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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3

요괴 헌터 1 : 지편 - 모로호시 다이지로 / 서현아 : 별점 2.5점

요괴 헌터 1 : 지(地)편 - 6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서현아 옮김/시공사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작가 생활 초기인 1974년부터 꾸준히 발표해 왔던, 고고학자 히에다 레이지로를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 호러 단편 연작입니다. 요새 좀 복잡한 스토리, 설정을 갖춘 고전 만화에 꽂혀서 호시노 유키노부를 비롯한 몇몇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쭉 찾아보다가 이러한 저만의 유행에 편승하여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명성이야 전부터 익히 들어왔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 이런게 취향이 되는게 신기하네요.

읽어보니 과연, 명성이 허언은 아니더군요. 무려 40년 전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독특하다 느껴질 정도거든요. 발표 당시에는 독자들에게 대단한 충격을 전해주지 않았을까 싶네요.
러브크래프트 느낌의 코즈믹 호러 분위기를 한껏 풍겨주는 묘사들은 왜 이 작가가 우메즈 카즈오와 호러 만화계에서 같은 급으로 인정받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며, 이런 저런 설정들의 적절한 이종 교배를 통해 참신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대체로 앞서 말씀드린 코즈믹 호러, 크리처를 일본 전통 문화와 교배시키는 식인데 예를 들자면, 코스믹 호러와 크리처 세계관에 일본 고전 설화를 끼얹은 "검은 탐구자", 가쿠레 키리시탄 설정을 이용하여 역시나 코즈믹 호러 느낌의 새로운 성경과 종교적 기적을 그려낸 "생명의 나무", 코즈믹 호러 크리처와 일본 고사기에 기반한 역사를 섞어 '해룡을 맞이하는 해룡제' 라는 행사로 그려낸 "해룡제의 밤" 이 대표적입니다.
이 중에서도 "생명의 나무" 는 이렇게 짧게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였어요. 성서에 지극히 일본적인 설정을 잘 짜깁기한 대단한 작품이었거든요. 가쿠레 키리시탄이 성경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자신들만의 성경을 만들어 전승시켰다는 역사 속 실화를 토대로 하고 있는데, 아담 외에 쥬스헤루라는 인류의 선조가 있으며, 쥬스헤루는 생명의 나무 열매를 먹어 낙원에서 추방당했다는 작품 속 창세기 설정부터 참신합니다. 죽지도 못하고 고통받는 쥬스헤루의 후손들 중에서 그들만의 "예수"가 태어나 모두를 구원한다는 결말도 무척 대담했고요. 이런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다는건 정말이지 놀라운 재능입니다.

하지만 단점과 한계 역시 명확합니다. 우선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설명의 부족은 여전한 편입니다. 설정은 좋지만 펼쳐놓은 설정을 수습하는데 급급한 이야기들이 제법 되거든요. 게다가 괜찮은 설정을 갖춘 작품들도 전체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선 "붉은 입술"은 단순한 크리처 호러물에 불과하고, 지극히 평범한 좀비물 클리셰 투성이인 "죽은 자가 돌아왔다"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요. 그나마 특이한 점이라면 남편을 아이보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등장한다는 점인데, 오히려 이 설정을 강조하는게 더 독특하고 공포심을 자아내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내를 살해하고 묻은 자리에서 아내와 똑같은 풀이 돋아났다는 "사인초"는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은 내용이었고요. "우주해적 코브라" 에서 다이아몬드 이빨을 가진 인면초가 시체에서 피어난다는 "만드라고라" 에피소드가 떠오르더군요.
"개미지옥"은 여러개의 구멍이 있는 공간이 있고, 특정 구멍은 죽음과 영원한 고통을, 특정 구멍은 바라는 걸 이루어 준다는 설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은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원숭이 손" 이라는 유명 단편과 흡사한 결말이 뻔해서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한건 주인공 히에다 레이지로의 무존재감입니다. 이 작자는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에 휩쓸려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만 볼 뿐입니다. 그리고 복잡한 설정을 독자에게 설명, 전달해 주는게 전부에요. 한마디로 나레이터에 불과합니다. "죠죠" 시리즈의 스피드 웨곤보다도 활약이 못해서 존재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스트레이트 롱 헤어에 어딜가나 정장을 갖춰입는 독특한 비쥬얼만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걸작과 졸작, 장점과 단점이 혼재되어 있는 탓에 앞으로 계속 구입해야 할 지는 조금 망설여지는데, 혹 후속권을 읽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계속 읽어봐도 좋을지 고견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2019/03/10

보기왕이 온다 - 사와무라 이치 / 이선희 : 별점 2.5점

보기왕이 온다 - 6점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
다하라는 어린 시절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집을 볼 때 정체불명의 회색 덩어리 그림자를 응대했다. '치가쓰리'라는 기묘한 말을 하며 집에 들어오려는 '그것'을 할아버지가 모처럼 맑은 정신으로 소리쳐 퇴치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할머니로부터 사람을 끌고가는 요괴 '보기왕'을 집에 들이거나 대꾸를 하면 안된다고 들었다.
세월이 흘러 직장을 얻고 결혼한 다하라에게 수수께끼의 전화가 걸려왔고, 수상쩍은 인물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회사 후배 다카니시가 큰 상처를 입고 아내와 딸 치사마저 위험에 처하자 다하라는 고교 동창인 민속학 교수 가라쿠사를 통해 오컬트 작가 노자키와 퇴마사 마코토를 만났다. 그러나 퇴마사 마코토가 알려준 대책이라고는 "부인과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라'는게 전부였다. 다행히 노자키와 마코토는 다하라의 집에 정기적으로 찾아와 아내 가나와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다하라도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만 '보기왕'이 집에 찾아와 부적을 찢고 난동을 부렸다. 겨우 침입을 저지한 마코토는 자신의 힘이 미력하다며 언니를 불러냈다. 언니는 당장은 시간이 없다며 지인들을 부르나 고명한 스님을 비롯한 지인들 모두 겁을 먹고 거절했고 딱 한 명, 부탁을 수락한 영매사 세쓰코마저 한 팔을 잃는 큰 부상을 입고 죽고 말았다. 다하라는 마코토의 언니 도움으로 결계를 치려 하지만 그것 역시 언니를 위장한 '그것'의 음모였다. 결국 '그것'에게 다하라는 죽었다.

2부
아내 가나는 다하라의 죽음이 기뻤다. 다하라는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아내와 딸을 심리적으로 학대했기 때문이었다. 노자키와 마코토의 도움으로 가나와 치사 모녀는 어느정도 안정을 찾아가나 다시 '그것'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마코토가 목숨을 걸고 저지하지만 실패했고, 도망치던 모녀를 덥친 '그것'은 치사와 함께 사라졌다. 그 뒤 미쳐버린 가나는 병원에서 깨어났다.

3부
가나와 치사를 습격한 '그것'으로부터 치사를 지키다가 중상을 입은 마코토를 병원으로 옮긴 노자키는 드디어 마코토의 언니 고토코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치사를 구하겠다며 중상을 입은 마코토에게 휴식을, 노자키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다하라의 본가에 찾아간 둘은 다하라 가족의 숨겨진 끔찍한 과거를 알아냈다. 오래전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한 폭행으로 다하라의 외삼촌, 외숙모가 죽었고, '그것'은 할머니가 복수와 원망으로 할아버지를 저주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둘은 치사를 구하고 보기왕을 퇴치하기 위해 최후의 결전에 나선다...

제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보기왕' 이라 불리우는 크리쳐와 맞서 싸운다는 정통파 크리처 호러물이죠. 그렇지만 이유없이 괴물이 튀어나와 사람을 도륙하는 흔해빠진 고어 크리처물과는 다릅니다. '보기왕' 이라는 크리처의 정체와 그것이 나타난 이유를 설득력있게 포장하고 있다는 차이점 덕분입니다.

'보기왕'이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그러합니다. 일찍이 일본에 진출했던 유럽인들에게서 비롯된 명칭이라고 설명하고 있거든요. "부기맨"이 변형된 말이라는데 그럴듯하죠? 또 노자키가 "기이잡설" 등의 이런저런 자료와 고문헌을 뒤지다가 밝혀낸 정체도 꽤 괜찮습니다. 오래전, 먹고 살기 위해서 K시에서는 산에 사는 요괴에게 노인과 아이를 일부러 바쳤다는게 그 유래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요괴가 있건 없건 간에 사람을 납치하는 요괴와 입을 줄이기 위한 마을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이야기로 굉장히 설득력이 높아요. '고려장' 이야기와 별 다를 것도 없으니까요. 이렇게 크리쳐물인데도 일본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요괴헌터"가 떠오릅니다. 대단한 이론적 배경이 있는건 아니지만 몇몇 디테일 들이 괜찮다는 점도 비슷하네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저주하여 마도부를 통해 불러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섬찟합니다.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함과 외삼촌의 죽음 등 앞부분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복선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데뷰작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솜씨입니다.
이러한 전개는 1, 2, 3부로 나뉜 구성에서도 돋보입니다. 1부는 다하라, 2부는 가나, 3부는 노자키가 주인공인데 각각의 이야기의 구멍을 메워나가며 새 주인공의 시각에서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를 몰입하게 만듭니다. 1부에서 다하라가 굉장히 가족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아빠로 '괴물, 혼령은 대부분 빈틈으로 들어온다. 이는 가족 간에 생기는 마음의 빈틈인 '골'을 의미한다.'는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2부의 가나 시점 묘사를 통해 다하라가 사실은 나쁜 아빠였다는게 밝혀지는 과정이 좋은 예입니다.
'알고보니 나쁜 놈' 인 다하라와 소극적으로 상황에 끌려만 다니는 가나가 아닌 진 주인공 노자키와 마코토, 고토코가 전면으로 부상하여 힘을 합쳐 괴물을 퇴치하는 왕도적인 결말도 나쁘지 않아요. 정의롭고 착한 주인공이 악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일 수 있지만 이 작품에는 정말 딱 어울립니다. J호러 특유의 찝찝한 결말이었다면 더 마음에 들지 않았을거에요.

크리처물 다운 섬찟한 묘사도 볼거입니다. 일종의 영적 덩어리로 입과 이빨만 강조되는 보기왕에 대한 묘사는 별 거 없지만 '그것'이 고토코를 가장하여 다하라를 농락하는 장면이라던가 '그것'은 뒷문으로부터 들어오는게 진짜 공포라는 앞 부분의 복선이 이어져서, 가나가 화장실 입구에 결계를 치지만 뒷문이 있다며 변기로부터 '그것'이 기어나오는 장면이 특히 압권입니다. 얼마전 일본에서 영화화되어 개봉되기도 했는데 예고편을 보니 화장실 장면은 제대로 등장하는 듯 해서 기대가 됩니다. 소설에서도 아주아주 무서웠으니 영화로 보면 효과는 그 이상일거라 확신이 드네요.

이렇게 대상을 받을만한 좋은 점도 많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앞서 칭찬한 전개에서 딱 한 가지, 가라쿠사가 다하라를 저주했고, 다하라의 남은 가족까지 저주했다는 설정은 과합니다. 술 자리에서 쓸데없는 이야기 좀 들었다고 돈과 노력을 더해 '마도부' 까지 선물한다? 그것도 정작 원망의 대상은 죽은 다음인데? 이래서야 설득력이 너무 떨어져서 등장하지 않는 것만 못해요. 또 마코토는 그럭저럭이지만 그녀의 언니 고토코 캐릭터는 지나치게 만화적입니다. 뛰어난 능력으로 괴물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고, 경찰 최고위층도 움직일 수 있는 어둠의 실력자라는 설정인데, 식신만 나오지 않을 뿐 "마법사의 딸" 에 나오는 일본 최고의 음양사 스노즈키 무잔과 판박이니까요. 만화였다면 모를까 소설에 등장하기에는 비현실적입니다. '보기왕' 처럼 설득력있게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해 주었더라면 조금 나았겠지만 그런 설명도 전무하고요. 이런 점에서 보면 "요괴 헌터"의 한 에피소드로 그려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소설 보다는 영화나 만화 쪽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아서 조금 감점합니다만, 재미도 있고 흡입력도 괜찮아서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당한 작품입니다. 호러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6/03/07

워 머신 : 전쟁 기계 (2026) - 패트릭 휴즈 : 별점 2점

미육군 최강 부대 레인저 부대원이 되기 위한 8주간 훈련에 도전한 81번 훈련병은 우여곡절 끝에 최후의 시험인 '죽음의 행진'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훈련병들은 예정된 훈련 대신 외계에서 온 전투 기계를 만나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데...

