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경찰의 밤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바움 |
먼저 단점부터 이야기하죠. 일단 이야기의 얼개가 대부분 허술했습니다. 사건에 우연이 많이 작용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그다지 정교하지 못하고, 여러모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교통사고라는 주제에 있어 사회고발적인 메시지를 너무 직접적으로 강하게 드러내는 것도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련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초기작이기 때문이겠죠?
보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먼저 우연에 의해 사건이 마무리되는 단편은 "천사의 귀"와 "버리지 마세요"를 들 수 있습니다.
첫번째 단편 "천사의 귀"는 장님소녀가 특이한 재능을 이용하여 교통사고의 진짜 가해자를 밝힌다는 발상은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작중에 이야기되듯 신호등 표시 시간이 변경되었는데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했으며 이러한 소녀의 노력과 관계없이 너무나 우연한 제 3자의 비디오 촬영이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는 것에서 정교한 느낌을 받기 어려웠어요.
다섯번째 단편 "버리지 마세요" 역시 우연에 의해 사건이 마무리되는 단편이죠. 나름 치밀한 살인극이 등장하기는 하는데, 이 살인극이 도로에 버린 캔 깡통과 연결되는 과정에서 결국 우연이 개입한다는 것은 너무 안일한 결말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피해자인 카메라맨이 범인의 범행을 눈치채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줄 알았는데 아예 다르게 풀어버리고 결말은 우연에 의해 진상이 드러난다는 것이라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살인극 자체는 괜찮았던 만큼 아쉬움이 크네요.
그리고 설득력 부족은 "분리대"와 "불법주차"라는 단편에서 크게 느껴졌습니다. 두 작품모두 사회고발적 메시지는 두드러지나 동기와 결말에 있어 설득력이 약했거든요.
예컨데 두번째 단편 "분리대"는 독자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는 아줌마 캐릭터 덕에 무단횡단에 대한 사회고발적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에는 성공하고는 있지만, 결말이 개운치 못합니다. 경찰의 약간의 조사만으로도 복수를 위한 자해라는건 쉽게 밝혀질테니까요.
네번째 단편 "불법주차"는 불법주차 차량으로 제시간에 병원에 가지 못해 죽은 아이의 복수라는 이야기로 역시나 사회고발적 메시지는 확실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작위적이라 별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이래서야 "네비게이션이 부정확한 길을 알려줘서 그것때문에 손해본 사람이 복수한다" 라는 이야기와 다를것도 없잖아요. 뭐 나름 재미있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단점만 있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장점도 명확하죠. 위에 예를 든 단편들도 그렇지만 기본적인 재미를 갖추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한번에 읽게 만드는 흡입력은 대단하니까요. 또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에 값하는 추리적인 디테일도 잘 살아 있고 말이죠.
특히 세번째 단편 "위험한 초보운전"같은 경우 사건을 조작하는 과정이 치밀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외려 이 단편은 동기부분에서 다른 단편들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사건의 결말까지 범인이 의도한대로 정확하게 흘러가는 과정이 잘 짜여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단편 "거울 속에서"는 우발적 사고를 토대로 한 공정한 추리 수사물로 우연과 작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정통 수사물이라 할 수 있죠.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트릭이었고 결말이 미적지근하다는 것은 아쉽습니다만 알콩달콩한 러브라인의 등장이라던가 전체적으로 감도는 따뜻한 느낌 등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징도 잘 살아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을 매기자면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장단점이 명확한 만큼 2.5점 주겠습니다. 초기작인것을 감안한다면 너무 박한 평가일까요?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한번쯤 봐도 실망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은 충분히 보여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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