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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4

내 인생의 만화책 - 황민호 : 별점 3점

내 인생의 만화책 - 6점
황민호 지음/가람기획

194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한국 만화를 캐릭터 중심으로 풀어낸 역사 및 비평서입니다. 대체로 시대에 맞는 이슈와 작품, 캐릭터를 잘 선택하고 있고 작품에 대한 비평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편입니다.

그러나 단점도 눈에 좀 뜨입니다. 첫번째는 소년 만화와 성인 만화에 치우쳐져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현재 한국 만화의 주요 흐름이라 할 수 있는 순정 만화와 무협 만화가 한편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비평서이기에 특정 캐릭터를 내세우기 어려운 순정 만화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좀 더 공평한 시각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두번째로는 "캐릭터"를 주 테마로 삼았는데 왜 80년대를 풍미했던 강철수의 발바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걸까요? 당대 대학생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인기덕에 영화화도 되었었고 지금까지도 그 생명력이 이어지고 있는 발바리를 이러한 목록에서 뺀 것은 정말이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또 "어쩐지 좋은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은 이러한 목록에 포함될 수준의 작품은 아닙니다. 단지 일본 만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1세대 창작물이라는 가치이외의 어떤 것을 찾기 힘든 작품이니까요. 이 작품만큼은 아무래도 저자가 소년 챔프 등 국내 챔프 계열 잡지 편집장을 역임했기에 선정된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너무 캐릭터 중심으로 풀어나가려다 보니 위대한 "작품"에 대한 해설이 부족해진 것도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이강토를 비롯해서 80년대를 풍미한 최강타, 오혜성, 구영탄은 캐릭터를 특정하기 어렵고, 작품별로 복수의 화신이나 천방지축 학생 등으로 카멜레온처럼 변신했던 주인공들인데 너무 캐릭터에 집착해서 비평이 좀 애매해진 느낌이입니다. 이 시기는 그냥 "작품 - 공포의 외인구단 / 신의 아들 / 동전 한 개와 불청객 등 -"을 중심으로 서술했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위의 단점들은 제목이 "내 인생의 만화책" 이라는 걸 놓고 볼때는 모두 납득할만한 것들이죠. "내가 읽고 보았던 만화책 중에서 내가 선정했다" 라는 의미이니만큼 개인의 취향일테니까요. 아울러 전체적으로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국 만화 역사 / 비평서를 써 내려간다는 애초의 컨셉과도 충분히 합치할 뿐 아니라 작품별로 세세하게 풀어나가는 비평의 수준도 높기에 국내 최고 수준의 심도 깊은 만화 평론서인건 분명합니다. 양도 풍성하고 자료적인 가치도 높으며 오랫만에 접하는 과거의 주인공들, 김민의 불나비나 길창덕의 꺼벙이, 신문수의 도깨비감투 혁이 등도 모두 반가왔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06/06/13

검의 대가 (Maestro de esgrima, El)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 김수진 : 별점 3점

검의 대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열린책들

마드리드에서 혼자 살고 있는 쉰 여섯의 돈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한때는 화려한 시기를 보냈지만, 점차 그 유행과 가치가 퇴색되고 있는 검술을 가르치며 연명하는 검술 교사이다. 

1868년 여름, 이사벨 2세 여왕 정부에 대한 반발 세력들이 정권을 전복시킬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며 어수선하던 어느 날 돈 하이메에게 아델라 데 오테로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돈을 두 배로 주겠다며 돈 하이메가 직접 창안한 '2백 에스쿠도' 검법이라 불리는 공격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로 거절하지만 끈질긴 간청으로 약간의 시험을 거친 뒤 그녀가 뛰어난 검객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검법을 전수해 주었다. 그리고 점차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레베르테의 대표작이라는 "검의 대가"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이 작가 작품은 네 번째로 읽어보는데 작가의 두 번째 장편이며 제가 읽은 것 중에서는 가장 먼저 발표한 작품이네요.

특징이라면 초기작이지만 다른 작품들 처럼 역시 작가의 뛰어난 자료 조사 능력이 돋보이는 현학적 재미가 엄청나다는 겁니다. "뒤마 클럽"이 고서,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이 체스라면 이 작품은 "알라트리스테"와 비슷하게 스페인의 근대사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제목 그대로 "검술 (펜싱)" 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설명해 줍니다. 19세기 후반의 스페인을 무대로 당시의 격동적인 사회상을 소설 내용에 그대로 반영한 전개는 역시나 레베르테 답다는 탄성이 나오게 할 만큼 잘 짜여져 있고요. 

또한 "뒤마 클럽"이 재미와는 상관없이 고서사냥꾼 코르소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잘 묘사한 것 처럼 이 작품에서도 돈 하이메라는 정말 "검의 대가"같은 그럴싸한 캐릭터 덕분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어떻게 보면 나이든 알라트리스테와 느낌인데 진중한 멋이 느껴지는 멋진 캐릭터라 무척 호감이 갔습니다.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에서는 체스의 고수 캐릭터가 약했던 측면이 있었는데 두 작품의 장점만 섞어 놓았달까요? 기본 설정과 캐릭터, 묘사에서 일단 먹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펜싱에 대한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하고 당시 사회상에 대한 묘사, 돈 하이메의 과거사 등에 대한 설명이 과해서 지루한 측면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현학적인 과시욕 때문이었을까요? 움베르토 에코의 여러 작품들에 비하면 그 정도가 덜한 편이지만 그래도 확실히 2/3 정도로 분량을 줄이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메인 스토리 자체는 다른 웅장한 설정이나 묘사에 비하면 많이 약하기 때문에 분량 면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또한 마지막의 대결 장면은 아무리 진검과 연습용 검의 차이는 있지만 "검의 대가"인 돈 하이메의 캐릭터 때문에 그다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아 긴장감이 덜한 것 역시 아쉬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우연찮게 케이블 TV에서 방영했던 영화를 먼저 감상했었기 때문에 결과를 미리 알고 있어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책에 등장한 다양한 펜싱의 자세를 약간의 도해로나마 표현해 주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작가 스스로는 "200 에스쿠도"를 눈이 휭휭 돌아갈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해 놓고 있는데 머리로는 그 검법이 전혀 그려지지 않거든요. 책 자체는 이쁘게 잘 나왔는데 약간의 배려가 아쉽네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추천작.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영화로 먼저 보기는 했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소설을 보니 확실히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드네요. 돈 하이메 캐릭터를 잘 살렸던 영화나 다시 구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S : 근데... 이게 "추리물" 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2011/07/01

캐릭터 소설 쓰는 법 - 오쓰카 에이지 / 김성민 : 별점 3점

캐릭터 소설 쓰는 법 - 6점
오츠카 에이지 지음, 김성민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제목 그대로 캐릭터 소설—여기서는 스니커 문고라고 하지만—쓰는 법을 다룬 책입니다. 넓게 보면 '라이트 노벨 쓰는 법'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책의 본분에 걸맞게 내용은 충실합니다. 정말 캐릭터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큰 도움이 될 만해요. 캐릭터 창작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예를 드는 '두 눈 빛깔이 다른 여주인공'에 대한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 플롯을 만들고 배치하는 카드 활용법 같은 것은 저도 한 번 써먹어 봐야겠더라고요.

작법 뿐 아니라 캐릭터 소설의 정의와 역사, 특징은 물론 관련된 다양한 서브 컬처까지 소개하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로도스도 전기"와 함께 TRPG가 캐릭터 소설의 원형이라며 소개한 사례 등 그 폭이 상당히 넓기도 하고요. 꼭 작법서가 아니라 이쪽 바닥 입문·소개서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관련해서 소개된 몇 권은 꼭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세계관'에 대한 사고방식도 눈여겨볼 만했습니다.

다만 불필요하게 문학을 의식하며 사생 소설과 비교하는 부분은 조금 지루했습니다. 천만 부 이상을 팔아치운 프로 작가로서의 작법이 좀 더 강조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실용성과 재미 측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최소한 소설로 보일 만한 무언가를 만드는 데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약간 번역에서의 오류가 아쉽긴 하지만, 크게 흠잡을 정도는 아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그럴듯한 작법 이론을 가진 이 작가의 대표작이 "마다라"와 "다중인격탐정 싸이코"라는 점은 조금 애매하네요. 하긴, 명선수가 항상 뛰어난 감독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만년 후보가 명감독이 되는 사례와도 비슷한 것이겠죠?

2015/05/05

대낮의 사각 1/2 - 다카기 아키미쓰 / 김선영 : 별점 3점

대낮의 사각 1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대낮의 사각 2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도쿄대 역사에 남을 정도의 천재 스미다 고이치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 "태양 클럽"이라는 조직을 만든 뒤, 전후 혼란기에 거대한 재력을 손에 넣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잠깐의 성공 이후 스미다는 폭주한 끝에 자살이라는 최후를 맞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의 추종자 중 한명이었던 쓰루오카는 스스로 "사기"라는 범죄로 성공할 생각을 굳히는데...

다카기 아키미쓰의 작품으로 무려 800여페이지가 넘는 초거대작.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터리 100선에도 선정된 (28위)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도착의 사각"이 떠오르는 제목이라 당연히 본격물이라 생각했는데,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 가미즈 교스케, 기리시마 사부로, 햐쿠타니 센이치로가 등장하는 정통파 본격 추리소설이 아니라 쓰루오카 시치로라는 천재적인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한 범죄 소설이라서 조금 의외였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합니다. 얼마나 범죄가 치밀하게 그려지는가?가 범죄 소설의 핵심 재미 요소인데, 등장하는 어음 편취 사기의 설득력이 아주 높은 덕분입니다. 어떻게 어음을 손에 넣는지와 그것을 어떻게 현금화 하는지에 대해 재미있으면서도 기발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등장하는 여러 사기 사건 중에서도, 어음을 발행하는 피해자가 홀딱 속아 넘어가도록 일본 조선 주식회사로 위장한 회사 건물 안에서 연극을 연출하듯 모든 상황과 장소를 조작했던 '신요 기선 어음 편취 사건', 그리고 실존하는 공사관을 무대로 대사의 비서와 직접 짜고 벌인 '파세도나 공사관 사기 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외의 사건들도 치밀함은 뒤지지 않습니다. 실제 범죄자와 직접 인터뷰를 한 뒤 쓰여졌다고 하는데, 생생함과 설득력이 정말 대단한 수준이에요. 항상 사기는 당하는 쪽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치밀하면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아울러 주인공이 도쿄대 법대 출신이라는 설정을 대기업 임원과의 술자리 대화를 통해 자금을 편취하는 사기라던가, 경찰 취조를 빠져나가는 부분 등에서 효과적으로 써먹는 것도 괜찮았어요.

