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1/12/19

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 - 마틴 에드워즈 / 성소희 : 별점 2.5점

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 - 6점 마틴 에드워즈 지음, 성소희 옮김/시그마북스

영국 국립 도서관에서 발간한 고전 범죄소설 시리즈를 읽을 때 참고할 안내서. 1901년에서 1950년 사이에 출간된 소설 중 범죄 소설에 초점을 맞춰 모두 102편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기별, 장르별, 특징별로 상세하게 범주를 구분하고, 범주별로 왜 그 작품을 선정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덕분에 소개된 작품만 읽어도, 고전 추리, 범죄 소설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황금기를 지나게 되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통 고전 본격물'을 일컫는, 이른바 '페어플레이 미스터리'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지요. 저자는 1차대전 이후 전쟁에 지친 대중이 현실 도피와 함께 흥미진진한 게임을 원했기 때문에 이 분야가 탄생했다고 설명합니다. 점점 소설 속 탐정과 지혜를 겨루는 작품이 많아졌으며, 그 결과 오락거리로 즐기는 가벼운 문학의 새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이른바 범죄 소설의 '황금기'가 바로 이 시기인겁니다. 복잡한 퍼즐, 이야기 속 단서 삽입, 독자를 현혹시키는 여러가지 장치들을 선보이기 위해 장편 형식이 유행하게 된 것도 필연이었고요.
또 불가능 범죄 미스터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단편 형식이 가장 잘 맞는다는 주장도 기억에 남습니다. 독자가 불신을 유예하는 시간, 즉 사실주의에 입각한 비판을 멈춰놓는 시간이 짧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인데, 저 역시 동의합니다 나중에 리뷰를 쓸 때는 "생각해보니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었다'고는 해도, 최소한 읽는 동안에는 그런 생각을 할 틈 없이 두뇌 게임만을 온전히 즐기려면 이야기가 길면 안 되겠지요.

이런 추리소설 통사적인 측면 말고도, 작품별 소개글도 수준이 높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진짜 흥미를 자아내는 선까지만 알려주는, 스포일러가 전혀 없는 내용 요약도 일품이며 소개된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도 충실히 수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상화 버젼에 대한 정보가 아주 디테일해요. 영화는 물론, TV 시리즈까지 모두 소개하고 있으며, 심지어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움직이는 장난감 가게>>에서, 통제 불능 상태의 로터리와 마주치는 두 번째 추격 장면은 히치콕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각색한 영화에 활용했다는 이야기까지 소개될 정도거든요.
비슷하거나 영향을 받은 작품에 대한 소개 역시 그 방대함과 깊이가 남다른 수준이며 그 외 여러가지 토막 정보들도 충실합니다. 바로네스 오르치의 <<미스 엘리엇 사건>>은 1915년 어니스트 섀클턴 경이 남극 탐험을 떠날 때 챙겨갔던 책이었다던가, 크리스티아나 브랜드가 1979년, <<독 초콜릿 사건>> 재판 서문을 쓰면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일곱 번째 방법을 발표했다던가, 우드소프의 1932년 데뷔작 <<사립학교 살인사건>>은, 1934년 미국 사립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과 소름끼칠 정도로 닮아있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그러합니다. 1931년 발표되었던 에블린 엘더의 <<흑백 살인>>은 주인공 샘 호더가 그린 그림이, 프랜시스 비딩의 1935년 작 <<노리치의 피해자들>>에서는 용의자들 사진이 중요 단서로 사용되었다는 등, 추리 소설 관련된 아이디어가 이미 20세기 초엽에 정립되었다는 정보들도 재미있었고요. 읽으면서 저자의 추리, 범죄 소설 분야에 대한 방대하면서 해박한 지식에는 감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추리 소설가들이 작품을 썼던 의도들도 볼만했던 정보입니다. A.E.W 메이슨이 <<독화살의 집>>을 쓸 때 목표로 했던 건, 미스터리가 모두 해결된 후 추가 설명해야 하는 내용을 가능한 없애겠다는 것 처럼요. 페어플레이 추리 소설의 초창기 표본인 <<밤중에>>를 쓴 고렐 경의 목표는 모든 필수적인 정보를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하고요. 고렐 경의 이 작품에서 건물 평면도, 지도 등이 처음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A.A. 밀튼은 추리 소설은 이해하기 쉬운 말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 탐정이 독자보다 특별한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는데, 과연 곰돌이 푸를 쓴 작가 답네요. 가장 마음에 든 건 마이클 이네스의 말이었습니다. 그는 "추리 소설은 어쨌거나 순전한 오락물이니 독자를 당황하게 할 뿐만 아니라 즐겁게 해 주겠다는 야망을 저버려서는 안된다"는데 맞는 말입니다!
빅터 로렌조 화이트처치가 <<다이애나 웅덩이의 범죄>>를 쓸 때, 본인 스스로 왜 범죄가 일어났고 누가 범인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창작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자 뿐 아니라 작가조차도 의미를 모르는 단서들을 살펴보며 수사를 하고 글을 썼다는 건데, 발상이 참 독특했어요.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안내서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내에 따를 수 없다는 점입니다. 국내 소개된 작품이 턱없이 부족한 탓입니다. 총 102편 중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래의 29편에 불과합니다. 절판된 책도 포함한 것으로, 실제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은 그보다도 훨씬 적을 거에요. 이래서야 이 책을 읽는 의미가 많이 퇴색할 수 밖에 없지요.

1. 『배스커빌 가의 사냥개』 - 아서 코난 도일
2. 『네 명의 의인』 - 에드거 월리스
3. 『브라운 신부의 순진』 - G.K. 체스터턴
4. 『오시리스의 눈』 - R. 오스틴 프리먼
5. 『하숙인』 - 마리 벨록 로운즈
6.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 어니스트 브래머
7. 『트렌트 마지막 사건』 - E.C. 벤틀리
8. 『』 -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9. 『붉은 저택의 비밀』 - A.A. 밀른
10.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11. 『증인이 너무 많다』 - 도로시 L. 세이어즈
12. 『독 초콜릿 사건』 - 앤서니 버클리
13. 『목사관 살인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14.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15.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 이든 필포츠
16. 『녹색은 위험』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7. 『시행착오』 - 앤서니 버클리
18. 『완벽한 살인사건』 - 크리스토퍼 부시
19. 『ABC 살인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20. 『막다른 사건 부서』 - 로이 비커스
21. 『살의』 - 프랜시스 아일즈
22.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 조세핀 테이
23. 『데인 가의 저주』 - 대실 해밋
24. 『재앙의 거리』 - 엘러리 퀸
25. 『붉은 오른손』 -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
26.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27. 『수상한 라트비아인』 - 조르주 심농
28.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 H. 부스토스 도메크
29. 『야수는 죽어야 한다』 - 니콜라스 블레이크

* 자유 추리문고에서 출간된 <<포튠을 불러라>>는 이 책에서 소개한 『포춘 씨, 부탁입니다』 와는 다른 단편집으로 생각됩니다. 언급되고 있는 <<작은 집>>이라는 작품이 포함되어 있으나 그 외 수록작은 다르거든요. 그래서 정식으로 소개된 걸로 치지는 않겠습니다.

게다가 저는 소개된 작품은 한 3~4권 빼고 전부 읽었기에, 별 의미없는 소개였던 셈입니다. 추리 소설 역사에 대한 자료적 가치는 높지만, 이런 이유로 감점하여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