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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1

발레리나 (2025) - 렌 와이즈먼 : 별점 1.5점

"존 윅" 시리즈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핀 오프 액션 영화입니다. 

그러나 세계관을 잘 살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컨티넨탈 호텔이나 루스카 로마 같은 익숙한 설정들이 등장하지만, 이미 알려진 장치를 배경처럼 끌어다 쓰는 데 그칠 뿐입니다. 시리즈의 개성을 만들어 주던 설정들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킬러로 길러진 여성이 복수에 나선다는 흔한 설정을 포장하는 장식에 불과해요. 사실 "존 윅" 세계관도 서양 관객들에게는 새로왔을지 모르지만, 일본 만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던 설정들일 뿐이기도 하고요.

이야기도 뻔합니다. 강한 조직의 후계자로 죽음에 맞닿아 있는 운명의 소녀가 아버지와 함께 도망치지만 결국 아버지를 잃은 뒤, 다른 조직에 들어가서 실력을 키운 뒤 복수한다는 내용으로 전형적인 무협지 서사인 탓입니다. 마지막 복수의 대상이 할아버지라는 설정조차도요.
이에 대한 이야기 전개도 엉망입니다. 어린 시절 헤어졌던 언니가 갑자기 주인공을 도와주거나, 세력 간 협상을 위해 등장한 존 윅이 어느 순간 그녀의 편에서 싸운다는건 지나치게 편의적인 장치였으니까요.

액션도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원래 "존 윅" 시리즈 역시 액션이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각 작품마다 적어도 하나쯤은 관객에게 강하게 남는 시퀀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레리나"는 그런 인상적인 장면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가볍고 작은 여성의 액션이라서 타격감도 부족하고, 대체로 밀리는 액션이 많아서 시원한 느낌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목의 "발레리나"에 걸맞게, 발레 동작을 액션에 녹여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후반부 화염 방사기를 이용한 대결은 눈꼴 사나운 수준입니다. 화면은 요란하지만, 열린 공간에서 총도 충분히 있는 상황에 굳이 화염 방사기를 사용해야 할 이유는 설명이 안되지요. 현실감이나 개연성 보다는,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을 선사하기 위한 욕심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이렇게 "존 윅"의 명성에 기댄 졸작이지만 장점이 아주 없지만은 않습니다.무엇보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이 역할에 잘 어울립니다. 다소 가련해 보이지만 치명적인 소녀 역할을 잘 소화해 내고 있습니다. 팬이라면 '존 윅'의 등장과 활약은 이야기의 개연성과는 별개로 즐길만한 부분이었고요.
전직 킬러들이 모여 산다는 마을 '할슈타트'의 설정 만큼은 아주 괜찮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장점은 너무 사소합니다. 평균 이하의 킬링타임용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불과해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4/11/17

걷는 망자 - 미쓰다 신조 / 김은모 : 별점 3점

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리드비

"걷는 망자"는 일본 미스터리 작가 미쓰다 신조가 선보이는 단편집으로, 도조 겐야 시리즈의 스핀오프 입니다. 괴이 민속학 연구실 '괴민연'을 배경으로 영능력 소녀 도쇼 아이와 도조 겐야의 제자인 덴큐 마히토가 각종 괴담의 진상을 추리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다섯 개의 단편은 각각 독립적인 사건을 다루며 기묘한 괴담과 이를 해결하는 추리적 재미를 선사합니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던 길고 장황한 민속학적 설명이 전부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순수하게 괴이 현상과 그 진상에 대한 추리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괴이 현상과 추리의 결합도 괜찮은 편입니다. 

하지만 괴담을 이야기하는 영능력 소녀 아이와 이를 듣고 진상을 추리해내는 덴큐 마히토 컴비의 매력은 떨어집니다. 아이의 영능력은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덴큐 마히토는 도조 겐야의 조수격임에도 괴담을 무서워한다는 유치한 설정이 덧붙여져 있는 탓입니다. 이 둘이 "사상학 탐정"슌이치로의 조부모가 된다는 '미쓰다 신조 월드' 설정도 억지스러워서 별로였습니다.

총평하자면, "걷는 망자"는 개별 단편마다 흥미로운 설정과 논리적 추리를 선보이지만, 일부 이야기는 완성도가 아쉽고 설정이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쓰다 신조 특유의 괴담, 민속적 분위기와 참신한 트릭은 독자들에게 충분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진상, 트릭 등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걷는 망자

이야기는 어린 시절 '망자길'에서 '살아있지만 죽어있던' 남자 구지라다니 쇼지를 목격했던 도쇼 아이의 경험담에서 시작됩니다. 쇼지는 산책 후 귀가했지만 곧바로 시체로 발견됩니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수사하며 요시코라는 여성과의 밀회에 주목하지만, 아이가 목격한 쇼지의 존재와 가정부의 증언이 요시코를 범인으로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사건의 진상은 덴큐 마히토의 추리를 통해 밝혀지는데, 범인은 요시코가 맞았습니다. 그러나 쇼지의 머리를 잘라 자신의 머리 위에 얹고 '망자길'을 통해 귀가한 척한 요시코의 동생 무쓰코 덕분에 알리바이가 생겨서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있지만 죽어있던 망자'라는 괴이와 알리바이 트릭을 논리적으로 엮은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무쓰코의 키와 마을 여성들의 특이한 풍습 등, 모든 단서가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며 치밀하게 연결된 점도 인상적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 다가오는 머리 없는 여자

어린 시절 가즈히라가 목격한 '가슴은 크지만 머리가 없고 닭 같은 다리를 가진 여자'라는 괴이에서 출발한 사건은, 가즈히라의 친구 다케루의 집에서 이 괴이를 목격한 가정부 다도코로 스에가 습격당하며 점점 미궁으로 빠집니다.
덴큐 마히토는 머리 없는 여자가 다케루의 변장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물구나무를 섰기 때문에 가슴이 크고 다리 관절이 반대로 보였던 것이지요. 다케루는 이 괴이를 통해 집을 떠나려 하지 않는 할머니에게 충격을 주려 했습니다. 스에 습격 사건에서는 사당 장지문 둘레에 금줄을 둘렀다는 일종의 원격 조작 장치 트릭이 사용되어 추리적으로도 풍성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3. 배를 가르는 호귀와 작아지는 두꺼비 집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일관하는 수준 이하의 작품입니다. '소인'이 살고 있어서 집이 작았으며, 더 작아진 이유는 '소인'에게 성장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는 괴이 현상의 진상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소인이 피해자 아이들 배를 갈랐다는 진상 역시 마찬가지고요.
폐쇄적인 마을과 몰락한 지배 가문이라는 배경 설정은 식상했습니다. 더불어 일본식 발음을 이용한 트릭은 한국 독자들에게는 도무지 풀 수 없는 영역이라 와 닿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4. 봉인지가 붙여진 방의 자시키 할멈

괴담 연구회 회원들이 자시키 할멈이 나온다는 여관방을 봉인까지 해 가며 철통같이 지켰지만, 다카코 회장이 습격당하고 말았다는 괴이 사건이 등장합니다.
진상은 여관 주인의 동생이 여관을 방문한 여대생을 공격해서 괴이 현상을 가장했던 겁니다. 그런데 동기가 명확하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힙니다. 핵심 밀실 트릭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2층에서 자던 마사요를 옮긴 뒤 그 밑의 다다미를 들어올려 1층에 있던 다카코의 목을 졸랐다는 건데, 모두에게 수면제를 먹였다는 걸로 대충 덮고 넘어가는건 많이 허술해 보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5. 서 있는 쿠치바온나

이 단편에서는 민속학자(도조 겐야 선생)이 고갯길에서 입이 초생달처럼 찢어진 여성 '쿠치바온나'와 만났던 것, 그리고 마을 장례 행렬을 미행하다가 우연찮게 관에서 시신이 빠져나오는걸 보았다는 두 가지 괴이현상을 다룹니다.
쿠치바온나는 밤길에서 남성을 만난 젊은 여성이 긴 머리를 입에 물고 변장한 모습이었으며, 관에서 빠져나온 시신은 마을 사람들이 학자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벌인 연극이었습니다. 폐쇄적인 마을이었다는 진부한 설정이지만, 덕분에 연극을 벌인 이유도 설득력있게 설명됩니다. 두 괴이 현상이 마을의 이상한 전염병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10/05

Nervous Breakdown 너버스 브레이크다운 1~13 - 타가미 요시히사 : 별점 3점


90년대 초, 중반에  '타누마 사립탐정 사무소' 멤버들이 - 특히 브레인 역할인 안도와 액션 전담 미와 컴비 -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한다는 추리 만화. 지금은 없어진 월간지 "코믹 NORA"에 연재했었지요. "그레이" 등 성인 취향의 어둡고 비정한 SF, 범죄물로 유명한 타가미 요시히사의 작품입니다. 저는 "그레이"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라 이런저런 작품들 - 예를 들어 "화석의 기억" - 을 원서로 구해 읽었었는데, 이 작품은 "메탈헌터"와 함께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유이한 작품입니다. 소개 당시 한 권씩 구입해서 읽었고,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지요. 
예전에 스핀오프 "Night Adult Children" 리뷰를 올렸던 적은 있었는데, 추석 연휴를 맞아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전 13권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이 3등신과 8등신을 오가는 작화가 가장 큰 특징으로, 대부분의 경우 3등신인데  아래와 같이 특정 컷에서만 8등신으로 등장하는 식입니다. 


3등신 캐릭터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추리를 하고 시니컬하고 분위기있는 대사를 내뱉는게 묘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특별히 모든 등장인물들이 8등신으로만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두 편 있습니다. - 안도가 주인공인 "고즈에로 가는 마지막 버스", 미와가 주인공인 "살인자에게 인사를" - 두 편 모두 의외의 재미를 가져다주는 좋은 작품으로, 전부 8등신으로 진지하게 그렸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등장인물들도 독특합니다. 안도는 포지션은 전형적인 명탐정이지만, 정의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거든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진범을 체포하는데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정해진 보수를 받은 만큼 일하고요. 사건 도중에 일어난 트러블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의뢰인에 대해서 "그 여자가 죽건 말건 난 상관없어"라고 말할 정도고, 아래처럼 지인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빡않는, 인정머리 없는 남자입니다.



몸이 굉장히 약하고, 여자들이 쉽게 반하는 미남이라는 속성도 붙어 있는데 이런 캐릭터는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네요. 아래와 같이 멋진 말을 남기는 장면은 과연 여자들이 반할만하다 싶기도 하고요.

"미야한테 전할 말이 있는데...."

미와는 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그 캐릭터에 가깝지만, 그 초인적인 체력이 유용하게 활용될 때가 많다는 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아래와 같이 가끔은 멋지게 등장합니다. 그냥 개그컷에 가깝지만....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작가의 추리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이 잘 녹아 있거든요. 목차부터가 고전 명작의 패러디들이 많을 정도로요. 
하지만 트릭이 사용된 본격물보다는 범죄 드라마, 스릴러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이 더 완성도가 높습니다.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전개도 좋고, 사건에 몰입하게 만드는 상황과 심리 묘사가 탁월한 덕분입니다. 작가도 이런 특성을 알아챘는지 뒤로 갈 수록 트릭보다는 드라마에 집중하며, 덕분에 더 볼 만해집니다.
이외에도 죽어가는 남편의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조사에 나선다는 "어느 조용한 죽음" 처럼 잔잔한 일상계로 인간 관계를 되새기게 만드는 에피소드들도 독특합니다. "고백의 십자가", "마지막 Chiristmas" 같은 일상계 러브 스토리까지 수록되어 있는 등 다루는 장르의 폭도 넓고요. "노리코의 죽음"같이 SF 등 다른 장르물과 혼합된 사랑 이야기(?), 미와가 맹활약하는 액션물들도 괜찮습니다. 

정통 본격물 맹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패러디들도 큰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과거 잔혹한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곳에서 실종자가 한 명 나왔지만 안도가 "아직 기껏해야 실종에 지나지 않으니까. 이런 사건은 다음 피해자가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처럼요. 아래의 밀실 살인에 대한 비판 역시 공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추리 만화로서 논리적이거나, 감탄할만한 트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많지 않다는건 다소 아쉽습니다. 만들기 쉬운 암호 트릭 - 10권 "산쥬노출"의 "미키가 노래하는 미버 (タレラヤ小さぃ子羊肉)"처럼요 - 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 오히려 트릭이 사용된 에피소드는 다소 억지스럽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예를 들어 "바이바이 엔젤"에서는 수조로 이루어진 밀실에서 수조를 치우는건 불가능하다고 등장인물들이 이야기하지만, 수조를 어떻게든 치웠다는게 진상이었습니다. 이런건 반칙을 넘어서는 억지죠. 

