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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46번째 밀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최고은 : 별점 2.5점

46번째 밀실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일본의 딕슨카라 불리우는 밀실 추리소설계의 거장 마카베 세이치의 별장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친구인 에이토 대학 조교수이자 임상범죄학자인 히무라 히데오와 함께 초대받는다. 파티에 참석한 인물은 마카베 세이치의 가족을 제외하면 모두 추리소설작가와 편집자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카베 세이치는 이번에 발표할 46번째 밀실작품을 끝으로 밀실 추리소설을 그만둘 것을 선언하는데 그날 밤 그는 밀실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일본 신본격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다섯번째 장편으로 그의 명탐정 캐릭터 중 1인인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와 추리소설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의 데뷰작입니다. 이 컴비의 시리즈는 제 블로그에서도 여러번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절규성 살인사건" ,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소개했었지만 장편은 처음 읽어 보네요.

일단 장점과 단점이 확연한데, 장점이라면 제목에서부터 독자에게 도전하는 듯한 밀실 트릭이 괜찮다는 것, 그리고 사건의 전개와 결말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매끄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트릭"에 집착해서 이야기 전개에 설득력을 잃어버리던 다른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이 작품에서의 "트릭"은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내용과 잘 결합되고 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추리소설이라면 당연하지만 의외로 내용과 트릭이 잘 결합된 작품을 최근에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아울러 가장 중요한 단서가 초반부터 설명되고 있는 등 추리적으로 공정하게 독자와 승부하려는 작가의 모습도 마음에 듭니다. 일본의 "엘러리 퀸" 다운 모습이랄까요?
또한 단편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히무라 히데오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과거 및 심리 묘사, 작가의 추리관을 엿볼 수 있었던 추리소설가들의 대화라던가 밀실 트릭에 대한 소개 등 작품 외적으로 즐길거리도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예를 들자면 작가가 소개한 "Locked Room Murders"라는 책,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소개하는 미국 추리소설 작가 댈리 킹의 트레비스 타란트 시리즈 "트멘트 4세호 에피소드"는 정말이지 읽고싶어지게 만들더군요.

그러나 작가 특유의 단점, 예를 들어 추리소설작가들과 편집자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벌어진 눈 덮인 고원 별장에서의 밀실 살인사건이라는 작위적인 무대 설정이라던가, 사건의 실질적인 동기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의 단점도 여전합니다. 특히나 동기 측면에서는 아직도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살인"이라는 범행을 시도하기 전에 진실을 고백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밑져야 본전일텐데 말이죠.
그리고 서재를 밀실로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되고 있지 못한 것은 확실히 옥의 티입니다. 범인이 기상천외한 범행을 저지른 목적은 자기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는데 결과론적으로는 이 의도와 서재를 밀실로 만든 이유는 별로 관련이 없어보입니다. 차라리 목격자인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살해하는 것이 더 설득력 넘치는 상황이죠. 어차피 두명죽이나 세명죽이나 별반 차이도 없잖아요. 그리고 아리스를 만약 살해했더라면 범인이 결국 빠져나갈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점 (가장 중요한 발자국에 대해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에서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 불필요한 암호 트릭 등은 사족으로 느껴졌고요. (차라리 손빈처럼 "여기서 방연이 죽다" 정도가 어땠을까요?)

이렇게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골고루이기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국내 출간된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 중에서는 베스트라 생각되며 일본의 엘러리 퀸 다운 모습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니만큼, 일본 신본격 작품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저는 최고 걸작이라는 "쌍두의 악마"나 차분하게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덧붙여, 학산의 "북홀릭"에서 출간되었는데 표지, 편집 모두 마음에 듭니다. "경성탐정록"도 다음에는 조금 더 신경써 주시길~^^

2012/01/16

밀실살인게임 2.0 - 우타노 쇼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밀실살인게임 2.0 - 6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호인 다섯명. 반도젠 교수, 두광인, aXe, 쟌가, 044APD. 이 커뮤니티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추리하는 '리얼탐정놀이' 커뮤니티였다.

저는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야구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두 분야 모두 정통파를 좋아하지요. 추리는 정통파 본격 미스터리, 야구는 정통파 강속구 완투형 에이스 투수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고보니 멸종해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네요.

어쨌건 이러한 야구 시각으로 본다면, 우타노 쇼고는 정통파 강속구 투수라기 보다는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입니다. 잘 짜여진 플롯과 동기, 복잡한 인간관계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와중에 트릭을 통한 두뇌게임이 펼쳐지는 고전적인 본격물보다는 기발한 트릭과 그에 따르는 전개에 치중하는 작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제가 읽은 작가의 다른 작품은 트릭이 중심인 기교파 소품들이었습니다.

물론 이게 나쁜건 아니에요. 이러한 방식으로도 역대급 작품이 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같은 강력한 결정구가 있으니까요. 다른 구질(작품)들도 충분히 제 몫을 하며, 팬들에게도 항상 기쁨을 주는 유형이니까요. 실제 야구에서도 이런 투수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꾸준하고 성실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이죠. 팔색조 조계현 선수처럼요.

이 작품 역시 이러한 비유에 딱 맞는 작품입니다. 트릭이 풍성하고 설정을 독특하게 가져가며 등장인물 캐릭터에도 트릭이 숨어 있는 등 특유의 화려한 퍼즐러, 트리커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그러나 기교파로서의 단점 또한 도드라져서 안타깝습니다. 트릭, 즉 변화구의 각도와 위력은 좋았지만 동기와 설득력, 이야기 전개라 할 수 있는 제구가 영 꽝이었던 탓입니다. 온전히 트릭을 위해 짜맞춰진 작위적인 설정과 전개였거든요. 트릭이 없다면 작품으로 성립이 힘들 정도입니다. 이래서야 소설보다는 추리 퀴즈에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또한 아무리 사회부적응 잉여 오타쿠들이더라도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얼굴도 모르는 인물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 역시도 불가능합니다. 실제 범행 과정에 소요되는 돈과 노력, 리스크를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첫번째 에피소드처럼 미디어에 보도된 미궁에 빠진 사건을 아마추어 추리 애호가들이 모여 추리한다거나, 각자 생각한 트릭을 문제로 낸 뒤 서로 해결하기위해 머리를 짜내는 이야기 쪽이 훨~씬 좋았을거에요. 이편이 보다 스트라이크에 가까웠겠죠. 지금의 결과물은 트릭을 풀어나가는 면에서는 헛스윙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공 자체는 볼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트릭이 비록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전개면에서 현실성과 합리성을 지녀야 완성도를 인정받을테니 당연한 결과겠죠. 볼의 위력이 좋아도 도망다니는 투수보다는 일단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아는 투수가 진짜 투수인 처럼요. 그래도 트릭만큼은 괜찮은 부분이 있었던만큼 다음 투구에서는 보다 제구력이 동반된 피칭을 기대해 봅니다.

이하 에피소드 상세 소개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1. 다음은 누가 죽입니까?

이야기의 시작. 다섯 명의 멤버가 접한 살인 사건 보도. 그들은 사건이 살인게임이라는 것을 직감한 뒤 진상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살인게임 동호인이 많다는 설정 자체도 넌센스에다가 아무리 오타쿠 추리 매니아들이더라도 추리를 하는 과정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단편집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닥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에피소드입니다. 트릭도 별다른 것은 없고 순수한 수사와 추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독자의 공정한 참여가 차단되는 측면이 강해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딱 한 가지, 달력에 예고를 남기는 것이 단지 날짜와 술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 장소인 맨션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는 아이디어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더군요. 달력처럼 구성된 맨션의 체크된 날짜와 호수를 일치시켜 범행을 저지른다는 게 솔직히 말이나 됩니까... 애시당초 일반인에 가까운 커뮤니티 멤버가 도출 가능했던 연관된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를 경찰이 모르고 넘겼을 가능성도 낮고요. 

놀라운건 이 에피소드가 멤버들의 범행이 아닌 조사와 추리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Q2. 밀실 따위는 없다.

Q1에서 반도젠 교수가 낸 수수께끼와 그것을 응용한 두광인의 수수께끼에 대해 다루는 간단한 소품.

수수께끼 수준이라 딱히 언급할 것은 없습니다. 밀실살인은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로 성립한 것으로, 밀실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aXe의 발언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추리 애호가로서 공감가기도 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Q3. 살인마 잭 더 리퍼, 삼십 분의 고독

Q2에서 범행을 예고한 쟌가가 토막살인으로 밀실을 만든 뒤 그것을 모두가 추리하는 이야기.

다리 두 개를 문에 놓아둔 것만으로 밀실이라는 설정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리 두 쪽이 문에 기대어져 있다 한들 문을 여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핵심 트릭은 충분히 한 번 정도는 써봄직한 괜찮은 아이디어이긴 했습니다. 시체를 훼손한 이유도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또 다른 작품 속 트릭이라 할 수 있는 온도계를 이용한 미끄럼틀 아이디어도 나쁘지는 않았고 말이죠. 물론 트릭대로 잘 됐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시체 속에 숨어 있었다는 트릭을 이용할 것이면 더 교묘한 밀실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피해자와 딸만 가지고 있는 열쇠를 이용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충분히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텐데 급하게 마무리 지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트릭은 괜찮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Q4. 상당한 악마

Q3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두광인의 귀축 단두살인사건 예고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핵심 트릭은 두광인이 화상 채팅으로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특정 장소를 보여주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었고요. 커뮤니티 멤버가 일종의 증인이 되어 두광인의 알리바이가 완벽하다는걸 증명하게 된다는 발상의 전환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핵심 트릭이 그닥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과연 잘 됐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피해자 루카가 통화 중 실수 한 번만 하더라도 모든 게 틀어질 테니까요. 또 두광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은 괜찮았지만 이 커뮤니티처럼 위험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트릭과 반전이 합리적 전개보다 우선한 나쁜 사례죠. 별점은 2점입니다.

Q5. 세 개의 빗장

aXe군이 공들여 준비하고 있다는 트릭을 이용하여 구현한 눈 속의 밀실살인이 수수께끼로 던져지는 에피소드.

눈이 그친 이후에도 피해자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제시되나, 시체가 발견된 곳은 발자국 하나 없는 쓰레기장 한가운데의 전화박스 형태의 박스였습니다. 박스는 세 개의 빗장이 걸려있는 이중밀실이었고요. 이를 위해 aXe군이 계속 이야기하는 정교한 장치 트릭이 선보입니다.

이런 류의 트릭은 극 중 aXe의 입을 통해 말해지듯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들어서 실효성이 없어서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이 작품처럼 순수하게 트릭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설정에는 제법 잘 어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장소와 도구가 잘 맞아떨어진 괜찮은 트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치의 정교함에 대한 묘사와 함께 숨은 그림 찾기와 같은 단서 제공이 필요해서 만화에 더 잘 어울렸겠지만, 평작 수준은 되는 에피소드라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추리 게임의 필요도 없이 진상은 이미 밝혀졌을 텐데, 경찰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싶긴 했습니다.

Q6. 밀실이여. 잘 있거라

멤버 중 명탐정 역할을 담당한 044APD가 낸 수수께끼. 관리인과 현관 자물쇠로 잠긴 이중밀실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는 내용입니다.

트릭은 범인이 피해자이며 탐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신데렐라의 함정"을 생각나게 합니다. 핵심 트릭인 밀실살인 외에도, 별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암호 트릭까지 등장하는 등 추리적으로 확실히 풍성합니다.

그러나 네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채팅을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숨기고 일반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거기에다가 044APD와 마미야가 동일인물이라는 진상은 정말 트릭을 위한 것일 뿐, 동기 측면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왜 자기 자신을 배달해서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트릭은 화려하지만 그 외의 것은 뭐 하나 합리적인 것이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할 트릭은 아닌데, 트릭이 아깝네요.

2021/02/07

Q.E.D Season 1 정주행, 내맘대로 Best - part 2

거의 10년 전, Q.E.D 1권부터 30권 까지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정리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즌 1이 50권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이어서 나머지 31~50권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아봅니다. 시즌 2라고 할 수 있는 iff도 넘버링이 10을 훌쩍 넘어간 지금 시점에서는 다소 뒤 늦은 감이 있지만요.

"베스트 5" 

32권 "매직 & 매직" 

추리와 마술, '트릭' 이라는 요소가 핵심이라는건 동일하지만, 추리는 트릭을 밝혀야 하는 반면 마술은 트릭을 밝히면 그 가치가 없어져 버린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잘 드러내는 내용으로, 토마마저 놀라게 만드는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4권 "모야당" 

두 개의 트릭이 등장하는 본격물. 특히 기발하면서도 독자의 허를 찌르는 첫번째 밀실 트릭이 좋았습니다. 풀장에서 심장 마비를 일으키게 만든 두 번째 트릭도 주요 단서가 명확하게 남아있을 뿐 아니라 다이빙하는 시간을 특정할 수가 없는 등 문제는 있지만 나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제목인 '모야당'이라는 전설과 사건 내용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전개가 일품이었던 작품입니다. 

35권 "크리스마스 선물" 

언제나 기본 이상 재미를 보장해 주는 에나리 회장과 추리 동호회가 등장하는 일상계 작품. 토마가 쓴 각본으로 공연되는 연극 "오각관 살인사건"에 관련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다른 추리적인 요소 모두 좋았지만 특히 연극이라는 상황에 최적화되어 있는 "오각관 살인사건" 속 밀실 트릭이 귀엽고 유쾌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42권 "에셔호텔" 

제목 그대로 에셔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기이한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사용된, 에셔의 작품을 응용한 트릭이 좋았습니다. 범인이 살인을 저지른 눈물나는 동기를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옭아매는 토마의 냉정함도 인상적이었고요. Q.E.D만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46권 "순례" 

여러가지 증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낸다는 Q.E.D에 자주 등장하는 전개의 작품. 하지만 일본군과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전투를 벌이던 당시를 무대로 해서 시대 상황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완성도 높은 역사 추리물이었습니다. 결말도 깔끔해서 만족스러웠어요.

이렇게 5편이 제가 선정한 후반부 베스트 5입니다. 이전 선정작과 합쳐 저만의 'Q.E.D season 1 (1~50권)의 베스트 에피소드 10'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덧붙여, 아깝게 베스트로 선정되지 못한 가작들도 소개해드립니다.

33권 "추리소설가 살인사건" 

추리 소설가가 트릭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Nervous Breakdown"에서도 등장했었던 설정이지요. 거기에서도 '미키가 노래하는 미버'라는 초월 번역이 돋보이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도 만만치 않아요. 괜찮은 밀실 트릭과 추리 소설가들의 심리를 잘 그려낸 덕분입니다. 아쉽게도 용의자가 너무 적고, 트릭이 만화적이라는 단점 때문에 살짝 감점하나 가작으로는 충분합니다.