넷플릭스 최신 영화입니다. 주말 맞이로 감상했습니다.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초반부의 지루했던 배경 설명이 끝난 뒤, 핵심 이야기인 레인저 훈련생들이 벌이는 외계에서 온 로봇 상대 생존기는 어마어마한 몰입감을 선사해 줍니다.

미약한 희생자들이 도주하면서 생존하려 노력하는, 거대 크리처 호러물 장르물로의 가장 중요한 재미 요소인 '긴장감'을 잘 살린 덕입니다. 나침반 등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등으로 로봇 등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식으로요. 망가진 무전기, 움직일 수 없는 부상자, 고장난 장갑차 등의 여러 제약 사항들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도 긴장감과 재미를 더해주고요.

크리처 호러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인 크리처의 강력함 역시 훈련병들을 압도하며 무자비하게 죽이는 장면들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우리 편이 다 죽는 영화는 정말 오랫만에 봅니다. 최소한 여군은 살릴 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레인저 훈련병'이라는 미 육군 최강 군인들이 희생양 역으로 설정된 점도 좋습니다. 절벽에서의 레펠 기동을 비롯한 생존을 위해 벌이는 인간 이상의 활약이 꽤 설득력있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활약의 핵심인 주인공이 '잭 리처' 앨런 리치슨이라는 캐스팅도 딱 맞아 떨어지는 점입니다. 캐스팅이라면, 추억의 배우 데니스 퀘이드의 노병 연기도 반가왔어요.
아울러 주인공이 공병 출신이라서 로봇의 약점을 눈치채고 해치운다는 마지막 장면의 설득력도 꽤 높은 편입니다. 맨 앞의 차량 정비 장면과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군인들이 강력한 외계 크리쳐와 싸워 극히 일부만 겨우 살아남는다는건 "에일리언(2)"과 비슷하고, 이 마지막 장면 전까지는 엇비슷한 재미를 주지만 마지막 10여분이 영화를 완전히 망쳐버려서 아쉽습니다. 외계 로봇의 습격이라는 전 지구적인 재앙이 닥쳤는데 레인저가 되는 결승 라인에 도달하는게 지상 목표라는 주인공의 모습부터 황당했는데(최소한 부상자는 의무병에게 바로 인계했어야지요), 이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미국식 영웅 만들기는 도대체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게다가 막 복귀해서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다시 전우들과 출동한다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어이를 상실케 합니다.
비유하자면 "에일리언"의 리플리가 살아서 귀환한 뒤, 군인들 앞에서 일장 연설하고 선봉에 서서 에일리언을 박살낸다는 에필로그가 이어지는 셈입니다. 

이 마지막 10여분 때문에 감점해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거만 없었어도 별점 3점 이상도 충분한데 아깝네요.
그래도 앨런 리치슨이라는 배우의 액션은 믿을만하다는 확신이 생기기는 합니다.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싶군요.

2024/01/03

경성크리처 에피소드 1~7 (1차 공개분) (2023) - 정동윤 : 별점 2.5점

안녕하세요! 2024년 새해가 밝았네요. 찾아주신 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2024년 첫 포스트는 요새 가장 뜨거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리뷰입니다. 연말 연휴 기간에 감상하였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있었습니다. 크리처 모험물은 굉장히 뻔한 장르물인데,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와 '일본군에 의해 폐쇄된 병원'이라는 공간이라는 무대에서 비롯된 변주가 아주 괜찮았어요. 시대적 배경은 장태상이 목숨을 걸고 병원에 잠입하는 이유 - 막바지에 몰린 일본에 의해 모든걸 잃을 처지가 되어서 - 라던가 일본군이 잔혹한 생체 실험을 거듭하는 이유 - 패전을 뒤집기 위해? - 와 같은 핵심 설정을 잘 설명해주며,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탈출극도 여러가지 조건 - 장태상과 관계된 인물이 내, 외부에 다수 있었다는 등 - 덕분에 굉장히 흥미롭게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장태상의 탈출 계획도 헛점은 많지만 여러 액션들과 함께 그럴듯하게 펼쳐져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요. 한 마디로 크리처 모험물 장르로는 손색없는 수준입니다.
돈도 많고, 싸움 실력도 빼어나고, 머리도 비상한데다가 경성 북촌의 핫가이다운 잘생긴 외모도 빼 놓을 수 없는 위트 넘치는 완벽남 장태상 캐릭터도 좋았습니다. 제 취향에 딱 맞았기 때문입니다. 박서준도 적역을 맡은 느낌이에요.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셋트 티가 물씬나는 미술, CG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이 작품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괴물의 강력함이나 무서움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건 큰 단점이에요. 질소로 쉽게 잡을 수 있다는 설정도 좀 곱씹어봐야 하지 않았을까 싶고요.
이야기 개연성도 부족한 부분이 많으며, 분량 낭비에 가까운 설정과 장면도 제법 됩니다. 대표적인게 애국단 멤버들이지요. 왜 나온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괴물이 윤채옥의 모친이었다는 약간의 반전도 뻔했습니다. 한국적 신파도 과한 편이에요. 
배우들도 모두 명배우들이나 일부 배우들의 일본어 연기는 부족하다는게 느껴져서 거슬렸습니다. 

하지만 재미 측면에서는 합격점입니다. 일부 매체의 혹평은 이해가 안되네요. 장르물로는 차고 넘치는 수준인데 말이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다음 에피소드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도대체 누가 약을 먹었을까요? 윤채옥이 모친처럼 괴물이 될까요? 아기를 가진 명자가 괴물을 낳게 될까요? 아... 궁금합니다!

2011/11/08

더 크레이터 2 / 3 - 데즈카 오사무 : 별점 1점 / 1.5점

The Crater 더 크레이터 2 - 2점 데즈카 오사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The Crater 더 크레이터 3 - 4점 데즈카 오사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1권을 읽고 실망한 나머지 더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관성으로 결국 읽게 된 2, 3권입니다.

그런데 1권과 동일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더군요.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시대를 뛰어넘는 아이디어, 설정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이야기의 장르적 속성이나 전개 방식에도 많은 의문점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수준 이하라고 생각되었어요.

각 권마다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자면, 2권은 쌈장 고딩 오쿠친을 주인공으로 한 3편의 이야기 "오쿠친의 기괴한 체험", "운이 좋은 계절", "오쿠친과 위대한 괴도"로 시작하는데 도라에몽의 청소년판 같은 느낌입니다. 유령과의 이상한 거래나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 미래에서 온 또 다른 나라는 설정과 과학적인 근거나 배경 설명 없이 밑도 끝도 없는 대소동이 일어난다는 전개가 유사하거든요. 그러나 도라에몽처럼 작정하고 아동 - 개그물로 나간 것도 아니고, 나름 진지한 복선을 깔고 있으면서 결말이 뭔가 석연치 않다는 점에서 이도저도 아닌 듯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차라리 작정하고 즐겁게 달려주었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토모에의 가면"은 초·중반은 진지한 괴담류의 호러물인데 마지막 결말은 개그에 불과한 당황스러운 작품으로 디씨에서 봄직한 썰렁 호러 개그 수준의 졸작입니다. 좋은 점을 찾는다는 게 힘들 정도였습니다.

"3명의 침략자"는 데즈카 오사무가 중요한 배역으로 등장하여 스스로의 희생으로 분위기를 호러스럽게 만들기는 하나, 이후의 결말이 개그스러울 뿐 아니라 독자의 상상의 범주 안에 머무르기에 역시나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나름의 반전이 있다는 점 하나는 괜찮았기에 "토모에의 가면"보다 살짝 좋은 정도랄까요? 별 차이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긴 합니다.

3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팔각형의 저택"은 두 명의 내가 있다는 전형적인 패러렐 월드물인데 설득력 없는 전개에 더하여 급작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결말은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생각하기가 귀찮아서 대충 마무리한 느낌마저 들어요.

"브룬넨의 수수께끼"는 지금 읽기에는 낡아 빠진, 뻔하디 뻔한 판타지 멜로 + 크리처물입니다. 미지의 미녀와 그녀의 애인, 우연히 사건에 휩쓸린 주인공과 그들을 위협하는 미녀와 관계 있는 크리처라는 설정과 이야기 모두 너무나 전형적이어서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지...

"추락기"는 독특한 반전 블랙코미디 장르물이기는 하나 역시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래된 소재와 설정, 전개였습니다. 더 웃겨줬더라면 점수를 줄 만했는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상당히 묵직한 정통 SF "크레이터의 남자"도 발상과 전개, 주제의식은 좋았으나 지금 읽기에는 핵전쟁의 공포가 만연했던 냉전 시대의 흔해빠진 SF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아예 볼 만한 작품이 없는건 아닙니다. 2권에서의 "두 개의 드라마"는 어이없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결말의 반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게 나름 명쾌한 맛이 좋았습니다. 3권의 "풍혈(風穴)"은 설정이 황당하고 전개도 설득력이 없기는 하나 결말이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던 심리 호러물이었고요. 복잡한 인간 군상이 폐쇄된 비행기 안에서 대형 독거미로 갈등을 일으킨다는 "졈보"도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는 확실한 편이라 읽을 만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인 분량에 비해 좋은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은 많이 빈약한 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네요.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솔직히 그린 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느낌이에요.

별점은 2권은 1점이고 그나마 읽을 만한 작품이 더 많은 3권은 1.5점입니다. 역사적이고 자료적인 가치 이외의 다른 장점을 찾기는 어려웠고 가격도 많이 비싼 편이니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작가의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6/01/18

엠브리오 기담 - 야마시로 아사코 / 김선영 : 별점 3점

엠브리오 기담 - 6점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읽었던 서평이 기억에 남아 주말 동안 읽기 위해 집어든 책으로 에도, 아니 메이지로 보이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환상 문학 단편집입니다. 온천에 대한 여행기를 쓰는 길치 이즈미 로안과 그의 짐꾼이자 동료인 미미히코가 등장하는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대물 설정, 거기에 전부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괴담이라는 점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이나 교코쿠 나쓰히코의 작품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 작품들보다는 환상 문학에 훨씬 가깝고, 교코쿠 나쓰히코의 작품들보다는 읽기 쉽고 명확한 내용이라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수록 작품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에서는 레이 브래드버리나 리처드 매드슨 등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구태여 구분하자면 "엠브리오 기담"은 일상계 크리처물, "라피스 라줄리 환상"은 윤회 판타지, "수증기 사변"과 "끝맺음"은 일상계 괴담, "얼굴 없는 산마루"는 일상계 드라마, "있을 수 없는 다리"는 전형적 괴담, "지옥"은 끔찍한 고어 호러, "빗을 주워서는 아니 된다"는 괴담 분위기의 자살극으로 넓은 장르를 포용하기 때문입니다("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는 그냥 사족입니다). 

이렇게 많은 장르물을 포괄하면서도 대체로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인다는 점도 대단합니다. 코미디에서 호러까지 오가는 선배 작가들만큼의 넓은 변화 폭은 아니긴 하지만요. 이 정도면 이름 모를 작가 치고는 제법이라 생각했는데, 후기를 보니 야마시로 아사코는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이더군요. 솔직히 취향이 아니라 많은 작품을 찾아 읽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팔색조 매력은 여전한 듯 하여 아주 반가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초 서평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도 오츠 이치의 이색작이라는 소개 때문이었던 듯 싶습니다. 이놈의 기억력...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제법 있는 등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이 정도면 null괴담물로 기본은 해 주었으며, 오츠 이치의 단점이라 여겼던 만화적인 상상력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좋은 작품입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사족인 마지막 이야기를 제외한 별점은 3점입니다. 괴담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덧 1 : 앞서 말씀드린 대로 수록 작품들의 장르가 천차만별이지만 절반 이상이 '괴담'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추리 / 호러' 장르로 분류합니다.

덧 2 : 저도 온천을 좋아하는데 딸아이가 좀 더 크면 온천이나 다녀봐야겠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끔찍한 경험은 사절입니다만 끔찍한 경험을 한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가 그래도 온천을 다니는 것을 봐서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게 분명하겠죠.

단편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엠브리오 기담"

미미히코는 갓난아기 전 인간의 모습인 '엠브리오'를 우연히 구했다. 금세 죽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엠브리오는 살아남았고, 도박빚에 시달리던 미미히코는 엠브리오를 이용하여 돈 벌 계획을 세우는데...