3등신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인지 개그도 많은데, 안도의 약한 체력과 미와의 야수같은 육체, 의뢰인이었다가 타누마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게 되는 미야가 재벌 이나바 테츠노스케의 손녀라는 등의 캐릭터 설정을 활용한게 많습니다. 문제는 다소 뻔하고 식상한 개그들이라는 겁니다. 반복적이기도 하고요. "15세" 딱지가 붙을 정도로 외설적인 개그도 많은데,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아서 안 나오느니만 못했습니다. 마지막 에피소드 "마지막은 참극"은 미와가 등장인물 모두를 죽이는 꿈을 꾼다는 내용인데,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영 어울리지 않았고요.
아울러 학산 문화사 초기 번역 소개작이라 그런지 여성의 노출 장면을 어거지로 덧칠하는 등의 문제도 크며, 3등신 캐릭터들의 얼굴 구분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3권의 "모두가 닮은 사람"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모두가 닮았다는걸 트릭으로 써먹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다시 읽어도 여전한 재미를 가져다주는건 분명합니다. 수록작들 편차는 크지만 몇몇 작품들은 충분히 '걸작' 소리를 들을만 하다 싶고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각 권별 수록작들 제목을 소개해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제가 아는 한 원제를 달아보기는 했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1권 :
갑자기 사라져 버린 케이코
그래도 사랑스러운 여인이여
원과 면 : 점과 선
황색의 연구 : 주홍색 연구
 
2권
일요일은 죽는 날
걱정일세, 여탐정!
여름빛깔 카루이자와
타누마 소장 최후의 사건 : 트렌트 마지막 사건
얼어붙은 파도 : 얼어붙은 섬 또는 얼어붙은 송곳니
 
3권
도둑은 가득히 : 태양은 가득히
모두가 닮은 사람 : 당신을 닮은 사람
제로의 정점 : 제로의 초점
한여름 낮의 꿈 : 한여름 밤의 꿈
어느 조용한 죽음

4권
하얀 커튼 : 검은 커튼
입학 : 졸업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새빨간 거짓말
사라질 뻔한 탐정 : 사라진 남자 (?)
 
5권
새벽녘의 시선 : 새벽의 데드라인
그리고 소녀는 사라졌다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변호인측 괴인 : 검찰측 증인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내일도 무사하게 하소서

6권
오발탄
타누마 가의 일족 : 이누가미 일족
노리코를 위하여 : 요리코를 위해
분수령
마진테 부인은 죽었다

7권
귀여운 설녀
어느 비오는 오후 갑자기
Midnight Fool
매장 지도
50의 살인

8권
시체와 여행하는 남자 :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고백의 십자가 : 공허한 십자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남자들
토모여, 고이 잠들라 :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기타가타 겐조)

9권
바이바이 엔젤 : 바이바이, 엔젤
추억의 매장
모르그 가의 살인 : 모르그 가의 살인
레이디 하트브레이크
" " (무제)

10권
산쥬노출
마지막 Chiristmas
고즈에로 가는 마지막 버스 : 우드스톡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
불타는 사나이 (Man on Fire) : Man on Fire (크리시 시리즈)
치에는 어디에
사람은 어째서 살해당하는가 :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11권
악몽같은 여자 : 악마같은 여자 ("디아볼릭")
환상의 여인 : 환상의 여인
의뢰인으로부터 한마디 (과거 연재작 특별편) 시리즈
  • 귀여운 여인
  • 설녀가 보고 있었다, 또는 "고립된 산장"을 주제로
  • 울부짖는 여자

12권
보디가드
살인자에게 인사를
셀룰로이드 살인
어설픈 시체
움직이는 시체

13권
여자에게는 맞지 않는 직업 :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사랑의 탐정들
가장 위험한 유행 : 가장 위험한 게임
도중의 집 : 중간 지점의 집
리틀 루즈 걸 : 리틀 드러머 걸
마지막은 참극


본편 외에도 "스페셜 리포트"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유명 추리 소설들을 패러디한 4컷 만화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당시에 만화책이 3,500원이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모든 물가가 3배 이상은 올랐을텐데, 만화책만은 거의 오르지 않았네요.

2023/09/22

희망의 끈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1.5점

희망의 끈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아래 리뷰에는 진상,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케이크 카페 사장 하나즈카 야요이가 살해당했다. 도난당한 물품은 없었고, 인품이 좋은걸로 유명했던 탓에 원한 관계로 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하나즈카 야요이가 사망 1개월 전, 개인 트레이닝과 피부 관리실에 등록했다는게 밝혀져 '이성 관계'가 동기일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녀와 관계가 있어 보이는 남성은 사망 얼마 전 만났던 전 남편 와타누키와 가게 단골 시오미 뿐. 그러나 전 남편 와타누키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기에 마쓰미야는 시오미에 주목했고, 가가의 동의를 얻어 본격적인 수사를 벌였다. 시오미는 아내와 사별한 뒤 중학생 딸 모나와 거리가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편 사건 수사와 동시에, 마쓰미야는 죽은 줄 알았던 친부가 아직 살아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배다른 누나 요시하라 아야코의 연락 덕분이었다. 암으로 죽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친부를 만나러 갈 것인지? 마쓰미야의 결심을 도운 건 하나즈카 야요이 사건의 진상이었다. 십 수년 전, 불임 클리닉의 실수로 야요이의 수정란을 시오미 부부가 이식받아 낳은 딸이 모나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야요이는 딸을 만나기 전 전 남편과 상의했는데 이를 오해했던 와타누키와 사실혼 관계인 동거녀 다유코가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었다. 마쓰미야는 가족이라는 끈은 어떻게든 이어져있다는걸 통감하고 친부를 만나러 간다....


"소중한 사람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는 연결되어 있다. 끈이 아무리 길어져도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 죽을 때까지 끈을 놓지 않겠다."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가가 형사가 등장하더군요. 그러나 가가 형사 시리즈는 아닙니다. 가가 형사의 비중은 낮으며, 마쓰미야가 주인공인 스핀 오프입니다. 가가 형사 시리즈에서 기대해 봄직한 추리적인 요소도 거의 없습니다. 트릭이라던가, 범행을 숨기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는 우발적인 범행인데다가, 유력한 용의자가 쉽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경찰 수사가 오래 걸릴 일도 없었습니다. 와타누키와 야요이가 사건 직전에 만났다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와타누키의 현재 동거녀 다유코인게 당연합니다. 혹시라도 둘이 재결합에 대해 쿵짝을 맞추는 중이었다면 버림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작중에서처럼 경찰이 와타누키에게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며 용의 선상에서 제외하고, 시오미에게 수사를 집중한다는건 있을리 없습니다.

이렇게 수사 과정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에 이야기도 사건과 수사보다는 야요이가 와타누키를 만났던 건 시오미의 딸 모나가 자기 딸이라는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동기에 집중하여 드라마를 풀어나갑니다. 
하지만 수정란이 바뀌는 일이 과연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전개도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습니다. 다유코가 범행을 자백했음에도 모나의 정체를 캐는 마쓰미야의 행동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오히려 가정의 비밀과 프라이버시를 건드리는 잔인한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게다가 사건과 함께 펼쳐지는 마쓰미야의 친부 요시하라 마사쓰구 이야기는 최악이었어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간에, 그가 결혼한 상태에서 불륜을 저지르다가 마쓰미야와 그의 어머니 가쓰코를 버리고 원래 가정으로 돌아간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야 '사정이 있었다, 가족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며 다가온다는건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이 따위 끈이라면 잘라내는게 상책입니다. 아니면 돈으로 보상받던가요. 이런 인간을 가족이라며 대우할 이유는 없습니다.
마사쓰구 불륜의 원인이 아내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이었는데 상대방이 여자였다는 것도 불필요한 사족에 불과합니다. 왜 덧붙여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요. 그런다고 불륜이 용서되는건 아니니까요.
이런 쓸모없는 마쓰미야 친부 이야기보다는 모나에 대한 이야기를 더 깊고 자세히 풀어내는게 좋았을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사고로 죽은 언니, 오빠 대신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을 지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친딸이 아니라는건 다른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발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모나가 느낄 부담감과 딜레마도 설득력이 충분했고요. 좋은 설정을 썩힌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이에 대한 수사가 펼쳐지기는 하지만 추리물로 보기에는 많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2/07/02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윌리엄 브리튼 / 배지은 : 별점 3점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6점
윌리엄 브리튼 지음, 배지은 옮김/현대문학

인기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답습하는 작품은 많습니다. 탐정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셜록 홈즈의 경우는 작가 사후에도 다른 작가들에 의한 시리즈가 계속되었고, 에놀라 홈즈와 같은 가족이 등장하는 스핀 오프에 각종 패러디와 파스티슈 물까지 합치면 그 수는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저 역시 "경성 탐정록"이라는 파스티슈 물로 숟가락을 얹었었지요. 

문제는 누구나 다 아는 탐정이 등장하기에 별다른 변주를 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셜록 홈즈가 21세기에 환생을 하든, 이세계로 전생을 하든간에 그는 셜록 홈즈니까요. 하지만 이 단편 시리즈는 이런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해결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그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 작품을 읽은 누군가가, 자기가 흠모하는 탐정을 따라해서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대와 탐정역에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합니다. 고전 정통 본격물 탐정들이 등장하기 때문인지, 모든 이야기들이 고전 정통 본격물 스타일인데 이 역시 마음에 듭니다. 작가 취향이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듯 하네요.

물론 몇몇 작품들은 원래 탐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고전 정통 본격물 애호가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좋은 시리즈라는건 분명합니다. 뒤이은 수록된, 저자의 다른 시리즈인 스트랭 씨 시리즈 역시 고전 정통 본격물로서 나쁘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겪고 있었던 고전 정통 본격물 금단 현상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11편이나 되는 "~를 읽은 남자" 리뷰를 쓰다보니 힘이 빠져서, 스트렝 씨 시리즈는 제일 괜찮았던 한 편만 소개드립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에드거는 존 딕슨 카 소설에 나오는 것같은 밀실을 만들어 삼촌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의 핵심은 벽난로였다. 삼촌을 살해하고, 깨끗하게 청소한 벽난로 굴뚝으로 빠져나온 뒤 난로에 불을 붙여 밀실로 만들 셈이었다...

아주 오래 전 다른 앤솔러지를 통해 읽었던 작품입니다. 존 딕슨 카하면 떠오를 '밀실'을 소재로 만든 작가의 처녀작입니다. 범인이 범행 계획을 앞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도서 추리물' 형식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블랙 코미디에 가깝지요. 그래도 재미만큼은 나무랄데 없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 

엘러리 퀸의 광팬 아서 민디가 머무는 양로원에서 위책 노인이 애지중지하던 10달러 금화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일한 용의자 데니슨이 그들 앞에서 옷을 벗기까지 했지만, 금화는 찾을 수 없었다...

엘러리 퀸 광팬이 "퀸 수사국" 속 "마약 부서 검은 장부"라는 작품을 인용해가며 추리를 펼친다는건 시리즈 설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데, 사실 아서 민디는 별로 엘러리 퀸같지는 않습니다. "검은 장부"에서의 트릭과도 아무 관련이 없고요. 

그러나 다행히도 원전보다 추리적인 부분은 훨씬 낫습니다. 아서 민디는 데니슨의 뺨 상처가 벌어진 이유, 계단을 끔찍히 싫어하면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를 추리하여 진상을 밝혀내는데, 설득력 높은 완벽한 추리였기 때문입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의 교과서같은 작품으로, 제 별점은 5점입니다. Hall of Fame!

"읽지 않은 남자" 

몬티는 친구 포드에게 벽돌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암실용 방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포드는 몬티의 아내 헬렌이 죽은 교통사고를 일으켰지만, 몬티는 그건 사고였다며 포드를 달랬다. 두 남자는 곧바로 벽을 쌓기 시작했고, 몬티는 포드에게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 코노서스 초이스 반 병을 건넸다...

포드는 헬렌이 갑자기 도로 한 복판으로 뛰어나와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몬티는 집 앞 우편함에 포드 차 페인트가 묻었다는 것, 그리고 현장 근처에서 버려진 위스키 병을 찾아낸 뒤, 포드가 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헬렌을 덮쳤다고 추리합니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포드를 불러 벽을 쌓는 척 하고 암실 안에 가둬 버리고 말지요.

