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외 지음, 권영주 옮김/북하우스 |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아르헨티나 추리소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보르헤스"가 공동 저자의 한명이라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더욱 유명하지 않을까 싶네요. 출간된지는 꽤 되었지만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퀸의 정원"에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고나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몇주동안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퀸의 정원을 통해 알게되어 구입한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죠. 퀸의 정원 분류는 "르네상스", 딱지는 "H.Q.R" 입니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제목 그대로 여섯편의 단편이 실린 옴니버스 단편집입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전직 이발사 죄수 "이시드로 파로디"가 탐정역으로, 여러 방문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전형적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그런데 찾아오는 방문객들 모두가 자기 중심적인 속물들인데다가 멍청하기가 서울역에 그지 없을뿐 아니라, 겉멋만 가득차서 외국어를 섞어가며 장황하게 늘어놓는게 정도가 지나쳐서 한마디로 짜증나는 놈들이라는 것이 문젭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한없이 간단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짜증나는 속물들의 거지같은 말주변때문에 쓸데없이 복잡해지거든요.
예를 들어 두번째 단편인 "골리아드킨의 밤" 같은 경우 유명 배우 몬테네그로가 자신이 뒤집어쓴 범죄에 대한 해결을 이시드로 파로디에게 요청하며 팬아메리칸 특급에서 있었던 며칠을 이야기하는데, 이 작자의 설명이 너무 자기 중심적이라 중요한 단서를 독자가 포착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설명하면 "수상쩍은 보석상과 그 주변의 더욱 수상한 3명의 용의자" 일 뿐인데 이러한 관계가 몬테네그로라는 화자에 의해 불필요한 세부묘사와 더불어 대폭 각색되어 묘사되는 탓에, 추리는 별게 없는데 이야기만 지루하게 늘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황한 묘사만 견뎌낸다면 작품 자체는 특이하고 괜찮긴 합니다. 개인화되어 각색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요소일 수 있으니까요. 동기는 변변찮지만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마술 트릭이 등장하는 "황도십이궁"은 첫 단편으로서 충분히 효과적인 작품이었고, 치밀한 동기에 더하여 서사적인 내용과 비교적 공정한 단서 제공이 돋보이는 "산자코모의 숨은 뜻"은 정말 파격적인 발상이 내포된 좋은 작품이었어요. 발상의 전환을 노리는 "타데오 리마르도의 희생자"와 합리적 전개의 "타이안의 기나긴 탐색" 역시 괜찮았고요.
무엇보다도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제 3세계 추리문학이라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 외에도 상세한 주석이 포함된 번역과 책의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고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조금은 스테레오 타입일 수 있는 추리문학에 식상하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PS : 일본에서는 원저자인 "부스토크 도메크" 이름으로 책이 출간되었는데, 국내에서도 아무리 보르헤스의 문명이 높다고 하더라도 원저자 이름으로 책이 나오는 것이 온당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가들의 의도를 따라 줬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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