

"미스틱 리버" 데니스 루헤인
Mystic River by Dennis Lehane

"바람의 그림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The Shadow of the Wind by Carlos Ruiz Zafón

"외과의사" 테스 게리첸
The Surgeon by Tess Gerritsen

"The Emperor of Ocean Park" 스티븐 L. 카터 (국내 미출간)
The Emperor of Ocean Park by Stephen L. Carter

"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Fingersmith by Sarah Waters

"얼음공주" 카밀라 레크베리
The Ice Princess by Camilla Läckberg

"2666" 로베르토 볼라뇨
2666 by Roberto Bolaño

"케임브리지 살인사건" 케이트 앳킨슨
Case Histories by Kate Atkinson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The Devotion of Suspect X by Keigo Higashino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스티그 라르손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by Stieg Larsson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마이클 코넬리
The Lincoln Lawyer by Michael Connelly

"스네이크 스킨 샤미센" 나오미 히라하라
Snakeskin Shamisen by Naomi Hirahara

"Queenpin" 메건 애벗
Queenpin by Megan Abbott

"죽은 자는 알고 있다" 로라 립먼
What the Dead Know by Laura Lippman

"유대인 경찰 연합" 마이클 셰이본
The Yiddish Policemen's Union by Michael Chabon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Drive Your Plow Over the Bones of the Dead by Olga Tokarczuk

"Wife of the Gods" 콰이 쿼티 (국내 미출간)
Wife of the Gods by Kwei Quartey

"네 시체를 묻어라" 루이즈 페니
Bury Your Dead by Louise Penny

"페이스풀 플레이스" 타나 프렌치
Faithful Place by Tana French

"설계자들" 김언수
The Plotters by Un-su Kim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The Sound of Things Falling by Juan Gabriel Vásquez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Gone Girl by Gillian Flynn

"라운드 하우스" 루이스 어드리크
The Round House by Louise Erdrich

"64" 요코야마 히데오
Six Four by Hideo Yokoyama

"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Ordinary Grace by William Kent Krueger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리언 모리아티
Big Little Lies by Liane Moriarty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Everything I Never Told You by Celeste Ng

"Land of Shadows" 레이첼 호첼 홀 (국내 미출간)
Land of Shadows by Rachel Howzell Hall

"동조자" 비엣 타인 응우옌
The Sympathizer by Viet Thanh Nguyen

"블루버드, 블루버드" 애티카 로크
Bluebird, Bluebird by Attica Locke

"Hollywood Homicide" 켈리 개릿 (국내 미출간)
Hollywood Homicide by Kellye Garrett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My Sister, the Serial Killer by Oyinkan Braithwaite

"말라바르 언덕의 과부들" 수자타 매시
The Widows of Malabar Hill by Sujata Massey

"미라클 크리크" 앤지 김
Miracle Creek by Angie Kim

"당신이 필요한 세계" 헬렌 필립스
The Need by Helen Phillips

"The Other Americans' 레일라 랄라미
The Other Americans by Laila Lalami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 루스 웨어
The Turn of the Key by Ruth Ware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Your House Will Pay by Steph Cha

"검은 황무지" S.A. 코스비
Blacktop Wasteland by S.A. Cosby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Djinn Patrol on the Purple Line by Deepa Anappara

"멕시칸 고딕" 실비아 모레노- 가르시아
Mexican Gothic by Silvia Moreno-Garcia

"When No One Is Watching" 앨리사 콜 (국내 미출간)
When No One Is Watching by Alyssa Cole

"Winter Counts" 데이비드 헤스카 완블리 웨이든 (국내 미출간)
Winter Counts by David Heska Wanbli Weiden