인간의 태아(이전 단계)인 '엠브리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엠브리오에 대한 설정 - 하얀 애벌레 같아 허여멀건 몸뚱이에 볼록 튀어나온 배, 발달이 덜 되어 단순한 돌기에 지나지 않는 손발, 몸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머리에 점을 콕 찍은 듯한 눈, 도마뱀처럼 꼬리 같은 것까지 있고 갓난아기 피부와 내장 표면의 딱 중간 정도 피부로 쌀뜨물을 먹고 미지근한 물을 좋아한다 등등 - 이 실제 존재하는 생물처럼 상세하다는 것이 재미 요소입니다. 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기묘한 상상력'이 크리처에 발휘된 환상 문학이지요.

다만 결말은 아쉽습니다. 아이를 원하는 부부에게 엠브리오를 넘겨 무사히 출산하게 하고, 수년이 지나 미미히코와 그 아이가 재회한다는건데, 공식대로라서 식상했던 탓입니다. 그래도 더 이상의 좋은 결말을 찾기는 어려웠으리라 짐작되며, 전체적으로는 무난한 수준이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라피스 라줄리 환상"

도매 서점에서 일하는 린은 행수 어르신의 지시로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의 여행에 동행했다.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일행은 마침 발견한 마을에서 잠깐 머무는데, 다음날 촌장의 증손자가 고열로 쓰러졌다. 마침 린이 가지고 있던 약으로 아이는 생명을 구했고, 답례로 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라피스 라줄리(유리)'를 선물하는데...

린이 '라피스 라줄리'를 받은 이후, 인생을 되풀이한다는 윤회 판타지입니다. 윤회를 하면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내용도 잔잔하니 읽을 만한데, 작품의 핵심은 반전입니다.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촌장 노파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태어날 때 죽는 어머니를 위해 뱃속에서 탯줄을 스스로 목에 감는 방법으로 자살을 한다는 결말이거든요. 행복한 결혼 생활도 해 보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공부도 해 보았지만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것인데 참 절절했습니다.
다른 수록 작품과는 다르게 미미히코 시점이 아니라 린 시점 묘사라는 점도 특이했고요.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라피스 라줄리의 힘이 어디서 온 것인지 등 세세한 설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린은 이전 기억을 계속 쌓아나가기 때문에 환생할 때마다 강해질 수밖에 없는데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건 설득력이 약해 보였거든요. 미래도 읽을 수 있고, 그에 어울리는 공부도 한다면 세계를 바꿀 만한 재산이나 세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증기 사변"

로안과 미미히코는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뒤 산기슭 온천 마을을 찾아냈다. 둘은 마을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여관에 묵으며, 마을 온천을 밤에 찾아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밤에 온천에 몸을 담근 미미히코는 어린 시절 소꿉친구로 죽어버린 유노카를 온천에서 만는데...

저승과 연결되어 있는 온천을 그리고 있습니다. 유령이 등장하는 괴담으로 죽은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 어린 시절의 추억과 유노카의 죽음에 대한 진상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잔잔한 일상계입니다. 마지막에 미미히코가 유노카의 모습을 떠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문제는 너무 잔잔해서 극적인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유노카의 죽음이 단순 사고보다는 드라마틱했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사실은 미미히코의 잘못으로 죽었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끝맺음"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가 묵어 가게 된 바닷가 마을. 그곳은 모든 사물이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기묘한 곳으로 식재료마저 그랬던 탓에 미미히코는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해 아사 직전에 놓이는데...

모든 사물이 사람의 얼굴로 보인다는 이토 준지스러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기묘한 작품입니다. 만화나 영화 같은 시각 매체로 발표되었더라면 굉장히 그로테스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상상의 여지가 더욱 많은 소설이 섬찟함을 느끼게 하는 데 더 좋긴 하겠지만요.

게다가 굶어 죽기 직전의 미미히코가 자신을 끔찍하게 따르던 닭 아즈키를 잡아먹고 살아난다는 결말도 마음에 듭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혼자 살아남기 위해 친구를 팔아넘기고 살아남는 왕따물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마을의 정체가 무엇인지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조금 감점합니다만,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있을 수 없는 다리"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는 근사한 구름다리를 발견했다. 허나 마을에서는 구름다리는 이미 사십 년 전에 무너졌다고 했다. 둘의 말을 들은 숙소의 노파는 밤중에 넌지시 구름다리로 데려다 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는 구름다리가 무너졌을 때 아들을 잃었는데, 지나는 여행객들로부터 다리에서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미히코는 다리에서 노파의 아들을 발견하고 둘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감동적인 상봉을 기대했지만 실상 소년은 그야말로 '귀신'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는 존재였다는 반전이 돋보입니다. 이전 수록작인 "수증기 사변"과 비슷한 작품이라 생각하고 읽다가 깜짝 놀랐네요. 하긴 이게 귀신의 본모습이겠죠.

반전에 더해 묘사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소설보다는 영상화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귀신이 본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의 묘사도 좋지만, 특히 귀신이 노파를 데려가려고 하자 그녀가 미미히코를 붙잡고, 미미히코는 욕설을 하면서 노파를 어떻게든 떼어 내려 하는 처절한 묘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재미도 있고 반전도 있는, 괴담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얼굴 없는 산마루"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가 우연히 방문한 마을 사람들은 미미히코를 보고 놀랐다. 이유는 그가 사고로 죽은 마을 사람 모키치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미미히코가 자신과 똑같이 생기고 비슷한 인생을 살아간 모키치의 가족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는 일상계 소품. 잔잔하고 여운을 주는 내용은 좋았습니다.

허나 모키치의 아내 야에의 말을 듣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는 뻔한 결말, 그리고 미미히코가 모키치와 모든 면에서 똑같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는건 단점입니다. 그냥 닮았다고만 해도 충분했을 텐데 흉터까지 같다는 것은 무리수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조금 쉬어가는 느낌의 작품입니다.

"지옥"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는 여행 중 강도를 만났다. 사로잡힌 미미히코는 신혼부부 후지와 요이치와 함께 축축한 구덩이 속에 갇혔다. 셋은 강도 가족이 던져주는 육포 조각을 먹으며 삶을 이어갔는데, 강도들이 한 명을 꺼내 준다고 제안해서 여성 후지를 올려 보냈다...

구더기 그득한 축축한 구덩이 감옥 묘사도 사람 잡는데, '후지가 빠져나간 뒤 육포가 아니라 신선한 고기가 던져진다'에서 시작되는 공포스러운 묘사가 압권인 작품입니다.

핵심은 강도 가족이 사람을 죽여 먹고, 가죽으로 생활용품 등을 만든다는 설정으로 스코틀랜드의 소니 빈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게 분명해 보입니다. 허나 단순히 영감을 얻은 수준은 아닙니다. 아이가 사람 얼굴 가죽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노는 등의 디테일이 잘 살아 있거든요.

이러한 묘사에 더해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미미히코가 머리카락을 엮은 줄을 이용하여 요이치를 끌어 올렸던 밧줄을 회수하고, 구덩이에서 탈출하여 역으로 강도 가족을 구덩이에 쳐 넣는 데 성공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찾아가 보니 강도 가족이 구덩이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기에 뚜껑만 덮고 도망쳐 온다는 결말까지 정말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로 몰입감을 선사해 줍니다. 이런 류의 돌직구 고어 호러는 오츠 이치의 특기이기도 하죠. "ZOO - seven rooms"처럼요.

물론 해당 단편과 단점은 동일합니다. 왜 강도 가족이 포로를 잡자마자 죽이지 않고 귀한 육포를 먹여 가며 살려두는지가 설명되지 않는 점 등 세부 설정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제법 있는 탓입니다.

그래도 섬찟함과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은 수록작 중 최고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전 작품이 쉬어가는 느낌이라 공포심이 더욱 배가된 듯한데, 목차도 작가의 의도인지 살짝 궁금해지는군요.

"빗을 주워서는 아니 된다"

전편의 경험으로 미미히코가 여행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즈미 로안은 다른 고용인과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로안은 미미히코에게 동행인이 죽었다며, 그의 죽음에 대해 알려주는데...

떨어진 빗을 줍는 것은 고통과 죽음을 줍는 것이기에 꼭 빗을 주워야 할 때는 발로 한 번 밟은 뒤 주워야 한다는 설정이 바탕입니다. 빗을 그냥 주웠다는 고용인이 머리카락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데, 입에 들어 있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니 엄청난 양이 나왔다는 부분까지는 평범한 괴담입니다.

그러나 노파가 빗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거짓말로 그가 지어낸 이야기이며, 머리카락은 죽은 어머니의 것이라고 밝혀지는 결말이 아주 독특했습니다. 괴담을 너무 좋아한 청년이 자작극을 벌이면서까지 괴담이 되려 했다는 내용이니까요. 누군가의 이야기가 괴담이 된다는 점에서 "백귀야행"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단순 괴담이 아니라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

결혼한 뒤 온갖 괴롭힘을 당하던 여자가 우연히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데...

이즈미 로안이 길치가 아니라 사실은 차원을 이동하는 능력을 가진 텐구의 자식이라는 설정을 알려주기 위한 이야기.

단순한 설정 보강용이라 하나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자를 괴롭히던 시댁에 뭔가 천벌이 내렸다는 이야기라도 있었더라면 완결성이 있었을 텐데요. 별점은 빵점입니다.

2014/01/27

세계대전 Z - 맥스 브룩스 / 박산호 : 별점 3점

세계대전 Z - 6점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의 저자가 쓰고, 브래드 피트의 영화로도 제작된 "월드워 Z"의 원작 소설입니다. 좀비 관련 소설은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 나름 유니크한 책이었던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저자가 썼고 평도 좋아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무려 5년 전인 2008년에 출간되었으니 좀 늦은 감은 있습니다만...

장점이라면 단순한 크리처물이 아니라 일종의 재앙물로 접근하고 있는 점과 "논픽션" 스타일의 인터뷰 중심 전개를 통해 큰 현실감을 가져다 준다는 점입니다. "대공포"라고 불리는 좀비의 창궐과 그 이후 벌어진 극심한 혼란, 그리고 마지막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장대한 과정을 거의 전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인터뷰어를 등장시켜 전개하고 있으니까요. 덕분에 극적인 효과도 더 크게 느껴집니다. 피난 행렬이 엄청난 교통 체증을 유발한 고속도로를 좀비들이 덮치는 과정에 대한 증언, 캐나다의 겨울을 이용하여 피난하려는 생존자들이 인육을 먹게 되는 과정에 대한 증언, 인도 히말라야의 교통로 차단 작전과 작전의 성공으로 끊긴 도로로 좀비들이 몰려와 절벽 밑으로 떨어지면서 물소리 같은 - 뚝뚝뚝 - 소리가 들린다는 증언 등이 대표적입니다. 인터뷰어의 증언이 아니라 일반적인 소설의 묘사 방식이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와 닿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인터뷰어들이 비교적 평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이색적이면서도 현실성을 배가시켜 줍니다. 한 생존자가 동네 청년 총각파티를 해주기 위해 유일하게 동작하는 DVD 플레이어와 포르노를 몇 편 구했는데 러스티 캐넌이 회백색 BMW Z4 위에서 벌이는 정사 장면을 보고 "와우, 이런 차는 더 이상 안 만들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장면은 정말 최고였어요!

또 작가가 나름 크리처를 상대로 한 위대한 전쟁이라는 주제를 시니컬한 유머로 변주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UN본부 회의에서 좀비에 대한 공격을 천명하며 감동적인 연설 - "인류로 돌아가는 길고 힘든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지구상에서 한때 자부심에 넘쳤던 영장류의 퇴행성 권태를 택할 것인가? 그게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고,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선택이다" - 을 하지만 그것을 들은 인터뷰어가 "전형적인 백인들의 헛소리. 궁둥이는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별을 잡아보겠다고 용을 쓰는 꼴. 이게 만약 백인 영화였다면 얼간이 몇 놈이 일어나서 천천히 박수를 치고, 거기에 화답해서 나머지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쳐대고, 누군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식의 인위적인 개지랄을 보겠지만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움직이지도 않았다"라고 말하는 장면처럼 말이지요(그간 제가 느껴왔던 감동이 백인 중심의 인위적인 개지랄이었다니 입맛이 좀 쓰네요.).

