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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6

초콜릿어 사전 - Dolcerica 가가와 리카코 / 이지은 : 별점 1.5점

초콜릿어 사전 - 4점
Dolcerica 가가와 리카코 지음, 이지은 옮김, 센주 마리코 감수/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초콜릿에 얽힌 다양한 단어와 정보를 감각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고 있는 그림 사전 형식의 책입니다. ‘미식 관련 도감’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가끔 눈에 뜨이면 집어드는 AK Trivia Book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초콜릿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거나 혹은 연상되는 단어들을 수집하여 ㄱㄴ순으로 보여주는데, 각 단어에 대한 짧은 설명과 간결한 일러스트가 함께 실려 있어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함께 전해줍니다.

170여개에 달하는 단어를 설명해 주고 있어서 처음 접했던 정보가 많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단무지(다쿠앙)에 초콜릿을 씌워 만들었다는 ‘다쿠앙 초코’라는 기상천외한 조합(괴식일 줄 알았는데 다행히 진짜 단무지는 아니고 '설탕에 절인 무"를 사용했다고 하네요), "두 도시 이야기" 속에서 초콜릿을 대접하는 데 하인 네 명이 필요하다 - 한 명은 초콜릿을 따를 기구를 가지고 오고, 한 명은 초콜릿을 섞으며, 세 번째는 냅킨을 내밀고, 네번째는 초콜릿을 따른 사람 - 는 대사 등이 그러합니다. ‘페레로 로쉐’의 ‘로쉐’가 바위라는 뜻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정보였으며, 판 초콜릿이 뚝뚝 부러지는 모습에서 커터 나이프가 발명되었다는 이야기도 신선했어요.

하지만 대부분 단편적인 정보들로 구성되어 있어 맥락 없는 지식의 나열에 그칩니다. 일본 현지 중심의 소재가 많아 국내 독자에게는 와닿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무엇보다도 수록 단어의 기준이 모호하다는게 가장 큰 단점입니다. ‘리큐르’와 같이 단순히 함께 마시면 좋다는 식으로 설명하는게 대표적입니다. 왜 함께 마시면 좋은지 설명을 해 주어야죠. 이렇게 아무런 근거없이 마음대로라면, 초콜릿과 잘 어울리는 과자, 와인, 자동차 등 끝도 없이 소재를 댈 수 있으니까요. '선물', '의리초코'는 수록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단어와 내용이었고요.

일본 여성 교육 선구자로 1871년 미국과 유럽 각국을 돌았던 쓰다 유메코가 일본 소녀로는 최초로 해외에서 초콜릿을 먹어 보았을거라는 근거없는 추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에 수록되려면, 오쿠보 도시미치나 이와쿠라 도모미처럼 해외에서 먹었던 근거가 명확했어야 합니다. 이런 점들이 이 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립니다. 

도판, 그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일러스트도 제 취향은 아닌데다가, 대부분의 도판이 작아서 제대로 된 정보를 확인하는게 어려운 탓입니다. 유명 산업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가 1962년 일본 후지야의 루크 초콜릿 로고와 패키지를 디자인했다는 정보는 제법 관심이 갔는데, 도판이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엉뚱하고 흥미로운 정보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방향성과 완성도에서 아쉬움이 많아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2025/03/30

전쟁과 군복의 역사 - 쓰지모토 요시후미 / 김효진 : 별점 3점

전쟁과 군복의 역사 - 6점
쓰지모토 요시후미 지음, 쓰지모토 레이코 그림, 김효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AK 트리비아 북 시리즈입니다.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군사사 전문가인 쓰지모토 요시후미가 집필한 책으로, 전쟁과 군복이 어떻게 함께 진화해왔는지를 방대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조명합니다. 인류 최초로 군복 개념이 등장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기를 시작으로, 각 시대와 지역에 따라 군복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시대별, 지역별 군복의 변화를 다루면서도, 단순한 복식사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최초로 근대적인 군대를 창설했다는 스웨덴의 구스타브 아돌프와 독일의 효웅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의 격돌, 오스만 제국과 기독교 제국의 결전에서 대활약했던 폴란드 왕 얀 3세의 유익 기병대 '후사리아(윙드 후사르)' 이야기, 군인왕 프리드리히의 생애 등 군복과 불가분한 주요 전사 및 영웅들의 활약상을 병행해 설명해 주는 덕분입니다. 

당연히 복식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폴란드 중장기병 후사리아의 복장 묘사처럼요. 등에 장착한 거대한 스크시드워(천사의 날개 모양 장식)부터, 장창 코피아, 휘어진 군도 사블라, 2미터 장검 콘체슈, 권총 반돌레트, 동양풍 투구 시샤크, 어깨에 걸친 표범 가죽까지 장비 일체를 착용 이유와 이후 발전 상황 등까지 모두 알려줍니다. 아래와 같이 도판도 함께 제시되고요.

복식으로서의 군복에 대한 정보도 흥미롭습니다. 군복이 화려한 원색으로 구성되었던 이유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화약은 짙은 연기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전장의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총기의 명중률도 낮아 병사들이 적의 사격을 피하는 것보다 아군의 위치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원색과 금·은 자수, 매듭 장식이 선호되었다고 하네요. 또, 화려한 군복은 군대의 상징이자 국가 권위의 표상으로 기능해서 루이 14세와 나폴레옹이 이를 의도적으로 장려했다는 설명은 군복이 단순한 실용품이 아닌 국가 전략의 일부였음을 보여주고요. 또한 병사들에게 눈에 띄는 군복을 입히면 탈영을 어렵게 만든다는 설명도 그럴듯한 해석이었습니다.

프랑스 총사대의 복장, 이른바 '타바드'에 대한 고증 또한 세밀합니다. 대부분 대중매체에서 보아온 파란색 상의는 실은 루이 14세 시대의 것이며, 루이 13세나 리슐리외 추기경 시대에는 다른 복장이었다고 하네요. '늑골복'이라 불린 헝가리계 경기병의 복장이 오스만 제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그 외에도 1848년 무렵, 재인도 영국군의 선도 군단(Corps of Guides)을 이끈 해리 버넷 럼스덴 중위(후에 중장. 1821~1896 년)가 고안한 진흙으로 염색한 군복을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된 우르두어에 카키 (Khaki, 진흙 색)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카키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처음으로 전장에서의 위장 효과를 의식한 군복이라던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 세계 최강의 패권국은 대영제국으로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영국 육군이 전 세계에 유행시킨 세 가지 아이템은 승마 바지와 승마 부츠의 조합, 어깨에 두르는 샘 브라운 벨트, 오늘날 일반 신사복으로 널리 정착한 '트렌치코트' 이고, 세계 최초의 위장복은 2차대전 독일 친위대가 도입했다는 등의 재미난 정보가 가득합니다.

다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다소 산만하고 두서없이 전개되는 감이 있기는 합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천 년의 역사를 다루고는 있지만, 주로 근대 유럽에 치우쳤다는 비중 문제도 있고요. 또한 소개된 내용들의 출처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학술적 깊이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복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전사(戰史)'와 함께 입체적으로 풀어내고 있어 전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책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2025/03/14

기차 시간표 전쟁 - A.J.P. 테일러 / 유영수 : 별점 4점

기차 시간표 전쟁 - 8점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페이퍼로드

이 책은 1914년 7월 위기 속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원인을 독창적인 시각에서 분석한 전쟁사 - 미시사 서적입니다. 

저자는 전쟁이 단순한 외교적 실수나 강대국들의 야망 때문이 아니라, 철저히 계획된 기차 시간표와 병력 동원 계획의 불가피한 결과였다고 주장합니다. 주장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유럽 각국은 철도를 활용한 신속한 군대 동원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전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동원을 빠르게 마쳐야 했고, 이에 따라 병력과 군수물자를 정해진 시간과 경로에 따라 이동시키는 계획이 점점 정교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병력과 수천 대의 열차가 동원되는 만큼, 계획이 한 번 실행되면 중단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1914년 6월,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가 암살되면서 유럽 각국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고, 각국은 병력 동원을 상대국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는데, 일종의 힘을 과시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동원이 시작되면 이를 멈출 방법이 없었습니다. 특히 독일은 양면전 가능성을 고려해 먼저 프랑스를 공격해야 했고, 다른 나라들도 부분 동원만으로는 전면전에 대비할 수 없어 연쇄적으로 동원에 돌입했습니다. 결국, 상대를 위협하려던 동원 계획이 오히려 전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당시의 복잡했던 동맹 및 외교 관계도 전쟁 발발의 한 원인입니다. 유럽 열강 간의 동맹 구도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가 모로코를 보호령으로 삼으려 하면서 부터였습니다. 독일은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고, 프랑스는 독일과의 타협을 원했으나, 영국이 이를 반대하며 개입했습니다. 결국 독일과 프랑스는 영국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이루었는데, 이 과정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다시 한번 강조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 문제를 놓고 강경한 입장을 취했지만, 다른 열강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먼저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는 명확한 대응 방침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러시아는 발칸 문제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으나, 독일이 터키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에 불안을 느끼며 세르비아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점차 기울었습니다. 프랑스는 러시아와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였고, 영국은 세르비아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으며,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개입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습니다. 세르비아 정부는 발칸 전쟁으로 인해 국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충돌을 피하고자 했지만, 동시에 러시아의 지지를 확인하기 위해 더욱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군을 동원하면서 전쟁 위기가 현실화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전쟁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지원해야 한다는 압력이 강했습니다. 독일 황제는 세르비아가 제시한 조건을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전쟁 준비가 진행된 후였습니다. 결국 1914년의 전쟁 위기는 단순히 사라예보 사건으로 촉발된 것이 아니라, 복잡한 외교적 계산과 강대국들의 경직된 대응으로 인해 확대된 것입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대규모의 군사 동원이 곧바로 전쟁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 각국의 황당하고 순진했던 생각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탁상공론과 연구만 오갔던 무능했던 각국 군사 작전 계획들도 한 몫 단단히 했고요. 다들 말도 안되는 동원 계획 등으로 꿈만 꾸고 있었다는걸 잘 알 수 있었는데, 예를 들면 슐리펜이 여러 해 고심했던 슐리펜 계획 - 독일 제국군이 벨기에를 통과하여 북부 프랑스로 진격하는 계획 - 은 프랑스도 이미 알고 있었다던가, 슐리펜이 오랫동안 연구를 했음에도 프랑스가 어느 때인가 알아차리고 길을 막을 거라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 웃음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생각과는 다르게 전쟁이 일어난건 외교를 맡은 관료들 책임이 크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연합국이 전범으로 지목했던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야말로 '베오그라도 정지'를 제안하는 등 전쟁을 피하기 위해 지속적이고 건설적인 시도를 했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더라고요. 소위 군국주의 군주들을 온화하고 선의를 가진 이들이었으며, 정치가들이 말한 바를 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모든 결정권이 군주들에게 맡겨졌다면 전쟁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는게 아이러니합니다. 

1차 대전 불씨를 당긴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 사건에 대한 설명도 상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왜 암살을 시도했는지 - 독일인과 마자르인들이 나머지 민족을 지배했는데, 마침 세르비아가 터키에 대항해 독립 전쟁을 일으켜 승리했었기 때문에 - 부터, 세르비아 장교들의 비밀 결사 '검은 손'이 암살범 프린치프에게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었고 -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왕국의 수상 파시치를 실각시키기 위하여 -, 처음 폭탄 투척 사건에서는 암살에 실패했었지만 대공이 부상자들을 방문하려고 병원으로 갈 때 암살당했다는 사건의 진행 과정과 결과는 물론 범인 일당에 대한 재판 결과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당은 사형당했지만, 미성년자였던 프린치프는 사형을 면했다고 하네요. 수백만 명이 죽은 미증유의 전쟁을 일으켰다는 책임감을 안고 여생을 보냈을지 궁금해집니다.

이렇게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이유를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주는게 아주 좋았습니다. 도판도 충실하고, 책의 장정과 디자인 모두 빼어납니다. 다만 '기차 시간표'가 중요한 핵심 소재는 아니고 일종의 키워드로 사용되었다는 점, 그리고 전쟁의 시작까지만 다루고 있어서 관련된 인물들과 국가들의 결말은 다른 경로로 알아 보아야 한다는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1차 세계 대전에 대해 궁금하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5/03/07

비잔티움의 역사 -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 최하늘 : 별점 3점

비잔티움의 역사 - 6점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지음, 최하늘 옮김/더숲

“오랑캐의 역사”를 읽고 급격히 비잔티움 제국에 관심이 생겨 찾아본 역사서입니다. 제목 그대로 비잔티움, 즉 동로마 제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제국의 시작을 콘스탄티누스 1세부터로 정의합니다. 로마 제국이 이민족의 침입으로 서방을 더 이상 보호할 수 없게 되면서, 그리스와 중동 지방을 중심으로 한 동방 제국만 남게 된 4세기 이후를 비잔티움 제국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고요. 그 뒤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9개의 시기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각각 탄생, 영토 확장, 이슬람의 공세, 부활, 최대 전성기, 십자군 원정과 지방 분권화, 분열, 몰락, 멸망 등의 흐름을 따라가며, 각 시기별 황제들이 누구였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다룹니다. 이를 통해 한때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며 ‘천년 왕국’이라는 위상을 지녔던 거대한 제국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가장 신기했던건 황제들이 동시에도 여러 명이 존재했고, 배신과 찬탈이 끊임없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이 천 년이나 존속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는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었고, 무역을 통해 축적한 자금을 바탕으로 자체 군사력보다는 용병과 외교에 의존했던 덕분으로 보입니다. 또한, 귀족 가문과 대립을 벌이면서도 정치를 펼칠 수 있을 정도로 황제의 권한이 강력했던 점(특히 전성기)도 주요 요인이었고요. 예를 들어, 바실리오스 2세는 수십 년 전 기근 이후 판매된 토지를 아무 대가 없이 원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명령했으며, 거대 귀족 가문의 토지를 몰수하기까지 했습니다. 강력한 황제의 중앙 집권적 체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겠지요 서방 제국에서 흔히 있었던 교황과 황제 간의 권력 투쟁도 비잔티움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이는 황제가 총대주교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테고요. 