"Survivor's Guilt" 로빈 기글 (국매 미출간)
Survivor’s Guilt by Robyn Gigl

2020/12/10

묵시록의 여름 - 가사이 기요시 / 송태욱 : 별점 3점

묵시록의 여름 - 6점
가사이 기요시 지음, 송태욱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세 이단 카타리파에 대해 연구하던 야부키 가케루는 나디아와 함께 카타리파 최후의 전장이었던 몽세귀르로 향했다. 툴루즈 기업왕 로슈포르 가문이 카타리파 유적 발굴을 원조하고 있는데, 발굴을 맡은 샤를 실뱅 교수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로슈포르 가문의 산장 에스클라르몽드에 도착하자마자 일행은 기묘한 살인 사건을 목격했다. 독일인 발터 페스트가 에스클라르몽드 산장 자료실에서 살해된 사건이었다.
뒤이어 유력한 용의자였던 장 노디에가 성곽도시 카르카손 성벽 탑 안 밀실에서 살해당했고, 로슈포르의 아내 니콜 로슈포르와 로슈포르마저도 몽세귀르 절벽에서 추락사했다. 이 모든 사건에는 '요한 묵시록'의 계시처럼 여러가지 상징과 말의 죽음이 함께 펼쳐져 있었다.
로슈포르 가문의 외동딸 지젤의 연인 줄리앙은 탐정 역을 맡아 사건 해결에 뛰어들고, 야부키 가케루는 이를 바라보는데...

"사건을 어디까지나 현상으로, 즉 의미와 의미가 뒤얽힌 유기체적 전체로 보고, 거기에서 전체의 지렛대에 해당하는 것을 발견하는 거야." - 야부키 가케루 

"뭔가를 표현하는 것으로서의 상징은 뭔가를 은폐하기 위한 암호가 되는 거죠." - 줄리앙

가사이 기요시의 '현상학 탐정'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썸머 아포칼립스"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던 고전 명작으로 '문예춘추 선정 미스터리 100선' 에는 36위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일본 본격 미스터리 100선'에서는 무려 4위고요. 하지만 개정된 '주간문춘 선정 동서 미스터리 100'의 상위 50권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리뷰를 하면서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번역되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무려 5년이 지난 얼마 전에야 우연히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부끄럽네요. 구태여 변명하자면 제목이 제목이 한국어로 번역된 탓입니다. 전작 "바이바이 엔젤"은 원제 그대로 출간되었는데 말이죠.

하여튼, 작품은 명성답게 본격물로서는 완벽합니다. 트릭의 수준도 높고, 추리도 합리적이에요. 고전 본격물다운 불가능 범죄, 기묘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를 절묘하게 수습하고 있거든요. 특히 첫 번째, 두 번째 사건이 그러합니다.

첫 번째 사건 피해자 발터 페스트는 머리 앞 부분을 둔기에 맞아 살해당했습니다. 피해자가 창을 통해 들어온, 두 손으로 들어야 하는 흉기를 든 침입자를 봤을텐데 저항없이 죽음을 맞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자료실 창문은 이미 열려있었는데 범인은 왜 창문을 깼을까요?
그리고 흉기인 석구에는 요한이 부조되어 있었는데 이는 요한 묵시록 제 6장과 관계가 있다는게 밝혀집니다. 흰말 한 필 위에 사람이 활을 들고 있었다는 묵시록 내용에 따라 시체는 화살을 맞았으며 마굿간에 있는 흰 말도 죽은채 발견되지요. 범인이 이렇게 묵시록처럼 현장을 꾸민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런 수수께끼에 더해 사건 관계자들 모두 알리바이가 명확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집니다. 

두 번째 사건은 더 기괴합니다. 장 노디에는 잠긴 탑이라는 밀실 안에서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됩니다. 자살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상황으로요. 그런데 묵시록처럼 현장에는 큰 칼이 놓여 있었고 탑 밖에는 밤색 말이 죽어 있었습니다. 장 노디에가 자살했다면, 그가 자신의 자살 현장을 묵시록처럼 꾸밀 이유가 있었을까요?