그런데 차 안에서 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고 당시 포드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판단한 수사 결과는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고를 일으킨게 분명한 포드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몬티를 당당하게 찾아온 경위, 그리고 제 발로 갇힌 방을 만드는데 참여한 것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몬티는 포드가 에드거 앨런 포의 "아몬티야도 술통"을 읽지 않아서 이 함정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이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애초에 위험한 상황에 제 발로 들어간게 문제거든요.

읽지 않은 남자라는 변주는 좋은 발상이었는데,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렉스 스타우트를 읽은 여자" 

카니발에서 "뚱뚱녀" 역할을 맡은 거트루드는 연기를 위해 렉스 스타우트 작품을 탐독하다가 빠져들게 되었다. 쇼 단원 중 거트루드가 딸같이 아끼던 뱀 조련사 릴리가 살해된채 발견되자, 거트루드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는데...

렉스 스타우트네로 울프와 뚱뚱하다는 점, 그리고 아치와 같은 조수(?)가 있다는 연결 고리는 가지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렉스 스타우트, 그리고 네로 울프와 별 관계는 없습니다. 평범한 추리물이에요.

그러나 정통파 본격물로 보기에는 애매했습니다. 핵심 단서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반쪽짜리 메달에 적힌 BY-BY라는 글귀에 대한 단서 제공이 전무한 탓입니다. '비실이'라는 별명을 들으면 불같이 화낸다는 설정도 너무 후반부에서나 드러나서, 전개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를 읽은 소년" 

시골 마을 라킨스코너에 벨기에 교환학생인 열 살짜리 천재 자크 뒤몽드가 찾아왔다. 자크는 마을 경찰 맥스 코리와 친구가 되는데, 어느날 라킨스코너에 수 명의 대학생들이 찾아와 기묘한 장난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생들이 노린건 희귀 우표였는데, 이걸 사다가 혹시 발각될까봐 다른 기묘한 사건을 벌였다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진상이 납득되지 않아서 도무지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마을을 들 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러 명이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차례대로 원하는 우표가 나올 때 까지 우표를 그냥 사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났을테니까요. 독자가 뭔가 희귀 우표 관련된 사건이라고 쉽게 짐작 할 수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아울러 탐정역인 자크가 벨기에인으로 대화하다가 프랑스어를 섞으며, 심지어 10살 짜리가 있지도 않은 콧수염을 만지는 시늉을 한다는 식으로 포와로를 따라한다는 묘사는 심하게 억지스러웠습니다. 학생들이 노리던 우표는 인쇄 오류로 '콧수염'이 생긴 것 처럼 인쇄되었다는건 이러한 억지 포와로 따라하기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도 별 볼일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시리즈 최악의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을 읽은 남자" 

테리 왓슨에게 대학 후배 대니얼 블래싱검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인데다가, 뚱딴지같은 내용이어서 이유를 알기 위해 왓슨은 편지 속에서 언급된 다른 인물에게 전화를 건 뒤, 워싱턴으로 호출되었다. 알고보니 블래싱검은 타국 대사관에서 암약하는 스파이로, 중요한 목록이 담긴 상자의 비밀 번호를 편지 속에 숨겨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왜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는지는 모른채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왓슨에게 보내진 엉뚱한 편지에 암호가 감추어져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왔습니다. 세개의 이어진 영어 알파벳이라는 암호도 단순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암호 때문에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결말이 아주 유쾌했어요. 암호는 "LMN"으로 이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대사 - '엘레멘터리 왓슨 - 그건 기본이야 왓슨' - 를 떠올리면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LMN 테리 왓슨" 이 되니까요. 말장난이기는 해도, 아서 코난 도일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었어야만 풀 수 있는 암호라는 점에서 시리즈 취지에도 잘 부합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체스터턴을 읽은 남자"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애독자 케니 신부는 추찹한 사진을 밀매하다가 자살했다는 교구민 팀 해링턴의 장례 미사 문제로 주임 시부 고거티 신부와 언쟁을 벌였다. 그 뒤 고거티 신부는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내 보라며 케니 신부에게 하룻 동안의 유예를 주었다. 그리고 케니 신부는 사건 담당인 깐깐한 언셀 형사와 함께 방문한 사건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데....

브라운 신부 스타일의 탐정물이라기 보다는, 브라운 신부가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걸 증명하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특히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드러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에요. 차에 반사되는 햇살을 보고, 추잡한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려면 '커튼'을 쳤어야 했는데 현장이 그렇지 않은걸 눈치채는게 아주 자연스러웠거든요. 깐깐한 언셀 형사가 설득당한게 일리가 있다고 생각될 만큼 좋은 추리였습니다. 사진 배달부의 실수가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동기도 짧은 분량에 잘 드러나있고요. 여러가지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대사를 장황하게 펼치며 쉬운 말도 한번 더 꼬아서 말하는 브라운 신부와는 전혀 다른 신세대(?) 신부지만, 애정하는 브라운 신부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케니 신부 캐릭터도 마음에 드네요.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 작품에 푹 빠졌다는 건 "~를 읽은 남자" 시리즈에 속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좋은 단편 추리물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대실 해밋을 읽은 남자" 

정년 퇴직 후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는 잡무를 하게 된 프리처드는 어느날 도서관장 디컨 씨의 부름을 받았다. 추리소설 애호가 패러것이 도서관 이사회 회장 앤드루 킹과 건 내기 때문이었다. 패러것이 도서관 어딘가에 감추어 둔 책을 찾으면 그가 추리소설 초판본 컬렉션을 도서관에 기증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추리소설 매니아 프리처드가 앤드루 킹을 도와 패러것이 준 간단한 단서로 한 시간 안에 책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되는데....

아르바이트하는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취미를 이용해서 도서관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다는,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꿈 같은 설정의 이야기입니다. 추리 소설 매니아 프리처드 씨에게도 행운이 닥치는 결말까지도 아주 환상적이에요.

이야기의 핵심인 보물찾기 게임도 꽤 그럴듯하고,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인 독자는 풀이 과정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3.14"가 적힌 봉투 안에 "더블 더즌", 그리고 "몰타의 매"라고 적힌 카드가 한 장씩 들어있는게 힌트였는데, "3.14" -> 파이는 "Pie"로 바꿀 수 있고, "더블 더즌"은 24, "몰타의 매"는 "매"가 소문자라서 말 그대로의 새를 의미하므로 "검은 새"가 되고, 이게 "파이 안에서 구워지는 스물 네 마리 검은 새"라는 동요로 이어지는데, 한국 독자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추리인 탓입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조르주 심농을 읽은 남자" 

친구 해럴드와 함께 고가의 화물을 나르는 바니는 조르주 심몽의 메그레 시리즈를 탐독해왔다. 그들은 대저택에서 '라이트풋' 래리 쇼필드라는 고용인 앞에서 싣고 온 화물을 내려놓았다. 그는 별명 그대로 알록달록 화려한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러나 바니는 메그레 경감의 활약을 떠올리며,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고 확신하는데...

메그레 경감은 사실 대단한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좀 우직하고,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죠. 그러나 성실하고 꼼꼼한데다가 관찰력이 뛰어난데, 이 작품 속 바니 역시 관찰을 통해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는걸 알아내게 됩니다. 그는 래리 쇼필드가 절대로 다리를 꼬지 않고, 발바닥을 계속 땅에 대고 있는걸 눈치채거든요. 부츠를 갈아신었는데, 새것이라는게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단지 부츠가 새 것이라는게 그가 가짜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래리 쇼필드가 자기 입으로 흙길을 걸어 왔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부츠는 얼마든지 갈아 신을 수 있잖아요? 바니가 오지랖을 떨어서 쇼필드의 정체를 폭로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설령 눈치를 챘더라도, 현장을 벗어나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했습니다. 현장에서 총을 든 상대방을 위협해가며 추리쇼를 펼칠게 아니라요.

이렇게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며, 메그레 경감의 특징을 잘 살린 것도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 

에밀 프랫은 오랫만에 겨우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담당하고 있는 도킨스 사건 때문이었다. 영국인 도킨스는 미국으로 여행을 왔었는데,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도박으로 땄던 3천 달러 정도를 노린 범행이었다. 그는 죽기 전 경찰에게 "올드 피싱.."과 비슷한 말을 남겼다. 에밀 프랫의 딸 메릴리는 최근에 읽고 있는 존 크리시의 기디온 경정 시리즈에 나온 영국 코크니 말투가 해결의 실마리라는걸 아빠에게 알려준다....

기디온 경정의 활약보다는, 작품에 등장했던 영국 런던 토박이 코크니들의 은어가 단서가 된다는건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잉 메시지라는 억지스러운 설정에 더해 죽어가면서 은어를 써서 단서를 남길 이유가 설명되고 있지 않은 등,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다는건 아쉬웠어요. 당연히 한국인 독자로서는 추리하기도 힘든 내용이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를 읽은 남자들" 

역사 교사 폴 해스킬, 전화선 보수 기술자 재스퍼 지머먼, 대장장이 가브리엘 둔, 은행장 시드니 워윅과 메리 팅커 술집 주인 핀들레이의 다섯 명은 모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의 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메리 팅커 술집에 모여 "흑거미 클럽" 처럼 수수께끼 풀이 놀이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진짜 작은 마을 홀컴밀스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 놀이 속 수수께끼는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기자 에드거 바시가 진짜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마을 최대의 백화점 '밸류 투데이'의 사장인 마케팅 귀재 데이비 로터스가 천 달러가 들어있는 금고를 전시장에 공개하고, 금고를 열면 누구나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비밀번호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수께끼였다. 아시모프 팬들은 각자 자신만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에 대한 일종의 파스티슈 작품입니다. 

참석자들이 각자 내 놓는 추리들이 눈길을 끕니다. 감히 '흑거미 클럽'을 운운할 수 없는, 여러모로 부족한 추리들이었지만 각자의 직업과 전문 분야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잘 와 닿기는 했거든요. 마지막에 집사 헨리의 포지션인 술집 주인 핀들레이가 정답을 맞추고 천 달러를 얻는 결말도 좋아요. 

무엇보다도 밸류 투데이는 데이비 로터스의 철자를 가지고 만든 애너그램으로, 이를 이용하면 금고 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는 진상에 대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한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정통 본격 고전 추리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인 독자에게는 쉽게 추리할 수 없는 내용이기는 했지만요.

여러모로 아시모프의 원전인 걸작을 잘 이해하고 쓴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 2부 스트랭 씨 이야기 - "스트랭 씨 여행가다" 

스트랭 씨는 단체 버스 투어로 캐나다 여행을 떠났다. 그의 옆 자리에 앉게 된 건 제리 수녀였다. 그리고 여행 도중 제리는 가판대에서 나무로 된 십자가를 구입했는데, 그 십자가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스트랭 씨는 귀국 직전 십자가 사건과 퀘벡에서 일어났던 은행강도 사건의 연관성을 추리해 내고, 버스에서 추리쇼를 벌이게 되는데...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고교 과학 교사 스트랭 씨 시리즈의 수록작 중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십자가를 '길포일' 이라는 여행객으로 변장한 은행강도 르클레어가 훔쳤던 이유는, 십자가를 포장했던 신문지 때문이었다는 추리가 특히 좋습니다. 신문에 르클레어 사진이 실려 있었다는 이유는 십자가를 훔칠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비록 프랑스어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고요.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중요하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왠지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해서, "~를 읽은 남자" 시리즈로 썼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은행강도가 도주를 위해 미국인 단체 여행객으로 변장한다는 아이디어도 국경에서 어떻게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렸습니다.

이렇듯 추리물로서 상당한 수작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못했고, 국내 소개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4편만으로 끝난게 못내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2022/05/28

C.M.B. 박물관 사건목록(씨엠비) 45 (완결)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고화질] C.M.B. 박물관 사건목록(씨엠비) 45 (완결)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

드디어! Q.E.D의 스핀오프 C.M.B가 완결되었습니다. 제가 첫 리뷰를 올렸던게 2006년 12월이니, 무려 16여년의 세월을 함께 한 셈입니다.

수록된 작품은 두 편입니다. "대단원"은 이전 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로, 대영박물관의 케이티 이사의 사악한(?) 음모를 분쇄한다는 내용입니다. 전편의 범인이었던 올드리치가 살아있었고, 신라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내어 죽이려고 했지만 이는 신라의 함정이었습니다. 신라가 살고 있던 곳은 케이티로부터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케이티도 살인 방조 혐의로 경력이 끝장나고 말고요. 

