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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2

탐정영화 - 아비코 다케마루 / 권일영 : 별점 3점

탐정영화 - 6점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포레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사 FMW의 대표이자 귀재인 영화감독 오야나기가 촬영 중이던 최고의 추리 영화 결말 촬영을 앞두고 실종되었다. 영화사 직원과 스태프, 그리고 투자까지 한 여섯 명의 배우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고, 감독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감독이 찍어놓은 96분 분량의 필름을 전제로 범인을 추리해 영화를 완성하기로 결정했다. 여섯 명의 배우와 세 명의 조감독, 그 밖의 스태프들은 십 분 남짓한 영화의 결말을 찍기 위해 시나리오 콘테스트를 열고, 누가 범인이어야 가장 그럴듯한 영화가 될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출된 시나리오들의 결함을 지적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시나리오를 선정하고 영화 촬영을 마치는데...

아비코 다케마루의 장편소설. 데뷔 이듬해에 썼다는 초기작입니다.

위의 줄거리 소개에서처럼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궁지에 몰린 스탭들이 스스로 결말을 짜내는 과정에서 출연자와 제작진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추리가 펼쳐지는 전개가 인상적입니다. 동호인들끼리의 추리 게임 같은 느낌도 전해줍니다. 결말 직전까지만 감상하고 그것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낸다는 점에서요. 이런 점은 "독 초콜릿 사건"의 판박이기도 합니다. 미완성 영화의 결말을 추리해야 한다는 설정은 빙과 시리즈인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와 같고요. 하지만 읽다 보니 전개와 과정은 "허무에의 제물" 같은 안티 미스터리 느낌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이런 결말은 어떤가요?"라는 결말이 이어지는 "5인의 탐정가"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미스터리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이니 광의의 의미로 볼때에는 작가 후기에 쓰여진 대로 메타 미스터리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떠오르지만 다행히 작품의 독특함을 유지하고 있는데, "영화"라는 소재에 굉장히 충실한 덕분입니다. 초반에 화자인 다치하라(나)가 출연진들과 이야기하면서 영화에 사용된 서술트릭에 대해 설을 푸는 장면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영화에 관련된 정보들이 곳곳에 삽입되는게 아주 그럴 듯 했습니다.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썼구나 싶을 정도였어요. 

추리적으로도 여러 관점에서의 재미있는 트릭들이 등장해서 풍성함을 전해준다는 설정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더해 진짜 트릭인 극적인 서술트릭 - 첫 장면은 시점적으로는 영화 속 내용이 모두 흘러간 다음의 일이다 - 은 단연코 기발했기 때문에 만족스럽습니다. 소설로도 가능하겠지만, '첫 장면과 똑같은 화면에서 이야기가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라는 장르에 아주 특화되어 있는 트릭이라 다른 데에서는 흉내내기도 힘들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그 외에도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에서 문제로 지적했던, 결말을 창작해내야 하는 상황의 설득력이 높았던 것도 좋았습니다. 출연자들이 결말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설득력이 높았어요. 자기가 "범인"이어야 영화에서의 비중이 높아지니 어떻게는 자기를 범인으로 만드는 각본을 들고 온다는 것인데 와 닿을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작품 속 추리는 진상이라고 부를 것이 없는, 픽션의 영역이라는 문제는 큽니다. 출연진이나 제작진 누구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찍더라도 작중에 표현된 대로 "가장 그럴듯"하면 되는 것일 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야부이 센조가 밖에서 사기누마 준코의 방문을 잠그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고요.

그리고 감독의 의도대로 편집, 완성된 결과물은 앞서 언급한대로 트릭 자체는 기발하나 그닥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습니다. 외부에서 모든 제작 과정을 지켜본 "독자"라면 수긍할만 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 입장이라면 반쯤은 반칙이라 여길 수도 있어 보입니다. 제가 관객이라면 사기누마 준코가 죽는 시점에서 다쓰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 같거든요. 이렇게 무리한 서술 트릭보다는 주인공 다치하라(나)의 아이디어나 배우 야부우치 젠조의 아이디어가 더 낫지 않나 싶었습니다.

아울러 감독의 실종이라는 상황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픽션이기 때문에 가능했지 감독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최소한 조감독 한 명 정도는 사기니의 의도를 알려줘서 의도대로 움직이게끔 하는 공작이 추가로 설명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앞서 말씀드린 다양한 추리가 펼쳐지게 만드는 아이디어는 좋았으며 작가의 초기작답게 젊은 청춘들의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는 점도 좋았고요. 그야말로 좋았던 시절의 행복하고 따스한 이야기입니다. 추리소설 입문자분들께 추천하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이런 작품을 쓴 작가가 나중에 "살육에 이르는 병"을 쓰게 된다니 믿어지지 않는군요.

2005/11/16

호숫가 살인사건 (Lakeside Murder Case, 2003) - 아오야마 신지 : 별점 2.5점


나미키 순스케는 명문 수문관 중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하는 의붓딸 때문에 별거중인 아내와 함께 수문관 중학교 입시 대책 합숙에 참가한다. 합숙 첫날 순스케와 불륜관계인 에리코가 찾아오고 순스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에리코는 시체로 발견되며 아내 미나코가 살해했다고 자백한다.
자식들의 합격을 위해 은밀히 시체를 처리하기로 결심한 다른 학부모들에 휩쓸려 순스케도 시체 은닉 작업을 돕게 되고 그 와중에 에리코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서서히 깨닫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몇번 포스트에 썼지만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책을 구입할 생각은 없지만 이 작품은 워낙 평이 좋길래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화를 구해보게 되었네요.

보통 추리소설을 영화화하면 원작을 읽지 않은 경우 이해하기 힘든 영화가 되어버리거나 아니면 복선이나 행간을 놓치는 썰렁한 작품이 되기 십상이고, 실제로 그러한 작품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만 보더라도 이야기의 맥락과 주제의식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지나친 교육열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한데,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내용과 그 주제, 메시지를 영화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한 폐쇄적인 집단 안의 구성원 모두가 피해자이고 공범인 상황에서의 딜레마를 잘 다루고 있는 점 역시 좋습니다. 초중반에는 원사이드한 전개, 즉 주인공 나미키 순스케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이 부가되는 상황으로 몰아가지만 반전을 통해 이 딜레마를 잘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딜레마가 설정과 작품의 주제의식에 더없이 잘 부합되고 있어서 영화의 힘이 쭉 유지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기대보다는 추리적으로 그다지 특기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2시간짜리 영화에서 살인사건은 30분이 지난다음에나 발생하고 처음에는 단순한 도서추리 방식으로 전개되어 어떻게 하면 시체를 확실하게 인멸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촛점이 맞춰지거든요. (이 부분은 대니 보일 감독의 "Shallow Grave"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또한 인멸 작업은 그런대로 재미있게 다루기는 했지만 허술한 부분도 많고요. 얼굴을 훼손하는 장면의 정도가 미흡하다던가, 호텔 체크 아웃때 호텔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켜 놓는 실수 등이 눈에 띄네요.
그나마 후반부에서 몇가지 단서를 통해 주인공 나미키 순스케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약간이나마 추리소설같은 반전이 등장하긴 하지만 무거운 주제의식에 함몰되어 반전으로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의 메시지로 보이기 때문에 그 충격이나 추리적인 쾌감은 많이 떨어집니다.

아울러 마지막의 엔딩 크레딧 직전의 장면은 섬찟하면서도 또다른 복선이긴 한데 너무 공포영화 스타일로 영화를 몰아가는 것은 별로였어요. 이 장면때문에 영화의 성격이 애매모호해지거든요. 미나코의 일종의 "예지력" 역시 영화의 성격을 불분명하게 하는 불필요한 묘사였다 생각되고요.

그래도 영화보다 원작 소설의 평이 좋은 만큼 이번에는 편견없이 원작 소설을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뭐 영화도 평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2시간의 상영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았던 만큼 한번 볼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추리" 영화를 기대한다면 약간 실망할 지도 모르지만 저는 꽤 괜찮았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3/12/22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5점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 "여제"로 불리우는 2학년 선배 이리스가 문집 제작으로 바쁜 고전부에 사건을 의뢰했다. 미완성된 비디오 추리 영화를 보고 실제 진상이 무엇인지 추리해 달라는 의뢰였다. 고전부는 학교 축제용으로 해당 비디오 영화를 촬영한 2학년 F반 선배들 중 몇 명을 만났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진상을 추리해 나가는데...

바로 직전에 읽은, "빙과"에 이어지는 고전부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전작과 가장 큰 차이점은 장편이라는 점입니다. 또 일상계물이지만 본격 추리물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독특한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바로 줄거리 요약에서 소개한, 축제 때 상영될 미완성 비디오 영화의 트릭과 결말을 추리한다는 의뢰입니다. 덕분에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등장하는 작품임에도 무려 "밀실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 펼쳐집니다! 이렇게 일상계이면서도 밀실 추리물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 하나 때문에 이래저래 작품이 사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오레키 호타로가 추리한 '만인의 사각'을 비롯하여, 비디오 영화를 촬영한 2학년 F반 학생들의 의견이 '후루오카 폐촌 살인 사건', '불가시의 침입' 'bloody beast' 순서로 연이어 펼쳐지는건 작품 후기에 언급되듯 다수의 탐정이 등장하여 자신의 추리를 피력하는 작품인 "독 초콜릿 사건"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는데, 정통 본격 스타일의 '후루오카 폐촌 살인 사건'과 '불가시의 침입'은 물론, 오컬트 계열인 'bloody beast', 그리고 서술 트릭물인 '만인의 사각'까지 모두 추리적으로 즐길 거리가 많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지막 한 번의 반전이 더 있는 것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바로 고전부에 의뢰한 이유 - 각본을 쓴 학생이 병으로 쓰러졌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결말에 대한 추리가 필요했다 - 가 이해 불가인 탓입니다. 그래봤자 중병도 아닌데, 왜 직접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마지막까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정 추리가 필요했다면, 다른 동료 학생 추리 중 아무거나 하나를 사용한다고 큰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마지막에 밝혀진 진상 역시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완성된 영화가 아니라서 한 번 더 찍어야 했다면, 전반부 시체 발견 장면을 수정하는데 딱히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요... 또 오레키 호타로가 다른 사람들의 추리를 부정하던 것과 다르게, 자신의 추리에 존재하는 큰 구멍(자일의 존재)을 간과하는 것도 독자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솔직히 "고전부 시리즈"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올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지탄다 에루가 사건을 물어오기는 하지만, 이후에는 고전부와 관계없는 영상 제작팀원들의 추리와 오레키 호타로의 추리가 펼쳐질 뿐이거든요. 오레키 이외의 고전부원들에 대한 부가 설명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초반 이후에 오레키 호타로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리스 선배라는 새로운 캐릭터입니다. 이래서야 별개의 스탠드얼론 작품으로 발표한다 하더라도 무방했을 것 같아요. 오레키 호타로가 남들보다 잘하는 일을 찾아내어 의욕을 불태운다는 청춘 성장기스러운 전개도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너무 전형적이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감점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가벼운 일상계와 본격 추리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점에서는 추천드립니다. 특히 추리에 갓 입문하는 분들께 적합한 작품입니다.

덧붙이자면, 고등학생들의 학교 축제를 위한 추리극이 등장하는 일상계라는 점에서 "Q.E.D 35권"과 비교해서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와 연극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요.

2009/07/24

김시광의 공포영화관 - 김시광 : 별점 3점

김시광의 공포 영화관 - 6점
김시광 지음/장서가

이글루스에서 arborday라는 아이디로 영화에 대한, 특히 공포영화에 대한 다양한 리뷰를 남겼던 김시광님의 공포영화 리뷰 모음집입니다. (지금은 이사가셨지만요) 리뷰만 있는 것은 아니고 간단한 공포영화의 역사 등 여러가지 정보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요. 이번 렛츠리뷰를 통해 운좋게 당첨되어 읽을 수 있게 된 책입니다. 관계자 여러분들께 리뷰에 앞서 먼저 감사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김시광님과 그의 공포영화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풀어나간 Part 1, 그리고 주제별로 11개의 목차로 나눠 각 목차별 주요 공포영화를 소개하는 Part 2, 그리고 그 외의 간략한 정보를 다룬 Horror Tip 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 이 책의 핵심은 흡혈귀, 좀비, 몬스터, 오컬트, 망령, 귀신들린 집, 로맨스, 가족, 정체성, 이성의 한계, 기타의 목차로 나누어 41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있는 Part 2입니다. 이 41편의 소개된 영화 중에서 제가 본 영화는 "드라큘라", "울프", "엔젤하트", "스크림", "식스센스", "신체강탈자의 침입" 의 달랑 6편 뿐이네요. 나름 영화를 많이보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유명작품을 이렇게까지 놓치고 보지 않은 이유는 언젠가 제 블로그에 쓴 적도 있지만 "공포영화"라는 쟝르 자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포"라는 감정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의사체험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기때문이 크고, "고어"라는 표현 방식을 극도로 혐오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정말로 감탄했습니다.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저같은 사람이 여기 등장하는 여러 영화들을 "보고싶다"고 느끼게 만드는 장르와 그 영화에 대한 애정이 페이지마다 묻어나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교묘하게 스포일러가 될만한 부분을 피해가며 줄거리와 영화의 핵심에 대해 설명하는 글솜씨 역시 보통이 아니고 말이죠. 하여간 어떤 분야에 그야말로 "일가를 이룬" 사람의 전문가적 식견이 돋보이는 책은 그 책이 어떤 주제를 다루건 (심지어는 꽃꽃이를 다루고 있더라도!) 항상 볼만한 법이죠. 이 책 역시 도착하자마자 하루만에 후딱 읽어버릴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단순히 특정 하위 장르의 인기작들만 훝어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사 전반에 걸쳐 다양한 국가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취미가 아니라 "학술적인" 깊이까지 느껴지기에 정말 대단하다고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 개인적으로 저 역시도 "추리"라는 특정 장르에 많이 치우쳐진 애호가인 탓에 김시광님의 이러한 노력과 열정이 어떠한 것인지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기에 읽으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기도 했습니다 ㅠ.ㅠ 대한민국은 아직 이러한 쟝르에 대한 홀대가 여전하기에 저 역시도 추리문학을 좋아한다는 이유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에게서 오타쿠 취급을 받기 일쑤였으니까요. 난 오타쿠가 아니라 추리를 좋아하는 애호가일 뿐인데...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제가 재미있게 본 몇 안되는 공포영화들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이벤트 호라이즌" 등등등) 과 얼마전 읽고 실망했던 김종일 씨의 소설에 대해 극찬을 하는 부분 등 저와는 취향이 맞지 않는 점도 눈에 뜨이긴 하지만, 이만큼의 전문가가 특별히 아는척이나 잘난척하지 않고 일반 독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지식을 쉽게, 알기쉽게 전달해 주는 국내에 보기드문 "호러영화 입문서"를 만들어 내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앞으로 이러한 장르문화에 대한 다양한 도서들이 많이 출간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죽기전에 꼭 봐야할 영화"나 "클래식 명반 100선" 같은 책이나 이 책이나 전문가가 해설하는 해당 문화에 대한 입문서라는 점에서는 다를게 하나 없잖아요?

