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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7

리뎀션 - 안데슈 루슬룬드, 버리에 헬스트럼 / 이승재 : 별점 1.5점

리뎀션 - 4점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중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베트 그랜스 경정은 유람선에서 밴드 가수에게 걷어차인 핀란드인 남자가 뇌출혈을 일으켰다는걸 알고 가수를 체포했다. 가수의 존 슈워츠라는 캐나다인 여권은 위조되었으며, 그의 정체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존 메이어 프레이였다는게 밝혀졌다. 존 메이어 프레이는 오하이오의 사형수였는데, 6년 전 교도소 안에서 사망 상태로 조작되어 탈옥했었다. 그가 무죄라고 믿었던 교도관 버논 및 사형 폐지 연합의 도움 덕분이었다. 버논은 식사에 독을 섞어 건강 이상을 유발시킨 뒤, 사형 폐지 연합 소속 의사가 마취제 등을 투여하여 사망을 위장했었다. 시체 운반 부대를 통해 교도소에서 빠져나온 존은 러시아 등을 거쳐 위조 여권으로 스웨덴에 입국할 수 있었다.
존의 생존을 알아낸 미국 정부는 송환 후 사형 집행을 원했다. 스웨덴은 사형과 같은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개인의 송환요구는 거부하고 있었지만, 미국과의 관계에 금이 갈까 우려하여 존을 러시아로 추방하는데 합의했다. 존은 러시아에서 곧바로 미국으로 끌려가 사형 집행을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사형제를 반대하던 교도관 버논의 계획이었다...


모르는 스웨덴 컴비 작가의 범죄 스릴러. 에베트 그랜스 경정 시리즈 중 하나로 내용의 핵심은 교도관 버논이 엘리자베스 피니건을 살해하고 존이 사형 선고를 받도록 만든 음모입니다. 존이 사형 집행을 당한 다음에, 자신이 진범임을 밝혀 체제를 뒤흔들 생각으로요. 사형 제도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사형과 같은 '동해보복'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자살할 때 에드워드 피니건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조작하여 에드워드를 살인 사건의 피고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합니다.
버논이 계획을 밀고 나가던 중간에 존을 불쌍히 여겨 교도소에서 탈옥하게 만든 과정도 재미있었습니다. 약물로 심장에 일시적으로 이상을 일으킨 후, 교도소에 고용된 같은 편 의사들이 존을 언뜻 보기에 죽은 것처럼 마취시키도록 만들어서 사망 선고를 내렸고, 그 뒤에는 시체 안치실에 집어 넣었다가 부검 절차를 핑계로 시체 운반 부대에 넣고 빼돌리는 과정 모두가 설득력있게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송환되면 죽을게 뻔한 존의 처리(?)를 놓고 고민하는 스웨덴 정부 관계자들의 모습도 흥미로왔습니다. 사람의 생명에 대한 딜레마는 항상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소재이니까요.

하지만 작품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해 살인 사건을 조작하여 무고한 사람이 사형당하게 만든 뒤, 이를 폭로한다는 핵심 계획부터 영화 "데이비드 게일"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게일은 강간 살인죄로 사형을 당했는데, 알고보니 그가 살해했다는 피해자는 자살했었습니다. 피해자는 데이비드 게일의 공범이었고요. 이 사실은 게일의 사형 집행 직후에 드러납니다. 사형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서였지요. 완전히 똑같은 이야기죠. 게다가 이 작품은 이보다도 훨씬 못합니다. 데이비드 게일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피해자로 알려진 콘스탄스도 불치병에 걸려 자살했던 공범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버논은 무려 세 명 - 사형 선고를 받은 에드워드까지 - 이나 죽게 만든 살인범입니다. 버논의 존재가 사형 제도가 유지되어야 하는 근거인 셈이지요. 살인마가 사형 제도 폐지를 논한다는건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큰 문제입니다. 누가 보아도 살해당했던 엘리자베스 피니건의 아버지 에드워드 피니건은 작 중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명입니다. 그가 존에게 엄청난 복수심을 불태우는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작가들은 에드워드 피니건을 복수심 때문에 제 정신을 잃은 변태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버논은 꽃다운 청소년 두 명을 희생시킨 살인범입니다. 에드워드 피니건마저 자신을 죽인 살인자로 조작한건, 에드워드가 그가 사랑했던  앨리스와 결혼한 것에 대한 복수로 보이고요. 그런데 작 중 버논은 시종일관 나름의 정의와 신념을 굳게 지키는 정의로운 인물처럼 등장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에드워드가 사형 선고를 받고 존이 갇혔던 사형수 동에 감금되었다는 에필로그도 억지스럽습니다. 끈을 이용하여 자살 후 총이 튕겨 나가도록 만들고, 끈은 까마귀가 먹어치우도록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미국 경찰이 '초연 반응' 정도를 검사하지 않을리 없어요. 존이 자살한게 아니라 살해당했다는걸 입증하기는 쉽지 않았을겁니다. 설령 수사가 미비하여 에드워드가 버논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썼다고 치죠. 그래도 딸을 살해한 범인을 직접 처단한 아버지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버논이 그의 딸을 살해했다는건 이미 밝혀진 다음입니다. 납득하기 어려워요.
다른 인물들도 엉망이거나 별볼일 없습니다. 기껏 목숨을 건진 존이 분노를 참지 못해 사건을 저질러 정체가 드러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솔직히 이렇게 멍청하다면 죽어도 싸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와 가족과의 이야기는 너무나 뻔해서 지루했고요.
에베트 그랜스도 영 마음에 드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하는게 거의 없습니다.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지 주변 인물들에게 화를 내는 것, 그리고 자신의 실수로 뇌손상이 온 아내(?) - 전작을 읽지 않아 이 설정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은 안 됩니다만 - 안니에 대해 신경쓰는 것 밖에는요. 나이 많고 화도 많은, 붙임성 없는 거구의 경찰이라는 인물 설정도 "메그레" 경감과 똑같습니다. 그나마 독특한건 스웨덴 가수 시브 말름크비스트의 광팬이라는 것 뿐입니다. 마리안나 헬만손 경위도 이런 상사 밑에서 일하는 미모의 여성 형사의 스테레오 타입에 그칩니다.

그리고 버논의 계획은 스웨덴 형사 에벤트 그랜스와 별 관계도 없습니다. 오히려 에베트 그랜스가 존의 무죄를 믿고 송환에 반대할 까닭도 없지요. 한 국가의 고위 경찰이 남의 나라 사법 제도를 존중하지 않는게 더 이상하니까요. 한마디로. 스웨덴 형사 에베트 그랜스 시리즈일 필요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에베트 그랜스의 등장 부분을 거의다 잘라내고, 존과 버논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며도 충분했어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탈옥에 대한 디테일 외에는 전부 꽝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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