그 외에도 다양한 국가가 등장하여 세계 정세를 가상 역사 SF처럼 펼쳐나가는 전개도 꽤 흥미를 돋우는 부분입니다. 미국 중심이기는 하나 그래도 다른 국가들에 대한 안배도 공평한 편이거든요. 관련 자료는 인터넷에도 많이 등장하기에 구태여 소개드리지는 않습니다만, 한국이 등장하고 특히 북한은 인구마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잠잠한, 이른바 "땅굴도시" 속 좀비 국가가 되었으리라 하는 부분은 좀 오싹했습니다. 쿠바가 지형적 이점을 활용하여 완벽하게 좀비와 격리되어 최고의 부국으로 성장한다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그러나 단점도 존재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좀비의 위험을 너무 과장되게 그렸다는 겁니다. 과거 그 어떤 전투와 전쟁에서도 압도적인 무기의 존재는 병력 수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 무기와 전술이 "없다시피" 한 좀비와 초현대식 무기로 맞서 싸운 모든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고립된 건물이나 지하와 같은 특수 장소도 아니고 평원에서의 전투에서 그러한 결과는 사실 말도 안돼죠. 이 점은 엔위하키 미러의 6.1 현대 무기의 과소평가와 일치하니 참고하세요.

아울러 좀비가 사람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생명체에게 달려드는데 다른 생명체(쥐라던가 개라던가..)는 왜 좀비가 되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도 의아했습니다. 생명체 전부에게 좀비 바이러스가 전염되었더라면 인류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텐데, 너무 대충 넘어간 것 같아요. 좀비의 목적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라면, 결국 어느 정도 이상 좀비가 불어나면 더 좀비가 되는 사람은 없지 않나? 라는 의문도 마찬가지고요. 왜냐하면 살점은 다 뜯어먹힐 테니까요.

또 무의미하달까... 늘어지는 분량도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레데커 플랜 같은 경우 꽤나 비중 있게 등장하지만 잔인하고 이기적인 생존본능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 외에는 등장하나 안하나 별 차이는 사실 없습니다. 전쟁에서 이런 이야기가 드문 것도 아니잖아요? 당장 우리만 해도 6.25 때의 한강 인도교 폭파와 같은 좋은 사례도 있고 말이죠. 뭐 최악은 뭐니 뭐니 해도 일본의 "방패회" 관련 서술이지만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추천작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재미 하나만큼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니까요. 킬링타임용 독서로는 이만한 선택도 드물 것 같기에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 특히나 좀비에 대해 관심 있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와 함께 읽으면 더욱 큰 재미를 느끼실 겁니다.

2026/05/08

금지된 장난 - 시미즈 가루마 / 최주연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오토 가족은 교외 주택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나오토의 아내 미유키가 교통 사고로 끔찍하게 사망한 후, 어린 아들 하루토는 어머니의 손가락을 마당에 묻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소생시키기 위해서였다.

그 뒤, 예전 나오토의 직장 동료였던 프리랜서 카메라맨 히로코에게 괴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히로코는 과거 나오토와의 불륜을 의심했던 미유키로부터 괴현상 공격을 받았던걸 떠올리고 나오토를 찾아가는데... 

시미즈 가루마의 장편 호러 소설입니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기를 바랐지만, 돌아온건 그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다는 익숙한 설정의 작품입니다. 설정은 무척 뻔하지만, 초중반부에 미유키가 이형의 존재로 자라나는 과정은 꽤 섬뜩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아내가 재생하고 있다는걸 눈치챈 나오토가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외딴 집 담 안쪽에 스스로 더 높은 담을 두르는 등의 과정 묘사가 좋습니다.

높은 담을 두른 집 내부가 나오토와 함께 점점 황폐해지는 과정, 이와 반대되는 하루토의 명랑함이 공포심을 잘 자극해 줍니다. 나오토의 집을 방문했던 히로코의 카메라에 살짝 찍힌 마당을 확대했을 때, 움직이던 흙무덤 사이로 미유키의 눈알이 보였다는 묘사는 화룡정점이에요. 직접적으로 괴물을 보여주는 것보다, 사진 속에 우연히 찍힌 일부를 통해 마당 밑에서 무언가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하게 만드는게 확실히 더 효과적이더군요. 아마 영상화된다면, 이 장면만큼은 엄청날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이런 간접적 묘사에 이어지는, 거의 좀비 상태로 부활한 미유키가 히로코, 나오토를 쫓는 추격전도 크리처 호러물로서 기본은 해 줍니다. 미유키를 키운건 미유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미유키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 하루토의 힘이었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고요.

하지만 장점은 일부일 뿐, 사랑하는 사람의 부활과 재앙, 순진하지만 악마였던 아이, 원령의 질투에 이은 빙의와 폴터가이스트, 좀비에 가까운 크리처 호러까지 인기 있을 만한 소재들을 잔뜩 끌어왔지만 새로운건 하나도 없는 진부한 망작입니다. 나오토가 하루토의 살점을 마당에 묻고 부활을 기도하는 에필로그마저도 진부합니다. 뻔한 소재를 가져다가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하며 마무리했다는 느낌만 줍니다.

이야기도 완성도가 부족한데, 가장 큰 이유는 히로코가 위험에 빠진 이유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나오토가 과거 히로코에게 호감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두 사람 사이에 구체적인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미유키가 단지 남편이 호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히로코를 저주하고 죽이려 한다는건 너무 억지스러웠어요. 물론 이런 질투가 하루토 때문이라는 설명이 살짝 덧붙여져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단지 호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위험에 빠진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네요. 

후반부 추격전도 박진감에 비해 공포는 부족했습니다. 부활한 미유키는 흉측하기는 하지만, 정확히 어떤 능력을 가진 존재인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좀비에 가까운 괴물처럼 보이기도 해서, 성인 남녀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퇴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초반부에 보여준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나 중반부의 빙의 같은 능력이 마지막 추격전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앞에서 여러 초자연적 능력을 보여주었다면, 마지막 폭주 장면에서도 그 능력들이 결합되어 더 위협적인 공포를 만들어냈어야 했습니다. 결국 화재로 전소하고 만다는 결말도 시시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진부하고 별로 무섭지도 않아서 점수를 줄 부분이 거의 없네요. 추천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2014/09/30

하늘의 공포 - 아서 코난 도일 외 : 별점 2.5점

표제작을 포함한 6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입니다. "직지 프로젝트"의 결과물 중 하나로 구글북스를 통해 무료로 읽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한데, 번역 및 책의 구성이 초등학생 수준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각 단편 서두에 실려 있는 짤막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소개도 학습 문고 스타일이고요. 예전에는 이런 책들도 이렇게 포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하긴 하네요.

수록된 작품들은 대부분 괜찮지만 이렇게 대상 연령대에 맞추어 가공된 탓에 저 같은 일반인 독자가 읽기에는 여러모로 조금 애매했습니다. 평균 별점은 2.5점 정도? 무료이니 한번 읽어보시고 괜찮다 싶으시면 정식 번역본(비록 많지는 않지만)을 구해 읽어보는게 좋을겁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사나이" H.G 웰즈

지구가 갑자기 멈추면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는 고전적인 과학 지식이 등장하는 유명한 꽁트. 포저린게이가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반전의 묘미가 살짝 있기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은 작품이죠. 별점은 2점입니다.

"하늘의 공포" 아서 코난 도일

비행기로 고공 기록에 도전할 경우 비행사들이 이상하게 죽는 - 비행기 잔해는 발견되었지만 비행사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든지, 겨우겨우 비행장에 돌아와도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는다든지, 시체의 머리만 없어진 채 발견된다든지 - 사건에 도전한 영국의 명조종사 조이스 암스트롱의 수기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코난 도일 경도 초창기에는 수기 형식을 굉장히 애용한 듯 싶네요. "J. 하버쿡 젭슨의 진술"처럼요. 이 수기가 몇 페이지가 찢겨져 있다며 궁금증을 자아내는 도입부는 아주 괜찮았어요.

그러나 암스트롱이 "고공밀림"이라 부르는 곳에 도달하여 그곳에 사는 괴물들과 조우한 내용을 간략하게 다루며 끝나버려 실망스러웠습니다. 딱히 대단한 수수께끼가 있지는 않은 그냥저냥한 크리처물에 불과한 탓입니다. 수기의 마지막 글 "아아 이제 끝장이다"는 여운이 남기기는 하지만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작은 거인" 폴 F 에른스트

1만 미터가 넘는 깊이의 구리 광산 갱도에서 신발을 신은 인간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다. 그리고 난장이들의 유령이 보인다는 설이 퍼지는데...

지하에 거주하는 난장이 인간에 대한 상상력을 펼친 SF입니다. 지하는 기압이 높고 열도 높은 탓에 지하 인간의 몸은 분자구조 자체가 단단하게 되어 콘크리트 같은 물질도 물처럼 유영할 수 있다는 설정은 재미있었습니다. 발자국 화석도 밀도가 높아서 무게로 그냥 땅이 푹푹 파였다는, 설정을 뒷받침해주는 증거였지요(물론 현실성은 없습니다만).

또 지하 인간들이 지성인으로 나름의 과학기술을 갖추고 있지만, 굉장히 호전적이라서 주인공의 친구를 죽이고 표본으로 삼기 위해 시체를 가져가려 한다는 일종의 크리처물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주인공이 지하 인간의 지구 정복이 머지않았다고 절망하는 결말도 나름 괜찮았고요. 

다만 주인공의 걱정을 뒷받침해주는 복선이 약간이라도 등장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벽속의 아프리카" 레이 브래드베리

아이들 방이 가상현실을 투영한 공간으로 바뀌는 고도로 자동화된 세계에서 벌어진 기이한 참극입니다. 섬뜩한 SF의 거장인 레이 브래드베리 (브래드버리)의 솜씨가 잘 발휘된 단편으로,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에 수록된 "대초원에 놀러 오세요"와 동일한 작품이지요.

"왜 가상현실의 사자가 현실이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자동화된 기계에 모든 것을 맡겨 극도로 이기적이면서 양심과 도덕에 대해서 둔감해진 아이들에 대한 묘사는 지금 읽어도 섬찟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우주 스파이" 필립 K 딕

우주인과 전쟁 중인 지구에 우주인이 지구인과 똑같이 생긴 폭탄을 몰래 잠입시키는데...

"사기꾼 로봇 (Imposter)"라는 제목으로도 유명한 작품이지요. 폭탄 로봇이 살해당한 원래 인간과 똑같은 인격을 지니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바디 스내쳐"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설정도 기발하지만 주인공 올햄이 자신은 로봇이 아니라고 믿으며 진상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사투가 긴박하게 묘사되며 마지막 결말까지 인상적인 걸작입니다. 아동용 축약 버전이 아니라 정식 버전으로 다시 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우주에서 온 거머리" 로버트 셰클리
"불사판매 주식회사"의 저자인 셰클리의 단편으로, 물리적인 모든 것을 흡수하는 바위(거머리)가 등장하여 점점 커져가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입니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거머리보다는 거머리를 배탈나게 하기 위해 굉장히 강력한 물리적 힘(수소폭탄)을 동원하는 멍청이 오도넬 장군의 폭주로 오히려 사건이 커지는 중반부가 인상적입니다. 원폭에 대한 시대적 공포를 반영한 풍자로 보이는데, 오도넬 장군이 억지로 거머리를 폭파시킨 뒤 더더욱 큰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는 결말까지도 완벽한 풍자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예전 "로보트 킹"에서 유탄이 에너지를 흡수하는 적에게 오도넬 장군 마인드로 킹의 모든 에너지를 때려넣어 과부하로 폭파시키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하긴 유탄은 무식한 놈이었지...

2024/01/21

경성크리처 에피소드 8~10 (2차 공개분) (2024) - 정동윤 : 별점 1.5점

먼저 공개되었던 1~7편 이후 나머지 에피소드를 드디어 감상하였습니다.
이전 공개되었던 에피소드는 크리처물로서의 가치는 물론이고, 옹성 병원에 갇힌 장태상 일행의 탈주를 긴박하게 그린 모험물로서의 가치도 높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나머지 에피소드들에 대한 기대가 컸었습니다.

하지만 8편에서 장태상마저 성공적으로 탈출한 이후, 다시 옹성 병원에 잠입하여 폭탄을 설치하고 날려버리는 과정은 굉장히 헐겁습니다. 윤채옥이 병원장을 살해하고 옹성 병원으로 다시 끌려갔고, 이를 구하기 위해 장태상이 다시 병원에 잠입하는 등의 전개 역시 병원에 다시 들어가야 할 이유를 억지로 만든 느낌이라 별로였어요. 태상과 채옥의 러브 라인과 마에다 상과 장태상의 사랑(?) 싸움도 지루했고요.
화룡정점은 흑막 마에다 상의 부하들에게 둘러쌓인 장태상과 윤채옥이 칼싸움을 벌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액션도 어설프고, 상황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수십 명이 단 두 명을 쉽게 처리 못하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총싸움에 왜 칼만 들고 와서 설친답니까? 이 장면을 슬로우모션까지 활용하여 길게 가져가느니, 빨리 탈출한 괴물이 나타나 마에다의 부하들을 쓸어버리도록 하는게 훨씬 나았습니다.
에필로그 직전, 이시카와의 장례식장에 폭탄을 설치하여 마에다까지 함께 날려버린 장면도 황당했어요. 폭탄 테러가 이다지도 쉽다면,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은 그동안 뭐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시즌 2를 처음부터 염두에 둔 듯 설명되지 않는 떡밥들도 제법 있는데, 이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입니다.