별점은 평이하고 무난하기에 3점입니다. 최근 대한민국의 현실이 더 호러이고 무섭기에 책으로 접하는 호러무비의 충격이 약한 점이 조금 아쉬운 점이었지만 재미있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걸작이라고 단언하시면서 소개하신 "악마의 씨"와 "오디션", "큐어" 등은 아무리 취향이 아니더라도 꼭 챙겨봐야겠어요.

덧붙여, 추리소설에 대한 리뷰 - 입문서 출간을 원하시는 출판사가 있으시다면 저에게도 연락 한번 주시기 바랍니다^^ 워낙 인터넷 상에 거물들이 많으셔서 저한테까지 차례가 오지는 않겠지만요...

2023/06/11

씨 하우 데이 런 See How They Run, 2022 - 톰 조지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53년 영국, 애거사 크리스티의 <<쥐덫>> 연극 공연이 성공하며, 이를 영화로 만드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감독으로 내정된 미국인 리오 코퍼닉은 모두가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각본가 머빈에게는 각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싸움을 걸었고, 제작자 존 울프의 불륜을 협박하여 고급 호텔에 머물렀으며, 주연 배우 디키의 아내 실라를 유혹하다가 디키와 격투를 벌이기까지 했다. 결국 리오는 살해당했고, 경시청의 스콧 국장은 스토파드 경위와 스토커 순경에서 사건을 맡겼다. 둘의 수사를 통해 주요 관계자들이 모두 리오를 싫어했다는게 드러났지만, 스토커 순경은 스토파드 경위의 전처가 리오와 불륜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연극을 상영하던 극장에서 머빈마저 살해당한 뒤, 스토커 순경은 스토파드 경위가 범인이라 여겨 그를 제압하는데....


디즈니 플러스로 감상한 영화. 아직까지는 본격물 향취를 잘 살릴 수 있는 1953년이라는 시대 배경, 수상쩍은 여러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동기에 대한 묘사, 무엇보다도 크리스티의 <<쥐덫>> 연극이 핵심 소재이며 마지막에는 여사님이 직접 등장하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웨스트엔드에서 상영되는 <<쥐덫>>이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아래와 같이 연극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등장합니다. 초반부는 공연도 보여주고요. 덕분에 연극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정도 풀렸습니다.


고전 본격물스러운 등장인물들의 설정과 묘사, 1953년이라는 시대를 잘 드러내는 의상과 셋트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화면 분할을 통해 극적 효과를 높여주는 연출도 좋았고요.
본격 미스터리 명탐정스러운 스토파드 경위, 메모광으로 급한 성격의 소유자 스토커 순경 등 캐릭터도 특징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스토커 순경이 스토파드 경위가 전처를 잃은 복수를 한게 아닐까 의심하는 과정이 괜찮았어요. '메모광' 설정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고전 본격 미스터리 영화 느낌을 듬뿍 전해줍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스토파드 경위에 대한 의심 외에는 추리적으로 점수를 줄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상을 살펴보자면, 범인은 극장 직원 데니스였습니다. 그는 <<쥐덫>>의 소재가 된 실제 유아 학대의 피해자였는데 <<쥐덫>>이 피해자를 범인으로 만든 것에 대해 분노한 나머지, 연극 상영과 영화 제작을 중지시키기 위해 감독을 살해해서 무대에 시체를 전시했던 겁니다. 
그런데 데니스가 범인이라는걸 관객이 추리할 수 있는 단서는 전혀 제공되지 않습니다. 그냥 급작스럽고 뜬금없이 마지막에 범인이라며 총을 들고 등장하지요.
범행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감독 리오를 살해한건 나름 설명될 수 있겠지만, 이어지는 범죄들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각본가 머빈 살해부터 보자면, 감독이 없어도 영화는 제작될 수 있습니다. 각본가 역시 마찬가지고요. 영화 제작을 정말로 막고 싶었다면, 제작자 존 울프를 살해하는게 옳았습니다.
데니스가 크리스티 여사님 저택에 관계자를 불러 모은 행동도 아예 이해 불가입니다. 다 모아서 죽이려는 것이었을까요? 그렇다고 보기에는 가진 흉기가 영 마땅치 않던데 말이지요. 또 제작자야 죽여서 영화 제작을 막기 위해서였다쳐도, 연극 배우와 연극 연출가를 부른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영화와 별 관계도 없는데 말이죠. 이래서야 그냥 고전 본격 미스터리스러운 추리쇼, 대단원 분위기를 내기 위해 생각없이 집어넣은 장면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본격 미스터리처럼 등장인물들에게 범행 동기를 부여한 것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각본에서의 의견 충돌, 남들 다 아는 불륜 사실이 들통난 정도로 사람을 죽인다는건 무리니까요.
개인적으로 최악은 크리스티 여사님의 등장이었습니다. 추리의 여왕다운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못한 탓입니다. 연기도 별로였을 뿐더러, 배우도 그리 잘 어울린다 생각되지 않았어요. 범인에게 독(?)이 든 차를 먹이려는 노력도 개그 요소로서의 가치가 더 높아 보였고요. 이 정도면 본격 미스터리를 풍자하고 희화하하기 위한 의도로 만든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럴러면 제대로 웃기기라도 하던가....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영화의 만듦새는 좋지만, 추리 영화로서는 실패작입니다. 짤막한 분량이기는 한데, 시간낭비에 가까왔습니다. 이보다는 여사님의 소품을 영화화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2007/07/10

알라딘 추리독자 인터뷰 따라하기~!

원문은 여기에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저도 짤막하게 몇자 적어봅니다. 아.. 이 따라쟁이 정신이란 정말이지....^^

Q.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추리소설 읽는 즐거움은?

A. 단순히 독서로 끝나지 않는 지적인 사고활동이 곁들여지는 것이 매력이죠. 그래서 저는 정통파 고전 트릭물을 선호하는 편이고요. 작가와의 두뇌싸움이 제대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함 때문에 손에서 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내 인생의 추리소설' 5권을 꼽는다면?
A. 5편만 뽑기에는 너무나 어렵지만 "내 인생" 이라는 말이 들어가기 때문에 저에게 영향을 준 작품 위주로 뽑아 보았습니다.
1)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지음
그야말로 황금시대 정통 추리물 최고 걸작 중 하나로 밀실 트릭의 대가 딕슨 카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싸움을 초반부터 정직하게 보여주는 정통 고전 퍼즐 미스테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셜록홈즈 전집>,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지금 읽으면 너무 낡은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시대가 지나도 영원한 명탐정의 상징으로 남은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제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죠. 코난 도일 경에게는 아직도 고마움과 무한한 존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3) <10개의 인디언 인형>,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제가 처음으로 접한 추리와 호러의 만남! 동요와 함께 전해져 오는 오싹한 느낌과 더불어 완전범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크리스티 여사의 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처음 읽고는 며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무서웠던 경험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4) <점과 선>, 마츠모토 세이쵸 지음
원래 뜨문뜨문 접했던 일본 추리소설이었지만 지나친 성적 묘사 등으로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었던 저에게 일본 추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작품이죠. 이른바 "기차 시간표 트릭"의 선구자적인 걸작이며 사회파로서의 특징 역시 확연하게 보여주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금자탑입니다. 이 책 덕분에 이후 본격적인 일본 추리소설 탐독을 시작했기에 "제 인생"의 추리소설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5) <8번 종이 울릴때>, 모리스 르블랑 지음
홈즈가 등장했으니 라이벌 뤼뺑 역시 빠질 수 없겠죠? 최근까지도 많이 인용되는 멋진 트릭이 가득 담겨 있는 정통 추리 단편집이면서도 뤼뺑의 매력이 전편에 걸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뤼뺑 시리즈 최고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는 최고의 뤼뺑 작품으로 기억되는 재미난 작품이죠.

Q. '올해 여름, 필독을 권하는 추리소설'이 있다면?
A. 좀 호러 성향이 강한, 오싹한 작품 위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검은집>, 기시 유스케 지음
올해 영화로도 개봉해서 잘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와 공포를 다루고 있기에 사회파적 호러물이라 할 수 있는데 전편에 걸쳐 전해져 오는 오싹함과 서늘함이 일품으로 여름철에 딱 어울리는 책이죠.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고 재미납니다.

2) <인생을 훔친 여자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신용불량과 개인 채무, 파산을 소재로 하여 사회파적인 기법의 추리소설로 잘 표현한 수작으로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는 점에서 본다면 보험악용을 소재로 한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라는 작품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쩐의 전쟁"을 일부 연상케도 하고요. 정통파적인 부분은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범죄의 특성 상 추리 매니아가 몰입할 요소가 많은 만큼 추천하고 싶습니다.

3) <고도의 마인>, 에도가와 란포 지음
일본 추리 소설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으로 변격물이라 불리우는 란포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역시 여름철에 읽기에 참 적합하다 할 수 있는, 호러와 추리를 잘 버무린 작품으로 시대를 한참 앞서나갔던 란포의 상상력이 잘 드러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닥터 모로의 DNA"가 약간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4) <살인자들의 섬>, 데니스 루헤인 지음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독특한 전개와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서늘한 느낌, 거기에 독자를 빨아들이는 재미와 몰입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대 미국 추리 소설의 힘을 잘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암호 트릭 등으로 정통파적인 재미도 빠지지 않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추리 매니아가 있다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5) <소름> , 로스 맥도널드 저
하드보일드 삼두마차의 한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최고 걸작입니다. 하드보일드 특유의 강한 드라마로 시종일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놀라운 마지막 3페이지의 반전으로 충격과 더불어 한 인간의 잔인성과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죠. 흔해빠진 반전물에 비해 정통 드라마의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기에 더욱 작품성이 빛난다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하죠. 미국의 널리고 널린 헐리우드 스타일 스릴러에 식상한 분들에게 꼭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Q. 내 인생의 '첫' 추리소설은?

A.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단편들이 최초죠. 아마 "계림문고"라는 곳에서 시리즈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각 단편을 얇은 책 한권으로 만든 구성이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나이 또래의 추리 애호가들은 거의 다 비슷하시리라 생각되네요. 요사이 비슷한 판본과 형태로 다시 재간되고 있는 것을 서점에서 보았는데 어린아이들이 많이 접해서 저와 같이 추리소설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재출간을바라거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추리소설/작가가 있다면?
A. 재출간이 되기를 바라는 작품이야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 구하고 있었던 자유추리문고가 복간되었으면 합니다. 벨린저의 "이와 손톱"과 에반 헌터의 "주정꾼 탐정"은 정말 너무 읽고 싶은 작품이거든요. 이외에도 다카키 아키미쓰의 "파계재판"과 사노 요의 "완전범죄 연구" 역시 평소 구하던 책입니다. 그리고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소설이나 작가는 너무나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내 작가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때문에...."경성탐정록"의 출간을 원하시는 출판사를 찾습니다!^^

2009/02/19

녹색은 위험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크리스티나 브랜드) / 이진 : 별점 3점

녹색은 위험 - 6점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지음, 이진 옮김/시작

2차 대전 당시 런던 대공습의 와중에 마을 외곽의 한 야전병원의 수술대 위에서 우체부로 일하던 히긴스 노인이 사망한다. 이 사건으로 외과의사 문과 저베이스, 마취의 반스, 간호사 마리온과 간호 봉사대원 제인, 프레데리카, 에스더 7명의 작은 공동체에 파문이 일고 경시청에서 커크릴 경감이 파견되어 사건 수사를 시작한다. 이후 간호사 마리온이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커크릴 경감은 범인의 정체를 눈치채고 공습의 와중에서 범인을 잡아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대표작입니다. 국내 출간이 너무 늦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죠. 뭐, 이 땅의 장르문학 홀대가 한두해 있었던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요. 어쨌건 동서 추리문고를 통해 "제제벨의 죽음" 밖에 소개되지 않았었지만 "제제벨의 죽음" 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녹색은 위험"이 더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있어서 기대가 무척 컸었기 때문에 이렇게 읽게 되니 정말 감개무량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작품 자체는 실망스러웠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게 아닌가 싶네요. 일단은 전개가 굉장히 고풍스러운 것이 약간 거슬리는 부분이었습니다. 반세기 이전 작품이긴 하지만 글쎄요...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을 읽을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작풍인지는 모르겠지만 심리묘사와 개인적이고도 사변적인 대사가 지나칠정도로 장황하게 난무하는 점도 고풍스러운 느낌에 한몫 거들면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고요. 이렇게 장황한 묘사와 대사는 그 사이사이에 중요 단서를 살짝 살짝 끼워넣기 위한 장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도가 좀 심했습니다. 번역의 문제가 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매끄럽지도 않고 말이죠.
게다가 커크릴 경감 (콕크릴 경감) 은 이 작품에서는 정말이지 하는게 너무 없어요! 되려 애꿎은 희생자만 늘려버리고 추리보다는 자백에 의존하는 등 명탐정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제벨의 죽음" 에서 접했던 명탐정과는 전혀 다른사람 같았어요.

