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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1

절벽 - 현재훈 : 별점 3.5점

거의 백만년만의 추리소설 포스팅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새 너무 독서가 뜸했네요. 개인적으로도 바쁘고 여유가 없다보니 책을 지긋이 읽는 것 자체가 좀 무리더군요.

그래서 기분전환도 할 겸 이번에는 단편집에 손을 대 보았습니다. 이 책은 저도 잘 몰랐던 한국 작가 현재훈님의 단편집입니다. 우연찮게 검색을 통해 알게된 작가인데, 이렇게 새로운 작가분들을 알게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합니다. 척박한 국내 추리 문단에서 작품을 발표해 왔다는게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어쨌건 책 소개를 하자면, 이 책에는 "절벽", "곰팡이", "낙화", "검은 반점", "기만자", "부녀", "모래성", "흑무", "복제인간", "잠꼬대", "목소리", "족적" 이라는 총 12편의 작품이 실려있습니다. 몇몇 작품은 20여페이지 내외의 꽁트 분량이지만 양적으로는 풍성합니다. 수록작 대부분은 일본 사회파적인 느낌이 물씬 납니다. 그러나 암울했던 독재시대인 80년대 당시의 분위기를 작품과 캐릭터, 설정에 드러내면서 이야기와 연관시키는 본격적인 사회파 작품은 아닙니다("검은 반점"에서 노동운동이 약간 표현되는 정도입니다). 분위기만 따라갈 뿐이지요. 그래도 황금만능주의를 주요 테마로 하여, 범행의 동기와 수사의 과정을 치밀하게 보여주는 부분은 정통 사회파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또한 "낙화"나 "검은 반점"의 트릭은 작품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해 주며, "부녀"나 "모래성"에서의 경찰 수사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은 한국 추리문학에 이런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을 심리묘사 중심으로 끌고나가는 문장력도 빼어납니다. 순수문학가 출신다운 내공을 유감없이 보여주네요. 한국적인 특색을 살린 몇몇 묘사들도 굉장히 반가웠고요. 그야말로 숨겨졌던 한국 추리문학의 재발견에 가까운 작품이랄까요.

그러나 단점 역시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단점이 큽니다. 수록작 대부분은 '"A"가 저지른 사건에는 "B"과 관련되어 있고 "A"와 "B"가 티격태격하다가 전혀 엉뚱한 "C"에 의해 사건이 밝혀진다.'는, 반전도 아닌 깜짝쇼에 의존한다던가, 결국 범인이 자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작품이 너무 많습니다. 사실상 독자가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요.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들과 설정 등에서 지나칠 정도로 유사성을 보이는 점도 거슬렸던 점입니다. 대표적으로 표제작인 "절벽"의 예를 들 수 있겠죠. 이 작품은 마츠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에 수록된 "수사권외의 조건"의 설정을 많이 따라했거든요. 사실 백영호라는 인물이 복수를 위해 "8년"의 세월을 기다리며 자신을 감추는 과정과 범행에 대한 디테일(상상이지만)은 거의 똑같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소설"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할 정도니까요.
"잠꼬대"라는 작품에서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과 주요 트릭을 언급하고 있으며, "곰팡이"는 "제로의 촛점"과 캐릭터 면에서 유사한 등 많은 부분이 겹칩니다.

그리고 작품마다 여러 고전과 명대사, 명언등이 언급되고 철학적 주제를 논하기까지 하는데 영 별로였습니다. 순문학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런 쓸데없는 묘사를 들어내면 작품이 더 깔끔해졌을텐데 아쉽네요. "추리소설"이 그다지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70~80년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주 색다른 작품들이었고 좋은 독서였습니다. 비록 많이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한국 추리문학을 논할때 빼놓으면 안되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 작품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의미도 크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85년도에 출간된 책인데 이미 절판되어 정보조차 찾을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합니다. 구하실 수 있다면 한번 찾아서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절벽

이승준은 과거 가난했지만 사장의 딸 홍정아와 결혼하여 출세했다. 그러나 과거의 첫사랑과 우연히 조우하여 불륜을 저지르고, 과거 부하 백영호의 아내와도 불륜관계였다가 그 아내를 사망케하고 도주한 과거가 있었다. 이 사건으로 복수심에 불타던 백영호는 때를 기다린다...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출세하고 싶었던 가난뱅이 청년과 황금만능주의는 "아메리카의 비극" 등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테마죠. 하지만 이 작품이 특이한 것은 출세를 위해 과거 교제했거나 임신한 여인을 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출세하고 난 뒤에 불륜이 시작된다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한국적인 전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지나치게 통속적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래도 공범자가 있다는 트릭과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잘 어우러져서 상당한 수준의 사회파 추리물로 만들어 졌습니다.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백영호"라는 인물의 설정을 앞서 말했듯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따왔다는 점입니다. 좀 무리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곰팡이"

부유한 저명인사 허진영은 그녀의 과거가 양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김학수라는 인물에게 협박을 당하는데.... 

6.25 동란때의 숨겨야 하는 과거와 현재가 밀결합되고 있는 점, 그리고 과거에서 파생된 범죄가 범죄를 낳는 점 등 전형적 사회파 추리소설의 틀을 따르고 있는 작품입니다. 나름의 트릭과 사건 전개, 그리고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고요.

그러나 마츠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촛점"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협박자와 내연의 관계에 있어 같이 살해당한 여인을 쫓아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탐정역의 박상호라는 인물이 별로 와닿지 않는다는 단점이 아쉽습니다.

"낙화"

화가인 내가 작품 활동을 위해 머무는 산장에 친구 박희주 부부가 찾아와 머물게 되었다. 박군은 아내 문영과의 사이가 멀어진 뒤 처제 난영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문영이 산장 베란다 밑 절벽으로 떨어져 죽었다. 방은 밀실상태였고 문영의 손에는 박희주의 양복단추가 쥐어져 있던 상태였다. 

밀실 + 심리 트릭이 돋보이는 잘 짜여진 정통 추리물입니다. 지나칠정도로 치정극으로 치우쳐져서 통속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인물 설정과 상황 묘사들로 추리적인 매력이 많이 희석된게 아쉽지만 나름대로의 동기와 트릭, 범행방법 모두 납득할만한,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결말부분에서 너무 "끝"을 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너무 튀었다는 것인데 그래도 작품에 흠집을 낼 정도는 아닙니다.

"검은 반점" 

신혼여행 중 신부 한미숙이 바닷가에서 실종된 후, 위도라는 섬에서 청산가리를 음독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체가 입고있던 실내의가 바닷물에 오염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바닷물로 흘러간 상태는 아니었지만, 구역내의 어떠한 배도 위도로 여자를 실어다 준 배는 단 한척도 없었다. 

시체가 어떻게 그 섬에 있을 수 있었을까? 라는 순간 이동 트릭을 테마로 한 작품입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꿔치기 트릭도 등장하는 등 추리적으로는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해당 지역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바탕이 된 듯한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범인이 시체를 은닉하거나 자연스럽게 유기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만든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과 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맥없이 범인의 자백으로 작품을 마무리 지은 것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좀 힘드네요.

"기만자" 

주인공의 독백만으로 이루어지는 기묘한 작품입니다. 과연 아내 희숙을 죽인것은 또는 죽게 만든 것은 누구인지, 경선을 죽게 만든 것은 누구인지, C군은 어떻게 된 것인지가 뒤엉켜서 흘러가는 복잡한 작품이기는 한데 썩 재미는 없더군요. 참신한 시도는 눈여겨 볼 만 하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부녀" 

진아물산 사장 김인호의 큰딸이 밀실에서 청산가리에 의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녀가 자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형사 김익수는 치밀한 수사 끝에 여러 정황증거를 토대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게 되는데... 

과거의 사건에 의한 범죄라는 테마는 사회파 추리소설에 흔히 나오는 것이죠. 이 작품은 과거의 죄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현재에 다시 범행을 저지른다는 줄거리와 더불어 현재 벌어진 사건에 대한 경찰의 치밀한 수사가 디테일하게 그려진 전형적 사회파 추리소설입니다.

작중에 경찰 스스로의 입으로 밝히듯 결정적 증거가 없다!라는 추리소설로서는 사실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고, 결말도 범인의 자백으로 끝나는 등 "추리" 적인 요소로만 본다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개는 지금 읽어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수작입니다. 디테일한 수사와 여러 단서를 통해 유추해내는 추리가 무척이나 설득력 넘치는 덕분입니다.

"모래성"

H부동산의 회장 신병호가 자신의 저택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수사관 한정수는 제한된 단서와 증언을 토대로 서서히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데... 

여러 용의자, 복잡하게 꼬인 단서들과 서로 다른 증언들이 교차되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수사 추리물입니다. 수록된 작품들 중 가장 긴 작품 중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범행을 하기 전 똥을 누면 운이 좋다"와 같은 속설까지 작품에 끌어들일 정도로 세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소설 속 불가능 범죄가 아닌 현실의 실제 있는 강도사건을 보는 듯한 자세한 상황 및 배경 묘사가 일품이기 때문입니다.
발자국이나 침투경로, 새벽에 들은 소리, 왜 비상벨을 누르지 않았는지 등의 다양한 단서들을 필요할 때 마다 하나씩 던져주는 등 전개도 흥미진진하고요.

하지만 신병호의 과거와 현재, 강남 복부인들과의 관계라던가 실제 사건에서의 몇몇 미심쩍은 단서 등 벌려놓은 소재를 미처 수습하지 못하고 서둘러 끝맺은 마무리 부분이 너무나 아쉽네요. 보다 긴 중편 이상 길이의 본격 사회파 추리소설로 전개하였더라면 우리나라 추리문학의 고전으로 길이 남지 않았을까 싶은데 결말이 매끄럽지 못해서 평작에 머무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시 읽어봄직한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흑무"

문학교수 김용석은 학문에서 좌절하고 부인 이지영과의 관계도 원만치 못하여 술로 고독을 삼키던 중, 단골 술집에서 접근한 한 여인에게 끌려 그녀의 집으로 가게 된다. 

복수극이긴 한데 치밀한 맛이 떨어지는 소품입니다. 주인공의 단골 술집에서 접근한 여인, 그에게 원한이 있는 범인 등 한번 수사를 한다고 치면 걸려들 내용들이 너무 많아서 완전범죄로 가장하기에는 너무 미흡하지 않나 싶더군요. 작가의 순문학에 대한 강박관념이 느껴질정도로 토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문학적인 이론과 평가가 난무하는 것은 내용에 혼란만 더하고요. 그냥저냥한 평작이었습니다.

복제인간 

2015년 서울 교외의 아파트촌에서 주미리여사가 살해당했다. 사건과 더불어 복제인간 유아 성추행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근미래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흉기가 총이라는 것과 복제인간 아이라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SF적인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는게 특이합니다. 사실상 복제인간 아이라는 것도 "쌍둥이"라는 설정을 위해 가져온 것이니 만큼 별다른 것이 없어서 왜 근미래를 무대로 묘사했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이야기 자체는 평이하고 예상대로 전개되기에 딱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없습니다. 소품 수준의 평작입니다.

"잠꼬대" 

최건호는 아내 은영의 불륜을 의심하여 여러가지로 그녀를 시험해본다. 그러던 중 은영이 독극물에 중독되어 숨지고, 사건은 자살로 판명되는 듯 하지만.... 

한마디로 "의처증"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집요하고 수법이 잔인한 편이라 좀 놀랍더군요. 시대를 앞서간 듯한 강박증에 대한 심리묘사도 대단하고요.

하지만 이러한 의처증 이외의 사건 전개는 너무 막 나가기에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건이 주요 전개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부분에서 끝나버리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의처증 증세의 진상이 폭로되는, 즉 최건호는 의처증으로 의심받아 정신병원에 수용되지만 앞부분에서는 결백한 듯 했던 은영이 실제로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식의 전개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목소리" 

박찬식은 사업과 연애의 라이벌이었던 정진호를 제거하고 그의 아내 미경과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미경이 살해되고 모든 정황이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는 상황에 빠지자 박찬식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자가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도청과 가명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피력되는 복수극입니다. 하지만 "도청" 방법 이외의 추리적인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기에 정통 추리물로 보기엔 무리가 있네요. 경찰의 수사로 인해 끝나는 결말 역시 많이 허무한 편입니다.