게다가 황제들이 자주 교체되다 보니, 가끔 유능한 인물이 등장하여 영토를 확장하거나 천재적인 외교 전략을 펼치면서 제국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십자군을 끌어들여 이슬람의 확장을 저지했던 것도 이러한 사례 중 하나라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자체적인 강력한 군사력없이, 주변보다 앞선 우수한 문화와 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용병 고용과 동맹, 외교로 버티는건 한계가 있었습니다. 중국 송나라처럼요. 그러고보면 중국 송나라와 비슷하게 많네요. 비단이 유명했다던가, 강력한 무기가 - 송나라는 화포, 동로마는 그리스의 불 - 있었다던가 등등등.

하여튼,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이후, 비잔티움 제국은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이는 ‘분열’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제국은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소아시아, 그리스 지역을 중심으로 한 라틴계 국가와, 그리스계 후계국 세 개(니케아 제국, 에페이로스 전제군주국, 트라페준트 제국)로 분열되었습니다. 이후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했지만, 과거의 광대한 영토를 다시 통합하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이전에는 강력했던 황권도 약화되었고, 귀족층에게 권력이 분산되면서 지방 분권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 결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중심의 도시국가로 전락하며 제국은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이 이러한 문제에서 교훈을 얻어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은 이탈리아 공화국들의 쇠퇴도 초래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국가, 특히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얻은 무역 특권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활동 범위가 급격히 축소되었습니다. 특히, 흑해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제노바는 15세기 이후 사실상 무역 기반을 상실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문화의 중심이 프랑스와 영국 등 보다 서쪽 유럽으로 이동한건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이런 흥미로운 비잔티움, 동로마 제국의 흥망성쇠 외에도, 불가르 제국처럼 낯설고 새로운 역사적 명칭과 국가들이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었던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제국의 비밀 병기 '그리스의 불'이 실제로 대활약해서 이슬람 제국의 공세를 꺾을 수 있었다는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역사서로 보니까 굉장히 새로왔습니다. 슬라브권에서 널리 쓰이는 키릴 문자가 비잔티움 제국의 학자 콘스탄디노스(성직명 키릴로스)에 의해 창안되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네요. 슬라브어 선교를 위해 제작된 이 알파벳이 훗날 키릴 문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군요.

개인적으로 가장 호기심이 생겼던건 비잔티움 제국 멸망 이후 총리대신 루카스 노타라스 가문의 운명 이야기였습니다. 루카스 노타라스 가문의 남자들은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처형되었으며, 그의 두 딸과 아내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 에디르네로 끌려가 술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루카스는 생전에 베네치아와 제노바 은행에 상당한 재산을 맡겨 두었었고, 딸 엘레니가 고생 끝에 결국 동생들을 몸값을 지불하고 구해냈다는군요. 이 정도면 대하 소설로 만들 법한 극적인 이야기아닐까요? '몰락 미녀 귀족 영애가 술탄의 노예가 되었지만, 갖은 노력 끝에 집안 재산을 되찾아 가족을 구해낸다!'.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이 유럽의 주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 때문이더군요. 기번은 이 책에서 비잔티움 문화를 ‘이민족의 승리와 종교의 승리’라고 정의하며 철저하게 폄하했는데, 이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서구 역사학계에서 비잔티움 제국은 후진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비잔티움 제국이 없었다면 이슬람 세력이 훨씬 빠르게 그리스와 발칸 반도, 혹은 그 이상까지 확장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러한 폄하는 부당하지요. 서구 유럽이 중심이 된 근대사의 또다른 폐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렇게 좋은 내용이 가득하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도판이 황당할 정도로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각 시기별 제국의 판도를 쉽게 이해하고, 주요 전장 및 도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지도가 필수적인데, 기본적인 지도조차 부실하여 내용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오랑캐의 역사”에서도 지도가 부족했는데, 앞으로 이러한 역사서에서 지도 부실 문제는 꼭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제국의 운명을 결정지은 대전투나 영웅적인 활약, 스캔들 같은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나치게 건조하고 일반적인 서술 방식으로 전달하여 다소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냥 누가 즉위했고, 어떤 일을 했다라는 서술이 이어질 뿐이거든요. 천년 제국의 역사를 한 권으로 정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중요한 사건과 전투는 조금 더 풍성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점은 만족스러웠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5/02/16

아틀라스 마이오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도책 - 강민지 : 별점 2.5점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아틀라스 마이오르"는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지도책으로 평가받습니다. 당시 유럽 최고의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결과물로, 단순한 지도책을 넘어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아틀라스 마이오르"가 어떻게 제작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려줍니다.

지도책을 단순한 지리학적 도구가 아니라, 인문학적, 역사적 맥락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덕분에 예술, 인문학 서적이자 문화사, 미시사 서적 이라는 성격도 갖추고 있습니다. 지도책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좋은 예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해상 무역국이었으며, 높은 문해율과 학문을 숭상하는 분위기 속에서 서적과 인쇄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지도책은 단순한 실용적 목적을 넘어, 지식을 과시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개인 도서 지관을 꾸려 장서를 자랑하는 문화가 퍼지면서 크기가 크고 값비싼 지도책이 인기를 끌었고, 이는 곧 출판 시장에서 고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로 성장했습니다.'는 것이지요.

지도책 본연의 모습에 대한 소개도 충실합니다. "아틀라스 마이오르"를 중심으로 지도 제작의 발전 과정까지 폭넓게 조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르텔리우스(상업 지도책의 선구자), 메르카토르(현재도 사용되는 평면 도법의 창시자), 블라외 가문(아틀라스 마이오르 제작 명문 가문), 혼디우스 가문(블라외 가문의 라이벌) 등 지도 제작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들과 이들의 대표작을 통해 지도책이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를 넘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지도 제작과 출판의 흐름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한 권의 지도책을 탐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요.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지도 제작에 사용된 도판과 인쇄 기술에 대한 상세한 설명입니다. "아틀라스 마이오르"에 대한 방대한 양의 도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한국을 묘사한 지도가 포함된건 반가왔고요. 또한, 인쇄 방식과 채색 과정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운데, 컬러 인쇄 기술이 없던 시절 '채색사'라는 직업이 존재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들이 단순한 흑백 인쇄물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하는 데 기여했으니, 지금도 그 이름이 전해지는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아울러 지도책을 단순한 과학적 산물이 아니라 미학적 관점에서도 연구 분석하는데, 그 깊이가 대단합니다. 지도 제작에 사용된 물감을 단순히 색채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당시 네덜란드의 유행과 연결해 설명하며, 지도 속 도상(알레고리) 분석을 통해 지도책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해석하는 식이거든요. 특히 지도에 등장하는 문양과 장식 요소를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시대적 사고와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요소로 분석하는 과정은 지도책을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아틀라스 마이오르" 외의 불필요한 내용이 지나치게 많은 구성은 아쉽습니다. 지도책의 유행 이유나 지도 제작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은 필수적인 정보지만, 당대 경쟁 지도 제작자의 지도까지 세세하게 다루고,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문화까지 지나치게 깊이 파고드는건 과했습니다. 특히 60페이지에 걸친 '도상(알레고리)' 설명은 지나쳤습니다. 지도책에 문양이 들어갔다고 해서, 문양의 구성 요소와 의미, 디자인 규칙까지 세세하게 독자가 이해할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도판도 풍성하지만, 내용을 확인하기에는 다소 작은 도판이 많은건 단점입니다. 주요한 도판은 접어 넣는 방식으로라도 보다 크게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저자의 가벼운 문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최신 트렌드를 인용한 비유가 자주 등장하는데, 책의 분위기와 영 어울리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런 표현은 어느 정도는 교열 과정에서 조정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지도책을 다룬 미시사, 예술사적인 측면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결과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허나 지도책을 벗어난 이야기도 많기에 감점합니다. 

2025/02/08

오랑캐의 역사 - 김기협 : 별점 3점

오랑캐의 역사 - 6점
김기협 지음/돌베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주변부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역사서입니다. 농경 사회와 유목 사회를 대립적인 관계로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을 넘어, 유목 사회가 농경 사회와 공생하며 '그림자 제국'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농경 사회는 생산성이 높아 경제력을 확보하기 용이했고, 덕분에 대규모 정치 조직인 ‘국가’ 형태를 갖추기 쉬웠습니다. 반면, 유목 사회는 느슨한 연합체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게 되면 농경 사회의 잉여 생산물을 수탈하거나 교역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여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즉, 농경 사회의 제국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는 구조였으며, 저자는 이를 ‘그림자 제국’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개념을 통해 한반도가 독립 국가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설명됩니다. 농사에 유리한 한반도 남부에 국가가 형성되었고, 북부와 만주는 유목 세력의 땅이라 중국과 단절되었지요. 하지만 이 지역에 강력한 유목 세력이 융성했을 때, 한반도 남부 국가는 지속적인 압박과 수탈을 받아야 했습니다. 고구려, 원나라, 청나라 시기가 그러한 예입니다. 재미있지요? 최근 이세계 전생 후 영지, 국가를 성장시키는 내용의 소설과 만화가 많은데, 이런 시각으로 접근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목민 켄타우로스 부족에게 전생한 주인공이 기술과 병법, 종교 도입으로 오랑캐 정복 왕조를 만든다는 이야기로요.

중국이 대항해 시대의 유럽과 달리 해양 진출이 적었던 이유도 설명됩니다. 중국은 이미 내륙에서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럽처럼 바다를 통해 식민지를 개척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네요. 이는 대외 관계와 교역 방식에서도 차이를 만들었으며, 유럽이 적극적으로 신대륙을 탐험한 것과 달리, 중국은 상대적으로 대외 진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지요. 결국 청나라 이후 유럽에 비해 문명이 뒤쳐지는 결과를 초래했고요.

유럽 중심 사관을 비판하는 내용도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동로마 제국을 ‘비잔틴 제국’이라 부르며 로마 제국과 구분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지적은 인상적입니다. 실제로 동로마 제국은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유지한 채 수백 년간 존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분리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슬람 문명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평가도 눈길을 끌며, 특히 ‘중세 암흑 시대’라는 개념이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와 닿았습니다. 문명의 발전은 중세 시대에도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이슬람 문명을 통해 지속되었으며, 단지 ‘유럽’만이 그 발전 과정에서 소외되었을 뿐이라는 주장이지요.

이러한 저자의 주장들은 풍부한 사료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시되어 설득력도 높은데, 문제는 주장이 일관되게 정리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오랑캐와 유목민, 그림자 제국 등의 개념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유럽 중심주의 비판으로 넘어가고, 다시 이슬람 문명의 성취를 이야기하는 식으로 전개되다 보니 전체적인 구성에서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글도 어려운 편이고요.

더 큰 문제는 도판의 부족입니다. 시대별, 지역별로 각 세력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면서도 당시의 지도가 거의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유목 세력의 이동 경로, 교역로, 세력권 등을 시각적으로 제시하지 않다 보니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읽으면서 지도를 수시로 참고할 수 밖에 없었는데, 2만원을 훌쩍 넘는 책 가격을 생각해보면 주요 지도는 도판으로 반드시 추가되었어야 했습니다. 

저자의 독창적인 역사 해석과 다양한 시각은 흥미롭지만, 이러한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구글 맵에서 연도를 입력하면 해당 세계 지도를 보여주는 서비스를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찾아보았는데, 광고가 많거나 느리거나 조작이 불편한 등 문제가 많았거든요...

2024/07/19

미야자키 월드 - 수전 네이피어 / 하인해 : 별점 2.5점

미야자키 월드 - 6점
수전 네이피어 지음, 하인해 옮김/비잉(Being)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년 시절부터 시작하여, "바람이 분다"까지의 일생과 각종 일화들을 주요 작품 평론과 함께 담고 있습니다. 평전과 평론이 합쳐진 구성이지요. 이 책을 통해 애니메이션 거장으로서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 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군수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조부와 부친 덕분에 유복했지만, 결국 패배한 전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유년 시절 이야기는 이런저런 자료와 책에서 이미 접했었습니다. 그래서 애니메이터가 될 것을 결심하고 토에이 스튜디오에 입사한 뒤부터가 재미있었습니다. "걸리버의 우주여행" 마지막 장면을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안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로봇 공주가 쪼개지며 인간 공주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미야자키 월드를 상징하는 장면과도 같다는데, 아이디어의 좋고 나쁨을 떠나 당시 일개 동화가 신분으로 강력하게 수정을 제안했고, 그게 반영되었다는게 놀라왔습니다.


 
이런저런 일화들이 많이 소개됩니다. 그 중 말괄량이 삐삐 장편 애니메이션을 위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만나러 갔지만 거절당했는데, 이 때 미야자키가 스케치를 준비했었고 후일 단행본으로 출간했다는데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책 제목은 "환영의 삐삐 롱 스타킹"이라니 구해봐야겠습니다. 삐삐와 초창기 미야자키는 너무 잘 어울렸을거라고 생각되거든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대체 왜 거절했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미래소년 코난"의 원작인 "무시무시한 해일" 소개도 반가왔습니다. 원작 내용이 어떠하며 얼마나 각색했는지가 항상 궁금했었기 때문입니다. 원작에서는 코난이 초반부에 공장 노예로 인더스트리아에 끌려오지만, 새와 대화할 수 있는 소녀 라나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뉴오더를 탈출해 하이하버에 도착해서 또 한 번 거대한 지진이 닥치기 직전 친구들과 함께 쓰나미에서 사람들을 구해낸다고 하네요. 라나의 비중이 작고, 자연 재해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소년 모험물인 미야자키 작품과는 아예 달라 보이네요.

상세한 작품별 평론들도 볼만합니다. 외국인이라 가질 수 있는 시각도 있고, 미야자키의 생애와 작품을 연결하여 내놓는 해석들도 참신하게 많은 덕분입니다. "칼리오스트로의 성" 속 루팡이 금욕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라는 해석이 대표적입니다. "붉은 돼지"는 "카사블랑카"의 판타지적 재해석이라는 것도 신선한 발상이라 생각되고요.
"라퓨타"가 개봉 당시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던가 하는 기타 정보들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비판할 요소도 적지 않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2차 대전에서 받은 영향으로 작품에서 '인내를 통해 상실 앞에서 행동하고, 부족함 앞에서도 주변을 돌보고, 파멸 앞에서 다시 일어나라고 말한다'는건 실망스러웠습니다.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이런 파멸에 놓였다는걸 제대로 알고 있는걸까요? 인내, 극복보다는 반성과 사과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부모에 대해 분노와 적개심을 품게 된 이유도 아버지 카츠지가 허풍이 심한 데다 무책임하며 방탕했고, 윤리 의식도 부족했기 때문이라는데, 당시 그렇지 않은 아버지가 과연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전쟁 통에 유복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 준 점에 대해 고마와했어야 합니다. 이 역시 실망스러웠던 부분입니다.