나름 통쾌하기는 하지만 추리적으로 대단한건 없습니다.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하기도 어려워요. 화재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박물관에서 극적으로 죽은 척 했지만 살아남는다는 올드리치의 계획부터가 억지스러웠으니까요. 이 계획은 올드리치가 범인임이 확정된 후, 여러 목격자들에게 박물관에서 죽음을 맞는다는걸 보여줘야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전 이야기처럼 혼자 신라를 죽이고 반지를 빼앗으려 했다면 불필요한 계획이었어요.

"로마노프 왕조의 보물"은 제목 그대로 타츠키가 로마노프 왕조의 보물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입니다. 23살이 되어 문화재 복원가가 된 타츠키가 로마노프 왕조의 보물이 숨겨진 곳이 기록되었다는 오래된 일기의 복원 의뢰를 받은 뒤, 여차저차해서 일기를 썼던 일본인 타츠노스케의 발자취를 쫓아 러시아를 횡단해 나간다는 내용이지요. 

역시나 추리적으로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의뢰인 미츠토시가 범인으로 타츠키 일행을 미행했다는 결말도 당황스러웠고, 중간에 등장하는 시체 소실 트릭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던 탓입니다. 시체를 두꺼운 기차 의자 시트 뒤에 감췄다가, 차장으로 변장해서 꺼냈다는 트릭인데 시체가 시트 뒤에 이렇게까지 숨겨질 정도로 시트가 두껍고 푹신할리가 없지요. 그림으로 그린 결과물도 억지스러웠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 에피소드의 유일한 가치는, 일종의 '도라에몽' 시공이라서 16년간 고등학생이었던 신라와 타츠키도 결국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뒤 함께 '박물관'이라는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걸 알려주는 에필로그밖에는 없습니다.

무려 16년의 세월을 함께 한 작품의 마무리치고는 너무 별로라 아쉽지만, 그래도 완결되었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별점은 2점 주겠습니다. 이제 Q.E.D에 보다 집중해 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완결을 기념하여, 그동안 CMB에 등장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꼽으며 리뷰를 마칩니다. 이 목록만 보아도 20권 중반~30권 후반까지가 재미면에서 최전성기 구간이었던게 확인되네요.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3" : "치과"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9" : "상상 속 살인"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7" : "광구", "고양이 꼬리"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 목록 36" : "산의 의사", "카스미장 사건"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5" : "도토리와 솔방울"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4" : "낡은 집"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2" : "혼선"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1" : "지옥혈"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0" : "소우야 군의 실종"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5" : "백 스토리", "향목"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4" : "다이아몬드 도둑", "옷장 속의 유령"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3" : "네 번째 코테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2" : "여름 보충 수업", "유리의 낙원", "나선 골동품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14" : "주사위게임", "꽃집 아가씨"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12" : "노파와 원숭이"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11" : "마루지메네코"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 : "도시전설"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 : "파란 빌딩", "저주의 가면"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1" : "의태"

2022/03/13

모돌이 탐정 1~4 세트 - 전4권 - 이우정 : 별점 2점

모돌이 탐정 1~4 세트 - 전4권 - 4점
이우정 지음/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우정 화백의 고전 추리 만화입니다. 드디어 복간되었네요. 그야말로 전설의 작품으로 저는 어린 시절 "소년 중앙" 독자로 이 작품이 연재될 때 실시간으로 일부 에피소드를 감상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감개 무량합니다.

전 4권 세트로 모돌이 탐정의 시작을 알리는 탄생편, "쥐덫"을 각색한 "잊혀진 산장",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스케일의 첩보물이자 범죄물인 "홍콩 대탈출", 바닷 속 보물을 찾는 "보물 찾기", 그리고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던 장미가 주인공 탐정으로 등장하는 스핀오프인 "여탐정 장미"까지 모두 다섯 편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 크리스티 여사님의 "쥐덫"을 70년대 후반 한국을 무대로 각색한 "잊혀진 산장"은 제법 읽을만한 추리물입니다. 6.25 때 있었던 비참한 과거가 동기가 되었다는 각색과 진범이 사라졌던 오빠가 아니라 '북괴'의 일원이었다는 반전이 괜찮습니다. 시대 상황을 볼 때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였으니까요. 모돌이의 활약도 인상적이었고요. 세세한 부분을 들면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당시 아동 눈높이에는 잘 맞춰진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보물 찾기"에서 보물이 진주를 품고 있는 조개였다는 발상도 꽤 그럴듯했고, 마지막 에피소드인 "장미 탐정"은 괜찮은 암호 트릭도 눈여겨 볼 만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핀 오프' 작품이라는게 인상적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발상이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일부만 아슬아슬하게 합격권일 뿐이고,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추리 만화로서의 완성도는 지극히 낮습니다. 추리의 여지도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추리와 계획 모두 유치한 탓입니다. 특수 도료를 사진으로 찍으면, 현상한 사진이 특수 도료와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발상, 뱀을 피리로 조종하여 사람을 죽인다는 등의 트릭이 난무하니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몇 개의 암호 트릭 정도는 괜찮았지만 남발하는 느낌이 강하고요.

설정도 문제에요. 모돌이 탐정은 작품 전체에 걸쳐 슬랩스틱에 가까운 개그만 하고, 추리는 모두 조수인 표표와 박돌이에게 시키는 악덕 고용주로 그려집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모든게 자신의 계획이었다는 식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이게 뭔가 싶더군요. "우뢰매"로 따지면, 앞 부분의 모돌이는 바보 형래이고 뒷 부분은 에스퍼맨으로 등장하는 셈인데 "우뢰매" 만큼의 설득력도 없습니다. 에스퍼맨은 변신이라도 했다지만 모돌이는 그런것도 없으니까요. 개그와 추리,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게 바람직했습니다.

정교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운과 우연에 많이 의지하는 전개도 감점 요소였고, 시대를 여실히 느끼게 하는 작화도 가독성을 크게 저해했습니다. 일관성도 없어요. "장미 탐정" 에피소드는 다른 사람이 그린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이런 단점은 작품이 발표된 시기와 연재된 매체를 고려해보면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무려 50년이 지났으니 어쩌겠습니까. 모르고 구입한 것도 아니고요. 값을 지불할 수 없는 추억을 다시금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걸 기뻐해야 하는게 맞겠지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께 권하기는 어렵습니다. 추억 외에 다른 가치는 거의 없다시피 한 탓입니다. 4만원이라는 정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2021/05/16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2 - 카토우 모토히로 / 학산문화사 : 별점 2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2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카토우 모토히로QED 스핀오프CMB 42권입니다. 스핀오프가 42권이나 나오다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나는군요.

이번 권에는 총 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월하미인"과 "재규어의 숲"은 건질게 없는 망작이었습니다. "시체가 없어!"가 그나마 괜찮았고요. 그런데 앞서 두 작품이 너무 형편없어서 반대급부로 점수를 더 얻은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1.8점... 2점인데, 여러모로 딱히 권해드릴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첨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월하미인" 

연기자 지망생 야마자키 칸타는 고등학교 동창 후지 하루카와 동창회에서 재회하여 관계를 진전시켜 나갔다. 그러나 후지는 번창하던 빵집을 접고 귀향을 결심했다. 어머니 병간호 때문이었다.

추리물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조언하는걸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인생 교훈이 담겨있는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드라마가 별로 인상적이지 않아서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만 교훈 자체만큼은 와 닿기에 약간의 점수를 더하여 별점은 1.5점입니다.

"재규어의 숲" 

남아메리카의 대농장의 딸 아나는 숙부 알렉스와 재규어 관찰 중 시체를 발견했다. 정황 상 피해자 리카르도는 마약 조직에 의해 살해된 걸로 추정되었는데, 경찰 수사로 리카르도가 5일 전, 지역 사면 라라로부터 죽음의 예언을 받았다는게 드러났다. 

라라를 찾아간 알렉스에게, 라라는 아나의 아버지인 농장주 마테우스 산토스에게 죽음이 다가왔다는 예언을 하고, 결국 마테우스는 리카르도가 같은 위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마침 재규어 관찰을 위해 산토스 농장에 방문했던 신라와 타츠키는 아나와 동행했다가, 누군가로부터 습격을 받는데...

무려 2회를 할당해서 전개한, CMB치고는 비교적 긴 호흡의 이야기지만 건질게 없네요. 특히 추리적으로 그러합니다. 우선 리카르도가 죽은 이유는 마약 조직에 의한 것이니 수수께끼고 뭐고 없습니다. 마테우스 사건에서 마테우스가 죽을 때까지 숨기고 있었던 비밀은 무엇인지?와 마테우스 산토스가 왜 살해되었는지?와 두 가지 수수께끼가 불거질 뿐입니다. 

이 중 첫 번째는 마테우스 산토스가 마약조직의 보스였다는게 진상인데 너무 뻔했습니다. 전개 과정에서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요. 두 번째 진상은 마약조직 보스로서 운송을 방해하는 사람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었는데, 농장주로서 사건 현장을 얼쩡거리다가 보스의 얼굴을 모르는 부하에게 살해되었다는 것으로 허술할 뿐더러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가 떠오르는 진부한 이야기였습니다. 재규어 관련 이야기는 억지로 삽입된 느낌이 강해서 역시나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고요.

이 작품에서 점수를 줄 만한건 앞서 말씀드렸던 아나의 추리 정도? 그리고 약간의 잡다한 지식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시체가 없어!" 

경제학자이자 인력파견회사 회장인 우메나카의 집에서 피투성이의 남자가 손에 식칼을 든 채 나오다가 체포되었다. 40분 전 남자가 침입하고 그 10분 뒤 현관으로 나왔다는게 밝혀졌고, 곧바로 경찰은 수색 영장을 가지고 우메나카의 집을 수색했다. 피투성이의 남자 베트남인 닷트는 연인 마이가 실종된 뒤, 인력파견회사 책임자 다카마츠와 트러블을 일으켰었던 동기가 있었기에, 우메나카 집에 다카마츠의 시체가 숨겨져 있으리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데...

추리적으로 점수를 줄 만한 유일한 수록작입니다. 특히 동기 측면에서 아주 그럴듯했습니다. 닷트는 일부러 경찰이 출동해서 우메나카 자택을 수사할 수 밖에 없도록 자기 피를 뿌려가며 사건을 키운 것이었습니다. 정제계 실력자인 우메나카에 대해 고발해봤자, 외국인 말을 듣고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거라고 생각한거지요. 그럴듯하죠?

그러나 우메나카, 다카마츠가 여성들을 감금하고 있던 방을 경찰이 찾아내지 못한건 억지스러웠어요. 아래와 같이 지하 와인 저장고 문을 열면 방문이 숨겨진다는, 일종의 사각이라는건 꽤 괜찮은 발상이자 트릭인건 맞습니다. 하지만 너무 허술해요. 들어온 사람 중 한 명이라도 먼저 나간다던가, 평면도만 확인해도 바로 알 수 있으니까요. 이를 발견하지 못한건 경찰의 부실 수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카마츠에게 전화를 걸어서, 우메나카 집 안에 휴대전화가 있다는걸 드러내는 것도 억지입니다. 현대인이 휴대전화를 챙기지 않고 몸을 숨긴다는건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나마 읽을만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0/12/20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0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0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스핀 오프 C.M.B도 계속된 시장 수요가 있나 보네요. 드디어 앞자리가 4로 바뀌었습니다. 이번 권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네 편입니다. 소소한 일상계 이야기는 없습니다. 살인 사건 이야기가 두 편에 세 편의 무대가 해외 - 캄보디아, 브라질, 말타 - 일 만큼 스케일이 크거든요. 

그러나 커진 스케일에 걸맞는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억지스럽고 무리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해외가 무대일 이유도 별로 없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전작에서 좋았던 기세를 이어나가지 못해 아쉽네요.

수록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적의 신전" 

캄보디아 세관원 보오는 유럽 제약 회사 조사단이 기적이 일어났다는 시바 신전 조사 목적으로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어머니가 아픈 소년을 데려가 기도한 뒤 병이 완치되었는데, 소년이 앓고 있던 병이 항생물질이 없는 라임병이기 때문이었다.

