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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2

절벽의 밤 - 미치오 슈스케 / 김은모 : 별점 2점

절벽의 밤 - 4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청미래

미치오 슈스케의 연작 소설집. 마지막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각 단편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4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단편의 사건과 등장인물이 연결고리를 가지며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구조이지요. 마지막 단편은 총 정리하는 결론에 가깝습니다.
단편별로 여러가지 트릭이 사용되며 추리도 많이 펼쳐집니다. 의외의 반전도 있고요.

하지만 불필요한 아이디어가 너무 많습니다. 전개가 억지스러울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전개에 포함되었어야 할 내용을 마지막 사진으로 퉁친건 '실험'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편의에 따른 '반칙'에 가까왔습니다. 그나마 사진이 효과적으로 사용된건 마지막 단편 뿐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딱히 권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미나게 절벽을 보아서는 안 된다"
구니오는 자살 명소 유미나게 절벽 옆 터널에서 사고를 당했다. 불법 유턴을 하던 차 탓이었다. 사고를 유발한 차 운전자 나오는 구니오를 구해주기는 커녕 현금을 빼앗은 뒤 살해했다.
구니오의 아내 유미코의 옛 연인인 형사 구마지마는 전력으로 사건 수사에 나섰지만, 나오가 살해당했고 동승자였던 히로도 실종되고 말았다. 구마지마는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냈지만, 유미코를 또다른 동승자 마사가 노린다는걸 알고 황급히 유미코의 맨션으로 항했다....


구니오가 사고 당시 죽지 않고 실명했으며, 죽은건 조수석에 있던 네 살배기 아들 나오야였다는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범인 일당이 사건 당시 현금을 훔치려고 지갑을 확인했기 때문에 구니오의 집을 알아챌 수 있었다는 추리, 그리고 구니오가 집에 찾아온 히로를 손쉽게 살해한 방법 - 궁도부였던 아내 유미코의 화살을 이용 - 과 범행을 은폐하는 과정도 깔끔하게 진행됩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사이비 종교 '십왕환명회'도 작품 내에서 단순히 들러리가 아닌 제 역할 - 히로 사건 은폐를 위한 즉흥적인 거짓말, 마지막의 사고 등 - 을 충실히 해 주고 있고요.

하지만 구니오가 살아있다는걸 숨기는 방식이 자연스럽지 못해서 그리 잘 만들어진 서술 트릭물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구니오가 복수를 위해 나오의 차 깜빡이 커버와 동일한 걸 구해 사건 현장 근처에 놓아두고 잠복했다는 것도 비현실적입니다. 어두운 터널에서, 최소 몇십Km로 달리는 차 안에서 밖의 깜빡이 커버를 알아챈다? 대단히 큰 덩어리도 아니고 부서진 조각인데? 이건 불가능합니다. 설령 나오가 알아채고 차를 세운 뒤 커버를 회수했다 한들, 때마침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는 등 범행에 딱 맞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이 정도 억지가 필요하다면 실명한 구니오가 나오를 명확하게 인지하여 살해할 수 있었던 것 정도는 별 문제도 아니겠지요. 하늘이 나오보고 살해당하라고 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이런 설득력없는 내용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그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중국에서 건너온 초등학생 커는 학교에서의 따돌림, 부모님의 방치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환영을 볼 정도였다. 환영 퇴치를 위해 문방구를 찾은 커는 기묘한걸 목격했다. 젊은 남자의 묘한 모습, 안쪽 방 고타쓰 앞에 쓰러지듯 놓여진 발, 뒤섞인 문구류, 얼핏 보인 바닥 얼룩.... 커는 남자가 주인 할머니를 살해했다고 추리했다. 하지만 다시 찾아간 문방구의 주인 할머니는 멀쩡했고, 추리를 털어놓은 친구 야마우치도 실망한 듯 했다. 그런데 그날 밤, 뉴스에서 문방구 할머니의 남편이 살해당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아이 손이 닿는 곳에 어른 문구가, 아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어린이 문구가 놓여진 상황에서 출발하는 커의 추리는 깔끔합니다. 뉴스를 통해 진짜 피해자가 밝혀지고 범인인 조카와 할머니가 커를 납치하는 과정도 흥미롭고요.
하지만 야마우치가 자동차 안에 숨어 있다가 커를 구해준다는 결말에 대한 설명은 부족합니다. 야마우치가 왜 이렇게까지 해서 - 사람을 죽여가면서까지 - 커를 구해주는지도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고요. 차 안에 숨었다는 것도 마지막에 삽입된 사진으로 살짝 알려주기는 하는데, 본 편에 녹여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반칙으로 보일 뿐이에요. 커가 보아왔던 환영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도 설명되지 않는데, 커가 환영을 본다는 설정보다는 커와 야마우치와의 관계를 더 상세하게 그려내는게 나았을 겁니다. 커 주변을 야마우치가 항상 멤돌았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그림의 수수께끼를 풀어서는 안 된다"
십왕환명회의 간부 미야시타 시호가 자택에서 목을 멘 사체로 발견되었다. 신참 형사 미즈모토는 또다른 간부 모리야 다쿠미가 그녀를 살해했고, 이를 알아챈 부동산 회사 사장 나카가와 도루마저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시호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했는지를 알아내지 못해 고민했다. 그러나 미즈모토는 파트너이자 선배 다케나시와 술을 먹다가 트릭을 간파해내는데...