동기도 지나치게 오버스러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혐의를 두기 위해서 다양한 동기를 등장인물들에게 가져다 붙이는건 고전 추리물로는 당연한 전개겠지만, 문제는 이 동기들이 거의 다 평이한 수준이라 "살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좀 어려워 보였던 탓입니다. 심지어는 남동생과 누나의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어거지(?)까지 가져다 붙이는 건 영 아니다 싶더군요.

하지만 실망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제가 10년도 더 전에 이 작품의 영화버젼을 이미 감상했던 탓이 가장 큽니다. 화쪽이 더 깔끔하고 간결하게 각본을 구성해서 더 몰입해서,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었거든요. 사건도 잘 축약하고 내용을 많이 쳐 냈지만 추리적인 맛은 충분히 잘 살려냈던 덕분입니다. 물론 영화에 비해서 훨씬 중첩되어 쌓여있는 복선들, 다양한 단서들, 용의자와 범인을 특정하게 만드는 시간의 굴레에 대한 설정, 특히 "가운" 에 대한 추리적인 발상은 무척 좋았고 곳곳에 숨어있는 영국적인 묘사와 유머들 역시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거장의 대표작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죠. 영화와는 다른 책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심리묘사와 디테일은 확실히 잘 살아 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구하기 힘들어도 영화쪽이 더 나은건 분명합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 역시 히치콕 감독의 영화버젼이 훨~씬 뛰어나듯이 가끔은 원작을 능가하는 영화도 존재하는 법이겠죠. 
아울러 이 작품의 가장 큰 트릭은 바로 "제목" 과 동일한데 역시나 영화를 통해 접했기에 신선함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주요 트릭과 범인을 이미 알고 있는 추리소설을 다시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네요. 
영화는 "흑백영화"라서 색깔을 전혀 구분할 수 없었던 탓에 마지막 트릭 공개가 좀 황당했던 기억이 나기는 합니다만... 하여튼 별점은 3점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점수가 좀 더 높았을까요? 아직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를 접하지 않으신 추리 애호가분들이 계시다면, "제제벨의 죽음" 을 먼저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한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이 고전 명작을 출간해 주신 출판사 관계자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책 표지 디자인과 본문의 구성은 별로였습니다. 표지 디자인은 "병원이 무대인 소설에 제목은 "녹색은 위험" 이니 이렇게 가야겠다!" 라고 떠오른 첫 생각을 그대로 비쥬얼로 옮겨놓은 듯한, 녹색 바탕에 의사로 보이는 인물이 전면에 배치된 디자인인데 너무 뻔하고 안이하잖아요... 90년대 로빈 쿡 소설이 생각날 정도로 올드하기도 하고요. 가격도 착하고 책도 괜찮았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신경써 주신다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

2009/07/27

작전 (2009) - 이호재 : 별점 3점


연극영화과 출신의 개미 강현수 (박용하)는 수년전 선배에게 당한 주식사기를 교훈삼아 5년에 걸쳐 개인투자자 인생을 살고 있는 인물. 그러던 중 조폭 출신의 사업가 황종구 (박희순)이 작전 중인 주식을 건드린 그는 황종구에게 오히려 스카웃 된 뒤 무려 600억짜리 주식 작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작전 프로젝트는 부실 건설회사 대산토건이 환경벤처 "한결"을 인수 합병하는 정보를 먼저 입수하여 대산토건 주식을 매수하여 주가를 올린 뒤 처분하려는 작전!

이번 주말에 와이프와 같이 감상한 영화입니다. 국내 최초의 주식 작전을 다룬, "스팅"과 같은 일종의 "범죄 - 사기"영화로 넓게 보면 추리영화로 볼 수도 있는 작품이죠.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어쨌건 쟝르는 추리 / 호러 + 영화!)

영화를 보면서 제일 놀랐던 점은 영화가 기본적으로 "코미디"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흡사 유쾌하고 경쾌하면서도 치밀한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느낌마저 드는데 (앞서 말한 "스팅", 혹은 "오션스 일레븐" 등) 이러한 작품의 매력은 주식을 가지고 벌이는 "작전"과 그에 얽힌 세력들의 다툼을 상당히 잘 그리고 있으면서도 주인공의 동생이 미생물학과 출신이라는 등의 여러 설정들과 나름 잘 짜여진 복선의 삽입, 그리고 코믹한 에피소드와 대사들의 유효적절한 사용 등의 디테일도 치밀하게 구성한 각본의 승리로 보여집니다. 그만큼 각본이 아주 괜찮았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비호감이었던 박용하씨 연기가 상당히 괜찮아서 몰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극장에서 안 본 이유는 박용하씨 존재 이유가 가장 컸는데, 그러한 저의 생각이 미안해질 정도로 마스크나 그간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별볼일없는 개미 연기를 능청스럽게 잘 소화하고 있거든요. 그 외의 조연들, 특히 김무열씨의 연기가 좋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놈은 꼭 처절하게 망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 정도였어요^^ (박희순씨의 조폭출신 사업가 연기도 좋았습니다만 이 캐릭터는 누가 했어도 비슷한 수준은 뽑아줬을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김민정씨 연기는 불만스럽더군요. 결국 악역도 아니고 조연이라고 하기에도 캐릭터의 비중이 애매한 캐릭터이긴 한데 그나마 있는 매력도 잘 살리지 못했어요. 한창 유행한 "팜므파탈" 캐릭터를 삽입하려다 실패한 케이스랄까요? 뭐 애시당초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유명 정치인들의 비자금을 독점 관리한다는 설정자체가 에러죠. 고두심씨 정도가 등장했더라면 모를까.

그리고 실제 "작전"이라는 측면만 놓고 본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도 주식을 한지 5년이 넘어가기는 하지만 주구장창 손해만 본 개미라 그다지 주식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600억이라는 돈을 들여서 주식 시장에서 작전을 한다면 짧은 기간동안 승부를 보고 나오기에는 불가능하지 않나 싶더군요. 2만원짜리 주식이라면 총 300만주를 매집한건데 하루 거래량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한달에 걸쳐 서서히 팔아야 하는 물량으로 보이거든요. 팔다가 지칠거 같아요....
그리고 "한결"이라는 유망한 바이오벤처를 합병하는 것이 호재인데 이 "한결" 합병 이전에 대산토건이라는 회사가 오래갈것 같지 않은 부실기업으로 소개되고 있어서 설득력이 상당히 약했습니다. 대주주인 사장이 나중에 주식을 모두 정리하고 도망가는 묘사까지 나오는 부실기업이라서 결국 모회사의 부도로 인해 같이 나자빠질 가능성이 높아보였거든요. 국책 과제로 선정되어 다른 곳에서 투자를 받아 투자금 반환하고 자력갱생하여 유망한 회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대산토건 주식에 올인한 박용하는 결국 쪽박이었을테고 말이죠. 하여간 이 "한결"과 "대산토건"이라는 회사의 관계는 그다지 명쾌하게 설명되지 못한 측면이 강합니다.
덧붙여, 박용하 캐릭터가 연극영화과 출신이라는 복선을 좀 더 잘 활용했더라면 어떨까 싶은데 그것까지는 좀 무리였겠죠?

그래도 주식 작전에 대해 복잡하지 않게 잘 설명하면서도 재미있고 유쾌해서 주말 한나절을 보내기에는 충분했던 영화라 별점은 3점입니다. 선량한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지는 엔딩도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제가 아주 좋아하는 끝마무리이기도 하죠. 제발 영화에서처럼 선량한 사람들이 돈버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각본과 감독을 모두 소화한 이호재 감독의 데뷰작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의 작품이라 차기작도 기대가 됩니다. 차기작도 유쾌하고 선량한 작품을 찍어주시기를 바랍니다.

2004/05/01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로저 코먼 / 김경식 : 별점 4점

추리소설을 굉장히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대부분 취향에 특화되어 있는 탓에 역사와 전기 문학이 많습니다. 이 책도 이러한 제 취향을 반영한 전기 문학입니다. 미국 독립 영화 제작자이자 흔히 'B급 영화의 제왕'이라 불리는 로저 코먼의 자서전이지요.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서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후, 영화업계에 발을 들여 놓기로 결심하고 폭스 스튜디오 문서 배달사원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뒤부터의 파란만장한 영화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독립 영화사의 생존 자체가 어려웠던 1950년대, 10만달러 미만의 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하다가 직접 감독을 하게 되고, 급기야 스스로 제작사를 차려 배급까지 겸하며 현재까지 그 경력을 이어오고 있는 기인 감독의 일대기이니 만큼 기대가 아주 컸습니다.

읽고나니 역시나 명불허전! 현재까지도 "코먼 사단"이라고 불리우는 영화계 인맥들 (감독-마틴 스콜세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죠 단테, 피터 보그다노비치, 론 하워드, 제임스 카메론, 조너선 드미, 존 세일즈..... 배우 : 잭 니콜슨, 찰스 브론슨, 피터 폰다, 로버트 드니로, 실버스타 스탤론, 탈리아 샤이어... 제작-메나헴 골란, 게일앤허드..... 등등등)과의 에피소드와 영화 촬영때의 에피소드, 그리고 그가 제작한 영화들의 이야기까지, 한눈 팔기 힘들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작품으로 평가한다면, 그가 찍은 영화가 걸작이 많은건 아입니다. 이틀만에 찍은 영화도 있는 만큼 ("Little Shop Of Horrors") 완성도도 그리 높다고 할 수 없을테고요.
하지만 적은 제작비와 일정에도 불구하고 화면에 보이는 비쥬얼은 최대한으로 끌어낸다는 그의 신념과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독특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로 무장한 영화들은 그에게 제목대로 100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손해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또한 비록 싸게 만든, 이른바 "B"급 영화로 돈 (흥행)에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들을 제작하고 만들었지만,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에 아웃사이더들을 다룬다던가, 호러에 코미디를 결합한다던가하는 독특한 아이디어들로 무장한 그의 영화들은 현재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델마와 루이스"나 "멘인블랙" 등의 영화는 전부 코먼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무방하겠더라고요. 정말 시대를 많이 앞서간 것 같아요. 이러한 선구자적인 사상에 더해 헐리우드의 큰 세력이자 줄기가 되어버린 이른바 "코먼 사단"까지 아우른다면, 그의 영화 인생은 비록 음지였지만 거장의 인생으로 표현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현재 (2004년 4월) 시점으로 조사해보니 제작을 342편, 감독을 54편 했으며 각본도 5편, 거기에 배우 경력까지 있는 아직까지 팔팔한 현역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니 대단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코먼의 영화 중 본 작품은 거의 없지만 책만 읽어도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에요 . 이런 재미있는 책을 쓴 사람이 만든 영화가 재미 없을리가 없죠. 영화를 좋아하거나 전공을 원한다면 필독서이며, 그렇지 않은 일반 독자에게도 지적인 흥분과 재미를 동시에 가져다 줄 것입니다.

덧 1 : 읽으면서 한가지 아쉽다고 생각된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대학생때 읽었으면 저의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몰랐다는 것이죠. 저 역시 그동안의 용기 부족으로 이상과 조금 먼 삶을 살아왔거든요. 뭐 지금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겠지만....역시 인생은 철저한 계획과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 그리고 과감성이라고나 할까요?

덧 2 : 제 1회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갔다가 심사위원장이었던 로저 코먼의 싸인을 저희 형이 애써 받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싸인만 보더라도 그는 한푼도 잃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수첩의 제일 끝 귀퉁이 약 1/6 크기로 작게 서명한 싸인이었거든요^^

2017/08/1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 - 대중서사장르연구회, 박유희 외 : 별점 3점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 - 6점
대중서사장르연구회.박유희 외 지음/이론과실천

한국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의 매체에 등장했던 추리물의 역사에 대해 개략적으로 정리하여 알려주는 인문학, 문화사 서적입니다. 

"아랑 전설"에서 밀양 부사가 빨간 깃대를 흔들고 가는 아랑에 대해 꿈꾼 후, 범인이 '朱旗'라는 사람임을 가리킨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에서 '한각사중계월침, 붕월반월원무심'이라는 점 글귀의 뜻 풀이 같은 것이 소개되는 등, 고전 설화와 각종 야담, 역사서 등에 등장했던 추리 서사부터 소개하고 있기에 그 양과 깊이가 실로 방대합니다.

근대적인 추리 소설, 즉 '정탐 소설'이 처음 등장한 "쌍옥적" 이후의 자료는 더욱 풍부합니다. 처음 알게 된 건 "쌍옥적" 시기에 발표되었던 "박쥐우산"이라는 작품입니다. "르루주 사건"을 번안한 "누구의 죄"를 표절한 느낌이지만, 소개를 보니 범행 동기와 범인 설정을 당시 국내 실정에 잘 맞도록 나름 개선, 발전시킨 부분이 있는 덕분에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근대 초기에 셜록 홈즈와 같은 정통파 추리물이 아니라 '에밀 가보리오'의 프랑스 소설이 유독 인기를 끌었다는 점도 꽤나 흥미로왔고요.