그래서 이 후반부만의 별점은 1.5점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시즌 2는 모쪼록 앞선 에피소드들처럼 긴장감을 가득 살린 전개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2010/09/24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 앰브로스 비어스 / 정진영 : 별점 3.5점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 8점
앰브로스 비어스 지음, 정진영 옮김/생각의나무

애드거 앨런 포를 잇는 미국 장르-환상-고딕-호러 문학의 귀재이자 기인인 앰브로스 비어스의 대표 단편선입니다. 최고의 문학 형식은 단편이라는 포의 말을 따르듯, 짤막한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가의 유명세야 익히 알고 있었고, 작품도 많이 들어왔기에 너무 늦게 읽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전쟁 소설 -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말 탄 자, 허공에 있었다" -부터 전형적인 괴담 - "막힌 창", "표범의 눈", "이방인" 등 -, 일상계 호러 - "인간과 뱀", "덩굴" 등 -와 크리처물 - "요물" - 까지 굉장히 다양한 장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장르를 하나로 특정하기는 힘들지만, 대체로 환상 호러 소설이라고 보는 게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괴하고 환상적인 상상력이 발휘되어 있어서 놀랐습니다. 100여 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어요. 뭔가 마약에 취한 듯한 정경과 분위기 묘사들도 일품이었고요. 또, 귀족적이고 근대에 가까운 스타일과 묘사가 많은 고딕 호러의 느낌보다는 '미국적'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물씬 풍기는 서부 개척 시대 분위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문체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마크 트웨인이 쓴 호러 소설 느낌입니다.

마지막의 서늘한 반전으로 섬뜩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은 것은 현대의 '기묘한 맛' 장르가 떠올랐습니다. 이런 장르물의 선구자격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상세하게 이야기하기에는 실린 작품들이 너무 많고, 모두가 빼어난 맛이 있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개기름", "시체를 지키는 사람", "인간과 뱀", "덩굴", "요물", "말 탄 자, 허공에 있었다"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상황에서 펼쳐지는 공포와 함께 나름의 반전이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몽환적이거나 서술이 복잡하지도 않았고요.

특히 "시체를 지키는 사람"은 시체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는 내기의 황당하고 충격적인 결말이 인상적인데, 나름 제 식으로 변주해서 풀어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크리처물 "요물"은 현대 유사 콘텐츠의 원형을 제공한 듯한 발상이 좋았고요. 투명 괴물이라니!

한마디로 장르문학, 특히 호러 팬이라면 당연히 봐야 할 작품집이 아닐까 싶네요. 책도 아주 예쁘게 나와서 마음에 듭니다. 제가 호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만, 단지 제 취향의 문제일 뿐입니다.

2021/07/17

THE 좀비스 - 중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THE 좀비스 - 중 - 4점
스티븐 킹 외 33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최필원 옮김/북로드

THE 좀비스 - 상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좀비가 핵심인 단편들을 모아놓은 앤설러지 두 번째 권인데, 전에 읽었던 상권보다 별로입니다. 어디선가 보았던 이야기에 좀비를 끼워넣었거나, 좀비가 왜 등장하는지도 모를 이야기가 많은 탓입니다. 뭔가 있어 보이게끔 노력했지만,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이고 알맹이 없는 이야기들도 많고요.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어요. 차라리 정통 좀비 아포칼립스물이라면 평작은 될 텐데 아쉽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한 권 남았는데, 다음 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군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톡홀름 증후군"

좀비 떼로 둘러쌓인 집에 갖힌 나는 아들과 닮아서 '빌리'라고 이름지은 좀비 관찰에 재미를 붙였다. 빌리는 이웃집 침입을 위해 판자를 뜯어내는 일에 골몰하는데...

제목 그대로 가해자인 좀비와 동질화되어, 좀비가 사람을 죽이는걸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감정을 잃어버린 주인공을 통해, '살아있는 것과 사는 건 다르다'는 걸 알려주는 작품. 그냥 버티기만 할 뿐, 이렇게 살아가는건 좀비와 다를게 없다는 거지요. 동질화된다는 측면에서는 전권의 "나처럼 죽어봐"와 조금 비슷한데, 이 작품에서는 절박함이나 처절함은 다소 부족한 반면, 조금 더 설득력이 높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웃집을 좀비떼가 습격하는 장면 묘사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주인공 사고 방식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더군요. 일반적으로는 총알이 딱 한 발 남을 때 까지 살아남아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거리로 뛰어들어 좀비가 되어 버리던가....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있고, 이런 저런 상황들이 있는 법이기는 하지만, 이런 사고 방식과 행동은 별로 와 닿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난극" 

페스트로부터 구해진 오버라머가우 마을 전통의, 10년에 한 번 진행되는 예수 수난극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을 위해, 좀비를 분장시켜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을 생각이었다. 마이어 신부는 이를 막으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했고, 결국 마지막에 신의 저주와 함께 파국이 찾아오고 만다.

마이어 신부는 좀비도 영혼이 있어서, 인간이 그들을 잔혹하게 이용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좀비에게 영혼은 있을리 없습니다. 이미 죽었으니까요. 종교적으로 논쟁거리가 될 여지도 없어요. 좀비를 연극 소품으로 잔혹하게 대하는 행동은 조금 거슬렸지만, 좀비들은 그동안 더 잔혹한 행동을 보여 왔으니 딱히 큰 문제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이게 문제라면 가축 도살이 더 큰 문제아닐까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마이어 신부의 행동은 도무지 공감할 수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좀비를 구해주려는 신부의 행동에 분노한 관객들이 신의 저주로 좀비가 된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페스트 유행 당시를 배경으로 했던 영화가 떠오릅니다. 페스트에서 안전했던 성에서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잔혹한 행동을 보이지만, 결국 성주에게 페스트가 전염된다는 결말이었는데, 페스트가 좀비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맥락이지요. 아니, 그보다도 못해요. 페스트는 어쨌건 공기로도 전염될 수 있지만, 좀비 바이러스가 급작스럽게 사람들에게 퍼진다는건 아무런 설명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종교를 끌어들인 전개는 무리수였을 뿐더러 새로움도 없고, 잔혹함도 덜합니다. 무섭지도 않고요. 점수를 줄 여지가 별로 없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름다운 것" 

테러로 희생된 러스티는 시체 소생 기술로 되살아났다. 정치인이 그의 희생을 선거에 이용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연설 당일, 러스티는 정치인 요구와는 다르게 죽음은 아프니, 삶을 즐기라는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죽은 사람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의 행태는 우리도 익히, 그리고 지금도 계속 보고 있습니다. 이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좀비로 비판한다는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이렇게 되살아난 테러범과 희생자 모두가 정치인 생각과 전혀 다른 진심을 털어 놓는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그들의 진심이 "죽기 전에 즐겨라!" 라니? 황당했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와 별로 다르지도 않지요. 좀비들이 이런저런 소품들에 환장한다는 설정도 기발했지만, 이 황당한 메시지 전달에 활용될 뿐이고요. 또 딱히 좀비가 등장할 필요도 없었어요. 유령이라던가, 빙의한 영혼이라던가, 뭐든 좋을 그런 이야기거든요. 진짜 아이디어가 아까왔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 

좀비들이 연극을 한다는 이야기로 공포 문학의 거장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좀비물에서 기대할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는, 기묘한 이야기였어요. 좀비들이 나름 지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특이했지만, 그들은 연극 외에 다른 목적이 없거든요. 식인 따위는 원하지도 않고요. 죽은 여배우가 섹스를 요구하는 장면이라던가, 사악한 제작자를 죽이는 장면 정도가 조금 섬찟했습니다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좀비들이 벌이는 연극으로 현재의 연극계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로 보는게 맞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렇다면 더 웃기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으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시체의 길" 

신으로부터 이 땅에서 악을 몰아내라고 명 받은 총잡이 목사 제비디아는 보안관보가 체포한 악당 빌을 호송하기 위한 여정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중간에 괴물이 나온다는 '시체의 길'을 지나가기 때문이었다. 그 곳을 지나가던 일행은 괴물이 된 양봉업자 기멧의 습격을 받게 되는데...

기멧이 괴물이 된 이유는? 저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납치했던 소녀가 죽은 뒤, 소녀 어머니가 저주한 것이지요. 그런데 저주로 죽기는 했지만, 기멧이 이내 벌통이 가슴 속에 위치한 괴물로 되살아났다는건 좀 이상하더군요. 이게 저주가 맞나요? 어차피 악당이었으니, 무적의 괴물이 되면 더 좋은거 아닌가 싶은데 말이지요. 

또 괴물의 설정도 죽은 자가 돌아온 것이지만, 벌 떼와 함께 이동하며, 초인적인 힘과 빠르기를 갖추고 있어서 일반적인 좀비와는 전혀 다릅니다. 식인이 목적도 아니고요. 그래서 좀비물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크리쳐물에 가깝습니다. 악을 없애기 위해 악을 접하면 불타는 성서, 악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은총알 등의 설정이 곁들여진 것도 크리처물 설정일테고요. 이야기 전개도 고생 끝에 괴물을 처치하는 크리처물 그대로라 특별한건 없습니다.

그래도 제비디아 목사의 활약은 화끈합니다. 괴물의 잔혹함도 잘 묘사되고 있고요. 덕분에 머리를 비우고 단순하게 읽는 킬링 타임 물로는 나름 적당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서부 개척 시대를 무대로 악을 멸하는 총잡이 신부가 등장하는 크리쳐물이라는 점에서는 "프리스트"가 연상되더군요. "프리스트"는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도 되었던 만큼, 나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바비 콘로이, 살아 오다" 

바비 콘로이는 배우로서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고향에서 맡은건 조지 로메로라는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이라는 영화의 좀비역이었다. 톰 새비니가 해 준 좀비 분장을 한 바비는, 촬영장에서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 해리엇과 재회했다. 그녀는 결혼해서 아들과 함께 분장하고 영화에 참여 중이었다...

좀비가 주제이기는 한데 방향이 굉장히 독특했던 작품입니다. 좀비가 아니라, 기념비적인 좀비 영화 "시체들의 새벽"에서 좀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이야기거든요. 아 이런 발상, 아주 마음에 들어요. 좀비를 주제로 단편을 써와! 라고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가이드에 맞춰서 첫사랑과 현재에 대한 달달하면서도 아련한 이야기를 써 온 셈이니까요.

하지만 행복한 해리엇 가족에게 바비가 나타나서 훼방을 놓는 결말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바비는 해리엇 가족, 특히 그 아들에게는 좀비보다 더한 괴물이 되는, 좀비물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지금 이야기는 발상에 비해 평이하고, 조금 뻔한 그런 이야기라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자들" 

칼라는 메레디스를 찾아와 심장마비로 죽은 남편 아서의 소생을 부탁했다. 그녀가 바람피운걸 사과하고자 하기 위해서였다지만, 되살려보니 아서는 칼라가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죽었던 것이었다. 살해된 좀비는 살인범을 죽이는게 본능으로, 칼라는 죄책감때문에 자살할 생각이었다...

작가의 인기 캐릭터라는 시체 소생 전문가 메레디스가 등장하는 작품. 살인자가 죄책감으로 피해자에게 죽기를 원한다는 설정과 시체 소생에 대한 이런저런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서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걸 알고 난 후, 칼라가 죽는 결말까지는 좀 시시합니다. 예상대로의 이야기였거든요. 뭔가 좀 의외성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별점은 2.5점은 충분합니다.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농학자 닥 프리먼은 좀비 떼를 피해 콜로니를 만들고 생존자들의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수립했다. 콜로니는 안전했지만, 생산과 성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출산은 금지되어 있었다. 아이가 생긴 톰 부부는 낙태를 지시받고, 콜로니 외부 클리닉으로 수술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좀비 때문에 격리된 폐쇄 공간은 생산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출산까지 관리한다는 설정은 꽤 설득력있었습니다. 낙태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외부 수술실로 향하는 아이러니도 기발했고요. 무엇보다도 낙태한 태아가 살아돌아오지 않는 걸로 보아, 그들은 생명이 아니라는 시각은 아주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여기에 좀비가 된 낙태 반대주의자를 날려버리는 결말을 더하니, 저자가 낙태를 찬성한다는건 잘 알겠더라고요. 