35권 "두 용의자" 

강도 사건에 대한 추리물로 이야기 자체는 뻔합니다. 하지만 본 사건과 관계없는 과거의 사건을 들먹여 독자를 속이려고 시도하는,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전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기에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38권 "17" 

일본 수학인 "화산"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가상 역사 수학물로, 추리적인 요소보다 현학적인 측면에서 큰 만족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런 점도 Q.E.D의 핵심 재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지요.

40권 "밀실 No.4" 

금고 속 돈을 훔치는 방법에 대한 트릭이 돋보였던 일상계 소품이었던 "4각관계"도 좋았지만, 추리 동호회의 에나리가 등장하는 본격물인 "밀실 No.4"야 말로 진정한 가작입니다. 밀실 살인 사건 해결을 테마로 한 여행 상품 체험 중 벌어진 진짜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지요. 여행 상품 속 밀실 트릭은 억지스럽지만 재미는 있었습니다. 실제 살인 사건에 사용된, 촛불을 이용한 시간 착오 트릭도 괜찮은 착상이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토마가 용의자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덕분에 가작으로 꼽습니다. 상세 내용은 링크 속 리뷰를 참조하시길.

41권 "카프의 탑"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어요. 그러나 논리 퍼즐에 대한 학습 만화로는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학습 만화적인 부분도 Q.E.D만의 볼거리이자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기에, 가작으로 꼽습니다.

2020/11/13

날개 달린 어둠 - 마야 유타카 / 박춘상 : 별점 1.5점

날개 달린 어둠 - 4점
마야 유타카 지음, 박춘상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작가 고즈키는 친구인 명탐정 기사라즈와 함께 이마가카미 가문의 대저택 '창아관'으로 향했다. 가문의 맏형 이토로부터 받은 의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이토가 살해되고, 그 뒤 이마가카미 가문 일종이 한 명씩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기 시작했다. 기사라즈는 죽었다고 알려진 당주 다지마가 범인이라는 추리를 펼쳤지만 빗나가고 말았다.
실의에 빠진 기사라즈가 창아관을 떠난 사이, 새롭게 나타난 명탐정 메르카토르 아유가 기사라즈가 범인이라는 추리쇼를 펼쳤고, 이는 고즈키가 흔들릴 정도로 명추리였지만 돌아온 기사라즈에 의해 논파당했다. 그 뒤 메르카토르마저 범인에게 살해당하는데...

마야 유타카가 쓴 신본격 추리 소설로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작가, 작품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일본 본격 추리 100선'에 꽤 높은 순위(39위)로 랭크되어 있어서, 정통 본격물이 땡기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본격 추리물은 제 몸의 필수 영양소니까요.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이라는 불가능 범죄, 피해자 목을 베어버리는 기묘한 엽기 범죄에 무려 11명이나 죽어나가는 연쇄 살인극이며, 누가 범인인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를 탐구해 나가는 후더닛, 하우더닛 물이라는 점에서 본격 추리물인건 맞습니다.무대가 되는 고성 창아관, 피해자들이 피에 물든 저주받은 재벌 가문이라는 소재도 아주 전형적인 본격물 스타일이고요.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입니다.
당연하게도 개성 넘치는 명탐정도 무려 두 명이나 등장하며, 이 탐정들 - 메르카토르 아유, 기사라즈 - 이 차례대로 펼치는 추리쇼도 볼 만 합니다. 이런 부분들만 보면 딕슨 카가 쓴 초기 방코랑 시리즈 느낌도 살짝 듭니다.

그러나 완성도는 딕슨 카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후더닛, 하우더닛 측면은 현대 시점에 맞지 않고 설정은 유치하지만 나름 괜찮아요. 문제는 와이더닛, 즉 왜 범행을 저질렀나? 왜 이렇게 저질렀나?에 대한 설명이 엉망진창인 탓입니다. 명탐정이라는 기사라즈의 추리도 황당하고요.
우선 기사라즈가 추리한 범인 기리에의 동기부터 살펴 보지요. 그녀의 일그러진 일렉트라 컴플렉스가 동기로, 아버지 스가히코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저지른 범행이라고 추리합니다. 일단,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게 저 뿐만일까요? '죽음의 세례'니 뭐니 있어보이는 말을 장황하게 털어놓지만, 증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궤변일 뿐이에요. 이런 말에 넘어가는 주변 인물들도 한심하기 짝이 없고요. 차라리 어린 자신을 방치했던 아버지 스가히코와 이마카가미 가문을 향한 복수심 때문이었다면 그나마 말이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또 범행이 엘러리 퀸이 발표했던 '국명 시리즈'에 맞게끔 연출되었다는 추리는 실소를 자아냅니다. 스가히코를 신으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동기에 적합한 방법도 아닌데다가, 십자가에 매다는 연출이 필요했다면 그냥 스가히코만 죽여서 매달면 됩니다. 다른 가문 사람들을 살해해서 엘러리 퀸 작품 제목처럼 전시할 이유는 없어요. 범인 기리에가 자살로 이 사건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면 더욱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동기보다 방법이 앞서는, 주객이 전도된 추리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토, 아리마가 죽은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추리는 최악이었습니다. 두 명의 목을 한 번에 벨 때, 머리가 밀려서 한 쪽 머리가 떨어진 목에 두 번째 머리가 붙어서 잠시 살아나 움직였답니다! 그 뒤 문을 잠그고, 열쇠를 쥔 상태에서 목이 떨어져 죽은다네요! 이게 명탐정이라는 작자가 할 소리입니까? 이걸 추리라고 믿고 수긍하는 경찰은 대체 뭐하는 인간들일까요?

그나마 명탐정스러웠던건 기리에가 '일본어를 읽지 못한다'는걸 드러내는 추리 딱 하납니다. 하지만 가문 직계 후예 중 남은게 기리에 밖에 없으니, 범인이 그녀인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의미없는 추리에요. 무려 11명, 아니 12명이나 되는 가문 일족이 몰살당할 때 까지 방관하는 인간이 명탐정인지도 의심스럽네요.

그나마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밝혀지는 진짜 진상 덕분에 본격물로서 체면 치례는 합니다. 범인은 가정부 히사로 변장한, 2년전 사망한 걸로 알려진 가문의 여주인 이마카가미 기누요라는 거지요. 이를 통해 "일본 어치의 수수께끼"는 일본에서만 발표된 제목이라,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기리에가 그 작품처럼 자살한건 이상하다는 맹점은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밀실 트릭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해요. 기누요는 버젓이 놓여 있는 여벌 열쇠를 써서 밀실을 만든 겁니다. 여벌 열쇠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본인이 강하게 주장해서 밀실처럼 보인 것일 뿐이죠.
우네비 살인 사건에서의 알리바이도 그녀의 증언으로 성립될 뿐이며, 처음에 야마베가 보고 놀란 머리는 우네비 머리가 아니라 다지마 머리였다는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일꾼 야마베는 우네비를 몇 번 보지 못했고, 얼굴에 화장이 되어 있어 다지마의 머리를 우네비로 착각했다는건 이치에 맞으니까요. 그리고 야마베가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뛰쳐나갔을 때 머리를 우네비로 바꿔치기 해서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아울러 '머리'를 자른 이유로도 타당한 트릭이라 마음에 드네요.

그러나 그녀가 아나스타샤 공주라서 '퀸'이 쓴 작품을 토대로 사건을 저질렀다는건 기사라즈의 추리만큼이나 억지스럽습니다. 뜬금없는 아나스타샤 울궈먹기는 뭐, 그렇다 치더라도 수십 년을 살아오며 일군 가족을 자기 손으로 이렇게 파멸시킨 이유가 단지 피가 황인종과 섞였다는걸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떨어져요.
범행 역시 마찬가입니다. 90이 넘은 그녀가 무려 11명이나 차례로 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녀가 범인임을 생각도 못한 피해자들이나 여성들이야 그렇다쳐도, 메르카토르라던가 스가히코는 이렇게 맥없이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둘은 가정부 히사가 이미 살해된걸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나타나면 당연히 경계하고 조심했었겁니다. 스가히코를 죽이고 십자가에 매다는 등 힘과 체력이 필요한 범행을 저지른 방법도 설명이 없고요.
2년 전 자신이 죽었다고 위장하고 가정부 히사로 변장하여 가족 앞에 나타났을 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상황 역시 대충 넘어가고 있습니다만, 말이 안되는건 마찬가지에요. 90이 넘은 러시아 할머니가 변장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니, 억지도 정도껏이어야죠.
추리 작가이자 화자인 고즈키가 자신이 가문에서 쫓겨난 시이쓰키의 아들로 메르카토르의 이란성 쌍동이 형제라는걸 밝히는 반전도 솔직히 불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교과서적인 본격 추리물러 '추리'라는 부분에서 볼 만한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일본' 교과서라는 거지요. 일본 특유의 억지와 무리수 설정, 전개가 난무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추리만을 위해 쌓아올린 작위적이며 어설픈 이야기로 읽어보실 필요 없는 졸작입니다. 이런 작품이 이름을 올린 리스트는 더 이상 참고하지 않으렵니다.

2012/01/25

명탐정의 저주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별점 3점

명탐정의 저주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존 본격 추리물을 비웃는 블랙코미디였던 시리즈 전작과는 다르게, 작가인 주인공이 일종의 유체이탈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작품 속 세계에서 활약한다는 동화 같은 설정의 독특한 연작 단편집입니다. 

전작과의 공통분모는 제목, 주인공의 이름을 제외하면 거의 없습니다. 본격 추리에 대한 비꼼이 약간 등장하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요. 동화 같은 설정은 "시미가의 붕괴"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점은 비교적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동화적인 설정임에도 동기와 전개, 트릭 모두 확실한 본격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무차별한 비난이 즐거웠던 전작이 더 취향에 맞았지만, 본격 추리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이번 작품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이쪽 장르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읽어야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여전하지만, 전작보다는 더 일반적인 추리소설에 가깝다는 것도 확실한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전체적으로 평균하여 3점입니다.

수록작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념관

주인공이 덴카이치가 되어 이상한 마을로 소환된 뒤, 의뢰받은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과 여러 등장인물들, 사건의 무대가 되는 기이한 마을에 대해 소개하는 도입부 역할이 강한 에피소드입니다. 짧은 분량 안에서 많은 것을 설명하려다 보니, 추리적으로 특별히 눈여겨볼 점은 없습니다. 덴카이치가 기념관 수위의 팔뚝에 난 자국을 보고 그가 낮잠을 자고 있었으리라 추리하는 부분 정도가 유일할 정도죠.

그러나 동화 같은 마을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마을의 크리에이터라는 미이라, 미이라 발굴 직후 도난당한 30cm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 "Who done it?"이라는 문구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볼거리가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자산가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이자 마을 제일의 자산가 미즈시마 유이치로를 찾아갔다가, 그가 밀실 속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밀실 추리극이 펼쳐지는데, "명탐정의 저주"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덴카이치 시리즈 특유의 추리소설 비꼬기가 다수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피해자의 아들 아키오가 "먼저 타살이라고 결론을 내린 뒤,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 의심해 보라고 한다"는 밀실 트릭의 문제를 비판하는 부분이겠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밀실에서 발견된 시체는 자살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니까요. 걸작 추리만화 "nervous breakdown"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라 반가웠습니다.

이렇듯 밀실을 비꼬고는 있지만, 트릭 자체는 합리적이기에 추리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작품입니다. 간단한 트릭이지만, 사건의 무대가 효과적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완성도가 높습니다. 또한, 밀실의 일곱 가지 종류라는 덴카이치의 이론도 추리 애호가로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부터 이 마을이 '본격 추리'라는 개념을 전혀 모른다는 것과, 마을 자체가 짜여진 무대장치 같은 설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보다 효과를 극대화하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소설가

덴카이치 탐정이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인 소설가 히다를 방문한 직후, 히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입니다. 범인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인간 소실' 트릭이 펼쳐집니다.

본격 추리물에 대한 나름의 작가론이 담겨 있는 점은 인상적이지만, 트릭이 너무 쉽다는 점과 "자산가" 에피소드와 유사한 느낌이 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그냥저냥 평작 수준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위원회

남은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들이 시장의 별장에 모인 뒤, 벼락으로 인해 고립된 후 한 명씩 살해되기 시작하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연쇄살인극입니다. 고립된 별장, 요일에 해당하는 이름을 가진 참석자들, 살인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예언한 듯한 살인마의 장치 등, 설정만 봐도 작가의 의도가 뻔히 보입니다. 마치 "이게 왕도다!"라고 선언하는 듯한 패기마저 느껴집니다.

물론 작가가 이러한 작위성을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이기에 단점은 아니며, 오히려 진부하고 뻔한 클리셰를 동화적인 설정과 결합해 효과적으로 구현한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트릭 역시 예측 가능하지만, 작품과 잘 어우러져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본격 추리에 대한 작가의 향수와 애정이 잘 느껴지는 점이 좋았습니다. 아무리 낡고 오래된 장르라 하더라도, 추리물의 원류는 본격 추리물이기 마련이고, 이 장르에 대한 애정은 추리 애호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별점은 3.5점입니다.

2023/08/26

명탐정의 제물 - 시라이 도모유키 / 구수영 : 별점 2.5점

명탐정의 제물 - 6점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트릭, 진상 그리고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탐정 오토야 다카시의 조수 리리코는 민박집에서 일어났던 밀실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뒤, 학회에 참석해야 한다며 사무실을 떠났다. 귀국 예정일이 지나도 리리코가 돌아오지 않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오토야는 가이아나의 조든 타운으로 향했다. 알고보니 리리코는 짐 조든이 이끄는 종교의 광신도들이 모여 만들어진 마을 조든 타운을 조사하기 위해 찰스 클라크가 조직한 조사단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착 직후 오토야와 동행했던 저널리스트 노기가 타운의 보안군에게 총살당했고, 뒤이어 클라크 조사단원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불가능 상황에서 살해된채 발견되었다. 리리코는 오토야와 함께 조사를 펼친 끝에 미국 하원의원 라일랜드가 조든 타운을 방문한 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사건들은 모두 사고였고 불가능 상황이 된 건 신도들의 의지였다는 추리를 밝혔다.
그러나 라일랜드 일행을 타운 보안군이 사살하고 리리코마저 살해당한 날, 오토야는 대규모 자살쇼를 앞둔 조든과 신도들 앞에서 숨겨져 있었던 진상을 폭로하기 시작하는데....

최근 추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어 있는 일본 본격 추리물. 2023년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을 비롯하여 '고노미스',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등 유명 미스터리 어워드 상위권을 휩쓴 작품이지요.