아울러 근대에 추리 소설이 번안되어 소개되면서 이른바 '탐정 소설'이 높은 수준의 독서력을 가진 독자들이 읽는 지적인 작품으로 어필했다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추리 소설이 항상 싸구려 문학의 대명사로 알려진 80년대 이후를 살아온 저에게는 이해가 안되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합니다. 독서라는 취미 자체가 어느정도 지적 수준이 있는 계층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을테고, 그 중에서 추리 소설은 트릭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과학적인 지식이 뒷받침 된 이해력이 필요하니까요. 근대에는 그러한 독자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이렇게 초창기 추리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아주 괜찮은 듯 싶어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정탐', '탐정'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당대 분위기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어요. 인용되는 자료들을 보니 각종 신문 기사 헤드라인에서 이 단어들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을 정도더군요.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대구에 사는 한 소년이 10세 아동을 납치 살해한 후 협박장을 보냈다는 기사가 대표적이에요. 범행도 충격적이지만 이 소년이 '탐정소설만 매일 탐독'했다고 소개되거든요. 이렇게 탐정소설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상식이 널리 퍼지게 되는 것이죠. 가슴아프게도 이러한 부정적 인식, 앞서 말씀드린 물질 문명에 대한 부분, 거기에 '그로(그로테스크)'로 대표되는 새로운 유행의 결합 등으로 한국 추리 문학이 서서히 선정성, 엽기성이 강조된 싸구려 펄프 픽션화하는 과정이 해방 이후 현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아울러 지적인 영역, 논리적 추론과 과학적 수사 외에도 서구 물질 문명의 유혹 역시 지식인들을 끌어당기는 요소였다고 하는데, 이 역시 후대에 좋지 않는 영향을 끼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적인 영역이 아니라 물질 문명에 대한 부분만 확대, 발전해 버린 탓입니다.

그래도 저도 익히 알고 있는, "최후의 증인"이라는 기적으로 대표되는 김성종 시대에서 현재(이 책이 발표된 2010년 기준)까지 이어지는 과정의 마지막 부분 덕분에 아직 한국 추리 문학에 희망이 있구나! 싶은 생각을 들게 만들어 줍니다. 한국 추리문학의 미래로 "경성탐정록"이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경성탐정록"이야 말로 한국 현대 추리문학이 이룬 놀라운 성취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선정성, 엽기성이 사라지고 정통 추리 서사에 기반한 본격물이라는 점에서, 원점에 회귀한다는 측면은 분명히 있죠. 이를 '일제 강점기'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추리문학의 역사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고요(반은 농담인거 아시죠?).

"경성탐정록" 외에도 고전에서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는 추리 문학 발전 와중에 등장한 수많은 작품이 소개되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일제강점기 후반 친일 문학의 홍수 속에서도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추리 서사를 보여주는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 친일 문학이기에 다시 읽을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서사면에서는 흥미로와 보이는 김내성의 "태풍", 해방 후 추리 문학계의 1인자였다는 방인근의 작품들(그 중에서도 사립탐정 장비호 시리즈), 허문영의 번개 탐정 시리즈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방인근, 허문영의 작품들은 소개만 보아도 앞서 말씀드린 펄프 픽션들에 다름없기에 구태여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방인근 작품들에 등장하는 해방 이후 주요 설정들 - 일본인이 해방 후 강제로 쫓겨가며 챙기지 못했던 재산을 되찾으려고 한다던가, 국가 혼란기에 국보를 훔친다던가 등등 - 은 한번 연구해 보고 싶어집니다.

이러한 추리 문학 뿐 아니라 추리 문학을 기반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흐름 및 주요 작품의 소개 또한 책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데, 이 역시 읽어볼만 합니다. 007 시리즈의 여러 모방작들 등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스파이물, 액션 스릴러, 느와르 등 다루는 폭도 넓고요. 제가 관심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놓치시기 힘들 내용들이었어요.

그런데 소개되는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은건 단점입니다. 기껏 흥미를 자아내는데, 정작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니 답답할 수 밖에 없지요. 지금 구하기 쉬운 작품들도 아니니까요. 도판도 부실한 편이고요.

그래도 얻은 것이 훨씬 많은 독서였습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3만원이라는 가격도 마음에 들고요.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가 식민지 시대 추리 문학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책은 다루는 폭과 기간이 훨씬 넓다는 차이가 있기에 비교해 읽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읽기 전에는 내가 아무리 추리 애호가지만 이런 것 까지 찾아서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 정도면 모든 추리 문학, 장르 애호가분들께 권해드릴 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6/07/04

살인무도회 (Clue / 1985) - 조나단 린 : 별점 2점


폭풍우가 몰아치는 뉴 잉글랜드 지방의 외딴 저택에 화이트 부인, 스칼렛 부인, 피코크 부인, 그린 씨, 머스타드 대령, 플럼 교수라는 가명의 남녀가 "바디씨"라는 인물에게서 초대를 받고 모였다. 집사 워즈워스의 접대로 가진 모임에서, 그들 모두가 남에게 드러나면 곤란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워즈워스에 의해 공표되었다. 워즈워스는 바디씨의 범행에 종지부를 찍기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바디씨는 그들에게 6가지 다른 종류의 흉기를 선물하며, 워즈워스를 죽이면 서로 비밀이 들통나지 않고 무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전등을 껐다. 그러나 살해된건 바디씨였고, 뒤이어 연쇄살인이 시작되는데...


"살인무도회"라는 국내 TV 방영 제목으로 더욱 유명한, 보드게임 "Clue"를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보드게임 원작 영화로는 처음 나온 것이라고 하네요.
처음에는 간단한 줄거리만 보고 정통 추리물이라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는 "외딴 저택에 고립된 일단의 남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이라는 정통 추리적인 소재를 마음껏 패러디하고 비틀어 꼬는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각본에 "블루스 브라더스"로 주가를 높이고 있던 존 랜디스가 참여했기에 슬랩스틱적이면서도 캐릭터를 잘 살리는 코미디가 넘쳐납니다. 경찰이 갑자기 저택에 찾아왔을 때 시체를 숨기기 위해 광란의 파티를 가장하는 장면 등은 확실히 웃겼습니다!
이런류의 캐릭터 코미디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상당히 중요한데, 악역으로 낯익은 워즈워스역의 팀 커리와 성격파 배우 크리스토퍼 로이드 등의 연기도 두말할 나위없이 좋았습니다.

반면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전무합니다.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6명의 인물들이 모두 동기와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전개는 충분히 트릭을 집어넣을 만 했지만, 영화는 끝까지 코미디 영화임을 고수하며 트릭이 개입될 여지를 거의 만들지 않습니다. 인물과 인물이 교차되며 서로의 과거를 살짝 드러내는 등 약간의 디테일은 있지만 충분히 추리적인 요소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었을텐데,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드게임이 원작인 영화답게, 관객에게 능동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멀티엔딩"은 꽤 신선했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원작에 충실하다고나 할까요? 영화에서는 총 3개의 엔딩을 보여주는데 엔딩이 3개나 될 정도로 추리적인 얼개는 허술하며 비약이 심하지만, 하나의 엔딩이 나온 이후"이런 결말은 어떨까요?" "하지만 진상은 이렇습니다" 라는 자막과 함께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방식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가는 감이 느껴졌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재미만 따진다면 제법 웃으면서 감상할 수 있지만, 기대했던 추리 요소가 부족하여 감점합니다. 그래도 유사작인 "5인의 탐정가"보다는 추리물로서나 코미디로서나 한수위의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원작 보드게임을 한번 해 봐야 겠습니다.

보드게임에 관한 정보는 여기에서! 

2014/12/31

맥주별장의 모험 - 니시자와 야스히코 / 이연승 : 별점 1.5점

맥주별장의 모험 - 4점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행 중 불의의 사고로 헤매게 된 닷쿠 일행 4명은 발견한 별장에 불법으로 침입하고 말았다. 더위와 피로로 넋이 나간 탓이었다. 별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다만 1층에는 싱글 베드 침대 한 개 뿐이고, 2층 붙박이장 속 숨겨진 냉장고에는 다량의 맥주가 보관되어 있었다. 일행은 피로와 배고픔이 극에 달했기에 긴급피난이라는 핑계로 별장의 맥주를 마시며, 별장의 특이한 상황에 대해 각자 추리한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닷쿠 & 타카치" 시리즈 장편입니다. 시리즈는 오하시 카오루의 만화로 먼저 접했었지요. 전작이 있는데 깜빡하고 두 번째 작품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캐릭터 관련 소개가 약간 부실하지만 읽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제가 읽었던 만화책에 수록된 단편 원작인가 싶었는데 아니더군요. 

보안 선배, 타쿠, 타카치, 우사코 4명이 특이한 상황에 대한 추리를 내놓는다는 설정은 추리 동호인들의 수수께끼 풀이 수다를 소설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사실 다양한 인물들이 자신의 추리를 피력한다는 설정은 "독 초콜릿 사건"이나 "바보의 엔드크레디트", 얼마 전 읽은 "탐정 영화" 등 많은 작품에서 선보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각자가 정리된 추리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수다 레벨의 추리를 펼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도 술자리 수다라서 터무니없거나 허점 투성이인 추리가 속출합니다. 때문에 추리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작가도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좀 쉽게 썼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엉터리 추리를 마구 끼워넣어 분량을 늘릴 수 있으니까요.

물론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수다를 펼치더라도, 그럴듯한 진상만 잘 뽑아낸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다른 유사한 작품들도 말도 안 되는 추리가 등장했었으니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진상도 터무니없고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납치한 뒤 그가 혼자 맥주를 먹으며 잠들기를 기다린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제가 납치된 사람이었다면 일단 나갈 생각부터 했을 거에요. 납치당한 판국에 맥주는 무슨 맥주.
게다가 범인들이 범행을 일으킨 이유는 결국 명확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장치를 꾸밀 노력과 돈이면 보다 효율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한 것일까요? 모종의 범행을 뒤집어씌우려고? 하이고... 차라리 사람을 고용해서 묻어버리는 게 낫죠. 진상보다는 영화 세트장일 것이라는 초반의 추리가 더 현실적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캐릭터 설정이 진부하기 그지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라이트 노벨이나 만화를 보는 듯 천편일률적인 무채색 캐릭터들이었어요. 술 좋아하고 허술하지만 사람도 많이 따르는 리더 보안 선배, 키 크고 차갑지만 머리 회전이 빠른 츤데레 미녀 타카치, 키 작고 딱히 남자답지 않지만 의외로 꼼꼼하고 추리력 좋은 타쿠, 이런 파티 구성에 빠질 수 없는 마스코트 캐릭터 우사코로 구성된 4인 파티인데 정말 많이 본 설정이죠.

그래도 아주 건질 게 없지는 않습니다. 산사태가 났다는 도로 표지판이 조작이었을 것이다, 퍼스트·세컨드(별장)의 위치는 어느 쪽 길을 향했어도 무방하게끔 배치된 것이다 등 추리가 번뜩이는 부분이 있기는 했고, 두 번째 별장과 같은 의외의 포인트는 읽는 재미를 주기는 했습니다.
수다라는 분위기도 떠들썩하니 나쁘지는 않았어요. 술자리 마다하지 않고 술만 있다면 끝까지 달렸던 제 대학 생활 때가 떠오르기도 했고 말이죠.

하지만 내용에서 추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추리 소설에서, 그 추리가 억지와 비약으로 점철되었고 진상 자체가 전혀 설득력이 없는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1점을 주려 했지만 약간의 건질 만한 포인트에 0.5점을 더합니다.
만화책 쪽이 7만 배는 더 좋았는데, 차라리 만화 번역본이 출간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2025/03/21

마트료시카의 밤 - 아쓰카와 다쓰미 / 이재원 : 별점 2.5점

마트료시카의 밤 - 6점
아쓰카와 다쓰미 지음, 이재원 옮김/리드비

94년에 출생하여 2017년 데뷰한 추리 소설계의 신성이 발표한 두 번째 책입니다. 신예 작가의 재기넘치는 아이디어가 가득한 단편 네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마지막 수록작 외의 수록작 모두에서 추리 소설 매니아의 향취를 짙게 풍긴다는 점입니다. 모두 코로나 시기를 무대로 하고 있어서, 등장인물들이 철저하게 마스크를 하고 있는 것도 눈에 뜨이고요. 추리적으로도 볼만했고, 기발한 작품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만 억지스러운 설정이 많고, 너무 트릭과 반전에 열중한 느낌이 드는건 좀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위험한 도박 - 사립 탐정 와카쓰키 하루미"

제목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를 연상시킵니다. 서점과 관련된 여탐정이 등장한다는 설정도 비슷하고요. 헌책방이 주요 무대라는 점에서는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작 중 핵심 소재인 유가미 유즈류의 "얼룩무늬 눈밭"은 가공의 작품이지만, 이외에는 모두 실존하는 유명 작품들이 대거 언급되어 재미를 더해 줍니다. "병든 대형견들의 밤"이라는 작품을 극찬하는데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그 외 작품들에 대한 소개도 인상적이고요. 책 소개만 써도 먹고 살겠다 싶을 정도로 잘 쓰네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마키무라 신이치의 뒤바뀐 가방을 찾던 탐정 '와카쓰키 하루미'가 알고보니 신이치를 살해한 범인이었다는게 진상인데, 이를 서술 트릭을 도입해서 효과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를 와카쓰키 하루미의 명함이 단 한 장 뿐이었다는 핵심 증거를 통해 잘 알려주고요. 와카쓰키 하루미가 추리작가 히루마 다카하루와 동일인이라는 반전도 괜찮았어요.