"족적" 

조숙경이 살해된다. 제1용의자는 불륜관계였던 화가 김기오. 그러나 김기오는 스스로 누명에 빠졌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이 연상되는 이색단편입니다. 화자이기도 한 주인공이 스스로의 진술을 사기친다는 설정이 동일하거든요. 하지만 이야기가 정교하지 않으며 별로 공평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아서 굉장히 무리가 많습니다. 그 외에도 경찰이 확실한 정황증거가 있음에도 기소하지 않는 황당한 모습을 보이는 등 여러모로 평균 이하인 졸작입니다.

2013/03/12

잠복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3점

잠복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모비딕과 북스피어의 세이초 시리즈 중 처음으로 간행된 단편집. 표제작 포함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세련된 책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깔끔한 번역, 명쾌한 해설 등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시리즈의 한 권이며, 정통 추리물부터 순문학에 가까운 범죄드라마까지 실려있기 때문에 마츠모토 세이초의 진면목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책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8편 중 4편이 이미 읽어보았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3편은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에 수록되어 있고요. 이 단편집을 구해서 읽을 정도라면 미야베 미유키의 걸작 단편 컬렉션 정도는 모두 갖춰 읽었을 텐데, 중복되는 작품이 많은 것은 굉장히 아쉽습니다.

때문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이 책 자체만 놓고 본다면 4점도 충분하나 어쩔 수 없는 반쪽자리 책이기에 약간 감점하였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지 않으셨다면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얼굴"

"Japan 미스터리 걸작선 1"에서 예전에 읽었었던 작품이기는 한데, 이 책의 번역이 훨씬 좋아서 다시 읽는 맛은 충분했습니다. 이시오카에게 온 편지를 경찰이 의심하는 이유가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등 추리적인 요소도 담뿍 담겨있고요. 그러나 결말의 급작스러움은 여전히 조금 아쉽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잠복"

강도 사건의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그의 옛 연인이 결혼 후 살고 있는 시골 소도시로 잠복 수사를 떠난 형사 유키의 이야기. 단순한 잠복 말고 별다른 내용은 없는 작품이라 추리물로 보기는 다소 어렵습니다. 

그래도 결혼 후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한 여인에게서 갑자기 불꽃이 튀는 전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워낙 잘 쓴 글이라서, 거장의 시작을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귀축"

바람을 피우다 들통난 뒤 세 자녀를 떠안게 된 남자가 본처의 등쌀에 못 이겨 아이들을 제거해나간다는 내용의 작품. 제목 그대로 "귀축"스럽습니다. 자기 아들딸로 알고 있던 아이들을 버리고 죽인다는, 잔인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굉장히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어서 소름이 돋네요.

다만 추리적으로는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막내아들의 사망사고, 큰아들 리이치가 가지고 놀던 돌과 인쇄소를 연결하는 부분 정도만 눈여겨볼 만합니다. 추리물이라기보다는 범죄 드라마라고 보아야겠지요. 별점은 3점입니다.

"투영"

시골 소도시의 부정부패에 맞서던 한 공무원의 사고사에 얽힌 진상을 추적해나가는 내용으로 정교한 원격 살인 트릭이 등장하는 정통 추리물입니다. 그러나 술에 취했다고 해도 용접 불빛과 카메라 플래쉬, 외등을 착각하고 아예 방향을 반대로 잡는다는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술에 취하면 착각보다는 몸에 익은 습관, 즉 원래 가던 방향으로 갔을텐데 말이지요.

현실을 고발하는 사회파적인 분위기가 몰락한 신문기자 캐릭터인 주인공 다이치와 "요도신보" 관계자들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지는 건 꽤 볼만했지만, 추리물로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목소리"

실수로 강도살인사건 범인의 목소리를 들었던 전화교환수가 1년 뒤 범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은 뒤 살해당한다는 내용으로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하는 정통 추리물입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정교하게 짜여진 트릭이라서 정통 추리적인 부분에서의 만족도는 높습니다.

그러나 도모코의 남편 시게오가 범인들과 엮인다는 설정부터 작위적입니다. 피해자 도모코가 제 발로 범인들에게 찾아간 이유도 석연치 않고요. 여러모로 전개는 그다지 정교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범인들이 석탄을 이용하여 복잡한 알리바이 트릭을 만든 이유도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

"일년반만 기다려"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에 실렸던 작품들입니다. 좋은 작품들이죠. 두 작품 모두 별점은 3점.

"카르네아데스의 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중)"에 수록된 작품. 평가는 전과 동일합니다. 별점은 2점.

다시 읽어보아도 구무라라는 녀석이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네요. 자기 말대로 협조해준 애인 스미코를 더럽혀졌다고 버릴 생각을 하다니...

2003/12/14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

원 출처는 심농님의 홈페이지였으며 (현제 폐쇄), 내용은 국일미디어 간 "유령신사" 뒷부분에도 실려있습니다. 해설은 원본 작성하신 분과 제 의견이 섞여 있습니다. 이런 리스트는 사실 별 의미는 없지만 제목만 보는것도 꽤 재미있더라고요.

001 옥문도 1947 요코미조 세이시 /요코미조 세이시는 긴다이치 하지메(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의 창조자입니다. 뛰어난 본격 작가죠.
002 허무에의 공물 나카이 히데오 / 이번에 동서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003 점과 선 1957 ; 마츠모토 세이초 / 열차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
004 불연속 살인사건 1947 ; 사카구치 안고 /ㅎㅎ 바로 전에 읽었던 작품이죠. 동서에서 이번에 나왔습니다.
005 흑사관 살인사건 1934 ; 오구리 무시타로 / 동서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006 도구라 마구라(환마술) 1935 ; 유메노 규사쿠 / 역시 이번 동서 리스트에.. (대체 언제 나올지는 의문입니다만)
007 혼진 살인사건 1945 ; 요코미조 세이시 /긴다이치 코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죠. 트릭은 수긍하기 힘들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더 큰 듯 싶습니다.
008 검은 트렁크 1956 ; 아유가와 데츠야 / 동서에서 역시 이번에...
009 회귀천 정사 1980 ; 렌죠 미키히코 / 앗 모르는 작품 (*2011년 시공사에서 출간됨. 걸작입니다)
010 문신 살인사건 1948 ; 다카키 아키미츠 / 유명한 작품이죠. 어서 제대로 다시 소개가 됐으면 좋겠네요. (*동서에서 출간)
011 산고양이의 여름 1984 ; 후나토 요이치 / ?
012 대유괴 1997; 텐도 신 /텐도 신의 대유괴도 참 많이 들어본 작품입니다. (*출간되었습니다. 좋은 작품이에요)
013 이전동화 1923 ; 에도가와 람포 / 국내 소개 됐고 단편입니다. 데뷰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일종의 암호 트릭. 동서 "음울한 짐승"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에도 수록)
014 음수 1928; 에도가와 람포 / 에도가와 람포의 초기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 동서의 "음울한 짐승" 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권에도 수록)
015 제로의 초점 1959 ; 마츠모토 세이초 /0의 초점으로 국내에 출간돼 있죠. 저도 하서판으로 갖고 있는데 전형적인 사회파 작품입니다.
016 11매의 트럼프 1976 ; 아와사카 츠마오
017 아 아이이치로(악애일랑)의 낭패 1978 ; 아와사 카츠마오 / 이 작품도 많이 상위권에 언급되는 작품입니다만.. (*시공사에서 출간, 좋은 작품입니다)
018 기아해협 1962 ; 미나카미 츠도무
019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1962 ; 유키 쇼지 /역시, 낯이 익습니다. 흠. (*검은숲에서 출간) 
020 위험한 동화 1961 ; 츠치야 다카오 / 작가는 낯이 익은데..
021 점성술 살인사건 1981 ; 시마다 소지 / 나왔군요! 걸작~
022 복잡한 기계 장치 1978 ; 아와사카 츠마오
023 사건 1977 ; 오오카 쇼헤이
024 우리 1983 ; 기타가타 겐조
025 심리시험 1925 ; 에도가와 람포 /동서 "음울한 짐승"에 수록. 조금 낡은 트릭입니다만, 재미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에도 수록)
026 상자 속의 실낙 1978 ; 다케모토 겐지
027 굶주린 늑대 1981 ; 시미즈 다츠오
028 대낮의 사각 (백주의 사각) 1959 ; 다카키 아키미츠 / 이 작품도 대표작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동서에서 나온다곤 하는 것 같은데요.. (*검은숲에서 출간)
029 황토의 분류 1965 ; 이쿠지마 지로
030 도망의 거리 1982 ; 기타가타 겐조
031 야수는 죽어야 한다 1958 ; 오야부 하루히코 / 고려원에서 문고판으로 나온 책입니다.
032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1955 ; 다카키 아키미쓰 / 아키미쓰의 작품이 세 개나;; 흠 보고 싶어요. (*검은숲에서 출간됨)
033 나메쿠지 쵸야 체포 소동 1968 ; 츠츠키 미치오.
034 끝없는 추적 1967 ; 이쿠지마 지로
035 고양이는 알고 있다 1957 ; 니키 에츠코 /역시 들어봤던 작품 (*시공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036 묵시록의 여름 (섬머 아포칼립스) 1981 ; 가사이 기요시
037 고도의 마인 1929 ; 에도가와 람포 /국내에 나와 있죠. 하서판으로 읽었는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038 검은 백조 1959 ; 아유가와 데츠야
039 타오르는 파도 1982 ; 모리 에이
040 변호 측 증인 1963 ; 고이즈미 기미코 / 검찰측 증인인가...^^ (*검은숲에서 출간, 무난했습니다)
041 그림자의 고발 1963 ; 츠치야 다카오 /오 제목이 정말 멋지군요.
042 악마의 공돌이 노래 1957 - 요코미조 세이시 /흠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
043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1982 ; 시마다 소지 /미타라이 탐정의 두 번째 사건. 너무 보고 싶어요. (*시공사에서 출간)
044 여덟 개의 묘가 있는 마을 1949 ; 요코미조 세이시 / 팔묘촌..
045 신사동맹 1980 ; 고바야시 노부히코
046 징기스칸의 비밀 1958 ; 다카키 아키미츠 /이 소설도 상당히 유명한 작품으로 역사 미스테리로 알고 있습니다.
047 갈라진 해협 1983 ; 시미즈 다츠오
048 리라 장 사건 1968 ; 아야가와 데츠야
049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1929 : 에도가와 람포
050 마른 풀의 뿌리 1961 ; 친신
051 밤의 오딧세이아 1981 ; 후나토 요이치
052 고층의 사각 1969 ; 모리무라 세이이치 /정말 엄청나게 끈질긴 작품입니다. 하서 수록.
053 모래그릇 1960 ; 마츠모토 세이초 /역시 하서. 당시로서는 기발한 흉기가 나오는 전형적인 사회파 작품
054 바이 바이 엔젤 1979 ; 가사이 기요시
055 한시치 체포록 1917 ; 오카모토 기도 / 와 정말 옛날 작품이네요. (*책세상에서 출간)
056 파노라마 섬 기담 1926 ; 에도가와 람포
057 한 개의 납 1959 ; 사노 요 /단편이 국내에 소개가 됐어요
058 사루마루 환상 여행 1980 ; 이자와 모토히코
059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1961 ; 츠즈키 미치오
060 초대받지 않은 손님 1980 ; 사사자와 사호 /사사자와 사호도 많이 언급되는 작가.
061 짙은 갈색의 파스텔 1982 ; 오카지마 후다리
062 인생의 바보 1936 ; 기키 다카타로
063 배덕의 메스 1960 ; 구로이와 쥬고 /제목 참;;
064 증발 1972 ; 나츠키 시즈코 / W의 비극이 대표작아닌가요? 이 작품은 잘 모르겠는데 더 순위가 높네요.
065 나폴레옹 광 1979 ; 아토다 다카시 /단편입니다. 월간 미스터리에 수록된 작품. 단편집도 국내에 출시가 됐었는데요. 저는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서늘~합니다.
066 부호 형사 1978 ; 츠츠이 야스다카 / SF소설가로 더 유명한 작가인 듯 한데 이 작품도 보고 싶네요. (*검은숲에서 출간,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067 샤라쿠 살인사건 1983 ; 다카하시 가츠히코
068 잠 없는 밤 1982 ; 기타가타 겐조
069 나비부인 살인사건 1946 ; 요코미조 세이시 / 동서에서 나왔습니다. "혼진 살인사건"과 같이 수록 되어 있습니다.
070 죽음이 있는 풍경 1965 ; 아유가와 데츠야
071 살인귀 1931 ; 하마오 시로
072 불꽃에 그림을 1966 ; 친신
073 검은 화집 1960 ; 마츠모토 세이초
074 아쿠쥬로 체포기록 1939 ; 히사오 쥬란
075 W의 비극 1982 ; 나츠키 시즈코 / 좋은 작품입니다.
076 베를린 1888년 1967 ; 가이도 에이오
077 안녕 아프리카의 여왕 1979 ; 모리 에이
078 단쥬로 할복 사건 1959 ; 도이다 야스지
079 거대한 환영 1962 ; 도가와 마사코 / 국내 소개된 작품은 "레이디 킬러"
080 마리오네트의 덫 1977 ; 아카가와 지로 / 유명세에 비하면 작품은 사실 좀 별로라는 생각이...^^ (*국내 출간, 쓰레기였습니다)
081 완전범죄 1933 – 오구리 무시타로
082 내일 날씨로 해두게 1983 ; 오카지마 후다리
083 삼중노출 1964 - 츠즈키 미치오
084 살아나는 황금늑대 1964 ; 오야부 하루히코
085 어두운 낙조 1965 ; 유키 쇼지
086 인간의 증명 1975 ; 모리무라 세이이치 / 어머니.. 그때 그 밀짚모자...
087 유령 열차 1976 - 아카가와 지로 / 아마 데뷰작이죠? (*국내 출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088 뺑소니 1969 ; 사노 요
089 유괴작전 1962 - 츠즈키 미치오
090 비합법원 1969 ; 후나토 요이치
091 장미여자 1983 : 가사이 기요시
092 스탈린 암살 계획 1978 ; 히야마 요시아키
093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1983 ; 기타가타 겐조
094 돌밑의 기록 1948 - 오시타 우타루
095 추락 1958 ; 다카가와 교
096 우리들의 시대 1978 ; 구리모토 가오루
097 호크씨의 타향의 모험 1983 ; 가노 이치로
098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1984 ; 시마다 소지 /보고 싶어요;; (*국내 출간)
099 50만 년의 사각 1976 ; 도모노 로
100 살인에의 초대 1973 ; 텐도 신