유적 탐험물에 가까운 이야기로 수수께끼는 기적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단 하나 뿐입니다. 이는 신전에 살던 벌의 독으로 밝혀지고요. 그러나 신전에서 벌떼의 습격을 받고 난 후 내린 결론이라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신라가 주변 환경과 기후 등을 토대로 벌이 살고 있다는걸 먼저 알아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별다른 설명없이 기적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운이 좋아서 병이 나았다는게 전부라서 설득력도 약합니다. 언젠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왔던 ("마스터 키튼"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었죠), 눈 다래끼 때문에 시력이 좋아진 것과 같은 급의 이야기지요. 한 마디로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고, 현학적인 재미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마약 대용으로(코브라의 독은 신경독이기에) 코브라에게 의도적으로 물린 뒤, 독 때문에 죽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코브라에게 물리면 보통 죽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효과를 전하게 되어서 어처구니없는 무모한 방법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거지요. 이는 기적 덕분에 병이 치료됐다는 말이 널리 퍼지는 이유와 같다고 해석됩니다.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들은 소문을 낼 수 없으니까요. 코브라 이야기 덕분에 별점은 2점입니다.

"시끄러운 킬러"

살인청부업자 모모야는 한 번도 살인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를 고용하는 사람들은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했다는 소문으로 상대를 위협할 목적 뿐이었다. 그만큼 보수도 저렴했다. 

어느 날, 모모야에게 희귀 동물 밀매업자 가키야마를 죽여달라는 의뢰가 접수되었다. 성공 보수 2백만, 실패 보수 3만엔에 기한 3일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가키야마의 사무실은 철통 보안 상태라 모모야는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국 가키야마는 살해되고 말았다. 구지라자키 경부는 살인 현장이 밀실이라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신라를 찾아오는데...

사람을 죽여본 적 없는 살인 청부업자도 나름의 수요가 있다는 발상은 재미있었습니다. 무모한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모모야가 저지른 습격들이 밀실을 돌파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는 진상도 괜찮았고요. 특히 모모야가 습격할 때 준비했던 휘발유는 불을 붙이는게 아니라, '냄새' 로 환기를 유도했다는 일종의 트릭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교하다기보다는 만화같은 허황된 내용에 가깝지만, 어차피 킬러 설정부터가 만화같아서 잘 어울리더군요.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잠깐 등장하는 이집트의 열쇠에 대한 소개도 재미있었습니다. 열쇠라기보다는 일종의 도구에 가깝지만요.

그러나 그동안 사람을 죽여본 적 없으면서 왜 이 사건에서는 정말로 범행을 저질렀는지, 앞서의 습격으로 누가봐도 유력한 용의자라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데 무모하게 범행을 감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약점은 큽니다. 살인을 희화한 느낌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아파네마에서 온 소녀" 

히시자와는 4일 전, 브라질 리오의 초고급 호텔에 투숙했었다. 브라질 고위 관리인 오스카가 부정을 저지른걸 증명하는 서류를 전달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약속 날짜까지 여가를 보내던 히시자와는 소피아를 만나는데, 그녀로부터 중요한 서류가 들어있는 USB와 여권은 인형 속에 숨겨 호텔 내 금고 안에 넣어두라고 충고를 받았다. 그러나 히시자와는 소피아와 함께 강도들에게 납치당하고, 혼자서 겨우 빠져나온 히시자와는 그간의 이야기를 비행기에서 만난 하츠키에게 털어놓는다.

신라가 히시자와의 이야기를 듣고 강도 사건과 소피아의 정체를 추리하는 이야기인데 대단한 내용은 없습니다. 어떻게 USB를 몰래 빼돌리는지?가 핵심인게 뻔한데 이 트릭도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고요. 얼굴 인식 등 뭔가 대단한 보안이 있는 척 하지만 그냥 전화 한 통화로 입구 보안이 뚫리니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소피아가 강도들과 한 패로 이 모든걸 배후에서 꾸몄다는 진상도 예상 범위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작전을 펼칠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그냥 처음에 히시자와가 아무 생각없이 USB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때 함께 훔치면 됐을텐데 말이지요. USB가 도난당했다는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게 목적이었다? 평범한 브라질 도둑이라면 히시자와가 누군지 알게 뭡니까. 그냥 훔치고 보는거지. 출처가 히시자와라는걸 숨기는게 목적일리도 없습니다. 브라질 국민 입장에서는 히시자와도 부정에 가담한 외부 세력에 불과하니까요. 히시자와가 방문한 일정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약속 날 전날에 도착해서 다음날 바로 서류를 전달하는게 상식입니다. 미리 도착해서 몇일간 여가를 보낼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도 소피아가 자신을 찾으려면 "이파네마의 물고기를 찾아라"고 말했던 부분은 C.M.B 스럽긴 했습니다. 이파네마의 어원은 '나쁜 물'로 '물고기가 없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즉, 소피아는 없으니 찾지도 말라는 뜻이라는거지요.
또 브라질의 치안 문제, 경제가 좋지 않은건 정치가들의 부패 때문이라는 소피아의 말도 현재 일본 자민당 정권과 겹쳐 보여서 재미있었고, 작 중에 등장하는 "단지 몸만 움직인다고 돈이 들어오지는 않는다"는 브라질 속담도 인상적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잠깐 손을 멈추고, 고민해서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정작 예시로 드는건 밀수라서 조금 당황스러웠거든요. 이런 점에서는 브라질을 잘 이해하고만든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야기 핵심 사건의 동기, 전개를 납득하기 어렵고 추리라고 할 만한 내용도 없기에 감점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병속의 배" 

세금회피처인 탓에 세계 유수의 기업이 모이는 말타 공화국에 거주하는 대부호 랜드가 살해되었다. 살해된 방은 손님용 응접실과 연결된 문 외에는 전부 잠겨진 밀실이었다. 랜드가 살해된 금요일은 원래 이런저런 투자 상담을 하는 날로 살해된 3시에서 4시 사이에 만났던 사람은 프라이빗 뱅커 포쉣, 가타가케, 에코 웨스트 3명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들 모두 상담 중에 랜드는 살아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프라이빗 뱅커 3명 중 한 명이 범인인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첫 번째 상담자 포쉣은 랜드의 돈을 횡령한 동기가 있습니다. 마지막 상담자 에코 웨스트는 결국 시체를 보았다고 증언했고요. 그렇다면 범인은 포쉣일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두 번째 상담자 가타가케가 살아있는 랜드와 협상 후 계약서에 사인을 받았기 때문에, 에코 웨스트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됩니다.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포쉣의 알리바이를 깨는게 목적인 작품입니다.

그런데 트릭은 간단합니다. 증언과는 다르게 가타가케가 먼저 상담을 했다는게 진상이거든요. 사실을 말하지 않은건 계약이 무효가 될 까 두려웠던 것이고요. 이는 솔직히 트릭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합니다. 에코 웨스트의 범행을 증명하지 못하면 가타가케, 포쉣에게도 수사가 들어갈게 뻔해서 끝까지 숨길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같은 이유로 포쉣이 흉기인 고가의 실크 넥타이를 범행 후에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리라는 확신도 근거가 없습니다. 여러모로 트릭, 해결 과정 모두 기대 이하였어요.

그나마 랜드의 사체가 깨진 보틀쉽과 함께 발견된게 일종의 단서가 된다는건 좋았습니다. 원래 보틀쉽은 사무실에 숨겨져 있었으며, 랜드 스스로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여주기 힘든 취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꺼내져 있었다면? 범인은 익히 잘 아는 사람이며, 그렇다면 범인은 3명의 프라이빗 뱅커 중 10년 넘게 거래해 온 포쉣이라는 것이지요. 이 보틀쉽 아이디어만큼은 좋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20/09/23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9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9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스핀 오프로 시작한 C.M.B도 이제 40권 째를 향해 달려가네요. 네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편은 성장기, 한 편은 일상계이고, 나머지 두 편은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본격물입니다. 이 중 첫 번째 작품인 "상상 살인"은 아주 좋은데 다른 작품들은 그냥저냥입니다. 마우 주연의 이야기는 심지어 수준 이하이고요. 그래도 "상상 살인"의 하드 캐리 덕분에 전체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으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상상 살인"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이상과 다른 현실 때문에 괴로와 하던 디자인 회사 영업직 구보타 토미오는 출근길에 우연히 고등학생 시절 사귀었던 미와와 마주쳤는데 그녀와 왜 헤어졌는지를 떠올리지 못했다. 토미오는 그녀와 헤어졌던 과거를 고치면, 미래의 나도 바뀔거라고 생각하는데....

사고로 위장한 살인이 등장하는 본격물입니다. 미와의 남편 아키요시는 몸을 내밀었던 베란다 발코니가 떨어져서 추락사하는데, 이게 사실은 계획된 조작에 의한 살인이었지요.

범행은 베란다 안전핀을 뽑는 간단한 조작이 전부이며, 아키요시가 베란다 쪽으로 몸을 내밀게 한 트릭 (물뿌리개 안에 중고 휴대폰을 넣어서 울리게 함)도 간단하다는 점에서 무척 현실적입니다. 이 휴대폰이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는 점도 좋았고요.
신라가 사건에 엮이게 되는 이유도, 피해자 아키요시가 떨어진게 신라가 눈독들이던 개구리 조각이기 때문이라는 우연도 재미있었습니다. 토미오가 확실하게 죽게 만들려고 조각을 베란다 밑으로 옮겨 놓아서 조각이 깨지고, 분노한 신라가 무보수(?)로 사건 해결에 나서거든요. 

무엇보다도 토미오가 2층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사람이 죽을리 없다며, 누군가 떨어진 아키요시를 죽였을거라고 주장하는 마지막이 기가 막힙니다. 이는 진범은 미와임을 암시하지요. 지극히 합리적이면서도 무서운 추론이라 소름끼칠 정도였어요.

그러나 회사를 그만 둘 정도의 결단력도 없는 토미오가 살인을 결심해 실행에 옮긴다는 전개는 조금 석연치 않았습니다. 상상한건 모두 이루어진다는 긍정맨 토미오 캐릭터와 범인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도 단점이고요. 미묘한 미친놈인데, 캐릭터 구축이 어설픈 탓입니다. 그냥 미와에게 마음의 빚이 있는 정도로, 그녀에게 도움을 주려다 폭주하는 소시민 정도면 적당했을텐데 말이지요.
덧붙이자면, 토미오의 범행을 밝히기도 어려울거라 생각되네요. 그가 베란다에 조작을 가하는게 목격되지 않았다면, 단지 물뿌리개 속 대포폰으로 살인 혐의를 뒤집어 씌우기는 불가능해 보이거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추리물로는 나무랄데 없는 수작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팔레오파라독시아" 

고등학교 1학년 미쿠와 하야토는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고민하던 중, 여동생과 함께 외딴 산 속 숙부 집에서 황금 연휴를 보내게 되었다. 마침 숙부는 산 속에서 '팔레오파라독시아'의 화석을 발굴 중이었다.

신라는 학교 공부에 의미가 없다며 징징대는 하야토에게 '모두가 언제나 의미있는 답을 낼 수 없다, 하지만 답을 내기 전에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일갈합니다. 그리고 숙부가 화석을 발굴하는 상황을 이에 대입하지요. 답보다도 문제의 쪽을 오히려 모르고 있다는 뜻으로 말이죠. 일종의 성장기로서 나쁘지 않고, 항상 어린아이같은 신라가 명확한 인생관을 들려주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이채롭습니다. 하야토가 고생물학자로 선생님이 되었다는 결말 역시 그럭저럭 괜찮아요.

그러나 추리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위기에 처한 하야토가 '문제를 이해하여' 적합한 답을 내여 생존한다는 클라이막스는 작위적이었고요. CMB 특유의 현학적 재미 역시 '팔레오파라독시아'라는 동물에 대해 박물학 지식을 살짝 인용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미그라스의 모험" 

마우는 부호 브렌드가 밀실에서 책꽂이에 깔려 죽었을 때 쥐고 있던 책을 입수했다. 그 책은 90년대 발표된 판타지 소설 "미그라스의 모험"으로, 대신 미그라스가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이웃 제국과 맞서 싸우다가 패한 뒤,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별 볼일 없는 내용에 절망한 마우는 책을 방치하다가 도둑맞고, 브랜드 죽음의 진상을 조사하다가 그가 교통사고 합의 관련 분쟁에 휘말렸던걸 알게 되는데...