유치해보이는 표지와 부제 탓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화려한 수상 이력이 증명하듯 '본격 추리물'로의 가치가 높다는게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조든 타운에서 벌어진 무려 4건의 불가능 범죄를 비롯하여, 도입부의 요코야부 요스케 밀실 살인 사건 등 사건도 풍성하고, 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단서가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며, 오토야와 리리코를 통해 각 사건마다 여러가지 추리가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리리코가 왜 오토야에게 가짜 서명이 되어 있는 <<탐정 교과서>>를 가져왔었는지 등 사소하지만 디테일한 추리들도 잘 짜여져 있고요.
특히 핵심이 되는 조든 타운에서 벌어진 불가능 범죄에 대한 트릭과 추리가 기발해서 만족도가 높습니다. 사건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은데요.
  1. 전 FBI 조사관으로 인민교회 간부로 위장한 알프레드 덴트가 밀실인 자기 방에서 칼에 찔려 죽음.
  2. 조든 타운 요리반 멤버들과 티 타임을 갖던 사이비 과학 탐정 조디 랜디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죽었는데, 차는 함께 했던 요리반 멤버들 모두가 같이 마셨음.
  3. 한국인 이하준이 상, 하반신이 토막난 사체로 발견되었는데, 이하준은 가방에 갇혀서 오토야와 리리코의 눈을 피해 빠져나갈 수 없었음.
  4. 묘지에서 리리코를 살해한건 아이였는데, 묘지 관리인 크리스티나는 아이는 누구도 묘지에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고 단언함.
여기서 진상은 '조든 타운의 광신도들은 스스로 아무도 질병이나 몸의 이상이 없으며, 사람들을 이상이 없는 완전한 모습으로 바라보지만 외부인들은 그들의 모습을 현재 그대로 바라본다'는, 오토야의 표현을 빌자면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를 통해 밝혀지게 됩니다.
첫 번째 사건에서, 덴트는 이미 칼에 수차례 찔린 채로 방에 들어간 뒤 문을 닫고 밀실을 만든 뒤 죽었습니다. 그러나 방에 가던 덴트를 목격했던 Q는 덴트의 치명상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조든 타운의 신도가 몸에 상처가 있을리 없기에, 기억에 왜곡을 일으켰던 겁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 조디 랜디는 오른 손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의 입이 닿는 부분에 묻혀진 독을 먹고 죽었습니다. 함께 했던 요리반 멤버 중 크리스티나는 오른 손이 없었고, 블랑카는 왼손잡이였으며 레이첼은 오른 손가락이 골절되어 오른 손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 오른 손으로 차를 마셨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범인은 사전에 레이첼의 오른 손가락을 부러뜨렸지만, 레이첼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고 주위 사람들도 레이첼이 다쳤다는걸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사건에서 범인은 감방에서 이하준을 살해한 뒤, 상하체를 토막내어 각각을 간수 프랭클린을 이용해 밖으로 옮겼습니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다리가 있다고 믿었기에, 휠체어 하반신 쪽에 설치(?)된 사체 토막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시체를 옮길 때 마다 범인에 의해 기절했던 것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요. 
네 번째의 리리코 사건은 범인 레이 모튼이 어른이지만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던 탓에 아이같은 외모를 가졌던게 이유였습니다. 오토야는 실제 그대로 어린아이를 목격했지만, 묘지 관리인 크리스티나의 눈에 레이 모튼은 정상적인 성인이었기에 상반된 증언에 의한 불가능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광신자 집단의 잘못된 믿음같은 일종의 대규모 집단 최면은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하기는 했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작품 중에서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이 대표적이지요. 특정 집단 전체에 걸려있는 일종의 최면으로 정보 자체가 왜곡된다는건 동일합니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서 소개된 <<다카마가하라의 범죄>>는 '현인신은 신이라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녀가 조서를 들고 2층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보초 눈에 보이지 않았다'라는, 종교 단체의 신앙으로 비롯된 현실 왜곡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는 아예 똑같은 발상일테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과 트릭을 꽤 현실적으로, 설득력있게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정신병자 교주가 주도하여 신도들이 집단 자살했던 가이아나 존스 타운 사건 (인민 사원 사건)을 사건의 바탕으로 삼고있는 덕분입니다. 실제 사건을 본격물로 풀어내어 다채로운 트릭을 선보인 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다소 팩션같은 느낌을 전해주는게 좋더라고요.

하지만 이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 외의 추리들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문제는 큽니다. 리리코의 추리부터 살펴보자면, 그녀는 사건들은 모두 사고였다고 - 덴트는 밀실에서 실수로 칼에 찔려 죽었고, 조디 랜디는 지병인 협심증으로 사망했으며, 이하준은 간수 프랭클린으로 변장하여 휠체어를 타고 급경사에서 고속으로 도주하다가 와이어에 걸려 토막이 났다 - 생각했습니다. 이를 발견한 조든 타운의 신도들이 '질병도 없고, 사고도 없는 조든 타운'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현장을 조작했다고 추리했고요. 
그런데 협심증이야 그렇다쳐도, 밀실에서 칼이 튀어 등에 찔려 죽었다? 고속 휠체어 이동으로 몸이 토막났다? 솔직히 어이없는 발상입니다. 이런 추리에 수긍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물론 이는 사건을 대충 수습해서 무마하기 위해 억지로 풀어낸 추리였다는 전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오토야의 '신앙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는 더 한심했습니다.
오토야는 덴트의 방을 밀실로 착각하게 만든 열쇠와 조디 랜디에게 다과회 시점에 녹아내리도록 독이 든 캡슐을 낮은 온도에서 녹는 저융점 합금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융점 합금은 별다른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조든 타운에서도 어떻게든 가공할 수 있는 소재였을 수는 있어요. 문제는 이 합금이 그렇게 흔하지도 않았을테고, 원하는 모양으로 딱 맞춰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때 맞춰 녹아내리도록 한다는건 더 말도 안된다는 겁니다. 이건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사용될 수준의 트릭이었어요. 그나마 3일 전 사망했던 오토야의 지인 노기의 사체를 토막내어 이하준 사체로 위장한 뒤 발견되도록 만든 다음에 이하준을 살해했다는 추리 정도만 괜찮았습니다. 이후 이하준 사체를 토막내서 공동묘지 관리 오두막의 노기 사체와 바꿔치기 했다는 것이죠.
'신앙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의 끝이 짐 조든이 범인이라는건 설득력이 더욱 약했습니다. 저융점 합금을 사용할 수 있고, 이하준의 사체를 빼돌리기 위해 1감옥에 갇혀 있던 오토야와 리리코를 석방시킬 수 있었던건 짐 조든 밖에 없었다는게 근거인데, 애초에 저융점 합금을 사용했다는게 말도 안될 뿐더러, 짐 조든은 앞서 맹인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낮다는게 이미 언급되기에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조든이 카리스마와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신의 천벌같은 불가능 범죄를 저질렀을거라는 동기도 미흡하기 짝이 없고요. 설령 조든이 그런 생각을 했다 한들, 직접 범행을 저지를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수족같은 간부나 광신자를 이용하겠지요. 맨슨 패밀리의 찰스 맨슨이나, 오움 진리교의 이시하라 쇼코가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애초에 '명탐정' 들이 다수 등장하는 설정부터가 별로에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괴사건 해결 전문 명탐정을 실체 있었던 사건과 결합하여 풀어나가니 괴리감만 크게 느껴집니다. 오토야와 리리코를 사이비 종교 전문가로 설정해서 조든 타운으로 향하게 만드는게 훨씬 좋았을거에요.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되기는 하나, 너무 과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느낌도 들게 만듭니다. 대표적인게 덴트 방 옷장의 혈흔입니다. 등에 칼을 찔렸다고 혈흔이 저렇게나 튄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문이 어떻게 열리든 그게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았고요.

도입부의 밀실 살인 사건도 그닥입니다. 밀실 안에서 죽은 사람은 유명탐정 요코야부 유스케였고 사체에 남겨진 탄환 감식 결과, 그를 쏜 건 10여년 전 권총을 훔친 뒤 11명을 사살했던 108호 사건의 범인이었다는 사건이지요. 오토야는 추운 날씨인데도 요코야부가 얆은 옷에 난방도 켜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이는 범인이 요코야부의 겉옷을 벗겨갔으며, 그 이유는 겉옷에 총을 쏜 흔적을 숨기기 위해서였고, 따라서 요코야부는 자살했다, 이유는 요코야부가 108호였기 때문으로, 실수로 권총이 오발된 뒤 정체를 숨기기 위해 창 밖 바다에 총과 겉옷을 버렸고, 그 때 그걸 목격한 거리의 떠돌이 소년을 쏴 죽였으며, 문만 열어두면 침입한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여겨졌겠지만 힘이 다해 문을 열기 전에 죽고 말았다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리리코는 요코야부의 겉옷을 벗겨간 건 자기보다 큰 재킷을 입고 있었던 거리의 떠돌이 소년이며, 그가 바로 108호였다는 추리를 내 놓습니다. 요코야부에게 원한을 품은 108호는 요코야부에게 총을 쏜 뒤 오토야의 추리처럼 그를 108호로 몰기 위해 총을 객실에 두고 나왔는데, 기력이 남아있던 요코야부가 창 밖의 108호를 쏴 죽인 뒤 108호로 오인받지 않으려고 권총을 던져버렸다면서요. 108호는 10년 전에도 10대 중반의 소년이었는데 지금도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 이유는, 성인이 되지 못하는 선천성 질환인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하는데, 이는 경찰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지게 됩니다.
오토야와 리리코의 추리는 괜찮습니다. 추운 날씨인데도 켜지 않는 나방과 입지 않은 외투, 안에서 보기에 열릴 것 처럼 보이지 않는 바다로 향한 창, 다른 객실 투숙객이 들은 물 튀기는 소리 등 단서도 잘 제공되고 있거든요. 
하지만 총을 훔쳐 11명이나 죽였던 범인이 알고보니 성장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었다는게 너무 억지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며, 무엇보다도 이 사건이 오토야가 조든 타운 신도들을 모두 독살한 진범이었다는 마지막 진상으로 이어진다는건 해도 너무했습니다. 명탐정 리리코가 고작 세 명을 살해한 잡범에게 살해당했다는걸 인정할 수 없어서 - 요코야부는 11명을 죽인 108호에게 죽었는데! - 수백명을 참살하도록 만들었다는데, 정말 가관이었어요. 일본식 명탐정 허세의 극을 달리는, 정신줄 놓게 만드는 황당한 동기였습니다. "탐정은 때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탐정의 역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도 옥의 티이고요. <<유리탑의 살인>>도 그렇고, 왜 이렇게 명탐정이라는 존재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동기야 어쨌건 오토야가 독을 탔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루이스의 유서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에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요. 신도 중 생존자였던 Q가 루이스가 이상했지만, 당시 조든 타운 신도였기에 이를 몰랐다는 주장을 펴는 것 역시 입증할 증거는 전무하고요. 오토야가 범행을 순순히 인정하고 체포되어 수감될 이유가 도저히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 실제 있었던 끔찍한 사건을 추리와 결합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솜씨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만화같은 불필요한 설정, 그리고 추리에 사족이 많았기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본격 추리물로는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는건 분명하니, 추리 애호가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2/08/28

밀실 추리물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하는 명작 10선 (출처 : 서스펜스 라이프)

서스펜스를 좋아하고, 서스펜스를 위한 일본의 추리 소설 전문 사이트 서스펜스 라이프에서 발견한 밀실 추리 추천작 리스트.

추리 소설에는 많은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밀실 추리물은 인기가 많습니다.

모든 문이 잠겨 있는 방 안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범인은 어떻게 피해자를 살해하고 도망쳤을까? 이러한 여러가지 밀실의 수수께끼 풀이를 즐기고, 작가가 교묘하게 만들어낸 수수께끼에 도전해 보고 싶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하는 밀실 추리물 10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1. <<밀폐 교실>> 노리즈키 린타로 *국내 미출간

노리즈키 린타로의 데뷰작으로 수많은 트릭이 사용되고 있다. 학교의 밀실 상태 교실에서 일어난 수상한 죽음, 자살인가 타살인가!
읽기 쉽고 즐길만한 요소가 많은, 밀실 추리물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2. <<혼진 살인 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긴다이치 코스케가 첫 등장하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대표작.
겹겹이 쌓여진 복선이 인상적으로, 밀실 트릭의 개척자격인 작품입니다.

3. <<자물쇠가 잠긴 방>> 기시 유스케

밀실을 주제로 한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연작 단편집.
방범 컨설턴트 에노모토와 변호사 준코 컴비가 밀실 살인 사건 해결에 도전한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가지 밀실 추리물을 읽고 싶은 분들께 딱 맞는 작품.

4. <<꽃의 관>> 야마무라 미사 *국내 미출간

야마무라 미사의 교토 무대 시리즈 첫 작품. 명탐정 캐서린이 처음으로 등장하며, 잘 고안된 메인 트릭도 볼거리. 무엇보다도 교토의 정서를 맛볼 수 있다는게 포인트입니다.

5. <<46번째 밀실>> 아리스가와 아리스

명탐정 히무라 히데오의 첫 등장 작품으로 눈으로 갇힌 저택을 무대로 한 완벽한 밀실 추리물.
간단한 트릭이 사용되었지만 풀어내기는 어렵습니다.

6. <<밀실의 열쇠 빌려드립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데뷰작.
유머스러움이 가득하지만, 밀실 트릭도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7. <<날개 달린 어둠>> 마야 유타카

마야 유타카의 데뷰작.
부유한 일족이 사는 외딴 저택에서 벌어지는 연속 살인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본격 추리물다운 설정과 소재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도 반전이 많아서 반전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8. <<지나가는 바람은 초록색>> 쿠라지 아츠시 *국내 미출간

고양이 마루 선배 탐정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아이디어도 좋고, 고양이 마루 선배의 개성과 상냥함이 잘 표현되어 있습ㄴ다.

9. <<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뷰작. 긴 여운을 남기는 청춘 미스터리로 결말도 놀랍습니다. 팬이라면 놓치면 안되겠지요.

10. <<일곱 개의 관>> 오리하라 이치

오리하라 이치의 데뷰 단편집.

데뷰작이 많다는게 특이한데, 다 읽어본건 아니지만 제가 보기에는 '명작' 이라고 부를만한 작품들은 아닙니다. 전부 일본 작품이라는 한계도 분명하고요. 언제나 그렇듯 이런 류의 리스트는 그냥 참고만 하시는게 좋겠습니다.

2009/11/28

시미가의 붕괴 - 기타무라 가오루 / 김해용 : 별점 3점

시미가의 붕괴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김해용 옮김/황매(푸른바람)

"하늘을 나는 말"이라는 작품이 굉장히 유명한, 그래서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추리 독자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입니다. 사실 대표작도 아니고 해서 이 작품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워낙 컸던 탓에 구입하게 되었네요.

일단 이 작품집은 크게 3가지 성향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추리를 기반으로 한 블랙코미디적인 작품, 그리고 일상의 소소함을 디테일하게 추리와 결합시키는 (하지만 추리물은 아닌) 일상계 추리분위기 소품, 마지막으로 인간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그린 드라마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 블랙코미디 류(類)로는 표제작이기도 한 "시미가의 붕괴"와 "죽음과 밀실", 그리고 "옛날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들 수 있을테고 두번째 일상계 소품은 "하얀 아침"과 "주사위, 데굴데굴", "오니기리, 꾹꾹"이 해당되며, 마지막 심리드라마는 "녹아간다"와 "나비", "나의 자리" 가 해당된다 생각됩니다. 이중 개인적으로는 일상계 소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일상계 미스터리로 유명한 작가답다고나 할까요? 추리적인 요소가 녹아있으면서도 그것이 그야말로 일상과 밀결합되어 있고 내용과 캐릭터들도 너무 귀여워서 읽는 내내 아~주 흐뭇했거든요.