2009/07/22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중)-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 별점 3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중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간만에 읽어보는 신간입니다. 어차피 고전작품이니 신간이라 하기도 좀 어렵겠지만, 어쨌건 올 4월에 읽었던 마쓰모토 세이초 선생(이후 "선생" 생략)의 계승자이자 애호가로 유명한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이후 "여사" 생략)가 직접 선정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 중권입니다. 상권 출간 후 3개월만이네요.

상권은 4개의 큰 주제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권은 여자"와 "남자"라는 단순하면서도 쌍을 이루는 딱 2개의 주제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두 주제 모두 앞에 미야베 미유키의 해설이 붙어있다는 것은 상권과 같지만 해설이 너무 멋드러지게, 감칠맛나게 쓰여진 덕분에 작품 본편 내용보다도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일단 짤막하게 작품별로 소개하자면 제 5장 "쓸쓸한 여인들의 초상" 에는 4편의 중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인 "멀리서 부르는 소리"는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된 여성의 감정을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일종의 순애보와 같은 가슴 먹먹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사건이 없이 단지 숨겨진 감정의 단편만을 엿보는 구조라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솔직히 언니를 살해하는 전개로 진행될줄 알았거든요.

두 번째 작품 "권두시를 쓰는 여자"는 일상계 + 본격 미스터리가 결합된 좋은 단편입니다. 하이쿠 동인지에 열성적으로 시를 보내던 한 동호인의 시가 몇 달동안 오지 않자, 동인지 관계자들이 그 이유를 탐문하다가 뒤에 숨겨진 살인 사건을 밝혀낸다는 내용이거든요. 쉽게 지나칠법한 단순한 소재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이끌어내는 거장의 노련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이쿠 동인들이 오지랍이 너무 넓다 싶기는 한데, 이 정도야 허용범위 이내일 테지요. 시대를 떠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세 번째 작품 "서예강습"은 중편 이상 길이의, 이 책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긴 작품입니다. 일단 길이로 다른 작품들을 압도하는 만큼 세부 묘사도 굉장히 치밀합니다. 디테일이 잘 살아있어요.
그러나 치밀한 디테일 묘사를 제외하고는 중편으로서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 남자가 불륜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방을 살해한다는 단순하면서도 뻔한 이야기인 탓입니다. 상세한 설정, 특히 "서예 강습" 이라는 이색적인 소재로 포장한건 좋지만 지나치게 장황한 감이 있어요.
나름 기발한 아이디어가 뒷받침 된 "사체 유기"도 썩 설득력이 있다고 보이기는 어렵고요.

그래서 전체적인 수준을 평가하자면 범작 정도에 그칩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남자이며 이야기도 여자에 대한 것 보다는 수렁에 빠지는 남자에 대한 내용이라서, 왜 "쓸쓸한 여인들의 초상"에 속해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네 번째 작품 "결혼식장의 미소"는 짤막한 소품입니다. 기모노 입히기 자격증 (별게 다 있네요)를 소재로 하여 인간사에 있음직한 에피소드를 이야기로 풀어냈지요. 유사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사원 시마"의 한 에피소드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추리소설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냥 드라마성 짙은 꽁트로 보는게 적합하겠네요.

그런데 이 작품 역시 주제와 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저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별로 쓸쓸하다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 6장 "불쾌한 남자들의 초상" 도 역시 5장과 대칭을 이루듯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 "공범"은 아주 기발합니다. 공범과 함께 은행을 턴 뒤 그 돈으로 사업에 성공한 사업가가 공범이 혹시나 생계가 어려워져 자신을 협박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설정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마지막에 노숙자로 전락한 공범자가 서서히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는 묘사는 미야베 미유키 말대로 "호러" 그 자체였고 말이죠. 

그러나 후반부의 급반전이 너무나 깜짝쇼 수준이라 차라리 반전없이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 부분에서 끝내는 것이 더 좋았을것 같습니다. 아르바이트에 불과한 다카오카가 왜 사건에 집착하며 진상을 밝혀내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전혀 등장하고 있지 않는 것도 설득력을 너무 떨어트렸고요.

좋은 작품이라는건 확실하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뒷끝이 개운치는 못합니다.

두 번째 작품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는 대학교수 구무라의 치밀한 완전범죄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대학교수의 심리 묘사를 제외하고는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제목의 "카르네아데스의 판자", 즉 형법상의 긴급피난과 같은 항목이 적용되는 사건도 아니고 말이죠. 결국 주인공의 복수조차 자신의 파멸을 담보로 한 것인데 이것이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 작품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역사학계를 무대로 한 학자들의 출세욕에 대한 이야기이지 결코 범죄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세 번째 작품 "공백의 디자인"은 추리 소설은 아니고 한 소규모 지방지의 광고부장의 눈물겨운 광고주 접대가 전편에 펼쳐지는 최루성 샐러리맨 드라마(?)입니다. 직장인으로 정말이지 공감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더라고요. 저도 슈퍼갑이라 불리우는 업체들의 횡포를 잘 알기에 눈물없이 볼 수 없었습니다.

단, 여기의 우에키 부장처럼 최후의 순간이 닥치면 한번 뒤집어 엎을 것 같은데, 그러한 마무리 없이 끝나버려 허무했습니다. 샐러리맨의 고충만 그려졌을 뿐 거기서 표출할 수 있는 분노, 그리고 카타르시스가 없어서 드라마가 맥이 빠져버렸어요.

네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인 "산"은 굉장히 특이한 범죄 스릴러물입니다. 뭐가 특이하냐 하면 피해자, 즉 협박을 받는 당사자의 심리가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는 것과 협박의 실질적인 과정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때문에 독자는 현재의 상황을 미루어 판단할 뿐입니다.
이색적일 뿐더러 탐정역을 맡고있는 작가 오카모토의 시선과 독자를 동일하게 위치시키는, 효과적이면서도 공들인 설정이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이외의 내용은 평이한 협박물 수준이며 탐정역이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고 우연 (피해자 동생의 편지)에 기대고 있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운 평작입니다.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기대했던 추리적인 요소가 그닥 녹아있지 않아 조금은 실망스러운 독서였습니다. 추리적인 요소로 만족스러웠던 작품은 개인적인 베스트이기도 한 "권두시를 쓰는 여자"가 거의 유일했거든요. 다른 작품들은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탐탁지 않은 요소들이 많아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대만큼" 이 아니었다는 것이지 결코 재미없거나 수준 미달의 작품들이 아닙니다! 재미있게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기에는 충분한, 거장의 노련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집임에는 분명하죠. 별점은 3점입니다.

아울러 부록 형식으로 미야베 미유키가 독자들에게 묻는 최고의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가 실려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점과 선", "모래그릇", "제로의 촛점" 순이더군요. 제 마음 속 순위도 동일합니다.^^

2013/02/12

불과 해류 - 마쓰모토 세이초 / 이하윤 : 별점 2.5점

불과 해류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하윤 옮김/해문출판사

표제작을 포함하여 총 4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입니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단편집은 이미 미야베 미유키가 엮은 대작 단편집으로 정점을 찍었다 생각했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 읽은 "미스터리의 계보"가 괜찮아서 집어들게 되었네요.

표제작인 "불과 해류"는 다이몬지로 유명한 교토와 이즈 7도를 연결하는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합니다. 기발한 트릭은 아니지만 쿠마시로 - 아즈마 형사 컴비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철벽의 알리바이가 서서히 벗겨지는 묘미는 일품입니다. 교토의 다이몬지, 미나즈루 곶, 미야케지마 등 다양한 곳에서 수사가 진행되는 덕분에,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주는 것도 좋았고요.

그러나 알리바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건 밝혀냈으나, 결국 결정적 증거는 잡지 못하고 진상은 범인 시바무라의 자살과 유서를 통해 증명된다는 결말은 개운치 못했습니다. 철벽의 알리바이를 만들다 보니 생긴 문제라는 점에서 "점과 선"이 떠오릅니다. 결말마저도 비슷하니까요. 작품의 수준을 떠나, 알리바이를 파헤치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의 깔끔함은 모리무라 세이이치 쪽이 한 수 위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증언의 숲"은 르포 느낌이 나는 건조한 전개의 작품으로 경찰이 조작한 증거로 형을 살게 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추리적으로 눈여겨볼 부분은 없고 2차대전 종전 전을 무대로, 당시 경찰의 무식한 수사와 조작이 눈에 띈 정도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종족동맹"은 무식한 촌부의 국선변호를 하면서 무죄평결을 이끌어내지만, 이후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변호사의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알리바이 + 순간이동 트릭이 핵심인데, 진상이 밝혀지면서 개미지옥보다 더한 수렁에 빠져드는 주인공의 심리가 드러나는 결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읽으면서 찌릿찌릿할 정도였어요.
렌페이의 순간이동을 증명할 만한 공정한 묘사가 없고, 펜던트에 대해서는 주인공의 의견이 더 설득력이 높다는 점 등의 단점은 있지만 평균 이상은 충분히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산"은 다른 단편집에서 접했던 작품으로 상세한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결론적으로 평균 별점은 2.5점 정도? 아주 뛰어나지 않으나 거장의 편린은 느낄 수 있는 단편집이었어요. "종족동맹" 한 편만으로도 값어치는 충분히 하니까요. 그러나 마츠모토 세이초를 아직 접하지 못하셨다면, 이 책보다는 미야베 미유키가 엮은 단편집부터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7/03/16

죽음의 유역 (삼중당 미스테리 명작 20) - 미나까미 쓰도무 / 김성일 : 별점 3.5점


석탄 채굴이 주 산업이었으나 지금은 거의 폐광이 되어 몰락해가는 광산도시 시노에서 어느날 59명이라는 광부가 지하에 매몰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와는 별개로 손가락 한개, 그리고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강둑에서 타살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피해자가 손가락의 주인임이 밝혀진다. 후쿠오카에서 파견나온 경위 이와다는 탄광 사고의 격심한 혼란 와중에서도 사건 수사에 집중하며 특히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새 조롱과 카나리아를 추적하여 하나씩 단서를 포착해 나간 뒤 결국 놀라운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다.