또 범죄 소설은 주인공 범죄자의 캐릭터도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뤼팽"은 고전 본격물에 가까워 뺀다 쳐도 "팡토마스", 리처드 스타크의 "악당 파커", 퍼트리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등의 유명 악당 캐릭터는 지금까지도 그 생명력이 이어지고 있죠. 이 작품 역시 등장인물들 묘사가 아주 그럴듯한데, 그 중에서도 자신의 모든 행동을 분단위로 기록한다는 천재 스미다 고이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록 초반부에 퇴장하지만 천재이자 광인으로 그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지배한 남자 류비세프의 흑화버젼이랄까요. 참고로, 실존했던 전후 도쿄대 출신 수재들이 벌인 "히카리 클럽" 사건 주역에게서 모티브를 얻어 묘사했다니, 이 역시 생생함이 남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주인공들의 입을 빈 전쟁 직후, 이른바 전중 혹은 전후파라 불리우는 세대의 시각도 돋보였습니다. 메이지 세대라 불리우는 전쟁을 일으킨 세대에 대해 맹목적인 분노와 적개심 가득한데 1920년대 생인 작가 본인의 시각일겁니다. 허나 이들 역시도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성공은 하고 싶고, 위기에 몰리면 피해자 코스프레에 몰두하는 비겁한 인물들일 뿐입니다. 시대의 대악당을 꿈꾸지만 결국 소인배라는 것이 이채롭네요.

이렇게 소재 및 전개, 캐릭터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재미를 갖추고는 있는데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일단 이야기의 흐름이 하나의 거대 장편이라기 보다는 옴니버스 범죄물처럼 토막나 있어서 하나의 호흡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럴거라면 여러편으로 시리즈를 쪼개던가, 아니면 큰 줄기의 이야기는 넣지 않는게 좋았을겁니다.

주인공 쓰루오카의 캐릭터가 스미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점도 아쉽습니다. 본인 스스로 악인을 자처하는데 인간적인 모습이 계속 엿보이게 만드니 죽도 밥도 안된 느낌이거든요. 차라리 "야수는 죽어야 한다"의 다테 구니히코처럼 막 나갔어야 했어요.
그나마 마무리 직전까지는 그런대로 능력있는 악당 느낌을 전해주는데, 마지막의 급작스러운 몰락 탓에 캐릭터 훼손도 심해져 버리고 말았네요. 쓰루오카를 집요하게 추적하던 후쿠나가 검사에 의해 체포된 뒤, 파세도나 공사관 사건에서 고용했던 하수인 곤잘로의 증언으로 한순간에 끝장난다는 결말인데 고작 이정도밖에 안되나? 싶었던 탓입니다. 좀 더 치밀한 안배, 효과적인 도주가 덧붙여져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여성들에 대한 묘사가 별로라는 것도 단점입니다. "여자는 단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도구는 많을 수록 좋다"라는 스미다의 신조가 작품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지만, 다카코의 자살은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그야말로 개죽음이며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니까요. 일종의 성녀 이미지를 작품에 집어넣어 쓰루오카의 악을 비교하여 더욱 추악하게 묘사하려는 의도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진부한 캐릭터에 진부한 묘사로 인해 분량만 아까웠습니다.

그리고 이건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사기극들은 만화 "쿠로사기" 등에서 이미 접해본 것들과 비슷해서 신선함이 떨어지기는 하더군요. 작품이 발표된 시기에 읽어보았다면 굉장히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을텐데 지금 읽기에는 낡기도 했고요.

결론적으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쓸데없는 묘사는 덜어내고 패배를 모르는 냉혹한 악당 쓰루오카의 범죄 행각에 촛점을 맞추었더라면 별점 4점 이상은 너끈했을텐데, 약간의 단점들로 인해 감점합니다. 그래도 천재적인 범죄에 전율하게 만드는 거장의 솜씨는 놀라운 고전 명작임에는 분명한 만큼, 추리소설 애호가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 : 현재까지 국내 출간된 다카기 아키미쓰 작품 8편은 전부 다 읽어보았는데 개인적인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야망의 덫" - "실험부부" - "파계재판" - "문신 살인사건" - "대낮의 사각 (본편)" - "유괴" -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 "제로의 밀월"

작품별 별점 평점이 2.037.., 3점이네요. "타율왕"에 올려도 부족함이 없겠습니다.

참고로, 야망의 덫과 실험부부는 제 추리소설 리뷰 초창기에 읽고 감상을 남긴 것이라 지금 읽으면 점수가 좀 처질 수도 있는 점 양지해 주세요.

2023/10/05

Nervous Breakdown 너버스 브레이크다운 1~13 - 타가미 요시히사 : 별점 3점


90년대 초, 중반에  '타누마 사립탐정 사무소' 멤버들이 - 특히 브레인 역할인 안도와 액션 전담 미와 컴비 -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한다는 추리 만화. 지금은 없어진 월간지 "코믹 NORA"에 연재했었지요. "그레이" 등 성인 취향의 어둡고 비정한 SF, 범죄물로 유명한 타가미 요시히사의 작품입니다. 저는 "그레이"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라 이런저런 작품들 - 예를 들어 "화석의 기억" - 을 원서로 구해 읽었었는데, 이 작품은 "메탈헌터"와 함께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유이한 작품입니다. 소개 당시 한 권씩 구입해서 읽었고,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지요. 
예전에 스핀오프 "Night Adult Children" 리뷰를 올렸던 적은 있었는데, 추석 연휴를 맞아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전 13권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이 3등신과 8등신을 오가는 작화가 가장 큰 특징으로, 대부분의 경우 3등신인데  아래와 같이 특정 컷에서만 8등신으로 등장하는 식입니다. 


3등신 캐릭터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추리를 하고 시니컬하고 분위기있는 대사를 내뱉는게 묘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특별히 모든 등장인물들이 8등신으로만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두 편 있습니다. - 안도가 주인공인 "고즈에로 가는 마지막 버스", 미와가 주인공인 "살인자에게 인사를" - 두 편 모두 의외의 재미를 가져다주는 좋은 작품으로, 전부 8등신으로 진지하게 그렸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등장인물들도 독특합니다. 안도는 포지션은 전형적인 명탐정이지만, 정의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거든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진범을 체포하는데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정해진 보수를 받은 만큼 일하고요. 사건 도중에 일어난 트러블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의뢰인에 대해서 "그 여자가 죽건 말건 난 상관없어"라고 말할 정도고, 아래처럼 지인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빡않는, 인정머리 없는 남자입니다.



몸이 굉장히 약하고, 여자들이 쉽게 반하는 미남이라는 속성도 붙어 있는데 이런 캐릭터는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네요. 아래와 같이 멋진 말을 남기는 장면은 과연 여자들이 반할만하다 싶기도 하고요.

"미야한테 전할 말이 있는데...."

미와는 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그 캐릭터에 가깝지만, 그 초인적인 체력이 유용하게 활용될 때가 많다는 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아래와 같이 가끔은 멋지게 등장합니다. 그냥 개그컷에 가깝지만....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작가의 추리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이 잘 녹아 있거든요. 목차부터가 고전 명작의 패러디들이 많을 정도로요. 
하지만 트릭이 사용된 본격물보다는 범죄 드라마, 스릴러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이 더 완성도가 높습니다.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전개도 좋고, 사건에 몰입하게 만드는 상황과 심리 묘사가 탁월한 덕분입니다. 작가도 이런 특성을 알아챘는지 뒤로 갈 수록 트릭보다는 드라마에 집중하며, 덕분에 더 볼 만해집니다.
이외에도 죽어가는 남편의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조사에 나선다는 "어느 조용한 죽음" 처럼 잔잔한 일상계로 인간 관계를 되새기게 만드는 에피소드들도 독특합니다. "고백의 십자가", "마지막 Chiristmas" 같은 일상계 러브 스토리까지 수록되어 있는 등 다루는 장르의 폭도 넓고요. "노리코의 죽음"같이 SF 등 다른 장르물과 혼합된 사랑 이야기(?), 미와가 맹활약하는 액션물들도 괜찮습니다. 

정통 본격물 맹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패러디들도 큰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과거 잔혹한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곳에서 실종자가 한 명 나왔지만 안도가 "아직 기껏해야 실종에 지나지 않으니까. 이런 사건은 다음 피해자가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처럼요. 아래의 밀실 살인에 대한 비판 역시 공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추리 만화로서 논리적이거나, 감탄할만한 트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많지 않다는건 다소 아쉽습니다. 만들기 쉬운 암호 트릭 - 10권 "산쥬노출"의 "미키가 노래하는 미버 (タレラヤ小さぃ子羊肉)"처럼요 - 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 오히려 트릭이 사용된 에피소드는 다소 억지스럽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예를 들어 "바이바이 엔젤"에서는 수조로 이루어진 밀실에서 수조를 치우는건 불가능하다고 등장인물들이 이야기하지만, 수조를 어떻게든 치웠다는게 진상이었습니다. 이런건 반칙을 넘어서는 억지죠. 

3등신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인지 개그도 많은데, 안도의 약한 체력과 미와의 야수같은 육체, 의뢰인이었다가 타누마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게 되는 미야가 재벌 이나바 테츠노스케의 손녀라는 등의 캐릭터 설정을 활용한게 많습니다. 문제는 다소 뻔하고 식상한 개그들이라는 겁니다. 반복적이기도 하고요. "15세" 딱지가 붙을 정도로 외설적인 개그도 많은데,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아서 안 나오느니만 못했습니다. 마지막 에피소드 "마지막은 참극"은 미와가 등장인물 모두를 죽이는 꿈을 꾼다는 내용인데,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영 어울리지 않았고요.
아울러 학산 문화사 초기 번역 소개작이라 그런지 여성의 노출 장면을 어거지로 덧칠하는 등의 문제도 크며, 3등신 캐릭터들의 얼굴 구분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3권의 "모두가 닮은 사람"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모두가 닮았다는걸 트릭으로 써먹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다시 읽어도 여전한 재미를 가져다주는건 분명합니다. 수록작들 편차는 크지만 몇몇 작품들은 충분히 '걸작' 소리를 들을만 하다 싶고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각 권별 수록작들 제목을 소개해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제가 아는 한 원제를 달아보기는 했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1권 :
갑자기 사라져 버린 케이코
그래도 사랑스러운 여인이여
원과 면 : 점과 선
황색의 연구 : 주홍색 연구
 
2권
일요일은 죽는 날
걱정일세, 여탐정!
여름빛깔 카루이자와
타누마 소장 최후의 사건 : 트렌트 마지막 사건
얼어붙은 파도 : 얼어붙은 섬 또는 얼어붙은 송곳니
 
3권
도둑은 가득히 : 태양은 가득히
모두가 닮은 사람 : 당신을 닮은 사람
제로의 정점 : 제로의 초점
한여름 낮의 꿈 : 한여름 밤의 꿈
어느 조용한 죽음

4권
하얀 커튼 : 검은 커튼
입학 : 졸업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새빨간 거짓말
사라질 뻔한 탐정 : 사라진 남자 (?)
 