내용도 신선했고, 여러가지 볼 거리가 많았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서두에 소개된 저자가 주제를 찾은 방법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의 좀비 주체 작품이 극단적 섹스 장면을 등장시키는 경향이 강하다며, 지금까지 한 번도 다루어진 적이 없는 터부를 고민해보다가 정치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하네요. 가장 논쟁거리가 되는 정치 이슈가 '낙태' 였다면서요. 우리나라도 따지면 '부동산'을 주제로 좀비물을 쓴 격이겠지요? 아 이거 재미있겠네요.

"죽은 아이" 

동네 깡패 루크 브래들리의 무리에 가입하고 싶었던 나에게 브래들리는 조건을 내걸었다. 살아있는 아이 시체와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인공 소년이 희생양인 좀비 아이를 악으로부터 구해주고 구원받는다는 내용의 작품.

주인공 설정과 분위기 등은 모두 스티븐 킹의 "그것"이나 "스탠 바이 미"를 연상케합니다. 특히나 시골 마을에서 또래 깡패와 맞서 싸우는 아이의 성장기이며, 아이 시체가 중요한 소재라는건 "스탠 바이 미"의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아류작이면서도 "스탠 바이 미" 보다 훨씬 못하다는 겁니다. 주인공과 동생 앨버트는 좀비 시체를 상자에서 꺼내준 정도 밖에 한 게 없고, 이들의 여정도 하룻밤 나들이에 불과했기 때문이에요. 뭔가 성장을 기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과정이지요. 이 과정도 환상 소설처럼 모호하게 처리해서 고생스러움도 전혀 느낄 수 없었고요. 단편 분량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건 변명에 불과합니다. 최소한 브래들리의 패악질만큼의 설명은 해 주었어야 해요. 루크 브래들리의 깡패짓 말고는 드라마라고 부를 내용도 없고요. 게다가 아이 시체가 좀비일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시체여도 무방한, 그런 이야기거든요.

좀비 소재 단편을 의뢰받고 "스탠 바이 미"에 좀비를 우겨넣은 만들어낸, 졸속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 졸작. 별점은 1점입니다.

"좀비들과 함께라면" 

중 2병에 걸린 소녀의 성장기랄까요. 서정적인 1인칭 묘사는 괜찮았고, 좀비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 현실은 가혹하다는 메시지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0대 후반의, 직장 생활도 20년차가 넘은 아저씨에게는 별로 와 닿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가혹하더라도 받아들여야만 하는게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현실은 최소한 좀비보다는 낫습니다. 아울러 아무리 봐도 좀비물로 보기는 힘드네요. 작품에서 좀비가 진짜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좀비만도 못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방탕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어느날 마약과 술에 취한 채로 이상한 클럽을 찾았다. 좀비를 학대하고 죽이는 스너프 필름을 상영하는 곳이었다. 클럽에서 시간을 보낸 뒤, 그들은 일행이었던 제인을 죽이고 마는데...

변호사인 저자가 쓴, 브렛 이스턴 앨리스 소설의 패러디라는 작품. 원작을 모르니 뭘 어떻게 패러디했는지 모르겠는데, 내용도 잘 모르겠어요. 젊은이들의 타락과 방황을 묘사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게 좀비물인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이 좀비인건가요? 설령 그들이 좀비라 해도 그게 작품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괜히 뭔가 있어보이게끔 한 묘사들도, 결국은 별다른 알맹이는 없고요.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내용이 뭔지 이해할 수 없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미트하우스 맨" 

시체 취급자들이 시체를 조종해서 온갖 일을 하는 시대. 유능한 시체 취급자 트래거는 사랑을 찾아 이런 저런 곳을 전전하게 되는데...

"왕좌의 게임"의 작가 조지 R.R 마틴의 작품. 사랑없는, 자극만이 넘쳐나는 미래 세계에서 사랑을 찾아 떠도는 트래거의 모습은 "쿄시로 2030"의 쿄시로가 살짝 연상되더군요. 순정으로 접근하던 트래거가 여자에게 배신당한 뒤, 뒷골목 깡패나 하는 시체 검투 경기에 참여하게 되는건 곽철용의 명대사 "니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은, 마 그때는 깡패가 되는 거야!"가 떠올라서 좀 웃겼고요.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며, 별다른 드라마도 없는 탓입니다. 요약하면 "사랑을 믿었던 트래거가 배신당한 뒤, 돈과 향락을 택했다"는 지극히 뻔하고 뻔한 이야기가 전부에요. 작가가 쓸 때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고 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왠만한 단편보다는 긴 분량을 갖춘만큼, 소개되는 방대한 설정만큼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특히 제목의 '미트하우스' 관련 설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체를 살아있는 것 처럼 조종해서 성욕을 채워주는 곳인데, 시체 취급자가 아니라 피드백 회로를 통해 조종되고 있다는 등 이런저런 디테일이 빼어나거든요. 시체 취급자 (스트레커)와 관련된 설정들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야기가 별로라면, 좋은 설정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겠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6/05/31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5) 사람먹는 장르 문학

추리 소설을 비롯한 장르 문학에는 식인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소재 자체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한 번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독자에게 충격과 혐오감, 공포감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작품 속 식인은 모두 같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략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흔한 형태입니다. 사람을 말 그대로 ‘먹이’나 ‘식량’으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가장 단순하게는 사람이 평범한 먹잇감으로 취급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좀비물처럼 사람을 잡아먹는 크리처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하겠지요. 클라이브 바커의 "한밤의 식육 열차", 그러니까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은 조금 다릅니다. 작품 속 빌런인 푸주한 마호가니가 깊은 밤 지하철 승객들을 도살해 인육으로 만드는 이유는 직접 먹기 위해서가 아니거든요. 미지의 절대자에게 대접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먹이’가 아니라 ‘미식’의 영역으로 발전한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전에 소개드렸던 스탠리 엘린의 "특별요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계보를 잇는 타쿠미 츠카사의 "금단의 팬더"는 한술 더 떠서, 아예 인육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소재만 놓고 보면 끔찍하지만, 장르 문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사람을 먹이로 삼는 경우 중에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육을 먹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다시 재료의 정체를 숨기고 먹느냐, 대놓고 먹느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체를 숨기는 대표작은 고전 SF "소일렌트 그린"입니다. 작품 속 “소일렌트 그린”은 인구 폭발과 환경 오염으로 식량이 사라져가는 미래 세계에 등장한 먹거리입니다. 공식적으로는 플랑크톤으로 만들었다고 소개되지만 그 정체는! 영화사에 길이 남은 명대사 “Soylent Green is people!”로 밝혀집니다.

반대로 살기 위해 대놓고 사람을 먹는 작품 중에서는 스티븐 킹의 "서바이버 타입"을 끝판왕으로 꼽고 싶습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생존자가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조금씩 먹어버린다는 엽기적인 이야기인데, 스티븐 킹답게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묘하게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두 번째는 범죄 목적으로 식인을 행하는 경우입니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증거 인멸을 위한 식인일 것입니다. 로드 던세이니의 "두 개의 양념병"은 한 남자가 거처를 떠나지 않은 채, 함께 살던 동거녀를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든 사건을 다룹니다. 남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장작 패기라는 적절한 운동, 그리고 입맛을 돋우기 위한 ‘두 개의 양념병’뿐이었다는 내용이지요.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호러 "오메가의 성찬"은 여기서 한 술 더 뜹니다. 아예 전문적으로 시체를 ‘먹어서’ 폐기하는 괴인이 등장하니까요. 증거 인멸이라는 범죄 목적과 식인이라는 혐오 소재가 결합했을 때 얼마나 기괴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또 다른 범죄 목적은 복수입니다. “원수의 간을 씹어 먹는다”는 옛말처럼, 식인은 복수심의 극단적인 표현으로도 사용됩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카니발리즘 소론"에 등장하는 식인이 바로 이런 목적에 가깝습니다. 다만 시각은 조금 독특합니다. 범인이 동거녀를 죽이고 먹은 이유가, 그녀를 ‘변’으로 내보내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라니까요. 혐오스럽지만,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 발상입니다.

세 번째는 의학적 목적의 식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관련된 속설이 구전되어 왔고, 실제 사건도 존재합니다.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경성 죽첨정 단두여아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간질병의 특효약이 아이의 뇌수라는 속설을 믿은 범인이,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어린아이의 사체에서 뇌수를 긁어낸 사건이었지요.

비슷한 맥락에서 이우혁의 단편 "손가락"은 ‘문둥이가 아이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비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마리 유키코의 "여자친구"도 넓게 보면 이 범주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낙태한 태아의 사체를 섭취함으로써 극한에 이른 스트레스를 달래려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치료라기보다는 병적인 해소에 가깝지만, 몸과 질병, 치유에 대한 왜곡된 믿음이 식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는 의학적 목적의 식인과 맞닿아 있습니다.

네 번째는 식인을 특별한 의미 없이, 캐릭터 형성을 위한 장치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식인만큼 ‘광기’를 즉각적으로 드러내기 좋은 소재도 드물기 때문이겠지요. 토머스 해리스가 창조해낸 한니발 렉터 박사가 가장 유명한 예입니다. 사실 한니발의 식인 행위는 이야기의 구조 자체를 크게 바꾸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한니발이 평범한 인간의 윤리와 감각을 초월한 존재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각인시킵니다. 저는 아직도 “내 오랜 친구를 먹으러 가야 하거든”이라는 한니발의 대사만큼 유머러스하면서도 잔혹하게, 동시에 절대자 같은 면모를 드러내는 문장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식인이 캐릭터의 기괴함과 매력을 동시에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장르 문학 속 식인은 여러 목적과 형태로 변주되어 왔습니다. 먹이, 미식, 생존, 증거 인멸, 복수, 의학적 속설, 캐릭터의 광기까지. 충격과 혐오감,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이만큼 효과적인 소재도 드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많이 사용되어 이제는 더 새로운 설정이나 이야기가 나오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와카타케 나나미의 "광취"처럼, 제 분류로는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아이디어가 도입된 작품이 발표되는 걸 보면 여전히 놀랍습니다. 저도 언젠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해 보고 싶은 주제이지만, 러시아의 ‘인육을 먹었다는 살인마 부부 사건’ 같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자신이 없어지네요. 과연 실화를 뛰어넘는 창작물을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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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1

쥬라기 월드 - 콜린 트레보로우 : 별점 2.5점

딸아이 유치원에서 여름 캠프를 한다기에 정말 오랫만에 낮에 시간이 남아 와이프하고 둘이서 감상한 영화. 둘이서 데이트 할 때 추억을 떠올리며 보았습니다. 본지는 2주도 넘었는데 리뷰가 늦어졌네요.

영화는 뭐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크리처물 속성이지만, 테마 파크를 덮치는 일종의 자연재해라는 점에서 재난 영화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여튼, 숨쉴 틈 없이 위기가 연속되어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전체적으로 전작을 많이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 1편을 인상깊게 감상했던 90년대 학번으로 더욱 즐길거리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허나 이야기 전개가 깔끔하거나 합리적인 건 아닙니다. 아무리 조카들을 구해야만 한다고 해도 여성 행정요원이 공룡 공원으로 뛰어들어간다는 것부터 말이 안되니까요. 그 와중에 죽어가는 공룡을 보고 측은지심을 발동하는 것도 어처구니 없고, 악당놈은 렉터를 풀어서 뭘 어쩌려 했는지도 모르겠고, 주인공 꼬마 가족의 이혼 이야기는 완전 곁가지고요. 무엇보다도 마지막 장면, 티라노가 적 공룡을 제압하고 얌전히 돌아간다는 건 황당무계의 극치였습니다. 이럴 거면 진작에 풀어서 괴수 대결전을 성사시키는 게 훨씬 피해가 적었을 거잖아요. 사장도 안 죽었을 테고.

그래도 여름의 킬링타임 무비로는 손색없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런 영화에서 스토리의 합리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겠죠. 큰 화면으로 생생한 공룡을 즐긴 것으로도 본전은 충분히 뽑은 느낌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그런대로 착한 포지션인 인도인 재벌 총수가 직접 헬기를 몰고 나갔다가 죽는 장면과 상황실 주요 요원이 인도인이라는 점에서 노골적인 인도 시장 노림수가 느껴졌습니다. 대단하다 인도!

2017/07/08

좀비 - 조이스 캐롤 오츠 / 공경희 : 별점 2.5점

좀비 - 6점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포레

Q_는 얼마전 저지른 흑인 소년 성추행 건으로 정기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유명 교수의 아들로, 변태적인 싸이코로 진화한 뒤 '전두엽 절제 수술'로 자신에게만 복종하는 일종의 성노예 좀비를 만들 꿈을 꾸는데...