그러나 마침 마키무라를 죽인 날, 범인의 살인 증거가 담긴 가방이 뒤바뀌었다는 상황은 억지스럽고, 명함이 한 장이라는게 증거라는 주장은 빈약합니다. 명함이 정말 한 장 밖에 안 남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또, 명함은 얼마든지 추가로 만들 수 있는데 탐정 명함 한 장으로 탐문 수사를 이어나가는 모습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경찰 신분증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헌책방, 고전 추리 명작, 추리 매니아 등 좋아하는 소재는 한 가득인데,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2021년도 입시’라는 제목의 추리소설"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꿈꿀만한 작품. 대학교 입시에 추리 소설의 진범 찾기가 출제된다는 설정이거든요. 출제 범위로 아유카와 데쓰야, 다카기 아키미쓰, 엘러리 퀸, 아야쓰지 유키토,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이 언급되며, 실제 시험 문제도 한 편의 추리 소설의 문제 편입니다. 이런 대학이 있다면 꼭 한 번 시험에 응시해 봐야 겠습니다. 

전통적인 소설 구성이 아니라 뉴스, 인터뷰, 각종 보도 자료와 커뮤니티 의견들로 진행되는 것도 독특했습니다. 여러 명이 각자의 추리를 펼치는데 효과적이었다 생각되네요. 해답으로는 유명 학원 강사, 수험생 및 대학 측의 제시되어 추리적으로도 풍성하고요.

이 중 학원 강사는 6분할 화면, 생일 선물이 놓여진 탁자 위에 놓여진 사물의 개수가 6개라는 점에 착안하여, 원격 생일 파티에 참석한 사람은 5명이 아니라 6명이었다는 추리를 내 놓습니다. 이 친구는 왕따라 모두가 없는 사람이라 여겼는데, 범인이 선물한 탁상 선풍기가 현장의 연기를 흩날리게 만들어 컴퓨터 위치를 알아냈다면서요.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여 제대로 된 추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착안점은 재미있었습니다. 범인 이름까지 소설 내에서 짚어내는 발상은 놀라왔고요. 확실히 카리스마 학원 강사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수험생의 추리는 범인은 코드를 더듬어 컴퓨터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고, 그렇다면 범인은 피해자 방에서 나타났으며, 범인은 에나미 에리라고 추리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도 앞의 지문을 통해 상세하게 들고 있고요. 이 정도면 합격을 시켜도 무방한 좋은 추리였습니다.

이 둘에 비하면 대학 측에서 제기한 해답은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피해자가 쓰러진건 연극이었고, 피해자에게 가장 먼저 달려갔던 친구 오우가 범인이었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간단한 답이거든요. 이런걸 해답이라고 제시하고, 앞서 지문에 있던 단서들 중 불리하거나 오독할 수 있는걸 멋대로 삭제해 버렸으니 이 수험을 주도한 기자키 교지로 교수가 짤리는건 당연합니다. 제가 수험생이더라도 가만 두지 않았을거에요.

이렇게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잘 펼쳐놓고는 있는데, 딱 한 가지가 아쉽습니다. '무한대'라는 대학 내 동아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교수를 찍어내기 위해 이런 입시 시험을 기획했고, 시험에 통과했던 신입생을 낚아챈다는 진상이자 반전입니다. 이는 완전히 불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일개 동아리가 입시를 의도한대로 진행시킬 수 있다는건 현실적이지도 않고요.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차라리 획기적인 새로운 대학 입학 시험이 도입되었다는 설정으로 문제편, 여러 사람의 해답편을 소개하고 결말로 정말 좋은 제도였다!며 추리 시험이 전국으로 확산된다는 결말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마트료시카의 밤"

무대에서 2인극을 펼치면서, 과거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드러낸다는 내용으로 작가가 편집자에게 연극을 제안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편집자는 작가의 부인과 불륜 관계였고, 작가는 편집자의 지문을 과도에 묻히기 위해 연극을 벌였습니다. 이미 아내를 과도로 살해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편집자가 이 사실을 알아채고 협박에 나섭니다. 궁지에 몰린 작가는 편집자가 진짜 범인이라는걸 추리해내고요. 

이렇게 계속해서 새로운 진상이 밝혀지는 구조가 재미있었습니다. 까면 깔 수록, 열면 열 수록 계속 새로운 진상이 밝혀진다는 것에서 제목이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이를 '양파형'이라고 부르는데, "발자국"이라는 영화를 참고한 모양이네요. 

작 중 금고 다이얼을 여는 암호로 "심장과 왼손", "요도妖盜 S 79호", "붉은 오른손", "대여 보트 13호", "화려한 유괴", "다이얼 7을 돌릴 때"이 언급되는건 과연 추리 매니아구나 싶었고요. 이 작품들의 구성도 작가의 장치 중 하나라는 것, 그 외 사소한 대사들이 모두 단서가 된다는 구성도 치밀한 편입니다.

하지만 원작자인 소설가가 진짜 살인을 저질렀다는걸 연극 연출가가 알아채 협박하기 위해 무대를 꾸몄고, 소설가가 이를 이용해 연출가와 손을 잡고 다른 작가들을 협박할 계획을 세운다는 결말은 억지스럽습니다. 소설가가 아내를 죽였던 사건의 진상을 무대에서 폭로한다고 해도 그게 소설가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까요? 이미 십여년 전 사건인데다가 증거도 없는데 말이지요. 저는 오히려 연출가가 무고죄로 고소당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는 과거 사건을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용하면 되니 일석이조일거에요. 게다가 이 뒤에 이어지는, 이건 전부 영화였다는 반전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지나치게 '까서' 오히려 감점이 되어 버리고 말았네요.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은 법입니다. 그냥 앞부분 연극으로만 끝내는게 좋았을겁니다. 실제로 연극으로 만들어도 재미있었을 이야기니까요. 

"6명의 격앙된 마스크맨"

대학교 복면 레슬러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뛰어났던 레슬러 '센론 마스크 49세(하자마 지로)'가 살해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복면 레슬러의 마스크가 찢어져 있었던 것, 그리고 마스크 내부 혈흔에 주목하여 진범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추리는 좋습니다. 앞서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레슬링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은 구성도 마음에 듭니다. 사람들이 하자마 지로로 알고 있던 '센론 마스크 49세'의 정체는 지로의 형 가즈토시였고, 피해자 하자마 지로가 가즈토시를 죽이려다 되려 죽고 말았으며 이 탓에 복면을 찢을 수 밖에 없었다는 진상은  '복면 레슬러'가 범인이자 피해자였기에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 여러가지 설정 - 마람프와 지로가 전날 술을 마셨던 영수증 등 - 도 단서로 활용될 수 있도록 잘 짜여져 있습니다. 유쾌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도 잘 어울리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프로 레슬링 팬으로서, 세계 최초라고 해도 무방할 복면 레슬러 살인 사건을 다룬 추리 소설에는 나쁜 점수를 주기 어렵지요. 수록작 중에서 완성도로는 가장 좋기도 하고요.

2021/06/13

나이브스 아웃 (2019) - 라이언 존슨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할런 트롬비가 85세 생일 파티 다음 날, 칼로 목이 베어진 채로 가정부에게 발견되었다. 누군가 유명 탐정 브누아 블랑에게 사건을 의뢰했기 때문에 블랑이 수사에 함께 했다. 하지만 모든건 할런의 간병 간호사 마르타의 실수 때문에 할런이 꾸민 것이었고, 마르타에게 전 재산을 상속한다는 할런의 유서가 공개되면서 사건은 마르타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웰 메이드 추리 영화로 유명한 작품이지요. 넷플릭스로 감상하였습니다.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잘 만든 본격 추리물이거든요. 구조도 정교하고, 복선과 단서 제공도 공정한 덕분입니다.

마르타가 실수로 할런에게 모르핀을 주사한 뒤, 할런이 그 실수를 덮기 위해 자살하고 그녀는 범인으로 몰리지 않게끔 수를 쓴게 초반에 등장하는 탓에 도서 추리물로 보였습니다. 자살로 위장하기는 했지만, 실수와 단서가 드러나자 그걸 덮고자 하는 마르타의 필사적인 노력이 이어지니까요. 하지만 이 모든건 유산을 받지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하자, 마르타를 살인범으로 몰려고 했던 할런의 손자 휴의 작전이었다는 결말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증거는 빈약하지만, 앞서의 이런저런 사소한 대사와 휴의 행동으로 정교하게 짜맞추고 있을 뿐더러, 휴의 작전이 실패하고 마는 결말까지 완벽했어요.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가 마르타의 '선한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도 아주 신선했던 발상이고요. 또 부족했던 증거는 휴의 자백으로 채워지는데, 이 장면에서 마르타가 거짓말을 하면 토한다는 특징을 활용하여 통쾌한 맛을 전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제목 그대로 휴가 칼을 뽑아 들지만, 가짜 칼이어서 마르타 카브레라가 살아남고 결국 재산을 모두 손에 넣는다는 완벽한 해피엔딩도 제 취향이었습니다.

본격 추리물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명탐정과 추리쇼도 확실히 선 보여 줍니다. 사실 명탐정은 현재극에서 제대로 그려내기 힘듭니다. 수사 기법이 발달한 탓입니다. 그래서 순수한 '추리' 영역으로만 승부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의 브누아 블랑의 중반부까지는 실망스러웠습니다. 피아노 건반을 하나씩 치는 첫 등장부터, 온갖 현란한 대사를 떠벌이는 모습은 뻔한 과거 고전 시대 명탐정의 과장된 모습을 답습하는 느낌이었거든요. 추리라는걸 별로 보여주지도 않고요. 또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배우도 지적인 명탐정역에 별로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추리쇼 장면에서 이런 실망감을 모두 날려보내 줍니다. 멋진 추리력을 잘 드러내는 것은 물론이고, 샌님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힘과 행동력이 느껴지는 모습이 좋았던 덕분입니다. 기생충같은 가족들 앞에서 한 푼도 받지 못할거라고 시원하게 일갈하는 모습, 경찰에게 붙들린 휴 앞에서 유산은 모두 할런이 이룬 것이라고 비웃는 모습 등은 과거 명탐정들에게는 보기 힘든 멋진 퍼포먼스였어요.

이런 류의 영화에서 많이 보는, 유명 배우들로 이루어진 화려한 캐스팅도 볼거리더군요.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를 비롯하여 폰 트랩 대령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플로머 (아직 살아 계시다니!), 왕년의 호러 퀸 제이미 리 커티스, 마이애미 바이스 돈 존슨,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 등이 관객을 즐겁게 해 줍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2시간이 훌쩍 넘는 긴 상영 시간은 너무 길었어요. 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아버지의 돈만 노리고, 그 돈에만 기대어 사는 트롬비 가족들의 모습은 뻔하고 진부했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설명도 지나쳤습니다. 이런저런 풍자와 조롱의 대상으로 여긴 듯 한데, 그런 장치까지 넣을 필요는 없었지요. 가족 수를 줄인다던가, 무능함과 불성실한 모습에 대한 설명을 줄였더라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또 휴가 나쁜 짓을 했다는 증거를 잡은 프랜이 그를 불러낸 뒤 무력하게 살해당한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협박으로 돈을 뜯어내려는게 아니라, 비난이 목적이었다면 더더욱 그러하지요. 범인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증거를 들이대는데 아무런 대책도 하지 않는다? 현대물이라면 휴대폰을 이용한 녹음이라던가, CCTV 등 다양한 대책이 가능했을텐데, 납득하기 어렵지요.

그래도 오랫만에 재미있는 추리 영화를 감상했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고전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브누아 블랑이 등장하는 다음 작품도 보고 싶네요.

2020/12/29

2020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열 일곱번 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입니다. 블로그 나이가 성인이 될 날도 얼마 안 남았네요.

올해 특징이라면, 독서가 취미이신 모든 분들이라면 마찬가지겠지만 독서량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겁니다. 이 결산을 시작하고 책을 가장 많이 읽있네요. 코로나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정리해보면, 2020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77 (48)권, 기타 장르문학 4 (1)권, 역사서 9 (15)권, 디자인 or 스터디 4 (4),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25 (11)권, 기타 도서 14 (18)권으로 모두 133 (97)권입니다(괄호는 작년). 작년보다 30% 정도 늘었군요. 분야로 따지면 추리 / 호러 등 장르 문학과 Food 및 구루메 관련 책을 많이 읽은게 눈에 띄고요. 방콕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좀 자극적이고 재미있거나, 주요 관심사를 찾아 읽기 마련이니 당연합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20년 베스트 추리소설 : "흉가" 

올해 읽은 작품 중 별점 3점 이상 작품은 21편입니다. 꽤 수확이 많았던 한해였어요. 읽은 작품 중 1/3 가까이가 수작 이상인 셈이니까요. 이중 올해의 베스트는 "흉가"입니다. 무섭고 재미난 이야기 전개도 훌륭하지만 복잡한 설정, 복선 회수, 결말까지 완벽했습니다. 욕설, 육두문자 없이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끌고간다는 점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코로나로 외출도 못하는 더운 여름 휴가철에 탐독할만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아울러 올해 읽은 단편집 중에서 최고의 단편도 뽑아 보겠습니다. 별점 4점 짜리 작품으로는 아카가와 지로 "유령 열차" 수록작인 "비 옷을 입은 시체", 곤도 후미에의 "타르트 타탱의 꿈" 수록작인 "텅빈 카슐레", 스티븐 킹의 "악몽과 몽상 1" 수록작인 "돌런의 캐딜락", 마쓰모토 세이초의 "현란한 유리" 수록작인 "비와 2층",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테이프" 수록작인 "빈 집을 지키던 밤", 이사카 고타로의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수록작인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수록작인 "탐정 스페이드",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수록작인 "푸른 히아신스 향기", "뇌물과 부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별점 4.5점짜리 작품이 무려 2편이나 있어서 4점 정도로는 후보가 될 수 없었어요. 별점 4.5점을 받은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의 "희망장" 수록작인 "희망장"과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수록작인 "두 개의 양념병"입니다.
이 중 베스트로는 "희망장"을 선정합니다. "두 개의 양념병"도 걸작이지만, 발표된지도 오래되었고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니 양보해도 될 것 같네요.