전후 사회파의 대표 작가인 미나카미 츠도무(책에는 미나까미 쓰도무 라고 나와 있긴 하지만)의 작품.

사회파 대표 작가답게, 광산과 광부들의 처참하고 위험한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인간의 치졸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설득력 넘치게 그리고 있는 정통적인 사회파 추리 소설입니다. 순문학 작가 출신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한 이력답게 문학적 정취가 넘치며, 세밀하면서도 세련된 묘사로 손에 잡힐 듯한 현장감을 전해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작품에서 벌어지는 2개의 큰 사건, 즉 광산 매몰 사건과 살인 사건을 교묘하게 연결하여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구성한 솜씨가 놀랍습니다. 작가가 드러내고 싶은 사회파적인 테마는 광산 매몰 사건으로 다루면서도, 추리적인 얼개는 살인사건으로 진행시키다가 결말에서 하나로 이어내는데 억지스럽지도 않게, 매끄럽게 마무리합니다.
이와다 경위의 우직한 수사로 하나씩 단서가 밝혀지며 결국 범인이 드러나는 전형적인 사회파 추리소설 전개를 보여주는데, 첫 단서인 카나리아가 너무 결정적이라는 것과 중반 이후 용의자가 특정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진상이 놀라운 수준이라 추리적으로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용의자들 자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결말, 그리고 불필요한 수상한 인물의 묘사 같은 것은 약간 아쉬우나 아무래도 좀 오래된 작품이니 납득할만 하고요.
결론내리자면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사회파 추리소설로도 완성도 높은, 그야말로 한 시기를 대표할 만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동시기의 사회파 거장인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과 비교해 본다면,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드러내면서도 굉장히 치밀한 묘사로 대표되는 문학적 서정성을 지니고 있기에 충분한 경쟁력과 가치가 있다 생각됩니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국내에 소개가 많이 되지 않은 것이 이해가 안되는데,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나오키 상을 탄 "기러기의 절"이나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기아해협"이 국내 출간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 작품 역시 번역이 많이 부실해서 제대로 작품의 "맛"을 느끼기 힘들었는데, 더더욱 제대로 된 출판물로 다시 나와 주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래된 작품이라 구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책인데 귀중한 책을 선뜻 제공해 주신 이영진님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3/07/30

모리무라 세이이치 별세

관련 뉴스. 2023년 7월 24일, 향년 90세로 사망하셨습니다.

80년대에 비교적 많이 소개되었을 뿐이라 최근 독자들은 잘 모를 작가입니다만 한 때는 그야말로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였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상을 비롯한 많은 상의 수상 작가이자, 마츠모토 세이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회파 추리 소설의 거장으로 일세를 풍미했었지요. 영화화도 많이 되었고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대의 라이벌 마츠모토 세이초처럼 대표작 (<<고층의 사각>>, <<인간의 증명>>) 정도는 국내에 꾸준히, 계속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11/05/21

제로 포커스 (2009) - 이누도 잇신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쇼와 32년(1957년),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한 양갓집 규수 데이코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과묵한 샐러리맨 우하라와 중매를 통해 결혼했다. 그러나 신병 정리를 위해 가나자와로 떠난 우하라는 1주일 만에 실종되었고, 걱정하던 데이코는 그의 행방을 쫓아 가나자와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하라의 형이 독살당하며 사건은 연쇄 살인으로 확대되는데...

마츠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많은 작품이 영상화되었는데, 그중 한 편이 바로 이 "제로의 초점"입니다. 이전 영화가 1961년 작품이니 무려 48년 만에 다시 제작된 것이네요.

현대의 감성과 사고방식으로 접하기에는 조금 낡은 원작이라 과연 어떻게 만들었을까 기대가 컸는데, 완성도는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전형적인 일본풍의 미학이랄까,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이 꽤 잘 어우러졌어요. 쇼와 30년대 가나자와를 재현한 세트도 훌륭했고, 일부는 한국 세트장에서 촬영했다고 하는데 원작에서 묘사된 황량한 겨울 풍경도 효과적으로 선보입니다.

추리적인 구성도 나쁘지 않습니다. 필요한 단서를 영상으로 풀어내는 장면들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예를 들자면, 히사코의 집 안에 들어선 데이코의 발치로 빈 캐러멜 박스가 바람에 날려오는 장면 같은 것들이죠. 또,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산모수첩 이미지 등, 컷 하나하나의 배치가 정교하게 짜여 있어 시각적으로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데이코가 영문학과를 나왔다는 설정이 사건 해결 과정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것도 좋았고요.

그러나 두 시간 가까운 긴 러닝타임을 끌고 가는 데에는 확실히 실패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초반 한 시간 동안 사건을 펼쳐놓는 과정은 흥미로웠지만, 남은 한 시간이 너무 길고 늘어졌어요. 원작 그대로 전개했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불필요한 각색이 더해져 오히려 몰입감을 떨어뜨린 게 아쉽습니다. 예를 들면, 사치코의 남편이 갑자기 마초적인 모습을 보이며 아내의 과거를 받아들이는 전개는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마치 갑작스럽게 애정이 싹텄다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또한, 여성의 지위나 새로운 시대 운운하는 메시지 전달이 너무 노골적이었습니다. 시대적 배경이 그러했음을 강조하는 것 정도라면 모를까, 단순히 불행한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면 굳이 이런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부각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요. 나카타니 미키의 오버스러운 연기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악녀 표정을 짓는 모습이 어색했고, 후반부에서 대비되는 흑과 백의 의상 설정 역시 캐릭터를 너무 작위적으로 표현하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원작에 충실하게 전개하며 후반부를 좀 더 압축했더라면 훨씬 나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괜한 각색이 오히려 독이 된 듯 합니다. 원작이 각색을 필요로 할 만큼 부족한 작품도 아니었고, 마츠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이라면 원작의 본래 의도를 살렸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3/01/20

미스터리의 계보 - 마쓰모토 세이초 / 김욱 : 별점 4점

미스터리의 계보 - 8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북스피어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 마츠모토 세이쵸의 논픽션. "전골을 먹는 여자", "두 명의 진범",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이라는 세 편의 이야기와 상당한 분량의 해설이 실려 있습니다.

"전골을 먹는 여자"는 군마현 호시오 마을에서 종전 직후 벌어진 식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상호 간 도와주는 사회적 합의가 무너진 상황에서, 산골 마을의 무지와 야만이 결합해 벌어진 끔찍한 범죄입니다. 작가가 이 일대를 여행했을 때의 과정을 설명하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정말이지 엄청난 오지더군요.

내용은 사실 뻔합니다. "벽장 속의 치요"의 한 이야기와도 유사하지요. 그러나 논픽션이기에 훨씬 충격적일 뿐 아니라, 진상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도라는 왜 죽였어!"라고 윽박질렀을 때 범인이 답하는 "먹었어"라는 장면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찟했습니다. 이어서 설명해주는 노구치 오사부로, 스기무라 가즈요의 범행 역시 굉장히 흥미로웠고요.

근친 결혼으로 인한 저능한 가족 공동체라는 점에서는 영국의 소니 빈 일족 일화, 기아로 인한 범죄라는 점에서는 "얼라이브"나 난파선 구명보트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두 명의 진범"은 스즈가모리 석탑 부근에서 살해된 다나카 하루 사건을 다룹니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두 명 중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일본의 사형 및 재판 제도 문제와 연결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억울한 용의자 다카무라의 자백 및 심문 조서에서 모순을 밝혀나가는 세이쵸의 전개가 인상적입니다. 특히 "흰색 고시마키가 두꺼운 플란넬 소재였다"라는 중요한 사항을 짚어내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경찰의 갖가지 증거 조작과 고문으로 날조된 자백 탓에 두 번째 범인이 생겼으며, 진범이 유죄 판결을 받은 후에도 재판이 계속되어 6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무죄로 풀려났다는 점에서, 제도적인 야만을 규탄하는 사회파적 의미도 강하게 느껴졌고요.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은 미스터리, 범죄 매니아에게는 친숙한 쓰야마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무려 31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량 살인 사건이죠. 워낙에 유명한 사건이라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범인 도이 무쓰오의 출생에서부터 범행에 이르는 과정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그리고 있어서 단숨에 읽어버릴 정도로 흡입력 넘쳤습니다.

외딴 산골의 문란한 성 풍속, 소문으로 비롯된 따돌림, 한 개인의 컴플렉스가 결합하여 벌어진 사건이라고 하는데, 피해 의식이라는 것은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그러나 위의 두 사건과는 다르게, 이 사건은 시대적 야만으로 빚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세이쵸의 글만 보면 사회적인 따돌림과 본인 스스로의 컴플렉스가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설명되지만, 한 마을 자체를 거의 날려버린 잔인무도한 범행에는 그 어떤 핑계도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보이네요. 우리나라의 우범곤 순경 사건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었던 농약 음료수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회적 격리가 필요한 인간 말종일 뿐이라 생각됩니다.

결론 내리자면, 세 편의 이야기 모두 흥미롭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읽으면서 전율이 느껴지는 충격적인 내용도 가득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줍니다. 또한, 작가의 명성에 걸맞는 미려하고 흡입력 있는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무지와 야만이 범죄의 원인이라는 점을 폭로하는 사회파 작가다운 고발 정신도 살아 있는 명편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왜 거장이 거장인지를 알려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되네요.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덧: 세이쵸의 원고지라는 부록이 들어있는데, 전혀 쓸데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차라리 책값을 천 원이라도 낮추는 방안을 출판사에 건의드리는 바입니다.

2022/12/04

"시간표 트릭"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확립한, 만족도 높은 철도 미스터리 걸작들.

* 언제나처럼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입니다. 그런데 소개작 중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기차 시간표 트릭이 사용된건 아니니, 제목은 조금 잘못된 셈입니다. 기차가 주요 무대이자 소재인 작품들이라고 하는게 맞았을거에요. 아니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빼고, 니시무라 교타로 작품을 넣는게 맞지 않았을까 싶네요.

'움직이는 밀실'이라고 하는 점이 소재로서도 다루기 쉽기 때문일까요? 열차는 미스터리의 무대로 자주 등장합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초 단위의 정확한 운행을 이용한 '시간표 트릭' 이라는 독자적인 미스터리 문화도 탄생했지요. 차내에 숨어있는 범인, 시간표가 만들어내는 알리바이...... 여행의 과정보다는 수수께끼 풀이에 비중을 두고 있는 철도 미스터리, 그 걸작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크리스티의 수많은 대표작 중에서도 여러 번 영상화된 덕분에 특히 유명한 작품. 터키에서 프랑스행 오리엔트 특급을 탄 명탐정 푸아로가 열차 안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조우한다는 이야기. 푸아로는 용의자들의 철벽 알리바이를 대화라는 무기로 무너뜨린다. 수수께끼 풀이의 순도가 높은 미스터리 작품.