명성이 자자했던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입니다. 스티븐 킹이었나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현대를 대표하는 공포, 호러 소설 중 한편으로 극찬했었기에 평소 관심을 두던 차에,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본 결과는 제 생각과는 굉장히 달라서 의외네요. 실제로 좀비가 등장하는 크리처 호러를 생각했는데 작품은 짐 톰슨의 "내 안의 살인마"같은, 변태 싸이코 살인마의 범죄극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재미가 없던건 아닙니다. 이런 류의 작품들에서 봄직한, 무의미한 범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차이점도 있고요. 예를 들어, "내 안의 살인마"의 주인공 루 포드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즉 그냥 '죽이고 싶으면' 죽입니다. 즉, 무계획적이고 돌직구같은 범행이지요. 그러나 Q_의 범죄는 명확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수행한다는 점이 독특했어요. 

들은 바 대로 묘사력도 대단합니다. 특히 범죄 행위에 대한 묘사들은 그야말로 발군입니다. 가장 상세하게 묘사되는, '다람쥐'를 잡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디테일이 지나쳐서 쉽게 모방 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세세한 디테일 - Q_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먹는 음식이나 입고 있는 옷, 기타 여러가지 설정들 - 을 적재적소에 그려내어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드러나고 부각되게 만드는 솜씨도 훌륭해요. 

아울러 전두엽 절제 수술로 사람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동하는 '좀비'로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쉽사리 사람을 사귀지 못하고, 본인에게 별다른 매력도 없는 싸이코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설득력이 높습니다. 물론 대학을 수차례 다닐 정도로 기본적인 지성은 갖춘(것으로 보이는) Q_가 전두엽 절제 수술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는다는건 다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만, 미친 놈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넘어가야겠지요. 최소한 '최면술' 따위나 실제 좀비 전설의 원전인 '부두교 주술'보다는 과학적이긴 하고요.
260여 페이지에 여백도 많아서 읽기 쉬웠다는 것 역시 장점입니다. 별다를 것이 없는 범죄극에 딱 맞는 적절한 분량이었어요.

그러나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살인마"도 별로 제 취향이 아니었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에요. 주인공 Q_ (쿠엔틴인데 1인칭 시점에서는 항상 Q_로 묘사됩니다)가 상상 이상의 변태이며, 범죄도 혐오스럽기 그지 없는 탓입니다. 하드고어적인 내용만 보면 "살육에 이르는 병"과 별로 다를게 없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요. Q_의 동성애 취향, 그리고 기껏 전두엽 절제술로 만든 좀비를 만들어 성노예로 부릴 것이라는 목표도 너무 싸구려 성인물같아서 역겨웠고요. 

엽기적인 변태 싸이코가 등장하더라도 "내 눈에 비친 악마"에서처럼 별다르게 범행에 성공하지 못하고 파멸하는 전개라면 모를까, 이렇게 살아있을 가치가 전무한 주인공이 벌이는 엽기 행각이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또 앞으로도 성공할 것 같다는 마무리는 정말 별로였습니다. Q_가 자신이 관리하는 하숙집 외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다면 충분히 오랫동안 들통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름이 끼치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야기하는 거장의 매력은 충분히 살아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또 읽어 볼 일은 없겠습니다.

2010/09/26

도박 눈 - 미야베 미유키 외 / 정태원 : 별점 3점

도박 눈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카파 노블스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9명의 작가들이 '50'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써 내려간 단편들을 모아 놓은 단편 앤솔로지입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을 장식한 따끈따끈한 신간이죠.

이렇게 여러 작가들이 하나의 키워드로 모인 앤솔로지는 이전에 "Y의 비극" 등을 통해 접해본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래서 9명의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어려운, 드림팀이라 부를 만한 저명한 작가들이거나, 어떻게 보면 출판사 기획 도서에 가깝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생각보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정통 추리 단편이 아니라 작가들이 쓰고 싶은 장르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추리뿐만 아니라 괴담이나 일반적인 드라마까지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거든요.

그러나 '50'이라는 키워드를 작품에 잘 녹여낸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쉽더군요. 아야쓰지 유키토와 미치오 슈스케 작품만이 '50'을 이야기의 핵심 요소로 사용했을 뿐, 다른 작품들은 그냥 있으나 없으나 한 설정에 불과하니까요. 하나의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왕 쓴다면 좀 더 작품에 잘 녹아들게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50번째 임무를 수행하면 자유의 몸이 되는 조직의 킬러' 같은 설정이 떠오르네요.)

전체 평균 별점은 반올림해서 3점. 베스트 작품으로는 재미 측면에서는 "도박눈", 추리 요소로는 "여름의 빛" 두 작품을 꼽겠습니다.

수록작별 간략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절단" - 아야쓰지 유키토

화자가 작가 아야쓰지 유키토라는 것도 특이하지만, 생각보다 심리 스릴러와 크리처물에 가까운 작품이라 무척 의외였습니다. '칼질 50번으로 *****의 사체를 50조각 냈다'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범인은 이미 잡힌 상황이며 단지 '왜 51조각이 아니고 50조각인지?'에 대한 의문만을 탐구합니다.

그러나 역시나 명성에 걸맞은 작품이었습니다. *****의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고, 이게 현실인지 정상적인 세계인지도 알 수 없는 비현실성 속에서도 느껴지는 서늘함이 일품이었습니다. '50'이라는 키워드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눈과 금혼식" -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가 아리스' 시리즈로 임상 법의학자 히무라 히데오와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등장하는 단편이며, '50'이라는 키워드는 노부부의 행복한 금혼식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본격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트릭이 너무나 변변찮고, 추리라고 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다도코로 유지의 당일 행적만 경찰이 조사했더라도 금방 해결되었을 사건이라 왜 히무라 히데오가 등장하는지조차 알 수 없거든요. '50' 역시 억지로 끼워 맞춘 설정에 불과합니다. 금혼식이 아니라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어도 무방하니까요.

한마디로 이 앤솔로지의 워스트. 별점은 1.5점입니다.

"50층에서 기다려라" - 오사와 아리마사

'신주쿠 상어' 사메지마가 등장하는 단편으로, 일종의 도시괴담을 이용한 범죄 사기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용은 약간 뻔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풀어나간 것 같습니다.

다만 제목 그대로 '50층'을 뜻하는 키워드 '50'이 다소 억지로 쓰인 감이 있습니다. 호텔 50층을 임대하는 비용으로 충분히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이 설정을 사용해야 했을까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영국 세필드" - 시마다 소지

작가의 명탐정 미타라이가 등장하는 작품이지만, 추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을 다룬 진지한 인간 승리 드라마인데, 이외의 다른 작품들이 장르 문학에 속하는 것과 달라서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재도 흔하고요.

하지만 '역도'라는 스포츠를 활용한 점이 독특했고, 나름 재미도 있었습니다. 키워드 '50'도 약간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적절히 활용된 편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여름의 빛" - 미치오 슈스케

요즘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을 자주 읽게 되네요. 초등학생이 마을 들개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은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보다 밝은 분위기에 깔끔한 전개가 돋보이며, 초등학생은 알지 못하는 카메라 용어가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점이 재미를 더했습니다. 왜 미치오 슈스케가 요즘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단편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도박눈" -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 정통 괴담에 가깝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간장 도매상 오미야에 찾아온 괴이한 요괴 '도박눈'을 퇴치하는 이야기인데, 에도 시대의 정취가 물씬 풍기면서도 긴장감을 놓지 않는 구성력이 뛰어난 덕분입니다. 특히 요괴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끌고 가는 초반부 이후, 마을 신사의 고마이누를 통해 퇴치 방법을 알게 되고 마지막 결말로 향하는 전개가 아주 흥미진진했어요. 이런 유형의 이야기의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 이 앤솔로지의 베스트입니다.

"미래의 꽃" - 요코야마 히데오

"종신검시관" 시리즈 단편으로, 병원에 입원한 구라이시 검시관이 협조 요청차 찾아온 경찰이 제공한 자료와 사진만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단서 제공도 공정하고, 이야기 전개도 설득력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50'이라는 키워드의 사용이 억지스럽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리즈 전체적으로 봤을 때 평균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4/12/29

2024 블로그 리뷰 결산

안녕하세요. 어제의 "사카나와 일본"을 끝으로 올해 블로그 업로드는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스물 한 번째 블로그 리뷰 결산을 진행하겠습니다. 2024년 동안 읽은 총 책 권수는 110권입니다. 카테고리별 독서 권수 및 카테고리별 베스트, 워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괄호는 작년):
  • 추리 / 호러: 76권 (61)
  • 기타: 14권 (15)
  • 역사서: 10권 (7)
  • 기타 장르문학: 5권 (4)
  • Food / 구루메: 5권 (3)

1. 추리 / 호러

베스트: 스파이와 배신자 - 벤 매킨타이어 : 별점 4.0
- 현실이 픽션을 능가한다는 증거.

워스트: 유리병 속 지옥 - 유메노 큐사쿠 : 별점 1.0
- 완독이 고통스러울 정도였던 망작.

2. 기타

베스트: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정재승 : 별점 3.5
- 일상 속 과학을 알게 해주는 즐거운 입문서.

워스트: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 별점 1.5
- 비논리적이고 편협한 주장들.

3. 역사서

베스트: 사악한 소년 - 케이트 서머스케일 / 김희주 : 별점 4.0
- 19세기 살인 사건을 치밀하게 재구성한, 흥미진진한 논픽션.

워스트: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하마모토 다카시 외 / 노경아 : 별점 1.5
- 소재는 흥미롭지만 깊이 없는 서술로 일관.

4. 디자인 / 스터디

베스트: 눈의 황홀 - 마쓰다 유키마사 / 송태욱 : 별점 4.0
- 독특한 시각과 감각이 돋보임.

워스트: 별점 2.5이 최하점이라 특별한 워스트는 없습니다.

5. 기타 장르문학

베스트: 로봇 소년, 학교에 가다 - 톰 앵글버거, 폴 델린저 / 김영란 : 별점 3.0
- 유쾌한 스토리와 따뜻한 메시지가 느껴지는 청소년 소설.

워스트: 트레몬의 모험 - 로버트 바 / 남원우 : 별점 1.0
- 빈약한 플롯, 단조로운 전개에 최악의 현지화 각색이 더해진 환장의 콜라보. 

6. Food / 구루메

베스트: 딜리셔스 - 롭 던, 모니카 산체스 / 김수진 : 별점 4.0
- 과학적으로 분석한 음식들의 놀라운 이야기들.

워스트: 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 아이스맨 후쿠토메 / 김정원 : 별점 1.5
- 단순한 정보 나열에 불과.

2016/10/31

장난감 수리공 - 고바야시 야스미 / 김은모 : 별점 2점

장난감 수리공 - 4점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호러, 장르문학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의 데뷰작인 표제작과 중편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가 수록된 중단편집입니다. 호러 소설이라 생각하고 읽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조금 기묘한 장르 소설이더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딱히 새롭지도 않고, 약간의 반전 역시 별로입니다. 가볍게 읽기에는 좋지만 추천드리기는 어렵네요.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하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장난감 수리공"

소녀는 무엇이든 고칠 수 있다는 장난감 수리공 '요그소토호스후'를 찾아갔다. 함께 육교를 건너다 사고로 굴러 떨어진 뒤 죽은 미치오를 고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가 동생의 시체를 낱낱이 분해하는 것을 지켜보는데..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죽은 사람도 고치는 기묘한 능력자가 나오는 심리 호러이자 독특한 크리쳐물 (장난감 수리공을 크리처로 볼 수 있을까요?)입니다. 누나의 눈이 고양이 눈이고, 이 이야기를 듣는 '나'가 두번이나 죽었던 동생 미치오라는게 밝혀지는 결말의 반전은 좀 서늘합니다. 기묘한 맛 장르물을 연상케도 하고요.
누나의 장황한 대사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용도 상당한 흡입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수리공의 수리법이라던가, 죽은 동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등 볼거리가 많아서 끝까지 단숨에 읽게 됩니다. 분량도 적절하고요.

그러나 문제는 전혀 무섭지 않다는 점입니다. 장난감 수리공의 정체 등 대충 넘어간 부분이야 단편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전체적으로 너무 담백했던 탓입니다. 반전도 그다지 충격적이지는 않았고요. 시각적인 상상력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는데 소설보다는 영상, 그림으로 보는게 훨씬 나았을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대학 시절 연인 데고나를 되살리기 위해 두 남자가 의기투합하여 금단의 뇌 시술을 서로에게 시행한 후, 시간을 떠돌아다니는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내용의 중편 SF입니다.