2020년 워스트 추리소설 : "너무 예쁜 소녀" 

많이 읽은 만큼 실망스러웠던 작품도 많았습니다. 75권 중 별점 2점 이하 작품이 28편이었거든요. 그래도 평균 이하 작품이 2/3를 넘었던 작년보다는 1/3에 불과하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졸작 오브 더 졸작, 정말로 종이가 아깝고 나무에게 미안한 별점 1점의 작품도 세 편이나 됩니다. "너무 예쁜 소녀", "콜드게임", "루팡의 딸"이 그 주인공이지요. 이 중 워스트로는 "너무 예쁜 소녀"를 선정합니다. "콜드게임"은 잔혹한 왕따 가해자를 편드는 듯한 설정이 문제였을 뿐 재미면에서는 나름 합격점을 줄 만 했고, "루팡의 딸"은 최소한 짧기라도 하니까요. "너무 예쁜 소녀"는 추리도 없고 스릴도 없는데 길기까지한 완벽한 시간 낭비였습니다. 끝까지 참고 읽은 저에게 상을 주고 싶습니다.

2020년 베스트 /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올해 기타 장르문학은 4권만 읽었는데 모두 고만고만했습니다. 별도의 베스트, 워스트는 없습니다.

2020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올해는 아홉 권밖에 읽지 않았는데 일곱 권이 별점 3점 이상이었습니다. 별점 4점짜리 책도 "펜슬 퍼펙트",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의 세 권이나 되고요. 

이 중 베스트로는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을 꼽겠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알기 위한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뿐 아니라, 재미도 있고 가격까지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올해 역사 도서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가장 나쁜 별점이 2점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워스트로 꼽기에는 너무 가혹하기에, 올해는 별도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역사 도서는 대체로 선방한 한해였어요.

2020년 베스트 디자인 or Study : "명작순례" 

이쪽 분야 책들은 도판만 괜찮아도 평균 이상은 해 줍니다. 그래서 실패가 별로 없는 분야인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올해 유일의 별점 5점을 받은 책이에요.요. 수록된 글들도 좋고, 도판까지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을 사지 않으면 무슨 책을 사겠습니까.

2020년 워스트 디자인 or Study : 

올해 이 분야는 네 권 밖에는 읽지 않았는데 가장 나쁜 별점이 2.5점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워스트 도서가 없습니다.

2020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커리의 지구사" 

'지구사' 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식문화 역사 시리즈 중 한 권. 제가 읽었던 시리즈 중에서는 최고작입니다. 커리에 대한 역사는 물론, 세계화된 과정과 세계속 커리 요리들, 그리고 커리의 현재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커리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0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중세 유럽의 레시피" 

제목에서 기대했던 중세 유럽 요리에 대한 깊이있는 정보는 커녕, 최소한의 재미와 자료적 가치도 기대하기 어려운 별점 1점짜리 망작입니다. 담고있는 내용에 비하면 가격도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고요. 저처럼 낚이는 분이 없으면 좋겠네요.

2020년 베스트 기타 도서 : "탱크의 탄생" 

올해 읽은 기타 도서는 특출나게 빼어난 책은 없었지만, 평균 이상 재미를 전해주는 괜찮은 책들이 제법 많았었습니다. "심리 조작의 비밀", "탱크의 탄생", "망령의 기억", "깃털 도둑"이 별점 3점을 받은, 그런 책들이었지요.

다 좋은 책이지만 이 중 베스트로는 "탱크의 탄생"을 꼽겠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라하는 '도감' 분야의 책으로 도판, 일러스트가 완벽하게 제 취향이었기 때문이에요. 이 책의 가장 단점은 제법 비싼 가격일 뿐이에요. 무기 도감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길.

2020년 워스트 기타 도서 : "편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인데 장르 문학이 아니라 드라마라서 기타 도서로 분류하였습니다. 작위적이고 뻔한 전개도 감점 요소이지만 무엇보다도 핵심 주제 - 범죄자 가족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 에 대해 주인공의 심정을 공감하기 어려웠기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어요.

2020년 베스트 Movie : "포드 V 페라리" 

많은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올해 최고의 영화는 코로나 사태 직전 영화관에서 감상한 이 영화입니다. 남자 가슴을 뛰게 만드는 웅장한 화면과 음향 효과가 발군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다면 베스트 영화는 다른 작품이 되었을거에요.

그나저나, 언제쯤 극장에서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2020년 워스트 Movie : "머더 미스터리" 

'정통 미스터리'라고 소개된 글에 낚였네요. 일견 전형적인 미스터리물로 보이지만, 실제 영화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추리적으로 건질건 전무해요. 게다가 별로 웃기지도 않고요. 왜 애덤 샌들러를 요새 보기 힘든지 새삼 느끼게 해 준 망작이었습니다.

2020년 베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올 한 해는 "시마 코사쿠의 사건부"를 제외하고는 추리 or 호러 만화는 전통의 시리즈인 Q.E.D와 C.M.B의 후속권을 읽었을 뿐입니다. 이 중 최고는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 목록 36" 이었습니다. 수록작 중 "산의 의사"와 "카스미장 사건"이 아주 좋았기 때문입니다. 별점 3.5점은 충분합니다. 

에피소드별로 살펴보자면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5" 수록작인 "도토리와 솔방울",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9" 수록작 "상상 속 살인", "Q.E.D iff 12" 수록작 "재생의 시간"도 별점 3.5점의 좋은 작품들이었습니다.

2020년 워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책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이 가장 낮은데, 이 정도로 워스트로 꼽기는 좀 가혹하지요. 그래서 에피소드로 워스트를 꼽아 봅니다.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7" 수록작인 "크로스로드"와 "종려나무 동전"이 별점 1점입니다. 동기, 트릭, 진상 모두 작위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졸작이었어요.

2020년 베스트 Comic - 기타 :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선 단편집" 

2020년 만화들은 별점 3점짜리가 무려 14편이라서 많아서 한 편을 꼽기 어렵네요. 그래도 이 중에서 딱 한 편!을 꼽으라면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선 단편집"입니다. 다른 단편집에서 이미 접했었던 작품들이 많이 수록된 탓에 감점했을 뿐, 모로호시 다이지로라는 작가에 대해 잘 알려주는 좋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단편집을 읽어보지 않고 이 책만 읽는다면, 별점 4점도 거뜬했을거에요.

2020년 워스트 Comic - 기타 : "지구빙해사기" 

대가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이 불명예스러운 올해의 워스트네요. 당대를 풍미했던 오토모 가즈히로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 설정, 작화와 분위기를 적당히 섞어 만든 하이브리드 혼종이나 결과물은 전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산평 : 

이글루스 블로그 운영도 17년 째인데, 올 한해가 가장 변화도 많고 드라마틱했습니다. 다른 해에 비해 유별나게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요. 그러나 코로나라는 예상치못한 질병 탓이라서 마냥 좋아할 수는 없네요. 코로나 때문에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셨고, 지금도 계속 힘든 분들이 계실 터라 가슴도 무척 아프고요. 모쪼록 코로나 사태가 빨리 진정되어, 기쁜 마음으로 블로그 운영을 비롯한 일상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여러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는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일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게 분명합니다. 사랑합니다~!

2005/07/29

비밀의 백화점 (추리소설 특급 가이드) - 한겨레21 별책부록

한겨레 21의 여름 특집 별책부록 추리소설 가이드입니다.

별책부록이라고는 하지만 분량으로는 100여페이지 정도이고 폰트 크기도 작은 편이니 외견보다는 많은 내용을 담고는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저자들을 섭외해서 여러 종류의 글들을 짧게 짧게 실어놓은 책으로 김탁환씨와 성귀수씨와 같은 메이저 작가, 번역가에서 영화평론가들, 그리고 Howmystery.com과 화요추리클럽 분들을 비롯해서 알라딘 전설의 리뷰어 물만두님까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기고자들이 면면이 화려하고 워낙 많아서 다양한 취향을 음미하는데에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거기에 짤막한 만화까지 포함되어 다양한 쟝르를 포괄하고 있는 점도 좋은 기획으로 보입니다. 척박한 국내 만화계에서 비교적 정통파 추리 만화를 그렸던 한혜연과 석동연씨가 작가진에 있는것이 반가우며 추리 매니아이신 김진태씨도 짧지만 재미있는 만화를 개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워낙 짧다보니 글의 테마와 종류에 비한다면 그다지 깊이가 없긴 합니다. 조금 페이지를 늘리더라도, 아니면 기고자를 조금 줄이더라도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물론 별책부록인 만큼 자금과 페이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지금 상태는 좋은 기획의도를 충분히 받쳐주지 못하는 팜플렛에 가까운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온라인 추리 동호인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척박한 풍토에서 고생해온 국내 추리작가들의 비중이 너무 없는 것은 불만스럽습니다. 이젠 원로축에 끼시는 김성종 선생님이나 정건섭 선생님에게는 최소한 한페이지 이상은 의뢰드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번역계에서도 국내 추리계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신 정태원 선생님의 이름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권말의 추리소설 목록은 솔직히 불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보이고요. 어차피 다 싣지 못할 바에야 올해 신간만 리스트업하는게 더욱 좋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손을 본다면, 그리고 출판사의 의지가 작용한다면 장래에는 국내판 "이 미스테리가 굉장해!" 수준의 책을 뽑아 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던져 주는 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작가의 비중이 보다 높아져야 하리라 생각되고 국내 추리소설계도 분발해야 겠지요. 부디 내년에는 보다 풍성한 내용으로 가득차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포함되어 있는 앙케이트 한번 해  봅니다...

1. 가장 사랑하는 추리소설 1-5
어떻게 다섯개만 뽑을 수 있겠습니까만은, 현재의 베스트는
미야베 미유키 "화차", PD 제임스 "어떤 살의", 피터 러브시 "밀랍인형", 로스 맥도널드 "소름", 크리스티 "화요일 클럽의 살인"

2. 명성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작품
아카가와 지로의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명성이라는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요.

3. 최고의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 두말할 필요 없겠죠...

4. 가장 사랑하는 탐정
모스 경감. 나름 약점도 많고 인간적인 매력이 넘쳐 마음에 듭니다.

5. 가장 인상적인 악당
"유니스의 비밀"의 유니스 파치먼. 전형적인 악당이 아니고 평범한 하녀에서 폭발하는 광기에의 감정 이동이 놀라왔던, 그래서 더욱 무서웠던 인물입니다.

6. 가장 훌륭한 결말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결말
훌륭한 결말 - 피터 러브시 "가짜 경감 듀"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복선과 사건이 완벽하게 정리되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멋진 엔딩이라 추천합니다.
어처구니 - 사카구치 안고 "불연속 살인사건" 이렇게 모두 죽어나가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밖에 없잖아요?

7. 가장 완벽한 범죄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도끼". 범죄자의 자기 합리화를 독자에게도 공유하게끔 하는 설정이 놀랍습니다.

8. 가장 멋진 대사
"정말 잘 가라는 말은 벌써 해 버렸단 말이야. 정말 잘 가라는 말은 슬프고, 쓸쓸하고,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을 걸세"
 레이몬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 마초이즘과 서정성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명대사.

9. 배신하지 않는 작가 (가장 믿을 만한 작가)
로스 맥도널드, 국내 출간된 작품을 다 읽은 유일한 작가일 뿐더러 작품이 전부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10. 가장 잘된 추리(미스터리)영화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 구관이 명관, 명불허전의 작품입니다.

11. 우리나라에 꼭 소개되어야 할 작품
비교적 소개된 것이 적은 일본 고전 본격물과 신 본격물의 다양한 소개를 기원합니다. 예를 들자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나 노리츠키 린타로. 다카키 아키미쓰 등이요.

12. 가장 좋아하는 국내 추리소설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서라면 김성종의 "최후의 증인"

13. 미스터리 초보에게 추천하는 작품 셋
초보자에게는 단편이 더욱 어울리리라 생각됩니다. 세 편이라면 크리스티의 "화요일 클럽의 살인",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의 모험" 두 단편집과 황금시대 정통 본격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딕슨 카의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를 추천합니다.

14.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그 이유
항상 저를 지적인 흥분상태로 몰고 가는 두근두근한 긴장감이 좋습니다. 또 혹시 압니까? 향후 요긴하게 써먹게 될지도.....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나 한번 만들어 볼까나!

15. 그리고 할 말이 남아 있다.
추리 독자의 저변이 더욱 넓어져서 제가 군침만 삼키던 작품들이 더욱 많이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뭔가 기획해서 책을 내보고 싶기도 한데, 저변과 시장이 넓어지면 언젠가는 기회가 되겠죠.