평론별로도 비슷한 이야기가 많아서 지루합니다. 유럽에 대한 동경, 강한 여성상 등은 평론마다 계속 반복됩니다. 동의하기도 어려워요. 일본인들이 동경한 꿈의 낙원으로서의 유럽을 보여주는건, 당시 '빠른 속도로 현대화하는 일본과 달리 전통과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는 유럽을 유토피아로 여긴 것'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유럽을 무대로 한 작품을 많이 만든건 단지 비쥬얼적인 면에서 줄거리, 세계관과 어울린다는 이유가 가장 컸을텐데, 왜 이런 심층 심리(?)를 분석해서 주장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이런 책 치고는 도판이 부실한 것도 단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비판적인 시각보다는 좋은 면만 보려는 등 다소 편향된 느낌이 강해서 감점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팬이시라면 볼만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

2024/05/26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하마모토 다카시 외 / 노경아 : 별점 1.5점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4점
하마모토 다카시 외 지음, 노경아 옮김/레드리버

제목 그대로 결투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는 미시사 서적. 유럽 중심으로 결투사를 개관하고,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발전되었고, 왜 사라졌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책 저자는 근대와 현대의 결투는 '명예 회복을 위한 도전이자 심판'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때문에 전쟁에서의 일기토, 검투사들의 싸움은 결투로 볼 수 없다고 하고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결투가 이렇게 '심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게 중세, 근대까지 왕과 귀족의 법을 따르는 '결투 재판'이 주류를 이루게 된 원인이라는 설명은 와 닿았습니다.
결투 재판은 판결의 신뢰성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반면, 기사도가 확산되는 바람에 명예 결투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과정 설명도 그럴싸 했습니다. 기사들은 사회적인 명예가 존재 기반의 하나였으니, 명예 훼손은 그들의 존재를 뒤흔드는 큰 위협이었겠지요. 그래서 당연히 명예 결투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을테고요.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건, 명예 결투의 시작이 이탈리아라는 설입니다. 보통 이런 '귀족'의 '결투'는 프랑스를 떠올리기 쉬운데, 왕의 권위가 막강한 프랑스에서는 쉽게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하네요. 왕이 재판을 하는게 당연하고, 또 그래야 권위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이유인데 충분히 납득할 만 했어요. 심지어 루이 13세 때 리슐리외 추기경이 결투를 없애려고 안간힘을 썼다는 일화는 놀라왔습니다. "삼총사"에서 달타냥이 하루에 세 번의 결투 약속을 잡을 정도로 결투가 일반화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지배 계급은 정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만약 그랬다면, 리슐리외는 눈의 가시였던 총사대 핵심 멤버들을 모두 사형대로 보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군요. 왜 그러지 않았는지 조금 궁금해집니다.
결국 기사도와 관련이 깊은 결투를 아예 막는건 불가능했기에, 결국 유럽 대륙 전체에 결투 문화가 전파되었습니다. 심지어 북유럽을 넘어 그린란드까지요. 그런데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은 결투를 사람들 앞에서 노래 대결로 승부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모욕당한 자는 사람들 앞에서 상대를 비웃는 노래를 불렀고, 혹시라도 가사를 잊어버리면 친구들이 그 대목을 대신 불러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결투 신청을 받은 자가 위트 넘치는 통렬한 가사로 반격했고요. 한 마디로 래퍼들의 디스 프리스타일 랩 배틀인 셈입니다! 

뒤이어 결투가 사라지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사라진 이유는 당연히 왕들이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절대 왕정 군주들은 앞서 설명드린대로 결투가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겼으며, 이후 계몽 군주들은 생명을 중시했기 때문에 결투를 금지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신사도'가 유행하고 신사들이 품위를 중시하면서 결투를 야만적으로 여긴 탓도 있지만, 왕권이 약화된 대신 입헌군주제가 확립되며 근대적인 재판 시스템이 갖추어진 덕분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로이센은 군국주의의 득세로 장교들이 과거의 귀족처럼 특권을 인정받고, 명예를 중시하는 계급이 되었기 때문에 19세기까지 결투가 만연하였다고 하네요. 확실히 군인들이 정권을 잡으면 사회가 무식해지는게 사실인것 같습니다.
이런 결투의 전통은 현대에도 약간의 스포츠 형태로 바뀐 '멘주어'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는 결론으로 결투의 역사 서술은 마무리됩니다.

이런 결투의 역사적인 큰 흐름 설명은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목차가 통사적으로, 연대순으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미국에서의 결투 설명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일화 중심으로 소개되는 등 글의 형식도 통일되지 못했고요. 여러 저자의 글을 모은 탓으로 여겨지는데, 누군가 통일성있게 전체 내용을 정리하고 감수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감수할만한데, 더 큰 문제는 결투와 스포츠를 엮는 후반부입니다. 스포츠는 재미, 오락일 뿐입니다. 오락으로서의 스포츠는 고대에서부터 존재했고요. 그런데 두 개가 어떻게 엮인단 말일까요? "헝거 게임"처럼 나라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시합을 벌인다면야 모를까, 현대의 스포츠를 결투라고 보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언급한다면 칼싸움에서 발전한 펜싱 정도? 하지만 펜싱도 전쟁과 투쟁의 역사를 통해 탄생한 무술일 뿐입니다. 결투라고 보는건 무리에요. 
게다가 앞서 저자는 '심판'의 의미가 없다면 결투가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스포츠는 절대로 결투가 될 수 없어요. '결투와 스포츠는 미적 요소뿐만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소도 매우 중요하다는 특성을 공유하는 표리일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라면서 넘어가는데, 미적,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소가 중요한 모든게 다 표리일체의 관계가 되는걸까요? 어림도 없지요. 심지어 스포츠가 사람들의 투쟁심과 승부욕을 흡수해서 결투가 사라졌다!는 주장은 앞서의 본인들의 설명, 즉 근대화와 사회 분위기, 제도의 변화로 결투가 사라졌다는 설명에도 맞지 않습니다. 나치의 올림픽을 이용한 국민 통합(?)과 고양은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고요. 이는 결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책 부제가 '스파르타쿠스는 어쩌다 손흥민이 되었나'인데, 저자들 스스로 검투사들의 싸움은 결투가 아니라고 했고, 축구가 결투일리는 없으니 이 부제는 애초에 이 책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에요. 이 정도면 사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후반부는 완전히 분량 낭비였습니다. 별로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4/04/23

IMBA 선정 20세기 최고의 미스터리 100선

미국 독립 미스터리 전문 서점 협회(Independent Mystery Booksellers Association)의 회원들이 선정한 20세기의 미스터리 소설 100선입니다.
출처는 dcinside 추리소설 갤러리입니다. 원글은 이 곳에서 확인하세요.

100편의 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가 리뷰를 올린 작품은 모두 링크를 걸어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The Tiger in the Smoke - 마저리 앨링엄 (Allingham, Margery) (1952)
4. Aunt Dimity's Death - 낸시 애서튼 (Atherton, Nancy) (1992)
5. In the Heat of the Night - 존 볼 (Ball, John) (1965) / 국내 출간: 밤의 열기 속에서 (하서출판사)
6. Sheer Torture - 로버트 버나드 (Barnard, Robert) (1982)
7. Track of the Cat - 네바다 바 (Barr, Nevada) (1993)
8. The Beast Must Die - 니콜라스 블레이크 (Blake, Nicholas) (1938) / 국내 출간: 야수는 죽어야 한다 (황금가지)
9. When the Sacred Ginmill Closes - 로렌스 블록 (Block, Lawrence) (1986)
11. The Fabulous Clipjoint - 프레드릭 브라운 (Brown, Fredric) (1947)
12. The Thirty-Nine Steps - 존 버컨 (Buchan, John) (1915) / 국내 출간: 39계단 (문예출판사)
13. Black Cherry Blues - 제임스 리 버크 (Burke, James Lee) (1989)
15. The Thin Woman - 도로시 캔넬 (Cannell, Dorothy) (1984)
17. Thus Was Adonis Murderd - 새라 코드웰 (Caudwell, Sarah) (1981)
18. The Big Sleep - 레이먼드 챈들러 (Chandler, Raymond) (1939) / 국내 출간: 빅 슬립 (문학동네)
19. The Murder of Roger Ackroyd - 애거서 크리스티 (Christie, Agatha) (1926) / 국내 출간: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황금가지)
20. The Concrete Blonde - 마이클 코넬리 (Connelly, Michael) (1994) / 국내 출간: 콘크리트 블론드 (알에이치코리아)
21. The Man Who Liked Slow Tomatoes - K. C. 콘스탄틴 (Constantine, K. C.) (1982)
22. The Monkey's Raincoat - 로버트 크레이스 (Crais, Robert) (1987) / 국내 출간: 몽키스 레인코트 (노블마인)
23. The Moving Toyshop - 에드먼드 크리스핀 (Crispin, Edmund) (1946)
24. Dreaming of the Bones - 데보라 크롬비 (Crombie, Deborah) (1997)
25. The Last Good Kiss - 제임스 크럼리 (Crumley, James) (1978)
26. The Yellow Room Conspiracy - 피터 디킨슨 (Dickinson, Peter) (1994)
29. Booked to Die - 존 더닝 (Dunning, John) (1992)
30. Old Bones - 아론 엘킨스 (Elkins, Aaron) (1987)
32. Time and Again - 잭 피니 (Finney, Jack) (1970)
33. Who in Hell Is Wanda Fuca? - G. M. 포드 (Frod, G. M.) (1995)
35. The Hours Before Dawn - 실리아 프렘린 (Fremlin, Celia) (1958)
36. A Great Deliverance - 엘리자베스 조지 (George, Elizabeth) (1988) / 국내 출간: 성스러운 살인 (현대문학)
37. Smallbone Deceased - 마이클 길버트 (Gilbert, Michael) (1950)
38. “A" Is for Alibi - 수 그래프턴 (Grafton, Sue) (1982) / 국내 출간: 여형사 K (큰나무)
39. The Killings at Badger's Drift - 캐롤라인 그레이엄 (Graham, Caroline) (1987)
40. The Man With the Load of Mischief - 마사 그라임즈 (Grimes, Martha) (1981)
43. The Silence of the Lambs - 토머스 해리스 (Harris, Thomas) (1988) / 국내 출간: 양들의 침묵 (나무의철학)
44. Tourist Season - 칼 하이어센 (Hiaasen, Carl) (1986)
46. On Beulah Height - 레지널드 힐 (Hill, Reginald) (1998)
47. A Thief of Time - 토니 힐러먼 (Hillerman, Tony) (1988) / 국내 출간: 시간의 도둑 (고려원미디어)
48. Cotton Comes to Harlem - 체스터 하임즈 (Himes, Chester) (1964)
49. Hamlet, Revenge! - 마이클 이네스 (Innes, Michael) (1937)
53. When the Bough Breaks - 조너선 켈러먼 (Kellerman, Jonathan) (1985) / 국내 출간: 큰 가지가 부러질 때 (청담문학사)
54. The Beekeeper's Apprentice - 로리 킹 (King, Laurie) (1994)
55. Dark Nantucket Noon - 제인 랭턴 (Langton, Jane) (1975)
57. To Kill a Mockingbird - 하퍼 리 (Lee, Harper) (1960) / 국내 출간: 앵무새 죽이기 (열린책들)
59. Get Shorty - 엘모어 레너드 (Leonard, Elmore) (1990)
60. Sleeping Dog - 딕 록티 (Lochte, Dick) (1985)
61. Rough Cider - 피터 러브시 (Lovesy, Peter) (1986)
63. The List of Adrian Messenger - 필립 맥도널드 (MacDonald, Philip) (1959)
65. Bootlegger's Daughter - 마거릿 마론 (Maron, Margaret) (1992)
66. Death of a Peer - 나이오 마시 (Marsh, Ngaio) (1940)
67. Sadie When She Died - 에드 맥베인 (McBain, Ed) (1972)
68. The Sunday Hangman - 제임스 매클루어 (McClure, James) (1977)
69. If I Ever Rreturn, Pretty Peggy-O - 섀린 매크럼 (McCrumb, Sharyn) (1990)
70. A Stranger in My Grave - 마거릿 밀러 (Miller, Margaret) (1960) / 내 출간: 내 무덤에 묻힌 사람 (엘릭시르)
71. Devil in a Blue Dress - 월터 모즐리 (Mosley, Walter) (1988)
72. Edwin of the Iron Shoes - 마르샤 물러 (Muller, Marcia) (1977) / 국내 출간: 세계 여성 작가 서스펜스 걸작선 ‘쇠구두를 신은 에드윈’ (고려원미디어)
73. Death's Bright Angel - 자넷 닐 (Neel, Janet) (1988)
74. Mallory's Oracle - 캐럴 오코넬 (O'Connell, Carol) (1994)
75. Child of Silence - 애비게일 파젯 (Padgett, Abigail) (1993)
76. Deadlock - 새라 패러츠키 (Paretsky, Sara) (1984)
77. Looking for Rachel Wallace - 로버트 파커 (Parker, Robert) (1980)
79. Vanishing Act - 토머스 페리 (Perry, Thomas) (1995)
80. Crocodile on the Sandback - 엘리자베스 피터스 (Peters, Elizabeth) (1975)
81. One Corpse Too Many - 엘리스 피터스 (Peters, Ellis) (1979) / 국내 출간: 99번째 주검 (북하우스)
82. Blue Lonesome - 빌 프론지니 (Pronzini, Bill) (1995)
84. No More Dying Then - 루스 렌델 (Rendell, Ruth) (1971)
85. The Wrong Murder - 크레이그 라이스 (Rice, Craig) (1940)
87. Blood at the Root - 피터 로빈슨 (Robinson, Peter) (1997)
89. A Broken Vessel - 케이트 로스 (Ross, Kate) (1994)
90. Concourse - S. J. 로잰 (Rozan, S. J.) (1995)
91. Murder Must Advertise - 도로시 L. 세이어즈 (Sayers, Dorothy L.) (1933) / 국내 출간: 살인은 광고된다 (블루프린트) (ebook), 광고하는 살인 (동안)
95. Chinaman's Chance - 로스 토머스 (Thomas, Ross) (1978)
96. A Test of Wills - 찰스 토드 (Todd, Charles) (1996)
98. The Sands of Windee - 아서 업필드 (Upfield, Arthur) (1931)
100. Sanibel Flats - 랜디 웨인 화이트 (White, Randy Wayne) (1990)

다른 유사 리스트와 구분되는 특징이라면 한 작가 당 하나의 작품만 꼽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개되는 작가들이 다른 리스트에 비하면 훨씬 많고, 다른 리스트에서 찾아보기 힘든 작품들 - 예를 들자면 "스트라이크 살인" - 도 눈에 뜨이지요.