신라의 등장없이 마우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작품입니다. 브렌드가 죽은 밀실을 만든 트릭은 문 옆에 놓인 갑옷 기사를 이용한 장치 트릭인데 꽤 그럴싸합니다. 갑옷 기사가 들고 있는 칼을 돌리는 방식의 자물쇠 위에 잘 얹어 놓는 거에요. 그러면 칼 무게로 자물쇠는 돌아가고, 칼은 떨어져 제자리에 오게 되지요. 균형을 잘 맞춰야 겠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해 보이는 트릭이라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범인이 조카 시로노와였다는건 억지스럽습니다. 동기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탓입니다. 시로노와가 일으켰던 교통 사고를 브랜드가 합의해 주었었는데, 시로노와는 합의를 기사도에 반하는 행위라 생각해서 살해했다는게 동기죠. 그러나 기사도와 시로노와의 관계가 설명되고 있지 않아서 완전 뜬금 없었어요. 차라리 유산이 동기라면 모를까, 21세기에 기사도라니?
또 이를 극중 극 형태로 소개되는 미그라스의 모험과 연결시킨 전개도 그다지 와 닿지 않습니다. 미그라스가 가난한 마을에서 침략해온 제국군과 싸운다는 이야기인데, 전쟁을 하지 말라는게 왕의 명령이었습니다. 이렇게 싸워보지도 않고 협상을 한건 기사도 정신에 위배된다는거지요.
그러나 이 책 속에서 미그라스가 일으킨 전쟁으로 온갖 비극이 일어납니다. 마우의 말 대로 미그라스야말로 전쟁의 원흉이자 비극의 씨앗인 셈입니다. 도대체 이야기 어디에 기사도라는게 있는걸까요?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로노와를 협박해서 돈을 쥐어짠 뒤, 경찰에 넘기겠다는 마우의 사악함도 나쁘진 않지만, 설득력이 낮습니다. 아무리 피해자와 책의 관계를 밝힐 수 없었어도, 시체에 '기사도'를 의미한 책을 남겨놓은게 범인이라는게 증명되는건 아니니까요. 피해자가 어딘가에서 빌려왔을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고작해야 시로노와가 마우에게서 책을 훔쳤다는 정도만 증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밀실 트릭은 괜찮았지만 그 외에는 전부 그닥이며, 특히나 판타지 소설을 우겨넣은건 아무리봐도 무리수였습니다.

그나저나, 작가가 왜 이렇게 마우에게 미련을 갖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지극히 만화적이며 딱히 매력도 없는데 말이지요. 제발 그만 좀 나와주면 좋겠습니다.

"빈 터의 유령"

야스다 시노는 인터넷을 쓸 수 없는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다가, 사람이 지나갈 수 없던 곳에 갑자기 나타나 서 있던 사람을 목격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네코와리와 하츠키 등 친구들은 모두 현장을 방문했다가 그 '유령'을 목격하고 도망치는데...

오래전 추억 속 라면 가게를 다시 열기 위해 그 곳을 방문한 아저씨가 유령의 정체였으며, 우체통 때문에 사각이 생겨서 아저씨가 지나가는 걸 못 봤다는게 진상인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충분히 그럴싸한, 설득력 넘치는 아이디어로 동네 유령 이야기 진상으로는 아주 잘 어울렸어요. 추억 속 라면 가게, 편지 쓰기 등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도 풍성하고, 편지를 쓰기 싫어하는 시노가 이 사건에 대해 사진 중심으로 편지처럼 꾸며서 보낸다는 마지막 장면, 그리고 아저씨의 라면 맛이 별로였다는 에필로그까지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트릭이 대단한건 아니고, 순전히 우연에 불과한 사건이라는건 분명합니다. 또 시노 혼자라면 모를까, 함께 갔던 친구들 모두 동일한 '사각'으로 아저씨를 보지 못했다는건 설득력이 낮아요. 그래서 조금 감점하여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신라가 경이의 방으로 안내하는데 요금을 받지 않는데, 친구들의 부탁이기 때문인지 불분명합니다. 캐릭터가 바뀐걸까요? 이런 설정마저 없어져 버린다면 정말로 Q.E.D와의 구분이 애매해지는데 말이죠.

2020/01/30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3)

애정하는 작품인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작가 라즈웰 호소키가 온갖 초밥을 연구하며, 심지어 직접 초밥을 쥐기까지 하는 과정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입니다.

음식, 특히 초밥 및 각종 관련 정보를 재미와 함께 잘 제공해 주는게 좋습니다. 나무젓가락이 무려 네 등급이 존재한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또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직접 실험하고 경험한 내용이 많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편의점 초밥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여러가지 실험해보거나, 초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차를 찾기 위해 이런저런 차와 함께 먹거나, 초밥의 간을 여러가지로 만들어 먹어 본다던가, 맥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스시를 만들어 본다던가(심지어 그 중 하나는 소시지 스시!) 하는 식으로요. 이 과정에서 터득한 레시피 제공도 아주 좋습니다. 스키야바시 지로의 메인 셰프인 지로 씨의 스시를 먹은 경험담 등도 값지고요.

그러나 단점도 큽니다. 가장 큰 단점은 1권과 2권은 1/3 가량이, 3권은 2/3 이상이 전혀 다른 만화로 채워져 있다는 점입니다. 1권은 작가가 여행하면서 이런 저런 음식을 먹었던 일상계 여행 에세이 만화가, 2권은 약간 소심한 식도락가 샐러리맨 에비코지 아지마로가 등장하는 "내 멋대로 1성 식당"과 "술 한잔 인생 한 입"의 스핀오프 같은 "소라의 술", 3권은 목욕이 취미인 공무원 센타로의 목욕 생활을 다룬 "속세 목욕"이 각각 수록되어 있거든요. 이 만화들이 재미가 없는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분량을 차지해가면서 수록한건 반칙같이 느껴져 기분이 별로 좋지 않네요. "라스시"만으로는 두 권 분량으로 충분했을텐데 말이죠.
이 단점에 비하면 모든 음식들에 대해서 작가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었으며, 한글화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단점는 사소할 뿐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고화질] 미식탐정 란포 2권 (완결) - 6점
Kusumoto Tetsu/미디어팜

'식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지론을 가진 탐정 우타가와 란포가 의뢰받은 조사 대상이 먹는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의뢰를 해결한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브리아 샤바랭탐정화한 아이디어지요.

억지도 있지만, 정말로 먹는 걸로 의뢰를 해결하거나, 상황을 예측하는게 나름 설득력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같이 소금구이를 좋아하는 그녀의 진심이 알고싶다는 의뢰를 받고, 미행을 통해 사실은 그녀가 양념 구이도 좋아하는 사실을 밝혀내어 그녀의 마음을 알게된다는 식으로요. 또 주인공 란포의 식도락 철학과 각종 요리 관련 설명 및 묘사도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패턴이 단순하며, 조사 대상이 란포가 있는 음식점에 찾아올 정도로 너무 일(미행, 탐문 조사 등)이 쉽게 풀리는 전개 탓에 드라마가 별 볼일없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아울러 요새 트렌드와 맞지 않는 작화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혼술 땡기는 날 - 4점
다케노우치 히토미 지음, 김진희 옮김/애니북스

집순이 히토미가 이런저런 술을 즐기는 이야기. 기본적으로 집에서 먹더라도 룸메이트가 있을 뿐더러, 여럿이서 같이 마시는 경우도 많아서 '혼술' 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애매합니다. '집술'이라고 하는게 훨씬 맞는 표현일텐데 말이죠. 혼술 유행에 편승하려 한 느낌이에요.

그래도 내용은 나쁘지 않습니다. 맛있는 술과 그에 어울리는 안주를 먹는게 전부인데 종류도 여러가지이고, 다 맛있어 보여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레시피들도 대충대충이지만 실려있어서 이해를 돕고요. 

그러나 너무 대충 그린 작화는 문제입니다. 술과 요리까지도 성의없어 보이는 스타일로 일관하고 있는데, 이건 음식, 요리만화로서는 굉장히 치명적인 부분이라 생각되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작화만 받쳐주었더라도 평균 이상은 되었을텐데 아쉽습니다.

2020/01/25

시월의 저택 - 레이 브래드버리 / 조호근 : 별점 2.5점

시월의 저택 - 6점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특별한 존재들이 머무르는 고향, 시월의 저택을 중심으로 그곳의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단편들을 모아놓은 연작 단편집입니다. 시월의 저택이 생겨나고, 고양이 아누바를 비롯한 주민들이 모이고, 버려진 인간 아이 티모시가 가족이 되고, 전 세계 친척들이 저택에 모이는 귀향 파티가 열리고, 얼마 되지 않아 성난 군중들에 의해 저택이 불타버리고, 네프 할아버지는 박물관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총 23장에 이르는 이야기들로 이어집니다.

작가인 레이 브래드버리의 이름에서 떠올릴 법 한, 반전 매력 넘치는 호러 혹은 비슷한 장르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약간 호러풍일 뿐 기본적으로는 판타지에 가까운 작품들이고, 대부분의 이야기가 '사랑'과 '삶'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물론 이런 작품이 나쁜건 아닙니다. 그러나 초창기 발표 당시였다면 모를까, "아담스 패밀리"와 같은 유사 컨텐츠가 넘쳐나는 지금 상황에서는 새롭다는 느낌을 전해주기는 힘들지요.

또 이렇게 긴 흐름의 이야기는 연작으로 묶어 개작하면서 새롭게 구성된 것으로, 원래 존재했던 단편은 발표 시간 순서대로는 아래와 같습니다.

  • "여행하는 이"
  • "귀향 파티"
  • "에이나르 아저씨"
  • "바람 속의 마녀"
  • "시월의 서쪽"
  • "오리엔트 북행 특급"

문제는 그래서인지, 좀 억지스럽게 엮인 작품들도 눈에 뜨인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게 "여행하는 이"입니다. 후일 추가된 단편인 "삶을 서두르라"도 딱히 연작 이야기에 포함될 내용은 아니었다고 생각되고요. 이렇게 후대에 하나의 시리즈로 모아 엮은게 과연 좋은 방법이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름다운 문장들, 묘사들이 넘쳐나며 매력적인 설정도 많지만 여러모로 생각과는 다르기에 감점합니다. 작가의 팬이시라거나,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리지만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다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몇몇 주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바람 속의 마녀"

사람의 마음 속으로 이동하여 그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조종할 수 있는, 저택 다락방에 사는 세시가 사랑을 하고 싶다며 앤이라는 소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간 뒤 실제로 사랑에 빠져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약하자면 한 여름 밤 변덕스러운 첫 사랑을 호러 터치로 그려낸 감성 호러 틴에이저 로맨스 소설이에요. 마지막 장면, 찌르레기의 마음 속에 들어간 세시가 자신의 주소를 적은 종이를 꼭 쥔 톰을 보고 사라져 버리는 결말도 애틋하고요. 레이 브래드버리가 이런 작품도 쓸 수 있다는게 놀랍습니다.

"귀향 파티"

핼러윈 이브에 시월에 저택에 온갖 이능력자 친척들이 귀향하는 파티가 열렸다. 시월의 저택에 버려졌던 인간 아이 티모시는 흥미 반, 두려움 반으로 이 파티에 참석하여 파티를 마지막까지 지켜보는데...

얼마전 개봉했었던 "아담스 패밀리" 애니메이션 영화와 아주 흡사한 분위기와 내용입니다. 모두 친척인 이능력자들이 특정 저택에 모여 파티를 연다는 기본 설정이 똑같으니까요. 이를 바라보는 화자이자 기록자 역할을 수행하는 '인간' 가족이 있다는 점만 다르고요.

그런데 이능력자들의 기묘함과 능력에 대한 화려한 묘사 외에는 특별히 대단한 내용은 없습니다. 티모시 시각에서 이야기가 많이 전개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티모시는 유한한 삶과 무한한 삶을 비교하며 자신이 다르다는걸 자각한다는 정도에 그칠 뿐입니다. 지금 보다는 성장기 느낌을 좀 더 주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시월의 서쪽"

귀향 파티 후 저택에 머무르던 피터, 윌리엄, 필립, 잭은 세시의 도움으로 육신에서 빠져나온 영혼 상태로 놀다가 육신이 머물던 외양간이 불타버려 머물 곳을 잃고 만다. 그래서 임시 방편으로 네 명은 4천살 먹은 나일강 고조할아버지 머리 속에 머물게 된다.

세시의 능력이 잘 드러난 단편으로 성인용 코믹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4명의 사촌들이 모두 여자를 밝히고, 할아버지의 과거 속에 수많은 여성이 있었다는 설정 등에서 말이죠. 세시가 사실은 할머니였으며, 할아버지가 세시를 노리고 다락방을 가끔 찾아간다는 결말도 그러하고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리엔트 북행 특급"

유령을 믿는 노처녀 간호사 미네르바 할러데이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서 우연히 유령 '창백한 승객'을 만난 뒤, 일 평생 박제처럼 지냈던 자신의 인생을 벗어나기 위해 그가 영국에 있는 시월의 저택으로 향하는 것을 발벗고 돕는데...