2018/11/10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 하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5점

[세트]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하 세트 - 전2권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 이후 헤어진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각각 다른 이성 친구와 교제하게 되었다. 오사나이와 교제하게 된 신문부 열혈 부원 우리노는 매달 벌어지는 연쇄 방화 사건에 집중하여 사건을 다룬 기사를 교내 신문에 발표했다. 기사를 통해 몇 개월간 다음 방화 장소를 예언하고 맞춘 우리노는 신문부의 손으로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우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와 일상계 추리물의 존재를 우리나라에 처음 알림 소시민 시리즈 신간(이라고 하기는 작년에 나와서 좀 어색하지만 제 기준으로는)입니다. 십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은 아동용 동화같은 커버 일러스트로 충격을 주었는데, 예쁜 일러스트의 양장본으로 재출간된걸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요네자와 호노부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거의 전작 출간이 되었을 정도의 인기 작가라는걸 여실히 보여주네요. 이런 추리, 미스터리 장르물의 인기에 저도 약간이나마 기여(?) 하지 않았을까 싶어 살짝 뿌듯하기도 하고요.

하여튼, 이 작품은 시리즈 1편인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보다는 2편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과 더 비슷합니다. 조금 긴 호흡의 긴 이야기가 핵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요.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거주하는 기라시에 매달 장소를 바꾸어가며 방화가 일어나고, 이를 쫓는 신문부 후배 우리노와 이에 얽히게 된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이야기가 시간으로 따지면 2학년에서 3학년까지 거의 9개월에서 10개월 동안 펼쳐지거든요.

그런데 방화사건 쪽 주인공은 우리노이며 그와 교제하게 된 오사나이가 양념처럼 등장할 뿐입니다. 고바토가 다른 여자 친구 나카마루와 교제하며 일상계 추리를 펼치는 이야기는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어요.
이러한 고바토의 일상계는 다른 일상계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사건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카마루와 함께 데이트를 가던 코바토가 만원 버스에서 누가 버스에서 먼저 일어날 것인지를 추리하고, 나카마루가 이야기해 준 자신의 오빠에게 있었던 기묘한 도난사건에 대해서 추리하고, 헤어지기 직전 나카마루가 토마토를 싫어하는게 아닌가하고 추리하는 정도입니다. 이 중 버스 이야기는 추리에 비하면 분량이 과할 정도로 길어 별로였고, 토마토 이야기는 정말로 스쳐 지나갑니다. 그래도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하는 나카마루의 오빠가 3일간 여행 갔다 온 후 집에 유리창에 깨져있고, 누군가 침입했지만 없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기묘한 도난사건 이야기만큼은 꽤 괜찮았습니다. 그동안 오디오 알람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몰랐다는건 말이 안되고, 설령 이런 일이 생겨도 집 주인을 부르지 무단 침입은 하지 않겠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아요. 전부 다 소소하고 심심하지만, 담백한 덕분에 일상계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그런데 연쇄 방화 사건 이야기는 불만입니다. 물론 추리적으로는 나름 번득이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특히 연쇄 방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는 괜찮습니다. 우리노가 다음 번 방화 장소를 추리해 낸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노의 친구이자 범인인 히야가 우리노의 기사를 보고 그곳에 불을 질렀다는 건데 상당히 의외성이 있어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영화 "밀정"에서도 등장했었던, 간단한 트릭으로 용의자를 좁히고 진범을 추리해 내는 과정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제대로 된 추리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거의 전편에 걸쳐 탐정역을 수행하고, 온갖 추리를 펼친 우리노의 마지막 추리쇼를 박살내기 위한 오사나이의 복수극일 뿐이니까요. 게다가 복수를 위한 오사나이의 공작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해있던 우리노와 통화했을 때 고의로 기차 소리를 들려주어 현장 근처로 오해하게 만들고, 범행 현장 근처에 서점에서 책을 산 영수증을 우리노의 눈에 띄는 곳에 놔 두는 식인데 우리노가 이를 추리해낸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렇게 해서 자신을 범인으로 오해하게 만든 의도가 불분명한 탓입니다. 마지막 순간 추리쇼를 펼친 우리노에게 면박을 주고 재기불능 수준의 창피를 주기 위해서? 복수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모든게 작위적입니다. 또 정통 추리물이라면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우리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는 그런 인식이 전무하다는 것도 실망스럽습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도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요. 이래서야 잘 된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구리킨톤을 먹으며, 오사나이가 우리노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5월 이후라고 추리해내고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멋대로 오사나이에게 키스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장면은 깔끔했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복수를 꾸밀 정도의 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또 우리노는 명예욕은 있지만 사건에 열정적으로 뛰어든 좋은 녀석인데, 이쓰카이치의 기사로 확인 사살까지 당하니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전개는 작가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동일한 느낌의 또다른 일상계 시리즈인 고전부 시리즈와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서였던 듯 합니다. 고바토가 마지막에 추리를 통해 자기 만족을 채우는 인물이라는 걸 깨닫는다던가, 오사나이는 대단한 행동력과 책략을 갖춘 팜므파탈로 묘사된 것도 같은 이유일 테고요. 소시민을 꿈꾸는 고바토 죠고로와 회색을 신봉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의 캐릭터부터가 완벽하게 겹치기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이지요. 아마 시리즈 다음 작품이 출간된다면 고바토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추리를 펼치고, 오사나이는 추리를 위한 각종 작전을 짜내고 실행하는 행동대장 역으로 묘사되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큰 변화가 작품에 좋게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바토야 그렇다 쳐도 오사나이 캐릭터 변화가 문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억지스러운 복수극 전개가 모두 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냥 예전처럼 한 발자욱 물러나 사건을 추리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은 여러모로 작위적이고 억지스럽기만 해서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일상계 추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드는 구성은 좋고, 추리적으로도 눈여겨 볼 부분도 제법 됩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해요. 억지스럽게 설정까지 바꾸어 가며 시리즈를 이어나가느니 그냥 고전부 시리즈에 집중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2019/02/02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 - 오혜진 : 별점 3점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 - 6점
오혜진 지음/어문학사

6년전에 읽고 리뷰까지 남겼었는데, 어쩌다보니 깜빡하고 다시 구입해서 읽은 책입니다. 5년이 지난 탓에 새로 읽는 것과 다를게 없었네요. 다시 리뷰 남깁니다.

총 5장으로 구성된(5장은 맺음말로 내용은 4장 구성), 해방 전까지의 한국 추리 소설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정리한 책으로 문학사니까 일종의 미시사 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전에 읽었던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해방 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은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와 더 비슷한데, 내용이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각이 일관된 덕분에 더 나은 점도 많습니다. 이전에 유사한 책들을 많이 읽어왔지만, 여전히 눈에 뜨이는 부분도 제법 되고요.

우선 추리 소설을 어떤 기준으로 연구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브 뢰테르의 세가지 분류 - Mystery, Crime novel, Suspense - 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과 서구 추리 소설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짤막하게 소개하는 등의 도입부가 마음에 듭니다. 연구서다운 상세한 설명과 접근 방법이 좋더라고요.

이후 실제 한국 추리 소설의 역사 역시 재미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우선 1920년대 중반 "취미"라는 용어가 일상화 되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원래 있던 단어인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당시 중산층의 개념이 1년 수입으로 1년간 채무 없이 살 수 있는 정도를 뜻하며, 극히 드물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취미"에는 돈이 들고,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값싼 인쇄물을 가까이 하는 책읽기가 그나마 일반적인 취미로 널리 퍼졌다고 하고요.
또한 이러한 출판 산업의 호황에 더해 당시 언론 통제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가 난무한 것, 그리고 "자본주의" 때문에 상업화로 흐른 등 "대중 소설"을 위한 토양이 갖추어져 결국 추리 소설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던 것도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지금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비싼 책 값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아울러 당시에도 코난 도일과 르블랑에 대한 편식이 심했다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이후 당시 발표된 여러 추리 소설을 소개하는데 이 역시 흥미로왔습니다. 최독견의 "사형수" 라던가, 신경순의 "피무든 수첩", "제 2의 밀실", 최유범의 여러 작품들이 그러합니다. 특히 최유범의 작품은 비록 일부 표절("브루스 파팅턴 설계도")이 있지만 미스터리 추리 소설로 장르의 규칙을 철저히 수행하고 있다고 하니 놀랍네요. 수수께끼 풀이가 완벽한 수준의 해방전 국내 작품은 그 유래를 찾기 힘든데 말이지요.
그 뒤에 이어지는 다른 작품들은 국내 추리 소설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사랑과 연애사"가 부각되는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최유범의 작품이 더욱 빛을 발합니다. 그 뒤 김동인의 "광염소나타", 박태원의 "우맹", 김유정의 "만무방"과 같은 추리 서사가 도입된 국내 소설 소개가 이어집니다. 염상섭의 "사랑과 죄" 역시 마찬가지죠. 영화에 나온 수법을 따라하는 모방 범죄가 등장하고, 살인 사건이 주요한 내용인 등 꽤 진지한 추리 서사가 도입된 작품이라는데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몇몇 부분은 안타까움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통속 소설", "대중 소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당시부터 존재했었다는 점입니다. 추리 소설이 싸구려 통속 소설로 폄하된 이유가 이 땅에 추리 소설이 소개된 시점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인데, 심지어 추리 소설을 창작, 번역하기까지 했던 일부 작가들조차(염상섭 등) 동일한 인식을 지녔다는 점에서 통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과학적, 근대적 사고가 널리 퍼진 것이 논리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추리 소설의 유행과 관계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근대적 사고 방식을 토대로 한 작품이 이렇게까지 폄하되는 것도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물론 당시 미디어, 작가들의 잘못도 크겠지만요.

마지막 4장에서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세 편의 작품 - 채만식의 "염마",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 김내성의 "마인"- 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당대 추리 소설의 수준, 그리고 어쩔 수없는 한계를 설명하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내성의 여러 작품들을 소개해 주는데, 김내성의 "마인"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뜨입니다. 지금 읽으면 많이 허술하지만 당대 국내 추리 문학계를 대표했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 작품 소개 모두 읽을만 합니다. 그러나 책의 특성상(일종의 학술 논문) 전편 내용이 수록된 것이 아니라는게 좀 아쉽습니다. 관심이 크다면 별도로 구해 볼 수 밖에 없으니까요.

마지막에는 1940년대로 넘어오면서 전쟁 탓에 스파이 소설이 범람하였으며, 이른바 "친일 문학"으로 여러 작품이 발표된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외국인 여성 마리에가 만드는 센닌바리가 경성의 방공 시설과 반도내 포대 위치를 말하는 모르스 부호가 숨겨져 있음을 폭로한다는 김내성의 "수놓은 송학"이 대표적인데, 꽤 괜찮은 아이디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식민지에서의 친일, 매국 문학으로 전락한 작가의 모습은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다른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이는 6년 전과 같습니다. 다른 유사 자료, 도서와 차별화되는 점도 크고, 나름의 재미는 물론 여러가지 정보와 함께 큰 흐름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덕분입니다. 추리 소설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저는 두 번 읽었지만 여전히 좋은 독서였습니다.

2012/01/08

UN-GO : 별점 2점

정말 오랜만에 애니메이션 한 시즌을 끝까지 감상했습니다. 추리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이 생겨 보게 되었습니다.

사카구치 안고의 오래된 단편집을 원작으로, 배경을 근미래로 각색하여 제작된 작품으로 총 11화 완결입니다. 단편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에피소드를 거치면서 점차 세계관과 주인공들의 관계 및 정체를 밝혀가는 긴 호흡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됩니다.

근미래가 무대이긴 하지만, 원작이 워낙 오래된 작품이어서인지 사건 수사는 탐정들의 추리에 의존할 뿐입니다. 이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후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공권력과 거대 자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잘 각색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거대 자본이 인터넷 기업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터넷 기업의 수장이자 자본과 공권력을 모두 상징하는 인물인 카이쇼 린로쿠의 사상을 비교적 디테일하게 보여준 점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전후 일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분위기가 잘 묻어났습니다. 다만 원작을 읽어보지 못해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네요.

그러나 문제는, 추리 애니메이션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에피소드의 길이가 고작 20여 분밖에 되지 않아 정교한 추리 구조를 만들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이야기들이 추리물이라기에는 다소 얄팍한 편이었습니다. 20여 분은 등장인물과 사건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초반에는 단편 에피소드 형태로 진행되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긴 호흡의 구조로 바뀝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전체를 하나의 장편으로 그려갔으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길었던 마지막 3편의 에피소드가 가장 완성도가 높았던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또한, 탐정 신쥬로의 파트너 인과의 능력이 '그가 물어본 질문에 인간은 반드시 답을 하게 된다'는 설정인데, 이런 능력이 있다면 용의자들에게 "너가 범인이냐?"라고 묻는 것이 더 빠르지 않았을까요? 그나마도 초반 이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이야기 전개에 크게 필요 없는 판타지스러운 설정에 불과했습니다. 차라리 이 설정을 제외했더라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RAI 카자모리 정도의 조력자였다면 훨씬 설득력 있었을 텐데 말이죠.

한마디로, 이 작품을 추리물이라고 홍보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던져놓은 떡밥을 제대로 회수하지도 않고 끝맺었다는 점, 그리고 연출과 작화에서도 다소 저렴한 느낌이 들었던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 세간에는 백전백패의 '패전 탐정'으로 알려진 주인공 신쥬로의 추리가 사실은 옳고, 명탐정으로 알려진 IT 거물이자 공권력의 흑막인 카이쇼 린로쿠의 추리가 틀린 것이라는 설정은 정말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권력 집단의 조작으로 인해 카이쇼의 추리가 매번 옳은 것으로 발표된다는 설정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다른 작품에서도 주요 반전 요소로 써먹어도 될 정도로 훌륭한 설정이었는데, 1화에서 너무 쉽게 소비해버린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 설정 하나 덕분에 감점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추리물로서는 기대 이하였던 만큼, 혹시 다음 시즌이 제작된다면 보다 추리 요소에 진지하게 접근해 주었으면 합니다.

