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호텔 캘리포니아 - 김진태 글 그림/열린책들 |
2천년 전통의 살인무술 "북두관자 찌르기" 전승자 달라스 웨스트코스트는 아버지의 원수 신시내티 키드를 죽이려다가 실수로 미네소타 키드를 죽이게 되어 콜린 교도소 - 통칭 "호텔 캘리포니아" - 에 수감되게 된다...
만화책을 엄청나게 구입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99년부터 2002년도까지죠. 이유는 직장생활을 새로 시작하여 월급도 생기고, 바쁜 탓에 다른 여가활동을 즐기기가 힘들어서였는데 어느 정도였나 하면 홍대앞 유명한 한양문고 사장님께 스카웃제의(?)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허나 그렇게 만화책을 사 모았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작가에는 눈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일본 코믹스를 모방한 캐릭터나 스토리도 싫었고 그나마 작가라 할 수 있는 몇몇 분들의 책은 워낙 귀할 뿐더러 신간이 자주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인데 그 중 단 한사람! 제가 거의 전 작품을 사 모으려 노력하고 아직까지도 총애하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김진태입니다.
데뷰 초에는 그림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억지성 짙은 스토리도 별로라 생각했지만 사회 풍자와 슬랩스틱을 교묘히 합성한 최초의 히트작 "대한민국 황대장"에서 부터 눈길이 가기 시작하여 후속작 "신한국 황대장"까지 저에게 구입하게 만들더니, 어마어마한 황당무계 SF "보글보글"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그 이후 "체리체리 GoGo"와 "시민 쾌걸" 등을 통해 이른바 "김진태월드"를 완성하여 팬을 더욱 즐겁게 해 주었죠.
하지만 매일매일 반복되는 신문연재라는 제약조건 때문인지 "시민 쾌걸"의 기발한 개그도 점차 힘을 잃어가는 것이 눈에 보이던 차에 결국 연재가 완결되어 여러모로 섭섭하고 아쉬웠는데 마침 신간 단행본이 출간되어 사보게 된 것이 이 책입니다.
사설이 길었는데, 이 만화는 이전 작품 "왕십리 종합병원"과 유사하게 특정 장소와 직종에서 유발되는 일종의 캐릭터 코미디입니다. 비교해보자면 "왕십리..."는 에피소드들이 다른 연재작에 비하면 긴 편이라 밀도가 떨어지고 "한호색"처럼 김진태 만화치고는 단순한 캐릭터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등 특출난 점이 없는 평범한 작품에 불과하죠. 그러나 이 작품은 '북두관자찌르기'의 전승자 달라스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는 있기는 하나 패러디 캐릭터로서의 약점때문인지 매 에피소드마다 달라스보다는 특색있고 개성있는 주변 인물들의 개그와 재치를 짤막한 길이로 압축하여 보여줍니다. 그래서 "왕십리.."보다는 주인공의 역할이 미미하나 너무나 독특하고 개성넘치는 달라스의 룸메이트 스티브 수세미나 컨트리 음악 애호가 교도소장, 흑인의 프라이드 힙합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힙합듀오 어빙과 톰, 라틴 패거리의 보스 바티 스투타와 흑인 패거리 보스 말콤 S 등 개성이 넘치는 인물들이 한 꼭지씩 등장하여 한번씩 웃겨주는 식이라 오히려 캐릭터 코미디로서는 훨씬 좋은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국내에서 이런 완전 "교도소"배경의 만화는 처음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일반 흥행작에서 빠질 수 없는 "여성 캐릭터" 조차도 나름의 아이디어로 소화해 내어서 표현하는 김진태의 기발함에는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네요. ("규화보전"이라니!)
개인적으로 최고의 에피소드는 모두가 싫어하는 죄수 "조지 워런"이 등장하는 "Jailhouse Rock"편입니다. 내용 진행이 힙합듀오의 랩으로 이루어지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감칠맛 나는 대사들, 생체실험을 통한 극적인 반전 등 김진태 월드의 재미가 전부 담겨있는 명편이에요.
하지만 커버와 이런 저런 사설들을 빼면 실제 내용은 약 12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가격이 7,500원이라는 것은 좀 부담되긴 합니다. 페이지당 가격이 60원을 넘어가다니... 거기에 김진태 만화의 최대 단점인 "마무리가 약하다"는 여전하고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설정과 아이디어, 패러디를 이해할 수 있는 독자층이 상당히 좁게 느껴지는 것도 아쉽네요.
그래도 간만에 등장한 새로운 설정의 김진태 작품으로 책 자체도 상당히 괜찮은 디자인으로 책들을 만드는 출판사 "열린책들"답게 깔끔한 편집에다가 올 칼라, 그리고 커버도 마음에 들어 간만에 무척 마음에 드는 책을 구입한 것 같습니다. 또 놀랍우면서도 반가운 것은 이 책이 책 날개에 있는 것 처럼 장 자끄 상뻬등 해외 유명 작가와 같은 반열의 시리즈 책으로 나왔다는 것이지요. (진태님 만세!)
김진태 월드의 진가를 맛보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입문으로서는 손색없는, 저질 화장실 개그가 난무하는 개그만화계의 상큼한 한그루 상록수 같은 책으로 추천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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