5권
새벽녘의 시선 : 새벽의 데드라인
그리고 소녀는 사라졌다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변호인측 괴인 : 검찰측 증인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내일도 무사하게 하소서

6권
오발탄
타누마 가의 일족 : 이누가미 일족
노리코를 위하여 : 요리코를 위해
분수령
마진테 부인은 죽었다

7권
귀여운 설녀
어느 비오는 오후 갑자기
Midnight Fool
매장 지도
50의 살인

8권
시체와 여행하는 남자 :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고백의 십자가 : 공허한 십자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남자들
토모여, 고이 잠들라 :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기타가타 겐조)

9권
바이바이 엔젤 : 바이바이, 엔젤
추억의 매장
모르그 가의 살인 : 모르그 가의 살인
레이디 하트브레이크
" " (무제)

10권
산쥬노출
마지막 Chiristmas
고즈에로 가는 마지막 버스 : 우드스톡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
불타는 사나이 (Man on Fire) : Man on Fire (크리시 시리즈)
치에는 어디에
사람은 어째서 살해당하는가 :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11권
악몽같은 여자 : 악마같은 여자 ("디아볼릭")
환상의 여인 : 환상의 여인
의뢰인으로부터 한마디 (과거 연재작 특별편) 시리즈
  • 귀여운 여인
  • 설녀가 보고 있었다, 또는 "고립된 산장"을 주제로
  • 울부짖는 여자

12권
보디가드
살인자에게 인사를
셀룰로이드 살인
어설픈 시체
움직이는 시체

13권
여자에게는 맞지 않는 직업 :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사랑의 탐정들
가장 위험한 유행 : 가장 위험한 게임
도중의 집 : 중간 지점의 집
리틀 루즈 걸 : 리틀 드러머 걸
마지막은 참극


본편 외에도 "스페셜 리포트"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유명 추리 소설들을 패러디한 4컷 만화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당시에 만화책이 3,500원이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모든 물가가 3배 이상은 올랐을텐데, 만화책만은 거의 오르지 않았네요.

2008/07/19

GOTH - 오츠 이치 / 권일영 : 별점 2점

GOTH 고스 - 4점
오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학산문화사(단행본)

오츠 이치의 단편집입니다. 이전에 읽었었던 "ZOO"와 다른 점은 동일 캐릭터로 이루어진 연작 작품들 이라는 것으로,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네요.

쟝르는 "ZOO"나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과 같은 호러 단편집으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추리적인 요소를 작품에 많이 도입했다는 점은 추리 애호가로서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제 3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고 광고를 하고 있기도 했고 "ZOO"에서도 접했던 오츠 이치의 추리물은 꽤 완성도가 높았기에 기대가 컸었는데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추리적인 요소가 곳곳에 적절하게 사용되는 편이고 정보의 제공도 공정한 편이라 본격물은 아니지만 추리물로서 즐기기에 충분한 수준의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6편 중 추리물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은 반 정도밖에는 안되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추리적인 요소만 놓고 봤을 때 작품들 중 베스트는 역시 "암흑계 Goth" 를 꼽겠습니다.

그러나 단편집 전편에 걸쳐 등장하는 작품의 주인공인 "나"와 친구 "모리노 요루", 두명 모두 죽음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을 품고 있는 고등학생으로 시종 설정이나 여러 묘사를 볼 때 역시나 오츠 이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질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솔직히 이상성격도 어느 정도여야지 이 정도 설정이라면 거의 판타지나 다름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인물들이었거든요. 실제 일본의 사회 분위기가 이런 캐릭터들이 현실적으로 용납되는 사회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장도 어느정도여야죠.... 부수적으로 특유의 적나라하며 잔인한 묘사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더군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별점은 제 개인적 기준으로는 2점입니다. 본격물로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호러물로 보기에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는 적나라한 피떡 묘사만 난무하는 알맹이 없는 작품이었거든요. 잔인한 묘사가 없이 추리 부분을 약간만 보강했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추리 단편집으로 성립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나저나, 작품을 2개나 읽었는데 이 작가가 왜 천재라고까지 불리우는 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군요. 장편을 읽어봐야 하나?
그리고 잔혹성으로 문제가 된 듯 한데, 최소한 19금 딱지는 붙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암흑계 GOTH
"나"는 의외로 공통의 취미를 가진 것을 알게되어 친해진 "모리노 요루"가 연쇄 엽기 살인마에게 납치된 것을 알게된다. 유일한 단서는 모리노가 주웠던 연쇄살인마의 수첩. 수첩을 단서로 "나"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데..
주인공들의 인물 설정이 등장하는 첫번째 단편입니다. 연쇄 살인마가 누구인지를 알게되는 추리 자체는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높지만 연쇄 엽기 살인마의 범행 자체가 불필요할 정도로 잔인해서 작품에 몰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2. 리스트 컷 사건 Wristcut
사람들의 손을 잘라가는 엽기 범죄가 일어나는데 "나"는 우연한 기회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주인공이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되는 과정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네요. 단서가 너무 적었거든요. 결론을 도출해나가는 추리 자체는 말이 되긴 하는데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되고요. 주인공의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를 보여주는 약간의 섬뜩한 결론 빼고는 별로 건질게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추리물로 보기에는 2% 이상 부족한 작품.

3. 개 Dog
마을에 애완동물 실종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나"는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조사를 시작하고 얼마 뒤 여동생의 덕분에 애완동물들의 시체가 버려진 구덩이를 발견하게 된 것을 계기로 사건의 전모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집에 속한 작품 중 가장 서정적인 작품입니다.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의 단편 중 하나인 "소녀의 기도"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결말은 보다 해피엔딩이긴 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캐릭터의 설정이 이 작품에서만 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추리라는 요소는 없어서 별로 건질건 없네요. "나"는 방관자일 뿐일텐데 말이죠....

4. 기억 Twins
모리노는 불면증에 걸린다. "나"는 그녀의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목에 걸 끈"을 찾다가 그녀가 쌍둥이였고 그녀의 동생이 목을 메고 자살했다는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사건을 보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그녀의 고향집을 찾은 "나"는 모든 사건의 진상을 알게된다.
음.. "ZOO"의 "카자리와 요코"와 조금은, 아주 조금은 비슷한 설정이랄까요? 진상을 알게 되는 몇가지 단서와 추리는 좋았습니다만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나름 잔잔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었지만요.

5. 흙 Grave
사람을 생매장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범인. 그가 다음 타겟으로 납치한 것은 여고생 소녀였다. 그러나 납치 후 자신의 수첩이 없어진 것을 알게된 그는 패닉에 빠지고 다시 사건 현장으로 찾아가게 된다.
시점이 주인공 "나" 에서 연쇄 살인범인 범인의 시점으로 이동한 단편입니다. 시점의 이동이 크게 중요한 작품은 아니지만 범인의 심리묘사는 제법 그럴듯 했습니다. 또 "수첩"을 기반으로 하여 전개되는 추리의 과정들도 괜찮았고 마지막의 결말도 아주 깔끔했습니다. 우연에 기반한 설정이 좀 있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6. 목소리 Voice
엽기적으로 살해된 키타자와 히로코 사건이 발생한 이후, 히로코의 동생 나츠미에게 스스로가 범인이라고 밝힌 고등학생이 나츠미에게 히로코 최후의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전해준다. 테이프에 이끌려 나츠미 역시 마지막에 사지(死地)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마지막 작품으로 주인공과 키타자와 나츠미, 다시 주인공으로 세번 시점이 이동하는 작품입니다. 시점 이동이 가장 중요한 트릭으로 사용된 서술 트릭물이기 때문인데 좀 뻔한 트릭이라 사실 중간에 알아낼 수 있긴 했습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끝나는 결말 덕분에 작품이 괜찮게 마무리 된 것 같긴 하네요.

2018/07/22

보리 대 매켄로 (2018) - 야누스 메츠 페데르센 : 별점 1.5점


비행기 시간이 10시간을 넘어가니 영화 한두편 보는 건 일도 아니네요. 이 역시 지난 출장 중 감상한 영화입니다.

80~90년대만 해도 지금과는 다르게 몇몇 특정 종목은 국내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았습니다.해당 종목의 슈퍼스타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고요. 대표적인 종목은 누가 뭐래도 권투였지만, 테니스도 만만치 않았었지요. 이 영화 속 비요른 보리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80년대 테니스의 제왕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었어요.  코트위의 악동 죤 매켄로 역시 우승 횟수로는 보리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독특한 캐릭터로 일세를 풍미했었고요. 영화는 이 두 명의 윔블던 결승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기억이 생생한 7080 세대이기에 감상하였습니다.

제목은 보리 대 매켄로이지만, 영화 속 비중은 보리 쪽이 압도적입니다. 특히나 보리의 일대기를 일종의 성장기, 영웅담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매켄로 못지 않은 야성을 지니고 시합하다가 코치의 도움으로 냉정함을 겸비한 기계같은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그리고 최고가 되고 윔블던 5연패를 앞두지만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극도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부진을 겪고 주위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문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우리의 영웅 보리는 결국 이를 극복하고 우승을 차지한다!는 내용이거든요.

그러나 이에 반해 죤 매켄로의 비중은 작습니다. 악동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몇몇 장면들 외에는 별다른 비중도 없고 캐릭터도 평면적이에요. 악동 이미지와는 별 상관도 없는 짤막한 과거사와 아버지 이야기는 왜 나오는지도 모르겠고요.
무엇보다도 비외른 보리 역을 맡은 스베리를 그뷔드나손에 비해, 전혀 운동을 잘 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샤이아 라보프의 연기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전 "퍼펙트 게임" 에서 말씀드렸듯 최동원에 비해 선동열의 캐릭터와 역할이 많이 아쉬웠던 것과 비슷한데, 이럴 바에는 "보리 대 매켄로"가 아니라 "비요른 보리"라는 영화를 만드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매켄로의 캐릭터는 떠오르는 천재 선수지만 싸가지가 없다, 정도로만 묘사해도 충분했을 거에요.

그래도 매켄로의 캐릭터는 조금 아쉽다 정도이지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테니스 경기 장면이 재미없다" 는 겁니다. 테니스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테니스 시합 장면의 긴장감은 잘 살리지 못한 탓입니다. 실제 실황 중계 화면같은 느낌의 촬영인데 속도감도 느껴지지 않고, 시합을 하는 두 배우도 그다지 테니스를 잘 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어요.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비요른 보리 선수에 대한 묘사는 확실히 출중하고 촬영과 디테일 모두 만족스러웠지만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기대하는 건 캐릭터가 아니라 시합 장면이지 않을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09/11/01

고백 - 미나토 가나에 / 김선영 : 별점 3점

고백 - 6점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비채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사고로 딸을 잃은 교사가 봄방학을 맞아 마지막 조회에서 학생들 앞에서 충격적 사실을 밝히기 시작한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반에 있습니다"....

