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
<<아래 리뷰에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둘쨋 날, 모토무라 유리에가 살해되었다는 메모가 남겨진 뒤 진짜 혈흔이 발견되는 등 정말 살인이 일어났을지 모를 단서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 배우들 중 유일하게 극단 '수호' 단원이 아닌 신분으로 오디션을 통과한 구가는 사건 중심에 스키 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단원 아사쿠라 마사미가 있다는걸 알아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1992년 발표 작품. "가면 산장 살인사건",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과 함께 '산장 3부작'의 하나라고 합니다. 제목에 '산장'이 들어간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많지는 않습니다. 구태여 이렇게 묶어 홍보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만....
하여튼,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클로즈드 써클' - 즉 고립된 장소 - 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물리적으로는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설정입니다. 펜션 '사계'는 전화도 제대로 연결되어 있고, 외부로의 이동도 자유롭거든요. 다만 나흘 간 펜션에서 실제로 갇혀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오디션에서 떨어진다는 조건 때문에 일곱 명의 배우들은 외부와의 연락도 취하지 않고, 이동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무리 그래도 정말 사람이 죽었다면 누군가 연락을 취했겠지요. 그러나 펜션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이 진짜인지? 연극인지?를 알 수 없게해서 이를 막는다는 아이디어도 좋았습니다. 수상한 정황만 포착될 뿐 시체나 결정적 증거는 드러나지 않아서 독자들도 이게 진짜인지, 연극인지를 마지막까지 눈치채기 힘들 정도니까요. '폐쇄된 공간에 한정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범행을 저지르는건 하잘것없는 삼류 추리 소설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구가의 입을 빌어 말하기까지 하고요. 결국 남아있는 배우들은 신고도 못하고 시간만 끌게 됩니다. 이런 심리적인 '클로즈드 써클' 작품은 처음 보는데 꽤 재미있는 발상이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정말 사람이 죽었다면 누군가 연락을 취했겠지요. 그러나 펜션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이 진짜인지? 연극인지?를 알 수 없게해서 이를 막는다는 아이디어도 좋았습니다. 수상한 정황만 포착될 뿐 시체나 결정적 증거는 드러나지 않아서 독자들도 이게 진짜인지, 연극인지를 마지막까지 눈치채기 힘들 정도니까요. '폐쇄된 공간에 한정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범행을 저지르는건 하잘것없는 삼류 추리 소설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구가의 입을 빌어 말하기까지 하고요. 결국 남아있는 배우들은 신고도 못하고 시간만 끌게 됩니다. 이런 심리적인 '클로즈드 써클' 작품은 처음 보는데 꽤 재미있는 발상이었어요.
"카나리아 살인사건"에서 트럼프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장면에 대한 비판처럼 다른 본격물에 대한 비판도 볼거리입니다. '녹스의 10계'를 대신할 작 중의 10계명이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 인간 하나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는 작가는 명탐정 따위를 만들어 내지 마라.
- 경찰의 수사력을 폄하하지마라.
- 공정하다느니 불공정하다느니 하고 투덜거리지 마라.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답게 쉽게 읽힌다는 장점도 확실합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그닥으로 다른 '산장 시리즈' 작품과 비교할 때 현저하게 수준이 떨어집니다. 애초에 범행 동기가 마사미의 반신불수에 대한 복수라는건 명백하다는 점에서 추리의 여지가 적은 탓입니다. 반신불수인 마사미가 아닌 조력자가 범행을 저질렀을겁니다. 피해자 세 명을 제외하면 서술 트릭을 쓰지 않은 이상 구가가 범인일리 없고요. 그렇다면 남는건 혼다, 요시오, 다카코인데, 여자인 다카코에게는 범행이 무리였을테니 혼다가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요시오는 펜션에서 유리에에게 프로포즈를 했기 때문에 마사미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프로포즈가 거짓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건 독자와 유리에, 요시오에게만 공개된 정보거든요.
추리를 위한 단서 제공도 부족합니다.
- 가사하라 아쓰코를 죽인 흉기인 헤드폰 줄의 잭
- 모토무라 유리에 살해 당시 정전이 되었던 이유
- 혼다 유이치가 구가와 알리바이를 만들었는데 이를 밝히지 않은 이유
정도가 유력한 단서처럼 소개되지만, 이 세 가지 단서는 살인 사건이 연극이었다는걸 증명할 뿐입니다. 진범이 누구인지 밝히지는 못해요. 혼다가 범인이라는걸 밝힌건 수면제를 먹은 일행이 잠들었을 때, 구가가 모두의 몸 위에 사력을 다해 올려놓았던 성냥개비 덕분입니다. 혼다 몸의 성냥개비만 떨어져 있었거든요. 하지만 자다가 뒤척일 수 있고, 구가가 다른 일행들보다 늦게 깨어날 수도 있으니 제대로 된 단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동기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마사미가 반신불수가 된 건 피해자 세 명이 연루된 장난전화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애초에 마사미가 그들의 자동차를 훼손했던게 원인입니다.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쓰코와 유리에에게 밀려서 오디션에 떨어진게 이유인데, 이 중 원망할 상대도 아쓰코밖에 없고요. 모토무라 유리에는 압도적인 미모를 갖추었다고 하니까요. 아무리 연기력이 좋아도, 타고난 미모를 이기기 힘든건 당연합니다. 게다가 오디션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줄리엣을 선택해서 연기를 했던건 본인 실수였는데 누구를 원망한단 말입니까?
혼다가 마사미의 복수를 위해 그녀를 농락했던 세 명을 살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었기에 그녀의 눈 앞에서 그들을 살해하는 '연극'을 펼쳤다는 진상만큼은 앞서 '진짜인지, 연극인지'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전개와 잘 어울리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피해자 아마미야가 혼다의 알리바이가 분명했던 유리에 사건에서 대신 범행을 저질렀던 공범이었으며, 아마미야 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 모두 이게 마사미를 위한 연극이라는걸 이미 알고 있었고, 죄책감에 연극을 도와주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럴 거였다면 '수호' 단원들이 힘을 합쳐서 더 제대로 된 살인 연극을 보여주면 되었을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다른 단원 두 명 - 다도코로 요시오, 나카니시 다카코 - 에게 협조를 구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말이죠. 마찬가지 이유로 외부인 구가를 끌어들일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피해자 아마미야가 혼다의 알리바이가 분명했던 유리에 사건에서 대신 범행을 저질렀던 공범이었으며, 아마미야 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 모두 이게 마사미를 위한 연극이라는걸 이미 알고 있었고, 죄책감에 연극을 도와주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럴 거였다면 '수호' 단원들이 힘을 합쳐서 더 제대로 된 살인 연극을 보여주면 되었을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다른 단원 두 명 - 다도코로 요시오, 나카니시 다카코 - 에게 협조를 구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말이죠. 마찬가지 이유로 외부인 구가를 끌어들일 이유도 없었습니다.
마사미가 펜션 안에 숨어서 이 연극을 관람하고(?) 있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은건 마찬가지입니다. 모든걸 지켜보려면 범행 장소가 제약된다는 문제가 크니까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게 더 합리적이지요. 건물 내부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도촬한다는 설정의 영화 "슬리버"가 발표된게 1993년이니, 기술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을겁니다.
마지막에 모두가 감동하며 하나가 된다는 신파조 결말도 허무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이중, 아니 삼중으로 겹쳐진 연극 트릭이라는 좋은 아이디어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올해 초에 영화화되었던데, 영화 버젼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연극이라는 설정 상 영화화하기도 적당했을테니까요. 영화 버젼이나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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