에피소드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화

"당신에게 있어 남편은 뭐야?"

파티장에서 살해당한 부도덕한 기업회장 사건.

캐릭터 소개와 세계관 등을 설명하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카이쇼 리에 - 카이쇼 린로쿠 - 유우키 신쥬로라는 주요 탐정역들의 추리를 연달아 보여주며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입니다. 그런데 짧은 시간 탓에 추리가 그냥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일방적인 구조인 탓에 추리적인 내용은 그닥이었습니다. 트릭도 고전적이라 신선함이 떨어졌고요.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재미는 있었지만 작품의 기본 설정 소개 이외의 가치는 별반 없는 에피소드였습니다.

2화

"정말 네번째 요나가히메는 누구야?"

아이돌 요나가히메의 프로듀서 살해사건을 다룬 에피소드. 요나가히메의 죽었다는 네번째 멤버에 얽힌 동기는 그럴싸했는데 범인이 딱히 변장까지 해 가면서 다른 멤버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은 것이 옥의 티였습니다. 그래도 작품 설정과 이야기가 잘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 평작 수준은 되는 듯 싶네요.

3화

"사사 카자모리는 누구?"

사사가문의 당주 카자모리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이야기. 전개는 깔끔하나 7년 전 폭사한 전당주 사사 코마모리가 인공지능의 권위자였다는 것에서 카자모리의 정체가 쉽게 예상되었으며 무엇보다도 동기가 부실하다는, 아니 아예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입니다. 부유하지만 기괴한 콩가루 집안이라는 일본 본격물의 전통적 설정을 근미래 배경에 걸맞게 각색하고 나름의 트릭으로 구현했다는 것은 좋았는데 추리적으로는 그닥이어서 아쉽네요.

4화

"그 시체는 누구?"

3화에서 이어지는 에피소드. 사사 카자모리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 시체는 그럼 누구였는지를 밝혀내는 내용입니다. 이 에피소드에서부터 인과의 질문이 효과가 없고 신쥬로의 추리에 의해 사건이 밝혀지는 비중이 높아집니다.

그래도 추리 자체가 워낙에 별볼일 없고(경찰 공조수사였다면 단박에 결판났겠죠), 인간의 욕망에 더해 정의가 무엇인지를 세계관과 믹스하여 보여주는 부분은 지나친 훈계조라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덧붙이자면 작화도 이 에피소드부터 뭔가 미묘하게 변해서 그닥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5화

"어젯밤 너는 여기에 돌아왔었지. 거기서 뭘 봤지?"

'일륜의회'라는 우익단체(로 보이는) 리더 시마다 하쿠로우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시마다 하쿠로우의 아들 시마다 지로가 배우라는 것은 뭔가 고이즈미를 연상케도 하지만 내용은 풍자와는 별 관계는 일종의 보물찾기 이야기였습니다.

신쥬로의 최초 추리가 실패하고 인과와 신쥬로의 인연이 살짝 드러나며 인과의 다른 능력 (파워)이 드러나는 등 설정면에서 특이한 부분이 많이 보여지는 에피소드이긴 하나 추리적으로는 정말로 심각할 정도로 별 내용이 없더군요... 외려 카이쇼의 추리가 더 그럴듯했을 정도이니 말 다했죠. 희생자와 살아남은 자에 대한 정의 이외에는 건질게 없었던 수준 이하의 에피소드였습니다. 덧붙이자면 작화도 여전히 별로였고요.

6화

카이쇼의 옛친구 야지마가 신쥬로에게 카니쇼의 장서 중 한권인 책 속에서 발견된 암호에 대해 의뢰하는 내용으로 야지마가 아내의 잠자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 같은 일상계적인 요소가 괜찮았던 소품입니다. 야지마의 아내와 카이쇼간의 불륜을 암시하는 전개에서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는 결말도 좋았고요. 마지막 카이쇼의 "진실은... 언제나 하나인 걸까" 라는 모 유명작품 명대사를 비트는 센스도 좋았습니다.

그 외에도 인과의 기묘한 능력을 통한 활약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설득력 측면에서 점수를 줘야하는 부분이라 생각되네요. 이렇게 판타지스러운 설정 없이도 잘 만들 수 있었는데 대관절 왜 인과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7화

신쥬로가 6화 사건의 흑막인 야지마의 동료 죄수인 소설가를 면회하던 중 그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 이야기를 듣고나서 전쟁 전 영화 촬영현장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이야기. 전쟁에 대한 나름의 시각은 있으나 여러 수수께끼같은 설정을 가지고 장난친 느낌만 드는 알 수 없는 에피소드였어요. 뭘 이야기하려는지도 모르겠고 사건도, 추리도 없지만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어요. 물론 다음 에피소드와 이어지기에 이 에피소드만 놓고 평가하기는 좀 무리이긴 합니다.

8화

전편 마지막에 벌어진 영화 촬영 현장에서의 감독 살인사건과 주요 용의자로 몰린 신쥬로가 추리를 통해 진범을 밝혀내는 이야기.

교도소라는 무대에서 모니터 가능한 수감자 번호를 이용하여 만든 트릭은 작품에 꽤 잘 어울렸고 마지막 추리쇼에서 결정적 단서로 내민 상자에 가린 범인에 대한 피해자의 대사도 제법 디테일이 살아있는 부분이었어요.

그러나 전편에서 부터 이어지는 다양한 설정들의 떡밥이 해결되지 못하고 범죄 자체가 우발적이기에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설가와 별천왕 (벳텐오우)의 관계라는 핵심 요소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네요.

9화

카이쇼 린로쿠가 적들을 모아놓은 TV토론회에 참석했다가 폭발사고에 휘말리고 그들을 살해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전편에 등장한 별천왕의 최면술을 주요 트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기억 디테일이 어긋나는 사소한 장치는 돋보이지만 완결되는 에피소드가 아니라서 에피소드만의 평가는 어렵습니다.

10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데 숨겨야만 하는 것은?"

9화의 사건으로 용의선상에 오른 카이쇼가 TV 청문회로 결백을 증명하려하나 인과에 의해 심복인 코야마 검사가 카이쇼의 비밀인 정보조작을 고백하여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고 이후 자동차 폭발사고로 사망하게 된다는 이야기.

추리는 신쥬로가 별천왕의 존재를 알고 카이쇼의 죽음을 의심하는 것이 전부지만 간만에 등장한 인과의 활약(?)과 함께 주요 인물들의 극적인 행동 등에서 서스펜스가 제법 느껴지기에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단지 하나의 진실에 만족하는 것은 거기서 사고를 멈추는 것에 지나지 않아"라고 카이쇼 린로쿠가 대중이 쉽사리 빠지게 되는 음모론에 대해 설명하며 내뱉는 대사도 인상적이었어요. 이 친구 "하나의 진실" 이라는 말을 꽤 좋아하는 듯 싶군요.

11화

"너의 바람은 뭐지?"

9, 10화에서부터 이어져 카이쇼 린로쿠 죽음과 별천왕 존재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에피소드로 대망의 최종회입니다. 3화에 걸친 장편 에피소드답게 복선도 확실하고 단서도 풍부할 뿐 아니라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확실히 장편답게 디테일했어요. 무엇보다도 별천왕 능력에 대한 설명을 보여줘서 일종의 두뇌게임을 보여주는 것이 마음에 들더군요.

그러나 하야미가 별천왕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후루써클이라는 조직과 함께 어떻게 인과까지 조종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등 시청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설득력도 함께 놓친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정통 추리물이 되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부분을 좀 더 신경썼어야 했을텐데 말이죠.

아울러 몇몇 설정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 것은 요사이 유행인 듯 한데 별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혹 시즌 2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같지는 않네요.

2005/05/08

혈의 누 - 김대승 (스포일러 있습니다!) : 별점 3점

1808년 조선 말엽, 제지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외딴 섬 마을 동화도에서 어느 날 조정에 바쳐야 할 제지가 수송선과 함께 불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건을 해결하고자 수사관 원규 (차승원) 일행이 동화도로 파견되었다.
섬에 도착한 첫 날, 화재사건의 해결을 서두르던 원규 일행 앞에서 가시 나무에 꽂혀 죽은 참혹한 시체가 나타났고, 사건을 조사하던 원규는 모든 사고의 발단이 7년전의 마을의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나 5명의 고발에 의해 천주교도로 몰려 온 가족이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강객주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고발한 인물들이 강객주 가족들의 참혹한 죽음과 똑같은 죽음을 당하는 연쇄살인 사건이 계속되는 한 편, 원규는 7년전 사건 당시 토포사로 강객주의 처형을 집행한 인물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고민에 빠졌다. 한편 마을은 점점 강객주의 원혼을 두려워 하는 주민들에 의해 흉흉한 분위기가 감도는데...

국내에서 거의 처음 보는 듯한 "역사 미스테리" 영화입니다. 미스테리를 표방한 영화라 제가 안볼 수 없었죠. 사실 큰 기대를 하고 본 것은 아니었는데 영화가 제 생각보다도 완성도가 높아서 놀랐습니다.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다음에 공포와 광기의 연쇄살인이 시작된 이유가 "범인이 싸이코라서"라는 흔해빠진 공식을 따르지 않고 제법 설득력있게 전개되고 있는 점, 그리고 역사 미스테리를 표방한 영화답게 앞서 말한대로 중후반까지는 확실하게 추리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으면서 짜임새 있는 각본으로 범인과 원규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억울하게 죽은 강객주라는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무엇보다도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고 잔악한 존재인가"를 잘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결국 강객주 사건 당시 몇푼의 돈과 두려움으로 그를 구명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집단 광기에 휩싸여 다른 사람의 피로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려는 집단 행동을 보이는 부분의 광기 폭발에 대한 표현은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거든요. 강객주의 저주대로 피의 비까지 내리며 그야말로 제대로 "지옥"을 보여주니까요.
물론 이 부분에서는 감독이 너무 2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 것 같아 약간 아쉽기도 해요. "인간의 잔악성"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너무 지나쳐서 그 전까지 추리물로 잘 전개되는 이야기가 약간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을 주는 탓입니다.

하지만 제목이나 선전대로 "추리"물로서의 비중은 생각만큼 높지 않습니다. 이런 류의 영화는 대체로 범인과 탐정역의 주인공의 두뇌싸움이 펼쳐지는 편인데 이 작품에서는 거의 종반까지 강객주의 은혜를 입은 "두호"(지성)가 범인이 아닐까 하는 단서만 던져줄뿐 그에 대한 묘사나 설명은 극단적으로 배제되며, 영화 자체는 무고하게 강객주를 고발한 5명의 인물이 누구인가? 다음에 죽음을 당할 차례는 누구인가? 라는 명제에 집착하고 오히려 범인이 누구인지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혹하게 재현된 살인 사건들의 리얼한 묘사에 따른 공포와 사건이 전개되며 가파르게 상승하는 재미 요소는 확실하지만 범인과 탐정과의 치열한 "게임"의 요소는 거의 전무한 편입니다. 

물론 중반까지는 원규의 추리와 사건 해결을 위한 노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전개되는 편이라 이쪽 관객을 만족시켜는 줍니다. 특히 초반 가시나무에 꽂힌 시체의 검시를 통한 진상 규명은 상당히 색다르게 다가온 부분으로 생생한 재미를 가져다 주었고, 아무도 없었던 배의 방화사건의 트릭 알아내기도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강객주의 살아남은 딸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남장을 하고 3년여 동안 섬으로 방문한 이유 - 그녀를 살려준 중요 인물 (즉 범인) 이 섬 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를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큰 문제가 있는데, 범인으로 밝혀지는 김인권(박용우)에 대한 설득력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겁니다. 이쪽 장르에서 본다면 치명적인 약점이지요. 악덕 지역유지의 전형으로 보이나 사실은 강객주의 딸과 사랑하는 사이였다라는 설정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종반까지 거의 언급되지 않은 그의 "바다 공포증"은 가장 결정적 단서인데 영화 이야기 내내 등장하지 않아 마지막에 설명될때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앞부분에서 인권과 원규가 처음 대면할때 이 공포증에 대한 단서를 약간만이라도 던져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그 외에도, 극 초반에 무당에게 빙의한 강객주의 원혼같은 장면은 필요없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네요. 무당이 등장할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미녀 캐릭터가 필요했던 걸까요?
그리고 한가지, 원규가 왜 마지막의 강객주의 딸과 인권과의 암호편지를 바다에 버리는 지는 정말 알 수 없었으니 아시는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제 생각에는 "그냥 묻어버리려고" 한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한마디로 말한다면, 꽤 잘 만든 역사 스릴러입니다. 배우들 연기도 나무랄데 없고 나름대로 밀고 땡기는 맛이 잘 살아 있습니다. 저는 정말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이쪽 장르물은 국내에도 거의 없는 편이긴 해도 비교 대상 자체가 거의 없을 정도로 괜찮은 작품입니다. 사실 "영원한 제국"이라는 작품은 추리물은 절대 아니었다 생각되거든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지성은 왜 이 영화에 나온걸까요? 대사도 별로 없을뿐더러 "말도 안돼는 이유로 주인을 배신하고 끝내는 난도질 당해서 죽는" 최악의 역인데 말이죠....

PS : 여친이 "범인은 차승원이다!"라는 스포일러를 메신저로 보내줘서 조금 열받았었는데 범인이 아니라서 더 황당하고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