세 번째 사건에서는 로슈포르의 아내 니콜이 절벽에서 추락하고, 현장에서 묵시록대로 죽은 검은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실뱅 교수가 도주한게 목격되었기 때문에 그가 범인일거라 여겨지게 됩니다. 야부키 가케루와 나디아의 조사로 실뱅 교수는 동기가 있다는게 밝혀지기도 했거든요. 그 외에 현장에 모인 관계자들 알리바이는 모두 확실했고요.

그러나 마지막 네 번째, 로슈포르 추락사 이후 줄리앙에 의해 진상은 드러납니다. 여기서 묵시록 효과를 위해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뿌렸지만, '말'에 주목해야 한다는 추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묵시록에 다른 연쇄 살인은 다른 작품들("장미의 이름", "사쿠라 신부의 사건 노트 - 고도관 살인 사건")에서도 써먹었던 식상한 소재인데, 묵시록은 본질을 흐리기 위한 연출일 뿐이었다는 아이디어는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말은 그냥 마굿간에서 죽여도 되는데, 두 번째, 세 번째 사건에서는 현장 근처에서 말이 죽은 채 발견되었죠. 줄리앙과 가케루는 말이 범행에 이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합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말의 힘을, 세 번째 사건에서는 속도를 이용한 거지요.

두 번째 사건에서 말의 힘은 밀실 안 피해자의 목을 밧줄로 걸어 밖에서 잡아 당기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사람은 빠져나갈 수는 없지만 창문은 있었거든요. 밖에서 피해자 노디에의 이름을 부르고, 피해자가 내다보기 위해 깊은 창에 머리를 내밀었을 때 창 주위에 바늘로 고정하여 둘러친 밧줄 올가미를 단번에 조여 살해한 겁니다.
이는 추리 애호가라면 친숙하실 유명한 장치 트릭입니다. "소년 탐정 김전일 26. 마신 유적 살인 사건"에서도 비슷한 트릭이 사용되었지요. 밖에서 이름을 부른건 아니고, 밀폐 공간에서 가스 냄새가 나도록 해서 피해자가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게 만들있다는 차이는 있지만요.
"명탐정 코난. 25 거미의 집"에서도 창 틀 테두리에 줄을 올가미처럼 장치하고 창에 소리가 나도록 해서 (BB탄 총을 이용) 피해자가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게 한 뒤, 밖에서 강한 힘으로 낚아채는 트릭이 사용되었는데 거의 모든 면에서 똑같아요. 시대에 걸맞게 '말'이 아니라 '자동차'를 이용하여 밧줄을 당겼고, 거미님 전설을 이야기에 녹여내었다는 사소한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이렇게 후대에서도 모방한다는건 그만큼 잘 고안된 트릭이라는 뜻이겠지요.

세 번째 사건에서는 말의 속도를 이용했습니다. 범인 로슈포르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현장으로 빠르게 이동할 때 타고 갔던 겁니다. 이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범행에서는 말이 현장에 있을 수 밖에 없어서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고요. 아주 그럴듯해요.

첫 번째 사건도 묵시록 효과를 빼고 사건 현장에만 주목하여 범인의 트릭을 풀어낸다는 추리를 통해 해결됩니다. 범행에 '투석기'가 사용되었다는 건데, 아주 기발했어요. 사건 현장 건너편 건물에서 동그랗고 무거운 석구를 이용하여 살인을 저지르는데 이만큼 적합한 흉기는 찾아보기 힘드니까요. 피해자가 멍하니 머리 앞 쪽에 석구를 맞은 이유도 설명되고요.
실제로 머리에 제대로 맞는다고 장담할 수 없어서 투석은 유리창을 깨기 위함이고, 진짜 흉기는 쇠뇌로 쏜 화살이라는 아이디어도 좋았습니다. 투석에 사용한 석구가 요한 묵시록을 암시하는 조각품이고, 쇠뇌와 활 역시 그러해서 묵시록처럼 현장을 꾸민 발상도 기가 막힙니다. 카타리파의 복수, 혹은 페스트에게 원한이 있는 실뱅 교수에게 혐의를 돌리기에 딱 맞는 연출이었어요.