물론 그 외의 대부분의 작품들 역시 추리적인 성향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포함되어 있기에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블랙 코미디 류의 작품군은 조금 더 절제했더라면 동화적인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추리물로 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나칠 정도로 설정이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 약간은 아쉽더군요.

그래도 국내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작가의 작품집이고 작가 특유의 센스가 충분히 느껴지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정통 추리물들도 아니고 작가의 대표작도 아니긴 해도 가볍게 즐기기에 좋아서 추리소설에 거부감을 느끼실 수 있는 초심자분들에게 추천할만 하다 생각되네요. 특히 여성분들이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아울러 이 단편집을 계기로 추후 일상계 소품으로만 묶인 (대표작인 "하늘을 나는 말" 시리즈면 더욱 좋고요) 단편집이 나와준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PS : 최근 너무 바빠서 좀 격조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읽은 책이 쌓여가는데 포스팅할 시간이 없네요...
녹아간다
평범한 회사원 미사키의 정신 붕괴과정을 "만화"라는 독특한 매개체를 통해 표현한 심리 드라마입니다. 치밀한 묘사는 볼거리이지만 정신 붕괴, 즉 미쳐가는 과정에 대한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아서 결과물만 놓고 본다면 평범한 수준이라 생각되네요.

시미가家의 붕괴
천재탐정과 그의 조수가 탐정의 친구인 장서수집가 시미가를 방문했다가 시미의 아내 가즈코가 밀실에서 살해된 것을 발견한다.
과장된 동화같은 설정의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추리물입니다. 일단 서두의 등장인물 소개가 너무 장황하고 허무맹랑해서 당황스럽더군요. 그냥 천재탐정과 조수였어도 충분했을텐데 조수의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사랑한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탐정의 천재성도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채워놓고 있거든요. 하지만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밀실 살인과 다이잉 메시지트릭을 적절하게 사용한 덕에 그나마 황당한 이야기안에 추리적인 이야기가 깔끔하게 녹아들어 있는 것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에 대한 책 소갯글이 더 예술적입니다. 별거없는 반은 장난같은 이야기를 흡사 고전 전통 트릭 미스터리와 고딕 호러의 결합물 처럼 소개해 놓았더군요.
(탐정에게 사건이란 이미 읽은 책이나 다름없다!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을 파헤치는 천재 탐정의 놀라운 활약!
완벽히 다 갖추어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수집 강박증. 단순한 호기심과 관심의 경계를 넘어선 그것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치명적인 욕망으로 자라나 목숨마저 위협한다. 책 수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장서가 부부에게 어느 날 찾아온 죽음이라는 손님. 책에 대한 무모한 집착이 부른 재앙 앞에서 탐정은 진실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 나가는데…….
아무리 채워도 꽉 차지 않는 서가의 구석에서 발견된 부인의 다잉 메세지. 남편의 가장 깊은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 시미가는 마치 꿈처럼 아스라이 붕괴하고 만다.)


죽음과 밀실
노인 추리작가들이 모여사는 공동체 "환상의 정원"에 정말이지 완벽한 밀실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시미가의 붕괴와 연결되는 천재탐정과 조수 이야기로 추리소설의 이상적인 형태를 냉소적으로 비웃는듯한 작품입니다. 추리소설로 보기는 어려운, 추리애호가들을 위한 블랙코미디에 더 가까웠달까요?

하얀 아침
주인공이 과거 소녀였을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1인칭 시점의 이야기로, 청춘드라마같은 깜찍한 사랑이야기가 나름의 추리적 요소 (누가 왜 아버지 차 백미러 성에를 닦아놓았을까?)와 잘 결합된 일상계 소품입니다. 여성작가다운 특유의 세밀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과연 일상계 미스터리의 거장이구나..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에서 추리적인 전개를 이끌어내는 것이 놀라운 작품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 중 한편으로 추리물에 대해 별로 내켜하지 않는 지인들에게 따로 권해주고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주사위, 데굴데굴
출판사 신입사원 치하루씨는 우연하게 한 남자가 떨어트린 십면체 주사위에 관심을 갖는데...
5페이지짜리 이야기로 이정도면 소품이라기 보다도 꽁트라 해도 무방한 분량이죠. 하지만 이야기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아주 일상스럽지만 귀여운 발상의 트릭이 깜짝 등장하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여간.. 아이들 머리는 정말이지 못 당하겠어요^^

오니기리, 꾹꾹
치하루씨는 회사 선배 미즈마치와 함께 이와테로 현장조사를 나간다...
전편과 같은 주인공 치하루씨 시리즈로 이번엔 분량이 약간 기네요. 하지만 역시나 귀여운 소품답게 이와테로 무대가 옮겨갔어도 여전히 일상스럽고 밝은 이야기입니다. 등장 인물들이 모두 착하디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그러하고요.

추리의 요소는 두가지로 한가지는 버린 깡통이 어떻게 멀리 있는 계곡까지 굴러가는지와 제목의 오니기리를 만든 결과물에 대한 추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다한 트릭이나 추리는 아니지만 이야기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은 역시나 마음에 들었어요.

나비
한 여성의 술자리 잡담이랄까... 심리묘사는 좋은데 두서도 없고 이야기도 없는 단상만 모아놓은 짧은 잡문이랄까요. 언급할게 별로 없네요....

나의 자리
주인공이 평상시와 다른 일상을 통해 누군가의 자리를 빼았는다는 설정도 굉장히 독특하지만 이러한 자신이 느낀 일상속의 불편함이 결국 자기자신과 연결된다는 결과가 굉장히 서늘해서 "기묘한 맛" 류의 작품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반전으로 이르는 전개와 묘사도 군더더기 없는, 작가의 필력과 센스를 잘 느낄 수 있는 수작이라 두번째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옛날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일본의 전래동화 "카치카치야마" 이야기 (할아버지가 밭일을 하다가 잡아온 너구리로 너구리죽을 만드려 하는데 너구리가 외려 기지를 발휘해서 풀려난 뒤 할머니죽을 만든다는 엽기 이야기?)를 추리물 형식으로 꾸민 내용으로 서두에 지극히 개인적인듯한 느낌의 장황한 옛날 이야기 해석에 대한 이론이 묘사되는 등 작가 스스로의 생각을 대화하듯이 써내려간 형식이 무척 이채로웠던 작품이었습니다. 뭐 달리 이야기하자면 좀 쭉쭉 써내려간 느낌도 들긴 하네요. 왠지 좀 장난스러움이 많이 묻어나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어차피 모티브가 된 전래동화가 내용을 잘 모르는 일본 전래동화이기 때문에 몰입하기 힘든 탓도 크겠죠.

하지만 워낙 개인적인 단상이 많은 글이다보니 실제 기타무라 가오루라는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된 것 같아 흐뭇한 느낌도 들고 추리적으로도 이야기를 잘 구성해 놓아서 감탄했습니다. 전래동화를 앞뒤가 맞아 떨어지는 추리물로 각색할 생각을 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결과물도 상당한 수준이니 놀라울 따름이죠.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것 같은 작품인데 저에게는 무난한 평작 수준으로 생각되네요.

2010/05/23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 이시모치 아사미 / 박지현 : 별점 3점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 6점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살림

대학 경음악부 '알코올중독분과회'의 멤버로 술을 좋아해서 친하게 된 대학 동창들이 오랫만에 동창 중 한명인 안도의 가족이 운영하던 초고급 펜션에서 동창회를 갖는다. 그리고 저녁식사 직전 동창회의 리더이기도 한 후시미 료스케는 후배 니이야마를 죽이고 완벽한 밀실 살인을 만들어낸다. 저녁식사 이후까지 모두들 니이야마가 피곤하여 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서히 의심이 쌓여가고, 후배인 우스이 유카가 합리적인 추리를 통해 서서히 범행을 재현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네이버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 카페에서 뽑은 2009년 미스터리"에서 17위를 차지한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가는 예전에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라는 작품에서 너무 실망이 컸기에 다시 작품을 구해볼 생각은 없었는데 블로그 지인이신 kisnelis님 의 평도 좋고 마침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독특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인공 후시미가 완벽한 밀실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도서 추리물이면서도, 뒷 부분에서 밝혀지는 이유 때문에 시간까지 철저히 계산된 계획에 따라 밀실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완벽한 밀실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곧바로 밝혀지면 안 되는 상황을 일정 시간, 즉 10시간 동안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이 시간 동안 밀실을 앞에 두고, 제목 그대로 '문이 아직 닫혀 있는 동안' 탐정역인 유카와 후시미가 불꽃 튀는 두뇌 대결을 펼쳐 나간다는 점입니다. 유카는 "현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방 안과 니이야마의 상태를 추리하고, 후시미는 이러한 추리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서 첫 번째의 이유, 즉 '밀실 상태를 일정 시간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려고 애쓰는 대결 구도가 이루어집니다.

도서 추리물에서 탐정과 범인이 두뇌 싸움을 벌이는 작품이 흔하지만,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벌이는 배틀은 자주 접하지 못한 설정이라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추리 배틀 자체도 완성도가 높고요. 특히 탐정과 범인의 지력이 대등한 수준이라 서로 주고받는 심리전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주로 유카가 먼저 논리적인 펀치를 날리는데, 예를 들어 방을 밀실로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도어스토퍼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창밖에서 내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는지 등, 합리적이면서도 이야기 전개에 걸맞은 단계별 논리를 선보입니다. 앞부분에 제공되는 단서들, 예컨대 위스키 병이나 니이야마의 시력 등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어 독자도 추리에 참여할 수 있게끔 배려된 점도 좋았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마사토끼"의 만화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카와 다른 동창생들의 발언과 추리가 촉발시키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오는 서스펜스도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동기' 부분에서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동기를 쉽게 설명하자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부상 위험이 있는 선수가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어 팀에 피해를 주지 못하게 하려고 그 선수를 죽인다'는 이야기와 다름없습니다. 이런 설정은 작가 미쓰하라 유리가 책 뒤에서 해명하고 있지만,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우연과 운에 의존하는 전개가 많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니이야마가 약에 의해 수면 상태에 빠지는 것이 대표적이며, 다른 동창생들의 심리가 후시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 역시 운에 의지한 억지 설정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거든요. 작 중에서 이런 우연을 작가가 스스로 해명하기도 했지만, 차라리 작가가 책 뒤에서 설명한 대로 '심야에 범행을 저지르는 설정'이 훨씬 설득력이 높았을 겁니다. 물론 그런 방식이었다면 소설로서의 재미가 크게 줄어들었겠지만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정통 본격 추리소설의 매력을 잘 살려 재미있게 몰입해 읽을 수 있었으며, 번역도 훌륭하고 책의 디자인도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통해 이시모치 아사미라는 작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게 좋았어요. 앞으로 작품 한두 개만으로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말아야겠습니다.

2010/10/28

도깨비불의 집 - 기시 유스케 / 이선희 : 별점 2점

도깨비불의 집 - 4점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시작

기시 유스케의 단편집입니다. 총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편으로만 잘 알려진 기시 유스케가 단편집을 출간했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도 주인공들이 "유리망치" 의 에노모토와 준코 콤비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주저 없이 집어 들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읽고 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선, 본격 추리소설로서의 매력이 부족했습니다. 수록된 4편의 중·단편 모두 트릭이 별로였으며, 작품 전체의 테마인 '밀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무리수를 둔 듯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트릭이 다소 부족하다면, 이야기나 캐릭터의 매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유리망치"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그려졌던 '괴도 탐정' 에노모토와 츤데레 변호사 준코 콤비도 이 작품에서는 표면적인 묘사로만 일관하며 개성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기시 유스케는 본격 추리보다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강점으로 하는 작가라 그런지, 이야기의 길이와 묘사가 제한되는 단편에서는 매력이 반감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유리망치"도 본격 추리적인 측면에서는 평범한 수준이었죠.) 미치오 슈스케처럼 단편보다는 장편이 더 어울리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도깨비불의 집

나가노의 한 시골 마을에서 지역 유지인 니시노 마사유키의 딸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출동한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집이 완벽한 밀실 상태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첫 발견자인 니시노를 주요 용의자로 지목한다. 이에 니시노의 변호사는 '밀실' 사건의 권위자로 알려진 준코 변호사를 초빙하고, 준코는 사건 해결을 위해 이전 사건의 진짜 해결사였던 에노모토를 호출하는데...

범인이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도망갈 수 없는 완벽한 밀실 사건이 등장하는 표제작으로, "유리망치"처럼 다양한 가설이 등장하고 이후 진상을 밝혀내는 전개가 비슷합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측면에서는 개운치 않았습니다. 경찰이 화장실을 조사하지 않은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 점, 밀실 자체가 지나치게 작위적인 점, 그리고 용의자가 특정되어 있어 증거 없이도 '심문'만으로 진상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에서 본격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았습니다. 동기도 억지스러웠고요.

오히려 에노모토가 제시한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는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설이나 캐릭터의 매력은 그나마 살아 있는 편이라 평작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검은 이빨

준코는 의뢰인 후루미조와 함께 사고로 죽은 구와시마의 애완동물 사육용 별장을 방문한다. 구와시마가 키우던 거미를 관리하고 후루미조의 거미를 받아오기 위한 것이었지만, 구와시마의 미망인의 태도와 그의 사망 사건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된 준코는 진상을 밝혀내기로 한다.

'거미'라는 설정 자체는 특이하지만, 트릭이 너무나도 별로였습니다. 일반인이 과연 이런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성이 떨어졌고, 애초에 이렇게까지 해서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있었는지조차 의문이거든요. 게다가 에노모토의 '가설'도 별로였기에, 준코가 혼자 활약하는 점 외에는 건질 것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장기판의 미궁

밀실에서 살해당한 프로 장기 기사 신페이 5단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은 에노모토를 부른다. 장기 팬이기도 한 에노모토는 사건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진상을 눈치채게 된다.

밀실 트릭이 너무나 어이없는 수준이라 황당했던 작품입니다. 이런 유형의 트릭은 "노란 방의 비밀"에서부터 수없이 등장했던 것이지만, 그마저도 설득력 있게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범인을 특정하는 과정도 어설펐습니다. 체인에 피해자의 혈흔과 손자국이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서 이렇게까지 사건이 꼬일 이유도 없고요. 경찰이 조금만 수사를 진행했어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라 생각됩니다.

