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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1

계간 미스터리 2024 봄호 - 김태현 외 : 별점 2점

계간 미스터리 2024.봄호 - 4점
김태현 외 지음/나비클럽

정말 오랫만에 읽어보는 계간 미스터리입니다. 이전 리뷰는 2011년이니 강산이 변해도 벌써 한 번 이상 변했네요. 싼마이틱하지만 강렬한 표지 일러스트에 호기심이 동해 읽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리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문예지 스타일이라는건 같은 미스터리 잡지"미스테리아"와 확실히 다른 점입니다. 심지어는 특집 기획 르포르타쥬 기사인 "인스타그램 주식 여신"마저도 소설 형식을 빌어 작성되어 있을 정도이니 말 다했죠. 인스타그램에서 주식 고수익을 인증하며 투자자를 끌어들인 뒤, 폰지 사기를 저지른 실화를 가명, 그리고 사건 핵심 관계자 시점의 묘사로 설명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수록 단편 6편 중 무려 5편이 한국 작가 작품이라는 것도 특징입니다. '한국 추리 문학의 본진'이라는 광고가 허언은 아닌 셈입니다.

수록 단편 중에서는 세 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세 편에 대해 스포일러 가득 담아 짤막하게 감상을 남겨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신인상 수상작인 "사이버 니르바나 2092"입니다. 유명 연예인 강준기가 전뇌 합선으로 사망한 사건의 진상을 캐는 전직 경찰의 활약을 그린 SF 추리물이지요. 이미 죽은 강준기의 뇌를 회사, 매니저들이 이용해서 그동안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왔지만, 전뇌에 복수 접속하는 사고로 뇌가 타버렸다는 진상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과연 좋은 추리물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강준기는 전뇌화 수술을 받지 않은 인본주의 인물이었다는 정도의 단서로는 진상을 추리해내는게 독자에게는 불가능한 탓입니다. 최신형 전뇌가 아니어서 과부하가 걸리면 타버린다는걸 독자는 알 도리가 없으니까요. 안티 부디스트 시위, 전뇌, 전뇌 연결, 신체 임플란트 등 "공각 기동대"로 대표되는 사이버 디스토피아 세계관도 지금 읽기에는 식상했어요. 저자의 욕심이 과했습니다.
"낭패불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는 악마가 인간을 타락시키는 이야기입니다. 흔하디 흔한 설정인데 1973년 박정희 유신 당시 경찰서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니 굉장히 독특하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이 과정에서 빚어진, '경찰이 피라미 노동자를 간첩이라며 고문, 심문하는데 알고보니 그 노동자가 취조하던 형사의 6.25 때 헤어진 동생이었다!'라는 극한의 딜레마도 흥미로왔습니다. 형은 여기서 동생임을 밝히고 노동자를 구해줘야 할까요? 그러면 빨갱이 가족임이 드러나 출세길이 영영 막힐텐데? 아, 정말 쫄깃하더군요. 다만 노동자를 죽이고 말았다는 결론은 다소 식상했고, 악마가 끼어들 이야기였는지는 의문이기는 합니다. 뭔가 거래를 한 것도 아니고... 이런 억지스러운 악마의 등장보다는, 같은 역사 속 비극을 짤막하게 다루었지만 훨씬 깊은 울림을 주는 걸작인 김성종의 "어느 창녀의 죽음"같은 선례를 참고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아문센의 텐트에서"는 수록작 중 유일한 외국 단편입니다. 존 마틴 레이히의 작품이지요. 남극 탐험대가 미지의 괴생명체를 발견한 뒤 모두 죽고만다는 크리처 물입니다.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의 직속 선배라 할 수 있어요. 로버트 드럼골드와 대원들이 느끼는 공포가 생생하게 전달되는 덕분에 몰입감이 장난이 아닙니다. 미지의 괴생명체가 뭔지 제대로 묘사도 하지 않는데도 말이죠. 별점은 4점은 충분합니다. 수록작 중 단연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특집 기사  "인스타그램 주식 여신"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최근 흔히 보아왔던 범죄 이야기이기는 한데, '사기 감별사' 주제한이 범인 '여우비'의 사기를 간파한 방법은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화라서 설득력도 높고요. 
한국 미스터리를 키워드를 통해 분석한다는 신연재 "로컬리티와 미스터리"에서는 여러가지 주장 중 한국 소설의 공간 중 '시골'에 주목한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역 주민의 텃세와 오지랖, 부조리한 규율이라는 시골적 배타성, 이른바 '부족주의'와 도시인의 충돌이 벌어지는 식으로 시골은 미스터리 무대로 흔히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는 도시인 기준이라는 주장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골 부족주의를 전형화하는 시선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셈이지요. 이를 극복한 작품으로 황세연의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를 소개하는 것도 이채로왔고요. 이 작품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이런 시선이 추리 비평에 필요하겠구나 싶더군요. 저도 한참 공부가 부족하다는걸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단편 세 편은 추리물로 보기 어렵거나, 달리 언급할 부분이 없는 범작 수준에 그친다는건 아쉬웠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앞으로는 '계간 미스터리'라는 명칭에 걸맞는 정통 추리물이 더 많이 수록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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