사건과 함께 진행되는 카타리파의 숨겨진 보물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첫 번째 사건에서 없어진 문서는 13세기 알비주아 십자군의 지휘자로 카타리파를 잔혹하게 살육했던 생조르주가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에게 보냈던, 카타리파의 숨겨진 보물에 대한 서한일 거라고 설명됩니다. 생조르주는 서한을 보내기 직전 일어난 카르카손 폭동으로 도주하다가 암살당했고, 품 속의 서한은 생조르주가 암살당한 성당인 베네딕트회의 수도사가 은닉했었죠. 베네딕트회는 생조르주가 속했던 도미니크회와 대립했던 탓으로, 이후 책임 추궁이 두려워 이를 영원히 생세르낭 성당에 묻었던 겁니다. 콜베르가 편찬했던 도아트 문서에 생략된 부분은 이 생조르주 서한인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도아트 문서에는 기록되었던 걸까요? 콜베르는 실용주의자로 보물을 재정문제로 치부했었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생조르주 서한을 찾아 나섰죠. 결국 생세르낭 성당에서 서한을 발견하는데, 상황이 변했습니다. 처음 서한을 찾아나섰던 8년 전에는 콜베르는 푸케와 경쟁하던 상황이라 왕에게 보물을 바치고 싶었지만, 8년 뒤 콜베르가 왕궁에서 차지한 지위는 확고부동하게 되기에 그는 왕에게 보물을 바치지 않고,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감췄습니다. 그럴듯하죠?
그러나 콜베르 사후, 이 내용은 왕에게 누설되어 도아트 문서는 헌상되었고, 그 때 생조르주 서한 부분이 삭제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중 우연찮게 발굴된 생세르낭 문서, 그리고 생조르주의 서한을 향토 사학자 투르뉘가 손에 넣었지만, 그는 나치 독일군에게 체포되었고 문서는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 나치 독일 군인이 발터 페스트였고, 투르뉘의 유복자는 샤를 실뱅이었다는 관계도 여기서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숨겨진 보물의 위치가 기록된 서한을 13세기 십자군을 대표하는 도미니크 수도회, 17세기 부르봉 왕조의 절대주의를 대표하는 콜베르가, 20세기 유럽의 최고 권력이었던 나치 친위대 모두 손에 넣었는데 모두 암호를 해독하지 못해 발굴에 실패했다는건 말이 안되기는 합니다. 작품에서는 이들 중 독일군이 결국 매장된 보물을 발굴하는데 성공했다고 설명해 주는데, 보물은 카타리파의 상징인 거대한 황금 태양 십자가라고 합니다. 종전 후 미군이 입수한 뒤 사라져 버렸다고 하네요. "레이더스"와 동일한 결말입니다만, 시기적으로는 이 작품이 더 빠르니 원조격이라고 보아도 무방할거에요. 이 역시 나름대로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인 셈이죠.
줄리앙이 투석기 잔해를 버리는 행동, 절벽을 등산 장비를 이용하여 수직으로 타고 내려와 알리바이를 만든 것 등 세세한 부분도 잘 짜여져 있어서 만족스러웠어요.

카타리파 보물이 사건의 중요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덕분에 관련된 설명도 상세합니다. 묵시록도 마찬가지고요. 개인적으로는 묵시록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아주 좋았어요. 소네 신부를 통해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잘 설명되고 있거든요. 원래 유대인들, 그리스도교들 모두 묵시록을 열심히 믿었지만,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자 그리스도교는 더 믿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박해하던 로마가 멸망하고 신의 왕국이 오기를 고대하며 믿었는데, 로마 제국이 자기 나라가 되어버렸으니 그 멸망을 고대할 이유가 없어진거지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민족 종교로 유대인들만의 왕국을 기다렸기에 그리스도교와 다른 길을 갔고요. 그래서 묵시록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이단이 된 겁니다.