하지만 영미권, 특히 미국 작가에 집중되어 있다는 단점이 큽니다. 몇 안되는 유럽 작품에 "뒤마 클럽"이 속한 것도 납득불가고요. 작가별 대표작들도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87분서 시리즈'라면 당연히 "살의의 쐐기"를 꼽아야 하지 않을까요? 온갖 하드보일드 작품들을 망라하면서 정작 제임스 엘로이의 작품이 없는 것도 믿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참고 수준에 그칠 리스트입니다. 어차피 작품 선정 기준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으니 당연하겠지만요.

2024/03/17

돈까스를 쫓는 모험 - 이건우 : 별점 2.5점

돈까스를 쫓는 모험 - 6점
이건우 지음/푸른숲

돈까스에 진심인 저자가 우리나라의 유명 돈까스집의 돈까스를 먹고 평가하는 식도락 먹부림 에세이. 개인의 기호와 철학에 따라 주제를 정해 맛집들을 깊숙하게 탐구했다는 점에서는 조영권 씨의 "중국집"과 "경양식집에서"가 연상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돈까스라는 주제에 더 깊숙이 집착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돈까스 자체는 물론 관련된 요리와 음식에 대한 정보와 특징들이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아래와 같이요.

  • "샐러드 하면 자연스레 이탈리아가 떠오르고 거기에 시저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로마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황제 샐러드 혹은 시저가 먹었던 샐러드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저 샐러드는 탄생한지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음식이다. 20세기 초, 미국과 가까운 멕시코 국경 도시 티후아나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이탈리아계 미국인 시저 카르디니(Ceasar Cardini)가 어느 날 가게에 몰려든 손님에게 낼 음식이 떨어지자 기지를 발휘해 남은 식재료로 샐러드를 만들어냈는데, 이게 바로 시저 샐러드의 기원이라고 한다."
  • "일본 돈까스의 시초 '렌가테이(煉瓦亭)'에서는 뭉텅뭉텅 썬 양배추를 육수에 데쳐서 돈까스와 함께 냈다. 그런데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남성 직원이 징용되어 일손이 부족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데치지 않은 양배추를 그대로 내기로 했다."
  • "히레는 안심을 뜻하는 필레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단어다."
  • "멘치는 무엇인가? 갈아놓은 고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 민스(mince)에서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실제로 멘치까스는 고기와 양파를 갈아 뭉친 반죽을 튀겨서 만든다. 이런 음식,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맞다, 크로켓. 흔히 '고로케'라고 부르는 음식이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멘치까스는 멘치고로케라고 부르기도 한다."
  • "코르동 블뢰는 음식 이름이기도 하다. 치즈를 햄으로 감싸 튀긴 음식으로, 스위스에서 처음 먹기 시작했다. 이것이 일본으로 전해졌고 다시 우리나라로 넘어오며 흔히 아는 치즈돈까스와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 "일본 나고야의 대표 요리인 히쓰마부시(장어덮밥) 전문점에 가면 먹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준다. 먼저 밥주걱으로 4등분하여 처음에는 밥과 장어 본연의 맛을 즐긴 다음 파와 김, 와사비 등을 곁들여 먹는다. 그 후에 찻물을 부어 말아 먹고, 마지막에는 가장 맛있었던 방법으로 마무리하는게 정석이다. 꼭 시키는 대로 먹을 필요는 없지만, 아무래도 가게에서 하는 제안이니 따라 해 보는게 좋다."
  • "후쿠진즈케는 무, 순무, 오이, 우엉, 작두콩, 연근, 차조기 등 일곱 가지 채소로 만든 장아찌로 일본에서는 카레 가게에서 단골 반찬으로 볼 수 있는 반면, 그 외에는 반찬으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음식이다. 카레와 후쿠진즈케를 함께 내는 전통은 의외로 역사가 깊어 1900년대 초반, 일본 최대 해운 회사인 NYK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우선주식회사(日本郵船株式会社)의 유럽 항로에서 1등석 식사로 카레와 함께 낸 것이 시초라고 한다.
  • 한편 우리나라에도 후쿠진즈케와 아주 비슷한 반찬이 있는데 오복채라고 부른다. 후쿠진즈케가 일곱 가지 채소로 만들기에 칠복신을 뜻하는 시치후쿠진(七福神)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오복채 역시 이름이나 형태로 봤을 때 같은 뿌리를 갖는 음식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오복채는 무, 연근, 오이, 다시마, 우엉, 이렇게 다섯 가지 채소로 만든다(재료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가게 이름 끝에 붙은 ‘안(庵)’은 대개 소바 전문점을 의미한다. 안이라는 한자는 우리식으로는 암자(庵子)를 뜻하는 암으로 읽는다. 그런데 하필 안이라는 글자가 소바집을 뜻하게 되었을까? 언급했듯, 안이라는 글자 자체가 암자, 즉 사찰 내에 승려가 머무는 작은 집을 뜻하는데, 이는 결국 절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다. 예로부터 일본에서는 절과 소바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는 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 기본적으로 살생을 금하는 불교 교리에 따라 사찰음식은 철저히 채식일 수밖에 없다. 메밀가루로 만드는 소바는 이런 식단에 꼭 들어맞는다. 또한 면이라는 음식은 일단 만들어두기만 하면 끓는 물에 데쳐 빠르게 대량 조리하여 낼 수 있어서 신도를 비롯해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절에서 간편하게 대접하기 좋은 음식이다. 마지막으로 깊은 산속에 있는 암자는 종종 피난처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보존성이 우수하다는 장점도 있다. 실용적인 장점 외에도 메밀은 승려들이 수행 중에 자유롭게 섭취할 수 있는 곡물이기도 하다. 일본 천태종에는 승려가 수행 중에 쌀, 보리, 조, 기장, 콩 이렇게 다섯 가지 곡물을 먹지 않는 특정한 기간이 있는데, 메밀은 금식해야 할 곡물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더없이 소중한 식재료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소바라는 음식 자체가 오랜 세월 동안 사찰 및 승려와 함께 발전해왔다."
  • "소바집을 뜻하는 ‘안’ 자의 유래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일설에 의하면 에도 시대 아사쿠사에 도코안(道光庵)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여기에 기거하던 주인이 이른바 소바 명인이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소바가 오죽 맛있었으면 사찰 내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정도로 손님이 몰려들어 결국 주지스님이 소바 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에도의 소바집들이 하나둘씩 이름 뒤에 안을 붙이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소바집에 안을 붙이는 유래라고도 전해진다."
  • "타레는 우리가 익히 아는 소스와 거의 흡사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소스는 주로 양식풍 요리에 쓰며 조리 중에 넣거나 혹은 완성된 요리 위에 뿌리는 액체를 말한다. 타레는 양식 외의 요리에 쓰며 조리 중에 넣거나 혹은 완성된 요리를 찍어 먹는 액체를 말한다."
  • "썰’로 나도는 싸만코의 진정한 유래, 서머(summer)를 일본어식으로 발음한 사마(サマー)와 팥을 뜻하는 앙코(あんこ)가 합쳐져 싸만코가 탄생했다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다."

개인적인 돈까스를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아래와 같이 상세합니다.

"내가 일본식 등심 돈까스를 먹는 방식을 설명해보자면, 일단 가운데에서 한 조각을 있는 그대로 먹어본다. 밑간이 훌륭하다면 양끝 조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레몬 즙만 뿌려서 먹는다. 밑간이 약하다면 먼저 소금을 찍어 먹고 양끝에 가서야 비로소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순정’보다는 소금, 소금보다는 소스 맛이 강하기 때문에, 마치 회나 초밥을 먹을 때 담백한 부위에서 점점 기름진 부위로 옮겨가듯 맛의 농담(濃淡)에 신경 써서 먹는다."

그런데 이 부분은 "음식의 군사"가 떠올라 재미있었어요. 방법은 다르지만 발상은 비슷하지 않습니까?

저자의 글 솜씨도 좋습니다. 유쾌하게,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수록된 거의 모든 가게가 서울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 생활권이 아닌 강북(마포 등)에 위치한 가게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외국이나 지방보다는 접근성이 뛰어나니 언젠가는 한 번 가 볼 기회가 있겠지요.

그런데 무시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은 그건 바로 디자인입니다. 구입 의욕을 사라지게 만드는 표지에서 시작해서, 소개하는 가게 및 돈까스의 사진이 너무 볼품이 없어요. 돈까스가 핵심이면 돈까스 사진이라도 다양하게 올려줬어야 했습니다. 솔직히 수록된 사진은 그렇게 맛있어 보이지도 않더라고요.
사진과 도판이 풍성했더라면 별 4점도 아깝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지금 결과물은 별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제 기억에 남아있든 돈까스 가게는 '허수아비 돈까스' 본점입니다. 두툼한 고기에 바삭한 튀김옷이 어우러진 일본식 돈까스였는데 당시(약 30년 전)에는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음식이었지요. 처음 먹었을 때 정말이지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체인점 사업으로 이어진 것까지는 아는데, 십 수년간 가 본 적이 없네요. 마침 생각난 김에 찾아봤더니 아직은 건재한 듯 하니, 근처에 가 볼일이 있다면 추억삼아 한 번 방문해봐야겠습니다.

2024/03/03

나이트 스쿨 - 리 차일드 / 정경호 : 별점 2점

나이트 스쿨 - 4점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6년 어느날, 잭 리처는 미 육군 수훈장을 받은 날 '학교'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학교'에서 리처는 FBI의 케이시 워터맨, CIA의 존 화이트와 만났고, 그들 모두 조직 최고의 요원으로 특별한 작전을 위해 소집되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불법무장단체가 '1억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어떤 미국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사려고 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기 때문이었다. 세 명은 그 미국인이 누구이며, 팔려는 물건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작전에 돌입했다.
거래가 있던 독일 함부르크로 향한 리처는 목격자 설명에 따른 몽타쥬를 통해 미군 탈영병 윌레이가 범인이라는걸 밝혀냈다. 윌레이의 은신처는 그가 사용했던 가명을 통해서, 그리고 윌레이의 주변 사람들 증언을 통해 그가 팔아넘긴게 '소형 핵폭탄'이라는 것까지 알아냈지만 윌레이는 시체로 발견되고 마는데.....

잭 리처 시리즈 21번째 작품. 원제는 동일합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정체와 그가 팔려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전개는 일종의 첩보물을 연상케합니다. 첩보물에서 "숨어있는 적 정보원, 그리고 그가 확보한 중요 단서"를 찾으려는 설정, 과정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수사물의 기본 얼개와도 비슷하기에 잭 리처의 추리도 많이 선보이고요.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이미 드러난 윌레이의 가명들을 통해 그가 현재 쓰고 있는 가명을 추리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윌레이가 먼저 사용했던 가명은 '에른스트'와 '겝하르트'였습니다. 리처는 마지막 남은 이름은 '아이작 H. 켐프너'라고 추리합니다. 윌레이는 텍사스 슈거 랜드에서 나고 자라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텍사스 최초의 독일 정착촌을 설립한 에른스트, 텍사스 출신의 유명한 핫소스 창업자 겝하르트의 뒤를 이을 이름은 슈거 랜드를 이룩한 슈거 랜드의 아버지 아이작 H. 켐프너 뿐인 것이지요. 실제로 윌레이가 쓴 가명도 아이작 헤르베르트 켐프너였습니다. 우리나라로 번안하자면 LG 트윈스 팬인 범인이 첫 가명을 "김용수", 두 번째 가명을 "이병규"라고 했다면 마지막 가명은 "박용택"이다!라고 하는 느낌이겠지요? 텍사스와 독일계 미국인에 대해 엄청나게 자세하게 알아야 풀 수 있는 추리이기는 하지만, 재미있었어요.
현장을 분석하여, 윌레이는 물건을 배로 실어 나를 생각이었다, 그래서 트럭을 항구 근처 창고에 숨겼을 것이다, 그 창고는 트럭 2대가 들어갈 양문형에 추가 잠금 장치가 되어 있을 것이다는 추리도 좋았고요.

윌레이가 팔려고 했던 물건이 그가 입대 동기로 이야기했던 "데비 크로켓 때문에 군인이 되고 싶었다."는 말이라던가, 유년 시절 함께 살았던 엄마의 정부 "삼촌"의 경력 등이 토대가 되어 천천히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도 합리적이며,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었어요. 미군이 냉전시절 개발했던 소형 핵폭탄이 착오로 버려진걸 윌레이가 확보했다는 정체도 괜찮았고요. 유럽과 미국이 '1'을 쓰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에 착안하여 현재 위치를 찾아내었다는 아이디어도 그럴싸 했습니다.

"1030"의 니글리, 오로스코의 등장도 반가왔습니다. 만나는 모든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리처가 가장 신뢰하며 오래되었을 부하 니글리와는 관계를 맺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 이유가 밝혀지기도 하고요. (접촉 기피증)

하지만 이야기를 지나치게 길게 늘린 느낌이 듭니다. 앞서 대단한 듯 했던 '학교'에서의 멤버들 중 FBI와 CIA는 별 쓸모가 없습니다. 실제 독일에서의 활약은 니글리와 오로스크라는 리쳐의 인맥과 독일 경찰 그리즈만이 활용되었으니까요.
윌레이가 거래가 마무리 되기 전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매춘부와 즐기다가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범행은 전개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고, 윌레이의 정체가 드러나는데 별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독일 경찰 그리즈만은 리처를 돕지만, 뮬러는 배신해서 극우 조직의 리더인 드레믈러에게 정보를 팔아넘긴다는 설정도 똑같아요. 극우 조직이 이 사건에 개입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범죄 조직과 극우 조직이 비록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는 있어도, 비교적 성공한 사업가인 드레믈러가 돈 때문에 물건을 빼았앗을리는 없어서 개연성도 부족합니다.
이런 불필요한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고, 윌레이를 보다 신중한 인물로 그린 뒤 그와의 대결에 집중했어야 했습니다. 지금의 여러가지 설정들은 이야기만 길게 만들었을 뿐으로 지루하기까지 했습니다. 윌레이와 드레믈러의 최후는 시시하기까지 하고요.