장점이라면 갖가지 물리이론을 들먹이며 펼쳐지는 장황한 설명이 제법 그럴싸하다는 점입니다. 작가가 물리학도라는 것이 잘 드러나지요.

그러나 이 장황한 설명 외에는 이야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건 문제입니다. 뇌의 특정 부분을 파괴하여 시간을 인식하는 능력, 시간을 제어하는 능력, 파동 함수를 재 발산하지 않는 능력 등 다양한 능력을 잃는다는게 전부거든요. 이를 앞서 말씀드린 장황한 설명으로 때울 뿐입니다. 이렇게 길어질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이고, 그만큼 지루합니다.

아울러 시공을 초월한게 아니라 시간의 덫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일종의 저주라는 결말은 씁쓸하면서도 진한 여운을 남기지만, 지금 읽기에는 좀 뻔했습니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이 정신병자의 거대한 헛소리고 주인공은 그에 속아넘어간 것에 불과하다는 결말이 더 나았을 겁니다. 뭐 어느 쪽이든 지옥이긴 마찬가지겠지만요.

하여튼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와 완성도 모두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2016/01/21

뱀이 깨어나는 마을 - 샤롤 볼턴 / 김진석 : 별점 2.5점

뱀이 깨어나는 마을 - 6점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 시골 마을에 사는 수의사 클래라 앞에 무서운 독사를 비롯한 뱀 떼가 나타났다. 그녀는 전문가적 지식을 발휘해 뱀을 처리하면서, 뱀에 물려 죽었다는 마을 노인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고 독자적인 조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녀가 돌보던 노부인 바이얼럿이 역시나 뱀에 물려 죽고, 그녀가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조사를 통해 이 사건의 배후에 50여 년 전 마을에 있었던 기묘한 퇴마 의식과 마을 거주민들, 그중에서 위처 형제가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귀여워 보이는 책 표지에 호기심이 생겨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내용은 아주 진지한 범죄 스릴러물이라 의외였습니다. 6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흡입력도 상당한 편이고요. 한적한 시골 마을에 무시무시한 독사(살무사와 타이판)가 나타난다는 상황부터가 아주 흥미로왔기 때문입니다. 뱀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마을 유일의 뱀 전문가로 모종의 책임감을 느낀 클래라가 사건에 뛰어든 뒤 위처 형제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며 서서히 위기에 빠져드는 과정에 대한 묘사도 박진감 넘칩니다. 덕분에 마지막까지 손에서 떼기 힘든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영국 시골 마을을 무대로 공포스러운 괴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이 모든건 오래전에 있었던 끔찍한 사고와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과 설정은 정통파 영국 고전물을 떠오르게도 만듭니다. 시골 마을에 갑자기 무시무시한 독사가 포함된 뱀 떼가 나타나 사람들을 습격한다는 설정은 일종의 크리처 공포물 같기도 했고요.

또 주인공인 수의사 클래라가 상당히 매력적이네요. 여태 읽었던 수많은 추리 소설에 등장했던 까칠한 여주인공들과 비슷하지만 어린 시절 입은 얼굴의 상처라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거든요. 누구나 얼굴을 돌릴 법한 끔찍한 흉터라는 설정인데, 덕분에 그녀가 까칠하게 자기를 방어하며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칩거한다는 묘사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 흉터를 극복하는 성장기스러운 묘사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추리적으로 돋보이는 점은 없지만 우연히 어울리게 된 노인들의 죽음에 대해 경찰이 그녀를 의심하게 되는 과정만큼은 좋았습니다. 그녀가 마을 노인들과 친해져 유언장을 조작한 뒤 살해했다고 의심 받는다는건데, 노인들 죽음에 독사가 관련되어 있고 그녀가 수의사로 뱀 전문가라는 설정까지 겹쳐져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클라이브의 정체가 솔의 아들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부분, 그리고 얼프레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는 과정도 그럴듯했고요.

하지만 재미에도 불구하고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오순절 운동'에서 비롯된 뱀을 다루는 사이비 목사를 등장시켜 마을 사람 반수가 관계된 대소동에서 비극이 촉발되었다는 등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려는 의도가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영국 시골 마을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했을까요? 작중에서도 '전쟁 직후였다'라는 말로 어떻게든 설득력을 갖추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안쓰러울 따름이입니다. 문란한 에덜린과 위처 형제들 간의 관계, 그리고 범죄자 성향이 짙어 마을에서 추방당한 솔 위처 이야기 정도로 풀어내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아니면 앞서 말한 클래라가 범인일 것이라는 가설이 훨씬 현실적이었던 만큼 그렇게 밀고 나가던가요.

억지스럽게 용의자를 등장시키는 전개도 별로입니다. 뱀 전문가 숀 노스가 타이판의 본고장 파푸아뉴기니를 갔다 온 것을 숨겼다, 정신병자 얼프레드는 성도착자에 화가 나면 폭주하여 아무도 말릴 수 없다는 등의 묘사들이 그러합니다.

설명되지 않는 것도 너무나 많습니다. 아치로 위장한 조앨 패인 목사가 도싯으로 돌아온 이유는? 클라이브에게 얹혀 살기 위해서라면, 그는 클라이브가 솔 위처의 아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런저런 이유로 어떻게든 알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마을에 뱀을 푼 이유는? 조앨 패인이 클라이브 회사의 계획인 마을에서의 원유 탐사를 위해 마을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협력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얼프레드는 왜 병원에서 탈출시켰을까요? 조앨 패인 스스로도 뱀을 다룰 수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이유라면 뱀 떼면 충분했습니다. 독사를 푼 이유는 설명할 수 없어요. 독사가 등장하고 사람이 죽은 이상, 경찰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데 그래서 무슨 이득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이 많은 뱀은 대체 어디서 난 것일까요?
물론 독사의 등장과 뒤이은 살인은 클라이브의 지시와는 별개로 패인이 유산을 노리고 폭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찰 맷을 공격하고 클래라마저 죽이려 한 시점에서, 패인이 아치 흉내를 내면서 클라이브의 유산을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해져 버렸으니 계획은 실패입니다. 클라이브 살해를 클래라에게 뒤집어씌운다 해도 맷의 말에 따르면 바이얼릿의 죽음에 대해 클래라는 혐의를 거의 벗었고, 혹시나 패인의 지문이 채취된다면 진범이 누구인지 결국 밝혀졌을 테니까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클래라가 마지막에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 과정의 개연성도 낮고 패인이 불탄 교회에서 얼프레드를 죽이려고 했던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자포자기였을까요?

그리고 수많은 등장인물들 중 클래라를 제외하고는 전부 평면적이고 진부하며 존재감이 낮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남자 주인공들부터가 그러합니다. 숀 노스와 맷의 2인 체제인데 어디서 봤던 느낌의 캐릭터들일 뿐더러 숀은 하는 게 거의 없다시피하고, 그나마 활약을 보이는 맷은 다른 여자친구가 있을 뿐더러 막판에는 짐짝이 되어버리니 왜 나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노인들은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영 보기 불편했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지나치게 나간 부분 때문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재미는 있고 전통을 계승한 부분도 있는 만큼 추리 애호가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덧 1 : 작가 서문과 후기, 역자 후기나 기타 자료가 전무하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최근 이런 책을 본 적이 없는데 신기했습니다.

덧 2 :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아일랜드에는 뱀이 없다"와 비교해 읽어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2024/06/01

계간 미스터리 2024 봄호 - 김태현 외 : 별점 2점

계간 미스터리 2024.봄호 - 4점
김태현 외 지음/나비클럽

정말 오랫만에 읽어보는 계간 미스터리입니다. 이전 리뷰는 2011년이니 강산이 변해도 벌써 한 번 이상 변했네요. 싼마이틱하지만 강렬한 표지 일러스트에 호기심이 동해 읽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리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문예지 스타일이라는건 같은 미스터리 잡지"미스테리아"와 확실히 다른 점입니다. 심지어는 특집 기획 르포르타쥬 기사인 "인스타그램 주식 여신"마저도 소설 형식을 빌어 작성되어 있을 정도이니 말 다했죠. 인스타그램에서 주식 고수익을 인증하며 투자자를 끌어들인 뒤, 폰지 사기를 저지른 실화를 가명, 그리고 사건 핵심 관계자 시점의 묘사로 설명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수록 단편 6편 중 무려 5편이 한국 작가 작품이라는 것도 특징입니다. '한국 추리 문학의 본진'이라는 광고가 허언은 아닌 셈입니다.

수록 단편 중에서는 세 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세 편에 대해 스포일러 가득 담아 짤막하게 감상을 남겨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신인상 수상작인 "사이버 니르바나 2092"입니다. 유명 연예인 강준기가 전뇌 합선으로 사망한 사건의 진상을 캐는 전직 경찰의 활약을 그린 SF 추리물이지요. 이미 죽은 강준기의 뇌를 회사, 매니저들이 이용해서 그동안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왔지만, 전뇌에 복수 접속하는 사고로 뇌가 타버렸다는 진상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과연 좋은 추리물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강준기는 전뇌화 수술을 받지 않은 인본주의 인물이었다는 정도의 단서로는 진상을 추리해내는게 독자에게는 불가능한 탓입니다. 최신형 전뇌가 아니어서 과부하가 걸리면 타버린다는걸 독자는 알 도리가 없으니까요. 안티 부디스트 시위, 전뇌, 전뇌 연결, 신체 임플란트 등 "공각 기동대"로 대표되는 사이버 디스토피아 세계관도 지금 읽기에는 식상했어요. 저자의 욕심이 과했습니다.
"낭패불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는 악마가 인간을 타락시키는 이야기입니다. 흔하디 흔한 설정인데 1973년 박정희 유신 당시 경찰서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니 굉장히 독특하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이 과정에서 빚어진, '경찰이 피라미 노동자를 간첩이라며 고문, 심문하는데 알고보니 그 노동자가 취조하던 형사의 6.25 때 헤어진 동생이었다!'라는 극한의 딜레마도 흥미로왔습니다. 형은 여기서 동생임을 밝히고 노동자를 구해줘야 할까요? 그러면 빨갱이 가족임이 드러나 출세길이 영영 막힐텐데? 아, 정말 쫄깃하더군요. 다만 노동자를 죽이고 말았다는 결론은 다소 식상했고, 악마가 끼어들 이야기였는지는 의문이기는 합니다. 뭔가 거래를 한 것도 아니고... 이런 억지스러운 악마의 등장보다는, 같은 역사 속 비극을 짤막하게 다루었지만 훨씬 깊은 울림을 주는 걸작인 김성종의 "어느 창녀의 죽음"같은 선례를 참고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아문센의 텐트에서"는 수록작 중 유일한 외국 단편입니다. 존 마틴 레이히의 작품이지요. 남극 탐험대가 미지의 괴생명체를 발견한 뒤 모두 죽고만다는 크리처 물입니다.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의 직속 선배라 할 수 있어요. 로버트 드럼골드와 대원들이 느끼는 공포가 생생하게 전달되는 덕분에 몰입감이 장난이 아닙니다. 미지의 괴생명체가 뭔지 제대로 묘사도 하지 않는데도 말이죠. 별점은 4점은 충분합니다. 수록작 중 단연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특집 기사  "인스타그램 주식 여신"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최근 흔히 보아왔던 범죄 이야기이기는 한데, '사기 감별사' 주제한이 범인 '여우비'의 사기를 간파한 방법은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화라서 설득력도 높고요. 
한국 미스터리를 키워드를 통해 분석한다는 신연재 "로컬리티와 미스터리"에서는 여러가지 주장 중 한국 소설의 공간 중 '시골'에 주목한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역 주민의 텃세와 오지랖, 부조리한 규율이라는 시골적 배타성, 이른바 '부족주의'와 도시인의 충돌이 벌어지는 식으로 시골은 미스터리 무대로 흔히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는 도시인 기준이라는 주장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골 부족주의를 전형화하는 시선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셈이지요. 이를 극복한 작품으로 황세연의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를 소개하는 것도 이채로왔고요. 이 작품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이런 시선이 추리 비평에 필요하겠구나 싶더군요. 저도 한참 공부가 부족하다는걸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단편 세 편은 추리물로 보기 어렵거나, 달리 언급할 부분이 없는 범작 수준에 그친다는건 아쉬웠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앞으로는 '계간 미스터리'라는 명칭에 걸맞는 정통 추리물이 더 많이 수록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