그리고 남프랑스 일대 풍광이 소개되는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나쁘지 않았어요. 파리에서 출발하여 피레네 산들에 둘러 싸여 있는 마을 몽세귀르와 몽세귀르 절벽에 위치한 카타리파 유적, 카타리파 최후의 전장인 성곽도시 카르카손, 항구 도시 마르세유를 거쳐 몽펠리에 옆 작은 도시 세트까지의 여정이 손에 잡힐듯 생생하게 펼쳐지거든요. 심지어 실존하는 카르카손 성곽도시의 탑 안에서 시체가 발견되기까지 하니 여정 미스터리로 보아도 손색없을 수준입니다.

여기까지 정리된 내용만 보면 본격물로 완벽하고, 보물 찾기 이야기도 잘 결합된 걸작으로 보이지요? 하지만 발표 이후 여러가지 리스트에 포함되었다가 지속적으로 순위가 하락한 이유도 분명합니다. 추리적으로 큰 헛점이 있을 뿐더러, 그 외의 단점도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추리적인 큰 헛점은 여러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로슈포르가 범행을 저지른 동기입니다. 노디에가 자신을 협박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한 들, 남프랑스 재계의 지배자가 눈 하나 깜빡할 이유가 있을까요? 게다가 니콜이 실뱅과 불륜을 저지른다고 한 들, 이는 니콜의 잘못입니다. 로슈포르가 니콜의 아버지 피에르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요소이지 피에르와의 동맹이 깨질 위험 요소는 아니에요. 설령 위협을 느꼈다 한 들, 재계의 제왕이 직접 복잡한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범행의 순서입니다. 발터 페스트 살해는 이어지는 진짜 살인 목적을 흐리기 위함이라는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를 살해함으로써 생조르주 서한이 노디에의 손에 들어간건 순전히 우연입니다. 게다가 노디에를 살해한 두 번째 살인은 공들여 만든 밀실 트릭으로 경찰도 자살로 생각했을 정도인데 세 번째, 네 번째 사건을 계속 일으킨다면 밀실을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순서상으로는 생조르주 서한을 어떻게든 노디에게 전해주고 페스트를 죽인 뒤, 니콜을 죽이고 노디에를 밀실에서 죽여서 자살로 위장했어야 합니다. 지금의 이야기는 트릭을 위한 범행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마지막에 로슈포르가 줄리앙과 격투를 벌이다가 절벽에서 떨어진다는 결말도 시시했고요.

이런 추리적인 문제에 더해, 개인적으로 더 큰 문제라 생각하는건 쓸데없는 철학적, 종교적 이야기와 함께 테러 조직 '붉은 죽음'과 러시아인 니콜라이 일리치의 존재가 이야기에 깊숙히 개입해 있다는 점입니다. 탐정이라 생각했던 줄리앙이 사실은 붉은 죽음의 조직원으로 로슈포르 가문의 재력을 이용하여 원자력 제국을 만드려고 한다는게 진상이었다는건 솔직히 헛웃음만 나오더라고요.