다행히도 '장기'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그에 따른 범인의 동기에 대한 설명은 흥미로운 편이었지만, 그것이 본격 추리 소설로서의 완성도를 높여주지는 못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개는 알고 있다

연극 극단의 극단주 헥터가 살해된 사건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사야카는 진상 규명을 위해 준코를 찾아온다. 준코는 헥터의 자택 앞에 모인 극단원들에게 진범을 밝혀낼 것을 선포하고, 에노모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왁자지껄한 블랙 코미디이며, 설정과 전개는 연극에 가까운 작품. 살인 사건이 등장하고, '돈류고'라는 개가 만들어낸 밀실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밀실 트릭은 에노모토의 말처럼 '너무나 손쉬운' 간단한 트릭이었습니다. 동기가 너무나 확실한 용의자가 있어서 사건 해결도 쉽고요.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유쾌하고 독특한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기존 기시 유스케의 작품과도 사뭇 다른데, 이런 작품도 잘 쓰는 작가라는게 놀랍더군요. 적절한 분량도 마음에 들었고요. 평작 수준은 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2009/06/09

나폴리 특급 살인 - 랜달 개릿 / 김상훈 : 별점 4점

나폴리 특급 살인 - 8점
랜달 개릿 지음, 김상훈 옮김/행복한책읽기

가상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 대체역사 SF 소설이면서도, 탐정 다아시경이 활약하는 추리물이기도 한 독특한 작품집입니다. 전에 "세르부르의 저주"를 읽고 딱히 취향이 아닌듯 해 관심을 끊었던 시리즈지만 이번의 50% 할인 행사를 놓칠 수 없어 구매하여 읽게 되었네요.

그런데... 정말 안 읽었더라면 엄청 후회할뻔 했습니다. 일단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세계관이 아주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들 수 있는데, 과학적 마법 문명의 지배를 받는 영-불 제국을 무대로 하여 마법이 증기기관과 공존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유사한 분위기의 일본 만화들의 원조격 작품이기도 하죠. 그러나 다른 파생 작품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자 가장 마음에 든 점은 이 세계관에서 "마법"은 일종의 보조적인 역할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마법은 "전문가" 가 행하는 "전문적인 행위" 이기는 한데, 현대 과학기술에서 관련된 전문가가 행하는 역할과 유사한 점이 있는 일종의 "기술" 처럼 그려질 뿐이거든요. 예를 들면 "방부처리" 라던가 "자물쇠 전문가" 같은 식이죠. 즉 수사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에서의 검시관이나 감식관이 수행할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거 정말 획기적 발상이 아닌가 싶어요.

또한(어떻게 보면 당연하게도!) 마법이 사건에 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 것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이 작품에서 마법은 단지 설정과 재미를 위해서 존재할 뿐이며, 각 사건들 마다 "마법이 개입된 사건이 아니다" 라는 것을 마법사들이 조사해서 먼저 알려주는 점 등으로 철저하게 추리의 영역과 마술의 영역을 구분함으로서 뻔하디 뻔한 SF-판타지가 될뻔한 작품을 추리물로서도 가치를 지닐 수 있게끔 중심을 잘 잡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약간 바람끼(?)도 보이는 카사노바 다아시경과 강의를 좋아하는 현학적이고도 호기심 많은 마술사 마스터 숀, 현명하고 비범한 결단력의 플랜태저넷 왕가 군주인 노르망디공 리처드 등 고정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도 뛰어나고, 작가가 상상해 낸 영불제국의 묘사 역시 비범한 편이라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은 작품이기에 할인행사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만족감이 컸을 것 같습니다. 전작에 비해 "추리" 요소가 더욱 풍성해 진 것에 가산점 하나 얹어서 별점은 4점입니다. 첫 단편 "중력의 문제" 는 정말이지 정통 추리팬도 탄복할만한 멋진 밀실 트릭물이에요! 그 외에도 추리 애호가들이 즐길만한 장치도 풍부하니 쟝르 문학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 번째 작품이자 밀실 트릭 걸작 중 하나라는 "중력의 문제" 는 앞서도 말했듯 정말 빼어난, 추리적으로 아주 파헤치는 다아시경의 활약을 그린 단편인데,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멋진 작품입니다!

일단은 탑 꼭대기에 위치한 방 안에서 누군가에게 떠밀려 추락했지만 방은 그야말로 완벽한 밀실이었다는 무대 설정을 비롯, 유력한 동기를 지닌 것 처럼 보이는 아들에다가 광신도인 딸이라는 기묘한 가족구성, 가스등과 거대한 샹들리에로 대표되는 - 고딕호러스타일도 느껴지는- 배경 묘사가 굉장히 과학적, 합리적으로 잘 짜여진 트릭과 어우러지고 있으며, 동기 및 단서의 제공도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아서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SF로 유명한 "다아시 경" 시리즈이기 때문에 추리적으로 손해를 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두 번째 작품인 "비터 엔드"도 상당한 수준의 추리적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다아시경의 부하인 마술사 마스터 숀이 우연찮게 말려드는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로 마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특징도 있지만,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인물이 모이는 카페에서 범인은 가까이 가지도 않은 상태로 피해자만 콕 집어 독살시킨다는 원격조정 트릭이 설득력있게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경찰이 약간만 디테일하게 수사한다면 범인은 곧바로 밝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헛점은 존재하지만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된다고 생각되네요.

세 번째 작품인 "입스위치의 비밀"은 좀 애매합니다. 한 남자의 시체가 해변에서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총에 맞아 죽은 남자 옆에 발자국은 첫 발견자의 발자국밖에 없었다! 라는 추리적으로 흥미진진한 화두를 던져놓지만, 죽은 남자의 신원이 정보부 소속의 노엘 스탠디쉬라는 것, 그리고 스탠디쉬는 뭔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중요한 "입스위치 파이얼"이라는 물건을 폴란드 제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폴란드 제국의 비밀경찰 세르카 요원을 추적하던 중에 결국 시체로 발견된 거라는 내용으로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폴란드 제국과의 스파이 전쟁 첩보물로 확 바뀌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름 첩보전의 스릴과 더불어 흥미로운 요소 - 스탠디쉬의 다이잉 메시지라던가, 갑자기 별이 사라진 것과 같은 이유를 알수없는 특이한 현상 등 - 이 많이 등장해서 지루하지는 않지만, 폴란드 제국과의 첩보전을 지나치게 길고 장황하게 묘사해서 결과적으로는 추리적으로 흥미로울 수 있던 소재와 트릭이 첩보전에 파묻혀버려 아깝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폴란드의 미녀 스파이가 등장해서 꿍짝을 맞추는 결말도 썩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래도 재미는 있고 추리적으로도 버려진 낡은 외투를 가지고 벌이는 추리와 해변가에서 시체가 발견된 트릭의 발상 자체는 좋았기에 평작 수준은 됩니다. 무엇보다도 카사노바 다아시경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대폭소! 왠지 피터 웜지 경 같은 느낌을 전해주던 다아시경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서 마음에 듭니다.

네 번째 작품 "열여섯개의 열쇠"는 영불제국과 루멜리아제국과의 이른바 "해군조약"에 관련된 이야기로, 주 콘스탄티노플 대사였던 복스홀 경이 맺은 조약의 문서가 사라지고 복스홀 경은 엄청나게 나이를 많이 먹은 모습으로 완전 밀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는 내용입니다. 다아시경이 곧바로 출격(?) 하여 복스홀 경과 그만이 통과할 수 있는 그의 여름 별장 열쇠 16개를 단서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고요.

조금 소품스러운 느낌이기도 한데, 하룻밤의 소동(?)을 재미나게 그려내고 있으며 이야기도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건너기"를 연상시키는 수학적 트릭과 더불어 합리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유쾌한 느낌이 가득해서 좋았습니다. 사람이 기괴하게 죽어나가고 중요 문서가 없어졌는데도 이렇게 유쾌하다니 정말이지 모를 일이네요. 하지만 아쉽게도 트릭 자체는 설득력이 떨어지긴 합니다.

덧붙이자면 "해군조약"은 홈즈, 포와로 등 많은 탐정들이 활약한 전력이 있는 추리계의 완소 아이템 중 하나로, 이 작품에서도 역시나 국가의 명운을 건 중요 조약 문서로 설명되고 있다는 것이 추리 애호가로서 반가운 점이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추리 애호가들이 즐길 수 있는 요소중 하나겠지요.

마지막 작품 "나폴리 특급 살인"은 네번째 작품에 등장하는 "해군조약"을 극비리에 운송하는 특명을 띈 다아시경과 마스터 숀이 탑승한 나폴리행 특급 열차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비밀 임무이기에 정체가 발각되면 안되는 이 두 컴비는 열차가 로마에 도착하기전에 사건을 대신 해결해 주기로 마음먹고 서둘러 사건해결에 나서게 됩니다. 

제목 그대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패러디이자 오마주 성격의 작품입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트릭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정통 트릭물로서의 가치도 높지만, 추리 애호가가 즐길만한 장치가 가득해서 정말이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품집의 표제작에 어울리는 좋은 작품이에요. 단서의 제공도 공정하고 복선도 잘 짜여져 있어서 완성도도 아주 높으니까요. "중력의 문제"와 더불어 이 단편집의 투탑, 쌍두마차라 할만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이 작품 덕분에 작가의 또다른 패러디 - 오마주 작품인 "마술사가 너무 많다"(당연히 오리저널은 "요리장이 너무 많다" 죠)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여, 절판도서임에도 인터넷 헌책방을 뒤져서 겨우 한권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배송되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우리 형제의 안팔리는 판타지-추리 소설 "장미빛 인생" 도 유사 쟝르죠. 차이점이라면 우리 작품에서는 마법이 추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정통 추리물처럼 써내려갔으니... 그래서 안팔리는건가?

2025/07/13

기암관의 살인 - 다카노 유시 / 송현정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매니아 프리터인 사토는 아르바이트로 카리브 해의 외딴 섬 저택 '기암관'으로 향했다. 정해진 설정에 따라 연기를 하며 3일간 지내면 100만엔을 준다는 아르바이트였다. 사토에게는 반 년 전 사라진 일용직 친구 도쿠나가를 찾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기암관은 부호 미에이도 하루사다의 저택으로, 사토는 하루사다의 친구로 방문했다는 설정이었다. 그리고 여러 명이 방문한 기암관에서의 첫 날 밤, 쾌활했던 손님 텐가와가 밀실에서 살해당한채 발견되었다. 알고보니 이 모든 건 부자들의 유희를 위해 벌이는 진짜 살인 게임이었고, 사토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는데...

고전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어 집어든 작품입니다. 

특징이라면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물의 설정을 작품의 핵심 소재로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실제 살인을 포함한 추리 게임을 유료 서비스로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는 설정입니다. 추리를 즐기고 싶어 하는 부유한 클라이언트가 거액을 지불하고 사건을 의뢰하면, 회사는 추리 소설가가 만든 각본을 준비하고 배우를 모집해 실제 살인을 연출합니다. 이 회사는 전 세계에 지사가 있고요.

이야기는 영문도 모른 채 이러한 추리 게임에 참여한 뒤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사토와, 회사측 운영 담당으로 도서 추리소설처럼 모든 범행을 지휘하며 예기치 못한 사고를 수습하는 고엔마의 시선이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사토는 평범한 프리터로, 3일에 100만엔이라는 고액 아르바이트로 고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설정된 조연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사람이 죽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부터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다행히 '추리 매니아'인 덕분에 여러 위기를 추리를 통해 해결하면서요. 여기서 생기는 딜레마도 재미있습니다. 직접 사건을 해결하면 고액을 지불한 클라이언트 탐정의 등장이 무의미해지는 탓에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딜레마지요. 때문에 조수 역할에 머무르며 단서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마지막 날 밤에는 모두 함께 밤을 보내자는 현실적인 대응도 시도합니다.
반면 고엔마는 이 게임을 기획한 회사 직원이자 운영 총괄로, 작가가 쓴 각본에 따라 전체 사건을 총괄하며 참가자들의 돌발 행동과 예기치 못한 사고를 수습해 나갑니다. 클라이언트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며, 기획된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 변수는 가능한 한 배제하고요. 그래서 사토가 무대의 흐름을 바꾸려는 조짐을 보일 때마다 이를 조용히 차단하려 합니다.
이러한 두 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둘의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대립도 선명하게 만드는 전개는 인상적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일종의 암호를 통해 예고되는 살인과 선보이는 트릭들은 만화적이지만 재미있기는 하거든요. 텐가와가 사망한 밀실 트릭은 '인간 의자'를 응용한 방식이며, 시즈쿠 사건에서는 목각상 머리를 활용해 밀실을 구성하는데 다소 과장되어 있지만, '사체의 목을 잘라낸' 분위기와는 잘 어울립니다. 여러 고전 추리를 패러디하면서 어떻게든 범행을 대본에 어울리게끔 저지르는 악전고투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재미를 더해주고요.
사토가 기암관에서 벌어진 사건의 구조적 문제를 간파하고, 회사 관계자들 앞에서 그 허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결말도 볼거리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납득할 만한 주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작품 안에서 가장 논리적인 추리가 펼쳐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획된 시나리오가 실제 사건의 변수에 따라 계속 수정되며 혼선이 생기는 부분은 블랙 코미디같습니다. 원래 탐정 역할이었던 텐가와가 또 다른 클라이언트의 의뢰로 살해당하고, 범인 역할로 설정된 시라이가 예기치 않게 죽자 급하게 고사카를 새로운 범인으로 설정하는 식인데, 특히 고사카가 법의학자 출신이었다는 설정이 갑작스레 등장하는 장면은 제법 웃깁니다.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나치게 만화적인 설정에 더해 인물들이 전형적이고, 감정적으로 설득력 있는 묘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토가 마지막에 갑자기 천재 추리 작가로 변신하는 결말은 뜬금없고 어색합니다. 살인극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중계되고 있었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요. 이렇게 후반부에 억지스러운 장치들이 겹치는 탓에 몰입도가 떨어져버리고 맙니다. 시라이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 선장이 언급만 되고 등장하지 않는 점 역시 이야기의 완성도를 저해합니다.

사토라는 인물도 영 별로입니다. 그는 이전 일용직 동료인 사토나가의 실종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이 아르바이트에 참여했고, 히로인 시즈쿠에 대해서도 동경의 감정을 품는걸로 표시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죽음을 알고난 이후에 특별한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습니다. 복수심이나 애도는 거의 언급되지 않아요. 오히려 회사의 전속 작가가 되기 위한 포부를 밝히는 데 집중합니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보기에는 설명이 너무 부족했어요. 사토보다는 차라리 고엔마가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교차 시점 구성과 일부 트릭은 인상적이지만, 인물의 설득력 부족과 과도한 작위적 설정은 큰 감점 요소입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5/10/10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 가모사키 단로 / 김예진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은 제목과 '여섯 개의 트릭'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여섯 개의 밀실 수수께끼를 전면에 내세운 장편입니다. 수수께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설백관 밀실사건(간자키 살인 재현)
— 수수께끼: 잠긴 방문, 유일한 열쇠는 시체 옆 닫힌 플라스틱 뚜껑 달린 병 안에 있었고 창문은 열려 있으나 촘촘한 창살 때문에 방 안으로 병을 던져 넣을 수 없었다. 
— 해답: 고무줄-추-식칼을 연동한 장치 트릭. 고무줄을 병 뚜껑 고리에 꿴 뒤 방 안에서 창살을 통과시켜 투입 → 추를 창밖 고무줄 끝에 달아 장력 형성 → 사체에 꽂힌 식칼 주위를 통과하도록 병을 잡아 당겨 문을 나선다 → 문을 잠근 뒤 열쇠를 병에 넣고 병을 문 아래 카펫 속에 은닉 → 강제 개방하면 장력으로 병이 실내로 튕기고, 식칼에 의해 고무줄은 절단된다. 추에 의해 고무줄은 창밖으로 떨어진다.