<<점과 선>> 마츠모토 세이초
일본 미스터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 시간표를 사용한 '알리바이 트릭', 그리고 현실적인 배경과 사회성을 가진 사건을 그린 '사회파 미스터리'의 융합은 이후 미스터리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60년 이상 전에 쓰여진, 고전 중 고전인 철도 미스터리.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다카기 아키미쓰
인형을 이용한 연쇄 예고 살인에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가 도전하는 다카기 아키미츠의 대표작 중 하나. 첫 사건은 단두대에서 인형의 목이 잘린 후, 두 번째 사건은 열차에 인형이 치인 뒤 똑같이 실행된다. 제목인 '인형이 왜 살해되는지?'가 작품의 핵심이며, '독자에 대한 도전장'까지 포함되어 있는, 범인 찾기의 흥취를 즐길 수 있는 걸작.

<<검은 백조>> 아유카와 데쓰야 : 국내 미출간
철도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수많은 알리바이 트릭을 이용한 작품을 발표한 작가가 창조한 '오니츠라 경부' 시리즈 중 하나. 살인 사건 수사선상에 떠오른 용의자를 오느츠라 경부가 꾸준한 수사를 통해 조금씩 몰아붙인다. 맹점을 찌르는 시간표 트릭에 논리적인 추리가 합쳐진 추천작.

<<신칸센 살인사건>> 모리무라 세이이치
<<인간의 증명>>, <<고층의 사각>> 등으로 알려진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발표한 첫 번째 철도 미스터리. 신칸센 열차내에서 발견된 시체는 엑스포 이권을 두고 다투고 있던 연예 프로덕션 실력자였다. 용의자는 후속 차량에 승차하고 있어 범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연예계의 어두운 부분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

2023/09/09

추리・미스터리 소설 추천 인기 순위 50선

NTT에서 운영하는, 리서치 설문조사와 접속수를 바탕으로 모든 장르의 랭킹을 망라한 종합 랭킹 사이트인 goo 랭킹에서 선정했던 랭킹입니다.
2022년 12월에 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추천 추리소설을 조사한 결과가 있어 공유드립니다.
추천 추리소설 1위부터 10위까지의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 1위 : 히가시노 게이고 <<용의자 X의 헌신>>
  • 2위 : 히가시노 게이고 <<백야행>>
  • 3위 : 히가시노 게이고 <<매스커레이드 호텔>>
  • 4위 : 애거서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 5위 : 애거서 크리스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6위 : 미나토 가나에 <<고백>>
  • 7위 : 아야츠지 유키토 <<십각관의 살인>>
  • 8위 : 히가시노 게이고 <<한여름의 방정식>>
  • 9위 : 히가시노 게이고 <<유성의 인연>>
  • 10위 : 마츠모토 세이초 <<모래 그릇>>

개인적으로 순위에 동의하기는 좀 어렵네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만 보아도 저의 No.1은 <<악의>>거든요. 언제나 그렇듯 그냥 재미삼아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전체 순위 10위까지만 소개해 드리는데, 선정된 다른 작품들을 포함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문조사에서는 단순히 추천 추리소설 작품 외에도 추리소설 선택의 포인트에 대해서도 조사했는데, 절반에 가까운 47%가 '작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더군요. 일본 작가로는 히가시노 게이고, 해외 작가로는 아가사 크리스티 등 유명 작가가 많고요. 순위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압도적인게 눈에 뜨이네요.
또 유명 추리소설-미스터리 소설은 드라마화-영화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좋아하는 추리소설이 영화화되면 '반드시 보러 간다'는 응답이 15%, '경우에 따라서는 보러 간다'는 응답이 62%였습니다. 넷플릭스 등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시청하겠다는 응답은 18%라고 하니 원작이 있는 작품의 영상화가 많이 이루어지는건 어쩔 수 없는 흐름으로 보입니다.

2022/02/27

미스테리아 36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3점

미스테리아 36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출간되는 것 자체가 고마운 추리, 장르 문학 전문 계간지 미스테리아 36호입니다. 80년대 대중 문화에 대해 분석하는 특집 때문에 구입하였습니다. 

잡지 특성 상 '대중 문화'도 추리, 장르 문학을 기반으로 한 부분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인간시장"과 "어둠의 자식들"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하여, 80년대 추리문학계의 왕성한 움직임을 '영상화'를 통해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 시선을 잡아 끌었습니다. "추리극장"과 "베스트셀러 극장"이 많은 한국 추리 소설을 원작으로 영상화했다는 것도 새로왔지만, 뒤이어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무단으로 번안하여 영상화했다는 건 정말 처음 알았거든요. 심지어 대표작인 "제로의 초점"을 그냥 무단으로 표절해서 방영했다니 놀랍습니다. 그 외에도"과다 지불한 중매 사례비", "안개의 깃발", "얼굴", "수사권 외의 조건", "목소리", "조난"까지 모두 일곱 편이 드라마화 되었는데, 이 중 제대로 원작을 알린건 "베스트셀러 극장"에서 제작했던 3편 뿐이라니 정말 무식한 시대였네요. 

그나마도 제대로 베끼지 못해서 사건이 시작되는 기본 설정 정도만 따 온 정도에 그쳤다는데, 예를 들어 "제로의 초점"의 핵심은 어려웠던 시기 몸을 팔았던 과거를 은폐하려 했던 여성의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무단 영상화 버젼에서는 이걸 그냥 '화류계에 몸 담았던 과거' 정도로 퉁치고, 남편을 위해 자살한다는 순애보로 바꾸었다니 이래서야 통속적이고 전형적인 신파극일 뿐입니다. "수사권 외의 조건"도 핵심 소재였던 흘러간 유행가가 '그때 그 사람' 이라는건 와 닿는 변주였지만, 역시나 내용은 치정 멜로물이었다고 하고요. 이 책에서 소개된대로,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사회성'과 '역사성'을 삭제해 버렸기 때문에 남는건 개개인의 사연과 이를 포장하는 한국식 신파 밖에는 없게 된 셈입니다. 이런 류의 번안은 생각도 못했는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런 반쪽짜리 표절 드라마 이야기 다음에는, 영화를 통해 80년대를 설명하는 글이 이어지는데, 당대의 히트작이었던 "적도의 꽃"은 '아파트'에 대한 특별한 해석이, "서울 무지개"는 외설, 에로 영화가 사회물로 포장될 수 있었던 여러가지 배경에 대한 설명이 상세해서 볼 만 했습니다.

80년대 일어나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던 '우범곤 대량 살인 사건'에 대한 글도 좋았습니다. 사건이 왜 발생했으며, 어떻게 커졌고,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와 그 후일담까지 모두 알 수 있었던 좋은 르포르타주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쓰여진 사건과 실화 논픽션을 모아 출간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유리 겔러의 초능력 소동을 다룬 글도 빼 놓을 수 없네요. 왜 '초능력'이 인기를 끌었는지를, 10년 전 일본에서의 대 유행과 결합하여 설득력있게 설명해 주고 있는 덕분이지만, 무엇보다도 저 역시 유리 겔러 쇼를 80년대 TV로 직관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 당시 사회에 준 충격은 정말 어마어마했었습니다.

물론 이번에 수록된 기사들이 80년대 사회, 문화 현상을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TV 드라마와 영화, 추리 소설 등 굉장히 지엽적인 부분의 분석에 그치고 있는 탓입니다. 그것도 드라마의 경우는, 좋은 부분이 아니라 나쁜 부분을 언급한다는 측면에서 딱히 가치있는 정보는 아니었고요. 제 기억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번안했던 "열 개의 제웅 인형"은 노래와 분위기 모두 굉장했던 수작이었는데, 이렇게 성공적이었던 번안물도 함께 소개해 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지만 대중 문화, 특히 추리, 장르 문학과 관련하여 80년대를 조망한다는 특집의 기획 의도에는 충분히 부합하는 좋은 기사들이였습니다. 제 기대에도 역시나 충분히 부합했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수록된 단편 3편에 대한 상세 리뷰는 아래에 따로 소개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모두의 약점" 

지후는 친구 이하리와 함께, 떡볶이 집 주인 동생 서소하의 부탁으로 한 2학년 여학생을 찾아 나섰다. 부족한 소하의 인상착의 설명에도, 가방이 없었던 등의 디테일에 주목하여 조사한 끝에, 그 여학생이 박재이라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소하가 여학생을 찾은 이유, 그리고 박재이가 멀리 떨어진 식자재 마트 근처에 간 이유 등은 모두 밝혀지지 않았는데...

여고생들이 탐문 수사와 추리를 통해 특정 학생을 찾아낸다는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단편 부문 상을 수상했다는 작품과 이어지는 세계관이라는데, 딱히 특별한 설정이 사용되지는 않아서 읽는데 부담은 없었습니다. 지후가 박재이를 찾아내는 과정은 잘 짜여진 추리물로 손색이 없는 수준이라 만족스러웠고요.

그러나 지후와 새아버지, 새언니와의 관계 설정은 비중에 비하면 딱히 의미가 없었습니다. 최소한 이 작품만 볼 때는 말이지요. 그리고 서소하의 부탁을 지후와 하리가 선뜻 받아들이는 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식자재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어묵을 사려던 할아버지의 행동을 목격했을지 모를 여학생을 찾는다는 서소하의 동기 역시, 여학생을 찾기 전에 걱정했던대로 소문이 날 거였다면 이미 났을 거라 설득력이 약했습니다. 오히려 그 여학생인 박재이를 찾아내어 입막음을 부탁했다면,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었을테고요. 또 박재이 입으로 식자재 마트에 간 이유를 털어놓는 결말도 좋은 추리물로 보기는 어려웠어요. 박재이가 이혼하여 따로 사는 친아빠를 찾아가려 했다는 이유는, 작중에서 추리할 수 있는 단서가 거의 없어서 공정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던 평작입니다. 연작 단편 중 한 편이라 따로 떼어놓고 읽으면 좀 애매했던 부분이 있었던게 아닐까 싶네요. 시리즈 전체를 한 권에 모은 단편집이 출간되면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사라진 궁녀" 

조선 태종 시대의 궁궐을 무대로 한 괴담물입니다. 기승전결이 없고, 제대로 된 설명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야기를 시대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궐 내에서 사라진 궁녀가 어디로 갔을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승은을 입어서 다른 신분이 되었다'는건 상당히 기발했지만, 그렇다면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 리 없다는 점에서는 문제입니다. 사라진 정의궁주의 궁녀 단지의 행방도 설명되지 않는건 마찬가지였고요. 단지가 승은을 입어 궁주가 되었다면, 그걸 궐내 궁녀들이 모른다는건 애초에 말이 안되겠지요. 효순 궁주가 병화어였다는 결말도 이게 뭔가 싶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한 편의 이야기로는 완결성도 없고 여러모로 애매해서 감점합니다. 괴담물로는 나쁘지 않지만, 별로 무섭지 않다는 문제도 큽니다.

"수전 데어의 첫 번째 사건" 

여류 추리 소설가 수전 데어는 친구 크리스타벨의 저택에서 조 브롬펠의 아내 미켈라가 크리스타벨의 동생 랜디를 유혹하는걸 목격했다. 미켈라는 크리스타벨과 결혼을 약속했었던 조 브롬펠을 꼬드겨 결혼했던 악녀였다. 그리고 그날 밤, 조 브롬펠이 살해당했고, 자수정 반지를 끼고 있던 크리스타벨이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게 되었다. 범인의 손만 목격했다는 하인 마스가 범인이 '붉은 색 보석' 반지를 끼고 있었다고 증언했던 탓이었다.

발표 당시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맞먹는 인기를 누렸다는 미뇬 에버하트의 명탐정 수전 데어 시리즈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시리즈 첫 작품이기도 하지요. '수전 데어 비긴즈'랄까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었습니다. 추리소설 황금기 단편답지 않게 '트릭'이라는게 등장하지도 않고, 동기는 마지막 해결 과정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공정하지도 않고, 독자가 풀어낼 수수께끼도 별로 없다는 뜻이지요. 