시몬이라던가 야부키 가케루 입을 통해서 이야기되는 종교적, 철학적 담론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탐정 역할도 줄리앙이 담당하고 있어서 야부키 가케루는 이런 쓰잘데 없는 이야기를 위해 존재하는 느낌이 강하고요. 읽다보면 두 번째 사건에서 야부키 가케루는 진상을 파악한걸로 묘사되는데, 희생자가 더 나올 때까지 손도 쓰지 않습니다. 줄리앙이야 로슈포르 부부가 죽어야 유산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라도 있지, 야부키 가케루가 사건을 그냥 지켜만 볼 이유는 없어요.
이렇게 무의미하게 분량을 잡아먹느니 줄리앙을 정의의 명탐정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400페이지 정도로 줄이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이래서야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라고 부르기 창피할 정도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트릭은 멋집니다. 역사적 소재를 작품에 잘 끌고 들어왔다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요. 그런데 지금 읽기에는 좀 애매하고, 지루하며 단점도 명확한 편입니다. 책 뒤 해설을 보니 역자분께서 시리즈 최고작이라는 "철학자의 밀실"이 출간될 수 있도록 잘 팔렸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적고 계신데, 시리즈 출간이 더 이어지지는 않은 듯 싶군요. 약간은 아쉽지만 당연한 결과에요. 발표된지 거의 40여년이 지난 지금 읽기에는 한계가 명확했던 시리즈였습니다, 저와 같은 고전 본격물 팬이 아니라면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04/13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 별점 4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상 - 8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마쓰모토 세이초 선생  (이후 "선생" 생략) 의 계승자이자 애호가로도 유명한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 (이후 "여사" 생략) 가 직접 선정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야 뭐 추리 애호가는 누구나 알만한 거장이죠. "일본 사회파"라는 쟝르의 창시자이기도 하고 말이죠. 제가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점과 선" 이었고, 그 이후 하서 출판사 판본을 통해 "제로의 촛점", "모래그릇" 등을 차례로 읽었고 그 이후 비교적 후기작품인 "나비성"이나 "적색등" 같은 작품까지, 국내 출간된 장편은 거진 다 읽어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명성과 작업량에 비해 국내 출간된 작품이 수가 적고, 또 단편은 극히 드물어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친절한 해설과 짤막한 감상,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이 일정한 기준으로 선정되어 실려있는 풍부한 구성이라 읽고난 후에도 만족이 큰 단편집이었습니다. 거장의 방대하고 어마어마한 작품세계를 알짜배기만 쏙쏙 뽑아 읽는 기획인지라 나름 공부도 된 것 같아 좋더군요.

이 단편 컬렉션 상권은 전부해서 4개의 큰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제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단 제 1장인 "거장의 출발점" 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초기작으로 추리소설은 아닌 순문학 작품 2편이 실려 있습니다. 특히 데뷰작이자 아쿠타카와 상 수상작이라는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은 가슴이 먹먹해 지는 이야기 구성은 물론 문체나 자료 조사 등 모든 부분에서 역시나 대단함을 느끼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어느 창녀의 죽음" 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두번째 작품인 "공갈자" 역시 좋은 작품이고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감이 있고 탈옥에 관련된 내용이 반전같이 등장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너무 생각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별로 상상의 여지가 없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뭐... 어차피 주제에 맞게 초기작 중에서 선정한 것이니 제 기대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었겠죠. 추리물이 아니기도 하니까요.

2번째 장인 "My Favorite"는 미야베 미유키가 마음에 들어한 추리소설 4편이 실려 있습니다. "사화파"의 창시자답게 본격 정통 추리물들은 아니지만 충분히 설득력있고 지금 읽어도 그럴 듯한 트릭과 설정들이 등장하는, 그야말로 거장의 아우라를 느끼기에 충분한 좋은 작품들이 실려 있네요.
제일 먼저 등장하는 작품은 굉장히 신선하고 독특할 뿐 아니라 지금 읽어도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일 년 반만 기다려"입니다. 이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도 해설에서 절찬하고 있는데 확실히 찬사가 아깝지 않은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주로 1인칭으로 그려지는 전개도 독특했고 말이죠. 유사한 설정의 작품인 다카키 아키미쓰의 "살의"와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그리고 이어지는, 아주 단순한 단서에서 비롯되는 무서운 진상이라는 주제를 잘 표현한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 도 좋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작품이 저는 "일 년 반만 기다려" 보다도 더 낫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로 사소한 부분에서 불거지는 추리의 과정이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설득력 역시 충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의 전체 단편을 통틀어 유일하게 "탐정" 역할이 등장하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이런 고전적인 요소를 무척 좋아라 하니까요.
세번째 작품인 "이외지리"의 경우는 섬뜩한 맛이 일품인 단편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에도 시절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소재로 하였기에 미야베 미유키의 "혼죠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느낌도 살짝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요소는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순전히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에도 취향이 반영된 선정이 아닐까 의심되기는 합니다...
4번째 작품인 역사추리물 "삭제의 복원" 의 경우에는 1장에 실려있던 "어느 <고쿠라 일기>전"과 연결되는 소재, 즉 일본의 문호라는 오가이의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치는 형식의 작품인데 역사추리물로의 완성도는 높지만, 오가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흥미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쉽더군요. 소재에 대한 흥미가 제로인지라... 만약 따로 출간되었더라면 구태여 찾아 읽지 않았을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오가이"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가 생긴 것 정도가 수확이네요.