시하이 씨 식당 살인
— 수수께끼: 사망 추정 시각에 누구도 식당동 출입 없음. 피해자는 모조 핼버드에 반복 찔림.
— 해답: 리모컨 슬라이드 식기장을 이용했다. 식기장이 비밀 통로의 숨은 출입구 겸 레일 구조 → 핼버드를 고정한 채, 외부에서 리모컨으로 식기장을 왕복 이동시켜 살해 → 핼버드는 액체 질소로 고정되어 시간이 지나자 녹아 떨어졌다.

사구리오카 방 내 사망
— 수수께끼: 내부 잠금 상태에서, 피해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었다.
— 해답: 시한 폭발 탄환 장치에 의한 것. 침대 밑에 놓였던 장치를 발견한 피해자가 장치 확인을 위해 수면등 아래로 옮기다가 폭발해 사망했다.

마네이 도미노 밀실 사건
— 수수께끼: 피해자 주변을 감싼 채 문까지 잇는 도미노 띠가 놓여 있었고, 문은 잠김. 열쇠는 시체 옆에 놓여 있었다.
— 해답: 액체질소 얼음 고정틀 + 데드볼트 임시 고정을 사용. 문에 얼음틀로 고정한 도미노를 붙임  → 데드볼트 일부를 잘라냄  → 도어 레버를 소폭만 돌린 상태에서 얼음으로 고정 → 문을 닫으면 도미노 얼음틀은 시체 주위와 문을 잇게 됨  → 도어 레버 얼음이 녹으면 도어락 자동 잠김  → 얼음틀 소멸로 도미노만 남음.

야시로 씨 도서실 밀실 사건
— 수수께끼: 문 잠김, 도서실의 유일한 열쇠인 동쪽 동 마스터 키는 시체 옆 꽉 닫힌 잼병 안에서 발견됨, 문 내부 레버엔 가샤폰 돔 커버가 덮여 있었음.
— 해답: 문짝 바꿔치기. 시신을 도서실로 옮김  → 마스터 키를 잼병에 넣고 시체 옆에 놓음  →  자신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환 → 안쪽 레버에 가샤폰 돔 커버 설치  → 문을 닫고 나가서 자기 방 열쇠로 문을 잠금.

미쓰무라의 과거 완전 밀실
— 수수께끼: 완전하게 잠긴 방문과 고정식 창으로 완전 밀폐된 현장, 스페어 키 없는 유일한 방 열쇠는 시체 옆 서랍 속(서랍은 시체 주머니 열쇠로 잠김).
— 해답: 문짝 바꿔치기 + 다른 방 스페어 키를 이용. 현장 외 다른 방에는 스페어 키가 있었음. 범행 후 현장과 다른 방의 문짝 교환 → 다른 방 열쇠를 현장에 남기고 스페어 키로 외부에서 잠금 것.


이렇게 여섯 개의 사건과 트릭이 펼쳐지는데, 이 중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의 맛을 잘 살린 몇몇 사건들은 볼 만 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첫 번째 설백관 밀실사건과 다섯 번째 야시로 씨 도서실 사건이었습니다. 설백관 사건은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사례로, 사용된 도구는 물론 현장 상황까지가 모두 실제로 범행에 필요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 녹음기나 불 꺼진 방 같은 설정이 단순한 분위기 조성이 아닌 트릭의 일부라는 것도 대단했어요. 비교적 간단한 장치로 복잡하지 않으면서 정교한 느낌을 주며, 독자가 충분히 추리 가능하도록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고요.

도서실 사건 트릭은 정말 완성도가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범인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체하는 트릭은 앞서 구즈시로의 대사를 통해 힌트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에게도 충분히 추리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단서 제공 역시 철저하게 이루어지며, 도서실만이 마스터 키로만 열 수 있다는 설정도 좋았습니다. 같은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현장이 다른 방이었다면 문 안에 두 개의 열쇠(마스터 키, 방 열쇠)를 남기게 되고, 그 때 방 열쇠로 문을 열 수 없게 되니까요.

하지만 여섯 개의 트릭 모두 완성도 높게 제공하는 건 어려웠던 듯 합니다. 특히 시하이 씨 사건의 핼버드 트릭과 사구리오카 사건은 유치하고 황당한 수준이었어요. 사구리오카 사건에서 탄환을 발사한 시한 장치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액체질소를 만능 도구처럼 쓴 트릭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게 마네이 사건의 도미노 트릭입니다. 너무 억지스러워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미노 설치를 위한 얼음판을 만들려면, AI의 확인 결과 약 7.3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 정도의 얼음이 녹아 흐른다면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닥재가 물이 스며드는 소재였다는 정도로 대충 넘어가는건 무리에요. 몰래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테고요. 데드볼트 잠금만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밀실을 만들 수 있어서 도미노까지 이용한 이중 밀실을 구현할 이유도 없습니다.

미쓰무라 과거 사건에서 사건 현장 외 다른 방의 열쇠는 스페어가 있었다는 중요한 정보를 서술 트릭처럼 숨긴건 반칙처럼 느껴집니다. 이런걸 경찰이 알아채지 못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밀실 트릭 외의 추리적인 부분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트릭을 풀어낸 뒤, 이걸 저지를 수 있는건 ooo뿐이야!는건 워낙에 용의자가 적은 탓에 별다른 감흥이 없고, 동기도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꽤나 장황하게 설명하는 트럼프 연쇄 살인과 ‘녹스의 십계’, 그리고 단순한 십계 설정은 억지스럽기 짝이 없고요. 이를 통해 어떻게든 살인의 타당성을 보여주려 애쓰지만, 희생자들이 죽을 만큼 잘못한 것도 아니고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과에 과정을 꿰어 맞추는 느낌이라서 거슬리기만 했습니다. 

설정의 완성도는 더 문제입니다. 밀실을 풀 수 없으면 무죄 판결을 받는다는 핵심 세계관 설정부터가 성립하기 힘든 탓입니다. 마스터 키나 스페어 키가 존재하지 않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설명도 없으며, 21세기에 열쇠 복제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작품의 세계관에 동의할 수 없으니,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주요 인물들 역시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입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으로 무죄를 받은 미소녀 미쓰무라 시쓰리, 아이돌이자 밀실 제조사로 범행을 저지르는 리리아, 살인 현장을 숭배한다는 종교단체 ‘새벽의 탑’과 17세 소녀 주교 펜릴 앨리스해저드 등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이들의 언행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입니다. '빙해' 어쩌구하는 대사는 제가 다 창피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한없이 1.5점에 가까운 2점입니다. 몇몇 밀실 트릭은 고전 본격물의 정수를 잘 살려 볼 만합니다. 하지만 억지 설정과 조악한 추리 요소, 몰입을 방해하는 세계관과 캐릭터는 치명적인 탓에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이 리뷰를 쓰는데 걸린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망작이에요. 밀실 트릭물의 광팬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대상작이라는데, 이 정도까지 수준이 떨어졌는지 몰랐네요.

2013/12/22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5점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 "여제"로 불리우는 2학년 선배 이리스가 문집 제작으로 바쁜 고전부에 사건을 의뢰했다. 미완성된 비디오 추리 영화를 보고 실제 진상이 무엇인지 추리해 달라는 의뢰였다. 고전부는 학교 축제용으로 해당 비디오 영화를 촬영한 2학년 F반 선배들 중 몇 명을 만났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진상을 추리해 나가는데...

바로 직전에 읽은, "빙과"에 이어지는 고전부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전작과 가장 큰 차이점은 장편이라는 점입니다. 또 일상계물이지만 본격 추리물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독특한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바로 줄거리 요약에서 소개한, 축제 때 상영될 미완성 비디오 영화의 트릭과 결말을 추리한다는 의뢰입니다. 덕분에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등장하는 작품임에도 무려 "밀실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 펼쳐집니다! 이렇게 일상계이면서도 밀실 추리물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 하나 때문에 이래저래 작품이 사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오레키 호타로가 추리한 '만인의 사각'을 비롯하여, 비디오 영화를 촬영한 2학년 F반 학생들의 의견이 '후루오카 폐촌 살인 사건', '불가시의 침입' 'bloody beast' 순서로 연이어 펼쳐지는건 작품 후기에 언급되듯 다수의 탐정이 등장하여 자신의 추리를 피력하는 작품인 "독 초콜릿 사건"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는데, 정통 본격 스타일의 '후루오카 폐촌 살인 사건'과 '불가시의 침입'은 물론, 오컬트 계열인 'bloody beast', 그리고 서술 트릭물인 '만인의 사각'까지 모두 추리적으로 즐길 거리가 많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지막 한 번의 반전이 더 있는 것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바로 고전부에 의뢰한 이유 - 각본을 쓴 학생이 병으로 쓰러졌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결말에 대한 추리가 필요했다 - 가 이해 불가인 탓입니다. 그래봤자 중병도 아닌데, 왜 직접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마지막까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정 추리가 필요했다면, 다른 동료 학생 추리 중 아무거나 하나를 사용한다고 큰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마지막에 밝혀진 진상 역시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완성된 영화가 아니라서 한 번 더 찍어야 했다면, 전반부 시체 발견 장면을 수정하는데 딱히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요... 또 오레키 호타로가 다른 사람들의 추리를 부정하던 것과 다르게, 자신의 추리에 존재하는 큰 구멍(자일의 존재)을 간과하는 것도 독자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솔직히 "고전부 시리즈"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올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지탄다 에루가 사건을 물어오기는 하지만, 이후에는 고전부와 관계없는 영상 제작팀원들의 추리와 오레키 호타로의 추리가 펼쳐질 뿐이거든요. 오레키 이외의 고전부원들에 대한 부가 설명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초반 이후에 오레키 호타로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리스 선배라는 새로운 캐릭터입니다. 이래서야 별개의 스탠드얼론 작품으로 발표한다 하더라도 무방했을 것 같아요. 오레키 호타로가 남들보다 잘하는 일을 찾아내어 의욕을 불태운다는 청춘 성장기스러운 전개도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너무 전형적이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감점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가벼운 일상계와 본격 추리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점에서는 추천드립니다. 특히 추리에 갓 입문하는 분들께 적합한 작품입니다.

덧붙이자면, 고등학생들의 학교 축제를 위한 추리극이 등장하는 일상계라는 점에서 "Q.E.D 35권"과 비교해서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와 연극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요.

2010/06/28

허무에의 제물 - 나카이 히데오 / 허문순 : 별점 3점

허무에의 제물 - 6점
나카이 히데오 지음, 허문순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히누마 집안에서 일어나는 연쇄 밀실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 저자 나카이 히데오가 작명하고 창안한 '안티 미스터리'의 첫 작품으로 추리 장르문학사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유명한 고전이기도 하죠. 관심은 많았지만 두께와 악명높은 동서문화사의 번역탓에 읽기를 꺼렸었는데 국내 최대 추리동호회 "하우미스터리"에서 발기한 독서클럽 "고등고등열매" 에서 읽어야 할 첫번째 작품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일단 '안티 미스터리'에 대해 찾아보았더니 아래와 같더군요.
  1. 미스터리 속에 미스터리가 존재
  2. 스토리의 반전이 많다.
  3. 결국 미해결 사건이 되거나 뒷맛 씁쓸한 결말로 끝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사건이 과연 이 작품안에서 등장인물인 무레타가 쓴 소설인지, 아니면 다른 등장인물들의 추리를 통해서만 펼쳐지는 것인지도 불분명하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서로 경쟁하듯 추리를 쏟아내기 때문에 추리와 트릭이 난무할 뿐 아니라 추리마다 새롭게 이야기가 반전되기 때문에 결국 뭐가 진상인지도 헛갈리거든요. 마지막 결말이 씁쓸한것 역시 공식대로고요.
또한 '안티 미스터리'라는 이름답게 정통 고전 본격 미스터리의 반대되는, 어떻게 보면 고전 본격물의 패러디같은 느낌을 강한게 전해주는건 특이했습니다. "수수께끼의 인물"이라던가 "밀실", "과거의 피비린내 나는 악연", "증오가 넘치는 가족관계", "색깔로 형상화된 범행" 등과 같은 클리셰라고도 할 수 있는 일본 본격물의 요소들을 모조리 도입하여 작품안에서 정말 작위적으로 녹여내는 점이라던가, '녹스의 추리소설 10계'나 란포의 '속 환영성'같은 추리소설의 교과서적인 룰들을 따라 추리쇼를 진행하는 것 모두가 본격물에 대한 비틀기, 패러디로 보였으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비틀기와 패러디가 좋은 쪽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닙니다.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이라 앞과 뒤가 연결이 잘 안되는 것도 있었지만, 비틀기와 패러디를 위한 작가의 의도가 지나쳐서 뒤로 갈수록 몰입하기 힘들었거든요. 작위적 설정이 한두번 정도 양념으로 쓰인다면 모를까 전편에 걸쳐 벌어지니 지루할 수 밖에요. 하나의 사건이 벌어질때마다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만의 장황한 추리를 펼치는 추리쇼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책의 구성도 나중에는 짜증이 날 정도였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는 사람이 아는 독자들을 위해 맘먹고 비틀고 패러디한 희대의 괴작' 입니다. 중반까지는 본격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비교적 괜찮은 추리와 트릭들이 등장할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본격 추리소설의 얼개를 제대로 갖추고 있기는 해서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추리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기는 합니다만 패러디와 비틀기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지루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어떻게보면 미완성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해괴한 작품이네요.

아는 사람이 읽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기도 쉽지 않으며, 보는 시각에 따라 5점 ~ 1점을 오갈 수 있어서 별점으로 평가하기가 정말로 어려운 작품인데 제 개인적인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악명높은 동서문화사의 번역본이라 걱정했는데 역시나 뒤로 갈수록 번역이 거슬리더군요. 아쉽습니다.