밀실 살인 사건을 그린 작품. 미야시타 시호의 방은 제대로 잠겨진 밀실이 아니라 자석으로 '스마트록'을 붙여 임시로 만들어진 밀실이었다는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부동산 회사 사장 앞에서 잠겼다는걸 보여준 뒤, 열쇠로 문을 열 때 록을 해제하고, 들어가면서 회수했던 것이지요. 방법 자체는 현실적이에요. 문제는 눈에 뜨이지 않고 록을 회수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실제로 현장에 함께 있던 부동산 회사 사장 나카가와 도루에게 곧바로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야 좋은 트릭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또 모리야가 범행을 저지른 이유도 설명되지 않아서 좋은 후더닛, 와이더닛 물이라기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케나시가 나카가와 도루의 수첩을 조작해서 사건을 미궁에 빠트렸고, 진상을 알아챈 미즈모토마저 살해했다는 결말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다케나시가 '십왕환명회' 신도였다는 단서를 제공해 주기는 합니다만.... 너무 막 나가는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수첩 조작도 마지막에 사진으로 설명해줄 뿐, 앞선 본문에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서 이해하기 어려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거리의 평화를 믿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고 자살하려던 구니오는 옛 제자를 만난 뒤 다시 삶의 의지를 찾는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작품. 짤막한 에필로그에 가까우며, 이 작품만 단독으로 존재하기는 어렵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앞서 단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이해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에필로그. 결말답게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의 경찰 내 협조자가 누구인지? 사고를 당한건 누구인지? 히로의 사체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의 진상은?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사건을 조작한건 누구인지? 미즈모토를 누가 살해했는지? 등 모든 떡밥을 회수하고 있습니다. 다케나시가 십왕환명회 신도라서 첫 사건에서 구마지마의 사고사를 거짓 증언했고, 세 번째 작품 사건에서의 은폐와 미즈모토 살해를 저질렀다는 고백을 선보이는게 핵심이지요.
에필로그라 추리적으로는 별게 없지만, 시력을 상실해서 아내 유미코에게 사건 진상 고백문을 쓰게 했지만, 알고보니 백지였다는걸 마지막 사진 한 장으로 밝히는 반전은 강렬했어요.
 
그러나 다케나시, 그리고 세 번째 사건의 진범 모리야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마무리되는건 문제에요. 깔끔하게 이야기가 완결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었습니다. 이 한 편 만으로는 온전한 작품이 아니라서 별점을 주기도 어렵네요. 구태여 준다면 2.5점? 반전만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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