유령인 '창백한 승객'이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는건, 사람들이 유령을 믿지 않게 되어서라는 설정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미네르바 할러데이가 유령을 살려내기(?) 위해 온갖 유령이 등장하는 소설들 - "햄릿", "크리스마스 캐럴", "폭풍의 언덕", "나사의 회전", "레베카", "원숭이 손" - 을 읽어주는 등의 아이디어도 돋보이며, 유령과 인간, 즉 이종족간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 물이라는 점도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미네르바마저 유령이 된다는 결말은 조금 뻔해서 아쉽더군요. 1988년 발표된 비교적 후기작인데, 전성기만큼의 반전 매력은 전해주지 못했어요.

"에이나르 아저씨"

시월의 저택의 친척인 날개달린 이종족 에이나르 아저씨는 사고로 밤에 비행하는 능력을 잃고 만다. 대낮에 고향 유럽으로 날아가다가는 어떤 공격을 받을지 몰라 귀향을 포기한 그는, 사고 후 그를 도와주었던 젊은 브루닐라 웩슬리와 결혼하여 마을에 정착하는데... 

시월의 저택 다른 주민들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에이나르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스핀오프 단편. 사고 후 결혼하여 정착하는 과정과 대낮에도 비행할 수 있도록 '연'으로 변장한다는 결말까지 유쾌했던 소품입니다.

"삶을 서두르라"

마드모아젤 안젤리나 마르게리타는 뒤집힌 삶을 사는 존재. 그녀는 무덤에서 환생하여 점점 어려지다가 누군가의 뱃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시월의 저택 버젼입니다. 벤지만 버튼과 데이지처럼 안젤라니와 티모시의 관계가 동일하고, 전해주는 주제도 유사합니다. 무덤에서 삶을 끝내지 않고 어린 신부의 석류같은 미궁 속에서 잠들다니 운이 좋다고 말하는 안젤리나의 초긍정 대사 정도만 기억에 남을 뿐이죠. 티모시가 주인공이 아니라면, 시월의 저택 연작에 포함될 이야기로 생각되지도 않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행하는 이"

시월의 저택 주민들을 해하려 했던 '부정한 존'은 마을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고통받다가, 경찰서를 찾아가 저택 주민들을 고발하기에 이르는데... 

잔혹한 '부정한 존'을 해치우는 이야기입니다. 부정한 존을 고통스럽게 만든 종소리는 알고보니 세시가 만들었다는 것으로, 이능력을 활용한 비교적 정통적인 호러물입니다. 덕분에 다른 단편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개작하여 연작 단편집으로 묶이기 이전에는 시리즈에 속한 작품이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의 심리를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자만 등장한다면 써 먹을 수 있는 반전이니까요.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먼저 발표된 (1945년) 작품이라는 점, 발표 당시 유행했던 단편 호러물들과도 여러모로 유사하다는 점에서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2018/12/23

그린치 (2018) - 스콧 모지어, 야로우 체니 : 별점 2.5점

크리스마스를 맞아 딸아이와 함께 감상한 신작 애니메이션. 저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보고 싶었습니다만, 딸아이의 강력한 요청을 이길 수 없었네요.

유명 동화가 원작인데다가 이미 십여년 전, 짐 캐리 주연의 영화까지 개봉되어 내용은 새롭지 않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덕분에 영화 버젼보다는 더 아이들 취향에 잘 맞게끔 제작되었습니다. 화려한 색상을 자랑하는 각종 아트웍도 굉장한 볼거리이고요.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 건 그린치의 충견 맥스에 대한 묘사입니다. 과거 영화버젼을 능가하는, 충견 캐릭터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그로밋과 쌍벽을 이룰만큼의 충직함, 똑똑함에 귀여움까지 갖춘 캐릭터로 그야말로 작품을 하드캐리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아동 취향인 탓에 그린치의 사악함이 잘 묘사되지 않은건 아쉽습니다. 너무 개그로 소비되는 묘사가 많아서 악당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그냥 조금 심성 삐뚤어진 어른 정도로 보여서 극적 긴장감을 잘 불러 일으키지는 못한 탓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심리 묘사도 썩 잘 되어 있지 않아서 크리스마스를 훔치는 작전에 감정 이입하기도 힘들었고요.
차라리 대단한 천재 발명가이지만 외톨이로 동굴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설정을 잘 살려서 "배트맨" 느낌으로 풀었더라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노린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로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맥스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 오프가 나와주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보다 조연이 인기를 얻는 "미니언즈"처럼 일루미네이션 스튜디오의 전통으로 자리잡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조금 생기네요.

2016/04/18

클로저 이상용 - 최훈 : 별점 3점

클로저 이상용 9 - 6점 최훈 지음/알에이치코리아(RHK)

최훈 작가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하대리"부터 팬이 되었었지요. 독특한 개그 센스에 더해 하루하루 완결되는 이야기를 이어서 하나의 거대한 장편을 만들어 낸 아이디어가 정말 참신했기 때문입니다. 4컷 만화들이 이어져 하나의 긴 이야기가 되는 작품은 일본에서는 이전부터 있었지만("아즈망가 대왕"), 국내에서는 처음 보는 형식이었고 완성도도 높았습니다. 이어진 "MLB 카툰"에서부터는 주특기라 할 수 있는 덕력과 패러디 센스가 제대로 폭발했고요.

하지만 이후 연재작들로 팬심은 많이 떠났습니다. 완결짓지 못한 이야기가 많은 탓이 큽니다. 한 편, 한 편으로 완결되는 프로야구 카툰 같은 작품은 언제 연재가 중단되어도 괜찮지만, 장편 연재물이었던 "하대리" 3부(였나요?), 팝과 록의 역사를 다룬 "록커두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전직 여자 농구 선수들이 나오는 농구 만화 등은 아무런 언급 없이 연재가 중단되었지요.

그나마 완결된 작품도 흐지부지 끝나서 더 욕을 먹었는데, 대표적인게 바로 "GM"입니다. 국내 최초로 스카우터, 단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팀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그려내어 큰 인기를 끌었지만, 작중에 흩뿌린 떡밥을 회수하지 못한 채 갑자기 끝나 버렸습니다. 스토브리그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시즌 개막도 맞지 못하고 끝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삼국전투기"의 경우 마감일을 지키지 못해 큰 비난을 사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런저런 작품들을 모두 끝내 버린 덕분인지, 최근의 행보는 다행스럽습니다. "삼국전투기"는 공명 사후 이야기를 유사 콘텐츠를 압도할 정도의 디테일로 다루며 박수를 받으며 마무리되었고, 이 작품 "클로저 이상용" 역시 정상적으로 완결에 이르렀으니까요.

"클로저 이상용"은 야구 만화인데, 2군에서 올라온 이상용과 진승남 배터리가 패배주의, 개인주의, 세력 다툼으로 엉망이 된 게이터스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며 여러 상대팀을 제압해 결국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내용입니다. 전작 "GM"과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게 특징이기도 합니다. 전작의 캐릭터(하민우 등)가 감초 역할로 등장해 팬으로서 무척 반가웠어요.

단지 스핀오프에 그치지 않고, 독립적인 작품으로의 재미 요소도 확실합니다. 가장 큰 재미 요소는 이상용이 라이벌들과 펼치는 두뇌 게임심리전이고요. 두 가지 요소 모두 이 분야의 본좌 "원 아웃"과 비교할 만한 수준으로 펼쳐집니다. 토쿠치 토야와 이상용 모두 구위가 아닌 심리전을 통해 타자를 제압하는 기교파 투수이기 때문이지요.

주인공이 적당한 구위를 가지고 현실적인 야구를 한다는 점에서는 "그라제니"의 본타와도 살짝 겹치는데, 단순한 설정 차용은 아닙니다. 이상용은 철저한 분석과 데이터 기반의 야구를 하고, 확실한 주무기 (체인지업)을 갖춘 데다 안 되는 타자는 철저히 거르는 식으로 비겁하게 이겨 나간다는 차이가 있거든요. 마지막 장면에서 어깨가 망가진 상태로 승부하면서도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는 모습은 클라이맥스로서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최훈 작가 본인이 상당한 수준의 야구 팬이기에 가능한 디테일들도 큰 장점입니다. "GM"에서도 선보였던 데이터 위주의 선수 설정들, 옷주름으로 구질을 파악한다는(쿠세) 이야기, 이상용의 독특한 작전으로 만든 병살 플레이, 외국인 투수와 통역의 대화 같은 깨알 개그, 작가 특유의 패러디들까지 풍성했습니다. KBO 팀을 연상케 하는 구단들의 설정은 물론, 실존 선수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들 역시 야구팬이라면 놓치기 어려운 재미 요소고요. 게이터스가 LG 트윈스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라 LG 팬에게는 더더욱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다만 성적 때문에 불편했을지도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작품 역시 던진 떡밥을 모두 회수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상용을 둘러싼 삼각관계, 라이벌 선수들과의 관계가 대표적입니다. 선데빌스의 김성욱에게 함정을 심어두었다는 설정, 이헌과 여자를 두고 얽힐 것 같던 전개 모두 마무리되지 않고 끝나 버렸습니다. 일본 연재물처럼 한 편 한 편이 완결성을 갖추고 이어졌다면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신문 연재 특성상 그게 어려웠던 것 같네요.

또한 이상용이 만년 2군을 전전하다가 체인지업을 완성해 최고의 마무리가 된다는 설정에서 출발했는데, 마지막에 커브까지 갖춘 완전체 투수로 업그레이드되는 전개는 원래의 취지와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결말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속 시원한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고교 야구 만화로 치면 지구 예선을 통과해 갑자원에 진출하면서 ‘1부 완결’로 끝나는 느낌이랄까요.
아울러 정인권과의 최후의 승부는 명장면이었지만 설득력 면에서는 조금 부족했습니다. 이미 직구와 체인지업의 구위가 떨어진 상태에서 그립 변화만으로 삼진을 잡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웠으니까요. 오히려 직구 승부인데 어깨가 망가져 체인지업의 속도로 들어온다는 설정이 더 그럴듯했을 것 같습니다.

후일담 역시 너무 간략합니다. 게이터스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우승은 실패했고, 부상당한 이상용은 수술과 재활 끝에 1년 만에 방출되었다가 램스에 입단해 선발 투수로 커리어를 이어간다는 서사를 단 한 편으로 마무리한건 여러모로 부족했어요.

이렇듯 단점이 없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야구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만한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후속작이 시작된다면 부족했던 부분을 잘 보완해 주었으면 합니다.

2014/11/25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6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6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 박물관 사건목록 25"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첫 번째 이야기는 "곤돌라"입니다. 잘나가는 요리연구가가 금전을 요구하며 협박한 처남을 살해하는 사건으로, 범인의 시점에서 범행 과정이 먼저 그려지는 도서 추리물입니다. 

사고사로 위장하는 전개에서 일종의 순간이동 트릭이 사용되는데, 추리적으로는 큰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피해자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느낌이 없어서 감정 이입이 어려웠고, 피해자가 죽지 않은 경우에 대한 대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 전체 트릭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곤돌라를 바꿔치기하는 트릭은 현실성이 부족합니다. 경찰들이 이 정도도 밝혀내지 못한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스키를 신고 있었다는 증언을 뒤집는 장면도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냥 우겨도 뒤집을 수 있는 확증이 없는 상황이니까요.
아울러 Lionheart님 리뷰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타츠키가 보험 조사원으로 수사에 나서는 설정도 이상했어요. 범인이 어린 소녀 조사원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준다는걸 납득하기도 어려웠고요.

그래도 타츠키가 범인의 증언 속 맹점을 짚어내는 장면, 그리고 정전 상황에서 피해자가 보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은 꽤 괜찮았습니다. 마지막에 피해자가 반지를 삼켰다는 사실도 인상 깊었는데, 이는 결정적인 증거이자 피해자의 마지막 의지이기도 해서 강하게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다만 C.M.B의 특징인 박물학적 정보도 없고, 신라가 "경이의 방"으로 안내한 대가조차 없어서 "Q.E.D"에 더 어울렸을 에피소드입니다. 스핀오프 시리즈가 존재할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두 번째 이야기는 "라이온 랜드"입니다. 케냐에서 사자에게 물려 죽은 마사이 전사 사건과 핵심 증인인 소년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기억을 지워 슬픔을 잊게 만드는 초원의 전통 의사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연구진들의 조사 방식과 사자 생태계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이 C.M.B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렸고, 슬픔을 지우는 약이 있다는 설정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비슷한 설정은 많지만 아프리카라는 특이한 무대 덕분에 신선하게 느껴졌고, 악어의 습격에서 벗어나는 장면 등 신라의 의외의 활약도 인상 깊었습니다.