3번째 장인 "노래가 들린다, 그림이 보인다" 는 제목 그대로 노래와 그림에 대한 추리 단편 두편이 실려있습니다. 노래와 그림을 소재로 추리소설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일종의 모범 답안 같은 작품들이랄까요?
"수사권외의 조건"은 과거의 히트곡을 테마로 한 단편으로, 누구나 아는 히트곡이지만 시간은 좀 흐른, 그래서 그 노래가 인상에 깊이 남는 상황을 잘 짚어낸 작품이었습니다. 90년대 후반에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듀엣으로 흥얼거리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확실히 엄청 튈것 같기는 합니다.^^
두번째 단편인 "진위의 숲"은 길이가 제법 긴, 단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작품으로 그림 위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결말이 좀 시시하고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추리적 요소가 부족한, 범죄-사기물이긴 하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작가의 새로운 면을 접한 것 같아 굉장히 신선하기도 했고 워낙에 소재가 독특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갤러리 페이크"의 한 에피소드를 읽는 기분이었달까요? 그러고보니 이 작품의 주인공도 엘리트지만 현재 일본 미술계에서 왕따가 되어버렸다는 측면에서 후지타 레이지와 왠지 겹쳐보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인 제 4장 "‘일본의 검은 안개’는 걷혔는가" 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많은 논픽션 시리즈 작품들 중에서 쇼와사 발굴이라는 주제의 2.26 사건 (군부 쿠데타 미수 사건) 관련 글, 그리고 전후 일본의 이른바 "추방"과 "레드퍼지 (좌익 세력 말살) 를 다룬 글, 이렇게 두편의 논픽션을 골라서 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별 재미가 없어서 대충 읽어버렸네요.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애시당초 별 관심 없는 분야였거든요. "추방과 레드퍼지" 편은 해방 직후 우리나라 상황과 오버랩되는 재미는 좀 있었지만 뭐 그뿐이었습니다. 다양한 쟝르에 손을 댄 "거장" 의 대표작을 엄선했다는 작품집 취지 탓에 당연히 포함된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논픽션 대신 추리단편을 더 실어주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 같아요. 마쓰모토 세이초의 히트 논픽션인 "일본의 검은 안개" 라는 시리즈 물 제목에서 "검은 안개"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정도만 새롭게 다가온 정도입니다.

덧붙여, 4개의 주제가 모두 끝난 뒷부분에는 마쓰모토 세이초와 같이 일했던 편집자 3인의 짤막한 추억담이 실려있습니다. 일종의 부록같은 느낌인데 거장이 편집자에게 시키는 "자료조사" 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더군요. 앞서 말했던 "고증"과 "자료조사" 가 중요한 이야기들의 방대하고 치밀한 조사 내용을 볼 때. 편집자들의 노고가 느껴져 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입니다. 지금이야 인터넷 등으로 업무가 좀 편해졌을 것 같은데 60~70년대의 자료조사는 정말 발로 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을테니... 편집자들의 고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또 이렇게 편집자를 부려먹을(?) 수 있는 "거장"의 "당당한 작업 태도" 는 부러울 따름이고요. 쩝.

결론적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기획과 구성은 물론 선정된 작품 거의 대부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죠. 친절한 해설과 미야베 미유키의 짤막한 감상도 무척 좋았기에 이어질 다음 권들도 기대가 아주 큽니다. 책의 디자인도 그럴듯 했고 말이죠. 3권이 연달아 꽂혀 있는 책장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네요^^ 개인적 베스트는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 를 뽑겠습니다.

PS :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표작들의 다양한 영상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구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