* 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읽으실 분들은 미리 염두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출간소식을 알았을때에는 그닥 구입생각이 없었는데 인터넷을 통해 너무나 많은 호평을 접해서 구입하게 된 책입니다. 워낙 많은 상을 탔기 때문에 혹한것도 있죠.

그런데 제게는 그냥 평균작 수준이었어요. 대단한 작품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기에는 좀 부족했거든요.
물론 1인칭 시점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성직자"라는 단편은 대단했고, 이 첫번째 단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등장인물을 바꾸어가며 극단적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형식도 독특해서 - 두번째 단편 "순교자"는 서간문 형태, 세번째 단편 "자애자"는 일기, 네번째 단편 "구도자"는 1인칭 추억담, 다섯번째 단편 "신봉자"는 유서, 마지막 단편 "전도자"는 전화통화라는 형태 - 이러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위한 작가의 고민과 노력이 눈에 선할 정도에요. 또 그만큼 충분한 재미는 가져다 주고 말이죠.

그러나 기본 설정과 캐릭터가 너무 현실적이지 못해서 끝까지 몰입하기는 좀 어려웠습니다. 특히나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비현실적인것은 큰 문제로 생각됩니다. 주인공의 한명인 슈야가 대표적이죠. 유년기의 애정결핍으로 삐뚤어진 양심을 지니게 된 천재라는 설정도 뻔하지만 묘사된 캐릭터가 너무 극단적이라 감정이입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작품 후기 등에서 소개되기를 등장인물 이력서가 있고 그 이력서에 기반하여 작품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 것처럼 홍보되고 있는데 사실 슈야 캐릭터는 그동안 만화에서 흔히 보아왔던 인물 설정이기도 하죠. 읽자마자 저는 "암즈"의 건방진 천재 쌍둥이 알과 제프가 연상되었거든요. 그나마 요새는 만화에서도 쓰이지 않는 케케묵은 설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요. 슈야에 비하면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작중에 등장하는 AIDS에 걸린 세상을 바꾸는 철부지 선생이나 다양한 약품을 손에 넣는 중학교 여반장같은 캐릭터는 그나마 약과겠죠...

게다가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건물을 날려버릴만한 폭탄을 현실세계의 중학생이 제조한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모리구치 유코가 그 폭탄을 옮겨 놓는다는 것은 황당의 극치더군요. 결국 모리구치 유코 역시 자기가 가르치던 학생들 수준으로 자기합리화에만 골몰하는 뻔뻔한 인물이라는 것을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모리구치 유코의 경우 하나뿐인 혈육이 죽었으므로 복수심에 불타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긴 하지만 이렇듯 이후의 전개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당위성이 서서히 희박해져 가는것이 뒤로 갈 수록 너무 막가는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거야 캐릭터들의 설정이 설득력이 없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긴 합니다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단죄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천사의 나이프"처럼 법적인 저촉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 범죄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첫 단편 이외의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복수극으로 보기도 힘들며 추리물로 보기에도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분명히 재미있고 독특한 작품이긴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현실성이 떨어지는 등 단점이 확연하기에 그냥 첫번째 단편으로 끝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6/07/09

검은 수도사 - 올리퍼 푀치 / 김승욱 : 별점 3점

검은 수도사 - 6점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문예출판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숀가우 교구 알텐슈타트 성 로렌츠 성당의 신부 안드레아스 코프마이어가 독살당했다. 현장을 조사하던 지몬과 야콥 퀴슬은 성당 지하실에서 템플기사단장의 묘를 발견했다. 지몬은 신부의 여동생 베네딕타와 함께 암호 풀이를 통해 템플기사단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섰고, 야콥 퀴슬은 법원 서기 요한 레흐너의 지시로 도적단을 토벌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지몬과 베네딕타 사이를 질투하여 스스로 아우크스부르크로 여행을 떠나는데...

원래 남자들은 다 그래. 손에 쥔 걸로 만족하는 법이 없지. 하지만 조만간 다시 돌아온단다. 항상. - 지몬과 베네딕타의 관계 때문에 속상한 마리아에게 산파 스승 슈테흘린이 하는 말.

"왜 항상 그렇게 말이 많은 거야?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그냥 입 다물고 죽여." 나타니엘 수사를 죽이고 퀴슬이 하는 말. 나타니엘이 말이 좀 많기는 했습니다...

17세기 바바리아 지방을 무대로 한 역사 추리물 "사형 집행인의 딸"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그런데 시대와 배경이 다를 뿐,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느낌이 물씬 납니다. 오래된 유물에서 하나씩 단서를 얻어 보물을 찾아나가는 과정, 그리고 그 보물이 예수가 못 박혔다는 십자가라는 종교적 장치가 핵심이라는 점에서요. 성당의 수장이 흑막이라는 점은 "천사와 악마"가 떠오르고, 성물을 찾는 조직과 핵심 성물이 십자가라는 설정은 "용오"의 한 에피소드도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의 매력도 충분합니다. 우선 읽는 재미가 뛰어납니다. 지몬과 베네딕타 커플의 암호 풀이, 퀴슬의 강도단 추적, 마리아의 수도사 추적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잡한 이야기가 지루함 없이 속도감 있게 전개됩니다. 결말에 이르러 모든 내용이 유기적으로 하나로 이어지는 구성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덕분에 약 500페이지라는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17세기 독일 바바리아를 무대로 한 묘사도 빼어납니다. 시대와 장소, 다양한 인물, 민초들의 삶 등 모든 요소에서 철저한 고증과 설득력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으리라 생각되네요.

전작에서 이어지는 캐릭터들의 개성도 여전합니다. 특히 이 시리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야콥 퀴슬의 존재감은 더욱 도드라집니다. 지성과 힘을 겸비한 먼치킨 캐릭터로 여전히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거든요. 특히 성 요한 예배당에서 천장을 타고 내려오는 결전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에요. 상상만으로도 전율을 자아냅니다. 여기에 인간적인 매력도 더해져 있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도적단 두목 한스 셸러와의 대화 장면에서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할 정도지요.

지몬 프론비저도 미워할 수 없는 뺀질 캐릭터로 톡톡튀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암호 풀이에서 보이는 대단한 활약은 조금 놀랍기도 했고요. 헐리우드식 버디 무비에서 흔히 등장하는 친구 캐릭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활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사형 집행인의 딸" 마리아의 존재입니다. 아우크스부르크로 가는 여정에서 강도에게 돈을 빼앗기고, 우연히 만난 수도사를 미행하다 붙잡히는 등 민폐 캐릭터로만 그려지는 탓입니다. 지몬과 베네딕타의 관계를 질투하는 장면들도 불쾌하게만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캐릭터인 베네딕타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좋은 신분으로 태어났다면 이랬을 것이라는 묘사 등을 통해 마리아의 복제판처럼 느껴집니다. 게다가 그녀가 도적단의 일원이라는 반전은 굳이 필요했나 싶을 정도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단순히 안드레아스 신부의 여동생으로 설정해도 충분했을 텐데, 이야기를 지나치게 확장시켜 오히려 주된 흐름에 방해가 되었어요.

우연에 의존한 전개도 다소 거슬립니다. 마리아가 야코부스를 우연히 만나 미행하고, 다시 우연히 지몬과 베네딕타를 구하게 된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다른 인물들의 만남이나 사건 진행도 대부분 우연에 의존하고 있고, 결말에서는 곰팡이 슨 약초로 페니실린을 만들게 된다는 전개까지 등장하는데 이건 많이 억지였어요.

또한 암호 풀이는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그 해석도 흥미롭지만 독자가 함께 추리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해당 지역 고유의 역사나 지명에 기반한 내용이기 때문인데, 이런 점은 이 작품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역사 모험물로 보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읽는 재미만큼은 결코 폄하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07/03/15

중전기 엘가임 (1~54)

2개의 태양이 비추는, 5개의 행성으로 구성된 펜타고나 월드. 원래 각각의 왕조가 있었고 서로간의 전쟁이 있었지만 모든 세력을 제압한 올드나 포세이달이 영원의 젊음으로 독재를 계속해 오고 있던 중, 혹성 코암의 시골뜨기 타바는 친구 캬오와 함께 아버지가 물려준 헤비메탈 엘가임을 가지고 출세를 위해 도시로 나온다. 그들은 도적단 출신 판네리아 암과 합류하여 우연찮게 휩쓸린 도적단과의 전투에서 100만긴이라는 거액의 수표를 손에 넣고 수표의 주인인 무기상인 아만다라 카만다라에게 수표를 전해주기 위해 모험을 벌이며 미즌 행성까지 이동하고, 여기서 포세이달의 독재에 반대하는 반란군에 합류하게 된다...

84년 방영한, 무려 23년이나 지난 이 작품을 이제서야 다 보게 되었습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보면 세월을 반영하듯 미숙함과 부족함 투성이입니다. 작화는 세월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형편없고, 주인공들이 어디 사로잡히기만 하면 탈출을 너무 쉽게 한다던가, 불필요한 사이드 스토리가 너무 많다던가 하는 부차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라도 그 외의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부분과 설정을 두루뭉실하게 넘기고 있는 각본도 대충 쓴 티가 물씬 납니다. 또한 작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헤비메탈의 능력치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단점으로 보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지상의 허접한 지원 차량의 빔포, 심지어는 인간이 직접 쏘는 화기에도 박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대체 이 거대하고 복잡한, 비싼 기계를 왜 타고 다니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거든요.

하지만, 54편이나 되는 분량을 몰아쳐 볼 정도로 저에게는 큰 재미를 가져다 준 작품이었습니다. 왜냐면 어렸을 적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의 대백과를 통해 접한 뒤 항상 동경해 오던 작품이기에 정말 오래된 숙제 하나를 끝낸 느낌이 들었거든요. 또 천하를 손에 넣으려는 세력들의 암투가 펼쳐지는 군웅전같은 기본 스토리 자체도 재미있었고, 작중 세계의 패왕인 올드나 포세이달에 얽힌 배경 설정과 이야기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과거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 대백과로 이미 반전(?)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고 보았더라면 정말 대단하다 생각될 정도로 몰입도가 있는 스토리였다 생각되네요. 포세이달의 복수가 결국은 성공한다는(?) 여운을 남기는 엔딩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요.