추리적인 측면에서도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사자의 반복된 습격을 단서로 진범을 추리해내는 과정도 논리적이며, 소년 하가가 살아남고 전사 오딘가가 창을 이상하게 들고 있었던 이유, 하가가 밀렵을 도운 동기들도 모두 제대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굳이 1, 2부로 나눌 만큼 긴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1부 정도로 마무리했더라면 더 응집력 있는 이야기였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징조"입니다. 신라가 우연히 구입한 목걸이를 계기로 펼쳐지는 문화대혁명 관련 이야기입니다. 추리 요소는 거의 없지만, 실제 당사자의 증언을 통해 문화대혁명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학습만화적 구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부모까지 폭행했던 집단 광기와, 당시 중국의 정치·사회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아주 뛰어났어요. 

그러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새옹지마 이야기는 흐름상 다소 뜬금없었고, 결말도 다소 뻔하게 느껴지는건 조금 아쉽네요. 목걸이에 상징성이라도 더했더라면 더 좋은 마무리가 되었을 것 같고요. 그래도 하지만 박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C.M.B다운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첫 번째 편을 제외하면 C.M.B의 특성인 박물학적인 정보 전달도 잘 되는 편이고요. 이 정도면 다음 권도 기대해볼 만합니다. 다만, 추리적으로는 다소 아쉽긴 합니다. 

덧붙이자면, 이전 리뷰에서도 지적했지만 타츠키의 공기화는 이제 심각한 수준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트릭 증명에 한몫했고,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협박자를 물리치는 활약을 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히로인이라기보다 보디가드 역할일 뿐입니다. 캐릭터 재정립이 정말로 필요해 보입니다.

2014/06/10

CMB 박물관 사건목록 24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4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 박물관 사건목록 23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24권 리뷰입니다. 최신권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25권이 나와있네요.

여튼, 24권에는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잔잔한 일상계 없이 네편 모두 사람이 죽는 등 심각한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점은 동시기 발표된 "Q.E.D 45"와 같군요. 작업 당시 작가에게 뭔가 안좋은 일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고보니 수록작 2편의 "Q.E.D", 3~4편의 "C.M.B"로 목차도 굳어져가는 느낌이네요.

전체 별점은 반올림해서 2.5점. 두편은 괜찮고 두편은 평범했습니다.

상세한 에피소드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니쇼테이"

"니쇼테이"라는 실존했던 기묘한 건축물을 재현하는 괴짜에 대한 이야기. 진상은 과거 있었던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였는지를 밝히기 위한 의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니쇼테이를 재건하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아서 본 줄거리와 그렇게 잘 연결된다고 볼 수 없고 내용도 작위적인 부분이 한가득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니쇼테이 재건은 단지 "돈을 물쓰듯 쓰는" 행동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라도 상관없는 것이니 별 관계도 없고, 진범이라는 이모부부가 구태여 그 건축물안에서 여보란듯이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당쵀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니쇼테이라는 건축물에 대해 접한 작가가 기묘한 부분이 좋아 작업을 시작했지만, 이야기를 잘 마무리 짓지 못한 느낌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이상의 독특한 시를 주제로 추리소설을 써야지!"라는 생각까지는 좋았으나 그 결과물은 실제 시와는 유기적으로, 논리적으로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희대의 졸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떠오릅니다.

그래도 아예 건질게 없는건 아니에요. 니쇼테이는 지금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영화 세트"로 허가를 받았다는 것을 추리해내어 곁가지 진상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 하나만큼은 괜찮았고 특유의 박물학적 지식의 전달 측면에서도 니쇼테이라는 건축물을 알게 해 주었다는 점은 좋았으니까요. 관심이 생겨서 자료를 조금 찾아보았는데 확실히 신기하긴 하군요.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 충분히 나올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여튼, 별점은 2점입니다.

"다이아몬드 도둑"

미술관에서 사라진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찾는 이야기. 도둑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전개도 깔끔하고 진상도 그럴듯합니다. 마지막에 진범이 새롭게 드러나는 반전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신라가 진범을 깨닫게 되는 사소한 범인의 실수가 저는 그렇게 와닿지는 않더군요. 자포자기를 했을 수도 있고 다른 경로로 명확하게 진품이 아니라는 정보를 이미 입수한 상태일 수도 있는데 너무 지레짐작이 심했던 것 같거든요.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확실히 깔끔해서 이번 권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로 꼽을 만한 에피소드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레이스"

아버지와 삼촌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내용만 놓고보면 추리물로 보기 어려운,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딱히 재미가 없어요. 막장드라마의 제국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 정도야 뭐 장난 수준이니까요. 총을 쏘았던 경비원의 증언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너무나도 쉬운 전개라는 것도 불만이고요, 반전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딱히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평균 이하의 졸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옷장 속의 유령"

C.M.B가 아닌 M.A.U로 제목이 달려있는, '암시장의 마녀' 마우가 주인공인 사건목록 번외편입니다. 마우가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강령회 도중 쇠사슬로 묶인 옷장 안에서 영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지요. 

조작된 랩소리라던가 강령회에서 들려왔던 유령의 목소리, 어떻게 밀실과 같은 옷장 문을 열었는지 등 트릭만큼은 풍성합니다. 대저택, 강령회, 밀실 등의 고전적인 설정과도 잘 맞물려 있어서 고전 본격물을 즐기는 기분이 들 정도로 추리적으로는 괜찮았어요. 구태여 이런 상황에서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전혀 없다는 설정상의 헛점과 랩소리, 빗을 이용한 유령 목소리 등이 실제 가능했을지와 같은 장치 트릭의 문제점까지도 고전적이라 저는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왜 마우를 주인공으로 또 스핀오프를 벌려놓느냐는 겁니다. 솔직히 마우라는 캐릭터는 너무 만화적이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지요. 차라리 타츠키를 더욱 잘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이래서야 진히로인은 마우라고 해도 할말 없겠어요.
게다가 이 작품에서 마우의 활약은 나쁘지는 않지만 "고전적"이라는 설정에 잘 어울리는 캐릭터는 아니기에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토마가 주인공이었으면 훨씬 나았을 거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4/03/17

CMB 박물관 사건목록 21, 22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과 3점

CMB 박물관 사건목록 21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 박물관 사건목록 22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그간 격조했습니다. 이번에 읽은 것은 전통의 강자 중 하나인 CMB의 21, 22권입니다. 24권까지 나와 있기는 하지만...

21권부터 살펴보죠.

"후유키씨의 하루"

동네에서 살고 있던 후유키씨라는 노인의 일상 속 숨겨진 비밀이 무엇이냐는 내용. 잔잔한 전개와 노인이 "선택한 것"이라는 진상은 마음에 들지만 일상계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사건성이 있지는 않은 소품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호수 밑바닥"

과거 벌어졌던 호수에서의 사고사는 알고보니 물 속에 장치해 놓았던 풍선을 터트린 살인이었다는 이야기. 실제로 이렇게나 잘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이만한 풍선을 장치하는데 고용한 사람들 입막음은 어떻게 했을지, 왜 찌꺼기는 치우지 않았는지 등 소소한 의문도 생기지만 전개도 깔끔하고 결말도 괜찮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엘프의 문"

마우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신라를 끌어들여 어렸을 적 부모님을 속였던 사기꾼을 처단한다는 내용. 신라가 마우에게 속아 넘어간다는 점 이외에는 특기할만한 내용 없는 소품입니다. 별점은 2점.

"발렛트의 촛대"

몰타 공화국의 구 기사단장 발레트의 촛대를 둘러싼 이야기. 오래간만에 C.M.B스러운 박물학적 지식 가득한 작품입니다만, 내용이 현실성 없고 동기도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츠키가 기사단장 갑옷을 입고 펼치는 결말도 영 아니었고요. 점수를 줄만한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결론적으로 평균 별점은 2점 정도... 추리적으로도, 박물학적으로도 그냥저냥인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22권은

"여름 보충 수업"

태양열 자동차를 파손한 범인을 찾는다는 학교 내 일상계 소품. 

항상 어린아이 같은 신라가 학교 선생님에게 던진 이과계를 위한 명제 — "정답이 하나밖에 없는 공부는 인생에 별 쓸모가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이 틀렸다는 걸 알기 위해서" — 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입니다. 내용 면에서도 일상계스러운 설득력 가득하고 즐거운 청춘들의 여름 한나절을 다룬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유리의 낙원"

갈라파고스섬에서 벌어진, 밀어를 하던 어부가 다친 채 발견되는데 그를 쫓던 과학자를 범인으로 지목한다는 기이한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과거 갈라파고스를 방문해 조사하던 다윈에게 벌어진 사건과의 교차 편집이 아주 좋았습니다. 현대의 사건은 일상계에 가까워서 말실수를 통해 간단하게 진상이 밝혀지지만, 과거 다윈 사건은 퓨마의 생태라는 나름 박물학적 설정이 들어갔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그리고 결국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지는 결말도 괜찮았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나선 골동품점"

나선 골동품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나선 골동품점의 교묘한 내부 구조를 이용한 트릭이 좋습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여러 가지 정보(암모나이트 화석, 피해자의 사진, 관계자의 증언 등)도 공정하게 제공되는 편이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다만 Q.E.D였어도 괜찮았을 트릭과 내용인데, 구태여 스핀오프로 전개할 필요가 있었을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그래서 평균 별점은 3점. 21권은 평균 이하였는데, 22권은 평균보다는 높은, 기대에 걸맞는 수준을 보여주어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작품별 편차가 되도록 없이 고르게 수준을 유지해 주었으면 하지만, 이 정도면 후속권도 기대가 되네요.

2014/03/03

스쿨 인어 (スクール人魚) 1~2 - 요시토미 아키히토 : 별점 2.5점

스쿨 인어 (スクール人魚) 1~2권 (완) : 인어 먹는 소녀들

"이트맨"의 작가 요시토미 아키히토의 단편 옴니버스 판타지 호러 연작. "이트맨" 이후 발표했던 작품들은 대체로 시원치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블랙잭 스핀오프였던 "레이"는 역대급 쓰레기였지요. 그래서 한동안 관심을 끊었었는데, 이 작품은 인터넷에서의 평이 좋아서 구해보게 되었습니다.

읽다 보니 다카하시 루미코의 "인어" 시리즈가 떠올랐습니다. "인어 고기를 먹으면 뭔가 얻을 수 있지만 그에 따른 댓가가 있다"라는 핵심 설정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카하시 루미코 작품은 일본 괴담 분위기가 물씬나는 전형적인 호러물로, 인어는 일종의 크리쳐로 등장했었지요. 반면 이 작품은, 호러보다는 판타지 성향이 강하며 순애, 백합물 성향을 담뿍 담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기본 설정부터가 "영원한 생명"에 비교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작은 "사랑"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야기들도 조금은 가볍게 느껴집니다. 물론 실제 사춘기 소녀들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할 수 있는 게 "사랑"이기에 묵직하고 진지한 이야기도 있는데, 그것도 나름 매력적이었어요(waterlotus님 블로그를 참조하시길...).

또 인어를 불러내는 방법에 대한 노트의 중요한 페이지가 찢어져 있는데, 이 페이지에 '시간 내에 인어고기를 먹지 못하면 주문을 말한 사람이 인어가 된다'는 중요한 사실이 적혀있었다는 등의 부가적인 설정들이 여러 가지 반전을 이끌어내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초반부의 한두 개 에피소드는 "이트맨"의 좋았던 분위기가 아주 약간 떠오를 정도였어요.

인어들은 인어를 불러내었지만 고기를 먹는 데 실패한 당사자들로, 학교 수영복을 입고 있다는 디자인적인 참신함도 괜찮았습니다. 좀 대놓고 밀어붙인 감도 없잖아 있긴 하지만, 여튼 확실히 현대적이고 경쾌한 맛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트맨"과 비교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첫 이야기에서 밝혀지는 설정 이외의 것이 별로 없어서 반전이 놀라운 이야기는 드물고, 떡밥도 제대로 회수가 안 되는 이야기가 있는 탓입니다. 또 "사랑"은 작중 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노처녀 노리코 선생 말대로 직접 부딪쳐서 얻어내도 충분한 것이니 긴장감이 떨어지고, 감정이입이 어렵다는 문제도 큽니다. 과연 목숨을 걸 정도로 절박하냐 하면 별로 그렇게 보이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쉬운 점은 분명 있습니다만, 평균 수준의 재미는 전해 줍니다. 장르물 애호가 분들께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