범인 트라이언 웰스가 끼고 있던 반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등장하기는 합니다. 반지 보석 알렉산드라이트는 주광과 야광에서의 색깔이 달라서, 낮에 확인했을 때는 초록색이었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건 범인의 의도도 아니었고,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또 이 정도로 극명하게 색깔이 바뀐다는건 설득력이 약합니다. 차라리 총을 쏠 때 불 붙인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어서, 그걸 반지로 착각했다면? 이라는 식으로 풀어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랜디에게 빌려준 돈 대신, 크리스타벨의 저택을 압류하여 사업상 급한 불을 끌 생각이었던 트라이언 웰스의 동기도 그럴싸 하기는 했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이를 계속 숨길 수 있었을 것 같지도 않고요. 동기만 드러나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을테니, 잘 짜여진 범죄물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결론내리자면 추리 퀴즈에 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나마도 그렇게 흥미로운 퀴즈는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09/12/05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3점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시작

마츠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하권이 새로 나왔기에 구매차 방문한 인터네 서점을 둘러보다가 구입한 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충동구매에 가까웠는데, 다행히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 자체의 구성이 신선한 덕분입니다.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 이라는 중편 이야기가 총 6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펼쳐지며, 이 중편의 각 장이 끝나면 곧바로 다이도지 케이가 경찰관을 은퇴한 뒤 벌어지는 단편 에피소드들이 이어져서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 단편 에피소드들이 중편 "최후의 사건"에 등장했던 다이도지 케이의 과거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중단편집이지만 일종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끔 한 것으로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물론 와카타케 나나미가 단편들을 엮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맥락을 갖추게끔 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지녔기에 가능한 아이디어이기도 하고요.

또 전직 경찰관이지만 지금은 작가(?)로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다이도지 케이라는 주인공은 물론,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범죄자들 모두 매력적입니다. 이상하게 사건에 엮이게 되는 다이도지 케이의 상황들도 재미있고요. 관련된 사건들 전부가 상상을 뛰어넘을만큼 황당하지만 묘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설정과 분위기, 그리고 일상물로 여겨질만큼 평범하지만 희한하게 느껴지는 재미난 캐릭터들 모두 작가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선보입니다.

또 그동안은 작가의 단점이라 할 수 있었던 요소들, 즉 본격으로 치기에는 좀 구성의 짜임새가 없고(이건 제가 단편집만 읽은 탓이 크겠죠), 즉흥적으로 보이는 장난스러운 설정과 묘사들이 단편집이라는 형태에서는 외려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약간은 억지스러운 트릭들이지만, 작품 분위기가 일상계면서도 황당한 상황들이라서 이야기에는 더 잘 어울린 느낌이에요. 작가의 팬으로서는 전작들과 어느정도 연결되는 세계관도 즐길거리였고요.

결론적으로 근간 읽은 추리소설들 중에서는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와카타케 나나미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코지 하드보일드" 라는 조금은 기괴한 장르명으로 소개되고 있던데, 일상계의 탈을 어느정도는 뒤집어 쓰고 있다는 점에서는 코지, 다이도지 케이라는 캐릭터가 하드보일드 탐정의 성격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뭐 그다지 과장된 소개는 아닙니다. 코지 계열의 팬이거나 가벼운 유머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팬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죠.

1.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

경찰관 다이도지 케이는 상사 고이즈미 무사시와 함께 30대 초반 여성 살해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피해자인 자유기고가 후지노 유키의 신변을 조사하던 다이도지는 그녀에게 일을 의뢰했던 적이 있는 출판사 직원인 소꿉친구 히코사카 나쓰미를 찾아가는데.... 

총 6개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중편입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이도지 케이의 과거사, 즉 아내의 비참한 뺑소니 사고와 범인을 일부러 놓아준 경찰서 내부 G반 인간들, 그리고 다이도지를 작가의 길로 끌어들이는 히코사카 나쓰미나 원숭이 조지와 같은 곁다리 등장인물이 다른 단편 에피소드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집의 밑그림과도 같은 작품이죠.

그러나 아무래도 단편 에피소드들을 위해서인것 같은 무리한 이야기 전개도 약간 거슬리고 내용도 설명적으로 전개되는 편이라 크게 두드러지는 작품은 아닙니다. 트릭 역시 중요한 단서가 말장난에 가까운 등 공감하기 어려웠고요.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충분히 합리적이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 책의 뼈대라는 점에서 평작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 죽어도 안 고쳐져

작가가 된 다이도지 케이는 경찰시절 겪었던 얼간이 범죄자들을 다룬 "죽어도 안 고쳐져"라는 책을 발표하고 강연회를 가졌다.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하려는데 자칭 트레이시라는 범죄자가 다이도지를 협박하며 자신이 뒤집어쓴 누명을 벗겨줄 것을 강요하는데... 

아주 유쾌하면서도 기발한 소동극입니다. 범죄의 천재로 자부하는 스킨헤드 범죄자 트레이시 로즈라는 캐릭터의 등장부터 유쾌하고, 트레이시가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 밀실 살인 사건은 추리적으로 완벽해서 흠잡을데가 없습니다. 게다가 다이도지가 전세를 역전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하드보일드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해서 정말 재미있게 읽은 단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이 이야기를 꼽겠습니다.

* 덧붙이자면, 책 뒤의 해설에서 트레이시 로즈는 포르노 출신 배우라고 하는데, 저는 80년대 헤비메탈 밴드에서 따온 이름인줄 알았습니다. 메탈 쪽이 더 이미지가 비슷한 것 같은데 말이죠...

3. 원숭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죽어도 안 고쳐져"에서 자신을 우습게 다루었기 때문에 딸이 가출했다고 소매치기 원숭이 조지가 우긴 탓에, 다이도지 케이는 딸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후 찾아온 경찰에 의해 원숭이 조지가 살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조금은 미묘한 작품입니다. 다른 이야기들처럼 유머러스한 전개로 재미있게 읽히기는 하지만 범죄가 우발적이고 트릭도 별것 없으며 무엇보다도 증거가 빈약하다는 단점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이도지 케이라는 캐릭터가 이 작품에서의 활약이 발군이라서 평작 수준은 됩니다.

4. 죽여도 안 죽어

다이도지 케이에게 한 추리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을 검토해 줄 것을 부탁해 왔다. 경찰관 시절 경험을 살려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작품의 살인계획이 현실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데.... 

편지로 긴장감을 높여주는 전개가 독특한 작품으로 깔끔한 이야기 구성에 반전도 확실한 편이라 즐길거리가 많은 에피소드입니다. 추리적으로 "증거"라는 것이 빈약하고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단점이 크긴 한데 워낙에 아이디어가 돋보여서 단점도 묻혀가는 느낌이랄까요. 확실히 단편은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네요.

5. 추락과 붕괴

논픽션 작가 이소베 다카히토의 유고를 이어쓸 것을 본의아니게 떠맡은 다이도지 케이는 고카 악이라는 화산지대에 위치한 이소베의 별장을 찾아가는데... 

사건은 별게 없고 트릭도 무지하게 간단하지만 이소베라는 작가와 연관된 인물들의 악의가 거침없이 드러나는 것이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이러한 평범한 악의의 극대화는 작가의 특기이기도 하죠. 전개도 합리적이라 무난한 수준의 평작이라 생각됩니다.

6. 도둑의 엉뚱한 원한

하자키 문화센터에 강연차 방문한 다이도지 케이는 2인조 강도에게 납치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곤경을 해결하고 사건의 복수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물어보는데... 

앞선 이야기들과 동일한 구성, 즉 다이도지 케이가 희한하게 사건에 엮이게 된다는 전개이지만 2인조 강도단이 이야기한 사건의 내용만 듣고 진상을 밝혀내는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이라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들과 약간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사건도 앞선 에피소드들에 비한다면 일상계에 가까운 내용이라 가볍게 읽기에 편했고요. 단서와 복선들도 공평해서 합리적으로 전개되기에 추리적으로 만족스러운, 여러모로 평균 이상의 괜찮은 이야기입니다.

2017/02/25

천계살의 - 나카마치 신 / 현정수 : 별점 2.5점

천계살의 - 6점
나카마치 신 지음, 현정수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물간 추리소설가 야규 데루히코는 "추리세계"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 담당 편집자 하나즈미 아스코에게 새로운 기획을 말했다. 그가 내 놓은 것은 추리소설의 '문제편'이었다. 야규는 자신과 다른 해결편을 탤런트 겸 소설가 오노미치 유키코가 썼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남긴 뒤 온천으로 해결편을 쓰기 위해 떠났지만 그곳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아스코는 야규가 쓴 "호수에 죽은 자들의 노래가.."가 실제로 후쿠시마에서 벌어졌던 여성 살인사건을 그대로 쓴 것임을 알아냈고, 피해자 가미나가리 아사에의 남편 라이조, 아사에의 먼 친척으로 라이조와 아사에 공장에서 비서 겸 사무원으로 일하는 가타기리 요코, 공장장 우라니시 사부로 등을 차례로 만나며 사건 진상에 서서히 접근해 가는데...

"모방살의"에 이은 살의 시리즈 제 2작입니다. "모방살의"는 유명세와 기대에 비하면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본격물 팬으로서는 만족한 부분도 있었기에 이 작품도 읽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발표했던 단편을 80년대에 가필, 수정하여 장편으로 만든 방식은 "모방살의"와 동일합니다. 그래서인지 설정과 전개가 모두 옛스럽습니다. 젊은 여성 편집자가 혼자 온천 여관, 호텔, 레스토랑 등을 탐문하여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은 마츠모토 세이초의"푸른 묘점"이 바로 떠오를 정도였어요.

핵심 트릭으로 일종의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는데, 그 트릭의 수준이 높다는 점도 모방살의와 같습니다. 야규가 아스코에게 준 소설을 활용한 트릭으로, 독자가 알고 있는 '문제편'이 전부가 아니라 뒤에 이어지는 아스코의 수사 활동, 그리고 오노미치 유키코가 자살하는 장면까지가 진짜 문제편이라는 트릭입니다. 현실과 소설이 어우러진 구조인데, 지금 읽으면 그다지 새롭지는 않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피에르 르메트르의 "능숙한 솜씨"도 동일한 트릭이 사용되었었지요. 하지만 발표연도를 감안한다면 시대를 앞서간 트릭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400자 원고지 58매를 읽고 검토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던가, 복사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 부분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단서와 복선이 살짝 등장하는 것도 본격물스러워서 좋았고요. 야규가 서점주인 이리우치지마 유키토모에게 건넨 1만엔도 복사비로는 너무 과하지요.

그 외에 배치된 소소한 트릭들의 수준도 높습니다. 라이조에게 배달된 현금이 든 편지와 방화 사건을 속달을 보통 우편으로 속이기 위함이며, 이를 현금이 1,000엔 짜리와 5,000엔 짜리가 섞여 있다는 것으로 추리해 내는게 대표적입니다. 무게를 조정하기 위해서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뒷받침된 좋은 트릭이었어요.
여관에 투숙한 손님이 초밥을 손으로 집어 먹는 것으로 그녀가 아사에가 아닌 다른 여성이었다는걸 드러내는 전개도 마찬가지이며, 이 여성이 누구인지에 대한 추리도 그럴듯합니다. 드러나는 증거들로 가타기리 요코에서 오노미치 유키코로 혐의가 이동하는 과정이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제 3의 인물이었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고요.

그러나 트릭을 제외한 부분의 완성도가 낮다는 점 역시 전작과 동일합니다. 아니, 솔직히 설득력면에서는 전작보다 못합니다. 특히 전개가 엉망이에요. 우선 아스코가 곧이곧대로 오노미치 유키코에게 해결편을 의뢰한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써서 활자화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그 이유를 대고 기획을 중지하면 그만이니까요. 사건을 키울 필요는 전혀 없어요. 설령 해결편을 의뢰했더라도 야규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에는 그냥 손을 놓아버리는게 맞습니다. 야규의 문제편만 보면 드러난 범인이 명확하고, 야규는 죽었고, 만사형통이잖아요. 어떤 멍청한 범인이 자신이 저지른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단 말입니까? 서점 주인 이리우치지마가 가진 복사본이 남아있지만, 이게 증거가 안된다는 것은 이미 아스코와 이리우치지마 사이의 대화를 통해 증명되니 무의미합니다.