아울러 군웅전 성격의 작품이기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캐릭터들의 성격이 확실하게 살아있더군요. 요사이의 복잡한 설정과 항상 고민에 휩싸여 있는 성격의 주인공들보다는 저는 이러한 올드타입 주인공들, 확고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일관된 행동을 하는 주인공들이 훨씬 좋더라고요. 타바야 전형적인 복수의 왕자 캐릭터이긴 하지만 다른 캐릭터들의 성격이 확실합니다. 특히 주인공 타바의 라이벌인 "불타는 눈의 사나이" 갸브렛드 갸브레는 과거 열혈 주인공을 계승하는 멋진 라이벌 캐릭터였습니다. 이 친구 때문에라도 프라모델 아톨 1/144는 사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리고 헤비메탈들의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즐거움 중 하나였죠. 많은 숫자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당시 유행하던 선라이즈 리얼 로봇의 계보를 충실히 이으면서도 마모루 나가노 특유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헤비메탈들의 디자인은 눈여겨 볼 만한 가치가 확실히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너무 오래된 작품이며 작화도 지금 시각으로 보면 졸렬하기 그지 없으며 문제점도 많아서 선뜻 추천하기는 어려우나 옛 향수를 떠올리는 것 이상의 재미를 안겨다 주는 멋진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초반부의 지루함만 넘길 수 있다면 기대 이상의 소득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덧붙여, FSS와의 연관점을 많이 이야기 하는데 제가 보기에도 굉장히 비슷하네요. 감독은 토미노고 원작은 야타테 하지메로 되어 있지만 스토리에도 마모루 나가노가 깊숙이 개입한 듯 보일 정도거든요. FSS 시리즈의 팬이라면 또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2009/04/02

불야성 (不夜城 / 1998) - 이지의 : 별점 2점 / 불야성 - 하세 세이슈 : 별점 4점


와 이 영화 정말 어렵게 구했네요. 정상적인 경로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어둠의 경로를 이용하여 구해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 원작을 읽고 보고 싶다 생각한지 어언 6년만에 보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지성이면 정말 감천이에요! 인터넷을 뒤져봐도 이 영화 리뷰는 제가 국내 최초인거 같기도 하고 말이죠.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저의 기대와는 좀, 아니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신쥬쿠-가부키쵸의 어두음을 음울하게 그려낸 방식은 좋았지만 복잡한 원작의 구조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서 재미가 많이 떨어지더군요. 영화의 런닝타임에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그래도 4대 조직과 여러 인물들이 교차하는 원작과는 달리 주인공 류젠이와 더불어 유에천쿠이-우후춘 사이의 알력을 중심으로만 영화가 진행되기에 그냥 흔해빠진 액션 느와르에 지나지 않는 작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한 당시 홍콩 영화에서 유행하던 거친 입자의 화면과 핸드헬드 카메라 워킹, 스텝 프린팅의 과도한 사용은 지금 보기에는 스타일리쉬하다는 느낌 보다는 어지럽다라는 인상만 강하게 전해주고요. 게다가 나츠미라는 가족과 애인과 운명을 모두 쌈싸먹는 희대의 팜므파탈(?) 캐릭터가 생각과 너무 다르게 묘사되어 김이 빠집니다. 차라리 이쁘기라도 하던가.

그나마 건진건 금성무의 제대로 된 간지 이외에는 없는 뻔할 뻔자 암흑가 느와르라 별점은 2점 이상은 무리로 보이네요. 기다림이 아쉬울 뿐입니다.

** 아울러 원작도 영화를 보고 탄력받아 6년만에 다시 잡아 읽게 되었는데 다시 읽고 나니 6년전하고는 다른 느낌이라 다시 리뷰하는 셈 치고 더 적어 봅니다.

불야성 - 8점
하세 세이슈/대원씨아이(만화)

이전과 다른, 눈에 뜨이는 단점만 먼저 이야기해 보자면, 일단 예전에 느꼈던 치밀함이 다시 읽어보니 그 빛이 무척 바랜 것 같습니다. 6년 사이에 더욱 치밀한 작품들을 많이 읽어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주인공 류젠이의 계획 모두가 즉흥적이고 운에 의지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 거슬렸습니다. 대체 어디서 치밀하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또한 이 작품에서 풀풀 풍기는 그야말로 "비린내" 역시 부담되는 수준이었습니다. 좋게 이야기한다면 디테일한 심리묘사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동감이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되긴 하지만 특유의 저렴하면서도 처절한 분위기가 더해져서 그야말로 동네 정육점스러운 느낌이더군요.

그러나 이 작품은 다시 읽어도 여전한 재미와 가치를 전해 주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다시 읽어도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신쥬쿠와 가부키쵸를 중심으로 한 중국계 조직들의 세력다툼에 관한 엄청난 디테일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죠. 저는 물론 이쪽 세계를 전혀 모릅니다. 앞으로 알 일도 없고요. 그러나 작가의 방대한 자료 조사를 짐작하게 만드는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묘사에서 드러나는 상하이-대륙-대만-홍콩 4개 세력권의 암투는 충분히 설득력을 가집니다. 리우만-후젠과 같은 중국계인들의 은어를 비롯하여 여러 가게의 명칭이나 주인공의 활동권 등 다양한 세부 내용에서 엄청난 작가의 자료조사를 짐작하게 만드니까요. 

또한 류젠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굉장합니다. 시리즈가 나왔다는데 수긍이 갈 정도로 대단한 캐릭터였어요. 일반적인 하드보일드와는 다른 독특한 매력에다가 정말로 "악당"이라는 점은 정말로 매력적이었으니까요. 이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별점은 한점 이상 끌어올리는 캐릭터이기에 별점 총점은 4점입니다. 앞서 말한 허술함과 비린내는 결국 이 주인공 캐릭터가 다 녹여버리고 부서버리니 뭐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게 진정한 하드보일드의 맛일지도 모르죠.

** 쟝르가 "만화"로 되어 있는데 터무니없음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대원에서 나왔다고 다 만환가...

2019/06/02

알라딘 (Aladdin) (2019) - 가이 리치 : 별점 2.5점

"신데렐라", "미녀의 야수", "정글북"에 이어 4번째(맞나요?)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작품입니다. 

이전 공개되었던 스틸 컷 이미지가 애니메이션과 괴리감이 심한 탓에 상당한 우려를 자아냈는데 작품 은 굉장히 깔끔합니다. 애니메이션의 기둥 줄거리와 설정,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오기는 했지만 실사 영화에 어울리도록 주요 장면을 적절히 구성한 솜씨가 괜찮은 덕이 큽니다. 특히나 가장 우려했었던 윌 스미스의 '지니'가 아주 잘 구현되어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원작의 지니를 윌 스미스 스타일로 잘 어레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적절하다'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시종일관 웃음과 흥을 자아내는 연기는 물론 춤과 노래 모두 최고였고요. 과거 힙합 아이돌이었던 솜씨가 여전해요.
다른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어레인지, 변주가 이루어져있는데 지나치게 애니메이션을 의식해서 '코즈프레'에 가까왔던 다른 작품들 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새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자스민 공주의 시녀 달리아, 충직한 근위대장(?) 카심의 등장과 활용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파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가본데 저는 괜찮았어요. 그냥 사악한 악당은 아니고,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와서 최고를 추구하는 설정이 이야기와 잘 어울렸습니다.

이야기의 변형도 역시나 적절합니다. 크게 두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한 개는 알라딘의 두번째 소원입니다. 원래 애니메이션에서는 물에 빠진 알라딘을 지니가 구해주기는 하지만 과연 소원을 쓴 것인지 아닌지 논란의 여지가 있었죠. 알라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영화에서는 지니 임의로 '두번째 소원을 쓴 것'으로 서약서를 쓰는 장면을 삽입하여 깔끔하게 정리해줍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개는 마지막에 알라딘이 지니에게 자유를 주는 장면입니다. 영화에서는 보통 사람이 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아주 괜찮았어요. 애니메이션에서는 지니의 모습과 능력 그대로를 갖춘 채 자유를 얻어서 너무 막강한 캐릭터가 된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시녀 달리아와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 그 모습이 도입부 선원으로 이어지는 수미쌍관식 구성도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건 아무래도 화끈한 액션이 부족하다는 점이에요. 동굴에 갖히게 된 알라딘의 탈출 장면 정도만이 기대에 값할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자파와의 대결은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여러모로 기대 이하였어요. 단지 양탄자를 타고 좀 날라다니다가 잡힌 뒤, 입을 털어서 자파를 설득하는게 전부거든요. 양탄자 비행도 더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텐데 화끈함이 부족합니다.

자스민 공주가 자립적인 여성으로 훌륭한 여왕이 될 수 있다는 최근 트렌드에 맞춘 듯한 설정도 딱히 들어갈 필요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왕의 그릇이라는 걸 증명하고, 카심도 설득하는데 성공했지만 알라딘의 도움 없이는 자파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수동적인 공주님 캐릭터와 딱히 다르지도 않고요. 아니, 알라딘을 숨기기 위해 자파에게 키스를 하는 기존 캐릭터가 과감한 측면에서는 더 나아보이네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파의 소원 중 '왕이 되겠다'는게 무의미하게 소모된건 옥의 티입니다. 왕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공주의 말 한마디로 신하들이 배신(?)을 한다면, 지니의 마법이 그만큼 보잘 것 없다는걸 증명하는 꼴이잖아요.
마지막으로, 주연 배우들 모두가 아랍인이 아니라 인도인으로 보이더라는 문제도 있긴 한데 어차피 고증과는 담 쌓은 작품이니 이건 큰 흠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래도 이 정도면 실사화의 모범 답안이라고 해도 괜찮아 보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두 시간 정도 즐겁게 감상하는 데에는 적당했어요. 저처럼 어린 친구와 영화관을 가실 일이 있으시다면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05/09/05

여류 조각가 상/하 - 미네트 월터스 / 임옥희 : 별점 3점

여류 조각가 -상 - 6점 미네트 월터스 지음/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여류 조각가 -하 - 6점 미네트 월터스 지음/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조각가"라는 별명이 붙은 희대의 살인마 올리브. 그녀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토막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다.
그녀에 대한 작품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신청하고 자료를 조사하던 작가 로즈는 그녀에 대해 알게 될수록 그녀의 혐의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고, 올리브를 최초로 체포한 경찰 할과의 만남을 통해 또다른 이상한 범죄에 말려드는데....


미네트 월터스의 유명한 작품이죠. 읽기 전 부터 기대가 컸습니다. 에드가 상 수상작일 뿐더러 워낙 평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절판되어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구하자마자 바로 읽게 되었습니다.

여성 사이코 살인마가 등장하고 그 살해방식의 잔인성에 촛점이 맞춰진 초반부는 "검은집"이나 "유니스의 비밀" 같은 작품을 연상케하는데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정통 추리물로 변해 나가는 전개 과정의 의외성이 돋보이네요. 추리적인 수준 또한 높고요. 극히 적은 단서들을 하나씩 추적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이치에 맞고 치밀하거든요. 저는 마지막까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인물이 범인이라는 점에서도 정말 놀랐고요.그 외에도 나름대로 여운과 독자의 상상을 어느정도 허용하는 결말도 인상적이었어요.
아울러 여성 작가다운 묘사도 볼거리인데 특히 주요 캐릭터인 올리브는 정말 굉장하게 묘사됩니다. 키 180cm에 체중이 160Kg이나 되는 압도적인 외모에 파괴적인 충동, 그리고 식탐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작품안에 넘쳐나기 때문에 제가 읽어 왔던 추리소설 캐릭터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라 생각되네요.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불필요한 잔가지, 예를 들면 할이라는 전직 경찰과 변호사 피터 크루에 관련된 사건과 같은 요소는 좀 지루했어요. 왜 나왔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리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올리브의 묘사에 비해 신경질적이고 히스테리 가득찬 주인공 탐정 작가 로잘린드(로즈) 레이는 캐릭터는 읽는 내내 짜증을 유발할 정도로 별로였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번역이 굉장히 문제가 많습니다. 전반적으로 까칠까칠하고 거슬려서 읽기 힘들 정도였어요. 요새는 좋은 번역을 만나기가 어렵군요.