타국에서 일종의 비밀 작전을 벌이는 것이라 액션이 별볼일 없다는 단점도 큽니다. 리처가 드레믈러를 제외한 악당을 아무도 죽이지 않아서, 다른 작품들만큼의 파괴에 대한 쾌감은 부족하거든요. 당연히 펼치는 액션과 무기에 대한 설명도 부실한 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리처의 군 시절 활약이 펼쳐진다는 특이함은 팬으로서 기뻤지만, 전체적으로는 평작에 가깝습니다.

2024/01/19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유명 건축물 이야기 : Architecture Inside+Out - John Zukowsky.Robbie Polley / 고세범 : 별점 3점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유명 건축물 이야기 : Architecture Inside+Out - 6점
John Zukowsky.Robbie Polley 지음, 고세범 옮김/영진.com(영진닷컴)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유명 건축물 이야기. 공공 생활, 기념물, 예술과 교육, 주거, 예배의 5개 주제로 구분하여 총 50개 건축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개는 간략한 설명글과 함께 대표 사진과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입체적인 일러스트, 조감도로 이루어져 있고요. 이중 일러스트가 핵심입니다. 사진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부 구조를 그래도 이해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림으로 내용을 설명해주는, 한마디로 도해(圖解)입니다. 걸작 건축물로 흔히 소개되는 낙수장의 아래 단면도가 좋은 예입니다. 어떻게 폭포와 이어지게 만들어졌는지를 그림을 통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림의 퀄리티도 높습니다. 아주 근사해요.
메종 드 벨의 특징 중 하나라는 철제 창틀의 기계 장치라던가, 콜로세움의 엘리베이터(?)와 같이 세세한 디테일들도 충실히 소개해줍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처럼 거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 단지 계획이나 전체 전경을 소개해주기도 하는데 이 역시 이해를 돕습니다.
제가 직접 방문했던 곳이 도해로 설명되는 것도 반가왔습니다. 아래의 베니스 도제 궁전의 아케이드가 그러했습니다. 이런 정보를 미리 접하고 갔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다른 건축 관련 도서에서 흔히 접해왔던 유럽, 미국 건축물에 치우치지 않고 인도 국회 의사당, 방글라데시 국회 의사당, 나키긴 캡슐 타워, 금각사 등 아시아 건축물들도 많지는 않지만 소개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인슈타인 타워, 타셀 호텔, 슈뢰더 하우스 같은 소규모 건물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 점, 그리고 21세기 이후 건축물이 포함된 점도요. 자하 하디드의 런던 아쿠아틱 센터, 뉴욕의 세계 무역 환승센터가 대표적입니다.

다만 3만원이 넘는 고가 도서인데 오타가 간혹 눈에 띄는 문제는 있습니다. 수록된 일러스트, 도해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건축물이 제법 있고, 도해와 사진이 따로 노는 것도 단점이기는 해요. 도해와 동일한 구도로 사진을 찍었으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그랬으면 제목처럼 '안과 밖'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보는 동안 눈이 즐겁고, 여러가지 새롭게 안 점도 많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소개된 건축물들을 언젠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2024/01/06

필요의 탄생 - 헬린 피빗 / 서종기 : 별점 3점

필요의 탄생 - 6점
헬렌 피빗 지음, 서종기 옮김/푸른숲

냉장고 도입에 따른 가정의 변화를 알려주는 과학사, 미시사, 인문학 서적.

냉장고 도입의 역사는 얼음과 아이스박스에서 시작됩니다. 가정 내에서 얼음을 사용한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되었더군요. 17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에는 귀족들 계층에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일반 가정에도 보급되었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유명한 19세기 영국의 만국 박람회에 여러가지 제빙기의 등장 후 모든게 바뀌었습니다. 얼음을 언제든지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대가 열리자 저온 유통 체계가 자리잡아서 식료품 공급망에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한 마디로 신선한 식품들이 계절과 지역에 상관없이 전 세계 곳곳에서 값싸게 거래되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가정용 냉장고가 도입된건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유럽보다도 보급은 훨씬 빠르고 광범위 했습니다. 이유는 20세기 초 근교 주택이 성장하여, 미국의 주택 크기가 계속 커진 덕이 큽니다. 그래서 실내에 냉장고를 충분히 설치할 수 있었거든요. 반면 유럽의 주택 크기는 그대로라 냉장고 크기는 작을 수 밖에 없었을 뿐더러, 영국의 경우는 식품 저장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가정 내에 냉장고를 들이기가 여의치 않았다고 하네요. 1953년에도 영국 전체 가구의 5% 정도만 냉장고를 보유했다고 할 정도로요. 그러나 이후 신규 주택 단지에 냉장고가 기본 설치되고, 중앙 난방의 보급으로 식품 저장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등의 이유로 냉장고 보급은 가속화되었습니다. 음식의 보존 기간을 늘리기 위한 각종 첨가물이 금지된 것도 한 몫 단단히 했습니다. 건강을 강조한 광고도 이런 분위기를 이끌었고요. 심지어 1950년대 뉴질랜드에서는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은 우유를 파는게 범법행위에 해당하기도 했다니, 보급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인겁니다.

그 외에도 냉장고 문 안쪽에 선반을 단 발명 특허는 사장될 뻔 했다던가, 선반 특허를 반격했던 회전식 선반은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사장되었다, 냉장고 소리를 감추기 위해 라디오를 다는 발명도 있었다는 등 소개되는 냉장고 관련 잡학들도 재미있었어요. 그 중 냉장고에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발명은 최근에서야 여러가지 센서와 칩으로 가능했을 기술같은데, 이미 1970년대에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를 이용해서 구현했다는게 놀라왔습니다.

'냉장고'하나만으로 미국과 유럽의 주거 환경, 가정 내 상황, 그리고 미국의 교외화 현상 등을 설명할 수 있다는게 인상적이었던 독서였습니다. 냉장고와 냉동 기술이 핵심 이유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영향을 미쳤다는건 부인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렇게 하나에 대해 깊이 파고 들면, 관련된 다른 것들에 대해 이해하기 쉬워진다는게 미시사의 묘미가 아닐까 싶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3/12/15

"우먼 인 윈도"에서 소개된 애나 폭스의 영화들

"우먼 인 윈도" 속에서 소개된 애나 폭스의 영화들 목록입니다. 책 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0월 24일 일요일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
1956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도리스 데이 주연, 히치콕 감독이 자신이 1934년 만든 동명의 영화(영국) 를 리메이크한 작품, 휴가를 보내던 가족이 암살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으로, 극중에서 도리스 데이가 부른 'Que Sera, Sera'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길다(Gilda)
1946년. 미국. 찰스 비도르 감독, 리타 헤이워스, 글렌 포드 주연, 도박꾼 조니는 카지노 사장의 심복이 된다. 사장의 집에 초대받아간 조니는 사장의 부인이 된 전 애인 길다를 만난다. 두 사람은 강하게 이끌리고 선을 넘는다. 리타 헤이워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이다.

10월 27일 수요일
과거로부터 (out of the Past)

1947년, 미국, 자크 투르뇌 감독. 로버트 미첨, 제인 그리어 주연, 왕년의 사설탐정으로, 지금은 은퇴하고 주유소에서 일하는 제프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조용히 살아가려던 그의 앞날에 과거의 위험한 사랑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에어플레인(Airplane)
1980년. 미국. 데이비드 주커, 제리 주커 공동 감독 및 주연, 택시 기사인 테드 스트라이커는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기억 때문에 비행공포증을 앓는다. 어느 날, 비행 승무원인 여자친구 일레인이 결별을 선언하자 테드는 엉겁결에 그녀를 따라 비행기에 오른다. 그런데 식중독으로 기장이 정신을 잃고, 테드가 조종간을 잡게 된다.

10월 29일 금요일
디아볼릭(Les Diaboliques)

1955년, 프랑스,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 시몬 시뇨레, 베라 클루조 주연, 폭력적인 남편인 미셸 때문에 괴로워하는 크리스티나에게 미셸의 정부인 니콜이 찾아와 함께 그를 죽이자고 제안한다.두 사람은 성공적으로 미셸을 죽이고 시체를 수영장에 던지지만, 그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몰락한 우상(The Fallen Idol)
1948년, 영국, 캐럴 리드 감독. 랠프 리처드슨, 미셸 모건 주연, 런던의 프랑스 대사관, 대사관 집사의 아내가 죽고, 유일한 목격자는 어린 소년 필립이다. 유럽 심리 스릴러의 고전.

공포의 내각(Ministry of Fear)
1944년, 미국, 프리츠 랑 감독, 레이 밀랜드, 마조리 레이놀즈 주연, 제2차 세계대전 중 출소한 닐이 뜻하지 않게 첩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0월 30일 토요일
39 계단(The 39 Steps)

1935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로버트 도넷, 매들린 캐럴 주연, 리처드는 자신이 첩보원이라고 주장하는 애너벨라를 돕는다. 다음 날 새벽, 애너벨라가 공격을 받아 죽고, 살인 혐의를 뒤집어쓴 리처드는 도망자가 된다.

이중배상(Double Indemnity)
1944년, 미국 빌리 와일더 감독, 프레드 맥머레이, 바버라 스탠윅 주연, 보험회사 직원인 월터는 고개인 디트리히슨의 집에 방문 했다가 그의 아내 필리스의 유혹에 넘어간다. 두 사람은 디트리히 슨을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보험사는 이를 수상하게 여기고 수사에 들어간다.

가스등(Gaslight)
1944년, 미국. 조지 큐커 감독. 샤를르 보와이에, 잉그리드 버그먼, 조셉 코튼 주연. 폴라는 잘생긴 그레고리와 결혼해 상속받은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레고리는 폴라의 외출을 막고,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몰고 간다. 가스라이팅 (gaslighting)'이라는 심리학 용어와 관련이 있다.

파괴공작원(Saboteur)
1942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프리실라 레인, 로버트 커밍스 주연, 공장에서 일하던 배리는 화재로 친한 친구를 잃고 방화범으로 몰린다. 배리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방화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려 한다.

빅 클락(The Big Clock)
1948년, 미국, 존 패로 감독, 레이 밀랜드, 찰스 로튼 주연, 어떤 이를 살해한 언론 재벌 얼은 무고한 남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 남자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 한다.

그림자 없는 남자(The Thin Man) 시리즈
1934~1947년, 미국. 윌리엄 파월, 머나 로이 주연, 은퇴한 경찰인 닉 찰스와 그의 아내 노라 찰스가 사건을 풀어가는 코미디 탐정물, 은퇴한 형사인 닉 찰스는 부유한 집안의 딸 노라와 결혼한다. 닉은 느긋하게 은퇴 생활을 누리고 싶어하지만 스릴을 원하는 노라 때문에 이런저런 사건에 뛰어든다. 대실 해밋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모두 6편이 있다.

도살자(The Butcher, Le Boucher)
1969년, 프랑스, 이탈리아. 클로드 샤브롤 감독, 스테파니 오드런, 장 얀느, 안토니오 파살리아 주연, 시골 학교에 부임한 교사 엘렌은 푸줏간 주인 포폴을 만난다. 포폴은 엘렌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지만 엘렌은 거부한다. 한편 마을은 연쇄 강간, 살해 사건으로 흉흉해지고 엘렌은 포폴을 의심한다. 히치콕을 모방했으면서도 히치콕보다 더 히치콕답다는 평을 받았다.

다크패시지(Dark Passage)
1947년, 미국, 델머 데이브즈 감독, 험프리 보가트, 로런 바콜 주연, 빈센트는 아내를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가까스로 감옥에서 탈옥한 빈센트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하고 그런 그를 아이린이라는 여자가 돕는다.

나이아가라(Niagara)
1953년, 미국, 헨리 해서웨이 감독. 마릴린 먼로, 조셉 코튼, 진피터스 주연. 나이아가라 폭포로 여행 온 신혼 부부가 다른 투숙객 부부의 갈등에 휘말린다.

샤레이드(Charade)
1963년, 미국. 스탠리 도넌 감독. 오드리 헵번, 캐리 그랜트 주연, 남편의 재산을 노리는 남자들에게 쫓기는 여자 레지나와 이를 돕겠다고 나선 조슈아가 파리에서 겪는 일을 다룬다.

서든 피어(Sudden Fear)
1952년, 미국. 데이비드 밀러 감독, 조안 크로포드, 잭 팰런스 주연, 상속녀이자 극작가인 마이라는 배우인 레스터를 만나 결혼한다. 그러나 레스터에게는 아이린이라는 정부가 있었다. 레스터는 아이린과 함께 마이라를 죽이고 그녀의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어두워질 때까지(Wait Until Dark)
1967년, 미국, 테렌스 영 감독, 오드리 헵번, 알란 아킨 주연, 수지는 최근에 시력을 잃었다. 그녀의 남편은 비행기에서 인형을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인형 속에는 밀수된 마약이 있었고, 악당들은 수지에게 접근해 인형이 숨겨진 곳을 알아내려 한다.

배니싱(The Vanishing)
1988년, 프랑스, 네덜란드, 조지 슬루이저 감독. 버나드 피에르 도나디우, 기니 베르보에츠 주연, 연인인 렉스와 사스키아는 여행을 떠난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사스키아가 실종되고 렉스는 그녀를 찾아 주변을 뒤진다. 그리고 삼 년 후, 렉스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그는 평범한 교사로 보이지만 실은 정신병자였다.

실종자(Frantic)
1988년, 미국. 로만 폴란스키 감독. 해리슨 포드, 베티 버클리 주연, 파리로 여행을 온 부부, 리처드가 샤워를 하는 사이 호텔방에서 부인이 사라진다. 리처드는 아내의 실종이 바뀐 가방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이드 이펙트(Side Effects).
2013년, 미국,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루니 마라, 채닝 테이텀, 주드 로 주연, 우울증 환자 에밀리는 의사인 뱅크스가 처방해준 신약을 복용하고 증세가 호전된다. 하지만 몽유병 증세가 나타나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모든 것이 약의 부작용 때문이라 믿는다.