아사에를 죽인 이후 여관에 투숙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사에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녀를 가장하여 투숙한 사람이 범인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범인이 정체가 탄로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작 중 등장하는, 우편을 이용한 일종의 알리바이 트릭은 가타기리 요코와 우라니시 사부로가 벌인 사전 공작으로 아스코는 모르는 상황입니다. 덕분에 가타기리 요코, 오노미치 유키코가 누명(?)을 쓰게 되는 전개는 순전히 운이 좋았을 뿐, 의도한 상황은 아닙니다. 사건 직후 손이 떨려서 운전을 할 수 없어서 쉴 수 밖에 없었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차에서 쉬면 되니까요. 

이외에도 우연이 개입된 전개가 너무 많습니다. 유키코와 아사에가 만나게 된 해피닝, 아스코가 유키코의 퇴원을 도와주던 아사에의 차에 함께 탄 것, 알리바이 공작을 위해 여관에 투숙한 아스코를 가타기리 요코가 찾아온 것 등...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아울러 사건이 복잡해진 것에 경찰의 무능함이 한 몫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피해자 아사에가 당당하게 자기 이름을 대고 병원에 찾아왔는데 경찰이 동승자를 파악하지 못했다? 일개 추리 소설가와 잡지 편집자가 추적하여 진상을 밝혀낼 수 있는 수준의 수사조차 경찰이 하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모로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눈여겨볼만한 트릭과 아이디어는 있지만 단점도 적지 않습니다. 본격물 애호가라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13/08/21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 - 시마다 소지 / 이연승 : 별점 2.5점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 - 6점
시마다 소지 지음, 이연승 옮김/해문출판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즈코라는 여성이 얼굴 가죽이 벗겨진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수사에 의해, 살해 추정 시각 이후에, 지즈코는 도쿄에서 출발하는 침대특급 하야부사에서 목격되고 사진까지 찍혔다는게 드러났다. 사건을 담당하는 요시키 형사는 일본을 종단하며 사건의 해결과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하며, 이 과정에서 지즈코의 불우한 가정환경에 대해 알아내는데...

그간 격조했네요. 이번 회사에 입사한 이후 가장 긴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이 작품은 미타라이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시리즈 캐릭터 요시키 형사 시리즈입니다. 딱히 취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작가인데, 제목을 볼 때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물로 생각되어 휴가 중 읽을거리로 선택한 작품입니다. 이 장르,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읽어보니 단순한 알리바이 트릭물은 아니더군요. 9시 37분에 나고야에 도착하는 하야부사가 겨우 6분의 차이로 마지막 상경 신칸센을 도쿄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게다가 승객의 대다수가 슬슬 잠자리에 드는 시각에 잡을 수 있는 유일한 1인 침대 객실까지 달린 블루트레인이라는 것을 이용한 전형적인 알리바이 트릭으로 시작하지만, 알리바이를 계획한 지즈코가 되려 살해당하면서 사건이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시마다 소지의 야심(?)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마츠모토 세이초, 모리무라 세이이치, 니시무라 교타로 같은 선배들과는 다른, 뻔한 기차 시간표 알리바이 트릭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어!

그러나 야심은 컸으나 문제도 역시 큽니다. 먼저 지즈코의 동기는 딱히 와닿지 않아요. 어머니와 두 자매를 모두 농락한 소메야는 죽어도 싼 놈이기는 하나, 이렇게 복잡한 트릭까지 써가며 살인을 계획하느니 공론화시켜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게 일반적인 방향이겠죠.

게다가 이후 소메야의 행동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즈코의 얼굴 피부를 벗긴 이유입니다. 시체의 정체를 숨기는 것도 아니고, 그 행위로 바뀐 건 하나도 없는데 왜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덕분에 쌍둥이설 같은 곁가지 추리만 난무하며 작품만 쓸데없이 길어지기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소메야가 정말로 천재적인 직관력으로 지즈코의 알리바이 트릭을 한 번에 간파했다면, 그래서 준코를 이용하여 지즈코의 행적을 남길 의도였다면, 본인의 알리바이를 확실하게 한 다음에 지즈코의 시체를 철저하게 은닉하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이었을 겁니다. 여행 중 실종, 사망한 것으로 처리될 가능성도 높잖아요?

마지막의 진상과 약간의 반전은 그야말로 작위적인 추리쇼에 불과해서 더욱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러한 쇼를 벌인 이유가 철저하게 집을 수색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그야말로 억지였고 말이죠.

그래도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철도 시간표를 철저하게 연구한 알리바이 트릭은 교과서적으로 잘 짜여진 트릭입니다. 이후의 작위적인 전개도 순수한 재미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고요.

일본을 거의 종단하다시피하면서 사건을 추적하는 요시키의 모습에서, 니시무라 교타로의 아사미 미츠히코로 대표되는 "여정 미스터리" 느낌이 많이 나는 것도 괜찮았어요. 도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여정 미스터리가 되는 과정이 신기한데, 잘 그려낸 것 같습니다.

각 지역의 형사들과 연계하여 단서를 얻어가며 수사하는 장면에서의 고전적인 형사물 분위기 역시 좋았고요.

덧붙이자면, 비인간적으로 여겨지는 미타라이보다는 출중한 외모 외에는 평범한 형사로 보이는 요시키 형사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작위적인 부분은 아쉬우나 읽는 재미는 충분했어요. 더운 여름 읽을거리로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생각됩니다.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추리물 팬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2/03/26

사진관 살인 사건 - KBS 일요 베스트 (1999): 별점 3점

 

사진관 주인이 야구방망이에 맞아 죽은 사건 수사를 맡은 김형사는 피해자의 아내 지경희에 대해 파고든 끝에, 사진관을 자주 찾는 사진작가 정명식의 존재를 알아냈다. 지경희는 정명식이 자신에게 호감을 품어왔다고 말했지만, 김형사의 심문 과정에서 정명식은 정반대로 그녀가 먼저 유혹했다고 말하는데....

김영하의 동명 단편을 원작으로 한 KBS 일요베스트 단막극입니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옛 드라마를 유튜브로 찾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KBS에서 공식적으로 업로드해 놓았더군요.

처음에는 추리 단막극이라고 생각했었고, 전개도 생각대로 흘러가나 싶었는데 진범은 따로 있었다는 결말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지경희와 정명식이 진짜 불륜 관계였고, 살의가 있었던건 확실하다는 약간의 반전은 괜찮았지만, 이 결말 때문에 추리물이나 범죄물로 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완성도는 상당히 높습니다. 작은 예산으로, 몇 명의 등장 인물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며, 몰입할 수 있도록 잘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여기에 더해 아내와 관계가 소원한 김형사가 지경희에게 호감을 품고, 아내는 종교에 깊이 빠져있다는 묘사로 '피의자, 형사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드러내는 솜씨가 괜찮았어요. 그냥 돌직구로 적나라하게 모든걸 보여주는 최근 영상물에 비하면 낡은 느낌이지만, 저 역시 나이가 드니 이런게 더 마음에 들더군요.

90년대 작품으로 사운드가 많이 뭉개져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 정도면 한 번 찾아보아도 괜찮은 단막극이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05/07/04

Japan 미스터리 걸작선 1 - 한국, 일본 추리작가협회 추천 / 정태원 번역 : 별점 3점

J 미스터리 걸작선 1 - 6점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일본 추리 작가 협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펴낸 책입니다. 그런데 선정을 한국 추리 작가 협회에서 했다는 점이 특이하네요. 예전에 읽었지만, 다시 구입했기에 읽고 리뷰 남깁니다.

낯선 작가의 낯선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띄는데, 책 뒤의 설명을 보면 다른 단편선 등에서 이미 소개된 작품이 아닌 새로운 작품을 선정하려는 의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는 50주년 기념 앤솔로지라는 주제와는 좀 맞지 않는다 생각됩니다. 그동안 소개된 작품들이 일본 추리 문학의 대표작에 더 가까운게 당연하잖아요. 또 이러한 기획 의도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진짜 국내에 초역되는 작품들만 모아 놓았어야 했습니다. 정작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수록된 건 이상해요.
정통 추리나 스릴러가 아닌 환상문학과 호러, 그리고 SF에 가까운 작품까지 실려 있어 기준이 약간 모호하다는 것도 솔직히 잘 납득이 가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수록된 작품들도 특정 시대나 작가별로 편찬된게 아니라 무작위로 수록되어 있는데, 에드가상 수상작품집처럼 어느 정도는 목차에서도 시대순 같은 기준을 가지고 분류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한국 추리문학 협회가 선정한 일본 추리 단편이라는 기획 자체가 그냥 놓치기에는 너무 흥미로울 뿐더러 전체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까지 가져다 주는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로는 "광기의 계보", "정사의 배경" 그리고 "살의" 를 꼽겠습니다.
총 세 권이 발간되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건 이번에 구입한 이 1권 뿐인데, 언젠가는 2, 3권도 발견하여 책장에 추가하고 싶네요.

작품별 상세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아파트의 귀부인 - 아카가와 지로

새로 이사온 옆집의 미모의 귀부인이 하는 요리의 냄새를 알아 맞출 정도로 후각이 민감한 아내를 가지고 있는 구보는 옆집의 부인에게 호감을 느껴 아내가 집에 없는 틈에 옆집에 찾아간다. 

다른 앤솔로지에서도 많이 소개된 아카가와 지로의 단편입니다. 추리 문학이라기 보다는 반전의 맛이 있는 스릴러에 가까운데, 너무 뻔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군요.

2. 나체의 방 - 호시 싱이치

일본 단편의 거장 중 한명인 호시 싱이치(호시 신이치)의 작품입니다. 우연히 여러 남녀들과 복잡한 관계를 가지게 된 남자의 이야기로 상황 설정이 재미있고 여운을 주는 맛도 잘 살아있어서 역시나 단편의 거장이구나! 싶네요. 다만, 추리물은 절대! 아닙니다.

3. 나폴레옹 광 - 아토다 다카시

아토다 다카시의 초 유명 단편이지요. 제가 이전에 "Y의 거리" 소개 때에도 리뷰했기에 패스합니다. 

4. 고양이의 목 - 고마츠 사쿄

고양이를 키우면 죽는 미래의 어느 도시에서 일어나는 짤막한 이야기입니다. 고양이를 워낙 좋아하는 일본이라서 나올 수 있던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반전의 맛도 어느정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추리물도 아니고 호러도 아니고 SF도 아니고... 여러모로 좀 어정쩡한 느낌입니다.

5. 광기의 계보 - 후지이 레이코

초등학교 교사 게이코는 우연히 들춰본 학생 기누코의 일기를 통해 그녀의 계모가 기누코를 광기로 몰고 가고 있는 상황을 알게 된다... 

여성작가의 느낌이 잘 살아있는 작품으로 일기를 주요 매개체, 단서로 하여 전개된다는 특이함에 더해 극적 반전까지 뛰어납니다. 약간의 호러 분위기가 잘 살아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그런데 왠지 영상물에 더욱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6. 3억엔의 악몽 - 니시무라 교타로

평범한 올드미스 여사원 교코는 어느날 찾아온 변호사에게서 자신이 친절을 베푼 한 노인에게 3억엔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 변호사는 자신과 다른 인물을 착각하고 있었고, 교코는 유산을 상속받는 진짜 인물인 아리사와 나미코를 찾아가 담판을 지으려 하는데... 