그래도 에드거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한 작품 다운 재미와 수준은 충분히 전해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별 3개는 충분히 줄 만 합니다. 역시 MWA상과 에드거상, 대거상 수상 작품들은 전부 기본 이상은 해주네요.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단, 번역은 감수하시길....

PS : 로즈의 캐릭터는 영화 "데이비드 게일"의 빗시 블룸과 굉장히 유사한 면이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히스테리성향이 있는 전문직 여성이라는 묘사도 그렇지만 탐정역을 소화하는 과정이 상당히 닮았어요. 뭐 이런 류의 캐릭터의 스테레오 타입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요.

2019/01/12

꼬마 니콜라 (양장) - 르네 고시니 글, 장 자크 상페 그림 / 윤영 외 : 별점 2.5점

꼬마 니콜라 (양장) - 6점
르네 고시니 글, 장 자크 상페 그림, 윤영 외 옮김/문학동네

르네 고시니와 장 자크 상페 컴비의 전설적인 명랑 아동 소설입니다. 모두 5권의 책 - 꼬마 니콜라, 꼬마 니콜라의 쉬는 시간, 꼬마 니콜라의 여름방학, 꼬마 니콜라와 친구들, 꼬마 니콜라의 골칫거리 - 을 한 권의 양장본으로 묶었습니다. 850여 페이지라는 분량, 묵직하면서도 깔끔한 장정을 갖추었는데 3만원대라는 가격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다시 읽어보니 확실히 캐릭터 설정만큼은 빼어난 점이 있습니다. 오래전 명랑 만화스러운 캐릭터이지만 르네 고시니의 글과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이 잘 어우러져 확실한 존재감을 느끼게 해 주는 덕분입니다. 또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본다면 이런 류의 캐릭터 설정의 원조격이라고 해도 무방할테고요. 여러모로 무난한 주인공 니콜라, 먹보 알세스트, 부자집 아들 조프루아, 꼴지 클로테르, 경찰관 아들로 유일하게 호루라기를 가진 뤼퓌스, 학교짱인 외드, 선생님의 애제자인 모범생 아냥 등 학교 친구들은 물론 심지어 어른들까지도 그러합니다. 집안일에 별 관심이 없고 무언가 하려고 하면 어설픈 허당인 니콜라 아빠라던가 말썽장이들에게 항상 눈을 바라보라고 하는 부이옹 선생님 등 모든 캐릭터들이 독보적입니다.

하지만 뻔한 내용이 항상 똑같은 캐릭터들에 의해 반복되기 때문에 뒤로 갈 수록 지루해진다는 단점은 큽니다. 이야기도 대체로 비슷하고요. 학교에서 무언가 이벤트가 열리는데 - 단체 사진, 건강 검진, 특별 수업, 장학사 방문 등 - 아이들의 장난으로 해당 이벤트가 파국으로 치닫는다던가, 누군가 특별한 아이템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 그로 인해 소동이 벌어진다던가,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르는 누군가가 아이들 때문에 봉변을 당한다는 내용이 이어지는 탓입니다. 아이들 반응과 행동도 구체화된 캐릭터 이상의 무언가를 전혀 보여주지 못해서 지루하기는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나이가 들어서 읽으니 이러한 꼬마 니콜라와 친구들의 못말리는 장난이 재미있지가 않고 공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서로 몇 마디 말을 나누면 바로 싸움이 시작되는데, 떼와 억지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딸아이 한 명을 키우는 입장에서 바라보니 이건 생지옥이 따로 없어 보였어요. 이런 아이들 수십명을 한 반에서 통제하고 가르치는 담임 선생님은 정말 성녀입니다. 교직이 왜 성직이라고 불리우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반세기 전 작품이기 때문이겠지만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서슴없이 따귀를 날리고 강하게 훈육하는 묘사도 섬찟했던 부분입니다. 뭐 등장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훈육하려면 어쩔 수 없었겠다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화나 교육이 아니라 바로 체벌로 들어가는 묘사는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추억으로 딸 아이에게도 권해줄까 싶어 구입했는데 이래서야 무리네요. 딸아이에게는 이 폭력적인 작품보다는 "피너츠"를 권해주어야겠습니다.

2025/03/08

결혼반지 이야기 1~14 - 메이비 : 별점 2점

[고화질] 결혼반지 이야기 14 - 4점
메이비 지음/학산문화사

고교생 사토는 어디론가 사라지는 소꿉친구 히메의 뒤를 쫓았다. 그가 도착한 곳은 이세계였다. 그곳에서 사토는 히메의 결혼식에 난입했다. 히메는 이세계 크리스탈 노바티 노카나티의 공주였고, 그녀와 결혼하면 전설의 용사 반지왕이 되어 심연왕의 위협을 물리쳐야 했다. 히메와 결혼한 사토는 반지왕의 힘을 모두 끌어내기 위해, 다른 네 명의 공주와 결혼해야 했다...

이세계 판타지로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내용은 그게 아니더군요. 일본식 하렘물의 모든 요소를 총망라한 므흣(?)물입니다. 질투심 많은 순정파부터 청순가련한 내성적 얌전파, 강한 힘을 앞세우는 무투파, 연상 츤데레, 말없는 인형까지—일본 하렘물에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해서 므흣한 장면을 수시로 선보이는게 내용의 핵심이거든요. 빠진 캐릭터라고 한다면 스쿨드 같은 천재 발명가 정도인데, 이마저도 사피르와 안바르가 캐릭터성을 나누어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캐릭터들을 므흣하게 구현한 작가의 작화력도 상당합니다. 전형적인 러브 코미디 하렘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진중하고 묵직한 그림체이지만, 워낙 뎃셍력이 좋은데다가 이세계 판타지라는 설정과 결합되어 강한 시너지를 보여줍니다. 종족도 인간, 엘프, 수인족에 용족, 드워프의 기계 인형(?) 등 다양하고, 설정 상 안경 소녀는 없지만 그 외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조합 - 거유, 로리, 장발, 단발 등 - 이 그려지는데, 색기가 정말 장난이 아니에요. 단지 야하기만 한건 아니고, 여러 액션 장면도 볼만합니다. 히메를 비롯한 공주들과 맺어질 듯하면서도 번번이 실패하는, 전형적인 하렘물 특유의 코믹한 전개도 재미를 더해 주고요. 

주인공 사토가 흔한 하렘물 주인공과 차별화되는 점도 좋습니다. 무능하고 유유부단한데도 주변 여성들이 이유 없이 따르는 캐릭터가 아니라, ‘선택받은 영웅’이기 때문에 다섯 명의 공주가 반드시 그를 따라야 한다는, 일종의 강제적인 하렘 구축 설정이 꽤 괜찮거든요. 성격도 밝고 긍정적인 성장형으로, 결국 세계관 최강의 힘을 손에 넣어 영웅답게 활약하는 것도 좋습니다. 미녀를 거느리는 당위성이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하렘물로서는 괜찮습니다. 애니메이션까지 제작될만큼의 인기 요소는 충분히 갖추고 있어요. 이세계 판타지물로도 심연의 마물이 전대 반지의 용사였고, 공주들에게 배신당해 죽었다는 설정은 제법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이세계 전생 영웅 판타지로는 낙제점입니다. 설정 자체가 뻔하디 뻔하며, 심연의 마물과 싸워 나가는 과정에서도 별다른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도 없고, 내용 전개가 일사천리인 탓입니다. 오히려 곁가지라 할 수 있는 학교 생활이나 일상 생활을 다룬 하렘물 전개가 더 흥미로왔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므흣한 여성 캐릭터, 액션에 특화된 빼어난 작화에 별볼일 없는 판타지가 결합했다는 점에서는 "스트라바간차"와 비슷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라바간차" 쪽이 더 좋기는 했지만, 우열을 가리기는 애매하네요. 별점도 같고요.

2005/02/17

호텔 캘리포니아 - 김진태 : 별점 3점

만화 호텔 캘리포니아 - 6점
김진태 글 그림/열린책들

2천년 전통의 살인무술 "북두관자 찌르기" 전승자 달라스 웨스트코스트는 아버지의 원수 신시내티 키드를 죽이려다가 실수로 미네소타 키드를 죽였다. 달라스는 콜린 교도소 - 통칭 "호텔 캘리포니아" - 에 수감되는데...

만화책을 엄청나게 구입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99년부터 2002년도까지죠. 이유는 직장생활을 새로 시작하여 월급도 생기고, 바쁜 탓에 다른 여가활동을 즐기기가 힘들어서였는데 어느 정도였나 하면 홍대앞 유명한 한양문고 사장님께 스카웃제의(?)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허나 그렇게 만화책을 사 모았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작가에는 눈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일본 코믹스를 모방한 캐릭터나 스토리도 싫었고 그나마 작가라 할 수 있는 몇몇 분들의 책은 워낙 귀할 뿐더러 신간이 자주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인데 그 중 단 한사람! 제가 거의 전 작품을 사 모으려 노력하고 아직까지도 총애하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김진태입니다.

데뷰 초에는 그림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억지성 짙은 스토리도 별로라 생각했지만 사회 풍자와 슬랩스틱을 교묘히 합성한 최초의 히트작 "대한민국 황대장"에서 부터 눈길이 가기 시작하여 후속작 "신한국 황대장"까지 저에게 구입하게 만들더니, 어마어마한 황당무계 SF "보글보글"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그 이후 "체리체리 GoGo"와 "시민 쾌걸" 등을 통해 이른바 "김진태월드"를 완성하여 팬을 더욱 즐겁게 해 주었죠. 하지만 매일매일 반복되는 신문연재라는 제약조건 때문인지 "시민 쾌걸"의 기발한 개그도 점차 힘을 잃어가는 것이 눈에 보이던 차에 결국 연재가 완결되어 여러모로 섭섭하고 아쉬웠는데 마침 신간 단행본이 출간되어 사보게 된 것이 이 책입니다.