카사블랑카(Cassablanca)
1942년, 미국, 마이클 커티스 감독,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 모로코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릭은 우연히 옛 사랑인 일자를 만난다.

밤 그리고 도시(Night and the City)
1950년, 미국, 영국. 줄스 다신 감독, 리처드 워드마크, 진 티어니 주연, 런던의 밤거리를 헤매는 해리는 은퇴한 세계적인 레슬링 선수를 만나고, 생각지도 못한 음모에 휘말린다.

소용돌이(Whirlpool)
1949년, 미국, 오토 프레밍거 감독, 진 티어니, 리처드 콘트 주연. 마비 증상으로 고통받는 여자가 최면요법을 시도한다. 하지만, 최면에서 깨어난 그녀는 기억에 없는 살인 현장에서 발견되고, 용의자가 된다.

안녕, 내사랑 (Murder, My Sweet)
1944년, 미국,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 디 포웰, 클레어 트레버, 앤 셜리 주연, 전직 사기꾼의 여자친구를 찾는 일에 고용된 필립은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미스터리에 빠진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나이트 머스트 폴(Night Must Fall)
1937년. 미국, 리처드 소프 감독. 로버트 몽고메리, 로사린드 러셀 주연, 브람슨 부인은 고립된 저택에 사는 자산가이다. 그녀는 저택을 돌봐달라며 대니를 고용한다. 그녀의 조카 올리비아는 그에게 끌리면서도 그를 의심한다.

로라(Laura)
1944년, 미국. 오토 프레밍거 감독. 진 티어니, 데이나 앤드루스 주연, 광고회사 디자이너인 로라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되고, 한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10월 31일 일요일
현기증(Vertigo)
195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킴 노박 주연, 고소공포증 때문에 은퇴한 경찰 스코티는 사립탐정이 된다.그는 사건을 맡았다가 마들레인이라는 여인에게 연정을 느끼고, 마들레인이 자살한 이후 그녀를 너무나 닮은 주디라는 여인에게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
1949년, 영국, 캐럴 리드 감독, 조셉 코튼, 알리다 발리 주연,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삼류 소설가 마틴스가 친구에게 일자리를 얻으려고 비엔나를 방문하지만, 친구가 의문의 사고로 사망한 것을 알게 된다.

리피피 (Du Rififi Chez Lex Hommes)
1955년, 프랑스, 이탈리아. 줄스 다신 감독, 진 세바이스, 칼 모너 주연,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토니는 여전히 충성스러운 부하 조를 다시 만난다. 조는 토니에게 보석상을 털자고 제안한다. 이 마지막 한탕을 끝으로 은퇴하자고 말이다.

11월 2일 화요일
스펠바운드(Spellbound)
1945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잉그리드 버그먼, 그레고리 펙 주연, 정신병원의 의사로 근무하는 콘스탄스는 새로 부임한 의사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사실 에드워드가 아니었고, 죽은 친구의 이름임이 밝혀진다. 남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추적을 받는다.

죽음의 항해 (Dead Calm)
1989년, 오스트레일리아. 필립 노이스 감독, 니콜 키드먼, 샘 닐주연,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부가 요트 여행을 떠난다. 조용할 줄만 알았던 여행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만난 한 남자로 인해 흔들린다.

레베카(Rebecca)
1940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로런스 올리비에, 주디스 앤더슨, 조앤 폰테인 주연, 수줍은 여자가 부인과 사별한 남자를 만나 결혼해 대저택에 들어가지만, 남자는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1월 3일 수요일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ers on a Train)
1951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팔리 그레인저, 루스 로먼 주연, 프로 테니스 선수 가이는 아내를 두고 외도를 즐기며 이혼을 바라고 있다. 어느 날 가이는 기차 안에서 브루노를 만나고, 브루노는 그에게 교환살인을 제안한다. 영화 마지막에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목마 장면이 등장한다.

위커 맨(The Wicker Man)
2006년, 미국, 닐 라부티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고속도로 사고로 죽어가던 모자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경찰관 에드워드는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는 옛 연인의 편지를 받는다.

로프(Rope)
194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 두대학생이 재미삼아 동급생을 밧줄로 목 졸라 죽인 후 그의 시체를 아파트에 숨긴다. 이들은 완전범죄를 위해 친구와 가족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59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캐리 그랜트, 에바 마리 세인트 주연, 뉴욕의 광고업자가 외국첩보기관에 의해 정부요원으로 오해받아 살해될 위기에 처한다.

숙녀 사라지다(The Lady Vanishes)
193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마가렛 락우드,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주연, 여행 중인 젊은 여성이 기차에서 한 부인의 도움을 받는다. 두통으로 잠이 들었던 여성은 깨어난 뒤 그 부인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찾아 나선다. "반드리카 초특급"이라는 제목 으로도 알려졌다.

11월 4일 목요일
아담스 패밀리(The Adams Family)
1991년, 미국, 베리 소넨필드 감독, 안젤리카 휴스턴, 라울 줄리 아, 크리스토퍼 로이드 주연, 아담스 가에 이십오 년간 행방불명이던 친척이 찾아온다. 1964년 TV 시리즈로 방영된 동명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으로, 개봉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스터 에드(Mister Ed)
1961~1966년, 미국, 저스터스 아디스 외(外) 감독. 앨런 영, 코니 하인즈 출연, 미국 C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TV 시리즈. 말하는 말인 에드와 그 주인의 좌충우돌을 다루었다. 이 소설에서 애나가 올리비아에게 언급한 물론(Of course)이라는 말이 주제가에서 말장난으로 반복된다.

11월 5일 금요일
무법자(The Outlaw)
1943년, 미국, 하워드 휴즈, 하워드 혹스 감독. 잭 부텔, 제인 러셀 주연, 서부의 무법자들이 리오 맥도날드라는 여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제인 러셀이 전형적인 핀업걸 이미지로 등장하는 포스터로 유명하다.

열정(Hot Blood)
1956년, 미국, 니콜라스 레이 감독, 제인 러셀, 코넬 와일드 주연, 열정적인 여성 애니와 정략결혼으로 얽힌 형제 이야기, 집시 스커트를 입고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제인 러셀을 담은 포스터로 유명하다.

11월 7일 일요일
의혹의 그림자(Shadow Of A Doubt)
1943년, 스릴러,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테레사 라이트, 조셉 코튼 주연, 미국 소도시에 사는 찰리의 단조로운 삶은 이름이 같은 찰리 삼촌이 찾아오면서 활기를 띤다. 그러나 찰리는 삼촌이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진다.

이창(Rear Window)
1954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주연, 다리를 다친 사진작가가 이웃들을 엿보는 것으로 소일하던 중 한 이웃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확신한다.

11월 8일 월요일
싸인(Sign)
2002년, 미국, 나이트 샤말란 감독. 멜 깁슨, 호아킨 피닉스 주연.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옥수수 농장을 운영하는 그레이엄은 어느날 원과 선으로 만들어진 복잡하면서도 거대한 미스터리 서클을 발견한다.

로즈메리의 아기 (Rosemary's Baby)
1968년, 미국, 로만 폴란스키 감독. 미아 패로 주연, 새로운 아파 트로 이사 온 젊은 부부가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되고, 부인이 임신한 후에 더욱 심각해진다.

침실의 표적(Body Double)
1984년, 미국.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크레그 워슨, 멜라니 그리피스 주연, 단역배우 제이크는 폐소공포증 때문에 배역을 잃는다. 애인에게서도 버림받은 제이크는 다른 사람의 집을 관리해주기로 하고, 그 집에서 이웃 여자를 훔쳐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에 휘말린다.

욕망(Blow-up)
1966년, 영국,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세러 마일스 주연, 런던의 사진작가가 황량한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던 중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한다.

2023/11/25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 스튜어트 터튼 / 최필원 : 별점 2점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 4점
스튜어트 터튼 지음, 최필원 옮김/책세상

<<아래 리뷰에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년 전, 장남 토마스가 관리인 카버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던 하드캐슬가의 저택 블랙히스 하우스에서 그날의 손님들을 고스란히 다시 불러모은 파티가 열렸다.
손님 중 한 명인 의사 서배스천 밸은 팔에 큰 부상을 입고 숲에서 깨어나 애나가 괴한에게 살해당하는걸 목격했다. 기억을 잃은 그의 앞에 흑사병 의사 옷차림을 한 남자가 나타나 여러가지 경고를 날렸다. 이런 저런 경고와 조언 속에서 시간을 보내던 서배스천은 누군가 자기에게 죽은 토끼를 선물한걸 발견하고 실신했다. 그리고 정신이 들고난 뒤, '나'는 집사 콜린스로 깨어났다는걸 알게 되었다. 흑사병 의사는 '나' 에이든 비숍에게 그는 모두 여덟 명의 다른 사람으로 하루를 반복하게 되며, 무도회에서 살해당하는 하드캐슬의 장녀 에블린을 누가 죽였는지 알아내면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이 루프 속에 다른 두 명의 경쟁자가 있다는 말과 함께.
에이든 비숍은 하룻동안 8명 - 마약 판매상이기도 한 의사 서배스천 벨, 집사 스탠윈, 늙고 뚱뚱한 레이븐코트, 강간범 더비, 에드워드 댄스, 순경 짐 래시턴, 도널드 데이비스, 화가 그레고리 골드 - 의 몸을 오가며, 에블린 하드캐슬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본인과 애나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미래는 경고가 아니야, 미래는 약속이라고.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가 결코 깨버릴 수 없어. 바로 그게 우리가 갇힌 이 덫의 본성이라고."

어딘가에서 추천하는 글을 읽고 알게 된 영국 대장편 판타지 미스터리. 무슨 리스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하루를 반복하는 루프물이라는 아이디어는 특별한건 아닙니다.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일곱 번 죽은 남자"는 제목처럼 계속 반복해 살해당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으려고 노력한다는 내용마저도 비슷하지요. 루프보다는 시간 여행에 가깝지만, 과거를 반복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는 "사라진 세계", "리피트", "나만이 없는 거리", "타임 리프"등 수도 없이 많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설정에 딱 한 가지 차이를 두어 차별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바로 "한 명이 하루를 반복하는게 아니라, 8명을 통해 하루를 반복한다"는 설정입니다. 

루프에 갖힌걸 모른 채 에블린 사건의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설정이 드러나는 도입부는 신선하고 흥미로왔습니다. 사건 자체는 심플합니다. 에블린 하드캐슬이 자살한건 부모가 돈 때문에 레이븐코트 경과 억지로 결혼시키려는걸 막으려고 동생 마이클 등의 도움을 받아 벌인 연극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에블린으로 알고있던건 사기꾼 펄리시티 매덕스였습니다. 오랫만에 유럽에서 돌아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겁니다. 에블린은 하녀 마들렌으로 변장하고 있었고요. 그리고 마이클은 연극이라 믿고 있었던 펄리시티 매덕스를 살해해서 자살로 보이는 살인을 완성했습니다.
동기는 19년 전 토마스 살인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사실 토마스를 죽였던건 에블린이었습니다. 토마스가 에블린과 마굿간지기 파커 사이의 부도덕한 관계를 눈치챘기 때문이었습니다.  레이디 하드캐슬과 불륜 관계로 에블린의 진짜 부친이었던 카버는 딸 에블린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누명을 쓰고 교수대로 향했죠. 그러나 레이디 하드캐슬이 에블린이 진범이라는걸 알아채서 입막음 댓가로 가문을 위해 에블린에게 레이븐코트와 억지 결혼을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에블린은 부모도 죽이고, 자기 자신도 자살한걸로 위장하려 했던 겁니다.

에블린의 자살이 연극으로 위장한 살인이었다는걸 증명하는 단서도 제대로 제공됩니다. 대표적인게 "왜 권총 두 정을 모두 가져갔는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마이클이 나머지 한 정으로 죽은 척하던 에블린 - 으로 변장한 펄리시티 매덕스 - 를 살해하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그 외 발견된 신호용 피스톨 (총 소리만 내기 위함), 피를 담아둔 병도 자살 연극에 사용되었다는 추리로 잘 이어집니다.
루프를 오가는 중간중간마다 '체스말'같은 연결고리도 충실히 제공되고 있어서 잘 짜여졌다는 느낌을 전해주고요.

하지만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을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8명을 통해 하루를 반복한다는 설정은 참신하기는 한데, 이야기를 괜히 복잡하게 만드는 측면이 더 강해요.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각 인물별로 시간대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에이든 비숍이 얻는 정보도 전부 다르기 때문에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인 굉장히 복잡한 구성과 전개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요한 정보와 단서는 전개 후반인 순경 짐 래시턴 시점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앞서 다른 사람들 - "호스트"라고 불리우는 - 의 정보들은 추리적으로 크게 의미를 두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8명의 '호스트' 들의 설정들도 불필요하게 장황합니다. 서배스천이 마약을 몰래 공급해왔다던가, 레이븐코트가 식탐이 엄청난 고도비만이었다던가, 더비가 성범죄자라던가하는건 에블린 살인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협박범 스탠윈, 하드캐슬 가문의 사생아 커닝햄, 또다른 루프 참여인물 대니얼 콜리지 등의 주변 인물들 설정과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장황하더라도 설명이 명확하다면 그래도 괜찮은데, 정작 중요한 설명은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대니얼 콜리지가 에이든을 방해하는건 당연하지만 - 루프에서는 한 명만 탈출할 수 있어서 -, 애나가 에이든에게 협조하는 이유는 제대로 설명되지 못합니다.

결정적으로 이 루프의 정체 - 일종의 감옥 - 는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재소자들을 살인 사건 안에 가두고 그들에게 타인의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자기가 저지른 범죄를 속죄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저만 이해를 못하는걸까요? 그리고 에이든 비숍은 애나를 찾아 제발로 루프에 들어왔기 때문에 배석 판사 흑사병가면이 호스트 통제권 및 여러가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반 감옥이라고 치면, 감옥 재소자를 제 발로 찾아온 선량한 시민에게 감옥에서 지낼 수 있는 편의를 제공했다는 말과 같은데 이건 말도 안되죠. 그냥 일종의 "두뇌 게임"을 펼치기 위한 장을 억지로 만든 것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사악했던 괴물 애나벨 코커는 비숍의 여동생을 고문해 죽였지만, 그녀는 죽고 지금의 애나는 갱생했다! 비숍을 위해 자기를 희생함으로 증명했다! 며 두 명 모두 풀어주는 마지막의 해피 엔딩도 허무했습니다.