여정 미스테리의 달인이라는 니시무라 교타로지만 이 작품은 의외로 "지푸라기 여자" 같은 인물 설정을 가진 완전 범죄물입니다. 조금 의외였달까요. 그러나 기발한 발상에 비해 전개가 뻔하고 치밀함이 많이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7.얼굴 - 마츠모토 세이쵸

살인 사건을 저질렀던 배우 이노 료기치는 자신이 주연인 영화가 전국 개봉되기 전에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이시오카를 살해하려 하는데... 

"거장" 세이쵸 선생의 작품입니다. 세이쵸 선생 단편은 대표작들에 비해 많이 격이 떨어지는 편인데 이 작품은 꽤 괜찮네요. 특히 범인이 배우이고 영화 개봉 때문에 목격자를 죽이려 한다는 설정은 참신합니다. 하지만 결말이 너무나, 너무나 심하게 아닙니다...

8. 정사의 배경 - 츠츠야 다카오

한 주부가 음독 자살했다. 그녀는 죽기 직전, Y타임즈의 독자 투고란에 과거의 애인에게서 협박받고 있다는 투고를 보내 상담을 의뢰한 상태였다. Y타임즈의 기자 소네는 단순 자살 사건은 아니라는 판단에 독자적인 조사를 개시하는데... 

잘 모르는 작가인데 작품이 굉장히 좋아서 놀랐습니다. 독자 투고와 음독 자살한 여인을 연결시키는 발상도 뛰어나지만 실제 사건의 트릭도 괜찮고 무엇보다 전개가 굉장히 깔끔합니다. 진범과 동기도 납득할 수 있고 단서도 공정한 편이고요. 이 단편집 최고의 단편 중 하나입니다.

9. 조건반사 - 오타니 요타로

여배우 미즈사와 미나코는 연기지도 담당 오모리 세이지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아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며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 후 알콜 중독으로 바닥으로 추락한 세이지를 거추장 스러워한 미나코는 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른바 "조건반사"에 의한 다이잉 메시지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여기서처럼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때문에 기발하긴 하지만 현실성은 떨어져 보입니다. 그래도 꽤 재미있었어요.

10. 벽 - 고다카 노부미츠

아내와 그녀의 정부에 의해 벽속에 파묻히게 된 남자의 이야기. 이 한줄이 이 작품의 전부입니다....

11. 살의 - 다카키 아키미츠

옆집의 이마노 부부를 돌봐주던 타누마 변호사는, 이마노의 부인 준코가 질투로 저지른 살인 사건 변호를 맡게 되었다. 타누마는 그녀를 감형시켜 집행유예를 받게 하는데 성공하지만, 어느 날 이마노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되는데... 

거장 다카키 아키미츠의 단편입니다. 

이른바 "살인을 하기 위한 살의의 정도를 법적으로 판단하는 잣대가 어디에 있는가?"가 이 작품의 핵심입니다.이 살의를 최소한으로 나타내기 위한 범인의 치밀함, 법의 헛점을 잘 꿰뚫고 저지른 범행이 아주 충격적입니다. 1952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는 보이지 않게 세련되고 꽉 짜여진 구성이 놀랍네요.

12. 소라 - 야마무라 마사오

추리물은 아닙니다. 못살던 시대의 불우한 가족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적나라하게 그린 순문학에 가까운 단편입니다.

13. 무서운 선물 - 유키 소지

한 여자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키스했다가 저주(?) 받는 한 바람둥이의 이야기. 전해주는 꽃들의 꽃말로 마음을 나타내는 이야기 전개는 괜찮지만 마지막에 저주니 어쩌니 하며 마무리하는 결말은 납득이 안됩니다...

14. 연습게임 - 후지무라 쇼타

가지키는 아내 구니코의 수다를 겨우겨우 참고 살다가 우연찮게 불륜을 저지른 상대 미와와의 달콤한 미래를 위해 그녀를 살해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아내와 몰래 만나기로 한 장소에 아내는 오지 않고, 오히려 다른 장소에서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어 가지키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데... 

함정에 빠지는 인물이 등장하는 "함정물"인데, 어차피 가지키는 아내 구니코를 죽이려 했으므로 그다지 용서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네요. 전혀 관계없는 인물이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반전의 여운을 남기기는 하지만 좀 약합니다.

15. 우물이 있는 집 - 미나카와 히로코

과거 자신이 유괴당한 집에 신혼여행을 오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전개가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 흘러가는데,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미묘함이 잘 살아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줄거리에 비해 결말이 시시해서 아쉽습니다.

16. 복안 - 소노 다다오

일본의 손다이크 박사라고 불리운다는 복안전문 범의학자 고이케 고로라는 캐릭터가 나와 두개골 복안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인 작품. 캐릭터 이외의 설정과 전개는 평이합니다.

17. 사랑 - 미야자키 준

동물 뇌세포를 집어넣은 육아 로봇이 저지른 아동 살해 사건 이야기. 아시모프 작품과 유사한 분위기지만 반전은 인상적입니다.

18. 산키치의 식욕 - 와타나베 게이스케

어려운 시대, 어렵게 살아가는 고학생 산키치가 우연히 주운 3엔으로 한끼를 해결하는 이야기. 이야기는 꽤 재미있고 진지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순문학 단편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작가도 그렇고 작품도 그렇고 왜 이 단편선에 실려있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19. 쇼윈도의 연인 -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에 빠져드는 기이한 습성이 있는 청년 다마루 소진은 최근 간행된 소설 "쇼윈도의 연인"을 읽은 직후, 한 양품점 쇼윈도의 마케팅을 사랑하게 되는데...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요코미조 세이시의 단편이라는 점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작품도 인상적입니다. 처음에는 다른 외국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성도착적인 애정에 대해 다루는 듯 했는데, 급변하여 놀라운 반전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발표 시대를 감안한다면 정말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거장다운 작품입니다.

20. 범인은 누구인가 - 구사카미 진

쌍동이 중 한명이 범인인 것은 확실한데 누구인지를 몰라 궁지에 몰린 경찰이 사건을 결국 해결한다는 이야기. "음악"을 주요 소재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지만 트릭과 설정은 마음에 들었어요.

21. 계단을 오르는 남자 - 마유무라 다쿠 

세계가 거대 빌딩화되어 엘리베이터가 기차처럼 다니는 세계. 한 남자가 25.000층의 건물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하고 그는 계단을 올라 새로운 층에 도착할 때마다 점차 여행자에서 모험가, 그리고 성자로까지 추앙받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가 꼭대기 층에 다다르게 되는 날이 오고 군중이 그를 보기 위해 운집한다... 

아이디어가 정말 기발합니다! 엘리베이터가 기차처럼 다니는 초고층 빌딩 사회에서 목적없이 그냥 계단을 오르는 남자가 주변 인물들에 의해 성자로까지 추앙받게 되는 과정이 묘하게 현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은 너무나 시시해서 아쉽습니다. 좀 더 생각했더라면 정말 마음에 드는 걸작 단편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2016/11/09

말레이 철도의 비밀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최고은 : 별점 2.5점

말레이 철도의 비밀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희망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말이군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죠."
출국 시간이 정해져있는 히무라에게 아즈란이 시간 내 사건 해결이 가능할지를 물은 상황에서 오가는 대사.

히무라와 아리스가와는 말레이시아의 낭만적인 휴양지 카메론 하일랜드로 여행을 떠났다. 대학시절 친구 타이론 덕분에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던 그들은, 우연히 알게 된 일본인 모모세 준코의 초대로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둘은 그곳에서 의문의 변사체를 발견했고, 뒤이어 일어나는 사악한 범죄에 빠져드는데…

일본의 신본격 작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시리즈 탐정인 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가 등장하는 국명 시리즈 장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단편집으로 두어권 읽어 본 정도이며 장편은 처음입니다.

읽기 전에는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작가의 타율 자체가 낮은 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읽어보니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신본격 기수 중 한명이라는 작가의 명성, 그리고 엘러리 퀸 국명 시리즈를 오마쥬하고 있는 시리즈 특성에 걸맞는 수준의 고전적인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입니다. 첫 사건부터 본격물다운 굉장히 기묘한 밀실 - 피해자 웡후가 살해된 채 발견된 트레일러 하우스의 모든 출입문, 창문은 안쪽에서 테이프로 봉해져 있는 상태였다는 - 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라는  불가능 범죄를 선보이고 있거든요. 
트릭도 상당히 괜찮습니다. 사건 현장을 외부에서 조작하여 범인이 원하는 밀실로 만들었다는건 오래 전에 읽었던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첫 작품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에서는 거대한 크레인이 필요하다는 점 탓에 현실성이 떨어졌다면, 이 작품은 간단하게 차량수리용 잭을 활용하여 실현할 수 있어서 보다 설득력이 높습니다.
이를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 묘사된 습도 조절용 물컵과 같은 디테일도 빛납니다. 컵을 접착제로 붙이고 물을 얼려놓는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 트릭으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어요.

정보와 단서 모두가 독자에게 모두 공정하게 제공된다는 점 역시 본격물답습니다. 특히 기발했던 부분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영어실력이 부족하다는 설정, 현지 카페 주인 존을 영국인 작가 앨런 글래드스턴이 영국식으로 '잭'이라고 부른다는 설정을 교묘하게 결합하여 글래드스턴 살인 사건으로 이르는 동기와 범인을 밝혀내게끔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최근 읽었던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큼 잘 짜여진 장면이었습니다.

두 컴비가 오래전 지인 위 타이론을 만나기 위해 말레이시아의 휴양지 카메론 하일랜드(하이랜드) 여행을 떠나는 설정 덕분에 여정 미스터리물 느낌도 많이 난다는 점도 독특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현지 명소에 대한 묘사가 많아서 읽는게 즐거웠어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일단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품에서 항상 느낄 수 있는 점인데, 그다지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설정과 묘사가 너무 많아요. 딱히 필요해 보이지 않는 페미니즘 관련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반딧불 어쩌구 하면서 사랑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리고 대부분의 본격물이 가지고 있는 문제인 작위적인 상황 설정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첫 번째 범행인 웡후 살인부터 그러합니다. 복수를 위해 모모세를 덮치지만 되려 살해당한다는 것부터 작위적이며, 말레이시아 법률은 잘 모르겠지만 모모세가 웡후 살인 사건을 자살, 혹은 다른 범죄로 위장할 이유가 있어 보이지 않은 탓입니다. 림 의사를 살해한건 히키이며 모모세는 실행범이 아닙니다. 아무런 증거없이 죽어가는 히키의 전화만으로 모모세가 범인이라 우길 근거는 너무 빈약하지요. 제가 모모세라면 모든건 오해라고 당당하게 맞섰을 겁니다. 웡후를 죽인 후에라도 같은 이유로 경찰에게 역시 당당했을 수 있었을테고요.
게다가 두번째 츠쿠이 살인은 순전히 우연에 기인한 것입니다. 아울러 앞부분 묘사에서 모모세 준코의 차에 잭이 있다는 것이 설명되니 모모세가 잭을 구하러 멀리 갈 필요도 없고요. 

또 앞서 트릭을 칭찬하기는 했지만 현장을 조작하는 방법 외에는 약점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트레일러하우스를 좀 기울이는 정도로 과연 창문의 테이프를 잘 붙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거든요. 

마지막으로 모모세가 과거 보험금으로 사업을 일으킨 점 등 트릭을 모르더라도 정황 증거만 조합하면 대충 범인이 누군지 답이 나온다는 것도 조금은 아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만 놓고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단점과 구멍도 존재합니다. 그래도 본격물 팬이라면 추리적으로 즐길거리가 많으니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 : 초반 언급되는 마츠모토 세이초가 썼다는, 카메론 하일랜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타이의 실크왕 짐 톰슨 실종사건을 엮어서 만든 "뜨거운 비단"이라는 작품이 궁금해집니다.

2023/11/18

명작 추리 소설 5선 : 이 서술 트릭이 굉장해!

소설에 대해 안내하고 소개해주는 일본 사이트 '소설마루' 에서 발견한 글입니다. 가볍게 소개해 드립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핵심 트릭이 노출되어 있으니, 읽으시기 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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