사설이 길었는데, 이 만화는 이전 작품 "왕십리 종합병원"과 유사하게 특정 장소와 직종에서 유발되는 일종의 캐릭터 코미디입니다. 비교해보자면 "왕십리..."는 에피소드들이 다른 연재작에 비하면 긴 편이라 밀도가 떨어지고 "한호색"처럼 김진태 만화치고는 단순한 캐릭터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등 특출난 점이 없는 평범한 작품에 불과하죠.
그러나 이 작품은 '북두관자찌르기'의 전승자 달라스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는 있기는 하나 패러디 캐릭터로서의 약점때문인지 매 에피소드마다 달라스보다는 특색있고 개성있는 주변 인물들의 개그와 재치를 짤막한 길이로 압축하여 보여줍니다. 그래서 "왕십리.."보다는 주인공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독특하고 개성넘치는 달라스의 룸메이트 스티브 수세미나 컨트리 음악 애호가 교도소장, 흑인의 프라이드 힙합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힙합듀오 어빙과 톰, 라틴 패거리의 보스 바티 스투타와 흑인 패거리 보스 말콤 S 등 개성이 넘치는 인물들이 한 꼭지 씩 등장하여 웃겨주는 식이라 오히려 캐릭터 코미디로서는 훨씬 좋은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이런 완전 "교도소"배경의 만화는 처음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일반 흥행작에서 빠질 수 없는 "여성 캐릭터" 조차도 나름의 아이디어로 소화해 내어서 표현하는 김진태의 기발함에는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네요("규화보전"이라니!).
개인적으로 최고의 에피소드는 모두가 싫어하는 죄수 "조지 워런"이 등장하는 "Jailhouse Rock"편입니다. 내용 진행이 힙합듀오의 랩으로 이루어지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감칠맛 나는 대사들, 생체실험을 통한 극적인 반전 등 김진태 월드의 재미가 전부 담겨있는 명편이에요.

하지만 커버와 이런 저런 사설들을 빼면 실제 내용은 약 12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가격이 7,500원이라는 것은 좀 부담입니다. 페이지당 가격이 60원을 넘어가는 셈이니까요. 거기에 김진태 만화의 최대 단점인 "마무리가 약하다"는 여전하고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설정과 아이디어, 패러디를 이해할 수 있는 독자층이 상당히 좁게 느껴지는 것도 아쉽네요.

그래도 간만에 등장한 새로운 설정의 김진태 작품으로 책 자체도 상당히 괜찮은 디자인으로 책들을 만드는 출판사 "열린책들"답게 깔끔한 편집에다가 올 칼라, 그리고 커버도 마음에 들어 간만에 무척 마음에 드는 책을 구입한 것 같습니다. 또 놀랍우면서도 반가운 것은 이 책이 책 날개에 있는 것 처럼 장 자끄 상뻬등 해외 유명 작가와 같은 반열의 시리즈 책으로 나왔다는 것이지요(진태님 만세!).  김진태 월드의 진가를 맛보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입문으로서는 손색없는, 저질 화장실 개그가 난무하는 개그만화계의 상큼한 한그루 상록수 같은 책으로 추천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6/08/09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1 - 오타 시오리 / 박춘상 : 별점 1.5점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1 - 4점
오타 시오리 지음, 박춘상 옮김/디앤씨북스(D&CBooks)

소설 리뷰를 하면서 별점을 주는 데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이 있는지, 이야기는 재미가 있는지, 묘사를 비롯한 전체적인 완성도와 설득력,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는지, 그 외의 다른 가치가 있는지 등을 놓고 검토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점수를 줄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전통적인 양갓집 아가씨로 엄청난 미인이지만 별난 성격에 "뼈"에 집착한다는 설정의 탐정역인 사쿠라코 씨 캐릭터부터 별로입니다.
양갓집 미인 아가씨라는 것은 진부함의 극치, 그리고 별난 성격은 도가 지나쳐 거북합니다. 누구를 대하더라도 반말조에, 상대방을 위한 배려 등 최소한의 예절도 갖추지 않아서 호감을 갖기 어려운 탓입니다. 만화에서 봄직한, 외계에서 와서 지구 습관을 잘 모르는 미녀 외계인 캐릭터 같은데 만화라면 모를까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왜 이런 성격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고요.
탐정이 건방진건 문제가 아닙니다. 고전 본격물 황금기의 명탐정들은 대체로 잘난 척 대마왕들이기도 했으니까요. 허나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실력, 지위, 실적이 그들의 건방짐을 뒷받침했고, 아무에게나 무례하게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실력, 지위, 실적 중 그 무엇도 갖추지 못하고 그냥 건방지기만 한 사쿠라코 씨는 인간 말종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혐오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사건에 엮이는 원인이 되는 "뼈"에 대한 집착도 문제입니다. 진부함을 타개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이야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도 못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독특함에 집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차라리 진부하더라도 뼈와 연관이 있는 전문 직종을 엮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렇듯 캐릭터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이야기가 대단히 재미있지 않다면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데, 재미 역시 합격점을 주기 어렵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고요. 세 편 모두 정교함이나 트릭이 돋보이지도 않고 억지가 너무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특이한 점이라면 북일본 아사히카와라는 독특한 지역을 무대로 그곳의 지형이라던가 명소, 특산물 등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진다는 정도인데,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그냥 지엽적인 묘사에 그칠 뿐이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라이트*캐릭터*미스터리*읽는 재미'라는 취지로 디앤씨북스에서 나온 시리즈 중 하나인데, 이 중 라이트(가볍게 읽을 만하다는 정도?) 외에는 해당되는 게 없네요. 사쿠라코 씨 신상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암시를 주는 등 노골적으로 시리즈임을 드러내지만, 후속작을 읽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애호가라면 근처에도 가지 마시고, 제 덕분에 지뢰 하나 피했다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제 리뷰를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 책을 읽으시리라 생각은 되지 않지만요.

"아름다운 사람"

화자인 나는 사쿠라코 씨의 호출로 그녀를 찾았다. 그녀가 가자미 뼈를 선물하는 와중에 화자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러 채의 임대 주택을 운영하는 어머니가 연락이 두절된 입주자 방문을 여는데, 입회해 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내용을 전해들은 사쿠라코 씨는 자신이 사체 전문가라며 동행을 요구했고, 일행은 입주자 미즈시마 키요미의 방문을 열어 그녀의 사체를 발견했다. 그런데 방은 완벽하게 밀폐된 상태였다...

사쿠라코 씨와 주인공 소개와 함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리즈 첫 작품입니다. 

밀실을 만드는 것은 제삼자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지우기 위해서로, 얼핏 보아도 살인 사건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밀실을 꾸며야 할 이유는 없다는 사쿠라코 씨의 이론만큼은 그럴싸합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20여 년 전 "nervous breakdown"에서 이미 접했던 것이라 신선하지는 않습니다. 그 외의 추리적인 내용은 거의 모두 억지스러웠고요. 우선 피해자의 동생 요시미와 피해자의 약혼자 하시구치가 불륜 관계였다는 것을 밝히는 추리부터 억지입니다. 언니의 죽음을 접하고 예비 형부에게 안겨 우는 것이 뭐 그리 이상한 일일까요? 요시미의 스타일을 언급하는 것도 불필요했고요.
또 피해자가 독초 열매를 따먹고 죽은 것이라는 진상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약사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식물원까지 가서 열매를 몰래 따는 수고를 감행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극심한 고통도 예상되고, 사후 동공 확장 등으로 아트로핀 과다 섭취가 충분히 의심될 수 있어서 진상을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고통 때문에 방이 어질러졌다는 상황을 만들기 위함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작위적이며 설득력이 낮아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캐릭터, 내용, 추리 모두 수준 이하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머리"

사쿠라코 씨의 "뼈 줍기"에 동행한 나는 마시케 초로 향했다. 해변에서 사람 두개골의 일부를 발견한 나는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 야마지 씨로부터 동반 자살 시체가 발견되었다는걸 들은 사쿠라코 씨는 잠깐만 사체를 보게 해 줄 것을 부탁했고, 잠깐의 관찰로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는데...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묶은 이유, 보우라인 매듭이라는 독특한 매듭을 사용한 것과 매듭의 위치 정도의 단서로 자살이 아니라 타살임을 주장한다는 내용입니다.

추리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된 변사체에 대한 추리를 펼치는 것이기에 사건성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여흥'에 불과하다는게 아쉽네요. 매듭을 묶은 손, 매듭의 위치 등 매듭 관련 추리는 이전의 많은 작품에서 반복된 것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지도 못하고요.

이 추리보다는 차라리 우연히 발견한 반려동물의 사체를 주인에게 가져다 주며 펼치는 추리가 더 괜찮습니다. 왜 사체가 정류장 지붕 위에 있었는지, 사인이 무엇인지 등을 담담하게 설명하는데 설득력이 아주 높아요. 이 이야기만 가지고 일상계처럼 푸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렇게 본편 이야기보다는 곁다리 이야기, 그리고 마시케 초의 먹거리(단새우 등)에 대한 소개가 더욱 돋보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나마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네요.

"장미 나무 아래"

나와 사쿠라코 씨는 사쿠라코 씨의 지인인 장미원 운영자 쇼코 씨의 저택으로 향했다. 병문안을 위한 장미꽃을 얻기 위해서였다. 쇼코 씨의 부탁으로 저택에서 진행되는 강령회에 참석한 둘은, 강령회에서 영매를 통해 쇼코 씨의 죽은 남편 아키히토 씨가 사실은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아...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총체적 난국인 작품입니다. '강령회'라는 주요 설정부터가 그러합니다. 이게 현대 일본에서 가당키나 한 것일까요? 게다가 강령회를 이용하여 사기극을 벌인 이유가 사실은 피해자와 동성애 관계였다, 그것을 찍은 은밀한 비디오가 있었다는 진상은 어이를 상실케 만듭니다. 잘나가는 기업가, 정치가, 신부 등이 엮인 단체 동성애 그룹이라니 이거 참 소라넷을 능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아닌가 싶네요. 그 외 영매를 가장한 요크 신부의 몇 가지 사기극은 너무나 유치했고요.

현실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고, 추리적으로도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이야기로 별점은 0.5점입니다. 이 시리즈를 다시 볼 이유가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 유일한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2004/06/16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 강석범 : 별점 2.5점

일 없는 동네 아줌마나 탐낼 만 한 직업, 동네 반장을 하고 있는 남자. 훤칠한 키에, 수려한 용모, 모르는 일도 없고 못하는 일도 없는 30살의 남자 홍두식, 홍반장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특히 그의 군 제대 후 3년의 공백은 그를 더욱 미스터리하게 만든다. 그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동시 통역관이었다는 사람도 있고 유명 가수의 보디가드였다, 단신으로 수영해서 대서양을 건넜다는(!)소리도 있다. 귀신도 울고 간다는 이 남자 홍반장에게 일생일대의 태클이 들어왔다!!
윤혜진, 협박용으로 내민 사표가 그 자리에 수리된 비운의 치과의사! 정의로운 완벽 주의자, 치과의사 혜진. 평의사의 인권을 위해 시위하며 내민 사표가 즉석에서 수리된 바람에 직장을 잃은 여자. 자신의 철두철미한 의료행위가 결벽증에 또라이라고 폄하되어도 굴하지 않는 여자. 천만 운전자를 대변하기도 하고, 수백만 성범죄 피해자들을 대변하기도 하는 그녀, 결국 취업을 거부당하고 작은 도시에 정착, 개업을 한다.
이후 홍반장과 윤혜진의 사랑의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제목 그대로 동네 반장인 “홍두식”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내용의 한국산 로맨틱 코미디 영화. 기발한 예고편 (H-파일) 덕에 나름대로 기대 하던 차에 DVD로 발매되어 빌려보게 되었네요.