복잡하고 일견 치밀해 보이는 구성이지만 핵심 전개와 수수께끼를 풀어내기 위한 전개는 부족하고, 기본 설정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복잡하지만 알고보니 알멩이 없는 미국 드라마같은 작품입니다. 정통 추리물을 기대하신다면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2023/09/24

붉은 집 살인사건 - 도진기 : 별점 2점

붉은 집 살인사건 - 4점
도진기 지음/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진은 암으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오빠 남성룡의 유산 상속에 대해 의뢰한 남광자를 만나러 우면동 붉은 집에 방문했다. 붉은 집 1층에는 서씨 가문, 2층에는 남씨 가문이 거주하고 있었다. 고진은 1순위 상속자인 남성룡의 딸 남진희가 모든걸 상속받기에 상속은 오빠와의 협의가 전부라며 자리를 뜨려 했지만, 과거 있었던 2건의 사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 과거 서씨 가문의 가장 서판곤이 남씨 가문의 모친 이분희와 재혼 후 아내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백솔 사체로 발견되었던 사건과 서판곤의 아들이자 현재 서씨 가문의 가장 서태황의 아내 박은순이 강도에게 살해당했던 사건이었다.
이는 우연이 아니며, 뒤이어 다른 사건이 일어날거라 여겼던 고진의 직감대로 6개월 뒤 남진희가 실족사라는 형태로 사망했다. 고진은 짧은 만남이었지만 미모의 맹인 남진희에게 매료되었던 탓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것을 결심하고 친구이자 우면동관할서의 반장 이유현과 함께 사건 수사에 뛰어드는데....

과거 판사였던 도진기 씨의 데뷰작이자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첫 작품. 제목이 달라져서 몰랐는데, 10여년 전에 읽었던 <<어둠의 변호사>>와 같은 작품이더군요.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바뀐 제목에 낚여서 다시 완독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주요 트릭과 진상은 대충 잊어버렸던 터라 새롭게 읽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네요.

한국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채로운 트릭과 두뇌 싸움, 복선이 가득하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크게는 아래와 같이 서형일이 만든 트릭 세 가지, 그리고 남성룡의 계획 두 가지가 눈에 뜨입니다.

서형일의 트릭
  1. 박은순 살해 당시 알리바이 트릭
  2. 남진희 사건을 일으킨 원격 조종 트릭
  3. 남진희 사건 당시 알리바이 트릭
남성룡의 계획
  1. 서형일의 다아잉 메시지를 이용하여 서태황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던 계획
  2. 서형일을 움직여 남진희를 살해하도록 만든 계획

서형일의 첫 번째 알리바이 트릭은 유럽 여행 중 살인을 위해 이미 한국에 들어왔지만, 유럽에 남아있던 지인애게 당일 한국 날씨를 확인하여 엽서를 보내도록 만든 것입니다. 단순히 '서형일의 필적'이 근거라는건 증거로 삼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이지만, 한국 날씨 예보 종류는 몇 개 없기에 날씨에 대해서만 여러가지로 다르게 기입한 엽서를 준비해서 - 같은 내용으로 "맑음", "흐림", "비" 등으로 만들어 놓는 식으로 - 해당 날짜 예보에 맞는 엽서를 골라 보냈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인어공주 동상에 돼지 피를 뿌린 것도 서형일의 공범이었다는 겁니다. 만약 현장에서 체포되었더라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최대한 몸조심하면서 숨어다녀도 모자랄 판인데 이런 조작까지 해 가면서 엽서를 만들어 보낼 필요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의 원격 조종 트릭은 남진희 침실 구조를 이용하였습니다. 남진희가 수면제에 취한 틈에 침대 위치를 정 반대, 대각선 위치로 옮겨놓았던 겁니다. 원래 위치에서 문을 열면 거실로 나갈 수 있지만, 바뀐 위치에서 문을 열면 계단으로 추락하도록요. 수면제, 방의 구조 등 여러가지 단서와 상황을 잘 조합한 멋진 트릭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침대 위치를 옮기는 조작을 위해 사고 전날 부산으로 이동할 때 알리바이를 만든 트릭입니다. 상, 하행선 고속도로 휴게소를 오갔다는 다소 간단한 내용이지만 실행이 용이하다는 점에서는 현실적이었어요.
 
남성룡의 첫 번째 계획은 서형일이 남긴 '아버지'라는 말이 녹음되었다는걸 알고 녹음기를 그대로 두었던 겁니다. 자신이 서형일의 친부라는건 아무도 모르니, 서형일의 양부 서태황이 죄를 뒤집어 쓸 거라 여겼기 때문이지요. 사건의 진상과 동기 를 밝히는 핵심 소재가 된다는 정메서 눈여겨 볼 만 합니다.
남성룡이 서형일을 조종하기 위해 유언장 정보를 흘려 살의를 부추켰다는건 뻔했지만, 언제나 설득력을 보장하는 동기인건 분명하고요.

하지만 확실히 처음 읽었을 때 보다는 별로였습니다. 일단 '잘 쓴' 작품은 아닙니다. 묘사가 튀는 부분이 많고, 고진과 이유현의 추리가 중구난방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고진이 중심을 잡고 사건을 끌고가는 맛이 부족해요.
인물 설정과 묘사도 별로입니다. 일본 변격물을 연상케하는 엽기 범죄가 명문가 - 서울대학교 교수와 2성 장군 집안이니... - 에서 이어진다던가, 맹인과 트랜스젠더가 혼재하는 복잡한 가족 설정들 모두가 비현실적이었거든요. 거의 마지막까지 서태황과 서두리를 악역으로 묘사하는건 '얘네들이 범인일거야! 그렇겠지?'라는 작가의 의도가 심하게 드러났고요. 무엇보다도 범죄자의 피는 유전된다는 이론을 작품 전체의 밑바탕에 깔고 있는건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고루할 뿐더러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전혀 찬동할 수 없어요.
그리고 본격 추리물을 추구한 작풍 탓이겠지만, 작 중에서 주요 정보를 노골적으로 알려주어서 추리하기 쉬웠다는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뭔가 상세한 묘사가 있거나 하면 금새 이게 단서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남진희가 추락사한 침실 현장에 대한 극도로 상세한 묘사, 그리고 박은순 사건 당시 서형일의 알리바이에 관련된 묘사들이 대표적입니다. 남진희 사건은 묘사만 보아도 트릭은 잘 몰라도 수면제로 깊이 잠든 남진희와 방의 구조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형일의 알리바이도 신문 기사를 통해 곧바로 가짜라는게 드러나고요. 날씨에 대해서 어떻게 조작했는지는 몰라도, 범인이 서형일이라는건 금방 알 수 있어요.
남진희 사건 때 서형일이 톨게이트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것도 알리바이 조작일거라는게 너무 뻔했습니다. 작품 발표 시기는 2000년대 이후인데, 이 때 고속도로 CCTV가 없었을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요. 무슨 차를 탔는지를 알면 고속도로를 이용한 서형일의 알리바이는 금방 깨트릴 수 있었을 겁니다. 이외에도 경찰 수사를 거의 없다시피 묘사한 것도 옥의 티입니다. 서형일은 유럽 여행에서의 알리바이, 고속도로 휴게소 알리바이 모두 협력자가 필요했습니다. 주변 인물과 연락 내용만 살폈어도 협력자를 알아내어 범행을 밝힐 수 있지 않았을까요? 최소한 그런 수사는 벌였어야 했는데 수사에 대한 묘사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남성룡이 서형일을 살해하고 그 죄를 서태황에게 뒤집어 씌우려 한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아버지'라는 말이 녹음된건 우연에 불과합니다. 그 다이잉 메시지(?)만 없었어도, 남성룡 역시 용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살의가 넘쳤다 한들, 이렇게 무모하게 범행을 저지를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0여년 전 보다 감점하여 2점입니다. 데뷰작인 탓에 여러모로 욕심을 부린 티가 많이 납니다. 서형일의 억지스러운 알리바이 트릭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 빼고, 남성룡이 남진희에게 살의를 품은 이유 - 아내가 떠나면서 자기 딸이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 - 와 괜찮았던 남진희 원격 살해 트릭만 가지고 짧고 깔끔하게 다듬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2023/08/02

블랙 아담 (2022) - 자움 콜렛 세라 : 별점 1.5점


기원전 가장 번성하고 위대한 고대 국가였지만 현재는 국제 군사 조직 인터갱의 독재 국가로 전락한 칸다크. 인터갱의 눈을 피해 고대 유물을 찾던 '아드리아나'는 우연히 50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블랙 아담'을 깨우게 된다.
엄청난 괴력과 스피드, 방탄 능력과 자유자재의 고공비행, 번개를 쏘는 능력까지. 온몸이 무기인 '블랙 아담'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인터갱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칸다크 국민들은 이에 열광한다.
한편, 그의 폭주를 막기 위해 '호크맨', '닥터 페이트', '아톰 스매셔', '사이클론' 으로 구성된 히어로 군단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칸다크에 나타나는데... (영화 소개 인용)


유럽으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감상한 작품. 
듣던대로 액션은 좋더군요. 블랙 아담이 처음 각성해서 인터갱을 쓸어버리는 장면, 그리고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 처음으로 격돌하는 장면 두 개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인터갱 살육 장면에서는 악당을 그야말로 박살내서 무조건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화끈함이 제대로 전해졌고,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의 격돌에서는 실사화가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호크맨을 날개의 움직임과 역동적인 모습을 통해 잘 살려내고 있으며, 닥터 페이트가 아주 멋지게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떠오르게 만드는, 같은 마법 계열 능력을 마법진이 아니라 일종의 결정 같은걸 구체화시키는 능력으로 그려낸게 독특하고 잘 어울렸습니다. 사이클론과 아톰 스매셔도 비중은 많지 않지만 능력은 충분히 선보여주었고요.
캐스팅도 좋아요. 특히 그냥 인간 자체가 블랙 아담으로 보이는 (인자블?) 더 락 드웨인 존스와 닥터 페이트 역의 피어스 브로스넌은 그야말로 찰떡이더군요. 블랙 아담이 진짜 영웅이 아니라 영웅의 아빠였다는 설정도 나름 적절하게 잘 써먹고 있고요.

그러나 각본이 너무 형편없어서 작품을 다 말아먹었네요. 힘에 의존하여 방해물을 모두 없애버리는, 안티 히어로에 가까운 응징자 블랙 아담과 이를 막으려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의 대결을 그렸어야 했는데, 결과물은 그냥 자기 고집이 세고 악당을 잘 죽인다 뿐 그냥 전형적인 슈퍼 히어로물이었거든요.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 하나 살린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사람들을 죽일뻔 했다고 자책하며 힘을 포기하는건 영 와 닿지 않았어요.
그나마 블랙 아담 이야기는 괜찮은 편인데. 칸타크 동네 소년 아몬이 관련된 이야기들은 끔찍했습니다. 아이 하나가 DDP 포즈 (아래)를 취한다고 민중들이 따라 일어선다? 이런 허황된 영웅담을 억지로 끼어넣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칸타크, 인터갱 등의 설정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고요.



액션도 뒤로 갈 수록 처집니다. 특히 아크-톤 왕의 후손이라는 이스마엘이 사박의 힘을 얻어 악마로 부활한 뒤의 대결을 그린 클라이막스는 이야기 전개부터가 엉망입니다. 닥터 페이트가 죽음을 선택하여 홀로 사박과 맞서는 중에 감금되어 있던 아담을 깨우는데, 홀로 싸우지 말고 아담을 깨워서 같이 싸우면 되잖아요? 왜 개죽음을 택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박의 디자인과 존재감 모두 별로인데다가, 결말마저 힘으로 두 쪽을 내 버리는거라 너무 허무했고요. 이렇게 존재감없던 빌런이 또 있었나 싶네요. 또 블랙 아담의 힘으로 모든게 해결되는거였다면, 더더욱 닥터 페이트 죽음은 개죽음이라는 생각만 들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일부 액션씬은 볼만했지만, 이 정도라면 망한게 이해가 됩니다. 차라리 블랙 아담의 안티 히어로적인 속성에만 집중했더라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등급도 대폭 높여서요. 우리나라 '범죄도시' 시리즈의 흥행이 왜 성공했는지 - 악당들을 원펀치로 부숴버리는 희열! - 연구해보면 좋겠네요. 후속편 제작이 취소되었다니 이젠 다 필요없는 이야기가 되었지만요.

2023/07/14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 박병욱 : 별점 3점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 6점
박병욱 지음/굿플러스북

유명한 작품, 작가에 대해 소개한 뒤 그와 관련된 특허, 지식 재산권 등에 대해 알려주는 인문학 서적. 모두 20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허와 지식 재산권을 유명한 미술 작품과 작가를 통해서 소개되도록 유도하는 구성은 그럴듯합니다. 어려운 길을 조금이나마 쉽게 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 주니까요. 하지만 작품과 작가에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억지스러운 항목이 더 많았습니다. 거미와 거미 관련 신화에서 시작해서 큰 거미 조각상인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마망으로 이어지다가 작품이 위치한 도시 빌바오에 대한 소개, 여기서 스파이더맨 웹 슈터 특허 이야기로 넘어가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과 빌바오, 그리고 스파이더맨'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특허 이야기는 세 페이지 정도 분량에 그쳐서 책 취지에도 맞지 않고요. 고흐 이야기를 하다가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이 뿌리는 씨는 밀 씨일 거라고 한 뒤 몬산토의 종자 분쟁 이야기로 넘어가는 '고흐, 밀레, 그리고 몬산토와 권리 소진', 샤갈에 대해 한참 소개하다가 그의 대표작 <생일>에서 생일 노래 분쟁으로 넘어가는 '마르크 샤갈의 <생일>과 Happy Birthday to You' 등 대부분의 항목이 그러합니다.
단순히 지식 재산에 관련된 항목을 그렸기 때문에 소개된 항목들도 많아요. '앤디 워홀의 '5'와 지식재산 관리'에서 앤디 워홀 작품은 콜라를 소재로 한 그림이 필요해서 소개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작품과 현대 팝아트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콜라 지식 재산 관련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지요.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비오는 날, 파리 거리>에 돌로 포장된 도로가 그려져 있다고 해서 도로 포장 특허 이야기를 끌고 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관계없는 특허가 소개된 경우도 있습니다. '루벤스의 <촛불을 든 노인과 소년>과 특허 소송을 할 수 있는 자격'은 뜬금없음의 절정입니다. 바로크 양식과 명암 대비 효과에서 촛불 집회로, 그리고 LED 촛불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브 클라인의 IKB와 색채 상표'의 경우는 색깔도 상표 출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다루는데, 이브 클라인은 IKB의 제조법을 출원한거라 성격이 전혀 다르고요. 이에 비하면 렘브란트의 자화상에서 시작해서 셀카봉 특허 소개로 이어지는건 기발해서 마음에 듭니다. 참고로, 셀카봉은 미놀타의 기술자 우에다 히로시가 만들었다고 하네요. 무려 1984년에 출원했답니다. 기술이 아이디어를 따라오지 못한 좋은 예입니다. 돈을 번 사람은 따로 있다니까요.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은 부분도 많습니다. 튜브 물감의 발견이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건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통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야외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라지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튜브 물감의 초창기 제품과 이전의 돼지 방광 물감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던건 수확입니다. 도판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확인이 가능한 덕분입니다. 재미있는건 튜브 물감이 먼저였고, 튜브형 치약은 무려 30년 뒤에 나왔다는 사실이지요. 아마 지금처럼 치아 관리가 중요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라 짐작됩니다. 또 튜브 물감의 특허권자 존 랜드가 튜브형 치약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게 대박이었어요. 튜브형 치약으로 포스터가 특허를 받기는 했지만, 이는 특허가 독점권이 아니라서 가능했습니다. 즉, 존 랜드의 특허를 침해한게 맞다는겁니다. 존 랜드가 특허 출원당시 튜브형 용기에 담기는걸 '물감'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유체'라고 명기했던 덕분인데, 앞으로 특허를 출원할 때 유념해야겠습니다.