2021/11/13

노킹 온 록트 도어 - 아오사키 유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노킹 온 록트 도어 - 6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우리 탐정 사무소의 현관문에는 인터폰이 달려 있지 않다.
차임벨이나 초인종, 노커 따위도 없다.
따라서 방문자들은 반드시 맨손으로 문을 노크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크하는 방법에 따라서 어떤 손님이 문 앞에 서 있는지 대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새로운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불가능 전문 고텐바 도리, 불가해 전문 가타나시 히사메, 두 명의 탐정이 함께 운영하는 탐정 사무소 '노킹 온 록트 도어'에서 의뢰받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일곱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완벽한 고전 본격물 스타일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작품들에 일정 수준 이상의 트릭이 사용되어 있으며, 이를 추리하기 위한 단서들도 독자 시점에서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추리 소설 황금기 시절 대표작들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에요. 과연 신세대 본격물로 유명했던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다왔습니다.

그러나 현대 배경 본격물의 지닐 수 밖에 없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탐정 사무소'에 '불가능 사건'의 해결을 의뢰한다는 기본 설정부터가 현대물에 적합할리 없지요. 의뢰를 받기는 하는데, 보수를 누구한테서 어떻게 받는지는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 모순이 눈에 뜨이기도 하고요. 작품 속 트릭들도 마찬가지에요. 법의학이나 법과학으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었던 트릭이 많은 탓입니다.

캐릭터도 아쉬웠습니다. 고텐바 도리가 특히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하고 탐정이라는 자의식이 넘쳐나는 캐릭터 묘사 자체가 영 별로였거든요. 우라조메 덴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캐릭터의 독특함과 매력은 훨씬 못 미칩니다. 히사메는 약간이나마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덕분에 그나마 조금 낫기는 했습니다만, 도긴개긴이었어요.

게다가 한 명은 불가능, 즉 하우더닛 쪽 전문가이고 다른 한 명은 불가해, 즉 와이더닛 쪽 전문가라는 설정은 최악입니다. 와이더닛 탐정 히사메의 존재는 아무리봐도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록작 중 히사메가 '불가해'를 풀어서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은 "다이얼 W를 돌려라"밖에는 없습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에서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기는 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고, "칩 트릭"에서는 트릭을 풀어냈지만 이는 이토기리 미카게로부터 결정적 증거를 입수했던 덕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불가능 범죄에 대한 내용이라서 설정상으로는 히사메가 활약하면 안되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반대로 불가해 상황이 등장하는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에서는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진상은 도리가 풀어냅니다. 이 역시 설정에 반하는 작품인 셈이지요. 대체 왜 두 명의 탐정이 필요했던걸까요? 셜록 홈즈와 그 라이벌들의 시대였다면 모를까, 현대물에 가당키나 한 설정도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둘이 있을 때 뭔가 재미가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종일관 둘의 말다툼이 이어지지만 별다른 재미는 없었어요. 추리를 하면서 둘 사이의 티키타카가 빛났던건 "십 엔 동전이 너무 없다"가 유일했습니다. . 

아울러 악당들을 위해 트릭을 설계해주는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도 "소년탐정 김전일"의 지옥의 광대 요키치나 "탐정학원 Q"의 케르베로스와 같은 만화 속 등장인물을 떠올리게 만들며, 경찰 쪽 협력자이자 친구인 우가치 기마리 경위가 막과자를 좋아한다던가 하는 소소한 설정들도 만화적이라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본격물로는 나쁘지 않지만, 이런 점들로 볼 때 차라리 만화화 버젼 쪽이 더 나으리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노킹온록트도어" 

살해당한 화가 가스미가 히데오의 미망인 미즈에가 사건 해결을 의뢰했다. 화가는 잠긴 작업실에서 등에 칼에 꽂힌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작업실은 밀실이었다. 남겨져있던 화가의 풍경화 여섯 점은 액자에서 꺼내져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었고, 그 중 한 점은 온통 새빨갛게 덧칠이 되어 있었다...

두 탐정 및 관련된 모든 설정이 소개되는,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표제작입니다. 트릭은 그림 여섯 점을 쌓아서 문 앞에 놓고, 카펫으로 덮어놓았던 겁니다. 그 위에 성인 남자 두 명이 서서 문을 열려고 해서 문이 열리지 않았던 거지요. 문이 잠겨있던게 아니라요. 그림 두께만큼 카펫 길이가 부족해져서, 맨 위 그림은 카펫 색깔로 덧칠했던게 새빨간 그림으로 남게 되었고요. 

범인은 걸쇠를 열 도구를 가져와 달라는 핑계로, 함께 있던 어머니와 미술상을 아래로 내려보내어 현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그리고 잠겨져 있지 않았던 문을 여는 척 했던 화가의 아들 류지였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본격 추리 소설로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트릭의 핵심인 복도의 폭과 레드 카펫의 존재, 그림 크기와 캔버스 두께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릭을 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서였던, 문을 두드릴 경우 바닥으로 떨어지는 하얀 페인트 가루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빼 놓지 않고요. 트릭을 파헤친 뒤, 이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전개도 합리적이었어요.

그러나 그림을 카펫 바닥에 깔았던 이유는 아버지의 친구인 미술상이 그림을 밟게 만드려는 목적이었다는 히사메의 추리는 억지스러웠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모욕받았다는 동기는 명확했고, 작업실을 밀실로 만들려는 목적도 확실해서 이를 불가해 상황으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논리대로라면 밀실은 우연히 발생했다는 의미가 되잖아요? 

마지막 히사메의 추리가 없었다면, 아니, 히사메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 

사건 중개인 진보가 받아온 의뢰는 극단 "목이버섯"의 리더 젠다 미카 살인 사건이었다. 그녀는 속옷만 입은 채 연습실의 물이 틀어져 있는 욕실에서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되었다. 문제는 그녀의 치렁치렁했던 긴 머리가 짧게 잘린 채였다...

진상은 젠다 미카가 스스로 머리를 잘랐던 겁니다. 애인 오쿠데라로 변장하기 위해서요. 연습실에서 다투다가 애인 오쿠데라를 목졸라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습실에서 시체를 옮기기 위해 큰 상자 속 짐을 비운 뒤, 그 안에 시체를 넣을 생각이었습니다. 연습실에서 시체가 발견되면 젠다 미카가 범인이라는게 너무 쉽게 드러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짐은 다른 극단원 니시베를 시켜 옮기고, 자기는 오쿠데라로 변장해서 극장을 방문한 뒤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서 사라질 속셈이었지요. 그럼 극장을 방문했던 오쿠데라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할거라 여긴거지요. 그러나 오쿠데라는 죽지 않았었고, 의식을 회복한 후 그녀를 목졸라 죽였던 겁니다.

이렇게 기묘한 상황을 합리적인 추리로 설명하는 전개는 좋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본격 추리 소설로는 완벽했어요. 단서 제공은 공정하고, 추리도 합리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전편보다도 설득력은 약했습니다. 일단 젠다 미카의 계획은, 실제로 일어났다 한들 과학 수사의 벽을 넘을 수 없었을 겁니다. 검시가 이루어지면 오쿠데라의 사망 시각은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 이전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렇다면 경찰은 극장으로 옮겨진 커다란 '짐'의 존재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겠죠. 

머리카락을 흉기로 썼을거라는 히사메의 최초 추리도 용의자를 조사할 필요는 없었어요. 목에 남은 흔적으로 흉기가 뭔지는 파악이 가능했을 테거든요. 죽은 줄 알았던 오쿠데라가 일어나사 젠다 미카를 다시 살해했다는 진상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또 불가해한 상황 풀이인데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도리가 진상을 풀어낸다는 전개도 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거라면 두 명의 탐정이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설득력 높은 이야기라기 보다는,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는 추리 퀴즈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던 작품입니다.

"다이얼 W를 돌려라" 

30분 간격으로 의뢰가 들어왔다. 첫 번째 의뢰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어달라는 나가노사키 히토시의 의뢰였다. 유언장에 남겨진 대로, 금고 위 아래 다이얼을 돌렸지만 금고는 전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 의뢰는 한 밤중 산책을 나갔다가 죽은 아버지는 경찰은 사고사로 판단했지만, 아버지는 살해당했다며 찾아온 시마즈 나쓰코의 의뢰였다. 두 탐정은 각각 사건을 맡아 해결을 위해 나서는데...

결국 두 사건이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로 금고가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뒤집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범인이 금고를 뒤집어 놓았던건, 윗면에 할아버지를 죽일 때 피가 묻었기 때문이었고요. 금고가 뒤집혔다는걸 알아낸 히사메의 추리도 좋았지만, 할아버지가 실제로 살해당했던 것을 지팡이를 통해 알아내고,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 내는 도리의 추리도 좋았습니다. 모처럼 컴비 플레이가 빛났네요. 이를 추리해내기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하고요.

고작 십만엔 정도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을지, 금고가 뒤집힌걸 그렇게 쉽게 눈치채기 어려웠을지, 왜 탐정이 오기 전에 원상태로 복구해 놓지 않았는지 등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칩 트릭"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난 하나와 스쿨의 핵심 용의자였던 중역 유바시 진타로가 저격으로 사망했다. 문제는 그는 암살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평소 서재 창문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던 탓에, 그를 창 밖에서 저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살이 가능하도록 만든 건, 도리와 히사메, 그리고 경찰 우가치의 대학 동기인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였다...

창 밖에서 쏜 총에 유바시가 맞아 죽은건 확실합니다. 입사각도 명확했고요. 그러나 그가 창 바로 앞에 있었던게 아니라면? 서재 중앙 지점에서 발판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겁니다. 높이가 높아졌던 탓에 입사각이 맞아 떨어졌던 거지요.발상 자체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 총 한 발로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을까요? 저는 불가능했을거라고 봅니다. 형광등을 가는 위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중심에서 빗나가 있어도 원거리 저격은 성공했을리 없어요. 그리고 메이드 고노에가 해고되지 않기 위해, 시체를 창 밑에 옮겨놓았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해고되는 것 보다, 현장 조작이 더 큰 중죄잖아요? 

또 상황이 이상하다 하더라도, 유바시가 저격당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조작할 이유가 없고, 경찰도 구태여 탐정을 불러다가 불가해 상황을 해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날만 우연히 유바시가 창가에 서게 되었다는 설명으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이런 점에서는 불가해한 상황의, 불가능 범죄를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했던 이야기에요.

아이디어는 평가할 만 하지만, 현실성없고 설득력없는 이야기였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 

눈이 쌓인 공터 한 가운데에서 칼에 찔린 가쓰히코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까지는 가쓰히코의 발자욱 하나만 남아 있었고, 흉기인 칼에 지문은 없었다.

동생과 싸운 뒤 흥분한 가쓰히코가 갓 세척을 마친 식칼을 들고 동생 집으로 향하다가 실수로 쓰러질 때 칼에 찔려 죽었다는 진상은 합리적이었지만, 흉기에 지문이 남아있지 않았던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손에 묻었던 눈이 녹으면서 씻겨 나갔다는데, 현실성이 없어 보였거든요. 물 좀 묻는다고 지문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까요? 그렇다면 손바닥에 묻었던 피는 왜 안 지워진 걸까요?

이 진상보다는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가쓰히코 공장 직원 두 명이 공모했다는 도리의 추리가 훨씬 더 나았습니다. 한 명이 먼저 현장으로 가서 죽은척 하고, 그 뒤 다른 한 명이 집에서 죽인 시체를 짊어지고 간 뒤, 시체를 내려놓고 공범자를 짊어지고 오면 된다는 추리로 꽤 그럴듯했어요. 최소한 지문이 눈이 녹은 물에 씻겨 나갔다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칼에 대해 잘못 말한건, 그냥 말실수였다고 해도 무방했을테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십엔 동전이 너무 없다" 

탐정사무소의 여고생 아르바이트 구스리코는 심심해하던 탐정들에게 학교에 가다가 들었던 기묘한 말의 진상에 대해 추리를 부탁한다. 수상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했던, "십 엔 동전이 너무 없어. 다섯 개는 더 필요해."라는 말이었다.

제목과 내용 모두 걸작 단편 "9마일은 너무 멀다"를 오마쥬하고 있는 작품으로 두 탐정이 서로 각자 추리를 말하고, 반론하며 서서히 진상에 근접해 나가는 과정의 빌드업이 좋습니다. 탐정이 두 명인게 그나마 긍정적으로 사용된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수상한 남자는 꽤 여러 번 공중전화를 사용하여 전화를 걸어야 했지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남자가 공중전화를 사용한 이유가 신원을 감추기 위해서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동전 갯수를 어림잡았다는 점과 평일 낮이었던 시간을 근거로 둘은 수상한 남자가 전화번호부를 통해 알아낸 특정 지역에 사는 주부들에게 모조리 전화를 하려고 했다고 추리합니다.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이야기 특성 상 그냥 여기서 마무리해도 좋았을텐데 추리가 진짜였다는게 드러나는건 좀 별로였어요. 전화번호부와 공중전화가 과연 21세기에 먹힐 이야기는 아닌 듯 싶었거든요. 저만 해도 집에 전화가 없습니다. 휴대전화로 충분하니까요. 또 수상한 남자의 의도대로 형편좋게 전화를 받았다고 한 들, 1분 정도의 전화 통화를 통해 들은 목소리로 그 주부가 누구인지 특정한다는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피해자가 마침 떨어트린 화과자 포인트 카드로 범인들이 그녀가 사는 동네와 성을 알아냈다는 것도 작위적이었고요.

"9마일은 너무 멀다"의 변주로 적당한 완성도는 갖추고 있었지만, 추리 놀이는 놀이로만 끝내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99퍼센트 확실한 독살" 

중의원 의원이었던 도자마 간조가 독살당했다. 후원회 파티에서 접객 담당 종업원이 날랐던, 똑같은 잔 10개 중 도자마 간조가 무작위로 고른 한 잔에만 독이 들어있었다. 독살 방법은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가 설계했다는게 드러나는데...

도리는 처음에 의원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던 비서가 샴페인을 마시기 직전에 독을 넣었다고 추리하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게 밝혀져 실의에 빠집니다. 다른 작품과는 다른게 히사메는 트릭 담당이 아니라며 위로만 할 뿐이고요. 그래도 위로 덕분인지, 곧바로 도리는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독은 이미 마셨던 것이고, 샴페인 잔이 아니라 의원이 서 있던 위치를 가늠하여 바닥에 독을 발라 놓았던 겁니다.

하지만 추리와 전개 모두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었던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의 착안점이 의원의 유류품이었던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여러가지 약이 있었지만, 물이 없었다는 것에 주목하는데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해 마실 수 있는데, 그걸 항상 상비해서 들고 다닌다?

그리고 바닥에 미리 발라 놓았던 독이 떨어트린 샴페인 잔 속 내용물과 섞여, 삼페인에서 독이 검출되었다고 오인되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지나치게 운에 의지했을 뿐더러, 현대 과학 수사를 너무 우습게 본 걸로 보이니까요.