일단 영화의 핵심 매력 포인트는 홍반장 캐릭터입니다. 제가 그동안 보아왔던 그 어떤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 설정보다 재미있더군요! 약간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그 어떤 일이건 일당 5만원에 해결한다는 설정은 정말이지 "왔다!'였어요. 부동산 중개업, 라이브 카페 가수, 전자기기 수리, 비디오가게 알바, 택배, 거기에 뛰어난 무술실력! 등등등…. 심지어 재벌가의 아가씨인 윤혜진의 남자친구 역할도 뛰어난 골프, 바둑 실력으로 해결하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맥가이버요, 어떻게 보면 구영탄 같은 캐릭터인데 정말 효과적으로 잘 표현해서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멋진, 재미있는 설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너무 뻔하고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에 불과해요. 홍반장의 캐릭터만 조금 더 살려주고, 로맨틱한 요소보다는 코믹한 요소를 조금 더 부각시켰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중반 이후부터는 억지스러운 윤혜진과 홍반장의 사랑 싸움 (윤혜진이 일방적이긴 하지만) 만 부각 시켜서 영화의 맛이 떨어지거든요. 마지막 홍반장이 윤혜진을 위해 준비한 와인 장면은 충분히 멋진만큼, 코믹한 요소를 강조하면서 전개하다가 이 장면 하나만 마지막에 살짝쿵 나와 주는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김주혁의 진지한 유머가 너무 자연스러운 홍반장은 충분히 실감나는데 반해, 사고뭉치 치과의사 역의 엄정화는 오버스러운 느낌이 너무 강해서 별로라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덧붙이자면, 조연으로 이번에 대종상 여우 조연상까지 받았다는 김가연은 왜 상을 탔는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연기력이 필요했던 배역도 아니고 비중도 별로 없는 역이었는데…..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그냥저냥한 로맨틱 코미디지만 홍반장은 김주혁이라는 배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보기드문 멋진 캐릭터였습니다. TV 시트콤에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김주혁의 진지한 코미디를 TV에서 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네요.

2004/06/22

Kimagure Orange Road! (변덕쟁이 오렌지 로드)

간만에 옛 추억이 생각나서 적어 봅니다. 

이 만화-애니메이션은 그야말로 저의 청춘기를 지배한 작품입니다. 중3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정말 미친 듯이 좋아했던 작품이거든요. 당시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관련 상품을 사 모았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원작 만화는 초능력 가족의 장남인 주인공 카스카 쿄우스케(春日恭介), 이사 온 첫날의 산책 길에서 우연히 날아온 빨간 밀짚모자를 잡아준 인연으로 묘한 인연이 생기게 되는 아유카와 마도카 (鮎川まどか), 카스카가 우연히 초능력을 쓰는 것을 보고 그를 좋아하게 되는 후배 소녀 히야마 히카루 (檜山ひかる), 이 3명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한 청춘 러브 코미디입니다.
지금 보면 뻔한 설정에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포맷으로 들쭉날쭉하는 작화는 짜증마저 불러 일으키지만, 초능력이라는 설정을 도입하여 작품에 감칠 맛을 주고 주인공 3명 이외에도 여러 다양한 캐릭터들의 유머스럽고도 디테일한 묘사로 상당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잔잔하고 진지한 사랑이야기를 다루며 또 다른 느낌을 전해 주고요.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80년대 후반을 강타한 TV 애니메이션입니다. 당시 작품들과 비교해서도(같은 시기에 “시티헌터” 1기가 시작했었지요) 뛰어난 작화와 다케다 아케미씨가 디자인한 캐릭터들, 그리고 국내 영화 “무사”의 음악 감독까지 맡았던 음악감독 사기스 시로(鷺巢詩郎)의 음악이 잘 조화된 수작입니다.
거기에 당대를 주름잡았던 최고의 여성 캐릭터 아유카와 마도카의 존재로 이 작품은 더욱 빛났습니다. 싸움과 운동, 공부, 거기에 음악성까지 뛰어나다는 초월적 캐릭터로, 다케다 아케미씨의 묘한 느낌의 성숙함까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당대의 아이돌이었지요.

만화 엔딩의 멋진 대사(Like or Love? Like! 한없이 Love에 가까운….)가 나오지 않던 TV 애니메이션은 조금 불만이었지만, 극장판에서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흔드는 슬픈 사랑의 결말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더 리얼하고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듯한 캐릭터들로 저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메종 일각"과 더불어 80년대 청춘 러브 코미디의 양대 산맥이자, 미소녀는 긴머리와 단발머리 두명!이라는 공식을 정의하고 훗날 수많은 작품에서 패러디 되고 인용되는 작품 오렌지 로드….
이사가려고 짐을 정리하는데 우연히 몇 년전에 모 동호회에서 사 둔 미국판 오렌지로드 TV판 DVD 박스 셋트(라지만 LD버전을 그대로 옮긴 듯한)가 눈에 띄어 몇자 적어봅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저도 예전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이 작품을 보면 무언가 느껴질만큼 인상적이었던 제 청춘의 초상입니다.

2013/09/03

라인업 - 켄 브루언 외 / 오토 펜즐러 엮음 : 별점 3점

라인업 - 6점 켄 브루언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박산호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추리애호가이자 편집자이기도 한 오토 펜즐러의 본업은 추리 전문 서점 주인입니다. 서점의 매출 증진을 위해 고민하던 오토는, 유명 작가들의 시리즈 캐릭터 전기나 프로파일을 제작하여 고객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것을 모은 결과물이고요. 자신의 영리 창출을 위한, 한마디로 사심으로 시작한 것이지만, 반응도 좋았고 팬들도 색다른 읽을 거리를 만나게 된, 윈-윈 기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스물한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켄 브루언의 잭 테일러
  • 리 차일드의 잭 리처
  •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 존 코널리의 찰리 파커
  • 로버트 크레이스의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
  •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 콜린 덱스터의 모스 경감
  • 존 하비의 찰리 레스닉
  • 스티븐 헌터의 밥 리 스왜거
  • 페이 켈러맨의 피터 데커와 리나 라자루스
  • 조너선 켈러맨의 알렉스 델라웨어
  • 존 레스크로아트의 디스마스 하디
  • 로라 립먼의 테스 모나한
  • 데이비드 모렐의 람보
  • 캐롤 오코넬의 말로리
  • 로버트 B. 파커의 스펜서
  • 리들리 피어슨의 루 볼트
  • 앤 페리의 토머스와 샬럿 피트
  • 더글러스 프레스턴과 링컨 차일드의 펜더개스트
  • 이언 랜킨의 존 리버스
  •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의 프레셔스 라모츠웨

이중 제가 알고 있는 캐릭터는 겨우 절반 정도? 그 중 읽은 것은 더 적군요. 음.. 공부가 부족해요. 어쨌거나, 이 중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얼마 전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가 발표되기도 한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창작 비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유는 본인의 창작 이론이 명확하게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 첫째 캐릭터가 왕이다. 독자들의 뇌리에 남는 것은 플롯이 아니라 캐릭터다.
  • 둘째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 세번째 캐릭터를 너무 구체적으로 설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같은 것이죠. 솔직히 세 번째 것은 좀 이해가 안되지만 어쨌거나 초인기작가의 발상은 한번 봐두어서 나쁠 건 없겠죠?

그리고 스티븐 헌터의 밥 리 스웨거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황당하게도 다른 책에서 플롯을 훔쳤다는 고백에서 시작하여 데뷔작 "탄착점"을 쓰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아주 재미나요. 실제 저격용 총을 사서 훈련도 하는 등 별짓을 다했더라고요. 이러한 것이 리얼리티를 보장해 준 것이겠죠. 밥 리 스웨거 시리즈는 "더블 타겟"이라는 영화로만 접해보았는데 이 정도 입담이라면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또 이런 류의 책이라면 작가로 성공하기까지의 고생담이 빠질 수 없을텐데, 고생담으로는 존 레스크로아트의 디스마스 하디 이야기가 최곱니다. 요약하자면, 문학도이자 밴드 활동을 한 뮤지션인 저자가 순문학 작가로 야심을 불태우지만 상업적으로 잘 풀리지 않아서 일종의 패러디를 통해 장르문학에 뛰어들고, 이를 성공시켜 그 돈으로 생활하면서 순문학 소설 (즉, 진짜 소설)을 쓰기 위한 발판 마련을 위해 첫 추리소설을 쓰나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당합니다. 이 시점에 그는 원고를 네 개나 완성했는데 딱 하나만 출판되었고 그나마도 문고판 초판본이 전부라는 상황에 놓인 겁니다. 이후 작가로의 삶을 포기하지만 병이 생겨 직장을 그만두었고, 마지막으로 전업 작가에 도전하여 시리즈를 발표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운 좋게도 2년 전 책이 대박이 나서 결국에 작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파란만장하다는 말이 잘 어울려요.

이와는 정 반대인 "콜린 덱스터와 모스 경감"에 대한 글도 인상적입니다. 독자의 질문에 대해 답하는 형태로 구성된 글인데 모스 경감 시리즈는 그냥 취미로 쓴 글이라는 것, 본인은 운이라고 말하는데 첫 작품을 수정 없이 당대 최고의 범죄소설 출판사에서 출판하게 된 일, 뛰어난 인재들 (앤서니 밍겔라!)과 배우들 (존 길구드에서 엘리자베스 헐리까지)가 포진된 유명 TV 시리즈로 방영되기까지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읽으면서도 다른 작가들과는 너무나 판이한 성공담은 정말이지 놀랄 정도였어요. 그만큼 작품의 질이 뛰어난 덕이겠지만요.

조금 장르는 다르지만 "람보"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월남전 당시의 분위기가 어떻게 창작에 반영되었는지가 아주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는 덕분입니다.

몇 편의 픽션 형태의 글 중에서는 리들리 피어슨의 "루 볼트"가 최고였습니다. 루 볼트 형사가 경찰서 내부에서 일어난 1만 달러 반환 사건에 연루된 뒤 취조를 받는 과정에 대한 기록인데 ,볼트가 당당한 태도로 상대방을 교묘하게 옭아맨 뒤 빠져나가는 솜씨가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의외의 진상이라는 반전까지 있기에 한 편의 단편으로도 손색없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 외의 이야기들도 한번 읽을 가치는 충분해요. 프로 작가들의 창작과정은 읽는 것 자체가 공부죠.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