코카-콜라 특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은데, 영업비밀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네요. 2006년 코카-콜라의 라이벌인 펩시콜라는 코카-콜라의 직원으로부터 코카-콜라의 레시피를 수백만 달러에 팔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안을 받은 펩시콜라는 오히려 이러한 불법행위를 코카-콜라 측에 알려 주었고, 제안을 한 코카-콜라 고위 임원의 비서 등 직원 3명은 150만 달러를 받으려고 나왔다가 FBI에 의해 체포된 뒤 영업비밀을 훔친 죄로 8년 형을 선고 받았다고 하네요. 또 콜라의 상표권과 관련한 소송을 살펴보면, 1988년 코카-콜라는 라이벌인 펩시콜라와 캐나다에서 소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코카-콜라가 사용하는 필기체와 동일한 "Cola" 글씨를 펩시콜라가 사용했기 때문이지요. “Cola"는 일반적으로 청량음료인 콜라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인데, 당시 캐나다 법원은 이러한 일반명사라도 코카-콜라가 사용하고 등록한 글씨체를 똑같이 모방하여 사용하면, 일반 소비자가 펩시콜라를 코카-콜라로 혼동할 수 있으므로 상표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반명사인 "Cola"만으로는 상표로 등록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나 "Coca-Cola"는 단순히 특정한 제품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인식되지 않고, 소비자의 입장에서 다른 콜라와 제품의 출처를 구별할 수 있는 식별력이 있으므로 상표로서 등록이 가능했던 겁니다.

생일 축하 노래는 큰 돈이 오간게 핵심인데, 최초 저작권 등록을 거쳐 1988년에 워너/채플 뮤직이 저작권자 써미 컴퍼니를 2,5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저작권이 이전되었는데, 인수 당시 저작권 평가액은 500만 달러였습니다. "Happy Birthday to You”는 1935년 미국에서 저작권 등록이 되었으므로, 등록된 때로부터 95년이 지난 2030년까지 저작권이 유효하고요. 워너/채플 뮤직은 2010년 이 노래를 한번 연주할 때마다 700달러의 로열티를 받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이 노래로 워너 뮤직이 벌어들인 저작권료는 5,000만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어 역사상 가장 많은 저작권료를 번 노래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서, '7급 공무원'에서 남자 주인공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위해 지불한 저작권 사용료는 무려 12,000 달러였다고 합니다. 이거 참 부럽네요.
 
발명의 실험을 위해 공개되었던 도로 포장 특허 소송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발명이 공지되기는 했지만 예외적인 상황이라 특허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선출원주의와 선발명주의의 차이도 잘 알 수 있었고요

항상 궁금했던,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미리 머릿 속으로 발명한 뒤 출원한 경우?'에 대한 사례가 많았던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바코드 특허가 대표적으로, 바코드가 특허 출원된 후 보호 기간이 만료될 때 까지 스캐너 등이 개발되지 못해 사업화하여 수익을 올릴 수 없었다는군요. TV와 전자책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이런 발명을 했다면 주변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출원을 미루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꿀팁도 전해줍니다. 일단 출원하고, 개량과 주변 기술에 대한 특허를 지속적으로 취득하면 된다네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또 바코드 특허를 통해 현대 특허 괴물의 모태인 '레멜슨'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레멜슨은 기술적 문제 등으로 상업적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점을 간파하여 주변 기술이 성숙될 때까지 등록을 미루다가 마지막에 등록한 뒤 침해 소송을 벌인 인물이라지요. 세상에는 정말 머리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상표권에 대한 소개도 충실합니다. 지명이나 일반적인 명칭 - 랩 - 같이 식별력이 없는 상표는 당연히 누구도 독점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천안 호두과자'가 아마 등록되지 못했었지요? 그러나 '오랜 기간동안 어느 하나의 사업자가 적극적으로 상표를 사용하여 그 상표를 보면 누가 만들어 파는 제품인지 소비자의 입장에서 현저하게 인식되어 혼동할 우려가 없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상표 등록이 가능한데 대표적인게 우리나라는 K2, 유럽은 4 핑거 킷캣입니다. 색채만의 상표도 마찬가지로 아래의 요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1. 타인의 상품과 구분되는 식별력을 가질 것.
  2. 색깔 자체에 기능성이 있으면 안됨. 예를 들어 분홍색 붕대는 피부색과 비슷한 기능성이 있어서 출원 불가.
이는 패션업계에 사례가 많더라고요. 크리스찬 루부탱의 빨간 하이힐 밑창, 그리고 티파니의 푸른 상자와 쇼핑백이 대표적입니다.

건축물도 지식 재산권으로 보호될 수 있을지도 평소에 궁금했었는데, 당연하지만 기존 건축과 구별되는 독창적인 건물의 경우만 인정된다고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즉, 일률적인 아파트는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보호되려면 어느 정도 예술성이 요구된다고도 하니까요.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표현된 창작물에만 인정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라는데, 이를 특허 기관에서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또 저작권은 '아이디어'를 보호하는게 아니라 '표현;을 보호한다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디어나 컨셉이 유사해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이 다르면 저작권을 침해한게 아니라는데,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애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정량적으로, 수치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정보이니까요.

이런 내용들을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다는건 분명한 장점입니다. 특허, 지식 재산권 이야기만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만큼, 구태여 미술 작품을 통해 소개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3/07/08

마션 - 앤디 위어 / 박아람 : 별점 3점

마션 - 8점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지구로부터 225,000,000km 떨어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 조난을 당한 남성, 마크 와트니는 화성 탐사 계획에 참여한 식물학자로 1,000여 일 동안 아레스3 탐사선을 타고 무사히 화성에 도착한다. 예정된 탐사를 수행하던 엿새째, 예기치 못한 모래 폭풍에 휩쓸린 와트니와 일행들 사이에 교신이 끊겨버린다.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동료들은 두려움 속에 귀환하고, 모래 언덕에서 홀로 깨어난 그는 감자 몇 알과 함께 다음 탐사선이 올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이보다 더 최악의 생존기가 있을까? 하지만 이 똑똑한 과학자는 화성에 지구 작물을 심고, 물을 만들었으며 산소와 이산화탄소로 경작을 해낸다. 한편 나사 영상 담당 직원은 마크 와트니의 시체가 보일 줄 알았던 영상 기록을 통해 깨끗이 치워진 막사 근처에서 마침내 그의 생존을 확인한다. (알라딘 책소개에서 인용)

화성에 고립된 우주비행사의 눈물나는 과학적인 생존기. 출간되어 이미 시장을 휩쓴지 오래지만, 이번에 유럽으로 향하는 장거리 비행용으로 좀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찾다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에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인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비교해 본다면, 정 반대, 대척점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화성에 고립된 단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전 지구가 힘을 합쳐 노력하는 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단 한 명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니까요. 그러나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 작품이 훨씬 낫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페트로바선, 아스트로파지라던가 비교적 손쉽게 외계인과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하는 등의 비현실적인 설징이 바탕이 된 반면, 이 작품은 상식 선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위기가 찾아오는 극적인 전개도 이 작품이 우위에 있고요. 무엇보다도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라는 첫 문장부터 독자를 강하게 사로잡아요. 이어지는 화성에 홀로 남은 마크 와트니의 생존을 위한 분투도 엄청 흥미롭고요. <<로빈슨 크루소>> 등과 다름없는 순수한 모험물인데, 고전적인 생존 모험물과는 다르게 치밀한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론의 전문성이 높아서 거의 하드 SF에 가까울 정도인데, 이를 이렇게 재미나게 그려내는건 정말이지 대단한 능력이라 생각됩니다.
또 마크 와트니 시점과 NASA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시점을 번갈아 가며 전개해 내는 것도 좋았습니다. 어느 한 쪽은 모르지만 다른 한 쪽은 알고 있는 위기 상황 - 예를 들어 NASA에서 관측한 모래 폭풍 - 을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불어넣어 줄 뿐 아니라, 마크라는 단 한 명을 구하기 위한 전 지구적인 노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마지막 마크 구조 순간의 감동이 극대화 되기 때문입니다.
유머 넘치는 마크 위트니 캐릭터도 아주 좋습니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조차 유머로 대처하는 강한 멘탈에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어요. 암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갖추고 있는 여러가지 지식과 기술도 적절했습니다. 식물학자 겸 기계공학자로 '식물을 갖고 노는 전담 수리공'이라고 언급되는데, 덕분에 생존에 핵심이었던 화성 토양에서 감자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거든요. 각종 장비 수리 및 개조를 하는 모습, 심지어 '육분의'까지 자체 제작하여 화성에서 이동할 때 위치를 측정까지 하는걸 보면 단순한 공학자 수준은 아닌거 같아요. 하긴, NASA의 우주 비행사니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하지만 구조 이후의 후일담이 없다는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간단하게나마 마크 와트니의 구조 이후의 모습을 그려주었더라면 아주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발표 당시의 인기가 수긍이 가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할게 없어서 동료 우주 비행사 짐을 뒤져 크리스티의 전자책을 읽어본다는 디테일이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무척 반가왔습니다. <<백주의 악마>> 속 범인을 아예, 터무니없이 잘못 짚기는 했습니다만.

2023/06/29

엘비스 (2022) - 바즈 루어만 : 별점 3.5점

미국 남부 멤피스에서 트럭을 몰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19살의 무명 가수 '엘비스'. 지역 라디오의 작은 무대에 서게 된 '엘비스'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몸짓과 퍼포먼스로 무대를 압도하고, 그에게 매료된 관객들에게 뜨거운 환호성을 받는다.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 일하던 '톰 파커'는 이를 목격하고 '엘비스'에게 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며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자신이 자라난 동네에서 보고 들은 흑인음악을 접목시킨 독특한 음색과 리듬, 강렬한 퍼포먼스, 화려한 패션까지 그의 모든 것이 대중을 사로잡으며 '엘비스'는 단숨에 스타의 반열에 올라선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 나간 치명적이고 반항적인 존재감은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과 갈등을 빚게 되고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압박하는 '톰 파커'까지 가세해 '엘비스'는 그의 뜻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평생을 함께한 매니저 '톰 파커'와의 관계도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는데…


6월 초, 유럽에 갔다올 때 비행기에서 감상했습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음악과 어우러지는 화려한 영상이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어요. 솜씨가 여전하더군요.
엘비스 전기영화답게 엘비스의 여러가지 공연히 화려하게 펼쳐지는데, 그 중 두 가지 공연씬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예고편에서도 비중있게 등장하는, 매니저가 엘비스를 처음 보는 첫 공연입니다. 이른바 '털기' 춤을 선보이며 여성 관객을 미치게 만드는걸 그야말로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아닌 저도 전율이 올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라스베가스 공연 장면입니다. 왜 엘비스가 공연의 황제인지, 그리고 그가 팬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한 번에 알 수 있게 해 주는 공연이었어요. 거액 계약에 대한 당위성도 부여하고요. 리허설 장면을 통해서는 음악적인 재능도 알려줍니다.


마지막으로 엘비스의 마지막 공연을 보여준 것도 좋았습니다. 영화에서 설명해 준 대로, 몸 상태가 어땠건간에 항상 공연에, 그리고 노래에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던 가수 엘비스의 모습을 모든 관객들이 알게 되었으니까요. 저 역시 이렇게 멋진 목소리로 라이브를 소화하는 가수였다는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네요.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엘비스와 매니저 톰 파커 대령과의 악연이라는 드라마는 진부했습니다. 또 과연 그가 악당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엘비스의 모든 수익의 절반을 가져갔으니 악당이다! 라는 논리인데, 대부분의 매니지먼트 회사가 그 정도 수익은 가져가지 않나요? 영화에서도 설명되지만 엘비스가 가져간 수익도 천문학적이었습니다. 엘비스의 낭비벽이 심해서 발목을 잡혔을 뿐이지요. 
그래도 톰 파커 대령 역을 맡은 톰 행크스의 호연은 눈부셨습니다. 톰 행크스의 악역 연기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얄미운 악당을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명배우는 명배우에요.
반면 주연 배우 오스틴 버틀러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노래도 잘하고 젊은 시절의 연기는 충분히 그럴싸 했는데, 말년의 '거구'는 전혀 표현하지 못했거든요. 엘비스라는 인물의 분위기만큼은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어서, 당대 불세출의 스타라는 존재감만큼은 잘 표현하고 있어서 과거 명배우들의 메소드 연기처럼, '그 사람이 되는' 노력을 보여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3.5점. 실존 슈퍼 스타를 영화화한 작품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멋지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엘비스만 좀 더 닮았어도 4점 이상은 충분했을 겁니다. 영화에서도 다루어진 유명한 컴백 스페셜 무대나 다시 정주행해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