과거 도리가 목이 베여 죽을 뻔 했던 적이 있고, 그 사건 때문에 동창 4명의 행보가 갈렸으며 도리는 목이 긴 터틀넥 스웨터를 고집하게 되었다는 과거사도 살짝 선보이지만 이야기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만화적이며 과장된 캐릭터 형성에 불과해서 거슬렸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6/08

걸작 밀실 미스터리 : 불가능 범죄 베스트 10


짧게 번역해 보았습니다. 오역이 많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영국의 추리 소설가 톰 미드(국내에 소개된 적은 없네요)가 밀실 미스터리의 장대한 역사와 밝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먼저 "밀실 미스터리"라는 용어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요? 밀실 미스터리를 다른 장르와 차별화하는 요소는 '불가능'이라는 요소입니다. 사실 저는 이 용어를 '불가능한 범죄'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범죄(보통 살인)가 저질러지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종종 초자연적인 사건과 불길한 분위기로 으스스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그리고 이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기발한 추리와 합리적인 설명에 의해 눈부신 스타일로 풀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장르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거리의 살인>>은 최초의 밀실 미스터리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공포, 호러 소설에 가깝고 실제로 탐정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몇 년 동안 장르의 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초기 작품으로는 윌키 콜린스의 단편 소설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가 있습니다 (물론 콜린스는 최초의 제대로 된 '탐정 소설'인 <<월장석>>을 쓴 작가로 인정받고 있기도 합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얼룩 띠>>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밀실 미스터리는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장윌의 <<빅 보우 미스터리>>와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은 상승 궤도에 있던 장르의 초기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습니다.

탐정 소설의 황금기에는 밀실 미스터리의 인기가 붐을 이루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퍼즐이 핵심인 '공정한 페어플레이 미스터리'에서 특히 도전적인 하위 장르이기도 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도로시 L. 세이어스, 엘러리 퀸과 같은 위대한 작가들은 독자가 가상의 범죄를 스스로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와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을 중요시했는데 이는 밀실 미스터리의 주요 요소이자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장르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존 딕슨 카가 문학계에 충격을 주며 등장한건 1930년대 초, 황금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카는 최고의 밀실 미스터리의 대가이자 저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그는 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걸작을 연이어 썼으며, 그의 경력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놀라운 감각으로 풀어내는는 능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30년대와 40년대 대부분을 영국에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영국 범죄소설 커뮤니티에서 환영을 받았으며, 권위 있는 영국 탐정 협회에 입회한 단 두 명의 미국인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기가 하락했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에도 여전히 훌륭한 작품이 많이 출판되었지만), 다시 운이 트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Jonathan Creek, Monk, Death in Paradise와 같은 TV 쇼는 새로운 세대에게 불가능한 문제의 즐거움을 소개했습니다. 다니엘 스태샤워와 빌 프론지니 같은 작가들이 기억에 남는 상상력 넘치는 작품을 계속 발표하면서 책으로도 계속 인기를 얻고 있고요. 하지만 이 장르를 처음 접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시작을 돕기 위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밀실 미스터리 10편의 목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목록은 지난 세기 동안 정말 눈부신 작품을 만들어낸 장르의 최고를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당 한 권의 소설만 선정하였고 (그 자체로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었죠), 매일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여 빠르게 늘어나는 책장에 추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긴장감을 위해 역순으로 제 상위 10권을 소개합니다:

WHISTLE UP THE DEVIL : 데릭 스미스 (1953) (국내미출간)
데릭 스미스에게 특별한 친밀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도 저처럼 자신이 존경하는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밀실 미스터리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53년에 처음 출간된 WHISTLE UP THE DEVIL은 두 건의 불가능한 살인 사건으로 이 장르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모든 것은 비 오는 어느 날 밤, 로저 퀘린이라는 남자가 살해되면서 시작되지요.
슬프게도 이 소설은 스미스의 생애에서 출판 된 유일한 소설이었습니다. 스미스가 워싱턴 포스트에서 걸작으로 칭송받은 WHISTLE UP THE DEVIL로 찬사를 받기 시작한지는 고작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BLOODHOUNDS : 피터 러브시 (1996)
피터 러브시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퍼즐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가로, 그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는 고전 본격물의 공정함과 경찰 수사를 완벽하게 조화시켰습니다. BLOODHOUNDS는 미스터리 소설 애호가 그룹이 실제 밀실 미스터리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다룬 대표적인 소설입니다. 따라서 존 딕슨 카의 이름이 자주 언급됩니다. 잠겨 있고 뚫을 수 없는 운하 바지선에서의 살인 사건이라는 매우 특이한 문제도 등장합니다. 이 장르가 처음이고, 잘 알지 못한다면 이 작품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INVISIBLE GREEN : 존 슬래덱 (1977)
존 슬래덱은 공상 과학 소설계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뛰어난 불가능한 범죄 소설인 Black Aura와 INVISIBLE GREEN은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어요. 특히 INVISIBLE GREEN은 작가의 다재다능한 상상력, 생동감 넘치는 묘사, 예리한 논리를 보여줍니다. 고전 본격물의 황금기가 끝난 지 한참 지난 1970년대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작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탐정 태커이 핀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저비스 펜과 같은 수준의 황금기 밀실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슬래덱이 공상 과학 소설을 위해 그를 버리기 전까지 핀은 단 두 편의 소설과 단편 소설에만 등장했을 뿐인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가 또 무엇을 성취할 수 있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NINE TIMES NINE : H.H. 홈즈 (앤서니 부셰) (1940)
앤서니 부셰는 미스터리 장르의 진정한 학자였으며, 실제로는 미스터리를 거의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Bouchercon' 덕분에 그의 명성은 계속 높아져 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쓴 몇 편의 미스터리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합니다. NINE TIMES NINE에는 빛의 아이들이라는 사악한 종교가 등장합니다. 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빛의 아이들을 이끄는, 수수께끼 같은 두건을 쓴 지도자에게 저주를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모호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노란 가운을 입은 의문의 남자가 범죄 현장에서 목격된 후 사라지고요. 우르술라 수녀는 이 복잡한 사건의 여러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MR. SPLITFOOT : 헬렌 맥클로이 (1969)
밀실 미스터리에 관한 한, 헬렌 맥클로이의 <<어두운 거울 속에>>는 비평적 논의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며, 당연히 그럴 만합니다. 심리학자 바질 윌링 박사가 등장하는 이 시리즈는 도플갱어의 출현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다룬 멋진 작품입니다. 매우 불길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와 잊혀지지 않는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에 포함하기로 한 맥클로이 작품은 바질 윌링 시리즈의 후기 작품입니다. 말 그대로 밀실 미스터리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거울 속에>>와 마찬가지로 MR. SPLITFOOT 역시 특유의 분위기를 놓치지도 않고요. 예를 들어, 제목은 다름 아닌 사탄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 소설은 밤을 보낸 사람은 아침에 시체로 발견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령의 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전설을 시험해 보려는 자원자가 곧바로 등장합니다....

<<혼진 살인사건>> : 요코미조 세이시 (1946)
요코미조 세이시는 일본에서 셜록 홈즈에 버금가는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만들어낸 전설적인 작가입니다. 혼진 살인 사건은 킨다이치가 요코미조의 소설에 출연한 77편의 작품 중 첫 번째 작품으로, 결혼식 날 밤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 한 쌍의 신혼 부부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클레이튼 로슨 (1938)
마술과 문학을 결합하는걸 전문으로 하는 작가의 놀라운 데뷔작입니다. 그는 마술사이자 존 딕슨 카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카처럼 클레이튼 로슨도 해리 후디니와 같은 과거의 전설적인 마술사들을 존경했습니다. 로슨의 탐정인 위대한 멀리니에는 분명히 후디니의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멀리니 이야기는 가장 순수한 '미스디렉션'을 보여줍니다.

THE CRIMSON FOG : 폴 할터 (1988)
폴 할터는 종종 존 딕슨 카의 후계자로 설명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독특한 문제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긴장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든 소설을 강력히 추천하지만, 마술 쇼 중 무대에서 벌어지는 불가능한 살인을 다룬 THE CRIMSON FOG는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이상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담하니까요! 또 잭 더 리퍼가 직접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RIM OF THE PIT : 해크 탤벗 (1944)
서프라이즈! 또 다른 마술사, 해크 탤벗은 프로 마술사 헤닝 넬름스가 두 편의 환상적인 밀실 미스터리인 The Hangman’s Handyman과 RIM OF THE PIT을 출간할 때 사용한 가명이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모험가이자 탐정인 로건 킨케이드가 등장하며,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선보입니다. 
RIM OF THE PIT에서는 초현실적이고 악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눈 덮인 시골을 배회하는 섬뜩한 유령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물론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제벨의 죽음>>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948)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는 정말 뛰어난 미스터리 작가였습니다. 더 많은 작품을 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야전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영국의 시골집을 배경으로 한 그녀의 책 <<녹색은 위험>>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읽힌 작품입니다. 정말 위대한 황금기 미스터리지요. 
하지만 밀실 미스터리와 불가능한 범죄로는 <<제제벨의 죽음>>이 최고입니다. 시리즈 탐정 코크릴 경감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특히나 독특하고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노쇠하고 악연이 깊은 여배우가 무대에서 살해당한 미스터리한 상황을 말이지요. 퍼즐에 대한 해답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작품입니다!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1935)
각 작가가 하나의 작품만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존 딕슨 카는 "걸작"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책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그의 작품을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목록을 쉽게 채울 수 있지요. <<세 개의 관>>은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며, 무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처음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네요. 기디온 펠 박사가 눈이 내리는 런던의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살인범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디온 펠 미스터리를 썼지만 카터 딕슨이라는 필명으로 다른 시리즈도 썼는데, 이 시리즈에는 친구들에게 H.M.으로 알려진, 거구의 탐정 헨리 메리벨 경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찾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기디온 펠 이야기와 H.M. 작품들 중 일부는 불가능에 대한 힌트가 없는 단순한 후더닛이지만, 모두 눈부실 만큼 훌륭합니다! 존 딕슨 카와 그의 놀라운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면 더글러스 그린의 전기 he Man Who Explained Miracles를 강력 추천합니다.

밀실 단편 소설
밀실 미스터리는 장편 소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과 같은 출판물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작품을 계속해서 출판하고 기념하는 등 밀실 미스터리는 단편 소설 형식으로도 활발히 발표되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 편의 밀실 미스터리 단편 소설을 직접 썼기 때문에 (“The Indian Rope Trick”. “The Footless Phantom”은 모두 EQMM에 실렸어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몇 페이지 안에 공정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드워드 D. 호크와 같은 작가를 깊이 존경합니다. 특별한 순서는 없지만,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늙은 떡갈나무의 수수께끼>> 에드워드 D. 호크 (1978)
제가 단편 작품 섹션을 포함시킨 주된 이유는 호크 때문입니다. 그는 카에 필적할 만한 상상력을 가졌지만, 거의 전적으로 단편 소설을 전문으로 하여 평생 동안 1,000편에 가까운 작품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 중 단 한 편을 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시리즈는 작은 마을의 의사가 탐정으로 변신한 샘 호손이 등장하는 시리즈일 것입니다. 호손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도 <<늙은 떡갈나무의 수수께끼>>는 독창성과 문학적 성취로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꿈>> 아가사 크리스티 (1937)
황금기 미스터리 관련 글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밀실 추리 소설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포와로 시리즈 작품인 <<에르큘 포와로의 크리스마스>>와 <<메소포타미아의 살인>>에는 교묘하게 고안된, 불가능 문제들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대표작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밀실 미스터리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도 있고요. 저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걸작인건 분명합니다. 이 작품 대신 벨기에의 작은 회색 뇌세포가 꿈에서 예언된 밀실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단편 소설 <<꿈>>을 선택했습니다.

<<붉은 밀실>> 아유카와 테츠야 (1954)
일본에서 밀실 미스터리와 본격 미스터리의 신조를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그리고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녹색 문은 위험>> 노리즈키 린타로 (1991)
완벽한 퍼즐 미스터리이자 신본격 장르의 주옥같은 작품.

<<The Name on the Window>> : 에드먼드 크리스핀 (1953)
크리스핀은 뛰어난 재치를 지닌 작가이자 저처럼 카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의 시리즈 탐정인 저비스 펜과 이 깔끔한 밀실 문제를 통해, 크리스핀은 자신이 거장의 제자임을 증명했습니다.

<<The House in Goblin Wood>> : 카터 딕슨(존 딕슨 카) (1947)
헨리 메리 베일 경은 이 진정으로 감각적인 작품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실종에 맞서 그의 재치를 발휘합니다.

<<The Border-Line Case>> : 마저리 앨링엄 (1936)
앨링엄은 크리스티와 마찬가지로 밀실이나 불가능한 범죄 이야기를 전문으로 하지 않은 또 다른 '범죄의 여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Border-Line Case은 이 장르의 훌륭하고 완벽하게 구성된 예입니다.

<<From Another World>> : 클레이튼 로슨 (1948)
강령회가 예상치 못한 기괴한 결과를 낳는 단편 걸작.

<<13호 독방의 문제>> : 자크 푸트렐 (1905)
장르의 초석을 다진 작품. 반드시 읽어야만 합니다.

<<개의 신탁>> : G.K. 체스터턴 (1926)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는 홈즈, 포와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대한 탐정입니다. 체스터턴 자신이 존 딕슨 카의 기드온 펠의 모델이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죠!

<<The X Street Murders>> : 조셉 커밍스 (1957)
조셉 커밍스는 슬프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작가로, 시리즈 캐릭터 브룩스 U. 배너 상원의원은 헨리 메리베일 경의 후계자라 할 수 있습니다.

<<The House of Haunts>> 엘러리 퀸 (1935)
엘러리 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스터리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사실 그는 두 명입니다. 사촌 프레드릭 다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만든 가명이었죠).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밀실 미스터리를 많이 쓰지 않았지만, 그들이 쓴 밀실 미스터리는 모두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차이나 오렌지의 비밀>>과 <<the Door between>>모두 밀실 문제를 다룬 훌륭한 소설이지만, 두 작품 모두 불가능성이 다른 더 눈부시고 기발한 플롯 요소에 가려져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하우더닛보다는 후더닛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윌리엄 브리튼 (1966)
이 책도 꼭 포함시켜야 했어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죠! 마지막에 유쾌한 반전이 있는 멋진 블랙 코미디 작품입니다.

밀실 미스터리의 미래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다행히도 밀실 미스터리 장르가 다시금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이 매일 출간되고 있고, 이 장르에서 부당하게 외면받았던 고전이 재발간되는 것을 보면 정말 기쁩니다. 최근 신작으로는 Gigi Pandian의 Under Lock과 Skeleton Key, 짐 노이의 <<붉은 죽음 살인 사건>>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을 매혹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제임스 스콧 번사이드의 <<배링턴 힐스 뱀파이어 사건>> 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마틴 에드워즈의 뛰어난 레이첼 새버네이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블랙스톤 펠>>은 밀실 요소가 특징인 것으로 알고 있고, 로버트 소로굿의 아늑한 미스터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말로우에 죽음이 찾아왔다>>도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도 밀실 미스터리와 불가능한 범죄가 계속 번성하기를 바랍니다.